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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장. 동일시의 수준과 유형  

 

자신을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하는 상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살펴봤다. 

자신의 직업이나 젠더, 위치, 생각과의 동일시가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좌우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의 생각이 비판받으면 우리는 풀이 죽고, 칭찬받으면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누군가가 칭찬하거나 헐뜯어도 우리는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나를 두고 엄마 구실을 잘한다고 칭송하거나 못한다고 지적하면, 이건 다른 엄마들에 관해 말하는 것과 달리 내 신경을 건드릴 것이다. 내 몸의 어떤 특성을 좋게 보면 난 기분이 좋고 깎아내리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러나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신체를 두고서는 어떻게 떠들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동일시의 수준과 유형. 바닷가에 홀로 선 사람

 

즉, 뭔가가 실제로 우리와 관련되면 우리는 거기에 안팎으로 반응한다. 또 우리와 상관이 없으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있게 된다. 또 무엇이 우리의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뭔가에 누군가나 무엇인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내 아이, 내 전화기, 내 아파트, 내 친구, 내 소파, 내 나라 등이 그렇다. 누군가가 남의 아이를 윽박지른다면 난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아이한테 그렇게 한다면 난 아주 기분 상하거나 화를 낼 것이다. 남의 집에 불이 나면 내 집에 불났을 때처럼 죽을 듯이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다. 내 개가 애견 대회에서 1등을 하면 아주 좋아.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개가 그러면 나랑 상관없다. 

 

참고: 내 것이나 내 편이라 여기는 뭔가도 역시 나와 연관된다. 사실상 이건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의 연장이다. 따라서 동일시 수준을 이렇게 나눌 수 있다. 1) 나 2) 내 것, 나와 관련된 것 3) 나와 무관한 것. 시각적으로는 이렇게 보일 수 있다.

 

나, 나의, 나와 무관한...

 

‘나’ 범주에 관련된 것은 죄다 내가 자신을 이런저런 유형과 직접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목수야, 나는 엄마야, 난 사장이야, 난 중학생이야, 나는 내 몸이야, 난 남자야 등등. 

 ‘나의 ...’ 영역에는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게 다 들어간다. 내 집, 내 나라,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 내 자녀, 내 사업 등.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게 반드시 내 소유물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라. 예를 들어, 내 사업, 내 아파트, 내 전화기는 내 것이지만, 내 나라나 내 친구, 내 도시는 나 개인에게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의’라는 개념은 내 소유에만 적용되기보다는 외려 어떤 이유로 인해 내가 나의 것이라 여기게 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이건 동일시의 유형이다. 더 정확히 하자면, 동일시의 수준이다. 

 

1) 우리가 자신을 직접 동일시하는 유형과 동일시가 가장 강하게 일어난다. 나는 엄마야, 난 남편이야, 난 사람이야. 이건 우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나’ 수준이다. 

 

2) 다음에 ‘나의’라는 수준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게 나 자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과 어떻게든 관련되며, ‘나의’라는 접두사를 써서 연관성을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개는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개야, 남의 개가 아니라. 

 

3) 끝으로 ‘나와 무관한’ 수준. 나에게 해당하지 않으며 나와 전혀 무관한 것이 여기에 들어간다. 사실, 여기선 동일시가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제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해안에 태풍이 닥쳐서 아무개네 전복 양식장이 망가졌다고 해도 나한테는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내 양식장이 아니고 내 가족도 아니야. 혹은, 시리아에서 전쟁이 계속되어도 난 크게 개의치 않아. 내 나라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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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시 수준 간의 경계는 사실 아주 희미하다. 예를 들어, “나는 교수야” 하고 말할 수 있고, “나는 교수라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어” 하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떻게 말하는지는 그 사람이 자기 직업에 얼마나 동일시됐느냐에 달렸다. 자기 몸을 가리키면서 “이 몸이 바로 나야” 하고 말할 수 있고 “나에겐 이 몸이 있어” 하고 말할 수도 있다. “난 여자야” 혹은 “나의 젠더는 여성이야” 혹은 “난 여자 역할을 해”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몸이나 역할, 이미지 등 특정한 유형과 동일시하는 정도에 달렸다

 

이건 ‘나’와 ‘나의’ 수준 간의 경계가 어떻게 희미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나의’와 ‘나와 무관한’ 수준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사례로는 미인대회에서 내 친구 딸이 입상한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친구 딸이 상을 받는데 나도 기뻐, ‘나의’ 친구의 딸이 아닌가. 혹은,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나에게 직접 관련은 없지만 그래도 걱정돼, 왜냐면 간접적으로 나와 연관되니까. 그 상황이 내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우리는 ‘나’와 ‘나의’와 ‘나와 무관한 것’ 등 동일시의 수준을 살펴봤다.

이건 다 내가 그 무엇과 동일시되는 유형이었다. 이와 다른 동일시 유형이 있는데, 이건 자신을 다른 사람이나 사람 그룹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라는 단어를 이용하면서, ‘나’가 ‘우리’가 된다.

이런 경우 이 사람은 자신을 어떤 사회적 그룹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는 이 그룹이 되어서 별도의 개인보다는 그 일부로 행동한다. 이런 일은 집회나 축구 경기, 가족 등에서 종종 일어난다.

 

그런 동일시 유형의 뚜렷한 사례로 어린애를 둔 엄마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자기 아이를 가리켜 종종 ‘우리’라고 일컫는다. 예를 들면, “우린 병이 났어”, “우리 응가하러 간단다.” 실제론 어린애가 아프고 응가를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말한다. 마치 아기와 하나가 된 듯이 말이다.

또 다른 좋은 예로는 사랑에 빠진 연인 커플이 있다. 함께 있을 때 두 사람은 각자의 경계를 벗어나 상대와 결합한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가 ‘우리’로 확장된다. 

 

이런 유형의 동일시에도 몇몇 수준이 있다. 1) 우리 2) 우리의 3) 우리가 아닌 것.

 

우리, 우리의, 우리가 아닌 것.

 

1) 여기서 ‘우리’의 동일시 수준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군인이야”, “우린 호남인이야”, “우린 어느 학교 동창이야”, “우린 아무개 광팬이야”, “우린 한국인이야” 등등. ‘나’의 경우에 그렇듯이, 그룹 전체가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당신이 자신을 어떤 그룹과 동일시하고 있는지 더 명확히 알고 싶다면, 이런 물음에 대답해 보라. 

당신은 살면서 어떤 그룹들과 동일시돼 있나? 여기엔 이를테면 당신의 가족이나 친구들, 동호회, 독서 클럽, 정당, 대학생 그룹 등이 들어갈 수 있다. 

당신 그룹은 무엇과 동일시돼 있나? 예를 들어, “우린 상류층이야”, “우린 대학생이야”, “우린 진보 그룹이야” 등. 

 

2) ‘우리의 ...’라는 수준에서 동일시는 ‘나의 ...’라는 수준에서 하는 동일시와 비슷하지만, 나보다는 그룹을 더 많이 드러낸다. 예를 들어, 우리 아파트, 우리 자동차, 우리 집안, 우리 영역, 우리 별장 등.

 

3) ‘우리가 아닌 것’ 수준에서는 동일시가 없다. 여기에는 우리 그룹과 아무 관련 없는 것이 다 들어간다. 

 

지금까지 동일시의 유형과 수준을 알아본 까닭은 우리에게 어디서 동일시가 생기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일상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가족과 강하게 동일시됐다면, 가족의 행복이 당신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리라. 즉, 당신 가족과 관련된 것은 전부 당신과도 바로 관련된다.

만약 당신 가족이 가풍 든든한 집안이라고 자부하는데 누군가가 당신 가족을 뼈대도 없는 집안이라 불렀다면, 당신은 당연히 기분이 상한다. 당신 개인을 두고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당신 가족을 그렇게 일컬은 것이지만, 당신이 자신을 가족과 동일시하는 까닭에 당신의 감정 상태가 크게 바뀐다. 

 

어떤 축구팀의 팬클럽과 당신이 강하게 동일시됐다면, 그 그룹이 공격받을 때 당신은 화가 나서 동료들을 옹호하러 나설 것이다. 자기가 속한 그룹과 동일시가 약할 때는, 그룹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애국자들은 종종 자신을 나라와 강하게 동일시한다. 나라가 위협에 처할 때 그들은 나라를 지키러 과감하게 나설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 가족이나 자신을 더 지킬 것이다. 이건 다 그 사람이 자신을 무엇과 더 크게 동일시하는지에 달려 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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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 4부. 나는 누구인가 > ... )

  18. 일시의 작동 원리 (메커니즘)  

 

동일시의 메커니즘과 여러 유형를 살펴보자
앞장에서 규명했듯이, 동일시는 우리에게 엄청난 역할을 한다. 

동일시는 우리의 감정 상태와 신체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우리 삶에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그렇게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면, 동일시가 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동일시의 메커니즘과 유형

 

우리는 자신과 자기 존재에 대한 어떤 느낌이나 촉(?)이 있음을 알아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의미하면서 ‘나, 나, 나…’라고 말할 때 그걸 느낄 수 있다.

이런 경우 생기는 느낌을 우리는 자아감이나 자아의식, 자기인식, 자기 감각 등으로 불렀다. 

 

자아감을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뭔가를 행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할 때, 우리는 그걸 다 우리가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난 먹고 싶어”, “난 내일 뭘 할까 생각해”, “난 기분이 안 좋아” 등등을 말할 때, 이 언급에서 우리가 뜻하는 ‘나’를 우리는 자아감이라 부르는 것이다. 

자아감은 우리 몸 어디에 있나? 흔히들 말하기를…

“나는 내 눈 뒤 머릿속이나 가슴 어딘가에 있어. 거기서 모든 것을 지켜봐.” 

 

‘나’라는 느낌이 내 눈 뒤쪽 어딘가에 있다고 이해하면서도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교수야. 나는 엄마야. 난 한국인이야 등등. 그리고 ‘교수라는 것’은 일이나 직업이지 ‘나’라는 느낌이, 자아감이, 절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내가 정말로 교수라면 난… “교수는 먹고 싶어 해”, “교수가 숲을 거닐고 있어”, “교수가 자녀들을 키워” 같은 식으로 말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정말 우스꽝스러운 발상이요 말법이 아니겠는가. 자녀 양육은 교수가 아니라 아버지가 한다. 즉, 교수란 일이나 직업일 뿐이다. 

 

따라서 “난 교수로 일하고 있어” 하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고 온당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에서는 많은 사람이 “난 교수야” 하고 말하는데, 이건 모든 걸 뿌리째 바꾼다. 왜냐면 ‘나’라는 느낌이 ‘교수’라는 이미지와 동일시되니까

 

여기서 ‘교수’ 대신에 다른 여느 직업을 넣어도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에 다 해당한다. <직업과 동일시>라는 현상을 얘기하고 있으니까. 이 동일시를 예를 들어 “나는 목수야” 하고 말하는 사람이 목수 일을 하는 상황에서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내가 목수이고 어떤 순간 그 일을 한다면, 그 순간에는 자신을 바로 목수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직무상 다른 사람들을 접해야 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행동하는 투를 관찰하면 완벽하게 알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트의 계산원이나 판매원은 당신을 대할 때 바로 계산원이나 판매원으로서 행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그들은 자기 직업과 자신을 확실하게 동일시하니까 그렇다. 

만약 계산원이 업무 현장에서 갑자기 당신에게 자기네 살림살이가 요즘 힘들다거나 어제 시장에서 아는 누구를 보았다거나 최근에 아이들이 엄마인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둥 늘어놓는다면, 이건 계산원 역할과 분리되고 거기서 벗어나 당신의 친구 같은 역할로 들어선 것이다. 다행히 실제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거나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를테면 직업과 같이 자기 역할들 가운데 하나와 동일시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는 순수한 ‘나’ 느낌으로서의 자신을 잊고 액면 그대로 자기 역할이 되어 버린다.

이건 자기 망각이요, 자아 상실이다.

혹은, 자기 역할에 지나치게 빠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어떤 역할이나 일에 그렇게 몰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요리에 하도 몰두하는 바람에 자신을 시야에서 놓친 것처럼 감지하기를 잊는다. 그리고 몰아(沒我) 상태에서 이 시간에 우리가 의식한 것은 요리 과정뿐이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요리 과정이 되고 만 것이다.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항상 의식적으로 ‘나’ 느낌에 주의를 일부 기울이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거나 역할을 진행하는 동안 자기 자신을 기억한다면, 자기 역할을 바깥에서 보듯이 지켜보게 된다. 그때 당신이 곧 그 역할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목수 김 씨가 일터에서 작업하면서 그 일을 하는 자신을 의식한다면, 그는 이미 목수 역할과 동일시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기 일을 계속 수행하면서도 바깥에서 보듯이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아감과 작업 과정을 별개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을 목수라는 직업과 더 이상 동일시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의식하는 상태가 바로 분리(disidentification)라고 불린다. 실제에서 분리는 역할 수행뿐 아니라 몸이며 젠더, 추상적 이미지 등 모든 형태와 자아감이 동일시되는 것과도 연관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어떤 역할과 분리 상태를 알려면, 그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금 순간에 현존하기만 하면 된다. 버스를 타고 간다고 치자. 이 경우 우리는 자신을 승객 역할과 동일시한다. 이 역할에는 어떤 행동 규칙이 있다. 예를 들어, 승차권 구입, 임산부에게 자리 양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내밀한 영역에 들어서도 반발하지 않기 등. 

버스에 올라타는 즉시, 승객의 역할이 시작된다. 이때 의식을 계속 가동한 상태로, 버스에서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해 보라. 그러면서 자아감을 일부나마 시야에 두고 있으라. 이 과정과 자신의 행동이며 생각이며 감정을 관찰하는 동안, 당신은 그것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승객이라는 역할과 분리 상태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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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당신이 동일시될 수 있는 다른 여느 형태하고도 그렇게 하면 분리가 가능하다. 자신의 젠더와 동일시되지 않으려면, 당신이 남자나 여자로서 행동할 때 당신의 젠더와 상관없이 자신을 그냥 관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여자라면, 남자들이나 다른 여자 친구들과 대화하는 동안 당신의 행동과 생각, 감정에 당신의 여성 이미지나 여성관이 들어섬을 알아차리라. 당신은 남자들에게 애교를 피우거나 화장을 하고 다른 여자들과 수다를 떨 수 있다. 당신의 행동에 나타나는 요소가 전부 대개는 당신이 여자라는 이미지에 포함된다. 

당신이 여자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동안, 당신은 그 역할과 분리된다. 하지만 관찰을 멈추는 즉시, 당신은 자신을 그 역할과 자동으로 동일시하게 된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어떤 유형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당신은 자신을 그 형태와 자동으로 동일시하게 된다. 즉, 엄마로 행동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까지, 당신은 엄마이며 그 역할과 동일시될 것이다. 승객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까지, 당신은 승객일 것이다. 당신이 자기 몸과 동일시됐음을 인식하기 전까지, 당신은 당신 몸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나 승객이나 몸 등 동일시 형태에 주의를 기울이는 즉시, 이것은 내가 동일시하는 또 다른 형태일 뿐이며, 진짜 ‘나’는 여기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나는 ‘나’라는 느낌이요, 자아감이다. 
이때 ‘나’가 있고, 또 역할이나 몸이나 생각 등의 동일시 형태가 따로 있다. 
이것이 동일시에서 벗어난 상태, 분리된 상태이다. 

 

그런데, 많은 생각과 분리되기 위해서, 즉, 잡념을 떨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가 필요하다. 여러 생각을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처럼 관찰만 하라.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 뭘 하고 있나?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난 글을 읽고 있어” 하고 말할 수 있다. 이건 물론 사실이야. 그리고 이건 당신 생각이며 이 생각이 당신한테서 나온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렇게 해 보라. “난 글을 읽고 있어” 하고 다시 말하되, 이번엔 이것이 그냥 말이며 당신 마인드에 있는 생각이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라. 이 생각이 있고, 그걸 인식하는 당신이 있다. 이 경우, 같은 생각이 이번엔 당신한테서 나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생각과 분리된 것이다

 

자기 생각과의 분리가 언제 어디서 유익할 수 있는지 아나? 사람들과 대화에서, 특히 논쟁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태백산 밑에 ‘미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는지를 두고 당신이 친구와 갑론을박한다고 치자. 당신은 태백산에 갔다가 그 카페에 들렀기 때문에 그게 있다고 말한다. 한데 친구는 자기가 그 지역에 있는 카페를 다 다녀 봤지만 그런 간판은 못 봤기 때문에 그런 카페는 없다고 말한다. 

당신이 그 카페가 거기 있다고 말할 때, 당신은 자기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이 생각과 동일시될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당신이 틀렸으며 당신은 그 지역을 전혀 모른다’고 말한다면, 이 말에 당신은 상처를 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 당신 생각을 부정하는 것은 당신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당신이 그 생각과 동일시됐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하지만 그건 당신 마인드에 있는 하나의 생각일 뿐임을 관찰한다면…

당신은 그 생각과 분리된다.

더욱이, 생각이 나타나는 순간에 그것과 분리된다.

 

당신의 어떤 생각이 있고, 또 자아감으로서의 당신이 있다.

