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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6편 2
  4. 2019.07.11 루덩의 악마들 2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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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오페라 표지

 


 

10 

 

  잔느의 성지 참배를 묘사하면서 우리는 조용한 지방 소도시에서 빠져나와 몇 주일 동안 대처로 나가 보자. 이건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아는 세계. 이건 왕족과 알랑거리는 궁정 신하들의 세계요 사랑 맛을 아는 귀부인들과 권력 맛을 아는 고위 성직자들의 세계, 고도의 정치와 고도의 패션이 있는 세계. 이건 루벤스와 데카르트의 세계이자 과학과 문학과 지식의 세계

  우리 여주인공은 루덩과 신비주의 집단을, 일곱 악마와 열여섯 히스테리 여인들을 떠나 17세기의 모든 화려함 속으로 잠깐 발을 내딛었다

 

  역사의 매력과 수수께끼 같은 교훈은… 여러 시대가 흐르면서도 바뀌는 것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또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다. 다른 시대에 살았으며 낯선 문화에 속한 인물들에 관해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지나치게 인간적인 ‘나’를 알게 되고, 동시에 우리가 삶을 꾸리며 잡는 준거 기준이 그 시대 이후 알아볼 수 없게 바뀌었다는 점도 인식한다. 그때는 공리처럼 보이던 명제들이 이젠 지지받을 수 없게 됐음을 알며, 우리가 지금 자명한 가설로 간주하는 것들이 이전 시대에는 가장 선구적이며 대담한 선조들조차 짐작은커녕 꿈도 못 꾸던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상과 기술, 사회제도, 행동 규준 분야에서 나타난 변화가 아무리 중대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그리 본질적인 게 못 된다. 그 중심에는 근본적인 동일성이 남아 있으니, 이전처럼 세상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인간 존재들이 육체를 가진 정신이요 물리적 쇠퇴와 죽음의 대상이며 고통과 쾌락에 좌우되고 갈망과 혐오에 휘둘리고 자기주장 욕망자기초월 충동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그들은 언제 어디서고 같은 문제에 직면하며 같은 유혹에 부닥치고 타락과 광명 사이에서 같은 선택을 하게 돼 있다. 외견은 바뀌지만 골자와 의미는 불변이다

 

  잔느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과학적 사고와 실제에서 얼마나 거대한 발전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만한 처지에 있지 못했다.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로, 하비[각주:1]와 반 헬몬트[각주:2]로 대표된 17세기 문화의 여러 측면에 원장수녀는 완전히 무지했다. 어려서 알고 있던 것과 이제 성지 참배 중에 다시 발견한 것이라곤 사회계급이며 그 계급제가 야기한 관습적인 생각과 느낌과 행위가 전부였다. 

 

악령에 들씌웠다는 수녀들과 엑소시스트

 

  어떤 측면에서 17세기 문화는, 특히 프랑스에서 소수 지배층에게는, 육체적 존재라는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장기간의 분투였다. 남자고 여자고 이 시대에는 근세 이후 다른 그 어느 시기보다도 사회적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열망이 더 컸다. 고관들은 그저 거창한 타이틀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로 그 자체가 되기를 동경했다. 그들의 욕심은 자기네가 지닌 지위가, 자기네가 얻거나 물려받은 권위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아주 꼼꼼하게 다듬은 바로크 풍의 의례가 생기고 서열과 특권과 고상한 매너에서 엄격하고 골치 아픈 규정이 나왔다. 관계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타이틀과 혈통과 신분 간에 생겨났다. 예를 들어, 누가 옥좌에 앉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나? 18세기 말엽 생시몽[각주:3]한테는 이 문제가 아주 중요했다. 

 

  세 세대 이전에도 어린 루이 13세가 그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 이미 네 살 나이에 그는 이복형 방돔 공작[각주:4]이 저와 식탁을 같이 하거나 제 앞에서 감히 모자를 쓰고 있다는 데 은근히 분개했다. 부왕인 앙리 4세가 ‘페페 방돔’은 왕세자와 같은 식탁에 앉아야 하며 식사 중에도 모자를 벗을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자 어린 왕세자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심으론 못마땅함이 지극히 컸다. 

 

  왕권신수설의 이론과 실제를 왕실의 모자 착용 관행에서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아홉 살 때 루이 13세를 여성 가정교사한테서 떼어 남성 가정교사한테 맡겼다. 신성한 존재인 아이 앞에서는 왕세자의 개인 교수도 응당 모자를 벗어야 했다. 

  이런 룰은 (왕과 왕비가 시켰기에) 가정교사가 제자에게 체벌을 가할 때조차 지켜야 했다. 왕자는 바지를 내리고 피가 날 때까지 맞지만 모자는 쓰고 있고, 신하는 피가 나도록 때리면서도 제단 위 성체 앞에 선 사람처럼 모자를 벗어야 했다. 우리가 상상하듯이 이런 장면은 “우리가 아무리 헐하게 대한다 해도 왕은 신성으로 보호된다”는 견고한 진리의 생생한 사례였다. 

 

  단순한 살덩이와 피보다 더 큰 무엇이 되려는 열망은 그 시대 예술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왕들과 왕비들, 고관대작들과 귀부인들은 루벤스가 그려낸 풍채와 풍유화한 특징처럼 자신을 생각하고 싶어 했다. 즉, 초인적으로 강력하고 더할 나위 없이 강건하고 영웅처럼 위엄 있는 모습으로. 그들은 반다이크가 그린 초상화에 담긴 모습 같은 자신을 보기 위해 터무니없는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즉, 우아하고 세련되고 한없이 귀족적인 모습을. 

  또 극장에서는 코르네유의 남녀 주인공들한테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그건 왜냐하면 그 주인공들이 고관대작인 그들의 힘과 의지와 초인적인 가치를 찬양했기 때문이다. 해가 가고 또 가면서 고전 극장은 한층 더 엄격하게 시간과 장소, 행위의 일치를 고집했다. 왜냐하면 고관대작 관객들이 저희 극장에서 보기 원한 것은 실제 삶의 묘사가 아니라 삶의 알레고리였으니까. 바로 고관대작 관객들에게 부족한, 수정된 삶, 질서 잡힌 삶, 이상적인 삶. 

