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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1648년 삼십년전쟁이 끝났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세가 꺾이고 게르마니아 주민 삼분지 일이 사라졌다. 유럽은 위대한 군주의 의지와 프랑스의 헤게모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였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라는 간주곡이 흐르는 동안 한 프롱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면 다른 프롱드가 나타나곤 했다. 마자랭이 스스로 유배에 내몰렸다가 권좌로 복귀했고, 다시 은퇴했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 다음엔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다.[각주:1]

  그맘때쯤 로바르데몽이 죽었다. 총신 지위에서 쫓겨나고 희미해진 채로. 그의 외아들은 말 타고 출몰하며 노상강도 짓을 하다가 살해됐다. 딸은 고아가 되어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루덩 우르술라회 수녀가 됐고, 거기서 제 아버지의 옛 휘하인 잔느 수녀 밑에 들었다.

 

   1656년 1월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 1부가 출간되고, 넉 달 뒤 위대한 얀센파 기적이 일어났다. 포르루아얄에 보관돼 있는 신성한 가시에 닿자 파스칼의 조카딸 눈이 기적적으로 치료된 것.[각주:2]

 

한 해 뒤 생주르 신부가 죽자 원장수녀한테는 다른 수녀들과 가엾은 수렝 외에는 서신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게 됐다. 한데 장 조셉 수렝은 아직도 병세가 심해 답신을 보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1658년 초 수렝이 직접 쓴 편지를 받았을 때 그 기쁨이란! 그것도 20여 년 만에 처음이었으니. 그녀가 이제 렌에 있는 방문동정회 수녀가 된 친구 마담 뒤우스한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는다. 

   「얼마나 놀라운가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정말 감탄할 만해요. 그분은 나한테서 생주르를 빼앗아 가더니 이제 내 영적 스승이 다시 나한테 편지를 쓸 수 있게 만드셨지 뭐에요! 이 편지를 받기 불과 며칠 전에 내 영혼 상태에 대해 긴 편지를 보냈거든요.」 

 

  그녀는 자신의 영혼 상태에 관해 수렝한테, 마담 뒤우스한테, 자기 편지를 읽고 응답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 그녀의 남아 있는 서신들을 책으로 펴낸다면 몇 권은 좋이 되리라. 소실된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원장수녀는 ‘내면의 삶’이라는 것이 꼭 공개적이고 다중 앞에서 하는 끊임없는 자기분석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로 내면의 삶이란 자신을 분석하지 않을 때 시작되는 법.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에만 집착하여 계속 떠들어대는 영혼은 거룩한 근간을 인식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를 주목하자. 

 

  「내가 여러분께 편지하지 않은 것은 그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오. 왜냐하면 난 진정 여러분 모두에게 선을 바라니까. 편지하지 않은 까닭이라면, 그저 필요한 것은 이미 충분히 언급된 것 같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뭔가 부족하다 싶다면, 그건 글쓰기나 말하기가 아니라오, 그런 것이야 흔히 필요 이상으로 넘치니까. 중요한 것은 침묵과 근면에 있어요.」 

  이 말은 십자가의 성 요한[각주:3]이 자기네 영적 상태를 아주 상세하게 적은 편지에 왜 답하지 않느냐고 불평한 수녀들에게 보낸 것. 그러나 ‘말하기란 마음을 흩뜨리고, 침묵과 근면은 생각을 모아서 스피릿을 굳힌다오.’ 

 

십자가의 성 요한, St. John of the Cross
St. John of the Cross

 

  한데, 오호라, 잔느는 침묵하기를 원치 않았구나. 그녀는 유명한 마담 드 세비네[각주:4]만큼이나 어휘가 풍부하고 표현이 장황했다. 하지만 오로지 자기 자신에 관한 가십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잔느 수녀를 마귀 들림의 절정 시기에 보았던 브리튼 사람 둘이 1660년 왕정복고와 더불어 마침내 저희 자리에 들어섰다. 톰 킬리그루는 궁정 침소관이 됐고, 검열 받지 않고 작품들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을 건축하도록 허가받았다. 존 메이틀랜드로 말하자면, 우스터에서 죄수가 되어 9년을 감금됐다가 이제 새 국왕의 국무비서요 총신 중의 총신이 됐다. 

  그러는 동안 원장수녀가 제 나이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병치레를 하면서, 걸어 다니는 성물이요 권표 받드는 사람, 성스러운 대상이요 수다스러운 안내자라는 이중 역할이 이제 견딜 수 없이 고단해졌다. 성스러운 이름자들은 1662년 마지막으로 나타났고, 그 뒤 독실한 신자들이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몇몇 이적이 멈췄다 해도 잔느의 허황된 영적 자부는 이전처럼 여전히 컸다. 수렝이 그녀한테 보낸 여러 편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아주 중요한 긴급함에 관해, 은혜의 근간에 관해 당신에게 말하려 하오. 곧, 겸허함 말이오. 이 성스러운 겸허함이 당신 영혼의 진정하고 견고한 반석이 되게끔 행동하기를 아주 간절히 바란다오. 우리가 편지로 주고받는, 숭고하고 고아한 본질의 것들이 그 어떤 경우에도 당신한테서 겸허함을 빼앗으면 안 된다오.」 

