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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07.13 루덩의 악마들 3-3편 3
  3. 2019.07.10 루덩의 악마들 (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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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오페라 표지

 


 

10 

 

  잔느의 성지 참배를 묘사하면서 우리는 조용한 지방 소도시에서 빠져나와 몇 주일 동안 대처로 나가 보자. 이건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아는 세계. 이건 왕족과 알랑거리는 궁정 신하들의 세계요 사랑 맛을 아는 귀부인들과 권력 맛을 아는 고위 성직자들의 세계, 고도의 정치와 고도의 패션이 있는 세계. 이건 루벤스와 데카르트의 세계이자 과학과 문학과 지식의 세계

  우리 여주인공은 루덩과 신비주의 집단을, 일곱 악마와 열여섯 히스테리 여인들을 떠나 17세기의 모든 화려함 속으로 잠깐 발을 내딛었다

 

  역사의 매력과 수수께끼 같은 교훈은… 여러 시대가 흐르면서도 바뀌는 것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또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다. 다른 시대에 살았으며 낯선 문화에 속한 인물들에 관해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지나치게 인간적인 ‘나’를 알게 되고, 동시에 우리가 삶을 꾸리며 잡는 준거 기준이 그 시대 이후 알아볼 수 없게 바뀌었다는 점도 인식한다. 그때는 공리처럼 보이던 명제들이 이젠 지지받을 수 없게 됐음을 알며, 우리가 지금 자명한 가설로 간주하는 것들이 이전 시대에는 가장 선구적이며 대담한 선조들조차 짐작은커녕 꿈도 못 꾸던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상과 기술, 사회제도, 행동 규준 분야에서 나타난 변화가 아무리 중대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그리 본질적인 게 못 된다. 그 중심에는 근본적인 동일성이 남아 있으니, 이전처럼 세상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인간 존재들이 육체를 가진 정신이요 물리적 쇠퇴와 죽음의 대상이며 고통과 쾌락에 좌우되고 갈망과 혐오에 휘둘리고 자기주장 욕망자기초월 충동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그들은 언제 어디서고 같은 문제에 직면하며 같은 유혹에 부닥치고 타락과 광명 사이에서 같은 선택을 하게 돼 있다. 외견은 바뀌지만 골자와 의미는 불변이다

 

  잔느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과학적 사고와 실제에서 얼마나 거대한 발전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만한 처지에 있지 못했다.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로, 하비[각주:1]와 반 헬몬트[각주:2]로 대표된 17세기 문화의 여러 측면에 원장수녀는 완전히 무지했다. 어려서 알고 있던 것과 이제 성지 참배 중에 다시 발견한 것이라곤 사회계급이며 그 계급제가 야기한 관습적인 생각과 느낌과 행위가 전부였다. 

 

악령에 들씌웠다는 수녀들과 엑소시스트

 

  어떤 측면에서 17세기 문화는, 특히 프랑스에서 소수 지배층에게는, 육체적 존재라는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장기간의 분투였다. 남자고 여자고 이 시대에는 근세 이후 다른 그 어느 시기보다도 사회적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열망이 더 컸다. 고관들은 그저 거창한 타이틀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로 그 자체가 되기를 동경했다. 그들의 욕심은 자기네가 지닌 지위가, 자기네가 얻거나 물려받은 권위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아주 꼼꼼하게 다듬은 바로크 풍의 의례가 생기고 서열과 특권과 고상한 매너에서 엄격하고 골치 아픈 규정이 나왔다. 관계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타이틀과 혈통과 신분 간에 생겨났다. 예를 들어, 누가 옥좌에 앉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나? 18세기 말엽 생시몽[각주:3]한테는 이 문제가 아주 중요했다. 

 

  세 세대 이전에도 어린 루이 13세가 그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 이미 네 살 나이에 그는 이복형 방돔 공작[각주:4]이 저와 식탁을 같이 하거나 제 앞에서 감히 모자를 쓰고 있다는 데 은근히 분개했다. 부왕인 앙리 4세가 ‘페페 방돔’은 왕세자와 같은 식탁에 앉아야 하며 식사 중에도 모자를 벗을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자 어린 왕세자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심으론 못마땅함이 지극히 컸다. 

 

  왕권신수설의 이론과 실제를 왕실의 모자 착용 관행에서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아홉 살 때 루이 13세를 여성 가정교사한테서 떼어 남성 가정교사한테 맡겼다. 신성한 존재인 아이 앞에서는 왕세자의 개인 교수도 응당 모자를 벗어야 했다. 

  이런 룰은 (왕과 왕비가 시켰기에) 가정교사가 제자에게 체벌을 가할 때조차 지켜야 했다. 왕자는 바지를 내리고 피가 날 때까지 맞지만 모자는 쓰고 있고, 신하는 피가 나도록 때리면서도 제단 위 성체 앞에 선 사람처럼 모자를 벗어야 했다. 우리가 상상하듯이 이런 장면은 “우리가 아무리 헐하게 대한다 해도 왕은 신성으로 보호된다”는 견고한 진리의 생생한 사례였다. 

 

  단순한 살덩이와 피보다 더 큰 무엇이 되려는 열망은 그 시대 예술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왕들과 왕비들, 고관대작들과 귀부인들은 루벤스가 그려낸 풍채와 풍유화한 특징처럼 자신을 생각하고 싶어 했다. 즉, 초인적으로 강력하고 더할 나위 없이 강건하고 영웅처럼 위엄 있는 모습으로. 그들은 반다이크가 그린 초상화에 담긴 모습 같은 자신을 보기 위해 터무니없는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즉, 우아하고 세련되고 한없이 귀족적인 모습을. 