 

  저택 건축에서도 시대 분위기는 장대함을 갈망했다. 이런 사실은 리슐리외 추기경 궁을 지을 때 소년이었다가 베르사유가 완공되기 얼마 전에 죽은 시인이 언급했다. 바로, 앤드루 마블.[각주:5]

 

  아담의 초라한 아들이여, 

넌 어째서 화려한 궁전을 세웠는지? 

숲 짐승은 굴속에 몸을 감추고, 

새는 나뭇가지들로 둥지 엮고, 

안방샌님 거북이는 무서울 때 

제 갑각 속으로 움츠러들지.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지붕 없는 삶이란 건강에 안 좋아. 

하지만 인간 하나만이 그런 

대저택에 살지 못해 안달하는구나. 

거기 백색 대리석 벽 안에서 

썩어 티끌이 될 뿐이거늘

 

  대리석 벽들이 늘어나면서 그 안에 들어찬 ‘사치스러운 티끌[각주:6]들의 가발은 더 풍성해지고 그들의 구두 뒤축도 더 높아졌다. 태양왕과 그의 궁정 신하들은 한껏 높은 구두 뒤축 위에서 기우뚱거리고 탑처럼 치솟은 말총을 머리에 얹고 다니면서 저희가 실물보다 더 크고 한창 때의 삼손보다도 더 남성답다고 선포했다. 

 

  자연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런 시도가 늘 실패로 끝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도 이중의 실패로. 왜냐하면 우리네 17세기 선조들은 초인적인 존재가 되기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데도 실패했으니 말이다. 이 황당하고 오만한 정신은 달성 못할 과제로 돌진했으나, 오호라, 육신이 너무 연약한 것으로 드러났구나. ‘위대한 세기’는 물적 자원과 조직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으며, 그런 게 없이는 초인적인 체하는 게임이 성립될 수 없었다. 

 

17세기 궁정과 귀족사회의 화려함은 허식

 

  리슐리외와 루이 14세가 그렇게나 갈망하던 그 장엄함과 그 비상한 위풍은 지그펠트나 코크란, 막스 라인하르트 같은 최고의 연출가와 이미지메이커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거대한 쇼맨십은 일단의 장치와 충분히 비축된 소도구실, 관계자들 모두의 고도로 훈련되고 규율 잡힌 협력에 좌우된다. ‘위대한 세기’에는 그런 훈련과 규율이 결여됐고 극장식 장엄함의 물질적 기반조차 부족했다. 즉, 신을 선보이고 실제로 만들어내는 기계장치조차 아직 미완이었다. 

 

  태양왕도 리슐리외조차도 ‘무엇 하나 적절하게 해본 적이 없는 ’테르모필레의 노인들’[각주:7]이었을 뿐. 베르사유 자체는 이상하게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거대하지만 따분하고, 거드름 빼지만 효과가 전혀 없었다. 

  17세기의 화려한 허식은 상당히 날림이었다. 무엇 하나 미리 적절히 연습된 게 없어서 가장 장엄한 예식들조차 아주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사고가 돌발하여 망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루이 14세의 사촌으로 파리 전역에서 조롱거리가 됐던 대공녀의 장례식 스토리를 보자

 

  당대 유별난 관습에 따라 사후에 공주의 시신은 잘게 절단되어 부위 별로 담겼다. 머리는 여기에, 팔다리는 저기에, 심장과 기타 내장은 또 다른 곳에. 그런데 내장을 제대로 방부하지 않은 까닭에 처리 후에도 부패가 계속됐다. 가스가 축적되어 내장을 담은 반암 단지가 일종의 핵폭탄이 되어 버렸다. 이 폭탄이 하필이면 장례식 도중에 터지는 바람에 참석자들이 전부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런 생리적 사고가 사후에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17세기에 관한 회고록 저자들과 일화 수집가들한테는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예배당에서 난데없이 터진 된트림, 왕족이 있는 자리에서 발생한 공기 오염, 식도락을 즐기는 왕들이 풍기는 썩은 고기 냄새, 공작과 장군들한테서 나는 암내… 앙리 4세의 발 냄새와 겨드랑이 암내는 국제적 명성을 누렸다. 궁정 미남자 벨가드가 늘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애정 충만한 바솜피에르는 제 군주 못지않은 발 냄새를 풍겼다. 

 

  이런 일화들이 인구에 널리 회자된 사실이 왕들과 귀족들이 당당함과 고상함을 갖추려는 시도가 얼마나 덧없는 짓이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고관대작들이 인간적인 면보다 더 큰 무엇으로 보이고자 애썼기 때문에, 사회는 그들이 그저 동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얘기는 무엇이든 환영하면서 그들을 놀려댔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세속적으로도 성직자로서도, 또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지위에서도 높은 지위에 걸맞게 굴고자 하면서 절반 신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노인은...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9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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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0단계.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들과도... 47

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42

8단계. 승복이라는 의미 37

7단계. 고통의 몸체 다스리기 32

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지금> 순간의 힘 52가지 실습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1. William Harvey (1578-1657) - 잉글랜드의 의사, 생리학자, 발생학자, 해부학자. 혈액 순환 체계를 발견, 수혈 등의 치료법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17세기 이전 사람들은 혈액이 간에서 계속 생성되며 신체 기관에서 소비된다고 믿었다. [본문으로]
  2. Jan Baptist van Helmont (1580–1644) - 플랑드르의 화학자, 생리학자, 의사, 신비주의 신지학자. 파라셀수스와 의화학이 유행하던 시기 이후에 활동, '기체 화학 창시자'로 간주돼. '자연 발생'에 대한 개념, 5년 간 버드나무 실험, '가스'라는 단어를 과학사전에 소개. [본문으로]
  3. Saint-Simon de Rouvroy (1760–1825) - 프랑스의 백작, 사상가, 사회학자,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주요 저술 중 하나는 [본문으로]
  4. César, duc de Vendôme (1594-1665) - 앙리 4세와 그의 정부 데스트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이 13세 때 발생한 몇 차례 귀족 반란에 가담. 1626년 리슐리외 암살을 도모했지만 실패. 1640년 다시 리슐리외 독살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자 잉글랜드로 피신했다가 루이 14세가 즉위하지 귀국. [본문으로]
  5. Andrew Marvell (1621-1678) - 잉글랜드의 시인. 형이상학파의 마지막 시인들 중 하나. 는 잉글랜드 고전주의 시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본문으로]
  6. wanton mote - 마블의 유명한 시 <애플턴 하우스에서, 페어팩스 경에게>에 나오는 시구로 인간을 의미. [본문으로]</애플턴>
  7. Thermopylae - 기원 전 480년 스파르타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에 대패한 그리스 해안 협곡.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00킬로미터쯤에 위치. 영화 <300>의 배경. [본문으로]</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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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악마에 들씌웠다고 하는 원장수녀 잔느

