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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04.02 사르트르의 <출구 없는 방>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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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 없는 방> 

 

 

장-폴 사르트르 지음 

김성호 옮김

 

19 세기 많은 철학자들이 실존주의의 개념을 발전시켰지만, 이 개념을 널리 알린 이는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였다. 1944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연극 <출구 없는 방/ Huis Clos/ No Exit>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니까. 
이 작품에는 안내인, 가르생, 에스텔, 이네스 등 네 캐릭터만 등장하며, 무대는 벽난로 위에 커다란 청동 장식품이 놓이고 앙피르 풍 가구가 배치된 객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이라는 식의 실존주의적 사고가 배어 있다.

이 희곡을 읽으면서,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두 사람과 함께 객실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사르트르 희곡 출구 없는 방 No Exit

 

1장

 

     가르생, 안내인. 

     (앙피르 풍의 가구가 갖춰진 객실. 벽난로 위에 청동 흉상이 놓여 있다.)

 

     가르생: (안내인을 따라 방에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니까, 여긴가요?

     안내인: 예,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그러니까, 이건, 보이는 그대로군요. 

     안내인: 그렇습니다.

     가르생: 앙피르 풍의 가구 같은데… 아, 그래, 여기에 서서히 익숙해지겠지요?

     안내인: 사람마다 하기 나름이지요.

     가르생: 그러면 여기 방들은 다 이런 모습인가요? 

     안내인: 어찌 그렇겠습니까? 우리는 이를테면 중국인이나 인도 사람을 위한 방도 다 제공합니다. 그들한테 앙피르 양식의 안락의자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가르생: 그럼, 나한테는 어떤 양식이 맞겠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시오? 이런! 그게 무슨 상관이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견딜 수 없는 가구들 사이에서, 거짓된 상황에서 살면서 그런 삶을 마음껏 즐겼지요. 루이 필립 양식의 식당처럼 거짓된 상황…, 그 양식을 알아요? 요는, 말하자면, 가짜 속에 또 가짜가 있다는 것이오. 

     안내인: 앙피르 풍으로 꾸민 객실도 전혀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가르생: 그래요? 아, 좋아요, 좋아. 그렇다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하지만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저 아래에서 우리한테 하는 얘기를 당신은 알고 있나요?

 

     안내인: 무슨 얘기 말인가요?

     가르생: 흠... (방안을 휘둘러보면서) 이곳에 관해 하는 말들 말이오.

     안내인: 사실, 그런 건 다 허튼소리에 불과해요.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들은 여기 와 본 적이 없는데.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그들이 여기 오려면...

     가르생: 아, 맞아요. (둘이 웃는다.) (가르송이 정색하면서) 한데 고문대는 어디 있소?

     안내인: 뭐라구요?

     가르생: 흠, 고문대며 불에 달군 인두, 에스파냐 부츠 따위 기구들 말이오. 

     안내인: 아, 지금 농담하시는 거지요?

     가르생: (그를 주시하면서) 농담이냐구요? 아니요, 여기서 웃을 일이 뭐 있겠소. (침묵. 가르생이 앞뒤로 바장인다.) 여긴 거울이 없군요. 창문도 하나 없네. 깨질 물건은 하나도 없어. (문득 어조를 높여서) 한데, 내 칫솔은 왜 압수한 거요?

     안내인: 아, 좋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아직 이른바 인간적 품위를 떨치지 못한 건가요? 이런 표현, 미안합니다.

     가르생: (화가 나서 안락의자 팔걸이를 내려치며) 빈정대지 마시오. 내 처지를 분명히 알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건 못 참아...

     안내인: 아, 알겠습니다! 기분 상하게 할 뜻은 없습니다. 댁은 뭘 원하시나요? 고객들은 다 똑같은 질문들을 던져요.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정말 멍청한 질문들이지요. 다들 “고문실은 어디 있어요?” 하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좀 진정되면 칫솔을 요구하는데, 그래봤자 개인위생을 염려해서 그러는 건 전혀 아니에요. 한데 정말이지, 당신들은 생각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요? 대답해 보세요, 당신이 왜 이를 닦아야 하는 겁니까? 

