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가 투르를 떠나 앙부아즈로 갔다. 성스러운 이름자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수녀원 면회실을 밤 열한 시까지 마냥 열어두어야 했다. 다음날 블루아에서는 군중이 문을 부수고 잔느가 식사하는 숙소로 돌입했다.
오를레앙에서는 우르술라 수녀원에 머문 그녀를 보러 주교가 친히 내방했다. 그녀 손바닥을 꼼꼼히 들여다보더니 외쳤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우리가 감춰서야 되겠나, 누구나 와서 보게끔 하시오!” 그러자 숙사 문들이 죄다 열리고 수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객실 쇠창살을 통해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마음껏 보게 됐다.
파리에서 원장수녀가 로바르데몽 남작의 호텔에 묵었다. 슈브레즈와 드게메네 공이 자주 찾아왔고 2만에 이르는 하층 계급 군중이 날마다 건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잔느 수녀가 이렇게 쓴다.
「정말 당혹스럽게도 그들은 내 손을 보기 원할 뿐 아니라 마귀 들림과 악마 퇴치에 관해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하는 수 없이 난 책자를 하나 내게 됐고, 다중은 그걸 읽으면서 악마가 내 몸에 들어온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을 알 수 있었다. 내 손에 성스러운 이름자가 나타난 것은 특별한 대목으로 다뤘다.」
잔느 수녀가 파리 대주교 공디를 찾아뵈었다. 접견 후 이 고위 성직자가 그녀를 마차까지 배웅하면서 아주 정중하게 대한 뒤 파리 시민들이 전부 그녀를 보려고 앞 다투어 몰려들었다. 헐리웃 스타처럼 그녀 몸은 이미 제 것이 아니었다. 몰려든 인파가 실컷 바라볼 수 있게끔 아침부터 밤까지 일층 열린 창가에 계속 앉아 있어야 했다. 새벽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팔꿈치를 쿠션에 걸치고 기적 같은 손은 창 밖에 달랑 내놓은 채.
「미사를 드리거나 요기할 짬도 없었다. 날이 무척 더운데다가 군중이 열기를 더하는 바람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그예 정신을 잃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리슐리외 추기경을 방문한 날은 5월 25일이었고, 그 며칠 뒤 왕비의 명에 따라 원장수녀를 로바르데몽의 마차로 생제르맹앙레로 데려갔다. 거기서 안 도트리시 1와 오랜 시간 대화가 이어졌다. 왕비께서는 ‘교회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을 환희에 차서 들여다보며’ 경이로운 손을 한 시간이 넘도록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감격하여 외쳤다.
“이렇게 기적적인 일을, 이다지도 큰 경건함을 심어주는 일을 어찌 의심할 수 있단 말이지? 이 놀라운 일을 믿지 못하고 헐뜯는 자들은 다 교회의 적이야!”
경이로운 현상을 전해 듣고 루이 13세도 친견하게 됐다. 성스러운 철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나서 하는 말. “그래, 이 기적이 진실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내 눈으로 보게 되니 믿음이 한층 더 굳어지는구나.” 그러고는 실제로 마귀 들림에 아주 회의적으로 대한 신하들을 불러들여 잔느 수녀의 손을 보이면서 물었다. “자, 이걸 보면서도 달리 할 말들이 있겠소?”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생각을 꺾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신사들 이름은 내가 자비심을 베풀어 언급하지 않으련다.」 원장수녀가 그런 기록을 남겼다.
이 의미심장한 날에 유일하게 발생한 난처한 순간은 왕비가 ‘성 요셉의 기도를 통해 순산할 수 있도록’ (이때 왕비는 미래의 루이 14세를 뱃속에 품은 지 6개월 됐다) 성스러운 슈미즈에서 한 조각을 잘라 달라고 부탁할 때였다. 원장수녀가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하나님은 조각내기를 원치 않으실 것이라고 대답해야 했다.
마마께옵서 정히 명하신다면 통째로 드릴 수는 있겠나이다. 하지만 감히 아뢰건대 이 성물을 여태껏 해왔듯이 제가 가지고 있다면, 성 요셉을 따르는 무수한 영혼이 자기네 수호성인의 진짜 성유물을 직접 보면서 많은 위안을 얻지 않겠나이까.
왕비가 뜻을 거둬들였고, 원장수녀가 제 보물을 잘 간수하여 파리로 돌아왔다.
생제르맹 방문 이후 그 다음 사건들은 죄다 다소 밋밋해 보였다. 생(Sens) 대주교와 두 시간에 걸친 면담도, 몰려든 3만 군중도, 심지어 “이것은 하나님 교회에서 지금까지 보아온 가장 완벽한 것들 중 하나요” 하고 말한 로마교황 대사와 나눈 대화조차 그랬다. 그는 “이렇게 확고한 증거가 나타났는데도 위그노들이 어째서 눈을 못 뜨고 계속 완강하게 버티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는 말도 덧붙였다.
잔느 수녀와 동행인이 6월 20일 파리를 떠났는데, 그 뒤로도 머무는 곳 어디서나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고 고위 성직자들과 VIP들이 두 순례자를 자기네 저택으로 맞아들였다. 파리를 떠난 지 열나흘 째 되는 날 도착한 리옹에서는 그들을 알퐁스 리슐리외 대주교가 찾아왔다. 그는 재상의 장형이자 역시 추기경이었다.
