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도웰 교수의 머리 21,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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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벨랴예프, 도웰 교수의 머리 책 표지




21. 탈주 


그날 밤은 로랑이 라위노 의사의 사설 병원에서 지금까지 보낸 기간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시간이 방으로 흘러드는 익숙한 음악처럼 끝없이 지겹게 늘어졌다.

로랑이 창문에서 방문으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했다. 복도에서 조심스레 내딛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근거리다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건 당직 간병인의 발소리였다. 간병인은 문틈으로 들여다보려고 문으로 살금살금 다가들곤 했다. 이백 촉짜리 전구가 밤새 방안을 밝히고 있었다. 라위노 의사는 ‘손봐야 할 환자들’에게는 잠시라도 숙면을 제공하지 않았다. 로랑이 옷도 벗지 않은 채 서둘러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다. 그리고 흔치 않은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몇 날 밤을 불면으로 시달린 그녀가 깜빡 잠들고 말았다. 그 동안 겪은 일들로 인해 녹초가 될 정도였던 것이다. 잠든 시간은 불과 몇 분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는 밤이 다 지나간 것 같았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 문가로 달려갔다가 마침 들어서는 아르투아 도웰과 부닥쳤다. 그는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그녀가 터져 나오려는 환성을 간신히 참았다. 


“서둘러요.” 그가 속삭였다. “간병인이 서쪽 복도에 있어요. 빨리 갑시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이끌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환자들의 신음과 비명이 그들의 발소리를 덮어 주었다. 한없이 길기만 한 복도의 끝이 나왔다. 마침내 건물 출구가 나왔다. 

“정원에 경비들이 있지만, 피해서 빠져나갈 거예요…” 

도웰이 로랑을 정원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면서 빠른 말로 속삭였다. 

“하지만 개들이…”

“식사 때 남긴 빵과 고기를 계속 먹이면서 개들하고 친해졌어요. 난 여기 온 지 벌써 며칠 되지만,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당신과 접촉을 피했지요.”


정원은 먹물을 뿌린 것처럼 캄캄했다. 그러나 석조 담장을 따라 감옥 주변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가로등 몇 개가 불빛을 뿜었다. 

“저기 수풀이 있어요... 거기로 갑시다.”

갑자기 도웰이 풀밭에 엎드리면서 로랑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따라서 엎드렸다. 경비원 하나가 탈주자들 곁을 스쳐 지나갔다. 경비원이 사라지자 그들이 담장에 들러붙었다.

어디선가 송아지만한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와 그들에게 뛰어오더니 도웰을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가 빵 조각을 던졌다.

“봐요.” 아르투아가 속삭였다. “가장 중요한 일을 조치해 놓았잖아요. 이제 저 담장을 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도와줄게요.“

“당신은 어떻게 하고요?” 

로랑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도웰이 딱 잘라 말했다.  

“염려 놓으세요. 뒤따라 갈 테니.” 

“담장을 넘은 뒤에는 어떡하지요?” 

“내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다 준비돼 있어요. 자, 체조를 한다고 생각해요.”


도웰이 담장에 붙어서 두 손으로 받쳐 로랑이 꼭대기로 기어오르도록 도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경비원 하나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경보를 울렸다. 순식간에 온 정원에 불이 켜졌다. 경비원들과 개들이 서로 부르면서 탈주자들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뛰어내려요!” 

도웰이 재촉했고, 로랑이 놀라서 외쳤다. 

“당신은?”  

“어서 뛰어내려요!” 

그가 소리를 지르자 로랑이 어쩔 수 없이 뛰어내렸다. 

누군가의 손이 그녀를 받아 안았다.


아르투아 도웰이 껑충 뛰어 손으로 담장 꼭대기를 움켜쥐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자 간호사 둘이 그의 발을 붙잡았다. 도웰은 그들을 한 손으로 끌어올릴 정도로 힘이 셌다. 하지만 다른 손이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져 간호사들 위로 나뒹굴고 말았다. 