  또 극장에서는 코르네유의 남녀 주인공들한테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그건 왜냐하면 그 주인공들이 고관대작인 그들의 힘과 의지와 초인적인 가치를 찬양했기 때문이다. 해가 가고 또 가면서 고전 극장은 한층 더 엄격하게 시간과 장소, 행위의 일치를 고집했다. 왜냐하면 고관대작 관객들이 저희 극장에서 보기 원한 것은 실제 삶의 묘사가 아니라 삶의 알레고리였으니까. 바로 고관대작 관객들에게 부족한, 수정된 삶, 질서 잡힌 삶, 이상적인 삶. 

 

  저택 건축에서도 시대 분위기는 장대함을 갈망했다. 이런 사실은 리슐리외 추기경 궁을 지을 때 소년이었다가 베르사유가 완공되기 얼마 전에 죽은 시인이 언급했다. 바로, 앤드루 마블.[각주:5]

 

  아담의 초라한 아들이여, 

넌 어째서 화려한 궁전을 세웠는지? 

숲 짐승은 굴속에 몸을 감추고, 

새는 나뭇가지들로 둥지 엮고, 

안방샌님 거북이는 무서울 때 

제 갑각 속으로 움츠러들지.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지붕 없는 삶이란 건강에 안 좋아. 

하지만 인간 하나만이 그런 

대저택에 살지 못해 안달하는구나. 

거기 백색 대리석 벽 안에서 

썩어 티끌이 될 뿐이거늘

 

  대리석 벽들이 늘어나면서 그 안에 들어찬 ‘사치스러운 티끌[각주:6]들의 가발은 더 풍성해지고 그들의 구두 뒤축도 더 높아졌다. 태양왕과 그의 궁정 신하들은 한껏 높은 구두 뒤축 위에서 기우뚱거리고 탑처럼 치솟은 말총을 머리에 얹고 다니면서 저희가 실물보다 더 크고 한창 때의 삼손보다도 더 남성답다고 선포했다. 

 

  자연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런 시도가 늘 실패로 끝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도 이중의 실패로. 왜냐하면 우리네 17세기 선조들은 초인적인 존재가 되기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데도 실패했으니 말이다. 이 황당하고 오만한 정신은 달성 못할 과제로 돌진했으나, 오호라, 육신이 너무 연약한 것으로 드러났구나. ‘위대한 세기’는 물적 자원과 조직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으며, 그런 게 없이는 초인적인 체하는 게임이 성립될 수 없었다. 

 

17세기 궁정과 귀족사회의 화려함은 허식

 

  리슐리외와 루이 14세가 그렇게나 갈망하던 그 장엄함과 그 비상한 위풍은 지그펠트나 코크란, 막스 라인하르트 같은 최고의 연출가와 이미지메이커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거대한 쇼맨십은 일단의 장치와 충분히 비축된 소도구실, 관계자들 모두의 고도로 훈련되고 규율 잡힌 협력에 좌우된다. ‘위대한 세기’에는 그런 훈련과 규율이 결여됐고 극장식 장엄함의 물질적 기반조차 부족했다. 즉, 신을 선보이고 실제로 만들어내는 기계장치조차 아직 미완이었다. 

 

  태양왕도 리슐리외조차도 ‘무엇 하나 적절하게 해본 적이 없는 ’테르모필레의 노인들’[각주:7]이었을 뿐. 베르사유 자체는 이상하게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거대하지만 따분하고, 거드름 빼지만 효과가 전혀 없었다. 

  17세기의 화려한 허식은 상당히 날림이었다. 무엇 하나 미리 적절히 연습된 게 없어서 가장 장엄한 예식들조차 아주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사고가 돌발하여 망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루이 14세의 사촌으로 파리 전역에서 조롱거리가 됐던 대공녀의 장례식 스토리를 보자

 

  당대 유별난 관습에 따라 사후에 공주의 시신은 잘게 절단되어 부위 별로 담겼다. 머리는 여기에, 팔다리는 저기에, 심장과 기타 내장은 또 다른 곳에. 그런데 내장을 제대로 방부하지 않은 까닭에 처리 후에도 부패가 계속됐다. 가스가 축적되어 내장을 담은 반암 단지가 일종의 핵폭탄이 되어 버렸다. 이 폭탄이 하필이면 장례식 도중에 터지는 바람에 참석자들이 전부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런 생리적 사고가 사후에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17세기에 관한 회고록 저자들과 일화 수집가들한테는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예배당에서 난데없이 터진 된트림, 왕족이 있는 자리에서 발생한 공기 오염, 식도락을 즐기는 왕들이 풍기는 썩은 고기 냄새, 공작과 장군들한테서 나는 암내… 앙리 4세의 발 냄새와 겨드랑이 암내는 국제적 명성을 누렸다. 궁정 미남자 벨가드가 늘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애정 충만한 바솜피에르는 제 군주 못지않은 발 냄새를 풍겼다. 

