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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이야말로 얼마나 가련한 순진함이란 말인가! 오호라, 인간 두뇌가 무엇이든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 

  오필리아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알아, 그러나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는 몰라.”[각주:1] 그래, 우리는 누구나 거의 모든 짓을 다 할 수 있다. 아무리 엄한 규율 아래서 성장한 사람이라 해도 그렇다. 

 

  이른바 ‘감응 (혹은, 유도) 법칙’은 뇌와 신경계의 하위 수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뇌피질에서도 발생하며, 모든 강렬한 감정은 그 반대되는 것을 동반한다.[각주:2] 모든 긍정적인 것은 그에 상응하는 부정적인 것을 낳는다. 뭔가 빨간 것을 볼 때, 주변에 녹색 잔상이 따라 붙는다. 어떤 근육 그룹이 작동할 때, 반대 그룹도 자동으로 반응한다. 또 최고 수준의 두뇌 활동에서 애정이 종종 증오를 수반하고 존중과 경외에서 초래된 비웃음 같은 것이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한마디로, 감응 과정은 어디서나 작동한다

 

  잔느 수녀와 그녀의 동료 수녀들은 어려서부터 신앙과 순결을 귀에 못이 박혀라 들으며 자랐다. 바로 이 때문에, 감응 이론에 의하면, 그들 심리에 신성 모독과 외설스러움이 자리 잡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종교문학에는 신앙과 순결에 거스르는 괴물 같은 유혹, 영적 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특히 부닥치는 유혹에 대한 언급이 많다. 지혜로운 지도자들은 그런 유혹이 정상적이고 영적 생활에 거의 불가피한 특징이라 하며, 그런 만큼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각주:3] 

 

   이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이 평상시에는 억눌리거나, 혹여 의식 수준에 들어선다 해도 언행으로 배출되지 않게끔 의지력이 단단히 단속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으로 쇠약해지고 금지되며 실현될 수 없는 환상에 몰입함으로써 광적이 된 원장수녀는 이 감응 후과를 통제할 수 없게 됐다. 히스테리 행위는 전염성이 있어서 그녀 사례를 다른 수녀들이 따랐다. 수녀원 전체가 금방 신성을 모독하고 음란한 소리를 지껄이며 지독한 발작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마귀에 들씌웠다는 수녀들

 

  저들 수도회와 나아가 교회 전체를 광고하며 동시에 그랑디에를 파멸시키기 위해, 엑소시스트들은 스캔들을 조장하고 키우면서 수녀들의 병적 상태를 철저히 이용했다. 수녀들이 괴상한 묘기와 신성 모독과 추잡한 행위를 과시하도록 장려했다. 그러면 늘 구경꾼들이 흥분했으니까. 

 

  원장수녀가 질환 초기에 자신이 귀신들리지 않았다고 고백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단지 그녀의 고해사제와 엑소시스트들이 그녀한테 악마들이 가득 찼다고 끊임없이 주입한 뒤에야 자신이 마귀에 들렸으며 이후 자신의 비즈니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임을 확신하게 됐다.     

 

  몇몇 다른 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1634년에 발간된 책자를 보면 아그네스 수녀는 엑소시즘 중에 자신은 악귀 들리지 않았다고 자주 말했지만 탁발수사들이 고집하여 엑소시즘을 받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6월 26일 엑소시스트가 클레어 수녀 입술에 불붙은 유황을 실수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가엾은 처녀가 눈물을 터뜨리며 소리 쳤다. “내가 악귀 들렸다고 자꾸 말들 하기에 난 그렇게 믿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잖아요!”」 

 

  단순한 히스테리에서 시작된 작업이 미뇽과 바레, 트랑킬 등의 공조 하에 거대한 쇼로 바뀌었다. 동시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그걸 알아차렸다. 앞에 인용한 소책자의 익명 저자가 이렇게 쓴다. 

  「여기에 협잡이 없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수녀들이 정말 마귀에 사로잡혔다고 해야 하나? 혹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어리석음과 상상의 장난에 눌려서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닌가?」 

 

  후자 같은 추정의 형태로 작자는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수녀들이 재계와 밤샘 기도를 지나치게 하고 지옥과 사탄을 너무 많이 숙고했기 때문에. 둘째, 그들을 악마가 유혹하고 있다고 단언하는 고해사제가 그들 상상에 안기는 자극. 끝으로, 그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며 고해사제가 무지의 소치로 그들이 마귀에 들렸거나 마법에 걸렸다고 상상하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즉각 영적 딸들한테도 사실처럼 믿게 했을 수 있다. 

 

  우리 스토리는 세 번째 원인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예전에 수은과 안티몬 치료로 인한 중독이나 오늘날 잦은 현상인 설파제 중독과 혈청 질환처럼, 루덩 수녀원을 휩쓴 유행병은 일종의 ‘의원성 질환’으로, 환자들 건강 회복에 지나치게 몰두한 치료자들 스스로 일으키고 촉진한 것이었다

  또 엑소시스트들이 취한 조치가 가톨릭교회 종규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임을 기억하면, 그들의 책임은 훨씬 더 크다. 이 종규에 따르면, 엑소시즘은 3자들 없이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며, 더욱이 악마들이 저희 소견을 지껄이도록 허용하지 않아야 했다. 악마들이 무슨 소리를 떠든다 해도 절대 믿어서는 안 되며, 악마들 말은 철저히 무시해야 했다. 

 

  한데 루덩에서는 어떻게 했는가. 수녀들을 수많은 구경꾼들 앞에 흥밋거리로 내놓고, 그들의 악마들한테는 섹스에서부터 성변화(聖變化)에 이르기까지 어떤 얘기든 다 늘어놓도록 조장했으며, 악마들의 진술이 죄다 절대적 진실로 수용되고 악마들 자체를 저승에서 온 귀빈처럼 대접하며 그들 언급이 거의 성서와 같은 권위를 지녔던 것이다

  악마들이 신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해도 구경꾼들은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게 바로 악령들이 흔히 하는 짓이니까! 그런 신성 모독과 음담패설이 또한 관중을 끌어들였다. 그런 얘기를 독실한 사람들이 열심히 들었으며, 다음날에는 구경꾼이 수천 명으로 늘었다.  

 

 공연은 실제로 인기 좋았다. 끔찍한 신성 모독과 가장 추잡한 음담패설 따위가 만에 하나 마귀에 사로잡힘의 충분한 증거가 아니라면, 발작 상태에서 기기묘묘하게 몸을 비틀고 꼬는 것은 어떠하며 곡예사처럼 움직이는 묘기는 또 얼마나 멋진가 말이야! 

 

  공중부양은 레퍼토리에서 금방 제외됐다. 수녀들이 실제로 떠오를 수 없었으니까. 그 대신 그들은 마룻바닥에서 가장 놀랍고 아슬아슬한 재주를 여럿 선보였다. 

