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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 기둥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수사

 


 

  그 사이 랑탕과 트랑킬은 자백받지 못한 상황을 만회하려 들었다.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다가와서 묻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마법사가 죄를 인정하지 않더군,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말이오. 그 이유야 빤하지, 그자가 하나님을 부르며 힘을 달라고 호소했는데, 그자의 하나님이란 루시퍼이고, 그 루시퍼가 고통을 못 느끼게 만든 게요. 그러니, 우리야 하루 종일 쐐기를 박고 또 박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런 확신이 맞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엑소시스트인 미카엘 수사가 작은 실험을 했다. 며칠 뒤 실험 결과를 공개 강연에서 전했는데,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기록했다. 

  「이 미카엘 수사는 악마가 그랑디에한테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즉, 지옥의 고통을 겪으며 무릎이 다 으스러진 채 녹색 담요를 덮고 장의자에 널브러져 있어서, 수사가 담요를 거칠게 걷어내고 부서진 정강이와 무릎을 쿡쿡 찔렀는데도 끽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카엘 수사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첫째, 그랑디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둘째, 사탄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다. 셋째, (수사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그가 호의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실제로는 악마를 부른 것이며, 악마를 증오한다고 말할 때 그건 하나님을 증오한다는 의미였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기둥에 묶여서 화염 맛을 톡톡히 체감하게끔 우리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미카엘 수사가 사라지자 다시 전권대행 차례가 됐다. 로바르데몽이 자신의 제물 곁에 두 시간 넘게 머물면서 서명을 받기 위해 갖은 설득 기술을 다 동원했다. 서명만 받으면, 자신이 취한 불법적 절차가 다 무마되며, 추기경에 대한 평판이 깔끔해지고, 또 히스테리 부리는 수녀들이 고해사제들에 의해 체제의 적들을 고소하도록 유도되는 모든 경우에서 앞으로 종교재판 식의 수법을 써먹어도 괜찮을 터였다. 서명을 꼭 받아야 했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 설득을 지켜본 가스탱은 ‘그런 번드르르한 근거며 그런 감언이설이며 위선적인 탄식과 흐느낌 같이’ 가증스러운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 어떤 회유에도 그랑디에는 그가 알고 신이 알듯이 (전권대행도 분명 마찬가지이고) 전부가 날조인 자술서에 서명한다는 건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로바르데몽이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간수장 라그랑제에게 형리들을 부르라고 지시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죄인을 끌고 가는 행렬

 

  그들이 왔다. 그랑디에한테 녹황색 긴 셔츠를 입히고 목에 밧줄을 걸고 마당으로 끌고 나갔다. 나귀 여섯 마리를 맨 수레가 대기 중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죄인을 들어 올려 장의자에 묶었다. 마부가 말들한테 고함을 질렀다. 행렬이 천천히 대로로 들어섰다. 일단의 궁수들이 앞에 서고 로바르데몽과 그의 온순한 재판관 열셋이 수레 뒤에서 걸었다. 

  대로 한가운데서 수레가 멈추고, 둘러선 시민들한테 판결문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낭독됐다. 나귀들이 또 움직였다. 

  그 다음엔 (주임신부가 여러 해 동안 의젓한 풍모로 드나들던) 성 베드로 사원 정문 곁에 와서 행렬이 또 멈췄다. 두 손에 2파운드 양초를 들리고 의자에 묶인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들어 내리고는 판결문에 적힌 대로 무릎 꿇고 죄를 사해 달라고 빌게 했다. 그러나 무릎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에, 땅바닥에 내려놓자 그가 얼굴을 땅에 박으며 엎어졌다. 형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 순간 교회에서 코르들리에회 감독관인 그리에 수사가 달려 나와 경비하는 궁수들을 밀치고 몸을 굽혀 죄수를 끌어안았다. 크게 감동한 그랑디에가 신부에게 자신과 교단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사실, 이 코르들리에 교단만이 루덩 전역에서 주임신부의 적들에게 협조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리에 수사가 유죄 판결 받은 이를 위해 기도하겠노라 약속하면서 하나님과 구세주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모친의 전갈을 전했다. 모친께서는 성모마리아 발밑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그대에게 축복을 보냈다오. 

 

  두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몰려든 군중이 짠한 마음이 되어 수군거렸다. 수군거림을 듣고 로바르데몽이 대노했다. 꾸민 대로 척척 되는 일이 어째 하나도 없는 거지?! 정상대로라면 어수선한 군중은 악마와 내통한 자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린치를 가해야 마땅한 것을. 한데 그러기는커녕 그의 가혹한 운명을 안타까이 여기고 있다니! 

 

  그가 황급히 행렬 앞으로 뛰어 나와 경비병들에게 코르들리에회 수사를 내쫓으라고 새된 목소리로 명령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열성을 발휘하여 그랑디에의 배코 친 머리를 곤봉으로 갈겼다. 

 

  질서가 복원되자 주임신부가 판결이 명한 대로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국왕과 사법부에 용서를 구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비록 도덕적으로 크나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 죄는 절대 저지르지 않았소이다.     

  형리들이 그를 다시 수레에 태우는 동안, 탁발수사 하나가 관광객들과 주민들에게 지루하고 장황한 훈계를 해댔다. 

  참회하지 않은 마법사를 위해 기도할 생각일랑 절대 하지들 마시오! 그건 곧 여러분이 아주 무서운 죄를 짓는다는 뜻이니까!! 

 

고문을 당해 하반신이 일그러진 그랑디에

 

  행렬이 움직였다. 우르술라회 수녀원 정문 앞에서 하나님과 국왕과 정의에 용서를 비는 의식이 재현됐다. 그러나 법정 서기가 원장수녀와 수녀들한테도 용서를 간청하라고 명령하자, 죄수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친 적이 없지만, 저 여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는 있소이다. 

 

  그러다가 필리프 트렌캉의 남편이자 가장 사나운 적수인 무소를 보자 지난 일은 다 잊어 달라 청하고는 본연의 정중함을 갖춰 덧붙였다. “난 당신의 온유한 종으로 죽겠소이다.” 무소가 얼굴을 팩 돌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랑디에의 적수들이 모두 그렇게 비기독교적인 가혹함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랑디에가 부적절한 행위로 기소된 1차 재판 때 그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 성직자들 중 한 사람인 베르니에가 군중을 헤치고 나와서 용서를 청하며 그를 위해 미사를 올리겠다고 했다. 주임신부가 그 손을 잡아 감사의 입맞춤을 했다. 

 

  성 십자가 광장에는 육천이 넘는 인파가 그 절반을 수용하기에도 벅찬 공간으로 들어서려고 밀고 밀렸다. 창문들이 전부 임대됐고, 심지어 지붕과 교회 홈통 주둥이 위에도 구경꾼들이 자리 잡았다. 판사들과 로바르데몽의 특별한 친구들을 위해 특별관람석이 설치됐지만, 어중이떠중이가 다 차지했다가 경비병들이 들이대는 창끝에 밀려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일진일퇴의 격전을 치르고 나서야 VIP들이 겨우 저희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인사들조차 지정 좌석까지 가는 데 무진 애를 먹었다. 죄수를 실은 수레가 장작더미 한가운데 선 기둥까지 마지막 백 야드를 가는 데도 자그마치 삼십 분이나 걸렸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호송병들이 미늘창을 휘두르며 길을 내야 했다. 

 

  성 십자가 교회 북쪽 담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높이 15피트 되는 굵은 기둥이 서 있었다. 기둥 밑에는 통나무와 나뭇가지, 짚더미가 잔뜩 쌓이고, 희생자가 으스러진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만큼 장작더미 2피트쯤 위로 작은 철제 의자가 기둥에 묶여 있었다. 

 

  사건의 중대한 성격과 거대한 악평에도 불구하고 처형에 든 비용은 지극히 수수했다. 화형에 드는 장작과 죄인을 매단 기둥 비용으로 들랴르라는 사람한테 19 리브로 16 수를 지불했다. 1 파운드에 3 수 4 데니르 꼴로 무게 12 파운드인 철제 의자와 의자를 기둥에 연결하는 데 든 쇠못 여섯 개 값으로 대장장이 자크가 42 수를 받았다. 시농 시의 본당 신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궁수들을 파견하느라 빌린 말들 하루 임대, 또 나귀 여섯 필 하루 임대와 짐마차와 마부 둘에 비용 108 수가 들었다. 죄수의 셔츠 두 벌 (고문당할 때 입은 것과 화형 당할 때 입은 녹황색 셔츠) 값으로 4 리브르가 들었다. 공식 사죄 의식에 쓴 2 파운드짜리 양초는 값이 40 수이고, 형리들에게 제공한 포도주 값이 13 수였다. 여기에 성 십자가 교회 문지기와 조수들에게 준 수고비까지 계산하면, 도합 29 리브로 2 수 6 데니르가 들었다. 

 

 그랑디에를 수레에서 내려 철제 의자에 앉히고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 교회를 둥지고 앉은 그에게 특별관람석과, 또 한때 사제관만큼이나 편하게 지내던 저택 전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저택 담장 안에서, 그가 아담과 만누리에게 상처 되는 농담을 여러 번 던지고, 캐서린 암몽의 편지들을 낭독하여 모임을 즐겁게 하고, 젊은 처녀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며 유혹하고, 가장 좋은 친구를 철천지원수로 만들었다

  그 루이 트렌캉은 이제 자기 거실 창가에 앉아 있고, 그 곁에 참사회 위원 미뇽과 티보가 있었다. 한때 우르뱅 그랑디에였다가 이제 배코 친 불구자로 변한 그를 바라보며 세 사람이 의기양양하여 낄낄거렸다. 

 

  주임신부가 고개를 들다가 그들과 눈길이 마주쳤다. 티보가 오랜 지기한테 하듯 손을 흔들고, 트렌캉이 물 탄 백포도주를 마시다가 제 사생아 손녀의 아비를 위해 축배를 들었다. 

