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도웰 교수의 머리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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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도웰 교수의 머리

 


 

11. 달아난 전시품 

 

브리케의 삶에서 마침내 위대한 날이 도래했다.

마지막 깁스붕대를 제거한 뒤 코른 교수가 그녀에게 일어나 보라고 했다.

그녀가 일어나서 로랑의 손에 의지하여 방안에서 걸었다. 동작이 확실치 않고 다소 위태로웠다.

가끔 그녀는 손으로 이상한 제스처를 썼다. 즉, 손이 어느 범위까지는 고르게 움직였는데 그 다음에는 멈칫하는 것이었다. 마치 다시 고르게 움직이기 위해 강요된 동작처럼.

그걸 보면서 코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다 괜찮아질 거야.” 

 

그는 브리케의 발바닥에 난 크지 않은 상처에 다소 안도했다.

상처는 서서히 아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브리케가 아픈 발로 짚을 때조차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물었다.

며칠 지나서 브리케는 벌써 춤을 추려고 들었다.

그러다가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어떤 움직임들은 마음대로 되는데, 또 어떤 것들은 어려워요. 아마도 새 몸뚱이를 내가 아직 잘 통제하지 못하나 봐… 그래도 이 몸통은 아주 훌륭해! 이 다리를 보세요, 마드무아젤 로랑. 키도 늘씬하잖아요. 단지 목에 이 수술 자국이… 가려야 되겠지요. 그러나 그 대신 어깨에 있는 이 반점은 정말 매력적이지 않아요? 이 점이 보이도록 드레스를 해 입을래요… 아, 내 몸뚱이에 아주 만족해요.”

브리케의 수다를 들으면서 로랑이 생각했다.     

‘자기 몸이라니! 아아, 안젤리카가 가엾어라!’

 

브리케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내면에 묶어두었던 것이 모두 단번에 겉으로 터졌다. 그녀는 로랑에게 드레스와 외투, 구두, 모자, 패션잡지, 화장품 따위를 요구하고 주문하고 부탁했다. 

 

몸을 결합한 브리케가 원피스를 입어 보다

 

잿빛 비단 원피스를 새로 지어 입히고서 코른이 그녀를 도웰 교수의 머리에게 소개했다.

남성의 머리가 눈앞에 나오자 브리케가 이전 습관대로 교태를 부렸다. 그리고 도웰의 머리가 쉰 소리로,

“아주 좋소! 당신은 과제를 탁월하게 수행했구려, 동료. 축하하오!”

하고 말하자 코른이 아주 좋아했다. 

코른이 브리케와 팔짱을 끼고 새 신랑처럼 얼굴이 환해져서 방을 나갔다.

 

서재에 들어서자 코른이 정중한 기사처럼 예의 갖추어 말했다.

“편히 앉아요, 마드무아젤.” 

“어떻게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교수님.” 

그녀가 난처한 듯이 눈을 내리깔다가 코른을 애교 있게 응시하면서 말했다. 

“나한테 많은 것을 주셨어요… 한데 나는 보답할 게 없네요.”

“보답 같은 건 필요 없소.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난 더 많이 보답을 받았으니까.”

브리케가 코른에게 더 반짝이는 눈길을 던졌다.

“아주 기뻐요. 이제 내가 떠나도록... 그러니까 진료소에서 나가도록 해주세요.”

“나가다니? 어떤 진료소에서?” 

코른이 얼핏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집으로 가야지요. 내가 나타나면 친구들한테 엄청난 센세이션이 될 거예요!” 

 

그 말에 코른이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려고 한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가장 복잡한 과제를 완성했고 아예 불가능한 일을 해냈는데... 그건 브리케가 자기의 경박한 친구들한테 센세이션이나 주려고 한 게 아니야. 브리케를 학술대회에서 공개함으로써 나 자신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려 한 것이지. 나중에야 그녀에게 자유를 좀 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절대로!’

 

“안됐지만 당신을 내보낼 수 없소, 마드무아젤 브리케. 당신은 한동안 내 집에서 관찰을 받으며 지내야 해요.”

“도대체 왜 그래야지요? 난 상태가 아주 좋아요.” 

그녀가 손을 흔들면서 반박했다. 

“그래요, 하지만 악화될 수 있소.”

“그때 다시 오면 되잖아요.”

“당신이 언제 여기서 떠날 수 있는지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소. 내가 없었다면 당신 꼴이 어떠했을지 잊지 마시오.”

