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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  

 

이네스, 가르생, 에스텔, 안내인

 

     (에스텔이 두 손으로 여전히 얼굴 감싸 쥐고 있는 가르생을 바라본다.)

     에스텔: (가르생에게) 아니, 고개 들지 말아요! 당신이 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지 알아요, 얼굴이 없으니까 그러겠지. (가르생이 얼굴에서 두 손을 뗀다.) 어머, 이게 뭐야! (휴지. 놀라서.)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군요.

     가르생: 난 고문 기술자가 아닙니다, 마담.

     에스텔: 당신을 고문자라고 여긴 적이 없어요. 난… 어떤 사람이 나를 놀리는 줄 알았지요. (안내인에게) 누가 또 오나요?

     안내인: 아니요, 마담. 더 이상 오지 않을 겁니다.

     에스텔: (안도하면서) 잘 됐네요! 그러면 이 신사분과 저 부인과 나, 이렇게 셋이 함께 지내게 되나요? (웃음을 터뜨린다.)

     가르생: (무뚝뚝한 표정으로) 웃을 일이 전혀 없는데. 

     에스텔: (여전히 웃으면서) 여기 소파들은 아주 볼썽사납군요. 게다가 배치해둔 꼴이라니! 그 따분한 마리 숙모 집을 방문했던 새해가 떠오르는군요. 그 집엔 어떤 공포가 가득하고… 근데 소파는 각자 하나씩 쓰는 모양이죠? 저게 내 자린가요? (안내인에게) 하지만 내가 저기 앉을 거라고 기대하진 말아요. 난 하늘색 차림인데 소파는 진녹색이라니, 흥, 정말 잘 어울리겠네요. 

     이네스: 그럼, 내 소파에 앉을래요?

     에스텔: 그 적포도주 색깔의 소파 말이에요? 고맙지만, 그것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에요. 어쩌겠어요, 이 진녹색 소파에 내가 맞추는 수밖에. (휴지) 바꿀 수 있다면, 저 신사의 소파가 더 좋겠네요.

     (침묵)

     이네스: 들으셨나요, 미스터 가르생? 

     가르송: (흠칫 떨면서) 아, 소파. 그렇군, 미안합니다. (일어선다.) 이걸 쓰시지요, 마담.

     에스텔: 고마워요. (외투를 벗어 소파에 던진다. 휴지.) 우리가 이왕 함께 있게 됐으니, 서로 인사 나누지요. 내 이름은 리갈이에요, 에스텔 리갈. 

     (가르생이 고개를 까딱이고 제 소개를 하려 하는데, 이네스가 끼어든다.)

     이네스: 난 이네스 세라노에요. 알게 돼서 반가워요.

     (가르생이 다시 고개를 까딱인다.)

     가르생: 조셉 가르생입니다. 

     안내인: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에스텔: 네, 그러세요. 필요하면 벨을 누르지요.

     (안내인이 고개 숙이고 퇴장한다.)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5장  

 

     이네스, 가르생, 에스텔

 

     이네스: (에스텔에게) 당신은 정말 예쁘군요. 제대로 환영하려면 꽃이 있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에스텔: 꽃이요? 맞아, 난 꽃을 아주 좋아했지요. 한데, 여기서는 꽃이 금방 시들겠어요, 안 그런가요? 공기가 후텁지근하잖아요. 아, 그래요, 우리가 최대한 쾌활하게 지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당신도 분명...

     이네스: 그래요, 지난주에. 그럼, 당신은?

     에스텔: 아주 최근이에요, 바로 어제지요. 사실 세리모니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은 걸요. (에스텔이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여동생 얼굴을 가린 망사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려요. 그 애는 눈물을 짜내려고 무진 애를 쓰네요. 자, 해 봐, 그래, 좀 더! 그러자 조금 나와요. 눈물 두 방울, 병아리 오줌 같은 두 방울이 검은 망사 뒤편에서 반짝여요. 오, 저런, 올가는 오늘 아침에 어떤 장면을 볼까! 그녀가 내 여동생 팔을 잡고 있는데, 울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그 애를 탓할 생각은 없어요, 눈물은 늘 얼굴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니까요, 안 그래요? 올가는 나한테 가장 좋은 친구였어요.

     이네스: 당신은 아주 고통스러웠나요? 

     에스텔: 아뇨. 난 의식이 절반밖에 없었어요.

     이네스: 뭐였지요? 

     에스텔: 폐렴이에요. (앞에서 한 것처럼, 세세하게 묘사하듯이) 아, 이제 다 끝나고 사람들이 묘지를 떠나네요. 안녕! 잘들 가요! 꽤 많이 모였었지요. 남편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어요. 비탄이 하도 컸기 때문이에요, 가엾은 사람. (이네스에게) 근데, 당신은 어떻게? 

