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계속)
둘이 숨을 좀 돌리고 난 뒤 카를손이 물었습니다.
- 좀도둑들을 보고 싶냐? 여기 우리 건물 다락방에 일급 좀도둑 두 명이 살고 있다.
카를손은 그 좀도둑들이 자기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어요. 꼬맹이가 그 말을 썩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카를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다락방 창문에서 말소리와 웃음소리, 고함 따위가 요란하게 뒤엉켜 새나왔습니다.
- 흠,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군! - 카를손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저들이 뭣 때문에 저렇게 즐거운 건지 가서 알아보자.
카를손과 꼬맹이가 다시 처마를 따라 기었습니다. 다락방까지 이르자 카를손이 고개를 빼들고 창을 들여다봤습니다.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지만 그 틈새로 방안이 훤히 보였습니다.
- 좀도둑들한테 손님이 왔군. - 카를손이 속삭였어요.
꼬맹이도 커튼 틈새로 들여다봤습니다. 방안에는 정말 좀도둑처럼 보이는 사람 둘과 순진하고 어수룩하게 보이는 청년이 하나 앉아 있었습니다. 그 청년 같은 사람들을 꼬맹이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 지낼 때 많이 봤지요.
-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냐? - 카를손이 속삭였어요. - 저 좀도둑들이 뭔가 못된 짓을 꾸미려는 것 같아. 하지만 우리가 가만 내버려두지는 않지… - 그러고는 다시 커튼 틈을 들여다봤습니다. - 난 너하고 내기할 준비가 돼 있다. 저들은 저 빨간 넥타이를 맨 가엾은 청년을 알겨먹을 게 틀림없어!
좀도둑 둘과 넥타이 맨 청년은 창가에 놓인 작은 탁자에 둘러앉아서 먹고 마시는 참이었습니다.
좀도둑들은 자기네 손님 어깨를 간간이 툭툭 건드리면서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 자네를 만나니 우린 참 좋네, 다정한 오스카!
- 나도 당신들과 알게 돼서 아주 기뻐요. - 오스카가 대답했습니다. - 도시에 처음 올라오게 되면 선량한 친구들이 정말 필요해요. 미덥고 확실한 친구들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협잡꾼 따위나 만나게 되면 한순간에 다 털리고 말 거예요.
그 말에 좀도둑들이 그럴싸하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 암, 그렇고말고. 협잡꾼들 제물이 되는 건 순식간이야. 젊은이, 자네가 필레와 나를 만난 건 정말 운이 좋은 거라구.
- 자네가 룰레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곤란하게 됐을 거라는 점은 분명하지. 자, 한 잔 더 마시게.
필레라고 불린 자가 한마디 거들고는 오스카 어깨를 또 툭 쳤어요.
그러면서 필레는 꼬맹이가 아주 놀랄 만한 짓을 했습니다. 즉, 오스카의 바지 뒷주머니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 지갑을 꺼내서 자기 바지 뒷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지 뭔가요. 오스카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룰레가 그를 끌어안았으니까요. 룰레가 포옹을 풀었을 때 그의 손아귀에는 오스카의 회중시계가 들려 있었어요. 룰레도 그걸 자기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어요. 오스카는 그것도 역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 가만있지 못했습니다. 통통한 손을 커튼 밑으로 조심스레 뻗어 필레의 주머니에서 오스카의 지갑을 꺼냈어요. 필레도 그건 전혀 몰랐어요. 카를손이 다시 커튼 밑으로 통통한 손을 뻗더니 룰레의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빼냈지요. 룰레도 역시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룰레와 필레, 오스카가 다시 술잔을 비우고 안주를 집어먹을 때, 필레가 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고는 지갑이 없어진 걸 알았습니다. 그러자 룰레를 사납게 쏘아보면서 말했습니다.
- 이봐, 룰레, 잠깐 현관에 나가서 얘기 좀 하자. 뭔가 해명해야겠어.
그때 룰레도 자기 주머니를 뒤지고는 시계가 없어진 걸 알았어요. 그리고 역시 사납게 필레를 쳐다보고는 쏘아붙였습니다.
- 그래, 나가자! 나도 너하고 얘기 좀 해야겠어.
필레와 룰레가 현관으로 나가자 가엾은 오스카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 혼자 있는 게 심심해서 새 친구들이 무얼 하는지 보러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카를손이 창턱을 가볍게 뛰어넘어서 지갑을 수프 대접 위에 놓았습니다. 필레와 룰레, 오스카가 이미 수프를 박박 긁어 먹은 뒤였기에 지갑은 젖지 않았어요. 그리고 회중시계는 벽 램프에 걸어 놓았습니다.
