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데카르트' 태그의 글 목록
728x90

'데카르트'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9.07.21 마인드와 시간의 정체 2
  2.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1편 2
  3. 2019.07.10 루덩의 악마들 (1편 2)
  4. 2019.07.10 루덩의 악마들 (1편 1)
  5. 2019.05.24 말에 관한 금언
  6. 2019.03.24 정신물리학
728x90

 

  마인드와 시간  

우리를 <존재>와 갈라서게 하는 장애 요소 

 

하지만, 정말로 깨달음을 얻고 늘 그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왜 그리 적을까요? 

깨달음의 상태가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번뜩 다가옵니다. 

다만, 대다수는 그런 번뜩임을 겪고 나서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원하며 무한한 <존재>와 늘 하나 되어 산다는 것이 정말이지 소수에게만 허용된 특출한 기법처럼 보일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는 누구든 그렇게 할 수 있다! 
단지, 그걸 달성하려면 두 가지 방해물을 버려야 하는데,
그건 바로
마인드와 시간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가 우리로 하여금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며 우리를 <존재>와 갈라서게 하는 것이니까.  

 

마인드가 생각의 차단막을 만들어 우리를 주변과 분리되게 한다

 

이 개념을 이제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보지요. 부디 선입견을 다 버리면 좋겠군요. 

이런 개념을 접하면서 처음 내보이는 반응은 아마도 이런 저항일 테니까요. 

“아니, 마인드와 시간을 어떻게 내버릴 수 있단 말이야? 마인드와 시간 없이 살 수 있겠어? 그건 정신 나가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된다거나, 아니면 존재하기를 아예 끝낸다는 뜻 아니야?” 

 

그렇게 우려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을 곧 확인하게 될 겁니다. 마인드를 갖추지 못하고 시간 개념이 없는 동물 수준으로 내려간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외려 그 반대로, 의식의 다음 진화 단계로 올라선다는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즉,

제한된 인간 마인드에서 우주 마인드로,

선형적 시간이라는 함정에서 영원하고 무한한 공간으로 나아간다는…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시간과 마인드를 장악하게 되겠지요. 장악한다고 해서 마인드와 시간한테 무슨 거창한 짓을 한다는 건 아니고,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돌려둔다는 뜻일 뿐이에요. 그 두 가지가 우리를 지배하여 우리 삶을 저희 뜻대로 결정하게 놔두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둘을 지배하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과제들을 해결하는 도구로 쓰겠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마인드와 시간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두 개념은 서로 관계가 아주 밀접한데, 어떻게 그런지는 이제 곧 알아볼 겁니다. 마인드는 시간과 어울려서 우리가 <존재>로 달려가지 못하게 함정을 만들어요. 그런 일이 어떻게 생기는지, 살펴볼까요. 

 

마인드는 어떻게 작동하나

 

사람에게 마인드가 부여된 데는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할 때, 마인드만큼 필요한 것도 없잖아요? 예를 들어, 집을 짓거나 과학적인 발견을 이루거나, 혹은 뭔가를 손수 만들거나 사업 전략을 세우거나 책을 쓰거나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물론, 계획을 세우고 자기 역량을 분석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최선을 택하고, 그걸 어떤 식으로 실행할지 궁리해야겠지요. 

구체적인 뭔가를 입안하고 실행할 때, 상황을 분석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때…

우리는 마인드를 그 본래 소명에 걸맞게 활용합니다. 이때 마인드는 우리가 작업에 동원하는 도구로서 아주 유용하고 필요한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우리네 마인드의 역할이 그런 일에만 국한돼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데, 인류는 사실상 큰 과오를 저질렀으니… 이 마인드에게 파워를 지나치게 많이 내주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내 마인드가 바로 나야!’ 하고 자기도 모르게 확신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사람이 마인드를 과제 해결 도구로 쓰는 게 아니라, 거꾸로 마인드가 사람을 제멋대로 쥐고 흔들게 됐습니다.

 

마인드가 우리 머릿속을 다 지배해

 

자신에게 조용히 주의를 집중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흠, 내 머릿속을 마인드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군, 거기서 제멋대로 따로 살면서 말이야.’ 

어디 이것뿐이겠어요?

마인드가 당신에게 뭔가를 끊임없이 주절대고 속삭이고 지시하고 주장하고 요구한다는 사실도 분명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리고…

이 끝없이 이어지는 머릿속 대화 때문에 사람들은 정말이지 잠깐이나마 쉴 틈조차 누리지 못합니다.

 

이건 곧 우리가 마인드를 그 본래 소명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혹은, 마인드가 제 본연의 자리와 역할을 망각했다는 뜻이기도 해요.

주인에게 봉사해야 할 마인드가 외려 주인을 쥐고 흔들어요.

마인드가… 사람을 노예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 모든 것을 마인드가 제 나름대로 설명하고 판단하고, 그 모든 것에 의견 덧달고 꼬리표 붙여서 분류하고 낙인을 찍습니다. 주변의 사물과 현상과 사안과 사람에 대해 당신이 명료하게 이해하고 느끼고 깊이 규명하고 인식할 시간을 채 다 쓰지도 못했는데, 마인드가 먼저 중뿔나게 제 판단을 들이밉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실에서 당신을 떼어놓는 (혹은, 보호하는) 방패처럼 말이에요

이것이 생각의 차단막입니다. 

 

이 차단막이 당신과 당신 자신을, 당신과 동료들을, 당신과 세상을, 당신과 자연을, 그리고 당신과 신을 갈라놓습니다.

그래서 분리 망상을 일으킵니다.

덧붙이자면, 이 분리 망상을 우리의 거짓된 나인 <에고>가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점을 전혀 인식도 못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과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쓰일 때 마인드는… 유용하다. 
갖가지 생각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주체가 될 때 마인드는… 해롭다.

 

자신의 머릿속 대화를 유심히 관찰해 보세요. 대부분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될 거예요. 그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은커녕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야 할 순간에는 역부족이 될 정도로 우리 힘을 잔뜩 빼앗기만 할 뿐이에요.  

머릿속 대화에 들어가는 힘은 다 허튼 데에… 그 무엇에도 소용없는 말과 생각들을 찧고 빻는 데 쓰이기만 합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거리에서 간혹 마주치는 광인들을 떠올려 보라고 하는군요.

그들은 저 혼자서 뭔지 모를 소리를 끊임없이 중얼거려요. 

그러나 광인이라 불리는 그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이른바 ‘정상인’들은 기껏해야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것일 뿐이니까요.

엄밀히 보자면, 우리네 대다수가 사실은 광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왜냐하면 ‘머릿속 목소리’의 힘에 전혀 맞서지 못하여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계속 중얼거리니까요. 

 

자신의 ‘머릿속 목소리’를 한번 가만히 들어보세요. 

‘얘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거야?’ 

 

우리네 ‘머릿속 목소리’는…

멀고 가까운 기억을 더듬고, 불평하며 비탄에 빠지고, 뭔가를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뭔가에 화내고 뭔가를 예상하고, 뭔가를 우려하고 희망하고 후회하고, 누군가와 비교하고 화내고 욕하고, 판단하며 비판하고 분노하고, 때론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다면 모욕감을 느낄 만한 단어들을 동원하여 주인을 공격하기도 하잖아요

☞ 내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법

 

내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법

 내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면? 누구한테나 사실상 가장 중요한 조언자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이다. (혹은, 머릿속 목소리). 그렇기에 정보 공간이 급변하는 오늘날에는 그 내면의 목소리를

mirchimin.tistory.com

 

그렇게 우리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우리가 좋아해야 할까요?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나요?

그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진정한 삶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우리한테서 <지금> 순간을 빼앗는다. 
그것은 우리를 본연의 자신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명료하게 의식하고 느낄 수 없어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지절대는 목소리가 방해하니까요

우리를 잠시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 이 마인드를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는 이런 마인드보다 더 큰 무엇이라고 여겨야 하나요? 

“거야 당연히 후자 아니겠어?!” 하고 대답한다면, 마인드가 앞으로도 전횡을 휘두르게 놔둬선 안 되겠지요. 

