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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9.07.10 루덩의 악마들 1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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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의 내막, 3권, 구텐베르크 출판

 


 

  그때 파리에서는 그랑디에가 고등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다르마냑의 주선으로) 국왕을 직접 알현하게 됐다. 루이 13세가 주임신부의 권리 침해에 대한 상세한 하소에 마음이 흔들려서 정의를 낱낱이 바로잡으라고 명령했다. 

  그 며칠 뒤 티보가 파리 고등법원에 소환됐다. 그가 주저하지 않고 길을 나설 수 있던 것은 그랑디에를 체포하라는 주교 명령서를 지참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이 사건을 심리했다. 모든 정황이 주임신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티보가 과장된 제스처로 주교의 체포 영장을 꺼내 재판관들에게 건넸다. 그들이 문건을 읽더니 사건 심리를 즉각 연기했다. 

  주임신부가 교회 상급자와 해명한 뒤에 다시 심리하겠소. 

  그건 주임신부 적수들의 승리였다. 

 

  그러는 동안 루덩에서는 그랑디에의 행적에 대한 공식 조사가 시작됐다. 처음엔 편견 없는 민사 담당 경찰 수뇌 루이 쇼베가 조사를 맡았다가 사건이 깨끗하지 못함을 알고 사퇴하자 바로 그, 탁월하게 편파적인 검찰관이 맡게 됐다. 그러자 그랑디에를 겨냥한 비난과 고발이 사방에서 봇물 터지듯 했다. 

 

 성 베드로 교회에서 그랑디에의 부제들 중 하나인 메샹은 주임신부가 (그런 쾌락을 위한 것치고는 분명히 차갑기만 한) 교회 바닥에서 여인들과 뒹구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고 확언했다. 또 다른 성직자 마르탱 부요 신부는 제 동료가 교회 가족 지정석에서 세리제 씨의 숙모인, 죽은 마담 드뢰와 얘기하는 것을 기둥 뒤에서 훔쳐보았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트렌캉이 부요의 진술을 조금 고쳤다. 주임신부가 ‘앞에 언급된 귀부인과 무슨 얘기를 나눴다’고 한 처음 진술이 ‘앞에 언급된 귀부인과 대화하면서 그녀 팔꿈치를 잡았다’로 바뀌었다. 

  한데 가장 신빙성 있는 증언을 할 만한 사람들은 주임신부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즉, 느긋한 하녀들이며 부도덕한 아내들, 명랑한 과부들 그리고 필리프 트렌캉과 마들렌 드브루 등… 

 

  그랑디에가 자기 대신 라로슈포제와 ‘품위 감독관’에게 서신을 보내겠다고 약속한 다르마냑의 조언을 듣고 주교 재판에 자진 출두하기로 결심했다. 파리에서 은밀히 돌아와 사제관에서 하룻밤 보내고 이튿날 동틀 무렵 다시 말안장에 앉았다. 

  조반 먹을 때쯤 약제사가 전모를 알게 됐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는 이틀 전 루덩으로 돌아온 티보가 푸아티에로 뻗은 대로를 따라 전 속력으로 달렸다. 그는 곧장 주교 궁으로 들어가서 관계 당국자들에게 알렸다. 

  그랑디에가 지금 시내에 있는데, 자수한답시고 쇼를 벌여서 치욕적인 체포를 모면하려는 속셈입니다. 그런 계략은 어떡하든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품위 감독관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랑디에가 주교 궁으로 가려고 숙소를 나서다가 칙선변호사 입회하에 체포되어 주교 관구 감옥으로 연행됐다. 약간의 항변이 있었지만 별다른 충돌 없이.

 

  푸아티에의 주교 관구 감옥은 예하 궁전의 한 탑에 있었다. 주임신부가 여기서 간수에게 넘겨져 습기 많고 볕이 거의 들지 않는 독방에 갇혔다. 1629년 11월 15일 티보와 몸싸움 벌이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독하게 춥지만 죄수한테 따스한 옷 반입이 허용되지 않았고, 며칠 지나 그의 모친이 면회를 요청했지만 그마저 거부됐다. 두 주일을 끔찍이 고생하다가 라로슈포제에게 탄원서를 썼다. 

 

  「예하시여, 나는 심신의 고뇌가 천국에 이르는 참된 길이라고 언제나 믿으며 다른 이들한테 그렇게 강조하기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하의 선하심이 내 지옥행을 염려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구제하고자 갈망하여 나를 이곳에 내던지시기 전까지 나는 그 진리의 옳음을 시험해 볼 길이 전혀 없었나이다. 이곳에서 견디기 힘든 고뇌의 보름 동안 나는 이전 평안했던 사십 년 기간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됐습니다.」 

  이 서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자부심과 성서의 암시들로 가득하고 화려한 문장이 정성스럽게 이어졌다. 이런 식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얼굴을 사자의 얼굴과 기꺼이 합쳐 놓았습니다. 달리 말해, 예하께서 보이신 온화함은 내 적수들의 가혹함과 함께 나를 하늘나라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했습니다. 그 적수들이야 저희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또 다른 요셉처럼 나를 파멸시키려 드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이 죄인을 괴롭힌 증오와 적의가 기독교의 사랑으로 바뀌고 불타는 복수심은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더 맹렬한 갈망으로 대체됐고… 그리고 나사로에 관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 징벌 목적이 삶의 교정이고 두 주간 감옥 생활 끝에 그의 삶이 교정된 만큼 지체 없이 풀려나야 한다는 호소로 결론을 맺는다. 

 

  화려하고 과장된 스타일이라는 장치에서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글월은 인생과 같지 않다. 기법과 행위를 관장하는 규칙이 서로 다르다. 

  우리한테는 터무니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랑디에의 서한체가 17세기 초에는 아주 자연스럽고 신실한 감정으로 보였다. 시련이 그를 신에게 더 다가들게 했다는 믿음이 진정한 것임을 의심할 근거가 우리에겐 없다. 단지, 그렇게 다시 얻은 평안도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시련의 결실을 원상태로 돌리고야 만다는 것을, 그것도 15일이 아니라 단 15분 만에 그렇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불행히도 그가 제 본성을 너무 몰랐다. 

 

  이 탄원서에 주교가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그런데다가 이제 주교가 다르마냑과 그의 친구인 보르도 대주교의 서신을 또 받았는데… 이 지독히 꺼림칙한 하급 사제가 그런 영향력 있는 친구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극히 불쾌했다. 더더욱 참을 수 없는 점은… 

  흠, 그 친구라는 자들이 나한테, 라로슈포제 가문의 대표자한테, 학식 높은 인사한테, 학식 면에서 대주교는 내 마구간의 말보다도 못한데, 그런 그들이 나더러 교회의 어떤 법규를 따라야 한다고 감히 요구하고 나서다니! 이야말로 도저히 참을 수 없지! 그들이 주제넘게 나서지 않아도 순종하지 않는 젊은 신부를 내 다 알아서 처리할 게야! 

  주교가 죄수를 이전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다루라고 지시했다.

 

  이 힘겨운 나날에 주임신부를 찾아온 이들은 예수회 수사들뿐이었다. 그는 한때 그들의 제자였고 그들은 이제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선량한 수도사들은 영적인 위로뿐 아니라 따뜻한 양말 등속과 바깥세상의 편지들도 들고 왔다. 

  편지를 읽고 그랑디에가 알게 된 사실은… 다르마냑이 법무대신을 포섭했고, 법무대신은 티보와 관련된 사건을 루덩의 검찰관으로서 트렌캉이 다시 수사하라 지시했고, 그 뒤 티보가 다르마냑을 찾아와 화해를 제시했지만 ‘교회 대장부들’이 그건 그들 불법행위를 묵과하는 꼴이 될 터이니 어떤 합의에도 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것. 

 

  주임신부가 다시 힘을 얻어 주교에게 서한을 한 통 더 보냈다. 회답이 없었다. 세 번째 탄원서를 써 보낸 뒤 티보가 감옥으로 찾아와 법정 밖에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거부했다. 

  돈에 팔려 그를 고발한 증인 둘이 12월 초 푸아티에 법정에 나왔다. 한데 그들에게 호의를 보이던 판사들조차 진술을 듣고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 베드로 교회 대리 신부인 메샹에 이어 드뢰 부인과 교회 가족석에 있는 그랑디에를 훔쳐봤다는 다른 성직자가 나섰다. 그들의 증언도 부그로와 세르본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거의 설득력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진술들로는 그 누구한테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라로슈포제 주교는 형평법이나 법적 절차 같이 사소한 것들 때문에 제 길을 못 갈 사람이 아니었다. 1630년 1월 3일 최종 판결이 떨어졌다. 

