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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자녀와 소통하는 법

1과. 조건 없는 수용이란? (2)

by Chimin303 2019.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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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son 1. 조건 없는 수용  

 

<자녀와 소통하는 방법>을 시작하면서 기펜레이터 교수는 일반적인 원칙을 하나 제시한다. 이걸 준수하지 않으면 아이와 관계가 아무리 애써도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는 이 원칙은 바로...

<아이를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 

 

기펜레이터 교수, 젊은 엄마와 대담
Julia Gippenreiter

 

이게 무슨 뜻이냐고?

아이를 조건 없이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것은 
아이가 예쁘거나 똑똑하거나 재주 많거나 우등생이라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냥 사랑한다는 뜻이다!

 

한 대중가요에서는 "당신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갈 거야!" 하고 외친다. 그렇게 달려간 뒤에 뭐가 어찌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절절한 자세는 바로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데서 특히 절실하다.

 

그런데 실제에서 우리는 (어른들은) 아들이나 딸에게 어떻게 말하나.  

"엄마 말 잘 들으면 예뻐할 거야." 

"착한 아이라야 사랑해 주지." 

"네가 게으름을 (싸움질을, 거칠게 굴기를) 그만두기 전에는 아빠한테서 좋은 걸 기대하지 마라." 

"학교 성적이 올라가면 자전거를 사줄게." 

이런 식의 말을 심심찮게 듣곤 한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런 말은 결국 내 아이를, 내 자녀를 

'만약 ...한다면, ...이라면' 수용하고 사랑한다는 (사랑하겠다는) 뜻이 아니던가.

이게 과연 가능한 얘기인가. 조건에 맞지 않으면 아이를 사랑하지 않겠다?

끔찍한 발상이기도 하다. 한데 우리는 그동안 이런 식의 말을 별생각 없이 얼마나 자주 써 왔던가! 

 

그런데... 자녀를 대함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람에 대해 어떤 조건을 내거는, 사람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평가하는, 태도와 분위기가 우리 문화에 널리 퍼져 있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와 분위기가 아이들 인식에도 뿌리를 내린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정한 소통 방법이 못 되기 때문이다. 

 

(※ '고통의 몸체'를 거치지 않고 진정 마음과 마음으로, 영혼과 영혼으로 소통할 기회를 누리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이렇네 저렇네 평가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과 타인을 판단과 평가 없이 대하기> 포스트를 차분하게 음미하면서 읽어 보시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박이 나올 수 있다. 

"무슨 소린지는 알겠는데, 그렇다면 아이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책가방을 내팽개쳐 두고 뛰쳐나가거나 어른을 공경하지 않아도 사랑해야 한단 말인가요? 미안하지만 난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난 내 아이들이 오로지 ...할 때만 (...일 때만) 사랑할 거에요." 

 

아이들의 행위를 평가하는 태도가 자고로 부모들 인식에 눌러앉은 까닭은...

<보상과 징벌>이 중요한 교육 수단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칭찬하면 아이가 더 좋아지고, 벌을 주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

맞는 말이다.

더 많이 나무랄수록 아이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패턴을 누가 모르나. 다만 <보상과 징벌>이라는 수단이 늘 미더운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아이들 양육과 교육이
 동물 조련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들한테
조건반사를 키워주기 위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 이런 측면에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생각도 주의해서 접할 필요가 있다.

칭찬과 관련된 이 얘기는 저 뒤에서 나누기로 한다. 

 

* * *  

애정을 갈구하면서 또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들 중 하나임을 심리학자들이 입증했다.

애정 욕구, 소속 욕구

그리고 욕구 충족은 아이의 정상적 발달에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이 욕구의 충족은...

아이가 당신에게 소중하고 필요하고 중요하며 아이가 그냥 좋다고 당신이 전달할 때 비로소 이뤄진다. 

그리고 그런 전달은 자애로운 눈빛에, 애정 어린 스킨십에,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말에 들어 있다. 

 

널 보니까 기쁘구나.

 

"네가 우리한테 태어나서 정말 좋단다." 

"너를 보니까 기쁘구나."

"난 네가 좋아." 

"네가 집에 있는 게 난 참 좋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난 아주 좋구나…" 

 

유명한 가족 치료사 버지니아 사티어 Virginia Satir는 하루에 적어도 네 번은 아이를 안아 주라고 권고한다. 기분을 좋게 하려면 하루 여덟 번 포옹이 필수라고 한다. 사실 이건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한테도 그렇다. 