 

  이런 일화들이 인구에 널리 회자된 사실이 왕들과 귀족들이 당당함과 고상함을 갖추려는 시도가 얼마나 덧없는 짓이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고관대작들이 인간적인 면보다 더 큰 무엇으로 보이고자 애썼기 때문에, 사회는 그들이 그저 동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얘기는 무엇이든 환영하면서 그들을 놀려댔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세속적으로도 성직자로서도, 또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지위에서도 높은 지위에 걸맞게 굴고자 하면서 절반 신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노인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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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0단계.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들과도... 47

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42

8단계. 승복이라는 의미 37

7단계. 고통의 몸체 다스리기 32

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1. William Harvey (1578-1657) - 잉글랜드의 의사, 생리학자, 발생학자, 해부학자. 혈액 순환 체계를 발견, 수혈 등의 치료법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17세기 이전 사람들은 혈액이 간에서 계속 생성되며 신체 기관에서 소비된다고 믿었다. [본문으로]
  2. Jan Baptist van Helmont (1580–1644) - 플랑드르의 화학자, 생리학자, 의사, 신비주의 신지학자. 파라셀수스와 의화학이 유행하던 시기 이후에 활동, '기체 화학 창시자'로 간주돼. '자연 발생'에 대한 개념, 5년 간 버드나무 실험, '가스'라는 단어를 과학사전에 소개. [본문으로]
  3. Saint-Simon de Rouvroy (1760–1825) - 프랑스의 백작, 사상가, 사회학자,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주요 저술 중 하나는 [본문으로]
  4. César, duc de Vendôme (1594-1665) - 앙리 4세와 그의 정부 데스트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이 13세 때 발생한 몇 차례 귀족 반란에 가담. 1626년 리슐리외 암살을 도모했지만 실패. 1640년 다시 리슐리외 독살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자 잉글랜드로 피신했다가 루이 14세가 즉위하지 귀국. [본문으로]
  5. Andrew Marvell (1621-1678) - 잉글랜드의 시인. 형이상학파의 마지막 시인들 중 하나. 는 잉글랜드 고전주의 시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본문으로]
  6. wanton mote - 마블의 유명한 시 <애플턴 하우스에서, 페어팩스 경에게>에 나오는 시구로 인간을 의미. [본문으로]</애플턴>
  7. Thermopylae - 기원 전 480년 스파르타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에 대패한 그리스 해안 협곡.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00킬로미터쯤에 위치. 영화 <300>의 배경. [본문으로]</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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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라퐁텐은 드문 예외일 뿐이다. 라퐁텐의 동시대인들은 글에서 인간 외적 본질인 자연 세계에 눈길을 전혀 돌리지 않았다. 코르네유의 비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은 면밀하게 조직된 계층적 집단의 세계에 살고 있다. 옥타브 나달이 ‘코르네유의 세계는 바로 도시’라고 쓴다. 

  라신의 여주인공들과 그들을 고민케 하고 특색 없는 남자들의 더 엄격히 제한된 세계는 코르네유의 도시처럼 창문이 없다. 이 세네카 풍 비극의 극치는 숨 막히고 좁아서 공기도 없고 편히 움직일 공간도 없고 배경도 없는 파토스이다. 그것들이 <리어 왕>, <당신 좋을 대로>, <한여름 밤의 꿈>, <맥베스> 등과 얼마나 다른가 말이냐. 

  셰익스피어의 코미디나 비극은 어떤 것이라도 읽다 보면 어릿광대며 악인, 영웅, 고급 매춘부, 눈물 흘리는 왕비들 같은 인간 세상 뒤편에 지구와 우주가 늘 존재하며 생물과 무생물의 세상이, 이성이 없는 것과 의식이 또렷한 세상이 있다는 사실들이 거의 스무 줄마다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사람을 자연과 떨어진 상태에서 묘사하는 시는 사람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실제로 확고하게 연관된 인간 외적 세계는 무시하고 인간 영혼 안에서만 하느님을 알고자 애쓰는 영성은 거룩한 존재의 충만함을 알 수 없다. 

 

가톨릭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 1889-1973

 

  우리 시대의 저명한 가톨릭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이렇게 쓴다.[각주:1]

  “내 가장 깊고 가장 확고한 소신은, 만약 그것이 이단적이라면 정통 교리에는 더 나쁜데, 모든 사상가들과 학자들이 뭐라 해도 신의 뜻은 우리가 만물을 도외시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거꾸로 우리가 만물을 통하고 우리 출발점으로서의 만물과 함께 그분을 찬양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신앙 서적을 난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17세기에 가장 덜 불쾌한 신앙 서적들 중 하나는 토마스 트러헌[각주:2]의 <명상의 시대>일 것이다. 잉글랜드의 시인이요 신학자인 그는 하나님이 당신 피조물에 나쁘게 대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거꾸로,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찬미할 필요가 있으며, 모래알에서 무한한 공간을, 꽃송이에서 영원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트러헌의 표현에 따르면, 사욕 없는 관상을 통해 ‘세상을 얻는’ 사람은, 그리하여 하나님을 얻으며 나머지는 전부 저절로 추가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모든 갈망과 야망을 채우고 의심과 배신을 물리치고 용기와 기쁨으로 굳건해지는 것이 정녕 달콤한 일 아니런가?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세상을 얻기만 하면 다 달성될 수 있다. 그러면 지혜와 힘과 선함과 영광의 하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니까.” 

 

  이상적인 삶에서 랄망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자연적 요소와 초자연적 요소의 혼합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듯이, 그가 말하는 ‘자연적인 것’이란 자연 전체가 아니라 그저 발췌한 일부일 뿐이다. 

