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사회적 정서는 성벽 파괴에 강하게 반대했다. 국내 정세가 아직 불안정하고 사회가 어수선한 시기였다. 요새 성벽으로 방어되지 않으면 프로테스탄트건 가톨릭교도이건 시민들은 (다르마냑의 표현대로라면) ‘별의별 군대에 휘둘리고 약탈에 시달릴까’ 겁을 냈다. 게다가 추기경의 은밀한 의도에 관한 소문이 이미 사방에 퍼졌다. 그의 의도대로 끝날 때쯤이면 가난하고 맥없는 루덩은 한촌으로 전락할 거야! 그것도 절반은 파괴된 마을로!
지방장관과의 우의 때문에 그랑디에는 응당 다수 쪽에 속했다. 그의 개인적 적대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추기경 진영이었는데, 그들에겐 루덩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리슐리외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성벽 파괴에 찬성하여 다르마냑에게 해가 되는 짓을 했다.
그랑디에가 최종 승리를 거둔 듯 보이던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그가 상대한 그 무엇보다도 엄청나게 더 큰 힘이 그를 위협하게 됐다.
그 몇 해 동안 주임신부의 사회적 위치는 상당히 역설적이었다. 주교는 그에게 사목 활동을 금했지만 그는 여전히 성 베드로 교회의 주임신부였다. 그 교회에서는 그의 아우가 수석 부제로서 형 대신 각종 성사를 집행했다. 친구들은 여전히 친절했지만 적대자들은 그를 고상한 사회에서 추방된 자처럼 대했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이 추방된 자가 지방장관의 역할을 거의 다 수행하고 있었다.
다르마냑은 왕의 총애를 잃지 않기 위해 대부분 시간을 궁정에서 보내야 했다. 지방장관 부재중에는 시정을 그의 아내와 보좌관이 대신했는데, 두 사람은 모든 중요한 일을 주임신부와 상의하라는 엄명을 받았다. 수모를 당하고 직분에서 밀려난 성직자가 도시의 부장관이요 지방장관 가족의 수호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1631년 여름 트렌캉이 검찰관 자리를 내놓았다. 그의 동료들과 시민 대다수는 그랑디에 사건 재심에서 드러난 여러 폭로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개인적 복수를 위해 위증하고 증인들을 겁박하고 서면 진술을 위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봐도 법적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하기 어려웠다.
조용하지만 끈질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임한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직무 복귀 권리를 팔아넘길 수도 있지만 젊은 법률가 루이 무소에게 그냥 양도했다. 단, 조건을 하나 걸었다.
내 딸 필리프와 혼인해야 루덩의 검찰관이 될 걸세.
앙리 4세에게 파리는 미사를 드릴만한 가치가 있었다.1 무소한테는 좋은 직책이 약혼녀의 처녀성을 아쉬워하고 프로테스탄트들의 비루한 농담을 들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조용히 혼례를 치른 뒤 필리프가 자신의 형기를 복역하게 됐다. 사랑 없는 혼인이라는 감옥에서 40년 유폐.
이듬해 11월 그랑디에가 생주앙 드 마르네 대수도원으로 부름을 받았다. 성직록을 두둑이 받는 보르도 대주교가 가장 좋아하는 관저들 중 하나인 거기서 그는 라로슈포제의 선고에 항의하여 낸 청원이 수락됐음을 알았다. 사목 활동 금지가 풀린 것. 이제 성 베드로 교회의 주임신부로서 역할을 다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수르디스가 그런 결정을 알리면서 우정 어리고 명백히 현명한 조언을 몇 가지 덧달았다.
보시게, 복권된다 해서 그대 적수들이 분노를 거둬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격노할 가능성이 많네. 그 적수들 수효가 상당한데다가 세력이 있는 만큼 루덩을 떠나 어디 다른 교구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차분한 생활을 위해서라도 말일세.
그랑디에가 제안을 숙고하겠다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는 루덩의 주임신부야, 적수들이 있어도 루덩에서 머물겠어, 아니, 그자들이 있기 때문에 버티겠어. 그자들은 내가 떠나기를 원하겠지, 좋아, 난 남아서 그자들을 바짝 괴롭혀 주겠어. 그런 이유 때문에 남기로 했다.
그건 또 그가 떠들썩한 충돌을 좋아했기 때문이며, 마르틴 루터처럼 화내기를 즐겼기 때문이다.