 

에크하르트 톨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경구가 사실은 가장 큰 오류라고 여깁니다.

생각을 <존재>와 동등하게 보고 사람을 생각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사실상 마인드가 만들어 낸 아주 좁은 틀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며,

따라서 진정한 <살아 있음>이며 <존재>에서 분리된다는 뜻이니까요. 

 

행복과 내면의 평화, 아름다움과 조화의 향유, 창의성, 사랑 같이 우리한테 정말 중요한 것은 전부 머릿속에서 끝없이 중중대는 목소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 진정한 가치들은 대개 마인드 너머에 있어요.

하지만 자기 마인드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그런 소중한 것들에 다가가기 힘듭니다

 

  실습 2  

 

자기 자신과 (물론, 소리 내지 않고!) 나누는 대화, 마인드가 끊임없이 이끄는 내면의 대화…

그 주된 내용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주로 어떤 주제들을 다루고 있나요? 

예를 들어, 오늘 하루 당신은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답할 수 있을까요? 

 

대답하기가 썩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글쎄, 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고 대꾸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네 머릿속에서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자, 그 생각들은 과연 어떤 것이었나요? 

그것을 당신은 충분히 알고 있었나요?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오가는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더러 있어요.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분명히 깨닫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건 왜냐하면, 필요한 사고를 했다기보다는 단어며 말이며 생각으로 의미 없는 잡탕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어떠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그래도 기억할 수 있다면, 그 생각들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 자신에게 대답해 보세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 결과, 나에게 정말 중요한 뭔가를 결정하거나 이해하거나 규명했나요?

만약 그렇다면, 축하를 받아 마땅합니다. 마인드를 제대로 활용한 것이니까요. 

만약 이런저런 생각들이 그저 왔다가 사라지고, 그 결과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면…

이건 마인드에 휘둘려서 공연히 힘만 빼앗기고 정작 중요한 것에는 눈길 돌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1) 마인드를 제대로 활용하여 어떤 문제 해결에 도움 받는 때는 언제인지 

2) 마인드가 머릿속을 불필요한 잡담으로 채우면서 헛되이 작동하는 때는 언제인지… 

최대한 자세히 살펴보겠다는 목표를 잡고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상태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우세한지, 짬짬이 비교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지금>이라는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 결과, 잡념을 떨치게 되고), 쓸데없이 주절대는 마인드를 단속하여 제대로 활용하게 될 겁니다.  

 

관련 포스트:

인생 낭비

Procrastination 질질끄는 버릇

Idiot Test

부정적 경험 맛보게 하기 (13)

기다림과 기대함은 마인드의 상태 16

심리적 시간의 함정 13

마인드와 심리적 시간 6

마인드는 지금 순간을 두려워해 4

루덩의 악마들 11편 3

루덩의 악마들 9편 2

마인드와 심리적 시간 6

거짓된 나가 아픔과 고통을 낳아 5

마인드는 지금 순간을 두려워해 4

마인드가 에고를 만들어 3

깨달음의 시작: 우리는 누구인가?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내면의 소리 (머릿속 목소리)

내면의 목소리는 친구인가, 적인가?

(22) 마인드는 지금 순간을 회피하려 든다

(20) 의식의 진화

(15)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기

(11) 시간이란 망상에서 벗어나기

The Power of Now

 

728x90
728x90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악마의 기운

 


 

  우리의 두 번째 사례는 최면에 걸린 사람으로, 최면에 의해 강경증(强勁症) 상태로 들어선 경우이다. 최면의 본질이며 그 암시가 자율신경계에 어떻게 영향 끼치는지를 우리는 아직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최면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상태에서 그들 잠재의식의 어떤 부분이 최면술사가 건넨 암시에 몸이 따르게 한다는 것쯤은 우리가 알고 있다. 

  피험자가 최면에 잘 걸리는 타입이라면 노련한 최면술사는 그를 언제든 강경증 같은 경직 상태로 유도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경직 상태를 루덩의 독실한 신자들은 사탄의 소행으로 여긴 것이다. 정말 그랬다. 왜냐하면 그 당시 개념으로 보아 그런 희귀한 현상은 수녀들이 속임수를 썼거나, 아니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이 분명하니까. 

 

  만약 당신이 아리스토텔레스며 성 아우구스티누스, 갈레노스[각주:1], 아랍 학자들의 저술을 다 읽는다 해도, 오늘날 우리가 무의식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언급은 눈곱만치도 없다는 점을 발견하리라. 우리네 선조들에겐 한 쪽에 영혼이나 의식적인 자아가, 또 다른 쪽엔 하나님과 성인들, 일단의 선하고 악한 스피릿들만 있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의식적 자아의 활동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며 어떤 면에서는 더 효율적인 무의식의 활동이라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개념을 그 시대에는 도저히 갖출 수 없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당대 이론에는 무의식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지금 우리가 무의식의 활동으로 설명하는 희귀한 현상을 그때는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 인간 외적인, 외계 혼령들의 행위로 치부해야 했다. 그러니까 발작을 일으키면서 나타난 강경증은 속임수 아니면 악마들이 들끓는다는 징후였다

 

  토마스 킬리그루[각주:2]가 젊은 시절인 1635년 가을 루덩에서 시행된 한 엑소시즘을 참관했다. 진행을 맡은 탁발수사가 이 영국인에게 수녀의 돌덩이 같은 팔다리를 만져 보라고 했다. 사탄의 파워와 그보다 더 큰 전투 교회[각주:3] 파워를 느끼고 인정하고서, 하나님 뜻이라면, 이단적 종교를 버리고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의미였다. 친구 월터 몬테규는 그 이전 해에 그렇게 했다. 이 사건을 묘사하는 편지에서 킬리그루가 이렇게 썼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돌덩이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단단한 근육과 강한 팔과 뻣뻣한 다리만 느꼈을 뿐.」 

  (수녀들이 프라이버시와 존중 받을 권리를 얼마나 철저히 박탈당했는지에 주목하자.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도사는 장터에서 여흥 돋우는 쇼의 여리꾼처럼 행동한다. “여러분, 이쪽으로 오시오! 주저 말고! 눈으로 못 믿겠다면 만져 볼 수 있어요. 이 뚱뚱한 여인의 허벅지를 꼬집어 봐요, 그러면 우리가 하는 말이 백 프로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겁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반려자들이 카바레 사회자나 서커스 열광자로 바뀌곤 했다.) 

 

  킬리그루의 편지가 이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수녀 몸뚱이가 아주 딱딱하고 쇳덩이보다도 무거웠다고 긍정한다. 필경 그들은 나보다 믿음이 더 컸고, 그래서 기적이 나보다 그들한테 더 잘 보였나 보다.」 

  여기서 ‘기적’이라는 단어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수녀들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 것이라면 시체처럼 경직된 사지는 초자연적인 원인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데카르트가 등장하고 인간 본성에 관해 더 ‘과학적인’ 이론이 웬만큼 퍼졌다 해도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적었다. 외려 몇몇 측면에서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비현실적인 관점을 견지하게 됐다. 악마를 그 누구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지만, 그와 동시에 한때 악마의 힘으로 치부하던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더 이상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적어도 이전의 엑소시스트들은 트랜스나 강경증, 다중인격, 초감각적 지각 같은 사실을 반박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 기이한 현상을 데카르트 이후에 등장한 심리학자들은 난센스며 허구로 여기거나, 그게 아니라면 ‘상상의 작업’ 결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과학자들에게 ‘상상’이란 ‘환상’과 거의 같은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된 현상들은 (메스머[각주:4]가 자기장 최면으로 효과를 본 치료 같은 것은) 무시하는 게 더 안전하고 적절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관념을 데카르트가 기하학적 범주에 집어넣고자 강력히 시도한 끝에 뭔가 경탄할 정도로 ‘명료한 생각들’이 형성됐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명료한 생각들은 거대한 의미를 지니는 어떤 사실들을 무시하게 만든다. 이 사실들에 데카르트 이전 철학자들은 진지하게 대했지만, 당시 지배적인 몇몇 심리 이론의 영향으로 그 사실들을 그저 초자연적인 원인 탓으로 돌려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이해되지 않는 사실들을 수용할 수 있으며 악마를 들먹이지 않고도 이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스피릿’이나 ‘순수 에고’나 ‘아트만’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인간 마인드를 데카르트 철학의 영혼이며 데카르트 이전 시대의 영혼과는 완연히 다른 뭔가로 납득할 수 있다. 