간호사들 추적을 피해 정신병원 담장을 아르투아 도웰


담장 너머에서 시동 걸린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얼른 떠나게들. 전 속력으로 달려!” 

그가 간호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소리쳤다. 

자동차가 응답하여 부르릉거리면서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놓아요. 내 발로 가겠소.” 

도웰이 저항을 멈추고 말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의 팔을 단단히 움켜쥔 채 병동으로 데려갔다. 현관에 라위노가 가운 차림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서 있었다.

그가 간호사들에게 명령했다. 

“독방으로 데려가라. 구속복(Strait jacket)을 입히고!” 


도웰을 창문이 없는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사방 벽과 바닥이 매트리스로 덮였다.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키면 여기다 집어넣었다. 간호사들이 도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들 뒤로 라위노가 독방에 들어섰다. 더 이상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두 손을 가운 주머니에 찌른 채, 도웰 위로 허리를 굽혀 둥그런 눈으로 쏘아보기 시작했다. 도웰이 그 눈길을 마주보았다. 라위노가 고개를 까닥이자 간호사들이 나갔다. 

도웰에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미치광이 시늉은 쓸 만했어, 하지만 나를 속이기는 어렵지. 당신이 여기 온 첫날 난 알아봤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당신의 의도를 짐작하지는 못했어. 당신과 로랑은 이 장난질의 대가를 톡톡히 치를 걸세.”

“당신보다 더 비싸게 치르지는 않을 거요.” 

도웰이 대꾸했다. 라위노가 바퀴벌레 같은 수염을 꿈틀거렸다. 


“위협인가?”

“위협이야.” 

도웰이 간결하게 내뱉었다. 

“나에게 맞서기는 힘들 걸. 당신 같은 애송이들은 상대가 안 돼. 당국에 고발한다고? 소용없네, 친구. 게다가 당국이 급습하기 전에 당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어. 한데 진짜 이름이 뭔가? 뒤바리는 가명일 테고.”

“아르투아 도웰, 도웰 교수의 아들이오.”

라위노가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알게 되어 큰 영광이오.” 그가 당혹감을 감추려고 조롱하는 말투를 취했다. “난 당신의 존경받는 부친과 아는 사이였네.”

“내 손이 묶여 있는 걸 신에게 감사하시오.” 도웰이 쏘아붙였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혼 좀 났을 거요. 그리고 내 부친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시오... 쓰레기 같으니!”

“당신이 아직도 한참이나 단단히 묶여 있을 테니, 신에게 크게 감사해야겠군, 나의 귀한 손님이여!”

라위노가 팩 돌아서서 나갔다. 자물쇠가 덜컥 소리를 냈다. 도웰이 혼자 남았다.

그는 별로 염려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그냥 놓아두지 않고 이 감옥에서 빼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위험한 처지에 빠졌다는 것은 알았다. 

라위노는 도웰과의 싸움 결과에 자신의 사업이 전적으로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아야 했다. 라위노가 대화를 끊고 방에서 훌쩍 나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심리 파악에 능한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금방 헤아렸고, 종교재판관 식의 재능을 적용하려 들지도 않았다. 아르투아 도웰과는 심리전이나 말이 아니라 단호한 행동으로만 싸워야 했던 것이다.




22. 생사의 기로에서


아르투아가 자신을 묶고 있는 줄의 매듭을 느슨하게 했다. 구속복으로 그를 꽁꽁 덮어씌울 때 일부러 근육을 긴장시켜 부풀렸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구속복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감시를 받고 있었다. 손을 빼려고 하는 순간 자물쇠가 철컥 울리더니 문이 열리고 우악스럽게 생긴 간호사 둘이 들어와서 그를 다시 꽁꽁 묶었다. 이번에는 구속복 위에다 또 가죽 끈으로 칭칭 동였다. 간호사들은 얌전히 굴지 않고 또 밧줄을 풀려고 했다가는 두들겨 맞을 것이라고 을러댔다. 도웰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갔다. 