  트러헌도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의 뒤섞음을 옹호하지만, 그는 자연을 가장 작은 디테일까지 포함해 통째로 받아들였다. 그가 보기에 백합들과 까마귀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존재한다. 자, 여기 모래가 있고, 모래 알갱이들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것들을 사랑스럽게 응시하라. 그러면 그 안에서 영원성도 무한성도 보게 되리니

 

  자연물에 내재한 이 신성함을 수렝도 체험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무나 지나치는 동물한테서 하나님의 충만한 위대함을 실제로 감지한 순간들이 있었다고 몇몇 짧은 기록에서 고백한다. 그러나 아주 이상하게도, 갖가지 작은 것들 속에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개념을 어디서도 상세하게 기술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많은 영적 서신의 수신자들한테도 백합에 관한 그리스도의 권고를 따르면 암중모색하는 영혼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점을 한 번도 조언하지 않았다. 

  타락한 자연은 모두 부패한 것이라고 주입된 믿음이 직접 체험에서 얻은 것보다 그의 마음에서 더 강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겠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독단적인 말과 가르침이 확연하고 자명한 사실을 흐리게 만들었다. 

 

  선종의 3대 조사는 “제 앞에 있는 이것을 보고 싶다면, 이것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고정된 관념을 갖지 말라”고 쓴다.[각주:3]

   그러나 관념 고정은 신학자들이 직업적으로 하는 일이고, 수렝과 그의 스승은 깨달음을 추구한 사람이기 이전에 신학자였다. 

 

  랄망의 고행에서 가슴의 정화는 성령의 인도에 늘 온유하게 따름으로써 완성됐다.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각주:4] 중 하나는 이해력인데, 이 이해력에 맞서는 악덕은 ‘영적인 것들에 대한 난폭함’이다. 이런 난폭함은 갱생하지 않은 자들에게 흔한 상태이며, 그런 사람은 대체로 내면의 빛에 완전히 눈이 어둡고 감화의 목소리에 완전히 귀가 어둡다. 

 

  이기적인 충동을 억제하고, 제 생각을 추적하는 증인을 두고, ‘마음 움직임을 감시하는 작은 파수꾼’을 세움으로써… 사람은 마음 그 어느 깊은 곳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직관적 지식과 직접적 명령과 상징적 꿈이며 판타지 형태의 메시지를 인식하게 되는 점까지 직관을 키울 수 있다. 

  끊임없이 돌아보고 경계하는 가슴은 모든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결국 ‘성령에 점유(감화)되고 지배(인도)된다.’

 

  그러나 이런 경지로 가는 길에서 아주 다른 종류의 점유와 지배가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모든 영감과 계시가 다 하나님께서 나오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것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들 중 어떤 것이 성령의 목소리이며 어떤 것이 미치광이 목소리고 사악한 범죄의 목소리인지, 어떻게 식별해야 하나? 

 

  피에르 베일[각주:5]이 한 독실한 재세례파 젊은이의 경우를 인용한다. 이 젊은이는 어느 날 아우의 목을 베라고 명령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성서를 많이 읽은 그 아우는 이런 일이 이전에도 벌어졌다는 것을 알기에 이 계시의 신성함을 인정했다. 같은 신자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제 2의 이삭처럼 자발적으로 죽음으로 달려가 참수를 당했다. 

  그런 경우를 키에르케고르는 ‘도덕성의 목적론적 유보’라고 우아하게 칭한다.[각주:6] 창세기와 달리 실생활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실생활에서 우리는 광기의 속삭임에 현혹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랄망은 ‘계시’라는 것이 하나님한테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신자들이 망상에 빠지지 않게끔 여러 모로 경고했다. 성령에 순종하라는 그의 교리가 내재적 영혼이라는 칼뱅파 교리 같은 것이 아니냐며 의심쩍게 이의를 제기한 동료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 계시 형태로 나타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그 어떤 선행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종교의 신조이고, 둘째, 종교적 계시는 가톨릭 신앙과 교회 전통과 교회 권위자들에 의해 인정된다. 만약 계시라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과 교회에 역행하게 한다면, 그건 거룩한 계시일 수 없으리니. 

 

  이는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광기를 조심하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퀘이커교도들이 활용하듯이, 다른 방법도 있다. 특이하거나 위험스러운 뭔가를 해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밀려올 때 그 사람은 ‘존중하는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계시의 본질에 관해 그들 의견을 따라야 했다. 

  랄망도 같은 절차를 옹호한다. 그는 성령이 실제로는 ‘우리한테 판단력 있는 이들과 상의하고 우리 행위를 가까운 이들 의견에 맞추도록 촉구한다’고 주장한다. 

 

  그 어떤 좋은 행위도 성령의 계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랄망은 이것이 가톨릭신앙의 신조라고 단언한다. ‘난 그런 식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투덜거린’ 동료들한테 이렇게 답했다. 