 

     가르생: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래, 그럴 필요가 없군. (다시 사방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거울은 왜 들여다보고 싶어 하나? 하지만 벽난로 위에 있는 저 청동 흉상으로 말하자면… 내가 저기서 눈을 떼지 못할 순간이 올 것 같아요. 눈을 떼지 못하겠지요? 

좋아요, 우리 툭 털어놓고 얘기해 봅시다. 난 내 처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오. 이게 어떤 느낌인지 말해 볼까요? 한 남자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데, 두 눈은 아직 물 위에 내놓고 있는 꼴이오. 그리고 무엇을 볼까요? 그 사람 이름이… 아, 바르베디앙, 그가 만든 청동 흉상을 보겠지요. (*Barbedienne, 1810-1892, 프랑스 금속세공인). 이건 악몽이오! 이게 저들의 의도 아닌가요? 

아, 아니야, 당신은 질문에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겠지. 그래서 더 묻지 않을 게요. 하지만 나한테 함부로 대하지는 마시오, 나를 놀라게 하면서 즐길 생각일랑 접어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 (다시 앞뒤로 바장인다.) 자, 칫솔은 필요 없게 됐어. 침대도 그렇고. 여기서는 다들 잠도 안 자는 모양이구려? 

     안내인: 그렇습니다. 

 

출구는 없다
사르트르 희곡 <출구는 없다>

 

     가르생: 그럴 줄 알았소. 잠을 왜 자야 하지? 졸음이 당신 뒤편에서 조용히 다가들고 눈이 저절로 감기는 것을 느끼지만, 침대로 갈 필요가 없지. 소파에 눕는데, 이런, 잠이 달아나고 마네. 두 눈을 부비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고.

     안내인: 당신은 정말 낭만적이군요!

     가르생: 그런 소리 마시오. 난 눈물 흘리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을 게요. 금방 말한 대로 상황을 직면할 거요. 공정하고 당당하게 마주할 것이오. 내가 짐작도 하기 전에 상황이 뒤통수치기를 바라지 않아요. 이걸 당신은 낭만적이라고 부르는군요. 여기선 휴식이 필요 없다는 뜻이오? 휴식이 필요 없다면 잠을 왜 자나? 안 그렇소? 잠깐만. 이봐요, 여기선 징벌을 어떻게 받지요? 어디서? 아, 알겠어, 휴식도 없이 내닫는 삶이로군.

     안내인: 휴식도 없다니요?

     가르생: (그를 흉내 내면서) 휴식도 없다니요? (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시오. 내 그럴 줄 알았어! 당신 눈길이 왜 이다지도 뻔뻔스러운지 이제 알겠소. 근육 위축증에 걸렸군!

     안내인: 무슨 뜻이지요?

 

     가르생: 당신 눈꺼풀 말이오. 우리네 눈꺼풀은 위아래로 움직여요. 이걸 가리켜서 깜빡거림이라고 하지. 이건 찰칵 하고 내려가면서 휴식을 취하는 작고 검은 셔터 같은 것이라오. 모든 것이 검게 변하고 두 눈은 축축해지지요. 그러면 얼마나 휴식이 되고 상쾌해지는지 당신은 모를 게요. 한 시간마다 4천 번의 짧은 휴식이 있다오. 4천 번의 짧은 멈춤을 생각해 봐요! 뭐라구요? 내 눈꺼풀도 닫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어리석게 굴지 마시오. 눈꺼풀 없는 것이나 잠을 못 자는 것이나 매한가지야. 난 절대 다시 잠자지 않을 거요. 

하지만 어떻게 견디냐고? 이해하려고 해 봐요. 보다시피, 난 놀리기를 좋아해요, 이건 나의 제 2의 천성이고, 난 자기 자신을 놀리는 데 익숙하다오. 자신을 괴롭히는 데 익숙하다고 해도 되겠지. 난 멋지게 괴롭히지 못해. 그러나 휴식도 없이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저 아래에서 나한테는 밤이 있었다오. 난 잠을 잤어요. 늘 곤히 자곤 했어. 일종의 보상 같은 거지요. 그리고 행복한 꿈도 살짝 꾸었지. 거기엔 푸른 들판이 있었다오. 그냥 평범한 들판인데, 거기서 한가롭게 거닐곤 했지… 여긴 지금 낮이오?