 


9

 

  마법사 그랑디에가 사라졌는데도 에아자즈자불론 같은 악마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이 사실을 많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놀랍지도 않은 것이, 근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그 결과가 늘 따르는 법이니까

  수녀들의 히스테리를 악마라는 형상으로 구체화한 것은 바로 미뇽과 엑소시스트들이었고, 이제 악마들을 여전히 붙잡아 두고 있는 것 또한 그들이었다. 주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하루 두 번씩, 마귀 들린 수녀들이 익숙한 공연을 펼쳤다. 예상한 대로 그들 상태는 그랑디에가 살아 있을 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외려 좀 더 악화됐다. 

 

수녀들을 상대로 계속되는 엑소시즘

 

  9월 말경 로바르데몽이 예수회에 도움을 요청했노라고 추기경께 보고했다. 예수회 수사들은 학식과 재능을 겸비했다는 평판을 누리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을 섭렵한 그들 권위에 의존한다면 군중은 ‘루덩의 마귀 들림이 명백한 사실임을 크게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 분명합니다

 

  교단의 비텔레스키 장군을 비롯해 많은 예수회원들은 그 동안 이 마귀 들림 사건에 관여하기를 정중히 거부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도 달리 두수가 없었다. 로바르데몽의 요청 이후 왕명이 신속하게 나왔다. 한층 더 어려운 인물인 추기경 예하께서 국왕의 입을 통해 명하니 마냥 거부할 수만도 없어! 

 

  1634년 12월 15일 예수회 수사 넷이 루덩에 도착했다. 그들 가운데 장 조셉 수렝이 있었다. 아키텐 수도회 관구장인 보이르 수사가 젊은 그를 엑소시스트로 선택했는데, 나중에 협의회 조언에 따라 지시를 철회했다. 하지만 늦었다. 수렝이 이미 마렌을 떠나 루덩으로 향한 것. 그렇게 하여 그가 임무를 맡게 됐다. 

 

  그때 수렝 나이 서른 넷, nel mezzo del cammin,[각주:1] 성격이 형성됐고 사고방식이 굳어졌다. 동료 수도사들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종교적 열의를 인정하고 금욕 생활과 기독교적 완성을 향해 달리는 열정을 존중했다. 

  하지만 그들의 감탄은 뭔가 조마조마한 염려로 인해 다소 줄어들었다. 수렝 수사가 신앙의 길에서 영웅적 덕목을 갖추기는 했지만, 아주 조심스러운 동료들과 상급자들은 그 인격에서 뭔가 불안한 특징을 본 것이다. 

  그들은 그의 언행에서 어떤 과도함과 터무니없음을 간파했다. 그가 즐겨 하는 말은 이랬다. “하나님 일에 관해 지극한 생각을 지니지 못하는 사람은 그분께 결코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오!” 

 

  물론 맞는 말이었다. 그 지극한 생각이 옳은 방향에 있다면 말이다. 이 젊은 수도사의 극단적인 견해 중 일부는 상당히 정통적이긴 해도 분별이라는 탄탄대로에서 일탈한 듯 보였다. 예를 들어,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사는 이들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마치 적수인 듯이 그들한테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 입장은 그와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 먹는 형제들을 썩 편치 않게 했을 것이다. 

  반사회적이라 부를 만한 극단적인 생각들로 인해 경건함에서도 지나치게 단호했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허영심을 신성 모독처럼 몹시 슬퍼하고, 우리의 무지와 경솔함을 가장 준엄하게 벌해야 합니다.” 

 

  완성을 위한 이 냉혹한 엄격주의에다 이른바 ‘특별한 은혜’에 대한 관심이 자못 컸는데, 그런 면을 그의 선배와 동료들은 무분별하며 위험하기까지 한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런 ‘특별한 은혜’란 성인들에게 허용돼 가끔 이적을 행하기도 하지만 구원과 신성화에는 전혀 필요치 않은 것이었으니까

  그의 친구인 앙지노 신부가 여러 해 지나 이렇게 썼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런 측면에 강하게 이끌렸으며, 거기에 의미를 지나치게 많이 부여했다. 그런 쪽에서 그저 비위를 맞추고, 그가 다수에겐 익숙지 않고 평범치 않은 길을 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루앙에서 ‘2차 수련기’를 마치고 네 해쯤 보낸 항구 도시 마렌에서 수렝은 주목할 만한 두 여인의 영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한 사람은 마담 베르제, 부유하고 신을 공경하는 상인의 아내였으며, 또 하나는 마들렌 부아네, 프로테스탄트 땜장이의 딸이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 

  이 둘은 적극적인 명상가요 (특히 베르제 부인이) ‘특별한 은혜’의 혜택을 입었다. 그들에게 나타나는 계시와 법열에 관심이 얼마나 컸든지 수렝이 베르제 부인의 일기를 수십 쪽이나 옮겨 적고 두 여인을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작성하여 친구들이 돌려가며 읽게 했다. 물론 그 자체에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본질상 기연미연하며 함정과 위험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대상에 왜 그렇게 눈길을 집중해야 하는 것인가? 평범한 은혜로도 영혼이 천국에 이를진대, 어째서 특별한 은혜에 그렇게 안달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런 기적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하나님인지 악마인지, 혹은 상상의 소산이거나 협잡의 산물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판국에 말이다

  만약 수렝 수사가 완성으로 나아가기 원했다면 수도회 다른 수사들이 필요로 하고 좇아가는 왕도를 따라야 했으리라. 순명과 적극적 열정의 길, 육성기도와 광범위한 명상의 길을

 

  그를 비판하는 이들이 볼 때 더 안 좋은 것은, 수렝이 아픈 사람이며 노이로제의, 혹은 당시 표현대로 ‘멜랑콜리’의, 희생자였다는 점이다. 루덩에 오기 두 해쯤 전에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심신증 장애로 고생했다. 육체를 조금만 움직이려 들어도 날카로운 근육통이 생겼다. 글을 읽으려 하면 견디기 힘든 두통이 났다. 정신은 흐리고 혼란스러웠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 

  그의 행위와 가르침의 특이함이 혹여 건강하지 못한 신체에 살던 아픈 정신의 소산은 아니었을지? 

