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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ety/우화 동화2020. 2. 2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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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책임 전가, 남에게 뒤집어씌우기 

 

마녀의 화형식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장터 한복판으로 몰려들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끌려 나왔는데, 볼품 사나운 마녀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녀가 처형대 위로 올라선 뒤, 흥분한 군중을 둘러봤다. 

그들 가운데 조언이나 도움을 청하러 그녀를 찾아온 사람이 많았고, 많은 사람을 그녀가 위로의 말이나 효능 좋은 약제로써 도우면서 심신의 질환을 고쳐 주었다. 그러나 잔혹한 세계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으니, 그녀의 선행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도 있어 가혹한 재판관들 손에 넘겼고, 그들은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서 화형을 선고한 것이다. 

 

배신, 책임 전가, 남에게 덮어씌우기,

 

그리고 이제 그녀는 자기가 도와주던 사람들을 처형대에서 내려다보고, 밑에 있는 무리는 광적인 적의가 담긴 눈빛을 뿜고 있는데, 그건 그들의 가여운 상상의 만든 것이었다. 

 

판관이 앞에 나서더니 삑삑대는 목소리로 군중에게 외쳤다. 

 

“이 여자는 마녀요! 이 사실은 여러분도 익히 알 겁니다! 여러분이 다 이 마법을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이 여자가 사람들한테 끼치는 해악 때문에 누구한테든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깁니다. 자, 보세요, 저기 한 부부가 있는데, 그들에겐 자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저들에게 끔찍한 주문을 걸었기 때문이오. 

또 저기 있는 여성은 한때 우리 도시에서 최고 미녀였지만 이제 미모와 젊음을 잃었는데, 이것도 이 여자의 소행 때문이지요. 저 미녀는 아직 젊은 편이고 미모가 한참 더 오래갈 수 있었을 텐데도 보다시피 노파로 변해 갑니다. 

또 저 사람을 보시오. (재판관은 온몸이 부스럼으로 덮인 남자를 가리켰다).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시달리지 않소이까. 이것도 이 여자가 저지른 것이지요. 

 

여러분 가운데 하는 일이 다 잘 되며 평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기괴한 질문을 법의 옹호자가 성난 군중에게 던졌다). 아무도 없어요! 왜냐하면, 누구나 질병이나 비탄, 상실, 실패 등 뭔가를 겪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의 이런 불행은 전부 이 여자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두십시오! 법정은 이 여자의 소행을 죄다 공정하게 조사한 끝에, 이 모든 악행에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마녀의 악행으로 고통을 겪는 건 사람들뿐 아니라 위대한 자연도 마찬가집니다. 가뭄이나 가축 질병, 흉작이 다 이 여자가 일으킨 것이지요. 모든 재앙은 이 여자 때문인데, 그건 이 여자가 마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앙과 역병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법정은 이 여자에게 화형을 언도했습니다!” 

 

판관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 몇 사람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통나무 처형대로 가져와 불을 질렀다. 

 

“사람들이여!” 화형대 위 기둥에 결박된 여인이 자신의 도움으로 치유된 사람들의 배신 같은 침묵에 놀라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나의 치유 능력으로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요?” 

 

사람들이 동요하다가 한순간 잠잠해지자 판관이 그들을 향해 외쳤다. 

“이 여자는 자기가 기적을 행한다고 말하고 있소. 그렇다면, 이 불길을 스스로 끌 수도 있는지 봅시다. 신께서는 이적을 일으키지만, 마녀를 돕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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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기둥에 묶인 여인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며 애절하게 호소했다. 

“신이시여, 이 지상에 제가 설 자리는 없나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남에게 지우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려 듭니다. 그들은 희생양을 한번 점찍었다면 어떡하든 죽이거나 불태우거나 돌멩이를 던질 겁니다. 사람은 두 번 죽지 않습니다. 이제 이 삶과 나를 연결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이번 생에서 떠나게 해주소서.”

 

그 기도가 끝나자 먹장구름이 순식간에 걷히면서 벌건 태양이 나타났고,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바람에 화형대에는 금방 재만 남았다. 

재판관이 뜨거운 숯덩이를 발로 걷어차면서 일을 다 마감하려는 듯이 소리쳤다. 

“기적을 행하는 자에게서 남은 건 이게 전부요!”

 

이 무시무시한 장면을 수천의 눈이 주시했지만, 눈물 젖은 눈은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 불길이 잿더미 속을 휘달리다가 희미하게 스러졌을 때, 늙어 쇠약한 남자가 무리를 헤치고 나왔다. 

그는 불탄 자리로 다가서더니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치료하는 이여, 나를 용서하소서. 내가 제 때에 오지 못했소이다. 도착해 보니 당신은 이미 이 짐승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구려. 내가 서둘러 달려온 까닭은, 당신을 돕거나 아니면 처형대 위로 올라가 함께 죽으려 했기 때문이오. 난 늙고 쇠약해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오. 임종의 침상에 누워 의식이 가물가물하던 순간 난 하늘의 부름을 들었소이다. 눈이 절로 뜨이면서 끔찍한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오. 난 인간적으로 당신을 돕기 위해 죽음을 잠시 미뤘지만, 우리를 갈라놓은 길을 빨리 오지는 못했구려. 당신을 전혀 돕지 못했소, 말로도 행동으로도 당신을 지키지 못했소, 다만, 이 천여 명 군중 속에 당신을 도운 사람이 없다는 점이 애통할 따름이오.”

 

노인이 돌처럼 굳어진 군중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람들이 본, 노인의 마른 눈에는 비애와 고통이 가득 서려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감지할 수 있는 재앙에 대한 두려움이 이제 오싹하게 사람들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노인이 병으로 온몸이 성치 않은 사람의 눈을 보며 말했다. 

“당신의 병은 당신이 살아온 결과이지 무고한 여인의 마법 때문이 아니라오. 방종한 인생이 당신을 고통과 질병으로 몰아넣은 것이오. 당신이 썩어가는 건 자신의 방탕 때문이지 마녀의 주문 때문이 아니외다.” 

그러고는 미모가 시드는 여인에게 몸을 돌려 역시 차분하게 말했다.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당신은 평생을 악의와 질투, 증오를 품고 살아왔지요. 그런 것이 당신의 매력을 앗아간 것이라오.” 

 

그러나 이제 노인이 불행한 부부에게 고개를 돌리자, 군중이 마치 나병 환자를 보듯이 그 부부한테서 펄쩍 물러섰다. 

“신앙심 깊은 부부여, 그대들은 매혹적인 결실 대신 자기 죄의 멍에를 지고 있구려. (노인이 여인에게 말했다). 운명이 그대에게 불임을 안겼는데, 그대는 어머니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됨을 부끄럽게 여겼소이다. (노인이 남편에게 얼굴을 돌렸다). 또 그대는 한순간 즐거움을 위해 술에 취한 날이 많았지요. 그래서 씨를 뿌릴 수 없는 시든 나무가 됐소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자신의 죄를 파트너와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려고, 자신의 불임 책임을 무고한 존재에게 떠넘겼소이다. 그것도 당신들에게 여러 번 도움을 베푼 이에게 말이오.

여러분을 정화해 준, 흠 없는 존재를 비난한 여러분은 모두 이중의 죄를 범한 것이외다. 

여러분은 남의 등 뒤에 숨어 여러분 같은 죄인들 앞에서 죄 없고 순수한 사람이 되고자 했소이다. 여러분은 무고한 영혼을 죽였소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들 하는 것이오? 과연 차분하게 삶을 기뻐하며 개인적인 행복을 이룰 수가 있겠소이까? 살인자들이 어찌 마음 편히 행복할 수가 있겠소이까?” 

 

노인은 뭔가를 더 말하고 싶었으나 말뜻을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휑한 눈빛을 보고는 자신의 열정이 무익함을 깨달았다. 

노인이 온몸에 힘이 빠져 잿더미 위에 주저앉았다. 

