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25. 음모자들
아르망의 작은집이 아르투아 도웰과 아르망, 샤우브, 로랑 등 ‘음모자들’의 본부가 됐다. 전체 회의에서는 로랑이 위험하더라도 자기 아파트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로랑이 한시 바삐 어머니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아르망이 로랑 부인에게 가서 부인을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딸이 무사한 것을 보자 노부인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아르망이 부인의 팔을 잡아 소파에 앉혔다.
모녀가 삼층의 방 두 칸에 자리를 잡았다. 로랑 부인의 기쁨은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자기 딸의 ‘구원자’인 아르투아 도웰이 여전히 병석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다소 퇴색됐다. 다행히도 그는 독가스 후유증에 그리 오래 시달리지 않았다. 그의 유난히 강건한 신체 기관들도 제 구실을 했다.
로랑 부인과 딸이 번갈아 병자의 침대 곁을 지켰다. 아르투아 도웰이 로랑 모녀와 아주 친해졌고, 마리 로랑은 그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아버지의 머리를 도울 힘이 없는 로랑이 이제 아들에게 정성을 쏟았다. 적어도 그녀 자신은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간병인의 자리를 마지못해 어머니에게 내주게 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아르투아 도웰은 처녀인 그녀의 순진한 상상을 뒤흔든 첫 남자였다. 그와의 앎은 낭만적 상황에서 벌어졌다. 즉, 그는 중세의 기사처럼 그녀를 라위노의 무시무시한 병원에서 구출한 것이다. 그의 부친의 비극적 운명은 그에게도 비극적으로 각인됐다. 그리고 용기와 힘, 젊음 같은 개인적 자질은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 됐다.
아르투아 도웰 역시 마리 로랑을 정겨운 눈길로 맞이하곤 했다. 그는 자기감정을 더 잘 헤아렸고, 자신의 다정함이 살뜰한 간병인에 대한 병자의 의무만이 아니라는 점을 자신에게 숨기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의 다정한 눈길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로랑 부인은 딸의 선택을 전적으로 용인하는 게 분명한데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체했다.
스포츠에 몰입하면서 여자들을 경멸적으로 대하는 샤우브는 속으로 아르투아를 가엾게 여겼고, 아르망은 남의 행복의 서광을 보면서 무겁게 한숨을 쉬고 자기도 모르게 안젤리카의 매혹적인 몸매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제 그 몸통에서 그는 안젤리카가 아니라 브리케의 머리를 더 자주 떠올렸다. 그런 ‘배신’을 두고 자신에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게 다 그저 관념연합의 법칙일 뿐이라고 합리화했다. 즉, 브리케의 머리가 어디서나 안젤리카의 몸을 쫓아다닌 것이라고.
아르투아 도웰은 의사가 걸어도 좋다고 허락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러나 아르투아에게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말하는 것만 허락됐고,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도웰의 폐를 각별히 돌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아르투아가 자의든 타의든 의장의 역할을 맡게 됐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간략하게 반박하거나 친구들 간의 ‘논쟁’을 요약하게 됐다.
한데 논쟁은 대체로 사나웠다. 아르망과 샤우브가 특히 뜨거웠다.
라위노와 코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샤우브는 왠지 라위노를 제물로 점찍고는 그를 ‘화적처럼 습격’하자는 계획을 키웠다.
“우린 이 개자식을 완전히 죽이지 못했어. 한데 그 개를 없애버려야 해. 그 개의 호흡 자체가 지구를 더럽히고 있어! 내 손으로 그놈의 목을 졸라 죽여야 속이 시원할 거야. 자네는 말하지.” 그가 도웰을 보면서 열을 올렸다. “이 사건을 법정과 형리에게 맡기는 것이 더 좋다고 말이야. 그러나 라위노가 직접 나한테 말한 바로는, 그가 당국을 다 매수하고 있다는 거야.”
“지역 당국일 뿐이겠지.”
도웰이 한마디 보태자 아르망이 제지하고 나섰다.
“잠깐만, 아르투아, 자네는 아직 말을 하면 안 돼. 해로워. 그리고 샤우브, 자네는 시급한 것을 얘기하게. 라위노쯤이야 우리는 언제든 혼낼 수 있을 거야. 우리의 당면 목표는 코른의 범죄를 폭로하고 도웰 교수의 머리를 찾아내는 것이네. 우린 어떤 방법으로든 코른의 집에 침투해야 돼.”
