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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아내와 함께

 


 

  16-17세기 작가들과 극작가들이 가장 즐겨 취한 주제들 중 하나는 정신 멀쩡한 사람을 미쳤다고 공표하고 갖가지 모욕과 조롱을 안기는 것. 예를 들어, 말볼리오[각주:1]가 그렇고, 혹은 그림멜하우젠의 <짐플리치시무스>[각주:2]에 나오는 비참한 희생자를 떠올릴 수 있다. 한데 실생활에서 벌어진 사실들은 픽션에서 다룬 것보다 한층 더 불쾌한 것이었다. 

 

  루이즈 트롱셰가 파리에 있는 살페트리에 정신병원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회고록을 남겼다.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소리치고 혼자 깔깔대고 다니다가 1674년 병원에 수용됐다. 한데, 그렇게 돌아다닐 때 왜 그런지 떠돌이 고양이들이 그녀를 엄청나게 따라 다니는 바람에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라 마녀가 분명하다는 의심을 샀다. 

 

  병원에서 그녀는 쇠사슬에 묶인 채 철창에 갇혀서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됐다. 구경꾼들이 쇠창살 사이로 지팡이를 집어넣어 쿡쿡 찌르고, 고양이처럼 야옹거리며 놀리고, 마녀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지껄였다. 더러운 짚단 위에 누워 있는 그녀를 보고 구경꾼들이 수군거렸다. 이 미치광이가 처형될 때 불길이 얼마나 멋지게 타오르겠어! 두어 주일에 한 번씩 새 짚단이 제공되고 더러운 것은 마당에서 불태웠다. 루이즈는 마당에 끌려나와 그 불길을 보면서 사람들이 신나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마녀를 불길에 처넣어라! 처넣어!” 

 

  어느 주일날 억지로 설교를 듣게 됐는데, 그녀 자신이 설교 주제였다. 성직자가 그녀를 가리키면서 회중에게 말했다. 

  보시오, 하나님은 죄를 이런 식으로 무섭게 벌하신다오! 이 세상에서는 죄인이 살페트리에 철창에 갇혀 있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오! 

  그리고 비참한 제물이 어깨 들썩이며 흐느끼는 동안에도 설교자는 불구덩이 고통이며 유황 냄새며 펄펄 끓는 기름, 벌겋게 달군 쇠줄로 매질하기 따위를 흥미진진하게 소상히 얘기했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아멘. 

 

  이런 여건에서 루이즈의 상태가 갈수록 더 나빠진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녀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한 사람의 평범한 호의 덕분이었다. 그녀한테 친절하게 대하고 기도 방법을 가르친 방문 성직자

 

  수렝한테도 그 비슷한 일이 생겼다. 사실, 그는 공중 정신병원에 갇혀 정신과 육체의 고문을 당하는 일은 면했다. 그러나 예수회 칼리지 진료소에 있다 해도, 교육 수준 높은 학자이며 헌신적 기독교인인 동료들 가운데 있다 해도, 거기에도 공포는 차고 넘쳤다.

  예를 들어, 그를 돌보라고 붙인 수련수사는 무지막지하게 폭행을 가했다. 어린 학생들은 미친 수도사가 눈에 띄기만 하면 휘파람 불며 야유했다. 그런 젊은이들의 그런 행위는 예상됐던 것일 뿐. 한데 그의 형제요 동료인 엄숙한 신부들과 수도사들이 하는 짓은 의외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참으로 무신경한데다가 측은지심 따위가 눈곱만치도 없었다

 

  개중에는 허세 부리고 활달한 사람들, 이른바 ‘근육적 기독교인'들[각주:3]도 있어서, 그들은 수렝에게 장담했다. 당신한테 잘못된 것은 하나 없으니까 주눅들 필요 없소. 그리고 그가 해내기에 불가능한 일들을 시킨 뒤 그가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지르면 좋아라 웃으면서 덧붙였다. 아, 그 통증은 당신 상상일 뿐이오. 

  거기엔 악의적인 모럴리스트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를 찾아와 곁에 앉아서 장황한 설교를 흐뭇하게 늘어놓았다. 형제여, 당신 시련은 스스로 벌어들인 것이라오. 거기엔 호기심 채우려고 찾아온 성직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를 어린애나 백치처럼 여기며 갖은 허튼소리를 다 늘어놓았다. 또 그가 말을 할 수 없으니 이해할 수도 없다고 지레짐작하여 조롱하거나 뻔뻔하게 굴면서 싸구려 유머감각과 위트를 과시한 자들도 있었다. 