당신이 틀렸다’고 하는 친구의 말이 이젠 당신 자체가 아니라 당신의 생각만 건드릴 것이다. 그러면 당신도 친구 말에 상처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이건 누군가가 당신 코트를 칼로 찢은 것과 비슷하다. 이때 당신이 상처 입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칼이 당신 피부를 자른다면, 아프겠지.

 

당신의 생각은 당신이 걸친 외투 같은 것이라고 상상하라.

당신 자체는 아니다.

그렇게 여기면, 아픔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어떤 생각이 검증된 게 아니며 불쾌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궁리한 것일 때, 그런 생각과 분리는 아주 유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 여자 친구가 사전에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 어디선가 놀고 있다고 치자. 게다가 그녀가 어떤 남자와 함께 있는 걸 봤다고 누군가 알려줬다. 당신 상상은 그녀가 배신하는 장면을 금방 그려낸다. 그래서 “지금 다른 남자와 노닥거리고 있는 게 분명해!” 하고 혼자 말한다. 

 

만약 그런 생각을 믿으면서 그 생각과 동일시된다면, 강한 질투심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서 불쾌해짐을 인식한다면, 당신은 이것이 한낱 생각일 뿐이며 여자 친구가 배신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 당신은 자신의 생각과 분리되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믿는 대신 정신을 차리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리라. 전화를 걸어 어떤 일인지 알아내리라. 알고 보니, 당신 여자 친구와 함께 있던 젊은 남자는 그녀의 오빠였더라. 

 

이 정보와 새로운 생각이 당신 감정 상태를 순식간에 바꿔 놓음에 주목하라.

그 이전에는 화가 잔뜩 났었는데, 그다음에 화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것이 생각의 진정한 힘이다! 특히 당신이 동일시된 생각의 힘이 그러하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당신에게 가능한 상태가 두 가지 있다. 

동일시와 분리. 

 

전자의 경우, 당신은 어떤 생각이나 역할, 물질적 형태와 동일시됐음을 깨닫지 못한다.

후자의 경우, 당신이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고 인식한다. 혹은, 당신이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고 안다. 혹은, 자신의 다른 어떤 발현을 인식한다. 이때 자신의 현존 의식과 자아감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또 동일시 상태에서는 자신의 발현을 통제할 수 없으며 분리 상태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따라서 많은 영적 멘토들은 의식 상태에 현존하는 것이…
즉, 자신의 어떤 발현을 관찰하고 그것과 별개의 현상으로 자아감을 관찰하면서 분리 상태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것만 제대로 해도 숱한 불필요한 불쾌한 일을 충분히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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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 4부. 나는 누구인가? > ... ) 

  17. 동일시(Identification)의 영향 (1)  

 

실제로 우리가 아닌 무엇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기본 유형을 앞에서 몇 가지 살펴봤다

“나는 걷고 있어”, “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난 생각해” 하고 말할 때,

<나>라는 느낌이 (자아감이) 추상적인 이미지나 느낌, 역할, 생각, 감정 등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the influence of identification

 

이 자아감이 어떤 유형과 동일시되지 않을 때, 그건 <나>라는 순수한 자아감으로 남는다. 

우리가 자신을 어떤 유형과 동일시할 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이름과 동일시는 아마도 자기 이름이나 가문을 자랑스레 여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그리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동일시의 영향은 잠시 놔두자. 다른 더 중요한 유형과의 동일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직업과 동일시를 먼저 본다. 

예를 들어 당신이 경찰서장으로 일한다면, 자신의 비교적 높은 지위와 그 위치가 주는 측면을 크게 평가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자신을 그냥 사람이 아니라 경찰서장으로 여길 것이다. 

“나는 경찰서장으로 일해” 하고 말하는 것과 
“나는 이 지역의 경찰서장이야” 하고 말하는 것은 
차이가 상당히 크다.

 

전자의 경우 당신은 경찰서장이 단지 당신의 직업일 뿐이며 당신이 수행하는 일로 간주한다. 

후자의 경우 당신은 자신을 경찰서장의 직위와 동일시한다. 

전자의 경우, 어떤 사유로든 직위에서 물러나거나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을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대한다 해도, 당신은 크게 괘념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직업이 주는 지위와 권력과 경제적 이점 등과 동일시했다면, 그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사람들이 썩 존중하지 않는다 싶을 때 당신은 크게 상처를 받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인가와 동일시된다면, 이 ‘무엇’에 해를 끼치거나 위협이 되는 것에 강한 두려움을 품고 저항한다는 점이다.

이건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의 타고난 반사 작용이 그렇게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다시 살펴보자.

당신은 자신을 경찰서장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나는 경찰서장이야” 하고 말한다. 이제 당신이 경찰서장 직위에서 밀려난다. 이건 본질적으로 당신 직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요 나아가 수십 년 경찰 생활의 파멸을 뜻할 수도 있다. 

한데 당신이 그 직무와 또 거기서 나오는 지위며 권력이며 보수 등과 동일시된 만큼, 이 위협을 당신은 자신을 겨냥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당신이 자신과 동일시한 직위에서 물러나면서, 사실상 당신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당신의 마인드와 몸은 바로 그렇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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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까지 당신은 한 지역의 경찰서장이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이전까지는 자신을 중요하고 존중받고 물질적으로 모자라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젠 그걸 다 잃었다. 당연히 자신이 파멸된다고 느낄 것이다. 한데 사람이 파멸될 때, 그는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고 거기에 최대한 저항한다. 자신의 직위를 자신과 동일시하다가 그걸 잃은 사람은 그렇게 처신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경찰서장이 아니라 단지 그 직무를 맡고 있는 것임을 아는 사람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런 사람은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한 게 없으며 이 직무가 단지 한시적이라는 것도 잘 이해한다. 
이런 경우, 앞에서 말했듯이, 동일시가 일어나지 않으며,
직위 해제나 면직 따위를 좀 곤혹스럽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사실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자신의 제법 높은 지위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상당히 깊게 발달해야 하며, 동일시가 무엇이며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 

 

이제 자신을 자기 몸과 동일시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보자. 

 

자기 몸과의 동일시. 거울 들여다보면서 뚱뚱하다고 여기는 여인

 

당신이 자기 몸을 자신이라고 간주할 때, 몸과 관련돼 일어나는 일이며 변화가 당신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화, 부상, 아름다움의 상실, 비만이나 비쩍 마름, 신체의 불균형 등이 전부 아주 부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또 아름다운 외모와 균형 있는 신체, 매끈한 몸매, 젊음 등이 우리의 자부심이 되며, 그런 것과 동일시되기가 아주 쉽다.

 

당신이 자신의 미모나 젊음과 동일시된다면, 어떤 이유로든 그것이 사라질 때 당신에겐 극도의 불쾌한 상태가 야기되며 심한 경우 우울증까지 나타날 것이다. 그 이유는 똑같다. 신체 노화를 당신 마인드가 당신 자체의 점진적인 파괴와 같은 것으로 보겠기에 그렇다. 앞에서 말한 대로, 자기 자신을 자기 몸이라 간주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직시하자. 

당신의 자아감이나 자기인식이 당신 몸의 변화와 더불어 어떻게든 달라졌나? 

다시 말하건대, 여기서 자기인식은 자기평가가 아니라 ‘나’라는 느낌을 뜻한다. 

당신의 <나> 느낌은 당신 몸 상태에 좌우되지 않는다.
질병 상태조차도 그 느낌을 건드리지 못한다. 몸이 좀 안 좋다고 느끼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당신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유년기에도 노년기에도 우리는 우리 본연의 자신 그대로이다.
이 때문에 노인들이 젊었을 때와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단지, 몸이 이젠 닳고 노화됐을 뿐이지. 

 

성별과 (gender와) 동일시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당신이 자신을 진짜 사나이라고 여기는 데 익숙하다면, 당신한테서 그런 이미지를 빼앗으려는 시도는 전부 강한 두려움과 분노를 야기할 것이다. 남자라고 여기는 기준에는 성적인 특징뿐 아니라 일정한 행동도 들어간다. 예를 들어, 남자들 무리에서 당신이 사나이라면 술 마실 줄 알고 싸움질도 사양하지 않고 여자도 자빠뜨릴 줄 알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다. 그런 면을 다 갖추고 있다면, 비로소 사나이가 된다. 

하지만 어쩌다가 위궤양이 생겨서 예전처럼 호탕하게 술을 마실 수 없게 됐다. 이제 남자라는 이미지가 좀 흔들린다. 당신은 아직 남자이긴 하지만 예전과 같은 이미지의 사나이는 못 된다. 그러고 나서 결혼하게 됐다. 이제 당신이 무슨 남자란 말인가? 아내 엉덩이에 깔린 신세가 됐는데! 그건 이미 사나이가 아니다. 이제 자신이 남자라는 느낌이 크게 공격을 받는다. 


이런 일은 당신에게 진짜 남자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가 있고 그것과 동일시됐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 이미지와의 동일시뿐 아니라, 남자들 사이에서 존중받음이나 의리나 젊은 여성한테 사랑받음 것처럼 동일시에서 얻는 이점과도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남자라는 이미지에 그렇게 집착한다면, 당신을 조종하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이제 당신에게 뭔가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 넌 남자잖아. 사나이가 뭐 그래.” 

혹은 여성은 당신을 이렇게 조종할 수 있다. 

“당신이 진짜 남자라면 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줄 텐데.” 

그리고 당신은 남자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그들 말대로 끌리게 된다. 

이건 다 당신이 자신을 남자라는 이미지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여성들 경우에도 비슷하다.

젊은 여자가 ‘여자다운’ 여성이라는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면, 그 이미지가 공격받을 때 괴로움이 클 것이다. 

“아직도 사귀는 남자가 없어?!”, 

“넌 이 원피스를 사흘째 입고 다니는구나!”, 

“얘, 넌 뚱뚱해졌어!” 등등 여자 친구가 별생각 없이 하는 말에 심하게 상처받기 쉽다. 

그건 다 자신을 여성이라는 이미지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보이는 반응, 진짜 남자나 진짜 여자에 대한 그들의 관념은 당신 본연의 모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당신을 계속 칭찬하거나, 혹은 그들 보기에 당신이 그리 남자답지 못하거나 여자답지 못하다면 계속 흠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들에 대한 당신 반응은 남자나 여자에 대한 이미지에 당신이 얼마나 동일시되는지에 달려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런 말에 당신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당신을 조종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에 당신은 전혀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당신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당신 본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남녀 이미지에 당신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데 이건 당신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일 뿐이다

 

( 자기 생각이나 감정과 동일시하면 어떻게 되나?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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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4부. 나는 누구인가? > ... )

  16.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3)  

 

(계속)

우리가 우리 몸이 아니고 우리 몸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런 몇 가지 실험에서 보고 알 수 있다. 

 

첫 번째 실험은 한 사람에게 세 번째 손이 있다는 환상이나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피험자를 탁자 앞에 앉혔다. 이때 그의 두 손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오른손 곁에 그 손과 빛깔이며 형태, 크기가 아주 흡사한 모형 손을 놓았다. 그다음에 실험자가 이 사람 손의 한 부위와 모형 손의 같은 부위를 동시에 브러시로 건드렸다. 몇 번을 그렇게 했다. 

 

사람에게 세 번째 손이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실험

(연구자들은 이 환상을 아주 실제처럼 만들었다. 

실험에 참여한 남자와 여자들 모두 그들의 모형 손에 브러시가 아니라 칼을 가져다 대자 

눈에 띄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걸 지켜보면서 피험자에게서는 자기 오른손을 점점 더 잘못 인식하게 됐다.

결국엔 두 개의 손 가운데 어떤 것이 자기 것인지 더이상 분간하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자기한테 오른손이 두 개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즉, 자기한테 손이 3개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이런 느낌은 뇌가 보는 정보를 느끼는 정보와 어떻게든 일치시키기 위해 뇌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실험은 인체 크기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느낌의 유발과 관련된다.

이를 위해 피험자 머리에 3차원 가상현실 헬멧을 씌워서, 마네킹 맞은편에 둔 카메라가 잡은 것을 피험자가 3차원 형태로 보게 했다. 카메라는 고개 숙여 자기 몸을 볼 때 보이는 마네킹 몸체를 보여주게끔 설치했다. 처음엔 피험자 몸 크기의 마네킹을 취하고 다음엔 더 작은 것, 그다음엔 더 큰 마네킹을 이용했다.

 

여러 크기의 마네킹을 이용하여 사람의 환상을 실험

(시각적 트릭과 촉각적 트릭의 결합이 이 실험 성공에 아주 중요하다. 

피험자의 눈으로 본 상황은 아래 제시했다) 

 

이때 실험자가 피험자와 마네킹의 발에서 같은 부위를 두 개의 막대기로 동시에 건드렸다.

피험자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몸을 보는 듯한 상태에서 카메라가 보여준 것을 관찰했다.

카메라에 나타난 장면은 이것이었다. 

 

시각적 트릭과 촉각적 트릭의 결합이 중요해

(시각적 트릭과 촉각적 트릭의 결합이 이 실험 성공에 아주 중요해.

 

그 결과 그의 몸이 다른 몸이 된 듯한 느낌이 생겼다.

피험자는 마네킹을 자기 몸처럼 느꼈다.

이 효과는, 위의 그림에서 보인 대로, 실험자가 인체와 마네킹의 같은 부위를 막대기로 건드림으로써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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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의 크기가 피험자의 몸 크기와 같을 때, 그 사람에겐 자기가 새로운 몸으로, 마네킹의 몸으로, 옮겨 간 듯한 느낌이 생겼다. 즉, 그는 점차 자신을 이 마네킹이라고 여기게 됐다. 이것은 몸이 대체된 환상이 커졌을 때 마네킹에 칼을 찌름으로써 확인됐다. 즉, 피험자가 이제 마네킹을 자기 몸이라 여기기 때문에, 그는 마네킹에 칼이 닿을 때 몸을 떨었다

 

마네킹에 칼자국을 내다

 

인체의 크기보다 더 크거나 작은 마네킹을 이용했을 때, 피험자는 자신을 실제 몸보다 더 크거나 작게 느꼈다.

엄밀히 말해, 어떤 크기의 마네킹을 실험에 이용했느냐에 따라 피험자에겐 실내와 사물들이 평소보다 더 크거나 작게 보였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겪은 것처럼 자기 몸이 커지거나 작아진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여러 크기의 마네킹 4개를 실험에 이용했다.

(실험에 마네킹 4개를 이용했다.) 

 

사람이 자기 몸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 (유체 이탈을 경험한 듯한) 실험도 진행됐다. (자세한 것은 따로 소개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는 것이 뇌의 작업 결과임을 다시금 증명한다.

뇌는 우리가 자기 몸 안에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보다시피, 뇌는 우리가 다른 몸 안에 있다는 느낌뿐 아니라 아예 몸에서 벗어난다는 환상을 만들 수도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몸 안에서 자신을 느낌은 (자아감은) 그런 환상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실재라는 환상에 관한 장에서, 당신 뇌를 다른 몸이 느끼는 것에 연결한 결과 당신이 그 다른 몸으로 옮겨 갔다는 느낌이 생긴 사례를 우리가 살펴봤다. 이건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장면이었다. 이 사례 또한 우리가 몸에 애착하는 것이 뇌가 만든 습관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해 주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이 물질적인 몸체로 느끼는 것은 뇌가 만드는 동일시이다. 
그리고… 이 동일시가 환상이나 착각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이 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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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나는 누구인가?  > ...)

 

  16.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1)  

 

 

이제 우리가 자신을 흔히 ‘누구’ 혹은 ‘무엇’으로 여기는지 살펴본다. 

차례로 보자. 

 

나는 누구인가?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기

 

1

 

당신 이름이 ‘철수’라고 한다면, “난 철수야” 하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부모가 처음에 다른 이름을, 예를 들어 영호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당신은 철수가 아닐 것이다. 이름이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부를 때 쓰는 단어일 뿐이다.

당신을 영호라 부른다 해서 당신의 자기인식이나 자아감이 과연 바뀔까?

아니다.

혹시 당신을 ‘항아리’라 부른다 해도 당신의 자아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있던 그대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음미해 보면, 당신 이름이 곧 당신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당신 이름을 부르면, 당신은 그 사람이 바로 당신에게 말하는 것임을 느낀다. 누군가가 당신을 향하면서 실수로 다른 이름으로 당신을 불렀다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겠지’ 하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향하면서 우리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의식에서는 자아감이 떠오르고, 그래서 우린 자신을 종종 이 단어와 혼동한다.

자신을 다른 무엇과 혼동하는 것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 부른다.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자기 이름과 동일시된 것이다. 

 

2

 

본연의 자신을 잃는 다음 방법은 살면서 자신을 어떤 역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은 자신을 엄마라고 부른다. “난 엄마야” 하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수행하는 엄마 역할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출산 전까지는 엄마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녀의 자아감이 출산을 전후하여 달라진 게 하나 없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하건대, 자아감은 우리가 ‘나’라는 단어를 말할 때 드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그 사람이 부모의 역할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다. 그저 출산 후 엄마라는 새 역할이 생겼을 뿐인데, 그녀가 자신을 그 역할과 동일시한 것이다. 