코른의 말투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벌써 감사를 표한 걸요. 그리고 난 어린 계집애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에요.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란 말이에요!

‘이런, 한 성질 하는군.’ 

케른이 내심 놀라서 말을 잘랐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일단은 당신 방으로 돌아가요. 존이 벌써 수프를 대령했을 거요.”

브리케가 입술을 빼물고 일어나더니 코른을 쳐다보지도 않고 나갔다. 

 

브리케가 로랑의 방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녀가 들어설 때 로랑은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

브리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오른손으로 아무렇게나 제스처를 취했는데, 그게 아주 우아하게 보였다. 

그런 제스처를 로랑이 벌써 여러 번 보면서, 그 제스처가 누구한테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안젤리카일까 아니면 브리케의 몸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나 안젤리카의 몸에 굳어진 운동신경이 과연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단 말일까? 

그런 질문은 로랑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 문제는 생리학자들이 연구할 거야.’ 하고 생각했다. 

 

“또 수프네! 이 진료소의 음식은 진저리가 나요. 신선한 굴을 먹고 샤블리(*Chablis, 프랑스의 전통 백포도주)를 마시면 좋겠는데.” 

브리케가 변덕스럽게 말했다.

접시에 있는 맑은 수프를 몇 모금 삼키고 또 입을 놀렸다. 

“코른 교수가 금방 한 말인데, 앞으로도 며칠 동안 나를 집으로 보내지 않을 거라네요. 그러면 안 되지요! 나는 새장에 갇힌 새도 아닌데. 여기는 따분해 죽겠어요. 이건 아니야, 난 환한 불빛과 음악과 꽃다발, 샴페인 같은 게 다 어우러져서 흥청대는 삶을 좋아해요.”

그렇게 쉴 새 없이 지껄이면서 후닥닥 배를 채우고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창가로 다가가서 아래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말했다.

“잘 자요, 마드무아젤 로랑. 오늘은 일찍 누울래요. 내일 아침에 나를 깨우지 말아요. 이 집에서는 시간을 때우려면 잠자는 게 가장 좋지요.”  

그러고는 고개를 까닥이고 자기 방으로 갔다.

 

로랑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편지는 다 코른의 통제를 받았다. 그가 얼마나 심하게 감시하는지 로랑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몰래 편지를 보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설령 코른 몰래 편지를 보낼 수 있다 해도 강제로 구금돼 있다는 사실은 쓰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날 밤 로랑이 유독 잠을 설쳤다.

앞날을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오랫동안 뒤척였다. 그녀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다.

그녀가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려고’ 코른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보아하니 브리케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창문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새 드레스를 입어 보나?’ 하고 로랑이 생각했다. 그러더니 잠잠해졌다.

잠결에 어디선가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들린 듯하여 잠을 깼다. 

‘하지만 내 신경은 끄떡없을 거야.’ 생각하고 다시 새벽잠에 깊이 빠졌다. 

 

여느 때처럼 아침 일곱 시에 눈을 떴다. 브리케의 방은 여전히 조용했다.

로랑은 그녀를 건드리지 않기로 하고 톰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갔다. 머리는 이전처럼 음울한 모습이었다. 코른이 브리케의 머리에 ‘몸통을 이식한’ 뒤 톰은 한층 더 우울해졌다. 그는 자기한테도 새 몸통을 빨리 달라고 부탁하고 애원하고 요구하다가 결국엔 거친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를 달래느라고 로랑이 꽤나 애를 먹었다.

머리의 아침 치장을 끝내고서 로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도웰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갔다. 

 

도웰은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삶이란 정말 이상한 물건이오! 불과 얼마 전에 난 죽기를 원했다오. 그러나 나의 뇌는 여전히 작동하고, 그저껜가는 아주 과감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그 생각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의학계에는 천지개벽이 일어날 텐데. 그걸 코른에게 알렸더니, 오오, 그의 두 눈이 어떻게 불타오르는지 아가씨가 봤어야 하는데. 그의 눈앞에서는 동시대인들이 감사하여 세운 자신의 동상이 어른거렸을 거야... 그래서 나는 그를 위해, 아이디어를 위해, 곧 나를 위해 살아야 하오. 사실 이건 무슨 멍에 같은 게지요.” 

“어떤 아이디어인데요?”

“내 뇌에서 윤곽이 더 뚜렷하게 잡히면... 그때 들려주리다...” 