  예전 철학자들은 영혼이 단일하며 나뉘지 않고 불멸이라는 도그마를 굳게 믿었다. 한데 우리가 보기에 영혼은 명백히 복합적 요소들의 혼합이며, 요소들 덩어리인 영혼은 분해되고, 육신이 죽은 뒤에도 뭔가 다른 형태를 띠면서 살아남을 수 있다. 

 

  불멸은 사이키[각주:5]가 아니라 스피릿에 속하며, 이때 사이키가 선택한다면 스피릿과 합치될 수도 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이성의 근간에는 의식이 있다. 이성과 의식은 제 육체와 상호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존재의 육체나 다른 이성이며 의식과는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데카르트는 인간 육신을 자율 규제하는 오토마톤으로 간주했고, 그래서 다른 부차적 영혼들이 존재할 필요성을 못 봤다. 한데 이제 우리는 의식적인 ‘나’와 ‘생리적 무의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사이에 잠재의식의 폭넓은 활동 범주가 있다고 짐작한다. 

 

  게다가 만약 초감각적 작용과 사이코키네시스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무의식 수준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들 의식이며 물적 대상들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데카르트와 그 후계자들이 무시하기로 하고 또 그의 전배들은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악마의 틈입으로만 설명할 수 있었던, 그 기괴한 해프닝들을 오늘날 우리는 인간 심리의 자연스러운 가능성으로 돌린다. 또 이 심리의 영역이며 힘과 약점은 오늘날 과학적 관념을 한참 뛰어넘는다. 

 

  그 당시 사람들은 루덩에서 발생한 일들을 협잡이라 여기지 않았다면 순전히 심리적 측면에서는 마법과 악마의 간계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수녀들 행동을 순전히 심리적 측면이 아니라 생리적 원인으로 돌리려 한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잔느 수녀가 내보인 것 같은 현상을 생리 기능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며, 물리적 대응 수단이 적절하다고 했다. 이 이론을 굳게 믿는 이들은 회초리라는, 오래 된 수단을 써 보라고 제시했다

 

  탈망[각주:6]의 기록을 보면, 쿠드레-몽팡시에 후작은 귀신들렸다 하여 엑소시스트들 손에 맡겼던 딸 둘을 집으로 데려간 뒤 ‘잘 먹이고 호되게 회초리질을 했다. 그러자 악마가 즉각 달아났다.’ 루덩에서도 마귀 들림의 나중 단계에서는 채찍질이 아주 많이 처방됐다. 수렝의 기록을 보면, 교회 의식을 비웃기만 하던 악마들이 회초리를 보자 부리나케 달아난 경우가 왕왕 생겼다. 

 

  많은 경우 예전 회초리질은 아마도 현대의 충격 요법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즉, 무의식이 육체적 고통을 아주 겁내어, 그런 고통을 또 겪느니 차라리 미친 듯 행동하기를 그만 두는 식.[각주:7] 19세기 초까지도 광기가 확실하다 싶은 경우에는 채찍질을 동원한 충격 요법이 어김없이 적용됐다. 

 

베들람의 아늑한 방에서 

스물 하나 될 때까지 나는 

단단한 수갑 차고 달콤한 채찍 맞으며 

기도와 절식도 원 없이 했구나. 

이제 난 노래하니, “아무 음식이든, 

먹을거리든 마시고 입을 거리가 좀 있어요? 

아주머니, 혹은 하녀여, 날 겁내지 말아요. 

불쌍한 톰은 그 누구도 해치지 않아요.”[각주:8]

 

  불쌍한 톰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신민이었다. 그러나 2백 년이 지나 광기 어린 조지 3세 치하에서도 잉글랜드 의회 양원은 궁정 의사들한테 미친 왕을 채찍질하도록 위임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평범한 노이로제나 히스테리에 회초리질이 효과를 본다고 간주됐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었다. 이런 질환은 당시 의학 이론에 따르면 흑담즙이 잘못된 부위에 지나치게 누적돼 생겼다. 로버트 버튼은 이렇게 말한다. 

  「갈레노스는 이런 질환을 모두 검은 냉기 탓으로 돌리면서, 이 질병 탓에 스피릿이 검어지며 뇌 물질이 흐리고 어두워진다고 생각한다. 또 그 결과 주변 대상이 다 끔찍하게 보이며, 마인드 자체는 검은 체액에서 나오는 이 어둡고 칙칙하고 짙은 기운 때문에 늘 어둠과 공포와 비탄에 잠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갈레노스의 이런 판단을 두고 아베로에스[각주:9]가 비웃고 작센의 헤라클레스도 빈정댄다. 그러나 엘레니우스 몬탈투스, 로도비쿠스 메르카투스, 알토마루스, 기네리우스, 브라이트, 라우렌티우스 발레시우스 등은 갈레노스의 관점에 적극 동조했다. 

 

  정신이 흐트러지면 흑담즙이 생성되고, 침울함은 스피릿을 흐리게 하고, 흐려진 스피릿이 공포와 비탄을 야기한다는 게 그들이 내린 결론이다. 라우렌티우스는 검은 기운이 특히 횡격막을 공격하고 이어서 정신을 공격한다고 추정하는데, 그건 태양이 구름에 가려 흐려지는 것과 같다. 

  갈레노스의 견해에 그리스와 아라비아의 거의 모든 저자를 비롯해 라틴계 저자들도 다 동의한다.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겁을 내듯이, 흑담즙질 성향인 사람들은 내면에 늘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 검은 기운이 (예수회 신부 토마스 라이트가 애착에 관한 소론에서 주장하듯이) 심장 부근의 검은 피에서 나오든지 혹은 위장이나 비장, 횡격막, 혹은 뭔가 잘못된 부위들 전부에서 나오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검은 기운이 정신을 집요한 감옥에 잡아두고 끝없는 공포와 불안, 슬픔 따위 힘든 감정으로 괴롭힌다는 점.」 

 

  그런 식으로, 생리적 관점에서 정신질환은 건강하지 못한 혈액이나 병든 내장에서 발생하는 연기나 안개 같은 것으로 여겼으며, 이 ‘검은 기운’이 뇌나 정신을 직접 흐리거나 아니면 자연스럽고 활기차고 생명력 있는 스피릿들이 흘러야 하는 여러 튜브를 막는 것이라 했다. (당시에는 신경 조직을 속이 빈 관처럼 여겼으니까) 

 

