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책임 전가, 남에게 뒤집어씌우기
마녀의 화형식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장터 한복판으로 몰려들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끌려 나왔는데, 볼품 사나운 마녀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녀가 처형대 위로 올라선 뒤, 흥분한 군중을 둘러봤다.
그들 가운데 조언이나 도움을 청하러 그녀를 찾아온 사람이 많았고, 많은 사람을 그녀가 위로의 말이나 효능 좋은 약제로써 도우면서 심신의 질환을 고쳐 주었다. 그러나 잔혹한 세계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으니, 그녀의 선행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도 있어 가혹한 재판관들 손에 넘겼고, 그들은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서 화형을 선고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자기가 도와주던 사람들을 처형대에서 내려다보고, 밑에 있는 무리는 광적인 적의가 담긴 눈빛을 뿜고 있는데, 그건 그들의 가여운 상상의 만든 것이었다.
판관이 앞에 나서더니 삑삑대는 목소리로 군중에게 외쳤다.
“이 여자는 마녀요! 이 사실은 여러분도 익히 알 겁니다! 여러분이 다 이 마법을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이 여자가 사람들한테 끼치는 해악 때문에 누구한테든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깁니다. 자, 보세요, 저기 한 부부가 있는데, 그들에겐 자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저들에게 끔찍한 주문을 걸었기 때문이오.
또 저기 있는 여성은 한때 우리 도시에서 최고 미녀였지만 이제 미모와 젊음을 잃었는데, 이것도 이 여자의 소행 때문이지요. 저 미녀는 아직 젊은 편이고 미모가 한참 더 오래갈 수 있었을 텐데도 보다시피 노파로 변해 갑니다.
또 저 사람을 보시오. (재판관은 온몸이 부스럼으로 덮인 남자를 가리켰다).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시달리지 않소이까. 이것도 이 여자가 저지른 것이지요.
여러분 가운데 하는 일이 다 잘 되며 평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기괴한 질문을 법의 옹호자가 성난 군중에게 던졌다). 아무도 없어요! 왜냐하면, 누구나 질병이나 비탄, 상실, 실패 등 뭔가를 겪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의 이런 불행은 전부 이 여자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두십시오! 법정은 이 여자의 소행을 죄다 공정하게 조사한 끝에, 이 모든 악행에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마녀의 악행으로 고통을 겪는 건 사람들뿐 아니라 위대한 자연도 마찬가집니다. 가뭄이나 가축 질병, 흉작이 다 이 여자가 일으킨 것이지요. 모든 재앙은 이 여자 때문인데, 그건 이 여자가 마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앙과 역병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법정은 이 여자에게 화형을 언도했습니다!”
판관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 몇 사람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통나무 처형대로 가져와 불을 질렀다.
“사람들이여!” 화형대 위 기둥에 결박된 여인이 자신의 도움으로 치유된 사람들의 배신 같은 침묵에 놀라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나의 치유 능력으로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요?”
사람들이 동요하다가 한순간 잠잠해지자 판관이 그들을 향해 외쳤다.
“이 여자는 자기가 기적을 행한다고 말하고 있소. 그렇다면, 이 불길을 스스로 끌 수도 있는지 봅시다. 신께서는 이적을 일으키지만, 마녀를 돕지는 않습니다.”
그때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기둥에 묶인 여인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며 애절하게 호소했다.
“신이시여, 이 지상에 제가 설 자리는 없나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남에게 지우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려 듭니다. 그들은 희생양을 한번 점찍었다면 어떡하든 죽이거나 불태우거나 돌멩이를 던질 겁니다. 사람은 두 번 죽지 않습니다. 이제 이 삶과 나를 연결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이번 생에서 떠나게 해주소서.”
그 기도가 끝나자 먹장구름이 순식간에 걷히면서 벌건 태양이 나타났고,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바람에 화형대에는 금방 재만 남았다.
재판관이 뜨거운 숯덩이를 발로 걷어차면서 일을 다 마감하려는 듯이 소리쳤다.
“기적을 행하는 자에게서 남은 건 이게 전부요!”
이 무시무시한 장면을 수천의 눈이 주시했지만, 눈물 젖은 눈은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 불길이 잿더미 속을 휘달리다가 희미하게 스러졌을 때, 늙어 쇠약한 남자가 무리를 헤치고 나왔다.