  참 신자들에겐 그런 계시가 늘 따라다녀요, 본인이 못 느끼는 중에도. 그대들이 온당하게 살기만 한다면 종교적 계시를 필히 인식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들은 제 자신 바깥에 살기를 택하면서 제 영혼을 들여다보러 집으로 잘 오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서약한) 양심 점검을 아주 피상적으로 행하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빤한 잘못들만 참작한다. 제 욕구와 습관의 내적 뿌리를 찾으려 애쓰지는 않고, 마음의 상태와 경향이며 가슴의 작열을 돌아보지는 않고서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성령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들 놀랄 게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성령의 목소리를 어찌 들을 수 있겠나? 그들은 저희 행동으로 인한 은밀한 마음속 죄마저도 알지 못하거늘. 그러나 그런 걸 알기에 적절한 조건을 내면에서 만들기만 하면, 성령이 인도하심을 틀림없이 알게 되리라.」 

 

  이런 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른바 선행이요 자선이라 하는 것들 대부분이 왜 비효율적이며 나아가서 많은 경우 왜 유해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속담처럼 만약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각주:7] 한다면, 그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내면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빛을 못 보기에, 순수한 선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행동하기 이전에 늘 관상(심사숙고)이 선행돼야 한다고 랄망이 말하는 것.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우리는 내면에 더 침잠할수록 바깥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내면의 자신을 덜 들여다볼수록 선을 행하려 애쓰기를 더 삼가야 한다.」 

  다른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선 활동에 들이덤비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열의와 자선의 동기가 순수한 것일까? 아니면, 그런 일에서 자기애를 충족하기 때문에, 기도나 공부를 싫어하기 때문에, 제 방에서 호젓하게 명상에 잠기기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은 아닌가?」 

 

  어떤 성직자가 헌신적인 신도들을 많이 데리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자의 말씀과 선행은 ‘그가 얼마나 사리사욕에서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지에 비례해서만’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언뜻 선을 행하는 듯 보이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왕왕 있다. 영혼을 구하는 사람은 거룩한 이들이지 사업에 능한 자들이 아니다. 

 

  「행위는 우리가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장애가 되어선 안 된다. 외려 우리를 그분한테 더 큰 사랑으로 더 바짝 묶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과하면 육체의 죽음을 야기하는 어떤 체액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 생활에서도 지나치게 활발하며 기도와 명상으로 절제되지 않은 활동 필히 영적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결실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아주 칭찬받을 만하고 눈부시고 건설적인 일을 하는데도 말이다! 

 

  계시의 조건인, 욕심 없는 자기성찰 없이는 재능도 결실 맺지 못하고 열의와 근면도 영적 가치를 전혀 일궈내지 못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평생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단 한 해에 해낼 수 있다.」 

  그래, 외적인 작업은 외부 상황을 바꾸는 데는 효율적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좋은 환경에도 파괴적이고 자멸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데, 상황에 대해 사람들의 그런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일꾼은 먼저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영혼이 계시를 접하게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저 외부 지향적인 사람은 트라야누스[각주:8] 황제처럼 일하고 데모스테네스[각주:9]처럼 웅변을 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면을 지향하는 사람은 한마디 말로도, 다른 사람이 총명과 학식을 다 동원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인상을, 많은 가슴과 마음에 안길 수 있다. 그 한마디에 성령이 깃들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성령에 점유(감화)되고 지배(인도)된다’는 것을 실제로 어떻게 느끼나? 지속적인 계시 상태를 수렝보다 나이 적은 동시대 여성 아멜 니콜이 아주 꼼꼼하게 묘사했다. 그녀를 고향 브르타뉴 전역에서는 애정을 담아 la bonne Armelle (착한 아멜)이라 불렀다. 

  하녀로서 음식 만들고 걸레질하고 아이들 돌보면서도 관상하는 성자의 삶을 산 그녀는 글을 배우지 못해 제 사연을 적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재주 있고 글을 잘 아는 수녀가 있어서, 그녀의 은밀한 얘기와 고백을 거의 놓치지 않고 기록하게 됐다. 

 

  「아멜은 자신이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고 그저 고생하며 하나님 역사에 순종하는 데에만 적합하다고 여겼다. 고백하기를, 육신을 지니고 있지만, 이 육신은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인도된다고 했다. 하나님이 그녀 영혼에게, 내가 들어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라, 명령하고 거기 들어서셨다. 아멜은 제 육신이나 마음에 관해 말할 때 ‘내 몸’이나 ‘내 마음’이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의’라는 단어가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다고 했다. 

  그녀가 언젠가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이 절대적 주인이 되었을 때 그 동안 나를 가로막은 것들을 (나쁜 습관과 이기적 충동 따위를) 모두 내버렸어요. 그렇게 되자, 그녀 마음은 주님이 그녀 영혼의 심연에서 어떤 일을 벌이는지 깨닫지 못했고, 그 역사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녀 마음은 하나님만이 자유로이 들어설 수 있는 이 심연의 문 밖에서 주인 명령을 공손하게 기다리는 하인과 같았다. 간간이 아멜은 전능자께서 계신 은밀한 문 앞에 많은 천사들이 입구를 지키듯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 상태가 얼마 동안 지속됐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그녀의 의식적인 자아를 영혼의 심연으로 들여놓으셨다. 들여놓을 뿐 아니라, 거기 가득 채워진 신성한 완성을 실제로 보게 하셨다. 그건 사실 늘 차 있었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녀가 알지 못했던 것일 뿐. 내면에서 느끼는 그리스도의 빛은 그녀가 감당키 어려울 만큼 강해서 한동안 육신이 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점차 견디게 되면서 그리 큰 고통 없이도 계속 그 빛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아멜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놀라운데, 다른 비슷한 증언들과 대조해 보면 한층 더 흥미롭다. 즉, 만물의 신성한 근간과 같은 본질인 순수한 자아 혹은 아트만이 이 놀랄 만한 자아에 내재돼 있다는 점. 영혼 안에는 ‘하나님만 들어설 수 있는’ 은밀한 심연이 있다. 