     이네스: 가스스토브가 문제였어요.

     에스텔: 그럼, 미스터 가르생, 당신은요?

     가르생: 가슴에 총탄을 열두 발 맞았다오. (에스텔이 움찔한다.) 미안해요! 죽은 이들한테 좋은 일행이 못 될까 걱정입니다. 썩 품위 있는 시체가 못 되니까요. 

     에스텔: 오! 제발, 그런 단어는 제발 입에 올리지 말아요. 너무 거칠고, 안 좋은 톤이에요. 어쨌든,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는 어쩌면 지금이 가장 활기 넘치는 것일지도 몰라요. 이런… 이런 상황에 적절한 명칭을 고른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부재자’라 부르는 게 어떻겠어요? 그게 더 온당할 거예요. 당신은… 오래 전에 부재자가 됐나요?

     가르생: 한 달쯤 됐다오.

     에스텔: 어디서 오셨나요?

     가르생: 리오에요.

     에스텔: 나는 파리에서 왔어요. 저 아래에 누군가 남겨둔 사람이 있나요?

     가르생: 네, 아내가 있소. (에스텔이 앞서 쓰던 말투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녀가 막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군요. 매일 저기로 오지요. 하지만 그들이 들여보내지 않을 겁니다. 지금 그녀는 빗장 사이로라도 들여다보려고 애쓰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게요. 흠, 이제 떠나는군.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그게 더 낫지, 갈아입을 필요가 없으니.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요, 살면서 울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오. 날이 아주 밝고 화창하군요. 텅 빈 거리를 검은 그림자처럼 비척이며 걸어가고 있어요. 커다란 두 눈엔 슬픔이 가득하고 순교자 같은 표정으로… 나를 참 안타깝게 하는구려!

 

    (침묵. 가르생이 중간 소파에 앉아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다.)

    이네스: 에스텔!

    에스텔: 이보세요,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왜 그러오?

    에스텔: 내 소파에 앉으셨잖아요!

    가르생: 아, 미안해요. (일어난다.)

    에스텔: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나요? 

    가르생: 내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지요. (이네스가 웃음을 터뜨린다.) 뭐, 그렇게 웃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도 나처럼 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이네스: 그럴 필요 없어요. 내 인생은 완벽하게 정리돼 있거든요. 저기, 아래 세상에서 모든 게 다 잘 마무리됐으니,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구요. 

    가르생: 정말이오? 그렇게 쉬운 일로 여기는구려! (손으로 이마를 훔친다.) 어휴, 여긴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아!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재킷을 벗으려고 한다.)

 

     에스텔: 아, 안 돼요! (좀 부드러운 말투로) 남자들이 셔츠 차림으로 있는 건 딱 질색이에요.

     가르생: (재킷을 다시 입으면서) 알겠소. (휴지) 난 신문사 사무실에서 밤을 새곤 했다오, 거긴 증기탕처럼 더워서 겉옷을 늘 벗어놓곤 했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앞의 말투로.) 그렇게 후텁지근할 수가 없어요. 숨이 턱턱 막히는 거요. 거긴 지금 밤이로군.

     에스텔: 그러네요. 올가가 옷을 벗고 있어요. 자정이 넘었나 보네. 저기, 지상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이네스: 그래요, 자정이 넘었어요. 내 방문을 꽁꽁 잠가 두었네. 방안이 칠흑처럼 어둡고, 텅 비어 있어요.

     가르생: 저 사람들은 의자 등받이에 코트를 걸고, 셔츠 소매도 팔꿈치 위로 걷었어. 땀 냄새가 풍기고 담배 연기가 자욱하네. (침묵.) 아아, 셔츠 차림의 남자들 사이에서 지내는 게 정말 좋았는데.

     에스텔: (무뚝뚝하게) 그렇다면 우리 취향은 서로 다르군요. (이네스한테 몸을 돌리면서) 당신은 재킷 벗은 남자를 좋아하나요?

     이네스: 재킷을 걸치든 아니든, 난 남자한테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에스텔: (두 사람을 놀란 눈으로 훑어본다.) 근데, 우리 세 사람을 왜 여기 같이 있게 한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상식에 어긋나잖아요. 

     이네스: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무슨 소리에요?

     에스텔: 보아하니, 앞으로 당신네 두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할 것 같은데, 이건 말도 안 돼요. 난 옛 친구나 친지들을 만나리라 기대했는데…

     이네스: 그렇군, 얼굴 한가운데 구멍 뻥 뚫린, 멋진 친구를 기대했겠지요.

