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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9.07.14 루덩의 악마들 4편 4
2019. 7. 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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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그가 펴놓은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졌다. 이야말로 징후야! 파리라니, 그것도 호두알만한 크기! 바알세불이 파리들의 명령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러가라! 성스러운 수난자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랑탕이 넘실거리는 화염 위로 소리쳤다. 

  파리가 기이하게 큰 소리를 윙윙 내며 날개 쳐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뉴스 데이의 이름으로…” 

 

The Devils of Loudun 1634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그 대신 발작하듯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열한이 숨 막혀 죽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는 거야! 사탄의 마지막 간계를 짓누르려고 랑탕이 연기 속으로 성수를 끼얹었다. 

  “물러가라, 불 뿜는 괴물아! 이 성수가 사탄의 요술을 깨부술 것이야!” 

  그게 먹혀들었다! 기침이 그쳤다. 단말마의 비명이 한 번 더 울리고는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수도사들이 경악스럽게도 화염 한복판에서 희끗거리는 물체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 

  “Deus meus, miserere mei Deus.”[각주:1]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내 적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발작적인 기침이 몇 번 더 나왔다. 곧 이어서 기둥에 묶은 밧줄이 사라지고 희생양이 이글거리는 통나무들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불길이 여전히 날름거리는 가운데 수사들이 계속 성수를 뿌리며 특유의 가락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갑자기 교회 첨탑에서 비둘기 떼가 날아 내려 넘실거리는 화염과 연기 기둥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새떼를 향해 궁수들이 미늘창을 흔들고 랑탕과 트랑킬이 성수를 끼얹기 시작했다. 하지만 헛수고. 비둘기들은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연기 속으로 뛰어들고 불길에 날개를 그슬리며 뱅뱅 감돌기만 했다. 

  양 진영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주임신부의 적수들은 새들이 악마 군단임이 확실하며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고 떠들었다. 주임신부의 친구들은 비둘기들이 성령의 엠블럼이요 그가 결백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그것들이 인간과 다른, 그저 저희 본능에 따르는 비둘기 떼였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은 듯싶다

 

  장작불이 다 수그러들자 형리가 유해를 삽으로 떠서 나침반의 각 기본 방위마다 한 삽씩 흩뿌렸다. 그러자 군중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손가락 데어가며 뜨거운 가루를 뒤적이면서 이빨과 머리뼈며 골반 뼛조각들과 불탄 살점으로 보이는 꺼먼 덩어리 따위를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몇몇은 그저 기념품 사냥꾼인 것이 분명하지만, 대다수는 행운을 안기거나 미지근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부적으로, 두통이나 변비나 누군가의 원한을 막아주는 호부로 삼기 위해 성유물을 찾았다

  이 시커먼 물건들은 주임신부가 결백하든, 아니면 그에게 뒤집어씌운 죄를 정말 범했든 상관없이, 기적 같은 효능을 지닐 것이야! 

 

  이적을 행하는 힘은 성유물의 원천이 아니라 그것이 얻은 평판에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 존재들 중 일부는 광고만 잘 돼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든 건강이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루르드[각주:2]부터 마법에 이르기까지, 갠지스 강에서부터 특허 의약품이며 에디 부인에 이르기까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각주:3]의 이적 행하는 팔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보고 숭배하도록 제프리 초서[각주:4]의 면죄부 판매인이 유리잔에 넣어 다닌 ‘돼지 뼈다귀들’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만약 수도사들 말처럼 그랑디에가 마법사였다면, 아주 좋지. 마법사 유해에는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단 말이야. 만약 주임신부가 무죄였다고 해도 괜찮아, 그는 수난자가 되고 유해는 성스럽게 여겨질 거야. 

  잠깐 새 유해가 다 사라졌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지독하게 피곤하고 목도 마르지만 주머니에 두둑하게 채운 성유물에 좋아하면서 마실 것과 신발 벗을 기회를 찾아 각자 흩어졌다.

 

  그날 저녁 아주 짧은 휴식과 아주 가벼운 요기 뒤에 수도사들이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다시 모였다.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행하자, 그녀가 적당한 발작 상태로 들어서서 랑탕 수사 물음에 대답했다. 그 검은 파리는 바로 바루크였어, 주임신부와 사이좋은 악마 말이야. 

  한데 어째서 바루크가 감히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진 것이지? 

 

엑소시즘을 받은 원장수녀

 

  잔느가 특유의 곡예 동작을 뽐내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가 세우고는 마침내 답변했다. 바루크는 그 책을 불속에 내던지려고 한 거야. 

  그건 다 그럴 듯하게 들렸고, 그러자 수도사들이 일단 엑소시즘을 여기서 멈추고 다음날 아침 중인환시 하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수녀들을 성 십자가 교회로 데려갔다. 관광객들이 아직 도시에 많이 남아 있던 터라 교회가 인파로 미어터졌다. 원장수녀에게 들붙은 악마를 불러냈다. 평범한 의식이 끝난 뒤 원장수녀는 자신이 이사카론이며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악마라고 밝혔다. 내 안에 있던 다른 악마들은 다 지옥으로 갔어, 요란한 파티로 그랑디에의 영혼을 환영해야 하니까! 

  아주 세세한 질문들을 받고 잔느가 엑소시스트들이 한 말을 모두 확실히 보증했다. 맞아, 그랑디에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건 늘 사탄을 의미한 거야, 또 악마를 부인할 때 그건 실제로 그리스도를 부인한 거지. 

 

  랑탕은 그랑디에가 지옥에서 어떤 형벌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원장수녀가 최악의 형벌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흠, 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 어떠냔 말이다! 

  잔느가 한참이나 끙끙대다가 대답했다. “그랑디에는 죗값에 맞게 특별한 형벌을 받지, 특히 정욕의 죗값을 톡톡히 치렀어.” 

  그러면 처형은 어땠나? 마법사가 고통 겪지 않도록 악마가 도와주었나? 