  그랑디에는 석 달 동안 금요일마다 빵과 물만 먹고 푸아티에 주교 관구와 루덩 시 전역에서 5년 동안 사목 활동을 금지한다. 

  이 판결은 주임신부에게 재정적 몰락과 출세의 좌절을 의미했다. 그 대신 자유로운 몸이 됐다. 이제 다시 난롯불을 쬐고 (금요일 이외엔) 맛난 음식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친척이며 친구들과 얘기 나누고, 자신을 그의 아내라 믿고 (극도로 조심스레!) 찾아오는 여인과 밀회하는 자유를 얻었다. 또 라로슈포제의 상급자인 보르도 대주교에게 호소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그랑디에가 사건을 대주교 관구로 가져가겠다는 결심을 가장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투로 밝힌 서신을 푸아티에로 보냈다. 

 

  라로슈포제가 자부심이 상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이 용인할 수 없는 무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교회법 같은 추잡한 것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단 말이냐?!  교회법은 아무리 직급 낮은 성직자에게도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랑디에가 대주교에게 호소할 것이라는 소식이 트렌캉과 다른 음모자들에게 마뜩할 리 만무했다. 대주교는 다르마냑과 우의가 두텁고 라로슈포제를 싫어했다. 호소가 먹혀들 수 있다고 겁낼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루덩 시가 영원히 주임신부 수중에 들어간다는 뜻이리라. 그 호소가 먹혀들지 못하게 하려고 그랑디에의 적수들도 항소했다. 더 상급 교회법정이 아니라 파리 고등법원에. 

 

  푸아티에 주교와 그의 품위 감독관은 교회재판관들로서 금식이나 (극단적인 경우) 파문 같은 영적 징벌만 부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 법정은 교수형도, 사지절단형도, 낙형도, 강제노동도 선고할 수 없었다. 이런 형벌은 다 세속 법정의 사법권에 속했다. 하지만 그랑디에가 교회재판에서 유죄로 선고된 만큼 지상 권력 앞에서도 유죄가 되기에 충분해! 어쨌든 상소가 제출됐고, 재판이 돌아오는 8월 말로 잡혔다. 

 

  이번에는 주임신부가 노심초사하게 됐다. 불과 6년 전 ‘영적 인세스트[각주:1]와 신성 모독적인 방탕’ 때문에 산 채로 화형당한 시골 주임신부 르네 소피에 사건이 검찰관만큼이나 그의 기억에도 아주 생생했다. 그랑디에가 그해 봄과 여름을 다르마냑의 교외 저택에서 보냈는데 다르마냑이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시오, 소피에 사건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 그는 범죄 현장에서 체포된 데다가 법정에 친구들도 없었잖소. 반면에 이 경우에는 증거가 전혀 없고 법무대신이 도움을 주거나 최소한 호의적인 중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오. 그러니 다 잘 될 게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사건을 심리하게 됐을 때 판사들은 그랑디에의 적수들이 가장 우려하던 결정을 내렸다. 

  심리를 푸아티에의 형사 담당 경찰 수뇌가 맡아 재개하라. 

  그건 거기 판사들이 편견 없으며, 증인들은 가장 면밀한 반대심문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전망이 하도 우려스럽다 보니까 증인 중 하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쪽을 택했고... <2편 5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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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 1634년 화형

 


 

  아담의 약제용 악어 아래 저녁마다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가 가장 크고 원한이 가장 독했다. 주임신부를 극도로 혐오하지만 그가 일을 하도 교묘하게 처리한 바람에 분한을 그에게 불리한 쪽으로 분출할 수 없었다. 강요된 무위를 험한 언어로 벌충할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지만 적어도 토로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토로했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모욕적인 말로 지껄여댔기 때문에 마들렌의 친척들이 이른바 ‘중상 비방’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고해사제와 마들렌의 밀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트렌캉과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설정된 진실이 가장 좋은 진실이라 믿었다. 

  Magna est veritas legitima, et praevalebit.[각주:1] 이런 금언에 의거하여 그들은 마들렌에게 아담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고 설득했다. 사건을 심리한 파리 고등법원이 약제사한테 유죄를 내렸다. 

 

  그러자 드브루 집안과 썰렁한 관계이고 그랑디에를 가증스럽게 여긴 지역 토호가 약제사 이름으로 항소했다. 두 번째 심리가 이뤄졌고, 거기서 하급법원의 판결이 확정됐다. 가엾은 아담에게 금화 640 리브르를 배상금으로 지불하고 두 차례 소송비용을 다 부담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것만이 아니다. 치안판사들과 마들렌 드브루와 그녀 친척들이 있는 자리에서 무릎 꿇고 모자 벗고 “앞에 언급된 처자를 겨냥해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말을 분별없이 악의적으로 입에 올렸다”고 말하고, 그러니 이제 그녀가 정조 있고 행실 바른 처녀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과 국왕과 법정과 당사자인 마드무아젤 드브루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법적 진실이 화려한 승리를 거두었다. 

  변호사들과 검찰관, 경찰 수뇌가 패배를 인정했다. 

 

  앞으로 그랑디에를 공격하더라도 내연녀인 마들렌만큼은 못 건드리게 됐어! 

  그럴 수밖에 없지, 그녀 외가가 쇼베 가문이고, 세리제가 그녀의 사촌이고, 드브루 집안이 타바 가문이며 드뢰, 젠보 가문과 사돈인 바에야! 

  그렇게 막강한 친인척을 배경으로 둔 여자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정조 있고 행실 바른 처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반면에, 약제사가 정말 안 됐어. 위자료 때문에 파산 지경에 이르렀으니, 쯧쯧. 

 

  오호라, 인생이란 그런 것이고, 신비한 분배 섭리가 그렇구나. 우리는 저마다 작은 십자가를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사도가 공정하게 지적했듯이 누구나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 

 

  새로운 인물 둘이 우르뱅의 적진에 가담했다. 한 사람은 저명한 법률가요 왕실 법률고문인 피에르 메노. 그는 여러 해 동안 줄기찬 청혼으로 마들렌을 괴롭혔다. 매번 거부당하면서도 기죽지 않았으며 언젠가는 마드무아젤과 지참금과 부러운 연줄을 다 차지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마들렌이 주임신부에게 몸을 맡김으로써 제 권리라고 여겼던 것이 좌절됐음을 알고는 분개심이 하늘 끝까지 치솟을 수밖에! 그의 절규를 트렌캉이 공감하는 심정으로 경청하고 위로의 방편으로 참모회의 자리 하나를 제시했다. 제안이 선뜻 수락됐고, 이제부터 메노는 음모 집단의 가장 적극적인 멤버 축에 들게 됐다. 

 

  그랑디에의 두 번째 새로운 적은 메노의 친구인 자크 티보. 지역 토호인 그는 예전에 병사로 복무하다가 이제 리슐리외 추기경의 비공식 에이전트로서 지방 정치에 발을 좀 들여놓고 있었다. 티보는 애초부터 주임신부를 싫어했다. 

  시시껄렁한 하급 사제요 변변치 못한 계층 출신 주제에 카발리에가 기르는 콧수염을 기르고 고관대작처럼 무게를 잡다니! 게다가 라틴어 좀 안다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꼴이란, 소르본 박사처럼 말이야! 그런데 이제 왕실 법률고문의 신붓감을 감히 빼앗아 가? 안 돼, 그런 자는 손 좀 봐줘야 해. 

  티보가 첫 번째 행보로 그랑디에의 가장 막강한 친구요 후견인들 중 한 사람인 벨레 후작을 찾아갔다. 그랑디에의 죄업을 있는 것 없는 것 죄다 들추며 열변을 토하자 후작이 입장을 확 바꾸어서 그 뒤로는 어제의 친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각주:2]처럼 대했다.

 

  그랑디에가 몹시 상처 받고 적잖이 동요했다. 후작이 등 돌린 일에서 티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둘러 귀띔했다. 나중에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주임신부가 (제의를 다 갖춰 입고 마침 성 베드로 교회로 들어가는 중에) 적대자에게 쓰디쓴 질책을 퍼부었다. 응답으로 티보가 말라카 지팡이를 번쩍 들어 그랑디에의 머리를 겨냥해 내리쳤다. 

  루덩 전투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랑디에가 먼저 공세를 취했다. 티보에게 앙갚음하겠노라 다짐하고는 다음날 아침 파리로 떠났다. 

  성직자에게 가한 폭력은 행동으로 보인 신성 모독이요 교회를 더럽힘이야. 이 문제를 고등법원에, 법무대신한테, 재상한테, 국왕한테까지 들고 가겠어. 

 

  그의 출발과 여행 목적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담이 소상히 알게 됐다. 약재 찧던 절굿공이를 내던지고 검찰관에게 알리러 달려갔고, 검찰관은 즉각 하인을 보내 동맹자를 모조리 소집했다. 