 

  많은 동료 수도사들은 마지막까지도 수녀들이 정말 마귀에 들린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다고 수렝은 기록한다. 한데 그 자신은 루덩에 오기 전부터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초자연적인 것이 늘 확연하고 놀랄 만큼 가득하다고 믿었다. 그런 확신은 또 그가 남을 대단히 잘 믿는 기질이 되게끔 했다. 누군가가 성인이나 천사나 악마들과 접촉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걸 의심이나 비판도 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영적 분별력[각주:2]이 상당히 부족했다

  사실 그는 판단력과 평범한 상식조차 결여된 상태였다. 모순적이지만 제법 널리 퍼진 현상이 있지 않은가. 즉,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면서도 어떤 구석에서는 뭔가 좀 어수룩한 사람 말이다

  테스트 씨가 제 얘기를 하면서 맨 처음 꺼낸 말을 수렝은 결코 편하게 입에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리석음은 나의 강점이 아니야.”[각주:3] 예리한 두뇌며 고결함과 더불어 어리석음 또한 그의 강점이었다. 

 

  트랑킬과 미뇽,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벌인 공개 엑소시즘에서 수렝은 마귀에 사로잡힌 자들을 처음 봤다. 마귀 들림이 실제 있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루덩에 와서 목격한 장면들로 인해 그 확신이 한층 더 굳어졌다. 이제 그는 악마들이 아주 진짜임을 알게 됐고, 「불행한 수녀들을 두고 신께서 무한한 연민을 품도록 하셨기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말하자면, 그는 연민을 낭비했다. 혹은 적어도 잘못 발휘했다. 잔느 수녀가 남긴 글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악마에 들렸다는 수녀들을 대상으로 엑소시즘

 

  「악마는 내가 흥분 상태에서 받아들인 어떤 쾌락과 내 몸에 행한 특별한 일들로 종종 나를 즐겁게 했다. 이런 일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크나큰 기쁨을 얻었고, 다른 자매들보다 내가 더 힘겨운 고통을 겪고 있다고 구경꾼들한테 보인다는 점에서 뿌듯했다.」 

 

  하지만 쾌감이란 지나치게 늘어지다 보면 그 정반대의 것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엑소시스트들이 너무 과하게 나오기 시작하자 마귀 들림은 즐거운 것이 못 됐다. 적당히만 한다면 공개 엑소시즘은 이 젊은 여인들한테 여느 향연처럼 본질상 유쾌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엄격한 도덕성을 가지고 자성하는 데 익숙해진 그들이 마음 한 구석에서 뭔가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비록 악마로 인해 발작을 일으킨 상태에서 나온 언행에는 영혼이 책임질 게 전혀 없다고 엑소시스트들이 단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잔느 수녀는 늘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

 

  「그건 놀랍지도 않아. 왜냐하면 내 심신 기능 부조는 대개 나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악마는 내가 제공한 자극에 작용했을 뿐임을 아주 명백히 감지했으니까.」 광포하게 행동할 때조차, 본인이 그걸 자유로이 원했기 때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혼란스럽게도 난 확실히 느꼈어. 악마가 그런 짓을 하게끔 내가 만들었으며, 내가 협조하지 않았다면 악마에겐 그렇게 할 힘이 없었을 거야! 강하게 저항하면, 그 모든 마귀 들림 징후가 올 때만큼이나 한순간에 사라졌지. 하지만, 오호라, 악마들에게 저항하고픈 마음이 그리 자주 들지 않았던 것을.」 

 

  수녀들은 발작 상태에서 저지른 언행이 아니라 그 발작에 저항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죄를 범했음을 인지하면서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죄를 확신하다가 방탕하게 펼쳐지는 마귀 들림과 엑소시즘은 마치 행복한 휴일처럼 다가왔다. 그들이 눈물을 흘렸다면, 그건 광란과 꼴불견을 연출할 때가 아니라 중간 중간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수렝한테는 원장수녀의 악마를 내쫓는 임무가 루덩에 도착하기 오래 전에 부여됐다. 예수회 수사들한테 도움을 청했으며, 아키텐 지방에서 가장 경건하고 능력 있는 젊은 수도사를 당신의 영적 상담자로 지정했소. 그런 얘기를 로바르데몽한테 들은 잔느의 얼굴이 대뜸 퍼렇게 질렸다. 

 

  예수회 수사들이란 언제든 쉽게 속일 수 있는 카푸친회나 카르멜회 수사들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들은 총명하고 공부를 많이 했어, 더욱이 이 수렝 수도사는 정결하고 덕이 높은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이요, 위대한 명상가로 유명하잖아. 나를 당장 꿰뚫어볼 테고, 내가 언제 정말 마귀에 들씌웠으며 언제 쇼를 하거나 악마들에게 자진 협조하는지 알아차릴 텐데. 

  그녀가 로바르데몽에게 이전 엑소시스트들을 계속 붙여 달라고 애원했다. 상냥한 참사회 위원 미뇽과 선량한 트랑킬 수사와 훌륭한 카르멜회 수사들한테 계속 맡겨 주세요. 그러나 로바르데몽과 그의 상전인 리슐리외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들에겐 마법의 실체를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게 해주는 확인이 필요했고, 그건 예수회 수사들만 제공할 수 있었다. 잔느 수녀가 마지못해 따랐다. 