  하나님만 들어설 수 있는 까닭은… 신성한 근간과 의식적인 자아 사이에 비인격화된 실체, 곧 우리네 무의식의 지대가 깔려 있는데, 거기에는 범죄적 본능과 원죄가 둥지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의식은 광기와도 가깝고 하나님과도 가깝다. 

 

  우리는 원래의 죄를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우리한테는 원래의 덕도 (원덕도) 있다. 이를 서구 신학에서는 ‘은혜를 감당할 능력’ 혹은 ‘영혼의 불꽃’이라 부른다. 이건 최초의 순수와 결백을 간직한 의식의 파편. 이 타락하지 않은 의식의 파편을 ‘신테레시스[각주:10]라 부른다. 

  프로이트 유파 심리학자들은 원덕보다는 원죄에 훨씬 더 많이 주목한다. 그들은 쥐와 바퀴벌레들을 차분히 연구하지만 내면에서 느끼는 그리스도의 빛을 보기를 꺼린다. 융과 그의 후계자들이 좀 더 현실적이다. 그들은 개인적 무의식의 경계를 넘어섰고, 마음이 점점 더 비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심령매체와 뒤섞이는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융의 심리학은 내재하는 망상증의 범위를 넘어섰지만 내재하는 신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반복컨대, 원죄의 밑바탕이 되는 원덕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 아멜의 경우가 독특한 건 아니었다. 영혼의 심연이 있어서, 거기서 신성한 사랑과 지혜의 빛이 나온다는 것을 역사 내내 많은 사람들이 인식해 왔다. 

  그것을 수렝 신부도 인식했는데, 단지 저 뒤에서 기록되듯이, 그와 함께 심령매체에 두려움이 있고 개인적 잠재의식에 해로운 쓰레기가 있음을 강하게 인식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과 사탄을 같은 순간에 인식했고 자신이 모든 존재의 신성한 근간과 영원히 결합됐음을 아주 확실히 알면서도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저주받았다는 것도 굳게 믿었다. 

  결국, 우리가 저 뒤에서 보게 되듯이, 그것은 하나님을 두루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그 고통 받는 마음에서, 원죄는 시간과 상관이 없는 까닭에 훨씬 더 크고 많은 원덕 속으로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신비 체험, 현신, 이른바 ‘우주 의식’의 번쩍임 등은 간청한다고 하여 얻는 것이 아니며 실험실에서 일률적으로 마음대로 반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혼 깊은 곳에서 얻은 체험이 명령에 따르는 게 아니라면, 그 심연으로 다가들고 그 영역 안에 존재하며 천사들 속에서 (아멜의 말대로) 문가에 서는 체험은 반복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최면상태를 실험한 사람들은 이런 점을 발견한다. 즉, 어떤 트랜스 깊이에서 피험자들이 홀로 있고 주의가 산만하지 않다면 내재된 평정과 좋은 상태를 심심찮게 알게 된다는 것. 이때 이 좋은 상태는 광대하지만 고립되지 않은 공간들이나 빛의 인지와 자주 연관된다. 

 

  랄망과 그 제자들은 신비 체험의 근거를 굳이 입증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신비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으로 알았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레오파고스의 디오니시우스의 <신비주의 신학>에서부터 테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성 요한[각주:11]의 얼마 전 증언에 이르기까지 가장 믿을 만한 문헌들로 확인도 했다. 

  가슴 정화와 성령에 온유함으로써 달성되는 그 목표의 신성한 본질과 가능성을 그들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과거에 하나님의 미더운 종들이 이 길을 거치고 서면 증거를 남겼으며, 그 증언들의 정통성을 로마교회 박사들이 담보했다. 이제 그들은 감각과 의지가 몸부림치는 어두운 밤들을 스스로 이겨낸 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알지 못하는 평정 상태를 체득하게 됐다