부모는 알퐁스가 몰타 기사단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몰타 기사들은 규정에 따라 수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알퐁스는 거기서 결격이었다. 그래서 리슐리외 가문에 속한 뤼송의 주교직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카로토지오 수도회 수사가 되기 위해 곧 그 자리를 내놓았다. 아우가 가파르게 출세한 뒤 수도원에서 나와 처음엔 엑스의 대주교가 됐다가 리옹 대주교가 됐으며 추기경 예모도 받았다.
이 고위 성직자는 평판이 아주 좋았지만 가끔씩 정신착란 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면 금실로 수를 놓은 진홍빛 망토를 걸치고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아마도 리슐리외 가문에는 정신질환이 대물림된 듯싶다. 그의 아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도 가끔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말이라고 상상했다는 얘기도 나돌았으니 말이다.)
알퐁스 추기경이 성스러운 이름자에 관심이 대단해서, 그걸 외과적인 방법으로 검사해보려 했다. 이 글자들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지울 수 있을까? 그가 가위를 들고 실험에 나섰다.
그러자 잔느 수녀가 「감히 한 말씀 올렸다. “나리, 이건 저한테 고통을 안기시는 겁니다.” 그러자 추기경이 주치의를 불러들여 철자들을 깎아내라고 일렀다. 내가 맞섰다. “나리, 이런 시험을 겪으라는 지시를 제 상급자들한테서 받지 못했습니다.” 나리께서는 그 상사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원장수녀가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 상급자의 상급자는 추기경-공작이요 알퐁스 추기경의 아우임을 내비추었다. 그러자 그 즉시 시험이 중단됐다.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수렝 수사였다. 그는 이미 안시에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한데 일시적인 실어증에 걸렸다. 히스테리 상태에서 비롯된 게 분명한데 그 자신은 그게 악마의 간책이라고 확신했다. 수렝이 살레의 성 프랑수아 관 곁에서 악마를 물리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안시에 있는 방문동정회 수녀들은 성 프랑수아의 마른 피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건 성 프랑수아의 하인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발사이자 외과의가 성인에게 사혈을 할 때마다 모아둔 것이었다. 샹탈의 요안나 대수녀원장이 수렝의 불행을 가엾게 여겨 이 마른 핏덩어리를 먹게 했다. 일순간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그가 외쳤다. “예수 마리아!” 그러나 그게 전부였고,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리옹의 예수회 수사들이 협의한 끝에 수렝과 동행자 토마스 신부가 길을 되돌아가서 원장수녀를 순례 마지막까지 동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르노블로 가는 길에 사건이 하나 벌어졌는데, 그걸 잔느 수녀는 ‘진실로 경탄할 만한’ 일이라 부른다.
포마 신부가 Veni Creator 2 기도문을 읽기 시작하자 수렝 신부가 즉각 응창한 것. 그 뒤로 그가 (적어도 한동안은) 자유자재로 입을 놀리게 됐다. 그르노블에서 수렝은 다시 찾은 목소리를 활용하여 성 요셉의 성유와 성스러운 이름자들에 대해 여러 번 유창하게 강론했다.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이 인물이 악이 선이고 거짓이 진실이라고 열정적으로 주장하는 광경에는 숭고하면서도 안타까운 뭔가가 있다. 설교단에서 목청을 돋우어 사법살인의 적절함을, 히스테리의 신성함을, 협잡의 기적 같은 작용을 청중에게 설득하려 애쓰면서 병든 육신과 분열 직전 위태로운 정신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물론 그건 다 하나님의 더 위대한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의 도덕성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도 별 가치가 없는 법. 선의를 품었다 해도 비현실적이고 부적절하게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남을 무턱대고 믿으며 인간 심리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수렝 같은 이들은 전통적 종교와 발전하는 과학 사이에 가교를 결코 놓을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수렝은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기에 어리석게 처신할 권리를 지니지 않았는데, 이 경우에는 우자처럼 행동했다. 그는 스스로 제 열정의 수난자가 됐고, 그 열정은 해로운 것으로 드러났다. 3
그르노블을 떠나 이틀쯤 뒤 도착한 안시에서 보니까, 성 요셉의 성유라는 명성이 그들보다 먼저 와 있었다. 사람들이 성유를 보고 냄새 맡으려고 아주 먼 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렝과 토마스는 신자들이 가져온 물건에 성스러운 슈미즈를 가져다대느라고 끝없이 분주했다. 묵주며 십자가, 메달, 심지어 천이며 종잇조각들까지.
(그 동안 원장수녀는 방문동정회 수녀원에 묵었다. 거기 원장은 마담 드 샹탈.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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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 안 도트리시 (1601-1666) - 루이 13세의 왕비, 루이 14세의 모후. 1643-1661 프랑스 섭정. 에스파냐어로 Ana de Austria, 프랑스어로 Anne d'Autriche.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3세의 딸로서, ‘오스트리아의 안’이라 불린 것은 그녀의 증조부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를 상속 받은 카를 5세였기 때문. [본문으로]
- (라틴어) 오소서, 성령이여. [본문으로]
- “맹신은 바로 탐욕”이라고 파스칼은 말한다. “불신 역시 당연히 결함이지만, 맹신은 그 못지않게 파멸적이다.” - 저자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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