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도웰 교수의 머리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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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로랑이 도웰 교수의 머리에게 저널 기사를 읽어 주다

 


 

1. 첫 만남 

 

“앉으시오.”   

마리 로랑이 가죽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실었다. 

코른 교수가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는 동안 그녀가 서재를 대충 둘러보았다.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방이야! 

그러나 여기서 어떤 작업을 하기는 딱 좋아 보였다. 주의를 어지럽히는 것이 하나 없으니 말이다. 썰렁한 갓이 달린 램프 불빛이 책들과 원고, 교정본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상 위로 쏟아졌다. 흑단으로 짜인 육중한 가구들이 겨우 눈에 잡혔다. 검은 벽지, 검은 커튼. 묵직한 책장들에 꽂혀 있는 금박 표지들만이 어둠침침한 방안에서 반짝거렸다. 오래 된 벽시계의 기다란 추가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로랑이 코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었다. 교수 자신이 서재 스타일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참나무로 깎은 듯한 묵직하고 준엄한 모습이 가구들의 일부처럼 보였다. 대모테가 둘린 커다란 안경은 시계 숫자판을 연상시키는데, 렌즈 뒤편에서 잿빛 두 눈이 편지글의 줄과 줄을 오가면서 시계추처럼 움직였다. 각이 진 코, 일직선으로 찢어진 눈과 입, 앞으로 내민 각진 턱 때문에 얼굴이 입체파 조각가가 빚은 주물 장식 마스크처럼 보였다. 

 

‘저런 마스크가 벽난로 장식에 잘 어울릴 텐데.’ 

로랑의 생각이 코른 교수의 굵직한 목소리 때문에 깨졌다.  

“내 동료 사바티한테서 벌써 당신 얘기를 들었소. 그래요, 나한테는 조수가 필요하오. 당신은 의사요? 아주 좋아. 일당은 40 프랑이고, 주급으로 정산하리다. 조반과 점심은 제공되고.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마른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건드리던 코른 교수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코른과 로랑의 면담

 

“당신은 입을 다물 줄 아시오? 여자들은 다 수다스럽지. 당신이 여자라는 점이 흠이오. 게다가 예쁘기 때문에 더 안 좋아요.”

“무슨 뜻인지…”

“빤한 거 아니겠소. 아름다운 여성은 두 몫을 하지. 즉, 여성적 결함도 두 배로 크다는 뜻이오. 당신에겐 이미 남편이나 친구, 아니면 약혼자가 있겠지요? 그렇다면 비밀 준수란 물 건너 간 거요.”

“하지만…”

“그런 말조차 불필요하단 말이오! 물고기처럼 말이 없어야 하오. 여기서 보고 듣는 것은 무엇이라도 입 밖에 내면 안 된다는 뜻이오. 조건을 이해하겠소? 미리 경고하는데, 이 조건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에게는 큰 불상사가 따를 것이오. 지극히 불쾌한 일이.”

로랑이 당혹감과 동시에 호기심을 느꼈다. 

 

“동의합니다. 만일 이 일이…”

“범죄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요? 그 점에서는 염려 놓으시오. 그리고 당신이 책임질 일도 없으니까… 당신의 신경은 정상이오?”

“네, 건강해요…”

코른 교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족력에 알코올 중독자나 신경쇠약 환자, 간질병자, 광인 같은 이들은 없었소?”

“없었습니다.”

코른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마르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탁자에 설치된 초인종 단추를 눌렀다. 

 

서재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사진 음화처럼 어둠침침한 방안에서 로랑이 본 것은 흰자위뿐이었다. 그러더니 흑인의 번들거리는 얼굴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다. 검은 두발과 의복이 문에 걸린 검은 커튼과 하나로 합쳐졌다. 

“존! 마드무아젤 로랑에게 실험실을 보여 줘라.”

흑인이 고개를 숙인 뒤 로랑에게 따라오라고 신호하면서 맞은편에 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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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이 들어선 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스위치를 올리자 네 개의 반투명 전구에서 선명한 불빛이 방안에 쏟아졌다. 로랑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어두컴컴한 서재에 적응됐던 두 눈이 하얀 벽들 때문에 어지러웠다. 번쩍이는 수술도구가 들어 있는 장들의 유리도 빛을 반사했다. 로랑이 잘 모르는 철제 기구와 알루미늄 도구 등속이 차가운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불빛이 따스하고 누런 반점처럼 구리로 덮인 부분들로 내려앉았다. 여러 개의 관이며 나선형 파이프, 플라스크, 유리 실린더… 유리, 탄성 고무, 금속…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해부용 탁자가 있고 탁자 곁에 유리 상자가 있는데, 그 안에서는 사람의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있었다. 그 심장에서 나온 관들이 가스용기 같은 통들로 이어졌다. 

