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계속)
- 얘야, 꼬맹이, 현관에서 누가 널 기다리는구나. - 아빠 말씀에도 대꾸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아빠가 꼬맹이 어깨를 가만히 흔들었습니다.
- 얘야, 못 들었니? 현관에서 친구가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 구닐라 아니면 크리스터이겠지, 뭐.
꼬맹이가 귀찮다는 듯이 반응하자, 엄마가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 아니, 그게 아니다. 널 기다리는 친구는 빔보라고 한다.
- 빔보가 누군지 난 몰라!
꼬맹이가 투덜대자 엄마가 또 설명했어요.
- 네가 모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쪽은 너하고 사귀기를 간절히 원하는걸.
바로 그 순간 현관 쪽에서 나직하게 짖는 강아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꼬맹이가 온몸에 힘을 주고 고집스럽게 베개에서 떨어지지 않았어요.
‘아니야, 이젠 정말 헛된 꿈을 다 버려야 해.’
하지만 현관에서 강아지 옹알거리는 소리가 또 들려왔어요. 꼬맹이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 물었습니다.
- 강아지야? 진짜 살아 있는 강아지?
아빠의 대답이 들렸습니다.
- 그렇단다. 강아지야. 네 강아지.
이때 보쎄 형이 현관으로 달려가더니 일 분도 안 지나서 꼬맹이 방으로 돌아오는데, 아아, 꼬맹이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요, 아, 글쎄, 작고 털이 보송보송한 닥스훈트가 품에 안겨 있는 게 아니겠어요!
- 이게 살아 있는 내 강아지라고? - 꼬맹이가 중얼거렸습니다.
빔보를 받아 안으려고 두 손을 내뻗을 때 두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였습니다. 강아지가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지지는 않을까 겁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빔보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꼬맹이가 품에 안자, 꼬맹이 뺨을 혀로 핥고 왈왈 짖으며 귀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어요. 빔보는 정말 살아있는 강아지였습니다.
- 그래, 이제 행복하니, 꼬맹이?
아빠 물음에 꼬맹이가 그저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야!’
꼬맹이는 어찌나 행복하든지, 어딘가 속에서, 마음인지 뱃속인지 어딘가가 아픈 것 같기도 했어요. ‘사람이 행복에 겨울 때면 이럴 수도 있나?‘
- 이 비로드 강아지는 이제 빔보의 장난감이 될 거야. 알겠니, 꼬맹이! 우린 너를 약 올리려고 한 게 아닌데… 어휴, 정말 미안하게 됐다. - 베탄 누나가 사과했습니다.
꼬맹이는 모든 걸 용서했어요. 그리고 식구들이 자기한테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어요. 왜냐면 빔보하고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 빔보, 귀여운 빔보, 넌 내 강아지야! - 그러고는 엄마한테 말했지요. - 내 빔보가 알베르트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털이 짧은 닥스훈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강아지가 분명하니까.
그러나 구닐라와 크리스터가 곧 올 때가 됐다는 걸 퍼뜩 떠올렸어요.
오오! 이 하루가 이렇게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니, 꿈만 같아. 이제 나한테도 강아지가 있다는 걸 그 애들이 알게 될 거야. 그것도 진짜 강아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강아지가 있다는 걸!
그러다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 엄마, 할머니한테 갈 때 빔보를 데려가도 될까?
- 물론이지. 이 작은 광주리에 담아서 데려가렴.
엄마는 보쎄 형이 강아지를 안고 올 때 함께 가지고 온 예쁜 광주리를 가리켰습니다.
- 아! 그래!!
꼬맹이에게 다른 말은 더 필요가 없었습니다.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구닐라와 크리스터가 온 겁니다. 꼬맹이가 동무들에게 달려가면서 신나서 소리쳤어요.
- 강아지를 선물 받았다! 이젠 내 강아지가 생겼어!
- 어머나, 정말 귀엽네! - 구닐라가 탄성을 지르고 나서 곧 정신을 차리고 기쁘게 말했어요.
- 생일 축하해. 자, 이건 크리스터하고 내가 준비한 선물이야.
그러면서 꼬맹이에게 캔디 상자를 내밀고는 다시 빔보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 어머나,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그 말을 들으면서 꼬맹이는 정말 흐뭇했습니다.
- 예파 만큼이나 귀엽다.
크리스터가 하는 말에 구닐라가 핀잔을 주었어요.
- 무슨 소리야, 이 강아지가 예파보다 훨씬 더 낫지. 심지어 알베르트보다도 훨씬 더 좋다!
- 그래 맞아, 알베르트보다 훨씬 더 낫네. - 크리스터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꼬맹이는 구닐라와 크리스터가 정말 좋은 동무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잘 차려놓은 생일상으로 안내했습니다.