 

전형적인 (사회적) 역할로는 우리네 각자의 직업을 꼽을 수 있다.

만약 의사로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면 그는 “난 의사요” 하고 대답할 수 있다. 여기서도 엄마의 역할 경우와 같은 도식이 작용한다. 즉, 그는 그저 의사 역할을 해왔을 뿐이며, 어린 시절엔 의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나 유년기에나 그의 자아감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직업에 크게 회의를 느끼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지거나 ‘나에겐 의사 노릇이 어울리지 않나 봐’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자기 직업과의 동일시가 잘못된 것임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패배자야” 혹은 “나는 쿨해” 같은 형태의 동일시도 있다.

자신이 패배자라는 느낌은 사람이 해 온 역할의 하나이다.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어떤 역할을 할 때, 그 역할과 합쳐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면서 그것이 그의 거짓된 자아감일 뿐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난 패배자야” 혹은 “난 쿨해”, 둘 다 역할이다. 이건 다 실제 자아감에 해당하지 않는다. 

 

역할의 예를 더 들어보자.

“나는 사업가야”, “난 2급 정비사야”, “난 사장이야”, “난 아들이야”, “난 노숙자야”, “난 제주도민이야” 등이 다 역할의 일종이다. 

한데, 이런 생각이나 진술 역시 본연의 자신을 어떤 역할과 잘못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런 동일시에서 사람을 끌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예를 들어, ‘쿨한’ 사람에게

“넌 전혀 쿨하지 않으며, 그렇게 말하는 건 네 약점을 숨기기 위한 마스크일 뿐이야”

하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전혀 동의하지 않고 그 이미지를 끝까지 지키려 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동일시에서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그가 쿨하다면, 다른 이들이 그를 멋지게 보고 존중한다. 근데,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럼 그는 누구인가? 시시껄렁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누가 존중하겠어?

 

3

 

다음에, 사람들은 의식의 어떤 발현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야”,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이야” 등이 그렇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게 마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말한다. 이건 바로 내가 말하는 것이요, 이 생각은 내 생각인 것 같다. 머릿속 목소리와 강한 동일시가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종종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걸 우리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즉, 대화하면서 자각 상태를 켜거나 감득력을 가동하기만 하면…

당신이 말하는 생각과 단어들이 있고 또 그걸 다 알아차리는 당신이 있음을 당신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간단한 실험 하나. 

“난 초밥을 좋아해” 하고 속으로 말하거나 중얼거려 보라.

어떤가, 당신한테 생각이 나타나서 그것을 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이때 생각이 있고, 또 그 생각을 보고 듣는 당신이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초밥을 정말 좋아하며 친구나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이걸 바로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유의하라. 

무슨 차이가 있냐고? 

전자의 경우 당신은 자기 생각과 동일시되지 않았고, 후자에서는 동일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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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다.

우리가 화난 상태에 있을 때, 이건 우리가 화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분노의 감정과 합쳐져서 자기 자신을 분노처럼 드러낸다.

그러나 화를 내는 동안 자각 상태를 켜거나 감득력을 가동하기만 하면, 당신이 곧 분노는 (분노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것을 (분노를) 당신은 당신의 여러 발현 가운데 하나로서 관찰하기만 할 뿐이다. 

 

실제로, 자각 상태를 가동할 때, 당신의 동일시가 그 자각 상태로 옮겨가고, 그래서 생각이나 감정과의 동일시에서 멀어진다.

‘자각 상태를 켠다/가동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자각이란

당신이 ‘지금 여기’ 있으면서 지금 당신과 당신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상태, 감각 등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각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

그냥 망각 (혹은, 무자각) 상태에 있는 듯한 경우가 많다. 감정에 압도될 때 이런 일이 특히 자주 일어난다.

예를 들어, 아이가 귀한 그릇을 떨어뜨려 깨졌을 때, 당신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아이한테 소리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퍼뜩 깨닫고 정신이 들어서, 당신이 지금 화를 내고 아이한테 소리치고 있으며 아이가 겁먹은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이것이 당신을 금방 식게 한다. 

당신 자신의 분노와 (동일시가 아니라!) 분리된 것이다. 

 

4

 

그다음에 자주 나타나는 동일시하기는 자신을 어떤 추상적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난 영혼이야”, “난 우주정신이야”, “난 사람이야”, “난 호모사피엔스야” 등이 그것이다. 

영혼을 보거나 느낀 사람이 있나?

영혼은 무엇인가?

다들 나름대로 해석한다. 어떻든 영혼은 추상적인 이미지다. 혹자가 “나는 영혼이야” 하고 말할 때, 그건 필경 누군가가 그에게 그런 말을 하고 그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임이 분명하다. 

 

사실, ‘영혼 soul’이란 개념은 그리스도교에서 우리한테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육신과 영혼으로 나누어 이 개념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다. 지구상에 기독교가 없었다면, 영혼이란 개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혼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결국, 영혼이 무엇인지 알든 모르든 당신의 자아감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알고 보니, 혹자가 자기는 영혼이라고 말할 때, 그는 자신을 자기가 이 용어에 집어넣은 어떤 추상적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주정신이나 호모사피엔스하고 동일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람이야” 하고 말할 때의 동일시를 규명하기가 좀 어렵다.

우리가 사람인 건 당연해 보여. 왜냐면 당신과 나를 포함해 우리는 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것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자.

‘사람’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사회가 우리한테 가르친 추상적 이미지가 아닐까?

그러면, 사회는 ‘사람’이란 단어로 무엇을 의미하나?

대략 다음과 같이 보이고 옷을 입고 어떤 언어로 서로 얘기하는 생물을 사람이라 부른다.

유년기부터 우리는 “그는 사람이야” 하는 말을 들었다. 똑똑한 어른들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나. 생각도 않고 믿어 버렸다. 게다가 알고 보니, 우리 몸이 사람의 몸과 비슷하고 우리가 말을 하더라. 그래서 나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여러 징조를 지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남자와 여자, 벌거벗은 모습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자아감으로 되돌아가자.

이 느낌에 인간과 관련된 뭔가가 과연 있나?

이 자아감은 ‘사람’이라는 추상적 이미지가 아니야. 이건 구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이다. 내 몸은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사람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나의 자아감으로서의 ‘나’가 있고, 내가 보고 느끼는 내 몸이 있으니까. 

 

‘사람’이 추상적이며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임을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옛날 옛적에 ‘사람’이란 단어를 궁리해 내고, 앞의 그림처럼 보이는 남자와 여자를 전부 이 단어로 불렀다. 

한데 이 단어를 통용시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던가. ‘여자’라 불리는 별개의 종이 있고, ‘남자’라 불리는 별개의 종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이것이 진실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왜냐면 여성과 남성의 유기체와 심리 구조는 상당히 다르니까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묶어서 ‘사람’이라 불렀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랬다면 ‘사람’이란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종으로서 남자가 있고 또 별개로 여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나는 사람이야” 대신에 “나는 남자야, 여자야” 하고 말할 수 있었겠지. 

 

이건 다 ‘사람’이란 개념이 인위적인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추상적 이미지이며,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일 수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는 우리 각자를 가리키는 데 ‘사람’이란 단어를 쓸 것이다. 편의상 그렇다. 우리 언어에서 이 단어가 확고하게 뿌리 내렸으니까. 

 

(이제 “나는 남자야”, “나는 여자야”라는 동일시를 분석해 보자.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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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의식의 진화

(23) 무자각의 수준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7-2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무자각 상태에서 벗어나기 12

기쁨과 슬픔 - 칼릴 지브란

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깨달음 추구하는 사람들

내면의 빛

(3) 깨달음이란?

사람, 흥미로운 자료 40가지

10과. 우리의 감정 항아리 (35)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징표 11가지 (1)

버지니아 사티어. 자기가치, 자기평가

에고가 아니라 '참된 나'로 관계를 맺기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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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나는 누구인가?

 

우리네 인식의 특성이며 마인드의 작업과 관련된 자료를 아주 많이 알아봤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기능하기 위해 마인드가 만들어 내는 주된 환상들을 살펴봤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아직 다루지 않았다. 즉,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우리 뇌는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다 하나? 

누가 감정을 느끼고 자기 생각을 인식하나? 

모든 환상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나?

그 모든 환상을 인식하는 것은 누구인가? 

 

뇌 모델을 들여다보는 여자

 

우리 대화의 주요 주제에 이르렀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 알아보기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분명히 인식한다.

“내가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그러나 당신이 있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사람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영혼인가? 

왜 굳이 이런 질문들을 던지나? 우리가 누구인지는 이미 명확하지 않은가? 

만약 명확하지 않다면, ‘실제로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서 좋은 게 무엇인가? 

이건 다 자연스러운 질문이고, 우리는 거기에 차례로 대답할 것이다. 

 


 

  15. 당신은 당신 세계 안에 있다  

 

자,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이 왜 나오나? 

우리네 행동이 다 어떻게든 우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왜냐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영위하는 삶은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 이웃의 삶이 아니라. 

왜냐하면, 당신은 자기 삶을 잘 관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니까.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 잘 모르는 사람을 모욕하거나 함부로 대한다면, 거기에 당신은 거의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니까. 설령 반응한다 해도 잠깐 살짝 화가 나겠지. 한데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렇게 한다면, 당신 반응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지키려 들 것이다. 

즉, 대응하여 욕을 퍼붓거나, 아니면 말조심하라고 점잖게 주의 주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상황을 피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 그것은 당신에게 큰 상처를 주고, 당신은 분노나 두려움을 맛볼 것이다.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과 당신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 당신 반응이 왜 그리 다른가?

왜냐하면,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누군가가 모욕하는 것은 당신을 거의 건드리지 않겠지만, 당신을 모욕한다면 그건 당신에 대한 직접 공격이며, 따라서 당신은 자연스레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를 옹호하나? 자신을? 그렇다면, 이 ‘자신’은 또 누구인가? 

 

내가 만약 내 주머니에서 5만 원 지폐를 꺼내 당신 앞에서 찢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당신의 5만 원 지폐를 잠깐 보여 달라고 한 뒤 그걸 찢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나의 행동은 똑같지만, 내 돈인 경우와 당신 돈인 경우에 당신 반응은 분명 다를 것이다. 당신 돈을 찢으면 화를 내겠지만, 내 돈을 찢으면 당신은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건 또 왜 그런가?

왜냐하면, 내 돈은 당신 것이 아니지만 당신 지폐는 당신 것이니까. 당연한 소린가? 이 지폐가 당신 것이라는 사실이 당신에게 그런 반응을 일으켰다.  

5만 원 지폐. 나의 것과 남의 것.

돈을 포함해 뭔가를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의 자아감이 연루돼 있음을 암시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누가 5만 원 권을 소유하나? 당신이?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지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직장 상사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직원을 칭찬했다면, 당신 기분이 어떨까? 부러움이나 질투? 혹은, 아무렇지도 않다? 상사가 직원들 다 모인 자리에서 당신을 칭찬하며 당신 같은 직원이 필요하고 당신은 정말 소중한 인재라고 말한다면, 그때 당신 느낌은 어떨까? 자기 자신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자랑스레 여기고 당신의 자존감이 커지겠지. 

만약 그 상사가 다음 날 당신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고 나무란다면, 당신은 당혹스럽고 화가 나겠지.

칭찬과 비난이 왜 당신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나?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당신과 관련되고 당신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당신은 잘하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한다.

칭찬과 비난이 누구와 관련되나? 당신과?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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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에게 얼마 전에 획기적인 비듬 치료제가 개발됐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제법 흥미를 보일 것이다. 당신 숙부가 당신에게 10억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를 것이다. 한데 이 유산을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모르는 다른 친척이 받았다면, 당신에겐 어떤 느낌이 들까? 설마 기쁨 같은 것을 느낄 리는 거의 없다.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에서 울릉도 출신의 아무개 여성이 우승했다면, 당신에겐 어떤가? 별다른 느낌이 없을 것이다. 그 대회에서 당신 딸이 우승했다면, 딸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당신과 관계되는 정보는 전부 그렇지 않은 것보다 어떤 식으로든 당신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헤드폰 쓰고 앉아 있는 젊은이 주변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보라!

세상은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만에 하나, 당신이 당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니고 가족이나 사업, 조국이나 자녀를 당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곧바로 이런 질문을 건네겠다.

“그건 누구의 가족이고 누구의 사업이고 누구의 조국이고 누구의 자녀들인가?”

바로 당신 아닌가!

남의 나라, 남의 가족, 남의 자녀들을 두고 당신이 크게 염려할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동정심에서 그럴 뿐이다.

당신이 무엇이나 누군가를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둔다면, 그건 단지 당신이 거기에 강하게 애착을 갖고 자신의 행복을 그의 안녕에 좌우되게 만들었기 때문일 뿐이다. 다시 말하건대, 당신이 없으면 안 된다. 

 

당신이다! 이 삶을 사는 사람은 당신이다.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당신이야. 당신이 고통받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해.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고 기뻐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당신이다. 꿈도 당신이 꾼다. 삶이 당신 것이다. 

당신 삶에서 당신이 없는 순간을 하나라도 꼽아 보라.

어찌어찌 궁리하여 그런 순간을 보여준다면, 마지막으로

“그것은 누구의 의식에서 일어나나?”

하는 질문을 던진다.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를 다 지각할 수 있게 하는 의식은 당신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인가?

누구의 의식인가? 

 

당신이 보고 느끼는 세계는 전부 당신 세계이다. 당신이 의식하고, 당신이 보고 듣고 알고 기억하는 것은 전부 당신의 주관적인 세계임을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주관적 세계가 있고, 거기에 당신은 접근할 수 없다.

이해가 되나? 언젠가 인식하고 알았던 것이 죄다 당신의 주관적 세계 안에 있다.

오로지 당신만이 당신의 개인적인 주관적 세계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모든 게 당신에게 달려 있고 당신이 당신 삶의 중심이라면, 당신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그러니, 당신은 누구인가?

아마 이런 식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철수야”, “나는 사람이야”, “난 엄마야”, “난 여자야”, “나는 영혼이야”, “난 몸이야”, “난 목수야”, “난 과학자야”, “난 사업가야”, “나는 인격이야”, “나는 내 생각이야”, “나는 내 느낌이야”, “난 딸이야”, “난 호모사피엔스야”, 등등. 

 

물론 이것이 다 당신에게 해당하고 적용될 수 있지만, 우린 다른 뭔가를 찾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난 널 사랑해” 하고 말하는데, 이때의 <나>는 누구인가? 

“난 뭘 좀 먹고 싶어” 하고 말할 때, 먹기 원하는 ‘나’에 대한 느낌 같은 것이 있다. 

“난 앞에 놓인 이 텍스트를 보고 있어” 하고 말할 때, 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누가 보는 건가? 

“나에겐 친구들이 있어” 하고 말할 때, 당신이 의미하는 <나>는 누구인가? 

 

저런 말들을 할 때, 우리에겐 ‘나’라는 어떤 느낌이, 자아감이, 있다.

더 이해되게끔, 자신을 염두에 두면서 ‘나, 나, 나, …’를 그냥 말해 보라.

무슨 느낌이 드나? 

뭔가를 느끼고 원하고 실행하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당신 자신에 대한 어떤 느낌이 있다.

자신에 대한 이런 느낌을 우리는 자아감 혹은 ‘나’ 느낌이라 부를 것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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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 미혹 > ... )

  14-2. 세계를 실재라 여기는 환상  

 

좀 더 연습해 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착상이나 계획이 있나?

걸림돌이 무엇인지 아나?

그 착상이나 계획이 당신에겐 존재하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없다. 

당신한테 치통이 있나? (이가 아프다고 상상하자).

대답은 마찬가지야. 치통이 있긴 하지만, 당신한테만 있다.

그런데 의사들이 ‘환상통’이란 용어를 쓴다. 통증의 생리적 원인은 없는데 사람이 통증을 느끼는 것. 그런 통증을 의사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장치를 통한 검사와 분석만 믿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느낌을 인정하지만, 진단에 보충 정보로만 인정한다. 

 

우주가 존재하나?

이건 트릭이 있는 질문이다. 

첫째, 우주란 당신이 어떤 의미를 집어넣는 단어이다.

1) 누군가는 우주를 삼라만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2) 누군가는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돼 계속 팽창하는 무한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3) 혹자에게 우주는 신이 이레 동안 창조한 피조물이고, 

4) 다른 혹자에게 우주는 그저 시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이렇게 ‘우주’는 당신 마인드에서 이미지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오로지 당신에게만 존재한다. 당신이 나한테 우주가 신의 피조물이라고 오랜 시간 설득하고 증명할 수 있지만, 나에게 우주에 대한 다른 관념이 있다면 당신은 자기 이미지를 나에게 강요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식에서 주된 오류로 다시 돌아왔다. 즉,

1) 세상에 대한 자기 생각이 절대적 의미에서 참이라고 믿음과

2)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혼란

우리네 인간이 범하는 주된 잘못이다. 

 

이제 보충 질문을 하나 다뤄본다. 

당신이 안 보는 물건이나 대상이 있나?

