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카를손의 장난
- 아, 이제 난 기분 좀 전환하고 싶다. - 잠시 뒤에 카를손이 말했습니다. - 지붕을 뛰어다니면서 뭘 할지 생각하자꾸나.
꼬맹이가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둘은 손을 잡고 지붕으로 나왔어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고, 주변은 온통 아주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하늘은 봄에나 볼 수 있는 것처럼 파랗고, 어둠 속에 잠긴 집들은 늘 그렇듯이 뭔가 신비하게 보인 겁니다. 저 아래 꼬맹이가 자주 놀던 공원은 녹색으로 물들어 있고, 마당에서 크는 키 큰 버드나무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놀랍도록 자극적인 냄새를 풍겼어요.
그날 저녁은 지붕 위에서 산책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주변에 열린 창문들에서는 별의별 냄새와 소리가 다 흘러나왔어요. 어떤 사람들의 나직한 대화, 아이들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누군가가 주방에서 딸그락거리며 접시 닦는 소리, 개들이 짖는 소리, 피아노 소리… 어디선가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쏜살같이 지나갔고, 말발굽 소리와 마차 덜컹거리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꼬맹이가 기분이 좋아져서 한마디 했어요.
- 만약 지붕으로 다니는 게 얼마나 상쾌한지 알았다면, 사람들은 거리로 다니는 걸 진작 그만뒀을 거야. 여긴 정말 좋아!
카를손이 꼬맹이 손을 잡으면서 말을 받았습니다.
- 그래, 그러면서도 또 아주 위험하다. 떨어지기가 쉬우니까 말이야. 심장이 오그라들 만큼 무서운 곳을 몇 군데 보여주지.
집들이 서로 바짝 붙어 있기 때문에 지붕에서 지붕으로 마음대로 옮겨 다닐 수 있었습니다. 툭 튀어나온 다락방이며 굴뚝, 모서리 때문에 지붕들이 저마다 아주 기묘한 모양을 띠었습니다.
사실 여기서 산책한다는 건 숨이 멎을 정도로 위험했어요. 집들 사이 어떤 데는 널따란 틈이 있어서 하마터면 꼬맹이가 빠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꼬맹이 발이 처마에서 미끄러지려는 순간 카를손이 손을 잡아주었지요.
- 재미있냐? - 카를손이 꼬맹이를 지붕으로 끌어올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어요. - 내가 말한 데가 바로 이런 곳이야. 어때, 더 가 볼래?
그러나 꼬맹이는 더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심장이 너무 세게 두근거리지 뭡니까. 둘은 가파르고 미끄러운 곳들을 따라 걸었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으로 주변 물체를 붙잡고 발을 질질 끌어야 했어요. 근데 카를손은 꼬맹이를 재미나게 하려고 일부러 더 힘든 길을 골랐습니다.
- 우리가 좀 명랑해질 시간이 된 것 같다. - 카를손이 말했습니다. - 난 저녁마다 자주 지붕 위로 산책 다니면서 이 다락방에 사는 사람들을 잘 골려주거든.
- 어떻게 골리는데? - 꼬맹이가 물었습니다.
- 여러 사람을 여러 방법으로 골리는 거다. 난 똑같은 장난을 두 번 하는 법이 없어. 생각해 봐라, 세상에서 제일가는 장난꾼이 누구겠니?
갑자기 어디선가 갓난애가 빽빽 울어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 전에도 아기 우는 소리를 꼬맹이가 듣긴 했지만 그 소리는 곧 잦아들었었지요. 갓난애를 누군가가 잠시 얼렀던 모양인데, 이제 다시 울음을 터뜨린 겁니다. 울음소리는 아주 가까운 다락방에서 들려왔고, 왠지 외롭고 측은하게 들렸어요.
- 가엾은 아기! - 꼬맹이가 말했어요. - 배가 고파서 그런지도 몰라.
- 이제 우리가 알아보면 된다. - 카를손이 대꾸했어요.
둘은 지붕 가장자리를 따라 엉금엉금 기어서 다락방 창문까지 이르렀습니다. 카를손이 고개를 살짝 빼들고 방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봤습니다.
- 완전히 버림받은 아기야. 엄마와 아빠가 저들끼리 바깥에서 나돌아 다니는 게 분명해. - 꼬맹이가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아기는 울다가 지쳤어요.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 카를손이 창턱 위로 올라서서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 나가신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유모가!
꼬맹이는 지붕 위에 혼자 남아 있는 게 싫어서 카를손 뒤를 따라 창문을 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일 아기 부모가 나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겁이 났습니다.
한데 카를손은 아주 느긋했어요. 아기가 누워 있는 작은 침대로 다가가더니 통통한 집게손가락으로 아기 턱을 간질였습니다.
