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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나는 누구인가?

 

우리네 인식의 특성이며 마인드의 작업과 관련된 자료를 아주 많이 알아봤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기능하기 위해 마인드가 만들어 내는 주된 환상들을 살펴봤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아직 다루지 않았다. 즉,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우리 뇌는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다 하나? 

누가 감정을 느끼고 자기 생각을 인식하나? 

모든 환상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나?

그 모든 환상을 인식하는 것은 누구인가? 

 

뇌 모델을 들여다보는 여자

 

우리 대화의 주요 주제에 이르렀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 알아보기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분명히 인식한다.

“내가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그러나 당신이 있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사람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영혼인가? 

왜 굳이 이런 질문들을 던지나? 우리가 누구인지는 이미 명확하지 않은가? 

만약 명확하지 않다면, ‘실제로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서 좋은 게 무엇인가? 

이건 다 자연스러운 질문이고, 우리는 거기에 차례로 대답할 것이다. 

 


 

  15. 당신은 당신 세계 안에 있다  

 

자,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이 왜 나오나? 

우리네 행동이 다 어떻게든 우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왜냐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영위하는 삶은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 이웃의 삶이 아니라. 

왜냐하면, 당신은 자기 삶을 잘 관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니까.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 잘 모르는 사람을 모욕하거나 함부로 대한다면, 거기에 당신은 거의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니까. 설령 반응한다 해도 잠깐 살짝 화가 나겠지. 한데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렇게 한다면, 당신 반응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지키려 들 것이다. 

즉, 대응하여 욕을 퍼붓거나, 아니면 말조심하라고 점잖게 주의 주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상황을 피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 그것은 당신에게 큰 상처를 주고, 당신은 분노나 두려움을 맛볼 것이다.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과 당신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 당신 반응이 왜 그리 다른가?

왜냐하면,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누군가가 모욕하는 것은 당신을 거의 건드리지 않겠지만, 당신을 모욕한다면 그건 당신에 대한 직접 공격이며, 따라서 당신은 자연스레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를 옹호하나? 자신을? 그렇다면, 이 ‘자신’은 또 누구인가? 

 

내가 만약 내 주머니에서 5만 원 지폐를 꺼내 당신 앞에서 찢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당신의 5만 원 지폐를 잠깐 보여 달라고 한 뒤 그걸 찢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나의 행동은 똑같지만, 내 돈인 경우와 당신 돈인 경우에 당신 반응은 분명 다를 것이다. 당신 돈을 찢으면 화를 내겠지만, 내 돈을 찢으면 당신은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건 또 왜 그런가?

왜냐하면, 내 돈은 당신 것이 아니지만 당신 지폐는 당신 것이니까. 당연한 소린가? 이 지폐가 당신 것이라는 사실이 당신에게 그런 반응을 일으켰다.  

5만 원 지폐. 나의 것과 남의 것.

돈을 포함해 뭔가를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의 자아감이 연루돼 있음을 암시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누가 5만 원 권을 소유하나? 당신이?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지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직장 상사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직원을 칭찬했다면, 당신 기분이 어떨까? 부러움이나 질투? 혹은, 아무렇지도 않다? 상사가 직원들 다 모인 자리에서 당신을 칭찬하며 당신 같은 직원이 필요하고 당신은 정말 소중한 인재라고 말한다면, 그때 당신 느낌은 어떨까? 자기 자신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자랑스레 여기고 당신의 자존감이 커지겠지. 

만약 그 상사가 다음 날 당신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고 나무란다면, 당신은 당혹스럽고 화가 나겠지.

칭찬과 비난이 왜 당신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나?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당신과 관련되고 당신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당신은 잘하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한다.

칭찬과 비난이 누구와 관련되나? 당신과?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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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에게 얼마 전에 획기적인 비듬 치료제가 개발됐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제법 흥미를 보일 것이다. 당신 숙부가 당신에게 10억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를 것이다. 한데 이 유산을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모르는 다른 친척이 받았다면, 당신에겐 어떤 느낌이 들까? 설마 기쁨 같은 것을 느낄 리는 거의 없다.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에서 울릉도 출신의 아무개 여성이 우승했다면, 당신에겐 어떤가? 별다른 느낌이 없을 것이다. 그 대회에서 당신 딸이 우승했다면, 딸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당신과 관계되는 정보는 전부 그렇지 않은 것보다 어떤 식으로든 당신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헤드폰 쓰고 앉아 있는 젊은이 주변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보라!

세상은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만에 하나, 당신이 당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니고 가족이나 사업, 조국이나 자녀를 당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곧바로 이런 질문을 건네겠다.

“그건 누구의 가족이고 누구의 사업이고 누구의 조국이고 누구의 자녀들인가?”

바로 당신 아닌가!

남의 나라, 남의 가족, 남의 자녀들을 두고 당신이 크게 염려할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동정심에서 그럴 뿐이다.

당신이 무엇이나 누군가를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둔다면, 그건 단지 당신이 거기에 강하게 애착을 갖고 자신의 행복을 그의 안녕에 좌우되게 만들었기 때문일 뿐이다. 다시 말하건대, 당신이 없으면 안 된다. 

 

당신이다! 이 삶을 사는 사람은 당신이다.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당신이야. 당신이 고통받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해.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고 기뻐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당신이다. 꿈도 당신이 꾼다. 삶이 당신 것이다. 

당신 삶에서 당신이 없는 순간을 하나라도 꼽아 보라.

어찌어찌 궁리하여 그런 순간을 보여준다면, 마지막으로

“그것은 누구의 의식에서 일어나나?”

하는 질문을 던진다.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를 다 지각할 수 있게 하는 의식은 당신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인가?

누구의 의식인가? 

 

당신이 보고 느끼는 세계는 전부 당신 세계이다. 당신이 의식하고, 당신이 보고 듣고 알고 기억하는 것은 전부 당신의 주관적인 세계임을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주관적 세계가 있고, 거기에 당신은 접근할 수 없다.

이해가 되나? 언젠가 인식하고 알았던 것이 죄다 당신의 주관적 세계 안에 있다.

오로지 당신만이 당신의 개인적인 주관적 세계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모든 게 당신에게 달려 있고 당신이 당신 삶의 중심이라면, 당신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그러니, 당신은 누구인가?

아마 이런 식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철수야”, “나는 사람이야”, “난 엄마야”, “난 여자야”, “나는 영혼이야”, “난 몸이야”, “난 목수야”, “난 과학자야”, “난 사업가야”, “나는 인격이야”, “나는 내 생각이야”, “나는 내 느낌이야”, “난 딸이야”, “난 호모사피엔스야”, 등등. 

 

물론 이것이 다 당신에게 해당하고 적용될 수 있지만, 우린 다른 뭔가를 찾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난 널 사랑해” 하고 말하는데, 이때의 <나>는 누구인가? 

“난 뭘 좀 먹고 싶어” 하고 말할 때, 먹기 원하는 ‘나’에 대한 느낌 같은 것이 있다. 

“난 앞에 놓인 이 텍스트를 보고 있어” 하고 말할 때, 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누가 보는 건가? 

“나에겐 친구들이 있어” 하고 말할 때, 당신이 의미하는 <나>는 누구인가? 

 

저런 말들을 할 때, 우리에겐 ‘나’라는 어떤 느낌이, 자아감이, 있다.

더 이해되게끔, 자신을 염두에 두면서 ‘나, 나, 나, …’를 그냥 말해 보라.

무슨 느낌이 드나? 

뭔가를 느끼고 원하고 실행하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당신 자신에 대한 어떤 느낌이 있다.

자신에 대한 이런 느낌을 우리는 자아감 혹은 ‘나’ 느낌이라 부를 것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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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 미혹 > ... )

  14-2. 세계를 실재라 여기는 환상  

 

좀 더 연습해 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착상이나 계획이 있나?

걸림돌이 무엇인지 아나?

그 착상이나 계획이 당신에겐 존재하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없다. 

당신한테 치통이 있나? (이가 아프다고 상상하자).

대답은 마찬가지야. 치통이 있긴 하지만, 당신한테만 있다.

그런데 의사들이 ‘환상통’이란 용어를 쓴다. 통증의 생리적 원인은 없는데 사람이 통증을 느끼는 것. 그런 통증을 의사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장치를 통한 검사와 분석만 믿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느낌을 인정하지만, 진단에 보충 정보로만 인정한다. 

 

우주가 존재하나?

이건 트릭이 있는 질문이다. 

첫째, 우주란 당신이 어떤 의미를 집어넣는 단어이다.

1) 누군가는 우주를 삼라만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2) 누군가는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돼 계속 팽창하는 무한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3) 혹자에게 우주는 신이 이레 동안 창조한 피조물이고, 

4) 다른 혹자에게 우주는 그저 시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이렇게 ‘우주’는 당신 마인드에서 이미지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오로지 당신에게만 존재한다. 당신이 나한테 우주가 신의 피조물이라고 오랜 시간 설득하고 증명할 수 있지만, 나에게 우주에 대한 다른 관념이 있다면 당신은 자기 이미지를 나에게 강요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식에서 주된 오류로 다시 돌아왔다. 즉,

1) 세상에 대한 자기 생각이 절대적 의미에서 참이라고 믿음과

2)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혼란

우리네 인간이 범하는 주된 잘못이다. 

 

이제 보충 질문을 하나 다뤄본다. 

당신이 안 보는 물건이나 대상이 있나?

예를 들어, 시내를 걸으면서 저 앞에 건물과 자동차, 사람들이 보인다.

등 뒤에는 무엇이 있나? 

 

시내 거리를 걷는 사람의 뒷모습

이런 경우 사람은 흔히 기억을 얼른 작동하여 자기 뒤에 있는 것을 떠올린다.
우리는 등 뒤에 있는 물체의 그림을 마인드에서 생생하게 그리는데, 이것이
단지 마인드에 있는 그림이요 내면세계의 이미지일 뿐임을 잊는다.
이 내면 이미지들을 우리는 별생각 없이 실재와 (현실과) 혼동한다

 

세상 그림을 기억의 정보로 자동 보충하는 것은 사실 우리 마인드의 놀라운 능력이다. 이 경우, 세상을 우리가 사는 거대한 공간으로 여기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에 살며 어떤 거리가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 우리는 주변 세계를 눈앞에 보는 것보다 더 큰 뭔가로 본다. 

예를 들어, 당신이 자기 방에 앉아 있다. 이 방은 당신 아파트 안에 있고, 아파트는 어떤 거리나 구역에 있고, 이 거리는 도시에 있고, 이 도시는 나라 안에 있고, 이 모든 것이 지구상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존재하나?
그렇다,
하지만 객관적 실재가 (현실이) 아니라, 우리 마인드의 이미지로만, 당신의 주관적 세계로만 존재한다. 

 

당신이 뒤를 돌아보지 않을 때 “등 뒤에 뭔가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로서는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당신이 뭔가를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있다’ 없다‘ ’존재하다‘라는 단어를 현명하게 쓸 줄 알기에, 저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하자. 

 

우리는 외부세계의 특정 물체를 우리 마인드가 만드는 외부 이미지로 보는 데 익숙해졌다.

예를 들어 자기 손을 본다면, 그건 당신이 보는 특정 물체의 형태로 당신 의식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 손에는 나름의 형태와 색깔이 있다. 이것은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손의 외부 이미지이다. 

만약 손을 등 뒤로 감추면 직접 볼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외부세계의 특정 물체의 외부 이미지로서 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는 것뿐인데, 기억에서 복원한 손 이미지는 이미 당신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마인드가 만든 내부 이미지일 것이다. 당신이 익숙하게 보던 손 자체는 사라질 것이다. 

 

사실, 이건 ‘사람 없는 숲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있을까’ 하는 물음과 비슷하다.

우린 이 물음을 앞에서 이미 살펴보고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뭔가를 누군가가 관찰하지 않는 한 그것은 없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있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세계의 실재에 대한 이 모든 환상은 이미 여러 철학자와 공상과학소설 작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묘사된 것이다.

예를 들어, 호평을 받은 영화 <매트릭스>가 바로 그렇다. 주인공 네오는 자기가 살고 있으며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익숙한 세계가 사실은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진 컴퓨터 시뮬레이션임을 알게 된다. 현대의 많은 영성 대가들이 깨달음의 아주 좋은 비유로 영화 <매트릭스>를 권한다. 

이 비유는 훌륭한데, 정확하진 않다.

주인공이 그의 세계가 환상임을 발견하고서 그와 비슷한 다른 세계로 들어서지 않고 ‘무’에 있게 됐다면, 깨달음의 더 정확한 은유였을 것이다.

 

깨달음의 대가들이 이에 관해 그렇게 말들 한다.

우리 세계는 단지 환상이고 꿈일 뿐이다. 이건 다 꿈과 비슷하다고 말들 한다.

꿈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잠을 깰 때, 이것이 단지 관념이었을 뿐임을 발견한다. 우린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잠을 깨고 나서는 꿈에서 일어난 것이 전부 진짜였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꿈속에 있는 동안에는 그게 현실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깨달음 얻은 이들은 깨달음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고 입을 모은다.