  그랑디에가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일면 수치심 때문에, 왜냐면 라틴어 수업과 절박하게 눈물 흘리는 처녀를 나 몰라라 한 것이 떠올랐으니까. 또 저들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참담한 심정이 되어 하나님이 지금 여기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혹여 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간수장 라그랑제.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짓을 용서해 달라 청하고 두 가지를 약속했다. 군중에게 고별사를 행할 수 있도록 하겠고, 장작에 불을 붙이기 전에 목 졸라 질식시키겠습니다. 그랑디에가 감사를 표했다. 간수장이 몸을 돌려 지시하자, 형리가 즉시 올가미를 준비했다. 

 

  그러는 중에 탁발수사들은 엑소시즘을 수행하느라 분주했다. 그들 입에서 라틴어가 흘러 나왔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의 적들이 놀라 달아나리라. 유다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다윗의 뿌리를 차지했구나. 이제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이름으로, 그의 아들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한 성령의 이름으로 너, 나무의 축생을 물리치나니…”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 연설하는 두 수도사

 

  그들이 장작더미와 짚단과 또 이글거리는 석탄이 담긴 화로에 성수를 뿌렸다. 그들은 땅과 허공에, 희생자와 형리들과 구경꾼들한테도 성수를 뿌렸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저 마법사가 극도의 고통을 겪지 않게끔 악마가 방해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야. 

 

  주임신부가 군중을 향해 몇 번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탁발수사들이 그 얼굴에 성수를 끼얹거나 철제 십자가로 입술을 때렸다. 그가 가격을 피하자,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배교자가 구세주를 외면하는구나! 랑탕 수사는 시종일관 범죄를 시인하라고 요구하며 “Dicas!” 하고 으르렁댔다. 

 

  이 레치타티보는 구경꾼들 뇌리에 박혀서, 짧고 참담한 여생 중에 랑탕은 이미 루덩에서 ‘디카스 수도사’로 유명해졌다

  “Dicas! Dicas!” 

  그랑디에가 시인할 것이 하나 없다고 천 번째로 대꾸하고 덧붙였다. 

  “자, 이제 나한테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죽이시오.” 

  랑탕이 처음엔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비기독교적인 증오를 보임에 군중이 항의하자, 그가 장작더미 위로 기어올라 주임신부 볼에 입맞춤했다. 

  “유다!” 누군가가 외치자 많은 사람들이 가세했다. 

  “유다, 유다!”  

 

  그 함성을 듣자 랑탕이 걷잡을 수 없이 화를 내며 장작더미에서 뛰어내리더니 짚단을 들어 화로에서 불붙이고는 불덩이를 희생자 얼굴 앞에 대고 흔들었다. 네가 누구인지 고백해라! 사탄의 하수인임을 자백하란 말이다! 참회하게 만들겠어, 네 주인을 부정하게끔 만들겠다! 

 

  “수도사여,” 그랑디에가 차분하고 온유한 품위를 보이며 입을 뗐는데, 그건 자신을 박해하는 자의 거의 광적인 증오와 묘하게 대비됐다. “난 이제 곧 하느님을 만날 터이고, 그분께서 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실 것이오.” 

  “인정해라!” 수도사가 절규하다시피 했다. “인정해! 넌 한순간 후면 죽을 것이야!” 

  “한순간 후면...” 주임신부가 느릿느릿 되풀이했다. “한순간 후면, 그때 난 공정하고 무서운 심판장으로 갈 터이고, 존경하는 수도사여, 당신도 곧 그 심판에 부름을 받을 게요.”

 

  랑탕이 그 뒷말을 다 듣기도 전에 들고 있던 횃불을 장작더미에 놓인 짚단 위로 던졌다. 밝은 오후 햇빛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불꽃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지면서 마른 나뭇가지 다발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바지직 소리를 내며 장작더미가 금방 타올랐다. 상대에게 뒤질세라 미카엘 수사가 장작더미 맞은편에서 짚단에 불을 놓았다. 퍼런 연무가 바람 한 점 없는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기둥 주변에 쌓인 나뭇단 하나에 불이 붙으면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장작더미에 불을 던지는 수도사

 

  죄수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흥겨운 불꽃 군무를 보게 됐다.   “나한테 약속한 게 이런 것이오?” 그가 절박하게 항의하는 투로 간수장을 불렀다. 그리고 갑자기 신성한 존재가 사라진 듯했다.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고, 그저 공포뿐이었다

 

  간수장이 화가 잔뜩 나 탁발수사들에게 고함지르며 가까이 있는 불길부터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꺼야 할 불길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트랑킬이 주임신부 뒤편에 쌓인 짚단에 불을 붙이고, 랑탕이 화로에서 다른 횃불을 또 붙였다. 

 

  “그의 목을 졸라라!” 간수장이 지시했다. 그러자 군중이 그 외침을 따라했다. “목을 졸라라, 목을 졸라!” 

  형리가 올가미를 가지러 달려갔지만, 카푸친회 수사 하나가 몰래 로프에 매듭을 만들어 놓은 바람에 당장 쓸 수가 없었다. 매듭을 다 끌렀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단말마의 비명에서 구해 주려던 죄인 주변으로 이미 화염이 장벽을 치고 연기 커튼이 자욱했다. 그 동안에 수도사들은 성수 단지를 내두르며 장작불에 끝까지 남은 악마들을 내쫓았다. 

  “물러가라, 마귀들아!” 

  벌겋게 달구어진 통나무들 사이에서 성수가 쉬쉬쉬 하는 소리를 내며 금세 수증기로 변했다. 화염 장벽 저편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래, 엑소시즘이 먹혀들었다는 뜻이지! 탁발수사들이 감사 기도를 읊느라 행동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갱신된 신념과 배가된 힘으로 다시 작업에 나섰다.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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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수녀들을 대상으로 엑소시즘을 펼치다

 


 

8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악마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이 대전제에 따르면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 입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바르데몽은 위그노들을 지독히 싫어하는데, 그들이 사탄의 친구이며 충실한 종복이라고 귀신들린 수녀 열일곱 명이 성찬례에서 단언하면 그만이었다. 

 

  상황이 그런 만큼 전권대행은 낭트칙령[각주:1]을 무시해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 느꼈다. 먼저 루덩의 칼뱅주의자들이 자기네 묻힐 곳을 박탈당했다. 그들 죽은 몸뚱이를 어디 다른 곳에 파묻으라고 해. 

 

  이어서 프로테스탄트 칼리지 차례가 됐다. 넓고 편리한 학교 건물이 몰수돼 우르술라회로 넘어갔다. 사실, 그들이 그 동안 수녀원으로 임차한 건물에는 사방에서 도시로 몰려든 독실한 순례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이제 마침내 수녀들이 날씨가 어떻든 성 십자가 교회나 샤토 교회까지 터벅터벅 걸어갈 필요 없이 입에 맞는 관중 앞에서 엑소시즘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위그노 못지않게 가증스러운 자들도 있었으니, 바로 그랑디에가 유죄이고 마귀 들림이 실제로 있으며 카푸친회가 새로 내놓은 교리의 절대적 정통성을 한사코 믿지 않으려 드는, 나쁜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랑탕과 트랑킬이 설교단에서 신랄하게 몰아쳤다. 

  저들은 이단자보다 나을 게 하나 없소! 저들이 의혹을 품는 것은 크나큰 죄이며 저들은 이미 저주받은 것과 진배없단 말이오!! 

 

  또 한편에서는 메스멩과 트렌캉이, 의심하는 자들은 국왕에게 불충하며 (더 흉하게도) 추기경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다녔다. 그리고 미뇽이 맡고 있는 수녀들과 카르멜회 히스테리 환자들의 입을 통해 많은 악마들이, 그자들은 전부 사탄과 결탁한 마법사라고 떠들었다. 

  시농에서 바레가 관장하는 마귀 들린 자들 중 누군가한테서는 흠 잡을 데 없는 치안판사 세리제조차 흑마법으로 장난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 다른 마귀 들린 자는 두 성직자, 부롱 신부와 프로지에 신부가 강간을 기도했다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원장수녀의 고발로 마들렌 드브루가 요술을 부린다는 혐의로 체포돼 수감됐다. 친척들이 재산과 고위층 연줄 덕에 그녀를 간신히 보석으로 빼냈다. 그러나 그랑디에 재판이 끝난 뒤 마들렌은 다시 체포됐다. 그녀가 항소법원[각주:2] 판사들에게 호소하자 로바르데몽에게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전권대행이 자신을 비난한 여인을 맞고소했다. 마들렌에게는 다행히도, 리슐리외는 판사들과 다툴 만큼 그녀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로바르데몽에게 소송을 취하하라는 지시가 내렸고, 원장수녀는 복수의 기쁨을 접어야 했다. 

  그 뒤 가엾은 마들렌은 모친 사후에 제 연인이 하지 말라고 설득했던 일을 하고 말았다. 삭발하고 어느 수녀원 담장 안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

 

  그러는 동안 악마들이 시민들을 겨냥해 내뱉은 이런저런 고발이 바람에 일어난 먼지처럼 난무하게 됐다. 지역 상류층 아가씨들이 그들 공격 대상으로 찍혔다. 아그네스 수녀는, 루덩만큼 음란기로 가득한 도시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클레어 수녀는, 죄 지은 여인들 이름을 꼽으면서 그들의 죄목을 늘어놓았다. 루이스 수녀와 잔느 수녀도 가만있지 않았다. 루덩의 처녀들은 죄다 마녀의 싹을 품고 있어! 

 

  이 엑소시즘은 매번 음란한 몸짓과 추잡한 언사와 광적인 웃음 따위로 끝났다. 

  그 다음에는 도시의 존경받는 인사들한테 비난이 쏠렸다. 

 

  그들이 마녀 집회에 다니면서 악마 엉덩이에 입을 맞추잖아. 

  또 그 부인들은 인큐버스와 사통하고, 그 누이들은 옆집 암탉들에게 마법을 걸고, 그 노처녀 숙모들은 도덕적인 젊은이를 신혼 첫날밤에 임포텐츠로 만들지 뭐야. 

