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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카를손이 천막 놀이를 하다  



    식구들은 늘 식당 벽난로 곁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오늘 저녁도 그랬어요. 바깥에는 화창한 봄기운이 따스하고 보리수나무들이 벌써 작고 끈끈한 녹색 나뭇잎들을 달고 있었지만 말이지요. 

    꼬맹이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 대신 난로에서 이글대는 불꽃을 앞에 두고 엄마와 아빠, 보쎄 형, 베탄 누나와 함께 앉아 있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 엄마, 잠깐만 돌아서 볼래요? 

    엄마가 벽난로 앞 작은 탁자에 차관이 담긴 쟁반을 내려놓을 때 꼬맹이가 부탁했습니다. 

    - 왜 그러니?

    - 엄마가 안 보는 새에 각설탕을 한 개 갉아먹으려고 그래.

    엄마가 기꺼이 허락했습니다. 어떡하든 꼬맹이를 달래 주어야 했거든요. 아이는 카를손이 급히 사라진 것 때문에 아주 울적했어요. 

    사실, 그렇게 행동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블록으로 만든 탑만 덜렁 남겨놓고, 그것도 고기완자를 꼭대기에 얹어놓고 갑자기 사라지다니 말이에요. 


    꼬맹이가 벽난로 곁 좋아하는 자리에, 불꽃과 아주 가까운 자리에 앉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커피와 차를 마시는 순간이 아마도 하루 중 가장 유쾌한 시간일 겁니다. 이때는 엄마와 아빠하고 평온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꼬맹이가 하는 얘기를 차근차근 다 들어주곤 했어요. 다른 시간에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보쎄 형과 베탄 누나가 서로 약 올리면서 ‘무턱대고 통째로 암기하는 방법’에 대해 수다 떠는 걸 듣는 것도 재미났어요. ‘통째로 암기하기’란 1학년인 꼬맹이한테 가장 어려운 수업 준비 방법이었습니다. 

    꼬맹이도 학교생활을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엄마와 아빠 외에는 꼬맹이 얘기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쎄 형과 베탄 누나는 꼬맹이 얘기에 빙긋빙긋 웃기만 할 뿐이고, 그럴 때면 꼬맹이는 입을 꾹 다물곤 했어요. 형과 누나가 그렇게 깔보듯이 픽픽 웃는데 왜 굳이 입을 놀려야 하나 싶은 거지요. 

    그런 면이 있기는 해도, 보쎄 형과 베탄 누나 역시 꼬맹이를 놀리거나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왜냐하면, 꼬맹이 역시 형과 누나를 보면서 약 올리듯이 웃음을 짓곤 했으니까요. 꼬맹이는 사람을 놀리는 재주가 뛰어났어요. 보쎄 같은 형과 베탄 같은 누나가 있다 보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 그래, 꼬맹이, 숙제는 다 끝냈니? - 엄마가 물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꼬맹이가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그러나 각설탕을 한 개 갉아먹도록 해준 것이 고마워서 꼬맹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대화를 씩씩하게 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물론, 다 했어. - 꼬맹이가 얼굴을 찌푸린 채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카를손 생각뿐이었어요. 

    ‘카를손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공부 얘기를 꺼내다니, 이 사람들은 어찌 이리 답답할까!’ 

    - 어떤 숙제를 내주었는데? - 이번에는 아빠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꼬맹이는 마침내 화가 났습니다. 공부 얘기가 오늘 저녁 끝이 없을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이 사람들은 공부 얘기만 하려고 지금 벽난로 곁에 이렇게 편안히 앉아 있는 건가!

    - 알파벳 쓰기야. - 꼬맹이가 후루룩 대답했습니다. - 아주 긴 알파벳인데, 난 그걸 알아. 먼저 А가 나온 뒤 다른 철자들이 쭉 이어져.

    꼬맹이가 다시 각설탕을 한 개 쥐고 또 카를손을 생각했습니다. 

    ‘식구들은 내키는 대로 떠들라고 해, 난 카를손만 생각할 거야.’

    꼬맹이 생각을 베탄 누나가 깼습니다. 


    - 왜 그래, 꼬맹이, 내 말을 안 듣는 거야? 오백 원을 벌고 싶지 않니??