  이사카론이 대꾸했다. 아, 아니야, 사탄은 엑소시즘에 눌려서 기가 꺾였어. 만약 불길에 성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주임신부는 고통이란 걸 못 느꼈을 거야. 하지만 랑탕과 트랑킬, 미카엘이 애쓴 덕분에 극심한 고통을 맛봤지. 

  그런 것쯤이야 지금 그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다른 엑소시스트가 소리쳤다. 랑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지옥 쪽으로 몰아갔다. 지옥의 많은 방들 중 그 마법사는 어디에 떨어졌지? 루시퍼가 그자를 어떻게 맞이했나? 지금 이 순간 그자에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잔느 수녀의 이사카론이 수도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사카론의 상상이 메말랐을 때, 아그네스 수녀가 도우러 나섰다. 그녀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 쓰러졌고, 그녀 입을 통해 악마 베헤리트가 제 얘기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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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이 보기에 랑탕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넋이 빠진 사람 같았다. 어디 아픈 겁니까? 

  랑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프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개운치 못한 점이 있소. 죄인이 그리에 신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했는데,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어. 글쎄, 고해를 가로막아서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아닌가? 

  동료들이 갖가지로 안심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랑탕이 고열에 빠졌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게야. 날 벌하시는 게야.” 연신 중얼거렸다. 

 

  외과의 만누리가 사혈을 하고 약제사 아담이 관장기를 통해 하제를 넣었다. 고열이 가라앉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랑탕이 이제 헛것을 보고 듣기 시작했다. 고문 받으며 그랑디에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장작불 위에서 적수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악마들이 떼거리로 어른거렸다. 그들이 그의 몸으로 들어왔고, 광란 상태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발길질하고 베개를 물어뜯게 만들고, 가장 무서운 신성 모독의 말들을 그 입에 가득 채웠다

 

  9월 18일, 그랑디에 화형 이후 꼭 한 달 지나, 자기한테 병자성사를 베풀던 성직자의 손에서 십자가를 쳐냈다. 그러고는 랑탕이 급사했다. 

  로바르데몽이 호사한 장례비를 댔고, 트랑킬 수사가 설교에서 고인을 신성함의 모델이라 불러 추켜세우며 사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선포했다. 그랑디에를 징벌했다 하여 하나님의 충실한 종에게 복수한 것이오. 

 

  다음 차례는 외과의 만누리였다. 랑탕 수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번은 밤중에 포트 뒤 마트레이 인근에 사는 어떤 병자에게 사혈을 해주러 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롱불 든 하인을 앞세우고 가던 그가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임신부는 악마의 표식들 때문에 바늘로 찔리던 그날처럼 알몸으로 성채 바깥 기슭과 코르들리에 수도원 정원 사이 그랑파베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만누리가 발을 멈추었다. 그가 시커먼 허공을 응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뭘 원하느냐!” 하고 묻는 소리를 하인이 들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외과의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금방 땅바닥에 엎드려 애절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역시 숨이 끊어졌다. 

 

  이제 루이 쇼베 차례가 됐다. 마녀재판이라는 대단히 멍청한 짓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반듯한 치안판사들 중 한 사람. 원장수녀와 많은 수녀들이 그가 마법을 한다고 비난했고, 그들의 고발과 증언을 바레는 자신의 교구에서 여러 마귀 들린 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쇼베는 추기경이 그 광기 어린 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미칠 화에 지극히 겁을 내는 바람에 정신이 상했다. 검은 멜랑콜리에 빠지고 정신쇠약까지 보이다가 겨울이 가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트랑킬은 다른 사람들보다 근성이 더 강했다. 네 해가 지나 1638년 악마에 지나치게 몰두한 후과에 마침내 굴하고 말았다. 그랑디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악마들을 더 키웠고, 터무니없는 공개 엑소시즘으로 악마들이 계속 횡행하게끔 했다. 이제 악마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금물이다. 트랑킬은 제가 열심히 뿌린 것을 거둬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환영들이 드물게 나타나고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악마 개꼬리와 레비아탄이 조금씩 우위를 점하게 됐다. 말년에 트랑킬은 제가 그렇게나 정성 들여 히스테리를 조장했던 수녀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욕설을 내뱉고, 혓바닥을 빼물고, 쉰 목소리를 내고, 개처럼 짖어대고,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푸친회 기록을 보면, ‘악취 풍기는 지옥 올빼미’라 명명한 악마가 동정을 버리고 겸허와 인내와 믿음과 헌신을 다 내팽개치라 유혹하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가 성처녀와 성 요셉을, 성 프란체스코, 성 보나벤투라[각주:5]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마귀 들림이 더 악화되기만 했다. 

 

  1638년 성신강림대축일에 트랑킬이 마지막으로 강론했다. 이삼일 더 그럭저럭 미사를 집전하고 나서 자리보전하고 말았다. 원인은 심신증이 분명하지만 상당히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는 추잡하고 외설한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야말로 악마 계약의 일부인 것이 분명했다! 음식물을 조금 넣을 때마다 악마들이 그를 아주 건강한 사람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격렬하게 구역질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한 두통과 심장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건 ‘갈레노스나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에도 언급되지 않은 종류였다.’ 주말에 이르러 ‘오물과 악취를 연신 내뿜는데, 어찌나 역겨운지 수발드는 이들이 당장 치웠음에도 방안에 있기가 끔찍할 정도였다.’ 

 

  성신강림대축일 다음날인 월요일 병자성사를 베풀게 됐다. 한데 악마들이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나와 침대 곁에 있던 다른 탁발수사의 몸으로 들어갔다. 새로 악귀 들린 사람이 어찌나 광포하게 굴든지 동료 대여섯 명이 겨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끌어내기 전에 그 사람은 거의 숨이 끊긴 트랑킬 수사를 마구 걷어차려고 들었는데, 그걸 말리느라 다들 무진 애를 먹었다. 