  그들이 도착해서 이런저런 논의 끝에 역공 계획을 세웠다. 

  주임신부가 국왕께 호소하러 파리로 가고 없는 동안 우리는 푸아티에로 가서 주교에게 고발하는 거요. 

  문건이 최고의 법적 형식으로 작성됐다. 그 문건에서 주임신부는 수많은 기혼녀와 젊은 처녀들을 유혹했으며, 신을 욕되게 하고 불경스러우며, 기도서를 전혀 읽지 않고, 또한 담당 교회 구역에서 간통을 범했다고 고발됐다. 

 

  이런 진술을 소위 ‘법적 진실’로 바꾸기란 아주 간단했다. 아담이 우시장에 달려가서 꾀죄죄한 사람 둘을 데리고 금방 돌아왔다. 둘은 보수만 좀 받으면 어떤 문건에든 기꺼이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부그로라는 자는 글을 쓸 줄 알지만 세르봉이라는 자는 겨우 십자 표시만 할 수 있었다. 일이 끝나자 ‘증인들’이 보수를 챙겨서 킬킬대며 선술집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아침 검찰관과 경찰 수뇌가 말에 안장을 얹고 푸아티에로 느긋하게 떠났다. 거기서 그들은 주교의 법률 대리인, ‘품위 감독관’을 찾아갔다. 그들은 그랑디에가 이미 주교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환호했다. 

  주임신부의 애정행각이 그의 상관들 귀에까지 들어갔어! 

  음란함과 무분별에다 더 심각한 죄인 오만불손이 추가돼 있었다. 예를 들어, 바로 얼마 전 이 파렴치한은 사흘간의 사전 혼인 예고도 하지 않은 채 혼례를 허가하고 그 대가를 제 주머니에 넣음으로써 감독기관의 권위를 침범하는 방약무인을 저질렀다. 이 젊은 수탉의 날개를 분질러 놓을 때가 됐다. 루덩의 신사들이 아주 적절한 때에 온 것이다. 

 

  트렌캉과 에르베가 품위 감독관의 추천장을 가지고 주교 예하를 뵈러 말을 달렸다. 주교 관저는 시내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디쎄의 웅장한 성 안에 있었다. 

 

  앙리 루이 라로슈포제는 주교들 중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귀족 가문의 권리로 고위성직자가 됐지만, 그러면서도 학식 있는 인물이요 놀라운 성서 해설서의 저자였다. 그의 부친은 조셉 스칼리제르의 후견인이요 평생지기였고, 바로 이 저명한 학자한테서 젊은 귀족이요 나중에 푸아티에 주교가 된 그가 가르침을 받는 혜택을 누렸다. 마크 패티슨[각주:3]의 표현을 빌자면 조셉 스칼리제르는 ‘지금까지 지식을 얻느라 평생을 보낸 지성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성.’ 

  스칼리제르[각주:4]의 프로테스탄티즘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간 개량에 관한 연구>라는 저서를 두고 예수회에서 진저리날 정도로 비방하는 것도 무릅쓰고 라로슈포제가 옛 스승한테 확고부동하게 충실했다는 점은 그의 신용에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 사실, 다른 모든 이단자들한테는 라로슈포제가 무자비한 적의를 과시했다. 주교 관구에 아주 많은 위그노들을 미워하고 그들 삶을 망가뜨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러나 자선과 마찬가지로 나쁜 기질도 의인들 마당에나 죄인들 마당에나 골고루 내리는 비처럼 신성하게 공평하다. 같은 가톨릭신자라 해도 그를 화나게 하면 주교께서는 신교도 대하듯이 호되게 다룰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 까닭에, 콩데 공이 섭정 마리 메디치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1614년 이백 가구가 도시에서 성 밖으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사건도 그들이 성문을 통과하려 하면 화승총을 일제히 발사하라고 그들의 성직자가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불행한 이들의 죄는 무엇이었나? 왕비가 지명했지만 라로슈포제 자신이 싫어한 지방장관에게 충성한다는 이유였다. 대공이 왕비께 ‘전대미문의 파렴치한 짓을 범한 이 성직자를’ 징벌하라고 청했다. 물론 그 어떤 형벌도 따르지 않았고 이 주교는 고령에 졸중으로 타계한 1651년까지 푸아티에에서 계속 군림했다. 

 

  쉽게 발끈하는 귀족이요 작은 폭군, 책을 사랑하는 학자로서 서재 바깥 세계는 독서라는 진지한 작업에 괘씸한 방해물로 여긴 사람. 그랑디에의 적대자들이 알현하러 간 인물은 그런 성향이었다. 반시간 만에 그가 결정을 내렸다. 

  주임신부가 골칫거리였구나, 교훈을 줄 필요가 있겠소. 

  그랑디에를 체포하여 푸아티에 시에 있는 주교 관구 감옥에 가두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비서가 칙령을 작성한 뒤 서명 받아 봉인했다. 그 문건이, 재량껏 이용하라는 언질과 함께 트렌캉과 에르베에게 전달됐다. 

 

  그때 파리에서는 그랑디에가 고등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국왕을 직접 알현하게... <2편 4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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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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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1. 법적 진실은 위대하고 우월하다. (라틴어) - 저자 주. [본문으로]
  2. persona non grata - 호감 가지 않는 사람. 주재국 정부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외교관. [본문으로]
  3. Mark Pattison(1813-1884) - 영국 성직자, 옥스퍼드 소재 링컨대학 학장. [본문으로]
  4. Joseph Scaliger(1540-1609) -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활동한 휴머니스트 인문학자, 역사가, 무인. 저서 <시간 개량에 관한 연구 de emendatione temporum>는 현대 연대학의 효시. [본문으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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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우울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희망이 있어, 그럴 듯한 스캔들을 만드는 거지. 그자를 현장에서 붙잡을 수 있게끔 어떡하든 상황을 조장하는 게요. 그 죽은 양조업자의 과부하고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약제사가 우울한 표정으로 알렸다. 

  그쪽에는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정보가 없어요. 여편네가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 그 집 하녀는 매수가 안 되고… 그렇잖아도 내가 간밤에 덧창 틈으로 동정을 살피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누군가가 이층 창문에서 철철 넘치는 요강을 쏟아 붓지 뭐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주임신부는 여전히 태연하고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평소처럼 제 비즈니스와 쾌락을 즐기며 나다녔다. 곧 아주 이상한 소문이 약제사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임신부가 마드무아젤 드브루와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군. 

  아, 그 고상하고 독실한 체하기로 유명한 마들렌하고? 

 

  마들렌은 르네 드브루의 세 딸 가운데 둘째이고, 르네 드브루는 재산이 넉넉한데다가 귀족이며 지역 최고 가문들과 혈연관계가 두터웠다. 마들렌의 두 자매는 이미 시집을 갔다. 하나는 내과의한테, 또 하나는 지방 대지주한테. 그러나 서른이 다 된 마들렌은 미혼으로 자유로이 살았다. 구혼자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그녀가 다 퇴짜를 놓았다. 집에 남아서 늙은 부모를 보살피며 자신만의 관심사를 생각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그녀는 신중하고 초연한 태도 아래 강한 감정을 억누르며 조용하고 수수께끼 같은 젊은 여인 축에 들었다. 나이 든 세대는 그녀를 칭찬하지만 동갑나기와 후배 중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까칠하고 젠체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또 자기네 요란한 놀이에서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흥을 깨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나치게 독실했다. 

  종교야 아주 좋지, 하지만 사생활의 신성함을 침범당해서야 되겠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툭하면 성찬례를 받고 하루걸러 고해를 하고 성모 상 앞에서 몇 시간씩이나 무릎 꿇다니 말이야. 

  아냐,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너무 심해. 

  그들이 그녀를 멀리했다. 그건 마들렌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 부친이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친이 암에 걸렸다. 노부인이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병치레하는 동안 그랑디에가 자주 찾아왔다. 배부른 줄 모르는 과부와 검찰관 딸의 일만으로도 정신없지만, 가엾은 여인에게 종교적 위안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죽음의 침상에서 드부르 부인은 딸한테 그의 조언을 잘 따르라고 당부했다. 주임신부가 마들렌의 물질적, 영적 문제들을 제 일처럼 잘 지켜주겠노라 약속했다. 나중에 약속을 지켰다. 비록 자신의 특유한 방식으로 했지만.

 

  모친이 죽고 한동안 마들렌은 세속 인연을 다 끊고 수녀원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 생각을 영적 조언자한테 밝히면서 상담했을 때, 그가 그 계획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랑디에가 강력히 주장했다. 

  수녀원 안보다 바깥에서 당신은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오. 우르술라회나 카르멜회의 수녀가 되면 자기 재능을 감추는 꼴이 될 게요. 당신 자리는 여기, 루덩에 있소. 당신 소명은 썩기 쉬운 허영심만을 생각하는 멍청한 처녀들한테 반짝이는 지혜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오. 