깨어난 뒤, 그들은 보통 사람이 진짜라고 여기는 것이 전부 환상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이걸 마야라고 부른다.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힘이요 환상의 산물인 마야(maya)는 우리 각자의 주관적인 세계이다. 이건 비현실적임을 우리가 알아봤다. 우리 의식과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우리를 위해 현실의 모델을 만드는 마인드의 작업이 전부 마야이다. 마야는 진짜 실재를 우리한테 숨긴다. 오로지 깨어난 이들과 마야의 최면에서 빠져나온 이들만이 진짜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보통 사람들은 이걸 알 수 없어, 왜냐하면 마야의 경계를 넘어선 상태를 아무리 상상해도, 이건 또 다른 내면 이미지일 뿐일 테니까, 즉 마야의 연속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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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 익숙한 세계의 환상적 속성에 대한 또 다른 좋은 은유는 아바타이다.

아바타는 힌두교 전통에서 지상에 나타난 신의 화신이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 이해가 더 잘 될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캡슐에 집어넣는데, 이 캡슐이 그의 인식을 ‘아바타’라 불리는 어떤 생명체의 인식과 연결한다. 이 ‘아바타’ 생명체는 행성에 서식하는 나비(na’vi)라는 생명체들을 인공적으로 키운 몸체이다. 

주인공이 아바타에 연결되면, 그는 이 아바타라는 생명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그가 아바타 속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인간의 의식이 이 생명체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다. 아바타 몸체 안에 있는 동안 주인공은 그것이 모조품에 불과하며 자신은 그것에 센서가 연결돼 지금 캡슐에 누워 있는 인간임을 점차 잊는다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아름다움은 당신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 금방 당신이 설명한 것을 난 자연에 둘러싸여 혼자 있을 때 가끔 순간적으로나마 경험한다. = 바로 그거야. (일본 선의 영향을 받은 서구에서) 선

mirchimin.tistory.com

 

고대 힌두교 전통에서는 인간이 다 하나님이라고, 인간의 몸체를 통해 이 세상에서 놀기로 작정한 하나님이라고 여겼다. 이 놀이를 전통 힌두교에서는 <릴라>라고 부른다.

우리 몸은… 유일한 의식(consciousness)인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는 데 거치는 것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에게, 유일한 의식에게, 아바타 같은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에서 한 토막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은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기를 거의 그만두고, 자기가 들어앉은 몸체인 나비라는 존재로 자신을 더 많이 보게 됐다.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도 우리의 몸이요 아바타에 들어앉은 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잊었다.
우리가 바로 유일한 의식이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이 인체는 주변 세계에 대해 아주 강하고 진짜 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준다.

이 아바타 몸이 없는 게 어떤 것인지를 우린 잊어 왔다. 

깨달음이란…
‘나는 실제로, 정말로, 진짜로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건 자신의 ‘아바타’와 잠시 떨어져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 세상에 환상적 속성이 강함에 대한 마지막 은유는… 3D 안경, 터치의 환상을 만드는 특수 장갑과 슈트, 컴퓨터가 만든 가상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다른 수단 등 특수 기기의 도움으로 현대 컴퓨터 기술이 만든 가상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이 세상에서, 그 안에서 오랫동안 놀면서 우리가 그저 놀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그리고 놀이에 완전히 빠진다. 그리고 우리가 그저 게이머라는 점을 잊는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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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  > ... )

 

  13. 자유의지라는 환상 (2)  

 

 

벤자민 리베트의 실험  

 

앞에서 우리가 거론한 것은 전부 주관적인 세계의 수준에서 자유의지가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에서 일어나는 여러 과정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것을 찾아내려 했다

이제 이 물음을 과학의 관점에서, 혹은 객관적 현실에 대한 설명에서 살펴보자. 

 

자유의지란 환상인가?

 

벤자민 리베트가 20세기 중반 한 실험에서 의식적인 결정과 이 결정에 관련된 뇌 활동의 관계가 시간상 어떤지 알아보려 했다.

실험의 골자는 이렇다. 

뇌의 여러 부위의 활동을 측정하는 감지기를 피험자에게 착용시켰다.

그리고 5, 10, 15, … 55, 60의 12개 숫자가 시계처럼 표시된 숫자판을 피험자 앞에 놓았다.

바늘이 보통 초침보다 25배쯤 빠른 속도로 숫자판을 회전했다.

피험자는 자기가 결정하는 순간 아무 때나 버튼을 누르고 바늘이 가리킨 숫자를 적으면 됐다.

이때 뇌파도가 기록됐다. 

결국, 뇌파도와 결정 내린 시간이라는 두 지표를 비교해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버튼을 누르겠다고 결정하기 0.5초쯤 전에 뇌 일정 부위에서 활동성이 높아진 것이 뇌파도에 기록됐다. 
뇌는 의식적인 결정이 나오기 전에 이미 활동이 증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먼저 뇌에서 활동성이 만들어지고, 그다음에 의식에서 사람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 동영상을 보라. 이 실험을 어떻게 실행하는지 알 수 있다.

원한다면, 비디오에서 숫자판의 회전 바늘을 가리킬 때, 어떤 순간을 택하고 그 순간에 바늘이 가리킬 시간을 기록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에 주목하라. 당신은 왜 다른 순간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을 선택하게 되는가? 

 

 

신경과학과 자유의지 - 리베트의 실험 (Neuroscience and Free Will) 

 

이 실험은 많은 과학도에게 자유의지의 존재에 관해 생각하게 했다.

알고 보니, 이런저런 행동을 하겠다고 결정 내리는 것은 뇌이고,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서 의식적인 결정이란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결과일 뿐이더라.

이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의식적인 결정 채택을 포함해 우리 주관적 세계가 드러내는 것은 전부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반영이 아니던가. 이 문제가 비록 더 복잡하긴 해도 말이다.

이것은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의 상호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이것을 지금은 건드리지 말자. 

 

모든 일은 그냥 일어난다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지 살펴보자.

누가 혹은 무엇이 우리 행동의 근원인가?

우리가 자기 행동의 주체가 아니라면, 이 행동을 무엇이 일으키나?

이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실험을 해 보자. 

눈을 감고 몇 분 동안 자신의 내면세계를 관찰하라. 

눈앞의 검은 화면을 보면서 뭔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라. 

어떤 목소리나 다른 음향이 들리나? 

내부 화면에 어떤 이미지들이 나타나나? 

당신 마인드가 당신에게 내면세계를 어떻게 만들어 주는지 관찰하라. 

 

그렇게 실험해 보면, 이제 이어지는 서술을 이해하기 쉽다.

그렇게 자기 내면세계를 제법 오랫동안 관찰할 때, 어떤 현실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소리 따위가 내부 화면에 거의 무질서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옆집 마당의 개 이미지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혹은 문득 직장 상사의 목소리를 듣거나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다.

아마도 어떤 복잡한 문양이나 생명체가 나타날 것이다.

그건 다 예측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눈을 뜬 상태에서 실험을 하나 더 하라. 

당신 의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당신의 주의가 어디로 쏠리는지,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 등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으라. 

당신 의식에서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고 기록하기만 하라. 

필요하면 머리와 눈을 움직일 수 있지만, 일어서거나 어디로든 가지는 말라. 

 

어떤가? 혼돈이 있지 않나?

관찰한 결과,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려고 뭔가 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생각이 저절로 나타난다.

갈망이 저절로 나타난다.

당신의 주의는 한 대상에서 다른 것으로 그렇게 건너뛴다.

이를테면 커다란 고함이 당신의 주의를 끌 수 있다. 정상적인 모드에서 주의는 (관심은, 마음속 눈길은)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그냥 건너뛸 것이다. 뭔가를 보면, 그것과 관련된 생각이 생기고, 그 생각에 이어지는 생각이 또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주의가 (눈길이) 티브이로 향했다.

그러면 ‘아, 자연 다큐를 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생길 수 있다. 지금 하는 연습을 그만두고 티브이를 켜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당신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한다. 당신 주의가 머릿속의 느낌으로 전환되고, 다음엔 벽 너머에서 나는 목소리로 옮겨가며, ‘옆집에서 또 싸우네’ 하는 생각이 금방 나타나는 식이다. 

 

모든 게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라.

당신이 과연 이 과정을 관리했을까? 다 저절로 일어났다.

때로는 연상에 의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예를 들어, 의자 등받이 곡선에 주의를 돌렸더니, 이건 여성의 멋진 몸매 곡선을 상기시키고, 다음에 머릿속에서 좋아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식이다. 주의가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한다. 연상도 저절로 생긴다. 연상을 당신이 선택하지 않는다. 모든 게 저절로 일어난다. 

 

내가 하려는 말이 그것이다.

일상에서 주의력과 욕망, 생각 등도 같은 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그건 어디서 생겼나? 몰라. 어쩌면 뭔가가 상기시켰거나 어쩌면 저절로 생겼을 수도 있다. 욕망이 생겨났고, 이에 관해 당신은 뭔가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앞에서 알아봤듯이, 이 선택 과정 역시 저절로 일어난다

당신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옆집 사람이 큰 소리로 당신에게 설탕이 있는지 물었다. 당신은 좋은 이웃답게 그에게 응답하는데, 이건 어른들한테서 배운 행동 프로그램의 하나에 따라 일어난다. 이웃과 좀 얘기 나눈 뒤 당신은 ‘설탕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상점으로 향해 나섰다. 가는 동안, 아침에 라디오에서 들은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선율은 저절로 나타났다. 당신이 불러들인 게 아니야. 게다가 그걸 쉽게 떨칠 수도 없다. 

 

모든 게 대개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다.

이것이 당신 마인드에서 선택 과정을 가동한다.

생각이나 갈망을 일으킬 수 있는 영향이 외부 환경에서 비롯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주의가 (관심이, 눈길이) 예쁜 꽃이나 아리따운 여성에게 끌렸다. 이제 당신 주의는 온통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회상과 생각과 욕망을 낳는다. 

 

온종일 자신을 관찰해 보라. 

무엇이 당신을 끌어들였는지, 무엇이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했는지 추적하라. 

지금 당장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다. 

당신 엉덩이는 무엇을 깔고 앉아 있나? 

당신은 지금 막 자기 엉덩이나 엉덩이가 걸친 것에 주의를 돌렸을 것이다. 

지금 막 무슨 일이 일어났나?

‘당신 엉덩이는 무엇 위에 있나?’ 하는 질문 형태의 외부 영향을 받아 당신은 내가 가리킨 곳으로 저절로 주의를 돌렸다. 

 

지금 당신의 주의는 무엇에 쏠려 있나? 왜? 

당신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여러 문장으로 당신 머릿속에 이미지와 장면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나? 안 그럴 수가 없다.

글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단어들의 의미를 재현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하면 당신 마인드에서 여러 장면이 저절로 나타난다.

이제, 이런 영향이 있다는 점을 내가 막 밝힘으로 인하여, 당신에겐 이에 관한 생각이나 느낌 혹은 다른 뭔가가 또 생길 수 있다.

 

이제 본질로 넘어가자. 

한동안 자신을 관찰하면, 모든 것이 마치 저절로 일어나는 듯함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삶이 당신을 거쳐 흐르며, 당신은 이 삶이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당신이 과정을 통제하려 들 수 있지만, 이 컨트롤 역시 당신을 거치는 삶의 흐름일 것이다. 삶은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 사물과 현상도 바로 그렇게 거쳐서 흐른다. 

그리고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은 전부 더 큰 그림의 한 부분이다. 당신 행동은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과정에 새겨져 있다. 모든 것이 그냥 일어난다. 일어나는 대로 그렇게 일어난다. 

이것이 삶의 흐름이다. 
이것이 삼라만상에 내재하는 삶의 흐름이다. 
꽃, 당신, 고양이, 티브이, 구름, 아내, 웅덩이에 있는 삶의 흐름이다. 
이 모든 것이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큰 그림이다. 

 

한데 당신은 무엇을 하나?

당신은 이것을 그저 관찰만 한다.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보고 보지 못하는 모든 것을 통해 일어나는 이 모든 삶의 흐름이 당신 안에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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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자 느낌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건 다 알겠어. 하지만 어떤 행동은 내가 한다는 느낌이 나에겐 강하거든. 모든 행동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닐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일부 행동은 나 자신이 한다는 느낌이 분명해.” 

맞는 말씀. 어떤 행동을 다른 누군가나 무엇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한다는 이 느낌을 우리는 ‘행위자 느낌’이라 부른다.

이건 아주 견고한 느낌이다.

이건 시간과 마찬가지로 환상이다. 그러나 역시 시간과 마찬가지로 아주 현실적이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음을 아는 것이 행위자 느낌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나?

아주 간단하다. 행위자 느낌이란 몸과 정신의 어떤 행동의 주체라는 특별한 느낌이고, 이 느낌은 우리가 세상과 서로 잘 작용할 수 있게끔 우리 마인드가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것은 전부 미리 정해져 있다. 한데 <행위자 느낌> 덕분에 우리가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에 관해 아주 좋은 예가 있다. 2014년 <로보캅> 영화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로보캅은 인간의 마인드를 기반으로 만든 로봇이다. 즉, 절반 사람이고 절반 로봇이다. 그의 행동 일부는 사람한테서, 다른 일부 행동은 로봇에게서 나온다. 즉, 컴퓨터로 프로그램돼 있다. 로보캅은 법을 준수하고 경찰로 일한다. 