  그랑디에도 그래, 벽돌로 막아놓은 창문의 공기구멍 틈새로 그 동안 자기 정액을 절묘하게 나눠주고 있었던 거야. 마녀들한테는 보상을 하고, 추기경 파의 아내와 딸들에게는 합당치 않은 치욕을 안기려는 속셈에서 말이지. 

 

수녀들한테서 악마를 쫓아내는 의식

 

  그런 고약한 망언들을 로바르데몽과 그의 서기들이 하나도 빼지 않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악마들한테서 비난받은 이들이 (달리 말해, 로바르데몽과 엑소시스트들한테 눈엣가시가 된 이들이) 로바르데몽 집무실로 소환돼 심문 받으며 위협과 협박을 겪었다. 도시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7월 어느 날 로바르데몽이 악마 베헤리트한테 힌트를 얻어 젊은 처녀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는 성 십자가 교회의 문을 다 잠그라고 명령했다. 카푸친회 수도사들이 사탄과 결탁한 흔적을 찾는다는 명분 아래 처녀들 몸을 더듬었다. 철저한 수색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표식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군, 베헤리트가 정식으로 강요당했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 

 

  몇 주일 동안 카푸친회와 레콜레트회와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모든 설교단에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의혹 품은 이들이 납득하지 못했고, 그랑디에 사건을 매우 불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불만과 저항이 더 커지기만 했다

  익명의 운쟁이들이 전권대행을 두고 짤막한 풍자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그 시구에 오래 된 가락을 붙여 거리에서 선술집에서 잔을 들고 노래하며 국왕의 전권대행을 조소했다. 그를 조롱하는 글귀들이 밤마다 교회 현관에 나붙었다. 

 

  도대체 누구 소행인지 개꼬리와 레비아탄에게 추궁하자, 이 악마들이 어떤 신교도와 어린 학생 몇몇을 범인으로 꼽았다. 그들을 체포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수 없게 되자 풀어주어야 했다. 이제 밤마다 파수꾼들이 교회 밖에 배치됐다. 그러자 비판하는 글귀가 다른 대문들에 걸리기 시작했다. 

 

  분개한 전권대행이 7월 2일 포고문을 발동했다. 

  ‘악마 때문에 고통 받는 수녀들이나 다른 주민들, 엑소시스트들이나 엑소시즘 조력자들을 적대시하여’ 행동하거나 또 입을 놀리는 것조차 차후로는 엄금한다. 이를 어긴 자는 누구든 1만 리브르 벌금에 처하고, 필요한 경우 재정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더 중하게 부과할 것이다. 

  그 뒤 비판이 더 조심스러워지자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이 여론을 겁내지 않고 허튼 비방을 마음껏 지껄일 수 있게 됐다. 

 

  <루덩 주임신부 재판에 대한 의견과 판단>이라는 글의 익명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만을 말하는 하나님이 이제 밀려나고 그분 자리에 사탄이 앉아서 거짓과 허튼소리만 해대는데, 그 허튼소리를 진실처럼 믿어야 하다니, 이야말로 이교 사상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게다가 항간에 나도는 얘기로는, 악마가 마법사와 주술사라면서 많은 이름을 읊어대는 것이 권력에는 아주 편리하단다. 이제 이 불행한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고 재산이 압류될 것이다. 그리고 몰수된 재산 일부가 주임신부의 죽음과 도시 대부분 명가들의 파멸을 은근히 바랄지도 모를 피에르 메노와 그의 사촌인 참사회 위원 미뇽에게 돌아갈 것이다.」 

 

  8월 초 트랑킬 신부가 새로운 교리를 기술하고 거기에 근거를 부여하여 얇은 책자를 냈다. 그 교리란 바로,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는 것. 이 책자를 푸아티에 주교가 승인하자 로바르데몽은 정통 신학에서 최신의 발견이라 부르며 환영했다

 

  이제 의심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그랑디에는 마법사로 아예 굳어지고, 겁 없이 옳게만 나서는 세리제 판사 역시 주술사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추기경 지지파에 속한 부모를 둔 처녀들을 제외하고, 루덩의 처녀들은 모두 매춘부와 마녀가 됐다. 또 시민 절반에게는 악마의 존재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미 저주가 내렸다. 

 

  트랑킬의 소책자가 나오고 이틀 뒤 수석 치안판사가 도시 명사들을 소집했다. 시민들이 처한 곤경을 논의한 끝에 세리제 판사와 보좌관 쇼베가 파리로 가서 전권대행의 전횡을 막아 달라고 국왕에게 청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반대한 사람은 검찰관 무소, 경찰 수뇌 에르베와 메노뿐이었다. 에르베는 루덩의 시민들을 전부 사탄의 종복으로 규정하는 새 교리에 동의하느냐고 치안판사가 묻자 “국왕과 추기경, 푸아티에 주교께서 마귀 들림을 믿는 바에야 나로서도 달리 방법이 있겠소?” 하고 대꾸했다. 

 

  정치적 보스에 대해 부하들이 무의식적으로 지니는 이 무류(無謬) 의식은 오늘날 우리네 귀에도 낯설지 않으며 아주 자연스러우리라

 

  다음날 세리제와 쇼베가 루덩 시민들의 정당한 불만과 불안이 명료하게 기술된 청원서를 들고 파리로 떠났다. 그 문건에서는 로바르데몽의 처리 방식이 준엄한 비판을 받았고, 카푸친회가 내놓은 새로운 교리는 ‘하나님 율법을 파괴하며’ 교회 박사들과 성 토마스와 소르본대학 학자들의 견해에 상충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소르본 학자들은 비슷한 교리를 이미 1625년에 공식 규탄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루덩의 시민들은 트랑킬의 소책자를 소르본에서 검증하도록 국왕 폐하께서 명해 주십사 탄원하고, 나아가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한테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중상모략 받은 모든 이들이 ‘이런 문제들의 정상적 심판 기구인’ 파리 고등법원에 상소하도록 허용해 주십사고 간청했다. 

  두 치안판사가 궁정에서 다르마냑을 찾아 부탁하자, 그가 즉각 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회답은 퉁명스러운 거절. 그러자 세리제와 쇼베가 국왕의 개인비서에게 청원서를 맡기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이 사람은 추기경의 심복이자 루덩 시민들의 공공연한 적대자였다. 

 

  그들이 파리에 있는 동안 루덩에서는 로바르데몽이 새 포고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그 어떤 공개 집회도 금지하며, 위반할 시 2만 리브로 벌금이 부과될 것이다. 이후로 악마의 존재에 의혹을 품는 이들이 더 이상 골칫거리가 되지 못했다. 

 

엑소시스트들과 국왕 전권대행

 

  이제 예비조사가 다 끝나고 마침내 재판을 개시할 때가 됐다. 로바르데몽은 루덩의 주요 치안판사들 중에서 몇몇을 재판부에 기용할 수 있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무너졌다. 수석 치안판사인 세리제를 비롯해 부르네, 샤를 쇼베, 루이 쇼베 등이 모두 사법살인에 끼어들기를 거부했다. 국왕의 전권대행이 감언이설로 꾀어 보다가 잘 안 먹히자, 추기경 예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어떤 후과가 따를지 생각해 보라고 은근히 겁을 주었다. 그래봤자 헛수고. 법률가 네 사람이 꿋꿋하게 버텼다

 

  할 수 없이 시농, 샤텔로, 푸아티에, 투르, 오를레앙, 라 플레시, 생멕상, 보포르 등 인근 도시에서 재판관을 찾아야 했다. 결국 유순한 판사 열셋으로 재판부를 꾸렸다. 검사를 기용하는 문제도 썩 순탄치 못했다. 피에르 푸르니에라는, 지나치게 꼼꼼한 법률가가 추기경의 룰에 따라 게임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전적으로 신임할 수 있는 도시 검찰관을 선정했다. 

  8월 둘째 주 중반에 재판 준비가 다 끝났다. 미사를 드리고 성찬례에 참석한 뒤 재판관들이 카르멜회 수도원에 모여 지난 몇 달 로바르데몽이 수집한 증거를 죄다 청문하기 시작했다. 푸아티에의 주교는 마귀 들림이 실제 있는 현상이라고 공식적으로 담보했다. 이는 곧 진짜 악마들이 우르술라 수녀들의 입을 통해 말한 것이며, 그 진짜 악마들이 그랑디에가 마법사라고 몇 번이나 단언했다는 의미. 한데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즉, 악마들은 엑소시스트들의 감시를 받으며 진실을 말한 것이고, 그렇다면… 증명은 끝난 셈이다. 

  유죄 판결이 아주 확실했고, 그 확실함이 얼마나 소문났는지 처형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이미 루덩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무더운 팔월 (루덩 시 인구보다 두 배가 많은) 3만 명이 음식과 숙소와 처형대 가까운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우리 선조들이 공개 처형이라는 스펙터클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 대다수는 참으로 믿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의 휴머니즘 달성을 자축하기 전에 몇 가지를 기억해 보자. 

  첫째, 오늘날 시민들에게는 처형 현장을 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처형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교수형이 인형극처럼 흥미롭게 보이던 시대에 장작불 위 화형이야말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각주:3]이나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각주:4]처럼 보기 드문 사건이고, 그걸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비가 많이 드는 순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공개 처형이 사라진 것은 대다수가 바랐기 때문이 아니다. 지극히 섬세한 개혁가 소수가 그걸 금할 만큼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문명화(개화)란 개개인이 야만적 행위를 자행할 기회를 체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라 정의할 수도 있겠다. 

  한데 근년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억제되던 끝에 이제 우리보다 더 나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야만적인 행위에 기꺼이 몰두하면서 이전의 양상으로 기꺼이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왕과 추기경, 로바르데몽과 고용된 재판관 열셋, 시민들과 관광객들 모두 결말이 어떻게 날지 알고 있었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은 죄수 하나뿐이었다. 