 

  그가 청산유수로 말했고, 그 말에는 신성한 영력이 있었다. 두 눈에서 불길이 일고, 내면의 열기와 영감으로 얼굴이 환히 빛나는 듯했다. 마들렌이 생각했다. 이분은 사도처럼 보여, 천사처럼 보여. 이 말이 다 옳아,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녀가 양친 모시고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 집이 아주 어둡고 쓸쓸해 보였기에 거의 모든 시간을 친구인 (거의 유일한 친구인) 프랑수아즈 그랑디에와 함께 보냈다. 그녀는 사제관에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둘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깁거나 성모나 성인들을 위해 화려한 수를 놓으며 앉아 있는 자리에 때때로 그랑디에가 끼어들었다. 

이보다 더 자연스러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세상이 갑자기 더 환해지고 신성한 의미로 충만한 것처럼 보였으며, 마들렌 얼굴이 행복에 겨워 장밋빛이 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랑디에가 제 그물에 걸려들었다. 그의 전략은, 그건 바로 노련한 유혹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인데, 겉으로는 냉담한 척하면서 상대 마음에 불을 지피고, 그걸 정점까지 끌어올린 뒤 결국 제 교활함의 결실을 따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캠페인이 진척되면서 또 뭔가가 잘못 되고 있었다. 혹은, 뭔가가 잘 되고 있었다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저 관능적 만족이나 또 하나의 순진한 제물에게서 거두는 헛된 승리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분방한 기질의 소유자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로 바뀌었다. 이건 도덕적 성장에서 중요한 행보. 하지만 가톨릭교회 성직자에게 혼인이란 윤리와 신학과 교회와 사회라는 측면에서 숱한 곤경을 거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성직자의 독신주의에 관한 소론을 쓴 이유는 바로 그런 곤경에서 조금이라도 헤어나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부도덕한 이단자라 여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면서도 강력한 욕망으로 생긴 행동 방침을 단념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 충동이 본질적으로 좋으며 더 높고 더 풍성한 삶을 향한 것이라 인식될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바로 이런 면에서, 특정 시대와 지역에서 유행하는 철학 용어들을 동원하여 비정통적 행위를 당대 세태에 맞추면서 충동이나 본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흥미진진한 문학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의 소논문은 이런 감동적인 옹호 장르에서 상당히 특이한 모델이었다. 그는 마들렌 드브루를 사랑하며 이 감정에 추한 게 전혀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의 규율로 보자면, 가장 행복한 육적 사랑마저도 악으로 인식됐다. 

  따라서 그런 규율이 축자적으로 해석돼서는 안 되며, 자신이 불혼 서약을 하면서도 그걸 꼭 지키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논거를 찾아내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게 옳은 행동이라고 확신시키는 논거를 찾기란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한텐 식은 죽 먹기. 그에게는 제가 쓴 소논문의 논리가 참으로 그럴듯해 보였다. 

 

  더욱 놀랍게도, 그런 논리가 마들렌이 보기에도 전혀 흠이 없었다. 종교적 성향에 지나치게 기울고 신념이 아니라 습관과 기질에서 정조를 지키는 그녀는 교회 법규를 지상명령으로 간주했기에 순결 깨는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면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본성에 어울리는 열정으로. 가슴에 그런 이유가 있는 마당에 그랑디에가 불혼 서약이 절대적인 게 아니며 성직자도 혼인할 수 있다고 입증하자 그 말을 믿었다. 

  만약 간통이 아니라 교회가 축복하는 혼인으로 사랑하는 이와 맺어졌다면 그녀는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사랑할 수 있었으리라.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그녀의 의무였을 터이다. 사랑의 논리가 완벽했다. 연인이 쓴 소논문의 윤리적, 신학적 논거가 마들렌에게는 아주 미덥게 보였다.

 

  그랑디에는 드브루 부인한테 한 약속도 지켰다. 즉, 언젠가 밤에 어둠침침하고 메아리만 울리는 교회당에서 자신이 후견을 맡은 처녀와 혼례를 치른 것.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는가? 

  성직자로서 그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고는 이제 신랑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그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성직자 역할로 돌아온 그가 축사를 읊조리고 다시 신랑으로 돌아가서 그 축사를 무릎 꺾고 받았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의식이었다. 법과 관습과 교회와 국가에 개의치 않고, 그들은 예식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그러니 하나님 눈에도 그 혼인이 적법한 것이라 확신했다.[각주:1]

 

그랑디에 신부와 마들렌의 혼인

 

  그러나 하나님 눈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사람들 눈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루덩의 선량한 주민들 관점에서 마들렌은 주임신부의 또 다른 내연녀일 뿐이었다. 

  순진하고 얌전한 듯싶지만 사실은 sainte nitouche[각주:2] 였던 거야. 

  숙녀인 체했지만 매춘부라는 게 금방 드러났어. 

  법의 걸친 저 프리아포스[각주:3]에게, 비레타 쓴 숫염소에게, 가장 몰염치한 방식으로 제 몸뚱이를 내준 거지! 

 

  아담의 약제용 악어 아래 저녁마다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가 가장 크고 원한이...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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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1560년 푸아티에 지방의 위그노 교회 회의록을 보면, 성직자들이 내연녀와 몰래 혼인하는 일이 아주 잦았다. 이때 여자가 칼뱅파 신자이면, 교회의 중대한 문제가 됐다. - 저자 주. [본문으로]
  2. ‘성녀 니뚜슈’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관용적 표현을 의인화한 것. 직역하면, ‘남자를 멀리하는 성녀’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마치 성녀라도 되는 듯이 굴며 남자와 손가락만 스쳐도 큰 봉변당한 양 호들갑 떠는 여자를 놀리는 데 쓰는 표현. [본문으로]
  3. priapus - 그리스, 로마 전설에서 남근으로 표시되는 풍요의 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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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펜데레츠키&#44; 루덩의 악마 오페라

 


 

  그러나 그건 (마드리갈의 끝이 아주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로, 초저녁 박명이 주변 모든 것을 동화 같은 빛으로 감싼다는 이유 하나로) 여름날 석양이 영원히 지속되고 황금빛 가을이 절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녀는 제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마음 한 구석에서 알았다. 그러나 행복에 넘치는 몇 주일 동안은 이성의 문을 닫고 삶이 파라다이스에서 멈추어 다시는 흐르지 않을 것이라 믿을 수 있었다. 공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사라진 듯했다. 실생활과 몽상이 하나가 됐다. 상상의 세계가 점점 유일하게 진실한 세계처럼 보이게 됐다. 

  그것은 죄 될 것 없는 행복감이라고 느꼈다. 실제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고 오롯이 마음속에만 있는 거니까. 그건 천상의 기쁨 같은 것이고 두려움이나 자책 없이 자신에게 온 마음으로 줄 수 있는 행복이었다. 

 

  그 기쁨에 더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수록 그것이 더욱 강렬해지는 바람에 은밀히 간직하기가 힘들어졌다. 어느 날 고해실에서 자기감정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이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고해사제라는 기미를 내비치지 않고… 어떻든 그녀 생각에는 그랬다. 

  그런 고해가 잇달아 나왔다. 주임신부가 주의 깊게 듣고 간간이 질문을 던지는데, 그 물음으로 보자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며 그녀의 순진한 꾀에 완전히 넘어간 게 분명했다. 필리프가 용기를 내어 가장 내밀한 얘기까지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이제 그녀는 정말 행복했고, 이 고백이 진짜 즐거움을 주었으며 그 즐거움이 계속 반복됐다. 

 

  그러다가 혀를 잘못 굴리게 된 날이 왔다. ‘그이’라고 해야 할 것을 ‘당신’이라고 말한 것. 황급히 말을 거둬들이려 했지만 정신이 아뜩해지는 바람에 그의 질문을 받고 눈물 터뜨리면서 진실을 고백하고야 말았다. 

  마침내! 마침내!! 그랑디에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다음엔 순풍에 돛 단 배였다. 주의 깊게 계산된 언사와 제스처의 문제, 다소 기독교적인 것으로 시작하여 페트라르카 풍[각주:1]에 이르고, 페트라르카 풍에서 지상의 사랑으로 넘어가고, 또 거기서 동물적인 애정에 이르기까지 매끈하게 조절하는 유연함의 문제일 뿐이다. 하강은 상승보다 언제나 더 쉬운데다가 이 경우에는 경사면에 기름칠하느라 궤변이 상당히 많았을 터. 어떤 경우든 처녀가 죄에 빠질 가능성은 전적으로 보장돼 있었다. 