  니옹의 기록을 보면, 간간이 「그들은 왼쪽 발을 어깨 너머로 돌려서 볼에 닿게 했다. 또 발을 머리 위로 넘겨 엄지발가락으로 코를 건드리기도 했다. 다른 수녀들은 몸과 마루 사이에 틈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 다리를 한껏 벌렸다. 원장수녀의 경우 120센티미터가 조금 더 되는 키에도 불구하고 양쪽 발가락 사이가 2미터를 넘길 정도로 가랑이를 쫙 찢었다.」 

 

  수녀들의 퍼포먼스 기록을 읽다 보면… 여성 영혼에는 타고난 종교적 성향 못지않게 타고난 자기과시욕이 느긋하게 공존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영원한 여성성에 관한 한 자기과시 취향이 고유한 듯 보인다. 그저 재주넘기와 공중제비에서 자신을 내보일 호기만 기다리는 것일 뿐. 

  수녀원에 틀어박혀 명상에 잠기는 사람들 경우 그런 욕망이 특히 발달했다고 짐작할 수 있겠다. 일곱 악마와 참사회 위원 미뇽 덕분에 잔느 수녀가 두 다리를 벌려 바닥에 앉는 연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여러 모로 판단컨대, 수녀들은 아크로바트를 공연하면서 크게 만족했다. 니옹의 기록을 보면, 여러 달 동안 ‘최소한 하루 두 번씩 악마들에게 고문당하면서도’ 그들 건강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다소 골골하던 여인들도 악마에 들씌우기 전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내재해 있던 자기과시 성벽과 숨어 있던 카바레 무용수와 스트리퍼 기질이 표면으로 돌출할 기회를 얻었고, 처음 한동안 이 가엾은 처녀들은 늘 기도해야 하는 임무도 없이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 행복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중간 중간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저들한테 어떤 폭압이 가해지고 있으며 또 저들 애정 판타지의 대상이었던 불행한 사람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문득 문득 알아차리곤 했다. 

 

마귀 들렸다는 수녀들을 상대로 엑소시즘 시행

 

  우리가 앞에서 봤듯이, 6월 26일 클레어 수녀는 엑소시스트들이 대하는 투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녀가 7월 3일에는 성안 채플에서 갑자기 통곡하면서 지난 몇 주일 동안 자기가 그랑디에에 관해 한 말은 새빨간 거짓이요 중상비방이며, 죄다 랑탕 수사와 미뇽, 카르멜회 수사들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눈물 섞어 털어놓았다. 나흘 뒤 양심의 가책과 반항심이 더 커져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 정문에서 붙잡혀 발버둥치고 훌쩍거리는 상태로 다시 수도사들에게 넘겨졌다. 

 

  그런 장면을 보고 대담해진 아그네스 수녀는 (킬리그루가 한 해 지나서도 여전히 카푸친회 수사들 발밑에서 설설 기는 것을 본 그 미녀는) 그녀의 잘 빠진 두 다리를 훔쳐보러 온 구경꾼들에게 무서운 엑소시스트들 손아귀에서 구해 달라고 눈물 흘리며 호소했다. 

  그러나 마지막 말휘갑은 언제나 엑소시스트들의 권리였다. 아그네스 수녀의 애원이나 클레어 수녀의 탈출 시도며 양심선언, 도덕적 불안 등은 모두 그랑디에의 주인이자 수호자인 악마의 간계로 치부되고 말았다

 

  만약 수녀가 주임신부에게 불리한 발언을 모두 취소했다면, 이야말로 사탄이 그녀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며 처음 확언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논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된 것은 바로 원장수녀의 경우였다. 한 치안판사가 그랑디에의 범죄 행위 목록을 간결하게 작성했다. 이 문건 여섯 번째 항목은 이렇다. 

 

  「수녀들이 겪은 고통 중에서 원장수녀의 경우가 가장 괴이했다. 그녀는 진술을 마친 다음날 로바르데몽이 다른 수녀를 심문하는 동안 슈미즈 하나만 걸친 채 수녀원 뜰에 나타나서 목에 밧줄을 두르고 손에 양초를 든 채 퍼붓는 빗속에서 맨머리로 두 시간이나 서 있었다. 

  그러다가 숙사 객실 문이 열리자 달려 들어가 로바르데몽 앞에 무릎 꿇더니 무고한 그랑디에한테 저지른 악의적 비난을 바로잡으러 왔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다시 달려 나가서 뜰에 있는 나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겼다. 다른 수녀들이 구하러 달려들지 않았다면 목을 매달았을 것이다.」   

 

  원장수녀가 거짓 비난 행위를 참회하고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는 점을 정상인이라면 충분히 짐작했을 터. 그러나 로바르데몽은 안 그랬다! 그에겐 이 통회의 연극이 발람이나 레비아탄이 꾸민 짓이며 마법사의 주문으로 강요된 것임이 명백했다. 

 

원장수녀가 나무에 목을 매달려고 하다

 

  흠, 잔느 수녀의 고백과 자살 시도는 주임신부의 죄를 면케 하기는커녕 오히려 유죄라는 점을 더 굳혀주는 게야! 

 

  그런 몸부림은 다 쓸모없는 짓이었다. 그들 스스로 감옥을 만든 꼴이 됐다. 이제 사실처럼 구체화된 음탕한 몽상의 감옥, 이제 드러난 진실처럼 취급된 의도적 거짓말의 감옥 말이다. 거기서 수녀들이 달아날 길은 전혀 없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이제 그들의 참회를 받아들일 수도 없을 만큼 멀리 나아갔다. 그리고 진술을 부인한다는 자체가 그들에게 위험한 짓이었다. 그랑디에를 두고 한 말을 철회함으로써 그들은 현세에서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징벌을 면치 못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망설임과 주저 끝에 다시 엑소시스트들 편에 서기를 택했다. 수도사들도 계속 강조했다. 

  가책의 고통이란 그저 악마적인 환상일 뿐이야. 돌이켜보니 거짓말인 듯싶은 것이 실제로는 아주 건강한 진실이지. 그 정통성이며 사실과 부합한다는 점을 교회가 다 보증할 테니 아무 걱정들 말어. 

 

  그런 말을 그들이 귀담아들으면서 그렇게 믿으려고 또 고생했다. 그리고 이 가증스러운 허튼소리를 믿는 체만 하고 지나치기 어렵게 됐을 때, 그들은 섬망 상태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수평적으로, 일상적 현실 수준에서는, 이 감옥에서 달아날 길이 없었다. 상향적 자기초월로 말하자면, 온통 악귀들에 붙들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 영혼을 끌어 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훨씬 더 넓게 열려 있었다. 바로 거기로 그들은 자꾸만 내려갔다. 때로는 죄의식과 자기비하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자발적으로, 또 때로 그들의 광기와 엑소시스트들의 암시가 너무 강할 때는 의지에 반하여, 자꾸만 밑으로 내려갔다. 