그는 불탄 자리로 다가서더니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치료하는 이여, 나를 용서하소서. 내가 제 때에 오지 못했소이다. 도착해 보니 당신은 이미 이 짐승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구려. 내가 서둘러 달려온 까닭은, 당신을 돕거나 아니면 처형대 위로 올라가 함께 죽으려 했기 때문이오. 난 늙고 쇠약해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오. 임종의 침상에 누워 의식이 가물가물하던 순간 난 하늘의 부름을 들었소이다. 눈이 절로 뜨이면서 끔찍한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오. 난 인간적으로 당신을 돕기 위해 죽음을 잠시 미뤘지만, 우리를 갈라놓은 길을 빨리 오지는 못했구려. 당신을 전혀 돕지 못했소, 말로도 행동으로도 당신을 지키지 못했소, 다만, 이 천여 명 군중 속에 당신을 도운 사람이 없다는 점이 애통할 따름이오.”
노인이 돌처럼 굳어진 군중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람들이 본, 노인의 마른 눈에는 비애와 고통이 가득 서려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감지할 수 있는 재앙에 대한 두려움이 이제 오싹하게 사람들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노인이 병으로 온몸이 성치 않은 사람의 눈을 보며 말했다.
“당신의 병은 당신이 살아온 결과이지 무고한 여인의 마법 때문이 아니라오. 방종한 인생이 당신을 고통과 질병으로 몰아넣은 것이오. 당신이 썩어가는 건 자신의 방탕 때문이지 마녀의 주문 때문이 아니외다.”
그러고는 미모가 시드는 여인에게 몸을 돌려 역시 차분하게 말했다.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당신은 평생을 악의와 질투, 증오를 품고 살아왔지요. 그런 것이 당신의 매력을 앗아간 것이라오.”
그러나 이제 노인이 불행한 부부에게 고개를 돌리자, 군중이 마치 나병 환자를 보듯이 그 부부한테서 펄쩍 물러섰다.
“신앙심 깊은 부부여, 그대들은 매혹적인 결실 대신 자기 죄의 멍에를 지고 있구려. (노인이 여인에게 말했다). 운명이 그대에게 불임을 안겼는데, 그대는 어머니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됨을 부끄럽게 여겼소이다. (노인이 남편에게 얼굴을 돌렸다). 또 그대는 한순간 즐거움을 위해 술에 취한 날이 많았지요. 그래서 씨를 뿌릴 수 없는 시든 나무가 됐소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자신의 죄를 파트너와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려고, 자신의 불임 책임을 무고한 존재에게 떠넘겼소이다. 그것도 당신들에게 여러 번 도움을 베푼 이에게 말이오.
여러분을 정화해 준, 흠 없는 존재를 비난한 여러분은 모두 이중의 죄를 범한 것이외다.
여러분은 남의 등 뒤에 숨어 여러분 같은 죄인들 앞에서 죄 없고 순수한 사람이 되고자 했소이다. 여러분은 무고한 영혼을 죽였소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들 하는 것이오? 과연 차분하게 삶을 기뻐하며 개인적인 행복을 이룰 수가 있겠소이까? 살인자들이 어찌 마음 편히 행복할 수가 있겠소이까?”
노인은 뭔가를 더 말하고 싶었으나 말뜻을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휑한 눈빛을 보고는 자신의 열정이 무익함을 깨달았다.
노인이 온몸에 힘이 빠져 잿더미 위에 주저앉았다.
처형장에 모인 사람들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자신의 죄업이 전부 거울처럼 자신 안에서 반영되며 그걸 누군가가 읽고 공표할 수 있을까 놀라서 서둘러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는 벽과 문들 뒤에 숨어서 수치를 겪지 않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죄를 범하는 자는 죄인이 될 것이야.
하지만,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자는 이중의 죄인이 된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Variety > 우화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화) 제비꽃 (0) | 2020.02.13 |
---|---|
세상에 악은 과연 존재하나? (0) | 2020.02.12 |
원숭이와 안경 (2) | 2019.12.22 |
구름을 어떻게 잡나? (아름다운 동화) (0) | 2019.12.20 |
사과 (Apple) (3) | 2019.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