예를 들어, 시내를 걸으면서 저 앞에 건물과 자동차, 사람들이 보인다.

등 뒤에는 무엇이 있나? 

 

시내 거리를 걷는 사람의 뒷모습

이런 경우 사람은 흔히 기억을 얼른 작동하여 자기 뒤에 있는 것을 떠올린다.
우리는 등 뒤에 있는 물체의 그림을 마인드에서 생생하게 그리는데, 이것이
단지 마인드에 있는 그림이요 내면세계의 이미지일 뿐임을 잊는다.
이 내면 이미지들을 우리는 별생각 없이 실재와 (현실과) 혼동한다

 

세상 그림을 기억의 정보로 자동 보충하는 것은 사실 우리 마인드의 놀라운 능력이다. 이 경우, 세상을 우리가 사는 거대한 공간으로 여기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에 살며 어떤 거리가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 우리는 주변 세계를 눈앞에 보는 것보다 더 큰 뭔가로 본다. 

예를 들어, 당신이 자기 방에 앉아 있다. 이 방은 당신 아파트 안에 있고, 아파트는 어떤 거리나 구역에 있고, 이 거리는 도시에 있고, 이 도시는 나라 안에 있고, 이 모든 것이 지구상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존재하나?
그렇다,
하지만 객관적 실재가 (현실이) 아니라, 우리 마인드의 이미지로만, 당신의 주관적 세계로만 존재한다. 

 

당신이 뒤를 돌아보지 않을 때 “등 뒤에 뭔가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로서는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당신이 뭔가를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있다’ 없다‘ ’존재하다‘라는 단어를 현명하게 쓸 줄 알기에, 저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하자. 

 

우리는 외부세계의 특정 물체를 우리 마인드가 만드는 외부 이미지로 보는 데 익숙해졌다.

예를 들어 자기 손을 본다면, 그건 당신이 보는 특정 물체의 형태로 당신 의식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 손에는 나름의 형태와 색깔이 있다. 이것은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손의 외부 이미지이다. 

만약 손을 등 뒤로 감추면 직접 볼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외부세계의 특정 물체의 외부 이미지로서 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는 것뿐인데, 기억에서 복원한 손 이미지는 이미 당신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마인드가 만든 내부 이미지일 것이다. 당신이 익숙하게 보던 손 자체는 사라질 것이다. 

 

사실, 이건 ‘사람 없는 숲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있을까’ 하는 물음과 비슷하다.

우린 이 물음을 앞에서 이미 살펴보고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뭔가를 누군가가 관찰하지 않는 한 그것은 없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있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세계의 실재에 대한 이 모든 환상은 이미 여러 철학자와 공상과학소설 작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묘사된 것이다.

예를 들어, 호평을 받은 영화 <매트릭스>가 바로 그렇다. 주인공 네오는 자기가 살고 있으며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익숙한 세계가 사실은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진 컴퓨터 시뮬레이션임을 알게 된다. 현대의 많은 영성 대가들이 깨달음의 아주 좋은 비유로 영화 <매트릭스>를 권한다. 

이 비유는 훌륭한데, 정확하진 않다.

주인공이 그의 세계가 환상임을 발견하고서 그와 비슷한 다른 세계로 들어서지 않고 ‘무’에 있게 됐다면, 깨달음의 더 정확한 은유였을 것이다.

 

깨달음의 대가들이 이에 관해 그렇게 말들 한다.

우리 세계는 단지 환상이고 꿈일 뿐이다. 이건 다 꿈과 비슷하다고 말들 한다.

꿈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잠을 깰 때, 이것이 단지 관념이었을 뿐임을 발견한다. 우린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잠을 깨고 나서는 꿈에서 일어난 것이 전부 진짜였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꿈속에 있는 동안에는 그게 현실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깨달음 얻은 이들은 깨달음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고 입을 모은다.

깨어난 뒤, 그들은 보통 사람이 진짜라고 여기는 것이 전부 환상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이걸 마야라고 부른다.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힘이요 환상의 산물인 마야(maya)는 우리 각자의 주관적인 세계이다. 이건 비현실적임을 우리가 알아봤다. 우리 의식과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우리를 위해 현실의 모델을 만드는 마인드의 작업이 전부 마야이다. 마야는 진짜 실재를 우리한테 숨긴다. 오로지 깨어난 이들과 마야의 최면에서 빠져나온 이들만이 진짜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보통 사람들은 이걸 알 수 없어, 왜냐하면 마야의 경계를 넘어선 상태를 아무리 상상해도, 이건 또 다른 내면 이미지일 뿐일 테니까, 즉 마야의 연속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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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 익숙한 세계의 환상적 속성에 대한 또 다른 좋은 은유는 아바타이다.

아바타는 힌두교 전통에서 지상에 나타난 신의 화신이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 이해가 더 잘 될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캡슐에 집어넣는데, 이 캡슐이 그의 인식을 ‘아바타’라 불리는 어떤 생명체의 인식과 연결한다. 이 ‘아바타’ 생명체는 행성에 서식하는 나비(na’vi)라는 생명체들을 인공적으로 키운 몸체이다. 

주인공이 아바타에 연결되면, 그는 이 아바타라는 생명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그가 아바타 속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인간의 의식이 이 생명체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다. 아바타 몸체 안에 있는 동안 주인공은 그것이 모조품에 불과하며 자신은 그것에 센서가 연결돼 지금 캡슐에 누워 있는 인간임을 점차 잊는다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아름다움은 당신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 금방 당신이 설명한 것을 난 자연에 둘러싸여 혼자 있을 때 가끔 순간적으로나마 경험한다. = 바로 그거야. (일본 선의 영향을 받은 서구에서) 선

mirchimin.tistory.com

 

고대 힌두교 전통에서는 인간이 다 하나님이라고, 인간의 몸체를 통해 이 세상에서 놀기로 작정한 하나님이라고 여겼다. 이 놀이를 전통 힌두교에서는 <릴라>라고 부른다.

우리 몸은… 유일한 의식(consciousness)인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는 데 거치는 것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에게, 유일한 의식에게, 아바타 같은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에서 한 토막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은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기를 거의 그만두고, 자기가 들어앉은 몸체인 나비라는 존재로 자신을 더 많이 보게 됐다.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도 우리의 몸이요 아바타에 들어앉은 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잊었다.
우리가 바로 유일한 의식이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이 인체는 주변 세계에 대해 아주 강하고 진짜 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준다.

이 아바타 몸이 없는 게 어떤 것인지를 우린 잊어 왔다. 

깨달음이란…
‘나는 실제로, 정말로, 진짜로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건 자신의 ‘아바타’와 잠시 떨어져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 세상에 환상적 속성이 강함에 대한 마지막 은유는… 3D 안경, 터치의 환상을 만드는 특수 장갑과 슈트, 컴퓨터가 만든 가상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다른 수단 등 특수 기기의 도움으로 현대 컴퓨터 기술이 만든 가상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이 세상에서, 그 안에서 오랫동안 놀면서 우리가 그저 놀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그리고 놀이에 완전히 빠진다. 그리고 우리가 그저 게이머라는 점을 잊는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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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  > ... )

 

  13. 자유의지라는 환상 (2)  

 

 

벤자민 리베트의 실험  

 

앞에서 우리가 거론한 것은 전부 주관적인 세계의 수준에서 자유의지가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에서 일어나는 여러 과정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것을 찾아내려 했다

이제 이 물음을 과학의 관점에서, 혹은 객관적 현실에 대한 설명에서 살펴보자. 

 

자유의지란 환상인가?

 

벤자민 리베트가 20세기 중반 한 실험에서 의식적인 결정과 이 결정에 관련된 뇌 활동의 관계가 시간상 어떤지 알아보려 했다.

실험의 골자는 이렇다. 

뇌의 여러 부위의 활동을 측정하는 감지기를 피험자에게 착용시켰다.

그리고 5, 10, 15, … 55, 60의 12개 숫자가 시계처럼 표시된 숫자판을 피험자 앞에 놓았다.

바늘이 보통 초침보다 25배쯤 빠른 속도로 숫자판을 회전했다.

피험자는 자기가 결정하는 순간 아무 때나 버튼을 누르고 바늘이 가리킨 숫자를 적으면 됐다.

이때 뇌파도가 기록됐다. 

결국, 뇌파도와 결정 내린 시간이라는 두 지표를 비교해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버튼을 누르겠다고 결정하기 0.5초쯤 전에 뇌 일정 부위에서 활동성이 높아진 것이 뇌파도에 기록됐다. 
뇌는 의식적인 결정이 나오기 전에 이미 활동이 증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먼저 뇌에서 활동성이 만들어지고, 그다음에 의식에서 사람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 동영상을 보라. 이 실험을 어떻게 실행하는지 알 수 있다.

원한다면, 비디오에서 숫자판의 회전 바늘을 가리킬 때, 어떤 순간을 택하고 그 순간에 바늘이 가리킬 시간을 기록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에 주목하라. 당신은 왜 다른 순간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을 선택하게 되는가? 

 

 

신경과학과 자유의지 - 리베트의 실험 (Neuroscience and Free Will) 

 

이 실험은 많은 과학도에게 자유의지의 존재에 관해 생각하게 했다.

알고 보니, 이런저런 행동을 하겠다고 결정 내리는 것은 뇌이고,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서 의식적인 결정이란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결과일 뿐이더라.

이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의식적인 결정 채택을 포함해 우리 주관적 세계가 드러내는 것은 전부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반영이 아니던가. 이 문제가 비록 더 복잡하긴 해도 말이다.

이것은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의 상호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이것을 지금은 건드리지 말자. 

 

모든 일은 그냥 일어난다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지 살펴보자.

누가 혹은 무엇이 우리 행동의 근원인가?

우리가 자기 행동의 주체가 아니라면, 이 행동을 무엇이 일으키나?

이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실험을 해 보자. 

눈을 감고 몇 분 동안 자신의 내면세계를 관찰하라. 

눈앞의 검은 화면을 보면서 뭔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라. 

어떤 목소리나 다른 음향이 들리나? 

내부 화면에 어떤 이미지들이 나타나나? 

당신 마인드가 당신에게 내면세계를 어떻게 만들어 주는지 관찰하라. 

 

그렇게 실험해 보면, 이제 이어지는 서술을 이해하기 쉽다.

그렇게 자기 내면세계를 제법 오랫동안 관찰할 때, 어떤 현실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소리 따위가 내부 화면에 거의 무질서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옆집 마당의 개 이미지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혹은 문득 직장 상사의 목소리를 듣거나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다.

아마도 어떤 복잡한 문양이나 생명체가 나타날 것이다.

그건 다 예측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눈을 뜬 상태에서 실험을 하나 더 하라. 

당신 의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당신의 주의가 어디로 쏠리는지,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 등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으라. 

당신 의식에서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고 기록하기만 하라. 

필요하면 머리와 눈을 움직일 수 있지만, 일어서거나 어디로든 가지는 말라. 

 

어떤가? 혼돈이 있지 않나?

관찰한 결과,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려고 뭔가 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생각이 저절로 나타난다.

갈망이 저절로 나타난다.

당신의 주의는 한 대상에서 다른 것으로 그렇게 건너뛴다.

이를테면 커다란 고함이 당신의 주의를 끌 수 있다. 정상적인 모드에서 주의는 (관심은, 마음속 눈길은)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그냥 건너뛸 것이다. 뭔가를 보면, 그것과 관련된 생각이 생기고, 그 생각에 이어지는 생각이 또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주의가 (눈길이) 티브이로 향했다.

그러면 ‘아, 자연 다큐를 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생길 수 있다. 지금 하는 연습을 그만두고 티브이를 켜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당신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한다. 당신 주의가 머릿속의 느낌으로 전환되고, 다음엔 벽 너머에서 나는 목소리로 옮겨가며, ‘옆집에서 또 싸우네’ 하는 생각이 금방 나타나는 식이다. 

 

모든 게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라.

당신이 과연 이 과정을 관리했을까? 다 저절로 일어났다.

때로는 연상에 의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예를 들어, 의자 등받이 곡선에 주의를 돌렸더니, 이건 여성의 멋진 몸매 곡선을 상기시키고, 다음에 머릿속에서 좋아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식이다. 주의가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한다. 연상도 저절로 생긴다. 연상을 당신이 선택하지 않는다. 모든 게 저절로 일어난다. 

 

내가 하려는 말이 그것이다.

일상에서 주의력과 욕망, 생각 등도 같은 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그건 어디서 생겼나? 몰라. 어쩌면 뭔가가 상기시켰거나 어쩌면 저절로 생겼을 수도 있다. 욕망이 생겨났고, 이에 관해 당신은 뭔가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앞에서 알아봤듯이, 이 선택 과정 역시 저절로 일어난다

당신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옆집 사람이 큰 소리로 당신에게 설탕이 있는지 물었다. 당신은 좋은 이웃답게 그에게 응답하는데, 이건 어른들한테서 배운 행동 프로그램의 하나에 따라 일어난다. 이웃과 좀 얘기 나눈 뒤 당신은 ‘설탕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상점으로 향해 나섰다. 가는 동안, 아침에 라디오에서 들은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선율은 저절로 나타났다. 당신이 불러들인 게 아니야. 게다가 그걸 쉽게 떨칠 수도 없다. 

 

모든 게 대개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다.

이것이 당신 마인드에서 선택 과정을 가동한다.

생각이나 갈망을 일으킬 수 있는 영향이 외부 환경에서 비롯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주의가 (관심이, 눈길이) 예쁜 꽃이나 아리따운 여성에게 끌렸다. 이제 당신 주의는 온통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회상과 생각과 욕망을 낳는다. 

 

온종일 자신을 관찰해 보라. 

무엇이 당신을 끌어들였는지, 무엇이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했는지 추적하라. 

지금 당장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다. 

당신 엉덩이는 무엇을 깔고 앉아 있나? 

당신은 지금 막 자기 엉덩이나 엉덩이가 걸친 것에 주의를 돌렸을 것이다. 

지금 막 무슨 일이 일어났나?

‘당신 엉덩이는 무엇 위에 있나?’ 하는 질문 형태의 외부 영향을 받아 당신은 내가 가리킨 곳으로 저절로 주의를 돌렸다. 

 

지금 당신의 주의는 무엇에 쏠려 있나? 왜? 

당신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여러 문장으로 당신 머릿속에 이미지와 장면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나? 안 그럴 수가 없다.

글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단어들의 의미를 재현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하면 당신 마인드에서 여러 장면이 저절로 나타난다.

이제, 이런 영향이 있다는 점을 내가 막 밝힘으로 인하여, 당신에겐 이에 관한 생각이나 느낌 혹은 다른 뭔가가 또 생길 수 있다.

 

이제 본질로 넘어가자. 

한동안 자신을 관찰하면, 모든 것이 마치 저절로 일어나는 듯함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삶이 당신을 거쳐 흐르며, 당신은 이 삶이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당신이 과정을 통제하려 들 수 있지만, 이 컨트롤 역시 당신을 거치는 삶의 흐름일 것이다. 삶은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 사물과 현상도 바로 그렇게 거쳐서 흐른다. 

그리고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은 전부 더 큰 그림의 한 부분이다. 당신 행동은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과정에 새겨져 있다. 모든 것이 그냥 일어난다. 일어나는 대로 그렇게 일어난다. 

이것이 삶의 흐름이다. 
이것이 삼라만상에 내재하는 삶의 흐름이다. 
꽃, 당신, 고양이, 티브이, 구름, 아내, 웅덩이에 있는 삶의 흐름이다. 
이 모든 것이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큰 그림이다. 

 

한데 당신은 무엇을 하나?

당신은 이것을 그저 관찰만 한다.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보고 보지 못하는 모든 것을 통해 일어나는 이 모든 삶의 흐름이 당신 안에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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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자 느낌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건 다 알겠어. 하지만 어떤 행동은 내가 한다는 느낌이 나에겐 강하거든. 모든 행동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닐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일부 행동은 나 자신이 한다는 느낌이 분명해.” 

맞는 말씀. 어떤 행동을 다른 누군가나 무엇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한다는 이 느낌을 우리는 ‘행위자 느낌’이라 부른다.

이건 아주 견고한 느낌이다.

이건 시간과 마찬가지로 환상이다. 그러나 역시 시간과 마찬가지로 아주 현실적이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음을 아는 것이 행위자 느낌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나?

아주 간단하다. 행위자 느낌이란 몸과 정신의 어떤 행동의 주체라는 특별한 느낌이고, 이 느낌은 우리가 세상과 서로 잘 작용할 수 있게끔 우리 마인드가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것은 전부 미리 정해져 있다. 한데 <행위자 느낌> 덕분에 우리가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에 관해 아주 좋은 예가 있다. 2014년 <로보캅> 영화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로보캅은 인간의 마인드를 기반으로 만든 로봇이다. 즉, 절반 사람이고 절반 로봇이다. 그의 행동 일부는 사람한테서, 다른 일부 행동은 로봇에게서 나온다. 즉, 컴퓨터로 프로그램돼 있다. 로보캅은 법을 준수하고 경찰로 일한다. 