처형장에 모인 사람들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자신의 죄업이 전부 거울처럼 자신 안에서 반영되며 그걸 누군가가 읽고 공표할 수 있을까 놀라서 서둘러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는 벽과 문들 뒤에 숨어서 수치를 겪지 않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죄를 범하는 자는 죄인이 될 것이야. 
하지만,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자는 이중의 죄인이 된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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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0편 2

루덩의 악마들 1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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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 기둥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수사

 


 

  그 사이 랑탕과 트랑킬은 자백받지 못한 상황을 만회하려 들었다.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다가와서 묻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마법사가 죄를 인정하지 않더군,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말이오. 그 이유야 빤하지, 그자가 하나님을 부르며 힘을 달라고 호소했는데, 그자의 하나님이란 루시퍼이고, 그 루시퍼가 고통을 못 느끼게 만든 게요. 그러니, 우리야 하루 종일 쐐기를 박고 또 박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런 확신이 맞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엑소시스트인 미카엘 수사가 작은 실험을 했다. 며칠 뒤 실험 결과를 공개 강연에서 전했는데,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기록했다. 

  「이 미카엘 수사는 악마가 그랑디에한테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즉, 지옥의 고통을 겪으며 무릎이 다 으스러진 채 녹색 담요를 덮고 장의자에 널브러져 있어서, 수사가 담요를 거칠게 걷어내고 부서진 정강이와 무릎을 쿡쿡 찔렀는데도 끽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카엘 수사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첫째, 그랑디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둘째, 사탄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다. 셋째, (수사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그가 호의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실제로는 악마를 부른 것이며, 악마를 증오한다고 말할 때 그건 하나님을 증오한다는 의미였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기둥에 묶여서 화염 맛을 톡톡히 체감하게끔 우리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미카엘 수사가 사라지자 다시 전권대행 차례가 됐다. 로바르데몽이 자신의 제물 곁에 두 시간 넘게 머물면서 서명을 받기 위해 갖은 설득 기술을 다 동원했다. 서명만 받으면, 자신이 취한 불법적 절차가 다 무마되며, 추기경에 대한 평판이 깔끔해지고, 또 히스테리 부리는 수녀들이 고해사제들에 의해 체제의 적들을 고소하도록 유도되는 모든 경우에서 앞으로 종교재판 식의 수법을 써먹어도 괜찮을 터였다. 서명을 꼭 받아야 했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 설득을 지켜본 가스탱은 ‘그런 번드르르한 근거며 그런 감언이설이며 위선적인 탄식과 흐느낌 같이’ 가증스러운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 어떤 회유에도 그랑디에는 그가 알고 신이 알듯이 (전권대행도 분명 마찬가지이고) 전부가 날조인 자술서에 서명한다는 건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로바르데몽이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간수장 라그랑제에게 형리들을 부르라고 지시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죄인을 끌고 가는 행렬

 

  그들이 왔다. 그랑디에한테 녹황색 긴 셔츠를 입히고 목에 밧줄을 걸고 마당으로 끌고 나갔다. 나귀 여섯 마리를 맨 수레가 대기 중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죄인을 들어 올려 장의자에 묶었다. 마부가 말들한테 고함을 질렀다. 행렬이 천천히 대로로 들어섰다. 일단의 궁수들이 앞에 서고 로바르데몽과 그의 온순한 재판관 열셋이 수레 뒤에서 걸었다. 

  대로 한가운데서 수레가 멈추고, 둘러선 시민들한테 판결문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낭독됐다. 나귀들이 또 움직였다. 

  그 다음엔 (주임신부가 여러 해 동안 의젓한 풍모로 드나들던) 성 베드로 사원 정문 곁에 와서 행렬이 또 멈췄다. 두 손에 2파운드 양초를 들리고 의자에 묶인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들어 내리고는 판결문에 적힌 대로 무릎 꿇고 죄를 사해 달라고 빌게 했다. 그러나 무릎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에, 땅바닥에 내려놓자 그가 얼굴을 땅에 박으며 엎어졌다. 형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 순간 교회에서 코르들리에회 감독관인 그리에 수사가 달려 나와 경비하는 궁수들을 밀치고 몸을 굽혀 죄수를 끌어안았다. 크게 감동한 그랑디에가 신부에게 자신과 교단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사실, 이 코르들리에 교단만이 루덩 전역에서 주임신부의 적들에게 협조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리에 수사가 유죄 판결 받은 이를 위해 기도하겠노라 약속하면서 하나님과 구세주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모친의 전갈을 전했다. 모친께서는 성모마리아 발밑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그대에게 축복을 보냈다오. 

 

  두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몰려든 군중이 짠한 마음이 되어 수군거렸다. 수군거림을 듣고 로바르데몽이 대노했다. 꾸민 대로 척척 되는 일이 어째 하나도 없는 거지?! 정상대로라면 어수선한 군중은 악마와 내통한 자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린치를 가해야 마땅한 것을. 한데 그러기는커녕 그의 가혹한 운명을 안타까이 여기고 있다니! 

 

  그가 황급히 행렬 앞으로 뛰어 나와 경비병들에게 코르들리에회 수사를 내쫓으라고 새된 목소리로 명령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열성을 발휘하여 그랑디에의 배코 친 머리를 곤봉으로 갈겼다. 

 

  질서가 복원되자 주임신부가 판결이 명한 대로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국왕과 사법부에 용서를 구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비록 도덕적으로 크나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 죄는 절대 저지르지 않았소이다.     

  형리들이 그를 다시 수레에 태우는 동안, 탁발수사 하나가 관광객들과 주민들에게 지루하고 장황한 훈계를 해댔다. 

  참회하지 않은 마법사를 위해 기도할 생각일랑 절대 하지들 마시오! 그건 곧 여러분이 아주 무서운 죄를 짓는다는 뜻이니까!! 

 

고문을 당해 하반신이 일그러진 그랑디에

 

  행렬이 움직였다. 우르술라회 수녀원 정문 앞에서 하나님과 국왕과 정의에 용서를 비는 의식이 재현됐다. 그러나 법정 서기가 원장수녀와 수녀들한테도 용서를 간청하라고 명령하자, 죄수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친 적이 없지만, 저 여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는 있소이다. 

 

  그러다가 필리프 트렌캉의 남편이자 가장 사나운 적수인 무소를 보자 지난 일은 다 잊어 달라 청하고는 본연의 정중함을 갖춰 덧붙였다. “난 당신의 온유한 종으로 죽겠소이다.” 무소가 얼굴을 팩 돌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랑디에의 적수들이 모두 그렇게 비기독교적인 가혹함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랑디에가 부적절한 행위로 기소된 1차 재판 때 그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 성직자들 중 한 사람인 베르니에가 군중을 헤치고 나와서 용서를 청하며 그를 위해 미사를 올리겠다고 했다. 주임신부가 그 손을 잡아 감사의 입맞춤을 했다. 

 

  성 십자가 광장에는 육천이 넘는 인파가 그 절반을 수용하기에도 벅찬 공간으로 들어서려고 밀고 밀렸다. 창문들이 전부 임대됐고, 심지어 지붕과 교회 홈통 주둥이 위에도 구경꾼들이 자리 잡았다. 판사들과 로바르데몽의 특별한 친구들을 위해 특별관람석이 설치됐지만, 어중이떠중이가 다 차지했다가 경비병들이 들이대는 창끝에 밀려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일진일퇴의 격전을 치르고 나서야 VIP들이 겨우 저희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인사들조차 지정 좌석까지 가는 데 무진 애를 먹었다. 죄수를 실은 수레가 장작더미 한가운데 선 기둥까지 마지막 백 야드를 가는 데도 자그마치 삼십 분이나 걸렸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호송병들이 미늘창을 휘두르며 길을 내야 했다. 

 

  성 십자가 교회 북쪽 담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높이 15피트 되는 굵은 기둥이 서 있었다. 기둥 밑에는 통나무와 나뭇가지, 짚더미가 잔뜩 쌓이고, 희생자가 으스러진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만큼 장작더미 2피트쯤 위로 작은 철제 의자가 기둥에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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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중대한 성격과 거대한 악평에도 불구하고 처형에 든 비용은 지극히 수수했다. 화형에 드는 장작과 죄인을 매단 기둥 비용으로 들랴르라는 사람한테 19 리브로 16 수를 지불했다. 1 파운드에 3 수 4 데니르 꼴로 무게 12 파운드인 철제 의자와 의자를 기둥에 연결하는 데 든 쇠못 여섯 개 값으로 대장장이 자크가 42 수를 받았다. 시농 시의 본당 신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궁수들을 파견하느라 빌린 말들 하루 임대, 또 나귀 여섯 필 하루 임대와 짐마차와 마부 둘에 비용 108 수가 들었다. 죄수의 셔츠 두 벌 (고문당할 때 입은 것과 화형 당할 때 입은 녹황색 셔츠) 값으로 4 리브르가 들었다. 공식 사죄 의식에 쓴 2 파운드짜리 양초는 값이 40 수이고, 형리들에게 제공한 포도주 값이 13 수였다. 여기에 성 십자가 교회 문지기와 조수들에게 준 수고비까지 계산하면, 도합 29 리브로 2 수 6 데니르가 들었다.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내려 철제 의자에 앉히고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 교회를 둥지고 앉은 그에게 특별관람석과, 또 한때 사제관만큼이나 편하게 지내던 저택 전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저택 담장 안에서, 그가 아담과 만누리에게 상처 되는 농담을 여러 번 던지고, 캐서린 암몽의 편지들을 낭독하여 모임을 즐겁게 하고, 젊은 처녀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며 유혹하고, 가장 좋은 친구를 철천지원수로 만들었다

  그 루이 트렌캉은 이제 자기 거실 창가에 앉아 있고, 그 곁에 참사회 위원 미뇽과 티보가 있었다. 한때 우르뱅 그랑디에였다가 이제 배코 친 불구자로 변한 그를 바라보며 세 사람이 의기양양하여 낄낄거렸다. 