  (근세 과학 문헌을 읽다 보면 가장 거친 초자연주의와 가장 거칠고 나이브한 유물주의 같은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데 이 덜 다듬어진 유물주의는...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4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Claudius Galenus (129-201경) - 고대 로마의 의사, 자연과학자. 고대 의술의 대가. [본문으로]
  2. Killigrew (1612–1683) - 잉글랜드의 극작가, 연출가, 극장 운영. 국왕 찰스 1세의 시동으로 출발해 찰스 2세의 침실 시종관. 위트에 능한 대화 상대, 자유분방한 인물. [본문으로]
  3. Church Militant - 싸우는 교회, 현세에서 악과 싸우는 교회. *기독교 신학에서, 그리스도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렇게 나뉜다. 1) 전투 교회 - 지상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포함 (에베소서 6: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2) 승리의 교회 - 현세에서 악과 싸워 이겨 승천한 천국의 영혼들을 포함 3) 참회의 교회 - 지금 연옥에 있는 이들을 포함. [본문으로]
  4. Friedrich Mesmer (1734-1815) - 유대계 오스트리아 의사. 1775년 ‘동물 자기론(磁氣論)’ 발표. 뉴턴 역학 초기의 가설인 '에테르'란 개념을 환자 치료에 이용했다. [본문으로]
  5. psyche - 전통적으로, 영혼은 살아있는 것에만 고유한 것으로 인식돼 왔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 영혼을 사이키라 불렀다. [본문으로]
  6. Gédéon Tallemant (1619-1692) - 프랑스의 시인. 여러 인물에 관해 간결한 이야기 모음집 덕분에 후세에 기억된다. 루이 14세 시대 파리의 유명한 문학 살롱 주인인 마담 랑부이에가 앙리 4세와 루이 13세 치세의 상세한 자료를 많이 제공. 당대 문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이 저술에 파스칼과 라퐁텐도 들어 있다. [본문으로]
  7. 정신병 치료 방법과 결과가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였다. 한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그 문건들을 연구하고 나한테 들려준 바로는, 아주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니, 정신질환 치유 비율은 2백 년에 걸쳐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전혀 다른 방법들을 쓰고 있음에도 그렇다고 한다. 현대 정신 분석가들의 치료율은 1800년도 정신병 의사들의 치료율보다 더 높지 않다. 1600년도 정신병 의사들도 비슷했을까? 정확한 답을 우린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17세기에는 정신질환자들을 아주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많은 경우 병을 악화시켰을 텐데, 이 주제를 우리는 저 뒷장에 가서 다시 다룰 것이다. - 저자 주. [본문으로]
  8. - 1600년도쯤 잉글랜드에서 널리 퍼진 발라드. 작자 미상. 베들람은 정신병원. '베들람의 톰'은 미치광이라는 뜻으로, 근세 이후 영국에서 미쳤거나 미친 체한 거지와 부랑자를 일컬을 때 쓴다. 그들은 베들람의 환자였다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추정된다. 이 장시는 이후 현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시와 글과 소설과 노래 앨범 등에 영감을 주거나 인용됐다. 예,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서 존 캔티가 에드워드 왕자에게 “베들람의 톰처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고 말한다. [본문으로]
  9. Averroes (1126-1198) - 아랍의 종교철학자. 본명은 이븐 루슈드. 코르도바에서 이슬람 종법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모로코에서 죽다. 자연과학, 의학, 수학, 신학, 철학 등 당대 모든 학문을 섭렵. 독자적 저술도 적잖이 있으나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자로 명성을 떨쳤다. "자연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해석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베로에스가 처음 해석했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유일한 이슬람 학자. 단테는 <신곡>에서 그를 비기독교 세계의 현자 대열에 두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 유대 세계의 최고 철학자인 마이모니드에게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728x90

'루덩의 악마들 (헉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덩의 악마들 7-2편 1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1편 3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1편 1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6편 2  (0)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6편 1  (0) 2019.07.15
728x90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새 주임신부가 말을 타고 천천히 다가가면서 보자 하니, 루덩은 구릉 위에 자리 잡은 소도시인데 우뚝 솟은 탑 두 개가 금방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성 베드로 교회의 첨탑, 또 하나는 웅장한 성채 한가운데 있는 중세 시대 아성.

  상징적 측면에서 루덩의 스카이라인은 이미 시대에 뒤졌다. 고딕식 종탑이 제 그림자로 도시 절반을 덮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루덩 주민들은 위그노이기에 이 종탑이 속한 가톨릭교회를 혐오했다.[각주:1]  푸아티에 백작가문이 전성기에 세운 성채는 아직 위풍당당한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그 위세도 이미 막판에 이르렀다. 리슐리외가 곧 권좌에 올라 지방 귀족의 세습 성채뿐 아니라 지역자치 자체를 깡그리 무너뜨릴 테니까. 

  자신이 종파 전쟁의 (삼십년전쟁의) 마지막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젊은 주임신부는 당연히 몰랐다. 그 뒤로 거대한 민중혁명의 서곡이 이어진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성문 곁에 세워진 교수대에서는 시체들이 썩고 있었다. 어떤 곳에는 쌍으로 걸려 있기도 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지저분한 거리들과 별의별 희한한 냄새와 악취가 그를 맞이했다. 아궁이 연기, 거위와 돼지 배설물, 빵 굽는 냄새, 말똥 냄새, 씻지 않은 인간 군상의… 

 

성문 곁 교수대에서는 시체가 썩고 있었다.

 

  소작농이며 수공업자, 날품팔이, 하인들 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1만4천 주민의 하찮고 이름 없는 다수를 차지했다. 한 계층 위로는 점방 주인들, 숙련공들, 부르주아 신분 최하위에 불안정하게 턱걸이한 하급관리들이 있고, 또 그 위로는 천민들 어깨에 걸터앉아 숱한 특전을 누리고 신성한 권리로 지배하는 부유한 상인들과 학식 있는 전문가들, 귀족들이 있었다. 

  한데 이 귀족에도 나름의 계급이 있으니, 맨 밑에는 소지주, 그 위로 부유한 지주들, 더 위로 봉건적 대지주들과 고위 성직자들이 자리 잡았다. 

 

  이런 배경에서 예외적으로 자유로운 지성과 문화의 오아시스가 드문드문 보였다. 이 오아시스들 바깥의 정신적 분위기는 숨 막힐 정도로 촌스럽고 투박했다. 부자들은 오로지 돈과 재산에만 정신 쏟고 권리와 특전에만 미친 듯 달려들었다. 송사를 벌일 여유가 있거나 전문적 법률 자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천에서 삼천 명인데, 루덩에는 법정 변호사가 스물, 사무 변호사가 열여덟, 집행리가 열여덟, 공증인이 여덟쯤 됐다. 

  이문을 쫓아다니다가 남은 시간과 에너지는 가정생활의 반복되는 기쁨과 걱정 같은 일상사에, 이웃에 대한 험담이나 종교 의식, (루덩이 신구 교회 양 진영으로 갈라진 도시인만큼) 신랄하고 지칠 줄 모르는 신학적 논쟁에 녹아들었다. 

 

  주임신부 재직 기간 중 교구민들의 진정한 경건함을 증명할 만한 사건은 전혀 없었다. 최소한 그런 자료는 보전되지 않았다. 단지 예외적인 사람들만이 영적 생활에 몰입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영이요, 그렇기에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공경해야 한다는 점을 직접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긴 해도 루덩에는 꽤 많은 변변치 못한 자들과 더불어 선량하고 반듯한 이들, 경건한 이들, 심지어 독실한 이들까지 다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성인(聖人)은 없었다. 즉, 그 모습 하나가 존재의 영원성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증거요 모든 실체의 거룩한 근간과 온전하게 합일해 있음을 보여주는 이들은…

 

  그런 성스러운 인물이 도시에 나타나려면 육십 년이 더 지나야 했다. 루이즈 트롱셰가 심신의 숱한 체험과 시련을 거친 뒤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루덩 병원에 왔을 때, 그녀는 즉각 강렬하고 신실한 영적 생활의 중심이 됐다. 나이와 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묻고 조언과 도움을 청하러 그녀한테 몰려들었다. 루이즈가 파리에 있는 예전 고해신부에게 편지를 보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난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하나님에 관해 말할 때, 사람들은 아주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지요. 내가 하는 일로 인해 그들이 나를 한층 더 사랑하게 될까 싶어 겁이 납니다.」 

  그녀는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었지만, 도시의 신앙심에 붙들린 몸이 됐다. 그녀가 기도하면 병자들이 치유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다들 성녀 덕분에 회복됐다고 확신했는데, 그녀는 외려 부끄러워하며 고행에 충실했다. ‘내가 정말 이적을 하나라도 행했다면, 난 자신을 저주받았다고 여겼을 겁니다.’ 

 

  몇 해 지나 상부에서 루덩을 떠나라는 지시가 내렸다. 광명이 뚫고 들어올 창문이 주민들에겐 더 이상 없었다. 얼마 지나 종교적 열기가 식고 영적 삶에 대한 관심이 시들었다. 루덩은 평소 상태로 돌아갔다. 두 세대 이전 우르뱅 그랑디에가 말을 타고 들어오던 때의 상태로. 