  아무리 남을 잘 믿고 기적적인 것을 과대평가함에도 불구하고 수렝은 서신으로 소통하는 여인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잔느 수녀는 대단히 널리 퍼진 ‘보바리스트’ 아종에 속했다. 이런 사람들에 관해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에서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스칼테레사 성녀에 관해 이렇게 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계시를 받고도 그녀가 보인 크나큰 겸허함이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녀가 계시를 통해 얻은 인식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녀의 말을 본받으려 무던히 애를 쓰고, 그렇게 하면 그녀의 본질을 본받는다고 상상하면서 우리 마음을 열심히 자극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기꺼워하는 덕목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기꺼운 상태로 들어서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잔느 수녀는 실제로 자신만이 펼치는 코미디의 주인공이었음을 마음 한 구석에서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반대 되는 것을 한층 더 확신했다. 루덩에 몇 차례 방문하고 여러 달 묵었던 마담 뒤우스는 제 가엾은 친구가 거의 모든 시간을 환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잔느는 마지막까지 환상의 노예였을까? 혹은 조명 받는 배우가 아니라 무대 뒤편 모습으로 죽을 수 있었을까? 무대 뒤편 본연의 모습은 황당하고 측은했다. 그러나 사실을 인정하기만 했다면, 테레사 성녀인 체하기를 그만두었다면, 모든 게 더 좋았을 것이다. 한사코 다른 사람인 양 처신한 이상 기회는 없었다. 그녀에겐 정직성과 온유함이 부족했다. 안 그렇다면 자신 안에 더 훌륭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었을 텐데

 

  1665년 1월 그녀가 죽은 뒤 그때까지 그녀가 벌여 온 코미디는 수녀원의 남은 멤버들에 의해 진짜 광대극으로 변했다. 그들은 시신의 목을 베어 잘린 머리를 성스러운 슈미즈와 나란히 크리스털 창이 달리고 은으로 씌운 상자에 담았다

  지역 화가가 주문 받아서 베게모트를 퇴치하는 그림을 엄청나게 크게 그렸다. 화폭 한가운데 원장수녀가 수렝 수사 앞에서 황홀경에 잠겨 무릎 꿇고 있고, 그 수렝을 트랑킬 신부와 어떤 카르멜회 수사가 돕고 있다. 그 장면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동부인하여 위엄 있게 구경하고 있다. 그들 뒤로 창가에는 지체가 좀 낮은 구경꾼들 얼굴이 보인다. 그림 위쪽에는 후광에 둘러싸이고 케루빔을 거느린 성 요셉이 떠 있다. 오른손에 벼락 세 개를 쥐고 있는데, 그것을 마귀 들린 자들 입에서 나오는 시커먼 악마들과 악령들한테 내던지고 있다.  

  이 걸작은 우르술라회 채플에 팔십 년 넘게 걸려 있으면서 만인의 경배 대상이 됐다. 그러나 1750년 푸아티에 주교가 루덩에 왔다가 보고는 어디 멀리 치우라고 지시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순종 의무 사이에서 애를 끓다가 수녀들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래서 화폭 위에 다른 훨씬 더 큰 그림을 걸었다. 원장수녀가 가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수녀원이 쇠락을 거듭하다가 1772년 폐쇄됐다. 그림은 성 십자가 교회 참사회 위원한테 넘어갔고, 슈미즈와 미라가 된 머리는 십중팔구 어떤 좀 더 운이 좋은 수녀원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세 가지 다 지금은 종적이 묘연하다. 

(10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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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롱드의 난’은 프랑스에서 1648-1653 어간에 잇따라 발생한 반정부 폭동으로, 사실상 시민전쟁의 양상을 띠었다. 이는 또 1635년에 시작된 프랑스와 에스파냐 전쟁의 와중이었다. 파리 고등법원의 프롱드와 귀족들의 프롱드로 대별되는데, 전자는 베스트팔렌 조약 직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 프롱드 난은 결국 지역 귀족세력의 권한 약화와 절대군주국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fronde는 본래 투석기를 뜻하는데, 파리 군중이 마자랭 지지자들 집의 창문을 깨는 데 이용했다. 이 와중에 마자랭은 두 번 권좌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했다. 오늘날 프롱드는, 말만 그럴싸하게 하며 실제로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권력자들에 대한 불만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2. 파스칼의 누이의 어린 딸인 마르그뤼트 페리에는 왼쪽 눈의 누공이 썩어 들어가는 질병으로 3년 넘게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기독교 교육을 시키려는 모친의 뜻에 따라, 언니와 함께 포르루아얄 수녀원에 기숙학생으로 들어갔다. ‘fistula lacrymalis’라고 일컫는 질환 때문에 누공이 안에서 심하게 손상되고 코뼈가 썩고 입천장에 구멍이 나서, 분출물이 뺨과 콧구멍, 목구멍으로 흘러내릴 정도. 머리를 만지기만 해도 눈가에 극심한 통증. 그 모습이 참으로 딱한데다가 분비물 냄새가 하도 역겨워서 다른 학생들과 떨어져 독방을 써야 했다. 파리의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다 들러붙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어느 날 신성한 가시를 눈에 댄 뒤 그 즉시 병이 싹 사라졌다. 6명 의사와 5명 외과의가 이 기적을 인정했다. 이 사건의 충격이 어찌나 컸든지, 안 도트리시조차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일설에 의하면 마자랭이 이후 5년 동안 얀센파를 박해하지 않게끔 했다고. 신성한 가시를 접하고 치료받은 사람이 두어 달 사이에 수십 명으로 늘었다. [본문으로]
  3. St. John of the Cross (에스파냐어: San Juan de la Cruz, 1542–1591) - 반종교개혁의 중심인물,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로마가톨릭 성인, 카르멜회 탁발수사요 성직자. 수도원 개혁에 박차. 영성에 관해 에스파냐어로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다. “신앙은 하나님께 가는 두 다리요, 사랑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안내자.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신앙의 신비와 은밀함을 잘 묵상하고 관상케 한다면, 사랑은 신앙 안에 담긴 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해줄 것.” [본문으로]
  4. Marie de Sévigné (1626-96) - 프랑스의 귀족. 나이 스물넷에 남편 잃고 홀로 자녀들 양육. 위트와 생생함이 넘치는 편지들을 남긴 일로 유명한데, 대부분 편지를 딸에게 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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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Ape and Essence

 


 

  그 동안 원장수녀는 방문동정회 수녀원에 묵었다. 거기 원장은 마담 드 샹탈.[각주:1] 우리는 잔느 수녀가 성 프랑수아의 성스러운 친구요 제자한테도 안 도트리시나 고약한 오를레앙 가스통에게 할애한 만큼 많은 지면을 할애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자서전을 펼쳤지만, 실망하고 말았다. 성 샹탈을 언급한 유일한 문구는 오로지 이것 하나.