 

  (8월 첫째 주 끝에 가서도 그랑디에는 자신이 평범한 재판의 피고이며, 이전 조사에서 잘못된 것들은 다 우연한 실수이고...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5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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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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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라비아 우화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과의 관계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로운 생각과 말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과학 실험 3가지

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1. 나바르 왕 앙리가 프랑스 왕위 계승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대신 위그노의 종교 자유와 시민권을 보장하는 칙령을 1598년 선포. 이로써 위그노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는 교회의 화합 아래 강대국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칙령에 교황 클레멘스 8세와 프랑스 로마가톨릭, 파리 고등법원 등이 큰 불만. 나중에 리슐리외 추기경은 낭트칙령에서 정치 관련 조항을 국가에 위험하다고 여겨 알레 칙령(1629)으로 무효화. 1685년 루이 14세가 완전히 폐지, [본문으로]
  2. Messieurs des Grands-Jours - 왕국의 전 지역을 다니며 지방 사법부의 스캔들과 오심을 조사하는 순회 항소법원. [본문으로]
  3. Bayreuth Festival -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해마다 열리는 음악 축전. <니벨룽겐의 반지> 등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만 공연. [본문으로]
  4.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 - 독일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 오버아머가우 주민들이 1634년부터 전통적으로 행하는 공연.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1632년 10월에 성인 사망률 1에서 1633년 3월 20까지 올라갔다. 주민들은 하느님이 이 역병을 물리쳐 주신다면 예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공연을 평생 하겠노라고 다짐. 사망률이 점차 줄면서 1633년 7월에 1로 가라앉자 주민들은 구원을 받은 것이라 믿었다. 1634년 처음 공연 시작. 전 세계에서 수십 만 관객이 몰려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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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전쟁이 터무니없고 끔찍한 까닭은...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루덩 성의 아성 문제에서 국왕이 결국 추기경한테 양보했고, 로바르데몽이 ‘백조와 십자가’ 객사에 다시 묵게 됐다. 메스멩을 비롯해 추기경 지지자들이 기뻐 날뛰었다. 

  다르마냑이 권력 다툼에서 패한 거야, 아성은 파괴되고 말겠군. 이제 저 지긋지긋한 주임신부만 제거하면 되겠어! 

 

  국왕 전권대행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메스멩이 마귀 들린 수녀들 얘기를 짐짓 입에 올렸다. 로바르데몽이 주의 깊게 들었다. 왕년에 마녀 십여 명을 재판하고 불살라 죽인 경력이 있는 만큼, 스스로 초자연적인 문제에서 전문가라고 여길 권리가 충분했다

  다음날 그가 파켕 거리에 있는 수녀원에 잠깐 들렀다. 메스멩한테 들은 얘기를 참사회 위원 미뇽이 확인해 주었다. 수녀원장도 그랬고, 추기경의 인척인 클레어 수녀도 그랬고, 로바르데몽의 처제 둘도 그랬다. 

 

  모든 수녀들 육신에 악령이 들끓었었지요. 악령은 마법 때문에 들어앉았는데, 마법사가 바로 그랑디에랍니다. 이런 사실은 악마들이 수녀들 입을 통해 스스로 인정한 거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런데도 대주교 예하께서 마귀 들림 따위는 전혀 없다고 결정 내리신 바람에 수녀원이 수치와 몰락에 빠지게 됐어요. 말도 안 되게 불공정한 일이지요! 

  그러면서 수녀들은 로바르데몽이 추기경 예하와 국왕 폐하께 간언하여 일을 바로잡아 달라고 애원했다. 

 

  남작이 공감하는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약속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마녀재판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추기경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실 터인가? 오오, 그걸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돼.  

 때로 리슐리외는 마녀재판을 아주 진지하게 대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몽테뉴나 샤롱[각주:1]의 제자들한테서나 나올 법하다 싶은 코웃음을 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흠, 위대한 인물은 지존과 변덕스러운 아이와 야수의 혼합물처럼 모셔야 해. 그러면서 지존에게는 순종하고, 어린애는 어르면서 등골 빼먹고, 야수는 잘 달래다가 흥분한다 싶으면 피하는 거지. 초인간적인 군림과 표준 이하의 포악함과 어린애 변덕이라는 이 비상식적인 삼위일체를 부주의한 발언으로 심기 건드려 심각한 불상사에 봉착한 궁정 신하가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수녀들이야 저들 편한 대로 울부짖고 애걸할 수 있지만,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알아내기 전에는 그들을 돕고 나설 의향이 로바르데몽에겐 전혀 없었다. 

 

  며칠 지나 루덩 시가 존귀한 인사를 맞이하는 영광을 누렸다. 앙리 콩데 공.[각주:2] 왕실의 이 존재는 악명 높은 남색자인데, 게다가 모범적인 (위선적인) 신앙심에다 가장 야비한 탐욕까지 겸비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한때 추기경의 반대자였지만, 리슐리외가 부동의 입지를 굳힌 이제는 예하의 가장 알랑거리는 신봉자들 중 하나가 됐다. 

  대공은 마귀 들린 수녀들 얘기를 듣자마자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미뇽과 수녀들이 대공을 즐겁게 해 드린다는 생각에 몹시 행복했다. 로바르데몽과 숱한 수행원을 거느리고 대공이 수녀원에 도착하자 미뇽이 영접하여 채플로 모시고, 거기서 성대한 미사가 열렸다. 

 

  처음에 수녀들은 아주 경건하고 단정하게 처신했다. 그러나 성찬례가 시작되자 원장수녀와 클레어 수녀, 아그네스 수녀가 발작을 일으켜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며 음란한 말을 신음 섞어 내뱉고 신을 모독하는 소리를 내며 으르렁댔다. 그러자 다른 수녀들도 똑같이 따라하니, 두어 시간 동안 예배당 전체가 곰 사육장과 유곽이 뒤섞인 곳처럼 보였다. 

  그 광경이 대공 전하께는 엄청난 인상을 일으켰다. 콩데 공은 수녀들한테 마귀가 들었음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이 사건을 당장 예하께 보고하라고 로바르데몽을 다그쳤다

 

고관이 참석한 엑소시즘

 

  한 목격자가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나 전권대행은 이 기묘한 장면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객사로 돌아와서는 수녀들의 비참한 상태에 측은함을 한가득 느꼈다. 그런 감정을 감추기 위해 그랑디에의 친구들을 만찬에 초대하면서 그랑디에도 불렀다.」 

  그것은 유쾌하고 달콤한 파티였을 것이다. 

 

  로바르데몽이 하도 조심스럽게 굴며 몸을 사리자 주임신부의 적대자들이 박차를 가하기 위해 새롭고 더 심상치 않은 비난거리를 들고 나섰다. 

  그랑디에는 신앙을 저버리고 하느님께 반역하고 수녀원 모든 수녀들에게 마법을 건 것만이 아닙니다. 추기경 예하를 두고 추잡한 비방의 글을 쓴 작자이기도 해요. <루덩 구두장이 여자의 서신>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이 있는데, 여섯 해 전인 1627년에 인쇄된 게 바로 그겁니다. 

 

  그랑디에가 이 글의 작자일 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 서신에 나오는 여인과 실제로 친하게 지내고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한때 그녀의 정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그가 그걸 썼을지 모른다는 짐작이 전혀 허튼소리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캐서린 암몽은 똑똑하고 예쁜 프롤레타리아인데 1616년 왕비 마리 메디치[각주:3]가 루덩에 머물 때 눈길을 끌어 시중들다가 곧 공식적으로는 왕실 제화공, 비공식적으로는 왕실의 절친한 친구요 막일꾼이 되었다. 블루아에 유배중인 왕비를 모시면서 캐서린이 간간이 루덩 고향집을 찾아오던 때 그랑디에가 그녀를 알았다. 아주 내밀한 사이였다고 말들 했다. 

  나중에 다시 파리에 돌아가서, 글을 쓸 줄 아는 캐서린이 그랑디에한테 편지를 계속 보내 궁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세하게 전했다. 편지마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그랑디에가 짜릿한 대목을 친구들한테 읽어주곤 했다. 그 친구들 중에 당시 검찰관이요 미녀 필리프의 부친인 트렌캉도 있었다. 바로 그 트렌캉이 친구에서 철천지원수로 바뀌어 이제 캐서린 암몽의 편지 수신인을 <구두장이>의 작자라고 고발한 것이다. 이번에는 로바르데몽이 굳이 속내를 감추려 들지 않았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마녀며 악마들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실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행정 처리 방식이며 그의 가족과 그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리슐리외의 정치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삭탈관직과 유배를 자초함이었다. 그를 모욕한다는 것은 교수대에서, 혹은 (1626년 칙령에 따라 최고 권력의 명예를 괴문서로 훼손하는 짓은 대역죄로 선포된 만큼) 심지어 장작더미 위 기둥에 묶이거나 마차바퀴 위에서 죽음을 무릅쓴다는 뜻이었다. <구두장이>를 인쇄했다는 이유 하나로 불쌍한 인쇄공은 이미 갤리선으로 쫓겨났다. 그런 마당에 주역인 작자가 붙잡힌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이번에는 자신의 열정을 예하께서 확실히 알아주리라 확신한 로바르데몽이 트렌캉이 늘어놓는 말을 열심히 귀담아들었다. 메스멩도 빈둥거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그랑디에는 수도사와 탁발수사들의 공인된 적이고 루덩의 수도사와 탁발수사들은 극소수를 제하고는 그랑디에의 공공연한 적이었다. 카르멜회 수사들이 그랑디에를 증오할 가장 중요한 이유를 제법 지니고 있었지만 이 수도회는 공세를 퍼부을 만한 위치에 있지 못했다. 

  한데 카푸친회는 주임신부의 수완에 덜 시달렸지만 그에게 타격을 가할 힘은 카르멜회보다 훨씬 더 컸다. 왜냐하면 카푸친회 수사들은 조셉 수사의 동료로서 그와 늘 연락을 주고받는데, 바로 이 막후 인물이 추기경의 막역지우요 주된 조언자요 오른팔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랑디에를 겨냥한 새로운 비난과 고발을 메스멩이 믿고 털어놓은 상대는 흰옷의 카르멜회 수사들이 아니라 회색 수도복을 입은 카푸친회 탁발수사들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 즉시 조셉 수사한테 보내는 서신이 작성됐고, 때마침 파리로 돌아가려는 로바르데몽에게 사적으로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작이 위임을 수락했다. 