    꼬맹이는 처음에 누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오백 원을 벌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걸 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 오백 원은 푼돈이야. - 꼬맹이가 똑 부러지게 대꾸했습니다. - 지금은 물가가 비싸잖아…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예를 들어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 값이 얼마 하지?

    - 천 원 한다고 생각해. - 베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어요.

    - 바로 그거야. 누나도 잘 알다시피, 오백 원은 너무 적어.

    - 근데 넌 지금 내가 하려는 얘기가 뭔지도 모르잖니. - 베탄이 말을 이었습니다. - 꼬맹이, 네가 해야 할 일은 없어. 그냥 뭔가를 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 내가 뭘 하지 않아야 된다는 거야?

    - 저녁 내내 식당 문턱을 넘어오지 않는 것.

    - 베탄의 새 남자친구 펠레가 온단 말이야. - 보쎄 형이 끼어들었습니다.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 알겠어, 식구들이 다 교묘하게 계산한 거야. 엄마와 아빠는 영화관에 가고, 보쎄 형은 축구경기 보러 가고, 베탄 누나는 펠레와 식당에서 저녁 내내 비둘기처럼 사랑을 속삭이겠단 말이로군. 그리고 나만 내 방으로 쫓겨나는 거야, 그것도 오백 원이라는 하찮은 보상을 받고… 바로 이게 식구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야!


    - 누나 새 남자친구 귀는 어떻게 생겼지? 이전 남자친구처럼 그렇게 축 늘어졌어?

    이건 베탄을 골려 주려고 일부러 흘린 말이었습니다.

    - 들었어요, 엄마? - 베탄이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 내가 왜 꼬맹이를 식당으로 못 들어오게 하려는지 엄마도 이해할 거야. 나를 만나러 오는 친구들이 저 꼬맹이 때문에 다 뒷걸음친단 말이에요!

    - 꼬맹이가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다. 

    엄마가 썩 자신 없는 투로 말했어요. 엄마는 아이들이 다투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 아니, 그럴 거야, 분명히 그럴 거야! - 베탄이 제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 저 애가 클라스를 어떻게 내쫓았는지 기억 못해요? 저 애는 클라스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안 돼, 베탄 누나, 귀가 저렇게 생겨먹어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하고 말했단 말이에요. 그런 말을 듣고 클라스가 또 우리 집에 오겠어요?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 꼬맹이가 카를손 말투를 흉내 냈습니다. - 난 내 방에서 조용히 있겠어, 그것도 돈 한 푼 안 받고 말이야. 식구들이 나를 보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돈까지 들일 필요도 없어.

    - 아, 좋은 생각이다. - 베탄이 다짐을 받으려 들었어요. - 그렇다면 저녁 내내 여기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맹세해라.

    - 맹세하지! - 꼬맹이가 대꾸했습니다. - 나한테는 펠레 같은 누나 남자친구들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만 알아 둬. 그 사람들을 안 볼 수만 있다면 오히려 내가 누나한테 오백 원을 줄 수도 있어.


    다들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마무리한 뒤 곧 엄마는 아빠와 극장에 갔고, 보쎄 형은 스타디움으로 달려갔습니다. 

    꼬맹이가 자기 방으로 왔습니다. 그것도 돈 한 푼 안 받고 말이지요. 

자기 방에 돌아온 꼬맹이가 잠시 뒤 방문을 열어 보다.

    얼마 뒤에 방문을 열자 식당 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어요. 베탄 누나가 남자친구라고 하는 펠레와 수다를 떨고 있는 겁니다. 꼬맹이가 식당 쪽으로 귀를 기울여봤지만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창문으로 다가가서 어둠이 덮인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터와 구닐라가 놀고 있지는 않나 싶어 거리를 내려다봤어요. 건물 현관 부근에서 사내애들이 떠들며 장난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 외에 거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뒤엉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어요. 그걸 꼬맹이가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싸움은 곧 끝났고, 꼬맹이는 다시 심심하게 됐습니다.


    바로 그때 기묘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윙윙 작은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그리고 일 분 지나서 카를손이 창문으로 날아들어 왔습니다. 