     에스텔: 맞아요, 그 사람도 있으리라고 기대했어요. 그는 탱고를 아주 멋지게 추었지요, 진짜 프로처럼! 근데,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우리를 함께 있게 한 거죠? 

     가르생: 이건, 아마도 우연일 게요. 저들은 사람들을 들어오는 순서대로 방에 넣으니까. (이네스에게) 근데, 당신은 왜 웃는 겁니까?

     이네스: ‘우연’이라는 말이 웃기잖아요. 그렇게라도 위안을 받고 싶은가요? 저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일은 없어요. 

 

     에스텔: (조심스레)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은 없나요?

     이네스: 그렇진 않아요. 그랬다면 내가 당신을 기억하겠지요.

     에스텔: 아니면, 우리한테 공통의 지인들이 있던가요? 듀부아 부부를 혹시 아시나요?

     이네스: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요. 

     에스텔: 하지만 누구나 그 부부가 베푸는 파티에 다닌걸요. 

     이네스: 그들 직업이 뭔데요?

     에스텔: 아아, 아무 일도 안 해요. 하지만 시골에 멋진 별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를 방문하지요. 

     이네스: 아니, 난 간 적이 없어요. 난 우체국 사무원이었어요. 

     에스텔: (슬며시 뒷걸음치면서) 아, 네, 그렇다면야. (휴지) 그럼, 가르생 씨는? 

     가르생: 난 평생을 리오에서 살았다오. 

     에스텔: 그렇다면 당신 말이 맞겠군요. 우리가 이렇게 같이 있게 된 건 우연일 거예요.

     이네스: 우연일 뿐이라구요? 그러니까, 여기 가구도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놓인 것이고, 오른쪽 소파가 진녹색이고 왼쪽이 적갈색인 것도 그냥 우연이라… 이게 다 당신 보기에는 우연이라는 것이죠? 음, 이 소파들을 옮겨 놓아 봐요, 그러면 차이를 금방 알 거예요. 그리고 벽난로 선반에 있는 저 청동 조각상도 우연히 저기 놓인 것이라 생각하나요? 이 후텁지근한 열기는? 이건 어때요? (침묵.) 아니, 안 그래요, 이건 다 사전에 구상된 거라구요. 아주 세세한 데까지. 우연이란 전혀 없어요. 이 방은 다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된 것이에요. 

     에스텔: 말도 안 돼! 여기 있는 건 죄다 볼품없고, 다 모서리가 있어서 불편해. 난 뾰족한 모서리라면 늘 질색인걸요. 

     이네스: (어깨 추썩이면서) 그럼, 난 뭐 앙피르 양식으로 꾸민 방에서 살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휴지.)

     에스텔: 그러니까 당신 생각에는 이게 전부 예정된 것이란 말이지요?

     이네스: 맞아요. 저들은 우리를 일부러 한데 집어넣었어요.

     에스텔: 당신이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도 예정됐다는 뜻인가요? (휴지.) 도대체 무슨 의도가 있는 걸까요?

     이네스: 거야 나도 모르죠. 하지만 저들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아요. 

     에스텔: 누군가가 나한테서 뭔가 기대한다는 것을 난 도저히 견디지 못했어요. 그럴 때면 즉각 반대로 행동하고 싶어지거든요. 

     이네스: 흠, 그렇게 해요! 할 수 있으면 해 봐요! 저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잖아요. 

 

     에스텔: (발을 구르면서) 이건 정말 못 견디겠어. 그러니까, 당신들 두 사람 때문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녀가 가르생과 이네스를 쳐다본다.) 뭔가 불쾌한 일일 거야. 난 어떤 얼굴들은 한번 보기만 하면 다 알지요. 한데, 당신네 얼굴에서는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군요.

     가르생: (이네스한테 사납게)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함께 있게 된 거요? 당신은 계속 에둘러 말하는데, 그러지 말고 속 시원하게 털어놔 봐요. 

     이네스: (놀라면서) 하지만 난 아무 것도 몰라요. 나도 당신들만큼이나 모른다구요. 

     가르생: 흠, 그걸 알아야 하는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네스: 우리가 각자 시원스레 털어놓기만 한다면…

     가르생: 뭘 털어놓는다구요? 

     이네스: 에스텔!

     에스텔: 네?

     이네스: 지금까지 당신이 행한 일은 뭔가요? 내 말은, 저들이 당신을 왜 여기로 보냈느냐, 이거지요.