 

개발자들은 로보캅의 행동에 그의 인간적인 부분이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게끔 해놓았다. 즉, 인간적인 면을 더 많거나 적게 작동하거나, 아예 꺼 버릴 수 있게 했다. 개발자들이 로보캅의 인간적인 부분이 작동을 중지하면, 그의 몸과 행동 전부를 그의 로봇 부분을 대표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제어했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로보캅의 인간적인 부분이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게 하려고, 자유의지의 환상이라는 기능을 만들었다.

그들은 사실상 기계에 ‘행위자 느낌’을 집어넣은 것이다.

내장된 컴퓨터가 생성하는 행동 프로그램을 로보캅의 로봇 부분이 실행하기 시작하면, 이것이 컴퓨터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라고 믿게 하는 신호가 로보캅의 인간적인 부분에 전달된다. 즉, 로보캅의 인간적인 부분이 보기에는 이 행동이 전부 자신의 것이라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실제로는 전부 컴퓨터가 수행하는 것인데. 

 

 

행위자 느낌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내가 뭔가를 한다는 느낌이 있으려면, 주변 세상과 구별된 개인으로서의 ‘나’가 있어야 한다.

세상과 별개의 존재로서 ‘나’라는 느낌이 나타나자, 이 몸체가 수행하는 행위를 나의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에고’를 다루는 대목에서 따로 살펴보겠다.

<에고>란 바로 세상과 별개의 존재로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한데,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은 환상이다.

이 환상이 자유의지라는 환상을 낳는다,

왜냐면 몸이며 정신과 함께 일어나는 행동을 에고가 사실상 제 것으로 삼으니까. 

앞에서 우리가 몇 번 확인했듯이, 우리 행동은 우리의 갈망에 따라 일어날 뿐 아니라 수많은 요소에도 기인하고 사실상 환경의 영향과 우리 정신의 작용에도 영향을 받는다.

한데, 자신을 이 행동들의 유일한 주체로 삼는 것이 바로 행위자 느낌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아함카라로 불린다. 

 

행위자 느낌이 왜 우리한테 부여됐나?

이 느낌은 우리가 자기 삶의 창조자라는 느낌을 준다. 내가 내 행동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껴야만 이 세상을 어떻게든 바꿀 수 있다. 또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난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이 자유의지의 느낌이 (행위자 느낌이) 우리를 창조자로 만든다.

세상에 자유로이 영향 미치고 자기 행동에 대해 세상의 반응을 얻으면서, 우리는 뭔가를 배우고 경험하고 세상을 안다. 이것이 삶이다. 

 

자유의지의 느낌과 함께 우리에겐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란 개념이 나타난다.

만약 내가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제 나는 내가 만든 삶에 책임이 있다. 이제 나는 기계 부품이 아니라 이 세상의 적극적인 기원이요 신과 더불어 우주의 창조자인 것이다. 

 

숙명론이나 예정론, 자유의지의 환상, 행위자 느낌 등은 다 게임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행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묘사돼 있다. 우리는 앞으로 빨리 돌려서 5분 뒤 그가 무엇을 할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볼 때는, 주인공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 같고, 어려운 상황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취할지 몰입하여 본다. 우리한테는 흥미롭다. 왜냐하면, 영화의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주인공의 행동으로 결정되는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하기 때문에 흥미롭다.

 

우리네 삶도 대략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주인공이 (당신이) 선택하고 줄거리를 발전시키는 영화처럼 말이다.

이야말로 흥미롭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나? 

 

행위자 느낌이나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고 이해하나?

우리의 선택이 다 미리 정해져 있다는 점을 알면,

한때 우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것을 두고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바라던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비난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듯 보이는 사람의 행동이 그가 익숙해진 행동 패턴과 그가 사는 형편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때, 그를 비난할 일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된다. 살면서 그가 하는 모든 선택과 그의 지금 행동과 그의 지금 상태는 전부 또 그의 행동 프로그램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 그의 선택은 전부 자동적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를 비난하나? 그는 달리 행동할 수 없었을 텐데

 

이와 관련해 아주 좋은 우화가 하나 있다. 

 

선의 수행자가 강에서 쪽배를 타고 명상하기로 했다.
그가 쪽배에 올라 강 뒤쪽 조용한 곳을 찾아 명상에 들어갔다.
이미 아주 평온한 상태에 이르렀을 즈음, 갑자기 다른 쪽배가 와서 부딪는 바람에 명상이 깨졌다.
수행자가 자기도 모르게 바짝 화가 났다. 

노여움에 정신이 나가 ‘누가 감히 방해하는 거야? 단단히 혼내야겠어!’ 하고 별렀다.
그리고 호통을 치려고 몸을 돌렸는데 부닥친 쪽배에는 아무도 없었다. 쪽배는 텅 비어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분노가 헛헛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퍼뜩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그에게 불안을 안긴 것은 쪽배가 아니라, 분노를 일으킨 자기 마인드의 자동 작용이었다

 

강변에 쪽배

 

실제로 이 빈 쪽배는 우리를 불안케 하는 타인의 비유이다. 
그것이 텅 비었다는 것은 이 쪽배가 삶의 흐름 이외에 그 무엇에도 통제되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쪽배를 몬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그를 비난하고 화를 내며 분개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 텅 빈 쪽배처럼 행동한다는 점을 깨닫는 즉시,
즉,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을 알게 되는 즉시…
우리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게 된다.
텅 빈 쪽배를 어떻게 비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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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하는, 

  과학 실험 세 가지  

 

20세기에 시행된 신경생물학 실험 몇 가지가

우리의 ‘나, 에고, 자아’와 관련돼 가장 미덥고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진실을 깨뜨린다. 

 

1. 자유의지란 없다

 

어떤 행동을 하기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훨씬 전에 뇌는 그 행동을 준비한다.
facet.pw

 

자유의지 혹은 내적 자유가 과연 존재하나?

풀어서 말하자면, 우리의 의식이 물리적 과정에 자발적으로 개입해 그 방향을 바꾸는 능력이 과연 있을까?

이 물음에 철학은 상이한 대답을 몇몇 내놓지만, 과학은 매우 명확한 관점을 견지한다. 

신경과학자 벤자민 리베트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의 모든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생겨난다.
의식은 이미 준비된 결과를 처리하는 것이다.
의식은
 그 결과와 상관없는 과정을 비추는 등불일 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자유의지라는 것은 순전히 환상이고 착각이다. 

 

그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그런 견해를 확인했다. 사람들 뇌의 여러 부위를 전극으로 자극했다. 자극에 대해 뇌가 반응하고 자극을 뇌가 인식하는 데 0.5초의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이것이 무조건반사의 작동을 말해 주니, 우리는 위험과 통증을 인식하기 전에 뜨거운 난로에서 손을 뗀다. 

 

하지만, 리베트의 연구가 보여준 것처럼, 이 작동 메커니즘은 무조건적 반사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느낌을 언제나 좀 늦게 인식한다.

뇌가 먼저 보고, 그다음에야 그 본 것을 우리가 인식하고, 뇌가 생각하면 얼마 지나서야 우리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현실에서 0.5초 뒤진 과거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리베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3년 실험을 하나 더 했는데,

이것은 뇌의 활동과 우리의 갈망, 둘 중에 무엇이 더 우선인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본능은 ‘우리한테 의지가 있어서, 이 의지가 뇌에게 어떻게 움직이라고 지시하는 거야’ 하고 속삭인다. 

 

리베트는 사람들이 정보에 입각하여 신중하고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동안 뇌 활동을 측정해 봤다. 피험자들은 바늘이 돌아가는 눈금판을 보면서 어떤 순간에든 버튼을 눌러 과정을 정지시켜야 했다. 그다음에 그들은 키를 누르고 싶은 욕구를 처음 인지한 시간을 말해야 했다. 

 

초시계

 

실험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버튼을 누르기로 한 결정을 보내는 뇌의 전기 신호가 사람이 결정하기 350 밀리초 전에,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기 500 밀리초 전에 나타난 것이다. (*millisecond, 1/1000 초. msec)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훨씬 전에 뇌는 그 행동을 준비한다. 

 

바깥에서 관찰하는 실험자는 아직 뭔가를 선택하지 않은 피험자가 무엇을 선택할지 (당사자에 앞서서) 예측할 수 있다. 최근에 시행된 비슷한 실험들에서는, 사람의 의지적 결정을 그 사람이 그 결정을 내리기 6초 전에 예측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일정한 궤적을 따라 구르는 당구공을 생각해 보라. 공의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을 자동으로 읽는 고수는 몇 초 뒤에 공이 어디에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리베트의 실험 이후, 신경과학에서는 우리가 그런 공의 처지가 됐다. 

사람의 자유의지는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과정의 결과이며,
따라서 자유의지란 허상이고 착각이다. 

 

2. 우리의 <나, 자아, 에고>는 하나가 아니다 

 

의식적인 '자아' 곁에 또 다른 '나'가 살고 있다
betteryears.com

 

신경과학에는 뇌의 어떤 부위의 기능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다.

연구하는 부위를 제거하거나 안락사시킨 뒤, 그 사람의 정신과 지적 능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는 것이다. 

 

우리 뇌는 좌우 두 개의 반구로 구성되며, 이 둘을 뇌량이 연결한다.

신경섬유 다발인 뇌량의 중요성이 과학에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신경과학자 로저 스페리가 1960년 간질 환자의 뇌량 섬유를 절단했다. 그러자 간질 증세가 도지지 않았으며, 그 어떤 부작용도 처음에는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 그 사람의 행동과 인지 능력에서 큰 변화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뇌의 좌우 반구가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에 적은 글자를 그의 코 오른쪽에서 보여주면 그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언어 능력을 담당하는 좌반구가 이 정보를 처리하니까 그렇다. 

 

그러나 글자가 왼쪽에서 나타나자 피험자는 그걸 읽지 못했는데, 그러면서도 글자가 의미하는 것을 그릴 수는 있었다. 이때 환자는 아무것도 못 봤노라고 말하곤 했다. 게다가 뭔가를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가 무엇을 묘사했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뇌량이 절단된 (callosotomy) 환자들을 관찰하는 동안 훨씬 더 놀라운 결과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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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좌우 반구 각각이 때때로 다른 쪽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체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 환자의 한 손은 넥타이를 매려 하는데 다른 손은 그걸 풀려고 하더라.

하지만 우세한 위치를 점한 것은 좌반구였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는 언어중추가 바로 좌반구에 있으며, 우리의 의식과 의지에는 언어적 본질이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우리의 의식적인 ‘나’ 곁에
자기만의 욕망을 지니지만 의지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웃이 살고 있다. 

 

뇌량이 절단된 사람에게 ‘모래’와 ‘시계’라는 두 단어를 보여주자, 그는 모래시계를 그렸다.

그의 좌뇌가 우측에서 들어오는 신호 즉 ‘모래’라는 단어를 처리했다.

‘모래’라는 단어만 보았을 터인데 어떻게 모래시계를 그렸느냐는 물음에, 그는 자신의 행동을 터무니없이 설명했다. 

우리 행동의 진짜 이유는 종종 우리한테서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행동한 뒤 우리가 세운 정당성을 이유라고 부른다.
그런 식으로,
원인이 결과보다 먼저 있는 게 아니라, 원인을 이루는 것이 결과가 되고 있다. 

 

3. 다른 사람들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날이 온다
vladtime.ru

 

우리는 다 우리의 의식이 (마인드가) 사적인 영역이어서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고 은근히 확신하고 있다.

나의 생각과 감정, 인식이 내 의식 안에 있는 만큼, 그건 다 가장 보호받는 재산이야.’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신경과학자 Yang Deng이 1999년 한 실험을 통해 뇌의 작업이 기본적으로 컴퓨터의 작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뇌의 암호를 알면 뇌에 만드는 정보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는 고양이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고양이를 탁자에 고정시키고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 부위에 특수 전극들을 삽입했다. 고양이한테 여러 이미지를 보여주자, 동시에 전극들이 뉴런의 활동을 기록했다.

이 정보를 컴퓨터로 전송하여, 컴퓨터에서 전기 자극을 실제 이미지로 바꾸었다.

고양이가 본 것이 모니터 화면에 나타났다. 

 

이미지 변환 메커니즘의 특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전극들은 고양이 앞에 나타나는 이미지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아니다. 양 덩은 뇌가 하는 것을 기술력으로 복제할 수 있었으니, 전기 자극을 시각 이미지로 변환한 것이다. 

실험은 시각 채널에만 적용됐지만, 뇌의 작동 원리를 드러내면서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보가 뇌에서 퍼져 나가는 방식을 알고 그걸 읽을 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인간 뇌의 상태를 완전히 읽을 수 있는 컴퓨터를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런 컴퓨터가 언제 만들어질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기억, 특성, 전반적인 인격 등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접할 준비가 돼 있느냐 하는 점이다. 

 

Orig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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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 > ... )

  13. 자유의지라는 환상 (1)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이건 주변 세계와 자기 삶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한 인간으로서 나는 이집트에 가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원하면 저녁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원하면 손을 올렸다가 내릴 수 있다.

입을 놀려 뭔가를 말하거나 입을 다물고 침묵할 수 있다.

자동차를 몰고 내가 원하거나 필요한 곳으로 갈 수 있다.

내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 일을 하러 가든지 않든지 결정하는 사람은 나다.

나는 세상에 영향을 미쳐서 내 계획과 목적이 실현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행동의 주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자기 행동의 주체이고 자기 삶의 어떤 측면을 웬만큼 통제한다는 내적 느낌을 자유의지라 부른다.

한데, 자유의지는 환상이라는 견해가 있다. 즉, 자유의지 같은 건 전혀 없으며, 우리는 다 완전히 프로그램된 존재라는 것이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이 명제에 내적으로 저항이나 거부가 생기나? 

 

사실, 자유의지가 환상임을 아는 것은 해로울 수 있다.

그런 지식에 당신 마인드는 저항한다. 당신 마인드는 당신의 생존을 염려하는데, 당신이 자유의지의 느낌을 지니는 게 마인드한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명제를 사람들은 종종 잘못 이해한다.

그들은… 만약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는 한낱 오토마톤에 불과하다면, 뭔가를 바꾸고 뭔가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왜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 삶에 어떻게든 영향 미치기를 그만두고 상황에 눌려서 소극적이며 우울한 사람이 된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입증을 접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 그냥 지금 가지고 있는 소신을 유지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반복하건대, 이 환상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걸 깨닫는다고 해서 당신이 자기 삶에 영향 미치려는 행위가 방해받는 일은 결코 없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때, 당신은 자기 삶을 이전처럼 꾸리면서도 어떤 목적을 위해 인생에서 뭔가를 하는 사람보다 더 큰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최고의 힘이 당신을 인도한다는 느낌이 생길 수 있고, 다행히도, 최고의 힘이 당신을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곳으로 이끌 것이다. 당신의 갈망이 모두 실현된다. 하지만 그 갈망은 다 억지로 꾸며낸 게 아니라 진실한 것이야. 

 

다시 말하건대, 당신이 자유의지는 환상이라는 명제에 단연코 반대하여 이 명제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해도, 그건 당신 심리가 아주 건강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을 무시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자유의지에 관한 이번 장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 지식을 접할 준비가 돼 있다면, 환영한다

 

자유의지 탐구  

 

간단한 실험 하나. 이것만으로도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당신 선택에 따라 어떤 행동이든 해 보라고 청한다. 어떤 것이든 좋다. 무엇이든 당신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당신이 선택한 어떤 행동을) 했나? 

그러면 이 물음에 대답해 보라. 

“당신은 왜 하필 그 행동을 했나?” 

만약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라고 말한다면, 왜 다른 행동이 아니라 하필 그 행동을 하기로 한 것인지 말해 달라. 예를 들어, 혀를 쏙 빼물기로 마음먹었다면, 왜 하필 그렇게 한 것인가? 왜 오른손 검지를 흔들지는 않나? 

한데, 당신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해도, 이 또한 당신의 결정이다. 

 

하지만, 아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코로 어깻죽지를 건드리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난 장담할 수 있다. 그건 생리적으로 그냥 안 되는 것이며, 당신은 그렇게 해 본 적이 전혀 없다. 오케이.

알고 보니, 당신이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여기는 행동이 그다지 자유로운 게 아니더라.

당신의 자유로운(?) 행동 선택은 당신의 생리적 능력이나 다른 능력에 의해 제한된다. 

 

좋아, 당신은 이렇게 말할 거야.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 범주 안에서만 그런 것일 뿐이지.

맞는 말씀. 근데 서둘러 단언하자면, 그 범주는 당신 신체의 생리적인 한계에 의해서만 제한된 게 아니다.

그건 당신의 목록에 있는 행동 범주에 의해서도 제한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귀를 움직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할 줄 안다. 원하면 누구나 귀 움직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여태껏 귀를 움직여 본 적이 없다면, 이번에도 그건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른바 ‘가랑이 찢기’를 한 번도 안 해 봤다면, 그렇게 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됐어. 계속하자.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지 살펴보자.

이제 당신에겐 당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를 추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달리 말해, 자기 생각을 쫓아가 찾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같은 실험을 다시 해 보자. 어떤 행동이든 하되, 이번에는 당신의 생각을 추적해 보자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마인드에서 어떻게 결정하나? 