 

  한번은 「제법 지위 있는 성직자가 나 혼자 있는 병실로 왔다. 내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나를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내가 그에게 나쁜 짓을 전혀 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도 내 뺨에 불이 나도록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고는 일어나 나갔다.」 

 

  수렝은 이 모든 잔혹 행위를 제 영혼에 좋게 돌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신께서 바라시는 일이야, 내가 미치광이가 되어 굴욕을 겪고 사회에서 추방된 자처럼 취급받기를 원하시는 게야, 나한테는 다른 이들의 존중은커녕 동정심마저 살 권리가 없어. 그가 돌아가는 상황에 순종했다. 나아가 자신의 비하를 적극적으로 갈구했다. 그러나 운명에 자신을 맞추려는 이 의식적인 노력은 그 자체로는 치유를 얻기에 충분치 못했다. 루이즈 트롱셰의 경우처럼 치유 동인은 다른 사람의 친절이었다

 

  1648년 바스티드 수사가 생트 칼리지 학장에 임명됐다. 동료 수도사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수렝이 완전히 미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한 사람. 그가 병자를 데리고 있게 해 달라 요청했고, 승인이 났다. 

  생트에서 십년 만에 처음으로 수렝이 연민과 배려를 받게 됐다. 하나님 손에서 징벌을 겪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 손에서 더 많은 벌을 받아 마땅한 무슨 죄인이 아니라 영적 시련을 겪는 병자로서 말이다. 그렇다 해도 그가 제 감옥인 쪽방을 떠나서 바깥세계와 소통하기는 아직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그에게 훨씬 더 큰 호의를 보이며 다가들고 그와 소통하느라 애썼다. 

 

  이 새로운 대우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을 병자는 육신에서 드러냈다. 여러 해 동안 만성적 불안감이 호흡을 얕게 만드는 바람에 그는 거의 늘 질식 상태 직전에 있는 사람 같았었다. 한데 이제 거의 갑작스레 횡격막이 자유로이 움직이게 됐다. 생명 불어넣는 공기를 심호흡하여 폐에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내 근육은 전부 죔쇠들로 조인 듯 단단히 닫혀 있었다. 한데 이제 죔쇠가 하나씩 풀렸다. 난 믿기 힘든 안도감을 느꼈다.」 

 

  영적 해방 같은 것을 육신이 경험하고 있었다. 천식이나 건초열로 고생해 본 사람들은 우주 환경에서 물리적으로 단절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우며, 회복되어 그것을 되찾는 것이 얼마나 큰 환희인지 알고 있다. 

  영적 수준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천식 같은 것 때문에 시달리지만, ‘산소’ 결핍으로 만성적 질식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극히 적다. 하지만 그런 결핍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공기를 필사적으로 갈망한다. 그러다가 어떡하든 폐를 채우게 되면,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본다. 

 

  기이한 삶을 이어가는 동안 수렝은 억눌리기도 하고 풀려나기도 하고, 또 숨 막히는 어둠에 갇히기도 하고 햇빛 아래 산꼭대기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폐가 그의 영혼 상태를 반영했으니, 영혼이 억눌릴 때면 폐가 경련을 일으켜 딱딱해지고 영혼이 숨을 쉬면 폐도 부드럽게 늘어났다

  그의 글들에서는 ‘구속된, 억눌린, 얽매인’ 같은 단어만이 아니라 그 안티테제인 ‘해방된, 팽창된, 되살아난’ 같은 단어도 수없이 마주친다. 그 단어들은 그의 경험의 주된 사실을 표현한다. 바로, 긴장과 이완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격렬한 진동, 자신보다 더 작아짐과 더 충만한 삶으로 들어섬 사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진동

 

  수렝의 경우 심리적으로 해방되면서 흉곽도 상당히 커졌다. 무아지경으로 자신을 내어맡기는 묵상 시기 중에 한번은 구두처럼 앞에서 끈으로 묶는 가죽조끼가 오륙 인치나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 (성 필립 네리[각주:4]는 젊은 시절 무아지경에서 흉곽이 어찌나 격하게 확장됐든지 가슴이 영구적으로 늘어나고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왕성하게 일하면서 팔순까지 살았다.) 

 

  호흡과 스피릿 간에는 단순한 어원학적 관계뿐 아니라 실질적 관계도 있다는 점을 수렝은 늘 인식했다. 그는 네 가지 호흡 타입을 열거한다. 악마의 호흡, 본성의 호흡, 은혜의 호흡, 찬미의 호흡. 그리고 그 각각의 호흡을 다 겪어 봤다고 우리한테 단언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얘기를 상세히 하지 않는 바람에, 그가 프라나야나[각주:5] 분야에서 실제로 무엇을 습득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바스티드 수사가 베푼 친절 덕분에 수렝이 다시 인류의 한 멤버라는 감각을 회복하게 됐다. 그러나 바스티드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말할 수 있었지만 신을 위해서는, 최소한 수렝이 믿은 하나님을 위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어제의 병자가 다시 호흡하게 됐지만, 글을 읽고 쓰거나 미사 집전할 능력은 복구되지 않았다. 걷거나 음식 먹고 옷을 입고 벗는 게 불편하고 때론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그런 무기력과 장애로 인해 자신이 저주받았다는 확신을 지울 수 없게 됐다. 