 

페트라르카 풍에서 지상의 사랑으로&#44;

 

  그러고도 몇 달이 지나서야 그럭저럭 ‘승선’하게 됐다. 솔직히 말해, 그건 좀 실망스러웠다. 그가 자문했다. 왜, 과부로 만족할 수 없었던 거지? 

 

  그런데 필리프로서는 평온하고 내면적인 행복감이 정욕이라는 겁나는 현실로 대체됐다. 도덕적 고민으로 시달리고, 힘을 달라 기도하고, 실행하기 벅찬 다짐을 하고 또 하고, 그러다가 막판에 이르러 마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듯한 절박감 때문에 굴복한 것이다. 

  한데 굴복하고 난 이후 상황은 상상하던 것과 영판 달랐다. 알고 보니… 그녀의 대천사는 동물적 격정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였다. 처음에 필리프는 자신이 고난의 길로 나아가는 암양이요 사랑의 자발적 수난자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상상하던 이상이 그녀가 선택한 사람에게는 아주 적다는 점이 곧 드러났다. 본디 그녀가 사랑에 빠진 대상은 언변 뛰어난 설교자요 기치 넘치고 정중한 휴머니스트였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점을 그녀가 알게 됐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추상적 관념이고 사랑하는 것은 현실적인 것. 사람이 사랑할 때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영혼과 모든 신체 섬유질로써 사랑한다. 그런 감정에 필리프는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이제 그녀한테 사랑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한데 정말 아무 것도 없었을까? 들으라는 듯 킬킬대면서 운명이 미리 준비한 올가미를 그녀한테 씌웠다. 임신은 했지만 혼인한 것은 아니기에 그녀가 생리 기능과 사회도덕 사이에서 꼼짝 못하게 됐으며 구제 불능의 수치스러운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상상도 못한 일이 실제가 됐고 불가능한 일이 사실로 다가왔다. 

 

  보름달이 까만 천궁에 걸려 하루 이틀 광채를 발하다가 조금씩 이지러지더니 결국엔 스러지고 말았다. 희망의 마지막 빛줄기처럼. 남은 길은 하나, 사랑하는 이의 품에서 죽는 것. 그게 불가능하다면, 이 끔찍한 상황을 잠시라도 떨치는 것. 

 

  그런 무모함과 자포자기에 초조해진 주임신부가 그녀의 애착을 더 가볍고 덜 비극적인 쪽으로 돌리려고 애썼다. 장난기 어린 고전 작품에서 적절한 문구들을 뽑아 애무하며 들려주었다. 

 

Quantum, quelle latus, quam juvenile femur![각주:2]

 

  사랑을 나누는 중간 중간에 브랑톰[각주:3]의 <용감한 레이디들>에서 부적절한 스토리를 들려주고, 부부관계에 관한 산체스 포마[각주:4]의 글에서 퍼낸 자료를 간간이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필리프의 표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묘지 대리석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얼굴이 꾹 닫혀서 반응이 없고 생기를 잃었다. 그러다가 눈을 다시 떴을 때, 그녀는 마치 고통과 절망밖에 없는 다른 세상에서 그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보고 그가 불안해졌다. 걱정스럽게 묻는 말에, 그녀의 대답은 손을 들어 그의 두툼하고 검은 곱슬머리를 쥐어 제 입과 목과 가슴 쪽으로 끌어당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인들을 위한 특별한 컵으로 (컵 안쪽에는 사랑을 나누는 체위들이 묘사돼 있어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그림이 조금씩 드러났다) 마시는 프랑수와 1세 왕에 관한 이야기 중간에 그녀가 툭 끼어들어 아기를 가졌다고 퉁명스레 밝히고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주임신부가 그녀 가슴에 얹은 손을 축 늘어진 머리로 옮기고는 외설스러운 어조를 순식간에 성직자 어조로 바꾸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저 기독교적인 감내 정신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질 수밖에. 그러고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까맣게 잊고 있었군. 자궁암에 시달리는 드브루 부인을 방문하기로 약속해 놓고선. 그 가엾은 부인한테는 영적 위안이 필요해. 그러고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 그가 아주 바빠져서 라틴어 수업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로 고해실 바깥에서는 필리프가 그와 단둘이 만나지 못했다. 고해실에서 그녀가 고해사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로서 그에게 말하려 했을 때 (가엾은 처녀는 그가 여전히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녀 앞에는 그녀 말을 제지하는 엄격한 성직자가, 빵과 포도주를 성변화 시키고 죄를 사하고 종교적 징벌을 부과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한테 참회하고 신의 은총을 믿으라고 얼마나 그럴싸하게 다그쳤던가! 그녀가 바로 얼마 전 사랑 얘기를 꺼낼라치면 그는 거의 예언자 같은 분노를 보이며 질책했다. 

  제가 좋아 타락에 빠져 뒹굴고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절박하게 묻자 그가 열정을 과장하여 대답했다. 기독교인답게 처신해야 하는 게야,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네게 예비하신 굴욕적 시련을 그저 온순하게 견딜 뿐 아니라 그 고통을 기뻐하고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그녀의 불행에서 그가 책임져야 할 몫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결국, 모든 죄인은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해. 타인에게 잘못을 돌리면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 건 금물이야. 고백실에 오는 까닭은 네가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기 위함이지 다른 사람 양심을 건드리기 위한 게 아니야. 

  그런 식의 훈계를 듣고 필리프가 눈물범벅이 되고 아연실색한 상태에서 쫓기듯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고통을 보면서 그는 동정도 자책도 하지 않았다. 불만스러운 빛만 내보였다. 포위 공격 기간은 마냥 지루했는데, 포획해 봤더니 기쁨도 없고 그 이후의 즐거움도 그저 그랬을 뿐. 한데 이제 그녀는 느닷없고 적절치 못한 다산 능력으로 그의 명예와 존재 자체를 위협했다. 그 동안 험난한 여정을 다 헤쳐 왔는데 사생아라니, 이건 나한테 파멸이야! 

  그는 그녀를 실제로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녀를 대놓고 싫어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쁘지도 않았다. 임신과 불행한 체험 때문에 호되게 매질 당한 개나 기생충에 시달리는 어린애처럼 보였다. 다른 모든 것과 더불어 그녀의 한순간 사라진 매력이 그로 하여금 자기는 그녀에게 더 이상 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또한 그녀가 그에게 해를 끼쳤으며 이제 또 자꾸 무례하게 군다는 생각을 굳히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차분한 양심으로 어떤 경우에서나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 

  모든 것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거부하자.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도 그런 입장을 고수해야 돼.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이냐. 필리프 트렌캉과 내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괴물 같은 생각을 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야! 

 

아아, 심장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지 않는구나.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법. 

 

(<루덩의 악마들>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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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 1304-1374) -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학자, 시인. ‘휴머니즘의 아버지’. 그의 소네트를 르네상스 기간 전 유럽에서 열광하고 모방했으며, 서정시의 모델이 됐다. [본문으로]
  2. 얼마나 푸짐하고 근사한 대퇴부인가, 이 젊은 허벅지는! (라틴어) [본문으로]
  3. 브랑톰 (Pierre Brantome, 1540-1614) - 역사가, 샤를 9세와 앙리 3세의 궁정 대신. 위그노 전쟁 등에 참전. 많은 <비망록>을 남겼다.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들 중 하나. [본문으로]</비망록>
  4. 산체스 (Sanchez, 1550-1610) - 에스파냐 사람, 가장 유명한 예수회 결의론자들 중 하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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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 true story of Demonic Possession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상황이 무르익어 갔다. 검찰관은 중년 홀아비인데 혼기 맞은 딸 둘을 데리고 있었다. 장녀 필리프는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1623년 겨우내 주임신부가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그 앳된 처녀가 부친의 손님들 가운데서 오가는 걸 지켜보며 그녀를 한 젊은 과부의 어른거리는 이미지와 조목조목 비교하곤 했다. 

 

  포도주 양조업자인 남편이 일찍 죽은 뒤 그 가엾은 과부를 이제 화요일마다 찾아가 위로하는 중이었다. 니농은 일자무식이어서 제 이름 하나 겨우 쓸 줄 알았다. 그러나 위로할 길 없는 상복 아래 풍만한 육체는 신선함과 탄력을 아직 잃지 않았다. 따스함과 순백의 보물이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관능이 축적돼 있는데, 그건 격정적이면서도 정밀하고 거칠면서도 지극히 고분고분하고 잘 훈련된 것이었다. 게다가 천만다행으로, 거기엔 힘들게 무너뜨려야 하는 조빼는 태도도 없고, 거쳐야 할 플라토닉 이상화라든가 페트라르카 풍의 구애라는 피곤한 예선도 없었으니! 이미 세 번째 만났을 때 그가 애송시의 도입부를 과감하게 들려주었다. 

 

얼마나 자주 마음에 그렸던가, 한밤중 은밀한 위안을. 