 

     에스텔: (활기차게) 바로 그게 중요한데… 몰라요, 전혀 모르겠어! 사실, 뭔가 착오가 있는 건 아닌가, 의아하게 여기는 참이에요! (이네스에게) 웃지 마세요. 생각 좀 해 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부재자가 되는지 말이에요. 수천, 수만 명이 여기로 오는데, 그들을 분류하는 것은 하급 작업자들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알 거예요. 제 일도 처리할 줄 모르는 멍청한 직원들이에요. 한데 당신 얘기로는 착오 따위가 전혀 없었다는… 아, 그만 웃어요. (가르생에게) 당신이 무슨 말씀 좀 해 보세요. 만약 그들이 착오로 나를 여기 데려왔다고 한다면, 당신 경우에도 그들 실수가 있었을 거예요. (이네스한데) 당신도 마찬가지구요. 우리가 여기 있게 된 것이 착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네스: 당신이 할 수 있는 얘기는 그게 전부인가요?

     에스텔: 뭘 더 알고 싶은 거지요? 난 감출 거 하나 없어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어린 남동생을 떠맡게 됐어요. 우리는 지독하게 가난했는데, 우리 가족의 오랜 친구가 혼인을 제안했어요. 그이는 부유한데다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나도 동의했어요. 여기 있는 두 사람이 내 처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내 남동생은 아주 골골해서 늘 돌봐줘야 했지요. 남편은 아버지뻘 되는 나이였지만, 우린 여섯 해 동안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이태 전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을 만났지 뭐예요. 우린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그 사실을 깨닫고 서로 알아봤어요. 그 사람은 함께 달아나기를 바랐지만, 내가 거부했어요. 그 뒤 난 폐렴에 걸렸어요. 이게 전부에요. 어떤 기준으로 본다면, 나이가 세 배나 더 많은 노인에게 내 청춘을 바쳤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요. (가르생에게) 당신은 이걸 죄악이라 보시나요?

     가르생: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휴지)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이 자기 원칙을 따르는 게 죄악이라고 생각하나요?

     에스텔: 물론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가르생: 잠깐만이요! 나는 평화를 주창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신문을 발행했다오. 전쟁이 터졌어요. 어떡해야 하나? 사람들 눈길이 죄다 나한테 쏠렸다오. ‘저 사람이 제 주장대로 나아갈까 아닐까?’ 흠, 나는 내 길을 과감하게 택해서 전투에 나가기를 거부했소, 그리고 총살당한 게요. 이게 무슨 죄란 말이오, 내가 뭘 잘못 한 게 있었나요?

     에스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잘못이요? 외려 그 반대에요. 당신은…

     이네스: (비꼬듯이 말을 이으면서) 영웅이었지. 그럼, 아내는요,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그건 간단해. 내가 그녀를 구했다오, 시궁창에서…

     에스텔: (이네스에게) 봐요! 봐!

     이네스: 보고 있어요. (휴지) 우리, 생각 좀 해 봐요. 지금 이런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다 똑같은 흠을 지니고 있어요. 

     에스텔: (도전적으로) 어떻게 그런 말을!

     이네스: 맞아요, 우리 셋은 다 범죄자에요, 살인자이지요. 우리는 지옥에 있는 거야. 착오 따위는 없어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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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인 거야!"

"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지옥인 거야!"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이야.

 

얼핏 듣자면,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임을 알게 됩니다. 

사르트르는 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 없이 혼자 살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이 서로한테 어쩌면 필요악인가요?

물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일 수 있지만, 또 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그건 각자가 서로 하기 나름! 이게 중요하겠지요. 

 


 

 2장 

     가르생.

 

     가르생 혼자 있다. 청동 장식품에 다가가서 손으로 톡톡 건드린다.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난다. 문 쪽으로 다가가서 벨을 누른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두세 번 계속 눌러 보지만 소용없다. 그러자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역시 꿈쩍도 않는다. 그가 소리쳐 부른다.

 

     가르생: 안내인! 안내인!

 

     대답이 없다. 가르생이 문을 세게 두드리면서 안내인을 계속 부른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안내인과 함께 이네스가 들어선다. 

 

 3장 

 

 가르생, 이네스, 안내인.

 

     안내인: 부르셨나요, 선생님?

     가르생: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이네스를 보고는 바꿔 말한다) 아니요. 

     안내인: (이네스를 보면서) 여기가 부인 방입니다. (이네스가 대꾸하지 않는다.) 혹시 물으실 게 있다면... (이네스가 계속 입을 다물자, 실망한 빛으로) 우리 손님들 대다수는 저한테 여러 질문을 하지요. 하지만 제가 강요하진 않습니다. 어쨌든, 칫솔이며 초인종, 벽난로 위에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이 신사분이 이미 알고 계시니까 잘 대답해 주실 겁니다. 이 분과 저는 얘기를 좀 나누었거든요. 