“근데 어떻게 잠입한단 말이지?”
아르투아가 물었다.
“어떻게? 강도와 도둑들이 하는 식이지.”
“자네는 가택 침입 강도가 아니잖나. 그것도 기술이 제법 있어야…”
아르망이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 이마를 탁 쳤다.
“그래, 순회공연에 장을 초대하세나. 브리케가 나를 친구처럼 여기고 그의 직업 비밀을 알려줬거든. 그는 으쓱할 거야! 살면서 유일하게 사리사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남의 집 자물쇠를 깨는 거지.”
“한데 그가 그다지 사심이 없지 않다면?
“우리가 그에게 지불하면 돼. 그는 우리에게 길을 내주고 우리가 경찰을 부르기 전에 무대에서 사라지는 거지, 간단하잖나.”
그러나 여기서 아르투아 도웰이 그의 열기를 식혔다. 아르투아가 나직하게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런 낭만적 요소가 지금 경우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네. 코른은 라위노한테서 내가 파리에 도착했고 마드무아젤 로랑의 구출에 관여했다는 걸 이미 들어 알고 있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난 더 이상 익명으로 다닐 근거가 없는 거야. 이게 첫 번째고, 그 다음엔, 나는... 고인이 된 도웰 교수의 아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법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건에 개입하고 재판과 수색 따위를 요구할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네.”
“또 재판 얘기로군.” 아르망이 무망하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자네만 교묘한 법정 공방에 휘말리고, 코른은 교묘하게 빠져 나갈 거야.”
아르투아가 기침을 하다가 가슴 통증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말아요.”
아르투아 곁에 앉은 로랑 부인이 염려했다.
“괜찮습니다.” 그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대답했다. “통증은 이제 사라질 거야…"
그 순간 마리 로랑이 방으로 들어섰는데, 뭔가에 상당히 흥분해 있었다.
“이것 좀 읽어 봐요.”
그녀가 도웰에게 신문을 내밀었다.
1면을 장식한 굵은 활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코른 교수의 일대 획기적인 발명」
중간 제목은 조금 더 작은 활자로 찍혔다.
「되살아난 사람 머리가 공개된다.」
기사는 내일 저녁 학술대회에서 코른 교수가 소생시킨 사람 머리를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어서 코른의 연구 이력이 소개되고, 그의 학술적 노고와 그가 시행한 눈부신 수술들이 열거됐다.
첫 기사 아래에는 코른의 자필 서명이 담긴 논문이 실려 있었다. 거기에는 처음에 개를 대상으로 성공하고 이어서 사람의 머리를 되살렸다는 실험 내력이 대략적으로 기술됐다.
로랑이 아르투아 도웰의 표정과 기사를 읽어 내리는 그의 눈길을 긴장한 눈으로 주시했다. 도웰이 겉으로는 태연을 유지했다. 기사 끝에 가서야 얼굴에 서글픈 미소가 나타났다가 곧 사라졌다.
“정말 열 받는 일 아닌가요?”
아르투아가 말없이 신문을 건네줄 때 마리 로랑이 소리쳤다.
“이 몹쓸 자는 이 ‘놀라운 발명’에서 당신 부친의 역할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군요. 안 돼, 난 그런 짓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어요!”
로랑의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코른이 나한테나 당신 아버지한테, 또 몸이 없는 존재라는 지옥을 위해 소생시킨 불행한 머리들에게 가한 짓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해요. 그는 법정만이 아니라 공중 앞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단 말입니다. 단 한 시간이라도 그가 의기양양하게 굴도록 방치한다면, 그건 가장 큰 불공정일 겁니다.”
“당신이 원하는 건 뭐지요?”
도웰의 나직한 물음에 마리 로랑이 열을 올렸다.
“그의 대성공을 망치는 거지요! 학술대회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가 살인자요 범죄자, 날강도라는 비난을 그 얼굴에 퍼붓는 거예요!!”