 

개발자들은 로보캅의 행동에 그의 인간적인 부분이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게끔 해놓았다. 즉, 인간적인 면을 더 많거나 적게 작동하거나, 아예 꺼 버릴 수 있게 했다. 개발자들이 로보캅의 인간적인 부분이 작동을 중지하면, 그의 몸과 행동 전부를 그의 로봇 부분을 대표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제어했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로보캅의 인간적인 부분이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게 하려고, 자유의지의 환상이라는 기능을 만들었다.

그들은 사실상 기계에 ‘행위자 느낌’을 집어넣은 것이다.

내장된 컴퓨터가 생성하는 행동 프로그램을 로보캅의 로봇 부분이 실행하기 시작하면, 이것이 컴퓨터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라고 믿게 하는 신호가 로보캅의 인간적인 부분에 전달된다. 즉, 로보캅의 인간적인 부분이 보기에는 이 행동이 전부 자신의 것이라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실제로는 전부 컴퓨터가 수행하는 것인데. 

 

 

행위자 느낌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내가 뭔가를 한다는 느낌이 있으려면, 주변 세상과 구별된 개인으로서의 ‘나’가 있어야 한다.

세상과 별개의 존재로서 ‘나’라는 느낌이 나타나자, 이 몸체가 수행하는 행위를 나의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에고’를 다루는 대목에서 따로 살펴보겠다.

<에고>란 바로 세상과 별개의 존재로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한데,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은 환상이다.

이 환상이 자유의지라는 환상을 낳는다,

왜냐면 몸이며 정신과 함께 일어나는 행동을 에고가 사실상 제 것으로 삼으니까. 

앞에서 우리가 몇 번 확인했듯이, 우리 행동은 우리의 갈망에 따라 일어날 뿐 아니라 수많은 요소에도 기인하고 사실상 환경의 영향과 우리 정신의 작용에도 영향을 받는다.

한데, 자신을 이 행동들의 유일한 주체로 삼는 것이 바로 행위자 느낌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아함카라로 불린다. 

 

행위자 느낌이 왜 우리한테 부여됐나?

이 느낌은 우리가 자기 삶의 창조자라는 느낌을 준다. 내가 내 행동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껴야만 이 세상을 어떻게든 바꿀 수 있다. 또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난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이 자유의지의 느낌이 (행위자 느낌이) 우리를 창조자로 만든다.

세상에 자유로이 영향 미치고 자기 행동에 대해 세상의 반응을 얻으면서, 우리는 뭔가를 배우고 경험하고 세상을 안다. 이것이 삶이다. 

 

자유의지의 느낌과 함께 우리에겐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란 개념이 나타난다.

만약 내가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제 나는 내가 만든 삶에 책임이 있다. 이제 나는 기계 부품이 아니라 이 세상의 적극적인 기원이요 신과 더불어 우주의 창조자인 것이다. 

 

숙명론이나 예정론, 자유의지의 환상, 행위자 느낌 등은 다 게임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행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묘사돼 있다. 우리는 앞으로 빨리 돌려서 5분 뒤 그가 무엇을 할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볼 때는, 주인공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 같고, 어려운 상황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취할지 몰입하여 본다. 우리한테는 흥미롭다. 왜냐하면, 영화의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주인공의 행동으로 결정되는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하기 때문에 흥미롭다.

 

우리네 삶도 대략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주인공이 (당신이) 선택하고 줄거리를 발전시키는 영화처럼 말이다.

이야말로 흥미롭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나? 

 

행위자 느낌이나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고 이해하나?

우리의 선택이 다 미리 정해져 있다는 점을 알면,

한때 우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것을 두고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바라던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비난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듯 보이는 사람의 행동이 그가 익숙해진 행동 패턴과 그가 사는 형편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때, 그를 비난할 일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된다. 살면서 그가 하는 모든 선택과 그의 지금 행동과 그의 지금 상태는 전부 또 그의 행동 프로그램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 그의 선택은 전부 자동적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를 비난하나? 그는 달리 행동할 수 없었을 텐데

 

이와 관련해 아주 좋은 우화가 하나 있다. 

 

선의 수행자가 강에서 쪽배를 타고 명상하기로 했다.
그가 쪽배에 올라 강 뒤쪽 조용한 곳을 찾아 명상에 들어갔다.
이미 아주 평온한 상태에 이르렀을 즈음, 갑자기 다른 쪽배가 와서 부딪는 바람에 명상이 깨졌다.
수행자가 자기도 모르게 바짝 화가 났다. 

노여움에 정신이 나가 ‘누가 감히 방해하는 거야? 단단히 혼내야겠어!’ 하고 별렀다.
그리고 호통을 치려고 몸을 돌렸는데 부닥친 쪽배에는 아무도 없었다. 쪽배는 텅 비어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분노가 헛헛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퍼뜩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그에게 불안을 안긴 것은 쪽배가 아니라, 분노를 일으킨 자기 마인드의 자동 작용이었다

 

강변에 쪽배

 

실제로 이 빈 쪽배는 우리를 불안케 하는 타인의 비유이다. 
그것이 텅 비었다는 것은 이 쪽배가 삶의 흐름 이외에 그 무엇에도 통제되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쪽배를 몬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그를 비난하고 화를 내며 분개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 텅 빈 쪽배처럼 행동한다는 점을 깨닫는 즉시,
즉,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을 알게 되는 즉시…
우리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게 된다.
텅 빈 쪽배를 어떻게 비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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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마인드의 환상  

 


  11. 시간의 환상  

 

사람의 주관적 실재 (현실) 형성에 언어와 단어들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앞에서 다뤘다. 

필요하면, 단어들에 관한 장현실 지각 수준에 관한 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거기서는, 우리 삶에 들어와 우리의 경험 구조를 형성하는 키워드들이 있음을 알아봤다. 

 

the illusion of time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시간, 미래, 과거, 현재’ 같이 시간과 관련된 단어이다.

이 단어들에서 시간이 존재한다는 환상이 나온다. 단어에 관한 장에서 그런 단어들을 쓰지 않는 부족의 사례를 들었다. 그들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어. 사실상 현재에서만 산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이며 주변 세계와 아주 잘 공존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언어와 문화의 산물이란 말인가?
우리는 시간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는 데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 세계관의 정확성 여부는 생각도 않는다. 

 

시간의 몇몇 환상을 살펴보자. 

과거란 무엇인가? 

먼저, 모든 단어에는 우리가 거기에 집어넣는 어떤 뜻과 어떤 이미지가 있음을 기억하자.

당신에게 ‘과거’란 무엇인가?

이 단어에 당신은 어떤 뜻을 부여하나?

이 단어와 관련하여 당신 내면세계에서 어떤 이미지가 나타나나? 

 

대체로 ‘과거’에서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한테 일어난 사건의 장면들을 보게 된다. 여러 환경에 있던 유년기의 자신을 본다. 자기 인생의 여러 시기에 일어나서 기억되는 일들을 본다.

또 ‘과거’라는 단어를 접할 때 손을 흔들며 “이건 지나간 거야” 하고 말할 수 있고, 그러면서 마인드에서는 (내부 화면에서는) 자신의 등 뒤에서 구불구불 뒤쪽으로 이어지는 어떤 길을 보기도 한다. 

당신 경우엔 어떤가? 

‘과거’라는 단어에 대한 반응으로 당신의 정보 채널에서 무엇을 보는가? 

어떤 대답을 하든, 그건 다 내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일 것이다

직접 보고 확인하라. 

 

당신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과거를 지금 나한테 보여줄 수 있나? 

과거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걸 나한테 보여주시라. 

어떤 것을 보여주든, 그건 다 바로 목전의 현실에 있는 무엇이거나, 아니면 자기 마인드의 내부 화면에서 당신이 지각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가 분명 있다고 사람들은 강하게 느낀다. 고고학적 발견이나 고문서, 아니 단순히 당신의 개인적 기억 등이 그 증거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엊저녁에 식사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난 기억해. 아침에 샤워하고 이를 닦은 것도 기억나. 이건 다 있었던 일이야, 비록 지나간 것이긴 하지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열한 것은 전부 당신의 기억이나 회상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한데, 기억이나 회상은 당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 있는 이미지이다. 
즉, 과거에 관한 그 이미지들은 전부 당신 의식에서 사실상 바로 지금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서 나오는 게 전혀 아니다. 

 

또 이런 반박이 나올 수도 있겠다.

“현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의 연속이야, 내가 과거에 어떤 행위를 했기 때문에 현재가 있는 거 아니겠어? 예를 들어, 1분 전에 내가 탁자에 컵을 놓았기에 컵이 지금 거기 있는 거잖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1분 전에 (과거에) 컵을 놓았을 때, 실제로는 그 행위가 현재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지금 그것을 과거처럼 회상하는 것일 뿐.

어제나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기억에서 정보를 끄집어낼 것이다. 기억에서 나오는 정보는 전부 지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생각하는 과거란 전부 바로 지금 떠오르는 회상이고 기억이다.

당신에게 기억이 없다면,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당신의 과거가 있을까? 

 

이제 ‘미래’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미래는 과거에 비하면 한층 더 비현실적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이 기대하는 무엇이나 볼 것이라 예상하는 뭔가가 어떻게 일어날지 상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어떤 행동에 영감을 주는 뭔가를 상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뭔가를 계획할 때 종종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저녁 식사 후 어디로 산책할까 생각하는 것일 수 있고, 혹은 올여름 휴가를 바닷가에서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은 자기 마인드에서, 자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서, 사건의 예견되는 발전이나 미래에 기대하는 것을 상상하며 어떤 장면을 그릴 것이다.

미래에 관해 생각할 때, 그걸 당신은 지금, 현재에서, 한다. 

 

학수고대하던 미래가 도래하는 순간, 그 미래에 있는 현실은 당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상상하던 대로 여름에 정말 바다에 간다 해도, 거기서도 당신은 역시 현재에 있으리라는 점이다.

결국, 미래란…

우리 마인드에서 지금은 없지만 곧 나타날 수 있는 뭔가에 대한 상상이 표현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지금, 현재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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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환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어떻게?

예를 들어, 미래를 지금 즉시 보여 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엇을 보여주든 그것은 또 현재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는 당면한 현실에 있지 않으며, 우리 상상에 속한다.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여느 추상적인 이미지처럼 환상이며,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편리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과거나 미래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다. 
우리는 (언젠가 그 당시)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난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기억한다.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날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상상한다. 
과거와 미래는 기억과 상상의 작업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상상의 장난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들이 있었고 미래가 어떤 형태로든 도래하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살면서 항상 본다.

이것을… 시간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하나?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지속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영속>, 1931.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객관적 실재라는 게 있다. 그리고 우리 마인드는 거기서 정보를 얻어 우리를 위해 세상 모델을 만든다. 즉, 우리의 주관적인 현실을 (실재를, 세계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객관적 실재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들의 모델이며, 이 과정은 변화와 관련된다.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변화와 관련된 객관적 과정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고, 이 과정을 우리가 주관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심리적 시간이다.

이건 당연히 물리적 시간을 제법 잘 묘사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이미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을 지구에서 발사한다면, 이 로켓에서 흐르는 시간은 지구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이 로켓의 시계에서 1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의 시계로는 1백 년이 지나게 될 것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돌아와 보면 손자들이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한테 경악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마인드가 우리에게 시간의 모델만 만들어 낼 뿐이지 물리적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들이 없고, 그래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의 변화가 하도 작은 까닭에 우리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우리한테 이건 (물리적 시간은) 중요하지 않으며, 시간은 어디서나 똑같이 흐르는 것 같아.'

이게 우리의 주관적인 시간 감각이다. 

 

만약 과거와 미래가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확인할 수 있나?

오직 한 가지만 가능하니,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바로 지금 알아차릴 수 있다.

외부세계도 내면세계도 변화하고 있다. 변화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냥 관찰하라. 항상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이 언제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 이제 직접 관찰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현실(실재, 실체)이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1분 동안 주의를 기울여 보라. 

생각이며 느낌 등 내면세계의 일도 덩달아 관찰할 수 있다. 그것도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과거의 뭔가를 회상한다 해도, 그것 역시 당신의 내부 화면에 나타나는 일련의 생각과 이미지로서 바로 지금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의식에 있는 이미지라는 점을 이해했다면, 그 이미지들에 당신이 얼마나 자주 빠져드는지 추적할 수 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나.

그것을 당신은 지금 회상하고, 이 회상이 지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얼마나 자주 미래로 들어서는지 관찰해 보라. 더 정확히 말해, 당신 마인드에서 기대와 계획을 얼마나 자주 품고 세우는가? 

있을 수 있는 뭔가에 대해 얼마나 자주 불안해하는가. 이 불안은 당신이 바로 지금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는 미래의 무서운 이미지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건 단지 내 마인드의 이미지일 뿐이야’ 하고 자신을 달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주의와 눈길과 관심을 지금 실제로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로, 지금 순간으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목전의 현실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오로지 ‘지금 여기’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영적 대가들이 설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로지 ‘지금’, 오로지 ‘여기’만 있다. 나머지는 죄다 마인드의 한갓된 장난이며,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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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기

(13) 영적 차원에 이르는 열쇠

(14)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기

(11) 시간이란 망상에서 벗어나기

(3) 깨달음이란?

