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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젊은 시절 모습

 


11

 

 

  비극에 우리는 참여하고, 코미디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비극의 저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 속에 있다고 느낀다. 독자나 청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코미디에서는 창작자와 문학적 피조물 간에, 구경꾼과 구경거리 간에, 일체화가 전혀 없다. 작자는 자신을 등장인물들에 투사하지 않으며 관객도 그들과 거리를 둔다. 작자는 바깥에서 보고 판단하고 묘사한다. 관객 역시 바깥에 머물면서 작자가 묘사한 것을 관찰하고 작자가 판단하는 대로 판단하고 코미디가 꽤 괜찮다면 웃음을 터뜨린다. 

 

  순수 코미디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뛰어난 코미디 작가들이 혼합된 코미디 장르를 택하는 것이며, 거기서는 동일시에서 밀어내기로, 또 그 반대로 초점이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순간에 우리는 그저 보고 판단하고 웃기만 한다. 그러다가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지켜보는 대상에 불과했던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나아가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관객들한테서 늘 밀어내기 반응을, 즉 순전히 코믹한 효과를 야기하는 불행한 사람 축에 들었다. 자신이 겪은 큰 고통에 독자들 공감을 사기 위해 고백 서신을 끊임없이 썼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 서신들을 오늘날 우리가 읽으면서 가련한 그녀를 코믹한 형상으로 여기는 까닭은 그녀가 철저하게 배우 같은 인생을 살았으며, 배우로서도 거의 늘 자신한테마저 정직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의 고백을 행하는 ‘나’는 때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잡탕이고 때론 악귀 들린 여인들의 여왕이요 때론 제 2의 테레사 성녀이며, 또 때로는 연기를 다 걷어치운 채 영악하고 일순간 진실한 젊은 여인, 자신이 누구이며 다른 더 공상적인 인물들과 어떻게 결부돼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야 응당 없었겠지만, 그러면서도 코미디 기법을 죄다 동원했으니, 한 마스크에서 다른 얼굴로 급전, 지나치게 과장된 언행, 자신의 진짜 욕망을 아주 단순하게 합리화하는, 경건하면서도 장황한 선동 따위가 그것이다

 

천사들의 수녀 잔느의 위선

 

  게다가 수신자들이 다른 쪽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생각지 않고 제 생각만 담은 편지를 수없이 써 보냈다. 예를 들어, 그랑디에 공소장에서 우리는 원장수녀와 몇몇 수녀가 후회하는 마음에 자기네 진술이 완전히 거짓이라며 철회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데, 허영심과 자만, 냉담함으로 채색된 진부한 공언이 가득한 자서전에서 자신의 가장 큰 범죄, 무고한 사람을 고문과 화형으로 몰아간 악의적인 거짓 증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명성을 안긴, 이 끔찍한 스토리 전반에서 미더운 일화를 단 하나도 들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이며 지은 죄에 대한 공개적인 참회 따위 말이다. 

  그보다는 로바르데몽과 카푸친회 수사들이 “당신의 통회는 악마들의 간책이고, 당신 거짓말은 거짓이 아니라 신성한 진실이오!” 하는 냉소적 장담을 믿는 쪽으로 돌아서자고 작심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녀가 이 사건에 대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한다 해도, 악마의 제물이었다가 하나님 기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필히 손상될 터이다. 잔느는 기이하고 비극적인 사실들은 은폐하면서 자신을 과장되고 허구적인 인물로 만드는 쪽을 택했다. 이야말로 코미디의 특성이 아니고 뭐겠는가.  

 

 장 조셉 수렝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은 삶의 여정에서 어리석고 무분별하고 심지어 괴기한 것을 많이 생각하고 쓰고 행했다. 그러나 그의 서신들과 회고록을 읽은 사람 누구한테든 그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형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괴상하고 어떤 면에서는 마땅하다 싶어도) 그가 겪은 고통에 우리는 금방 공동 참여자가 되니까

  그가 내면에서 꾸밈없이 자신을 알았던 것만큼 우리는 그를 안다. 그의 고백을 행하는 ‘나’는 언제나 장 조셉일 뿐이다. 그의 고백은 진실한 것이라 믿을 수 있다. 가련한 잔느처럼 자신을 몽상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녀처럼 비밀을 흘리고 숭고한 것을 우스꽝스럽고 익살맞은 것으로 바꾸며 끝을 맺는, 사람들 눈길 끌어 모으기에 급급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수렝이 거쳐 간 길고 험한 십자가 길의 시작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다. 이 사람은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니고 영적 완성이라는 최고 이상에 고무됐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잘못 해석한 교리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가뜩이나 허약한 체질이 아주 빨리 망가지고 불안정한 기질이 혹사당했다. 루덩에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아픈 사람이었다. 거기서 다른 엑소시스트들이 과도하게 적용한 악마 숭배를 저지하려 애썼지만, 결국 그 자신이 근본악이라는 생각과 사실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악령의 제물이 됐다

 

예수회 수사 장 조셉 수렝

 

  악마들은 자기네와 삶이 아니라 죽음을 놓고 싸우는 사람들의 맹렬함에서 힘을 빨아들인다. 광란에 빠진 수녀들과 악의에 찬 엑소시스트들은 악령을 더 키웠을 뿐이다. 악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작동하면서 대개는 의식적으로 억제되던 경향이 (엄격한 종교적 규율이 감응하는, 방종과 신성 모독의 경향이) 표면으로 튀어나왔다. 

  랑탕과 트랑킬은 ‘벨리아르에 지배돼 수족이 묶여’ 발작하다가 죽었다. 수렝도 그렇게 자초한 시련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각주:1]   

 

  루덩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엑소시즘을 시행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틈틈이 많은 서신을 썼다. 그러나 경솔한 친구인 아티시 신부에게 보낸 서신에서만 은밀한 속내를 드러냈다. 명상과 고행, 마음 정화 등이 그가 다룬 일반적 주제였다. 악마들과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았다. 한 수도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당신의 정신기도에 관해 말하자면 어떤 주제를 미리 정했음에도 거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보기엔 나쁜 징표가 전혀 아닙니다. 어떤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에 임하시라고 조언합니다. 

  예전에 당신이 얘기 나누고 소일을 돕기 위해 다레락 부인한테 들르곤 하던 때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때 당신은 그녀와 아무 이야기나 다 태평하게 주고받았지요. 무슨 얘기를 할까 미리 정하지 않고서도 서로 즐겁게 대화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친밀함을 만들고 키우겠다는 평범한 의도를 가지고 그녀한테 갔습니다. 하나님께도 바로 그런 식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다른 친구한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쓴다. 

  「우리 소중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하자는 대로 하시게. 그분께서 역사하실 때는 영혼이 제멋대로 놀지 않아야 하네. 그렇게 하시게, 그분의 사랑과 권능의 빛에 자신을 드러내시게. 분주한 근심걱정일랑 한 편에 밀어두게나, 그런 것에는 정화를 요하는 결점이 많으니까.」 

 

  그렇다면 영혼이 그 빛을 받아야 하는 이 사랑과 권능이란 무엇인가

  「이 사랑이 하는 역사는 부수고 깨고 무너뜨리고 나서 새롭게 하고 다시 만들고 소생시키는 것일세. 이 역사는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진정 달콤하네. 더 무서울수록 더 바람직하고 더 매혹적이야. 바로 이 사랑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송두리째 내놓아야 하고. 이 사랑이 자네를 사로잡고 소멸시킬 정도로 자네 안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 난 행복하지 못할 것이야.」 

 

  수렝의 경우엔 자신을 소멸하는 과정이 막 시작됐을 뿐이다. 1637년 거의 내내, 또 1638년 초 몇 달 동안 계속 아팠다. 하지만 간간이 차분한 상태가 찾아들기도 했다. 아직 견딜 만큼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꾸 벗어나는 게 병이었다. 이십오 년 뒤 그가 <다른 삶의 연구의 실험 과학>에서 이렇게 쓴다.

  「이 강박 관념에는 비상한 정신적 활기와 쾌활함이 수반됐는데, 바로 그 덕분에 인내하며 만족스럽게 이 멍에를 이겨낼 수 있었다.」

 

  사실, 지속적인 집중은 이미 불가능했다. 공부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생 초기에 쌓은 지식으로도 눈부신 글을 간간이 써 내기에는 충분했다. 제 뜻을 자유로이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모르고 입을 뗄 수나 있을까 염려하면서 죄수가 단두대에 오르는 심정으로 설교단에 오르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느꼈다. 

  「내면 감정의 출렁임과 강한 은혜의 열기를. 그 은혜가 하도 강해서 강력한 목소리와 생각을 가지고 가슴을 트럼펫처럼 확 쏟아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어딘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도관을 따라 힘과 지혜가 내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다가 급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파이프가 막히고 계시의 급류가 말랐다. 질환이 새로운 형태를 띠었다. 그건 하나님과 제법 정상적으로 접촉하는 영혼의 발작적인 강박 관념이 아니라 그 접촉과 빛을 완전히 차단하면서 사람을 본래보다 더 작은 뭔가로 웅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슷한 현상을 겪은 한 수녀에게 1638년도에 보낸 많은 서신들에서 수렝이 자기 질환의 새로운 단계를 묘사한다. 

 

  그의 고통은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기도 했다. 며칠이고 몇 주일이고 계속되는 고열 속에서 허우적대며 극도로 쇠약한 상태에 빠졌다. 어떤 때는 국부 마비 같은 것에 시달렸다. 아직은 수족을 좀 놀릴 수 있지만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고 종종 통증까지 수반됐다. 

  가장 작은 움직임도 고문이요, 가장 사소하고 평범한 일도 헤라클레스의 노동이었다. 예를 들어, 법의에 달린 호크 하나 끄르는 데도 두세 시간이 걸렸다. 옷을 다 벗는 것은 이미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거의 이십 년 동안 옷을 입은 채 잠잤다. 그러나 (지독히 혐오하는 이가 꼬이지 않게 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 셔츠는 갈아입어야 했다.  

 

  「속옷 갈아입는 일이 아주 고통스러웠다. 어떤 때는 지저분한 셔츠를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느라고 토요일 밤부터 주일 아침까지 날을 새기도 했다. 통증이 어찌나 심했든지, 그래도 가냘픈 행복을 찾는 듯싶다면 그건 언제나 목요일 이전이었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셔츠 갈아입을 생각을 하면서 목요일부터는 두려움에 떨었으니까.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이 고문을 다른 그 어떤 고통과도 기꺼이 바꾸었을 것이다.」  

 

  음식 먹는 일도 옷을 입고 벗는 것 못지않게 힘들었다. 셔츠는 일주일에 한 번만 바꾸었다. 그러나 고기를 자르고 포크를 입에 올리고 컵을 쥐고 기울이는 시지포스의 노동은 날마다 겪어야 하는 시련이었다. 입맛이 전혀 없는데다가 먹은 것을 다 토하거나, 그게 아니면 지독한 소화불량에 시달릴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 

 

  의사들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다. 사혈을 하고 하제를 써서 장을 세척하고 온욕을 처방했다. 다 소용없었다. 여러 증상은 분명 신체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원인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환자의 썩은 피와 병든 체액이 아니라 정신에 있었다

 

  (악마들이 떠남으로써 정신이 마귀 들림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 한 레비아탄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이제 싸움은 하나님이라는 이데아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념이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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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린도후서 6:15). 4대 악마, 사탄, 바알세불, 벨리아르, 몰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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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철창 너머로 대화하는 잔느 수녀

 


 

  하지만 수렝이 본 것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못 봤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그가 다른 수도사들처럼 가혹한 엑소시즘을 공공연히 벌이는 대신 피후견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 보낸다는 것. 그녀를 가르쳐서 (그녀의 악마들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완성의 길로 이끌려는 시도가 동료들한테는 그저 허튼짓으로 보였을 뿐이다. 더욱이 수렝 본인도 악령에 사로잡혀서 종종 엑소시즘을 필요로 하는 마당에

  (5월에 왕제인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악마들에 대한 호기심을 풀려고 왔을 때, 잔느 수녀 몸에서 불시에 출격한 이사카론이 수렝에게 들러붙었다. 마귀 들린 여인이 정신 멀쩡하게 조용히 냉소 짓고 있는 동안 엑소시스트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서 뒹굴었다. 그런 장면에 왕제야 당연히 좋아했지만, 수렝에게 그 일은 불가사의한 섭리로 인해 겪어야 한 숱한 굴욕의 일부였다.) 

 

  동료들은 수렝의 의도나 활동의 순수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행위를 무분별하다 여겼으며, 그런 무분별로 인해 험담이 나도는 데 쓴 입맛을 다셨다. 이미 여름 막바지에 수도회 관구장은 수렝을 보르도로 소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럿 접하게 됐다. 