  그것은 공포와 절망의 시원이었고, 거기서 잠시나마 마음을 돌리는 방법은 오직 통증과 날카로운 불쾌감을 겪는 것밖에 없었다. 정신적으로 더 좋게 느끼려면 육체적으로 더 나쁘게 느껴야 했다.[각주:6

 

  수렝을 괴롭힌 질환의 아주 이상한 특징은 정신 상태 일부가 결코 병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읽고 쓰는 능력을 잃고, 기력을 앗아가는 지독한 통증 없이는 간단한 동작조차 할 수 없으며, 제 영혼의 파멸적 숙명을 확신하고, 자살과 신성 모독과 불순한 행위와 이단에 대한 충동에 사로잡히면서도 (어떤 순간에 그는 확신에 찬 칼뱅파였고 또 어떤 순간에는 믿고 실행하는 마니교도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 오랜 고난과 시련 중에도 상하지 않은 문학 창작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신이 나간 처음 십년은 주로 운문을 지었다. 세간에 널리 퍼진 가락들에 새 노랫말을 붙이면서 수많은 발라드와 향연의 노래를 기독교 찬송가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그의 운문은 빈약한 편인데, 그것은 건강 때문이 아니라 재능 부족 때문이었다. 수렝의 시가는 정신이 나갔을 때나 멀쩡할 때나 똑같이 빈약했다. 

 

  그의 재능은 (그것도 상당히 큰 재능은) 작시가 아니라 산문에 있었다. 주제를 명료하고 철저하게 드러내는 솜씨가 뛰어났다. 병으로 고생하던 시기 후반부에 실제로 행한 게 바로 산문 작업. 머릿속에서 구성하고 매일 저녁 필사생에게 구술하면서 1651년부터 1655년 어간에 자신의 가장 뛰어난 저술 <영적 교리 문답 Le Catechisme Spirituel>을 만들어냈다. 

 

  이 저술은 심오함과 본질적 가치 면에서 수렝과 동시대를 산 영국인 어거스틴 베이커[각주:7]의 <거룩한 지혜>에 비견될 수 있다. 사륙판으로 천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교리 문답>은 아주 읽을 만한 책으로 남아 있다. 사실 텍스트 질감은 다소 흥미를 떨어뜨리는 면도 있지만, 이는 수렝의 잘못이 아니다. 그의 유쾌한 구식 문체는 이후 거듭된 출판에서 수정됐다. 

  이미 19세기 한 편집자는 수렝의 원고를 ‘우정 어린 손으로 다듬었다’고 무의식적으로 놀린다. 다행히도 이 ‘우정 어린 손’은 저자가 가장 미묘하고 숭고한 자료들을 다루면서 동원한 소박함과 명료함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교리 문답>을 쓸 때 수렝은 참고 서적들이나 예전에 써둔 원고마저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다른 저자들에 대한 참조와 인용이 대단히 풍부하고 적절하며 저작의 구성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단단하다. 그는 똑같은 주제들로 계속 돌아가면서도 그것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며 공들여 다듬는다. 그런 핸디캡 아래서 그런 저술을 지으려면 엄청난 기억력과 놀라운 집중력을 지녀야 했다. 이 책을 쓰던 때 최악의 광기 상태는 지나갔지만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미치광이로 여겼다. (근거가 없지도 않았다.) 

  명석한 정신과 지적 기능을 고스란히 지닌 채 미치광이가 된다는 것은 분명히 가장 악몽 같은 경험이리라. 손상되지 않은 이성은 무기력하게 보인 반면에, 상상과 감성과 자율신경계는 범죄적 미치광이 패거리처럼 행동하며 그를 파멸로 몰아갔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적극적인 사람과 자기암시의 희생자 사이에서 벌어진 고투, 실질적 사실들에만 의거하는 리얼리스트 수렝과 단어들을 괴물 같은 유사 리얼리티로 바꾸는 미문가 수렝 간의 고투였고, 그런 고투에서는 응당 공포와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장 조셉 수렝의 고투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부닥치는 곤경의 극단적인 경우였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나니.” 이 언명은 인류 역사에 관한 한 딱 맞는 말이다. 언어란 인간이 동물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도운 도구

  그러나 언어는 인간이 동물적 순수함과 만물의 본성에 일치함에서 벗어나 광기와 마성으로 접어들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말이란 소통에 불가결한 것이면서 그 자체에 숙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작업가설로 취급되는, 세상에 관한 명제들은 우리가 세상을 점진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 교리들이며 숭배해야 하는 우상 같이 절대 진리로 취급되는, 세상에 관한 명제들은 우리로 하여금 실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우리를 갖가지 오류와 범죄로 몰아간다.  