  발작을 향해 밑으로, 돼지처럼 지저분함을 향해 밑으로, 미친 듯 격렬한 행위를 향해 밑으로… 내려갔다. 본연의 인격 수준 아래로 한참 내려가서 여인들은 어두운 비인간적 세계로 가라앉았는데, 거기서는 귀족 출신 여인이 관중을 즐겁게 하려고 묘기 부리는 것이, 수녀가 신성을 모독하고 품위 없는 자세를 취하며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더 아래로, 지각 마비 상태로, 강경증 상태로, 완전한 무의식이며 완벽한 망각 상태라는 궁극적 행복을 향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7-2편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7-2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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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Lord, we know what we are, but know not what we may be." - <햄릿> 4막 5장. [본문으로]
  2. Ischlondsky의 (런던, 1949) 참고 - 저자 주. [본문으로]
  3. 1923년 1월 26일 자 편지에서, 돔 존 채프먼은 이렇게 적는다. 「17-18세기에 많은 독실한 이들은 하느님께 버림받은 것 같을 때 의심의 시기를 거쳤습니다. 오늘날은 그런 일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은 다른 종류의 시험을 견뎌야 하지요. 갑자기 믿음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을 갖는 되는 겁니다. 즉, 신앙의 어떤 부분이 아니라 종교 자체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이때 유일한 치유는 그런 의혹을 경멸하고, 거기에 주목하지 않으며, 하느님을 위해 원하시는 대로 고통 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그분께 단언하는 것뿐. 믿지 않는 이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겠지요.」 - 저자 주. *Dom John Chapman (1865-1933) - 로마가톨릭 성직자, 영국 베네딕트회 대수도원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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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그 다음에 일어난 사건은, 이 기나긴 시리즈에서 결국 주임신부를 파멸로 이끈 결정적 사건은, 다소 터무니없는 장난이었다. 이 장난은 젊은 수녀들과 상급 학생 몇몇이 어린 학생들과 독실하고 순진한 늙은 수녀들을 놀래 주려고 꾸민 것으로, 핼러윈 때 흔히 볼 수 있는 유령과 폴터가이스트[각주:1]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수녀들과 기숙학생들이 살고 있는 건물은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에 싸여 있었다. 그런 까닭에 늙은 영적 지도자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연 수의를 둘러쓴 형체가 수녀원 숙사 복도에서 배회하는 장면이 목격됐을 때, 거기 거주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유령이 처음 출현한 뒤 문마다 빗장이 단단히 걸렸다. 그러나 유령들은 길잡이를 따라 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오거나 방안에 있는 제 5열의 도움으로 숨어들었다. 한밤중에 침대 욧잇들이 벗겨지고 자고 있는 얼굴들을 얼음장 같은 손길이 더듬었다. 머리 위 다락방에서 신음소리와 쇠사슬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소녀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존중받는 수녀들이 성호를 그으며 성 요셉을 불렀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유령들은 이삼일 잠자코 있다가 또 나타나는 것이었다. 기숙학교와 수녀원 전체가 패닉에 휩싸였다

 

  참사회 위원 미뇽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장난에 참여한 여학생들이 고해 시간에 죄다 밝혔으니까. 침실에 나타나는 인큐버스, 기숙사를 배회하는 유령들, 다락에 숨어든 몹쓸 장난꾼들… 그 정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줄기 빛이 퍼지고 섭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퍼뜩 깨단했다. 

  그래, 이야말로 최상의 조건이군! 이걸 이용하면 되겠어! 

 

  그가 장난꾼들을 꾸짖고는, 이 몹쓸 짓에 관해 누구한테든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장난질의 희생자들한테는 그들이 본 게 유령이 아니라 악마들임에 틀림없다고 말함으로써 새로운 공포를 불어넣었다. 또 외설스러운 환영에 시달리는 원장수녀와 수녀들한테는 밤마다 찾아오는 방문객이 꿈이 아니며 실제로 사탄의 물리적인 희롱이 분명하다고 확실하게 설명했다

 

  그 뒤 그가 주임신부의 강력한 적대자 네댓 명과 함께 시내에서 5킬로쯤 떨어진, 트렌캉의 교외 저택에 모였다. 그 전략협의회 자리에서 미뇽은 수녀원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설명하고,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그랑디에한테 강력한 타격을 안길 수 있겠다고 선동했다. 서로 머리를 맞댄 결과 비밀 병기들과 심리전과 초자연적 정보부 따위를 죄다 갖춘 작전계획이 수립됐다. 음모자들이 희희낙락했다. 

  그자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번에는 절대 못 빠져나갈 게야! 

 

  작전 계획에 따라 미뇽이 카르멜회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유능한 엑소시스트. 

  수도사들 중에 적임자 한 분 안 계시겠습니까? 

  수도원장이 적극 천거하고 나섰다.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을 추천해 주었다. 성 미셸의 요셉 수사, 성 샤를의 피에르 수사, 앙투안 수사. 

 

   미뇽의 주도로 그들이 간단치 않은 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그들 작전은 아주 성공적이어서 불과 며칠 만에 아주 늙은 두셋을 제외하고 수녀들이 모두 밤마다 주임신부 형상의 악마를 보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수녀원 밖으로 새나가기 시작했다. 소도시 주민들이 다들 수군댔다. 

  아, 글쎄, 그 착한 수녀들이 다 악마에 씌웠다지 뭐야. 그 악마들이 저 도깨비 같은 그랑디에의 사주를 받아서 수녀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지? 

  당연히 프로테스탄트들이 가장 좋아했다. 

  저런, 저런, 로마교황의 성직자가 우르술라회 수녀원 전체를 타락시키려고 사탄과 밀통하다니! 라 로셸을 무참히 함락시키니까 이런 변이 생기는 거야! 

 

  한데 당사자는 그런 수군거림에 그저 어깨 한 번 추썩이는 것으로 반응하고 말았다. 나로서야 원장수녀나 그녀의 정신 나간 자매들을 한 번 본 적도 없는 걸. 그 실성한 여인들이 나에 관해 무슨 얘기를 지껄이든, 그건 그들 정신질환의 소산일 뿐이오. 그러니까, 님포마니아[각주:2]와 결합된 멜랑콜리라는 질환이야. 남자들과 접촉 차단된 가엾은 여인들이 인큐버스와 교접한다고 상상할 만도 하지. 

 

  그런 촌평을 전해 듣자 미뇽이 미소만 가볍게 지으며 덧붙였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웃는 게야. 

 

우르술라회 수녀원에서 엑소시즘을 집행하다

 

  몇 달 동안 악마들과 영웅적으로 씨름하면서도 마귀 들린 여인들한테서 퇴마 작업이 아주 힘겨운데다 성과가 별로 없자 미뇽이 지원군을 요청하게 됐다. 

  먼저 부름받은 사람은 피에르 랑지에, 베니에 교구의 주임신부. 그는 교구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주교의 앞잡이라는 사실 때문에 다들 꺼려했다. 참사회 위원 미뇽이 일부러 랑지에를 초빙한 것은 상부에서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마귀 들림과 엑소시즘이 다 공식적이고 교규에 합당한 작업이 되겠지. 

