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 Журавли>: 노래말 - 라술 감자토프, 작곡 - 얀 프렌켈, 노래: 그룹 <세레브로>)
우리 곁을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이 노랫말과 노래와 백학은 러시아에서 전몰장병들을 기리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시 <백학 cranes>이 나오게 된 배경
사다코 사사키
러시아연방 다게스탄 공화국의 감자토프 시인이 1960년대 중반 히로시마에 있는 한 일본 소녀의 추모비를 찾았다가 어떤 영감을 떠올린다. 이 소녀는 사다코 사사키, 두 살 때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됐고, 이로 인해 백혈병으로 고생하다가 1955년에 12세로 죽었다.
사다코는 병마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안고 색종이로 종이학을 접었다. 종이학 천 개를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믿음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고, 다게스탄 사람인 감자토프 시인은 러시아 고전 시가의 번역가로서 그런 개념을 잘 알고 있었다.
감자토프 시인이 일본을 방문하던 기간에 모친 사망 소식을 접한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머니를 생각했다. 또 2차 대전 때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죽은 형과 행방불명된 다른 형을, 또 그 피범벅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다른 가까운 이들도 떠올렸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나치 군대와 그 동맹인 일본국에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던가.
라술 감자토프 (1923-2003)
그리고 시에서 토로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학의 외침이, 울음소리가, 어쩌면 아바르어와 까마득한 옛날부터 비슷한 것이 아닐까?” (*아바르어는 까프까즈 산악지대 다게스탄 주민들의 언어이다.) 그에게는 일본의 백학이 아바르의 것과 매한가지였다. (어쩌면, 일본의 백학도, 러시아의 백학도, 아바르의 백학도, 한국의 백학도 감수성 충만하고 마음씨 따스한 이들에겐 다 똑같지 않을까.)
아바르어로 쓴 시가 1968년 러시아로 번역돼 한 저널에 실렸다. 이 시가 가수 마크 번스의 눈길을 끌었다. 단어 몇 개를 수정하고, 얀 프렌켈이 두 달만에 곡을 완성했다.
이 노래가 나오고 몇 년 뒤, 소비에트연방 정부는 2차 대전 격전지마다 비석과 기념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중앙에는 날아가는 백학들이 (먼저 떠난 이들의 영혼이) 자리 잡았다. 이 노래의 백학은 전몰장병들을 기리는 상징으로 굳어졌다.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불렀다. 앞으로도 또 부를 것이다. 좋은 노래는 그렇게 사랑받으면서 점점 더 진화한다. 소개하는 몇 가지 버전을 통해 그 맛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실감할 수 있다.
여름 끝물 무렵은 아마도 알프스 북부 지역에서 가장 멋진 시기일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을 늘 반추하게 된다. 비록 70년이 지난 일이지만 말이다. 그때 난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고 글자를 읽을 줄 몰랐던 나이였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다뉴브 강이 흐르는 초원을 자주 거닐었는데, 조심스러운 엄마와 한층 더 조심스러운 이모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난 혼자 앞으로 달려가서 강변 관목들 사이에 서 있곤 했다. 머리 위쪽에서 기묘한 금속성 소리가 울리면서 높은 하늘에서 강을 따라 내려오는 야생오리 떼를 자주 보았다.
인간의 감정은 아주 일찍부터 발달해서 죽을 때까지 그대로 남는다.
그때 맛보았던 느낌을 난 이제 다시금 맛본다.
그 오리들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몰랐지만, 난 정말 그들과 함께 가고 싶었다. 편력의 갈망이 낭만적으로 가득 차서 어린 가슴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려는 갈망이 내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그래, 그게 최초의 경험이었다.
지금도 내 머리 위로 우리의 야생오리들이 높이 날아갈 때면… 어린 시절 품었던 낭만적인 동경과 이상이 다시금 솟아난다. 또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내가 부르는 소리에 그들이 밑으로 내려올 때면… 어린 시절 꿈이 실제가 된다.
소통의 한 분야로서 요즘 <부모와 자녀의 소통, 어른들과 아이들의 대화>에 관한 원고를 다듬고 있다. 활동성 (적극성), 독자성 추구, 쉽게 몰입하는 성향, 유연성, 예민한 감수성, 풍부한 감정 등 '아이들의 내면세계'를 우리 어른들이 알고 이해하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에서 생생한 사례로 저 회상을 인용하느라고 나왔다.
그러다가... <백학>이 떠올랐다.
‘아, 이 노랫말과 노래를 언젠가 포스팅한 적이 있었는데...’
찾아보니까, 이 블로그엔 없다. 몇 년 전 다른 <밴드>에 올렸더라. 그래서 여기에도 좀 소상하게 소개하게 됐다. 즉흥적으로. ^^
우리네 (사람들의) 생각이란 그렇게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에크하르트 톨레는 '생각의 흐름'을 차단하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때의 '생각'이란 물론 '잡생각, 잡념'을 뜻한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백학>은 나도 아주 좋아하는 노랫말이요 선율이다.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미어진다. 아프다. 하지만 이건 다 긍정적인 아픔이다. 카타르시스. 정화되는...
*노랫말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올려야 하는데… 예전에 제법 깔끔하게 다듬고 다듬은 것이 어디로 사라졌다. (자료 보관의 중요성!) 다시 다듬을 생각을 하니까 좀 피곤해진다. 공력을 제법 들여야 하니까! 일단은 영어 번역판으로도 독자들께서 감을 잡으시리라 믿는다. 조만간 우리말 번역을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