 

     안내인: 램프 켜져 있는 게 안 보입니까? 

     가르생: 아, 그래요, 알겠어. 그러니까 이게 당신네 낮이로군. 바깥은 어떻소?

     안내인: (놀라서) 바깥이라니요?

     가르생: 이런 젠장, 무슨 뜻인지 알잖소. 저 벽 너머 말이오!

     안내인: 거긴 통로가 있습니다. 

     가르생: 그러면 통로 끝에는?

     안내인: 객실들이 더 있고 통로도 더 있고 또 여러 계단이 있지요.

     가르생: 그 다음엔 뭐가 있나요?

     안내인: 그게 전붑니다. 

     가르생: 당신도 쉬는 날이 있을 텐데, 그때는 어디로 가시오?

     안내인: 숙부한테 갑니다. 3층에서 선임 안내원으로 일하지요. 

     가르생: 흠, 그렇군. 전등 스위치는 어디 있지요?

     안내인: 여기에 스위치 같은 건 없습니다.

     가르생: 뭐라구요? 그렇다면 불을 못 끈다는 뜻이오?

     안내인: 아, 관리실에서 전기를 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층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엔 전기가 넘치니까요.

     가르생: 거 참 좋군. 그러니까 늘 눈을 뜨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오?

     안내인: (빈정대듯이) ‘산다’는 표현을 쓰셨나요? 

     가르생: 말꼬리 잡지 마시오. 눈을 감지 않는다. 영원히. 눈앞엔 늘 대낮이야. 또 머릿속에도. (휴지.) 벽난로 위에 있는 저 청동상을 전등 위에 떨어뜨리면 불이 나가지 않을까? 

     안내인: 그건 아주 무겁습니다.

     (가르생이 청동상을 들어 올리려 한다.)

     가르생: 맞네. 정말 무겁군. (침묵.)

     안내인: 그럼, 더 하실 말씀 없다면, 물러가겠습니다.

     가르생: (흠칫 놀라면서) 뭐, 간다구요? 잘 가시오. (급사가 문에 이른다.) 잠깐. (급사가 몸을 돌린다.) 이게 벨 맞소? (급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원할 때 벨을 누르면 당신이 나타나나요?

     안내인: 원칙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끔 말을 안 들어요. 배선에 문제가 좀 있지요.

     (가르생이 벨 쪽으로 다가가서 누른다. 벨이 울린다.)

     가르생: 잘 작동하는군!

     안내인: (놀라서) 정말 작동하네요. (역시 벨을 누른다.) 하지만 좋아하진 마세요, 변덕이 심하니까요. 이제 정말 가야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가르생: (손짓으로 그를 세우면서) 저기…

     안내인: 네?

     가르생: 아니, 아무 것도 아니요. (그가 벽난로 쪽으로 가서 페이퍼 나이프를 집어 든다.) 이건 또 뭐지요?

     안내인: 보시다시피, 책갈피를 자르는 칼입니다. 

     가르생: 여기 책이 있다는 말이오? 

     안내인: 아니요. 

     가르생: 그러면 이걸 뭐에 써먹나? (안내인이 어깨를 추썩인다.) 됐어, 가 봐요.

     (안내인이 퇴장한다.)

 

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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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 없는 방> 소개와 분석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출구 없는 방>은 독일의 프랑스 점령을 상징하는 작품. 

그 자신이 2차 대전 동안 프랑스군 군인으로서 패배와 전쟁의 고통을 생생히 겪었다. 

사건은 지옥의 일부로 간주되는 방에서 벌어지는데, 이 방에 들어선 세 사람은 서로가 제 주변에 있는 다른 존재를 견디지 못한다. 이것은 전쟁 동안 뒤섞여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 간의 관계를 암시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 희곡에서 사르트르는 자유, 타인에게 의존, 속임수, ‘잘못된 믿음’ 같은 이슈를 다룬다. 