(3편 끝. 4편 1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1. Gabriel Marcel (1889-1973) - 프랑스의 철학자, 극작가, 비평가. 유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적 철학자. 나이 마흔에 가톨릭에 귀의. <형이상학적 일기>, <구체적 철학 경험> 등. [본문으로]</구체적></형이상학적>
  2. Thomas Traherne (1637-1674) - 잉글랜드 성공회 성직자, 시인, 사상가, 지복 철학을 다룬 산문 Centuries of Meditations이 20세기 초에 발간돼 널리 읽힌다. [본문으로]
  3. 欲得現前 莫存順逆 -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스름을 두지 말라. <신심명> [본문으로]</신심명>
  4. 1지혜 2이해력 3지식 4권고 5인내 6경건함 7신의 외경. 이 일곱 가지 선물의 원천으로 흔히 이사야서 11장 1-2절을 꼽는다 [본문으로]
  5. Pierre Bayle (1647-1706) - 프랑스 계몽시대의 영향력 있는 사상가요 신학 비평가. 칼뱅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잠시 가톨릭에 귀의. ‘계몽철학의 화약고’라 불리는 <역사와 비평 사전> 때문에 프랑스 가톨릭과 개혁교회한테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의 적수들도 친구들도 모두 위대한 지성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본문으로]</역사와>
  6. 쇠렌 키에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1813-1855) - 덴마크의 종교철학자, 신학자, 저술가, 현대 실존주의의 선구자.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보편적인 윤리를 유보하거나 정지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공포와 전율>에서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통해 조명한다. 이 저술의 장르를 그 스스로 ‘변증법적 비가’라 정의했다. [본문으로]</공포와>
  7.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 유럽 속담. 좋은 일을 하려고 의도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고,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 혹은, 상황을 더 좋게 만들려고 의도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나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뜻. [본문으로]
  8. Caesar Nerva Trajanus (53-117) - 고대 로마 황제. 속주들과 이탈리아, 로마 등지에서 대규모의 토목공사 실시. 도로와 교량, 수로의 건설, 황무지 개간, 항구 건물의 건축. 특히 로마는 트라야누스의 토목공사로 풍요롭게 변모했다. [본문으로]
  9. Demosthenes (B.C. 384-322) -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 웅변가. [본문으로]
  10. Synteresis - 가톨릭 교부요 성서학자인 히에로니무스(342-420)가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아이스킬로스(B.C. 525-456)의 작품을 풀이하면서 양심(conscientia)을 뜻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 이것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 우리 안에서 마지막까지 선을 알게 한다. 세네카 등 스토아학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며, 양심에 대한 태도를 여러 모로 정의하면서 나중에 토마스 아퀴나스 등 스콜라철학자들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8) 등 신비주의자들도 사용했다. [본문으로]
  11. Dionysius the areopagite (460경-520경) - 침묵과 비움을 설파한 기독교 신비주의 성자, 시리아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영성가. St. John of the Cross (1542-1591) - 성 환 델라 크루스. 에스파냐 영성가, 반종교개혁의 주요 인물, 테레사 성녀와 함께 ‘맨발의 카르멜회’ 창립, 로마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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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1

 

이름난 풍자 작가요 나중에 주교가 된 조셉 홀[각주:1]이 1605년 처음으로 플랑드르[각주:2] 지역을 방문했다. 

「여로에서 우리는 파괴된 교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도처에 남은 거친 잔해들이 신앙과 더불어 동족상쟁 역시 처절했음을 여행자에게 말해준다. 오오, 전쟁의 참혹한 흔적이여! 그러나 교회들은 무너졌다 해도 (경탄스럽게) 도처에서 예수회 칼리지들이 나타난다. 내가 들른 도시마다 이 학교들이 이미 문을 열었거나 세워지는 중이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연 정책이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이 사람들은 저주를 가장 많이 받는 곳에서 (여우처럼) 일을 가장 잘 꾸려 간다. 저희 진영에서 극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모든 이들한테 미움을 받고 우리의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이 독한 잡초들은 쑥쑥 자란다.」   

 

칼리지들은 아주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바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 홀과 그 세대가 잘 알고 있었듯이 예수회원들은 이른바 ‘정책’을 가장 중시했다. 예수회가 학교를 계속 세운 까닭은 적대자며 자유사상가며 프로테스탄트들에 맞서 로마가톨릭교회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예수회원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쳐 교회 이익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계층을 만들고자 했다.[각주:3]

 

이런 현상을 체루티가 아주 잘 표현했다. 「우리가 다리를 곧게 펴 주려고 갓난애 아랫도리를 천으로 동여매듯이, 사람을 평생 건강하고 유복한 상태로 만들려면 유년기부터 의지를 동여매야 한다.」 (이 언급에 줄 미슐레[각주:4]가 극도로 분개했다.) 

교육자들 의도야 정말 단호했지만 그 뜻을 알리고 지도하는 방법이 미흡했다. 학생들 의지를 천으로 동여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최우수 생도들 중 몇몇은 칼리지를 졸업하자 열렬한 자유사상가가 됐고, 장 라바디[각주:5]처럼 프로테스탄트가 된 이들도 있었다. ‘정책’이 관련된 이상 교육 체계는 설립자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다중은 정략적 측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저희 자식들이 젊은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것을 다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중요할 뿐이었다. 이런 요구에 예수회원들이 다른 대다수 교육 공급자들보다 더 잘 부응했다.

 

「예수회 지붕 아래서 보낸 일곱 해 동안 나는 무엇을 눈여겨보았던가? 온건하고 근면하고 절도 있는 생활. 예수회 수사들은 하루 모든 시간을 우리들 교육에, 혹은 그들 서원을 엄격히 실행하는 데 바쳤다. 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나처럼 그들 밑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이 증언하기를 바란다.」  

볼테르가 그렇게 적었다. 이 말은 예수회 교수법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와 동시에, 볼테르의 생애 자체는 학습을 ‘정책’이라는 목표에 맞추려고 한 교육자들의 시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한층 더 확실하게 입증한다.[각주:6]   

 

볼테르가 칼리지에서 공부하던 때, 예수회 학교들은 이미 잘 알려지고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 이전 교육 현장에서는 칼리지의 많은 장점이 정말 혁명적이었다. 대다수 교육자들이 회초리 휘두르는 능력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이던 그 시기에, 예수회원들의 교육 방식은 제법 인도적이었으며 교수진도 신중하게 선별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여기서는 고급 라틴어를 가르치고 광학과 지리와 수학, 극작 분야에서 최신의 성취를 들려주고 (그들의 학기 말 연극 공연은 유명했다), 좋은 예절과 교회에 대한 존중과 (적어도 프랑스에서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는) 국왕 권위에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회 칼리지들이 전형적인 상류 부유층 취향에 맞았다. 즉, 애지중지하는 아이가 구식 교육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다고 마음먹은 어머니들, 그 자신이 학식을 갖추고 있으며 건전한 교리와 키케로 식 달변에 관심이 큰 숙부들, 또 그 자신이 애국심 있는 관리로서 군주제 원칙을 인정하거나 미리 앞을 내다보는 부르주아로서 예수회가 폭넓은 연줄로 제자들한테 좋은 직무나 궁정의 한 자리, 교회 명예직 따위를 찾아주겠지 기대한 아버지들… 바로 그들 입맛에 딱 맞은 것이다. 