로랑 부인이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딸의 신경이 얼마나 크게 악화됐는지를 비로소 이해했다. 온순하고 절제된 딸이 이렇게 분개하는 것을 엄마는 처음 보았다. 로랑 부인이 딸을 달래 보았지만, 딸은 주변에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분노와 복수의 갈망으로 한껏 달아올랐다. 아르망과 샤우브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의 열기와 가라앉지 않는 분노가 다른 이들을 압도했다. 로랑 부인이 간청하는 눈길로 아르투아 도웰을 바라봤다. 그가 그 눈길을 알아차리고 입을 뗐다.
“마드무아젤 로랑, 당신의 행위는 아무리 고결한 감정에서 나왔다 해도, 무모한…”
그러나 로랑이 그 말을 가로챘다
“지혜만큼 가치가 있는 무모함도 있는 법입니다. 내가 무슨 영웅이 되려고 폭로에 나선다는 생각은 마세요. 난 그저 달리 행동할 수 없을 뿐이에요. 나의 도덕적 잣대로는 용납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당신이 얻는 것은 무얼까요? 검찰 수사관한테 전모를 말할 수도 없지 않나요?”
“아니요, 난 코른이 대중 앞에서 치욕을 맛보기를 원해요! 코른은 다른 이들을 불행에 빠뜨리면서 범죄와 살인으로 자신의 명성을 쌓고 있어요! 내일 그는 영광의 월계관을 쓰기 바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합당한 영광을 받아야 해요.”
“그런 행동에 난 반댑니다, 마드무아젤 로랑.”
로랑이 너무 흥분하여 신경계가 깨지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아르투아 도웰이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아주 섭섭하군요. 하지만 세상이 다 반대해도 난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아직 나를 몰라요!”
아르투아 도웰이 미소를 지었다. 젊은 혈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발갛게 상기된 뺨을 지닌 마리라는 아가씨가 이제 한층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가 더 커졌다.
“하지만 그건 깊이 생각하지 않은 행보일 거요. 당신은 큰 위험에 처할 텐데…”
“우리가 그녀를 지키겠네!”
아르망이 타격 준비 완료된 장검을 쥔 것처럼 손을 치켜들면서 외쳤다.
“그래, 우리가 당신을 지켜 주겠어요.”
샤우브가 허공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우렁찬 목소리로 친구를 곁들었다.
마리 로랑이 그런 지지를 보면서 아르투아를 나무라는 눈길로 쳐다봤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을 지지할 겁니다.”
그의 말에 로랑이 반색을 띠었다. 그러나 곧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신은 안 돼요…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어요.”
“그래도 난 갈 겁니다.”
“하지만…”
“세상이 다 반대해도 난 이 생각을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아직 나를 몰라요.”
미소를 지으면서 도웰이 그녀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26. 상처뿐인 승리
다음 날 학술 대회를 코앞에 두고 코른이 브리케의 머리를 주도면밀하게 살폈다.
검사를 끝낸 뒤 머리에게 말했다.
“실은, 오늘 저녁 여덟 시에 당신을 청중이 많은 모임에 데리고 갈 거요. 거기서 당신은 말을 하게 될 텐데, 질문을 받으면 간결하게 답변해요. 불필요한 얘기는 삼가고. 알겠소?”
코른이 공기 밸브를 열자 브리케가 쉰 소리를 냈다.
“알았어요. 하지만 내가 부탁한 것은… 제발…”
그녀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코른이 밖으로 나갔다.
그의 동요가 점점 더 커졌다. 쉽지 않은 과제가 눈앞에 있었다. 바로 학술 대회장으로 머리를 운반하는 것. 아주 작은 충격도 머리의 생명에는 치명적일 수 있었다.
특별히 장치된 자동차가 준비됐다. 진동을 방지하는 바퀴가 달리고 사다리로 옮기는 데 필요한 손잡이가 마련된 특수 탁자 위에 다른 기구들과 함께 머리를 올려놓았다. 마침내 준비가 다 끝났다. 저녁 일곱 시 그들이 거리로 나섰다.
엄청나게 큰 홀은 눈부신 빛으로 가득했다. 의학계의 백발들과 번쩍이는 대머리들이 검은 프록을 차려 입고 일층 무대 앞의 좌석들을 차지했다. 안경 유리알들이 반짝거렸다. 이층의 칸막이 자리와 계단식 좌석은 의학계와 이리저리 연결된 선택된 청중에게 제공됐다.