    - 안녕, 꼬맹이! - 카를손이 느긋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 안녕, 카를손!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 뭐라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 넌 내가 엄마, 아빠한테 소개하려고 한 순간에 사라졌잖아. 왜 말도 없이 달아난 거지?

    그 말에 카를손은 화가 난 듯했어요. 허리에 양손을 척 걸치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 내 평생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 그렇다면, 뭐야, 나는 내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피지도 못한다는 거냐? 주인은 자기 집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거야. 내가 집안일을 해야 하는 순간에 네 부모님이 나하고 인사 나누기로 한 것이 내 잘못이야? - 그러면서 방안을 둘러봤습니다. - 근데 내 탑은 어디 갔냐? 누가 내 멋진 탑을 부순 거야? 내 고기 완자는 어디 있어? 


    꼬맹이가 당황하여 쩔쩔맸습니다.

    - 난… 난, 네가 돌아올 줄 몰랐어.

    - 오호, 그렇군! - 카를손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가는 건축가가 탑을 세우는데,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둘레에 담장은 누가 세울 거야? 탑이 영원히 서 있도록 누가 지켜볼 건데?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군!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건 완전히 거꾸로 됐다. 탑을 부수고 깨고, 게다가 고기 완자를 먹어 치우고 말이야! 


고기완자가 사라졌다고 삐친 카를손


    - 하찮은 거야. - 꼬맹이가 대범하게 말했습니다. - 일상적인 일이야! - 그러고는 카를손이 하는 것처럼 손을 내저었어요. - 때로는 낙심할 경우도 있게 마련이야!..    카를손이 한 옆으로 물러나서 낮은 의자에 앉았어요. 볼이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 허, 말 하나는 그럴싸하게 하는구나! - 카를손이 화난 목소리로 투덜댔습니다. - 부수는 거야 아주 쉽지. 부수고 나서 “일상적인 일이야, 낙담할 필요 없어” 하고 말하다니! 이 가엾은 작은 손으로 탑을 세운 내 심정은 어떨 것 같으냐!

    그러면서 통통한 손을 꼬맹이 코앞에 바짝 들이밀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작은 의자에 앉았는데, 볼이 더 부어올라서 웅얼거렸습니다. 

    - 난 너무 화가 나. 그냥 미칠 것만 같아!

    꼬맹이가 몹시 당황했어요. 어찌해야 좋을지 모른 체 서 있기만 했어요. 침묵이 오래 갔습니다.


    마침내 카를손이 우울한 목소리로 내뱉었습니다. 

    - 만약 뭔가 작은 선물이라도 받게 되면 난 다시 명랑해질 거야. 사실,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나한테 무슨 선물을 한다면 좀 명랑해질 수 있을 텐데…

    꼬맹이가 자기 책상으로 달려가서 소중한 물건들이 들어 있는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아둔 우표, 여러 빛깔의 조약돌들, 색연필, 주석 병정들… 

    거기에는 작은 손전등도 있었어요. 그건 꼬맹이가 아주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 너한테 이걸 선사하면 될까?

    카를손이 손전등을 재빨리 훑어보더니 금방 활기를 띠었습니다. 

    - 그래, 바로 그거야, 내 기분을 바꾸려면 그런 게 필요하다. 물론 내 탑이 훨씬 더 좋지만, 그 손전등을 준다면 좀 명랑해지도록 노력해 보겠다.

    - 그렇다면, 자, 가져.

    - 불은 들어오는 거냐? - 카를손이 손전등 단추를 누르면서 의심쩍게 물었어요. 

    그러고는 “만세! 켜지는구나!” 좋아서 소리를 지르는데, 두 눈에도 불이 반짝 켜졌습니다. 

    - 어두운 가을 저녁 내 작은집으로 돌아갈 때 이 손전등을 켜야겠다. 깜깜한데 가스 배관 같은 것들 사이에서 이제 더 이상 헤매지 않을 거다. - 카를손이 손전등을 쓰다듬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꼬맹이는 아주 기뻤어요. 꼬맹이가 꿈꾸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즉, 한 번만이라도 카를손과 함께 지붕 위를 산책하고 이 손전등이 어둠 속에서 길 밝히는 걸 보는 겁니다.


    - 됐어, 꼬맹이, 난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와 아빠를 불러라, 인사 나누게.