 

  원장수녀 역시 시련을 적잖이 맛봐야 했다. 그녀는 성처녀라는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고, 그 역할에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 기대했다. 한데 그렇기는커녕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자매들과 대화할 때 그들에게 들러붙은 악마들을 통해 내게 많은 고통을 내리셨어. 내 행동과 생활방식이 바뀐 것을 보고 대다수 수녀들이 반감을 크게 품은 거지. 그들을 악령들이 자꾸 부추겼다. 원장수녀를 저렇게 바꾼 것은 바로 악마들인데, 이제 그녀는 너희를 멸시하면서 망신 주려 들 것이야! 내가 자매들과 있을 때마다 악령들은 몇몇 자매를 꼬드겨 내 언행을 비웃고 놀리라고 충동질했다. 그건 나한테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었고.」 

 

  수녀들은 엑소시즘 중에 원장수녀를 가리켜 ‘신을 섬기는 악마’라 불렀다. 수렝을 제외하고 다른 엑소시스트들도 정말 그런 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성 요셉한테서 묵상기도의 은사를 받았다고 잔느가 다른 수녀들한테 단언해봤자 소용없었다. “하나님 권세로써 정관(靜觀)의 경지에 오르고, 그리하여 큰 계시를 얻었으며, 우리 주님이 특별하고 은밀하게 내 영혼에 와 닿았어요” 하고 겸손하게 설명해봤자 씨도 안 먹혔다. 

거룩한 지혜의 이 살아 있는 샘물 앞에서 부복할 만도 했거늘 엑소시스트들은 이것이 마귀 들린 자가 흔히 겪는 망상이라고 폄하할 뿐이었다. 그런 몰이해와 냉혹함에 부닥치면 원장수녀가 주춤하여 광기에 빠지거나, 아니면 소중하고 선량하고 사람 잘 믿는 수렝 수사와 함께 다락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렝 수사조차 그녀한테는 고난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내렸다는 특별한 은혜 운운을 죄다 믿을 준비가 충분히 돼 있었다. 하지만 거룩함에 대한 그의 이상은 불편할 정도로 높고, 그가 평가하는 잔느 수녀 품성은 불편할 정도로 낮았다

  혹자가 자신을 교만하고 방탕한 사람이라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그런 불쾌한 진실을 다른 사람 입으로 듣는 것은, 차이가 아주 크다.

 

  잔느의 흠결을 들추면서 수렝이 만족을 얻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그런 면을 바로잡아 주려고 늘 애썼을 뿐이다. 그는 원장수녀가 악마들에 사로잡혔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악마는 제물의 흠결을 이용하여 권세를 부린다는 점도 굳게 믿었다. 흠결을 제거하면 악령도 떨어질 터. 그렇기 때문에, 수렝의 말에 따르자면, ‘기수를 안장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말을 공격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말은 공격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왜냐하면 잔느 수녀가 ‘완성을 얻어 신에게 나아가기로’ 굳게 결심했다 할지라도, 스스로는 이미 성자라고 여기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그저 지각없는 (혹은 지나치게 의도적인) 코미디언으로 볼 때 가슴 아팠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신성함으로 들어서는 과정이 지극히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장수녀 잔느

 

  수렝은 그녀가 체험하는 법열이나 무아지경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거기에 그녀가 우쭐거렸다. 암,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나 그보다 아직은 참회와 고행에 더 진지하게 대했다. 그래서 그녀가 주제넘게 굴 때마다 호되게 꾸짖었다. 그녀가 공개적인 참회나 수련수녀 신분으로 강등 같이 여봐란 듯한 속죄 장면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할 때, 수렝은 그런 것보다 작고 눈에 띄지 않지만 꾸준한 고행이 더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가끔 일어난 일이지만 그녀가 귀부인처럼 행세할 때면, 그는 그녀를 부엌데기처럼 대했다.

 

  그런 취급에 감정이 격해지자 그녀가 레비아탄의 오만한 분노나 신에 대한 베게모트의 불경스러움, 발람의 외설스러운 농담 따위에서 도피처를 찾았다. 

  수렝은 이때까지 악마들이 아주 즐기던 엑소시즘에 의존하는 대신 사납게 들끓는 그들한테 스스로 채찍질하라고 명령했다. 자기계발을 위해서는 거리낌 없음과 진짜 갈망을 늘 지니고 있는 원장수녀가 여기에 동의하자 다른 악마들도 따라야 했다. 악마들이 말했다. “우리는 교회에 맞설 수 있고, 성직자들한테 덤빌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암캐의 고집에는 저항할 수 없어!” 

 

  악마들이 저들 특질에 따라 불평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도 고행용 채찍을 참아냈다. 레비아탄이 가장 세게 때리고, 그 다음이 베게모트였다. 그러나 발람과 특히 이사카론은 통증을 지독히 무서워했다. ‘정욕의 악마가 채찍을 맞으며 울부짖는 장면은 정말 볼만했다’고 수렝이 말한다. 채찍질은 실상 가벼운 것이었다. 하지만 비명이 귀청을 때리고 눈물이 폭포 같았다. 

악마들은 정상 상태에 있는 잔느 수녀보다 아픔을 더 견디지 못했다. 한번은 레비아탄 때문에 야기된 심신증 증세를 떨치기 위해 그녀가 한 시간 내내 제 몸을 채찍으로 때렸다. 그러나 대개는 자기징벌 몇 분이면 악령들이 달아났고, 그러면 잔느 수녀가 완전한 경지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그건 고난의 행진이었다. 한데, 적어도 원장수녀가 보기에 완전한 경지에는 한 가지 중대한 흠이 있었다. 그건 수렝 신부가 쩍하면 강조하는 작은 고행처럼 사람들 이목을 끌지 못한다는 점. 잔느가 혼자 중얼거렸다. 

  넌 이미 정관의 경지에 올라섰어, 저 높은 곳과 사적으로 접하는 영광을 얻었어. 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사람들한테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없잖아! 

 

  자신이 받은 은혜를 사람들한테 말했지만, 그들 반응이라야 기껏해야 고개를 젓거나 어깨를 추썩이는 것일 뿐. 그녀가 축복받은 마더 테레사가 했을 법한 행동을 하고 다닐 때,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거나 화를 내며 그녀를 위선자라 불렀다. 더 설득력 있는 뭔가가, 사람들 눈길을 끌고 분명히 초자연적인 뭔가가 필요했다. 악마의 이적 따위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잔느 수녀가 마귀 들린 여인들의 여왕 노릇을 그만두고 생전에 성인 반열에 오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녀가 보인 성스러운 기적들 중 첫 번째가 1635년 2월에 일어났다. 

 

  하루는 이사카론이 털어놓는 얘기가 이랬다. 익명의 마법사 셋이 말이야, 둘은 루덩 출신이고 하나는 파리지앵인데, 축성된 면병 세 개를 가로챘어, 그리고 그걸 불태우려고 한단 말이야! 

  수렝이 즉각 이사카론에게 명했다. 네가 파리로 가서 그들이 매트리스 밑에 숨겨둔 면병을 가져 오거라! 

  이사카론이 사라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이사카론을 도우라고 발람한테 명령했지만 한사코 거부하며 수렝의 천사와 싸우다가 결국 복종하게 됐다. 다음날 저녁식사 후 벌이는 엑소시즘 때 면병 세 개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명령이었다. 

 

  지정된 시각에 발람과 이사카론이 수렝 앞에 나타나 잔느 몸 안에서 이리저리 나대며 저항하던 끝에 면병이 제단 위 벽감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고서 악마들은 원장수녀의 아주 작은 몸뚱이가 길게 늘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한껏 내뻗은 팔 끝에서 손이 벽감으로 들어가더니 꼼꼼하게 접힌 종이쪽을 들고 나왔는데, 거기에 면병 세 개가 싸여 있었다.

 

  이 안쓰러울 정도로 수상쩍은 경이로움을 수렝은 중요한 징표로 간주했다. 그러나 잔느의 자서전에는 이 스토리가 그리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 남을 잘 믿는 영적 지도자를 멋지게 골려준 트릭을 부끄럽게 여긴 걸까? 아니면, 그 기적을 썩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은 건가? 이 사건에서 그녀가 주된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한테는 전적으로 본인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이적이 필요했고, 그 원하던 것을 그해 가을에 결국 얻었다. 

 

  수도회 내부 여론에 견디다 못해 아키텐 관구장이 10월 말경 수렝에게 보르도로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그 자리에는 좀 덜 기이한 엑소시스트를 지명했다. 이 소식이 루덩까지 알려지자 레비아탄은 기뻐 날뛰었지만 제 정신으로 돌아온 잔느 수녀는 되레 침울해졌다.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성 요셉에게 기도한 끝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서 이 오만한 악마를 물리치게 하리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그 뒤 사나흘 동안 자리보전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아져서 자기한테 엑소시즘을 시행해 달라고 청했다. 「그건 많은 귀빈들이 엑소시즘을 보러 교회에 와 있던 그날 (11월 5일) 생긴 일이었다. 난 여기서 신의 특별한 섭리를 보았다.」 (VIP들이 교회에 올 때면 늘 ‘특별한 섭리’가 나타났다. 바로 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악마들이 늘 가장 아슬아슬한 묘기를 부린 것이다.) 

 

  엑소시즘이 시작되고 금방 ‘레비아탄이 나타나서 성직자한테 승리를 거뒀노라고 떠벌렸다.’ 수렝이 성체에 경배하라고 이르면서 악령에게 역공을 가했다. 그러자 여느 때처럼 레비아탄이 울부짖으며 발광했다. 

  그때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허락하셨다.’ 레비아탄이 엑소시스트 발밑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혹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잔느 수녀가 그렇게 한 것. 악령은 수렝의 명예를 더럽히고자 간계를 꾸몄노라 시인하고는 용서를 빌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발작을 일으킨 뒤 원장수녀 몸에서 떠났다. 영원히. 

 

  이야말로 수렝의 승리이자 그의 방법론이 옳다는 증거였다. 이 장면에 감명 받은 다른 엑소시스트들이 수렝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고, 수도회 관구장이 수렝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했다. 

  잔느 수녀가 원하던 바를 얻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이 악마들을 웬만큼은 지배할 수 있다는 점도 과시했다. 악마들이 그녀를 미치광이처럼 날뛰게 만들 수 있지만,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악마들을 영원히 내쫓을 수도 있는 것

 

  레비아탄이 달아난 뒤 핏빛 십자가가 원장수녀 이마에 나타나더니 세 주일 내내 또렷한 형태를 유지했다. 이적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더 효과적인 뭔가가 뒤따라야 했다

  이제 발람이 뜻을 밝혔다. 난 원장수녀 몸에서 떠날 용의가 있는데, 떠나게 되면 기념으로 내 이름을 그녀 왼손에 적어 넣겠어, 그러면 죽을 때까지 손바닥에 남아 있을 거야. 하지만 못된 장난을 일삼는 스피릿의 서명을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예측을 잔느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흠, 악령한테 예를 들어 성 요셉의 이름자를 쓰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렝의 조언을 좇아 그녀가 성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아홉 번 연속 영교 과정에 들어섰다. 그 아흐레 기도를 막으려고 발람이 별의별 짓을 다했다. 그러나 육신에 병이 도지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히는 짓도 소용없었다. 원장수녀가 꿋꿋이 맞섰다. 

 

  언젠가 아침에 미사 드리기 직전 (못된 장난과 신성 모독의 악령들인) 발람과 베게모트가 그녀 두개골로 기어들어 어찌나 소란 피우고 혼란스럽게 하든지 그녀가 잘못인 줄 빤히 알면서도 식당으로 달려가고픈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거기서 ‘나는 음식에 게걸스레 달려들어 굶주린 장정 셋이 온종일 먹는 것보다 더 많이 먹어 치웠어.’ 그렇게 잔뜩 배를 채운 뒤 성체 배령은 불가능했다. 이것이 모든 구상을 위협하게 됐다.

 

  비탄에 잠긴 잔느가 수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가 영대를 걸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악령이 다시 내 머리에 파고들더니 곧장 나로 하여금 산더미처럼 많은 양을 토하게 만들었다.’ 그런 뒤 발람이 이제 수녀의 위장이 텅 비었다고 장담하자, 수렝은 그녀가 성체를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런 곡절 끝에 나는 성 요셉을 향한 아흐레 기도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11월 29일 못된 장난과 사악한 웃음의 악마가 마침내 떨어져 나갔다. 이 사건 때 구경꾼들 중에 영국인 두 명이 있었다. 맨체스터 백작의 아들로서 얼마 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신개종자의 열정으로 기적을 믿는 월터 몬테규, 또 그의 젊은 친구이자 부하이며 나중에 극작가가 된 토마스 킬리그루. 

  며칠 뒤 킬리그루가 잉글랜드에 있는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루덩에서 본 것을 낱낱이 전달했다. 그는 그 경험이 ‘자신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각주:1]

 

   방문 첫날 수녀원 교회에서 그는 귀신들린 수녀 네댓이 무릎 꿇고 나직이 기도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들 등 뒤에 엑소시스트가 한 명씩 서서 줄을 쥐고 있는데, 그 다른 끝이 각 수녀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그 줄마다 작은 십자가들이 매달려 있어서 악마들의 작은 광란을 통제하는 개줄 역할을 했다. 그렇긴 해도 아직은 모든 게 평온하고 차분했으며 ‘나는 무릎 꿇은 것 외에 특기할 만한 장면은 전혀 못 봤다.’ 

 

  그러나 삼십 분 뒤 개중에 두 수녀가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하나는 수도사 목에 들러붙고, 다른 하나는 혀를 내밀고 제 엑소시스트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입맞춤하려고 들었다. 그러는 동안 으르렁대는 소리가 숙사와 교회를 가로막은 격자 창살을 통해 사납게 들려 왔다. 