 

  주임신부가 고개를 들다가 그들과 눈길이 마주쳤다. 티보가 오랜 지기한테 하듯 손을 흔들고, 트렌캉이 물 탄 백포도주를 마시다가 제 사생아 손녀의 아비를 위해 축배를 들었다. 

  그랑디에가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일면 수치심 때문에, 왜냐면 라틴어 수업과 절박하게 눈물 흘리는 처녀를 나 몰라라 한 것이 떠올랐으니까. 또 저들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참담한 심정이 되어 하나님이 지금 여기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혹여 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간수장 라그랑제.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짓을 용서해 달라 청하고 두 가지를 약속했다. 군중에게 고별사를 행할 수 있도록 하겠고, 장작에 불을 붙이기 전에 목 졸라 질식시키겠습니다. 그랑디에가 감사를 표했다. 간수장이 몸을 돌려 지시하자, 형리가 즉시 올가미를 준비했다. 

 

  그러는 중에 탁발수사들은 엑소시즘을 수행하느라 분주했다. 그들 입에서 라틴어가 흘러 나왔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의 적들이 놀라 달아나리라. 유다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다윗의 뿌리를 차지했구나. 이제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이름으로, 그의 아들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한 성령의 이름으로 너, 나무의 축생을 물리치나니…”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 연설하는 두 수도사

 

  그들이 장작더미와 짚단과 또 이글거리는 석탄이 담긴 화로에 성수를 뿌렸다. 그들은 땅과 허공에, 희생자와 형리들과 구경꾼들한테도 성수를 뿌렸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저 마법사가 극도의 고통을 겪지 않게끔 악마가 방해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야. 

 

  주임신부가 군중을 향해 몇 번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탁발수사들이 그 얼굴에 성수를 끼얹거나 철제 십자가로 입술을 때렸다. 그가 가격을 피하자,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배교자가 구세주를 외면하는구나! 랑탕 수사는 시종일관 범죄를 시인하라고 요구하며 “Dicas!” 하고 으르렁댔다. 

 

  이 레치타티보는 구경꾼들 뇌리에 박혀서, 짧고 참담한 여생 중에 랑탕은 이미 루덩에서 ‘디카스 수도사’로 유명해졌다

  “Dicas! Dicas!” 

  그랑디에가 시인할 것이 하나 없다고 천 번째로 대꾸하고 덧붙였다. 

  “자, 이제 나한테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죽이시오.” 

  랑탕이 처음엔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비기독교적인 증오를 보임에 군중이 항의하자, 그가 장작더미 위로 기어올라 주임신부 볼에 입맞춤했다. 

  “유다!” 누군가가 외치자 많은 사람들이 가세했다. 

  “유다, 유다!”  

 

  그 함성을 듣자 랑탕이 걷잡을 수 없이 화를 내며 장작더미에서 뛰어내리더니 짚단을 들어 화로에서 불붙이고는 불덩이를 희생자 얼굴 앞에 대고 흔들었다. 네가 누구인지 고백해라! 사탄의 하수인임을 자백하란 말이다! 참회하게 만들겠어, 네 주인을 부정하게끔 만들겠다! 

 

  “수도사여,” 그랑디에가 차분하고 온유한 품위를 보이며 입을 뗐는데, 그건 자신을 박해하는 자의 거의 광적인 증오와 묘하게 대비됐다. “난 이제 곧 하느님을 만날 터이고, 그분께서 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실 것이오.” 

  “인정해라!” 수도사가 절규하다시피 했다. “인정해! 넌 한순간 후면 죽을 것이야!” 

  “한순간 후면...” 주임신부가 느릿느릿 되풀이했다. “한순간 후면, 그때 난 공정하고 무서운 심판장으로 갈 터이고, 존경하는 수도사여, 당신도 곧 그 심판에 부름을 받을 게요.”

 

  랑탕이 그 뒷말을 다 듣기도 전에 들고 있던 횃불을 장작더미에 놓인 짚단 위로 던졌다. 밝은 오후 햇빛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불꽃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지면서 마른 나뭇가지 다발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바지직 소리를 내며 장작더미가 금방 타올랐다. 상대에게 뒤질세라 미카엘 수사가 장작더미 맞은편에서 짚단에 불을 놓았다. 퍼런 연무가 바람 한 점 없는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기둥 주변에 쌓인 나뭇단 하나에 불이 붙으면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장작더미에 불을 던지는 수도사

 

  죄수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흥겨운 불꽃 군무를 보게 됐다.   “나한테 약속한 게 이런 것이오?” 그가 절박하게 항의하는 투로 간수장을 불렀다. 그리고 갑자기 신성한 존재가 사라진 듯했다.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고, 그저 공포뿐이었다

 

  간수장이 화가 잔뜩 나 탁발수사들에게 고함지르며 가까이 있는 불길부터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꺼야 할 불길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트랑킬이 주임신부 뒤편에 쌓인 짚단에 불을 붙이고, 랑탕이 화로에서 다른 횃불을 또 붙였다. 

 

  “그의 목을 졸라라!” 간수장이 지시했다. 그러자 군중이 그 외침을 따라했다. “목을 졸라라, 목을 졸라!” 

  형리가 올가미를 가지러 달려갔지만,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몰래 로프에 매듭을 만들어 놓은 바람에 당장 쓸 수가 없었다. 매듭을 다 끌렀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단말마의 비명에서 구해 주려던 죄인 주변으로 이미 화염이 장벽을 치고 연기 커튼이 자욱했다. 그 동안에 수도사들은 성수 단지를 내두르며 장작불에 끝까지 남은 악마들을 내쫓았다. 

  “물러가라, 마귀들아!” 

  벌겋게 달구어진 통나무들 사이에서 성수가 쉬쉬쉬 하는 소리를 내며 금세 수증기로 변했다. 화염 장벽 저편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래, 엑소시즘이 먹혀들었다는 뜻이지! 탁발수사들이 감사 기도를 읊느라 행동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갱신된 신념과 배가된 힘으로 다시 작업에 나섰다.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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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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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전쟁이 터무니없고 끔찍한 까닭은...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루덩 성의 아성 문제에서 국왕이 결국 추기경한테 양보했고, 로바르데몽이 ‘백조와 십자가’ 객사에 다시 묵게 됐다. 메스멩을 비롯해 추기경 지지자들이 기뻐 날뛰었다. 

  다르마냑이 권력 다툼에서 패한 거야, 아성은 파괴되고 말겠군. 이제 저 지긋지긋한 주임신부만 제거하면 되겠어! 

 

  국왕 전권대행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메스멩이 마귀 들린 수녀들 얘기를 짐짓 입에 올렸다. 로바르데몽이 주의 깊게 들었다. 왕년에 마녀 십여 명을 재판하고 불살라 죽인 경력이 있는 만큼, 스스로 초자연적인 문제에서 전문가라고 여길 권리가 충분했다

  다음날 그가 파켕 거리에 있는 수녀원에 잠깐 들렀다. 메스멩한테 들은 얘기를 참사회 위원 미뇽이 확인해 주었다. 수녀원장도 그랬고, 추기경의 인척인 클레어 수녀도 그랬고, 로바르데몽의 처제 둘도 그랬다. 