  그날 저녁 로바르데몽이 그랑디에와 그의 친구들을 작별 만찬에 초대했다. 남작이 주임신부의 건강 위해 축배를 들고, 그와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고, 그가 사악한 적들의 음모에 맞서 벌이는 투쟁을 힘닿는 한 돕겠다고 약속했다. 얼마나 따스한 마음씨를 얼마나 적시에 너그럽게 보여주었던가! 그랑디에가 눈물 핑 돌 정도로 감동했다

 

  다음날 로바르데몽이 시농으로 떠났고, 거기서 루덩의 주임신부가 유죄라고 광적으로 믿는 사람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바레가 국왕 전권대행을 극진히 환대하고, 그의 요청에 따라 엑소시즘 기록을 전부 건넸다. 엑소시즘 중에 수녀들이 그랑디에를 마법사라 비난한 대목들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날 조반을 먹고 난 뒤 로바르데몽이 지역의 귀신들린 여인들 몇몇이 하는 괴상한 짓거리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러고는 엑소시스트와 작별하고 파리로 출발했다. 

 

잿빛 추기경 조셉 수사
Joseph Leclerc Tremblay (1577-1638)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조셉 수사와 면담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 진홍빛 추기경과 잿빛 추기경[각주:4] 두 분 예하를 모시고 더 결정적인 협의를 했다. 로바르데몽이 바레가 작성한 엑소시즘 기록을 낭독하고, 조셉 수사는 카푸친회 형제단이 보내온 서신을 읽었다. 서신에서 수사들은 주임신부를 오랫동안 수색해온 <구두장이>의 작자라고 고발했다

 

  리슐리외는 이 사건이 다음 국무회의에서 숙의하기에 충분히 중대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지정된 일자에 (1633년 11월 30일) 국왕과 추기경, 조셉 수사, 국무비서, 대법관, 로바르데몽이 모였다. 루덩 수녀들의 마귀 들림이 첫 번째 의제

  로바르데몽이 간결하지만 많이 윤색하여 제 얘기를 했다. 악마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으며 두려워하는 루이 13세가 뭔가 대책을 취해야 한다고 대뜸 결정했다. 그 자리에서 즉각 문서가 작성돼 국왕이 서명하고 국무비서가 부서한 뒤 노란 밀랍으로 봉인하여 국새를 찍었다. 이 문서에 의거하여 로바르데몽이 루덩으로 가서 마귀 들림 사실을 조사하고 그랑디에를 겨냥해 악마들이 내뱉은 비난이 온당한지 검증하여 만약 비난이 근거가 있다면 마법사를 재판에 회부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천육백 이십년 대와 삼십년 대에 마녀 재판은 여전히 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어간에 악마와 내통했다 하여 기소된 수십 명 가운데서 리슐리외가 시종일관 민감하게 관심 보인 사람은 그랑디에가 유일했다

  카푸친회 엑소시스트인 트랑킬 신부는 1634년 로바르데몽과 악마들을 대신하여 쓴 책자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추기경 예하께서 보여주신 열성 덕분이며, 그래서 우리는 감사한다. 이런 사실은 예하께서 로바르데몽 남작에게 보낸 서신들이 아주 잘 확인해 준다.」 

  국왕 전권대행으로 말하자면, 「그는 국왕 폐하와 추기경 예하께 상세하게 보고하기 전까지는 마귀 들림을 입증하는 조치를 아무 것도 취하지 않았다.」 트랑킬의 증언은 다른 동시대인들에 의해서도 확인되는데, 그들은 리슐리외와 그가 루덩에 파견한 에이전트가 거의 매일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기록한다. 

  (그런 거대한 인물이 소소하기 짝이 없는 사건에 그렇게 비상한 관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6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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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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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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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4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Pierre Charron (1541-1603) - 프랑스의 가톨릭 성직자, 신학자, 철학자, 설교가. 윤리학을 종교에서 분리해 독립된 철학 분야로 다루면서 17세기 새로운 사상 정립에 큰 역할. 몽테뉴의 제자이자 친구. <세 가지 진리>, 특히 <지혜론 de la sagesse>(1601)에서는 몽테뉴의 회의론에 가까운 사상을 발전시켰고, 몽테뉴의 관점에 가까운 새로운 세속 윤리 체계를 설파하여 앙리 4세의 지지를 받았다. [본문으로]
  2. Henri II de Bourbon, 3e prince de Condé (1588-1646) 프랑스의 왕족, 장군. 국왕 앙리 4세는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촌아우 콩데 공을 루이 13세가 태어나기 전까지 잠정적인 왕위 계승자로 인정했다. 루이 13세 치하의 프랑스 정치 상황을 그가 묘사한 것으로 알려진 역사적 일화가 유명하다. [콩데 공이 한때 자기 얼굴이 새겨졌던 메달에 관해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 그 메달 앞면에는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이라는 문구와 함께 루이 13세 프로필이 새겨진 게요. 그리고 뒷면에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프로필이 새겨져 있는데, 거기엔 이런 글귀가 둘러싸여 있지. “나에게 묻지 않고는 행동하지 말라”] [본문으로]
  3. Marie de Medicis (1575-1642) -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와 사이에 루이 13세를 보았음. 1610년 루이가 아홉 살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섭정에 나서면서 측근인 콘치니를 중용하여 프랑스가 이탈리아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기에 이르렀음. 권력욕 때문에 아들에 의해 블루아에 유폐됐다가 고문인 리슐리외의 중재로 1620년 화해, 리슐리외는 1620년 추기경이 되고 루이 13세의 신임을 얻어 이태 뒤 재상이 된다. 마리 메디치는 자기를 배신한 리슐리외를 제거하려다가 1630년 ‘속은 자들의 날’ 이후 리슐리외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브뤼셀로 달아났다. 나중에 쾰른에서 고독하고 궁핍하게 죽었다. [본문으로]
  4. Joseph Leclerc Tremblay (1577-1638) - 프랑스의 카푸친회 탁발수사, 늘 길고 낙낙한 잿빛 수도복을 입고 다니며 추기경은 아니지만 막후에서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헉슬리는 <잿빛 추기경>이란 제목으로 그의 전기를 썼고, 화가 장 레옹 제롬(1824-1904)은 그의 전신화를 그렸다. 라 로셸 사태를 배경으로 하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에도 조셉 신부로 등장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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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 수녀원 원장 잔느와 수녀들

 


 

4

 

하나님 섬김이라는 소명을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17세기 수녀원 생활이 죽도록 따분하게 보였을 터이다. 그날이 다 그날 같은 생활은 그저 자잘한 사건과 소문들, 가끔 들르는 방문객들과 담소, 혹은 여가에 시시한 손작업 등으로 그 단조로움이 조금 덜어졌을 뿐. 

수렝 신부가 여러 서신에서 짚을 엮어 만든 장식물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가 아는 많은 수녀들이 남는 시간 대부분을 이 작업으로 보냈다. 그들의 걸작은 역시 지푸라기로 만든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미니어처 지푸라기 마차. 그건 어떤 귀족 여성 후원자의 경대에 놓일 선물이었다. 

 

콜롱비에 신부가 방문동정회[각주:1] 수녀들에 관해 이렇게 적는다. 

이 수도회의 드높은 도덕적 지향과 개중에 고결한 수녀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담장 안에는 규율을 지키고 미사를 드리고 기도회에 다니고 고해성사를 보고 성찬례에 참여하지만, 그걸 다 그저 종이 울리고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수녀들의 행위에는 정성이 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네 작은 생각과 계획들로 바빠서 하나님 일에는 거의 무심하다. 

모든 따스한 감정은 수녀원 안팎에 있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쏟고 주님께는 그저 맥없고 진실성 없는 눈길만 돌리니, 그런 것은 그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든 영혼이 전능자에 대한 사랑으로 영원히 불타는 둥지가 되어야 할 공동체들이 평범하고 지루함 속에서 의미 없이 생활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녀원 모습

 

저 유명한 포르루아얄 수녀원[각주:2]장 라신[각주:3]에게 아주 감탄할 만한 공동체로 보인 까닭은 ‘그 객실들에는 적막이 지배하고, 수녀들이 대화에 끼어들려 안달하지 않고, 헛된 세상사에 관심 두지 않고, 심지어 이웃을 두고 뒷공론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포르루아얄의 이런 보기 드문 장점을 통해 우리는 그보다 못한 수녀원들의 결함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다. 

 

1626년 루덩으로 이전한 우르술라회[각주:4] 수녀원은 다른 여성 거처들보다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열일곱 수녀는 거의 젊은 귀족 영애들이었다. 그들이 수도생활에 들어선 까닭은 복음서 말씀을 따르고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계층의 구혼자들이 수락할 만한 지참금을 집안에서 마련할 여유가 못 됐기 때문이다. 여기 수녀들은 그 어떤 특별한 스캔들로도 경건함으로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켰지만 종교적 열성과 경건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루덩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 주민들은 절반이 신교도로서 수녀원에 아주 인색했고 수녀들한테도 돈이 없었다. 낡고 음울한 하우스 하나만 임차했는데, 그것도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다들 들어와 살기를 마다하는 건물이었다. 건물에 가구도 없어서 수녀들이 처음엔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들은 도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는 수업료로 생활할 요량이었지만 여학생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드 사질리, 데스쿠블로, 바르베지에, 라모테, 벨시엘, 댐피에르 같은 귀족 출신들이 제 손으로 갖은 잡일을 하게 됐고, 재계일인 금요일뿐 아니라 월, 화, 수, 목요일에도 식탁에 고기가 놓이지 못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던 끝에 그들을 구한 것은 속물근성이었다. 