걸린 시계가 가볍게 흔들리는 바람에 필레와 룰레, 오스카가 방으로 들어서면서 금방 보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카를손은 못 봤어요. 그들이 들어서기 직전에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식탁보 밑으로 기어들어갔거든요. 식탁 밑으로는 꼬맹이도 기어들었습니다. 무섭긴 하지만 카를손을 그런 위험한 상태에 혼자 두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 어, 저것 좀 봐. 내 시계가 램프 위에 걸려 있네! - 오스카가 놀라서 소리쳤습니다. - 어떻게 저기 있게 됐지? - 그러면서 램프로 다가가 시계를 집어서 저고리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 근데 내 지갑은 또 여기 있어! - 수프 접시를 보고는 오스카가 더욱 놀랐어요. - 거 참, 이상한 일이군!
룰레와 필레가 꼼짝도 않고 오스카를 쳐다보다가, 입을 모아 외쳤습니다.
- 자네네 시골 젊은이들도 빈틈이 없는 것 같네!
그러고 나서 오스카와 룰레, 필레가 다시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 이보게, 오스카. - 필레가 말했어요. - 자, 실컷 마시게, 더, 더!
그리고 셋은 다시 먹고 마시며 서로 어깨를 툭툭 치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이 지나 필레가 식탁보를 살짝 들추고 오스카의 지갑을 식탁 밑으로 던졌어요. 아마도 필레는 자기 주머니보다 식탁 밑이 지갑을 두기에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 지갑을 들어서 룰레 손에 쥐어준 겁니다. 그러자 룰레가 입을 놀렸습니다.
- 필레, 내가 자네를 잘못 생각했어. 자넨 아주 좋은 사람이네.
또 얼마 지나서 룰레가 식탁보 밑으로 손을 내리더니 시계를 바닥에 던졌습니다. 카를손이 그걸 집어 들고 필레의 발을 툭 건드리더니 그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필레가 입을 놀렸어요.
- 룰레, 자네보다 더 믿음직한 동료는 세상에 다시없어!
그러나 이때 오스카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 내 지갑이 어디 갔지? 또 시계는 어디 갔어?!
그 순간 지갑과 시계가 다시 식탁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필레도 룰레도 현행범으로 붙잡히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한데 오스카는 이미 정신이 나가서 자기 물건들을 내놓으라고 계속 으르렁댔습니다.
그러자 필레가 소리쳤습니다.
- 그따위 냄새 나는 지갑을 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어떻게 아나!
룰레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어요.
- 우린 자네의 낡아빠진 회중시계를 보지도 못했어! 자기 물건은 자기가 잘 간수해야지.
이때 카를손이 마루에서 지갑과 시계를 집어 들어 오스카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오스카가 자기 물건들을 움켜쥐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 고마워, 다정한 필레, 고마워, 다정한 룰레. 그러나 다음에는 나한테 이런 장난을 치지 마!
이때 카를손이 있는 힘을 다해서 필레의 발을 걷어찼습니다.
- 룰레, 너도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 필레가 고함을 질렀어요.
그러는 사이에 카를손이 룰레의 발을 때렸는데, 어찌나 아픈지 금방 죽는 소리가 터졌습니다.
- 너, 미쳤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 룰레가 비명을 질렀어요.
룰레와 필레가 식탁에서 펄떡 일어나 주먹다짐을 벌이는데, 어찌나 사납게 싸우는지 접시들이 다 바닥에 떨어져 깨졌습니다. 그 바람에 오스카가 질겁하여 지갑과 시계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자기 집으로 사라졌습니다.
오스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꼬맹이 역시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아주 놀랐지만,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식탁 밑에서 그냥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필레가 룰레보다 힘이 더 셌어요. 룰레의 멱살을 잡아 현관까지 몰아붙이면서 제 딴에는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그때 카를손과 꼬맹이가 재빨리 식탁 밑에서 나왔어요. 카를손이 마루에 흩어진 접시 조각들을 보고서 말했습니다.
- 접시들이 다 깨지고 수프 대접만 멀쩡하네. 이 가엾은 수프 대접은 얼마나 외로울까!
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 해서 수프 대접을 바닥에 내동댕이쳤어요. 그리고 둘은 창문으로 달려가서 잽싸게 지붕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곧이어 필레와 룰레가 방으로 돌아왔는데, 필레가 묻는 말이 꼬맹이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 이런 멍청한 자식, 지갑과 시계를 도대체 왜 돌려준 거야?
- 너, 정신 나갔냐? 네놈이 그런 거잖아!
룰레가 맞서면서 서로 주고받는 욕설을 들으며 카를손이 배가 출렁일 정도로 깔깔댔습니다.
- 오늘 재미는 이걸로 충분하다!
꼬맹이도 오늘 장난으로 목구멍까지 배가 불렀습니다.
둘이 손을 잡고 꼬맹이 집 지붕 위에 있는 굴뚝 뒤 작은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캄캄해졌습니다. 둘이 거의 다 왔을 때 사이렌 소리 요란하게 울리면서 소방차가 거리를 질주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어디서 불이 난 게 분명해. - 꼬맹이가 말했습니다. - 소방차가 지나갔잖아, 들었지?