    - 영화관에 가셨어.

    - 나를 만나는 대신 영화관에 갔다고? - 카를손이 놀랐어요. 

    - 그래, 다들 외출했어. 집에는 베탄 누나하고 새 남자친구만 있어. 둘은 지금 식당에 있는데, 난 거기로 가면 안 돼.

    - 무슨 소리냐! - 카를손이 펄쩍 뛰었습니다. - 네가 원하는 곳에 갈 수가 없다고? 흠, 우린 그런 걸 못 참지. 가자!..

    - 하지만 난 맹세까지 했는데…

    - 허어, 맹세 따위야 나도 했다. - 카를손이 말을 가로챘습니다. - 뭔가 옳지 못한 일을 보면 즉시 독수리처럼 달려들겠다고 말이야… 그러니, 지금도 달려들 거다. - 그러면서 꼬맹이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습니다. - 근데, 뭘 약속한 거지?

    - 저녁 내내 식당에 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했어.

    - 들어간다고 해도 너를 아무도 못 볼 거야. 말해 봐, 너도 베탄의 새 남자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

    -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보고 싶어! - 꼬맹이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 예전에 누나는 귀가 축 늘어진 남자애하고 사귀었는데, 새 남자친구 귀는 어떤지 정말 보고 싶어.

    - 나도 그 애 귀를 한 번 봐야겠다. - 카를손이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 잠깐! 뭔가 장난을 꾸며야겠어. 세상에서 제일가는 장난꾸러기가 바로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 아니냐. 

    그러고는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다가 욧닛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면서 소리쳤습니다. 


    - 그래, 이거다! 우리한테 필요한 건 바로 욧닛이야. 뭔가 궁리하기 시작하면 내 머리에서는 쓸 만한 게 꼭 떠오르거든…

    - 뭘 궁리했는데? - 꼬맹이가 물었습니다. 

    - 넌 저녁 내내 식당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맞아? 하지만 욧닛을 덮어쓰면 네 모습을 아무도 못 볼 거야.

    - 그래… 하지만… - 꼬맹이가 반대하려고 했습니다. 

    - ‘하지만’이라는 말은 하지 마라! - 카를손이 날카롭게 말을 잘랐습니다. - 욧닛을 둘러쓰면 네 모습이 아니라 욧닛만 보이는 거야. 나도 저걸 둘러쓸 거다. 그러면 나도 안 보이는 거지. 물론 베탄한테야 더없이 큰 징벌이겠지만, 거야 자업자득이야. 멍청하니까… 가엾기 짝이 없는 베탄, 날 못 볼 거야!

    카를손이 침대에서 욧닛을 끌어당겨 머리에 덮어쓰고 꼬맹이를 불렀습니다.

    - 이리 와, 얼른 나한테로 와라. 내 천막 안으로 들어와.

    꼬맹이가 카를손이 둘러쓴 욧닛 밑으로 들어갔어요. 둘은 마주보고 좋아서 낄낄댔습니다. 

    - 베탄이 식당에서 천막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았잖아. 사실 사람들은 천막을 보면 기뻐한다. 그것도 불빛이 어른거리는 천막을 보면 더 그렇지! 


    카를손이 손전등을 켰습니다. 

    꼬맹이는 베탄 누나가 천막을 보고 아주 기뻐할 것이라고는 별로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깜깜한 욧닛 속에서 카를손과 나란히 서서 손전등을 비춘다는 것은 숨 막힐 정도로 멋있고 흥미롭게 보였습니다.

    꼬맹이가 한순간 베탄 누나를 괴롭히지 말고 자기 방에서 천막 놀이를 해도 아주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카를손이 그 생각에 크게 반대했습니다.

    - 난 공정하지 못한 것을 가만둘 수 없다. 식당으로 가자, 어떤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꼬맹이와 카를손이 욧닛을 뒤집어쓴 채 손전등을 켜고 주방으로 접근하다


    천막이 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꼬맹이는 카를손 뒤를 따랐어요. 이불 밑에서 작고 통통한 손이 나와서 방문을 조용히 열었습니다. 두툼한 커튼으로 식당과 구분된 현관방으로 천막이 이동했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 카를손이 속삭였습니다.