 

  그 다음에 젊은 킬리그루를 월터 몬테규가 불러 마귀 들린 수녀들이 과시하는 독심술을 직접 경험하라고 했다. 악마들이 개종자의 생각은 읽을 수 있지만, 킬리그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아맞힐 수 없었다. 독심술을 자랑하는 중에 악마들은 칼뱅을 위해 기도하고 로마가톨릭교회를 저주했다. 그러다가 악귀 하나가 문득 사라졌기에 구경꾼들이 그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수녀가 응답하는데 어찌나 추잡하든지, 그 답변을 <유럽 매거진> 편집인이 지면에 싣지 못할 정도였다. 

  이어서 예쁘고 어린 아그네스 수녀를 대상으로 엑소시즘이 시작됐다. 킬리그루가 이 장면을 어떻게 묘사했는지는 이미 앞의 장에서 얘기했다. 이 아름다운 피조물을 다부진 농민 둘이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엑소시스트가 가슴에 이어 하얀 목을 발로 밟는 광경은 젊은 신사의 가슴을 공포와 혐오로 채웠다

 

  다음날 그런 장면이 모조리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엔 퍼포먼스가 흥미는 더 일으키고 비위는 덜 거스르는 식으로 끝났다. 킬리그루가 이렇게 쓴다. 

  「기도가 끝나고 그녀(원장수녀)가 탁발수사(수렝) 쪽으로 돌아서자 그가 그녀 목에 작은 십자가들이 달린 밧줄을 걸고 세 번 돌려 묶었다. 그녀는 내내 무릎 꿇고 앉아서 줄이 바짝 조일 때까지 기도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일어나서는 묵주 알 세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제단에 경의를 표한 뒤 장의자로 갔다. 그건 엑소시즘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채플 안에는 그런 것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정신분석학에서 쓰는 소파의 이 원형이 아직도 현존할까? 궁금하다.)

 

  「이 장의자 머리는 제단 쪽을 향해 있었다. 그녀가 어찌나 겸허한 자세로 다가갔는지, 수도사들의 기도가 없이 그 참을성 하나만으로도 악마를 내쫓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장의자에 와서 눕더니 제 몸을 수도사가 로프 두 개로 의자와 함께 묶도록 거들었다. 허리 부위를 묶고, 허벅지며 다리를 또 묶었다. 그렇게 묶인 상태에서 성체가 담긴 상자를 들고 있는 성직자를 보자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치 고문을 앞둔 사람처럼 온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만이 내보인 특별한 겸허함과 참을성이 아니었다. 다른 수녀들도 그런 경우에 다 그렇게 했으니까. 엑소시즘이 진행됐을 때, 마귀 들린 다른 수녀가 다른 수도사를 부르더니 장의자에 누워서 단단히 묶어 달라고 했다. 

  그들이 본래 모습일 때 얼마나 얌전하게 제단으로 나아가는지, 수녀원에서 얼마나 조신하게 걸어 다니는지를 보면 야릇한 마음이 든다. 그들의 표정과 얼굴은 신앙에 삶을 바친 처녀들답게 정숙하다. 이 원장수녀도 엑소시즘을 시작할 때는 차분하게 누워 있었다. 잠자는 듯이…」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작하자 일이 분 뒤 발람이 나타났다. 사지를 뒤틀고 경련을 일으키고 하느님을 거세게 모욕하는 말이 나오고...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7-1편 3

루덩의 악마들 6편 3

루덩의 악마들 5편 2

루덩의 악마들 4편 4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2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이 서신은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1803년 2월 호 <유럽 매거진>에 실렸다. - 저자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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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헉슬리가 아내며 아들과 함께

 


 

5월 초 친구이자 예수회 동료인 다티시 수사에게 그 동안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적어 보냈다. 

 

  「지난번 보낸 편지 이후 나는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상태에 빠졌다네. 하지만 그건 내 영혼에 관해서는 신의 섭리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상태이기도 해… 난 지옥의 가장 사나운 악마 넷과 싸움을 벌이고 있어. 그 적들이 밤이고 낮이고 무수한 방법으로 암약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엑소시즘일세

  지난 석 달 반 동안 책임상 늘 악마를 상대하고 있네. 일이 어떤 지경까지 이르렀느냐 하면, 악마들이 저희가 사로잡은 사람 몸에서 나와 내 몸으로 들어와서 나를 거칠게 공격하고 무너뜨리고 괴롭히는 바람에 이제 내가 몇 시간이고 악령에 홀려 있는 것을 모든 이들이 볼 수 있을 정도라네. 한데 이 또한 (내 생각엔 내 죄 때문에) 신께서 그리 되도록 허락하신 게 아닌가 싶네.[각주:1] 

  악마가 내 몸에 들어와 있는 동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하기는 정말 힘들어. 이 낯선 영이 내 영과 결합될 때, 내 의식과 내면의 자유가 말짱한 가운데 ‘제 2의 나’가 생기는 것 같다네. 마치 나한테 영혼이 둘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

  개중 하나는 몸에서 빠져 나가 몸의 사분지 일을 관장하며 다른 침입한 영이 주인 행세하며 제멋대로 하는 꼴을 지켜보는 것일세. 이 두 스피릿이 내 육신이라는 싸움터 안에서 삶이 아니라 죽음을 놓고 전투를 벌이는 게야. 

 

  영혼이 양분된 것 같은데, 그 한쪽 절반에는 악마를 흉내 내는 주체가 있고 다른 절반에는 하나님께 합당하거나 그분한테 힘을 얻는 듯한 주체가 있네. 한편으론 신의 은총 아래 있는 듯 크나큰 평안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론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분께 강렬한 분노와 혐오가 일어서 그분한테서 떨어지려고 미친 듯이 버둥거린다네. (그런 내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기겁하겠는가.) 또한 크나큰 만족과 기쁨을 맛보면서도 동시에 저주받은 자들처럼 비탄과 악다구니를 내뱉는 참담함도 겪는다네. 

  신의 저주가 내렸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그 점이 두렵다네. 나한테 파고든 낯선 영이 내게 절망의 아픔을 찔러 넣는 느낌이야. 그러는 동안 다른 내 영혼은 아주 우쭐거리면서 그런 느낌을 죄다 우습게 여기며 그걸 야기하는 존재를 저주한다네. 심지어 내 입으로 내지르는 비명이 그 두 영혼한테서 동시에 나오는 것인 양 느끼기도 하지 뭔가. 그 비명이 환희의 소산인지 광란의 물건인지 알 수가 없다네. 성체가 내 몸 어느 구석에 닿을 때 밀려드는 전율은 (적어도 내 보기엔) 거기에 근접한다는 참을 수 없는 두려움과 절절한 외경심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라네. 

 

  이 두 영혼 중 하나의 충동에 따라 내 입술에 십자가 표식을 만들려 할 때, 다른 영혼이 내 손을 밀치거나 그 손가락을 이빨 사이로 넣어 사납게 깨물도록 한다네. 또 내가 알게 된 점은, 내 몸뚱이가 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는 발작의 정점에서 기도가 더 진실하고 더 감동적으로 나오며, 이때 성직자들은 마치 악마 대하듯이 나한테 저주를 퍼붓는다는 것일세. 

  내 자신이 악마로 바뀌면서 맛보는 희열을 자네한테 묘사하기 힘들다네. 한데 이때의 변화는 신께 항거함이 아니라 내 죄업으로 인해 처하게 된 불행한 상태 때문이고… 

 

  다른 마귀 들린 이들이 그런 상태의 나를 보면서 기뻐 날뛰는 걸 보고 그들 안에 있는 악마들이 나를 신나게 조롱하는 걸 듣는 일도 기쁨이야! 

  “영혼의 구제자여, 당신 자신이나 치유하지, 그래! 자, 이제 설교단에 올라설 시간이야! 어떻게 설교하는지, 한번 꼴을 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건져주시기 이전의 상태를 경험으로 알고, 그분의 희생으로 속죄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선물인가! 그것도 들은풍월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 상태를 생생하게 느낌으로써 말일세. 

  바로 이것이 지금 내가 매일 처하는 상태일세. 나 때문에 논란이 들끓는다네. 정말 악령에 홀린 것일까? 성직자가 그런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걸까? 어떤 이들은 이 모든 것이 내가 품은 환상 때문에 신께서 내린 징벌이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달리 말한다네. 나로 말하자면, 마음이 평화로워서 이 운명을 바꿀 생각이 없네. 왜냐면 내 확신으로는, 극한 상태를 접해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니까…」  

 

 (나중에 쓴 글에서 수렝은 이 주제를 더 상세하게 발전시켰다. 구원의 앞 단계인 정화 과정의 일부로 마귀에 사로잡히도록 하느님이 역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신께서 고도의 신성함으로 끌어 올리고자 하는 영혼들을 악마가 홀리거나 지배하게끔 허용함은 은혜의 길에서 그분이 더 일반적으로 이끄심이다.」 

 

  악마들은 인간 의지를 지배할 수 없고, 저희 제물에게 죄를 지으라고 다그칠 수 없다. 악마가 저지른 신성 모독과 외설한 행위와 신에 대한 증오는 영혼에 오점을 남기지 않는다. 거꾸로, 악마들은 실제로 좋은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런 두려운 짓을 자발적으로 범했다면 영혼이 굴욕을 느끼도록 하니까. 

  악령들이 사람들 정신에 채우는 이 굴욕감과 고통과 불안 따위는 바로 ‘모든 자기본위를 심장 속살과 골수에 이르기까지 다 태워 버리는 호된 시련’인 것. 한데, 하나님 역시 고통 받는 영혼에 작용하시니, 그분의 역사는 ‘아주 강력하고 아주 계시적이고 아주 황홀해서, 전능자의 자비를 힘입은 영혼은 지극히 매혹적인 것이 된다’) 

 

  로마에 있는 다티시 신부한테 보낸 편지를 맺으면서 수렝은 자신의 고백을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한다. ‘내 고해사제와 상급자들 외에 유일하게 자네한테만 이런 비밀을 털어 놓았네.’ 그 신뢰는 안타깝게도 잘못된 것이었다. 

  다티시 신부는 이 편지를 별의별 사람들한테 다 보여 주었다. 편지 사본이 수없이 나돌다가, 몇 달 뒤에는 아예 신문처럼 인쇄돼 나오기까지 했다. 사형 선고받은 살인자나 다리 여섯 개 달린 송아지 같이 수렝은 저속한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뉴스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엑소시즘을 받는 수녀

 

  이제부터는 레비아탄과 이사카론이 그에게서 결코 멀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육체가 공격 받고 영혼이 지배된 가운데서도 수렝은 잔느 수녀의 정화와 구제라는 사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녀가 달아나면 쫓아갔다. 구석에 몰린 그녀가 몸을 돌려 욕설을 퍼부으며 사납게 덤벼들었다. 그래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 발밑에 무릎 꺾고 앉아 기도문을 읽었다. 때론 그녀와 나란히 앉아서 고집 부리는 귓전에 랄망 신부의 영적 교리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내면의 완성, 성령 앞에서 온유함, 마음의 정화, 하느님 뜻에 순종…

 

  그녀의 악마들이 몸을 뒤틀며 뜻 모를 말을 내뱉었지만, 그가 계속했다. 그의 마음에서도 레비아탄이 낄낄거리고 부도덕의 악령인 이사카론이 내뱉는 외설을 들을 수 있었음에도, 계속했다. 

 

  그러나 수렝은 악마들하고만 싸운 게 아니었다. 원장수녀는 정신이 멀쩡한 시간에도 (어쩌면, 정신 멀쩡할 때 특히 더) 여전히 그에 대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를 좋아하지 않은 까닭은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 겁냈으니까. 

  사실 그녀는 제 정신이 돌아온 시간에는 자신이 절반은 위선자요 절반은 참회하지 않는 죄인이며 완전한 히스테리 환자임을 잘 알고 있었고, 바로 그 점을 그가 꿰뚫어볼까 겁냈다. 그가 자기한테 마음을 열라고 애원했다. 그에 대한 응답은, 악귀의 으르렁거림 아니면 고백할 게 전혀 없다는 쏘아붙임. 

 

  마귀 들린 사람과 엑소시스트의 관계가 더 복잡해진 것은… 그렇게나 겁내고 미워한 남자한테 잔느가 부활절 주간에 문득 ‘아주 사악한 육욕과 걷잡을 수 없는 애정’을 품게 됐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비밀을 제 입으로 고백할 수 없었는데, 결국 성체 앞에서 세 시간을 기도한 끝에 이 ‘수치스러운 유혹’을 먼저 입에 올린 사람은 바로 수렝이었다. 

  잔느 수녀는 ‘그 고백에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말문이 다 막히고 말았다’고 기록한다. 밤늦은 시간이어서 그가 곧 떠났고, 그녀는 놀란 가슴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마침내 그녀가 마음을 다잡았다. 수렝 수사에 대한 행동 노선만이 아니라 내 생활방식 자체를 몽땅 바꿀 때가 된 거야! 

 

  그것은 표면적 의지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 아래, 잠재의식에 자리 잡은 악령들은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글을 읽으려 하는데 단어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 존재 안에 제 영혼을 붙잡아두려 하자 즉각 머리가 쪼개지는 듯이 두통이 생기면서 ‘뒤숭숭한 혼란과 미약함’이 수반됐다. 그런 증상에 대처할 최고 요법으로 수렝이 제시한 길은 단 하나, 묵상기도. 그녀가 해 보겠노라고 동의했다. 악마들이 두 배로 맹렬하게 날뛰었다. 내면의 완성이라는 언급 하나에 악마들이 그녀 육체를 발광하게 만들었다. 