 

  모든 수녀들 육신에 악령이 들끓었었지요. 악령은 마법 때문에 들어앉았는데, 마법사가 바로 그랑디에랍니다. 이런 사실은 악마들이 수녀들 입을 통해 스스로 인정한 거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런데도 대주교 예하께서 마귀 들림 따위는 전혀 없다고 결정 내리신 바람에 수녀원이 수치와 몰락에 빠지게 됐어요. 말도 안 되게 불공정한 일이지요! 

  그러면서 수녀들은 로바르데몽이 추기경 예하와 국왕 폐하께 간언하여 일을 바로잡아 달라고 애원했다. 

 

  남작이 공감하는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약속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마녀재판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추기경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실 터인가? 오오, 그걸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돼.  

 때로 리슐리외는 마녀재판을 아주 진지하게 대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몽테뉴나 샤롱[각주:1]의 제자들한테서나 나올 법하다 싶은 코웃음을 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흠, 위대한 인물은 지존과 변덕스러운 아이와 야수의 혼합물처럼 모셔야 해. 그러면서 지존에게는 순종하고, 어린애는 어르면서 등골 빼먹고, 야수는 잘 달래다가 흥분한다 싶으면 피하는 거지. 초인간적인 군림과 표준 이하의 포악함과 어린애 변덕이라는 이 비상식적인 삼위일체를 부주의한 발언으로 심기 건드려 심각한 불상사에 봉착한 궁정 신하가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수녀들이야 저들 편한 대로 울부짖고 애걸할 수 있지만,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알아내기 전에는 그들을 돕고 나설 의향이 로바르데몽에겐 전혀 없었다. 

 

  며칠 지나 루덩 시가 존귀한 인사를 맞이하는 영광을 누렸다. 앙리 콩데 공.[각주:2] 왕실의 이 존재는 악명 높은 남색자인데, 게다가 모범적인 (위선적인) 신앙심에다 가장 야비한 탐욕까지 겸비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한때 추기경의 반대자였지만, 리슐리외가 부동의 입지를 굳힌 이제는 예하의 가장 알랑거리는 신봉자들 중 하나가 됐다. 

  대공은 마귀 들린 수녀들 얘기를 듣자마자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미뇽과 수녀들이 대공을 즐겁게 해 드린다는 생각에 몹시 행복했다. 로바르데몽과 숱한 수행원을 거느리고 대공이 수녀원에 도착하자 미뇽이 영접하여 채플로 모시고, 거기서 성대한 미사가 열렸다. 

 

  처음에 수녀들은 아주 경건하고 단정하게 처신했다. 그러나 성찬례가 시작되자 원장수녀와 클레어 수녀, 아그네스 수녀가 발작을 일으켜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며 음란한 말을 신음 섞어 내뱉고 신을 모독하는 소리를 내며 으르렁댔다. 그러자 다른 수녀들도 똑같이 따라하니, 두어 시간 동안 예배당 전체가 곰 사육장과 유곽이 뒤섞인 곳처럼 보였다. 

  그 광경이 대공 전하께는 엄청난 인상을 일으켰다. 콩데 공은 수녀들한테 마귀가 들었음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이 사건을 당장 예하께 보고하라고 로바르데몽을 다그쳤다

 

고관이 참석한 엑소시즘

 

  한 목격자가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나 전권대행은 이 기묘한 장면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객사로 돌아와서는 수녀들의 비참한 상태에 측은함을 한가득 느꼈다. 그런 감정을 감추기 위해 그랑디에의 친구들을 만찬에 초대하면서 그랑디에도 불렀다.」 

  그것은 유쾌하고 달콤한 파티였을 것이다. 

 

  로바르데몽이 하도 조심스럽게 굴며 몸을 사리자 주임신부의 적대자들이 박차를 가하기 위해 새롭고 더 심상치 않은 비난거리를 들고 나섰다. 

  그랑디에는 신앙을 저버리고 하느님께 반역하고 수녀원 모든 수녀들에게 마법을 건 것만이 아닙니다. 추기경 예하를 두고 추잡한 비방의 글을 쓴 작자이기도 해요. <루덩 구두장이 여자의 서신>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이 있는데, 여섯 해 전인 1627년에 인쇄된 게 바로 그겁니다. 

 

  그랑디에가 이 글의 작자일 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 서신에 나오는 여인과 실제로 친하게 지내고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한때 그녀의 정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그가 그걸 썼을지 모른다는 짐작이 전혀 허튼소리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캐서린 암몽은 똑똑하고 예쁜 프롤레타리아인데 1616년 왕비 마리 메디치[각주:3]가 루덩에 머물 때 눈길을 끌어 시중들다가 곧 공식적으로는 왕실 제화공, 비공식적으로는 왕실의 절친한 친구요 막일꾼이 되었다. 블루아에 유배중인 왕비를 모시면서 캐서린이 간간이 루덩 고향집을 찾아오던 때 그랑디에가 그녀를 알았다. 아주 내밀한 사이였다고 말들 했다. 

  나중에 다시 파리에 돌아가서, 글을 쓸 줄 아는 캐서린이 그랑디에한테 편지를 계속 보내 궁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세하게 전했다. 편지마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그랑디에가 짜릿한 대목을 친구들한테 읽어주곤 했다. 그 친구들 중에 당시 검찰관이요 미녀 필리프의 부친인 트렌캉도 있었다. 바로 그 트렌캉이 친구에서 철천지원수로 바뀌어 이제 캐서린 암몽의 편지 수신인을 <구두장이>의 작자라고 고발한 것이다. 이번에는 로바르데몽이 굳이 속내를 감추려 들지 않았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마녀며 악마들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실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행정 처리 방식이며 그의 가족과 그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리슐리외의 정치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삭탈관직과 유배를 자초함이었다. 그를 모욕한다는 것은 교수대에서, 혹은 (1626년 칙령에 따라 최고 권력의 명예를 괴문서로 훼손하는 짓은 대역죄로 선포된 만큼) 심지어 장작더미 위 기둥에 묶이거나 마차바퀴 위에서 죽음을 무릅쓴다는 뜻이었다. <구두장이>를 인쇄했다는 이유 하나로 불쌍한 인쇄공은 이미 갤리선으로 쫓겨났다. 그런 마당에 주역인 작자가 붙잡힌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이번에는 자신의 열정을 예하께서 확실히 알아주리라 확신한 로바르데몽이 트렌캉이 늘어놓는 말을 열심히 귀담아들었다. 메스멩도 빈둥거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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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그랑디에는 수도사와 탁발수사들의 공인된 적이고 루덩의 수도사와 탁발수사들은 극소수를 제하고는 그랑디에의 공공연한 적이었다. 카르멜회 수사들이 그랑디에를 증오할 가장 중요한 이유를 제법 지니고 있었지만 이 수도회는 공세를 퍼부을 만한 위치에 있지 못했다. 

  한데 카푸친회는 주임신부의 수완에 덜 시달렸지만 그에게 타격을 가할 힘은 카르멜회보다 훨씬 더 컸다. 왜냐하면 카푸친회 수사들은 조셉 수사의 동료로서 그와 늘 연락을 주고받는데, 바로 이 막후 인물이 추기경의 막역지우요 주된 조언자요 오른팔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랑디에를 겨냥한 새로운 비난과 고발을 메스멩이 믿고 털어놓은 상대는 흰옷의 카르멜회 수사들이 아니라 회색 수도복을 입은 카푸친회 탁발수사들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 즉시 조셉 수사한테 보내는 서신이 작성됐고, 때마침 파리로 돌아가려는 로바르데몽에게 사적으로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작이 위임을 수락했다. 

  그날 저녁 로바르데몽이 그랑디에와 그의 친구들을 작별 만찬에 초대했다. 남작이 주임신부의 건강 위해 축배를 들고, 그와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고, 그가 사악한 적들의 음모에 맞서 벌이는 투쟁을 힘닿는 한 돕겠다고 약속했다. 얼마나 따스한 마음씨를 얼마나 적시에 너그럽게 보여주었던가! 그랑디에가 눈물 핑 돌 정도로 감동했다

 

  다음날 로바르데몽이 시농으로 떠났고, 거기서 루덩의 주임신부가 유죄라고 광적으로 믿는 사람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바레가 국왕 전권대행을 극진히 환대하고, 그의 요청에 따라 엑소시즘 기록을 전부 건넸다. 엑소시즘 중에 수녀들이 그랑디에를 마법사라 비난한 대목들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날 조반을 먹고 난 뒤 로바르데몽이 지역의 귀신들린 여인들 몇몇이 하는 괴상한 짓거리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러고는 엑소시스트와 작별하고 파리로 출발했다. 