    천막이 현관방을 소리 없이 지나쳐서 커튼 곁에 멈췄습니다. 베탄과 펠레가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좀 더 잘 들렸지만, 제대로 알아듣기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램프는 꺼져 있었어요. 베탄과 펠레는 어슴푸레한 분위기를 좋아했습니다. 거리에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으로도 충분한 모양입니다. 

    - 더 잘 됐지, 뭐. - 카를손이 속삭였어요. - 내 손전등 불빛이 어둠 속에서는 더 환하게 보일 거야.

    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손전등을 일단 껐습니다. 

    - 우리는 불쑥 나타나는 거야,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깜짝 선물처럼… - 그러면서 카를손이 욧닛 밑에서 킥킥 웃었습니다. 

    천막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커튼을 젖히고 식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베탄과 펠레는 맞은편 벽 앞에 놓인 작은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그들 쪽으로 천막이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 베탄, 너한테 입맞춤할래. - 사내애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꼬맹이 귀에 들렸습니다.  

    ‘저 펠레라는 남자애는 정말 이상해!’

    - 좋아. - 베탄의 목소리가 들리고,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천막이 시커먼 얼룩처럼 소리 없이 마룻바닥을 미끄러졌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소파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소파까지 이제 몇 발짝밖에 남지 않았지만, 베탄과 펠레는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말없이 앉아 있었어요. 

    - 베탄, 이제 네가 나한테 키스해.

    펠레의 수줍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하지만 대답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순간 손전등이 번쩍이면서 잿빛 어둠을 몰아내고 펠레 얼굴을 비췄으니까요. 

    펠레가 벌떡 일어났어요. 베탄이 외마디소리를 내질렀어요. 그와 동시에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현관방 쪽으로 급히 달려가는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환한 빛에 잠시 눈이 부신 베탄과 펠레는 아무 것도 못 봤지만 웃음소리는 들었습니다. 거침없고 환희에 찬 웃음소리가 커튼 뒤에서 들려온 겁니다. 

    - 이건 내 못된 남동생 짓이야. - 베탄이 화를 내며 설명했습니다. - 이제 내가 쫓아가서 혼내 주겠어!


    꼬맹이는 어찌나 웃었는지 아랫배가 다 아플 정도였습니다.

    - 물론, 베탄이 너한테 키스할 거야! - 아랫배를 움켜쥐며 소리쳤어요. - 왜 너한테 키스하지 않겠어? 베탄은 누구한테나 키스하는걸. 그건 확실해!

    그리고 다시 웃음소리와 더불어 요란한 소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둘이 부딪쳐서 바닥에 쓰러졌을 때, 카를손이 속삭였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꼬맹이는 계속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지만 느긋하게 굴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카를손이 바로 앞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덩달아 쓰러져 자기 발과 카를손의 발을 구분할 수가 없었는데, 그것 때문에 또 웃음이 막 터지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베탄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둘은 네 발로 조용히 기었습니다. 그러다가 베탄한테 막 잡힐 뻔한 순간 허겁지겁 꼬맹이 방으로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 느긋하게, 언제나 느긋하게! - 카를손이 이불 밑에서 속삭였습니다. 

    그러면서 짧고 작은 두 발로 북채처럼 마루를 두드리고는, 숨을 돌리자마자 한마디 더 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잘 달리는 사람은 바로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이지!


욧닛을 덮어쓴 꼬맹이와 카를손을 베탄이 잡으려고 쫓아가다


    꼬맹이도 아주 빨리 달릴 줄 알았어요. 사실 지금은 그게 정말 필요했습니다. 베탄한테 막 잡히려는 찰나에 문을 쾅 닫고 겨우 몸을 피한 것이니까요. 베탄이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는 동안 카를손이 재빨리 열쇠를 돌리고 명랑하게 웃어댔습니다. 

    - 기다려, 꼬맹이, 널 붙잡고 말 테야! - 베탄이 단단히 화가 났어요. 

    - 어쨌든 내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잖아! - 문 뒤에서 꼬맹이가 대답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웃음소리도 들려왔어요.

    베탄이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다면, 방안에서 둘이 계속 손뼉 치며 크게 웃어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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