 

두 가지 버전이 가능하다.

첫째, 당신은 무엇을 할지 별생각도 없이 자동으로 행동했다. 이 경우, 행동을 취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마인드이며, 마인드는 당신이 언젠가 익힌 행동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를 무작위로 실행한 것임을 알아둬야 한다. 우리는 행동의 자동성이란 주제를 이미 앞에서 살펴봤다.

평범한 일상사에서 자기 관찰 실습을 당신이 충실하게 수행했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자동으로 행동하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두 번째 버전에서는 어떤 행동을 할지 당신이 의식적으로 숙고했다. 어쩌면, 당신은 이 행동을 할까, 저 행동을 할까, 아니면 자신과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전혀 다른 행동을 할까, 마인드에서 견주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 동안, 당신 마인드에서는 가능한 여러 행동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안 그런가?

대체로 당신은 뭔가를 실행하기 전에, 어떤 행동을 선택하기 전에, 최선의 버전을 택할 요량으로 여러 행동 버전을 마인드에서 빙빙 돌리지 않는가? 이 경우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머릿속에서 여러 버전을 떠올리고 개중 하나를 택한다.

혹은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한 뒤, 그 선택한 행동을 실행한다.

그리하여, 선택이 마인드 수준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머릿속에서 여러 버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좋아. 맞는 얘기다. 

 

선택의 자유란 환상일 뿐이야. 왼쪽, 오른쪽, 도살장

 

이제 다음 질문.

당신이 머릿속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당신에게 가능한 버전들이 몽땅 머릿속에서 맴돈 것은 결코 아니었다.

분명 몇 가지 버전만 살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몇몇 버전을 가능한 것으로 살펴본 건가? 

모든 가능한 버전 가운데서 누가 혹은 무엇이 왜 하필 그 몇 가지를 선택한 것인가? 

수많은 것 가운데서 그 몇몇 버전을 당신이 과연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일까?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한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당신이 할 수 있는 행동 버전은 무궁무진하다. 필경 수천 가지는 될 것이다. 어떤 몇 가지를 택하기 위해 그 모든 걸 다 머릿속에 동시에 담을 수는 없다.

사실은 몇몇 버전이 당신 마인드에 의해 (혹은, 뇌나 잠재의식에 의해) 선택돼 당신에게 제시됐으며 (즉, 당신 내부화면에 나타났으며), 마인드가 보여준 것 중에서 뭔가를 선택할 기회가 당신에게 부여된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좋아, 그렇다고 쳐. 하지만 내 뇌가 검토하라고 제공한 몇몇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사람은 바로 나잖아.”

진실의 요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은 다른 것들은 다 놔누고 왜 하필 그 버전을 택한 건가? 예를 들어, 당신 마인드가 버전을 몇 가지 제시했다고 치자. 오른손을 들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 눈 깜빡이기. 이런 게 당신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마인드가 다른 몇 가지를 또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왼발을 당기기, 혹은 그냥 일어서기. 

 

어떤 경우에든 버전은 몇몇으로 제한돼 당신 앞에 있고 당신이 고른다. 예를 들어, 눈 깜빡이기를 골랐다. 눈 깜빡이기를 어떻게 선택한 것인가? 

그게 당신의 선택이라면, 어떻게 그걸 선택하게 됐는지 말해 달라. 

만약 마인드에서 여러 버전을 훑어보다가 눈 깜빡임을 선택했다고 말한다면,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지 말해 보라. 

선택하기 위해 여러 버전을 훑어본다면, 가장 적합한 버전을 찾을 것이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어디서 나왔나? 

예를 들어, 가장 터무니없는 행동이나 가장 예상치 못한, 혹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행동을 택할 수 있었다.

이 기준을 당신은 의식적으로 선택했나?

혹은 이 기준을 당신 마인드가 당신의 어떤 기대에 근거하여 또 당신에게 부여했나?

그런데 기대 또한 당신이 선택했을 리는 거의 없다.

선택에 관한 당신 기대는 세상을 마인드로 인식하는 습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마지막 단계이다.

선택할 때 당신에겐 기준이 전혀 없어서 아무렇게나 했다고 치자. 그때 선택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 마인드가 한 것이다. 그런 경우 당신은 마인드에게 선택을 위임한 것이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 아무리 파고들어 봤자, 당신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일어나는 것은 전부 ‘당신 선택에 어떤 작용을 가하는’ 마인드의 작업이다

당신이 선택을 어떻게 하는지, 당신이 선택하기는 하는 것인지,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 문제를 스스로 탐구해 보는 게 좋다.

당신의 경우 선택 과정이 어떻게 펼쳐지나?

선택 과정에서 당신이 행동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보라. 

또,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실습으로 낮에 자신을 관찰하면서,
어떤 선택과 어떤 행동이 당신의 것이라고 확신하는 순간을 두루 기록해 보라.
그리고 그것이 정말 당신의 선택이고 당신의 행동이었는지 추적해 보라. 

 

당신이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자유의지가 없음을 나는 증명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흥미가 있어서 탐구하려 한다면 스스로 하는 게 더 좋으며, 그때 그건 당신의 결론이 될 것이다. 당신한테 실제로 자유의지가 있는지 스스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거짓말하는 것이며 당신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겠지. 그러면 그건 당신의 탐구에 근거하여 당신이 내린 결론이니까, 아주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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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이 자유행동으로 무엇을 택하든 간에, 그 선택에는 어떤 조건이 붙었다. 내가 부여한 과제들이 조건이 됐다. 그 과제를 내가 주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과제가 생겼고, 그것을 수행했다. 내가 당신 행동을 주도한 셈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내 말을 듣고 실험하기로 했을 때 그게 어떻게 자유로운 선택인가?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단일한 원인의 환상’이라는 주제의 연장이다.

이 각도에서 자유의지 문제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당신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거나 사회관계망에서 통신한다. 이때 당신의 몸이 배고프다는 것을 알게 한다. 즉, 허기가 생긴다. 그런데 인터넷 활동에 깊이 빠져 있다면, 허기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몸이 자신의 의사를 계속 주장하고, 허기가 커진다. 비로소 당신은 허기를 느껴서 배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기를 하려고 SNS 친구와 대화를 멈출 수 있을지 본다. 대화와 요기의 우선순위를 마음속으로 가늠하고,

1) 요기는 몇 분 뒤에 해도 되겠다고 결정하거나, 혹은 거꾸로

2) 잠깐 대화를 끊고 요기해야겠다고 친구에게 말한다. 혹은

3) 친구와 대화하면서 동시에 배를 살짝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버전이 세 가지 있다. 당신에겐 분명 어떤 선택 기준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마인드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가늠하여 더 중요하다 싶은 쪽을 택한다. 예를 들어, 충분히 생각한 뒤 (가늠한 뒤) 제대로 식사하러 가기로 했다. 이것이 책상 앞에서 하는 대화나 음식보다 더 중요해 보였어.

이게 당신의 선택인가? 이 결정과 행동이 당신의 것인가? 

 

어디 한번 살펴보자.

1) 몸이 당신에게 허기를 채워야 한다고 상기시키지 않았다면, 당신은 먹으러 갈지 말지 결정하려고 생각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즉, 허기진 느낌 때문에 요기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생겼다. 

2)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먹기, 계속 소통하기, 컴퓨터 앞에서 요기하기 등을) 당신이 아니라 당신 마인드가 내놓았다. 이 버전들이 그 상황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당신에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배고파서 약을 마시는 선택은 없을 것이다그런 해결책들로 만족할 수 없다면, 더 적합한 버전들을 마인드에서 찾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당신의 경험을 근거로 한 다른 버전들을 마인드가 당신에게 건넬 것이다. 

 

여러 버전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는 기준을 당신은 역시 택하지 않는다.

이건 종종 무의식적인 과정이다. 흔히 그 기준은 이 상황에서 당신에게 가장 큰 이득이다. 모든 버전의 저울질 과정은 당신 마인드에서 자동으로 일어난다. 당신은 이것을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는다. 만약 선택 과정이 길어지면 물론 의식적으로 가늠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자, 제대로 식사하러 가기로 결정된다. 이것을 당신이 결정한 듯이 보일 텐데, 이 결정이 나오기 전에 있었던 것을 다 살펴보면, 결정은 자동으로 이뤄졌으며 당신 마인드의 작업 결과임이 드러난다. 스스로 확인해 보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하는, 이른바 의식적인 결정이라는 예를 들어보자. 이를테면, 더운 여름날 당신이 거리를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딱히 어디로 가야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저녁을 기분 좋게 보내기만 하면 좋다. 

그렇게 걷다가 한 여자애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가오는 것을 본다.

당신 마인드에서 이런 이미지들이 자동으로 흘러간다. 

- 저 아이스크림은 어떤 맛일까. 

- 지금 정말 덥군. 

- 입에 들러붙는 맛을 즐기면서 더위를 식히고 싶은 욕구가 생기네. 

- ‘나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든다. 

- 아이스크림 먹을 의향이 나타난다. 

-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는 곳을 마인드에서 생각한다. 

- (거리, 가격, 그늘 등) 가장 유리한 기준으로 가장 적합한 곳을 찾아내 거기로 간다. 

 

모든 것이 저절로 일어난다. 이 여러 행위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당신은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확인해 보라. 내 말이 틀렸나? 

( 벤자민 리베트의 실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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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착각 > ... )

  12. 단일한 원인이라는 환상  

 

 우리는 세상사를 인과관계로 보는 데 익숙하다

내가 어떤 물건을 밀치면, 그건 넘어질 것이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태양이 비치기 때문에 덥다. 

이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카르마 - 인과적 사건들의 사슬. 행동, 시간, 결과

세상에 대한 그런 시각에 우린 익숙하다.

하지만 또 우리는 어떤 사건에 한 가지 원인만 있다는, 하나의 제한되고 환상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이유는 거기에 새가 앉았기 때문이다. 혹은 이런 예도 보자. 전깃줄이 끊어진 것은 태풍 때문이다. 

 

이 세상의 인과관계를 그렇게 보는 건 다소 좁은 안목이다. 그런 시각에 국한돼 있다 보면, 우리네 삶의 흐름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세상 모든 과정이 서로 작용하여 이뤄진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 문제를 다뤄보자. 

 

내가 책상에 놓인 연필을 쥐어 바닥에 던진다고 치자. 연필은 당연히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질문 – 이 연필은 왜 바닥에 떨어졌나? 첫 번째 자연스러운 대답은 내가 그걸 놓았으니까 떨어졌다는 것이겠다. 그렇다. 하지만, 중력이 없다면 연필이 떨어졌을까? 

알고 보니, 연필이 떨어진 데는 적어도 두 가지 원인이 작용했다.

1) 손에 쥔 것을 놓아주고

2) 연필에 중력이 작용했다. 

 

하지만, 난 왜 연필을 놓았을까? 왜냐하면, ‘단일한 원인이라는 환상’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물건을 쥐었다가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단일한 원인의 환상’이라는 원칙을 당신에게 보여주기 원하나?

왜냐하면, 당신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이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지식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건을 쥐었다가 놓는 능력은 어떻게 나한테 생겼나?

어린 시절 부모가 나에게 가르쳐 주어서,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겐 여느 동물처럼 반사적으로 쥐는 행동이 (*grasp reflex) 있기 때문이다. 

아기가 물체나 대상을 본능적으로 꽉 움켜쥐다.
Grasp Reflex (움켜쥐는 반사, 반사적으로 움켜쥐는 행동/본능) - 갓난애가 두 손으로 엄마를 잡을 때 나타나며, 그 쥐는 강도는 아기를 그대로 들어올릴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이런 현상은 생후 3-4개월까지 나타났다가 점차 약해진다. 그 이후, 나이가 더 들어서도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신경성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이제 보라.

물건을 쥐고 놓는 법을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 연필로 시연할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며, 그러면 이 연필이 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관객으로서 당신이 여기에 없다면, 연필 시연을 보여줄 동기도 없고, 그러면 연필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열거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도 없었다면, 연필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연필이 떨어진 데에는 저렇게 여러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또 다른 원인이 많이 있음을 당신은 이제 짐작했을 텐데, 지루해질까 봐 여기서 생략한다. 

 

또 나는 여러 원인을 계속 규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수준에서 멈췄다.

예를 들어, (움켜쥐기 반사, grasp reflex) 반사적으로 쥐는 행동이 왜 나한테 있는 것일까?

나의 유전적 조상들이 생존하기 위해 주변 공간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건 또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그때는 포식자들로 득실거리는, 공격적인 자연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때는 왜 포식자들이 있었나?

왜냐하면, 자연도태가 그렇게 작동하여 가장 강한 것만이 살아남았으니까. 

 

곧, 연필이 바닥에 떨어진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오랜 옛날에 사람들이 포식자들이 있는 야생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반사적으로 움켜쥐는 행동은 (grasp reflex는)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연필을 쥐었다가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연필을 손으로 쥐고 시연해 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필이 바닥에 떨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우리가 열거한 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보자.

대략적인 도표는 이런 식이다. 

하나의 사건을 일으키는 여러 요인의 관계가 어떤 계층적 도식으로 드러났다. 이 시스템의 각 수준에서 한 가지 요인이 여기 다이어그램에서는 또 다른 한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표시돼 있지만, 실상은 훨씬 더 많은 요인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내가 물체를 손으로 쥐었다가 놓을 수 있는 것은…

1) 반사적으로 움켜쥐는 본능을 물려받고

2) 부모의 가르침도 있는 데다가

3) 나한테 손가락들이 있으며

4) 손과 물체 사이에 마찰력이 있고

5) 손을 제어하는 근육이 있다는 사실 외에도

6) 훨씬 더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각 수준의 다른 요인들에 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각 수준에서 요인의 수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점에 주목하라. 수준의 수효 역시 (‘신에 의한 세상 창조’나 ‘빅뱅의 결과 세상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각자 편한 대로) 잠재적으로는 무한하다는 점에 주목하라, 

알고 보니… 이 연필이 지금 바닥에 떨어지기 위해서는 사실상 우주 전체가 이 일이 일어나게끔 항상 작동한 것이더라. 이 무한한 계층 구조에서 한 요인이라도 없었다면, 어떤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점에 다시금 주목하자. 

 

이 계층 구조를 더 발전시키면 이론적으로는 태양광 같은 요인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햇빛이 다른 어떤 요인에 영향을 미치고, 이 다른 요인이 또 다른 요인에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연필이 떨어지는’ 사건에 우리가 계층적으로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연필이 떨어진 원인은 태양광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는 말을 비슷하게 적용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금방 여기서 내린 결론 몇 가지를 요약해 보자. 
1. 어떤 사건이든 그 원인 요소는 얼핏 보듯이 한 가지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 
2. 수많은 원인 요소 가운데서 한 가지라도 빠진다면,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3. 요인들은 계층 구조로 배열돼 있어서, 어떤 요인들이 다른 요인들의 존재에 필요조건이 된다. 

 

이제 어떤 특정한 사건이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자.

내가 바닥에 떨어뜨린 연필을 계속 예로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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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당신은 보고 듣는 사람으로서 이 사건을 보고, 이 사건은 당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낙하의 결과 바닥에 부딪히면서 연필 몸통에 금이 갔다. 연필 떨어지는 것을 당신이 보았기 때문에, 또 내가 연필 낙하의 원인을 얘기했기 때문에, 당신은 이걸 기억하고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목격자 중 한 사람인 영희가 친구 철수에게 연필 낙하에 관해 얘기해 주자, 전공이 경제지만 철학적 단상을 좋아하는 철수는 세상 구조와 그 안에서 인간의 위치에 관해 숙고하게 됐다. 이 때문에 철수가 1년 뒤 직업을 바꾸고 편력하는 데르비시(dervish)가 되어 존재의 우연함에 관한 책을 썼는데, 그것이 히트를 쳤다. 이제 해원이란 여성이 철수의 책을 읽고 선원(禪院)에 들어가 2020년도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이 연필이 지금 바닥에 떨어진 결과가 2020년도 해원의 깨달음이다.

지금 이 사건이 없다면, 영희는 이것을 못 보고 친구 철수에게 얘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철수는 직업을 바꾸지 않고 데르비시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책을 쓰지도 않았겠지. 그러면 해원이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을 테고. 

 

연필이 떨어지면서 금이 갔기 때문에, 이틀 뒤 연필심이 부러졌다. 이때 나는 비전(秘傳)을 논하는 밀교 회의에 참석했는데, 유일한 필기도구가 이 연필이었다. 그게 부러진 줄 몰랐기에, 의식(意識)의 본질에 관해 중요한 생각을 기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옆 사람에게 볼펜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참선의 대가였다. 이 인연으로 나는 그한테서 참선을 배우게 됐고, 아예 일본으로 이주했다.

곧, 연필이 떨어진 또 다른 결과는 내가 2년 뒤 일본에 정착한 것이다. 

 

연필을 떨어뜨린 결과가 물론 지금 예시한 저 둘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편의상 두 가지만 들었을 뿐이다. 연필심이 부러져서 연필을 쓸 수 없게 된 것도 직접적인 결과로 꼽을 수 있다. 