 

잿빛 추기경 조셉 수사
Joseph Leclerc Tremblay (1577-1638)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조셉 수사와 면담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 진홍빛 추기경과 잿빛 추기경[각주:4] 두 분 예하를 모시고 더 결정적인 협의를 했다. 로바르데몽이 바레가 작성한 엑소시즘 기록을 낭독하고, 조셉 수사는 카푸친회 형제단이 보내온 서신을 읽었다. 서신에서 수사들은 주임신부를 오랫동안 수색해온 <구두장이>의 작자라고 고발했다

 

  리슐리외는 이 사건이 다음 국무회의에서 숙의하기에 충분히 중대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지정된 일자에 (1633년 11월 30일) 국왕과 추기경, 조셉 수사, 국무비서, 대법관, 로바르데몽이 모였다. 루덩 수녀들의 마귀 들림이 첫 번째 의제

  로바르데몽이 간결하지만 많이 윤색하여 제 얘기를 했다. 악마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으며 두려워하는 루이 13세가 뭔가 대책을 취해야 한다고 대뜸 결정했다. 그 자리에서 즉각 문서가 작성돼 국왕이 서명하고 국무비서가 부서한 뒤 노란 밀랍으로 봉인하여 국새를 찍었다. 이 문서에 의거하여 로바르데몽이 루덩으로 가서 마귀 들림 사실을 조사하고 그랑디에를 겨냥해 악마들이 내뱉은 비난이 온당한지 검증하여 만약 비난이 근거가 있다면 마법사를 재판에 회부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천육백 이십년 대와 삼십년 대에 마녀 재판은 여전히 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어간에 악마와 내통했다 하여 기소된 수십 명 가운데서 리슐리외가 시종일관 민감하게 관심 보인 사람은 그랑디에가 유일했다

  카푸친회 엑소시스트인 트랑킬 신부는 1634년 로바르데몽과 악마들을 대신하여 쓴 책자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추기경 예하께서 보여주신 열성 덕분이며, 그래서 우리는 감사한다. 이런 사실은 예하께서 로바르데몽 남작에게 보낸 서신들이 아주 잘 확인해 준다.」 

  국왕 전권대행으로 말하자면, 「그는 국왕 폐하와 추기경 예하께 상세하게 보고하기 전까지는 마귀 들림을 입증하는 조치를 아무 것도 취하지 않았다.」 트랑킬의 증언은 다른 동시대인들에 의해서도 확인되는데, 그들은 리슐리외와 그가 루덩에 파견한 에이전트가 거의 매일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기록한다. 

  (그런 거대한 인물이 소소하기 짝이 없는 사건에 그렇게 비상한 관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6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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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Pierre Charron (1541-1603) - 프랑스의 가톨릭 성직자, 신학자, 철학자, 설교가. 윤리학을 종교에서 분리해 독립된 철학 분야로 다루면서 17세기 새로운 사상 정립에 큰 역할. 몽테뉴의 제자이자 친구. <세 가지 진리>, 특히 <지혜론 de la sagesse>(1601)에서는 몽테뉴의 회의론에 가까운 사상을 발전시켰고, 몽테뉴의 관점에 가까운 새로운 세속 윤리 체계를 설파하여 앙리 4세의 지지를 받았다. [본문으로]
  2. Henri II de Bourbon, 3e prince de Condé (1588-1646) 프랑스의 왕족, 장군. 국왕 앙리 4세는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촌아우 콩데 공을 루이 13세가 태어나기 전까지 잠정적인 왕위 계승자로 인정했다. 루이 13세 치하의 프랑스 정치 상황을 그가 묘사한 것으로 알려진 역사적 일화가 유명하다. [콩데 공이 한때 자기 얼굴이 새겨졌던 메달에 관해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 그 메달 앞면에는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이라는 문구와 함께 루이 13세 프로필이 새겨진 게요. 그리고 뒷면에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프로필이 새겨져 있는데, 거기엔 이런 글귀가 둘러싸여 있지. “나에게 묻지 않고는 행동하지 말라”] [본문으로]
  3. Marie de Medicis (1575-1642) -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와 사이에 루이 13세를 보았음. 1610년 루이가 아홉 살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섭정에 나서면서 측근인 콘치니를 중용하여 프랑스가 이탈리아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기에 이르렀음. 권력욕 때문에 아들에 의해 블루아에 유폐됐다가 고문인 리슐리외의 중재로 1620년 화해, 리슐리외는 1620년 추기경이 되고 루이 13세의 신임을 얻어 이태 뒤 재상이 된다. 마리 메디치는 자기를 배신한 리슐리외를 제거하려다가 1630년 ‘속은 자들의 날’ 이후 리슐리외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브뤼셀로 달아났다. 나중에 쾰른에서 고독하고 궁핍하게 죽었다. [본문으로]
  4. Joseph Leclerc Tremblay (1577-1638) - 프랑스의 카푸친회 탁발수사, 늘 길고 낙낙한 잿빛 수도복을 입고 다니며 추기경은 아니지만 막후에서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헉슬리는 <잿빛 추기경>이란 제목으로 그의 전기를 썼고, 화가 장 레옹 제롬(1824-1904)은 그의 전신화를 그렸다. 라 로셸 사태를 배경으로 하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에도 조셉 신부로 등장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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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루덩의 악마들

 


6

 

  수석 치안판사 세리제는 예비 조사를 통해 확신하게 됐다. 

  그래, 진짜 마귀 들림 같은 건 없어! 그저 수녀들이 질환에 걸렸을 뿐이며, 여기엔 협잡 기미도 좀 보이는군. 게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 쪽의 상당한 악의, 또 이 일에 관련된 교회 관계자들의 맹신과 광기, 개인적 이해관계 따위로 상황이 조장된 게야. 흠, 저 엑소시즘이라는 코미디를 그만두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되겠어. 

  그러나 수녀들의 혼과 넋을 쏙 빼놓는 그 계획을 중단시키려 하자 미뇽과 바레가 주교의 명령서를 의기양양하게 꺼내들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수녀들에게 퇴마 작업을 계속 시행하라. 그걸 보자 세리제가 교회와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엑소시즘을 계속하도록 허락은 했지만 그 퍼포먼스 때 자신이 꼭 참관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몇 번 하던 중 한번은 굴뚝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벽난로에 검은 고양이가 불쑥 나타났다. 저건 사탄의 자식이 틀림없어! 날카로운 단정이 튀어나온 동시에 사탄의 자식이 구석으로 내몰렸다가 결국 붙잡혀서 성수를 홈빡 뒤집어썼다. 수도사들이 분주하게 성호를 그어대며 그 짐승한테 다시 지옥으로 사라지라고 라틴어로 명령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 끝에 알고 보니 이 위장한 악마는 수녀들이 귀여워하는 녀석으로, 이름이 톰이었다. 녀석은 지붕 위에서 뛰어다니다가 더 빠른 길로 집에 들어오려 했던 것일 뿐. 수녀원 아치 밑에서 라블레를 떠올리게 하는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다.[각주:1]     

 

  다음 날 미뇽과 바레가 뻔뻔스럽게도 세리제의 코앞에서 수녀원 숙사 현관을 걸어 잠갔다. 그가 동료 치안판사들과 함께 쌀쌀한 가을 날씨에 밖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종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동안 안에서는 그의 지시를 어기고 두 수도사가 공식 참관인 없이 저희 제물들에게 퇴마 작업을 시행했다. 

 

루덩 수녀들을 대상으로 미뇽이 퇴마 작업

 

  화가 잔뜩 난 치안판사가 집무실로 돌아와 무례한 엑소시스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했다. 그들 행위는 협잡과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게다가 이런 구절도 들었다. 그랑디에가 악마들과 결탁했다면서 원장수녀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마당에 비밀로 해야 할 것이 무에 있겠소. 오히려 이제 모든 것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공정하게 행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런 단호함에 깜짝 놀란 엑소시스트들이 사죄를 구하며 황급히 알렸다. 수녀들이 진정됐으니 당분간은 엑소시즘이 불필요하게 됐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랑디에가 주교한테 호소하기 위해 푸아티에로 말을 달렸다. 그러나 그가 들렀을 때 라로슈포제는 접견을 거부하고 수하를 통해 이런 취지의 메시지만 덜렁 보냈다. 