 

  수렝이 그녀를 탁자에 눕히고 밧줄로 꽁꽁 묶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자해에 대비했다. 곁에서 무릎을 꺾고 그녀 귀에 대고 명상의 이로움을 속삭였다

  「내가 취한 주된 주제는 마음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분 뜻에 온전히 맡기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세 가지 요점으로 나누어서, 하나씩 가장 단순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이런 의식이 날마다 반복됐다. 수술 앞둔 사람처럼 묶인 채 누워서 원장수녀는 신의 은총만 기대했다. 그녀가 버둥거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소란 속에서도 선량한 수도사의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었다. 때로 레비아탄이 수녀한테서 엑소시스트로 옮겨 붙으면, 수렝이 갑자기 언어 능력을 상실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원장수녀한테서 악귀의 요란한 웃음이 와르르 터져 나왔다. 그러면 기도가, 속삭이는 가르침이, 끊긴 대목부터 다시 시작됐다. 

  악마들이 지나치게 광포하게 굴 때면, 수렝이 은제 상자에서 축복받은 면병을 꺼내 원장수녀의 가슴이나 이마에 올려놓았다. 처절한 발작이 끝나면 「그녀는 커다란 믿음으로 가득 찼고, 난 신께서 내게 넌지시 이른 것을 그녀 귀에 속삭였다. 그녀는 내 말을 아주 주의 깊게 듣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말씀이 그녀 가슴에 끼친 작용은 아주 커서… 그녀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것은 변신이요 전환이었다. 그러나 히스테리라는 맥락에서 벌어진 변신이요, 상상의 무대에서 일어난 전환일 뿐이었다

 

  8년 전, 당시 수녀원장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면서 잔느는 제 2의 테레사 성녀가 되겠는 야심을 일시적으로 과시한 바 있다. 사실은 그때도 그녀의 위선적 행위에 늙은 수녀원장 외에는 아무도 감명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원장수녀로 지명되면서 수녀원을 운영해 왔다. 신비주의에 대한 흥미는 점차 잃기 시작했다

 

수녀를 유혹하는 악령

 

  그 뒤 뜬금없이 그랑디에를 두고 에로틱한 착란에 빠지게 됐다. 노이로제가 갈수록 더 깊어졌다. 미뇽이 악마들 얘기를 늘어놓고, 엑소시즘을 시행하고 루이 조프리디 사건에 관해 미카엘리스가 쓴 책을 읽으라고 그녀한테 주었다. 그녀가 그 책을 읽은 뒤 곧 악령에 사로잡힌 수녀들의 여왕 같은 이미지를 상상했다. 그때 그녀의 야심은 모든 면에서, 그러니까 신성 모독이며 꿀꿀대는 소리며 음란한 말이며 곡예사 같은 쇼에서, 다른 수녀들을 다 능가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어서 「내 영혼의 모든 무질서가 내 성격에서 나오며, 그런 무질서를 두고 외부 원인을 탓할 게 아니라 자신을 비난해야 한다.」 미카엘리스와 미뇽의 영향 하에 잔느의 타고난 결함들이 일곱 악마로 구체화됐다. 그리고 이제 그 악마들은 저희 독자적인 삶을 살며 그녀의 주인이 되었다

 

  그것들한테서 벗어나려면 먼저 자신의 악습과 추잡한 성향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적 지도자가 끊임없이 하는 말대로 부지런히 기도하고 영혼을 신성한 빛에 드러내야 했다. 수렝의 열성이 전달됐다. 그 사람의 성심에 그녀가 감동했으며, 그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심오한 경험으로써 알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강박관념 속에서도 깨달았다. 그가 하는 말을 경청한 뒤 그녀는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탄복하는 많은 군중 앞에서 가능한 한 극적인 방식으로 나아가기를… 갈망했다

  마귀 들린 수녀들의 여왕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성자가 되고자 했다. 혹은 성자로 알려지고 이제 현세에서 시성되고 이적을 행하고 기도문에 실려 사람들 입에 오르기를 원했는지도… 

 

  자신에게 고유한, 마르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새로운 역할에 몰입했다. 먼저 하루 삼십 분씩 묵상기도를 하다가 곧 서너 시간으로 늘렸다. 그러면서 계시를 받들기에 합당하게끔 가장 모진 고행에 들어섰다. 깃털 이부자리를 딱딱한 판자로 바꾸고, 음식에는 소스 대신 쑥을 갈아 뿌렸다. 헤어 셔츠[각주:2]를 걸치고 못들이 박힌 허리띠를 맸다. 하루에 적어도 세 차례 제 몸에 채찍질을 가했으며, 가끔씩은 (그녀가 단언하는 바로는) 24시간 중에 일곱 시간 내내 채찍 고행을 치르기도 했다. 

 

  고행용 채찍을 신봉하는 수렝이 그녀를 여러 모로 격려했다. 교회 의식을 비웃는 악마들이 호된 채찍 맛을 보면 잠시라도 달아나는 일이 잦다는 점을 그는 오래전에 알아차렸다. 또 채찍은 초자연적인 마귀 들림에 그렇듯이 자연적인 멜랑콜리 치유에도 잘 먹혔다. 테레사 성녀도 왕년에 같은 현상을 알아냈다. 

 

  「(이 멜랑콜리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접했기 때문에) 다시 말하는데,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악령을 정복하는 것 외에 다른 치유법은 없어요. 만약 말로써 충분치 못하다면 징벌에 의존할 필요가 있고, 가벼운 징벌이 작용하지 않으면 중한 징벌이 필수지요.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아픈 자매를 건강한 사람처럼 체벌한다는 것이 부당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할 것은 이 노이로제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 영혼에도 엄청난 해를 끼친다는 점이다. 테레사 성녀가 계속 증언한다. 

  「신체 고장은 규율이 없고 겸허가 부족하고 잘못 훈련된 스피릿에서 아주 종종 비롯된다고 난 확실히 믿어요. (멜랑콜리의) 이런 기질을 핑계 삼아 사탄은 많은 영혼을 사로잡으려고 획책하지요. 그런 일은 예전보다 우리 시대에 와서 더 흔한데, 그건 자기본위며 자유방임 따위가 이제는 다 멜랑콜리라 불리니까 그래요.」 

 

  의지의 절대적 자유와 인성의 전적인 타락을 당연시하던 시대에는 신경증 환자 치료에 이런 물리적 수단이 대단히 효과적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것을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몇몇 경우에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대다수 환자한테 필요한 치료는 스스로 가하는 충격 요법보다 ‘편안하고 진솔한 대화’이다. 이 방법이 적어도 현재의 지적 풍토에 더 잘 어울린다

 

  엑소시즘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구경꾼들이 드나드는 통에 수녀원 채플은 잔느 수녀와 영적 지도자가 차분하게 대화 나누기엔 많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래서 1635년 초여름부터 그들이 숙사 지붕 아래 다락방에서 더 사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임시변통으로 쇠창살을 세워 방을 두 공간으로 나누었다. 

  쇠창살을 통해 수렝이 가르침을 건네고 신비주의 신학을 상세히 해석해 주었다. 쇠창살을 통해 원장수녀는 자신이 겪은 유혹이며 악령들과 벌인 싸움, 묵상기도 중에 겪은 (이미 놀라운) 경험 등을 얘기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침묵 속에서 함께 명상에 잠기곤 했을 것이다

 

쇠창살 너머로 대화하는 수녀

 

  수렝의 말에 따르면, 다락방은 ‘천사들의 집이요 환희의 파라다이스’가 되었고, 그 안에서 두 사람은 특별한 은혜를 맛보았다. 어느 날 예수가 수난 받던 중에 처한 모욕을 명상하는 동안 잔느가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리고 황홀경이 끝나자 창살 사이로 수렝에게 알렸다. “난 입맞춤을 받을 정도로 하나님께 아주 가까이 다가갔어요.” 

 

  일련의 이런 과정을 다른 엑소시스트들은 어떻게 여겼을까? 루덩 주민들 의견은 또 어땠을까? 수렝이 우리한테 이렇게 전한다. 

  「사람들이 수상쩍다는 듯 수군거렸다. 이 예수회 수사는 귀신들린 수녀하고 만날 뭘 하는 거지? 내가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이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네는 이해도 못할 거외다. 이 마귀에 사로잡힌 영혼한테서 나는 천국 광채와 지옥 불을 동시에 보는 것 같았소. 그 영혼의 한 쪽은 사랑으로, 다른 쪽은 증오로 채워졌는데, 그 두 힘이 그녀를 각각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오.」 

 

  (하지만 수렝이 본 것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못 봤다. ...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5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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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5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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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2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4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이 악귀 들씌움은 4월 6일 성 금요일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수렝이 처음 악마에 들씌웠다고 느낀 1월 19일부터 이날까지 마귀 들림 증상은 순전히 심리적인 것이었다. - 저자 주. [본문으로]
  2. hair shirt - 고행자가 입는 셔츠, 말이나 낙타 등의 털을 섞어 짠 마소직(馬巢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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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그가 펴놓은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졌다. 이야말로 징후야! 파리라니, 그것도 호두알만한 크기! 바알세불이 파리들의 명령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러가라! 성스러운 수난자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랑탕이 넘실거리는 화염 위로 소리쳤다. 

  파리가 기이하게 큰 소리를 윙윙 내며 날개 쳐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뉴스 데이의 이름으로…” 

 

The Devils of Loudun 1634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그 대신 발작하듯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열한이 숨 막혀 죽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는 거야! 사탄의 마지막 간계를 짓누르려고 랑탕이 연기 속으로 성수를 끼얹었다. 

  “물러가라, 불 뿜는 괴물아! 이 성수가 사탄의 요술을 깨부술 것이야!” 

  그게 먹혀들었다! 기침이 그쳤다. 단말마의 비명이 한 번 더 울리고는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수도사들이 경악스럽게도 화염 한복판에서 희끗거리는 물체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 

  “Deus meus, miserere mei Deus.”[각주:1]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내 적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발작적인 기침이 몇 번 더 나왔다. 곧 이어서 기둥에 묶은 밧줄이 사라지고 희생양이 이글거리는 통나무들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불길이 여전히 날름거리는 가운데 수사들이 계속 성수를 뿌리며 특유의 가락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갑자기 교회 첨탑에서 비둘기 떼가 날아 내려 넘실거리는 화염과 연기 기둥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새떼를 향해 궁수들이 미늘창을 흔들고 랑탕과 트랑킬이 성수를 끼얹기 시작했다. 하지만 헛수고. 비둘기들은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연기 속으로 뛰어들고 불길에 날개를 그슬리며 뱅뱅 감돌기만 했다. 

  양 진영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주임신부의 적수들은 새들이 악마 군단임이 확실하며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고 떠들었다. 주임신부의 친구들은 비둘기들이 성령의 엠블럼이요 그가 결백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그것들이 인간과 다른, 그저 저희 본능에 따르는 비둘기 떼였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은 듯싶다

 

  장작불이 다 수그러들자 형리가 유해를 삽으로 떠서 나침반의 각 기본 방위마다 한 삽씩 흩뿌렸다. 그러자 군중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손가락 데어가며 뜨거운 가루를 뒤적이면서 이빨과 머리뼈며 골반 뼛조각들과 불탄 살점으로 보이는 꺼먼 덩어리 따위를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몇몇은 그저 기념품 사냥꾼인 것이 분명하지만, 대다수는 행운을 안기거나 미지근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부적으로, 두통이나 변비나 누군가의 원한을 막아주는 호부로 삼기 위해 성유물을 찾았다

  이 시커먼 물건들은 주임신부가 결백하든, 아니면 그에게 뒤집어씌운 죄를 정말 범했든 상관없이, 기적 같은 효능을 지닐 것이야! 

 

  이적을 행하는 힘은 성유물의 원천이 아니라 그것이 얻은 평판에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 존재들 중 일부는 광고만 잘 돼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든 건강이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루르드[각주:2]부터 마법에 이르기까지, 갠지스 강에서부터 특허 의약품이며 에디 부인에 이르기까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각주:3]의 이적 행하는 팔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보고 숭배하도록 제프리 초서[각주:4]의 면죄부 판매인이 유리잔에 넣어 다닌 ‘돼지 뼈다귀들’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만약 수도사들 말처럼 그랑디에가 마법사였다면, 아주 좋지. 마법사 유해에는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단 말이야. 만약 주임신부가 무죄였다고 해도 괜찮아, 그는 수난자가 되고 유해는 성스럽게 여겨질 거야. 

  잠깐 새 유해가 다 사라졌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지독하게 피곤하고 목도 마르지만 주머니에 두둑하게 채운 성유물에 좋아하면서 마실 것과 신발 벗을 기회를 찾아 각자 흩어졌다.

 

  그날 저녁 아주 짧은 휴식과 아주 가벼운 요기 뒤에 수도사들이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다시 모였다.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행하자, 그녀가 적당한 발작 상태로 들어서서 랑탕 수사 물음에 대답했다. 그 검은 파리는 바로 바루크였어, 주임신부와 사이좋은 악마 말이야. 

  한데 어째서 바루크가 감히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진 것이지? 

 

엑소시즘을 받은 원장수녀

 

  잔느가 특유의 곡예 동작을 뽐내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가 세우고는 마침내 답변했다. 바루크는 그 책을 불속에 내던지려고 한 거야. 