 

  랑지에한테 다른 신부가 또 합류했는데, 그는 기질이 전혀 달랐다. 인근 시농 도시에 있는 생 자크 교구의 주임신부인 바레는 하나님보다 악마를 훨씬 더 실제적이고 흥미로운 존재로 보는 부정적인 기독교인 축에 들었다. 그는 모든 것에서 ‘갈라진 발굽’[각주:3] 자국을 보았으며 인간 삶에서 유별나거나 파멸을 초래하거나 지나치게 즐거운 사건은 죄다 사탄의 짓으로 인식했다. 무엇보다도 사악한 벨리아르바알세불과 맞서 드잡이하기를 즐겼고,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하는 짓이 악귀 들린 사람들을 조작해 내고는 엑소시즘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의 수고 덕분에 시농 도시에는 광란하는 처녀들이며 마법에 걸린 아낙네들이며, 또 어떤 마법사들의 악의적인 주문 때문에 부부간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남편들로 득실거렸다. 그의 교구에서는 그 누구도 삶이 따분하다고 불평할 수 없었다. 교구 주임신부와 악마가 있는 한 지루한 순간이란 결코 없었으니까

 

  미뇽의 초대를 바레가 잽싸게 수락했다. 며칠 뒤 제 교구의 가장 광적인 신도들로 구성된 행렬을 이끌고 바레가 루덩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문을 다 닫아 걸고 엑소시즘이 진행됐다는 얘기를 듣고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성스러운 작업을 어떻게 많은 사람한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게요! 군중이 다 보고 신앙심을 더욱 굳힐 기회를 왜 안 주는 거요? 

  그래서 우르술라회 수녀원 문들이 활짝 열리고, 호기심에 끌린 무리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미 세 번째 시도에서 바레는 원장수녀를 심각한 발작 상태로 몰아가는 데 성공했다. ‘이성과 범절을 상실한’느가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굴렀다. 구경꾼들이 매우 즐거워했다. 특히 양쪽 허벅지가 허옇게 드러날 때 더 그랬다. 

 

엑소시스즘 때 바닥에 뒹구는 잔느

 

  많은 ‘격한 몸짓과 저주와 으르렁거림과 입안 뒤쪽 이빨 두 개가 부러질 정도로 이빨 갈기’가 끝난 뒤 마침내 악마가 신부의 명령에 순종하여 제물을 평온하게 놔두었다. 원장수녀가 기진하여 누워 있고, 바레가 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어서 참사회 위원 미뇽의 차례가 되어 클레어 수녀를 택했다. 또 요셉 수사가 보조 수녀를, 랑지에 신부가 가브리엘 자매를 맡았다. 퍼포먼스는 해가 떨어져서야 끝났다. 구경꾼들이 가을 석양 속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야아, 지난번에 난쟁이 둘과 조련된 곰들을 데리고 이동 서커스단이 다녀간 이래로 우리 한적한 루덩 시에서 이렇게 멋진 쇼를 본 건 처음이야! 

  암, 그렇고말고, 게다가 서커스와 달리 여기서는 구경꾼들한테 땡전 한 닢 안 받잖아? 

  아, 그래, 그들이 헌금 쟁반을 들고 다니긴 했지만, 은화 대신 동화를 던진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도 않는 걸. 

 

  이틀 지나 1632년 10월 8일 바레가 처음으로 큰 승리를 거뒀다. 불쌍한 원장수녀 육신에 똬리를 튼 일곱 악마들 가운데 하나인 아스모데우스를 내쫓은 것이다. 귀신들린 여인의 입을 통해 아스모데우스는 그녀 아랫배에 단단히 숨어 있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건 바레가 악마와 두 시간 넘게 사투를 벌인 끝에 올린 전적인데, 그 과정은 이랬다. 

 

  수녀원 숙사 아치 밑에서 라틴어가 연신 낭랑하게 울렸다. 

  "Exorcise te, immuundissime spiritus, omnis incursio adversarii, omne phantasma, omnis legio, in nomine Domini nostri Jesus Christi; eradicare et effugare ab hoc plasmate Dei.”[각주:4]

  이어서 성수를 듬뿍 뿌리고, 고통 받는 여인에게 두 손을 얹고, 영대로 덮고, 성물들을 접하게 하고, 라틴어 기도문이 다시 울렸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관 이름으로, 너의 조물주와 세상의 조물주 이름으로, 너를 지옥 불구덩이로 내던질 권세를 지닌 이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케케묵은 뱀아, 교회 품으로 돌아가야 할 이 주님의 종복한테서 두려움과 환난을 다 끌어안고 속히 물러가거라.” 

  그러나 아스모데우스가 물러가기는커녕 깔깔대며 신을 모독하는 말을 몇 마디 지껄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패배를 인정했겠지만 바레는 달랐다. 원장수녀를 제 독실로 옮기라 이르고 급히 사람을 보내 약제사를 데려오게 했다. 

 

관장기는 17세기에 주요 의료도구

 

  아담이 제 직업의 고전적 상징인 관장기를 들고 달려왔다. 그렇게 커다란 구리 관장기를 오늘날에는 몰리에르 코미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17세기에는 주요 의료 도구였다. 아담이 관장기에 성수를 가득 채운 뒤 원장수녀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아스모데우스가 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감지하고 히스테리를 부렸다. 하지만 헛수고. 원장수녀의 두 팔과 두 다리가 묶이고 뒤틀리는 몸통을 강한 손들이 억눌렀다. 아담이 상당한 기술을 발휘하여 그녀 몸에 이적을 행하는 기구를 집어넣었다. 2분 뒤 아스모데우스가 고분고분 사라졌다.[각주:5]

 

  몇 해 지나 쓴 자서전에서 잔느 수녀는 뭔가에 들씌운 처음 몇 달은 정신이 하도 혼란스러워 저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 진술이 정말일 수 있다. 혹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잊고자 하여 억누르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더 생생하게 뇌리에 남는 것들이 많이 있는 법이니까. 예를 들면, 아담이 사용한 관장기 같은… 

 

  지나치게 과장된 자아에서 완전한 자기비하로 넘어가는 길은 많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타고난 에고이즘과 실망스러운 환경 여건에 억눌리면서 자기초월의 갈망을 더욱 키웠다. 만년에 그녀는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상향적 자기초월을 달성하려 노력하는 척했고 실제로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 그녀에게 유일한 탈출 방법은 성적 관심으로 하향하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일부러 상상에 잠겨서, 개인적으론 모르는 사이지만 성적 자극을 일으키기로 소문난 그랑디에와 음탕한 장면을 마음속에서 조심스레 그렸다. 그러나 조심스레 가끔 하던 탐닉이 시간이 흐르면서 습관으로 변했다. 그리고 습관은 성적 판타지를 이제 절실한 요구로 바꿔 놓았다. 환영들이 그녀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어른거렸다. 제 상상의 주인이 되는 대신 그녀는 이제 그 노예가 됐다

 