  「성유가 묻은 슈미즈가 더러워졌다. 마담 샹탈과 그녀의 수녀들이 성유 묻은 속옷을 빨았다. 그 뒤 성유 자국들이 본래 색깔을 되찾았다.」 

 

방문동정회 설립자 마담 드 샹탈 수녀 초상화

 

  방문동정회의 설립자 같이 주목할 만한 인물에 대해 이상하게 침묵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저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여태껏 그래 왔듯이 테레사 성녀라도 되는 듯 행동해봤자 통찰력 뛰어난 마담 드 샹탈한테는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나? 

진정 성스러운 이들한테는 감히 어쩌지 못하는 재능이 있어서, 겉에 드러내는 마스크가 아니라 본연의 자체에서 사람을 꿰뚫어보는 법. 이 선량한 노부인의 지혜로운 눈길 앞에서 가엾은 잔느가 영적으로 발가벗김 당한 상태를 갑자기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귀향길에 브리아르에서 예수회 수사 둘이 수녀들과 작별했다. 잔느 수녀는 저에게 온전한 정신을 되돌려 주려고 무진 애를 쓴 사람과 그 이후 더 이상 못 보게 됐다. 수렝과 토마스는 보르도가 있는 서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다른 이들은 파리로 떠났다. 거기서 잔느가 다시 왕비와 만났는데, 참으로 적절한 시간에 셍제르맹에 도착했다. 

  그날 밤, 1638년 9월 4일 한밤중, 왕비에게 산통이 시작된 것. 노트르담 뒤퓌 대성당에서 가져온 축복받은 성모 거들이 왕비 허리춤에서 바짝 조이고 원장수녀의 슈미즈가 왕비 복부를 덮었다. 다음날 오전 11시 안 도트리시가 옥동자를 순산했다. 5년 뒤 루이 14세가 될 운명인 아기. 수렝의 글을 보자. 

  「그렇게 성 요셉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왕비께서 순산케 했을 뿐 아니라 권한과 관대함에서 둘도 없는 왕을, 드물게 신중하고 놀랍도록 현명하고 전례 없이 신앙심 두터운 왕을 프랑스에 선사하신 것이다.」 

 

  왕비가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자마자 잔느가 제 슈미즈를 챙겨 루덩으로 떠났다. 수녀원 숙사 문들이 그녀 앞에서 활짝 열렸다가 그녀 뒤에서 다시 닫혔다. 영원히. 그녀의 영광된 삶의 어수선한 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이제부터 제 숙명이 되어야 한 따분한 일상에 금방 적응하기 어려웠다. 성탄절을 얼마 앞두고 폐색전에 걸렸다. 그녀 말에 따르면, 목숨은 이미 절망적이었다. 그녀가 고해사제에게 말했다. 

  「우리 주께서는 나에게 하늘나라로 가려는 갈망을 많이 주셨어요. 하지만 그뿐 아니라, 만약 지상에서 조금 더 머문다면 내가 그분께 적잖이 봉사할 수 있으리라는 점도 알게 하셨지요. 그러니, 신부님, 성유를 나한테 문질러 주세요, 그러면 당장에 회복될 거예요.」 

 

  기적이 일어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잔느의 고해사제는 이 축복받은 기회를 보라고 손님들을 초대하기까지 했다. 성탄절 밤 ‘우리 교회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서 내 회복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 원했다.’ 신분 높은 객들은 병자가 누워 있는 방에 더 가까운 쪽으로 자리를 받았다. 쇠창살 사이로 저 안쪽이 들여다보였다

  「한밤중이 지나 내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예수회의 알랑주 신부가 제의를 포함해 정식으로 갖춰 입은 뒤 성스러운 슈미즈를 들고 우리 방에 들어왔다. 내 침상으로 다가와서 성물을 내 머리에 대고 성 요셉의 호칭기도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다 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내 머리에 성물을 대자마자 난 즉각 완전히 회복됐음을 느꼈다. 하지만 신부님이 호칭기도를 마칠 때까지 아무 내색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도가 끝나고 나서야 치료됐다고 밝히고는 옷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이 두 번째, 지나치게 연출된 기적은 관중에게 각별한 인상을 일으키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런 기적이 그 뒤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삼십년전쟁[각주:2]은 여전히 끝날 줄 몰랐다. 리슐리외는 갈수록 더 부를 쌓고 민중은 갈수록 더 도탄에 허덕였다. 농민들이 과도한 세금에 분노하여 들고일어나고, (파스칼의 부친을 포함하여) 부르주아가 국채 이자 인하에 반대하여 들고일어났다.

  우르술라회 수녀들은 루덩에서 별 다른 사건 없이 살았다. 몇 주 만에 한 번씩 (이전처럼 보포르 공작을 닮았지만 단지 더 아담하여, 3피트가 좀 넘고 16세쯤 돼 보이는) 수호천사가 원장수녀 왼손에서 희미해지는 철자들을 다시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멋진 성해함에 담긴 슈미즈는 성 요셉의 성유와 함께 수녀원의 가장 귀중하고 효력 있는 성물 축에 들었다.  

 

  1642년 말 리슐리외가 죽고 몇 달 뒤 루이 13세가 무덤으로 갔다. 다섯 살짜리 왕을 대신하여 안 도트리시와 그녀의 정부인 마자랭 추기경[각주:3]이 나라를 서툴게 통치했다. 

 

  1642년 잔느 수녀가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고, 새로운 영적 조언자로 예수회 수사인 생주르 신부를 얻어서 그에게 자신의 글과 또 악마에 관한 수렝의 미완성 원고를 보냈다. 