 

  수렝이 도착할 때까지 남은 몇 주일 동안 그녀가 새 엑소시스트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고자 진력했다. 다른 수녀원들에 있는 지인들한테 편지로 정보를 청하고, 지역 예수회 수사들한테도 세세하게 캐물었다. 유일한 목적은 「나한테 지정된 사람의 기질을 연구하고 최대한 많이 알아낸 뒤 그에게 내 영혼의 상태를 전혀 알리지 않으면서 될 수 있는 한 마음의 문을 닫아거는 것이었어. 이런 결심은 아주 확고했다.」 

 

  새 엑소시스트가 도착했을 때는, 그가 마렌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그녀가 제법 많이 알게 됐고, 그래서 ‘부아네트’ 얘기를 빈정거리는 투로 늘어놓았다. (잔느의 악마들은 마들렌 부아네를 그렇게 놀림조로 불렀다.) 그 말을 듣고 수렝이 깜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알지? 이야말로 진짜 기적이로군! 비록 지옥의 기적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명백한 사실이야. 

 

  잔느가 새 엑소시스트에게 제 비밀을 털어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외려 심한 반감을 품고, 그걸 드러내면서 결심한 대로 움직였다. 그래서 수렝이 그녀의 영혼 상태를 알아보려고 질문할 때마다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그녀 말로는, 「악마들이 안팎에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다가서면 즉각 달아났으며, 그가 제 말을 들어보라고 몰아세우면 킥킥대며 혀를 내밀었다. 그녀 말대로라면, 「나는 그의 인내를 여러 모로 시험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너그러워서 그런 당돌한 언행을 전부 악마의 소행으로 돌렸다.」 

 

  수녀들이 다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고, 악마들 탓이라 함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죄를 범했다는 확신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러나 원장수녀한테는 다른 자매들보다도 더 큰 죄책감에 짓눌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랑디에가 처형된 뒤 곧 정욕의 악마 이사카론이 「내 느슨함을 이용하여 순결을 깨려고 사납게 유혹했어. 그가 내 육신에 세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격렬하게 작용했지. 그런 뒤 악마는 내 뱃속에서 아이가 크고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주입했고, 난 그 사실을 굳게 믿어서 모든 증상을 내보인 거야.」 

 

  자신의 재액을 다른 수녀들한테 고백하자, 곧 많은 악마들이 그녀가 임신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었다. 이 사건을 엑소시스트들이 전권대행에게 알렸고, 전권대행은 추기경 예하께 서면으로 보고했다. 알고 보니, 벌써 석 달 동안 달거리가 없으며 헛구역질이 심하고 소화불량에다 가슴에서 젖이 나오고 배가 눈에 띄게 불렀습니다. 

 

  (몇 주일이 흐르면서 원장수녀가 심신의 고통에 한층 더 휘둘렸다. 정말 임신한 것이라면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내가 이끄는 수녀원과 우르술라회 전체가 무시무시한 치욕을 맛볼 텐데.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은 이사카론의 방문. 악마가 거의 밤마다 찾아왔다...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7-1편 3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단테의 <신곡>의 첫 구절.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 che la diritta via era smarrita. 우리 인생 여정 중반에 접어들어… [본문으로]</신곡>
  2. discernment of spirits - 가톨릭신학 이론에서, 영적 동인(動因)들을 그 도덕적 영향으로 평가하고 판단함을 가리키는 용어. 성 이냐시오가 제시하는 룰이 있다. [본문으로]
  3. 프랑스의 시인, 에세이스트, 철학자 폴 발레리(1871-1945)의 소설 <테스트 씨와 보낸 저녁>의 유명한 오프닝. "Stupidity is not my strong suit" [본문으로]</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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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전쟁이 터무니없고 끔찍한 까닭은...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루덩 성의 아성 문제에서 국왕이 결국 추기경한테 양보했고, 로바르데몽이 ‘백조와 십자가’ 객사에 다시 묵게 됐다. 메스멩을 비롯해 추기경 지지자들이 기뻐 날뛰었다. 

  다르마냑이 권력 다툼에서 패한 거야, 아성은 파괴되고 말겠군. 이제 저 지긋지긋한 주임신부만 제거하면 되겠어! 

 

  국왕 전권대행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메스멩이 마귀 들린 수녀들 얘기를 짐짓 입에 올렸다. 로바르데몽이 주의 깊게 들었다. 왕년에 마녀 십여 명을 재판하고 불살라 죽인 경력이 있는 만큼, 스스로 초자연적인 문제에서 전문가라고 여길 권리가 충분했다

  다음날 그가 파켕 거리에 있는 수녀원에 잠깐 들렀다. 메스멩한테 들은 얘기를 참사회 위원 미뇽이 확인해 주었다. 수녀원장도 그랬고, 추기경의 인척인 클레어 수녀도 그랬고, 로바르데몽의 처제 둘도 그랬다. 

 

  모든 수녀들 육신에 악령이 들끓었었지요. 악령은 마법 때문에 들어앉았는데, 마법사가 바로 그랑디에랍니다. 이런 사실은 악마들이 수녀들 입을 통해 스스로 인정한 거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런데도 대주교 예하께서 마귀 들림 따위는 전혀 없다고 결정 내리신 바람에 수녀원이 수치와 몰락에 빠지게 됐어요. 말도 안 되게 불공정한 일이지요! 

  그러면서 수녀들은 로바르데몽이 추기경 예하와 국왕 폐하께 간언하여 일을 바로잡아 달라고 애원했다. 

 

  남작이 공감하는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약속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마녀재판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추기경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실 터인가? 오오, 그걸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돼.  

 때로 리슐리외는 마녀재판을 아주 진지하게 대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몽테뉴나 샤롱[각주:1]의 제자들한테서나 나올 법하다 싶은 코웃음을 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흠, 위대한 인물은 지존과 변덕스러운 아이와 야수의 혼합물처럼 모셔야 해. 그러면서 지존에게는 순종하고, 어린애는 어르면서 등골 빼먹고, 야수는 잘 달래다가 흥분한다 싶으면 피하는 거지. 초인간적인 군림과 표준 이하의 포악함과 어린애 변덕이라는 이 비상식적인 삼위일체를 부주의한 발언으로 심기 건드려 심각한 불상사에 봉착한 궁정 신하가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수녀들이야 저들 편한 대로 울부짖고 애걸할 수 있지만,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알아내기 전에는 그들을 돕고 나설 의향이 로바르데몽에겐 전혀 없었다. 