  노예 상태는 인간을 굴욕적으로 만들고, 제 생각과 행동을 제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인식은 ‘나’라는 자아의 경계를 파괴한다. 하지만 이때 자기초월 충동은 애석하게도 자아를 위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아래로 끌어내린다. 잔느는 스스로 불러들인 색정적 이미지들의 예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자유는 스스로 혐오하는 자신이 되는 자유였다. 악습과 중독이라는 지하 감옥으로 점점 더 떨어지기만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내면에서 분투하던 중에 이제 무지막지한 바레의 수중에 들게 된 것이다. 하향적 자기초월이라는 판타지가 짐승 같은 현실로 바뀌었으니, 그는 그녀를 인간 이하의 뭔가로 다루었다. 재주 부리는 원숭이처럼 어중이떠중이한테 보여주기 위한 짐승으로 다루었다. 그저 고함치고 조종하고 반복하는 암시에 고분고분 따라서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하고 혼절하기도 하다가, 결국엔 그나마 남아 있던 의지에 반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중인환시 하에 강제로 결장 세척까지 당하고 말았다. 바레와 그의 조수들이 그녀에게 행한 짓은 공중화장실에서 범한 강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 저자 주 ☞ 17-18세기 의술에서 관장기는 오늘날 피하주사기만큼이나 흔하게 쓰였다

  로버트 버튼의 기록을 보면… 「관장기는 인기가 좋다. 트린카벨리[각주:6]는 그걸 일급 치료 수단으로 꼽고, ‘작센의 헤라클레스’[각주:7]는 관장기의 효용성을 한층 더 두둔한다. 그는 건강을 염려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관장기 한 번 사용으로 치료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말한다.」 버튼은 이렇게도 썼다. ‘관장기를 잘만 사용하면 대부분 질환에서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네 선조들은, 물론 의사나 약제사를 부를 형편이 되는 계층이라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커다란 관장기와 좌약에 익숙했다. ‘카스티야 비누, 진하게 끓인 꿀, 혹은 더 강한 것으로는 메꽃이나 크리스마스로즈 같은 약초 우린 물’ 따위를 누구나 상당히 많이 직장에 집어넣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잔느 수녀와 동시대인인) 부샤르가 어린 시절 제 누이들한테 어린 친구들이 놀러오던 때를 회상하면서 당시 사내애들과 계집애들이 ‘의사 놀이’를 하는 중에 관장기 삼아 작고 부드러운 막대기를 서로 집어넣었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유년기 기억은 평생 간다. 그렇기 때문에 약제사의 괴물 같은 관장기는 많은 이들에게 관능적인 상상을 계속 어른거리게 했다. 

 

  바레의 영웅적인 행위 이후 150년이 지나서 사드 후작[각주:8]의 주인공들은 성적 쾌감을 키우기 위해 엑소시스트의 이 비밀 병기를 자주 이용했다. 

  후작보다 한 세대 이전에 프랑수아 부셰[각주:9]는 당대의, 어쩌면 모든 시대의, 가장 멋진 핀업 걸(Pin-up Girl)을 만들어냈는데, 이 그림의 제목이 <관장기를 기다리며>이다. 

 

부셰의 Pin-up Girl 관장기를 기다리며

 

  비루한 음란물이며 고급진 포르노에서 라블레 식의 재미와 끽연실 조크까지는 한 발짝에 불과하다.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걸쭉한 농담 던지는 노파를 우리는 다 기억한다. 몰리에르의 <억지 의사>에서 사랑에 빠진 스가나렐이 떠오르는데, 그는 자클린에게 키스가 아니라 ‘아담하고 부드러운 관장기’를 간청한다. 

 

  바로 그렇게 아담하며 (여기서는) 신성한 관장기를 성수를 채워 바레가 집어넣은 것이다. 이 과정에 부여된 성례의 의미와 상관없이 그건 결국 수녀원장에게는 관능적 체험이며, 수치심에 대한 폭압이며, 포르노 식의 체험으로 농축된 심벌임이 확실하다.] 

 

  (한때 천사들의 수녀 잔느요, 이제 루덩의 우르술라회 수녀원 책임자인 사람의 인격이 완전히 짓밟히고 파괴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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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poltergeist - 떠들썩한 장난꾸러기 요정. 소리를 내거나 물건을 움직여서 자기 존재를 알림. [본문으로]
  2. nymphomania - 여자색정증(色情症) - 여성의 비정상적인 성욕 항진증. [본문으로]
  3. 갈라진 발굽 - 악마의 본성, 사악한 의도, 악마의 간계 등을 의미함. 성서에서 정결한 동물과 불결한 동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 바로 갈라진 발굽. 어떤 문화에서는 악마와 연관돼, 예를 들어, 기독교 미술과 저술에서 사탄은 종종 갈라진 발굽으로 묘사된다.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부정한 것이다.” (레위기 11:4) [본문으로]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더러운 귀신아, 악의 사절아, 물러가라, 너희 군대야 썩 물러가라, 어서 냉큼 달아나 이 신의 종복을 평온하게 내버려 두어라.” [본문으로]
  5. 바레가 그렇게 급진적인 퇴마 방법을 처음 고안한 것은 아니다. 이 사례 이전에도 프랑스의 한 귀족이 그런 식으로 악마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에도 남아프리카 몇몇 부족은 세례식에 성수가 담긴 관장기를 이용한다. - 저자 주. [본문으로]
  6. Vittore Trincavelli (1496-1568) - 이탈리아의 저명한 외과의. 그리스 고전의 편집자. [본문으로]
  7. Hercules of Saxonia (1670-1733) - ‘괴력의 아우구스투스’라 불리기도 했다. 1694년부터 작센의 선거후, 1697년부터 폴란드 왕, 리투아니아 대공. 스웨덴과 맞선 북방전쟁(1700-1721)에서 표트르 1세의 동맹자. [본문으로]
  8. Marquis de Sade (1740-1814) - 프랑스의 귀족, 혁명적 정치가, 철학자, 작가. 도덕과 종교, 법률로도 구속받지 않는 절대 자유를 주창. 그의 이름에서 나중에 ‘사디즘’ 용어가 나왔다. [본문으로]
  9. François Boucher (1703-1770) -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화가, 판화가, 장식미술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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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 true story of Demonic Possession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상황이 무르익어 갔다. 검찰관은 중년 홀아비인데 혼기 맞은 딸 둘을 데리고 있었다. 장녀 필리프는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1623년 겨우내 주임신부가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그 앳된 처녀가 부친의 손님들 가운데서 오가는 걸 지켜보며 그녀를 한 젊은 과부의 어른거리는 이미지와 조목조목 비교하곤 했다. 

 

  포도주 양조업자인 남편이 일찍 죽은 뒤 그 가엾은 과부를 이제 화요일마다 찾아가 위로하는 중이었다. 니농은 일자무식이어서 제 이름 하나 겨우 쓸 줄 알았다. 그러나 위로할 길 없는 상복 아래 풍만한 육체는 신선함과 탄력을 아직 잃지 않았다. 따스함과 순백의 보물이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관능이 축적돼 있는데, 그건 격정적이면서도 정밀하고 거칠면서도 지극히 고분고분하고 잘 훈련된 것이었다. 게다가 천만다행으로, 거기엔 힘들게 무너뜨려야 하는 조빼는 태도도 없고, 거쳐야 할 플라토닉 이상화라든가 페트라르카 풍의 구애라는 피곤한 예선도 없었으니! 이미 세 번째 만났을 때 그가 애송시의 도입부를 과감하게 들려주었다. 