  그건 다 그럴 듯하게 들렸고, 그러자 수도사들이 일단 엑소시즘을 여기서 멈추고 다음날 아침 중인환시 하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수녀들을 성 십자가 교회로 데려갔다. 관광객들이 아직 도시에 많이 남아 있던 터라 교회가 인파로 미어터졌다. 원장수녀에게 들붙은 악마를 불러냈다. 평범한 의식이 끝난 뒤 원장수녀는 자신이 이사카론이며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악마라고 밝혔다. 내 안에 있던 다른 악마들은 다 지옥으로 갔어, 요란한 파티로 그랑디에의 영혼을 환영해야 하니까! 

  아주 세세한 질문들을 받고 잔느가 엑소시스트들이 한 말을 모두 확실히 보증했다. 맞아, 그랑디에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건 늘 사탄을 의미한 거야, 또 악마를 부인할 때 그건 실제로 그리스도를 부인한 거지. 

 

  랑탕은 그랑디에가 지옥에서 어떤 형벌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원장수녀가 최악의 형벌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흠, 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 어떠냔 말이다! 

  잔느가 한참이나 끙끙대다가 대답했다. “그랑디에는 죗값에 맞게 특별한 형벌을 받지, 특히 정욕의 죗값을 톡톡히 치렀어.” 

  그러면 처형은 어땠나? 마법사가 고통 겪지 않도록 악마가 도와주었나? 

  이사카론이 대꾸했다. 아, 아니야, 사탄은 엑소시즘에 눌려서 기가 꺾였어. 만약 불길에 성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주임신부는 고통이란 걸 못 느꼈을 거야. 하지만 랑탕과 트랑킬, 미카엘이 애쓴 덕분에 극심한 고통을 맛봤지. 

  그런 것쯤이야 지금 그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다른 엑소시스트가 소리쳤다. 랑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지옥 쪽으로 몰아갔다. 지옥의 많은 방들 중 그 마법사는 어디에 떨어졌지? 루시퍼가 그자를 어떻게 맞이했나? 지금 이 순간 그자에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잔느 수녀의 이사카론이 수도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사카론의 상상이 메말랐을 때, 아그네스 수녀가 도우러 나섰다. 그녀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 쓰러졌고, 그녀 입을 통해 악마 베헤리트가 제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날 저녁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이 보기에 랑탕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넋이 빠진 사람 같았다. 어디 아픈 겁니까? 

  랑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프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개운치 못한 점이 있소. 죄인이 그리에 신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했는데,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어. 글쎄, 고해를 가로막아서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아닌가? 

  동료들이 갖가지로 안심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랑탕이 고열에 빠졌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게야. 날 벌하시는 게야.” 연신 중얼거렸다. 

 

  외과의 만누리가 사혈을 하고 약제사 아담이 관장기를 통해 하제를 넣었다. 고열이 가라앉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랑탕이 이제 헛것을 보고 듣기 시작했다. 고문 받으며 그랑디에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장작불 위에서 적수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악마들이 떼거리로 어른거렸다. 그들이 그의 몸으로 들어왔고, 광란 상태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발길질하고 베개를 물어뜯게 만들고, 가장 무서운 신성 모독의 말들을 그 입에 가득 채웠다

 

  9월 18일, 그랑디에 화형 이후 꼭 한 달 지나, 자기한테 병자성사를 베풀던 성직자의 손에서 십자가를 쳐냈다. 그러고는 랑탕이 급사했다. 

  로바르데몽이 호사한 장례비를 댔고, 트랑킬 수사가 설교에서 고인을 신성함의 모델이라 불러 추켜세우며 사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선포했다. 그랑디에를 징벌했다 하여 하나님의 충실한 종에게 복수한 것이오. 

 

  다음 차례는 외과의 만누리였다. 랑탕 수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번은 밤중에 포트 뒤 마트레이 인근에 사는 어떤 병자에게 사혈을 해주러 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롱불 든 하인을 앞세우고 가던 그가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임신부는 악마의 표식들 때문에 바늘로 찔리던 그날처럼 알몸으로 성채 바깥 기슭과 코르들리에 수도원 정원 사이 그랑파베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만누리가 발을 멈추었다. 그가 시커먼 허공을 응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뭘 원하느냐!” 하고 묻는 소리를 하인이 들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외과의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금방 땅바닥에 엎드려 애절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역시 숨이 끊어졌다. 

 

  이제 루이 쇼베 차례가 됐다. 마녀재판이라는 대단히 멍청한 짓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반듯한 치안판사들 중 한 사람. 원장수녀와 많은 수녀들이 그가 마법을 한다고 비난했고, 그들의 고발과 증언을 바레는 자신의 교구에서 여러 마귀 들린 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쇼베는 추기경이 그 광기 어린 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미칠 화에 지극히 겁을 내는 바람에 정신이 상했다. 검은 멜랑콜리에 빠지고 정신쇠약까지 보이다가 겨울이 가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트랑킬은 다른 사람들보다 근성이 더 강했다. 네 해가 지나 1638년 악마에 지나치게 몰두한 후과에 마침내 굴하고 말았다. 그랑디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악마들을 더 키웠고, 터무니없는 공개 엑소시즘으로 악마들이 계속 횡행하게끔 했다. 이제 악마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금물이다. 트랑킬은 제가 열심히 뿌린 것을 거둬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환영들이 드물게 나타나고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악마 개꼬리와 레비아탄이 조금씩 우위를 점하게 됐다. 말년에 트랑킬은 제가 그렇게나 정성 들여 히스테리를 조장했던 수녀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욕설을 내뱉고, 혓바닥을 빼물고, 쉰 목소리를 내고, 개처럼 짖어대고,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푸친회 기록을 보면, ‘악취 풍기는 지옥 올빼미’라 명명한 악마가 동정을 버리고 겸허와 인내와 믿음과 헌신을 다 내팽개치라 유혹하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가 성처녀와 성 요셉을, 성 프란체스코, 성 보나벤투라[각주:5]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마귀 들림이 더 악화되기만 했다. 

 

  1638년 성신강림대축일에 트랑킬이 마지막으로 강론했다. 이삼일 더 그럭저럭 미사를 집전하고 나서 자리보전하고 말았다. 원인은 심신증이 분명하지만 상당히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는 추잡하고 외설한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야말로 악마 계약의 일부인 것이 분명했다! 음식물을 조금 넣을 때마다 악마들이 그를 아주 건강한 사람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격렬하게 구역질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한 두통과 심장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건 ‘갈레노스나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에도 언급되지 않은 종류였다.’ 주말에 이르러 ‘오물과 악취를 연신 내뿜는데, 어찌나 역겨운지 수발드는 이들이 당장 치웠음에도 방안에 있기가 끔찍할 정도였다.’ 

 

  성신강림대축일 다음날인 월요일 병자성사를 베풀게 됐다. 한데 악마들이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나와 침대 곁에 있던 다른 탁발수사의 몸으로 들어갔다. 새로 악귀 들린 사람이 어찌나 광포하게 굴든지 동료 대여섯 명이 겨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끌어내기 전에 그 사람은 거의 숨이 끊긴 트랑킬 수사를 마구 걷어차려고 들었는데, 그걸 말리느라 다들 무진 애를 먹었다. 

  그 대신 장례는 화려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시신으로 몰려들었다. 혹자들은 시신에 묵주를 놓았고, 혹자들은 법의 조각을 베어냈다. 성물처럼 간직하려고 말이다. 밀려드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관에 금이 가고, 각자가 자투리라도 얻으려고 서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시신이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존중받을 만한 이들 몇몇이 예절도 모르는 자들을 내쫓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신부는 벌거숭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법의를 쥐어뜯으면서 시신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트랑킬 신부의 법의 조각들도 이제 성유물이 됐다. 그가 산 채로 불태운 사람의 유해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 불분명해졌다. 마법사는 수난자 같이 죽고, 그의 악마 같은 집행자는 죽은 뒤 성인이 된 것. 그러나 영혼에 바알세불이 들어앉은 성인으로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였으니… 페티시는 그저 페티시일 뿐이라는 점!![각주:6]

  (8편 끝) 

 

관련 포스트: 

 

  1. 하느님,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틴어) [본문으로]
  2. Lourdes - 프랑스 남서부 마을, 성모 마리아가 기적의 치료를 해준다고 하는 성지 [본문으로]
  3. Francis Xavier (1506–1552) - 현 에스파냐 지역인 나바르왕국에서 출생. 로마가톨릭 선교사, 예수회 공동 설립자, 성 이냐시오의 제자. 그의 성유물 중 오른팔은 1614년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분리한 뒤 로마에 있는 교회 은제 성골함에서 전시돼. [본문으로]
  4. Geoffrey Chaucer (1343–1400) - 영국문학의 아버지, 중세 잉글랜드 최고 시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구역에 최초로 안장되다. ‘면죄부 판매인 이야기’는 <켄터베리 이야기>에 실렸다. 사람들 속이는 방법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교훈으로 끝난다. [본문으로]
  5. St. Bonaventura (1221–1274) - 이탈리아 중세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알바노 추기경, 가톨릭 교부. [본문으로]
  6. fetish – 맹목적 숭배물, 미신의 대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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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수녀들을 대상으로 엑소시즘을 펼치다

 


 

8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악마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이 대전제에 따르면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 입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바르데몽은 위그노들을 지독히 싫어하는데, 그들이 사탄의 친구이며 충실한 종복이라고 귀신들린 수녀 열일곱 명이 성찬례에서 단언하면 그만이었다. 

 

  상황이 그런 만큼 전권대행은 낭트칙령[각주:1]을 무시해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 느꼈다. 먼저 루덩의 칼뱅주의자들이 자기네 묻힐 곳을 박탈당했다. 그들 죽은 몸뚱이를 어디 다른 곳에 파묻으라고 해. 

 

  이어서 프로테스탄트 칼리지 차례가 됐다. 넓고 편리한 학교 건물이 몰수돼 우르술라회로 넘어갔다. 사실, 그들이 그 동안 수녀원으로 임차한 건물에는 사방에서 도시로 몰려든 독실한 순례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이제 마침내 수녀들이 날씨가 어떻든 성 십자가 교회나 샤토 교회까지 터벅터벅 걸어갈 필요 없이 입에 맞는 관중 앞에서 엑소시즘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위그노 못지않게 가증스러운 자들도 있었으니, 바로 그랑디에가 유죄이고 마귀 들림이 실제로 있으며 카푸친회가 새로 내놓은 교리의 절대적 정통성을 한사코 믿지 않으려 드는, 나쁜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랑탕과 트랑킬이 설교단에서 신랄하게 몰아쳤다. 

  저들은 이단자보다 나을 게 하나 없소! 저들이 의혹을 품는 것은 크나큰 죄이며 저들은 이미 저주받은 것과 진배없단 말이오!! 

 

  또 한편에서는 메스멩과 트렌캉이, 의심하는 자들은 국왕에게 불충하며 (더 흉하게도) 추기경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다녔다. 그리고 미뇽이 맡고 있는 수녀들과 카르멜회 히스테리 환자들의 입을 통해 많은 악마들이, 그자들은 전부 사탄과 결탁한 마법사라고 떠들었다. 

  시농에서 바레가 관장하는 마귀 들린 자들 중 누군가한테서는 흠 잡을 데 없는 치안판사 세리제조차 흑마법으로 장난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 다른 마귀 들린 자는 두 성직자, 부롱 신부와 프로지에 신부가 강간을 기도했다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원장수녀의 고발로 마들렌 드브루가 요술을 부린다는 혐의로 체포돼 수감됐다. 친척들이 재산과 고위층 연줄 덕에 그녀를 간신히 보석으로 빼냈다. 그러나 그랑디에 재판이 끝난 뒤 마들렌은 다시 체포됐다. 그녀가 항소법원[각주:2] 판사들에게 호소하자 로바르데몽에게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전권대행이 자신을 비난한 여인을 맞고소했다. 마들렌에게는 다행히도, 리슐리외는 판사들과 다툴 만큼 그녀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로바르데몽에게 소송을 취하하라는 지시가 내렸고, 원장수녀는 복수의 기쁨을 접어야 했다. 

  그 뒤 가엾은 마들렌은 모친 사후에 제 연인이 하지 말라고 설득했던 일을 하고 말았다. 삭발하고 어느 수녀원 담장 안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

 

  그러는 동안 악마들이 시민들을 겨냥해 내뱉은 이런저런 고발이 바람에 일어난 먼지처럼 난무하게 됐다. 지역 상류층 아가씨들이 그들 공격 대상으로 찍혔다. 아그네스 수녀는, 루덩만큼 음란기로 가득한 도시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클레어 수녀는, 죄 지은 여인들 이름을 꼽으면서 그들의 죄목을 늘어놓았다. 루이스 수녀와 잔느 수녀도 가만있지 않았다. 루덩의 처녀들은 죄다 마녀의 싹을 품고 있어! 

 

  이 엑소시즘은 매번 음란한 몸짓과 추잡한 언사와 광적인 웃음 따위로 끝났다. 

  그 다음에는 도시의 존경받는 인사들한테 비난이 쏠렸다. 

 

  그들이 마녀 집회에 다니면서 악마 엉덩이에 입을 맞추잖아. 

  또 그 부인들은 인큐버스와 사통하고, 그 누이들은 옆집 암탉들에게 마법을 걸고, 그 노처녀 숙모들은 도덕적인 젊은이를 신혼 첫날밤에 임포텐츠로 만들지 뭐야. 