사르트르 출구는 없다<출구는 없다> 공연 장면


죽음을 보는 방식이며 현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사르트르의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이 희곡에 담긴 여러 관념이며 상징화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각자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캐릭터들도 깊이 있게 살펴봐야겠다. 

사르트르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통제하게 하는 존재인 ‘존재 안의 존재(being-in-itself)’나 아니면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인 ‘존재 위한 존재(being-for-itself)’를 확고하게 믿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경구는 인간 의식이 ‘존재 위한 존재’나 ‘존재 안의 존재’에 집중됐다는 그의 믿음을 드러내는 주제였다. 

인간에겐 자신의 생각, 특유함, 가치, 어떤 특징을 선택할 힘이 있다. 이런 힘과 더불어 선택에 대한 책임도 따라붙는다. 이 책임이 두려워서 사람들은 한 발 물러선 채 자기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고 통제하게 하는 것. 이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 방법. 그럼으로써 ‘존재 위한 존재’ 대신 ‘존재 안의 존재’가 생긴다. 


이 희곡에서 사르트르가 묘사한 캐릭터는 안내인과 이네스, 에스텔, 가르생. 가르생은 리오 출신의 저널리스트로서 가장 먼저 방에 들어온다. 그는 전쟁 중에 탈영하려 했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탈영이 평화주의자로서 신념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변한다. 대화가 펼쳐지면서 가르생은 자기네 세 사람이 어쩌다 우연히 한데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로써 서로를 고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같이 있게 됐음을 깨닫는다. 또 이 곤경을 수습하는 최선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각자 따로 지내면서 다른 사람을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가르생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구의 현재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지구에서 사랑한 사람들에게 저지른 못된 짓을 두고 자신을 달래려고 한다. 자신이 왜 지옥에 떨어졌는지 충분히 깨닫고 더 이상 아무 의문도 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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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객실에 들어온 이네스는 가장 파괴적인 캐릭터. 그녀는 다른 두 사람에게 적대감과 문제를 불러일으키려고 든다. 과거에 그녀는 우체국 사무원이었다. 자신이 사촌의 아내를 유혹하고 간통을 저질렀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자는 동안 자기 사촌의 아내이자 자신의 애인이 스토브를 켜 두어 가스가 새 나오는 바람에 함께 죽었다. 남자들을 싫어하는 게 분명한 이네스는 가르생을 미워하여 툭하면 아옹다옹한다. 하지만 에스텔이 아주 매력적인 여성임을 금방 알아차리고는 계속 치근댄다. 에스텔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면서도 실제로는 그녀를 두려워한다.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온 사람은 에스텔. 셋 중에서 가장 크게 겁에 질려 있다. 자신의 실제 존재를 스스로 상기하기 위해 거울을 보는데, 그 방에는 거울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가르생과 이네스에게 의존하기로 한다. 또한 자신은 지옥에 있는 게 아니라고 굳게 믿으면서 폐렴으로 죽었다는 것만 인정한다. 그녀는 ‘죽은’이란 단어 대신 ‘부재중’이란 단어를 쓰자고 다른 두 사람에게 부탁한다. 

이네스가 계속 집적대지만 에스텔은 오로지 남자하고만 함께 할 수 있으며 가르생을 좋아한다고 밝힌다. 가르생은 한순간 에스텔에게 흥미를 보이다가 곧 이네스와 그녀의 행동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에스텔은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으며 사생아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가장 베일에 싸인 캐릭터는 안내인. 그는 세 사람을 방으로 안내하면서 질문에는 거의 대답하지 않으며 수수께끼 같은 말만 짧게 남기곤 한다. 자기를 호출할 수 있는 벨을 가르생에게 알려주지만, 그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안내인은 악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가르생에게 탈출할 기회를 주지만, 그러면서도 가르생이 이네스의 비판을 겁내 떠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세 사람은 안내인이 자기들을 은근히 우롱하며 방의 가구 배치 같은 문제로 아주 성가시게 한다고 여긴다. 