  그랑디에 신부는 왕실 판사들한테 소를 제기해야 하고, 이 사건에서 정의가 승리한다면 본 주교는 대단히 행복할 것이다. 

 

  주임신부가 루덩으로 돌아와서 즉각 수석 치안판사에게 미뇽과 그 패거리의 못된 짓거리를 금해 달라고 청했다. 세리제가 신속하게 금지 명령을 내렸다. 차후로는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 성 베드로 교회 주임신부에 대한 중상과 비방을 엄금한다. 이와 더불어 미뇽에게 엑소시즘을 더 이상 시행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참사회 위원이 날카롭게 응수했다. 

  나는 교회 지도부에만 매여 있을 뿐이며, 악마가 개입돼 있기에 완전히 종교적인 이 사건에서 사법 당국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소. 

 

  그 사이에 바레가 시농에 있는 제 교구로 돌아갔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을 더 이상 벌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참사회 위원 미뇽은 조프리디 신부 재판을 다룬, 미하엘리스 수사의 베스트셀러를 매일 몇 시간씩 신도들에게 읽어 주면서 그랑디에는 화형 당한 프로방스 동료 못지않게 위험한 마법사이며 당신들 역시 그의 마법에 걸렸다고 떠들어댔다

 

  그 무렵 수녀들이 어찌나 기이하고 난잡하게 행동했는지 수녀원 기숙학교에 딸을 맡긴 부모들이 경악했다. 기숙학교에는 금방 학생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고, 아직 과감하게 수녀원을 드나드는 통학생 몇 명이 가장 불안케 하는 소식을 들고 나와 사람들 상상을 계속 자극했다. 

 

  수학 시간에 클레어 수녀가 대뜸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지 뭐예요, 마치 누군가가 간지럼 태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식당에서 마르타 수녀가 루이즈 수녀와 드잡이를 했는데, 둘 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댔어요! 

 

마귀 들렸다는 수녀를 상대로 엑소시즘을 시행하는 수도사

 

  11월 하순 바레가 시농에서 돌아온 뒤 그의 영향을 받아 수녀들 증세가 대번에 악화됐다. 수녀원이 이제 정신병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외과의 만누리와 약제사 아담이 불안한 마음에 도시 일류 의사들에게 와서 보고 자문 좀 해주십사 청했다. 그들이 수녀원에 와서 수녀들을 일일이 검사한 뒤 수석 치안판사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결론은 이랬다. 

  「수녀들이 물론 제 정신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이 악마며 악령들의 작용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이른바 마귀 들림은 모든 면으로 판단컨대 실제가 아니라 허황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 보고서로 상황이 종료된 듯했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들과 그랑디에의 적수들한테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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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랑디에가 세리제에게 다시 탄원하자 세리제가 엑소시즘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가학을 끝장내려고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똑같은 스토리가 반복됐다. 즉, 미뇽과 바레가 사법 당국 지침을 또 무시했고, 수석 치안판사는 수도사들을 상대로 물리력을 동원할 때 생길 파문을 우려하여 또 움츠러든 것. 

  그 대신 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 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대미문의 불량한 짓’을 예하께서 막아 주십사고 촉구했다. 이런 내용도 적었다. 즉, 그랑디에는 평생 그 수녀들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만약 수녀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악마들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안다면 자신에게 가하는 중상비방과 모욕에 복수하기 위해 왜 악마들을 이용하지 못하겠습니까?」 

  이 서한에 라로슈포제가 응답하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주교의 판결에 감히 반박했을 때 그는 치명적인 모욕감을 느꼈었다. 따라서 시건방진 주임신부를 괴롭힐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전적으로 옳고 적절하고 합당했다. 

 

  그러자 세리제가 서신을 한 통 더 썼다. 이번에는 주교 관구 법률 감독관에게 보냈다. 주교한테 보낸 것보다 더 상세하게 적은 이 서신에서 그는 루덩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광대극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미스터 미뇽은 미스터 바레를 이미 성자로 칭하며, 두 사람은 자기네 상급자들의 평가도 기다리지 않은 채 서로를 성자 반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바레는 악마가 수녀들 목소리로 말하면서 문법이 틀리면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구경꾼들 중에서 의심하는 사람들을 불러내 제가 하는 대로 마귀 들린 수녀 입에 손가락을 넣어 보라 하기도 하지요.[각주:2]

  프란체스코회 루소 수도사는 그렇게 하다가 어찌나 세게 물렸는지 다른 손으로 수녀의 코를 잡아당겨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손가락을 빼내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서 “오, 이 악마, 악마야!”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는 생선 토막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내쫓는 식모들 고함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이 사건 이후 성수에 담근 손가락을 마귀가 왜, 어떻게 깨물 수 있었는지 진지하게 토론한 끝에 성직자들은 주교께서 교회에 성유를 너무 적게 내리는 바람에 주입된 영력이 손가락까지 미치지 못한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몇몇 풋내기 성직자들이 엑소시즘을 해 보겠다고 나섰다. 개중에 필리프 트렌캉의 오빠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젊은이가 라틴어를 워낙 시원치 않게 하는 바람에 학식 있는 이들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는 데뷔하자마자 멋쩍게 물러나야 했다. 세리제의 서한을 보면 그뿐이 아니다. 트렌캉이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녀는 발작의 최고조에서도 그의 손가락을 제 입에 넣지 못하게 하면서 다른 성직자를 붙여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손가락이 너무 지저분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카푸친회의 속관구장 신부는 루덩 주민들의 각박함에 놀라고 믿으려는 마음 없음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면서 투르 시에서는 이런 기적을 주민들이 믿게 만들기가 버터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고 우리한테 장담하지요. 그를 비롯해 몇몇 성직자들이 줄곧 단언하기를, 이런 기적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죄다 무신론자이며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서신에도 역시 답장을 못 받았다. 악몽 같은 광대극이 12월 중순까지 연일 계속됐는데, 그맘때 다행히도 보르도 대주교인 수르디스가 생주앙 드 마른 대수도원에 머물려고 왔다. 그랑디에가 비공식적으로, 세리제가 공식적으로, 대주교에게 작금의 상황을 알리고 개입을 요청했다. 수르디스가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개인 주치의를 득달같이 파견했다. 

  수녀들은 이 의사가 황당무계한 짓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의 주인인 대주교가 이 스토리를 대놓고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서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어린 양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수녀들이 마귀에 들씌웠다는 징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보고서에 그렇게 썼다. 

 

  1632년 12월 말 대주교가 포고령을 공표했다. 미뇽에겐 앞으로 엑소시즘 시행이 금지됐고, 바레는 계속할 수 있지만 대주교가 지명한 두 명의 엑소시스트와, 즉 푸아티에에서 온 예수회 수사와 투르에서 온 오라토리오회 수사와 함께 해야 하게 됐다. 그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엑소시즘에 참여할 권한을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금지령은 거의 불필요했다. 그 뒤 몇 달 동안은 퇴치할 악마들이 없었으니까. 수도사들의 암시와 주입으로 더 이상 자극되지 않은 수녀들의 광란 발작은 암담한 숙취 상태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런 상태에서 정신적 혼란이 수치심이며 자책이며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자각과 뒤섞였다. 

  대주교 말씀이 옳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악마라곤 애초부터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저지른 끔찍한 행위와 언사는 깡그리 우리 죄가 될 수 있잖아!   

  마귀 들렸다고 간주된 상태에서는 아무도 그들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이제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성 모독과 음란한 언행, 거짓과 중상비방에 대해 그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해명해야 하리라. 수녀들한테 지옥이 아가리를 발바투 벌렸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돈줄이 뚝 끊기고 사람들이 모두 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여학생들 부모며 도시의 독실한 귀부인들, 구경꾼 무리, 심지어 일가친척까지 모조리 이 불행한 여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그야말로 일가친척들까지도! 

  왜냐하면, 대주교 판결에서 분명해졌다시피 그들은 협잡꾼 아니면 우울증 환자들로 드러남으로써 집안 명예도 더럽혔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자 다들 내놓은 자식이 되었고 집에서 보내오던 용돈마저 딱 끊겼다. 숙사 식탁에서 고기와 버터가, 주방에서 하녀들이 사라졌다. 숙사의 크고 작은 일을 수녀들이 직접 하게 됐고, 그게 끝나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바느질을 하거나 양털로 실을 뽑았다. 탐욕스러운 장사꾼들은 수녀들의 절박함과 불운을 악용하여 정상적인 노동 대가보다 더 헐한 값을 지불했다. 