  그랑디에도 그래, 벽돌로 막아놓은 창문의 공기구멍 틈새로 그 동안 자기 정액을 절묘하게 나눠주고 있었던 거야. 마녀들한테는 보상을 하고, 추기경 파의 아내와 딸들에게는 합당치 않은 치욕을 안기려는 속셈에서 말이지. 

 

수녀들한테서 악마를 쫓아내는 의식

 

  그런 고약한 망언들을 로바르데몽과 그의 서기들이 하나도 빼지 않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악마들한테서 비난받은 이들이 (달리 말해, 로바르데몽과 엑소시스트들한테 눈엣가시가 된 이들이) 로바르데몽 집무실로 소환돼 심문 받으며 위협과 협박을 겪었다. 도시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7월 어느 날 로바르데몽이 악마 베헤리트한테 힌트를 얻어 젊은 처녀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는 성 십자가 교회의 문을 다 잠그라고 명령했다. 카푸친회 수도사들이 사탄과 결탁한 흔적을 찾는다는 명분 아래 처녀들 몸을 더듬었다. 철저한 수색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표식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군, 베헤리트가 정식으로 강요당했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 

 

  몇 주일 동안 카푸친회와 레콜레트회와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모든 설교단에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의혹 품은 이들이 납득하지 못했고, 그랑디에 사건을 매우 불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불만과 저항이 더 커지기만 했다

  익명의 운쟁이들이 전권대행을 두고 짤막한 풍자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그 시구에 오래 된 가락을 붙여 거리에서 선술집에서 잔을 들고 노래하며 국왕의 전권대행을 조소했다. 그를 조롱하는 글귀들이 밤마다 교회 현관에 나붙었다. 

 

  도대체 누구 소행인지 개꼬리와 레비아탄에게 추궁하자, 이 악마들이 어떤 신교도와 어린 학생 몇몇을 범인으로 꼽았다. 그들을 체포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수 없게 되자 풀어주어야 했다. 이제 밤마다 파수꾼들이 교회 밖에 배치됐다. 그러자 비판하는 글귀가 다른 대문들에 걸리기 시작했다. 

 

  분개한 전권대행이 7월 2일 포고문을 발동했다. 

  ‘악마 때문에 고통 받는 수녀들이나 다른 주민들, 엑소시스트들이나 엑소시즘 조력자들을 적대시하여’ 행동하거나 또 입을 놀리는 것조차 차후로는 엄금한다. 이를 어긴 자는 누구든 1만 리브르 벌금에 처하고, 필요한 경우 재정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더 중하게 부과할 것이다. 

  그 뒤 비판이 더 조심스러워지자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이 여론을 겁내지 않고 허튼 비방을 마음껏 지껄일 수 있게 됐다. 

 

  <루덩 주임신부 재판에 대한 의견과 판단>이라는 글의 익명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만을 말하는 하나님이 이제 밀려나고 그분 자리에 사탄이 앉아서 거짓과 허튼소리만 해대는데, 그 허튼소리를 진실처럼 믿어야 하다니, 이야말로 이교 사상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게다가 항간에 나도는 얘기로는, 악마가 마법사와 주술사라면서 많은 이름을 읊어대는 것이 권력에는 아주 편리하단다. 이제 이 불행한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고 재산이 압류될 것이다. 그리고 몰수된 재산 일부가 주임신부의 죽음과 도시 대부분 명가들의 파멸을 은근히 바랄지도 모를 피에르 메노와 그의 사촌인 참사회 위원 미뇽에게 돌아갈 것이다.」 

 

  8월 초 트랑킬 신부가 새로운 교리를 기술하고 거기에 근거를 부여하여 얇은 책자를 냈다. 그 교리란 바로,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는 것. 이 책자를 푸아티에 주교가 승인하자 로바르데몽은 정통 신학에서 최신의 발견이라 부르며 환영했다

 

  이제 의심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그랑디에는 마법사로 아예 굳어지고, 겁 없이 옳게만 나서는 세리제 판사 역시 주술사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추기경 지지파에 속한 부모를 둔 처녀들을 제외하고, 루덩의 처녀들은 모두 매춘부와 마녀가 됐다. 또 시민 절반에게는 악마의 존재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미 저주가 내렸다. 

 

  트랑킬의 소책자가 나오고 이틀 뒤 수석 치안판사가 도시 명사들을 소집했다. 시민들이 처한 곤경을 논의한 끝에 세리제 판사와 보좌관 쇼베가 파리로 가서 전권대행의 전횡을 막아 달라고 국왕에게 청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반대한 사람은 검찰관 무소, 경찰 수뇌 에르베와 메노뿐이었다. 에르베는 루덩의 시민들을 전부 사탄의 종복으로 규정하는 새 교리에 동의하느냐고 치안판사가 묻자 “국왕과 추기경, 푸아티에 주교께서 마귀 들림을 믿는 바에야 나로서도 달리 방법이 있겠소?” 하고 대꾸했다. 

 

  정치적 보스에 대해 부하들이 무의식적으로 지니는 이 무류(無謬) 의식은 오늘날 우리네 귀에도 낯설지 않으며 아주 자연스러우리라

 

  다음날 세리제와 쇼베가 루덩 시민들의 정당한 불만과 불안이 명료하게 기술된 청원서를 들고 파리로 떠났다. 그 문건에서는 로바르데몽의 처리 방식이 준엄한 비판을 받았고, 카푸친회가 내놓은 새로운 교리는 ‘하나님 율법을 파괴하며’ 교회 박사들과 성 토마스와 소르본대학 학자들의 견해에 상충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소르본 학자들은 비슷한 교리를 이미 1625년에 공식 규탄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루덩의 시민들은 트랑킬의 소책자를 소르본에서 검증하도록 국왕 폐하께서 명해 주십사 탄원하고, 나아가 악마들과 엑소시스트들한테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중상모략 받은 모든 이들이 ‘이런 문제들의 정상적 심판 기구인’ 파리 고등법원에 상소하도록 허용해 주십사고 간청했다. 

  두 치안판사가 궁정에서 다르마냑을 찾아 부탁하자, 그가 즉각 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회답은 퉁명스러운 거절. 그러자 세리제와 쇼베가 국왕의 개인비서에게 청원서를 맡기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이 사람은 추기경의 심복이자 루덩 시민들의 공공연한 적대자였다. 

 

  그들이 파리에 있는 동안 루덩에서는 로바르데몽이 새 포고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그 어떤 공개 집회도 금지하며, 위반할 시 2만 리브로 벌금이 부과될 것이다. 이후로 악마의 존재에 의혹을 품는 이들이 더 이상 골칫거리가 되지 못했다. 

 

엑소시스트들과 국왕 전권대행

 

  이제 예비조사가 다 끝나고 마침내 재판을 개시할 때가 됐다. 로바르데몽은 루덩의 주요 치안판사들 중에서 몇몇을 재판부에 기용할 수 있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무너졌다. 수석 치안판사인 세리제를 비롯해 부르네, 샤를 쇼베, 루이 쇼베 등이 모두 사법살인에 끼어들기를 거부했다. 국왕의 전권대행이 감언이설로 꾀어 보다가 잘 안 먹히자, 추기경 예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어떤 후과가 따를지 생각해 보라고 은근히 겁을 주었다. 그래봤자 헛수고. 법률가 네 사람이 꿋꿋하게 버텼다

 

  할 수 없이 시농, 샤텔로, 푸아티에, 투르, 오를레앙, 라 플레시, 생멕상, 보포르 등 인근 도시에서 재판관을 찾아야 했다. 결국 유순한 판사 열셋으로 재판부를 꾸렸다. 검사를 기용하는 문제도 썩 순탄치 못했다. 피에르 푸르니에라는, 지나치게 꼼꼼한 법률가가 추기경의 룰에 따라 게임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전적으로 신임할 수 있는 도시 검찰관을 선정했다. 

  8월 둘째 주 중반에 재판 준비가 다 끝났다. 미사를 드리고 성찬례에 참석한 뒤 재판관들이 카르멜회 수도원에 모여 지난 몇 달 로바르데몽이 수집한 증거를 죄다 청문하기 시작했다. 푸아티에의 주교는 마귀 들림이 실제 있는 현상이라고 공식적으로 담보했다. 이는 곧 진짜 악마들이 우르술라 수녀들의 입을 통해 말한 것이며, 그 진짜 악마들이 그랑디에가 마법사라고 몇 번이나 단언했다는 의미. 한데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 즉, 악마들은 엑소시스트들의 감시를 받으며 진실을 말한 것이고, 그렇다면… 증명은 끝난 셈이다. 

  유죄 판결이 아주 확실했고, 그 확실함이 얼마나 소문났는지 처형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이미 루덩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무더운 팔월 (루덩 시 인구보다 두 배가 많은) 3만 명이 음식과 숙소와 처형대 가까운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우리 선조들이 공개 처형이라는 스펙터클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 대다수는 참으로 믿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의 휴머니즘 달성을 자축하기 전에 몇 가지를 기억해 보자. 

  첫째, 오늘날 시민들에게는 처형 현장을 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처형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교수형이 인형극처럼 흥미롭게 보이던 시대에 장작불 위 화형이야말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각주:3]이나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각주:4]처럼 보기 드문 사건이고, 그걸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비가 많이 드는 순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공개 처형이 사라진 것은 대다수가 바랐기 때문이 아니다. 지극히 섬세한 개혁가 소수가 그걸 금할 만큼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문명화(개화)란 개개인이 야만적 행위를 자행할 기회를 체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라 정의할 수도 있겠다. 

  한데 근년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억제되던 끝에 이제 우리보다 더 나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야만적인 행위에 기꺼이 몰두하면서 이전의 양상으로 기꺼이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왕과 추기경, 로바르데몽과 고용된 재판관 열셋, 시민들과 관광객들 모두 결말이 어떻게 날지 알고 있었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은 죄수 하나뿐이었다. 

 

  (8월 첫째 주 끝에 가서도 그랑디에는 자신이 평범한 재판의 피고이며, 이전 조사에서 잘못된 것들은 다 우연한 실수이고...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5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7-1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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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5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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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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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로운 생각과 말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과학 실험 3가지

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1. 나바르 왕 앙리가 프랑스 왕위 계승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대신 위그노의 종교 자유와 시민권을 보장하는 칙령을 1598년 선포. 이로써 위그노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는 교회의 화합 아래 강대국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칙령에 교황 클레멘스 8세와 프랑스 로마가톨릭, 파리 고등법원 등이 큰 불만. 나중에 리슐리외 추기경은 낭트칙령에서 정치 관련 조항을 국가에 위험하다고 여겨 알레 칙령(1629)으로 무효화. 1685년 루이 14세가 완전히 폐지, [본문으로]
  2. Messieurs des Grands-Jours - 왕국의 전 지역을 다니며 지방 사법부의 스캔들과 오심을 조사하는 순회 항소법원. [본문으로]
  3. Bayreuth Festival -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해마다 열리는 음악 축전. <니벨룽겐의 반지> 등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만 공연. [본문으로]
  4. 오버아머가우 그리스도 수난극 - 독일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 오버아머가우 주민들이 1634년부터 전통적으로 행하는 공연.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1632년 10월에 성인 사망률 1에서 1633년 3월 20까지 올라갔다. 주민들은 하느님이 이 역병을 물리쳐 주신다면 예수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공연을 평생 하겠노라고 다짐. 사망률이 점차 줄면서 1633년 7월에 1로 가라앉자 주민들은 구원을 받은 것이라 믿었다. 1634년 처음 공연 시작. 전 세계에서 수십 만 관객이 몰려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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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이야말로 얼마나 가련한 순진함이란 말인가! 오호라, 인간 두뇌가 무엇이든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 

  오필리아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알아, 그러나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는 몰라.”[각주:1] 그래, 우리는 누구나 거의 모든 짓을 다 할 수 있다. 아무리 엄한 규율 아래서 성장한 사람이라 해도 그렇다. 

 

  이른바 ‘감응 (혹은, 유도) 법칙’은 뇌와 신경계의 하위 수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뇌피질에서도 발생하며, 모든 강렬한 감정은 그 반대되는 것을 동반한다.[각주:2] 모든 긍정적인 것은 그에 상응하는 부정적인 것을 낳는다. 뭔가 빨간 것을 볼 때, 주변에 녹색 잔상이 따라 붙는다. 어떤 근육 그룹이 작동할 때, 반대 그룹도 자동으로 반응한다. 또 최고 수준의 두뇌 활동에서 애정이 종종 증오를 수반하고 존중과 경외에서 초래된 비웃음 같은 것이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한마디로, 감응 과정은 어디서나 작동한다

 

  잔느 수녀와 그녀의 동료 수녀들은 어려서부터 신앙과 순결을 귀에 못이 박혀라 들으며 자랐다. 바로 이 때문에, 감응 이론에 의하면, 그들 심리에 신성 모독과 외설스러움이 자리 잡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종교문학에는 신앙과 순결에 거스르는 괴물 같은 유혹, 영적 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특히 부닥치는 유혹에 대한 언급이 많다. 지혜로운 지도자들은 그런 유혹이 정상적이고 영적 생활에 거의 불가피한 특징이라 하며, 그런 만큼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각주:3] 

 

   이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이 평상시에는 억눌리거나, 혹여 의식 수준에 들어선다 해도 언행으로 배출되지 않게끔 의지력이 단단히 단속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으로 쇠약해지고 금지되며 실현될 수 없는 환상에 몰입함으로써 광적이 된 원장수녀는 이 감응 후과를 통제할 수 없게 됐다. 히스테리 행위는 전염성이 있어서 그녀 사례를 다른 수녀들이 따랐다. 수녀원 전체가 금방 신성을 모독하고 음란한 소리를 지껄이며 지독한 발작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마귀에 들씌웠다는 수녀들

 

  저들 수도회와 나아가 교회 전체를 광고하며 동시에 그랑디에를 파멸시키기 위해, 엑소시스트들은 스캔들을 조장하고 키우면서 수녀들의 병적 상태를 철저히 이용했다. 수녀들이 괴상한 묘기와 신성 모독과 추잡한 행위를 과시하도록 장려했다. 그러면 늘 구경꾼들이 흥분했으니까. 