  그 대신 장례는 화려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시신으로 몰려들었다. 혹자들은 시신에 묵주를 놓았고, 혹자들은 법의 조각을 베어냈다. 성물처럼 간직하려고 말이다. 밀려드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관에 금이 가고, 각자가 자투리라도 얻으려고 서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시신이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존중받을 만한 이들 몇몇이 예절도 모르는 자들을 내쫓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신부는 벌거숭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법의를 쥐어뜯으면서 시신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트랑킬 신부의 법의 조각들도 이제 성유물이 됐다. 그가 산 채로 불태운 사람의 유해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 불분명해졌다. 마법사는 수난자 같이 죽고, 그의 악마 같은 집행자는 죽은 뒤 성인이 된 것. 그러나 영혼에 바알세불이 들어앉은 성인으로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였으니… 페티시는 그저 페티시일 뿐이라는 점!![각주:6]

  (8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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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1. 하느님,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틴어) [본문으로]
  2. Lourdes - 프랑스 남서부 마을, 성모 마리아가 기적의 치료를 해준다고 하는 성지 [본문으로]
  3. Francis Xavier (1506–1552) - 현 에스파냐 지역인 나바르왕국에서 출생. 로마가톨릭 선교사, 예수회 공동 설립자, 성 이냐시오의 제자. 그의 성유물 중 오른팔은 1614년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분리한 뒤 로마에 있는 교회 은제 성골함에서 전시돼. [본문으로]
  4. Geoffrey Chaucer (1343–1400) - 영국문학의 아버지, 중세 잉글랜드 최고 시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구역에 최초로 안장되다. ‘면죄부 판매인 이야기’는 <켄터베리 이야기>에 실렸다. 사람들 속이는 방법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교훈으로 끝난다. [본문으로]
  5. St. Bonaventura (1221–1274) - 이탈리아 중세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알바노 추기경, 가톨릭 교부. [본문으로]
  6. fetish – 맹목적 숭배물, 미신의 대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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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 기둥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수사

 


 

  그 사이 랑탕과 트랑킬은 자백받지 못한 상황을 만회하려 들었다.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다가와서 묻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마법사가 죄를 인정하지 않더군,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말이오. 그 이유야 빤하지, 그자가 하나님을 부르며 힘을 달라고 호소했는데, 그자의 하나님이란 루시퍼이고, 그 루시퍼가 고통을 못 느끼게 만든 게요. 그러니, 우리야 하루 종일 쐐기를 박고 또 박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런 확신이 맞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엑소시스트인 미카엘 수사가 작은 실험을 했다. 며칠 뒤 실험 결과를 공개 강연에서 전했는데,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기록했다. 

  「이 미카엘 수사는 악마가 그랑디에한테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즉, 지옥의 고통을 겪으며 무릎이 다 으스러진 채 녹색 담요를 덮고 장의자에 널브러져 있어서, 수사가 담요를 거칠게 걷어내고 부서진 정강이와 무릎을 쿡쿡 찔렀는데도 끽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카엘 수사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첫째, 그랑디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둘째, 사탄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다. 셋째, (수사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그가 호의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실제로는 악마를 부른 것이며, 악마를 증오한다고 말할 때 그건 하나님을 증오한다는 의미였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기둥에 묶여서 화염 맛을 톡톡히 체감하게끔 우리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미카엘 수사가 사라지자 다시 전권대행 차례가 됐다. 로바르데몽이 자신의 제물 곁에 두 시간 넘게 머물면서 서명을 받기 위해 갖은 설득 기술을 다 동원했다. 서명만 받으면, 자신이 취한 불법적 절차가 다 무마되며, 추기경에 대한 평판이 깔끔해지고, 또 히스테리 부리는 수녀들이 고해사제들에 의해 체제의 적들을 고소하도록 유도되는 모든 경우에서 앞으로 종교재판 식의 수법을 써먹어도 괜찮을 터였다. 서명을 꼭 받아야 했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 설득을 지켜본 가스탱은 ‘그런 번드르르한 근거며 그런 감언이설이며 위선적인 탄식과 흐느낌 같이’ 가증스러운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 어떤 회유에도 그랑디에는 그가 알고 신이 알듯이 (전권대행도 분명 마찬가지이고) 전부가 날조인 자술서에 서명한다는 건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로바르데몽이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간수장 라그랑제에게 형리들을 부르라고 지시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죄인을 끌고 가는 행렬

 

  그들이 왔다. 그랑디에한테 녹황색 긴 셔츠를 입히고 목에 밧줄을 걸고 마당으로 끌고 나갔다. 나귀 여섯 마리를 맨 수레가 대기 중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죄인을 들어 올려 장의자에 묶었다. 마부가 말들한테 고함을 질렀다. 행렬이 천천히 대로로 들어섰다. 일단의 궁수들이 앞에 서고 로바르데몽과 그의 온순한 재판관 열셋이 수레 뒤에서 걸었다. 

  대로 한가운데서 수레가 멈추고, 둘러선 시민들한테 판결문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낭독됐다. 나귀들이 또 움직였다. 

  그 다음엔 (주임신부가 여러 해 동안 의젓한 풍모로 드나들던) 성 베드로 사원 정문 곁에 와서 행렬이 또 멈췄다. 두 손에 2파운드 양초를 들리고 의자에 묶인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들어 내리고는 판결문에 적힌 대로 무릎 꿇고 죄를 사해 달라고 빌게 했다. 그러나 무릎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에, 땅바닥에 내려놓자 그가 얼굴을 땅에 박으며 엎어졌다. 형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 순간 교회에서 코르들리에회 감독관인 그리에 수사가 달려 나와 경비하는 궁수들을 밀치고 몸을 굽혀 죄수를 끌어안았다. 크게 감동한 그랑디에가 신부에게 자신과 교단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사실, 이 코르들리에 교단만이 루덩 전역에서 주임신부의 적들에게 협조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리에 수사가 유죄 판결 받은 이를 위해 기도하겠노라 약속하면서 하나님과 구세주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모친의 전갈을 전했다. 모친께서는 성모마리아 발밑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그대에게 축복을 보냈다오. 