로랑이 무심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뭔가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사람의 머리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몸통이 없이 덩그러니 놓인 사람 머리가 말이다! 

 

머리는 장방형 유리판 위에 고정돼 있는데, 그 유리판을 네 개의 키 높고 눈부신 금속 다리가 받치고 있었다. 잘린 동맥과 정맥들에서 나온 관들이 쌍을 이루어 유리 구멍을 거쳐서 가스용기 같은 통으로 이어졌다. 더 굵은 관이 목구멍에서 나와 커다란 실린더에 연결됐다. 실린더와 용기들에는 밸브들과 압력계, 온도계, 또 로랑이 알지 못하는 기구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머리는 눈꺼풀을 끔뻑이면서 쓸쓸한 눈길로 로랑을 자세히 살펴보는 참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머리는 살아 있었다. 몸에서 떨어진 채 독자적으로 의식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간담이 서늘해진 가운데서도 로랑은 이 머리가 얼마 전에 죽은 저명한 외과의사 도웰 교수와 똑 닮았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갓 숨진 시신에서 절개한 기관들을 소생시키는 실험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놀라운 공개 강연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넓은 이마와 특징적인 프로필, 숱이 많고 약간 서리가 앉은 아마 빛 머리털, 푸른 눈동자 따위를 로랑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래, 그건 바로 도웰 교수의 머리였다! 단지, 입술과 코가 더 가늘어지고 관자놀이와 양 볼이 늘어졌으며 두 눈이 더 움푹 패고 흰 피부가 미라처럼 암황색을 띠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두 눈에는 생기가 보이고 사유가 깃들어 있었다. 

 

그 푸른 눈동자에서 로랑이 넋 나간 사람처럼 눈길을 떼지 못했다. 

머리가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아서 로랑이 거의 혼절할 뻔했다. 

흑인이 그녀를 부축하여 실험실에서 데리고 나갔다. 

 

“아아,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로랑이 중얼거리면서 안락의자에 앉자 코른 교수가 입을 꾹 다문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말해 주십시오. 이 머리는 그?..”

“도웰 교수의 것이냐고? 그렇소, 그의 머리요. 내가 존경하는 동료이며 죽은 뒤에 내 손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도웰의 머리지. 아쉽게도 머리만 살릴 수 있었소. 일거에 모든 게 다 되지는 않아요. 가엾은 도웰은 현대 의학으로서는 불치의 병으로 고생했소. 숨을 거두면서 그는 우리가 함께 진행한 과학 실험을 위해 자기 몸을 기증했소. 유언도 남겼지. ‘내 삶은 온통 과학에 바쳤네. 나의 죽음도 과학에 득이 되도록 하게나. 내 시신을 무덤의 벌레들보다는 친구이자 과학자인 자네가 파헤치기를 더 바란다네.’ 그래서 내가 그의 시신을 떠맡게 됐소. 

그리고 그의 심장만이 아니라 의식까지 되살리고, 이른바 ‘영혼’을 소생시킬 수도 있었지. 이 일에 끔찍한 것이 무에 있단 말이오? 사람들은 여태껏 죽음을 두려운 것으로 간주해 왔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이 인류의 천년 꿈이 아니었던가?” 

“나라면 그런 소생보다는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그 말에 코른 교수가 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렇소, 그런 상태로는 소생한 사람에게 불편한 점이 있지. 그런... 불충분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나타나는 것이 가엾은 도웰에게는 편치 않았을 거요. 그래서 우리는 이 실험을 비밀로 하는 거요. ‘우리’라고 말하는 까닭은 도웰 자신도 그걸 바라기 때문이지. 그리고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오.”

 

“한데 도웰 교수가, 그러니까 그분의 머리가 그런 희망을 어떻게 피력했지요? 머리가 말을 할 수 있나요?”

코른 교수가 일순간 당황했다. 

“아니… 도웰 교수의 머리는 말을 하지 못하오. 그러나 듣고 이해하고 표정으로 대답할 수는 있지…”

그러고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그치듯이 물었다. 

“자, 나의 제안을 수락하는 거요? 아주 좋아, 내일 오전 아홉 시에 오시오. 그러나 명심하시오. 함구, 함구, 또 함구!”

(1장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도웰 교수의 머리 27장 (최종)

도웰 교수의 머리 23, 24장

도웰 교수의 머리 17, 18장

도웰 교수의 머리 11, 12장

도웰 교수의 머리 9장

도웰 교수의 머리 6, 7장

도웰 교수의 머리 4장

도웰 교수의 머리 3장

도웰 교수의 머리 2장

도웰 교수의 머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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