 

  원장수녀가 질환 초기에 자신이 귀신들리지 않았다고 고백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단지 그녀의 고해사제와 엑소시스트들이 그녀한테 악마들이 가득 찼다고 끊임없이 주입한 뒤에야 자신이 마귀에 들렸으며 이후 자신의 비즈니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임을 확신하게 됐다.     

 

  몇몇 다른 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1634년에 발간된 책자를 보면 아그네스 수녀는 엑소시즘 중에 자신은 악귀 들리지 않았다고 자주 말했지만 탁발수사들이 고집하여 엑소시즘을 받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6월 26일 엑소시스트가 클레어 수녀 입술에 불붙은 유황을 실수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가엾은 처녀가 눈물을 터뜨리며 소리 쳤다. “내가 악귀 들렸다고 자꾸 말들 하기에 난 그렇게 믿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잖아요!”」 

 

  단순한 히스테리에서 시작된 작업이 미뇽과 바레, 트랑킬 등의 공조 하에 거대한 쇼로 바뀌었다. 동시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그걸 알아차렸다. 앞에 인용한 소책자의 익명 저자가 이렇게 쓴다. 

  「여기에 협잡이 없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수녀들이 정말 마귀에 사로잡혔다고 해야 하나? 혹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어리석음과 상상의 장난에 눌려서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닌가?」 

 

  후자 같은 추정의 형태로 작자는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수녀들이 재계와 밤샘 기도를 지나치게 하고 지옥과 사탄을 너무 많이 숙고했기 때문에. 둘째, 그들을 악마가 유혹하고 있다고 단언하는 고해사제가 그들 상상에 안기는 자극. 끝으로, 그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며 고해사제가 무지의 소치로 그들이 마귀에 들렸거나 마법에 걸렸다고 상상하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즉각 영적 딸들한테도 사실처럼 믿게 했을 수 있다. 

 

  우리 스토리는 세 번째 원인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예전에 수은과 안티몬 치료로 인한 중독이나 오늘날 잦은 현상인 설파제 중독과 혈청 질환처럼, 루덩 수녀원을 휩쓴 유행병은 일종의 ‘의원성 질환’으로, 환자들 건강 회복에 지나치게 몰두한 치료자들 스스로 일으키고 촉진한 것이었다

  또 엑소시스트들이 취한 조치가 가톨릭교회 종규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임을 기억하면, 그들의 책임은 훨씬 더 크다. 이 종규에 따르면, 엑소시즘은 3자들 없이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며, 더욱이 악마들이 저희 소견을 지껄이도록 허용하지 않아야 했다. 악마들이 무슨 소리를 떠든다 해도 절대 믿어서는 안 되며, 악마들 말은 철저히 무시해야 했다. 

 

  한데 루덩에서는 어떻게 했는가. 수녀들을 수많은 구경꾼들 앞에 흥밋거리로 내놓고, 그들의 악마들한테는 섹스에서부터 성변화(聖變化)에 이르기까지 어떤 얘기든 다 늘어놓도록 조장했으며, 악마들의 진술이 죄다 절대적 진실로 수용되고 악마들 자체를 저승에서 온 귀빈처럼 대접하며 그들 언급이 거의 성서와 같은 권위를 지녔던 것이다

  악마들이 신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해도 구경꾼들은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게 바로 악령들이 흔히 하는 짓이니까! 그런 신성 모독과 음담패설이 또한 관중을 끌어들였다. 그런 얘기를 독실한 사람들이 열심히 들었으며, 다음날에는 구경꾼이 수천 명으로 늘었다.  

 

 공연은 실제로 인기 좋았다. 끔찍한 신성 모독과 가장 추잡한 음담패설 따위가 만에 하나 마귀에 사로잡힘의 충분한 증거가 아니라면, 발작 상태에서 기기묘묘하게 몸을 비틀고 꼬는 것은 어떠하며 곡예사처럼 움직이는 묘기는 또 얼마나 멋진가 말이야! 

 

  공중부양은 레퍼토리에서 금방 제외됐다. 수녀들이 실제로 떠오를 수 없었으니까. 그 대신 그들은 마룻바닥에서 가장 놀랍고 아슬아슬한 재주를 여럿 선보였다. 

  니옹의 기록을 보면, 간간이 「그들은 왼쪽 발을 어깨 너머로 돌려서 볼에 닿게 했다. 또 발을 머리 위로 넘겨 엄지발가락으로 코를 건드리기도 했다. 다른 수녀들은 몸과 마루 사이에 틈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 다리를 한껏 벌렸다. 원장수녀의 경우 120센티미터가 조금 더 되는 키에도 불구하고 양쪽 발가락 사이가 2미터를 넘길 정도로 가랑이를 쫙 찢었다.」 

 

  수녀들의 퍼포먼스 기록을 읽다 보면… 여성 영혼에는 타고난 종교적 성향 못지않게 타고난 자기과시욕이 느긋하게 공존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영원한 여성성에 관한 한 자기과시 취향이 고유한 듯 보인다. 그저 재주넘기와 공중제비에서 자신을 내보일 호기만 기다리는 것일 뿐. 

  수녀원에 틀어박혀 명상에 잠기는 사람들 경우 그런 욕망이 특히 발달했다고 짐작할 수 있겠다. 일곱 악마와 참사회 위원 미뇽 덕분에 잔느 수녀가 두 다리를 벌려 바닥에 앉는 연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여러 모로 판단컨대, 수녀들은 아크로바트를 공연하면서 크게 만족했다. 니옹의 기록을 보면, 여러 달 동안 ‘최소한 하루 두 번씩 악마들에게 고문당하면서도’ 그들 건강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다소 골골하던 여인들도 악마에 들씌우기 전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내재해 있던 자기과시 성벽과 숨어 있던 카바레 무용수와 스트리퍼 기질이 표면으로 돌출할 기회를 얻었고, 처음 한동안 이 가엾은 처녀들은 늘 기도해야 하는 임무도 없이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 행복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중간 중간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저들한테 어떤 폭압이 가해지고 있으며 또 저들 애정 판타지의 대상이었던 불행한 사람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문득 문득 알아차리곤 했다. 

 

마귀 들렸다는 수녀들을 상대로 엑소시즘 시행

 

  우리가 앞에서 봤듯이, 6월 26일 클레어 수녀는 엑소시스트들이 대하는 투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녀가 7월 3일에는 성안 채플에서 갑자기 통곡하면서 지난 몇 주일 동안 자기가 그랑디에에 관해 한 말은 새빨간 거짓이요 중상비방이며, 죄다 랑탕 수사와 미뇽, 카르멜회 수사들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눈물 섞어 털어놓았다. 나흘 뒤 양심의 가책과 반항심이 더 커져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 정문에서 붙잡혀 발버둥치고 훌쩍거리는 상태로 다시 수도사들에게 넘겨졌다. 

 

  그런 장면을 보고 대담해진 아그네스 수녀는 (킬리그루가 한 해 지나서도 여전히 카푸친회 수사들 발밑에서 설설 기는 것을 본 그 미녀는) 그녀의 잘 빠진 두 다리를 훔쳐보러 온 구경꾼들에게 무서운 엑소시스트들 손아귀에서 구해 달라고 눈물 흘리며 호소했다. 

  그러나 마지막 말휘갑은 언제나 엑소시스트들의 권리였다. 아그네스 수녀의 애원이나 클레어 수녀의 탈출 시도며 양심선언, 도덕적 불안 등은 모두 그랑디에의 주인이자 수호자인 악마의 간계로 치부되고 말았다

 

  만약 수녀가 주임신부에게 불리한 발언을 모두 취소했다면, 이야말로 사탄이 그녀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며 처음 확언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논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된 것은 바로 원장수녀의 경우였다. 한 치안판사가 그랑디에의 범죄 행위 목록을 간결하게 작성했다. 이 문건 여섯 번째 항목은 이렇다. 

 

  「수녀들이 겪은 고통 중에서 원장수녀의 경우가 가장 괴이했다. 그녀는 진술을 마친 다음날 로바르데몽이 다른 수녀를 심문하는 동안 슈미즈 하나만 걸친 채 수녀원 뜰에 나타나서 목에 밧줄을 두르고 손에 양초를 든 채 퍼붓는 빗속에서 맨머리로 두 시간이나 서 있었다. 

  그러다가 숙사 객실 문이 열리자 달려 들어가 로바르데몽 앞에 무릎 꿇더니 무고한 그랑디에한테 저지른 악의적 비난을 바로잡으러 왔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다시 달려 나가서 뜰에 있는 나무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겼다. 다른 수녀들이 구하러 달려들지 않았다면 목을 매달았을 것이다.」   

 

  원장수녀가 거짓 비난 행위를 참회하고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는 점을 정상인이라면 충분히 짐작했을 터. 그러나 로바르데몽은 안 그랬다! 그에겐 이 통회의 연극이 발람이나 레비아탄이 꾸민 짓이며 마법사의 주문으로 강요된 것임이 명백했다. 

 

원장수녀가 나무에 목을 매달려고 하다

 

  흠, 잔느 수녀의 고백과 자살 시도는 주임신부의 죄를 면케 하기는커녕 오히려 유죄라는 점을 더 굳혀주는 게야! 

 

  그런 몸부림은 다 쓸모없는 짓이었다. 그들 스스로 감옥을 만든 꼴이 됐다. 이제 사실처럼 구체화된 음탕한 몽상의 감옥, 이제 드러난 진실처럼 취급된 의도적 거짓말의 감옥 말이다. 거기서 수녀들이 달아날 길은 전혀 없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이제 그들의 참회를 받아들일 수도 없을 만큼 멀리 나아갔다. 그리고 진술을 부인한다는 자체가 그들에게 위험한 짓이었다. 그랑디에를 두고 한 말을 철회함으로써 그들은 현세에서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징벌을 면치 못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망설임과 주저 끝에 다시 엑소시스트들 편에 서기를 택했다. 수도사들도 계속 강조했다. 

  가책의 고통이란 그저 악마적인 환상일 뿐이야. 돌이켜보니 거짓말인 듯싶은 것이 실제로는 아주 건강한 진실이지. 그 정통성이며 사실과 부합한다는 점을 교회가 다 보증할 테니 아무 걱정들 말어. 

 

  그런 말을 그들이 귀담아들으면서 그렇게 믿으려고 또 고생했다. 그리고 이 가증스러운 허튼소리를 믿는 체만 하고 지나치기 어렵게 됐을 때, 그들은 섬망 상태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수평적으로, 일상적 현실 수준에서는, 이 감옥에서 달아날 길이 없었다. 상향적 자기초월로 말하자면, 온통 악귀들에 붙들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 영혼을 끌어 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훨씬 더 넓게 열려 있었다. 바로 거기로 그들은 자꾸만 내려갔다. 때로는 죄의식과 자기비하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자발적으로, 또 때로 그들의 광기와 엑소시스트들의 암시가 너무 강할 때는 의지에 반하여, 자꾸만 밑으로 내려갔다. 

  발작을 향해 밑으로, 돼지처럼 지저분함을 향해 밑으로, 미친 듯 격렬한 행위를 향해 밑으로… 내려갔다. 본연의 인격 수준 아래로 한참 내려가서 여인들은 어두운 비인간적 세계로 가라앉았는데, 거기서는 귀족 출신 여인이 관중을 즐겁게 하려고 묘기 부리는 것이, 수녀가 신성을 모독하고 품위 없는 자세를 취하며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더 아래로, 지각 마비 상태로, 강경증 상태로, 완전한 무의식이며 완벽한 망각 상태라는 궁극적 행복을 향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7-2편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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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7-1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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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Lord, we know what we are, but know not what we may be." - <햄릿> 4막 5장. [본문으로]
  2. Ischlondsky의 (런던, 1949) 참고 - 저자 주. [본문으로]
  3. 1923년 1월 26일 자 편지에서, 돔 존 채프먼은 이렇게 적는다. 「17-18세기에 많은 독실한 이들은 하느님께 버림받은 것 같을 때 의심의 시기를 거쳤습니다. 오늘날은 그런 일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은 다른 종류의 시험을 견뎌야 하지요. 갑자기 믿음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을 갖는 되는 겁니다. 즉, 신앙의 어떤 부분이 아니라 종교 자체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이때 유일한 치유는 그런 의혹을 경멸하고, 거기에 주목하지 않으며, 하느님을 위해 원하시는 대로 고통 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그분께 단언하는 것뿐. 믿지 않는 이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겠지요.」 - 저자 주. *Dom John Chapman (1865-1933) - 로마가톨릭 성직자, 영국 베네딕트회 대수도원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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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The Devils of Loudun

 


 

 

7-1  

 

  특정한 시대와 지역에서는 전혀 허용되지 않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생각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혹자가 특정한 감정을 절대 못 느끼고, 그 감정이 부추기는 행위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가 극히 비판적으로 대하는 행위가 시대 흐름에 역행하면서도 나오는 때가 더러 있다. 그러나 느낌과 기질이 허용하는 대로 개개인이 느끼고 행할 수 있다 해도, 그 각자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기란 특정한 시대와 지역의 평가 기준 안에서만 가능하다

  생각과 행위는 전통적 도덕과 이데올로기 같이 지배적인 사고방식으로 해석되기 마련인데, 이 사고방식이 충동과 감정을 웬만큼 조절은 해도 완전히 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그렇게 하면 지옥행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죽을죄를 저지르는 신자의 경우가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피에르 베일[각주:1] 이 1592년 혼인에 관한 논저를 출간한 예수회 수사 토마스 산체스에 관한 주석에 숨겨 놓은, 대단히 분별 있는 언급을 인용하고자 한다. 산체스의 논저를 동시대인들과 후손들은 지극히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했다.[각주:2] 

  우리한테 흥미로운 주제를 베일은 이렇게 판단한다. 