 

  며칠 지나 루덩 시가 존귀한 인사를 맞이하는 영광을 누렸다. 앙리 콩데 공.[각주:2] 왕실의 이 존재는 악명 높은 남색자인데, 게다가 모범적인 (위선적인) 신앙심에다 가장 야비한 탐욕까지 겸비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한때 추기경의 반대자였지만, 리슐리외가 부동의 입지를 굳힌 이제는 예하의 가장 알랑거리는 신봉자들 중 하나가 됐다. 

  대공은 마귀 들린 수녀들 얘기를 듣자마자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미뇽과 수녀들이 대공을 즐겁게 해 드린다는 생각에 몹시 행복했다. 로바르데몽과 숱한 수행원을 거느리고 대공이 수녀원에 도착하자 미뇽이 영접하여 채플로 모시고, 거기서 성대한 미사가 열렸다. 

 

  처음에 수녀들은 아주 경건하고 단정하게 처신했다. 그러나 성찬례가 시작되자 원장수녀와 클레어 수녀, 아그네스 수녀가 발작을 일으켜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며 음란한 말을 신음 섞어 내뱉고 신을 모독하는 소리를 내며 으르렁댔다. 그러자 다른 수녀들도 똑같이 따라하니, 두어 시간 동안 예배당 전체가 곰 사육장과 유곽이 뒤섞인 곳처럼 보였다. 

  그 광경이 대공 전하께는 엄청난 인상을 일으켰다. 콩데 공은 수녀들한테 마귀가 들었음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이 사건을 당장 예하께 보고하라고 로바르데몽을 다그쳤다

 

고관이 참석한 엑소시즘

 

  한 목격자가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나 전권대행은 이 기묘한 장면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객사로 돌아와서는 수녀들의 비참한 상태에 측은함을 한가득 느꼈다. 그런 감정을 감추기 위해 그랑디에의 친구들을 만찬에 초대하면서 그랑디에도 불렀다.」 

  그것은 유쾌하고 달콤한 파티였을 것이다. 

 

  로바르데몽이 하도 조심스럽게 굴며 몸을 사리자 주임신부의 적대자들이 박차를 가하기 위해 새롭고 더 심상치 않은 비난거리를 들고 나섰다. 

  그랑디에는 신앙을 저버리고 하느님께 반역하고 수녀원 모든 수녀들에게 마법을 건 것만이 아닙니다. 추기경 예하를 두고 추잡한 비방의 글을 쓴 작자이기도 해요. <루덩 구두장이 여자의 서신>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이 있는데, 여섯 해 전인 1627년에 인쇄된 게 바로 그겁니다. 

 

  그랑디에가 이 글의 작자일 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 서신에 나오는 여인과 실제로 친하게 지내고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한때 그녀의 정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그가 그걸 썼을지 모른다는 짐작이 전혀 허튼소리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캐서린 암몽은 똑똑하고 예쁜 프롤레타리아인데 1616년 왕비 마리 메디치[각주:3]가 루덩에 머물 때 눈길을 끌어 시중들다가 곧 공식적으로는 왕실 제화공, 비공식적으로는 왕실의 절친한 친구요 막일꾼이 되었다. 블루아에 유배중인 왕비를 모시면서 캐서린이 간간이 루덩 고향집을 찾아오던 때 그랑디에가 그녀를 알았다. 아주 내밀한 사이였다고 말들 했다. 

  나중에 다시 파리에 돌아가서, 글을 쓸 줄 아는 캐서린이 그랑디에한테 편지를 계속 보내 궁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세하게 전했다. 편지마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그랑디에가 짜릿한 대목을 친구들한테 읽어주곤 했다. 그 친구들 중에 당시 검찰관이요 미녀 필리프의 부친인 트렌캉도 있었다. 바로 그 트렌캉이 친구에서 철천지원수로 바뀌어 이제 캐서린 암몽의 편지 수신인을 <구두장이>의 작자라고 고발한 것이다. 이번에는 로바르데몽이 굳이 속내를 감추려 들지 않았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마녀며 악마들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실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행정 처리 방식이며 그의 가족과 그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리슐리외의 정치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삭탈관직과 유배를 자초함이었다. 그를 모욕한다는 것은 교수대에서, 혹은 (1626년 칙령에 따라 최고 권력의 명예를 괴문서로 훼손하는 짓은 대역죄로 선포된 만큼) 심지어 장작더미 위 기둥에 묶이거나 마차바퀴 위에서 죽음을 무릅쓴다는 뜻이었다. <구두장이>를 인쇄했다는 이유 하나로 불쌍한 인쇄공은 이미 갤리선으로 쫓겨났다. 그런 마당에 주역인 작자가 붙잡힌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이번에는 자신의 열정을 예하께서 확실히 알아주리라 확신한 로바르데몽이 트렌캉이 늘어놓는 말을 열심히 귀담아들었다. 메스멩도 빈둥거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그랑디에는 수도사와 탁발수사들의 공인된 적이고 루덩의 수도사와 탁발수사들은 극소수를 제하고는 그랑디에의 공공연한 적이었다. 카르멜회 수사들이 그랑디에를 증오할 가장 중요한 이유를 제법 지니고 있었지만 이 수도회는 공세를 퍼부을 만한 위치에 있지 못했다. 

  한데 카푸친회는 주임신부의 수완에 덜 시달렸지만 그에게 타격을 가할 힘은 카르멜회보다 훨씬 더 컸다. 왜냐하면 카푸친회 수사들은 조셉 수사의 동료로서 그와 늘 연락을 주고받는데, 바로 이 막후 인물이 추기경의 막역지우요 주된 조언자요 오른팔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랑디에를 겨냥한 새로운 비난과 고발을 메스멩이 믿고 털어놓은 상대는 흰옷의 카르멜회 수사들이 아니라 회색 수도복을 입은 카푸친회 탁발수사들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 즉시 조셉 수사한테 보내는 서신이 작성됐고, 때마침 파리로 돌아가려는 로바르데몽에게 사적으로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작이 위임을 수락했다. 