  생주르가 이 원고를 에브뢰 주교에게 빌려 주고, 루비에의 마귀 들린 자들을 책임지는 주교는 루덩에서 벌어졌던 대로 더 새롭고 혐오스러운 광기와 악의의 향연을 계속했다. 로바르데몽이 원장수녀한테 편지를 보냈다. ‘내 보기에, 당신이 생주르 신부와 주고받은 서신들이 이번 일에서 한몫 톡톡히 했소이다.’ 

 

  시농에서 바레 신부가 조직하고 연출한 마귀 들림은 루비에의 것보다 성공적이지 못했다. 처음엔 물론 다 잘 돌아가는 듯 보였다. 도시 최고 가문의 여인들을 포함하여 일단의 젊은 여인들이 심리적 감염에 굴복했다. 그 다음엔 다 순서대로 진행됐다. 신성 모독, 발작, 중상과 비방, 음란한 언행… 

  한데 불행히도, 귀신들린 처녀들 중 벨로켄이라는 여자가 지역 성직자 길루어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교회에 가서 그녀가 높은 제단에 닭 피를 한 병 쏟아놓고는, 엑소시즘 도중에 바레 신부한테 그 피는 간밤에 길루어가 자기를 겁탈할 때 흘린 것이라고 고백했다. 바레가 처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녀 몸에 들어앉은 다른 악마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동료 성직자에 대한 유죄 증거를 더 확보하려고.   

 

  그러나 일은 추악하게 끝났다. 벨로켄한테 닭을 판 여인이 낌새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어 법정에 고발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바레가 머리 꼭대기까지 화를 냈고, 벨로켄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심기증에 시달려 자리에 누웠다. 악마들은 이 질병이 길루어의 마법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런 소리에 흔들리지 않은 경찰이 더 많은 증인을 소환했다. 그러자 겁에 질린 벨로켄이 투르로 달아났다. 거기 대주교는 마귀 들림을 신봉하는 이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 대주교가 부재중이어서 보좌사제가 직무를 대행하는데, 그는 마귀 들림 현상을 잘 안 믿는 편이었다. 보좌사제가 벨로켄의 사연을 듣고는, 산파 둘을 불러서 길루어 신부가 정말 가엾은 처녀 복부에 손상을 가했는지 검사하게 했다. 알고 보니 통증은 거짓이 아니긴 했지만 초자연적인 원인 때문이 아니라 작은 포탄 조각이 자궁에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심문을 받고 처녀는 그걸 제 손으로 집어넣었다고 자인했다. 이 사건 이후 불쌍한 바레는 교구를 잃고 투렌에서 추방됐다. 그는 사람들한테 까맣게 망각된 채 생을 마감했다. 르망에 있는 수도원에서. 

 

  그러는 동안 루덩에서는 악마들이 제법 잠잠히 지냈다. 사실 잔느 수녀 증언에 따르면 이런 일도 있긴 했다. ‘끔찍이도 무섭게 생긴 사내 둘이 내 앞에 나타났는데 심한 악취를 풍겼다. 둘 다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붙잡아 옷을 찢고 침대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 삼십 분 넘게 몽둥이로 나를 때렸다.’ 

  다행히도 슈미즈가 얼굴에 둘려 있었기 때문에 원장수녀가 제 알몸을 보는 치욕은 면했다. 악취 풍기는 두 남자가 슈미즈를 다시 내리고 사라졌을 때, 그녀는 ‘자신의 순결을 깨는 무슨 짓이 벌어지지는 않았음을 알았다.’ 

 

  그런 식의 공격이 몇 번 더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십 년에 걸쳐 잔느가 기록한 기적들은 주로 좀 더 천상의 성격을 띠었다. 예를 들면, 한번은 어떤 힘이 그리스도에게 수난을 가한 도구들을 이용하여 그녀 심장을 둘로 갈랐다. 그건 물론 내부에서 일어난 일로 겉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또 죽은 수녀들의 영혼이 나타나서 연옥에 관해 얘기한 경우도 여러 번 됐다. 

  물론 그 동안에도 손바닥의 성스러운 글자들은 면회실 쇠창살을 통해 고관들과 독실한 이들과 그저 호기심 많거나 대놓고 의심하는 사람들한테 계속 전시됐다. 천사는 이름자를 갱신할 때마다, 아니면 그냥 짬짬이 나타나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그 조언을 잔느가 지루하게 긴 글로 적어 영적 조언자에게 전달했다. 

  천사는 다른 삼자들 일에 관해서도 조언했다. 예를 들어, 소송에 연루된 신사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딸을 좀 손해나지만 지금이라도 시집보내는 게 나은지 아니면 더 좋은 신랑감을 바라면서 버티는 게 더 나은지 알고 싶어 안달하는 어머니들에 대해서. 

 

  (1648년 삼십년전쟁이 끝났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세가 꺾이고 게르마니아 주민 삼분지 일이 사라졌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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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3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2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St. Jeanne Chantal (1572–1641) - 로마가톨릭 성인, 성모 방문동정회 설립. 귀족 가문 출신, 28세에 남편 샹탈 남작을 여읜 뒤 기도에 몰두. 살레의 성 프랑수아를 만난 뒤 그의 제자요 친구가 되다. 1610년 안시에서 수도회 설립, 69개 수녀원을 운영하고 영적 조언자로 활동하면서 과부들과 병든 여인들을 돌봄. [본문으로]
  2. 삼십년전쟁 - 1618-1648 어간에 주로 오늘날 독일과 유럽 많은 국가들이 개입된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유럽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분쟁들 중 하나. 분쟁의 발단과 참여국들의 목적은 지극히 복잡다단. 처음엔 신성로마제국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교도들의 종교적 충돌로 시작됐지만, 이후 유럽 열강이 개입하는 단계로 확대됐고, 이 단계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많이 줄고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부르봉왕가와 합스부르크왕가의 대립이 주요인이 됐다. 무력 충돌이 벌어진 전 지역이 군대의 징발로 헐벗게 됐고 기아와 질병으로 게르마니아, 보헤미아, (북해 연안) 저지대, 이탈리아에서 주민 수효 격감하고 전쟁 당사국들은 대부분 파산의 지경에 이르렀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일부인 오스나브뤼크와 뮌스터 강화조약으로써 독일의 30년 전쟁이, 에스파냐와 네덜란드 간의 80년 전쟁이 비로소 막을 내렸다. 프랑스 영토 확장, 프로이센 왕국 등장, 신앙의 자유. [본문으로]
  3. Jules Mazarin (1602-1661) - 이탈리아의 가톨릭 추기경, 로마교황청 외교관, 정치가, 1642년부터 (프롱드 난 시기에 잠시 밀려났지만) 죽을 때까지 프랑스의 재상. ‘잿빛 추기경’인 조셉 신부가 죽은 뒤 리슐리외가 파리로 불러들였으며, 이후 리슐리외의 정책을 그대로 추진. 루이 14세의 대부, 안 도트리시와 내연 관계라는 설도. 예술품 및 다이아몬드 등 보석 수집광.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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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The Devils of Loudun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가 투르를 떠나 앙부아즈로 갔다. 성스러운 이름자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수녀원 면회실을 밤 열한 시까지 마냥 열어두어야 했다. 다음날 블루아에서는 군중이 문을 부수고 잔느가 식사하는 숙소로 돌입했다.  