귀부인들의 호사한 의상이 보석 장식을 번쩍이면서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등장한 콘서트홀을 연상케 했다.
시작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절제된 소음이 홀을 채웠다.
무대 곁에 마련된 작은 탁자들 앞에서 신문기자들이 연필 쥔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부산을 떨었다. 무대 오른편에는 촬영기 몇 대가 코른의 중대 발표와 살아난 머리의 모든 순간을 필름에 담으려고 눈에 불을 켰다. 무대 위 기다란 테이블 앞에는 학계의 거성들 중에서 명예로운 인사 몇몇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대 한가운데에 연단이 우뚝 서 있고, 그 위에 놓인 마이크를 통해 전 세계로 연설이 중개될 터였다. 두 번째 마이크는 브리케의 머리 앞에 놓였다. 그녀는 무대 오른편에 우뚝 솟아 있었다. 정성 들인 화장 덕분에 머리가 의외로 매력적인 분기기마저 띠었으며, 그와 함께 놀라운 장면에 미처 준비되지 않은 관객들이 맛볼 묵직한 인상도 많이 덜어졌다. 간호인과 존이 머리 옆 탁자 곁에 섰다.
마리 로랑과 아르투아 도웰, 아르망, 샤우브가 연단에서 불과 두 발짝 떨어진 맨 앞줄에 앉았다. 샤우브 한 사람만 위장하지 않아서 평소의 모습이었다.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둥근 모자를 쓴 로랑은 코른이 눈을 돌리다가 우연히 알아보지 못하도록 모자챙을 푹 누르고 고개를 낮게 숙였다. 아르투아와 아르망은 변장하고 나타났다. 그들의 검은 볼수염과 콧수염이 아주 근사했다. 일을 더 잘 도모하기 위해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각자 분산된 눈길로 주변을 훑어보면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르망은 잔뜩 주눅이 든 상태였다. 브리케의 머리를 보고는 거의 숨이 멎을 뻔한 것이다.
정각 여덟 시 코른이 연단에 올라섰다. 평소보다 얼굴이 창백했지만 아주 당당했다.
청중이 끊이지 않는 박수로 오랫동안 그를 환영했다.
촬영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문기자들이 숨을 죽였다. 코른 교수가 자신의 업적이라고 주장하는 발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건 형식에서 눈부시고 능숙하게 구성된 스피치였다. 코른은 요절한 도웰 교수가 숨지기 전에 이룩한, 아주 귀중한 작업을 잊지 않고 상기했다. 그러나 고인의 작업에 경의를 표하면서 자신의 ‘소박한 업적’을 말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모든 발명의 영광이 바로 그에게, 코른 교수에게 속한다는 것을 청중이 추호도 의심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의 스피치가 박수 때문에 몇 번 끊겼다. 수백 명의 귀부인들이 작은 망원경과 오페라글라스를 그가 있는 쪽으로 돌렸다. 남자들의 망원경과 외눈안경들이 역시 적잖은 흥미를 가지고 브리케의 머리로 쏠렸다. 머리는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코른 교수가 신호를 보내자 간호인이 밸브를 열어 공기를 들여보냈고, 브리케의 머리가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기분이 어떤가요?”
늙은 과학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좋아요. 감사합니다.”
브리케의 목소리는 희미하고 쉰 소리였다. 강하게 불어넣은 공기 흐름이 휘파람 소리를 냈고, 목소리에는 변조라는 게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말한다는 사실은 청중에게 비상한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요란한 박수갈채를 세계적인 아티스트들도 늘 받지는 못할 터였다. 그러나 한때 작은 선술집들에서 공연으로 월계관에 심취하던 브리케가 이번에는 피곤하게 눈꺼풀을 내리깔기만 했다.
로랑이 한층 더 동요하게 됐다. 신경성 발열에 전신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치아들이 덜덜 떨리지 않게 하려고 윽물었다.
‘지금이야.’
몇 번이나 중얼거렸지만 매번 결단력이 부족했다. 상황이 그녀를 억눌렀다. 매번 순간을 보내고 난 뒤 그녀는 코른 교수가 더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은 더 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달래려고 애썼다.