독방에는 창문이 없고 천장에 달린 전깃불이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도웰은 아침이 됐는지 몰랐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라위노는 아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목이 말랐다. 곧 심한 공복감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먹을 것과 마실 것도 주지 않았다.

‘굶겨 죽일 작정인가?’ 

배가 몹시 고팠지만 먹을 것을 청하지 않았다. 만일 라위노가 굶겨 죽이기로 했다면, 부탁해봤자 초라한 꼴만 될 터였다.

라위노가 그의 의지력을 시험하는 줄을 도웰은 몰랐다. 그리고 라위노에겐 불만스럽게도 도웰은 이 시험을 이겨냈다


배고픔과 갈증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잠을 못 잔 그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다. 태평하게 쿨쿨 단잠을 잤다. 그것이 라위노에게 새로운 불쾌감을 준다는 것도 전혀 모른 채. 눈부신 램프 불빛도, 라위노의 음악 고문도 도웰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라위노는 의지력이 굳은 기질들에게 쓰는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했다. 

옆방에서 간호사들이 나무 마치로 철판을 두드리고 특별히 제작한 딸랑이를 흔들어 날카로운 소리를 요란하게 내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굉음이 울리면 아무리 단단한 사람도 대개는 잠을 깨고 두려움에 떨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러나 도웰은 정말 강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여전히 어린애처럼 자고 있었다. 이 흔치 않은 케이스에 라위노마저 혀를 내둘렀다. 


‘경악할 일이군. 저자는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천사들의 나팔소리에도 깨지 않을 거야.’

“됐어, 그만해라!”

그가 간호사들에게 고함을 지르자 지옥의 굉음이 멈췄다. 


그런데 사실 그 끔찍한 굉음 때문에 도웰이 잠에서 깼다는 것을 라위노는 몰랐다. 그러나 강한 의지의 소유자인 도웰은 의식이 퍼뜩 돌아온 순간 자신을 잘 통제하여 한숨 하나 내쉬지 않고 뒤척이지도 않음으로써 자기가 잠에서 깼다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도웰은 물리적으로만 주무를 수 있다.’

그게 라위노가 내린 선고였다. 


한데 도웰은 굉음이 멈추자 다시 진짜 잠이 들어서 저녁까지 내쳐 잤다. 그렇게 한잠을 자고 일어나니 심신이 상쾌하고 기운이 돋았다. 배고픔도 이전보다는 덜 힘들게 느껴졌다. 눈을 뜬 채 누워서 미소를 머금고 문에 난 감시 구멍을 쳐다봤다. 누군가의 둥그런 눈이 안쪽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적을 자극하려고 아르투아가 일부러 명랑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건 라위노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꺾을 수 없는 의지도 있다는 것을 살면서 처음 실감했다. 꽁꽁 묶인 채 고립무원 상태로 바닥에 팽개쳐진 자가 그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방안을 주시하던 눈동자가 사라졌다


눈동자가 사라진 뒤에도 도웰이 계속 노래를 더 크게 불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목이 콱 막혔다. 뭔가가 목구멍을 심하게 자극했다. 코를 빼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목구멍과 콧구멍이 간질거리고 금방 눈에서 바늘로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냄새가 더 심해졌다. 

아르투아 도웰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죽을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라위노가 화학전을 감행한 것이다. 염소 기체가 방안에 낮게 깔렸다. 도웰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가죽 끈과 구속복에서 벗어날 힘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보존 본능이 이성의 논거보다 더 강했다. 믿기 어려운 힘을 동원하여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질했다. 벌레처럼 온몸을 잔뜩 웅크렸다가 펴고 뱅뱅 돌고 벽에서 벽으로 대굴대굴 굴렀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지 않고 도와 달라고 기도도 않고 이를 윽다문 채 침묵했다. 희미해진 의식은 이미 몸을 통제하지 못했고, 본능 하나가 몸을 보호했다. 

그러는 중에 불빛이 스러지고 도웰은 다시 어디론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머릿결을 건드리는 신선한 바람이 그에게 희미하게나마 의식을 불어넣었다. 그가 비상한 의지력을 끌어 모아 눈을 뜨려고 애썼다. 한순간 어떤 아는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아르망인가...’ 