 

루덩의 부르주아들이 알고 보니… 아주 적은 돈으로도 자기네 딸들이 좋은 프랑스어와 궁정 매너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한때 추방됐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재종누이와 수르디스 추기경의 더 가까운 인척과 후작의 작은딸과 푸아티에 주교의 질녀한테서 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수녀원에 기숙 학생들과 통학 학생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여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번영도 찾아왔다. 이제 지저분한 일은 하녀들이 맡고, 식탁에 쇠고기와 양고기가 다시 나오고, 마루에 깔렸던 짚 매트리스가 나무 침상으로 교체됐다. 

 

루덩 소도시 전경

 

이 새 공동체의 원장이 1627년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새 원장이 임명됐다. 그녀 이름은 ‘천사들의 수녀 잔느. 속세에서 이름은 잔느 벨시엘, 코제의 남작인 루이 벨시엘과, 또 남작 가문 못잖게 전통 있고 저명한 가문 출신인 샤를롯데 데실레의 딸이었다. 1602년생이니까 이제 이십대 중반.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쳐져서 몸매가 좀 기형이었다. 아마도 골결핵의 후유증이리라. 

잔느도 당대 대다수 귀족 영애들처럼 빈한한 교육을 받았다. 그 대신 그녀에겐 타고난 지능에다 한가락 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 성격 때문에 그녀가 다른 이들에겐 고통이 되고 제 자신에겐 최악의 적이 됐다. 

 

이 어린애 같은 사람은 기형적인 신체 때문에 볼품이 없었다. 자신이 추하다는 느낌과 혐오나 동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그녀에게 고질적인 분한을 일으켰다. 그 분한 때문에 누구를 좋아할 수도 없고 누구한테서 사랑받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다 보니 그들도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방어적인 갑각 속에 살며 자신의 적들을 공격할 때만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녀에게는 모든 사람이 선험적으로 적이었으며, 난데없는 빈정거림이나 이상하고 발작적으로 터뜨리는 조소가 공격 수단이었다

 

수렝이 그녀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알고 보니, 원장수녀의 기질은 뭔가 특이하게 명랑해서 늘 날카로운 웃음과 조롱을 날리는데, 그런 고약함은 그녀 안에 들어앉은 악마 발람이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의 성격은 하나님 사업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진지함과 정반대이며, 뭔가 악의적인 기쁨이 그 영혼을 차지하여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필수적인 양심의 가책을 파괴했다

이 불길한 까불거림을 한 시간만 대해도 내가 여러 날 정성껏 쌓은 공력이 무너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나운 적에게서 그녀가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하려고 난 무던히 애썼다.」

‘하나님 사업’과 아주 잘 양립할 수 있는 웃음이 있다.
곧, 겸허하고 자기비판적인 웃음, 온후하고 너그러운 웃음, 이 세상의 비뚤어진 부조리에 대한 좌절과 분개를 대신하는 웃음. 

 

그러나 잔느의 웃음은 그런 것들과 전혀 달랐으니, 그저 조소 아니면 냉소뿐이었다. 그런 웃음을 늘 다른 이들한테만 퍼부었지 자신에게는 절대 돌리지 않았다. 곱사등이의 비웃음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다 깔보면서 자기 아래에 두려고 들었다. 또 그녀의 냉소란 잠깐일지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갈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대 기준에 엄숙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모든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요 조롱이었다

 

루덩 수녀원 원장수녀 잔느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숱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렇게 불쾌한 아이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부모는 딸을 인근 수녀원 원장으로 있는 늙은 숙모에게 보내고 말았다. 두세 해 만에 불명예스럽게 돌아왔다. 다른 수녀들이 그녀와 잘 지내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세월은 흐르는데 부친 저택에서 사는 게 어찌나 지겨운지 종교적 은둔처라도 차라리 집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그러자 푸아티에에 있는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들어가서 초심자 수련 기간을 보내고 수도서원을 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훌륭한 수녀가 못 됐다. 하지만 집안이 부유하고 영향력 있기 때문에 방자한 피후견인을 수녀원장이 꾹꾹 참으며 데리고 있게 됐다. 

그러다가 거의 하룻밤 새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수녀원이 루덩으로 이전한 뒤 잔느가 아주 경건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바뀐 것! 푸아티에에서는 말도 안 듣고 열의도 안 보이고 제 할 일에도 태만하던 젊은 여인이 이제 완벽하게 독실한 사람이 되어서 온유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처신했다. 그 놀라운 변화에 감명 받은 늙은 수녀원장이 퇴임하면서 잔느 자매를 강력한 후임자로 추천했다. 

 

그 개심 사연을 15년 뒤 잔느가 이렇게 기술한다. 

「난 늘 지도부 눈에 띄려 애썼고, 숙사에 수녀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수녀원장은 곧 공동체의 모든 일을 나한테 맡기게 됐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일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좋은 자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수녀원장에게 숱한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난 그녀 기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그녀는 곧 나를 모든 이들에게 모범으로 삼았다. 그녀는 내가 선하며 덕을 행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한껏 부풀려서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좋게 보이고 내 성향에 호감을 갖게끔 위선을 떨었다. 수녀원장은 나한테 많은 특전을 용인했으며, 그것을 난 마음껏 써먹었다. 그녀 자신이 선하고 덕이 있는데다 나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한다고 믿는 만큼 나를 훌륭한 수도사들과 대화하도록 자주 불렀다. 난 그녀 비위를 맞추려고 거기에 따랐다. 게다가 그건 시간 죽이기에도 좋았다.」 

 

훌륭한 수도사들과 나누는 대화는 숙사의 널따란 객실을 두 부분으로 가른 철창을 통해 벌어졌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영적 삶에 관해 새로 번역된 책들을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었다. 

어떤 날은 블로시우스[각주:5]의 해설서, 또 어떤 날은 테레사 성녀의 자서전 혹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혹은 천사들의 본성에 관한 델 리오의 저술 등이었다. 

 

그런 책들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수녀원장이며 수도사들과 토론하면서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바뀌는 것을 알았다. 객실에서 나누는 경건한 대화와 신비주의 서적 공부는 이제 더 이상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각별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됐다. 단, 그 목표가… 

그녀가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지혜로운 카르멜회 수사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그건 「영적 삶으로 돌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제 지능을 뽐내고, 모든 수녀원에 있는 다른 수녀들을 능가하려는 욕심에 지식을 채우기 위함일 뿐이었다.」 

 

루덩 수녀원 수녀들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곱사등이의 갈구가 또 다른 출구를 찾았다. 남들을 교묘하게 다루는 새롭고 재미난 분야 말이다. 빈정대고 냉소 터뜨리기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신비주의 신학과 영성 연구에 들인 결과, 그 분야에서 학식 갖춘 상담자요 전문가가 됐다. 

새로이 습득한 지식에 기고만장한 그녀가 이제 다른 자매들을 더욱 더 경멸과 연민이 출렁이는 느낌으로 내려다보며 흐뭇해했다. 

 

그래, 이 불쌍한 멍청이들이 신앙심은 깊어서 정결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고 있지. 그러나 정결이 도대체 뭐야! 무지와 둔감함일 뿐이잖아! 특별한 은혜에 대해 저들이 뭘 아나? 영적인 접촉을, 황홀함과 계시를, 감각의 유혹과 죽임을, 제까짓 것들이 알기나 하겠어?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 절로 만족스레 나왔다. 

흥, 저들은 아무 것도 몰라! 반면에, 난 사실상 모든 지혜를 터득했고, 하고 있잖아!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유난히 처지고 키가 난쟁이만한 그녀가 그렇게 우쭐댔다

 

(마담 보바리는 생을 비극적으로 마쳤다. 자신을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그렇다...  <루덩의 악마들> 4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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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Order of the Visita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 성모 마리아 방문 동정회. 1610년 살레의 성 프랑수아(1567-1622)와 성 쟌느 샹탈(1572-1641)이 설립. [본문으로]
  2. Port Royal -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 1204년 설립돼 17세기에는 얀센파의 거점. 유명한 학자며 계몽된 교육자들이 이 공동체 주변에서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 [본문으로]
  3. Jean Racine (1639-1699) - 고전주의 시대 프랑스 비극 작가, 문필가.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로 꼽힌다. 포르루아얄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피제니’, ‘페드르’. [본문으로]
  4. 우르술라회 - 로마가톨릭 여성 수도회. 성 안젤라 메디치가 1535년 11월 이탈리아 브레시아에 설립. 주로 소녀들 교육, 병자와 빈자 구휼 활동. 그들의 수호성인은 우르술라 성녀. [본문으로]
  5. Blosius - 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인 316년 아르메니아에서 처형된 순교자, 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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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우울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희망이 있어, 그럴 듯한 스캔들을 만드는 거지. 그자를 현장에서 붙잡을 수 있게끔 어떡하든 상황을 조장하는 게요. 그 죽은 양조업자의 과부하고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약제사가 우울한 표정으로 알렸다. 

  그쪽에는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정보가 없어요. 여편네가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 그 집 하녀는 매수가 안 되고… 그렇잖아도 내가 간밤에 덧창 틈으로 동정을 살피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누군가가 이층 창문에서 철철 넘치는 요강을 쏟아 붓지 뭐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주임신부는 여전히 태연하고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평소처럼 제 비즈니스와 쾌락을 즐기며 나다녔다. 곧 아주 이상한 소문이 약제사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임신부가 마드무아젤 드브루와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군. 

  아, 그 고상하고 독실한 체하기로 유명한 마들렌하고? 

 

  마들렌은 르네 드브루의 세 딸 가운데 둘째이고, 르네 드브루는 재산이 넉넉한데다가 귀족이며 지역 최고 가문들과 혈연관계가 두터웠다. 마들렌의 두 자매는 이미 시집을 갔다. 하나는 내과의한테, 또 하나는 지방 대지주한테. 그러나 서른이 다 된 마들렌은 미혼으로 자유로이 살았다. 구혼자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그녀가 다 퇴짜를 놓았다. 집에 남아서 늙은 부모를 보살피며 자신만의 관심사를 생각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그녀는 신중하고 초연한 태도 아래 강한 감정을 억누르며 조용하고 수수께끼 같은 젊은 여인 축에 들었다. 나이 든 세대는 그녀를 칭찬하지만 동갑나기와 후배 중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까칠하고 젠체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또 자기네 요란한 놀이에서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흥을 깨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나치게 독실했다. 