  오를레앙에서는 우르술라 수녀원에 머문 그녀를 보러 주교가 친히 내방했다. 그녀 손바닥을 꼼꼼히 들여다보더니 외쳤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우리가 감춰서야 되겠나, 누구나 와서 보게끔 하시오!” 그러자 숙사 문들이 죄다 열리고 수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객실 쇠창살을 통해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마음껏 보게 됐다.   

 

  파리에서 원장수녀가 로바르데몽 남작의 호텔에 묵었다. 슈브레즈와 드게메네 공이 자주 찾아왔고 2만에 이르는 하층 계급 군중이 날마다 건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잔느 수녀가 이렇게 쓴다. 

  「정말 당혹스럽게도 그들은 내 손을 보기 원할 뿐 아니라 마귀 들림과 악마 퇴치에 관해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하는 수 없이 난 책자를 하나 내게 됐고, 다중은 그걸 읽으면서 악마가 내 몸에 들어온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을 알 수 있었다. 내 손에 성스러운 이름자가 나타난 것은 특별한 대목으로 다뤘다.」 

 

  잔느 수녀가 파리 대주교 공디를 찾아뵈었다. 접견 후 이 고위 성직자가 그녀를 마차까지 배웅하면서 아주 정중하게 대한 뒤 파리 시민들이 전부 그녀를 보려고 앞 다투어 몰려들었다. 헐리웃 스타처럼 그녀 몸은 이미 제 것이 아니었다. 몰려든 인파가 실컷 바라볼 수 있게끔 아침부터 밤까지 일층 열린 창가에 계속 앉아 있어야 했다. 새벽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팔꿈치를 쿠션에 걸치고 기적 같은 손은 창 밖에 달랑 내놓은 채. 

  「미사를 드리거나 요기할 짬도 없었다. 날이 무척 더운데다가 군중이 열기를 더하는 바람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그예 정신을 잃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루이 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시

 

  리슐리외 추기경을 방문한 날은 5월 25일이었고, 그 며칠 뒤 왕비의 명에 따라 원장수녀를 로바르데몽의 마차로 생제르맹앙레로 데려갔다. 거기서 안 도트리시[각주:1]와 오랜 시간 대화가 이어졌다. 왕비께서는 ‘교회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을 환희에 차서 들여다보며’ 경이로운 손을 한 시간이 넘도록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감격하여 외쳤다. 

  “이렇게 기적적인 일을, 이다지도 큰 경건함을 심어주는 일을 어찌 의심할 수 있단 말이지? 이 놀라운 일을 믿지 못하고 헐뜯는 자들은 다 교회의 적이야!” 

 

  경이로운 현상을 전해 듣고 루이 13세도 친견하게 됐다. 성스러운 철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나서 하는 말. “그래, 이 기적이 진실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내 눈으로 보게 되니 믿음이 한층 더 굳어지는구나.” 그러고는 실제로 마귀 들림에 아주 회의적으로 대한 신하들을 불러들여 잔느 수녀의 손을 보이면서 물었다. “자, 이걸 보면서도 달리 할 말들이 있겠소?”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생각을 꺾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신사들 이름은 내가 자비심을 베풀어 언급하지 않으련다.」 원장수녀가 그런 기록을 남겼다. 

 

  이 의미심장한 날에 유일하게 발생한 난처한 순간은 왕비가 ‘성 요셉의 기도를 통해 순산할 수 있도록’ (이때 왕비는 미래의 루이 14세를 뱃속에 품은 지 6개월 됐다) 성스러운 슈미즈에서 한 조각을 잘라 달라고 부탁할 때였다. 원장수녀가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하나님은 조각내기를 원치 않으실 것이라고 대답해야 했다. 

  마마께옵서 정히 명하신다면 통째로 드릴 수는 있겠나이다. 하지만 감히 아뢰건대 이 성물을 여태껏 해왔듯이 제가 가지고 있다면, 성 요셉을 따르는 무수한 영혼이 자기네 수호성인의 진짜 성유물을 직접 보면서 많은 위안을 얻지 않겠나이까

  왕비가 뜻을 거둬들였고, 원장수녀가 제 보물을 잘 간수하여 파리로 돌아왔다. 

 

  생제르맹 방문 이후 그 다음 사건들은 죄다 다소 밋밋해 보였다. 생(Sens) 대주교와 두 시간에 걸친 면담도, 몰려든 3만 군중도, 심지어 “이것은 하나님 교회에서 지금까지 보아온 가장 완벽한 것들 중 하나요” 하고 말한 로마교황 대사와 나눈 대화조차 그랬다. 그는 “이렇게 확고한 증거가 나타났는데도 위그노들이 어째서 눈을 못 뜨고 계속 완강하게 버티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는 말도 덧붙였다.  