 

  (일본 임제선 창시의 주요 인물인 남포소명은 이렇게 설파한다. 

  「눈먼 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마음에서 부처가 자신의 황금 입술에서 단어들을 농담조로 흘렸다. 그 뒤로 하늘과 땅이 뒤얽힌 말 덤불로 가득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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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자유의지라는 환상

 

 

  1. Mavolio - 셰익스피어의 코미디 <십이야>(1602)에서 올리비아 집안의 집사. [본문으로]</십이야>
  2. Hans Grimmelshausen (1625-1676) - 게르마니아의 작가. 농민의 아들로 삼십년전쟁에 병사로 참전. 1648 전쟁 끝나자 유럽을 편력. 파멸적인 30년 전쟁 시기 게르마니아의 삶을 묘사한 장편소설 <짐플리치시무스의 모험>(1668)이 널리 인기를 끌었다. [본문으로]</짐플리치시무스의>
  3. Muscular Christianity - 근육적 기독교. 리버럴한 크리스트교의 한 형태로서 격심한 활동과 건강한 생활을 강조,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널리 퍼졌다. YMCA가 스포츠와 체조 프로그램들을 채택하는 것도 그 일환. 이 운동의 근거는 빌립보서 3:14,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느님께 받은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몸은 너희의 것이 아니니.” [본문으로]
  4. St. Philip Neri (1515-1595) - 이탈리아의 성직자, 오라토리오 수도회라 불린 세속 성직자 모임을 설립. ‘로마의 사도’. 많은 이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시신을 해부했을 때 갈비뼈 두 대가 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1545년경 카타콤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흉곽이 확장되면서 일어난 사건. 그의 시성을 승인한 교황 베네딕트 14세는 가슴 확장이 동맥벽이 약해진 탓에 동맥이 확장돼 발생한 것으로 결정했다. [본문으로]
  5. pranayana - ‘프라나 혹은 호흡의 확장’ 혹은 ‘생명력 확장’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Prāṇāyāma에서. 요가에서 말하는 이 호흡법의 기원은 힌두이즘에 있다. [본문으로]
  6. 수렝과 같은 상태를 의사 Leon Vannier가 (Paris, 1950)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블랙 코호시에 약한 사람은 제 머리를 두터운 구름이 감싸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보고 듣는 게 신통치 못하고, 그의 주변과 내면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병자는 미치는 게 아닐까 겁을 낸다. 아주 묘하게도, 신체 어떤 부위에든 통증이 나타나면, 기분은 더 좋아진다. 병자가 통증을 느낄 때, 정신 상태가 향상된다.” - 저자 주. [본문으로]
  7. Augustine Baker (1575–1641) - 베네딕트회 수사, 신비주의와 금욕주의 등 주로 영적 문제에 관해 많은 글을 썼다. (1657), 익명의 작자가 쓴 <무지의 구름>의 주석서인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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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 수녀원 원장 잔느와 수녀들

 


 

4

 

하나님 섬김이라는 소명을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17세기 수녀원 생활이 죽도록 따분하게 보였을 터이다. 그날이 다 그날 같은 생활은 그저 자잘한 사건과 소문들, 가끔 들르는 방문객들과 담소, 혹은 여가에 시시한 손작업 등으로 그 단조로움이 조금 덜어졌을 뿐. 

수렝 신부가 여러 서신에서 짚을 엮어 만든 장식물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가 아는 많은 수녀들이 남는 시간 대부분을 이 작업으로 보냈다. 그들의 걸작은 역시 지푸라기로 만든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미니어처 지푸라기 마차. 그건 어떤 귀족 여성 후원자의 경대에 놓일 선물이었다. 

 

콜롱비에 신부가 방문동정회[각주:1] 수녀들에 관해 이렇게 적는다. 

이 수도회의 드높은 도덕적 지향과 개중에 고결한 수녀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담장 안에는 규율을 지키고 미사를 드리고 기도회에 다니고 고해성사를 보고 성찬례에 참여하지만, 그걸 다 그저 종이 울리고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수녀들의 행위에는 정성이 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네 작은 생각과 계획들로 바빠서 하나님 일에는 거의 무심하다. 

모든 따스한 감정은 수녀원 안팎에 있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쏟고 주님께는 그저 맥없고 진실성 없는 눈길만 돌리니, 그런 것은 그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든 영혼이 전능자에 대한 사랑으로 영원히 불타는 둥지가 되어야 할 공동체들이 평범하고 지루함 속에서 의미 없이 생활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녀원 모습

 

저 유명한 포르루아얄 수녀원[각주:2]장 라신[각주:3]에게 아주 감탄할 만한 공동체로 보인 까닭은 ‘그 객실들에는 적막이 지배하고, 수녀들이 대화에 끼어들려 안달하지 않고, 헛된 세상사에 관심 두지 않고, 심지어 이웃을 두고 뒷공론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포르루아얄의 이런 보기 드문 장점을 통해 우리는 그보다 못한 수녀원들의 결함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다. 