 

여기 제시한 여러 결과는 예를 들기 위해 내가 생각해 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세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건들도 있다. 그런 사건의 결과는 점차 제로가 된다.

예를 들어, 새의 지저귐이 창밖에서 들려온다. 물론, 이 지저귐이 세상에 거의 영향 미치지 못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를 들어, 지나가던 시인이 이 지저귐을 듣고 시를 지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모든 사람 입에 오르게 되고, 이것이 3차 대전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지 누가 알겠나.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물론 있다. 예를 들면, LSD 발견, 일본 후쿠시마 원폭 투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결론을 내리자.

세상 모든 사건은 무한히 많은 결과를 낳는다.

왜 무한하다고 하냐면, 이 사건의 결과인 여느 사건이 그 자체로 사건이며, 거기에도 또 결과들의 사슬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는데, 이것도 결과들의 계층 구조로 그릴 수 있다. 

두 계층 구조를, 즉, 어떤 사건을 촉발하는 요인들의 계층 구조와 그 사건의 결과들의 계층 구조를 비교한다면,

모든 사건에는 그것을 촉발하는 숱한 요인과 (즉, 원인과) 무수히 많은 결과가 (혹은, 파장이) 있음이 드러난다.

이때 우리는 사건들이 서로 영향 미치는 도식을 대략 이렇게 얻을 수 있다. 

 

이 도표는 그저 도표이며, 세상 사건들이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모델일 뿐이다. 다른 여느 모델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반영하지 않으며 실재의 어떤 측면을 가리킬 뿐이다. 이 모델은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공통 공간으로서) 객관적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이 모델을 보면 여기 담긴 근본 생각이 저절로 이해될 것이다.

즉, 모든 사건은 서로 연관되고 얽혀 있다는…

 

모든 사건은, 하다못해 하찮게 보이는 것도, 이 세상에서 상호 의존 네트워크의 필수 요소이다. 세상 모든 사건은, 온 세상은, 단일한 하나처럼 작동한다. 이것을 사건들의 단일 캔버스라 부를 수 있다. 온 세상이, 온 우주가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게끔 이끌어왔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는 것은) 사건들 사슬에서 필수 연결 고리이며, 이 고리가 일어나야 할 결과들을 일어나게 할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이런저런 사건의 결과가 무엇일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평범한 인간 마인드가 단번에 커버하기에는 모든 게 상당히 복잡하다. 아니, 아예 불가능하다!

스스로 판단해 보라. 사건들의 발전과 상호관계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이 생각을 확실히 알아보자. 이 시나리오는 허구지만 실제로도 아주 가능다. 

 

젊은이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는 우연히 티브이에서 껌 광고를 보았다.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왜냐면 좋아하는 여배우가 등장한 데다가 광고가 선명해서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 젊은이가 거리를 간다, 얼마 전 세워진 가판대를 지나치다가 그 껌을 보았다. 그 껌이 눈길에 들어온 것은, 광고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한번 맛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판대 주인도 이 껌 광고를 보고 이 껌이 잘 팔리리라 여겼다, 왜냐면 광고 모델로 나온 여배우를 그도 좋아하고 광고도 잘 만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즉, 구매 수요가 제법 있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제 껌을 주문하여 가판대에 내놓았다. 
지나가던 젊은이가 호기심 가는 껌을 사려고 가판대로 다가갔다. 그때 판매인의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껌을 금방 내줄 수 없었다. 젊은이가 잠깐 기다리는 차에 친한 친구가 지나갔다. 오랫동안 못 본 얼굴이기에 껌 사는 건 잊고 친구를 따라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이 이야기에서 모든 사건이 서로 얽히고 연관된다는 점이 충분히 이해된다. 여러 사건 가운데 하나라도 없다면 이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흘렀을 것이다. 

이제, 다른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야기하고 유발하는 사건들이 세상에서 동시에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세상 사건들의 이 거대한 캔버스는 우주 전체와 같다.
이 삶의 캔버스에 우리 각자는 자신의 몫을 조금씩 집어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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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마인드의 환상  

 


  11. 시간의 환상  

 

사람의 주관적 실재 (현실) 형성에 언어와 단어들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앞에서 다뤘다. 

필요하면, 단어들에 관한 장현실 지각 수준에 관한 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거기서는, 우리 삶에 들어와 우리의 경험 구조를 형성하는 키워드들이 있음을 알아봤다. 

 

the illusion of time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시간, 미래, 과거, 현재’ 같이 시간과 관련된 단어이다.

이 단어들에서 시간이 존재한다는 환상이 나온다. 단어에 관한 장에서 그런 단어들을 쓰지 않는 부족의 사례를 들었다. 그들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어. 사실상 현재에서만 산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이며 주변 세계와 아주 잘 공존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언어와 문화의 산물이란 말인가?
우리는 시간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는 데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 세계관의 정확성 여부는 생각도 않는다. 

 

시간의 몇몇 환상을 살펴보자. 

과거란 무엇인가? 

먼저, 모든 단어에는 우리가 거기에 집어넣는 어떤 뜻과 어떤 이미지가 있음을 기억하자.

당신에게 ‘과거’란 무엇인가?

이 단어에 당신은 어떤 뜻을 부여하나?

이 단어와 관련하여 당신 내면세계에서 어떤 이미지가 나타나나? 

 

대체로 ‘과거’에서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한테 일어난 사건의 장면들을 보게 된다. 여러 환경에 있던 유년기의 자신을 본다. 자기 인생의 여러 시기에 일어나서 기억되는 일들을 본다.

또 ‘과거’라는 단어를 접할 때 손을 흔들며 “이건 지나간 거야” 하고 말할 수 있고, 그러면서 마인드에서는 (내부 화면에서는) 자신의 등 뒤에서 구불구불 뒤쪽으로 이어지는 어떤 길을 보기도 한다. 

당신 경우엔 어떤가? 

‘과거’라는 단어에 대한 반응으로 당신의 정보 채널에서 무엇을 보는가? 

어떤 대답을 하든, 그건 다 내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일 것이다

직접 보고 확인하라. 

 

당신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과거를 지금 나한테 보여줄 수 있나? 

과거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걸 나한테 보여주시라. 

어떤 것을 보여주든, 그건 다 바로 목전의 현실에 있는 무엇이거나, 아니면 자기 마인드의 내부 화면에서 당신이 지각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가 분명 있다고 사람들은 강하게 느낀다. 고고학적 발견이나 고문서, 아니 단순히 당신의 개인적 기억 등이 그 증거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엊저녁에 식사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난 기억해. 아침에 샤워하고 이를 닦은 것도 기억나. 이건 다 있었던 일이야, 비록 지나간 것이긴 하지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열한 것은 전부 당신의 기억이나 회상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한데, 기억이나 회상은 당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 있는 이미지이다. 
즉, 과거에 관한 그 이미지들은 전부 당신 의식에서 사실상 바로 지금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서 나오는 게 전혀 아니다. 

 

또 이런 반박이 나올 수도 있겠다.

“현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의 연속이야, 내가 과거에 어떤 행위를 했기 때문에 현재가 있는 거 아니겠어? 예를 들어, 1분 전에 내가 탁자에 컵을 놓았기에 컵이 지금 거기 있는 거잖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1분 전에 (과거에) 컵을 놓았을 때, 실제로는 그 행위가 현재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지금 그것을 과거처럼 회상하는 것일 뿐.

어제나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기억에서 정보를 끄집어낼 것이다. 기억에서 나오는 정보는 전부 지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생각하는 과거란 전부 바로 지금 떠오르는 회상이고 기억이다.

당신에게 기억이 없다면,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당신의 과거가 있을까? 

 

이제 ‘미래’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미래는 과거에 비하면 한층 더 비현실적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이 기대하는 무엇이나 볼 것이라 예상하는 뭔가가 어떻게 일어날지 상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어떤 행동에 영감을 주는 뭔가를 상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뭔가를 계획할 때 종종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저녁 식사 후 어디로 산책할까 생각하는 것일 수 있고, 혹은 올여름 휴가를 바닷가에서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은 자기 마인드에서, 자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서, 사건의 예견되는 발전이나 미래에 기대하는 것을 상상하며 어떤 장면을 그릴 것이다.

미래에 관해 생각할 때, 그걸 당신은 지금, 현재에서, 한다. 

 

학수고대하던 미래가 도래하는 순간, 그 미래에 있는 현실은 당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상상하던 대로 여름에 정말 바다에 간다 해도, 거기서도 당신은 역시 현재에 있으리라는 점이다.

결국, 미래란…

우리 마인드에서 지금은 없지만 곧 나타날 수 있는 뭔가에 대한 상상이 표현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지금, 현재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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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환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어떻게?

예를 들어, 미래를 지금 즉시 보여 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엇을 보여주든 그것은 또 현재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는 당면한 현실에 있지 않으며, 우리 상상에 속한다.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여느 추상적인 이미지처럼 환상이며,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편리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과거나 미래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다. 
우리는 (언젠가 그 당시)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난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기억한다.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날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상상한다. 
과거와 미래는 기억과 상상의 작업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상상의 장난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들이 있었고 미래가 어떤 형태로든 도래하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살면서 항상 본다.

이것을… 시간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하나?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지속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영속>, 1931.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객관적 실재라는 게 있다. 그리고 우리 마인드는 거기서 정보를 얻어 우리를 위해 세상 모델을 만든다. 즉, 우리의 주관적인 현실을 (실재를, 세계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객관적 실재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들의 모델이며, 이 과정은 변화와 관련된다.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변화와 관련된 객관적 과정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고, 이 과정을 우리가 주관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심리적 시간이다.

이건 당연히 물리적 시간을 제법 잘 묘사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이미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을 지구에서 발사한다면, 이 로켓에서 흐르는 시간은 지구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이 로켓의 시계에서 1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의 시계로는 1백 년이 지나게 될 것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돌아와 보면 손자들이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한테 경악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마인드가 우리에게 시간의 모델만 만들어 낼 뿐이지 물리적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들이 없고, 그래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의 변화가 하도 작은 까닭에 우리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우리한테 이건 (물리적 시간은) 중요하지 않으며, 시간은 어디서나 똑같이 흐르는 것 같아.'

이게 우리의 주관적인 시간 감각이다. 

 

만약 과거와 미래가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확인할 수 있나?

오직 한 가지만 가능하니,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바로 지금 알아차릴 수 있다.

외부세계도 내면세계도 변화하고 있다. 변화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냥 관찰하라. 항상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이 언제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 이제 직접 관찰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현실(실재, 실체)이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1분 동안 주의를 기울여 보라. 

생각이며 느낌 등 내면세계의 일도 덩달아 관찰할 수 있다. 그것도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과거의 뭔가를 회상한다 해도, 그것 역시 당신의 내부 화면에 나타나는 일련의 생각과 이미지로서 바로 지금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의식에 있는 이미지라는 점을 이해했다면, 그 이미지들에 당신이 얼마나 자주 빠져드는지 추적할 수 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나.

그것을 당신은 지금 회상하고, 이 회상이 지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얼마나 자주 미래로 들어서는지 관찰해 보라. 더 정확히 말해, 당신 마인드에서 기대와 계획을 얼마나 자주 품고 세우는가? 

있을 수 있는 뭔가에 대해 얼마나 자주 불안해하는가. 이 불안은 당신이 바로 지금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는 미래의 무서운 이미지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건 단지 내 마인드의 이미지일 뿐이야’ 하고 자신을 달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주의와 눈길과 관심을 지금 실제로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로, 지금 순간으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목전의 현실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오로지 ‘지금 여기’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영적 대가들이 설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로지 ‘지금’, 오로지 ‘여기’만 있다. 나머지는 죄다 마인드의 한갓된 장난이며,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현실)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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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10장. 행동의 자동성  

 

우리의 마인드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앞에서 살펴봤다. 

이 세계 모델은 사실 사람이 현실로 인식하는 주관적 세계이다

또, 사람의 의식에 들어오는 대상과 객체들의 이미지를 마인드가 즉각 만들어 내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거리를 걸으면서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시간을 따로 들이지 않는다. 나무나 지나치는 사람, 아는 얼굴을 금방 알아본다. ‘아, 이 이상한 소리는 지나가는 자동차의 굉음이로군’ 하고 금방 결정한다. 또 이 냄새는 삼겹살 굽는 냄새라고 금방 판단 내린다.

 

이렇게 친숙한 대상을 의식에서 인식하는 과정은 자동적이다. 자동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인드의 이 작업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런데 아주 어린애였을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못 보고 못 들었다. 이건 우리에게 다 소음이고 색깔 있는 점들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 자세히 다뤘기 때문에 새롭지 않으리라 본다. 

곧, 들어오는 감각 정보에서 특정 대상을 구별하는 방법을 익힌 마인드가 이제는 이걸 자동으로 수행한다. 이건 아주 대단한 일인데, 왜냐면 이젠 우리가 친숙한 대상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일 필요가 없으니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매 순간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는 제 자리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도 못할 것이다. 

이미지를 자동 인식하는 마인드 메커니즘

 

이런 점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자.

이 글을 당신은 제법 빠르게 읽으며, 텍스트에서 읽은 것에 관련된 이미지가 당신 마인드에서 금방 만들어진다. 초등학교 1학년 때를 기억해 보자. 그때는 어떻게 읽었나? 처음에 철자들에 이어서 단어들을 인식하고, 다음에 문장 이해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나. 거기에 노력과 시간을 얼마나 많이 들였던가. 이미지를 자동 인식하는 마인드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이 글귀를 몇 번이나 읽었을지 상상해 보라. 

 

마인드는 들어오는 감각 정보의 흐름에서 세상 그림을 우리 의식에 자동으로 만들고, 그리하여 우리가 삶의 무게에 덜 시달리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인드는 우리 행동도 자동화한다. 우리네 행동의 자동성에 관해 이번 장에서 살펴보자.

 

만약 내가 오른손을 들어 달라고 해서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이 행동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건 당신에게 익숙한 동작이어서 힘 안 들이고 할 테니까. 또 몇 걸음 걸어 보라고 하면, 이것도 아주 쉽게 해낼 것이다. 이걸 당신은 여러 번 해 봤다. 어디론가 걸어갈 때 당신은 발걸음을 어떻게 떼는지, 다음 발을 어디에 둘지 사실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두 발이 저절로 다시 배치되거나 정렬된다. 이 과정이 자동화된 것이다. 한데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애들 경우 걷기에 노력과 시간과 조심성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가? 

컴퓨터 자판을 처음에 어떻게 두드렸는지 기억할 수 있나? 분명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꽃’이란 단어를 타이핑 한다고 치자. 당신은 자판을 들여다보며 철자를 찾을 것이다. 그걸 찾아서 손가락으로 누른다. 화면을 본다. 커서가 깜빡이던 자리에 ‘ㄱ’자가 나타났다. 그게 아니라 ‘ㄲ’가 필요하다. 그래서 ‘ㄱ’을 지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키보드에서 삭제 단추를 찾아야 한다. 그 단추를 눈으로 찾아내고 반가워하며 누른다. 놀랍게도 화면에서 ‘ㄱ’자가 사라졌다. 이 얘기를 이쯤에서 멈춰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이다. 

 

사람 뇌가 뭔가를 막 배울 때는, 노력은 많이 들이면서도 속도를 못 낸다. 뇌가 그 행동을 익힌 다음에는 자동으로, 시간과 주의와 노력을 거의 들이지 않고서도, 수행하기 시작한다. 양치질하는 방법, 수저 쥐는 법, 대화 기술, 셔츠 벗는 방법, 컴퓨터에 텍스트 입력하는 방법 등에 거의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는 연습은 아주 좋다. 살면서 자신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그냥 지켜보라. 사실, 많은 행동 요소가 자동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만약 자신의 어떤 행동에 일부러 흥미 삼아 주의 기울여 본다면, 일상적인 일을 하는 방식에 놀라고 어리둥절할 것이다. 옷을 어떻게 입고 벗는지, 전화기를 어떻게 드는지, 샤워를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먹는지 등을 관찰해 보라. 자신에 관해 흥미로운 것을 많이 발견하리라. ^^

자신의 행동을 관찰해 보면...

 

자신을 그렇게 간단히 관찰해 보면… 

1) 당신 행동이 얼마나 자동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손 자체가 알고 있다는 점에 놀랄 것이다. 손이 하는 것을 그냥 보기만 하라. 

 

2) 당신의 행동 거의 전부가 자동 실행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 통제할 수 있다. 나머지는 전부 자동으로 움직인다. 이런 실험을 해 보자. 

오른손으로 어떤 동작을 해 보라. 어떤가? 당신이 손을 의식적으로 통제한다 해도 손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움직임을 행하지는 않는다. 이때 눈은 무엇을 했는지 보라. 눈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아차렸나? 당신이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눈이 움직였다. 손과 발이 얼마나 자주 익숙하게 움직이는지 보라. 체중을 한쪽 발에서 다른 발로 어떻게 옮기나. 등이 가려울 때 어떻게 긁나. 코를 어떻게 만지나. 당신 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3) 끝으로, 이런 자기관찰 연습은 중요한 영적 수행의 하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자신의 의식을 (자각을) 키우고 관찰자로서 자신을 볼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이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핵심 주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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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행동의 자동성을 어떤 상황을 위한 행동 프로그램 세트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치질해야 할 일이 생기는 즉시 몸 자체가 올바른 순서로 올바른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다. 세면대로 다가가서 칫솔을 든 뒤 치약을 들어 칫솔에 짜고, 그 칫솔을 치아 전반에 위아래로 2-3분 동안 움직인 다음 물을 머금어 입을 헹군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어 (의식이 돌아와서) 보니 어느새 양치질이 끝났더라. 그런 적이 있지 않았나? 