침묵의 힘, 묵언 수행 (오디오)

삶에 대한 고통스럽고 불쾌한 진실 10가지. 프로이트

현명한 독서 방법

루덩의 악마들 4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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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10장. 행동의 자동성  

 

우리의 마인드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앞에서 살펴봤다. 

이 세계 모델은 사실 사람이 현실로 인식하는 주관적 세계이다

또, 사람의 의식에 들어오는 대상과 객체들의 이미지를 마인드가 즉각 만들어 내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거리를 걸으면서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시간을 따로 들이지 않는다. 나무나 지나치는 사람, 아는 얼굴을 금방 알아본다. ‘아, 이 이상한 소리는 지나가는 자동차의 굉음이로군’ 하고 금방 결정한다. 또 이 냄새는 삼겹살 굽는 냄새라고 금방 판단 내린다.

 

이렇게 친숙한 대상을 의식에서 인식하는 과정은 자동적이다. 자동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인드의 이 작업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런데 아주 어린애였을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못 보고 못 들었다. 이건 우리에게 다 소음이고 색깔 있는 점들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 자세히 다뤘기 때문에 새롭지 않으리라 본다. 

곧, 들어오는 감각 정보에서 특정 대상을 구별하는 방법을 익힌 마인드가 이제는 이걸 자동으로 수행한다. 이건 아주 대단한 일인데, 왜냐면 이젠 우리가 친숙한 대상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일 필요가 없으니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매 순간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는 제 자리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도 못할 것이다. 

이미지를 자동 인식하는 마인드 메커니즘

 

이런 점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자.

이 글을 당신은 제법 빠르게 읽으며, 텍스트에서 읽은 것에 관련된 이미지가 당신 마인드에서 금방 만들어진다. 초등학교 1학년 때를 기억해 보자. 그때는 어떻게 읽었나? 처음에 철자들에 이어서 단어들을 인식하고, 다음에 문장 이해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나. 거기에 노력과 시간을 얼마나 많이 들였던가. 이미지를 자동 인식하는 마인드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이 글귀를 몇 번이나 읽었을지 상상해 보라. 

 

마인드는 들어오는 감각 정보의 흐름에서 세상 그림을 우리 의식에 자동으로 만들고, 그리하여 우리가 삶의 무게에 덜 시달리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인드는 우리 행동도 자동화한다. 우리네 행동의 자동성에 관해 이번 장에서 살펴보자.

 

만약 내가 오른손을 들어 달라고 해서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이 행동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건 당신에게 익숙한 동작이어서 힘 안 들이고 할 테니까. 또 몇 걸음 걸어 보라고 하면, 이것도 아주 쉽게 해낼 것이다. 이걸 당신은 여러 번 해 봤다. 어디론가 걸어갈 때 당신은 발걸음을 어떻게 떼는지, 다음 발을 어디에 둘지 사실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두 발이 저절로 다시 배치되거나 정렬된다. 이 과정이 자동화된 것이다. 한데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애들 경우 걷기에 노력과 시간과 조심성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가? 

컴퓨터 자판을 처음에 어떻게 두드렸는지 기억할 수 있나? 분명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꽃’이란 단어를 타이핑 한다고 치자. 당신은 자판을 들여다보며 철자를 찾을 것이다. 그걸 찾아서 손가락으로 누른다. 화면을 본다. 커서가 깜빡이던 자리에 ‘ㄱ’자가 나타났다. 그게 아니라 ‘ㄲ’가 필요하다. 그래서 ‘ㄱ’을 지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키보드에서 삭제 단추를 찾아야 한다. 그 단추를 눈으로 찾아내고 반가워하며 누른다. 놀랍게도 화면에서 ‘ㄱ’자가 사라졌다. 이 얘기를 이쯤에서 멈춰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이다. 

 

사람 뇌가 뭔가를 막 배울 때는, 노력은 많이 들이면서도 속도를 못 낸다. 뇌가 그 행동을 익힌 다음에는 자동으로, 시간과 주의와 노력을 거의 들이지 않고서도, 수행하기 시작한다. 양치질하는 방법, 수저 쥐는 법, 대화 기술, 셔츠 벗는 방법, 컴퓨터에 텍스트 입력하는 방법 등에 거의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는 연습은 아주 좋다. 살면서 자신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그냥 지켜보라. 사실, 많은 행동 요소가 자동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만약 자신의 어떤 행동에 일부러 흥미 삼아 주의 기울여 본다면, 일상적인 일을 하는 방식에 놀라고 어리둥절할 것이다. 옷을 어떻게 입고 벗는지, 전화기를 어떻게 드는지, 샤워를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먹는지 등을 관찰해 보라. 자신에 관해 흥미로운 것을 많이 발견하리라. ^^

자신의 행동을 관찰해 보면...

 

자신을 그렇게 간단히 관찰해 보면… 

1) 당신 행동이 얼마나 자동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손 자체가 알고 있다는 점에 놀랄 것이다. 손이 하는 것을 그냥 보기만 하라. 

 

2) 당신의 행동 거의 전부가 자동 실행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 통제할 수 있다. 나머지는 전부 자동으로 움직인다. 이런 실험을 해 보자. 

오른손으로 어떤 동작을 해 보라. 어떤가? 당신이 손을 의식적으로 통제한다 해도 손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움직임을 행하지는 않는다. 이때 눈은 무엇을 했는지 보라. 눈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아차렸나? 당신이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눈이 움직였다. 손과 발이 얼마나 자주 익숙하게 움직이는지 보라. 체중을 한쪽 발에서 다른 발로 어떻게 옮기나. 등이 가려울 때 어떻게 긁나. 코를 어떻게 만지나. 당신 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3) 끝으로, 이런 자기관찰 연습은 중요한 영적 수행의 하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자신의 의식을 (자각을) 키우고 관찰자로서 자신을 볼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이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핵심 주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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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행동의 자동성을 어떤 상황을 위한 행동 프로그램 세트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치질해야 할 일이 생기는 즉시 몸 자체가 올바른 순서로 올바른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다. 세면대로 다가가서 칫솔을 든 뒤 치약을 들어 칫솔에 짜고, 그 칫솔을 치아 전반에 위아래로 2-3분 동안 움직인 다음 물을 머금어 입을 헹군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어 (의식이 돌아와서) 보니 어느새 양치질이 끝났더라. 그런 적이 있지 않았나? 

만약 당신이 자동차 운전자라면, 운전 솜씨도 자동화됐으며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행동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을 안다. 속도를 줄여야 하는 순간, 발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다. 차를 돌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손이 알고 있다. 이 순간에도 당신은 미팅에서 상사에게 무슨 말을 할지 마음속으로 안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아주 어릴 때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행동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걷는 법, 손 씻는 법, 화장실 가는 법, 문 여는 법 등이 그렇다. 일부 행동 패턴은 타고난 능력에서 나온다. 미소 짓기,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울기, 물건 쥐기 따위가 그런데, 이는 타고난 생리적 행동 프로그램이다. 아이의 다른 행동 특성은 부모를 흉내 내거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의식적인 학습으로 이뤄진다. 

아이가 가족 외의 사람들과 접하기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점차 추가로 받아들인다. 인사하는 법, 모임에서 행동거지, 이성과 대화하는 법, 동료며 상사와 소통하는 법 등이 그렇다. 연구자들은 사람이 16세쯤 되면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거의 다 배운다고 말한다. 

 

이제 이런 사실에 주목해 보자. 즉, 당신의 모든 행동은 살면서 배운 행동 패턴이거나 행동 프로그램이다.

간단한 손가락 움직임부터 복잡한 춤 동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당신 마인드에 기록된 행동 프로그램이다.

당신이 하는 행동은 모두 문자 그대로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1) 웃음이나 고함처럼 생리 수준에 기록된 행동 프로그램이거나, 아니면

2) 별난 표정과 사교적 표현, 특징적인 습관과 행동 특성처럼 다른 이들을 모방한 결과 나타난 행동 프로그램이거나, 아니면

3) 젓가락 쥐는 법, 양치질, 길 건너는 법, 청소하는 방법처럼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의식적으로 학습된 행동 프로그램이거나, 아니면

4)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의식적으로 개발한 행동 프로그램이다.

그 예로는, 초인종을 누르려고 오랫동안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아이가 자기 가방에 올라서면 손이 닿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서 아이는 이 행동 프로그램을 계속 이용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만약 우리의 모든 행동이 자동적이고 일련의 행동 프로그램이라면, 언제 어떤 프로그램이 작동할지 어떻게 결정되나?

여기에 두 가지 버전이 있다. 그걸 알아보기는 제법 쉽다. 

 

1) 행동 프로그램 작동의 첫 버전은 그걸 의식적으로 주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이를테면 왼손을 흔들겠다고 의식적으로 마음먹는다. 이걸 의식적으로 결정하고, 그렇게 했다. 그렇게 뭔가를 하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할 때, 우리는 행동 프로그램을 촉발하는 의향을 (의도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행동 프로그램 자체는 자동적이고 독자적으로 실행된다. 예를 들어, 뭔가 맛난 것을 찾으러 냉장고로 다가가겠다는 의향을 당신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다고 치자.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하는 즉시, 당신 몸은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필요한 순서대로 한다. 당신은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2) 행동 프로그램을 작동하는 두 번째 방법은 무의식적이다.

우리는 이것을 첫 번째 방법보다 더 자주 이용한다. 다른 일을 생각하면서도 뭔가를 마치 자동으로 하는 듯한 경우를 누구나 많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샤워한다고 치자. 샤워가 아주 단순하여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몸이, 더 정확히 말해 우리 마인드가, 종종 스스로 해낸다. 우리는 이 과정에 특별히 주의를 돌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과정에 일부러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인드의 프로그램에 있는 몸이 이 일을 얼마나 잘 처리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표준적 행동을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무의식적으로 실행한다. 자동차 운전, 양치질, 저녁 준비, 대화하면서 종이에 그림 그리기 등이 그렇다. 이런 행동에는 많은 주의가 필요치 않고, 그래서 자동으로 실행된다. 

하지만 행동 프로그램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거나 혼선을 빚고, 그때 우리는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놀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컵에 차 대신 커피를 따랐다. 혹은 샴푸라고 여기면서 왠지 액체 비누를 썼다. 뭔가 엉뚱한 짓을 한다는 것을 문득 인식한다. 의식이 깨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 마인드는 자기한테 부여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우리가 부여한 시나리오대로 잘 진행되지 못했다. 우리의 잠재의식이 이것을 추적하고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를 우리한테 보냈다. 이 신호를 우리는 이미 의식적으로 추적해 온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규모 있는 행동 프로그램에 해당한다. 자잘한 움직임을 우리는 사실상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앉아 있을 때 발을 어떻게 홱 당기는지, 자판에 글자를 어떻게 두드리는지, 두 손을 어떻게 비비는지, 펜으로 어떻게 쓰는지, 물건을 어떻게 꺼내는지 등이 그렇다. 이런 것은 상당히 깊이 내재한 프로그램이어서, 이것들을 우리는 더 큰 행동 프로그램의 구성요소로 이용한다. 

 

자신을 의식적으로 관찰할 때 의식 모드로 전환하는 것. .

 

이것이 다 이론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어떤 간단한 행동을 하면서 자신을 관찰하면 된다. 욕구와 노력이 충분하다면, 한 시간 동안 혹은 온종일 자신을 지켜보는 게 바람직하다

자신을 의도적으로 관찰할 때,
당신은 의식을 켜는 것이며, 흔히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던 행동이 의식 모드에서 벌어지게 된다. 당신이 자신을 지켜보는 카메라처럼 된다. 

관찰자로서의 당신이 있고, 당신 행동이 또 있다
당신 행동에는 당신의 통제가 사실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 같다. 

 

만약 행동의 자동성을 아직 믿지 못하겠다면, 마지막 사례를 들겠다. 

어제 치과에 다녀왔다는 말을 지인에게 하고 싶을 때, 당신은 그저 “난 어제 치과에 갔다 왔어” 하고 말한다.

이게 간단한 일인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각 단어를 말하기란 입 근육과 혀, 폐 등이 다 관여하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니까. 이것들이 필요한 순서에 따라 일을 제대로 해낸다. 

뭔가를 말하기 위해 당신은 입안 근육을 일일이 의식적으로 조절하나?

아니겠지.

단어를 소리내기란 그 단어를 말하려는 의향에 의해서만 구동되는 자동 과정이다. 이게 전부야. 다음에는 뇌에 갈무리된 단어 발성 프로그램이 기능한다. 

우리의 다른 행동 프로그램도 다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단지, 개중 어떤 것들은 기본적이고 어떤 것들은 복잡할 뿐이다.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은, 이 과정이 실제로는 복잡함에도 기본 행동 프로그램이다. 빵집으로 빵을 사러 가는 것은 기본 프로그램들로 구성된 복잡한 행동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인드의 작업 덕분에 우리 각자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델이 (주관적인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알아봤다. 그뿐 아니라, 구체적인 이미지들과 추상적인 이미지들의 형태인 이 모델이 자동으로 하도 빠르게 만들어지는 바람에, 우리에겐 이 모델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처럼 보인다. 