  그날 저녁 로바르데몽이 그랑디에와 그의 친구들을 작별 만찬에 초대했다. 남작이 주임신부의 건강 위해 축배를 들고, 그와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고, 그가 사악한 적들의 음모에 맞서 벌이는 투쟁을 힘닿는 한 돕겠다고 약속했다. 얼마나 따스한 마음씨를 얼마나 적시에 너그럽게 보여주었던가! 그랑디에가 눈물 핑 돌 정도로 감동했다

 

  다음날 로바르데몽이 시농으로 떠났고, 거기서 루덩의 주임신부가 유죄라고 광적으로 믿는 사람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바레가 국왕 전권대행을 극진히 환대하고, 그의 요청에 따라 엑소시즘 기록을 전부 건넸다. 엑소시즘 중에 수녀들이 그랑디에를 마법사라 비난한 대목들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날 조반을 먹고 난 뒤 로바르데몽이 지역의 귀신들린 여인들 몇몇이 하는 괴상한 짓거리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러고는 엑소시스트와 작별하고 파리로 출발했다. 

 

잿빛 추기경 조셉 수사
Joseph Leclerc Tremblay (1577-1638)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조셉 수사와 면담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 진홍빛 추기경과 잿빛 추기경[각주:4] 두 분 예하를 모시고 더 결정적인 협의를 했다. 로바르데몽이 바레가 작성한 엑소시즘 기록을 낭독하고, 조셉 수사는 카푸친회 형제단이 보내온 서신을 읽었다. 서신에서 수사들은 주임신부를 오랫동안 수색해온 <구두장이>의 작자라고 고발했다

 

  리슐리외는 이 사건이 다음 국무회의에서 숙의하기에 충분히 중대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지정된 일자에 (1633년 11월 30일) 국왕과 추기경, 조셉 수사, 국무비서, 대법관, 로바르데몽이 모였다. 루덩 수녀들의 마귀 들림이 첫 번째 의제

  로바르데몽이 간결하지만 많이 윤색하여 제 얘기를 했다. 악마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으며 두려워하는 루이 13세가 뭔가 대책을 취해야 한다고 대뜸 결정했다. 그 자리에서 즉각 문서가 작성돼 국왕이 서명하고 국무비서가 부서한 뒤 노란 밀랍으로 봉인하여 국새를 찍었다. 이 문서에 의거하여 로바르데몽이 루덩으로 가서 마귀 들림 사실을 조사하고 그랑디에를 겨냥해 악마들이 내뱉은 비난이 온당한지 검증하여 만약 비난이 근거가 있다면 마법사를 재판에 회부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천육백 이십년 대와 삼십년 대에 마녀 재판은 여전히 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어간에 악마와 내통했다 하여 기소된 수십 명 가운데서 리슐리외가 시종일관 민감하게 관심 보인 사람은 그랑디에가 유일했다

  카푸친회 엑소시스트인 트랑킬 신부는 1634년 로바르데몽과 악마들을 대신하여 쓴 책자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추기경 예하께서 보여주신 열성 덕분이며, 그래서 우리는 감사한다. 이런 사실은 예하께서 로바르데몽 남작에게 보낸 서신들이 아주 잘 확인해 준다.」 

  국왕 전권대행으로 말하자면, 「그는 국왕 폐하와 추기경 예하께 상세하게 보고하기 전까지는 마귀 들림을 입증하는 조치를 아무 것도 취하지 않았다.」 트랑킬의 증언은 다른 동시대인들에 의해서도 확인되는데, 그들은 리슐리외와 그가 루덩에 파견한 에이전트가 거의 매일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기록한다. 

  (그런 거대한 인물이 소소하기 짝이 없는 사건에 그렇게 비상한 관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6편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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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Pierre Charron (1541-1603) - 프랑스의 가톨릭 성직자, 신학자, 철학자, 설교가. 윤리학을 종교에서 분리해 독립된 철학 분야로 다루면서 17세기 새로운 사상 정립에 큰 역할. 몽테뉴의 제자이자 친구. <세 가지 진리>, 특히 <지혜론 de la sagesse>(1601)에서는 몽테뉴의 회의론에 가까운 사상을 발전시켰고, 몽테뉴의 관점에 가까운 새로운 세속 윤리 체계를 설파하여 앙리 4세의 지지를 받았다. [본문으로]
  2. Henri II de Bourbon, 3e prince de Condé (1588-1646) 프랑스의 왕족, 장군. 국왕 앙리 4세는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촌아우 콩데 공을 루이 13세가 태어나기 전까지 잠정적인 왕위 계승자로 인정했다. 루이 13세 치하의 프랑스 정치 상황을 그가 묘사한 것으로 알려진 역사적 일화가 유명하다. [콩데 공이 한때 자기 얼굴이 새겨졌던 메달에 관해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 그 메달 앞면에는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이라는 문구와 함께 루이 13세 프로필이 새겨진 게요. 그리고 뒷면에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프로필이 새겨져 있는데, 거기엔 이런 글귀가 둘러싸여 있지. “나에게 묻지 않고는 행동하지 말라”] [본문으로]
  3. Marie de Medicis (1575-1642) -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와 사이에 루이 13세를 보았음. 1610년 루이가 아홉 살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섭정에 나서면서 측근인 콘치니를 중용하여 프랑스가 이탈리아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기에 이르렀음. 권력욕 때문에 아들에 의해 블루아에 유폐됐다가 고문인 리슐리외의 중재로 1620년 화해, 리슐리외는 1620년 추기경이 되고 루이 13세의 신임을 얻어 이태 뒤 재상이 된다. 마리 메디치는 자기를 배신한 리슐리외를 제거하려다가 1630년 ‘속은 자들의 날’ 이후 리슐리외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브뤼셀로 달아났다. 나중에 쾰른에서 고독하고 궁핍하게 죽었다. [본문으로]
  4. Joseph Leclerc Tremblay (1577-1638) - 프랑스의 카푸친회 탁발수사, 늘 길고 낙낙한 잿빛 수도복을 입고 다니며 추기경은 아니지만 막후에서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헉슬리는 <잿빛 추기경>이란 제목으로 그의 전기를 썼고, 화가 장 레옹 제롬(1824-1904)은 그의 전신화를 그렸다. 라 로셸 사태를 배경으로 하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에도 조셉 신부로 등장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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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사진

 


 

  그랑디에의 첩보망도 약제사보다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비밀 회동을 아주 빨리 감지했다. 그가 지방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로바르데몽을 각별히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의 상전인 추기경과 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르마냑이 답신을 보내왔는데, 의기양양했다. 폐하께서 아성은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는 친서를 이제 막 전권대행에게 사적으로 보내셨다고 하오. 이것으로 문제는 속 시원히 해결된 셈이오.  