나이애드(naiad)의 부드러운 몸을 얼마나 뜨겁게 품곤 했던가. 

하지만 이런 환희를, 오호라, 

그대는 아직 선사하지 않았구려. 

 

  니농이 아무런 저항 없이 경청했다. 아주 솔직한 웃음을 날리며 주변을 흘낏 살필 뿐인데, 그 눈길이 결코 모호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방문을 마칠 때 그가 타위로의 시를 한 번 더 인용했다.[각주:1] 

 

아듀, 오, 감미로운 속삭임이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어깨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가슴이여, 

아듀, 물망초 같은 두 눈이여. 

아듀, 앙증맞은 두 손이여, 

아듀, 친근한 장난들이여, 

영원히 아듀, 소중한 친구여, 

그대와 달콤한 시간 보냈구려. 

하지만 이제 작별 시간에 다시 불러 

한 번이라도 더 사랑을 맛보게 해주구려. 

은보다 더 깨끗한 가슴과 대리석 허벅지 사이에서. 

 

  아듀… 그건 그녀가 주간 고해와 일상적 속죄를 위해 성 베드로 교회에 오게 될 모레까지라는 뜻. (그는 주간 고해성사를 아주 중시했다.) 그때부터 다음 화요일까지 그는 성모축일에 펼칠 강론을 준비했다. 그 설교는 생마르트 노인을 추도해 연설한 이래 그가 행한 가장 성공적인 일이었다. 

 

  어쩜 저렇게 청산유수일까! 주제 선택과 심오한 학식은 또 어떻고! 납득하기 쉽지 않은 신학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솜씨란! 박수갈채와 축하가 쏟아졌다. 하지만 경찰 수뇌가 격노하고 수도사들이 질투 때문에 퍼렇게 질렸다. 

 

그랑디에와 니농의 밀회

 

  주임신부님, 정말 놀라웠어요! 신부님은 둘도 없는 재능이에요! 

  그는 영광의 불꽃 속에서 다음 밀회에 갔으며, 그러면 그녀가 승리자한테 안기는 화관처럼 그를 끌어안고 보상으로 키스와 애무를 퍼부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포옹이라는 천국에서 최고의 대접이었다.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영적 황홀경이며 천상의 거처며 특별한 은혜와 영적 혼인 따위를 실컷 떠들라고 해! 그에겐 니농이 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필리프를 다시 바라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니농 하나로 과연 충분한 거야? 과부들은 물론 남자를 위로할 줄 알아, 화요일 밀회를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지. 그러나 과부들은 결코 처녀가 아니고, 과부들은 너무 많이 알고, 과부들은 뚱뚱해지기 시작했어. 

 

  반면에 필리프는 앳된 처녀의 섬세한 작은 손과 봉긋한 가슴과 감동적인 목으로 사람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런 젊디젊은 장점에다 소녀 같은 수줍음까지 곁들였으니, 이 얼마나 황홀한가 말이냐! 대담하고 거의 무모하게 교태를 부리다가 급작스레 당혹과 놀람으로 바뀌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람 마음을 끄는 동시에 도발적이며 가슴 뛰게 한단 말이냐! 

  필리프는 클레오파트라처럼 굴면서 남자들로 하여금 안토니오 역할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러다가도 누구든 그 역으로 들어설 기미만 보이면, 이집트 여왕은 홀연히 사라지고 놀라서 연민을 간청하는 어린애만 남았다. 그래서 연민을 얻고 나면 즉각 사이렌이 되돌아와서 유혹하는 노래를 부르고 금단의 열매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완전히 타락한 사람이나 완전히 순수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대담함으로 말이다. 

 

  순수와 순결이란 가장 숭고한 주제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얼마나 멋진 결어인가! 교회 설교단에서 때론 우레처럼 때론 가장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그걸 입에 올리면 여신도들이 죄다 눈물 뺄 것이야. 남자들까지도 감동 먹겠지. 이슬 머금은 백합의 순결, 어린 양과 갓난애의 순수에 대한 고찰은 누구한테든 먹혀든다. 그래, 수도사들이 질투하여 또 퍼렇게 질리겠군. 

 

  그러나 진정한 순수와 순결은 오로지 설교와 천국에만 있는 법이야. 모든 백합은 이르든 늦든 썩게 마련이고, 암양은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숫양의 제물이 된 뒤 도살자 손에 넘어가게끔 운명 지워져 있고, 또 지옥에서는 세례 받지 못한 아기들의 작디작은 유해가 깔린 도로 위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이 어슬렁거리지. 

  대 타락 시대 이후 절대적 순결이 실제로는 절대적 타락과 같은 거야. 젊은 여성 누구나 잠재적으로는 미래의 방탕한 과부이고, 가장 순수한 것에도 원죄 때문에 잠재적 불순이 이미 절반 넘게 들어 있잖아. 잠재적 불순이 완전히 발휘되도록 돕는 것이며 아직 앳된 꽃봉오리가 무성하고 흐드러진 꽃으로 벌어지는 걸 지켜보는 것, 오오, 이야말로 오관뿐 아니라 지력과 의지에도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관능이라면, 아주 정신적인, 말하자면 극히 추상적인 성격일 게야. 

 

  게다가 필리프는 그냥 젊은 처녀가 아니었다. 반듯한 가정 출신에다 신을 공경하도록 교육받고 모든 면에서 흠이 없었다. 그림물감처럼 예쁘지만 교리문답을 잘 알고, 류트를 연주하지만 교회에 꼬박꼬박 나오고, 우아한 숙녀의 매너를 지니고 있지만 독서를 좋아하고 라틴어를 좀 알기도 했다. 그런 노획물 획득은 사냥꾼의 자부심을 근질거리게 하고, 주변 사람 누구나 영원히 기억에 남을 업적으로 간주하리라. 

 

  좀 뒤늦은 시기에 살던 뷔시 라뷔탱[각주:2]의 증언에 따르면 귀족 세계에서 「여인들한테 거둔 성공이 남자들한테는 전투에서 거둔 혁혁한 전공 못잖은 명성을 안겼다.」 고귀한 미녀를 차지하는 것은 한 지방의 정복만큼이나 영광된 일이었다. 규방과 침대에서 거둔 연전연승으로 명성 떨친 마르시약, 느무르, 슈발리에 그라몽 같은 귀족들은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나 발렌슈타인[각주:3] 같은 위대한 정복자들보다 명성이 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영광된 작업에 당대 유행어로 ‘승선했다.’ 그것도, 세상에서 더 주목할 만한 인물들을 물리치겠다는 목표를 뚜렷이 가지고 필사적으로, 일부러 배에 올랐다. 

 

  섹스는 자아확인이나 자기초월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 즉, 남의 눈을 끄는 ‘승선’과 영웅적인 정복으로써 에고를 강화하고 사회적 페르소나를 굳히기 위해서, 혹은 관능의 희미한 황홀경과 낭만적 열광에서 페르소나를 깡그리 없애고 자아를 초월해 다른 존재와 합치되기 위해서. 후자의 경우는 흔히 완벽한 혼인생활 때 상호 자애심에서 더 잘 일어난다.  

 

  (망설임이 적고 식욕은 좋은 농촌 처녀들이며 도시 과부들과 함께 주임신부는 원하는 만큼 자기초월을 얻을 수 있었다. 한데 이제...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2

루덩의 악마들 5편 3

루덩의 악마들 4편 4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타위로 (Jacques Tahureau, 1527-1555) - 프랑스의 사상가, 시인. [본문으로]
  2. 라뷔탱 백작 (Bussy Rabutin, 1618-1693) - 프랑스의 장군, 회고록 집필자. 유명한 마담 사비네와 사촌지간. [본문으로]
  3. 발렌슈타인 (1583-1634) - 삼십년전쟁 때 합스부르크 군을 지휘한 오스트리아 장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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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올리버 리드, 악마들

 


 

 

  루덩의 새 주임신부는 제 침대를 실험대로 바꾸려 들기에는 지나치게 정상이고 지나치게 왕성한 식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부샤르처럼 그도 존중받는 부르주아 가정의 자제이고, 부샤르처럼 예수회 기숙학교에서 교육 받고, 부샤르처럼 영리하고 학식 있고 열정적인 휴머니스트이고, 또 부샤르처럼 교회 무대에서 눈부신 출세를 꿈꾸었다. 

  기질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사회와 문화라는 측면에서 이 두 프랑스 사람한테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샤르가 유년기와 학창시절, 또 방학 때 고향집에서 하던 장난 따위에 관해 하는 얘기가 그랑디에한테도 간접적으로 적용된다 하겠다. 