그러나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통증으로 빠개지는 것 같았다. 

‘잠꼬대를 하는 거야, 하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군.’ 

그의 눈꺼풀이 닫혔다가 곧 다시 열렸다. 한낮 햇살에 눈이 몹시 부셨다. 아르투아가 실눈을 떴다. 그때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어때요?”

아르투아 도웰의 따갑고 화끈거리는 눈꺼풀 위에 물을 적신 솜뭉치가 얹혔다. 눈을 좀 더 크게 뜨고서야 아르투아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로랑을 알아보았다. 그가 그녀에게 미소를 짓고 주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한때 브리케가 누워 있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난 아직 안 죽었나요?” 

도웰이 희미한 소리로 물었다. 로랑이 대답했다. 

“다행히 죽지 않았어요. 그러나 죽음 직전까지 갔었지요.” 


옆방에서 급히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 아르망이 나타났다. 그가 손을 흔들면서 외쳤다.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네! 그러니까, 살아났다는 거지? 이보게, 친구! 어떤가?”

“고맙네.” 

도웰이 대답하다가 가슴의 통증을 느끼고 덧붙였다. 

“머리가 아파... 가슴도…”

아르망이 주의를 주었다. 

“말수를 줄이게. 자네한테 해로워. 그 악당 라위노가 자네를 선창(船倉)에 갇힌 쥐처럼 가스로 독살하려고 했지 뭔가. 하지만 우리가 그자의 악행을 참으로 멋지게 막아냈지, 아르투아.”

그러면서 아르망이 의기양양하여 웃음을 터뜨리려 하자 로랑이 나무라는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 그의 너무 요란한 기쁨이 병자의 평정을 깰까 우려한 것이다. 


“안 그럴게요, 안 그러겠어.” 

그녀의 눈총을 받고서 아르망이 웃음기를 거두었다. 

“이제 자초지종을 들려주겠네. 마드무아젤 로랑을 받아 안고서 기다리다가 자네가 뒤따라 나올 수 없다고 판단했어…”

“자네들... 내가 외치는 소릴 들었나?” 

아르투아가 물었다. 

“들었네. 자넨 입을 다물고 있게! 우리는 라위노가 추격대를 보내기 전에 서둘러 차를 몰았지. 자네하고 격투를 벌이는 통에 그의 개떼가 늦게 출발했어. 그 점에서 자네는 우리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데 큰 도움을 준 거야. 자네가 거기서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린 훤히 알고 있었지. 이제 공공연한 싸움이 된 거야. 우린, 그러니까 나하고 샤우브는 최대한 빨리 자네를 도우러 가려고 했네. 하지만 먼저 마드무아젤 로랑을 안전하게 모시고 나서 자네를 구하는 계획을 짜고 행동에 돌입해야 했던 걸세. 자네가 포로로 잡히리라고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으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든 석조 담장 안으로 침입해야 했지, 근데 자네도 알다시피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야. 그래서 우린 이렇게 움직이기로 했네. 즉, 나하고 샤우브가 경찰 제복을 입고 자동차를 타고 가서 위생검열 나왔다고 밝힌 거야. 샤우브가 갖가지 관인이 찍힌 명령서까지 작성했어. 다행히 정문에는 늘 지키는 경비가 아니라 간호사 하나가 서 있었는데, 그자는 누구든 안으로 들여놓으려면 사전에 전화를 걸어 알려야 한다고 라위노가 내린 지시를 몰랐던 모양이야. 우리가 유리한 위치를 점한 거야, 그리고…”


“그러니까 그건 잠꼬대가 아니었군…” 아르투아가 말을 가로챘다. “경찰 제복 차림의 자네를 보고 자동차 소리를 들었던 것이 기억나.”