 

  두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몰려든 군중이 짠한 마음이 되어 수군거렸다. 수군거림을 듣고 로바르데몽이 대노했다. 꾸민 대로 척척 되는 일이 어째 하나도 없는 거지?! 정상대로라면 어수선한 군중은 악마와 내통한 자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린치를 가해야 마땅한 것을. 한데 그러기는커녕 그의 가혹한 운명을 안타까이 여기고 있다니! 

 

  그가 황급히 행렬 앞으로 뛰어 나와 경비병들에게 코르들리에회 수사를 내쫓으라고 새된 목소리로 명령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열성을 발휘하여 그랑디에의 배코 친 머리를 곤봉으로 갈겼다. 

 

  질서가 복원되자 주임신부가 판결이 명한 대로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국왕과 사법부에 용서를 구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비록 도덕적으로 크나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 죄는 절대 저지르지 않았소이다.     

  형리들이 그를 다시 수레에 태우는 동안, 탁발수사 하나가 관광객들과 주민들에게 지루하고 장황한 훈계를 해댔다. 

  참회하지 않은 마법사를 위해 기도할 생각일랑 절대 하지들 마시오! 그건 곧 여러분이 아주 무서운 죄를 짓는다는 뜻이니까!! 

 

고문을 당해 하반신이 일그러진 그랑디에

 

  행렬이 움직였다. 우르술라회 수녀원 정문 앞에서 하나님과 국왕과 정의에 용서를 비는 의식이 재현됐다. 그러나 법정 서기가 원장수녀와 수녀들한테도 용서를 간청하라고 명령하자, 죄수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친 적이 없지만, 저 여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는 있소이다. 

 

  그러다가 필리프 트렌캉의 남편이자 가장 사나운 적수인 무소를 보자 지난 일은 다 잊어 달라 청하고는 본연의 정중함을 갖춰 덧붙였다. “난 당신의 온유한 종으로 죽겠소이다.” 무소가 얼굴을 팩 돌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랑디에의 적수들이 모두 그렇게 비기독교적인 가혹함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랑디에가 부적절한 행위로 기소된 1차 재판 때 그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 성직자들 중 한 사람인 베르니에가 군중을 헤치고 나와서 용서를 청하며 그를 위해 미사를 올리겠다고 했다. 주임신부가 그 손을 잡아 감사의 입맞춤을 했다. 

 

  성 십자가 광장에는 육천이 넘는 인파가 그 절반을 수용하기에도 벅찬 공간으로 들어서려고 밀고 밀렸다. 창문들이 전부 임대됐고, 심지어 지붕과 교회 홈통 주둥이 위에도 구경꾼들이 자리 잡았다. 판사들과 로바르데몽의 특별한 친구들을 위해 특별관람석이 설치됐지만, 어중이떠중이가 다 차지했다가 경비병들이 들이대는 창끝에 밀려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일진일퇴의 격전을 치르고 나서야 VIP들이 겨우 저희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인사들조차 지정 좌석까지 가는 데 무진 애를 먹었다. 죄수를 실은 수레가 장작더미 한가운데 선 기둥까지 마지막 백 야드를 가는 데도 자그마치 삼십 분이나 걸렸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호송병들이 미늘창을 휘두르며 길을 내야 했다. 

 

  성 십자가 교회 북쪽 담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높이 15피트 되는 굵은 기둥이 서 있었다. 기둥 밑에는 통나무와 나뭇가지, 짚더미가 잔뜩 쌓이고, 희생자가 으스러진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만큼 장작더미 2피트쯤 위로 작은 철제 의자가 기둥에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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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중대한 성격과 거대한 악평에도 불구하고 처형에 든 비용은 지극히 수수했다. 화형에 드는 장작과 죄인을 매단 기둥 비용으로 들랴르라는 사람한테 19 리브로 16 수를 지불했다. 1 파운드에 3 수 4 데니르 꼴로 무게 12 파운드인 철제 의자와 의자를 기둥에 연결하는 데 든 쇠못 여섯 개 값으로 대장장이 자크가 42 수를 받았다. 시농 시의 본당 신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궁수들을 파견하느라 빌린 말들 하루 임대, 또 나귀 여섯 필 하루 임대와 짐마차와 마부 둘에 비용 108 수가 들었다. 죄수의 셔츠 두 벌 (고문당할 때 입은 것과 화형 당할 때 입은 녹황색 셔츠) 값으로 4 리브르가 들었다. 공식 사죄 의식에 쓴 2 파운드짜리 양초는 값이 40 수이고, 형리들에게 제공한 포도주 값이 13 수였다. 여기에 성 십자가 교회 문지기와 조수들에게 준 수고비까지 계산하면, 도합 29 리브로 2 수 6 데니르가 들었다.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내려 철제 의자에 앉히고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 교회를 둥지고 앉은 그에게 특별관람석과, 또 한때 사제관만큼이나 편하게 지내던 저택 전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저택 담장 안에서, 그가 아담과 만누리에게 상처 되는 농담을 여러 번 던지고, 캐서린 암몽의 편지들을 낭독하여 모임을 즐겁게 하고, 젊은 처녀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며 유혹하고, 가장 좋은 친구를 철천지원수로 만들었다

  그 루이 트렌캉은 이제 자기 거실 창가에 앉아 있고, 그 곁에 참사회 위원 미뇽과 티보가 있었다. 한때 우르뱅 그랑디에였다가 이제 배코 친 불구자로 변한 그를 바라보며 세 사람이 의기양양하여 낄낄거렸다. 

 

  주임신부가 고개를 들다가 그들과 눈길이 마주쳤다. 티보가 오랜 지기한테 하듯 손을 흔들고, 트렌캉이 물 탄 백포도주를 마시다가 제 사생아 손녀의 아비를 위해 축배를 들었다. 

  그랑디에가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일면 수치심 때문에, 왜냐면 라틴어 수업과 절박하게 눈물 흘리는 처녀를 나 몰라라 한 것이 떠올랐으니까. 또 저들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참담한 심정이 되어 하나님이 지금 여기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혹여 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간수장 라그랑제.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짓을 용서해 달라 청하고 두 가지를 약속했다. 군중에게 고별사를 행할 수 있도록 하겠고, 장작에 불을 붙이기 전에 목 졸라 질식시키겠습니다. 그랑디에가 감사를 표했다. 간수장이 몸을 돌려 지시하자, 형리가 즉시 올가미를 준비했다. 