 

  잔느 수녀와 동행인이 6월 20일 파리를 떠났는데, 그 뒤로도 머무는 곳 어디서나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고 고위 성직자들과 VIP들이 두 순례자를 자기네 저택으로 맞아들였다. 파리를 떠난 지 열나흘 째 되는 날 도착한 리옹에서는 그들을 알퐁스 리슐리외 대주교가 찾아왔다. 그는 재상의 장형이자 역시 추기경이었다

 

  부모는 알퐁스가 몰타 기사단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몰타 기사들은 규정에 따라 수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알퐁스는 거기서 결격이었다. 그래서 리슐리외 가문에 속한 뤼송의 주교직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카로토지오 수도회 수사가 되기 위해 곧 그 자리를 내놓았다. 아우가 가파르게 출세한 뒤 수도원에서 나와 처음엔 엑스의 대주교가 됐다가 리옹 대주교가 됐으며 추기경 예모도 받았다. 

  이 고위 성직자는 평판이 아주 좋았지만 가끔씩 정신착란 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면 금실로 수를 놓은 진홍빛 망토를 걸치고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아마도 리슐리외 가문에는 정신질환이 대물림된 듯싶다. 그의 아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도 가끔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말이라고 상상했다는 얘기도 나돌았으니 말이다.) 

 

  알퐁스 추기경이 성스러운 이름자에 관심이 대단해서, 그걸 외과적인 방법으로 검사해보려 했다. 이 글자들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지울 수 있을까? 그가 가위를 들고 실험에 나섰다. 

  그러자 잔느 수녀가 「감히 한 말씀 올렸다. “나리, 이건 저한테 고통을 안기시는 겁니다.” 그러자 추기경이 주치의를 불러들여 철자들을 깎아내라고 일렀다. 내가 맞섰다. “나리, 이런 시험을 겪으라는 지시를 제 상급자들한테서 받지 못했습니다.” 나리께서는 그 상사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원장수녀가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 상급자의 상급자는 추기경-공작이요 알퐁스 추기경의 아우임을 내비추었다. 그러자 그 즉시 시험이 중단됐다.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수렝 수사였다. 그는 이미 안시에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한데 일시적인 실어증에 걸렸다. 히스테리 상태에서 비롯된 게 분명한데 그 자신은 그게 악마의 간책이라고 확신했다. 수렝이 살레의 성 프랑수아 관 곁에서 악마를 물리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안시에 있는 방문동정회 수녀들은 성 프랑수아의 마른 피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건 성 프랑수아의 하인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발사이자 외과의가 성인에게 사혈을 할 때마다 모아둔 것이었다. 샹탈의 요안나 대수녀원장이 수렝의 불행을 가엾게 여겨 이 마른 핏덩어리를 먹게 했다. 일순간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그가 외쳤다. “예수 마리아!” 그러나 그게 전부였고,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리옹의 예수회 수사들이 협의한 끝에 수렝과 동행자 토마스 신부가 길을 되돌아가서 원장수녀를 순례 마지막까지 동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르노블로 가는 길에 사건이 하나 벌어졌는데, 그걸 잔느 수녀는 ‘진실로 경탄할 만한’ 일이라 부른다. 

  포마 신부가 Veni Creator[각주:2] 기도문을 읽기 시작하자 수렝 신부가 즉각 응창한 것. 그 뒤로 그가 (적어도 한동안은) 자유자재로 입을 놀리게 됐다. 그르노블에서 수렝은 다시 찾은 목소리를 활용하여 성 요셉의 성유와 성스러운 이름자들에 대해 여러 번 유창하게 강론했다.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이 인물이 악이 선이고 거짓이 진실이라고 열정적으로 주장하는 광경에는 숭고하면서도 안타까운 뭔가가 있다. 설교단에서 목청을 돋우어 사법살인의 적절함을, 히스테리의 신성함을, 협잡의 기적 같은 작용을 청중에게 설득하려 애쓰면서 병든 육신과 분열 직전 위태로운 정신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물론 그건 다 하나님의 더 위대한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의 도덕성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도 별 가치가 없는 법. 선의를 품었다 해도 비현실적이고 부적절하게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남을 무턱대고 믿으며 인간 심리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수렝 같은 이들은 전통적 종교와 발전하는 과학 사이에 가교를 결코 놓을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수렝은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기에 어리석게 처신할 권리를 지니지 않았는데, 이 경우에는 우자처럼 행동했다. 그는 스스로 제 열정의 수난자가 됐고, 그 열정은 해로운 것으로 드러났다.[각주:3] 

 

  그르노블을 떠나 이틀쯤 뒤 도착한 안시에서 보니까, 성 요셉의 성유라는 명성이 그들보다 먼저 와 있었다. 사람들이 성유를 보고 냄새 맡으려고 아주 먼 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렝과 토마스는 신자들이 가져온 물건에 성스러운 슈미즈를 가져다대느라고 끝없이 분주했다. 묵주며 십자가, 메달, 심지어 천이며 종잇조각들까지. 

 

  (그 동안 원장수녀는 방문동정회 수녀원에 묵었다. 거기 원장은 마담 드 샹탈.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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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 도트리시 (1601-1666) - 루이 13세의 왕비, 루이 14세의 모후. 1643-1661 프랑스 섭정. 에스파냐어로 Ana de Austria, 프랑스어로 Anne d'Autriche.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3세의 딸로서, ‘오스트리아의 안’이라 불린 것은 그녀의 증조부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를 상속 받은 카를 5세였기 때문. [본문으로]
  2. (라틴어) 오소서, 성령이여. [본문으로]
  3. “맹신은 바로 탐욕”이라고 파스칼은 말한다. “불신 역시 당연히 결함이지만, 맹신은 그 못지않게 파멸적이다.” - 저자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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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 수녀원 원장 잔느와 수녀들

 


 

4

 

하나님 섬김이라는 소명을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17세기 수녀원 생활이 죽도록 따분하게 보였을 터이다. 그날이 다 그날 같은 생활은 그저 자잘한 사건과 소문들, 가끔 들르는 방문객들과 담소, 혹은 여가에 시시한 손작업 등으로 그 단조로움이 조금 덜어졌을 뿐. 