 

  새 주임신부에 대한 대중의 감정은 애초부터 날카롭게 양분됐다. 신앙심이 더 깊은 여성들 대다수는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이전 주임신부는 늙어서 비슬거리며 볼품없었다. 한데 후임자는 한창 젊은 나이에 키가 훤칠하고 몸매도 잘 빠진데다가 분위기마저 당당하며 심지어 (한 증언에 따르면) 위엄이 서리기까지 했다. 

 

우르뱅 그랑디에 신부

 

  검은 눈이 크고 베레 모자 아래로 검은 곱슬머리가 풍성하게 넘실거렸다. 이마가 넓고, 코는 독수리 같고, 입술은 붉고 통통하고 잘 움직거렸다. 밴 다이크[각주:2] 수염이 턱을 장식하고 윗입술 위에 두툼한 콧수염을 달고 있는데, 그건 포마드를 발라 꼼꼼하게 다듬었기에 돌돌 감아 올린 양 끝이 한 쌍의 요염한 의문부호처럼 코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았다. <파우스트>를 읽은 사람 눈에는 그의 초상화가 좀 더 통통하고 불퉁스럽지 않으며, 단지 아주 조금 덜 지적인 메피스토펠레스가 화려한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매혹적인 외모에다 좋은 매너와 타고난 달변이라는 사회적 덕목을 갖추었다. 듣기 좋은 말을 우아하게 선사할 줄 알았다. 게다가 상대 여인이 볼품없지 않다면, 말하면서 던지는 눈길이 말보다 더 상대를 뜨겁게 만들었다.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가 여성 교구민들한테 보이는 관심이 유별난데, 그건 단순히 목가적인 것 이상이었다. 

 

  그랑디에가 살던 시대는 소위 체면치레를 중시하던 시대의 우중충한 여명기였다. 중세 모든 기간과 근대 초기에 가톨릭교회 공식 규정과 성직자 개개인의 실생활 사이에는 괴리가 엄청나서, 그 양 끝이 연결되지 않고 연결될 수도 없어 보였다. 

  가장 높은 대수도원장부터 가장 낮은 탁발수사에 이르기까지 성직자들 대다수가 방탕에 기울었음을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 작가들 중 얘기하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었다. 

  성직자 계급의 부패는 종교개혁을 야기했고, 그건 또 반종교개혁을 초래했다. 트렌토 공의회[각주:3] 이후 스캔들을 일으키는 교황은 점점 더 흔치 않게 됐고, 마침내 17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그런 품종이 완전히 사라졌다. 귀족 가문의 작은아들이라는 사실이 승진의 유일한 장점이던 주교들도 이제는 행실을 바르게 하려 들었다. 하급 사제단의 도덕성을 이제 교회 권력이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시했고, 그 권력은 예수회나 오라토리오회[각주:4] 같이 종교적 순수성의 맹렬한 감시자들이 내부에서 주시했다. 

 

  신교도들과 중견 영주들과 지역 자치권을 억압하는 대가로 왕들이 가톨릭교회를 중앙권력 강화 도구로 썼던 프랑스에서는 성직자들의 존경받는 태도가 왕실의 큰 관심사였다. 민중은 추잡한 행위로 오점 남긴 성직자들의 교회를 우러르지 않을 터이다. 

 

  한데 “짐이 곧 국가니라” 하는 식의 법이 지배하던 나라에서는 교회를 두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즉, 교회에 대한 불경은 곧 국왕에 대한 불경이다. 피에르 베일이 자신의 기념비적인 <사전>에 덧붙인 무수한 주석들 중 하나에서 이렇게 쓴다.[각주:5]  

 

   「언젠가 어떤 신사가 베네치아 사제단의 끝도 없는 방탕에 대해 늘어놓기에, 종교와 국가의 명예를 모독하는 그런 난잡한 행위를 공화국 원로원이 어찌 보고만 있느냐고 내가 물었다. 

  그가 대답하길, 권력은 공익 차원에서 이 방종을 활용한다고 했다. 또 이 수수께끼를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덧달았다. 원로원은 성직자와 수도사들을 민중이 최대한 경멸하기를 내심 바라고 좋아한다오. 그런 상태라야 그들이 민중을 선동해 권력에 저항하기 어려워지니까. 그가 하는 말로는 또 군주가 예수회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품위를 지키기 때문에, 그런 고로 하층 계급의 존경을 더 받고, 그래서 반정부적인 선동을 일으킬 힘을 더 갖기 때문이라고 했다.」 

 

  17세기 내내 프랑스에서 성직자들의 난잡한 행위에 대한 국가 정책은 베네치아 원로원이 추구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베네치아 원로원은 교회의 과도한 영향력을 경계했기 때문에 성직자들이 돼지처럼 행동하는 걸 보며 좋아하고 존경받는 예수회 수사들을 의심쩍게 보았다. 

  정치적으로 강력하며 단호하게 갈리아주의에 입각한 프랑스 군주제는 로마교황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며 교회를 아주 유용한 신민 지배 메커니즘으로 봤다.[각주:6] 그래서 왕들은 예수회 수사들을 비호하며 세속 사제단의 무절제를 근절하느라 부심했다. 적어도, 그런 현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저자 주 ☞ 기술하는 시기 처음에는...  

「트렌토 법규가 교회에 전혀 작용하지 못했다. 1560년 왕의 자문회의가 열렸는데… 빈의 주교인 샤를 마리약이 밝히길, 교회 규율이 다 사라지고 사제단이 이렇게 추잡하게 행동하며 스캔들이 이렇게 자주 일어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들이 독일인들을 흉내 내 성직자들로 회합 만드는 풍습을 도입했고 개중에 내연녀를 두지 않은 이들에게는 소정의 벌금을 물린다고…」

  「그런 면으로 보자면 트렌토의 신부들은 고위 성직자들의 도덕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교회 재판 기록을 연구한 결과,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사회적 도덕이 점차 커짐에 따라 성직자들 쪽에서도 몰염치한 냉소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밖으로 새지 않고 스캔들을 피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다. 성직자가 내연녀와 함께 산다면 반드시 누이나 질녀로 둔갑시켰다. 1668년 법규에 따르면 미니모회 수도사들은 ‘정욕의 유혹에 빠지거나 절취 행위를 하기 전에 수도사 옷을 벗었다면’ 교회에서 파문되지는 않는다. 

  이 시기 내내 사제단에게 점잖은 처신을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과민할 정도로 강했다. 예를 들어, 1624년 성직자 르네 소피는 어떤 치안판사 아내와 간통 현장에서 적발됐다. 그것도 바로 교회 안에서. 경찰 책임자 르망사가 죄인에게 교수형을 내렸다. 선고가 과하다고 르네가 파리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고등법원은 그 선고를 산 채로 화형에 처하는 것으로 바꾸었다.][각주:7] 

 

  새 주임신부가 교회 조직에서 입신하기 시작한 때는 성직자의 스캔들이 여전히 잦기는 했어도 이미 권력이 극도로 용인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랑디에와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더 젊은 장 자크 부샤르가 17세기 자신의 소년기와 청년기 기록을 후손에게 남겼다.[각주:8] 이 문건은 객관적인 임상 관찰을 담고 양심의 가책과 도덕적 판단 등에서 완전히 자유롭기에 19세기 학자들이 소수 전문가를 위해서만 발행할 수 있었다. 그것도 작자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행을 저질렀다고 확실히 강조하면서! 