“그래, 그렇지, 자동차에서 신선한 공기를 쐬게 하자 자네가 정신이 든 거야. 하지만 금방 다시 의식을 잃었어. 자, 계속 더 들어보게. 간호사가 문을 열어서 우리가 들어갔네. 나머지 일은 우리 짐작보다는 쉽지 않았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았어. 라위노의 집무실로 우리를 안내하라고 요구했지. 근데 우리의 요구를 받은 두 번째 간호사는 경험이 많은 녀석임이 틀림없네. 그자는 우리를 수상하게 여기고 보고하겠다면서 건물로 들어갔어. 몇 분 뒤 매부리코에 대모테 안경을 걸친 자가 흰 가운을 입고 나오더군…”

“라위노의 조수, 의사 부시야.”

아르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그는 라위노 의사가 바쁘니 대신 자기가 우리와 얘기 나눌 수 있다고 하더군. 반드시 라위노를 봐야 한다고 내가 고집 부렸지. 부시는 라위노가 중환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는 거야. 그러자 샤우브가 더 길게 생각도 않고 부시의 손을 이렇게 붙잡고...” 

아르망이 자신의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쥐었다. 

“이렇게 비틀었네. 비명을 지르는 부시를 남겨두고 우리는 병동으로 들어섰어. 근데, 젠장, 라위노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있나, 그래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운 좋게도 그자가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는 거야. 자네를 정신병자라 하고 입원시킬 때 본 적이 있어서 그자임을 금방 알았지. ‘무슨 일입니까?’ 그가 날카롭게 묻더군. 우리는 더 이상 연극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고 라위노에게 다가가서 리볼버를 꺼내 이마에 겨눴어. 그러나 뒤따라온 부시가 그 순간 샤우브의 손목을 내리친 거야. 그 비실비실한 주먹코 늙은이한데서 그런 민첩함이 나오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그것도 강하게 일격을 가하는 바람에 샤우브가 리볼버를 떨어뜨렸어. 그 틈에 라위노는 내 손을 움켜쥐었지. 그리고 한바탕 소동이 시작됐는데, 그걸 조리 있게 얘기하기도 쉽지는 않을 거야. 


라위노와 부시를 도우러 어느 새 간호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더군. 그자들 수효가 제법 많아서 우리를 간단히 제압할 수도 있었어. 그러나 다행히도 경찰 제복에 많은 자들이 머뭇거리더군. 경찰에 대항하면, 그것도 권력의 대표자에게 물리력을 동원하면 중벌을 받는다는 걸 그자들도 알고 있었던 거야. 라위노가 ‘저자들 제복은 가짜야!’ 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대다수 간호사들은 그저 지켜보는 입장을 택했고 몇 놈만이 신성불가침의 경찰 제복에 손을 대려고 들었지. 그자들한테는 없는 피스톨이 우리의 두 번째 에이스였네. 아, 우리의 완력과 민첩함, 필사적인 자세도 그에 못지않은 에이스였을 거야. 그래서 양측의 전력이 비슷해진 거지. 


샤우브가 의사 라위노며 부시와 격투를 벌이다.


떨어뜨린 리볼버를 주우려고 샤우브가 허리를 굽히자 간호사 한 놈이 그 위로 올라탔지. 알고 보니 샤우브는 종합 격투기의 대가더군. 등 뒤로 덮친 놈을 떼어낸 뒤 낯짝에 정타를 몇 방 날렸어. 그러면서도 어떤 녀석이 주우려고 손 뻗는 걸 보고 떨어져 있는 리볼버를 발로 가볍게 밀어내기까지 했어. 공정하게 말해서, 샤우브는 아주 냉정하고 침착하게 싸웠네. 

나한테도 간호사 두 녀석이 매달렸어. 샤우브가 없었다면 그 싸움이 어떻게 끝났을지 몰라. 그가 정말 잘 대처했네. 리볼버를 어렵사리 주워 들더니 더 이상 망설이지도 않고 발사했다네. 몇 발에 간호사들의 열기가 팍 수그러들었어. 개중 한 놈이 피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으면서 비명을 내지른 뒤로 다른 자들은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네. 