또, 우리 마인드가 여러 경우를 위해 많은 행동 패턴을 기억하고 있으며, 필요한 때나 우리가 의식적으로 의도할 때 필요한 프로그램 패턴을 자동으로 수행한다는 사실도 알아봤다. 

 

우리 마인드는 이 세계에서 지각과 행동 실행의 과정을 자동화함으로써 우리한테 크게 봉사하고 있다. 그렇게 마인드는 우리가 주의와 눈길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더 고도의 과제에 돌릴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행동의 자동성은… 현실의 썩 미덥지 못한 반영과 연관되거나, 혹은 썩 적절하지 않거나 낡아서 효용보다 실패와 문제를 더 많이 일으키는 행동 프로그램과 연관된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별개의 큰 주제라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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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

  9장. 우리 삶에서 

 단어들이 차지하는 역할  

 

인간의 삶에서 단어의 역할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정보 채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의 감각적 흐름에서 특정 대상들을 뇌가 구별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 마인드가 현실의 모델을 만든다는 것을 우린 이미 살펴봤다. 

뇌의 여러 감각 정보 처리 센터. 운동, 촉각, 시각, 청각, 말,균형

 

이밖에, 우리 삶이 대부분 펼쳐지는 추상적 현실이 (세계가, 실재가) 언어 덕분에 만들어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의 말을 구성하는 단어와 용어들이다. 우리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데 하도 익숙해진 바람에, 단어가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됐다.

이제는 단어들이 문자 그대로 우리의 현실을 이루고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편이 됐다. 언어 자체와 언어 구조가 우리네 주관적 실재의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식에서 큰 오류가 하나 벌어졌으니, 우리가 단어를 실제 대상과 혼동하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살펴본다.

 

단어들의 의미는 어떻게 형성되나  

 

모든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다. 그 단어에 부합하는 이미지 세트가 그 단어의 의미이다. 

‘공’이란 단어를 예로 들자. 만약, 아이가 어려서부터 축구공들만 보았으며, 공은 둥글고 발로 차면서 놀 수 있다고 어른들이 말하고 공을 갖고 노는 방법을 보여주었다면, 어린애는 ‘공’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둥글며’, ‘갖고 놀 수 있다’는 이미지와 함께 공을 차고 놀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둥근 축구공
아이들이 축구를 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공’이란 단어에 대한 이해와 개념이 굳어지는데,

그때 또 이런 것을 본다. 

럭비공

그리고 “이것도 공인데, 미식축구에서는 이런 공을 쓴단다” 하는 얘기를 듣는다. 아이가 처음엔 당황할지 모른다. 공은 둥근 모양이라고 확실히 알고 있는데 이건 고구마처럼 길쭉하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아이의 마인드는 이것도 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고, 이때 아이의 인식에서 ‘공’이란 단어의 의미가 조금 바뀌게 된다. 

이제 이 개념의 의미가 넓어져서 둥근 형태의 공만이 아니라 고구마처럼 생긴 공도 포함된다. 게다가 저런 공으로 미식축구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사람이 겪는 경험을 통해서 단어들의 의미가 형성된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사내애가 둘 있다. 하나는 동그란 모양의 공만 본 한국 소년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마 모양의 공만 본 미국 소년. 둘이 만나서 공 모양이 어떤지를 두고 다투기 시작한다. 하나는 공이란 다 둥글다고 열변을 토하고, 다른 하나는 공은 다 고구마처럼 생겼다고 입에 게거품을 문다. 

둘 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면서, 아니라면 손가락에 장을 지져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은, 둘 다 옳다. 둘 다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옳다. 다만 두 사내애는 우리네 각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형성된 주관적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또한 ‘공’이란 사람의 경험을 가리키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당신의 경험을 그 사람도 맛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 공 같은 경우 문제는 아주 간단히 해결된다. 서로 상대에게 자신의 공을 내보이면서 이것이 ‘공’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공에 대한 경험을 두 소년이 금방 서로 나누게 되고, 언쟁이고 자시고 더 이상 따질 것도 없을 것이다. 

 

보았다시피,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 하나는 1) 사람의 경험이다. 사람이 어떤 경험을 겪는다. “그 경험은 무엇무엇이라 불려” 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말한다. 그러면 이 명칭을 그 사람은 자기가 겪은 경험과 연관 지을 것이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이 또 있는데, 바로 2) 그 단어를 정의하는 것이다. 

단어의 정의란… 그 단어의 의미를 다른 단어들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바로 앞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정의에 대한 예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단어의 정의는 단어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다음 예를 보자. 

한국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 따위로 나타낸 종이를 겹쳐서 한데 꿰맨 물건
러시아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인쇄물의 하나로서, 용량이 48쪽 넘고 통상 하드커버로 제작되며, 텍스트 정보와 그래픽 정보를 담은 종이들을 한데 묶은 비정기적 출판물.

 

어떤 정의든 상관없다. 만약 당신이 책이란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저런 정의로써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한 권이라도 봤다면, 이 정의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다. 안 그러면, 저런 문장들로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단어를 정의할 때는 그 의미를 생생히 보여주는 예를 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례는 어떤 단어의 의미를 실제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생생하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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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아마존강 유역에 ‘피라하’란 부족이 있다. 그들 언어는 아주 독특하다. 그들 말에는 ‘어제’, ‘내일’, ‘엄마’, ‘아빠’, ‘전부’, ‘일부’, ‘나의’ 같은 개념이 없다. (‘부모’라는 단어는 있다.) 한데 이런 개념이 없이도 그들은 아주 잘 산다. 그들의 세상 모델에는 시간, 소유, 재산, 분할이란 개념이 없다. 이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한데,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려면 그들 속에서 살아볼 필요가 있다. 그 문화에서 태어나면 더 좋고. 

어쨌든, ‘내일’이나 ‘부분/몫’ 같은 기본적 단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다시금 입증한다. 즉, 우리가 익숙하게 쓰면서 그 이면에 실제로 뭔가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아주 많은 단어가 사실은 실재의 (현실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네 언어와 문화의 답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피라하 부족의 언어와 달리 우리네 언어에는 그런 용어들이 있고, 이것이 이 용어들을 토대로 하는, 세상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우리한테 일관되게 만든다. 게다가 우리네 언어에는 특별한 단어와 개념이 여럿 있어서, 이것이 우리 세계관에 아주 강하게 작용하여 우리의 주관적 세계를 만들고 체계화한다. 

 

이는 우리 언어의 주요어, 키워드들이다. 이 핵심 단어들이 우리 경험의 구조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있다’, ‘…이다’, ‘존재하다’, ‘시간’, ‘미래’, ‘현재’, ‘과거’, ‘공간’, ‘나’, ‘…을 하다’, ‘대상’, ‘물건’, ‘원인’, ‘결과’, ‘나의’, ‘가지다’, ‘소유하다’, ‘속하다’, ‘과정’ 등등. 

 

“이건 내 전화기야” 하고 말할 때, 나와 이 전화기를 연결하는 특별한 뭔가가 세상에 있나? 전화기가 나한테 귀속됨이 목전의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건 아예 없다. 한데 우리는 그런 귀속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의’ 전화기가 망가지면 아주 속상할 정도로 믿는다. 피라한 부족에겐 ‘나의’라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둘러싼 문제도 없다. 한데 우리는 이웃보다 더 많은 사유재산을 차지하려고 열 올리며 자기 삶을 쏟아붓는다. 

 

이 키워드들이 우리 언어의 구조를 어떻게 만드나? 몇 가지 예를 들자. 

- 시간 개념이 언어에 아주 깊이 침투해서, 그 언어의 모든 동사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다. 예를 들면… 갔다, 간다, 갈 것이다. 

- 뭔가를 소유한다는 생각 또한 우리네 언어에 잘 파고들었다. “내 집 마당에 밤꽃이 피었어.” 

- ‘있다’와 ‘존재하다’ 같은 단어는 뭔가가 있거나 없다는 생각을 우리가 품게 한다. 예를 들어, “화성에는 생명체가 있다.” 

- ‘…이다’라는 단어는 비일비재하게 쓰인다. “나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은 진보적이야”, “입만 열면 불평이다” 등.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뒤에서 따로 살펴보겠다. 그 단어들에 들어있는 착각이나 환상의 속성을 알게 되면, 당신의 세계관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단어들의 작위성

 

단어의 다른 측면 가운데 작위성을 살펴보자. 단어와 용어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언어에 도입된다. 주로 편리함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에 관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할 때, 그는 자신의 어휘에 있는 단어들을 쓰려고 한다. 어휘가 충분치 못하다면, 새로운 단어와 용어를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쉽게 하는 모든 장치를 가리키기 위해 ‘운송 수단’이란 용어가 도입됐다. 자연에는 ‘운송 수단’ 같은 물체나 대상이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언어에 도입됐으며,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특정 장치를 가리키는 데 쓸 수 있다.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장치’라는 어구를 두 번 쓴 점에 주목하라. 이 기다란 표현 대신 이제 우리는 ‘운송 수단’이란 용어를 간편하게 쓸 수 있다. 게다가 이 표현을 다른 용어들과 결합하여 여러 문장에서 아주 잘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송 수단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도시에서 교외로 실어 날랐다.” 

여기에는 어떤 운송 수단을 이용했는지, 얼마나 되는 사람들인지, 어떤 도시인지가 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 과정의 어떤 장면을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기까지 한다. 

 

또 다른 예로 ‘질병’이란 단어를 보자. 질병이란 단어는 대개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아주 다양한 불쾌한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질병’이란 단어 하나로 언급함으로써 우리는 몸에서 느끼는 갖가지 징후를 사실상 단순화하고 마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질병의 증상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간과하거나 과대평가하기 쉽다. 

 

다시 강조하건대, ‘운송 수단’이나 ‘질병’ 같은 것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사람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을 가리키는 편리한 용어일 뿐이다. 즉, 개인적 경험의 어떤 부분을, 대상이나 과정의 어떤 집합을, 이 용어로 정의하는 것이다.

 

곧, 단어란… 사람의 어떤 경험을 가리키며 철자들로 이뤄지고 어떻게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한데 단어가 그냥 뭔가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면 난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부를 수 있다. ‘램프’라는 단어를 예로 든다면, 그 단어로써 보통사람은 빛을 내며 대개 유리로 둘러싸인 어떤 물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내가 내 언어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램프’가 아니라 이를테면 ‘팡켄’이라 부르고, 그래서 예를 들어 “팡켄 불빛이 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팡켄’이라는 단어에 내가 집어넣은 의미를 당신은 집어넣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우리가 대화하면서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용어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이것이 그냥 중요한 게 아니라 때론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마인드’라는 단어를 이용하면서 우리는 그 단어에 ‘들어오는 감각 정보의 흐름으로 현실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뇌의 능력’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데 많은 사람이 ‘마인드’라는 단어로 전혀 다른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뜻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이 구구할 수 있는) 단어들이 우리 언어에 아주 많다. 예를 들면, ‘자유’, ‘정의’, ‘평화’, ‘사랑’, ‘가족’, ‘행복’ 등이 그렇지 않은가? 

 

이런저런 단어에 사람마다 여러 의미를 집어넣는다는 점을 알아차린다면, 이런 말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즉, “당신은 마인드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마인드는 생각이자 정보 처리 능력이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마인드는 주로 마음을 뜻하지요.” 따라서 어떤 주제를 두고 대화하기 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우리 대화에서는 다들 쓰는 단순한 용어들을 사용하며, 이 용어들로 널리 통용되는 의미에 최대한 가까운 의미를 담으려고 한다. 어떤 경우에든 각 용어에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필요하다면 정의를 덧붙인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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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인식 수단으로서 과학의 한계  



과학은 세계를 인식하는 수단으로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몇몇 미스터리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 과학의 이런 한계를 앞에서 일부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 한계를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서, 세계를 인식하고 묘사할 때 과학적인 방법을 맹목적으로 따르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 살펴보자. 


앞장에서 제시한 테제를 다시 꺼낸다. 사람이 언젠가 인식한 것은 전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주관적 경험이다. 어떤 사람의 주관적 세계가 객관적 세계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뇌와 의식은 실재(현실, 외부세계)의 모델을 아주 좋게 만들어 거기에 존재하게 한다.


객관적 실재란 과연 존재하지 않나?



창문이 없는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달린다고 상상해 보자.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차량 외부 카메라로 촬영되고, 도로의 장면이 자동차 안에 있는 화면에 나타난다. 즉, 자동차 내부 스크린에서 보는 것으로만 외부세계의 방향을 잡는 것이다. 만약 외부에 있는 것이 화면에 그대로 나타난다면, 공간에서 방향을 올바로 잡고 별문제 없이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화면에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가 표시되면, 예를 들어 다른 길을 가리킨다면, 외부세계 사건들에 대해 거짓된 정보를 얻고, 따라서 자동차를 잘못 몰아 자동차가 금방 어딘가에 부닥칠 것이다.