 

  부샤르의 <고백록>에서 드러난 세계는… 좀 지나치다는 점만 빼면 현대 성과학자들이 우리한테 내보이는 세계와 아주 흡사하다. 작자는 아이들이 성적 유희에 얼마나 자주 거침없이 탐닉하는지를 묘사한다. 모든 정황으로 보건대 어른들은 그들 장난질을 그저 수수방관만 한 듯하다. 

  선량한 수도사들 밑에서 학교에 격렬한 놀이가 없는 차에, 사내애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끊임없는 자위와 반공휴일에 벌이는 동성애 행위 이외에 따로 분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물론 활기찬 대화와 유창한 설교, 고해와 기도를 통해 웬만큼 자제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부샤르가 이렇게 적고 있다. 즉, 교회의 4대 축일 중에는 습관적인 성적 유희를 자제하는 편이어서, 어떤 때는 여드레를, 혹은 열흘 내내 참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순결 기간이 아무리 애써도 두 주일을 넘기지는 못했다. 신앙심으로 어느 정도 버티긴 했어도. 

 

  어떤 특정 상황에서건 우리네 실제 행동은 성향이나 이해관계를 가로에 두고 도덕적 이상이나 종교적 최고선을 세로에 두는 사각형의 대각선으로 나타난다. 부샤르의 경우, 또 짐작컨대 그가 쾌감의 동반자라 부르는 다른 학생들 경우에도, 신앙심의 상하 직선이 아주 짧고 베이스에 가까워서 대각선이 베이스와 이루는 각도가 지극히 작았던 듯싶다. 

 

  휴일에 집으로 돌아가면 부샤르의 부모는 젊고 순결한 하녀가 자는 방에 아들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처녀가 깨어 있을 동안에는 순결 그 자체지만 잠자는 동안에는 그녀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녀가 정말 잠들었는지 잠든 척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 학창시절이 끝난 뒤, 부샤르는 소떼를 돌보는 어린 시골 소녀한테 마음이 끌렸다. 동전 몇 푼에 그녀는 젊은 나리의 욕망을 기꺼이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새 하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부샤르의 이복형으로 카쌍의 수도원장인 사람 곁에서 일했는데, 수도원장이 유혹하려고 하자 거기를 떠나 이 가정에 들어왔다. 그리고 곧 각종 섹스 실험에서 부샤르의 모르모트요 공동 작업자가 됐다. <고백록> 2부에 상세히 묘사돼 있다. 

 

  부샤르와 프랑스 왕위 계승자 사이에 넓고 깊은 간격이 있었다는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럼에도 미래의 루이 13세가 양육된 도덕적 분위기는 미천한 학생의 인격이 형성된 상황과 많은 측면에서 비슷하다. 어린 왕자의 주치의인 장 에로아의 <일지>가 보전돼 있다. 이 문건 덕분에 우리는 17세기 아이들 교육을 아주 상세하게 알게 된다. 

  사실 왕세자는 아주 귀한 아이였다. 팔십 년이 넘어서 프랑스 국왕에게 태어난 첫아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둘도 없이 귀중한 아이의 특별한 교육법이 우리에겐 참으로 놀랍다. 온 나라에서 늘 기도해주는 아이를 주변에서 이제 우리가 보는 식으로 대했다면, 평범한 아이들한테는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왕세자가 서로 다른 어머니 서넛한테서 태어난 이복 형제누이들과 함께 자랐다는 측면부터 시작하자. 같은 피를 지닌 형제누이 중 몇몇은 왕세자보다 나이가 더 많고 몇몇은 더 어렸다. 세 살쯤에, 어쩌면 그 이전에, 어린 루이는 사생아가 무엇이며 서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아주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 정보를 주고받는 데 동원된 언어가 늘 어찌나 천박한지 아이가 종종 충격을 먹곤 했다. 아이는 가정교사인 마담 몽글라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Fi donc![각주:1] 정말 구역질나는 여자야!”  

  부왕 앙리 4세는 추잡한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궁정 대신들과 하인들이 궁정 일을 보러 다니면서 그런 노래를 끊임없이 불러댔다. 그들이 그런 외설적인 노래를 입에 담지 않을 때면 어린 왕자의 수행원들이, 남자든 여자든, 아이 아버지의 사생아들에 관해, 아이의 미래 아내인 (이미 약혼한 사이인) 오스트리아 안 공주의 어떤 진가를 짐작하여 아이한테 음란한 어휘로 낄낄대며 농담을 건네곤 했다. 

 

  게다가 왕세자의 성교육은 입말에 그치지 않았다. 대개 밤마다 아이를 여관들이 자기네 침대로 데려갔다. 당시에는 나이트가운이나 파자마를 잘 입지 않았고, 그 침대에서는 여관의 남편들도 밤을 보내곤 했다. 네댓 살쯤 됐을 때 어린 루이는 이른바 ‘인생의 사실들’을 이미 알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귓전으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정밀한 관찰을 통해서. 

  17세기 궁전에는 프라이버시라는 게 전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건축가들이 낭하라는 것을 아직 궁리하지 못했다. 건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면 다른 사람 방의 한 끝을 그저 지나칠 수밖에 없는데, 그 방에서는 언제든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었다. 

 

  궁정 에티켓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미천한 사람들보다 좀 운이 없게도 왕실 인사한테는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왕족의 피를 가졌다면, 그 사람은 중인환시 하에 태어나고 죽었으며 중인환시 하에 용변도 보고 때로는 중인환시 하에 사랑을 나눠야 했다. 에워싸는 건축의 성격상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용변 보고 사랑 나누는 장면을 아이가 싫든 좋든 다 볼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되어 루이 13세는 여인들을 지극히 혐오하고, (플라토닉 성격이었겠으나) 남성들을 아주 선호하고 갖가지 신체 기형과 질병 따위에 숨넘어갈 정도로 질색했다. 마담 몽글라와 궁정 여인들의 난잡한 언행이 첫 번째 특징과, 또 자연적인 반응으로서 두 번째 특징의 원인일 것이다. 세 번째로 말하자면, 생제르맹앙레의 지나치게 노골적인 침실들에서 어린애가 어떤 메스꺼운 장면들과 얼마나 부닥쳤을지, 누가 알겠는가? 

 

  자, 루덩에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가 성장한 세계가 그러했다. 그 세계에서 전통적인 성적 터부는 무지하고 가난에 찌든 다수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고 사회 상층부에서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 세계에서는 공작부인들이 자기네 딸의 유모가 얼굴 붉힐 농담을 예사로 내뱉고 상류층 귀부인들이 외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았다. 지위와 재산을 갖춘 남자는 (너무 결벽하지 않다면) 욕구를 거의 마음대로 채울 수 있었다. 그 세계에서는 또 교양 있고 사려 깊은 사람들조차 종교의 가르침을 순전히 피크윅[각주:2] 식의 경박함을 가지고 받아들였으니, 이론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가 엄청나게 컸다. 믿음의 시대라는 중세 세태에 비하면 좀 덜하긴 했을지라도. 

 

  이런 세계의 소산인 우르뱅 그랑디에가 제 교구에 자리 잡으면서 지상과 천상의 열매를 다 맛보기로 한 것이다. 그가 아주 좋아하는 시인은 롱사르[각주:3]인데, 그가 지은 스탠자를 보면 젊은 주임신부의 관점을 완벽하게 엿볼 수 있다. 

 

신 앞에 고개 조아리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우리는 온유하고 얌전해. 

교회 종소리 들으며 무릎 꺾고 

설교단을 바라보네. 

침대로 날아들어 몸뚱이를 결합하며, 

우리는 욕망에 끓고 죄가 많도다. 

태평하게 웃음 날리며 기꺼이 배우노라, 

의미심장한 사랑을. 

 

  이것은 ‘둥글둥글 무난한 삶’을 기술하는 것이고, 바로 그런 둥글둥글한 삶을 이 스물일곱 한창 젊은 휴머니스트가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성직자의 삶은 둥글둥글 다 누리는 게 아니라 영원히 정해진 한 점이 되어야 한다. 풍향계가 아니라 컴퍼스 다리인 것. 그 한 점을 고수하기 위해 성직자는 특정한 의무를 지니고 특정한 서원을 한다.

 

  그랑디에의 경우 의무를 다 떠맡고 필요한 서원도 했지만, 그걸 지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심적 구속감을 나중에 드러내게 된다. 루덩에 도착하고 십년 지나 오직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쓴, 순결서원에 관한 짧은 글에서. 

  순결서원에 맞서는 주요 근거로 그는 두 가지를 든다. 첫 번째는 이런 삼단논법으로 요약되리라. ‘지키기 불가능한 약속은 구속력이 없다. 젊은 남자한테 금욕은 불가능하다. 고로, 그런 금욕 서약은 구속력이 없다.’ 이것으로 충분치 못하다면, 그에겐 두 번째 근거가 준비돼 있다. 강압에 못 이겨 한 약속은 지킬 의무가 없다는 보편적 공리에 근거한 것. 