수렝 신부가 여러 서신에서 짚을 엮어 만든 장식물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가 아는 많은 수녀들이 남는 시간 대부분을 이 작업으로 보냈다. 그들의 걸작은 역시 지푸라기로 만든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미니어처 지푸라기 마차. 그건 어떤 귀족 여성 후원자의 경대에 놓일 선물이었다. 

 

콜롱비에 신부가 방문동정회[각주:1] 수녀들에 관해 이렇게 적는다. 

이 수도회의 드높은 도덕적 지향과 개중에 고결한 수녀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담장 안에는 규율을 지키고 미사를 드리고 기도회에 다니고 고해성사를 보고 성찬례에 참여하지만, 그걸 다 그저 종이 울리고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수녀들의 행위에는 정성이 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네 작은 생각과 계획들로 바빠서 하나님 일에는 거의 무심하다. 

모든 따스한 감정은 수녀원 안팎에 있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쏟고 주님께는 그저 맥없고 진실성 없는 눈길만 돌리니, 그런 것은 그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든 영혼이 전능자에 대한 사랑으로 영원히 불타는 둥지가 되어야 할 공동체들이 평범하고 지루함 속에서 의미 없이 생활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녀원 모습

 

저 유명한 포르루아얄 수녀원[각주:2]장 라신[각주:3]에게 아주 감탄할 만한 공동체로 보인 까닭은 ‘그 객실들에는 적막이 지배하고, 수녀들이 대화에 끼어들려 안달하지 않고, 헛된 세상사에 관심 두지 않고, 심지어 이웃을 두고 뒷공론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포르루아얄의 이런 보기 드문 장점을 통해 우리는 그보다 못한 수녀원들의 결함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다. 

 

1626년 루덩으로 이전한 우르술라회[각주:4] 수녀원은 다른 여성 거처들보다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열일곱 수녀는 거의 젊은 귀족 영애들이었다. 그들이 수도생활에 들어선 까닭은 복음서 말씀을 따르고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계층의 구혼자들이 수락할 만한 지참금을 집안에서 마련할 여유가 못 됐기 때문이다. 여기 수녀들은 그 어떤 특별한 스캔들로도 경건함으로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켰지만 종교적 열성과 경건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루덩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 주민들은 절반이 신교도로서 수녀원에 아주 인색했고 수녀들한테도 돈이 없었다. 낡고 음울한 하우스 하나만 임차했는데, 그것도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다들 들어와 살기를 마다하는 건물이었다. 건물에 가구도 없어서 수녀들이 처음엔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들은 도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는 수업료로 생활할 요량이었지만 여학생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드 사질리, 데스쿠블로, 바르베지에, 라모테, 벨시엘, 댐피에르 같은 귀족 출신들이 제 손으로 갖은 잡일을 하게 됐고, 재계일인 금요일뿐 아니라 월, 화, 수, 목요일에도 식탁에 고기가 놓이지 못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던 끝에 그들을 구한 것은 속물근성이었다. 

 

루덩의 부르주아들이 알고 보니… 아주 적은 돈으로도 자기네 딸들이 좋은 프랑스어와 궁정 매너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한때 추방됐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재종누이와 수르디스 추기경의 더 가까운 인척과 후작의 작은딸과 푸아티에 주교의 질녀한테서 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수녀원에 기숙 학생들과 통학 학생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여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번영도 찾아왔다. 이제 지저분한 일은 하녀들이 맡고, 식탁에 쇠고기와 양고기가 다시 나오고, 마루에 깔렸던 짚 매트리스가 나무 침상으로 교체됐다. 

 

루덩 소도시 전경

 

이 새 공동체의 원장이 1627년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새 원장이 임명됐다. 그녀 이름은 ‘천사들의 수녀 잔느. 속세에서 이름은 잔느 벨시엘, 코제의 남작인 루이 벨시엘과, 또 남작 가문 못잖게 전통 있고 저명한 가문 출신인 샤를롯데 데실레의 딸이었다. 1602년생이니까 이제 이십대 중반.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쳐져서 몸매가 좀 기형이었다. 아마도 골결핵의 후유증이리라. 

잔느도 당대 대다수 귀족 영애들처럼 빈한한 교육을 받았다. 그 대신 그녀에겐 타고난 지능에다 한가락 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 성격 때문에 그녀가 다른 이들에겐 고통이 되고 제 자신에겐 최악의 적이 됐다. 

 

이 어린애 같은 사람은 기형적인 신체 때문에 볼품이 없었다. 자신이 추하다는 느낌과 혐오나 동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그녀에게 고질적인 분한을 일으켰다. 그 분한 때문에 누구를 좋아할 수도 없고 누구한테서 사랑받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다 보니 그들도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방어적인 갑각 속에 살며 자신의 적들을 공격할 때만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녀에게는 모든 사람이 선험적으로 적이었으며, 난데없는 빈정거림이나 이상하고 발작적으로 터뜨리는 조소가 공격 수단이었다

 

수렝이 그녀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알고 보니, 원장수녀의 기질은 뭔가 특이하게 명랑해서 늘 날카로운 웃음과 조롱을 날리는데, 그런 고약함은 그녀 안에 들어앉은 악마 발람이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의 성격은 하나님 사업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진지함과 정반대이며, 뭔가 악의적인 기쁨이 그 영혼을 차지하여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필수적인 양심의 가책을 파괴했다

이 불길한 까불거림을 한 시간만 대해도 내가 여러 날 정성껏 쌓은 공력이 무너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나운 적에게서 그녀가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하려고 난 무던히 애썼다.」

‘하나님 사업’과 아주 잘 양립할 수 있는 웃음이 있다.
곧, 겸허하고 자기비판적인 웃음, 온후하고 너그러운 웃음, 이 세상의 비뚤어진 부조리에 대한 좌절과 분개를 대신하는 웃음. 