 

1626년 루덩으로 이전한 우르술라회[각주:4] 수녀원은 다른 여성 거처들보다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열일곱 수녀는 거의 젊은 귀족 영애들이었다. 그들이 수도생활에 들어선 까닭은 복음서 말씀을 따르고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계층의 구혼자들이 수락할 만한 지참금을 집안에서 마련할 여유가 못 됐기 때문이다. 여기 수녀들은 그 어떤 특별한 스캔들로도 경건함으로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켰지만 종교적 열성과 경건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루덩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 주민들은 절반이 신교도로서 수녀원에 아주 인색했고 수녀들한테도 돈이 없었다. 낡고 음울한 하우스 하나만 임차했는데, 그것도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다들 들어와 살기를 마다하는 건물이었다. 건물에 가구도 없어서 수녀들이 처음엔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들은 도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는 수업료로 생활할 요량이었지만 여학생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드 사질리, 데스쿠블로, 바르베지에, 라모테, 벨시엘, 댐피에르 같은 귀족 출신들이 제 손으로 갖은 잡일을 하게 됐고, 재계일인 금요일뿐 아니라 월, 화, 수, 목요일에도 식탁에 고기가 놓이지 못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던 끝에 그들을 구한 것은 속물근성이었다. 

 

루덩의 부르주아들이 알고 보니… 아주 적은 돈으로도 자기네 딸들이 좋은 프랑스어와 궁정 매너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한때 추방됐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재종누이와 수르디스 추기경의 더 가까운 인척과 후작의 작은딸과 푸아티에 주교의 질녀한테서 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수녀원에 기숙 학생들과 통학 학생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여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번영도 찾아왔다. 이제 지저분한 일은 하녀들이 맡고, 식탁에 쇠고기와 양고기가 다시 나오고, 마루에 깔렸던 짚 매트리스가 나무 침상으로 교체됐다. 

 

루덩 소도시 전경

 

이 새 공동체의 원장이 1627년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새 원장이 임명됐다. 그녀 이름은 ‘천사들의 수녀 잔느. 속세에서 이름은 잔느 벨시엘, 코제의 남작인 루이 벨시엘과, 또 남작 가문 못잖게 전통 있고 저명한 가문 출신인 샤를롯데 데실레의 딸이었다. 1602년생이니까 이제 이십대 중반.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쳐져서 몸매가 좀 기형이었다. 아마도 골결핵의 후유증이리라. 

잔느도 당대 대다수 귀족 영애들처럼 빈한한 교육을 받았다. 그 대신 그녀에겐 타고난 지능에다 한가락 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 성격 때문에 그녀가 다른 이들에겐 고통이 되고 제 자신에겐 최악의 적이 됐다. 

 

이 어린애 같은 사람은 기형적인 신체 때문에 볼품이 없었다. 자신이 추하다는 느낌과 혐오나 동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그녀에게 고질적인 분한을 일으켰다. 그 분한 때문에 누구를 좋아할 수도 없고 누구한테서 사랑받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다 보니 그들도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방어적인 갑각 속에 살며 자신의 적들을 공격할 때만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녀에게는 모든 사람이 선험적으로 적이었으며, 난데없는 빈정거림이나 이상하고 발작적으로 터뜨리는 조소가 공격 수단이었다

 

수렝이 그녀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알고 보니, 원장수녀의 기질은 뭔가 특이하게 명랑해서 늘 날카로운 웃음과 조롱을 날리는데, 그런 고약함은 그녀 안에 들어앉은 악마 발람이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의 성격은 하나님 사업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진지함과 정반대이며, 뭔가 악의적인 기쁨이 그 영혼을 차지하여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필수적인 양심의 가책을 파괴했다

이 불길한 까불거림을 한 시간만 대해도 내가 여러 날 정성껏 쌓은 공력이 무너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나운 적에게서 그녀가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하려고 난 무던히 애썼다.」

‘하나님 사업’과 아주 잘 양립할 수 있는 웃음이 있다.
곧, 겸허하고 자기비판적인 웃음, 온후하고 너그러운 웃음, 이 세상의 비뚤어진 부조리에 대한 좌절과 분개를 대신하는 웃음. 