  가련한 여인들이 배곯고 힘겨운 작업에 시달리며 극히 추상적인 두려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외려 얼마 전 악령에 사로잡혔을 적의 행복한 나날을 그리워하게 됐다. 겨울 끝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됐건만 그들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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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François Rabelais (1494-1553) -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중견 작가, 의사, 인문학자, 자연주의자, 휴머니스트, 법률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현대 유럽문학에 기초를 놓은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도처에서 횡행하는 끔찍한 사회적 질환에 거대한 웃음보따리를 처방했다.” ‘라블레 풍의 웃음’이란 솔직하고 거칠면서 풍자적이고 유머가 풍부한 웃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2.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요한복음 20: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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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올더스 헉슬리와 조지 오웰

 


 

  이 이론적 귀결은 실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즉, 마녀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악의적인 이단자로 간주해야 하나, 아니면 이단적 관점을 지닌 요주의 인물로 봐야 하나? 여러 모로 판단컨대 전자인 듯싶다. 

 

  그러나 ‘그런 사악한 견해의 신봉자들’이 모두 갖가지 지상의 형벌을 받으며 교회에서 파문당해 마땅하다 할지라도 「무지 때문에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으리라는 점도 우리는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오류가 대단히 널리 퍼져 있는 만큼 법으로 규정된 엄중한 형벌을 관대하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지를 핑계로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하게 하라. 왜냐면 무지로 인해 죄를 범하는 자들 가운데도 중대한 죄인들이 있으니까.」 

 

  한마디로, 교회의 공식 입장은 이러했다. 마법의 실체를 믿지 않음이 응당 이단이라 할지라도, 그런 사람들이 당장 징벌해야 할 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은 아주 의심쩍은 용의자이며, 만약 가톨릭 신조를 알고 난 뒤에도 자신의 허튼 견해를 고집한다면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몽테뉴가 세 번째 책 11장에서 과감하게 밝히는 경고가 있다.[각주:1] 

 

   「내 이웃에 살고 있는 마녀들은 다른 누군가가 그들 환상의 실체에 대해 새롭게 증언하려 들 때마다 목숨이 경각에 처하게 된다. 성서에 담겨 있으며 아주 확실하고 반박할 수 없는 사례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금 일어나는 것들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원인도 발생 섭리도 알 수 없는 한 우리한테 지금 있는 것보다 더 기발한 재주가 필요하다. 

  무엇이 기적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어쩌면 하나님만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일에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단지 우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옳은지 아닌지도 모르는 제 말에 스스로 경탄하는 사람을 우리가 늘 믿어야 할 건 아니다. 사실 그런 사람은 정신 나가지 않았다면 제가 하는 말에 도취할 수밖에 없다.」 

 

  몽테뉴가 금쪽같은 문구로 결론을 내리는데, 이 문구를 모든 교회 제단 위에, 모든 치안판사 자리 위에, 모든 강의실과 의회와 행정관청과 회의실 벽에 새겨둘 만하다. 나는 여기 단어들 하나하나를 사람 키만큼 크게 네온 활자로 적는다! 

 

  「결국, 누군가의 억설에 입각해 그 사람을 산 채로 굽는다는 것은 

그 억설을 아주 값지게 평가하는 셈이다.」 

 

  반세기가 지나 존 셀던[각주:2]은 몽테뉴보다 조심성을 덜 보였지만 휴머니즘도 덜 드러냈다. 

  「마녀들을 탄압하는 법령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법령이, 가까운 이들을 해하려고 그런 수단을 이용하는 자들의 악의는 징벌한다

  만약 어떤 자가 제 모자를 세 번 돌리고 주술적인 단어 “Buzz!”를 외쳐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고 떠벌인다면,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해도 그자는 국법이 정한 대로 사형당할 만하다. 왜냐하면 그 터무니없는 언행에 악의가 들어 있으니까.」 

 

  셀던은 억설을 도그마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금물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사람이 자신을 마법사로 여긴다면 산 채로 굽는 것이 당연하고 적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법률가였다. 

  몽테뉴도 법률가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이성은 법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기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마녀들을 생각할 때, 그는 징벌할 수 있는 악의가 아니라, 어쩌면 치료할 수도 있을지도 모를 정신질환에 눈길을 돌렸다. 이렇게 적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 같으면 독미나리 독약보다는 차라리 크리스마스로즈[각주:3]를 그들에게 처방해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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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 사냥이라는 관행과 악마의 개입설에 맞선 체계적 맹공은 1563년 독일 의사 요한 바이어[각주:4]와 1584년 <마법의 발견>을 펴낸 켄트 주의 대지주 레지널드 스콧[각주:5]한테서 처음 나왔다. 비국교도인 기포드와 영국성공회 교도인 하스넷 역시 동시대 마법 사례들에 대한 스콧의 회의적인 입장을 공유했지만 성서에 담긴 귀신들림과 주술, 악마 계약 따위 언급에는 스콧이 의문을 표한 것처럼 논박할 엄두를 못 냈다

 

마녀라고 내몰린 사람을 교수형에 처하다

 

  그러나 마법의 실체를 의심하는 이들보다는 믿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개중에 가장 그럴 듯한 이는 유명한 장 보댕.[각주:6] 그는 <데몬 마니아>라는 책을 썼다고 하는데, ‘악마에게 꼬임을 당해 마법사들을 최대한 대변하려고 책을 펴낸 사람들한테 올바른 대답을 주기 위함’을 한 이유로 든다. 보댕이 생각하기에, 마법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은 그 결과 그들이 옹호하고 정당화하려는 마녀들과 함께 화형 당해 마땅하다.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도 자신이 쓴 <악마학>에서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는 말하기를, 합리적인 바이어가 마법사들의 변호인이며 자신의 책으로 ‘자신이 그 계층에 속한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다’고 했다. 제임스 1세의 탁월한 동시대인인 월터 롤리[각주:7] 경과 프란시스 베이컨 경도 마법을 믿는 사람들 쪽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후반 잉글랜드에서 많은 개명된 이들이 마법을 지지하고 나선 경우를 우리는 발견한다. 헨리 모어와 랄프 커드워스 같은 철학자들, 토마스 브라운 경과 글렌빌 같은 의사들과 학자들, 매튜 헤일 경과 조지 맥켄지 경 같은 능력 있는 법률가들이 그렇다.[각주:8]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모든 신학자들이 마법의 실체를 인정했다. 그러나 성직자들 전부가 마녀 사냥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런 작업이 혐오스러울 뿐 아니라 사회 안녕과 질서에 해를 끼친다고 여긴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은 광적인 동료들을 비판하며 그들의 열기를 식히려고 여러 모로 애썼다.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정황이 비슷했다. 어떤 법조인들은 ‘지상에서 마을을 쓸어버리는 폭풍을 일으키려고 흙구덩이에 일부러 오줌을 싼’ 여인을 화형에 처하면서 행복에 겨워했다. (1610년 돌/Dole 지역에서 발생한 이 특이한 사건은 화형으로 끝났다.) 그러나 온건한 이들도 있어서, 그들은 마녀의 존재를 확신하기는 해도 재판에 관여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절대군주제에서 최종 결정은 늘 국왕이 내린다. 루이 13세는 악마 문제에 많이 관여했지만, 그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1672년 루이 14세는 루앙 고등법원이 마녀들과 마법사들에게 내린 사형선고를 추방으로 감형하라고 명령했다. 고등법원이 신학적, 법적 증거 문헌을 제시하면서 항의했지만 그런 근거가 군주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군주는 마녀들을 더 이상 화형에 처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고,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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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수상록> 3권 11장 ‘의지 관리에 대해’에서. Michel de Montaigne (1533-1592) - 프랑스의 저술가, 철학자. <수상록> (1580). 에세이 장르의 창시자로 꼽힌다. “셰익스피어는 철저하게 몽테뉴의 영향을 받았고, 파스칼과 데카르트는 몽테뉴와 논쟁했으며, 볼테르는 몽테뉴를 옹호했다. 베이컨, 가생디, 말브랑슈, 보쉬에, 벨, 몽테스키외, 디드로, 루소, 라메트리, 푸슈킨, 톨스토이 등이 몽테뉴에 관해 글을 쓰고, 여러 모로 몽테뉴를 인용했다.” [본문으로]</수상록></수상록>
  2. John Selden (1584-1654) - 잉글랜드의 동양학자, 정치인, 변호사. "No man is the wiser for his learning; it may administer matter to work in, or objects to work upon; but wit and wisdom are born with a man." [본문으로]
  3. 당시 우울증을 몰아내 광기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여기던 약제 [본문으로]
  4. 바이어 (1515-1588) - 네덜란드 출신 독일의 의사, 학자. [본문으로]
  5. Reginald Scot (1538-1599) - 잉글랜드의 시골 귀족, 마법, 악마, 악령 등에 관한 미신을 반박하는 저술 은 영국 성직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제임스 1세 국왕은 이 책을 아주 싫어해서 소각하라 명령하고, 자신의 <악마학>으로 대응했다. [본문으로]</악마학>
  6. Jean Bodin (1529-1596) - 프랑스의 정치가, 사상가, 경제학자, 법률가, 파리 고등법원 판사. '왕권신수설', '절대주권론'. [본문으로]
  7. Sir Walter Raleigh (1552-1618) - 엘리자베스 여왕을 보필한 귀족, 행정가, 모험가, 시인. [본문으로]
  8. *Henry More (1614-1687) - 잉글랜드 종교철학자, 시인, 케임브리지 신학과 교수. 여러 저술 가운데 <무신론을 퇴치하는 비결>(1652)에는 마법과 유령 이야기가 가득하다. *Ralph Cudworth (1617-1688) - 잉글랜드 철학자, 케임브리지 플라톤 학파의 대표 주자. *Sir Thomas Browne (1605-1682) - 잉글랜드의 의사, 자연주의자, 에세이스트. 과학과 의학, 종교, 신비학 같은 여러 분야에서 폭넓은 지식을 드러내는 다양한 저술. *Sir George Mackenzie (1636–1691) - 스코틀랜드 출신 법률가, 에세이스트. [본문으로]</무신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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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1   