 

  그러는 중에 탁발수사들은 엑소시즘을 수행하느라 분주했다. 그들 입에서 라틴어가 흘러 나왔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의 적들이 놀라 달아나리라. 유다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다윗의 뿌리를 차지했구나. 이제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이름으로, 그의 아들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한 성령의 이름으로 너, 나무의 축생을 물리치나니…”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 연설하는 두 수도사

 

  그들이 장작더미와 짚단과 또 이글거리는 석탄이 담긴 화로에 성수를 뿌렸다. 그들은 땅과 허공에, 희생자와 형리들과 구경꾼들한테도 성수를 뿌렸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저 마법사가 극도의 고통을 겪지 않게끔 악마가 방해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야. 

 

  주임신부가 군중을 향해 몇 번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탁발수사들이 그 얼굴에 성수를 끼얹거나 철제 십자가로 입술을 때렸다. 그가 가격을 피하자,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배교자가 구세주를 외면하는구나! 랑탕 수사는 시종일관 범죄를 시인하라고 요구하며 “Dicas!” 하고 으르렁댔다. 

 

  이 레치타티보는 구경꾼들 뇌리에 박혀서, 짧고 참담한 여생 중에 랑탕은 이미 루덩에서 ‘디카스 수도사’로 유명해졌다

  “Dicas! Dicas!” 

  그랑디에가 시인할 것이 하나 없다고 천 번째로 대꾸하고 덧붙였다. 

  “자, 이제 나한테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죽이시오.” 

  랑탕이 처음엔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비기독교적인 증오를 보임에 군중이 항의하자, 그가 장작더미 위로 기어올라 주임신부 볼에 입맞춤했다. 

  “유다!” 누군가가 외치자 많은 사람들이 가세했다. 

  “유다, 유다!”  

 

  그 함성을 듣자 랑탕이 걷잡을 수 없이 화를 내며 장작더미에서 뛰어내리더니 짚단을 들어 화로에서 불붙이고는 불덩이를 희생자 얼굴 앞에 대고 흔들었다. 네가 누구인지 고백해라! 사탄의 하수인임을 자백하란 말이다! 참회하게 만들겠어, 네 주인을 부정하게끔 만들겠다! 

 

  “수도사여,” 그랑디에가 차분하고 온유한 품위를 보이며 입을 뗐는데, 그건 자신을 박해하는 자의 거의 광적인 증오와 묘하게 대비됐다. “난 이제 곧 하느님을 만날 터이고, 그분께서 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실 것이오.” 

  “인정해라!” 수도사가 절규하다시피 했다. “인정해! 넌 한순간 후면 죽을 것이야!” 

  “한순간 후면...” 주임신부가 느릿느릿 되풀이했다. “한순간 후면, 그때 난 공정하고 무서운 심판장으로 갈 터이고, 존경하는 수도사여, 당신도 곧 그 심판에 부름을 받을 게요.”

 

  랑탕이 그 뒷말을 다 듣기도 전에 들고 있던 횃불을 장작더미에 놓인 짚단 위로 던졌다. 밝은 오후 햇빛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불꽃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지면서 마른 나뭇가지 다발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바지직 소리를 내며 장작더미가 금방 타올랐다. 상대에게 뒤질세라 미카엘 수사가 장작더미 맞은편에서 짚단에 불을 놓았다. 퍼런 연무가 바람 한 점 없는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기둥 주변에 쌓인 나뭇단 하나에 불이 붙으면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장작더미에 불을 던지는 수도사

 

  죄수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흥겨운 불꽃 군무를 보게 됐다.   “나한테 약속한 게 이런 것이오?” 그가 절박하게 항의하는 투로 간수장을 불렀다. 그리고 갑자기 신성한 존재가 사라진 듯했다.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고, 그저 공포뿐이었다

 

  간수장이 화가 잔뜩 나 탁발수사들에게 고함지르며 가까이 있는 불길부터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꺼야 할 불길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트랑킬이 주임신부 뒤편에 쌓인 짚단에 불을 붙이고, 랑탕이 화로에서 다른 횃불을 또 붙였다. 

 

  “그의 목을 졸라라!” 간수장이 지시했다. 그러자 군중이 그 외침을 따라했다. “목을 졸라라, 목을 졸라!” 

  형리가 올가미를 가지러 달려갔지만,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몰래 로프에 매듭을 만들어 놓은 바람에 당장 쓸 수가 없었다. 매듭을 다 끌렀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단말마의 비명에서 구해 주려던 죄인 주변으로 이미 화염이 장벽을 치고 연기 커튼이 자욱했다. 그 동안에 수도사들은 성수 단지를 내두르며 장작불에 끝까지 남은 악마들을 내쫓았다. 

  “물러가라, 마귀들아!” 

  벌겋게 달구어진 통나무들 사이에서 성수가 쉬쉬쉬 하는 소리를 내며 금세 수증기로 변했다. 화염 장벽 저편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래, 엑소시즘이 먹혀들었다는 뜻이지! 탁발수사들이 감사 기도를 읊느라 행동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갱신된 신념과 배가된 힘으로 다시 작업에 나섰다.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3