우리의 주관적 세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뇌가 객관적 실재에 상당히 부합되는 세계 모델을 만들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자기 몸을 제대로 관리하고 세계를 제법 정확히 반영한다. 하지만, 반복하건대, 세계가 우리의 주관적 실재에 아무리 정확하게 반영된다 한들, 이건 어디까지나 세계의 모델(모형)일 뿐이지 세계 자체는 아니다. 예를 들어, 전파가 주변 공간에 있음에도 우리는 그걸 못 본다. 


다시 과학으로 돌아가자. 과학은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훨씬 넘어섰다, 과학자들은 사람의 지각 기관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게 됐다. 현미경, 망원경, 가이거 계수기, 전압계, 전류계 같은 장치가 그것이다. 

과학자들이 이런 기구를 이용해 보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일반적 그림을 확장하게 됐다. 그리하여 새로운 자료를 추가하고 이 자료를 이론의 도움으로 보편화하게 됐다. 

예를 들어,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가 세포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더 큰 현미경이 등장하면서, 각 세포 안에는 염색체가 있고 이 염색체에 DNA가 들어있으며 이 DNA가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지식 덕분에 유전공학이 생겼으며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인위적으로 가능하게 됐다. 


과학자들이 이론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생각해 보자. 가장 분명한 사례로 물리학을 든다.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다들 알 것이다. 사과나무 아래 앉아서 영원불변의 것을 숙고하고 있었다. 그때 머리 위로 사과가 한 개 떨어졌고, 사과 떨어진 이유가 질량 가진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라는 점을 퍼뜩 깨달았다. 그 순간까지 물체들이 수도 없이 땅에 떨어졌지만 아무도 그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만물의 질서에 있었고, 또 사람들의 세계 모델이 그런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물체를 들어 올렸다가 놓으면 그건 으레 떨어지게 마련이야. 이건 누구나 평생 살면서 접한 경험이었어. 이 때문에 그런 현상에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지구에 끌리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가 그런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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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추정을 근거로 뉴턴은 질량을 알면 떨어지는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공식을 만들 수 있었다. 또 이 공식을 이용하여 그는 내던져진 물체들의 움직이는 궤적뿐 아니라 천체와 행성의 궤도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실재(현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통용되게 되었다. 세계의 모델이 그렇게 바뀐 것이다. 

이때 세계 자체는 물론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에 대한 시각이 바뀐 것이다


질량 가진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것이 궁극적인 진실일까? 아니다. 아gr인슈타인이 등장하여,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마치 휘게 하는 것 같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질량 있는 물체는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한다. 즉, 주변에 ‘깔때기’ 같은 것을 만들어서, 거기로 가까이 있는 물체들이 ‘굴러들어’ 간다. 이제 알고 보니,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질량 있는 물체들 사이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일 뿐이며, 이것이 물체들을 서로 휘게 하는 것이다.


gravity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대안 가설이 여럿 있다. 자, (공중에 솟은 물체는 떨어지는) 현상은 하나인데 이에 대한 설명은 아주 많다. 그런데 역사의 특정 시대에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지배한다. 이건 당연히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우리가 앞에서 알아본 대로, 이런 가설과 이론은 전부 객관적 실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론이란 모두 실재의 모델일 뿐 실재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세계의 구조를 어떻게든 설명하려 하면서 과학자들이 하는 것은 세계의 아름다운 모델을 만드는 것이며, 이 모델들이 최대한 더 많은 현상의 작용을 설명하고 묘사할 것이다.  


도식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물체의 낙하, 전기 현상, 소우주의 현상 등) 어떤 현상에 관한 관찰과 실험 자료가 있다. 이 현상들 이면에 무엇이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인지를 과학자들이 알아내야 한다. 이것은 이 현상을 예측하고 또 가능하다면 다루기 위해 필요하다. 과학자가 무엇을 하나? 그는 어떤 설명을 궁리한다. 즉, 가설을 세운다. 이후 이 가설을 토대로 다른 실험 데이터를 확인하고 검증한다. 

만약 가설이 모든 데이터에서 확인되면, 이론이 된다. 


이론이란 아이디어와 원칙의 체계로서, 과학자들이 세계에 대한 일련의 진리로 현재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이론이 더 오랜 세월 유지될수록, 더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이 실제 그렇다고 믿기 시작한다. 

이론이 단순한 세계 모델에서 세계가 실제 그렇게 이뤄졌다는 도그마로 바뀐다. 그리고 많은 과학자가 이 도그마를 진실로 받아들이면서 세계에 대한 다른 시각 갖추기를 멈춘다. 바로 이 때문에 세계의 구조와 작동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과학계에 들어서서 제 자리 차지하기가 아주 힘든 것이다


여기서 부정적인 현상이 두 가지 생긴다. 1) 사람들이 세계의 모델(모형)을 세상의 진짜 구조로 받아들이고 2) 사람들이 세계 구조에 관해 다른 모델들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 가장 슬픈 일은… 이 이론이란 것이 죄다 한갓 마인드의 장난일 뿐임을 일부 독단적인 과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과학의 첫 번째 한계는 ‘세계의 모델’을 ‘세계의 실제 구조’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며, 두 번째 한계는 세계에 대한 현재 이론 그림에 맞지 않은 것은 전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대기를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뉴턴 시대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어떤 상자에 대고 하는 말을 다른 도시에 있는 사람이 다른 상자로 듣는 장면을 그 시대 사람들이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들에게… 우리 주위에는 실제로 전자기장이 있어서 이것이 모든 공간에 퍼져 있고, 이 전자기장을 따라 전자기파가 빛의 속도로 이동하여 신호를 한 상자에서 다른 상자로 전송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당신을 미치광이나 요술쟁이로 여겼을 것이다. 그 시대 과학은 전자기파와 파동이란 걸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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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스토리를 이제 이런 얘기와 비교해 보자.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전달도 하고 과거를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모든 의식을 하나의 정신 공간으로 연결하는 정신 영역의 도움으로 수행되는데, 이 공간에서는 모든 의식적 존재의 모든 주관적 세계에서 나오는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언급을 어떻게 여기나? 이게 과학적인가? 헛소리는 아닌가? 


저런 언급이나 주장을 현대 과학이 헛소리라 치부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과학이 세우는 세계 모델에 ‘정신 영역/場’과 ‘정신 공간’ 같은 개념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전자기장을 통해 전자기파를 전달하는 상자 이야기와 현대 과학이 인정하지 않는 텔레파시에 관한 이야기에 무슨 차이가 있나? 차이가 전혀 없다. 과학이 자연의 어떤 현상을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뭔가를 연구하기보다는 뭔가를 부정하기가 더 쉽다. 


하지만 텔레파시에 관한 역사에서는 텔레파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지 못하게 하는 면이 한 가지 있다. 이것이 과학적 접근의 세 번째 한계요, 내 보기엔 가장 심각한 한계이다. 


문제는 과학이 오로지 외적 실재만 다룬다는 데 있다. 즉, 많은 이들이 보고 인식할 수 있는 것만 다룬다는 데 있다. 사람의 내적 실재를 과학은 다룰 수 없다. 이를 위한 도구가 과학에는 없다. 


텔레파시 현상으로 돌아가 보자. 이 현상을 과학은 왜 제대로 연구하지 못하나? 왜냐하면, 사람이 특정 순간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명확하게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생각은 그만이 알 수 있는 그의 주관적 실재에 해당한다. 따라서 메시지를 전달한 사람이 무엇을 생각했으며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무엇을 봤는지, 정확하게 말하기가 불가능하다. 


영기 靈氣



대부분의 영적 수행이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까닭은 어떤 주관적 세계에 외부인들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영적 수행과 실천은 사실상 주관적 세계의 현상을 다룬다. 영기/靈氣의 치유 관행을 예로 들자. 

손으로 치유한다는 것이 과학적 관점에서는 과학을 모독하는 것이며 사람들한테서 돈만 우려내는 짓이다. 하지만 영기의 치유 효력을 한 번이라도 감지하거나 자신이 치유자인 사람은 당신에게 영기 세션이 실제로 인체에 작용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 세션 동안 생기는 느낌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감각적 체험을 묘사하기는 아주 힘들다. 그건 당연히 사람의 내면세계에서 생긴다. 이 치유 세션에 참여한 사람의 정직한 증언 외에 다른 증거는 없다. 한데 이미 여러 해 동안 영기를 수행하는 대가들은 이 특별한 느낌 속에서 살며 그 뉘앙스를 구별하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 


과학은 아주 강력한 세상 인식 도구이다. 과학 덕분에 인류는 새로운 수준의 삶에 들어섰다. 우리가 보았거나 이용한 모든 테크놀러지는 과학의 선물이다. 과학 덕분에 우리는 우주로 나갔다. 과학 덕분에 우리는 대기를 통해 지구를 빨리 오갈 수 있다. 과학은 인간 존재를 아주 크게 바꿔 놓았다. 


그러나 그 모든 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주관적 세계 연구에서는 과학에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영적 수행과 종교가 있다. 영성과 종교는 내향성과 자기탐구의 방법으로 주관적 세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해하려 한다. 

우리는 앞으로 이 주관적 세계를 탐구할 것이다. 이것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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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인간의 주관적 실재(세계)의 구조  

 

지금까지,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은 일단 외적 실재와 내적 실재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외적 실재는 마치 사람 바깥에 있는 것 같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당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텍스트는 당신이 볼 뿐 아니라 당신이 보여주면 누구라도 볼 수 있다. 

내적 실재란… 당신만이 지각하는 것이다. 여기엔 생각이나 감각, 감정 등이 들어간다. 

 

이런 분류는 상당히 조건적이다. 또 이 분류는 사람의 주관적 실재(세계)를 대략 보여주는 모델일 뿐이다.

이번 장에서는 더 정확한 모델을 알아보자.

그러면 주관적 실재의 어떤 측면을 가리킬 때 더 정확할 수 있을 것이다. 

 

주관적 실재, 사람이 세상을 보는 구조

 

객관적 실재(세계)를 우리가 오감을 통해 지각한다는 것도 알아봤다.

이런 채널들이 사람에게 있는 까닭은 그에 상응하는 지각 기관이 인체에 있기 때문이다. 눈, 귀, 혀, 피부, 코.

이 각각의 지각 기관에서 나오는 신호를 뇌가 외부세계에서 들어오는 특정 유형의 정보로 해석하며, 이것은 다른 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질적으로 다르다. 

 

촉각과 후각, 미각은 편의상 정보 지각의 운동감각 채널이라 불리는 한 채널로 묶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를테면 미각이 냄새나 신체 감각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운동감각 채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신체 감각, 즉, 촉각(터치)이다. 따라서 운동감각 채널을 종종 신체 감각과 같은 것으로 본다.

운동감각 채널의 느낌에는 이런 것이 있다.

- 피부에 와 닿는 느낌  

- 뭔가에 손을 댈 때의 느낌 

- 대기 온도의 느낌 

- 모든 형태의 고통과 즐거움 

- 분노, 기쁨, 슬픔 같은 정서의 느낌 

- 사랑과 불쾌함 등의 감정 

- 평온과 온화함 등 섬세한 신체 감촉  

- 냄새  

- 맛 

 

눈으로 보는 것은 정보 지각의 시각 채널이라고도 불린다.

또 듣는 것은 종종 정보 지각의 청각 채널로 불린다. 

 

정보 지각의 시각, 청각, 운동감각 채널

 

각 정보 채널은 지각 기관기억이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자료를 받는다.

일단 우리는

지각 기관에서 바로 들어오는 자료를 외부 정보 채널,

기억에서 나오는 자료를 내부 정보 채널이라 부르기로 하자.

따라서 시각, 청각, 운동감각 채널 각각에 외부 채널과 내부 채널이라는 하위 채널이 두 개씩 있다. 

 

만약 정보가 내부 채널에서 나온다면, 우리는 정보가 ‘의식의 내부 화면’에 나타난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억과 상상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는 화면 같은 것이다. 내면의 소리와 느낌도 이 화면에 투사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즉, 내부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가 나타나는, 의식의 조건부 공간을 우리는 의식의 내부 화면이라 부를 것이다. 

 

내부 화면에 나타나는 대상이나 물체를 우리는 내부 형상(이미지)이라 부르겠다. 예를 들어, 빵을 상상할 때 머릿속에 그린 이 빵 형상은 내부 형상이다. 내부 형상에 시각적인 것만 들어가지는 않는다. 청각적 내부 형상과 운동 감각적 내부 형상도 있다. 예를 들어, 장미 향기를 떠올리거나 돌아가신 아버지 목소리를 떠올려 보라. 이것도 내부 형상(이미지)이다. 

 

의식의 내부 화면과 비슷하게, 외부 채널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의식의 외부 화면에 위치할 것이다. 의식의 외부 화면은 외부 정보 채널로 들어오는 정보가 나타나는 공간이다. 따라서 외부 화면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대상을 외부 형상(이미지)이라 부를 것이다. 

의식의 외부 화면과 내부 화면이 함께 의식의 (공통) 화면 혹은 의식을 구성한다. 