 

 국왕의 친서는 1631년 12월 중순경 도달했다. 로바르데몽이 친서를 받아 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이후 그것에 관해 입을 꾹 다물었다. 외곽 성벽과 탑들은 계속 해체되고 있었다. 다음해 1월 로바르데몽이 어디선가 더 급한 일을 보기 위해 루덩을 떠났다. 일꾼들이 이미 아성까지 바짝 다가들었다. 

 

루덩 성벽 해체 작업

 

  그랑디에가 작업 책임자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마지막 돌덩이까지 싹 제거하랍니다, 그게 대답이었다. 그러자 주임신부가 자신의 주도 하에 지방장관 수하 병사들에게 아성 주변을 둘러싸 비상선을 치라고 지시했다. 

 

  2월에 로바르데몽이 돌아왔다. 자신의 은밀한 계략이 들통 난 것을 알고는 다르마냑 부인한테 갖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작업 감독한테 적절한 지시를 깜빡 잊고 내리지 못했습니다. 폐하의 친서도 어쩌다 그냥 가지고 가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마침내 친서를 내보였다. 

 

  아성이 일단은 무사하게 됐지만,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 것이며 또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나? 

  국왕의 개인 비서인 미셸 루카스는 추기경의 앞잡이이기도 했는데 왕의 눈앞에서 다르마냑의 평판을 깨라는 지시를 받았다. 분수 모르고 날뛰는 주임신부야 아무 때라도 손봐줄 수 있어. 

 

  1632년 초여름 그랑디에와 다르마냑이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건, 아아, 그야말로 자폭 같은 승리였구나. 

  그들이 추기경 일파의 비밀 서신들을 루카스에게 전달하는 파발을 매수하여 사본을 얻게 됐다. 그 서신들에는 지방장관에 대한 고약한 중상비방 외에도, 추기경 지지자들이 고향 도시 루덩을 파괴하려고 구상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다 담겨 있었다. 

  라모트의 시골집에 머물고 있던 다르마냑이 득달같이 도시로 달려와서 경종을 울리라고 지시하여 시민들을 모았다. 탈취한 서신들을 광장에서 큰 소리로 낭독하자 루덩 주민들이 얼마나 분개했는지 에르베와 트렌캉을 비롯해 음모자들이 어디론가 쥐새끼처럼 숨어야 했다. 

 

  그러나 지방장관의 승리는 오래 못 갔다. 며칠 뒤 왕궁에 들어와서 그는 자신이 취한 조치에 추기경이 격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르마냑의 미더운 친구요 국무비서인 라브릴리에가 그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서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귀띔했다. 

  아성과 관직, 둘 중 하나를 택해야겠소. 어떤 경우에도 예하께서는 장관이 그 둘 다를 유지하게끔 놔두지 않을 게요. 지금 폐하의 뜻이 어떠하든 성채는 결국 파괴될 테고. 

  그 암시를 다르마냑이 알아차렸다. 그 이후 불가항력적인 것에 맞서기를 포기했다.

   한 해 지나서 루이 13세가 전권대행에게 친서를 또 보냈다. 

  ‘로바르데몽 남작, 그대의 열성을 우리도 알게 됐구려… 이 친서를 보내서 그대의 노고를 치하하고 성채를 완전히 주춧돌까지 다 제거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바이오.’ 

  예상한 대로 추기경이 제 뜻을 관철시킨 것. 

 

  그러는 동안 그랑디에는 지방장관의 전선 못지않게 자신의 전선에서도 싸워야 했다. 성 베드로 교회의 주임신부로 복권되고 며칠 지나 적수들이 푸아티에 주교에게 청원서를 냈다. 

  원하는 사람들은 여기 교구 주임신부의 ‘지저분한 손’이 아니라 다른 성직자들한테서도 성찬례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로슈포제가 이 요청을 기쁘게 수락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교는 자신의 선고에 감히 항소 제기한 자를 벌하는 동시에 밉상스러운 대주교의 콧대를 꺾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새로운 스캔들이 몇몇 터졌다. 

 

  1632년 여름 루이 무소와 아내 필리프가 처음 본 갓난애 세례를 받게 하려고 성 베드로 교회에 왔다. 그 일을 부제한테 위임하는 대신 그랑디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손수 의식을 거행하겠노라고 했다. 무소가 주교의 결정을 들이밀자 그랑디에가 그것은 불법이라 응대하고는 옛 연인의 남편과 맹렬한 언쟁 끝에 자기주장을 굳히기 위해 교회법정에 소송을 냈다. 

 

  새 송사가 시작되자마자 옛 송사도 부활했다. 감옥에서 서신을 적던 때 기독교도로서 품은 느낌은 까맣게 잊었다. 즉,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었다거나, 복수의 갈증이 그를 오해한 이들한테 봉사하려는 갈망으로 대체됐다는, 그 번지르르한 말들이 다 헛소리가 된 것

  티보는 등나무 지팡이로 나를 내리쳤으니, 대가를 치러야 해! 

  다르마냑이 법정 밖에서 일을 수습하라고 몇 번이나 조언했다. 그러나 주임신부는 티보가 제시한 보상을 다 거부했고, 이제 복권되자마자 소송을 낸 것이다. 하지만 티보도 법정에 친구들이 있고, 그래서 그랑디에가 결국 승소하긴 했지만 상대에게 안기려던 타격은 아주 적었다. 

  금화 24 리브르 때문에 (도덕적 훼손이 바로 그 정도로 평가된 것) 적대자들과 화해하거나 최소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그가 깨고 말았다. 

  (<루덩의 악마들> 2편 끝. 3-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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