 

얼마나 자주 마음에 그렸던가, 한밤중 은밀한 위안을. 

나이애드(naiad)의 부드러운 몸을 얼마나 뜨겁게 품곤 했던가. 

하지만 이런 환희를, 오호라, 

그대는 아직 선사하지 않았구려. 

 

  니농이 아무런 저항 없이 경청했다. 아주 솔직한 웃음을 날리며 주변을 흘낏 살필 뿐인데, 그 눈길이 결코 모호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방문을 마칠 때 그가 타위로의 시를 한 번 더 인용했다.[각주:1] 

 

아듀, 오, 감미로운 속삭임이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어깨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가슴이여, 

아듀, 물망초 같은 두 눈이여. 

아듀, 앙증맞은 두 손이여, 

아듀, 친근한 장난들이여, 

영원히 아듀, 소중한 친구여, 

그대와 달콤한 시간 보냈구려. 

하지만 이제 작별 시간에 다시 불러 

한 번이라도 더 사랑을 맛보게 해주구려. 

은보다 더 깨끗한 가슴과 대리석 허벅지 사이에서. 

 

  아듀… 그건 그녀가 주간 고해와 일상적 속죄를 위해 성 베드로 교회에 오게 될 모레까지라는 뜻. (그는 주간 고해성사를 아주 중시했다.) 그때부터 다음 화요일까지 그는 성모축일에 펼칠 강론을 준비했다. 그 설교는 생마르트 노인을 추도해 연설한 이래 그가 행한 가장 성공적인 일이었다. 

 

  어쩜 저렇게 청산유수일까! 주제 선택과 심오한 학식은 또 어떻고! 납득하기 쉽지 않은 신학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솜씨란! 박수갈채와 축하가 쏟아졌다. 하지만 경찰 수뇌가 격노하고 수도사들이 질투 때문에 퍼렇게 질렸다. 

 

그랑디에와 니농의 밀회

 

  주임신부님, 정말 놀라웠어요! 신부님은 둘도 없는 재능이에요! 

  그는 영광의 불꽃 속에서 다음 밀회에 갔으며, 그러면 그녀가 승리자한테 안기는 화관처럼 그를 끌어안고 보상으로 키스와 애무를 퍼부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포옹이라는 천국에서 최고의 대접이었다.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영적 황홀경이며 천상의 거처며 특별한 은혜와 영적 혼인 따위를 실컷 떠들라고 해! 그에겐 니농이 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필리프를 다시 바라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니농 하나로 과연 충분한 거야? 과부들은 물론 남자를 위로할 줄 알아, 화요일 밀회를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지. 그러나 과부들은 결코 처녀가 아니고, 과부들은 너무 많이 알고, 과부들은 뚱뚱해지기 시작했어. 

 

  반면에 필리프는 앳된 처녀의 섬세한 작은 손과 봉긋한 가슴과 감동적인 목으로 사람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런 젊디젊은 장점에다 소녀 같은 수줍음까지 곁들였으니, 이 얼마나 황홀한가 말이냐! 대담하고 거의 무모하게 교태를 부리다가 급작스레 당혹과 놀람으로 바뀌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람 마음을 끄는 동시에 도발적이며 가슴 뛰게 한단 말이냐! 

  필리프는 클레오파트라처럼 굴면서 남자들로 하여금 안토니오 역할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러다가도 누구든 그 역으로 들어설 기미만 보이면, 이집트 여왕은 홀연히 사라지고 놀라서 연민을 간청하는 어린애만 남았다. 그래서 연민을 얻고 나면 즉각 사이렌이 되돌아와서 유혹하는 노래를 부르고 금단의 열매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완전히 타락한 사람이나 완전히 순수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대담함으로 말이다. 

 

  순수와 순결이란 가장 숭고한 주제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얼마나 멋진 결어인가! 교회 설교단에서 때론 우레처럼 때론 가장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그걸 입에 올리면 여신도들이 죄다 눈물 뺄 것이야. 남자들까지도 감동 먹겠지. 이슬 머금은 백합의 순결, 어린 양과 갓난애의 순수에 대한 고찰은 누구한테든 먹혀든다. 그래, 수도사들이 질투하여 또 퍼렇게 질리겠군. 

 

  그러나 진정한 순수와 순결은 오로지 설교와 천국에만 있는 법이야. 모든 백합은 이르든 늦든 썩게 마련이고, 암양은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숫양의 제물이 된 뒤 도살자 손에 넘어가게끔 운명 지워져 있고, 또 지옥에서는 세례 받지 못한 아기들의 작디작은 유해가 깔린 도로 위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이 어슬렁거리지. 

  대 타락 시대 이후 절대적 순결이 실제로는 절대적 타락과 같은 거야. 젊은 여성 누구나 잠재적으로는 미래의 방탕한 과부이고, 가장 순수한 것에도 원죄 때문에 잠재적 불순이 이미 절반 넘게 들어 있잖아. 잠재적 불순이 완전히 발휘되도록 돕는 것이며 아직 앳된 꽃봉오리가 무성하고 흐드러진 꽃으로 벌어지는 걸 지켜보는 것, 오오, 이야말로 오관뿐 아니라 지력과 의지에도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관능이라면, 아주 정신적인, 말하자면 극히 추상적인 성격일 게야. 

 

  게다가 필리프는 그냥 젊은 처녀가 아니었다. 반듯한 가정 출신에다 신을 공경하도록 교육받고 모든 면에서 흠이 없었다. 그림물감처럼 예쁘지만 교리문답을 잘 알고, 류트를 연주하지만 교회에 꼬박꼬박 나오고, 우아한 숙녀의 매너를 지니고 있지만 독서를 좋아하고 라틴어를 좀 알기도 했다. 그런 노획물 획득은 사냥꾼의 자부심을 근질거리게 하고, 주변 사람 누구나 영원히 기억에 남을 업적으로 간주하리라. 

 

  좀 뒤늦은 시기에 살던 뷔시 라뷔탱[각주:2]의 증언에 따르면 귀족 세계에서 「여인들한테 거둔 성공이 남자들한테는 전투에서 거둔 혁혁한 전공 못잖은 명성을 안겼다.」 고귀한 미녀를 차지하는 것은 한 지방의 정복만큼이나 영광된 일이었다. 규방과 침대에서 거둔 연전연승으로 명성 떨친 마르시약, 느무르, 슈발리에 그라몽 같은 귀족들은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나 발렌슈타인[각주:3] 같은 위대한 정복자들보다 명성이 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영광된 작업에 당대 유행어로 ‘승선했다.’ 그것도, 세상에서 더 주목할 만한 인물들을 물리치겠다는 목표를 뚜렷이 가지고 필사적으로, 일부러 배에 올랐다. 