- 네 집일 수도 있다. - 은근히 그렇기를 바란다는 투로 카를손이 대꾸했습니다. - 네가 나한테 말만 하면, 내가 소방관들을 기꺼이 도울 거야. 왜냐면 난 세상에서 제일가는 소방관이니까.
소방차가 건물 현관 앞에서 멈추는 것을 둘이 지붕에서 내려다봤습니다. 소방차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었어요. 그러나 불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방차에서 지붕까지 아주 기다란 사다리가 재빨리 놓였습니다.
- 나 때문에 그런 건가?
꼬맹이가 자기 방에 남겨둔 쪽지를 떠올리고 불안하게 물었습니다. 정말이지 벌써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 왜 저렇게들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 꼬맹이, 네가 잠시 지붕 위에서 돌아다닌다고 해서 마음 졸일 사람이 과연 있을까? - 카를손이 가볍게 짜증을 냈습니다.
- 그래, 엄마가. 엄마는 신경이 예민해서…
꼬맹이가 문득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 소방관들하고 좀 장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카를손이 뭔가 일을 또 꾸미려 들었지만, 꼬맹이는 더 이상 기분을 전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다리에 올라탄 소방관이 지붕에 올라올 때까지 잠자코 서서 기다렸습니다.
- 그래, 나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된 것 같다. - 카를손이 말했어요. - 물론 우리는 아주 차분하게, 대놓고 말하자면 모범적으로 처신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나한테 고열이, 30도에서 40도 되는 열이 있었던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기 작은집을 가리킨 뒤 “잘 가, 꼬맹이!” 하고 외쳤습니다.
- 잘 있어, 카를손!
꼬맹이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소방관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 어이, 꼬맹이. - 카를손이 굴뚝 뒤로 모습을 감추기 전에 소리쳤습니다. - 내가 여기 산다고 소방관한테 말하지 마라! 난 세상에서 제일가는 소방관이잖아. 어디선가 화재가 날 때 그들이 날 부르러 올까봐 겁난다.
소방관이 벌써 지붕 가까이 올라왔습니다.
- 꼼짝 말고 그 자리에 있어라! 내 말 들었니.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이제 올라가서 널 구해줄게.
꼬맹이는 소방관 아저씨의 경고가 친절하기는 하지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녁 내내 지붕 위에서 돌아다녔는데, 뭐. 지금도 사다리 쪽으로 몇 발짝을 뗄 수 있어.
- 아저씨를 우리 엄마가 보냈어요? - 소방관이 손을 잡고 내려갈 때 꼬맹이가 물었습니다.
- 그래, 물론 네 엄마가 보내셨지. 한데… 내 보기엔 지붕 위에 사내애가 둘이 있는 것 같았는데…
꼬맹이가 카를손의 부탁을 떠올리고 천연스레 말했습니다.
- 아니요. 여기에 다른 사내애는 없었어요.
엄마에겐 정말로 ‘신경증세’가 발동했습니다. 엄마와 아빠, 보쎄 형, 베탄 누나, 또 많은 낯선 사람들이 거리에서 꼬맹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달려와서 꼬맹이를 끌어안았어요. 그리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빠가 꼬맹이 손을 꼭 쥐고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 보쎄 형이 말했습니다.
베탄 누나도 눈물을 흘리면서 당부했어요.
- 앞으로 다신 그런 짓 하지 마. 기억해, 꼬맹이, 절대 하지 마라!
꼬맹이를 바로 침대에 누이고 식구들이 다 주변에 모였어요. 마치 꼬맹이 생일인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아빠가 하시는 말씀은 아주 심각했습니다.
- 우리가 걱정할지 정말 몰랐단 말이니? 엄마가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쏟을지 몰랐단 말이야?
꼬맹이가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면서 웅얼거렸어요.
- 뭐, 그렇게 걱정할 필요 있어?
엄마가 꼬맹이를 꼭 끌어안고 말했어요.
- 생각 좀 해 보렴! 그러다가 지붕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너를 잃게 되면 어떡하니?
- 그러면 식구들이 슬퍼하기나 할 거야?
- 네가 보기엔 어떨 것 같니? 세상 그 어떤 보물을 준다 해도 우리는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단다. 너도 알고 있잖니. - 엄마가 대답했어요.
- 백만 원을 준다고 해도? - 꼬맹이가 물었습니다.
-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너를 잃을 수는 없지!
-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값 비싸단 말이야? - 꼬맹이가 놀랐습니다.
- 물론이란다. - 엄마가 대답하고 다시 끌어안았습니다!
꼬맹이가 곰곰이 생각했어요.
음, 억만금이면 엄청나게 많은 돈이야! 내가 과연 그렇게 비쌀 수 있을까? 강아지를, 진짜 귀여운 강아지를 20만 원만 주면 살 수 있는데…
- 내 말 좀 들어봐요, 아빠. - 꼬맹이가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 내가 정말 억만금 값이 나간다면, 지금 현금으로 20만 원을 받을 수는 없을까? 귀여운 강아지를 사려고 그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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