루덩의 악마들 9편 5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7-1편 3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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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그 다음에 일어난 사건은, 이 기나긴 시리즈에서 결국 주임신부를 파멸로 이끈 결정적 사건은, 다소 터무니없는 장난이었다. 이 장난은 젊은 수녀들과 상급 학생 몇몇이 어린 학생들과 독실하고 순진한 늙은 수녀들을 놀래 주려고 꾸민 것으로, 핼러윈 때 흔히 볼 수 있는 유령과 폴터가이스트[각주:1]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수녀들과 기숙학생들이 살고 있는 건물은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에 싸여 있었다. 그런 까닭에 늙은 영적 지도자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연 수의를 둘러쓴 형체가 수녀원 숙사 복도에서 배회하는 장면이 목격됐을 때, 거기 거주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유령이 처음 출현한 뒤 문마다 빗장이 단단히 걸렸다. 그러나 유령들은 길잡이를 따라 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오거나 방안에 있는 제 5열의 도움으로 숨어들었다. 한밤중에 침대 욧잇들이 벗겨지고 자고 있는 얼굴들을 얼음장 같은 손길이 더듬었다. 머리 위 다락방에서 신음소리와 쇠사슬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소녀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존중받는 수녀들이 성호를 그으며 성 요셉을 불렀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유령들은 이삼일 잠자코 있다가 또 나타나는 것이었다. 기숙학교와 수녀원 전체가 패닉에 휩싸였다

 

  참사회 위원 미뇽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장난에 참여한 여학생들이 고해 시간에 죄다 밝혔으니까. 침실에 나타나는 인큐버스, 기숙사를 배회하는 유령들, 다락에 숨어든 몹쓸 장난꾼들… 그 정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줄기 빛이 퍼지고 섭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퍼뜩 깨단했다. 

  그래, 이야말로 최상의 조건이군! 이걸 이용하면 되겠어! 

 

  그가 장난꾼들을 꾸짖고는, 이 몹쓸 짓에 관해 누구한테든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장난질의 희생자들한테는 그들이 본 게 유령이 아니라 악마들임에 틀림없다고 말함으로써 새로운 공포를 불어넣었다. 또 외설스러운 환영에 시달리는 원장수녀와 수녀들한테는 밤마다 찾아오는 방문객이 꿈이 아니며 실제로 사탄의 물리적인 희롱이 분명하다고 확실하게 설명했다

 

  그 뒤 그가 주임신부의 강력한 적대자 네댓 명과 함께 시내에서 5킬로쯤 떨어진, 트렌캉의 교외 저택에 모였다. 그 전략협의회 자리에서 미뇽은 수녀원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설명하고,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그랑디에한테 강력한 타격을 안길 수 있겠다고 선동했다. 서로 머리를 맞댄 결과 비밀 병기들과 심리전과 초자연적 정보부 따위를 죄다 갖춘 작전계획이 수립됐다. 음모자들이 희희낙락했다. 

  그자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번에는 절대 못 빠져나갈 게야! 

 

  작전 계획에 따라 미뇽이 카르멜회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유능한 엑소시스트. 

  수도사들 중에 적임자 한 분 안 계시겠습니까? 

  수도원장이 적극 천거하고 나섰다.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을 추천해 주었다. 성 미셸의 요셉 수사, 성 샤를의 피에르 수사, 앙투안 수사. 

 

   미뇽의 주도로 그들이 간단치 않은 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그들 작전은 아주 성공적이어서 불과 며칠 만에 아주 늙은 두셋을 제외하고 수녀들이 모두 밤마다 주임신부 형상의 악마를 보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수녀원 밖으로 새나가기 시작했다. 소도시 주민들이 다들 수군댔다. 

  아, 글쎄, 그 착한 수녀들이 다 악마에 씌웠다지 뭐야. 그 악마들이 저 도깨비 같은 그랑디에의 사주를 받아서 수녀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지? 

  당연히 프로테스탄트들이 가장 좋아했다. 

  저런, 저런, 로마교황의 성직자가 우르술라회 수녀원 전체를 타락시키려고 사탄과 밀통하다니! 라 로셸을 무참히 함락시키니까 이런 변이 생기는 거야! 

 

  한데 당사자는 그런 수군거림에 그저 어깨 한 번 추썩이는 것으로 반응하고 말았다. 나로서야 원장수녀나 그녀의 정신 나간 자매들을 한 번 본 적도 없는 걸. 그 실성한 여인들이 나에 관해 무슨 얘기를 지껄이든, 그건 그들 정신질환의 소산일 뿐이오. 그러니까, 님포마니아[각주:2]와 결합된 멜랑콜리라는 질환이야. 남자들과 접촉 차단된 가엾은 여인들이 인큐버스와 교접한다고 상상할 만도 하지. 

 

  그런 촌평을 전해 듣자 미뇽이 미소만 가볍게 지으며 덧붙였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웃는 게야. 

 

우르술라회 수녀원에서 엑소시즘을 집행하다

 

  몇 달 동안 악마들과 영웅적으로 씨름하면서도 마귀 들린 여인들한테서 퇴마 작업이 아주 힘겨운데다 성과가 별로 없자 미뇽이 지원군을 요청하게 됐다. 

  먼저 부름받은 사람은 피에르 랑지에, 베니에 교구의 주임신부. 그는 교구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주교의 앞잡이라는 사실 때문에 다들 꺼려했다. 참사회 위원 미뇽이 일부러 랑지에를 초빙한 것은 상부에서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마귀 들림과 엑소시즘이 다 공식적이고 교규에 합당한 작업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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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지에한테 다른 신부가 또 합류했는데, 그는 기질이 전혀 달랐다. 인근 시농 도시에 있는 생 자크 교구의 주임신부인 바레는 하나님보다 악마를 훨씬 더 실제적이고 흥미로운 존재로 보는 부정적인 기독교인 축에 들었다. 그는 모든 것에서 ‘갈라진 발굽’[각주:3] 자국을 보았으며 인간 삶에서 유별나거나 파멸을 초래하거나 지나치게 즐거운 사건은 죄다 사탄의 짓으로 인식했다. 무엇보다도 사악한 벨리아르바알세불과 맞서 드잡이하기를 즐겼고,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하는 짓이 악귀 들린 사람들을 조작해 내고는 엑소시즘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의 수고 덕분에 시농 도시에는 광란하는 처녀들이며 마법에 걸린 아낙네들이며, 또 어떤 마법사들의 악의적인 주문 때문에 부부간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남편들로 득실거렸다. 그의 교구에서는 그 누구도 삶이 따분하다고 불평할 수 없었다. 교구 주임신부와 악마가 있는 한 지루한 순간이란 결코 없었으니까

 

  미뇽의 초대를 바레가 잽싸게 수락했다. 며칠 뒤 제 교구의 가장 광적인 신도들로 구성된 행렬을 이끌고 바레가 루덩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문을 다 닫아 걸고 엑소시즘이 진행됐다는 얘기를 듣고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성스러운 작업을 어떻게 많은 사람한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게요! 군중이 다 보고 신앙심을 더욱 굳힐 기회를 왜 안 주는 거요? 