사르트르는 각 등장인물의
존재와 본질의 차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각자는 지구에서 이미 죽었고 남은 영혼으로만 생존할 수 있다. 그들은 폐쇄되고 고립된 상황으로 인해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스스로 볼 수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 행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전통적 접근 방식을 거부하는 것. 실존주의자들은 그 어떤 공동체나 전통, 법과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을 연구하고 들여다보기를 택한다. <출구는 없다>에서 우리는 실존주의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출구도 거울도 없기 때문에 캐릭터들은 자기네가 실제로 거기 있고 본질을 지니고 있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처음에 이네스는 가르생의 표정을 두고 가르생과 갈등을 겪는다. 입매가 마음에 안 드니 그만 씰룩거리라고 요구한다. 그가 그녀의 지적을 받아들여 씰룩거림을 멈추려 애쓴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이 자기네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의견에 의존하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가르생은 이네스가 그의 본질을 정의하도록 허용한 것. 


이 작품의 또 다른 흥밋거리는 사르트르가 지옥을 최종 장소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 마인드 상태가 지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독자가 알게 한다. 독일군의 파리 점령 기간에 이 희곡을 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내인의 눈꺼풀 없는 응시로써 사르트르가 나치의 프랑스인 감시를 비유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가르생은 안내인의 주시를 몹시 곤혹스럽게 여기는데, 다른 사람들의 의문의 눈길 받는 것을 겁내기 때문이다. 


에스텔은 가르생을 처음 볼 때 그를 지상의 연인과 결부시킨다. 이건 스토리 후반에 둘의 관계를 예고하는 것. 에스텔이 거울에 의존하여 실제로 거기 있다고 믿음을 통해 존재와 본질이 또 거론된다. 에스텔은 물질적인 것들에 의존해 자기 존재를 정의한다. 반면에 이네스는 자신의 존재나 본질을 다른 사람들이 정의하게 놔두지 않는다. “그녀는 항상 자신을 처절하게 의식한다고 주장한다.” 에스텔은 이네스에게 거울이 돼 달라고 하지만, 그녀가 에스텔을 제대로 돕기란 불가능하다. 외모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다르니까. 

에스텔과 가르생 둘 다 자기네 과거를 떠나보내고 이미 저지른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지옥을 만들어 내는데, 그건 끝없는 개인적 고문처럼 보인다. 둘은 여전히 과거에 있는 듯이 행동하며, 이네스와는 달리 지금 여기를 보려 들지 않는다. 이네스는 자신의 현재를 분명히 보며 과거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거기에 더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이네스와 마찬가지로 가르생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극히 염려하며 통제력이 부족할까 겁낸다. 그는 이제 자신이 사라졌고 자신의 기억과 유산을 남들에게 남겨 두어 기쁘게 했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을 정의할 자유를 다른 이들에게 넘긴다. 그는 이제 ‘존재 안의 존재’가 되었다. 이건 안내인이 그를 위해 문을 열 때 떠나지 않기로 한 이유이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행한 선택을 두고 사람들이 그를 판단할 것이라 믿으며, 자신을 영원히 이 방에 맡기기로 결정한다. 

사르트르는 가르생과 에스텔, 이네스를 한데 모아둠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지옥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지옥은 그냥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우리네 마음가짐일 수 있다. 각자가 서로 응시하는 파워가 대체로 각 개인의 개성을 앗아간다. 타인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고통을 야기할 때 신체적 고문은 필요가 없다. 각 캐릭터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책임을 잃고 무시한다. 


<출구 없는 방>은 삶의 여러 중요한 주제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접할 만하다. 

자기 행동에 책임,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기, 실존, 현재에 집중 등이 삶을 꾸리는 중요한 방법이다. 

여기 각 캐릭터는 많은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나약함이나 결점을 상징한다. 


* 공연 녹화물이 유튜브에 상당히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개중에 하나를 여기 옮깁니다.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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