  「신부에게 고해하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우리가 웬만큼 알지만, 고대 이교도들의 사생활이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그런 고로 이교도들의 혼인이 기독교인들 경우처럼 육욕으로 더럽혀졌는지를 우리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불신자들이 성서의 가르침을 믿는 많은 사람들보다 더 난잡하게 굴지는 않은 듯싶다

  성서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 연옥, 로마가톨릭교회의 여러 교리를 알고 있다. 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극도로 불결한 행위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다음 생을 의심하거나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타락한다고 확언하는 견해를 반박하기 위함이다.」 

 

  여러 모로 판단컨대 1592년도 인류의 섹스 관행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행위에 대한 생각에서만 사람들이 달라졌을 뿐. 그 당시에는 하벨록 엘리스나 크라프트에빙의 생각이 참으로 혐오스럽게 보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현대 성과학자들이 묘사한 감정과 행위는 옛날에도 지금처럼 널리 퍼져 있었다. 지옥 불을 성스럽게 믿는 사회와 믿음을 상실한 사회 간에 차이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다음 몇 대목에서 나는 인간 본성에 대해 17세기 초 사람들이 어떤 평가 기준을 갖고 있었는지 아주 간략히 기술하겠다. 이 평가 기준은 훨씬 더 이른 시대에 형성됐으며 기독교 전통 교리와 밀접했고, 그래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 수용돼 왔다. 우리는 아무리 무지하다 해도 최소한 회의를 품어본다는 것쯤은 배웠다. 낡은 사고방식이 여러 면에서 특정한 체험 사실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오늘날 다들 확실히 알고 있다. 

  이 이론적 관점의 불충분한 면이 예전 사람들 일상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우리는 그렇게 물을 수 있으며, 그 대답은 이러하리라. 어떤 경우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강력하게 작용했다고. 

 

  사람은 현행 심리 이론을 전혀 모르면서도 뛰어난 심리학자처럼 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또한 명백히 부적절한 심리 이론을 신봉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통찰력이 있다면 여전히 뛰어난 심리학자처럼 행동한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반면에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이론은 (히스테리를 악마에 사로잡혔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이론 같은 것은) 사람들한테서 최악의 욕망을 일으키며 형용 못할 야만성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니 이론이란 본질적인 게 아니면서도 동시에 정말 중요한 것이다

 

The Anatomy of Melancholy, Robert Burton

 

  그랑디에의 동시대인들은 평범한 행동이며 또 루덩에서 발생한 희한한 일들을 인간 본성에 관한 어떤 이론으로 해석했을까? 이 물음에 우리는 주로 로버트 버튼을 인용해서 답해 보려고 한다. 고전이 된 그의 저서 <멜랑콜리 해부>의 몇 장에는 데카르트 이전 시대 모든 이들이 실제로 공리처럼 용인하고 간주한 철학이 간결하고 명쾌하게 담겨 있다. 버튼은 이렇게 쓴다. 

 

  「영혼은 불멸이고 무에서 창조되며, 수태 이후 반년 뒤 자궁에 있는 아기나 태아에 들어간다. 생명을 어미가 새끼한테 전하고 죽은 뒤에는 까맣게 망각되는 짐승들 경우와 다르다.」 

 

  영혼은 분리되거나 해체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단일한 실체이다. 어원적인 의미에서는 심리적인 원자, 잘게 썰 수 없는 무엇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 단일하고 나뉘지 않는 영혼에는 3위가 있다. 즉, 서로 다른 식물적 영혼, 감각적 영혼, 이성적 영혼을 포함하는, 단일체 안에 있는 3위 같은 것이다. 

 

  식물적 영혼이란 ‘자양분을 받고 성장하고 자신과 같은 것을 생산하는 유기체의 실질적인 의지’로 정의된다. 이 세 가지 기능을 라틴어로는 각각 altrix, auctrix, procreatrix로 부른다. 

  첫 번째 altrix는 영양 기능으로, 그 대상은 음식물이며 그 주요 기관은 감각적 생물에서는 간이요 식물에서는 뿌리나 수액이다. 그 목적은 영양분을 신체 물질로 바꾸는 것인데, 이 과정은 생명에 필요한 열로 수행된다. 영양 공급 기능이 신체에 영양분을 주듯이, (식물적 기능의 두 번째 작용이나 힘인) 성장 기능은 신체 규모를 키우는 것. 즉, 신체가 적당한 비율과 완벽한 모양을 갖출 때까지 자라게 만든다. 식물적 영혼의 세 번째 기능은 생식력으로, 같은 종의 재생산 작용이다. 

 

  이어서 감각적 영혼이 있는데, ‘이것은 짐승이 식물적 기능만 갖춘 식물계를 압도하듯이 그 가치에서 식물적 영혼을 능가한다.’ 감각적 영혼이란 ‘유기체를 살게 하고 감각과 식욕, 판단, 호흡, 운동을 촉진하는 의지’로 정의된다. 이 영혼의 주요 기관은 두뇌이며, 분별 있는 활동이 다 원칙적으로 여기서 나온다. 

  감각적 영혼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각각 지각과 운동을 관장한다. 지각을 관장하는 부분은 또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갈라져서, 외적 기능으로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의 오감이 있고, 내적 기능에는 세 가지가 관련되니, 상식과 판타지, 기억이다. 

 

  상식은 특히 눈과 귀 같은 감각기관이 보낸 메시지를 판단하고 비교하고 정리한다. 이 상식의 데이터를 판타지가 더 충분히 검증하고 ‘다시 마인드에 불러들이거나 나름대로 새 것을 만듦으로써 데이터를 더 오래 간직한다.’ 기억은 판타지와 상식에서 나오는 것을 죄다 받아서, ‘좋은 기록부에 저장한다.’   사람의 상상은 「분별을 필요로 하며 분별에 지배된다. 혹은 적어도 그러해야 한다. 그러나 짐승의 경우 상상보다 우위인 것은 없고, 그저 ‘짐승의 분별’만 가지고 있다.」 

  감각적 영혼의 두 번째, 운동을 관장하는 부분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또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각각 갈망과 이동이라는 기능을 맡는다.’ 

 

  끝으로 이성적 영혼도 있어서, 이를 철학자들은 「자연적이고 인간적이며 유기적인 신체의 으뜸가는 실질적 의지로 정의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바로 이 영혼에 복종하면서 살고 생각하고 인식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니까.」 

  이 정의에서 우리는 이런 점을 짐작할 수 있겠다. 즉, 이성적 영혼은 앞의 다른 두 영혼을 포함하며 그 두 영혼의 의무를 수행하고, 이 세 가지가 다 합쳐서 하나의 온전한 영혼을 이룬다는 것

  이 영혼은 (신체) 모든 기관에 있기는 하지만 자체로는 생물 구조가 아니고 무형이면서 각 영혼의 기관을 이용하고 그것들로써 작동된다. 영혼은 본질이 아니라 순전히 지적 기능하고만 관련돼 또 두 부분으로 나뉘기도 한다. 즉, 깨닫고 파악하는 이성적 기능인 이해,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이성적 기능인 의지. 이 두 가지에 다른 모든 이성적 기능이 매이고 복종한다

 

  대체로 이런 이론을 가지고 우리 선조들은 사람 심리를 생각하고 경험과 행위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이 개념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내려왔으며 많은 요소가 신학적 교리들에 의거하거나 교리의 필연적 결과였고, 그렇기 때문에 반박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만약 그 이론이 옳다면, 오늘날 우리한테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는 인간 활동의 몇몇 측면은 생각도 설명도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두 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미스 보샹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나무랄 데 없지만 다소 병약하며 일상에서 원칙이 철저하고 억압된 상태에서 불안 증세가 심한 젊은 여대생. 그녀가 간간이 영판 다른 사람이 되어 아주 소란스럽고 서낙하고 튼튼한 열 살 아이처럼 행동했다. 이 앙팡테리블이 최면 상태에서 질문을 받고 자신은 미스 보샹이 아니라 샐리라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몇 시간이나 며칠 지나 샐리는 사라지고 미스 보샹이 의식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때는 샐리가 아니라 오로지 본래 자신의 의식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샐리라는 사람의 의식에 지배됐을 때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행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에 샐리는 미스 보샹에 대해 훤히 알고, 이 교양 있고 정직한 여성을 당혹케 하고 괴롭히기 위해 그 아는 것을 이용한다. 

  이 잘 알려진 경우를 정신과 의사 머튼 프린스가 맡았다.[각주:3] 이 기묘한 사례를 그는 현대적 무의식 이론으로 생각할 수 있고 최면술에 능했기 때문에, 미스 보샹의 인격 분열 증세를 치료하고 몇 해 만에 심신 건강을 찾아줄 수 있었다. 

 

  어떤 측면에서 잔느 수녀의 경우는 미스 보샹과 본질적으로 흡사했다. 그녀는 주기적으로 평상시 자신의 껍질을 내던졌으며, 좋은 집안 출신의 존중받는 수녀에서 몇 시간이나 며칠 동안 신성을 욕하는 야만인으로, 수치라곤 전혀 모르는 입정 사나운 여인으로 돌변했으며, 자신을 때론 아스모데우스, 때론 발람, 때론 레비아탄이라 불렀다. 그리고 제 정신으로 돌아와서는 본연의 자신이 없는 중에 그 다른 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행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정말 그랬다.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했나? 

  어떤 옵서버들은 이 비참한 비즈니스를 의도적인 협잡으로 단정했고, 또 어떤 관찰자들은 체액이 교란되면서 정신 교란으로 이어져 나타나는 ‘멜랑콜리’라고 했다. 이런 가설을 수용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대안 설명만 남았으니… 바로 마귀 들림. 수녀들한테 악마들이 들어앉은 거야! 

 

  당대의 확고한 이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어떤 다른 결론에 이르기는 불가능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영혼’이란, 달리 말해 사람의 의식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은, 나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원자였다. 그런 만큼 인격 분열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당대에는 신성 모독으로 들렸을 것이다

  만약 한 육체에 둘 이상의 인격이 갑자기 들어앉았다면, 우리 선조들 관점에서, 그건 결합이 단단치 못한 심리적, 신체적 요소들 덩어리가 분열됐기 때문이 아니라 나뉠 수 없는 영혼이 육체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하고 악령들이 대신 들어섰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여기서 이 고약한 영들이란, 종교에 따르면, 우주에 꽉 들어찬 무수한 초자연적 존재

 

  (우리의 두 번째 사례는 최면에 걸린 사람으로, 최면에 의해 강경증(强勁症) 상태로 들어선 경우...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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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Pierre Bayle (1647-1706) - 철학과 신학 비평가. 계몽시대 프랑스에서 새로운 변증가들과 회의론자들의 태두. 개신교 목회자 아들로 태어나 예수회 수사들에게서 철학 공부하며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프로테스탄트가 됨. 한 저술이 무신론 혐의로 공격 받으며 사회 활동이 거의 정지된 상황에서 <역사와 비평 사전 dictionnaire historique et critique> 집필에 전념. (이 책은 1696년 2권으로 나온 뒤 50년에 걸쳐 9판을 찍고 1820년에는 파리에서 16권으로 발간됐다.)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이 저술을 두고 신교의 적이라 몰리며 종교적 관점이 공격 받으면서, 정신적 압박에 신체적 고통이 가중돼 숨졌다. <사전>은 프랑스 정신에 아주 고유한 회의론의 원천이 되며 프랑스 지성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 종교적 신조로부터 도덕적 행위와 도덕적 가치의 독립을 주창. [본문으로]
  2. Thomas Sanchez (1550-1610) - 에스파냐의 예수회 수사, 유명한 결의론자. 평생 자기완성을 위해 쏟은 열정과 견인불발을 동시대인들이 증언. 개연설에 대한 분방한 관념을 담고 있는 그의 저술은 로마가톨릭 금서 목록에 들고 방종하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특히 'mental reservation 심중 유보'에 관한 언급을 두고 파스칼이 <시골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질타했다. 교황 인노켄트 11세가 비판한 26가지 논제들 중 몇몇은 그의 저술들에 있었다. 그러나 1592년 출간된 는 로마교황청이 혼인에 관한 고전들 중 하나로 인정했다. [본문으로]
  3. Morton Henry Prince (1854–1929) - 미국의 의사, 심리학자. 신경학과 이상심리 연구. 심리 치료를 개발하기 위해 최면술을 최초로 이용. 보샹의 경우는 다중인격 연구에서 중요한 사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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