 

새로운 용어를 제법 많이 소개했는데, 이 단어들의 개념을 알 수 있도록 예를 들겠다. 그러면 이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분명해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이 단어들을 이용하여 사람의 주관적 실재와 관련된 정보를 서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정보 채널부터 시작하자.

여기에는 우리가 지금 순간에 경험하여 인식하는 것이 다 들어간다.

이 정보는 우리의 감각기관들에서 나온다. 

 

외부 시각 채널은 지금 당장 우리 눈이 보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이 외부 시각 채널에 있는 이미지다. 이것이 외부 이미지인 까닭은 당신의 감각기관인 눈에서 곧장 나오기 때문이다. 또 이것이 이미지인 까닭은, 우리가 알아본 대로, 우리 마인드가 세상 모델을 만들 때 마인드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우리의 외부 시각 채널은 검은 화면을 전달할 것이다. 물론 주의 깊게 보면, 눈꺼풀이 닫혀 있을 때 검은 화면만이 아니라 색깔 있는 얼룩들이 나타날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당신도 그럴 것이라 본다. 

 

외부 청각 채널은 거리에서 들리는 각종 음향이나 숨소리 등 지금 순간 귀가 듣는 소리를 전달한다. 익숙한 음향이나 목소리 등이 다 외부 청각 이미지이다. 익숙한 말소리, 새들 노랫소리, 자동차 소리 같은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하건대, 상상하거나 기억하는 게 아니라 지금 듣고 있는 것이라면, 이건 다 외부 청각 채널이 될 것이다. 지금 순간에 당신은 귀로 무엇을 듣고 있나? 

 

외부 운동감각 채널은 지금 당신 몸에서 나오는 모든 감촉과 감각이다. 당신 엉덩이 느낌이 지금 어떤가? 머리 부위에는 어떤 느낌이 있나? 지금 따뜻한가, 추운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느끼나, 즉, 당신의 지금 감정 상태는 어떠한가? 이 감정이 몸에 어떻게 반영되나. 지금 대기 중에 어떤 냄새가 있나? 공기 중에 지금 어떤 냄새가 있음을 안다면, 이 냄새는 외부 운동감각 형상(이미지)일 것이다. 통증 역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통증도 외부 운동감각 형상이다. 따스함, 추위, 기쁨, 분노 등이, 거기서 지금 순간에 뭔가를 느낀다면, 전부 당신 의식에 있는 외부 운동감각 이미지일 수 있다. 

 

외부 시각 채널과 외부 청각 채널, 외부 운동감각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의 총체가 외부 정보 채널이다.

다음과 같은 연습을 통해 더 확실히 이해하자.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지금 무엇을 듣고 있나?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나? 

지금 보고 듣는 것을 동시에 인식해 보라.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동시에 최대한 인식해 보라. 

이것이 다 외부 정보 채널이 될 것이다. 이것이 다 목전의 실제(실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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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외부 화면으로 돌아가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사람이나 자동차, 나무 등 어떤 이미지들이 스크린에 나타나고 움직이는 것을 본다. 혹시 영화 줄거리에 푹 빠져든다 해도 그것이 다 영화관에 걸린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언제든 상기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이 보는 모든 것 역시 어떤 영화라고 상상해 보라. 이 영화도 어떤 3차원 화면에서 벌어진다. 이 가상 화면이 바로 의식의 외부 시각 화면이다. 이것이 시각적 화면인 까닭은 우리가 당장은 시각 채널만 보았기 때문이다. 

 

같은 식으로, 지금 듣는 소리가 어떤 조용한 공간에서 울린다고 상상해 보라. 이것은 소리가 있게 하는 고요의 공간이다. 이것은 외부 청각 화면이 될 것이다. 

또 마찬가지로, 외부 운동감각 채널에서 나오는 당신의 감각과 감촉 역시 감촉할 수 있는 어떤 공간에서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라. 이것은 외부 운동감각 화면이 될 것이다. 

 

시각, 청각, 운동감각의 이 세 가지 의식 화면이 함께 의식의 외부 화면을 이룬다.

이것은 가상 화면으로서 외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의식의 내부 외부 화면

 

내부 정보 채널로 넘어가자. 

엊저녁에 뭘 먹었는지 기억한다면, 당신 눈앞에 그 음식 모습이 떠오를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떠올리기가 더 쉬운데, 이 경우 외부 시각 채널이 닫히기 때문에 그렇다. 

지난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리라. 

선인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라.

 

그런 것을 기억할 때, 그림이나 필름 같은 형태의 시각적 이미지가 당신 의식의 내부 화면에 나타났다. 그것을 당신 눈이 지금 당장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를 본다.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그림 같은 형태로 보는 것이 바로 내부 시각 정보 채널이다. 당신이 상상하거나 마음속에서 그릴 수 있는 이미지들이 이 화면에 나타난다. 

 

닭장으로 몰아넣으려 하자 놀라서 도망 다니는 닭을 상상해 보라. 내부 시각(영상) 화면에 나타나는 물체를 우리는 내부 시각(영상) 이미지라고 부를 것이다. 지금 경우에 이건 음식물, 선인장, 닭, 닭장 등이다. 그것을 떠올리거나 마음속에 그릴 때 당신은 그것을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머니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개가 어떻게 짖는지, 새들이 어떻게 노래하는지 등을 떠올릴 수 있다. 혹은 이웃에게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가 당신에게 어떻게 대꾸할지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이미지들이 의식의 내부 청각 화면에 나타나고, 이것이 내부 청각 이미지이다. 이 범주에 자신과 나누는 내면의 대화나 독백도 넣을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의 내면 대화에 내적인 장면들이 수반된다면, 내부 시각 채널이 섞이는 것이다. 

생각은 대개 내부 시각과 청각 이미지들이 한데 모이고 교체되는 식으로 일어난다.
이런저런 결과를 얻기 위해 당신은 이 이미지들을 조종한다.
이것이 바로
사고 과정이다. 

 

이 텍스트를 읽을 때, 내부 시각 채널에서 당신은 이 단어들을 종이 위의 텍스트로 본다.

이 텍스트의 의미를 당신이 이해하기 때문에, 이 텍스트에서 당신이 본 의미를 묘사하는 내부 이미지들이 당신 내부의 시각 청각 채널에 나타난다. 이것은 또 우리 의식에 내부 정보 채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내부 운동감각 채널에는 이를테면 연기 냄새나 레몬 맛이 어떤지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하던 순간을 기억할 때 느낌이 이 채널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 채널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장면을 떠올리라. 

햇살이 몸을 데워서 당신이 따스하게 된다. 평온한 느낌이 당신을 감싼다. 당신이 먹고 있는 파인애플의 맛과 냄새가 다 좋다는 느낌을 만든다. 

지금 느낀 것이 전부 내부 운동감각 채널의 이미지이다. 물론 당신은 뭔가를 상상했을 것이다. 이건 이미 내부 시각적 채널의, 또 아마도 청각적 채널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에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어떻게 잠자는지에 주목했다면, 모든 정보 채널의 이미지들이 당신의 내부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에게 어떤 필름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긴다. 한데 그건 나름의 시나리오대로 전개된다. 당신은 이 상연을 관찰할 뿐이다. 당신은 점차 이 사건들에 몰입하면서 자신을 잊고 꿈에 완전히 들어서게 된다. 

꿈 자체가 우리에게 아주 생생해 보인다. 거기에는 시각, 청각, 운동감각의 채널이 다 있다. 현실과 꿈의 차이를 보지 못할 만큼 모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알아둘 점은, 이 이미지가 전부 당신의 내부 이미지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꿈꾸는 순간 당신의 감각기관들은 그런 것을 전혀 인식하지 않으니까. 

 

잠시 정리해 보자. 

3가지 내부 하위 채널이 (시각, 청각, 운동감각) 전부 합쳐져서 정보의 내부 채널을 나타낸다. 이 채널의 정보는 전부 의식의 내부 화면에 있다. 이 화면은 정보의 내부 채널에서 나오는 이미지들이 나타나는 조건부 공간이다.

 

정보 채널

하위 정보 채널

설 명

사 례

시각 채널

외부 시각 채널

 

지금 당장 내 눈이 보는 것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구체적인 물체나 과정

 

시각 채널

내부 시각 채널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장면이나 영상으로 내가 상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

 

기억하거나 상상하는 장면,

그림처럼 생생한 생각

청각 채널

외부 청각 채널

 

지금 당장 내 귀가 듣는 것

 

 

지금 내 귀에 들어오는 목소리나 음향

 

청각 채널

내부 청각 채널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음향이나 말소리로 내가 상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

 

내적 대화나 독백,

혼자 속으로 하는 판단, 기억하는 목소리,

상상하는 대화나 음향

 

운동감각 채널

외부운동감각채널

지금 내가 느끼고 감지하는 것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신체 감각, 통증, 감정, 맛이나 냄새

 

운동감각 채널

내부운동감각채널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느낌이나 감정으로 내가 기억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

 

신체 감각이나 냄새, , 피부 접촉 등에 관한 기억

 

정보 채널, 의식의 화면

 

어린애들이 어떻게 노는지 관찰하면, 아이들은 자기네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상상의 세계를 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에게 연필이 있을 때, 그건 그냥 연필이 아니다. 로켓이나 주사기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을 우주비행사나 의사로 느낀다. 베개나 쿠션들이 아이에겐 성채가 된다. 탁자는 집이 되고. 아이는 장난감들과 이야기 나눈다. 

 

이때 아이에겐 외부와 내부 두 채널에서 정보가 동시에 들어온다고 할 수 있다.

상상은 내부 채널의 기능이다.

외부 채널의 정보가 내부 채널의 정보와 섞여서 기묘하게 뒤섞일 때, 사람 의식에서 현실이 동화처럼 된다. 그때 평범한 물건들이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바뀐다.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성인들 경우에도 외부세계와 내부 채널들의 정보가 뒤섞이는 경우가 있는데, 단지 추상적 실재(세계, 현실)에서만 그렇다. 성인의 내부 채널은 그가 만드는 세상 모델과 내면 대화에서 나오는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한다. 성인도 순수한 외부 실재는 역시 못 본다. 이 외부 실재를 그는 자신의 세계관 필터와 자신의 세상 모델을 통해 걸러낸다

그때 ‘흑인은 다 폭력 집단’이라고 믿는 백인의 의식에서는 단지 그 믿음 하나 때문에 흑인이 폭력배가 되고 만다. 그때 점토 조각은 조각가의 의식에서 그냥 한 점의 찰흙이 아니라 여인의 형상이 된다. (*피그말리온). 그때 빈집은 사업가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상점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사람의 주관적 세계 모델을 열거했는데, 이건 다 모델일 뿐이기에, 이것을 어떤 사람의 진정한 의식 장치로 볼 필요는 없다. 이 모델은 여느 모델과 마찬가지로 의식 과정의 일부 측면만 반영한다. 이 모델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어떤 사건의 어떤 측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모델의 본질이다. 즉, 실재의 어떤 측면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 

 

지금까지 의식의 구조와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한 새로운 용어들은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이 용어들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의 여러 특정 측면을 가리킨다. 이 측면들을 빨리 언급하기 위해 몇몇 용어를 소개했다. 이 용어와 단어들의 기능은 <말에 관한 장>에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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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궁금증은 이런 것이다. 

뇌에 신경 임펄스 망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며 어디에 위치하나? 

우리가 지금 창 너머로 직접 바라보는 나무의 모습과

사람 머릿속 신경 임펄스 다발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 임펄스들의 배열을 무엇이 창밖의 나무 모습으로 인식하게 하나? 

창밖의 나무를 무엇이 직접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인가? 

 

과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뇌에서 의식을 담당하는 영역을 찾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설령 의식 담당하는 뇌 영역을 찾아낸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고 본다.

결국, 이 영역 또한 뒤엉킨 뉴런 다발이지 않겠는가.

의식을 뉴런 망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을까? 

 

cyber head 인공 뇌

 

로봇을 상상해 보자.

과학이 발달해서 사람 머리처럼 설계된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치자. 거기엔 눈 대신 비디오카메라가, 귀 대신 마이크가 있다고 하자. 카메라와 마이크에서 나오는 신호들이 (뇌처럼) 수십억 개의 극미한 요소들로 이뤄지는 블록으로 들어가고, 이 각각의 요소에는 여러 개의 입력과 하나의 출력이 있다. 이 요소들은 전부 인간 뇌의 뉴런들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게다가 과학자들이 노력한 결과 뉴런의 인공 대체재를 이용하여 어떤 사람의 뇌를 정확히 복제했다. (여러 사람의 뇌는 뉴런의 연결 도식에 따라 서로 구별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뇌를 모델로 삼을 뿐이다.) 

 

이 로봇 머리가 그것이 모델로 삼은 사람의 뇌가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이 로봇에게 의식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게 사람의 의식과 같을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실험할 수 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 수신기로 남겨두자. 하지만 사람 뇌의 모델 대신 카메라와 마이크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할 보통 컴퓨터를 설치할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 메모리에 대용량 정보를 저장할 프로그램을 설치할 텐데, 여기에는 로봇의 카메라가 보는 방향으로 사람이 고개 돌린다면 보게 될 장면이 들어간다. 