때마침 엄마가 치즈와 소시지를 넣은 샌드위치 접시와 과자가 수북이 담긴 그릇을 가져왔습니다. 생일상 한가운데에는 벌써 촛불 여덟 개 꽂힌 생일 케이크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어요. 그 다음에 엄마가 핫 초콜릿이 든 커다란 차관을 가져와서 찻잔에 따르기 시작했지요.
- 카를손을 기다려야 하지 않아?
꼬맹이가 조심스레 묻자, 엄마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 아니, 기다릴 필요가 없겠구나. 오늘은 날아오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 얘기는 앞으로 아예 그만두자꾸나. 이제 너한테는 빔보가 있지 않니?
물론 이제 꼬맹이에게는 빔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꼬맹이는 카를손이 생일에 와 주기를 몹시 기다렸습니다.
구닐라와 크리스터가 테이블 앞에 앉고, 엄마가 아이들에게 샌드위치를 대접했어요. 꼬맹이도 빔보를 광주리에 넣고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엄마가 나가고 아이들만 남자, 보쎄 형이 방문으로 코를 들이밀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 케이크를 다 먹지 마라. 나하고 베탄 몫은 남겨 둬!
- 알았어, 한 조각 남겨 둘게. - 꼬맹이가 대답했습니다. - 공평하게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남겨 둘게. 형하고 누나는 내가 아직 세상에 없을 때 벌써 몇 번이나 케이크를 먹었잖아.
- 단, 큰 조각을 남겨 둬야 한다! - 보쎄 형이 문을 닫으면서 또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창밖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윙윙 들리더니 카를손이 방안으로 날아들면서 외쳤습니다.
- 너희들 벌써 둘러앉은 거냐? 벌써 다 먹어 치웠겠지?
- 걱정 마. 생일상에는 먹을거리가 아직 쌓였으니까. - 꼬맹이가 안심시켰습니다.
- 그럼 됐어!
- 근데 넌 꼬맹이 생일을 축하하지 않을 거야? - 구닐라가 카를손에게 물었습니다.
- 아, 물론이지. 축하한다! 난 어디에 앉아야지?
그런데 엄마는 그예 네 번째 찻잔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걸 알아차리고는 카를손이 아랫입술을 빼물고 금방 볼이 부었어요.
- 아, 난 이렇게는 못 놀아! 이건 불공평해. 내 찻잔은 왜 없는 거지?
꼬맹이가 즉시 자기 것을 건네주고, 주방으로 살짝 들어가서 다른 찻잔을 가져왔습니다. 방으로 돌아와서 꼬맹이가 말했습니다.
- 카를손, 선물로 강아지를 받았어. 이름이 빔보야. 바로 저기 있어.
그리고 광주리 안에서 자고 있는 강아지를 가리켰습니다.
- 정말 좋은 선물이다. - 카를손이 말했습니다. - 아, 저 샌드위치와 저 케이크 좀 건네주라, 저것도… 아, 그래, 그거!
카를손이 먹을거리를 이것저것 앞에 놓고 나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아,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나도 선물을 가져왔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 - 그러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호각을 꺼내 꼬맹이에게 내밀었습니다. - 이제 이걸로 빔보를 부를 수 있을 거야. 난 늘 호각을 불어서 내 개들을 부른다. 비록 내 개들은 다 이름이 알베르트이고 날아다닐 줄 알지만…
- 어떻게 네 개들은 이름이 다 알베르트야? - 크리스터가 놀랐어요.
- 그래, 천 마리가 다 그렇다! 자, 이젠 사과파이를 먹어도 되지 않겠냐.
서두르는 카를손에게 꼬맹이가 말했습니다.
- 호각 선물 고마워, 다정한 카를손! 빔보를 이 호각으로 부르면 기분이 좋을 거야.
- 단, 그 호각을 내가 자주 빌려 갈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라. 아주, 아주 자주 말이야. - 그러더니 별안간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 근데, 캔디를 선물 받았냐?
- 물론이야. - 꼬맹이가 대답했어요. - 이 애들이 선물했어.
- 좋아, 이 캔디는 다 자선사업에 쓰일 거다.
카를손이 캔디 상자를 자기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또 샌드위치를 꿀떡꿀떡 삼켰습니다.
구닐라와 크리스터, 꼬맹이도 까딱 잘못하면 먹을 게 남아나지 않겠다 싶어서 손과 입을 아주 빨리 놀렸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엄마는 샌드위치를 많이 마련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엄마와 아빠, 보쎄, 베탄은 식당에 앉아 있었어요.
- 아이들이 저렇게 조용한 것 좀 보세요. - 엄마가 말했습니다. - 꼬맹이가 마침내 강아지를 갖게 됐으니 나도 행복해요. 물론 강아지를 키우면 잡다한 일이 많겠지만, 거야 어쩌겠어요!
- 그래요, 앞으로는 꼬맹이가 그 뭐야,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 같은 허깨비 얘기를 하지 않겠지. - 아빠가 말했습니다.
그 순간 꼬맹이 방에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수다 떠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제안했습니다.