 

  「성직자가 금욕을 받아들임은 금욕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성직을 얻기 위함이다. (그의 서약은) 선한 의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수락하지 않으면 성직을 맡을 수 없으니 힘겨운 조건이라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교회가 그에게 부과한 것이다.」 

  그런 시각을 견지하면서 그랑디에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혼인의 자유가 있으며, 일단은 화답하는 여인 누구하고든 둥글둥글 원만한 삶을 꾸릴 권리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새 주임신부가 성적 매력을 풍긴다는 측면이 교구에서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한테는 아주 끔찍한 스캔들로 보였다. 그러나 고상 떠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다른 주민들에겐, 심지어 자기가 정결을 지키는 기독교인이라고 믿는 이들한테도, 그랑디에 같은 사람의 출현과 성향과 평판으로 생긴 상황에서는 뭔가 유쾌하게 흥분되는 면이 있었다. 

  섹스와 종교는 서로 기막히게 결합된다. 이 결합에는 토심스런 구석도 좀 있지만 절묘하고 통렬한 풍미가 있어서 계시라는 미각을 깜짝 놀라게 한다. 무슨 계시냐고? 바로 그게 문제다.

 

  그랑디에가 여신도들한테 인기 끌면서 남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평판이 안 좋았다. 여성 교구민들의 남편과 아버지들은 매너 좋고 혀도 잘 굴리며 똑똑한 이 젊은 멋쟁이를 처음부터 아주 의심쩍게 대했다. 

  새 주임신부가 설령 성자라 해도 그렇지, 성 베드로 교회 같은 부유한 교회가 왜 외지인한테 돌아가야 하는 거야? 아, 우리 지역 성직자들이 뭐가 모자라서? 루덩의 헌금은 루덩 출신자 주머니에 들어가야 하잖아. 

  설상가상으로 그 외지인은 혼자 부임하지도 않았다. 모친과 형제 셋과 누이 하나까지 줄줄이 달고 왔다. 

  형제 중 하나한테는 이미 도시 수석행정관 사무실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어. 성직자인 다른 아우는 성 베드로 교회 주임신부 대리로 임명됐고… 역시 성직에 있는 셋째는 아직 공식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뭔가 교회 직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거든. 이거야말로 심각한 외침()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 

 

그랑디에 신부 집전

 

  하지만 그 불평꾼들조차 그랑디에 신부가 강론을 우레처럼 힘차게 할 수 있고 건전한 교리며 학식까지 충분히 갖춘 유능한 성직자라는 점은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장점들이 외려 그에게 해를 끼쳤다. 

 

  기지 넘치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기에 그랑디에가 처음부터 도시의 가장 귀족적이고 교양 있는 인사들한테서 초대를 받았다. 루덩의 상류사회를 구성하기는 하지만 소위 상류사회 엘리트층에는 들지 못하는, 돈은 많지만 투박한 시골뜨기들과 거들먹거리는 관리들과 집안 좋지만 망나니짓 하는 자들한테 굳게 닫혔던 저택 문들이 외지에서 굴러온 이 시건방진 애송이한테는 즉각 열린 것이다. 

 

  얼마 전 도시와 성채의 지방장관으로 임명된 장 다르마냑과 친교를 맺었을 뿐 아니라 법률가요 정치가, 역사가, 시인으로 유명한, 루덩 최고의 명사 스케볼라 생마르트[각주:4] 노인 저택에도 무상으로 드나들게 됐다. 나름대로 내로라하면서도 거기에 끼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전해 듣고는 한층 더 화를 내고 한을 품게 됐다. 

 

  다르마냑은 주임신부의 일처리 능력과 판단력을 아주 높이 샀고, 그래서 궁정으로 떠날 때마다 관방 업무를 다 그에게 맡겼다. 생마르트에게는 무엇보다도 주임신부가 고전을 잘 알기에 노인의 작품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인문주의자라는 점이 좋았다. 예를 들어, 베르길리우스 전문가로서 노신사의 걸작과 <Paedotrophiae Libri Tres> 같은 작품 말이다. 특히 후자는 아이들 보육과 양육에 관한 연역적 장시인데,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작자 생전에 열 판을 찍었다. 또 시구들이 아주 우아하고 적확해서 롱사르 같은 거장조차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난 우리 시대 그 어떤 시인들보다 이 시의 저자를 더 좋아해. 설령 벰보와 나바제로, 숭고한 프라카스토로[각주:5] 불쾌하게 여긴다 해도 내 생각을 바꾸지 않겠어.” 

 

  아아, 명성이란 얼마나 덧없으며 인간의 자부심이란 또 얼마나 헛된 것인가! 나바제로라는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추기경 벰보라는 이름도 우리한테는 의미가 적다. ‘숭고한 프라카스토로’가 후손들 기억에 남아 있다면 순전히 이런 사실 덕분이다. 즉, 불행한 왕자 시필리스에 관해 깔끔한 라틴어로 의학적 전원시를 쓰면서 매독이라는 창피한 질병에 점잖은 별명을 달아 주었다는 점. 왕자는 지독한 고통을 겪다가 유창목 달인 물을 잔뜩 마시고 나서야 ‘갈리아(프랑스) 병’을 털어냈다. 

  죽은 언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죽어만 간다. 생마르트의 교훈적 장시 세 권은 프라카스토로의 시필리스보다 역사에 남을 기회가 훨씬 더 적었다. 한때 모든 사람한테 읽히고 신성보다 더 신성한 대접을 받았건만, 오늘날엔 그 스케볼라 생마르트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랑디에가 친분을 트던 시기에 노시인은 저무는 영광 속에 아직 머물러 있으며 최고의 원로요 일종의 국정 기념비였다. 그의 만찬에 간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었다. 존경받는 정치가요 인문학의 수반이 은퇴하여 살고 있는 화려한 저택에서 그랑디에는 그 위대한 인물은 물론이고 역시 유명한 아들들이며 손자들과도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거기로는 명성 높은 객들이 드나들었다. (신분을 감춘) 웨일스 왕자, 박애주의자요 혁신적 의사이며 프랑스 저널리즘의 창시자인 테오프라스트 르노도, 나중에 방대한 노작 <Astronomia Philolaica>를 쓰고 변광성 주기를 처음으로 정확하게 결정한 이스마엘 부요 같은 이들. 

  게다가 지역 사회 등불도 합류하곤 했다. 루덩의 수석치안판사 기욤 세리제, 독실하고 학식 있는 검찰관 루이 트렌캉. 그는 아벨 생마르트와 동문수학했으며 문학과 골동품 연구에서 취향이 그 가족과 비슷했다. 

 

  그런 선택된 인사들과 나누는 우의는 참으로 흡족한 것이지만, 아웃사이더들한테서 받아야 하는 적대감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주 총기 있다는 이유로 우둔한 자들한테 불신을 사고, 일처리가 좋다 하여 무능한 자들한테 시기 받고, 넘치는 기지 때문에 둔감한 자들한테 또 훌륭한 매너 때문에 촌뜨기들한테, 또 여인들한테 사랑 받는다 하여 매력 없는 자들한테 경원시되다니… 그의 보편적 우월함에 대한 대접이 뭐 이렇단 말인가!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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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3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1. 흥, 쳇, 제기랄! (불어) [본문으로]
  2. 디킨스의 장편 <피크윅 보고서>(1836)의 주인공. 단순하고 쾌활하며 막연한 성격의 대명사. [본문으로]</피크윅>
  3. 롱사르 (Pierre de Ronsard, 1524-1585) - 프랑스 시인, 당대에는 ‘시인들의 왕자’라 불렸다. [본문으로]
  4. 생트마르트 (Sainte-Marthe) 가문 - 16-18세기 프랑스 주요 시인들을 줄줄이 배출. 1555년에 죽은 시인 샤를은 프로테스탄트 성향을 의심받아 투옥됐다가 미친 척하여 석방됐고, 그의 조카 스케볼라(1536-1623)는 앙리 4세의 총신으로 라틴어로 시를 지어서 롱사르를 비롯해 동시대인들을 환호케 했다. 그의 장남 아벨과 쌍둥이인 차남들도 시인, 손자 스케볼라 3세는 국왕의 사관. [본문으로]
  5. 벰보 (Pietro Bembo, 1470-1547) -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로마교황 레오 10세의 비서관, 추기경, 학자. 나바제로 (Andrea Navagero, 1483-1529) -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베네치아 귀족 출신. 프라카스토로 (Girolamo Fracastoro, 1478-1553) - 베네치아 의사, 시인. 그의 장시 <시필리스 혹은 갈리아 질병>에서 매독을 가리키는 Syphilis 용어가 나왔다. [본문으로]</시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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