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 상황에서…
의식이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에서 현재로 자연스레 이동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과거와 미래를 지니는 인격이 잠깐 물러나면서 강렬하게 의식하는 존재가 들어서는데, 이건 아주 고요하면서도 아주 기민한 상태이다. 그 어떤 반응이 필요하다면 이 의식 상태에서 나온다.
어떤 이들이 등반이나 자동차 경주 같이 위험한 활동을 즐기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혹시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활동이 그들을 <지금> 순간으로… 시간에서 자유롭고 문제에서 자유롭고 생각에서 자유롭고 성격 부담에서 자유로우며 살아 있다는 느낌이 팽팽한 상태로 밀어 넣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실재하는 상태에서 한순간이라도 미끄러지거나 벗어나면 죽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데, 그들이 그런 상태에 들어서기 위해 특정 활동에 의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프스 험준한 고봉을 오르지 않고도 그 상태로 들어설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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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갖가지 유파의 영성 대가들은 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로 <지금> 순간을 언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걸 교회에서도 사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 하나는 분명하다.
교회에 나간다면 이런 복음서 구절을 들을 것이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니.” (마태 6:34)
혹은 “쟁기를 손에 쥐고 뒤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으리.” (누가 9:62)
아니면,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시간을 초월한 <지금> 속에서 편안히 살며 신의 은총을 듬뿍 받는 아름다운 꽃들에 관한 구절을 들을 수 있다.
한데, 이런 가르침의 심오하고 근본적인 본질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야 할 운명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적으로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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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의 모든 본질은 <지금> 순간이라는 면도날 끝을 따라 걷는 것… 그 어떤 문제든 그 어떤 고통이든 ‘본질상 내가 아닌 것은 그 무엇이든’ 우리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하고 완전하게 현존하는 것이다.
<지금> 순간에서는, (과거나 미래 같은) 시간이 없을 때는, 우리네 문제라는 것이 죄다 사라진다.
고통 받는 데는 시간이란 개념이 필요하다.
고통은 <지금> 순간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임제종의 한 고승은 제자들이 시간에서 주의를 돌리게 하려고 종종 손가락을 치켜들고 느긋하게 묻곤 했다.
“이 순간에 무엇이 부족한가?”
이건 마인드 수준의 답을 요하지 않는 강렬한 질문이야.
이 질문은 <지금> 순간에 주의를 집중케 하려고 고안한 것이다.
선의 전통에서 비슷한 물음에 또 이런 게 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지금> 순간은 이슬람의 신비한 분파인 수피즘의 가르침에서도 중심을 차지한다. 수피교도들은 “수피는 지금 시간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위대한 시인이자 수피교의 설법자인 루미는 “과거와 미래가 우리 시야에서 신을 가리니, 그 둘을 불태우라”고 선언한다.
13세기의 영성 대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보기 좋게 요약했다.
“시간은 빛이 우리한테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신에게 다가가는 길에서 시간보다 더 큰 장애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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