 

그러나 잔느의 웃음은 그런 것들과 전혀 달랐으니, 그저 조소 아니면 냉소뿐이었다. 그런 웃음을 늘 다른 이들한테만 퍼부었지 자신에게는 절대 돌리지 않았다. 곱사등이의 비웃음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다 깔보면서 자기 아래에 두려고 들었다. 또 그녀의 냉소란 잠깐일지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갈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대 기준에 엄숙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모든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요 조롱이었다

 

루덩 수녀원 원장수녀 잔느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숱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렇게 불쾌한 아이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부모는 딸을 인근 수녀원 원장으로 있는 늙은 숙모에게 보내고 말았다. 두세 해 만에 불명예스럽게 돌아왔다. 다른 수녀들이 그녀와 잘 지내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세월은 흐르는데 부친 저택에서 사는 게 어찌나 지겨운지 종교적 은둔처라도 차라리 집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그러자 푸아티에에 있는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들어가서 초심자 수련 기간을 보내고 수도서원을 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훌륭한 수녀가 못 됐다. 하지만 집안이 부유하고 영향력 있기 때문에 방자한 피후견인을 수녀원장이 꾹꾹 참으며 데리고 있게 됐다. 

그러다가 거의 하룻밤 새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수녀원이 루덩으로 이전한 뒤 잔느가 아주 경건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바뀐 것! 푸아티에에서는 말도 안 듣고 열의도 안 보이고 제 할 일에도 태만하던 젊은 여인이 이제 완벽하게 독실한 사람이 되어서 온유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처신했다. 그 놀라운 변화에 감명 받은 늙은 수녀원장이 퇴임하면서 잔느 자매를 강력한 후임자로 추천했다. 

 

그 개심 사연을 15년 뒤 잔느가 이렇게 기술한다. 

「난 늘 지도부 눈에 띄려 애썼고, 숙사에 수녀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수녀원장은 곧 공동체의 모든 일을 나한테 맡기게 됐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일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좋은 자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수녀원장에게 숱한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난 그녀 기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그녀는 곧 나를 모든 이들에게 모범으로 삼았다. 그녀는 내가 선하며 덕을 행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한껏 부풀려서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좋게 보이고 내 성향에 호감을 갖게끔 위선을 떨었다. 수녀원장은 나한테 많은 특전을 용인했으며, 그것을 난 마음껏 써먹었다. 그녀 자신이 선하고 덕이 있는데다 나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한다고 믿는 만큼 나를 훌륭한 수도사들과 대화하도록 자주 불렀다. 난 그녀 비위를 맞추려고 거기에 따랐다. 게다가 그건 시간 죽이기에도 좋았다.」 

 

훌륭한 수도사들과 나누는 대화는 숙사의 널따란 객실을 두 부분으로 가른 철창을 통해 벌어졌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영적 삶에 관해 새로 번역된 책들을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었다. 

어떤 날은 블로시우스[각주:5]의 해설서, 또 어떤 날은 테레사 성녀의 자서전 혹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혹은 천사들의 본성에 관한 델 리오의 저술 등이었다. 

 

그런 책들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수녀원장이며 수도사들과 토론하면서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바뀌는 것을 알았다. 객실에서 나누는 경건한 대화와 신비주의 서적 공부는 이제 더 이상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각별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됐다. 단, 그 목표가… 

그녀가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지혜로운 카르멜회 수사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그건 「영적 삶으로 돌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제 지능을 뽐내고, 모든 수녀원에 있는 다른 수녀들을 능가하려는 욕심에 지식을 채우기 위함일 뿐이었다.」 

 

루덩 수녀원 수녀들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곱사등이의 갈구가 또 다른 출구를 찾았다. 남들을 교묘하게 다루는 새롭고 재미난 분야 말이다. 빈정대고 냉소 터뜨리기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신비주의 신학과 영성 연구에 들인 결과, 그 분야에서 학식 갖춘 상담자요 전문가가 됐다. 

새로이 습득한 지식에 기고만장한 그녀가 이제 다른 자매들을 더욱 더 경멸과 연민이 출렁이는 느낌으로 내려다보며 흐뭇해했다. 

 

그래, 이 불쌍한 멍청이들이 신앙심은 깊어서 정결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고 있지. 그러나 정결이 도대체 뭐야! 무지와 둔감함일 뿐이잖아! 특별한 은혜에 대해 저들이 뭘 아나? 영적인 접촉을, 황홀함과 계시를, 감각의 유혹과 죽임을, 제까짓 것들이 알기나 하겠어?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 절로 만족스레 나왔다. 

흥, 저들은 아무 것도 몰라! 반면에, 난 사실상 모든 지혜를 터득했고, 하고 있잖아!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유난히 처지고 키가 난쟁이만한 그녀가 그렇게 우쭐댔다

 

(마담 보바리는 생을 비극적으로 마쳤다. 자신을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그렇다...  <루덩의 악마들> 4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3-3편 2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3-2편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6

루덩의 악마들 2편 4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Order of the Visita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 성모 마리아 방문 동정회. 1610년 살레의 성 프랑수아(1567-1622)와 성 쟌느 샹탈(1572-1641)이 설립. [본문으로]
  2. Port Royal -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 1204년 설립돼 17세기에는 얀센파의 거점. 유명한 학자며 계몽된 교육자들이 이 공동체 주변에서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 [본문으로]
  3. Jean Racine (1639-1699) - 고전주의 시대 프랑스 비극 작가, 문필가.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로 꼽힌다. 포르루아얄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피제니’, ‘페드르’. [본문으로]
  4. 우르술라회 - 로마가톨릭 여성 수도회. 성 안젤라 메디치가 1535년 11월 이탈리아 브레시아에 설립. 주로 소녀들 교육, 병자와 빈자 구휼 활동. 그들의 수호성인은 우르술라 성녀. [본문으로]
  5. Blosius - 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인 316년 아르메니아에서 처형된 순교자, 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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