 

 

  1952년 <루덩의 악마들>이 출간되자 헉슬리의 팬들이 상당히 놀랐다. 왜냐하면, 그는 <크롬 옐로우>, <조커의 댄스>, <연애 대위법> 같은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다니엘 데포(Defoe)와 스몰레트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영국 문학의 세태 묘사 소설이라는 거대한 전통에서 적법한 계승자로 각인됐으며 유럽에서 작가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혔는데… 이제 내놓은 것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방대한 논픽션이니 말이다.  

  노년을 앞두고 작가의 소명을 잊은 것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예리한 풍자와 공정한 웃음이 <루덩의 악마들>에는 별로 많지 않다는 점. 거꾸로 여기엔… 섬뜩한 종교적 광기, 억압된 성적 욕구, 난잡한 집단 히스테리, 무지와 맹신, 떠들썩한 엑소시즘, 마녀 사냥, 정치 권력의 집요한 음모, 고문과 사법 살인과 화형 따위가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과 계기는... 17세기 중엽 프랑스 소도시 루덩의 한 수녀원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불가사의한 사건. 

 

  이 책을 두고 주요 언론의 반응은 이러했다. 

 

  “헉슬리는 17세기 마녀 사냥 전성기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사건들 중 하나를 기교와 박식과 공포를 가지고 재구성했다. <루덩의 악마들>에는 매력과 박식과 직관과 지적 활기가 차고 넘친다.” - 타임 

 

  “행위의 모티브 분석과 무의식적인 원인들 설명, 왜곡된 종교적 감정의 폭로, 악마 숭배, 집단 광기, 성적 억압 등에 관한 이 이야기에는 그의 글쓰기에 애초부터 담겨 있는 광채가 모조리 녹아 있다.” - 스펙테이터 

 

  “이 책은 헉슬리 최고 작품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 가디언 

 

  “여태껏 나온 영성 관련 서적들 중 가장 흥미로운 책일지도 모르겠다. 알지도 못하는 성직자를 산 채로 화형에 처하는 데 한 몫을 한 수녀들과 17세기 수녀원의 괴이쩍고 외설한 실제 이야기에서… 헉슬리는 신비주의와 무의식에 관한 정보를 깊고 폭넓게 술술 전달한다.” - 워싱턴 포스트  

 

 

2

 

 

  올더스 헉슬리는 조선반도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불붙던 해 런던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써리 주 고달밍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를 셋째 아들로 본 집안은 그즈음 영국 사회에서 새로이 떠오르는 ‘지적 귀족’. 부계로도 모계로도 저명한 과학자와 작가, 화가들이 있었다. 

 

  동물학자인 조부 토마스 헉슬리는 다윈의 동료요 진화론 옹호자로서 영국 교양 계급에 비상한 영향을 끼치며 과학 대중화의 선구자로 명성을 떨쳤다. 셋째 손자를 보고 이듬해에 타계한 그는 그 삼십여 년 전 창조론 옹호자들과 벌인 논쟁에서 멋진 승리를 거뒀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인간이기보다는 차라리 두 원숭이의 자손이 되는 편이 더 낫겠소!” 

  그 뒤로 그에겐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부친 레너드는 교사, 저술가, 저널 편집인, 모친 줄리아는 교양 높은 여성으로서 기숙학교를 설립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외증조부 토마스 아놀드는 영국 교육체계 확립에 크기 기여한 교육가요 <현대사 강의> 같은 저술을 내놓은 역사가, 영국 국교회의 ‘광교회’ 운동을 주도한 교회 활동가이기도 했다. 

  또 빅토리아 시대에 두드러진 문학비평가요 문화학자, 시인, 에세이스트인 매튜 아놀드가 헉슬리의 종조부. 

  빅토리아 시대 후반 소설가들 중 1인자인 험프리 워드 부인이 헉슬리의 큰 이모이다. 

 

  과학과 문학을 결합하는 이 대물림은 성장기 올더스에게 거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의 원천이 됐다. (마지막 에세이 <문학과 과학>에서 두 영역 간의 이해를 호소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유년기에 기대와 촉망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림에 재주 있고, 자연과학에 관심 크며, 시를 지었다.

  부친 서재에서 자기형성이 시작됐고, 그의 첫 선생은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 못 갔다. 의학을 공부하려고 이튼스쿨에 들어가던 해인 열네 살 때 어머니를 암으로 여의었다. 그 이태 뒤 점상각막염에 걸려 18개월 동안 사실상 맹인으로 살았으며, 가문의 전통인 자연과학자나 의사가 되려던 꿈을 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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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살 많은 큰형 줄리안은 나중에 우생학자로서 20세기 중반 진화론적 종합 이론에서 선도적 인물이 되고,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다. 또 이복아우 앤드루는 1963년 생리의학 부문에서 노벨상을 받는다.) 

 

 

올더스 헉슬리,지각의 문.
"알려진 것들이 있고 미지의 것들이 있는데, 그 사이에 지각의 문이 있다."

 

 

  특수 안경을 착용하고 겨우 보이게 된 한쪽 눈으로 책을 읽고 루이 브라유의 점자도 익혔다. 시력 문제에도 불구하고, 1차 대전이 발발하기 한 해 전, 옥스퍼드대학 베일리얼 칼리지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 

  손상된 시력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이 시기에 가히 초인적이었다. (1942년에 쓴 에세이 <The Art of Seeing>에서 베이츠의 시력 강화법을 열렬히 옹호하는데, 그건 다 직접 경험에서 나온 것.) 치명적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 주변에서는 그를, 특히 지력과 창의력 면에서, 다들 천재로 간주했다. 

 

  1916년 22세에 대학을 마친 뒤 부친에게 더 이상 신세지지 않으려고 몇 해 동안 몇몇 가지 일을 했다. 런던 국방부에서 근무하고, 이튼스쿨에서 한 해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에릭 블레어라는 학생은 나중에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떨친다.) 

  1차 대전 중 많은 시간을 보낸, 오톨라인 모렐 부인의 가싱턴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부인의 친구가 됐다. 이 저택에 D. H. 로렌스, 버트런드 러셀, T. S. 엘리엇 등이 모여 담소 나누고 글을 쓰기도 했다. 미술 평론가 클라이브 벨, 화가 마크 거틀러 등 블룸스버리 멤버들 뿐 아니라 벨기에 망명인 마리 니스도 이 농장에서 만났다. 1919년 그의 아내가 됐다. 

  몇몇 매거진과 저널에서 편집과 건축, 음악, 연극, 회화, 서적 비평을 담당했다. 첼시 독서클럽 사서로 일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다 오래 못 갔다. 20년대 초 문필과 문학이 그의 소명이 됐으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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