  종교야 아주 좋지, 하지만 사생활의 신성함을 침범당해서야 되겠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툭하면 성찬례를 받고 하루걸러 고해를 하고 성모 상 앞에서 몇 시간씩이나 무릎 꿇다니 말이야. 

  아냐,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너무 심해. 

  그들이 그녀를 멀리했다. 그건 마들렌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 부친이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친이 암에 걸렸다. 노부인이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병치레하는 동안 그랑디에가 자주 찾아왔다. 배부른 줄 모르는 과부와 검찰관 딸의 일만으로도 정신없지만, 가엾은 여인에게 종교적 위안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죽음의 침상에서 드부르 부인은 딸한테 그의 조언을 잘 따르라고 당부했다. 주임신부가 마들렌의 물질적, 영적 문제들을 제 일처럼 잘 지켜주겠노라 약속했다. 나중에 약속을 지켰다. 비록 자신의 특유한 방식으로 했지만.

 

  모친이 죽고 한동안 마들렌은 세속 인연을 다 끊고 수녀원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 생각을 영적 조언자한테 밝히면서 상담했을 때, 그가 그 계획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랑디에가 강력히 주장했다. 

  수녀원 안보다 바깥에서 당신은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오. 우르술라회나 카르멜회의 수녀가 되면 자기 재능을 감추는 꼴이 될 게요. 당신 자리는 여기, 루덩에 있소. 당신 소명은 썩기 쉬운 허영심만을 생각하는 멍청한 처녀들한테 반짝이는 지혜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오. 

 

  그가 청산유수로 말했고, 그 말에는 신성한 영력이 있었다. 두 눈에서 불길이 일고, 내면의 열기와 영감으로 얼굴이 환히 빛나는 듯했다. 마들렌이 생각했다. 이분은 사도처럼 보여, 천사처럼 보여. 이 말이 다 옳아,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녀가 양친 모시고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 집이 아주 어둡고 쓸쓸해 보였기에 거의 모든 시간을 친구인 (거의 유일한 친구인) 프랑수아즈 그랑디에와 함께 보냈다. 그녀는 사제관에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둘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깁거나 성모나 성인들을 위해 화려한 수를 놓으며 앉아 있는 자리에 때때로 그랑디에가 끼어들었다. 

이보다 더 자연스러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세상이 갑자기 더 환해지고 신성한 의미로 충만한 것처럼 보였으며, 마들렌 얼굴이 행복에 겨워 장밋빛이 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랑디에가 제 그물에 걸려들었다. 그의 전략은, 그건 바로 노련한 유혹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인데, 겉으로는 냉담한 척하면서 상대 마음에 불을 지피고, 그걸 정점까지 끌어올린 뒤 결국 제 교활함의 결실을 따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캠페인이 진척되면서 또 뭔가가 잘못 되고 있었다. 혹은, 뭔가가 잘 되고 있었다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저 관능적 만족이나 또 하나의 순진한 제물에게서 거두는 헛된 승리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분방한 기질의 소유자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로 바뀌었다. 이건 도덕적 성장에서 중요한 행보. 하지만 가톨릭교회 성직자에게 혼인이란 윤리와 신학과 교회와 사회라는 측면에서 숱한 곤경을 거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성직자의 독신주의에 관한 소론을 쓴 이유는 바로 그런 곤경에서 조금이라도 헤어나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부도덕한 이단자라 여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면서도 강력한 욕망으로 생긴 행동 방침을 단념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 충동이 본질적으로 좋으며 더 높고 더 풍성한 삶을 향한 것이라 인식될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바로 이런 면에서, 특정 시대와 지역에서 유행하는 철학 용어들을 동원하여 비정통적 행위를 당대 세태에 맞추면서 충동이나 본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흥미진진한 문학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의 소논문은 이런 감동적인 옹호 장르에서 상당히 특이한 모델이었다. 그는 마들렌 드브루를 사랑하며 이 감정에 추한 게 전혀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의 규율로 보자면, 가장 행복한 육적 사랑마저도 악으로 인식됐다. 

  따라서 그런 규율이 축자적으로 해석돼서는 안 되며, 자신이 불혼 서약을 하면서도 그걸 꼭 지키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논거를 찾아내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게 옳은 행동이라고 확신시키는 논거를 찾기란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한텐 식은 죽 먹기. 그에게는 제가 쓴 소논문의 논리가 참으로 그럴듯해 보였다. 

 

  더욱 놀랍게도, 그런 논리가 마들렌이 보기에도 전혀 흠이 없었다. 종교적 성향에 지나치게 기울고 신념이 아니라 습관과 기질에서 정조를 지키는 그녀는 교회 법규를 지상명령으로 간주했기에 순결 깨는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면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본성에 어울리는 열정으로. 가슴에 그런 이유가 있는 마당에 그랑디에가 불혼 서약이 절대적인 게 아니며 성직자도 혼인할 수 있다고 입증하자 그 말을 믿었다. 

  만약 간통이 아니라 교회가 축복하는 혼인으로 사랑하는 이와 맺어졌다면 그녀는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사랑할 수 있었으리라.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그녀의 의무였을 터이다. 사랑의 논리가 완벽했다. 연인이 쓴 소논문의 윤리적, 신학적 논거가 마들렌에게는 아주 미덥게 보였다.

 

  그랑디에는 드브루 부인한테 한 약속도 지켰다. 즉, 언젠가 밤에 어둠침침하고 메아리만 울리는 교회당에서 자신이 후견을 맡은 처녀와 혼례를 치른 것.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는가? 

  성직자로서 그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고는 이제 신랑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그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성직자 역할로 돌아온 그가 축사를 읊조리고 다시 신랑으로 돌아가서 그 축사를 무릎 꺾고 받았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의식이었다. 법과 관습과 교회와 국가에 개의치 않고, 그들은 예식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그러니 하나님 눈에도 그 혼인이 적법한 것이라 확신했다.[각주:1]

 

그랑디에 신부와 마들렌의 혼인

 

  그러나 하나님 눈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사람들 눈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루덩의 선량한 주민들 관점에서 마들렌은 주임신부의 또 다른 내연녀일 뿐이었다. 

  순진하고 얌전한 듯싶지만 사실은 sainte nitouche[각주:2] 였던 거야. 

  숙녀인 체했지만 매춘부라는 게 금방 드러났어. 

  법의 걸친 저 프리아포스[각주:3]에게, 비레타 쓴 숫염소에게, 가장 몰염치한 방식으로 제 몸뚱이를 내준 거지! 

 

  아담의 약제용 악어 아래 저녁마다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가 가장 크고 원한이...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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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1560년 푸아티에 지방의 위그노 교회 회의록을 보면, 성직자들이 내연녀와 몰래 혼인하는 일이 아주 잦았다. 이때 여자가 칼뱅파 신자이면, 교회의 중대한 문제가 됐다. - 저자 주. [본문으로]
  2. ‘성녀 니뚜슈’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관용적 표현을 의인화한 것. 직역하면, ‘남자를 멀리하는 성녀’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마치 성녀라도 되는 듯이 굴며 남자와 손가락만 스쳐도 큰 봉변당한 양 호들갑 떠는 여자를 놀리는 데 쓰는 표현. [본문으로]
  3. priapus - 그리스, 로마 전설에서 남근으로 표시되는 풍요의 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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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리버 리드, 영화 악마들, 켄 러셀 감독,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3)

 

5

 

 

  그의 삶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졌다. 30년대 중반 ‘평화서약 연합’의 반전 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이후 나치 치하에서 박해받는 유대인들 인권 수호에도 나섰다.

 

  1937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역사가요 과학 저술가, 철학자인 제럴드 허드(Heard)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의 온후한 기후가 시력 향상에 도움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와서, 지역의 지성인들이며 힌두이즘과 불교에 심취한 지식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주로 로스앤젤레스 남부에서 죽을 때까지 살게 됐는데 처음 한동안은 뉴멕시코 주 타우스라는 마을에 머물기도 했다. D. H. 로렌스가 20년대에 거주한 이후 작가와 화가들의 작업지가 된 여기서 헉슬리는 에세이 <수단과 목적>을 썼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해방, 평화, 정의, 형제애’를 꿈꾸기는 해도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뜻을 함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검증한다. 

 

  1938년 크리슈나무르티를 알게 되면서 그 가르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허드를 통해 동양의 종교와 철학을 연구하는 베단타학파 회원이 되고 이태 뒤 젊은 영국인 소설가 이셔우드를 이 서클에 소개한다. 세 사람은 명상과 채식주의, 아힘사(불살생) 원칙을 비롯해 철학과 종교에서 브라마난다의 폭넓은 지식에 심취하게 됐다. 

  유럽 문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아시아 종교를 발견한 것… 그 얼마 뒤에 쓴 에세이 <만년 철학>에서 헉슬리는 널리 알려진 몇몇 신비주의 가르침을 논한다. 

 

  에세이스트요 사회비평가로서 과학과 기술이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 문제를 주로 다루며 내보인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은 독자들한테서 저항감을 야기하기도 했다. 철학적 신비주의와 동양의 가르침, 초심리학 같은 영적 주제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일부 아카데미 서클에서는 그를 현대 사상의 리더요 당대 최고 수준의 지성인으로 여겼다. 말년에 남긴 언급 하나.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인류의 존재 문제를 숙고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들면서 나는 갖가지 물음에 대한 대답이 딱 하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로, 우리 각자가 조금만 더 착해지려 애쓰자. 그러면, 다 된다.

 

   로스앤젤레스 시기 이후 내놓은 다섯 편 장편소설 중 첫 번째인 <숱한 여름을 보낸 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할리우드 백만장자 이야기로, 1939년 픽션 부문에서 영국의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을 받았다. 특유의 위트와 지적 달변이 가득한 이 풍자소설에서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을 거론하는데, 개중 몇몇은 나중에 그의 마지막 장편인 <>에서 주된 주제가 된다.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몰려든 많은 유럽 작가들이 그랬듯이, 헉슬리도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애니타 루스의 소개로 MGM과 접촉하여 이셔우드와 공동 집필 등으로 여러 편을 썼지만 제대로 빛을 본 것은 <오만과 편견> 정도. 할리우드는 헉슬리의 성향이며 추구하는 바와 잘 안 맞았다.