  그래서 우르술라회 수녀원 문들이 활짝 열리고, 호기심에 끌린 무리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미 세 번째 시도에서 바레는 원장수녀를 심각한 발작 상태로 몰아가는 데 성공했다. ‘이성과 범절을 상실한’느가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굴렀다. 구경꾼들이 매우 즐거워했다. 특히 양쪽 허벅지가 허옇게 드러날 때 더 그랬다. 

 

엑소시스즘 때 바닥에 뒹구는 잔느

 

  많은 ‘격한 몸짓과 저주와 으르렁거림과 입안 뒤쪽 이빨 두 개가 부러질 정도로 이빨 갈기’가 끝난 뒤 마침내 악마가 신부의 명령에 순종하여 제물을 평온하게 놔두었다. 원장수녀가 기진하여 누워 있고, 바레가 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어서 참사회 위원 미뇽의 차례가 되어 클레어 수녀를 택했다. 또 요셉 수사가 보조 수녀를, 랑지에 신부가 가브리엘 자매를 맡았다. 퍼포먼스는 해가 떨어져서야 끝났다. 구경꾼들이 가을 석양 속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야아, 지난번에 난쟁이 둘과 조련된 곰들을 데리고 이동 서커스단이 다녀간 이래로 우리 한적한 루덩 시에서 이렇게 멋진 쇼를 본 건 처음이야! 

  암, 그렇고말고, 게다가 서커스와 달리 여기서는 구경꾼들한테 땡전 한 닢 안 받잖아? 

  아, 그래, 그들이 헌금 쟁반을 들고 다니긴 했지만, 은화 대신 동화를 던진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도 않는 걸. 

 

  이틀 지나 1632년 10월 8일 바레가 처음으로 큰 승리를 거뒀다. 불쌍한 원장수녀 육신에 똬리를 튼 일곱 악마들 가운데 하나인 아스모데우스를 내쫓은 것이다. 귀신들린 여인의 입을 통해 아스모데우스는 그녀 아랫배에 단단히 숨어 있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건 바레가 악마와 두 시간 넘게 사투를 벌인 끝에 올린 전적인데, 그 과정은 이랬다. 

 

  수녀원 숙사 아치 밑에서 라틴어가 연신 낭랑하게 울렸다. 

  "Exorcise te, immuundissime spiritus, omnis incursio adversarii, omne phantasma, omnis legio, in nomine Domini nostri Jesus Christi; eradicare et effugare ab hoc plasmate Dei.”[각주:4]

  이어서 성수를 듬뿍 뿌리고, 고통 받는 여인에게 두 손을 얹고, 영대로 덮고, 성물들을 접하게 하고, 라틴어 기도문이 다시 울렸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관 이름으로, 너의 조물주와 세상의 조물주 이름으로, 너를 지옥 불구덩이로 내던질 권세를 지닌 이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케케묵은 뱀아, 교회 품으로 돌아가야 할 이 주님의 종복한테서 두려움과 환난을 다 끌어안고 속히 물러가거라.” 

  그러나 아스모데우스가 물러가기는커녕 깔깔대며 신을 모독하는 말을 몇 마디 지껄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패배를 인정했겠지만 바레는 달랐다. 원장수녀를 제 독실로 옮기라 이르고 급히 사람을 보내 약제사를 데려오게 했다. 

 

관장기는 17세기에 주요 의료도구

 

  아담이 제 직업의 고전적 상징인 관장기를 들고 달려왔다. 그렇게 커다란 구리 관장기를 오늘날에는 몰리에르 코미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17세기에는 주요 의료 도구였다. 아담이 관장기에 성수를 가득 채운 뒤 원장수녀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아스모데우스가 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감지하고 히스테리를 부렸다. 하지만 헛수고. 원장수녀의 두 팔과 두 다리가 묶이고 뒤틀리는 몸통을 강한 손들이 억눌렀다. 아담이 상당한 기술을 발휘하여 그녀 몸에 이적을 행하는 기구를 집어넣었다. 2분 뒤 아스모데우스가 고분고분 사라졌다.[각주:5]

 

  몇 해 지나 쓴 자서전에서 잔느 수녀는 뭔가에 들씌운 처음 몇 달은 정신이 하도 혼란스러워 저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 진술이 정말일 수 있다. 혹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잊고자 하여 억누르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더 생생하게 뇌리에 남는 것들이 많이 있는 법이니까. 예를 들면, 아담이 사용한 관장기 같은… 

 

  지나치게 과장된 자아에서 완전한 자기비하로 넘어가는 길은 많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타고난 에고이즘과 실망스러운 환경 여건에 억눌리면서 자기초월의 갈망을 더욱 키웠다. 만년에 그녀는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상향적 자기초월을 달성하려 노력하는 척했고 실제로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 그녀에게 유일한 탈출 방법은 성적 관심으로 하향하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일부러 상상에 잠겨서, 개인적으론 모르는 사이지만 성적 자극을 일으키기로 소문난 그랑디에와 음탕한 장면을 마음속에서 조심스레 그렸다. 그러나 조심스레 가끔 하던 탐닉이 시간이 흐르면서 습관으로 변했다. 그리고 습관은 성적 판타지를 이제 절실한 요구로 바꿔 놓았다. 환영들이 그녀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어른거렸다. 제 상상의 주인이 되는 대신 그녀는 이제 그 노예가 됐다

 