  하지만 하벨록 엘리스, 크라프트에빙, 허쉬펠트, 킨제이의 책들을 읽으며 자란 세대에게 부샤르의 기록은 더 이상 분개할 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각주:9] 그럼에도 충격을 주지는 않지만 여전히 경악할 만하다. 루이 13세의 신민이 믿기 어려운 섹스 행태를 갖가지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묘사하는 것을 읽으면 참으로 놀랍다. 마치 오늘날 여대생이 인류학 리포트를 쓰거나 정신과 의사가 질환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르네 데카르트는 부샤르보다 열 살 더 많다. 하지만 이 위대한 철학자가 아파서 울부짖는 ‘오토마톤’들을 가지고, 천박한 명칭으로는 고양이며 개라 불리는 것들을 상대로, 해부 실험을 실행하기 훨씬 이전에 부샤르는 제 모친의 하녀를 데리고 이미 심리적, 화학적, 생리적 실험을 다 해냈다. 

  그가 처음 눈길 돌렸을 때 그 처녀는 신을 공경하며 도덕적으로 결백한 사람이었다. 파블로프만큼이나 인내와 날카로운 관찰력을 발휘하면서 부샤르는 이 처녀가 자기를 완전히 믿게끔 꼬드겨 결국 자연철학에 헌신하도록 재조립했다. 그 결과 그녀는 실험 대상이 되기에 기꺼이 동의하고 연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부샤르의 침대 곁탁자 위에는 해부와 의술에 관한 대형서적들이 대여섯 권 놓여 있었다. 밀회 중간에, 혹은 고도로 실험적인 애무를 행하면서, 플로스와 바텔스의 이 기이한 선구자는 <De Generatione 생성>과 페르넬, 페란두스를 읽고 이론과 실제를 아주 꼼꼼하게 비교했다.[각주:10]

   대다수 동시대인들과 달리 그는 앞선 시대 권위자들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렘니우스와 로데리쿠스 카스트로는[각주:11] 몸엣것의 이상하고 놀라운 특성에 대해 분별 있는 생각을 죄다 기술했지만, 부샤르는 이 확언들이 정말 그런지 직접 확인하기 원했다. 연구열에 감염된 하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일련의 실험을 수행하면서 까마득한 옛날부터 의사들과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해온 것을 다 뒤집었다. 

 

  알고 보니… 몸엣것은 풀을 죽이지 않고, 거울을 흐리게 하지 않고, 포도나무 싹을 시들게 하지 않고, 아스팔트를 녹이지 않고 또 칼날에 지워지지 않는 녹을 남기지도 않더라! 

 

  부샤르가 여자 조수이자 실험동물과 혼인을 피하기 위해 황급히 파리를 떠났을 때 생물학은 아주 전도유망한 연구자 하나를 잃었다. 그는 행운의 여신을 찾아서 로마 교황청으로 향했다. 원하는 건 아주 소박했다. 이교도들의 땅에서, 아니면 브르타뉴에서라도, 연간 육칠천 리브르 수입이 있는 작은 성직자 직급을 하나 얻는 것. (연간 6500리브르는 데카르트가 유산을 현명하게 굴려서 얻는 수입. 그건 물론 호화롭지는 못하지만 철학자가 신사처럼 살기에는 넉넉했다.) 

  가련한 부샤르는 결국 성직록을 받지 못했다. 당대에 <Panglossia>라는 글이나 콥트어와 페루어, 일본어를 포함해 마흔여섯 개 언어로 된 시선집의 우스꽝스러운 작자로 알려졌을 뿐인 그는 마흔이 못 돼 죽었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4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3

루덩의 악마들 6편 2

루덩의 악마들 5편 3

루덩의 악마들 4편 4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1. 위그노 (Huguenot) - 칼뱅 사상에 크게 영향 받은, 16-17세기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바시의 학살,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 사건 등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본문으로]
  2. Van Dyck, Anthony (1599–1641) - 플랑드르의 화가. 앤트워프 출신.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뒤 잉글랜드에서 대표적인 궁정화가가 됐다. 초상화,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본문으로]
  3. 루터의 종교개혁 95개조 반박문으로 실추된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되찾고 새로운 개혁을 이루기 위해 열린 회의. 1545년부터 1563년까지 모두 25회 열렸다. [본문으로]
  4. 1575년 로마에서 필립 네리가 설립한 성직자 모임. 필립 네리(1515-1595)는 반종교개혁 운동의 한 기둥. 음악을 신에게 봉사하는 수단 중 하나로 중히 여겼으며, 많은 음악가들이 그가 설립한 오라토리오회에 참여했다. [본문으로]
  5. Bayle (1647-1706) - 네덜란드 출신 프랑스 계몽주의 선구자. 18세기 사상의 실제적 원전. 저술가, 신학자. <역사와 비판 사전> [본문으로]</역사와>
  6. 갈리아주의 (Gallicanism) - 교황의 권위를 강조하는 교황지상주의에 반대하여, 교황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프랑스의 역사적 움직임. 하지만 프랑스 예수회는 교황지상주의를 적극 옹호. [본문으로]
  7. 트렌토 공의회 이후 프랑스 교계 분위기를 다룬 앙리 리의 <대처 금지 역사> 29장 - 저자 주 [본문으로]</대처>
  8. Bouchard (1606-1641) - 프랑스 작가. 루이 13세 비서관의 아들. 에로 문학과 고백록. [본문으로]
  9. 하벨록 (Havelock Ellis, 1859-1939) - 영국의 의사, 심리학자, 사회평론가, 성과학자. 크라프트에빙 (Krafft-Ebing, 1840-1902) - 정신신경질환 교수. 저서 <성적인 정신병 psychopathia sexualis> (1886) 허시펠트 (Hirschfeld, 1868-1935) - 유대계 독일 의사, 성과학자. [본문으로]</성적인>
  10. 플로스 (Hermann Ploss, 1819-1885) - 독일 인류학자, 민속학자, 부인병학자. 바텔스 (Johann Bartels, 1769-1836) - 독일의, 나중에 러시아의 수학자, 교육가. 페르넬 (Fernel, 1497–1558) - 프랑스 내과의. 신체 기능 연구를 묘사하기 위해 ‘생리학’, ‘병리학’이라는 용어를 도입. 페르넬리우스라는 달 분화구 명칭은 그의 라틴어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 [본문으로]
  11. 렘니우스 (Levinus Lemnius, 1505-1568) - 덴마크 의사, 저술가. 수태와 출산의 비밀 연구. 로데리쿠스 카스트로 (Rodericus a Castro) - 부인 질환 연구서 저자. [본문으로]
728x90
728x90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1

 

이름난 풍자 작가요 나중에 주교가 된 조셉 홀[각주:1]이 1605년 처음으로 플랑드르[각주:2] 지역을 방문했다. 

「여로에서 우리는 파괴된 교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도처에 남은 거친 잔해들이 신앙과 더불어 동족상쟁 역시 처절했음을 여행자에게 말해준다. 오오, 전쟁의 참혹한 흔적이여! 그러나 교회들은 무너졌다 해도 (경탄스럽게) 도처에서 예수회 칼리지들이 나타난다. 내가 들른 도시마다 이 학교들이 이미 문을 열었거나 세워지는 중이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연 정책이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이 사람들은 저주를 가장 많이 받는 곳에서 (여우처럼) 일을 가장 잘 꾸려 간다. 저희 진영에서 극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모든 이들한테 미움을 받고 우리의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이 독한 잡초들은 쑥쑥 자란다.」   

 

칼리지들은 아주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바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 홀과 그 세대가 잘 알고 있었듯이 예수회원들은 이른바 ‘정책’을 가장 중시했다. 예수회가 학교를 계속 세운 까닭은 적대자며 자유사상가며 프로테스탄트들에 맞서 로마가톨릭교회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예수회원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쳐 교회 이익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계층을 만들고자 했다.[각주:3]

 

이런 현상을 체루티가 아주 잘 표현했다. 「우리가 다리를 곧게 펴 주려고 갓난애 아랫도리를 천으로 동여매듯이, 사람을 평생 건강하고 유복한 상태로 만들려면 유년기부터 의지를 동여매야 한다.」 (이 언급에 줄 미슐레[각주:4]가 극도로 분개했다.) 