 

예를 들어, 루앙 시의 코르네유 부부 같은 이들을 보자. 가장은 왕실 고문변호인이고 아내는 변호사 딸인 마르트 르 프장. 어린 아들 피에르가 특출한 재주를 보이는데, 어떻게 칼리지에 보내지 않을 수 있겠나?[각주:7] 

혹은 렌 시의회 고문인 조아킴 데카르트를 보자. 그는 1604년 총명한 막내아들 르네를 여덟 살밖에 안 됐지만 공부시키느라 라 플레시로 데려간다.[각주:8] 얼마 전 국왕의 승인을 받아 문을 연 예수회 칼리지로. 

 

또 거의 비슷한 시기, 생트 시에 학식 있는 참사회 위원인 그랑디에가 있다. 그에게 조카가 있으니, 비록 데카르트나 코르네유 같이 부유한 귀족은 못 되더라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인 또 다른 법률가의 아들이다. 우르뱅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이제 열네 살이며 지극히 영리하다.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생트 인근에는 보르도의 예수회 칼리지보다 더 좋은 학교가 없었다. 

이 유명한 배움터에는 소년들을 위한 중등 과정과 우아한 예술을 가르치는 칼리지, 신학교, 사제 임명 뒤에도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형제들을 위한 심화 과정이 다 있었다. 조숙하고 영리한 우르뱅 그랑디에가 여기서 십년을 넘게 보냈다. 중등학생에서 신학 대학생으로, 그리고 나이 스물다섯 된 1615년 이후 예수회 수련수사로… 그렇긴 해도 수도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예수회 엄한 규율을 따를 소명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니야, 수도회 안이 아니라 수도원 담장 밖에서 교구 신부로 커리어를 쌓고 싶어. 재주가 뛰어난데다가 막강한 교회 조직의 비호를 받는 사람은 이 직업에서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어떤 고관대작의 종교의식 담당이나 나중에 프랑스 육군원수나 추기경이 될 사람의 영적 카운슬러가 되는 거야. 또 주교 회의나 왕실 공주들 앞에서, 심지어 왕비 면전에서 뛰어난 언변을 과시할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야. 어디 그뿐이랴, 외교 사절이나 고위 행정직, 수입 좋은 명예직, 구미 당기는 불로소득 따위도 가능해. 또 (귀족 출신이 아니기에 확률이 떨어지긴 해도) 운이 좋다면 주교 예모로 머리를 장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생 노년이 화려하게 보장되는 거야. 

 

그의 이력 초기에는 그런 장밋빛 꿈이 다 이뤄질 수 있는 듯싶었다. 신학과 철학을 이태 동안 깊이 연구한 뒤 스물일곱 나이 젊은 그랑디에 신부가 오랜 기간 근면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예수회가 루덩 시에 있는 생피에르 뒤 마르셰 교구라는 중요한 생활 수단을 선사한 것. 같은 후견인들 덕분에 성 십자가 공주 성직자단 교회의 참사회 위원도 됐다. 사다리에 발을 걸쳤으니, 이제 할 일은 올라가는 것만 남았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1

 

  1. 조셉 홀 (Joseph Hall1, 574-1656) - 잉글랜드의 주교, 모럴리스트 문인, 풍자가. 호주가 발견되기 이전 남부 대륙의 환상적인 여행과 거기 풍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다르면서도 같은 세상 mundus alter et idem>(1605)의 저자. 이 책은 여러 모로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전신으로 평가된다. [본문으로]</걸리버></다르면서도>
  2. 플랑드르 - 현재의 벨기에 서부,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서부를 포함하는 지역. [본문으로]
  3. 예수회 - 종교개혁 시기인 1534년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로마가톨릭 수도회. 과격한 전투적 가톨릭 수호 선교기관. 1. 교육에 중점 2. 종교개혁에 대항 3. 세계 선교 등이 주요 목표. [본문으로]
  4. Jules Michelet (1797-1874) - 프랑스의 역사가, 사회평론가. 교회권력 반대자. 역사와 사회, 자연에 관해 아주 주관적인 책을 명료하고 격동적인 언어로 여러 편 썼다. ‘르네상스’ 용어의 창시자. [본문으로]
  5. Jean Labadie (1610-1674) - 프랑스 신학자,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고 경건주의 단체인 라바디파를 만들었다. (경건주의/Pietism - 정통 프로테스탄트에 맞서는 신비주의적 가르침, 보수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특색) [본문으로]
  6. Voltaire (1694-1778) - 프랑스의 작가, 사상가,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자. 18세기 유럽의 전제 정치와 종교적 맹신에 저항하고 진보적 이상을 고취. 비판 정신과 재치, 풍자 같은 프랑스 정서 특유의 자질을 구현한 작품 활동으로 유럽 문명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7. 피에르 코르네유(1606-1684) - 몰리에르,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 [본문으로]
  8.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프랑스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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