주임신부가 남기로 한 데에는 그 밖에 제법 명예롭다 할 만한 이유도 두엇 있었다. 루덩은 마들렌의 고향이야, 그녀가 고향을 떠나기란 아주 힘들겠지. 또 거기에 미더운 친구 다르마냑이 있지 않은가. 이제 그에겐 내 도움이 절실해. 이전에 내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했듯이. 아성 보존 여부를 둘러싸고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루덩을 떠난다면, 적을 앞에 두고 동맹을 깨는 짓이나 다름없으리니.
생 주앙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가 한 시골마을 사제관 곁에서 말을 멈추고 교회 마당에 선 아름다운 월계수 가지를 꺾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늙은 성직자가 기꺼이 허락했다.
야생 오리나 구운 사슴고기에 향을 내는 데 월계수 잎사귀만한 것도 없다오.
늙은 성직자의 말을 받아 그가 덧붙였다.
“승리를 기리는 데 월계수 가지만한 것도 없지요.”
그 월계수 가지를 들고 말 위에 앉아 루덩 거리를 의기양양하게 지나갔다.
그날 저녁, 거의 이태 동안 강요된 침묵 끝에 주임신부의 낭랑한 목소리가 성 베드로 교회의 둥근 지붕 아래서 다시 울렸다.
그러는 동안 약방의 박제 악어 밑에서는 음모자들이 패배를 인정하고 다음 행동을 우울하게 의논했다.
다음 싸움의 단계는 그들 예상보다 더 일찍 시작됐다.
그랑디에가 생 주앙에서 개선장군처럼 돌아오고 하룬가 이틀 지나서 아주 중요한 방문객이 도시에 들어와 ‘백조와 십자가’ 객사에 여장을 풀었다. 이 방문객은 로바르데몽 남작, 기엔 지방 항소법원의 수석판사요 최고 행정법원 판사인데다 이제 루덩 성벽 파괴를 감독하는 국왕의 전권대행이었다. 갓 마흔을 넘긴 사람치고는 나쁘지 않은 출세.

그의 이력은… 어떤 상황에서는 설설 기는 것이 허리 딱 펴고 걷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이동 방법이며, 기는 것들이 가장 독하게 물어뜯을 줄 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평생을 강자들 앞에서 체계적으로 기었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지혜의 결실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리슐리외 추기경 예하의 심복들 중 하나가 된 것.
이백 년쯤 지나 사람들이 말하리라.
아, 이 사람은 외모와 태도에서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나오는 유라이어 힙과 똑 닮았구나!
본때 없이 길쭉하고 흔들거리는 몸통, 끊임없이 비벼대는 축축한 손바닥, 남들 생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가 겸손하며 호의를 지니고 있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기… 찰스 디킨스가 자신의 주인공을 묘사한 것과 모든 게 일치했다.
꼼꼼하게 감추고 있는 악의도 그렇고, 절호의 기회다 싶으면 냉혹해지는 눈길도 그러했다.
이번이 로바르데몽에겐 두 번째 루덩 방문이었다. 지난해 다르마냑의 어린 자녀 세례식에 국왕 사절로 축하하러 왔었다. 그것 때문에 지방장관은 그가 미더운 친구라고 다소 순진하게 믿었다. 그러나 남작한테 친구란 전혀 없으며, 그는 오로지 권력자들한테만 충실했다. 그가 보기에 다르마냑은 그 범주에 들지 못했다. 국왕이 총애하는 신하일 뿐. 한데, 생각해 보라, 그 국왕은 재상한테 완전히 휘둘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 폐하께서는 다르마냑에게 아성을 해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하지만 예하께서는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고 결심하셨지. 그러니 이르든 늦든, 아마 이른 쪽일 게야, 왕은 약속을 철회할 것이 틀림없어. 그렇게 되면 이 총신은 자신이 그럴싸한 타이틀을 지녔을 뿐 실제로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겠지.
푸아티에로 떠나기 전에 로바르데몽이 지방장관을 예방하고 상습적인 서비스를 제공했다. 즉, 영원한 우정과 진실한 호의 운운. 루덩에 있는 동안에도 그는 다르마냑 부인에게 정성을 다하고 주임신부한테 아주 정중하게 대했다. 하지만 트렌캉이며 에르베, 메스멩 실리 등 추기경 지지자들과 남몰래 오랜 시간 밀담을 나누곤 했다.
(그랑디에의 첩보망도 약제사보다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2편 7 계속>)
관련 포스트: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 프랑스 왕이 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는 의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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