 

그러나 잔느의 웃음은 그런 것들과 전혀 달랐으니, 그저 조소 아니면 냉소뿐이었다. 그런 웃음을 늘 다른 이들한테만 퍼부었지 자신에게는 절대 돌리지 않았다. 곱사등이의 비웃음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다 깔보면서 자기 아래에 두려고 들었다. 또 그녀의 냉소란 잠깐일지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갈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대 기준에 엄숙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모든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요 조롱이었다

 

루덩 수녀원 원장수녀 잔느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숱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렇게 불쾌한 아이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부모는 딸을 인근 수녀원 원장으로 있는 늙은 숙모에게 보내고 말았다. 두세 해 만에 불명예스럽게 돌아왔다. 다른 수녀들이 그녀와 잘 지내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세월은 흐르는데 부친 저택에서 사는 게 어찌나 지겨운지 종교적 은둔처라도 차라리 집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그러자 푸아티에에 있는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들어가서 초심자 수련 기간을 보내고 수도서원을 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훌륭한 수녀가 못 됐다. 하지만 집안이 부유하고 영향력 있기 때문에 방자한 피후견인을 수녀원장이 꾹꾹 참으며 데리고 있게 됐다. 

그러다가 거의 하룻밤 새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수녀원이 루덩으로 이전한 뒤 잔느가 아주 경건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바뀐 것! 푸아티에에서는 말도 안 듣고 열의도 안 보이고 제 할 일에도 태만하던 젊은 여인이 이제 완벽하게 독실한 사람이 되어서 온유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처신했다. 그 놀라운 변화에 감명 받은 늙은 수녀원장이 퇴임하면서 잔느 자매를 강력한 후임자로 추천했다. 

 

그 개심 사연을 15년 뒤 잔느가 이렇게 기술한다. 

「난 늘 지도부 눈에 띄려 애썼고, 숙사에 수녀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수녀원장은 곧 공동체의 모든 일을 나한테 맡기게 됐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일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좋은 자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수녀원장에게 숱한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난 그녀 기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그녀는 곧 나를 모든 이들에게 모범으로 삼았다. 그녀는 내가 선하며 덕을 행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한껏 부풀려서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좋게 보이고 내 성향에 호감을 갖게끔 위선을 떨었다. 수녀원장은 나한테 많은 특전을 용인했으며, 그것을 난 마음껏 써먹었다. 그녀 자신이 선하고 덕이 있는데다 나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한다고 믿는 만큼 나를 훌륭한 수도사들과 대화하도록 자주 불렀다. 난 그녀 비위를 맞추려고 거기에 따랐다. 게다가 그건 시간 죽이기에도 좋았다.」 

 

훌륭한 수도사들과 나누는 대화는 숙사의 널따란 객실을 두 부분으로 가른 철창을 통해 벌어졌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영적 삶에 관해 새로 번역된 책들을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었다. 

어떤 날은 블로시우스[각주:5]의 해설서, 또 어떤 날은 테레사 성녀의 자서전 혹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혹은 천사들의 본성에 관한 델 리오의 저술 등이었다. 

 

그런 책들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수녀원장이며 수도사들과 토론하면서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바뀌는 것을 알았다. 객실에서 나누는 경건한 대화와 신비주의 서적 공부는 이제 더 이상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각별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됐다. 단, 그 목표가… 

그녀가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지혜로운 카르멜회 수사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그건 「영적 삶으로 돌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제 지능을 뽐내고, 모든 수녀원에 있는 다른 수녀들을 능가하려는 욕심에 지식을 채우기 위함일 뿐이었다.」 

 

루덩 수녀원 수녀들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곱사등이의 갈구가 또 다른 출구를 찾았다. 남들을 교묘하게 다루는 새롭고 재미난 분야 말이다. 빈정대고 냉소 터뜨리기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신비주의 신학과 영성 연구에 들인 결과, 그 분야에서 학식 갖춘 상담자요 전문가가 됐다. 

새로이 습득한 지식에 기고만장한 그녀가 이제 다른 자매들을 더욱 더 경멸과 연민이 출렁이는 느낌으로 내려다보며 흐뭇해했다. 

 

그래, 이 불쌍한 멍청이들이 신앙심은 깊어서 정결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고 있지. 그러나 정결이 도대체 뭐야! 무지와 둔감함일 뿐이잖아! 특별한 은혜에 대해 저들이 뭘 아나? 영적인 접촉을, 황홀함과 계시를, 감각의 유혹과 죽임을, 제까짓 것들이 알기나 하겠어?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 절로 만족스레 나왔다. 

흥, 저들은 아무 것도 몰라! 반면에, 난 사실상 모든 지혜를 터득했고, 하고 있잖아!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유난히 처지고 키가 난쟁이만한 그녀가 그렇게 우쭐댔다

 

(마담 보바리는 생을 비극적으로 마쳤다. 자신을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그렇다...  <루덩의 악마들> 4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3-3편 2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3-2편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6

루덩의 악마들 2편 4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Order of the Visita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 성모 마리아 방문 동정회. 1610년 살레의 성 프랑수아(1567-1622)와 성 쟌느 샹탈(1572-1641)이 설립. [본문으로]
  2. Port Royal -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 1204년 설립돼 17세기에는 얀센파의 거점. 유명한 학자며 계몽된 교육자들이 이 공동체 주변에서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 [본문으로]
  3. Jean Racine (1639-1699) - 고전주의 시대 프랑스 비극 작가, 문필가.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로 꼽힌다. 포르루아얄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피제니’, ‘페드르’. [본문으로]
  4. 우르술라회 - 로마가톨릭 여성 수도회. 성 안젤라 메디치가 1535년 11월 이탈리아 브레시아에 설립. 주로 소녀들 교육, 병자와 빈자 구휼 활동. 그들의 수호성인은 우르술라 성녀. [본문으로]
  5. Blosius - 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인 316년 아르메니아에서 처형된 순교자, 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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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1

 

이름난 풍자 작가요 나중에 주교가 된 조셉 홀[각주:1]이 1605년 처음으로 플랑드르[각주:2] 지역을 방문했다. 