     (안내인이 나간다. 침묵. 가르생은 이네스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네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르생 쪽으로 몸을 홱 돌린다.)

     이네스: 플로렌스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이 침묵한다.) 난 플로렌스에 관해 묻는 거예요. 그녀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네스: 이건 다 당신이 궁리한 거지요? 떼어 놓고 고문하는 것 말이에요. 한데 내가 알기에 당신은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플로렌스는 귀찮은 멍청이였고, 난 그녀를 조금도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구요.

     가르생: 미안하지만,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닌가요?

     이네스: 당신... 하는 일이 고문이잖아요. 

     가르생: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거 참, 정말 우스꽝스럽군요! 내가 고문자라니! 그러니까 이 방에 들어와서 나를 보고는 이곳 직원이라고 생각했군.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요! 저 안내인이 멍청해서 그래, 우리를 서로 소개했어야지! 나를 고문자로 보다니! 난 조세프 가르생이라고 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지요. 우리 둘 다 이를테면 같은 배를 탄 셈이니까, 제가 물어봐도 될까요? 마담은...

    이네스: (무뚝뚝하게) 이네스 세라노라고 해요. 마담이 아니라 마드무아젤이에요. 

 

출구없는방무대 장면

 

    가르생: 좋아요, 어쨌든 시작은 됐어요. 자, 우리 사이에 얼음이 깨졌는데, 내가 아직도 고문자처럼 보이나요? 아, 그리고 고문자들은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요? 당신은 분명 뭘 좀 아는 것 같은데. 

     이네스: 그들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가르생: 겁먹은 표정이요? 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얘기로군요. 그들이 누구한테 겁을 먹나요? 자기네가 고문한 사람들한테?

     이네스: 그래, 맘껏 웃어요. 하지만 내 말은 틀리지 않아요. 나는 유리 같은 데 비친 내 얼굴을 자주 들여다봤어요.

     가르생: 유리에?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저들은 정말 못돼먹었군. 유리 같은 건 다 치웠으니 말이에요. (휴지) 어쨌든 분명히 말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경망스럽게 구는 건 아니에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압니다. 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전혀.

     이네스: (어깨를 추썩이며) 그건 당신 문제구요. (휴지) 당신은 항상 여기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가끔 산책이라도 하나요? 

     가르생: 문은 잠겨 있습니다. 

     이네스: 거 참 고약하네요. 

     가르생: 내가 있어서 당신이 많이 불편할 겁니다. 사실 나도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해요.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건 혼자 있을 때 더 잘 되니까요. 하지만 우린 어떻게든 잘 지낼 거라고 믿어요. 난 말이 많지 않고 많이 움직이지도 않아요. 평화로운 부류에 속하는 편이지요. 단지 하나, 감히 제안하자면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정중하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게 서로를 다치지 않는 최상의 방법 아니겠어요?

     이네스: 난 예의를 잘 차리지 못해요.

     가르생: 그렇다면, 내가 두 몫으로 정중하게 처신해야겠군요.

     (침묵. 가르생이 소파에 앉는다. 이네스가 방안을 앞뒤로 서성인다.)

 

     이네스: (그를 바라보면서) 당신 입이... 

     가르생: (생각을 떨치면서) 뭐라구요?

     이네스: 입 좀 가만둘 수는 없나요? 입을 계속 씰룩거리고 있잖아요. 보기가 참 안 좋아요.

     가르생: 정말 미안하오. 난 그런 줄 몰랐어요. 

     이네스: 그래서 지적하는 거예요. (가르생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저 봐, 또 그러네. 당신은 예의 운운하면서 자기 얼굴 하나 컨트롤하려 들지도 않는군요. 당신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요.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나한테 옮기면 안 돼요.

     (가르생이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가르생: 당신은 어때요? 두렵지 않은가요?

     이네스: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예전엔 두려워할 이유가 웬만큼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단 말이죠. 

     가르생: (맥없이) 더 이상 희망은 없어요. 하지만 아직도 그 “예전”입니다. 우리 고통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마드무아젤.

     이네스: 그건 알아요. (휴지)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가르생: 모르겠소. 기다려야겠지요. 

     (침묵. 가르생이 다시 제 자리에 앉는다. 이네스가 또 앞뒤로 바장인다. 가르생이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이네스를 흘낏 보고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에스텔과 안내인이 들어선다.)

 

4장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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