 

  섹스는 자아확인이나 자기초월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 즉, 남의 눈을 끄는 ‘승선’과 영웅적인 정복으로써 에고를 강화하고 사회적 페르소나를 굳히기 위해서, 혹은 관능의 희미한 황홀경과 낭만적 열광에서 페르소나를 깡그리 없애고 자아를 초월해 다른 존재와 합치되기 위해서. 후자의 경우는 흔히 완벽한 혼인생활 때 상호 자애심에서 더 잘 일어난다.  

 

  (망설임이 적고 식욕은 좋은 농촌 처녀들이며 도시 과부들과 함께 주임신부는 원하는 만큼 자기초월을 얻을 수 있었다. 한데 이제...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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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6편 2

루덩의 악마들 5편 3

루덩의 악마들 4편 4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타위로 (Jacques Tahureau, 1527-1555) - 프랑스의 사상가, 시인. [본문으로]
  2. 라뷔탱 백작 (Bussy Rabutin, 1618-1693) - 프랑스의 장군, 회고록 집필자. 유명한 마담 사비네와 사촌지간. [본문으로]
  3. 발렌슈타인 (1583-1634) - 삼십년전쟁 때 합스부르크 군을 지휘한 오스트리아 장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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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리버 리드&#44; 영화 악마들&#44; 켄 러셀 감독&#44;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3)

 

5

 

 

그의 삶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졌다. 30년대 중반 ‘평화서약 연합’의 반전 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이후 나치 치하에서 박해받는 유대인들 인권 수호에도 나섰다.

 

1937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역사가요 과학 저술가, 철학자인 제럴드 허드(Heard)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의 온후한 기후가 시력 향상에 도움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와서, 지역의 지성인들이며 힌두이즘과 불교에 심취한 지식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주로 로스앤젤레스 남부에서 죽을 때까지 살게 됐는데 처음 한동안은 뉴멕시코 주 타우스라는 마을에 머물기도 했다. D. H. 로렌스가 20년대에 거주한 이후 작가와 화가들의 작업지가 된 여기서 헉슬리는 에세이 <수단과 목적>을 썼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해방, 평화, 정의, 형제애’를 꿈꾸기는 해도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뜻을 함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검증한다. 

 

1938년 크리슈나무르티를 알게 되면서 그 가르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허드를 통해 동양의 종교와 철학을 연구하는 베단타학파 회원이 되고 이태 뒤 젊은 영국인 소설가 이셔우드를 이 서클에 소개한다. 세 사람은 명상과 채식주의, 아힘사(불살생) 원칙을 비롯해 철학과 종교에서 브라마난다의 폭넓은 지식에 심취하게 됐다. 

유럽 문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아시아 종교를 발견한 것… 그 얼마 뒤에 쓴 에세이 <만년 철학>에서 헉슬리는 널리 알려진 몇몇 신비주의 가르침을 논한다. 

 

에세이스트요 사회비평가로서 과학과 기술이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 문제를 주로 다루며 내보인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은 독자들한테서 저항감을 야기하기도 했다. 철학적 신비주의와 동양의 가르침, 초심리학 같은 영적 주제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일부 아카데미 서클에서는 그를 현대 사상의 리더요 당대 최고 수준의 지성인으로 여겼다. 말년에 남긴 언급 하나.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인류의 존재 문제를 숙고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들면서 나는 갖가지 물음에 대한 대답이 딱 하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로, 우리 각자가 조금만 더 착해지려 애쓰자. 그러면, 다 된다.

 

 로스앤젤레스 시기 이후 내놓은 다섯 편 장편소설 중 첫 번째인 <숱한 여름을 보낸 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할리우드 백만장자 이야기로, 1939년 픽션 부문에서 영국의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을 받았다. 특유의 위트와 지적 달변이 가득한 이 풍자소설에서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을 거론하는데, 개중 몇몇은 나중에 그의 마지막 장편인 <>에서 주된 주제가 된다.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몰려든 많은 유럽 작가들이 그랬듯이, 헉슬리도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애니타 루스의 소개로 MGM과 접촉하여 이셔우드와 공동 집필 등으로 여러 편을 썼지만 제대로 빛을 본 것은 <오만과 편견> 정도. 할리우드는 헉슬리의 성향이며 추구하는 바와 잘 안 맞았다.

 

50년대 초 내놓은 논픽션 <루덩의 악마들>은 그의 작품 활동 지평에서 상당히 독특하며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역사적 일화에 대한 눈부시게 상세한 심리 탐구. 

    

인간 지각의 확장과 영성에 (그의 용어로는, 자기초월) 관한 관심으로 마지막 십년을 거의 다 보냈다. 

메스칼린이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1953년 전문의의 관리 하에 직접 실험에 나섰다. 주변 세계 지각에 관한 실험 결과물이 바로 유명한 철학적 에세이 <지각의 문>과 속편 <천국과 지옥>. 이는 보편적 행복의 공식을 찾아내려는 몸부림. 

 

20세기 가장 유명한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의 저자가 이젠 다양한 사이키델릭을 실험하면서 지각의 확장 수단을 찾으려 애썼다. 예전에는 환영을 보는 이들과 신비주의자들과 예언자들한테만 허용된 영역으로, 보통 사람들도 지각을 확장함으로써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일까. 

 

<지각의 문>은 60년대 수천 명 급진적 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됐고, 그 저자는 히피와 사이키델릭 운동의 ‘영적 아버지’가 됐으며, 한 록그룹으로 하여금 ‘The Doors’라는 이름으로 전설이 되게 했다. 

 

이런 흐름에서 헉슬리의 계승자들이 나타났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주요 작가인 윌리엄 버로우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작가 켄 키지,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톰 클레이튼 울프, 페루 태생으로 <돈 후안의 가르침>의 작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같은 이들.

 

1955년 아내 마리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 직전에 소설 <천재와 여신들>을 발표. 이듬해 이탈리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의 지각 확장 실험을 도와 오던 로라 아처라와 재혼했다.  

   

66세가 되던 1960년 암 진단을 받은 뒤 마지막 장편 <>을 쓴다. <멋진 신세계>에서 삶의 극단적인 합리화가 물질적 번영과 더불어 사람들의 정신적 황폐를 초래함으로써 무시무시한 미래 형상을 제시한 작가가 이제 <섬>에서는 동양의 철학과 정신에 눈길을 돌리며 정신적 교착에서 벗어날 출구를 모색한다. 

가상의 섬 팔라에서 사람들은 서구 물질문명의 처방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산다.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 엽기적인 줄거리와 잘 엮인 <섬>은 헉슬리가 인류에게 남긴 유언.  

 

1962년 인간 잠재력을 주제로 에살렌 대학에서 행한 강연은 이후 ‘인간 잠재력 회복 운동’의 모태가 됐다.

1963년 11월 22일 후두암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해서 종이쪽에 적은 글귀로 아내한테 뜻을 알렸다. 