「여로에서 우리는 파괴된 교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도처에 남은 거친 잔해들이 신앙과 더불어 동족상쟁 역시 처절했음을 여행자에게 말해준다. 오오, 전쟁의 참혹한 흔적이여! 그러나 교회들은 무너졌다 해도 (경탄스럽게) 도처에서 예수회 칼리지들이 나타난다. 내가 들른 도시마다 이 학교들이 이미 문을 열었거나 세워지는 중이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연 정책이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이 사람들은 저주를 가장 많이 받는 곳에서 (여우처럼) 일을 가장 잘 꾸려 간다. 저희 진영에서 극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모든 이들한테 미움을 받고 우리의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이 독한 잡초들은 쑥쑥 자란다.」   

 

칼리지들은 아주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바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 홀과 그 세대가 잘 알고 있었듯이 예수회원들은 이른바 ‘정책’을 가장 중시했다. 예수회가 학교를 계속 세운 까닭은 적대자며 자유사상가며 프로테스탄트들에 맞서 로마가톨릭교회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예수회원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쳐 교회 이익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계층을 만들고자 했다.[각주:3]

 

이런 현상을 체루티가 아주 잘 표현했다. 「우리가 다리를 곧게 펴 주려고 갓난애 아랫도리를 천으로 동여매듯이, 사람을 평생 건강하고 유복한 상태로 만들려면 유년기부터 의지를 동여매야 한다.」 (이 언급에 줄 미슐레[각주:4]가 극도로 분개했다.) 

교육자들 의도야 정말 단호했지만 그 뜻을 알리고 지도하는 방법이 미흡했다. 학생들 의지를 천으로 동여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최우수 생도들 중 몇몇은 칼리지를 졸업하자 열렬한 자유사상가가 됐고, 장 라바디[각주:5]처럼 프로테스탄트가 된 이들도 있었다. ‘정책’이 관련된 이상 교육 체계는 설립자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다중은 정략적 측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저희 자식들이 젊은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것을 다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중요할 뿐이었다. 이런 요구에 예수회원들이 다른 대다수 교육 공급자들보다 더 잘 부응했다.

 

「예수회 지붕 아래서 보낸 일곱 해 동안 나는 무엇을 눈여겨보았던가? 온건하고 근면하고 절도 있는 생활. 예수회 수사들은 하루 모든 시간을 우리들 교육에, 혹은 그들 서원을 엄격히 실행하는 데 바쳤다. 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나처럼 그들 밑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이 증언하기를 바란다.」  

볼테르가 그렇게 적었다. 이 말은 예수회 교수법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와 동시에, 볼테르의 생애 자체는 학습을 ‘정책’이라는 목표에 맞추려고 한 교육자들의 시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한층 더 확실하게 입증한다.[각주:6]   

 

볼테르가 칼리지에서 공부하던 때, 예수회 학교들은 이미 잘 알려지고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 이전 교육 현장에서는 칼리지의 많은 장점이 정말 혁명적이었다. 대다수 교육자들이 회초리 휘두르는 능력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이던 그 시기에, 예수회원들의 교육 방식은 제법 인도적이었으며 교수진도 신중하게 선별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여기서는 고급 라틴어를 가르치고 광학과 지리와 수학, 극작 분야에서 최신의 성취를 들려주고 (그들의 학기 말 연극 공연은 유명했다), 좋은 예절과 교회에 대한 존중과 (적어도 프랑스에서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는) 국왕 권위에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회 칼리지들이 전형적인 상류 부유층 취향에 맞았다. 즉, 애지중지하는 아이가 구식 교육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다고 마음먹은 어머니들, 그 자신이 학식을 갖추고 있으며 건전한 교리와 키케로 식 달변에 관심이 큰 숙부들, 또 그 자신이 애국심 있는 관리로서 군주제 원칙을 인정하거나 미리 앞을 내다보는 부르주아로서 예수회가 폭넓은 연줄로 제자들한테 좋은 직무나 궁정의 한 자리, 교회 명예직 따위를 찾아주겠지 기대한 아버지들… 바로 그들 입맛에 딱 맞은 것이다. 