교육자들 의도야 정말 단호했지만 그 뜻을 알리고 지도하는 방법이 미흡했다. 학생들 의지를 천으로 동여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최우수 생도들 중 몇몇은 칼리지를 졸업하자 열렬한 자유사상가가 됐고, 장 라바디[각주:5]처럼 프로테스탄트가 된 이들도 있었다. ‘정책’이 관련된 이상 교육 체계는 설립자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다중은 정략적 측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저희 자식들이 젊은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것을 다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중요할 뿐이었다. 이런 요구에 예수회원들이 다른 대다수 교육 공급자들보다 더 잘 부응했다.

 

「예수회 지붕 아래서 보낸 일곱 해 동안 나는 무엇을 눈여겨보았던가? 온건하고 근면하고 절도 있는 생활. 예수회 수사들은 하루 모든 시간을 우리들 교육에, 혹은 그들 서원을 엄격히 실행하는 데 바쳤다. 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나처럼 그들 밑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이 증언하기를 바란다.」  

볼테르가 그렇게 적었다. 이 말은 예수회 교수법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와 동시에, 볼테르의 생애 자체는 학습을 ‘정책’이라는 목표에 맞추려고 한 교육자들의 시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한층 더 확실하게 입증한다.[각주:6]   

 

볼테르가 칼리지에서 공부하던 때, 예수회 학교들은 이미 잘 알려지고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 이전 교육 현장에서는 칼리지의 많은 장점이 정말 혁명적이었다. 대다수 교육자들이 회초리 휘두르는 능력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이던 그 시기에, 예수회원들의 교육 방식은 제법 인도적이었으며 교수진도 신중하게 선별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여기서는 고급 라틴어를 가르치고 광학과 지리와 수학, 극작 분야에서 최신의 성취를 들려주고 (그들의 학기 말 연극 공연은 유명했다), 좋은 예절과 교회에 대한 존중과 (적어도 프랑스에서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는) 국왕 권위에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회 칼리지들이 전형적인 상류 부유층 취향에 맞았다. 즉, 애지중지하는 아이가 구식 교육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다고 마음먹은 어머니들, 그 자신이 학식을 갖추고 있으며 건전한 교리와 키케로 식 달변에 관심이 큰 숙부들, 또 그 자신이 애국심 있는 관리로서 군주제 원칙을 인정하거나 미리 앞을 내다보는 부르주아로서 예수회가 폭넓은 연줄로 제자들한테 좋은 직무나 궁정의 한 자리, 교회 명예직 따위를 찾아주겠지 기대한 아버지들… 바로 그들 입맛에 딱 맞은 것이다. 

 

예를 들어, 루앙 시의 코르네유 부부 같은 이들을 보자. 가장은 왕실 고문변호인이고 아내는 변호사 딸인 마르트 르 프장. 어린 아들 피에르가 특출한 재주를 보이는데, 어떻게 칼리지에 보내지 않을 수 있겠나?[각주:7] 

혹은 렌 시의회 고문인 조아킴 데카르트를 보자. 그는 1604년 총명한 막내아들 르네를 여덟 살밖에 안 됐지만 공부시키느라 라 플레시로 데려간다.[각주:8] 얼마 전 국왕의 승인을 받아 문을 연 예수회 칼리지로. 

 

또 거의 비슷한 시기, 생트 시에 학식 있는 참사회 위원인 그랑디에가 있다. 그에게 조카가 있으니, 비록 데카르트나 코르네유 같이 부유한 귀족은 못 되더라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인 또 다른 법률가의 아들이다. 우르뱅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이제 열네 살이며 지극히 영리하다.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생트 인근에는 보르도의 예수회 칼리지보다 더 좋은 학교가 없었다. 

이 유명한 배움터에는 소년들을 위한 중등 과정과 우아한 예술을 가르치는 칼리지, 신학교, 사제 임명 뒤에도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형제들을 위한 심화 과정이 다 있었다. 조숙하고 영리한 우르뱅 그랑디에가 여기서 십년을 넘게 보냈다. 중등학생에서 신학 대학생으로, 그리고 나이 스물다섯 된 1615년 이후 예수회 수련수사로… 그렇긴 해도 수도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예수회 엄한 규율을 따를 소명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니야, 수도회 안이 아니라 수도원 담장 밖에서 교구 신부로 커리어를 쌓고 싶어. 재주가 뛰어난데다가 막강한 교회 조직의 비호를 받는 사람은 이 직업에서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어떤 고관대작의 종교의식 담당이나 나중에 프랑스 육군원수나 추기경이 될 사람의 영적 카운슬러가 되는 거야. 또 주교 회의나 왕실 공주들 앞에서, 심지어 왕비 면전에서 뛰어난 언변을 과시할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야. 어디 그뿐이랴, 외교 사절이나 고위 행정직, 수입 좋은 명예직, 구미 당기는 불로소득 따위도 가능해. 또 (귀족 출신이 아니기에 확률이 떨어지긴 해도) 운이 좋다면 주교 예모로 머리를 장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생 노년이 화려하게 보장되는 거야. 

 

그의 이력 초기에는 그런 장밋빛 꿈이 다 이뤄질 수 있는 듯싶었다. 신학과 철학을 이태 동안 깊이 연구한 뒤 스물일곱 나이 젊은 그랑디에 신부가 오랜 기간 근면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예수회가 루덩 시에 있는 생피에르 뒤 마르셰 교구라는 중요한 생활 수단을 선사한 것. 같은 후견인들 덕분에 성 십자가 공주 성직자단 교회의 참사회 위원도 됐다. 사다리에 발을 걸쳤으니, 이제 할 일은 올라가는 것만 남았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1

 

  1. 조셉 홀 (Joseph Hall1, 574-1656) - 잉글랜드의 주교, 모럴리스트 문인, 풍자가. 호주가 발견되기 이전 남부 대륙의 환상적인 여행과 거기 풍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다르면서도 같은 세상 mundus alter et idem>(1605)의 저자. 이 책은 여러 모로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전신으로 평가된다. [본문으로]</걸리버></다르면서도>
  2. 플랑드르 - 현재의 벨기에 서부,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서부를 포함하는 지역. [본문으로]
  3. 예수회 - 종교개혁 시기인 1534년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로마가톨릭 수도회. 과격한 전투적 가톨릭 수호 선교기관. 1. 교육에 중점 2. 종교개혁에 대항 3. 세계 선교 등이 주요 목표. [본문으로]
  4. Jules Michelet (1797-1874) - 프랑스의 역사가, 사회평론가. 교회권력 반대자. 역사와 사회, 자연에 관해 아주 주관적인 책을 명료하고 격동적인 언어로 여러 편 썼다. ‘르네상스’ 용어의 창시자. [본문으로]
  5. Jean Labadie (1610-1674) - 프랑스 신학자,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고 경건주의 단체인 라바디파를 만들었다. (경건주의/Pietism - 정통 프로테스탄트에 맞서는 신비주의적 가르침, 보수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특색) [본문으로]
  6. Voltaire (1694-1778) - 프랑스의 작가, 사상가,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자. 18세기 유럽의 전제 정치와 종교적 맹신에 저항하고 진보적 이상을 고취. 비판 정신과 재치, 풍자 같은 프랑스 정서 특유의 자질을 구현한 작품 활동으로 유럽 문명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7. 피에르 코르네유(1606-1684) - 몰리에르,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 [본문으로]
  8.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프랑스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 [본문으로]
728x90
728x90

 

 

  말에 관한 금언  

 

 

1. 글로써는 말을 다 표현 할 수 없고, 말로써는 뜻을 다 표현 할 수 없다. - 주역 개사전- 

2. 한 마디 말이 들어 맞지 않으면 천 마디 말을 더 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중심 되는 한 마디를 삼가서 해야 한다. -채근담 

 

3.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 -사디 


말에 관한 금언 a wise sayings

 

4. 인간에겐 입이 하나 귀가 둘이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 -탈무드

5. 질병은 입을 좇아 들어가고 화근은 입을 좇아 나온다. -태평어람

6.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이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 편안히 간 곳마다 튼튼하다. -전당시

 

7. 말은 마음의 초상이다. -J.레이 

8. 누구도 자기가 하는 말이 다 뜻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뜻하는 바를 모두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H.애덤즈