하지만 라위노는 쉽게 굴하지 않더군. 우리가 양쪽에서 관자놀이에 리볼버를 들이대는데도 그자는 오히려 호통을 치는 거야. ‘나한테도 무기가 있어. 당장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당신들을 쏘라고 지시하겠소!’ 


그러자 샤우브가 영양가 없는 말들은 걷어치우고 라위노의 손목을 비틀기 시작했네. 그 기술을 걸면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덩치 큰 깡패들도 하마처럼 울부짖으며 온순하고 고분고분해질 정도야. 라위노의 손목에서 뼈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고 눈에는 눈물이 고이더군. 

그런데도 그자는 여전히 버티지 뭔가. 멀리 떨어져 있는 간호사들에게 계속 소리치는 거야. ‘너희들, 보기만 하고 있냐? 무기를 가져와라!’ 몇 놈이 달려가더군, 무기를 가지러 가는 거겠지. 그리고 다른 몇 놈은 우리한테 슬금슬금 다가들었어. 내가 라위노의 머리통에 대고 있던 리볼버로 그자들을 향해 몇 발 날렸지. 놈들이 다시 기겁하고, 한 놈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바닥에 쓰러졌어...”

아르망이 숨을 돌렸다. 


“그래, 정말 화끈했어. 라위노가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점점 힘이 빠지는데, 샤우브는 손목을 더 세게 비틀었지. 라위노가 안간힘을 다해 봐야 별 수 있나, 결국 아파서 몸을 배배 꼬며 잠긴 목소리로 울부짖더군. ‘원하는 게 뭐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아르투아 도웰을 당장 내놓아라.’ 그러자 그자는 이를 갈면서 그러더군. ‘난 당연히 당신 얼굴을 알아보았어. 손목 좀 놓아줘, 빌어먹을! 그가 있는 데로 안내할 테니...‘ 


샤우브가 라위노의 손목을 비틀고 아르투아의 행방을 묻다.


샤우브가 벌써 의식을 잃어가는 그자의 손목을 정신이 돌아오게끔 조금씩 풀어 주었어. 라위노가 우리를 자네가 갇혀 있던 독방으로 안내해서 눈짓으로 열쇠를 가리켰지. 내가 문을 열고 라위노와 샤우브와 함께 들어섰어. 참으로 즐겁지 못한 장면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포대기에 싸인 갓난애처럼 구속복에 덮인 자네가 마지막 경련을 일으키면서 꿈틀거리는데, 아아, 절반쯤 발에 밟힌 벌레와 다를 바가 없었네. 방안에는 염소 가스가 자욱해서 가슴이 오그라들고 목구멍이 죄어들었다네. 물론 냄새도 지독했지. 

샤우브가 더 이상 상대하지 않으려고 턱 밑으로 가벼운 펀치를 날리자 의사는 썩은 가마니처럼 바닥에 푹 고꾸라지더군. 우리도 숨 쉬기가 어려워 헐떡거리면서 자네를 빼낸 뒤 문을 쾅 닫았네.”


“라위노는? 그가…”

“헐떡이기는 해도 질식해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지. 하지만 우리가 떠난 뒤에 일꾼들이 그자를 빼냈을 거야… 그 지옥에서 우리가 그래도 무사히 빠져나온 셈이야, 남은 총알을 개들한테 쏠 수밖에 없었던 일만 제외하면… 그리고 자네가 여기 있게 된 거네.”

“내가 의식을 잃은 지 오래 됐나?”

“열 시간. 의사는 자네 맥박과 호흡이 돌아온 뒤 조금 전에 돌아갔는데,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하더군. 이제, 이보게...” 

아르망이 손바닥을 문지르면서 말을 이었다. 

“세상을 벌컥 뒤집어 놓을 만한 재판이 남아 있네. 라위노는 코른 교수와 함께 피고인석에 앉을 거야.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네.”

“하지만, 살았든 죽었든, 내 부친의 머리를 먼저 찾아야 해.”

아르투아가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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