 

예를 들어, 루앙 시의 코르네유 부부 같은 이들을 보자. 가장은 왕실 고문변호인이고 아내는 변호사 딸인 마르트 르 프장. 어린 아들 피에르가 특출한 재주를 보이는데, 어떻게 칼리지에 보내지 않을 수 있겠나?[각주:7] 

혹은 렌 시의회 고문인 조아킴 데카르트를 보자. 그는 1604년 총명한 막내아들 르네를 여덟 살밖에 안 됐지만 공부시키느라 라 플레시로 데려간다.[각주:8] 얼마 전 국왕의 승인을 받아 문을 연 예수회 칼리지로. 

 

또 거의 비슷한 시기, 생트 시에 학식 있는 참사회 위원인 그랑디에가 있다. 그에게 조카가 있으니, 비록 데카르트나 코르네유 같이 부유한 귀족은 못 되더라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인 또 다른 법률가의 아들이다. 우르뱅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이제 열네 살이며 지극히 영리하다.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생트 인근에는 보르도의 예수회 칼리지보다 더 좋은 학교가 없었다. 

이 유명한 배움터에는 소년들을 위한 중등 과정과 우아한 예술을 가르치는 칼리지, 신학교, 사제 임명 뒤에도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형제들을 위한 심화 과정이 다 있었다. 조숙하고 영리한 우르뱅 그랑디에가 여기서 십년을 넘게 보냈다. 중등학생에서 신학 대학생으로, 그리고 나이 스물다섯 된 1615년 이후 예수회 수련수사로… 그렇긴 해도 수도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예수회 엄한 규율을 따를 소명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니야, 수도회 안이 아니라 수도원 담장 밖에서 교구 신부로 커리어를 쌓고 싶어. 재주가 뛰어난데다가 막강한 교회 조직의 비호를 받는 사람은 이 직업에서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어떤 고관대작의 종교의식 담당이나 나중에 프랑스 육군원수나 추기경이 될 사람의 영적 카운슬러가 되는 거야. 또 주교 회의나 왕실 공주들 앞에서, 심지어 왕비 면전에서 뛰어난 언변을 과시할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야. 어디 그뿐이랴, 외교 사절이나 고위 행정직, 수입 좋은 명예직, 구미 당기는 불로소득 따위도 가능해. 또 (귀족 출신이 아니기에 확률이 떨어지긴 해도) 운이 좋다면 주교 예모로 머리를 장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생 노년이 화려하게 보장되는 거야. 

 

그의 이력 초기에는 그런 장밋빛 꿈이 다 이뤄질 수 있는 듯싶었다. 신학과 철학을 이태 동안 깊이 연구한 뒤 스물일곱 나이 젊은 그랑디에 신부가 오랜 기간 근면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예수회가 루덩 시에 있는 생피에르 뒤 마르셰 교구라는 중요한 생활 수단을 선사한 것. 같은 후견인들 덕분에 성 십자가 공주 성직자단 교회의 참사회 위원도 됐다. 사다리에 발을 걸쳤으니, 이제 할 일은 올라가는 것만 남았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1

 

  1. 조셉 홀 (Joseph Hall1, 574-1656) - 잉글랜드의 주교, 모럴리스트 문인, 풍자가. 호주가 발견되기 이전 남부 대륙의 환상적인 여행과 거기 풍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다르면서도 같은 세상 mundus alter et idem>(1605)의 저자. 이 책은 여러 모로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전신으로 평가된다. [본문으로]</걸리버></다르면서도>
  2. 플랑드르 - 현재의 벨기에 서부,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서부를 포함하는 지역. [본문으로]
  3. 예수회 - 종교개혁 시기인 1534년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로마가톨릭 수도회. 과격한 전투적 가톨릭 수호 선교기관. 1. 교육에 중점 2. 종교개혁에 대항 3. 세계 선교 등이 주요 목표. [본문으로]
  4. Jules Michelet (1797-1874) - 프랑스의 역사가, 사회평론가. 교회권력 반대자. 역사와 사회, 자연에 관해 아주 주관적인 책을 명료하고 격동적인 언어로 여러 편 썼다. ‘르네상스’ 용어의 창시자. [본문으로]
  5. Jean Labadie (1610-1674) - 프랑스 신학자,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고 경건주의 단체인 라바디파를 만들었다. (경건주의/Pietism - 정통 프로테스탄트에 맞서는 신비주의적 가르침, 보수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특색) [본문으로]
  6. Voltaire (1694-1778) - 프랑스의 작가, 사상가,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자. 18세기 유럽의 전제 정치와 종교적 맹신에 저항하고 진보적 이상을 고취. 비판 정신과 재치, 풍자 같은 프랑스 정서 특유의 자질을 구현한 작품 활동으로 유럽 문명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7. 피에르 코르네유(1606-1684) - 몰리에르,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 [본문으로]
  8.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프랑스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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