9.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 한다는 것은 별개이다. -소포클레스 

 

10. 말에도 아름다운 꽃처럼 색깔이 깃들어 있다. -E.리스

11. 가혹하고 부정적 뜻이 함축된 증상의 말들을 피하라. -데이비드 J. 리버만 

12.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말의 근본이다. -순자

 

13. 강한 음악적 요소가 말 안에 있다. (신음, 질문, 예고, 동경... 억양. 수많은 몸) -비트겐슈타

14.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비트겐슈타인 

 

15. 내가 이것을 우리 스승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지 않고 내 모국어인 프랑스 말로 쓰는 이유는, 아주 순수한 천부적 이성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고서만을 믿는 인사들보다 더 잘 내 의견을 판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

 

16. 단어나 언어는, 그것이 쓰이거나 언급될 때, 내 생각의 메커니즘 속에서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생각에서 원소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유형의 실체들이야말로 명백한 기호이며, 임의로 재생되거나 결합될 수 있는 다소 뚜렷한 이미지다. -아인슈타인

 

17. 올바른 어휘를 선택하면, 상황에 따른 상대방의 반발을 실제로 감소시킬 수 있다. -데이비드 J. 리버만

18. 언어란 사고의 토대이고, 사고는 감정의 영역이다. -데이비드 J. 리버만 

19. 말 뒤에 있는 의미는 보통 언어 소통에서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 

 

20. 맥박은 앓고 있는 병을 알려 주는 언어이다. - 세르반테스 

21. 모든 철학은 언어비평(言語批評)이다. - 비트겐슈타인 

22. 모든 철학적 문제는 언어가 휴가 갔을 때만 생겨난다. -비트겐슈타인 

 

23. 문장은 거기에 쓰는 언어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평소에 쓰지 않는 말이나 동료들끼리만 통하는 표현은 배가 암초를 피하는 것처럼 피해야 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4. 말은 스스로 흘러가고 말로부터 행위로, 행위로부터 말로의 전이 과정이 이뤄진다. -비트겐슈타인 

25. 말에는 해야 할 순서가 있는 것이다. -주역 간괘 

26. 본능은 첫 번째이고 이성은 두 번째이다. 언어 놀이 안에 비로소 그 이유가 여럿 있다. -비트겐슈타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우리가 쓰는 '말'에 관한 약간의 정보

내 생각과 관점을 바꾸기 Reframing 31

무의미한 생각과 부정적 감정의 용해 24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도웰 교수의 머리 27장 (최종)

수다쟁이 어린 딸

(49) 호칭과 지칭

(61) 소통에서 삼가야 할 표현들

말로 하는 소통 스킬

생각과 말

말의 비언어적 요소

(75) 목소리 높여 말하기

(74) 조곤조곤 말하기

퍼블릭 스피킹(64) 간결하고 명료하게

(48) 계단 에스프리

(47) 동어 반복

(46) 정중한 말씨

대화에서 피해야 할 표현들

유념해야 할 일상 메타 표현

소통 법칙 14가지 (1. 오디오) -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파스칼

 

 

728x90

'Public Speaking > 언어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 짧게 말해~"  (0) 2019.08.19
인간의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0) 2019.05.29
신언서판에 대해  (0) 2019.04.05
입말 분석  (0) 2019.03.25
입말의 특질  (0) 2019.03.25
728x90

 

 목소리 생산에서 

 정신물리학적 요소는 어떻게 작동하나  

 

- 임펄스, 호흡기관, 음성기관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나? 

물리적 자극과 의식 변화에 일정한 관계가 있을까? 

 

페히너 주관적 인식

피험자들의 주관적 인식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해 페히너가 이용한 실험적 중량 (1856)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양적으로 측정,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물리적 자극과 의식 변화의 관계를 법칙으로 밝히려고, 독일 과학자 페히너(Fechner, G. T.)가 제창.

 

*정신물리학 
- 심리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 더 구체적으로는 자극과 그 결과로 생기는 감각 사이의 정량적 관계를 취급하는 학문. 몇 가지 감각에 대해 자극의 크기를 물리적 척도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감각이나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자극의 크기를 결정함으로써 다양한 감각에 대한 절대 자극역치(刺戟閾置 stimulus limen)나 감각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을 상술할 수 있다. 

더 어렵지만 최대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최소 자극의 크기, 즉 종단역치도 결정한다.
종단역치란 물리척도의 한 점으로, 이 점을 넘어서면 자극이 증가해도 감각의 증가를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제한적인 자극값이 결정되고, 이 자극값 사이에서는 자극 강도가 변하면 감각도 따라 변한다. 

 

독일의 과학자이며 철학자 구스타프 페히너가 창시.

정신물리학이라는 용어 만들고, 몇몇 기초적 방법을 창안, 정교한 정신물리학 실험 수행.

저서 〈정신물리학의 요소 Elemente der Psychophysik〉(1860)는 정신물리학뿐 아니라 실험심리학의 시초.

자극과 그에 따른 감각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고 여겼다.  

 

독일 물리학자 에른스트 베버는

감각에 최소한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자극의 크기 변화량이

항상 전체 자극에 대해 거의 일정한 비율을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

베버의 법칙 - 감각기가 자극의 세기 변화를 감지하려면 처음 자극과 나중 자극의 차이가 항상 등비로 증가해야 된다. 

 

(페히너(1801-87): 독일의 물리학자, 심리학자. <심신 평행론>을 제창한 실험 심리학의 원조)

 

베버의 법칙을 알게 된 페히너는 자극과 관련된 감각을 측정하기 위해 이를 이용. 

페히너-베버 법칙 
= 인간의 감각량과 이것이 생기기 위한 자극량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법칙. 
이 법칙은 감각의 크기가 산술적으로 증가한다면 자극의 크기는 반드시 기하학적으로 증가해야 한다는 간단한 관계를 보여. 

 

페히너 방식의 정신물리학의 자료와 이론은 정신물리학적 역치를 사정하는 방법에 의문을 던진 미국의 이론심리학자 S. S. 스티븐스의 신호인지이론(signal detectability theory)에 의해 도전 받았다. 

미국 이론심리학자 유진 갤런터는 1974년 "신호인지이론의 실험에는 지각하는 사건들에 대한 판단에 크게 영향을 주는 비지각적인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실험들이 포함된다"고 했다. 

 

현대 정신물리학의 또 다른 방향은 페히너 측정이론에 대한 실험상의 반대.

정신물리학자들은 판별해 내는 판단을 기초로 감각척도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직접적인 척도실험에 의해 정신적 크기가 측정될 수 있다고 주장. 

정신물리학적 방법은 오늘날 감각 연구, 담배, 향수, 알코올 음료 등과 같은 제품의 비교와 평가와 같은 실제적인 분야, 그리고 심리 검사 및 인성 검사 등의 분야에서 이용된다. 

 

데카르트 자극

(뜨거운 불길에 닿았을 때 발의 지각신경을 통해 자극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데카르트가 묘사, 1664)

 

관련 글: 

딕션 훈련 깐 콩깍지

목소리 발성 메커니즘

목소리 워밍업 위한 실습 종합

언어 호흡

척추와 목소리

목소리 기구와 작동

목소리 건드리기

긴장과 목소리

말더듬 치유 실습 (3)

목소리, 소통, 스피치 관련 방송 몰아 듣기

호흡 단계의 의미

호흡과 목소리 울림

날숨 키우기

목소리 직업

기관(숨통)의 공명막

목소리가 잘 안 울려?

목소리 경로 (Voice channel)

발성에 관한 이론

"이게 내 진짜 목소리란 말이야?"

교사들 목소리!

728x90

'Natural Voice > 발성, 공명, 딕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소리 기구와 작동  (0) 2019.03.24
목소리 건드리기  (0) 2019.03.24
조음기관  (0) 2019.03.20
딕션 훈련 깐 콩깍지  (0) 2019.03.19
정준영 '야한 동영상'과 연예인  (0) 2019.03.18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