- 까꿍, 까꿍, 까꿍! -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꼬맹이한테 몸을 돌려 설명했습니다. - 젖먹이들이 울 때는 다들 늘 이렇게 어른다.
아기가 놀라서 한순간 울음을 그쳤다가 금방 더 크게 울부짖었어요.
- 까꿍, 까꿍, 까꿍! - 카를손이 한 번 달래고는 덧붙였어요. - 또 이런 식으로도 다들 갓난애를 달래지…
그러고는 아기를 안고 몇 번 옆으로 힘차게 흔들었습니다.
아기는 그게 좋은 모양이에요. 왜냐면 이가 하나도 없는 입을 벌리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으니까요. 카를손이 아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 갓난애를 달래는 건 참 쉽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유모는 바로…
그러나 아기가 다시 우는 바람에 말을 채 맺지 못했습니다.
- 까꿍, 까꿍, 까꿍! - 카를손이 초조하게 어르면서 여자 아기를 더 세게 흔들기 시작했어요. -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니? 까꿍, 까꿍, 까꿍!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러나 아기는 계속 목이 터져라 울어대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꼬맹이가 아기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 나한테 넘겨 봐.
꼬맹이는 갓난애들을 아주 좋아해서 엄마와 아빠한테 여자 동생을 선사해 달라고 몇 번이나 조른 적이 있답니다. 강아지를 사 주지 않겠다면 말이지요.
꼬맹이가 우는 아기를 받아 포근하게 끌어안았습니다.
- 울지 마, 아가야! 넌 착한 사람이잖아…
아기가 울음을 그치고 눈빛을 반짝이며 꼬맹이를 한참이나 쳐다봤어요. 그러더니 다시 미소를 짓고는 뭔가 나직이 옹알거렸어요.
- 허어, 나의 “까꿍, 까꿍, 까꿍”이 먹혀든 거다. - 카를손이 우쭐댔습니다. - “까꿍, 까꿍, 까꿍”은 늘 어김없이 효과를 보거든. 천 번이나 확인해 봤지.
- 그거 흥미로운 걸. 한데 아기 이름이 뭐지?
꼬맹이가 물어보면서 집게손가락 끝으로 아기의 작은 볼을 가볍게 토닥였습니다. 카를손이 잠깐 멈칫하더니 금방 대답했습니다.
- 귤피야. 여자 아기들 이름은 대개 그렇다.
꼬맹이는 여자애 이름이 귤피야라는 걸 들어본 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가는 유모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 귤피야 아기야, 뭐가 먹고 싶은 모양이구나. - 자기 집게손가락을 아기가 빨려고 하는 걸 보면서 꼬맹이가 말했습니다.
- 귤피야가 배고프다면, 여기 소시지와 감자가 있다. - 카를손이 찬장을 들여다보고서 말했어요. - 카를손한테 소시지와 감자가 떨어지지 않는 한, 세상 그 어떤 아기도 굶어 죽는 일은 없다.
그러나 꼬맹이는 귤피야가 소시지와 감자를 먹을까 의심스러웠어요.
- 이렇게 어린 아기들은 우유를 먹일 걸. - 꼬맹이가 반대하여 주장했습니다.
- 그러니까, 넌 세상에서 제일가는 유모가 아기들에게 뭘 먹이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냐? - 카를손이 발끈했어요. - 하지만 네가 정 우긴다면, 내가 젖소를 구하러 날아갔다 올 수도 있어…
그러고는 못마땅한 눈길로 창문을 쳐다보더니 한마디 더 했습니다.
- 이렇게 작은 창문으로는 젖소를 끌어들이기 어렵겠는데.
귤피야가 꼬맹이 손가락을 꼭 잡고는 애처롭게 흐느꼈어요. 아기는 정말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꼬맹이가 찬장을 뒤졌지만 우유는 찾지 못했어요. 소시지 세 조각이 담긴 접시만 나왔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어디서 우유를 구할 수 있는지 떠올랐다… 어디론가 좀 날아갔다 와야겠어… 금방 돌아올게!
카를손이 배에 달린 단추를 누르더니 꼬맹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쏜살같이 창밖으로 날아갔습니다.
꼬맹이가 아주 놀랐어요. 만약에 카를손이 여느 때처럼 몇 시간 동안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기 부모가 돌아와서 꼬맹이 품에 있는 귤피야를 본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이번에는 카를손이 오래 기다리도록 하지 않았거든요. 수탉처럼 우쭐거리면서 창문으로 날아들었는데, 흔히 아기들에게 물리는 작은 젖병을 가져온 겁니다.
- 이걸 어디서 났지? - 꼬맹이가 놀랐어요.
- 내가 늘 우유를 얻는 곳에서.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 그렇다면, 이걸 그냥 집어온 거야? - 꼬맹이가 소리쳤어요.