자, 컴퓨터 메모리에 어떤 장면이 생긴다.

이 장면을 인식하는 누군가나 무엇인가가 있나?

혹은 이건 그저 쇳덩어리에 불과하며, 거기에 의식은 없는 것인가? 

 

이 전자 기계에 의식이 없다면, 사람에겐 왜 의식이 있나?

결국, 인간의 뇌도 본질상 로봇의 ‘뇌’처럼 여러 구성요소들로 이뤄진 장치가 아니던가.

만약 로봇의 첫 모델이 (인간 뇌를 정확히 복제한 것이) 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로봇의 뉴런 망 조립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의식이 나타난 것일까? 이 뉴런 망이 의식을 지니려면 뉴런이 얼마나 필요한가? 

 

이건 다 어려운 질문이고, 과학은 여기에 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에는 인간의 (혹은 로봇에 주관적 내면세계가 있다면, 로봇의) 주관적 내면세계 연구에 필요한 도구가 없으니까. 게다가 로봇에도 인간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것을 확증하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로 말하자면, 그들이 나와 비슷하니까 필경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의식이 있을 것이며 그들도 세상을 보고 느낄 것이라고 우리는 그냥 결론 내린다. 이 결론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와 같은 게 있다’는 유사성에 따라 나온 것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로봇이나 컴퓨터 같은 인공 장치들도 마찬가지다. 로봇에게 의식이 있을지 아닐지를 우리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로봇이 인간과 똑같이 행동한다고 해도, 로봇에게 일어나는 것을 전부 인식하는 뭔가가 로봇 안에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심지어 로봇이 보통사람처럼 정말 의식을 갖추고 있다 해도, 정말 그렇다는 것을 일관되게 확인할 수단은 없다. 

 

하지만 사실을 직시해 보자. 나에겐 의식이 있다.

내 머릿속에 뉴런 네트워크와 신호들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내가 인식하는 그대로 세상을 인식한다. 내 몸과 뇌의 형태로 물리적 실재가 (실체가) 분명히 있고, 내 감각 경험을 나타내는 나의 주관적 실재가 (실체가) 있다. 이 두 실재가 서로 의존하긴 해도 (내 뇌가 손상되면, 내 감각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 철학자 켄 윌버(Ken Wilber)는

객관적 실재가 있으며 그 대표자가 우리 몸이고,

주관적 실재가 있으며 그 대표자가 우리의 모든 감각 경험임을 확인해 보라고 제시했다.

 

그렇다면 우리네 지각 개념에서 객관적 실재(실체)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상당히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모든 사람에게 하나인 어떤 세계가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는 지금 여기에 있으며 일정한 형태를 지닌다. 이 의자가 1분 뒤에도 같은 형태로 있을 개연성은 아주 높다. 당신이 이 의자를 본다면, 이게 예를 들어 검은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친구에게 이 의자가 무슨 색이냐고 묻고 친구가 솔직한 사람이라면, 역시 검은색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일도 당신은 이 의자를 이 자리에서 보게 될 것이다. 못 보게 된다면,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확신할 것이다. 

 

당신이나 당신 친구 등 모든 사람의 이런 생각과 경험을 보면, 우리가 다 거기 살고 있으며 모두에게 공통된 어떤 세계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객관적 세계이다.

이것은 상당히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나름대로 존재 법칙을 가지고 있다. 이 법칙을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 등이 연구한다. 이 법칙을 알고 이 세계에서 얻은 경험 덕분에, 우리는 여러 사건을 웬만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고 이 세계를 바꾸고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다른 설명이 있다.

만약 물리학을 아직 모르는 아이에게 이 세계가(세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다면,

아이는 사물이 있으며 그것들에 어떤 형태와 색깔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들은 자리를 옮길 수 있으며, 땅과 하늘, 나무 등이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세상에 대한 관념이 단순하고 일상적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 세계에서 방향 잡고 이동하고 기본적으로 생존하기에 충분하다. 

 

물리학자에게 물질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다면,

그는 세계가 물리적 진공인 4차원 시공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진공 속에서 기본 입자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사라진다. 이 입자들은 본질상 물리적 진공 상태에서 에너지 파동이다. 기본 입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원자를 만든다. 원자들이 결합하여 분자를 만든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분자들로 이뤄진다

이때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는 물리학자가 보기엔 사실상 원자와 분자들이 의자 형태로 특수하게 모인 집합이다.

세계에 대한 그런 관점은

빛이 무엇인지,

물체들의 색깔이 왜 여러 가지인지,

쇠는 시간이 지나면 왜 녹스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

고대에는 뇌우를 제우스의 분노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뒤 자연에서 전자기 현상을 연구한 이후에는 뇌우를 구름 속에서 상반되게 충전된 양극 사이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강력한 방전으로 여기게 됐다. 

 

예를 하나 더 들자.

뉴턴의 발견 이후 객관적 세계질량 있는 물체들이 존재하는 3차원 공간으로 제시됐다. 시공간에서 물체들의 움직임은 뉴턴의 운동 법칙으로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객관적 세계에 대한 이런 설명은 아주 오랜 세월 최종 진리로 여겨져 왔다. 뉴턴의 공식들이 지구와 우주에서 여러 현상을 예측할 수 있게 했다. 자연과 현실의 실재가 그렇게 설계되고 작동한다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명백했다.

적어도, 뉴턴의 역학(力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실험들이 나올 때까지는 말이다. 

 

입자, 파동

그런데 작은(미시) 세계 (소우주, microcosm), 즉, 원자들 세계의 구조에 관한 데이터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이 수준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이 수준에서 전자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그때 닐스 보어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나타나서 ‘자연이나 현실의 실재가 어떻게 설계됐고 작동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뉴턴의 법칙들은 폐기되지 않고 거대 세계 (대우주, macrocosm), 즉, 물체들 세계를 설명하기에 더 정확한 법칙들의 근삿값이 된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물리학자들이 다시 여러 실험을 해 보았는데, 이 실험들을 실재(reality)에 대한 지금의 인식 체계나 이론 틀에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게 됐다. 끈 이론, 루프 이론 등이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당연하고 합당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구조에 관해 현재 인정받는 이론은 참일까?

이 세계가 정말 현대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대답은 자명하지 않나 싶다. 즉…

아니다. 미래에 새로운 아인슈타인이 나타나서 모든 것이 확 뒤바뀌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얘기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어떤 객관적인 실재가 (세계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거기에는 어떤 안정성과 존재 법칙들이 있으며, 그래서 그것을 예측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어린애나 고대인들의 묘사부터 시작해서 현대 과학의 설명에 이르기까지, 실재를 (현실을, 물리적 세계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방법은 모두 이 실재 자체가 어떻게 이뤄지고 작동하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건 다 실재 자체가 아니라 이 실재의 모델들일 뿐이다. 그건 다 실재를 예측하고 조종하거나 조작할 수 있게끔 이 실재를 설명하는 방법일 뿐인 것이다. 

 

셋째,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다 허위요 거짓이다.

세계의 다양한 측면을 그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론이란 것은 죄다 세계에 대해 우리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이건 세계가 아니라 세계의 모델이다.

한데, 모델은 그게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원본을 결코 정확하게 복제하지는 못한다.

이건… 서울 지도가 서울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도시의 지도는 실제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도식적 모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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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눈 얘기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 - 객관적인 실재는 (현실은, 세계는) 분명히 있어,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우린 모르며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또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실재가 (현실이) 어떻게 구성됐고 작동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이요 형상이다. 이건 우리네 머릿속에 있는, 객관적 실재의 모델일 뿐이다. 그 이상이 아니야. 

 

비록 객관적 실재를 끝내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든 그럭저럭 지각한다.

우리의 신경계가 작동하는 덕분에, 특히 뇌 덕분에, 우리는 외부 실재에서 (외부세계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는다.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가? 

 

앞서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사람이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는지 자세히 알아봤다.

외부세계는 공간에 있는 광파와 음파, 갖가지 분자들로 가득하다.

객관적 세계의 이 물리적 발현을 인체가 감각 기관을 통해 뇌의 임펄스로 바꾸고,

이 임펄스를 뇌가 시각적, 청각적, 운동 감각적 (촉각, 냄새, 맛) 이미지로 해석한다.

사실상 이런 과정이 일어난다. 즉, 사람 뇌가 거기로 들어오는 신호들을 이용하여 외부세계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외부세계의 지각, 뇌에서 뉴런의 활동, 주관적 형상

 

 이 그림에서는 한 가지만 빼고 다 올바르게 표현됐다.

외부의 ‘객관적 실재’가 여기서는 개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가 묘사하기 불가능한 ‘무엇’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무엇인가’를 오늘날 과학은, 앞에서 알아봤듯이, 물리적 진공 상태에서 움직이는 기본 입자들의 집합으로 설명한다. 

 

자, 우리에겐 객관적 실재(세계)가 있는데, 이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다. 사람 바깥에 있는 이 객관적 실재는 신경 임펄스의 활동 형태로 뇌에 반영된다.

이와 달리 우리에겐 또 주관적 형상이 있는데, 이것은 신경이 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때 사람 의식에 나타난다. 이것이 주관적 실재(세계)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뇌는…

객관적 실재가 어떤 사람의 주관적 실재에 반영되게 하는 신체 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과학은 아직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사람의 의식이 무엇이며 주관적 실재가 무엇인지 과학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마다 관찰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아본 것에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나?

1. 특정 순간 당신이 지각하는 것은 죄다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당신의 뇌와 의식이 만들어 낸 주관적 세계(실재, 현실)이다. 

2. 당신 개인의 주관적 세계를 당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왜냐면 특정 순간에 당신이 인식하는 것은 바로 당신 뇌의 작업 결과니까 말이다. 과학자들이 당신 뇌의 일상적인 활동을 고려한다 해도, 이 신경 임펄스를 당신이 인식하는 세계의 형상으로 어떻게 전환할지 알지 못한다. 

 

이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것은 전부 우리의 뇌와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결국, 우리 각자는 자신의 뇌가 만드는 가상현실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 현실이 (실재가) 객관적 현실을 (실재를) 어떻게든 제대로 반영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즉, 우리 앞에 어떤 물체가 있을 때, 이 물체의 실제 규모에 걸맞은 크기와 형태를 지니는 주관적 형상이 우리의 뇌와 의식에 나타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물체를 정상적으로 접하고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외부의 객관적 실재 (현실, 세계) 전반과 서로 정상적인 작용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역설이 몇 가지 있다. 

주변에서 파란색 물건을 찾아보라.

당신은 파란색이 어떻게 보이는지 안다.

그건 파랗게 보일 것이다. (^^)

파란색을 “이건 파란색이야!” 하는 말 외에 달리 어떻게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 있나?

 

당신이 파란색으로 지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파란색으로 받아들인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파란색을 어떻게 보는지 이해하려면, 그 사람 머릿속으로 당신의 의식이 스며들어야 한다. 이게 가능한가?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주관적 세계를 절대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파란색이 당신이 지각하는 색깔과 같은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혹시 당신이

“영적인 힘이나 심령술, 초감각으로 다른 사람의 주관적 세계를 볼 수는 없을까?”

하고 말한다면, 즉,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파고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반박한다면…

그렇게 하여 당신이 보는 것도 결국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주관적 세계’도 어쨌든 그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주관적 세계 이외에 그 무엇도 결코 못 봤고 앞으로도 못 볼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 인식한 것은 전부 우리의 주관적 세계를 벗어난 적이 결코 없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모조리 우리의 주관적 세계다.

초감각적 지각이나 주술적 행위 등이 모두 그걸 행하는 사람의 의식에서 벌어진다. 심지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세계나 감정을 느끼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건 전부 우리 의식에서, 우리의 주관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재미난 역설이 하나 더 있다. 널리 퍼진 수수께끼 하나. 

인적 없고 울창한 숲속에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날까? 있을까? 

우리가 이제는 여기에 답할 수 있다.

그 소리는 없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는 그것을 듣는 사람이나 생물의 주관적인 느낌이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아무도 인식하지 않는다면, 객관적 실재(세계)에서 이건 공기 흔들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봤듯이, 공기의 파동(음파) 자체에는 소리가 없다.

소리란…

떨어지는 나뭇잎의 공기 파동이 사람 귀에 들어올 때 사람 뇌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없다면 (혹은, 인식하는 존재가 없다면) 소리도 없을 수밖에. 

 

키보드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물체를 안 보는 동안에는 그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예를 들어, 당신이 방안에 앉아 있다. 앞에 컴퓨터 자판이 있다. 당신 눈길이 거기로 향한다. 즉, 이 자판이 당신 뇌에 신경 활동 형태로 반영되고, 이 신경 활동이 당신 의식에 이 자판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자판에서 눈길을 돌리는 즉시, 당신 뇌와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그 이미지가 사라지고, 자판이 있는 자리에는 (현대 물리학의 관점을 취한다면) 어떤 객관적 실체가 원자와 분자들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 뇌와 의식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자판을 만들어 낸다. 

 

달리 말해, 우리의 뇌와 의식이 없다면…

오직 있는 것만, 즉, 객관적 실재만 (실체, 현실, 세계만) 있을 뿐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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