 

아이를 자주 포옹해 주라.
우리가 함께 있는 게 난 좋아. 널 보니까 기쁘구나.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조건 없는 수용>의 여러 징표를 아이한테 드러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자양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표시를 보면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그런 표시들을 받지 못하는 경우 아이에겐 감정 문제, 행동 장애, 심지어 신경질환마저 생긴다.

 

여섯 살 여자아이의 엄마가 딸에게서 신경증 증세를 발견하고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게 됐다.  

상담중에 돌이켜보니, 언젠가 딸과 이런 얘기를 주고받은 기억이 났다. 

"엄마, 내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와 아빠한테 가장 큰 골칫덩이가 뭐였어요?“ 

"왜 그런 걸 묻지?" 엄마가 놀랐다. 

"왜냐면, 그 다음에 엄마 아빠한테 가장 큰 골칫덩이는 결국 내가 됐으니까. 내가 없는 게 더 좋다고 엄마 입으로 말했잖아."

상상해 보자.

딸이 어린 생각에서 그런 결론에 이르기 전에

"좋은 애가 아니야",

"아주 못 됐어",

"왜 저런 애가 태어났을까",

"우리가 무슨 벌을 받았나"

따위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그리고 그런 일들이 다 신경증으로 나타난 것.

 

우리는 (어른들은) 자신이 아이들한테 어떻게 말하고 대하는지를 늘 살피지는 않는다

한 엄마는 자신의 부주의한 말로써 아들에게 정신적 상처를 가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했다. 소년이 자기를 찾지 말라는 쪽지를 남기고 가출한 것이다.

'내가 없는 게 더 낫다고 엄마가 그랬잖아요.'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액면 고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지극히 크다!

아이들은 자기네 느낌에 충실하고, 어른들이 한 말을 전부 완전히 참인 양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부모가 아이한테 더 자주 역정을 내고 닦달하고 비판할수록, 아이는 ‘아, 부모가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하고 더 빨리 일반화해 버린다

 

‘난 널 생각해서 그래',

'걱정되니까 그러는 거야', 혹은

‘다 널 위해서야’

같은 부모의 이유를 (혹은, 근거나 핑계를) 아이들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은 그런 말을 듣기는 해도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들에겐 나름의 결산이 있다.
난 널 아끼고 있어… 널 위해서…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감정적 측면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정리한다. 

아이들한테는 액면 그대로의 단어들보다 말투가, 어조가, 억양이, 말하는 톤이 더 중요하다.

만약 부모의 어투가 늘 (혹은, 종종) 날카롭거나 화나 있거나 엄격하다면, 아이가 내리는 결론은 항상 똑같다. 

‘날 사랑하지 않아.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야.’ 

아이 나름의 이런 결론이 때로는 자기비하에서 나오기도 한다. 자신이 부모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혹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느낌에서 나오기도 한다.  

 

* * *

아이들이 자라면서 <불수용 콤플렉스>가, '자신을 부모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콤플렉스'가, 무엇에서 커지는지 살펴보자. 

14세 소녀가 보내온 편지의 한 대목.

 

엄마하고 다정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난 믿지 않아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은 토요일과 일요일이에요. 그때는 엄마가 하루 종일 곁에 있으면서 뭔가를 지적하고 나무라거든요.

나랑 있으면서 소리치는 대신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난 엄마를 더 잘 이해할 텐데…

물론 엄마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요.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난 불행한 사람이 될 거예요.

이렇게 사는 게 지긋지긋해요. 도와주세요! 제발!

 

서운함, 외로움, 때론 낙담과 실망감 등이 다른 아이들 편지에서도 들린다. 그들의 하소연을 보자면, 부모가 자기네한테 '다정하게 대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말하는 법이 결코 없으며,

‘사사건건 참견하고’ ‘으르렁대고’, 또

"해라!“,

”치워라!“,

”가져와라!“,

”씻어라!“

등 명령형만 쓴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호소에는 때로 부모에 대한 따스한 염려가 드러나기도 한다.

'엄마를 어떻게 진정시켜야 해요?',

'부모도 힘들겠지요',

'엄마이해할 수도 있긴 해요…' 

13세에서 15세 아이들이 주로 그렇게 적는다.

하지만 더 나이 든 틴에이저들은 이미 굳어져 있다. 그들은 일방적인 부모를 아예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 지붕 아래 있고 싶어 하지도 않아. 

 

이런 것이 부모가 아이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용인하지 않을 때, 품어 주지 못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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