- 가서 애들을 한번 봅시다. 저 애들은 참 사랑스러워요.
- 그래요, 가 봐요! - 베탄이 거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네 사람이, 엄마와 아빠, 보쎄, 베탄이, 꼬맹이가 생일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보러 갔습니다.
아빠가 방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외마디 비명을 먼저 내지른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왜냐면 꼬맹이 옆에 앉아 있는, 작고 퉁퉁한 사람을 먼저 보았으니까요.
그 작고 퉁퉁한 사람은 입가에 생크림을 잔뜩 묻히고 있었습니다.
- 어머나, 어쩜, 난 기절할 것만 같아. - 엄마가 말했어요.
아빠와 보쎄, 베탄은 말없이 서서 눈만 휘둥그레 떴습니다.
- 봐요, 엄마, 카를손이 결국 날아왔잖아. 아아, 얼마나 멋진 생일이야! - 꼬맹이가 아주 기분 좋게 말했어요.
그때 작고 퉁퉁한 사람이 입술에 묻은 생크림을 손가락으로 닦아낸 뒤 엄마와 아빠, 보쎄, 베탄에게 통통한 손을 힘차게 흔드는 바람에 생크림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 안녕! - 작고 퉁퉁한 사람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 여러분은 여태껏 나를 알게 될 영광을 못 누렸지. 나는 카를손, 지붕 위에 사는… 어이, 구닐라, 구닐라, 넌 접시에 너무 많이 담잖아! 나도 파이를 먹고 싶단 말이야…
그러다가 이미 접시에서 파이 몇 개를 집은 구닐라의 손을 낚아채 도로 내려놓게 했습니다.
- 이렇게 게걸들린 여자애는 본 적이 없어! - 카를손이 훨씬 더 큰 파이를 자기 접시에 올려놓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 세상에서 파이를 가장 잘 집는 사람은 바로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다!
- 우리는 식당으로 갑시다. - 엄마가 아빠한테 속삭였어요.
- 그래,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거야. 당신들이 있으면 내가 불편해. - 카를손이 서슴지 않고 말했습니다.
꼬맹이 방에서 나오자 아빠가 엄마를 보며 말했습니다.
- 하나만 약속합시다. 당신이나 보쎄, 베탄 다들 나한테 약속해. 우리가 지금 본 것을 그 누구한테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 왜 그래야지요? - 보쎄가 물었습니다.
- 지금 장면을 우리가 말한다 해도 믿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 아빠가 나직하게 말했어요. - 또 누군가가 믿는다면, 별의별 질문을 퍼부으면서 우리를 죽을 때까지 편히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아빠와 엄마, 보쎄, 베탄은 꼬맹이가 찾아낸 놀라운 친구에 관해 그 누구한테도 절대 얘기하지 않기로 서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카를손에 관한 얘기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를손은 아무도 모르는 작은집에서 계속 사는 거지요. 비록 그 작은집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평범한 거리, 가장 평범한 건물의 가장 평범한 지붕 위에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카를손은 지금도 마음 가는 곳이면 어디나 태연하게 돌아다니면서 내키는 대로 장난을 칩니다. 그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장난꾸러기란 것은 다 알려져 있으니까요!
샌드위치와 과자, 파이를 다 먹은 뒤 크리스터와 구닐라가 집으로 돌아가고 빔보가 자기 바구니에서 곤히 잠들었을 때, 꼬맹이는 카를손과 작별하게 됐습니다.
카를손이 날아갈 채비를 마치고 창턱에 앉았어요.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지만, 이미 여름이 다가왔기 때문에 공기는 따스했어요.
- 다정하고 다정한 카를손, 내가 할머니 댁에서 돌아올 때도 넌 계속 지붕 위에서 살고 있을 거지? 분명히 그럴 거지? - 꼬맹이가 물었어요.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 카를손이 말했습니다. - 할머니가 나를 놓아주기만 한다면, 그럴 거다. 한데 할머니가 놓아줄지는 아직 몰라. 할머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착한 손자라고 여기거든.
- 근데 넌 정말 세상에서 가장 착한 손자야?
- 물론이지. 내가 아니면 누가 있겠어? 다른 누군가를 꼽을 수 있단 말이냐? - 카를손이 물었어요.
그러고는 배에 있는 단추를 누르자 모터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내가 다시 돌아오면 우리는 사과파이를 더 많이 먹자! - 카를손이 외쳤습니다. - 파이는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찐다!.. 잘 있어, 꼬맹이!
- 안녕, 카를손! - 꼬맹이도 마주보며 외쳤습니다.
그리고 카를손은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꼬맹이 침대 곁에 놓인 광주리에서는 빔보가 잠을 자고 있습니다. 꼬맹이가 강아지를 내려다보다가 작고 부르튼 손으로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 빔보, 내일 우린 할머니한테 갈 거야. 잘 자라, 빔보! 좋은 꿈 꿔.
-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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