의학계 거성들의 연설이 시작됐다.
중견 학자들 중 한 사람인, 머리 허연 노인이 연단으로 나왔다.
그는 희미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코른 교수의 천재적 발명을, 과학의 위력을, 죽음에 대한 승리를, 위대한 과학적 업적이 세상에 선사하는 지성들과 접촉하는 행운에 대해 말했다.
로랑이 가장 덜 기대한 순간에 오랫동안 억눌렸던 분노와 증오의 회오리가 그녀를 사로잡고 터지게 했다. 이미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녀가 연단으로 뛰어 올랐다. 놀란 노학자를 팩 밀치다시피 하고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지독하게 창백한 얼굴과 살인자를 추적하는 푸리아에(*복수의 여신)의 뜨거운 눈길과 헐떡이는 목소리로 종잡을 수 없는 말을 맹렬하게 쏟아냈다.
그녀가 난데없이 등장하자 홀 안이 들썩거렸다.
처음 한순간 코른 교수는 당황하여 로랑을 제지하려는 듯이 그녀 쪽으로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가 재빨리 존에게 몸을 돌려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 존이 문으로 빠져나갔다.
아수라장이 된 상태에서 아무도 거기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저 사람을 믿지 말아요!” 로랑이 코른을 가리키면서 절규했다. “그는 도둑에다가 살인자예요! 도웰 교수의 업적을 가로챘단 말입니다! 저 사람이 도웰을 죽였단 말입니다! 지금도 도웰의 머리와 함께 연구를 하고 있어요. 저자는 괴롭히고 고문하여 실험을 계속하도록 강요하고 있어요, 그러고는 그 실험을 자신의 발명처럼 내놓고 있어요… 코른이 자기에게 약물을 투입했다고 도웰이 나한테 직접 말했어요…”
청중은 당황하여 패닉 상태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상체를 들썩거렸다. 신문기자들 몇 명도 펜을 떨어뜨리고 아연실색하여 돌처럼 굳었다. 촬영 기사만이 촬영기 손잡이를 부지런히 돌렸다,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뜻밖의 반전에 기뻐하면서.
코른 교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얼굴에 연민의 미소를 띤 채 태연하게 서 있었다. 신경성 경련이 로랑의 목구멍을 억누르기만을 기다렸다가, 말이 잠깐 끊긴 틈을 이용해 문가에 서 있는 안내원들에게 위엄 있게 말했다.
“그녀를 데리고 나가시오! 실성한 사람이라는 게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안내원들이 로랑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이 객석 사이로 그녀에게 달려들기 전에, 아르망과 샤우브, 아르투아가 먼저 달려가서 그녀를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코른이 일단의 무리를 수상쩍은 눈길로 쏘아보았다.
복도에서는 로랑을 경찰들이 잡아두려고 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그녀를 거리로 데리고 나와 자동차에 태울 수 있었다. 그들이 떠났다.
장내가 다소 진정되자 코른 교수가 연단으로 나가서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청중에게 사과했다.
“로랑은 신경과민에다 히스테리가 심한 여성입니다. 내가 인위적으로 살려낸 브리케 시체의 머리와 날마다 접촉하면서 겪어야 했던 체험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정신이 부서졌습니다. 미친 거지요…”
이 발언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홀에서 울렸다.
일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건 쉬쉬 하는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마치 죽음의 바람이 한겨울 웃풍처럼 홀 위에서 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백 개의 눈들이 이제는 브리케의 머리를 마치 무덤에서 나온 것처럼 경악과 연민으로 바라보았다. …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기분이 완전히 망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끝을 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곧 다음 연사들이 미리 준비된 스피치를 하고 축전이 소개되고, 코른 교수를 여러 대학과 과학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이요 박사로 선출한다는 증서들이 낭독됐다.
대회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코른 교수의 등 뒤로 흑인이 나타나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브리케의 머리를 되가져갈 준비를 했다. 머리가 지치고 놀라서 금방 생기를 잃었다.
자동차 안에 혼자 남은 코른 교수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부드득 갈고 욕을 해대는 바람에, 운전수가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물어야 했다.
“뭐라고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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