‘LSD 100 마이크로그램 피하 주사.’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지각의 문’을 그렇게 장식했다. 아내 로라가 쓴 헉슬리 전기 <이 영원한 순간>을 보면, 그녀는 오전 11시 45분 주사를 놓고 두 시간 뒤 한 번 더 투여했다. 그날 17시 21분 할리우드 집에서 평온하게 영원한 안식처로 떠났다. 

 

그의 죽음에 대한 언론 보도는 그 몇 시간 전에 발생한 케네디 암살과 <나니아 연대기> 작가 C. S. 루이스의 사망 소식에 가려 그의 명성에 비해 크지 못했다. 

이 예사롭지 않게 일치한 죽음이 보스턴칼리지 철학 교수 피터 크리프트에게 영감을 주었고, <천국과 지옥 사이 - 죽음 저편 어딘가에서 존 F. 케네디와 C. S. 루이스와 올더스 헉슬리의 대화>라는 장편소설이 나왔다. 

 

6

 

 

인간과 사회의 발전 가능한 길들을 모색하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대열에 들어선 헉슬리는 마지막 장편 <섬>에서 인류 미래에 대한 회의론을 극복했다. 노년 들어 그는 에세이 제목 <지각의 문> 같은 인생 방향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루덩의 악마들>에 묘사된 것 중 많은 부분은, 헉슬리의 관념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잘못된 ‘지각’을 지닌 후과이다. 즉, 탐욕과 두려움과 편협 때문에 잔느와 수녀들이 그랑디에를 상대로 행한 중상비방, 독단적인 교리에 의거하거나 빙자하여 엑소시스트들이 저지른 폭압, 일신의 안위를 위해 조작된 증거마저 인정하며 사법살인을 저지르는 어용 판사들, 독재를 굳히기 위해 종교재판을 부활하려는 목적으로 루덩 현상을 이용하려 한 리슐리외의 속셈 따위는…

모두 헉슬리가 보기엔 이 비극적 사건의 주된 원인이라기보다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 모든  바탕에는 그들의 잘못된 지각(인식)이 도사리고 있던 것일 뿐. 

 

루덩의 악마들 1634

 

 

가련하고 불행한 그랑디에 신부에 이어 소개되는 장 조셉 수렝 수도사의 스토리는 총체적 인식의 힘이 얼마나 크고 기적 같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즉, 주변과 만물에 대한 지각이 올바른 경우 영혼뿐 아니라 육신마저 치유될 수 있다는 점! 

 

수렝이 영웅적인 의지를 발휘하여 갖은 유혹과 싸우고 엄격한 금욕을 실천하며 고행하는 동안에도, 매 순간 악령에 들린 듯이 악마들을 믿으며 원장수녀를 치유하려 들면서 정신력을 헛되이 소모하는 동안에는, 그런 젊은 예수회 수사가 헉슬리 눈에는 영적으로 완전치 못하고 잠재적으로 아픈 사람으로 보인다. 

수렝이 이십년 가까이 심신증적 마비 상태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것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비정상의 필연적인 귀결로 해석된다.

 

사람을 자연과 떨어진 상태에서 묘사하는 시는 사람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실제로 확고하게 연관된 인간 외적 세계는 무시하고 인간 영혼 안에서만 하나님을 알고자 애쓰는 영성은 거룩한 존재의 충만함을 알 수 없다.」 (본문에서) 

 

하지만 비정상은 결국 바로잡히고, 수렝이 아직은 확신 없는 발길을 낙엽 수북이 쌓인 정원으로 처음 내딛는… 장면은 상징적으로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니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시험과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고,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치유됐다. 혹은, 헉슬리의 용어를 쓰자면, 올바른 지각을 획득했다. 

 

지각은… 사람이 교회의 독단적 교리에 구속된 상태를 훌훌 떨치고 자연과 하나 된다는 생각을 굳히는 순간부터 올바른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게 곧 조물주와 합일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니까.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헉슬리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 동시대인으로서, 헉슬리가 만년에 내놓은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즉, 인간과 신의 올바른 관계는 자연을 거스르거나 정복함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생긴다는 것, 바로 이 점을 마르셀이 우리한테 입증했다. 

이런 생각들은 <명상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마스 트러헌은 조물주가 당신 피조물에 나쁘게 대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거꾸로, 모든 피조물을 통해 조물주를 찬미할 필요가 있으며, 모래알에서 무한한 공간을, 꽃송이에서 영원한 시간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트러헌이 보기에 백합들과 까마귀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존재한다. 자, 여기 모래가 있고, 모래 알갱이들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것들을 사랑스럽게 응시하라. 그러면 그 안에서 영원성도 무한성도 보게 되리니.」 (본문에서)

 

수렝의 스토리는 마르셀 사상의 몇몇 기초적 명제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즉, 객관적 세계와 우리네 개인적이고 소중한 존재의 세계는 분명히 구분돼야 하며, 가혹한 혼돈 속에 있는 현실 자체가 아니라 주변 현실에 대한 우리네 태도가 중요할 뿐이라는… 

삶이란 신비이고, 삶의 여러 신비함은 늘 직관적으로 납득된다. 우리가 도그마에 묶여 있는 한, 설령 그것이 아무리 무조건적 믿음을 주입하는 것이라 해도 삶은 우리네 의지와 따로 놀면서 제대로 살아 보려는 시도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헉슬리는 종교의 의미와 바른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개개인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버리도록 돕는다면 종교는 응당 깨달음의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깨달음의 길에서 장애가 될 수도 있으니… 공포와 협량, 의분, 기업애국주의, 십자군 식의 증오 같은 감정을 고무하고 정당화하며, 또 어떤 신학적 개념들과 어떤 신성한 단어들만 중언부언할 때, 그렇다.」 (본문에서) 

「선행을 통해 성자와 합일하고 계시에 온유함으로써 성령과 합일하면 성부와도 의식적이고 변모되는 합일이 가능해진다. 이런 합일 상태에서 사물과 현상은 들뜨고 과장된 자아의 프리즘을 통해 감지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달리 말해, 최종 정체성에서 모든 존재의 신성한 근간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된다.」

 

교회 역사가 증명하듯이 수렝은 1665년 행복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 (반면에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참회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했다). 이승에서 만물의 질서에 대해 새로운 지각을 얻은 덕분에 그에게 지복이 강림했는지, 우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수렝의 생각이 헉슬리가 언급한 방향으로 실제 발전했다면, 그는 자신이 섬긴 교회와 힘겨운 갈등을 겪었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교회는, 특히 예수회는, 자연을 죄악의 왕국처럼 간주했기에 모든 감각에 재갈 물리기를 요구했으니까.  

 

헉슬리의 인식에서는 그와 반대로 자연과의 유기적 결합이 정신뿐 아니라 신체 건강의 담보이다. (마르셀의 영향이나 불교철학에서 퍼온 논거들과 함께, 만년에 아주 강하게 몰입한) 이런 사상은 그가 2차 대전 직후 정신적 굴곡을 겪고 나서 발표한 모든 글에 다 배어 있다. 

 

(계속) 

 

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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