 

아홉 시에 로랑이 브리케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문을 열려고 했지만 꿈쩍도 안했다. 안에서 잠겨 있었다. 코른 교수에게 즉각 알리는 것 외에는 달리 두수가 없었다.

코른이 늘 그렇듯이 민첩하고 단호하게 행동했다. 

“문을 부숴라!”

지시를 받은 흑인이 어깨를 부딪쳤다. 묵직한 문이 바지직 소리를 내면서 경첩에서 툭 떨어졌다. 코른과 로랑, 존이 방으로 들어섰다. 

브리케의 구겨진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코른이 창문으로 달려갔다. 창틀 손잡이 밑으로 욧잇 조각들과 수건 두 장을 이은 노끈이 늘어져 있었다. 창 아래 화단에 발자국이 어지러웠다. 

 

코른이 로랑에게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대면서 고함을 쳤다.

“이건 당신 짓이야!”

“신에게 맹세하건대, 마드무아젤 브리케의 탈주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로랑이 똑 부러지게 대응했다.

“좋아, 당신하고는 따로 얘기하지.” 

로랑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브리케가 단독으로 탈주를 감행했다는 것을 금방 느꼈음에도 코른은 여운을 남겼다. 

“지금은 도망자를 체포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니까.” 

 

브리케가 코른의 개인병원을 탈출하다

 

코른이 서재로 돌아와서 불안감을 억누르며 벽난로와 책상 사이를 바장였다.

먼저 경찰을 부를까 생각했다. 그러나 금방 지웠다.

이 일에 경찰을 개입시켜서는 절대 안 돼. 개인 탐정 사무소에 의뢰하는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내 잘못이야… 감시를 붙여야 했는데! 그러나 어제까지만 해도 시체였던 것이 달아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 텐가!

코른이 고약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 여자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사방에 나발 불고 다닐 텐데... 자신의 등장이 일으키는 센세이션 어쩌고 떠들지 않았던가… 신문기자들이 사건을 냄새 맡으면… 그녀를 도웰의 머리통한테 보여주는 게 아니었어… 일을 꼬이게 만드는군.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

 

코른이 전화로 탐정사무소 에이전트를 불러서 거금의 비용을 주며 수색을 의뢰했다. 찾아내는 경우에 더 많이 사례하겠다고 약속하고, 사라진 여인의 인상착의를 상세하게 알렸다. 

 

사설탐정이 탈주 장소에서 정원 철제 담장까지 이어진 흔적들을 둘러보았다. 담장은 키가 높고 꼭대기가 뾰족뾰족했다.

탐정이 고개를 저었다. ‘용케 빠져나갔군!’

뾰족한 철창 하나에 잿빛 비단 조각이 걸려 있었다. 그걸 떼어내 주머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달아날 때 이 드레스를 입고 있었군요. 잿빛 원피스를 입은 여인을 찾을 겁니다.”

‘잿빛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늦어도 하루 밤낮 안에는 찾아내겠다고 코른에게 다짐하고서 탐정이 떠났다. 

 

탐정은 자기 일에서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브리케가 마지막으로 살던 아파트 주소와 그녀의 이전 여자 친구 몇몇의 주소를 알아내고 그들과 안면을 트고, 한 여자 친구에게서 브리케의 사진을 발견하고 브리케가 어떤 카바레들의 무대에 섰는지 알아냈다. 도망자를 찾기 위해 다른 탐정 몇 명이 여러 장소에 파견됐다.

“새가 멀리 날아가지는 못할 겁니다.” 

탐정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실수했다. 이틀이 흘렀지만 브리케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사흘째 되는 날 몽마르트에 있는 한 선술집 단골이 사흘 전 한밤중에 ‘소생한’ 브리케가 거기 왔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코른이 한층 더 걱정에 빠졌다.

이제는 브리케가 그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귀중한 ‘전시품’을 아주 잃어버릴까봐 겁이 났다.

사실 그는 톰의 머리로 다른 것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시간과 엄청난 수고가 따라야 했다. 

게다가 새 실험이 훌륭하게 끝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소생시킨 개를 공표하는 것은 당연히 그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아니야,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브리케를 반드시 찾아내야 해. 그는 ‘달아난 전시품’ 수색에 건 사례금을 두 배로, 세 배로 늘렸다.

 

탐정들이 날마다 수색 결과를 보고해 왔지만, 신통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브리케가 땅 속으로 사라진 것만 같았다. 행방이 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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