 

   50년대 초 내놓은 논픽션 <루덩의 악마들>은 그의 작품 활동 지평에서 상당히 독특하며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역사적 일화에 대한 눈부시게 상세한 심리 탐구. 

    

  인간 지각의 확장과 영성에 (그의 용어로는, 자기초월) 관한 관심으로 마지막 십년을 거의 다 보냈다. 

  메스칼린이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1953년 전문의의 관리 하에 직접 실험에 나섰다. 주변 세계 지각에 관한 실험 결과물이 바로 유명한 철학적 에세이 <지각의 문>과 속편 <천국과 지옥>. 이는 보편적 행복의 공식을 찾아내려는 몸부림. 

 

  20세기 가장 유명한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의 저자가 이젠 다양한 사이키델릭을 실험하면서 지각의 확장 수단을 찾으려 애썼다. 예전에는 환영을 보는 이들과 신비주의자들과 예언자들한테만 허용된 영역으로, 보통 사람들도 지각을 확장함으로써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일까. 

 

  <지각의 문>은 60년대 수천 명 급진적 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됐고, 그 저자는 히피와 사이키델릭 운동의 ‘영적 아버지’가 됐으며, 한 록그룹으로 하여금 ‘The Doors’라는 이름으로 전설이 되게 했다. 

 

  이런 흐름에서 헉슬리의 계승자들이 나타났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주요 작가인 윌리엄 버로우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작가 켄 키지,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톰 클레이튼 울프, 페루 태생으로 <돈 후안의 가르침>의 작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같은 이들.

 

   1955년 아내 마리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 직전에 소설 <천재와 여신들>을 발표. 이듬해 이탈리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의 지각 확장 실험을 도와 오던 로라 아처라와 재혼했다.  

   

  66세가 되던 1960년 암 진단을 받은 뒤 마지막 장편 <>을 쓴다. <멋진 신세계>에서 삶의 극단적인 합리화가 물질적 번영과 더불어 사람들의 정신적 황폐를 초래함으로써 무시무시한 미래 형상을 제시한 작가가 이제 <섬>에서는 동양의 철학과 정신에 눈길을 돌리며 정신적 교착에서 벗어날 출구를 모색한다. 

  가상의 섬 팔라에서 사람들은 서구 물질문명의 처방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산다.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 엽기적인 줄거리와 잘 엮인 <섬>은 헉슬리가 인류에게 남긴 유언.  

 

  1962년 인간 잠재력을 주제로 에살렌 대학에서 행한 강연은 이후 ‘인간 잠재력 회복 운동’의 모태가 됐다.

  1963년 11월 22일 후두암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해서 종이쪽에 적은 글귀로 아내한테 뜻을 알렸다. 

  ‘LSD 100 마이크로그램 피하 주사.’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지각의 문’을 그렇게 장식했다. 아내 로라가 쓴 헉슬리 전기 <이 영원한 순간>을 보면, 그녀는 오전 11시 45분 주사를 놓고 두 시간 뒤 한 번 더 투여했다. 그날 17시 21분 할리우드 집에서 평온하게 영원한 안식처로 떠났다. 

 

  그의 죽음에 대한 언론 보도는 그 몇 시간 전에 발생한 케네디 암살과 <나니아 연대기> 작가 C. S. 루이스의 사망 소식에 가려 그의 명성에 비해 크지 못했다. 

  이 예사롭지 않게 일치한 죽음이 보스턴칼리지 철학 교수 피터 크리프트에게 영감을 주었고, <천국과 지옥 사이 - 죽음 저편 어딘가에서 존 F. 케네디와 C. S. 루이스와 올더스 헉슬리의 대화>라는 장편소설이 나왔다. 

 

6

 

 

   인간과 사회의 발전 가능한 길들을 모색하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대열에 들어선 헉슬리는 마지막 장편 <섬>에서 인류 미래에 대한 회의론을 극복했다. 노년 들어 그는 에세이 제목 <지각의 문> 같은 인생 방향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루덩의 악마들>에 묘사된 것 중 많은 부분은, 헉슬리의 관념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잘못된 ‘지각’을 지닌 후과이다. 즉, 탐욕과 두려움과 편협 때문에 잔느와 수녀들이 그랑디에를 상대로 행한 중상비방, 독단적인 교리에 의거하거나 빙자하여 엑소시스트들이 저지른 폭압, 일신의 안위를 위해 조작된 증거마저 인정하며 사법살인을 저지르는 어용 판사들, 독재를 굳히기 위해 종교재판을 부활하려는 목적으로 루덩 현상을 이용하려 한 리슐리외의 속셈 따위는…

  모두 헉슬리가 보기엔 이 비극적 사건의 주된 원인이라기보다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 모든  바탕에는 그들의 잘못된 지각(인식)이 도사리고 있던 것일 뿐. 

 

루덩의 악마들 1634

 

 

  가련하고 불행한 그랑디에 신부에 이어 소개되는 장 조셉 수렝 수도사의 스토리는 총체적 인식의 힘이 얼마나 크고 기적 같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즉, 주변과 만물에 대한 지각이 올바른 경우 영혼뿐 아니라 육신마저 치유될 수 있다는 점! 

 

  수렝이 영웅적인 의지를 발휘하여 갖은 유혹과 싸우고 엄격한 금욕을 실천하며 고행하는 동안에도, 매 순간 악령에 들린 듯이 악마들을 믿으며 원장수녀를 치유하려 들면서 정신력을 헛되이 소모하는 동안에는, 그런 젊은 예수회 수사가 헉슬리 눈에는 영적으로 완전치 못하고 잠재적으로 아픈 사람으로 보인다. 

  수렝이 이십년 가까이 심신증적 마비 상태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것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비정상의 필연적인 귀결로 해석된다.

 

  「사람을 자연과 떨어진 상태에서 묘사하는 시는 사람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실제로 확고하게 연관된 인간 외적 세계는 무시하고 인간 영혼 안에서만 하나님을 알고자 애쓰는 영성은 거룩한 존재의 충만함을 알 수 없다.」 (본문에서) 

 

  하지만 비정상은 결국 바로잡히고, 수렝이 아직은 확신 없는 발길을 낙엽 수북이 쌓인 정원으로 처음 내딛는… 장면은 상징적으로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니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시험과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고,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치유됐다. 혹은, 헉슬리의 용어를 쓰자면, 올바른 지각을 획득했다. 

 

  지각은… 사람이 교회의 독단적 교리에 구속된 상태를 훌훌 떨치고 자연과 하나 된다는 생각을 굳히는 순간부터 올바른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게 곧 조물주와 합일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니까.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헉슬리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 동시대인으로서, 헉슬리가 만년에 내놓은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즉, 인간과 신의 올바른 관계는 자연을 거스르거나 정복함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생긴다는 것, 바로 이 점을 마르셀이 우리한테 입증했다. 

  이런 생각들은 <명상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마스 트러헌은 조물주가 당신 피조물에 나쁘게 대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거꾸로, 모든 피조물을 통해 조물주를 찬미할 필요가 있으며, 모래알에서 무한한 공간을, 꽃송이에서 영원한 시간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트러헌이 보기에 백합들과 까마귀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존재한다. 자, 여기 모래가 있고, 모래 알갱이들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것들을 사랑스럽게 응시하라. 그러면 그 안에서 영원성도 무한성도 보게 되리니.」 (본문에서)

 

   수렝의 스토리는 마르셀 사상의 몇몇 기초적 명제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즉, 객관적 세계와 우리네 개인적이고 소중한 존재의 세계는 분명히 구분돼야 하며, 가혹한 혼돈 속에 있는 현실 자체가 아니라 주변 현실에 대한 우리네 태도가 중요할 뿐이라는… 

  삶이란 신비이고, 삶의 여러 신비함은 늘 직관적으로 납득된다. 우리가 도그마에 묶여 있는 한, 설령 그것이 아무리 무조건적 믿음을 주입하는 것이라 해도 삶은 우리네 의지와 따로 놀면서 제대로 살아 보려는 시도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헉슬리는 종교의 의미와 바른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개개인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버리도록 돕는다면 종교는 응당 깨달음의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깨달음의 길에서 장애가 될 수도 있으니… 공포와 협량, 의분, 기업애국주의, 십자군 식의 증오 같은 감정을 고무하고 정당화하며, 또 어떤 신학적 개념들과 어떤 신성한 단어들만 중언부언할 때, 그렇다.」 (본문에서) 

  「선행을 통해 성자와 합일하고 계시에 온유함으로써 성령과 합일하면 성부와도 의식적이고 변모되는 합일이 가능해진다. 이런 합일 상태에서 사물과 현상은 들뜨고 과장된 자아의 프리즘을 통해 감지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달리 말해, 최종 정체성에서 모든 존재의 신성한 근간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된다.」

 

   교회 역사가 증명하듯이 수렝은 1665년 행복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 (반면에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참회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했다). 이승에서 만물의 질서에 대해 새로운 지각을 얻은 덕분에 그에게 지복이 강림했는지, 우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수렝의 생각이 헉슬리가 언급한 방향으로 실제 발전했다면, 그는 자신이 섬긴 교회와 힘겨운 갈등을 겪었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교회는, 특히 예수회는, 자연을 죄악의 왕국처럼 간주했기에 모든 감각에 재갈 물리기를 요구했으니까.  

 

  헉슬리의 인식에서는 그와 반대로 자연과의 유기적 결합이 정신뿐 아니라 신체 건강의 담보이다. (마르셀의 영향이나 불교철학에서 퍼온 논거들과 함께, 만년에 아주 강하게 몰입한) 이런 사상은 그가 2차 대전 직후 정신적 굴곡을 겪고 나서 발표한 모든 글에 다 배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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