  노예 상태는 인간을 굴욕적으로 만들고, 제 생각과 행동을 제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인식은 ‘나’라는 자아의 경계를 파괴한다. 하지만 이때 자기초월 충동은 애석하게도 자아를 위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아래로 끌어내린다. 잔느는 스스로 불러들인 색정적 이미지들의 예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자유는 스스로 혐오하는 자신이 되는 자유였다. 악습과 중독이라는 지하 감옥으로 점점 더 떨어지기만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내면에서 분투하던 중에 이제 무지막지한 바레의 수중에 들게 된 것이다. 하향적 자기초월이라는 판타지가 짐승 같은 현실로 바뀌었으니, 그는 그녀를 인간 이하의 뭔가로 다루었다. 재주 부리는 원숭이처럼 어중이떠중이한테 보여주기 위한 짐승으로 다루었다. 그저 고함치고 조종하고 반복하는 암시에 고분고분 따라서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하고 혼절하기도 하다가, 결국엔 그나마 남아 있던 의지에 반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중인환시 하에 강제로 결장 세척까지 당하고 말았다. 바레와 그의 조수들이 그녀에게 행한 짓은 공중화장실에서 범한 강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 저자 주 ☞ 17-18세기 의술에서 관장기는 오늘날 피하주사기만큼이나 흔하게 쓰였다

  로버트 버튼의 기록을 보면… 「관장기는 인기가 좋다. 트린카벨리[각주:6]는 그걸 일급 치료 수단으로 꼽고, ‘작센의 헤라클레스’[각주:7]는 관장기의 효용성을 한층 더 두둔한다. 그는 건강을 염려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관장기 한 번 사용으로 치료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말한다.」 버튼은 이렇게도 썼다. ‘관장기를 잘만 사용하면 대부분 질환에서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네 선조들은, 물론 의사나 약제사를 부를 형편이 되는 계층이라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커다란 관장기와 좌약에 익숙했다. ‘카스티야 비누, 진하게 끓인 꿀, 혹은 더 강한 것으로는 메꽃이나 크리스마스로즈 같은 약초 우린 물’ 따위를 누구나 상당히 많이 직장에 집어넣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잔느 수녀와 동시대인인) 부샤르가 어린 시절 제 누이들한테 어린 친구들이 놀러오던 때를 회상하면서 당시 사내애들과 계집애들이 ‘의사 놀이’를 하는 중에 관장기 삼아 작고 부드러운 막대기를 서로 집어넣었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유년기 기억은 평생 간다. 그렇기 때문에 약제사의 괴물 같은 관장기는 많은 이들에게 관능적인 상상을 계속 어른거리게 했다. 

 

  바레의 영웅적인 행위 이후 150년이 지나서 사드 후작[각주:8]의 주인공들은 성적 쾌감을 키우기 위해 엑소시스트의 이 비밀 병기를 자주 이용했다. 

  후작보다 한 세대 이전에 프랑수아 부셰[각주:9]는 당대의, 어쩌면 모든 시대의, 가장 멋진 핀업 걸(Pin-up Girl)을 만들어냈는데, 이 그림의 제목이 <관장기를 기다리며>이다. 

 

부셰의 Pin-up Girl 관장기를 기다리며

 

  비루한 음란물이며 고급진 포르노에서 라블레 식의 재미와 끽연실 조크까지는 한 발짝에 불과하다.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걸쭉한 농담 던지는 노파를 우리는 다 기억한다. 몰리에르의 <억지 의사>에서 사랑에 빠진 스가나렐이 떠오르는데, 그는 자클린에게 키스가 아니라 ‘아담하고 부드러운 관장기’를 간청한다. 

 

  바로 그렇게 아담하며 (여기서는) 신성한 관장기를 성수를 채워 바레가 집어넣은 것이다. 이 과정에 부여된 성례의 의미와 상관없이 그건 결국 수녀원장에게는 관능적 체험이며, 수치심에 대한 폭압이며, 포르노 식의 체험으로 농축된 심벌임이 확실하다.] 

 

  (한때 천사들의 수녀 잔느요, 이제 루덩의 우르술라회 수녀원 책임자인 사람의 인격이 완전히 짓밟히고 파괴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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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poltergeist - 떠들썩한 장난꾸러기 요정. 소리를 내거나 물건을 움직여서 자기 존재를 알림. [본문으로]
  2. nymphomania - 여자색정증(色情症) - 여성의 비정상적인 성욕 항진증. [본문으로]
  3. 갈라진 발굽 - 악마의 본성, 사악한 의도, 악마의 간계 등을 의미함. 성서에서 정결한 동물과 불결한 동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 바로 갈라진 발굽. 어떤 문화에서는 악마와 연관돼, 예를 들어, 기독교 미술과 저술에서 사탄은 종종 갈라진 발굽으로 묘사된다.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부정한 것이다.” (레위기 11:4) [본문으로]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더러운 귀신아, 악의 사절아, 물러가라, 너희 군대야 썩 물러가라, 어서 냉큼 달아나 이 신의 종복을 평온하게 내버려 두어라.” [본문으로]
  5. 바레가 그렇게 급진적인 퇴마 방법을 처음 고안한 것은 아니다. 이 사례 이전에도 프랑스의 한 귀족이 그런 식으로 악마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에도 남아프리카 몇몇 부족은 세례식에 성수가 담긴 관장기를 이용한다. - 저자 주. [본문으로]
  6. Vittore Trincavelli (1496-1568) - 이탈리아의 저명한 외과의. 그리스 고전의 편집자. [본문으로]
  7. Hercules of Saxonia (1670-1733) - ‘괴력의 아우구스투스’라 불리기도 했다. 1694년부터 작센의 선거후, 1697년부터 폴란드 왕, 리투아니아 대공. 스웨덴과 맞선 북방전쟁(1700-1721)에서 표트르 1세의 동맹자. [본문으로]
  8. Marquis de Sade (1740-1814) - 프랑스의 귀족, 혁명적 정치가, 철학자, 작가. 도덕과 종교, 법률로도 구속받지 않는 절대 자유를 주창. 그의 이름에서 나중에 ‘사디즘’ 용어가 나왔다. [본문으로]
  9. François Boucher (1703-1770) -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화가, 판화가, 장식미술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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