- 그걸… 잠깐 빌린 거지.
- 빌렸다고? 언제 돌려줄 건데?
- 언제가 될지 나도 모르지!
그 말에 꼬맹이가 카를손을 사나운 눈길로 쏘아봤습니다.
그러나 카를손은 그저 손만 홰홰 내둘렀어요.
- 하찮은 거야, 일상적인 일이야… 그래봤자 허접한 우윳병 하난데 뭐. 거기엔 세쌍둥이를 낳은 가족이 있고, 그 집 발코니 양동이에는 이런 우윳병들이 얼음에 가득 채워져 있단 말이다. 내가 귤피야를 위해 우유를 조금 가져갔다는 걸 알면 그 사람들이 되레 기뻐할 거야.
귤피야가 앙증맞은 손을 병으로 뻗치고 허둥지둥 빠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 우유를 얼른 데울게. - 꼬맹이가 아기를 카를손에게 넘겼습니다.
카를손이 다시 “까꿍, 까꿍, 까꿍” 하면서 아기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꼬맹이가 가스레인지를 켜고 병을 데우기 시작했어요.
몇 분 지나서 아기는 요람에 누워 곤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배가 차서 흡족했으니까요. 꼬맹이가 아기 주변에서 괜스레 부산을 떨었습니다.
카를손이 요람을 열심히 흔들면서 큰 소리로 노래했습니다.
- 까꿍, 까꿍, 까꿍… 까꿍, 까꿍, 까꿍…
그러나 그렇게 소란을 피워도 아기는 잠을 깨지 않았어요. 많이 먹고 피곤했으니까요.
- 이제 여기서 나가기 전에 장난을 좀 치자. - 카를손이 한쪽 눈을 찡긋했습니다.
그러고는 찬장으로 다가가서 썰어놓은 소시지가 담긴 접시를 꺼냈습니다. 꼬맹이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하는 양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카를손이 접시에서 한 조각을 집었어요.
- 무슨 장난인지 곧 알게 될 거다. - 그러면서 소시지 한 조각을 문손잡이에 걸어 놓았습니다. - 이건 1번이야. - 그렇게 말하면서 흡족한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서랍장으로 뛰어갔어요. 그 위에는 예쁜 흰 도자기 비둘기가 놓여 있는데, 꼬맹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 부리에 소시지 조각이 꽂혔습니다.
- 2번이야. - 카를손이 입을 놀렸어요. - 그리고 3번은 귤피야가 받을 거다.
접시에서 마지막 소시지 조각을 집더니 자고 있는 아기 손에 쥐어 준 겁니다. 그건 사실 아주 우스꽝스럽게 보였어요. 아기가 일어나서 치즈 조각을 집어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요.
재미는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꼬맹이가 말렸습니다.
- 그건 하지 마, 제발.
그러나 카를손은 꼬맹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우리는 아기를 놔두고 부모가 저녁마다 외출하는 버릇을 고치는 거야.
- 어떻게? - 꼬맹이가 놀랐어요.
- 벌써 걸음마를 떼고 소시지를 집는 아기를 그 사람들이 앞으로 혼자 놔둘 생각을 하겠냐? 다음에는 아기가 무엇을 집을지 누가 알겠어? 아빠가 교회 갈 때 매는 넥타이가 될 수도 있지.
그러면서 카를손은 소시지 조각이 아기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지 살펴봤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내가 뭘 하는지 난 알고 있다. 난 세상에서 제일가는 유모 아니냐.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꼬맹이가 놀라서 몸을 움츠리며 속삭였어요.
- 부모가 온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 카를손이 꼬맹이를 창문 쪽으로 끌었습니다.
자물쇠 구멍에 벌써 열쇠가 꽂혔어요. 꼬맹이는 이제 다 끝났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둘은 어찌어찌 지붕으로 기어 나올 수 있었어요. 바로 그와 동시에 문이 활짝 열리고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우리 사랑스러운 수잔나가 혼자 잠이 들었네! - 여자가 말했어요.
- 그래, 우리 공주님이 자고 있군. - 남편이 맞장구를 쳤어요.
그러나 갑자기 비명이 쌍으로 터졌습니다. 아기가 손에 꼭 쥐고 있는 소시지 조각을 본 게 틀림없어요.
하지만 꼬맹이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유모가 저지른 장난을 두고 아기 부모가 뭐라고 하는지 더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모는 부모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벌써 굴뚝 뒤로 숨어 버렸습니다.
(둘이 숨을 좀 돌리고 난 뒤 카를손이 물었습니다.
- 좀도둑들을 보고 싶냐? 여기 우리 건물 다락방에 일급 좀도둑 두 명이 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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