만약 당신이 자동차 운전자라면, 운전 솜씨도 자동화됐으며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행동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을 안다. 속도를 줄여야 하는 순간, 발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다. 차를 돌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손이 알고 있다. 이 순간에도 당신은 미팅에서 상사에게 무슨 말을 할지 마음속으로 안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아주 어릴 때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행동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걷는 법, 손 씻는 법, 화장실 가는 법, 문 여는 법 등이 그렇다. 일부 행동 패턴은 타고난 능력에서 나온다. 미소 짓기,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울기, 물건 쥐기 따위가 그런데, 이는 타고난 생리적 행동 프로그램이다. 아이의 다른 행동 특성은 부모를 흉내 내거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의식적인 학습으로 이뤄진다. 

아이가 가족 외의 사람들과 접하기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점차 추가로 받아들인다. 인사하는 법, 모임에서 행동거지, 이성과 대화하는 법, 동료며 상사와 소통하는 법 등이 그렇다. 연구자들은 사람이 16세쯤 되면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거의 다 배운다고 말한다. 

 

이제 이런 사실에 주목해 보자. 즉, 당신의 모든 행동은 살면서 배운 행동 패턴이거나 행동 프로그램이다.

간단한 손가락 움직임부터 복잡한 춤 동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당신 마인드에 기록된 행동 프로그램이다.

당신이 하는 행동은 모두 문자 그대로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1) 웃음이나 고함처럼 생리 수준에 기록된 행동 프로그램이거나, 아니면

2) 별난 표정과 사교적 표현, 특징적인 습관과 행동 특성처럼 다른 이들을 모방한 결과 나타난 행동 프로그램이거나, 아니면

3) 젓가락 쥐는 법, 양치질, 길 건너는 법, 청소하는 방법처럼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의식적으로 학습된 행동 프로그램이거나, 아니면

4)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의식적으로 개발한 행동 프로그램이다.

그 예로는, 초인종을 누르려고 오랫동안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아이가 자기 가방에 올라서면 손이 닿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서 아이는 이 행동 프로그램을 계속 이용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만약 우리의 모든 행동이 자동적이고 일련의 행동 프로그램이라면, 언제 어떤 프로그램이 작동할지 어떻게 결정되나?

여기에 두 가지 버전이 있다. 그걸 알아보기는 제법 쉽다. 

 

1) 행동 프로그램 작동의 첫 버전은 그걸 의식적으로 주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이를테면 왼손을 흔들겠다고 의식적으로 마음먹는다. 이걸 의식적으로 결정하고, 그렇게 했다. 그렇게 뭔가를 하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할 때, 우리는 행동 프로그램을 촉발하는 의향을 (의도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행동 프로그램 자체는 자동적이고 독자적으로 실행된다. 예를 들어, 뭔가 맛난 것을 찾으러 냉장고로 다가가겠다는 의향을 당신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다고 치자.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하는 즉시, 당신 몸은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필요한 순서대로 한다. 당신은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2) 행동 프로그램을 작동하는 두 번째 방법은 무의식적이다.

우리는 이것을 첫 번째 방법보다 더 자주 이용한다. 다른 일을 생각하면서도 뭔가를 마치 자동으로 하는 듯한 경우를 누구나 많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샤워한다고 치자. 샤워가 아주 단순하여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몸이, 더 정확히 말해 우리 마인드가, 종종 스스로 해낸다. 우리는 이 과정에 특별히 주의를 돌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과정에 일부러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인드의 프로그램에 있는 몸이 이 일을 얼마나 잘 처리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표준적 행동을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무의식적으로 실행한다. 자동차 운전, 양치질, 저녁 준비, 대화하면서 종이에 그림 그리기 등이 그렇다. 이런 행동에는 많은 주의가 필요치 않고, 그래서 자동으로 실행된다. 

하지만 행동 프로그램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거나 혼선을 빚고, 그때 우리는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놀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컵에 차 대신 커피를 따랐다. 혹은 샴푸라고 여기면서 왠지 액체 비누를 썼다. 뭔가 엉뚱한 짓을 한다는 것을 문득 인식한다. 의식이 깨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 마인드는 자기한테 부여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우리가 부여한 시나리오대로 잘 진행되지 못했다. 우리의 잠재의식이 이것을 추적하고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를 우리한테 보냈다. 이 신호를 우리는 이미 의식적으로 추적해 온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규모 있는 행동 프로그램에 해당한다. 자잘한 움직임을 우리는 사실상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앉아 있을 때 발을 어떻게 홱 당기는지, 자판에 글자를 어떻게 두드리는지, 두 손을 어떻게 비비는지, 펜으로 어떻게 쓰는지, 물건을 어떻게 꺼내는지 등이 그렇다. 이런 것은 상당히 깊이 내재한 프로그램이어서, 이것들을 우리는 더 큰 행동 프로그램의 구성요소로 이용한다. 

 

자신을 의식적으로 관찰할 때 의식 모드로 전환하는 것. .

 

이것이 다 이론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어떤 간단한 행동을 하면서 자신을 관찰하면 된다. 욕구와 노력이 충분하다면, 한 시간 동안 혹은 온종일 자신을 지켜보는 게 바람직하다

자신을 의도적으로 관찰할 때,
당신은 의식을 켜는 것이며, 흔히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던 행동이 의식 모드에서 벌어지게 된다. 당신이 자신을 지켜보는 카메라처럼 된다. 

관찰자로서의 당신이 있고, 당신 행동이 또 있다
당신 행동에는 당신의 통제가 사실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 같다. 

 

만약 행동의 자동성을 아직 믿지 못하겠다면, 마지막 사례를 들겠다. 

어제 치과에 다녀왔다는 말을 지인에게 하고 싶을 때, 당신은 그저 “난 어제 치과에 갔다 왔어” 하고 말한다.

이게 간단한 일인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각 단어를 말하기란 입 근육과 혀, 폐 등이 다 관여하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니까. 이것들이 필요한 순서에 따라 일을 제대로 해낸다. 

뭔가를 말하기 위해 당신은 입안 근육을 일일이 의식적으로 조절하나?

아니겠지.

단어를 소리내기란 그 단어를 말하려는 의향에 의해서만 구동되는 자동 과정이다. 이게 전부야. 다음에는 뇌에 갈무리된 단어 발성 프로그램이 기능한다. 

우리의 다른 행동 프로그램도 다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단지, 개중 어떤 것들은 기본적이고 어떤 것들은 복잡할 뿐이다.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은, 이 과정이 실제로는 복잡함에도 기본 행동 프로그램이다. 빵집으로 빵을 사러 가는 것은 기본 프로그램들로 구성된 복잡한 행동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인드의 작업 덕분에 우리 각자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델이 (주관적인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알아봤다. 그뿐 아니라, 구체적인 이미지들과 추상적인 이미지들의 형태인 이 모델이 자동으로 하도 빠르게 만들어지는 바람에, 우리에겐 이 모델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처럼 보인다. 

또, 우리 마인드가 여러 경우를 위해 많은 행동 패턴을 기억하고 있으며, 필요한 때나 우리가 의식적으로 의도할 때 필요한 프로그램 패턴을 자동으로 수행한다는 사실도 알아봤다. 

 

우리 마인드는 이 세계에서 지각과 행동 실행의 과정을 자동화함으로써 우리한테 크게 봉사하고 있다. 그렇게 마인드는 우리가 주의와 눈길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더 고도의 과제에 돌릴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행동의 자동성은… 현실의 썩 미덥지 못한 반영과 연관되거나, 혹은 썩 적절하지 않거나 낡아서 효용보다 실패와 문제를 더 많이 일으키는 행동 프로그램과 연관된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별개의 큰 주제라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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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

  9장. 우리 삶에서 

 단어들이 차지하는 역할  

 

인간의 삶에서 단어의 역할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정보 채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의 감각적 흐름에서 특정 대상들을 뇌가 구별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 마인드가 현실의 모델을 만든다는 것을 우린 이미 살펴봤다. 

뇌의 여러 감각 정보 처리 센터. 운동, 촉각, 시각, 청각, 말,균형

 

이밖에, 우리 삶이 대부분 펼쳐지는 추상적 현실이 (세계가, 실재가) 언어 덕분에 만들어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의 말을 구성하는 단어와 용어들이다. 우리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데 하도 익숙해진 바람에, 단어가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됐다.

이제는 단어들이 문자 그대로 우리의 현실을 이루고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편이 됐다. 언어 자체와 언어 구조가 우리네 주관적 실재의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식에서 큰 오류가 하나 벌어졌으니, 우리가 단어를 실제 대상과 혼동하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살펴본다.

 

단어들의 의미는 어떻게 형성되나  

 

모든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있다. 그 단어에 부합하는 이미지 세트가 그 단어의 의미이다. 

‘공’이란 단어를 예로 들자. 만약, 아이가 어려서부터 축구공들만 보았으며, 공은 둥글고 발로 차면서 놀 수 있다고 어른들이 말하고 공을 갖고 노는 방법을 보여주었다면, 어린애는 ‘공’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둥글며’, ‘갖고 놀 수 있다’는 이미지와 함께 공을 차고 놀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둥근 축구공
아이들이 축구를 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공’이란 단어에 대한 이해와 개념이 굳어지는데,

그때 또 이런 것을 본다. 

럭비공

그리고 “이것도 공인데, 미식축구에서는 이런 공을 쓴단다” 하는 얘기를 듣는다. 아이가 처음엔 당황할지 모른다. 공은 둥근 모양이라고 확실히 알고 있는데 이건 고구마처럼 길쭉하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아이의 마인드는 이것도 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고, 이때 아이의 인식에서 ‘공’이란 단어의 의미가 조금 바뀌게 된다. 

이제 이 개념의 의미가 넓어져서 둥근 형태의 공만이 아니라 고구마처럼 생긴 공도 포함된다. 게다가 저런 공으로 미식축구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사람이 겪는 경험을 통해서 단어들의 의미가 형성된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사내애가 둘 있다. 하나는 동그란 모양의 공만 본 한국 소년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마 모양의 공만 본 미국 소년. 둘이 만나서 공 모양이 어떤지를 두고 다투기 시작한다. 하나는 공이란 다 둥글다고 열변을 토하고, 다른 하나는 공은 다 고구마처럼 생겼다고 입에 게거품을 문다. 

둘 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면서, 아니라면 손가락에 장을 지져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은, 둘 다 옳다. 둘 다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옳다. 다만 두 사내애는 우리네 각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형성된 주관적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또한 ‘공’이란 사람의 경험을 가리키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당신의 경험을 그 사람도 맛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 공 같은 경우 문제는 아주 간단히 해결된다. 서로 상대에게 자신의 공을 내보이면서 이것이 ‘공’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공에 대한 경험을 두 소년이 금방 서로 나누게 되고, 언쟁이고 자시고 더 이상 따질 것도 없을 것이다. 

 

보았다시피,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 하나는 1) 사람의 경험이다. 사람이 어떤 경험을 겪는다. “그 경험은 무엇무엇이라 불려” 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말한다. 그러면 이 명칭을 그 사람은 자기가 겪은 경험과 연관 지을 것이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를 형성하는 방법이 또 있는데, 바로 2) 그 단어를 정의하는 것이다. 

단어의 정의란… 그 단어의 의미를 다른 단어들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바로 앞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정의에 대한 예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단어의 정의는 단어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다음 예를 보자. 

한국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 따위로 나타낸 종이를 겹쳐서 한데 꿰맨 물건
러시아어 사전에서는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책 - 인쇄물의 하나로서, 용량이 48쪽 넘고 통상 하드커버로 제작되며, 텍스트 정보와 그래픽 정보를 담은 종이들을 한데 묶은 비정기적 출판물.

 

어떤 정의든 상관없다. 만약 당신이 책이란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저런 정의로써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한 권이라도 봤다면, 이 정의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다. 안 그러면, 저런 문장들로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힘들다. 

이 때문에 단어를 정의할 때는 그 의미를 생생히 보여주는 예를 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례는 어떤 단어의 의미를 실제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생생하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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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아마존강 유역에 ‘피라하’란 부족이 있다. 그들 언어는 아주 독특하다. 그들 말에는 ‘어제’, ‘내일’, ‘엄마’, ‘아빠’, ‘전부’, ‘일부’, ‘나의’ 같은 개념이 없다. (‘부모’라는 단어는 있다.) 한데 이런 개념이 없이도 그들은 아주 잘 산다. 그들의 세상 모델에는 시간, 소유, 재산, 분할이란 개념이 없다. 이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한데,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려면 그들 속에서 살아볼 필요가 있다. 그 문화에서 태어나면 더 좋고. 

어쨌든, ‘내일’이나 ‘부분/몫’ 같은 기본적 단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다시금 입증한다. 즉, 우리가 익숙하게 쓰면서 그 이면에 실제로 뭔가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아주 많은 단어가 사실은 실재의 (현실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네 언어와 문화의 답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피라하 부족의 언어와 달리 우리네 언어에는 그런 용어들이 있고, 이것이 이 용어들을 토대로 하는, 세상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우리한테 일관되게 만든다. 게다가 우리네 언어에는 특별한 단어와 개념이 여럿 있어서, 이것이 우리 세계관에 아주 강하게 작용하여 우리의 주관적 세계를 만들고 체계화한다. 

 

이는 우리 언어의 주요어, 키워드들이다. 이 핵심 단어들이 우리 경험의 구조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있다’, ‘…이다’, ‘존재하다’, ‘시간’, ‘미래’, ‘현재’, ‘과거’, ‘공간’, ‘나’, ‘…을 하다’, ‘대상’, ‘물건’, ‘원인’, ‘결과’, ‘나의’, ‘가지다’, ‘소유하다’, ‘속하다’, ‘과정’ 등등. 

 

“이건 내 전화기야” 하고 말할 때, 나와 이 전화기를 연결하는 특별한 뭔가가 세상에 있나? 전화기가 나한테 귀속됨이 목전의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건 아예 없다. 한데 우리는 그런 귀속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의’ 전화기가 망가지면 아주 속상할 정도로 믿는다. 피라한 부족에겐 ‘나의’라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둘러싼 문제도 없다. 한데 우리는 이웃보다 더 많은 사유재산을 차지하려고 열 올리며 자기 삶을 쏟아붓는다. 

 

이 키워드들이 우리 언어의 구조를 어떻게 만드나? 몇 가지 예를 들자. 

- 시간 개념이 언어에 아주 깊이 침투해서, 그 언어의 모든 동사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다. 예를 들면… 갔다, 간다, 갈 것이다. 

- 뭔가를 소유한다는 생각 또한 우리네 언어에 잘 파고들었다. “내 집 마당에 밤꽃이 피었어.” 

- ‘있다’와 ‘존재하다’ 같은 단어는 뭔가가 있거나 없다는 생각을 우리가 품게 한다. 예를 들어, “화성에는 생명체가 있다.” 

- ‘…이다’라는 단어는 비일비재하게 쓰인다. “나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은 진보적이야”, “입만 열면 불평이다” 등.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뒤에서 따로 살펴보겠다. 그 단어들에 들어있는 착각이나 환상의 속성을 알게 되면, 당신의 세계관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단어들의 작위성

 

단어의 다른 측면 가운데 작위성을 살펴보자. 단어와 용어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언어에 도입된다. 주로 편리함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에 관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할 때, 그는 자신의 어휘에 있는 단어들을 쓰려고 한다. 어휘가 충분치 못하다면, 새로운 단어와 용어를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쉽게 하는 모든 장치를 가리키기 위해 ‘운송 수단’이란 용어가 도입됐다. 자연에는 ‘운송 수단’ 같은 물체나 대상이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언어에 도입됐으며,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특정 장치를 가리키는 데 쓸 수 있다. 

 

‘화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장치’라는 어구를 두 번 쓴 점에 주목하라. 이 기다란 표현 대신 이제 우리는 ‘운송 수단’이란 용어를 간편하게 쓸 수 있다. 게다가 이 표현을 다른 용어들과 결합하여 여러 문장에서 아주 잘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운송 수단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도시에서 교외로 실어 날랐다.” 

여기에는 어떤 운송 수단을 이용했는지, 얼마나 되는 사람들인지, 어떤 도시인지가 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 과정의 어떤 장면을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기까지 한다. 

 

또 다른 예로 ‘질병’이란 단어를 보자. 질병이란 단어는 대개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아주 다양한 불쾌한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질병’이란 단어 하나로 언급함으로써 우리는 몸에서 느끼는 갖가지 징후를 사실상 단순화하고 마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질병의 증상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간과하거나 과대평가하기 쉽다. 

 

다시 강조하건대, ‘운송 수단’이나 ‘질병’ 같은 것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사람의 개인적 경험의 어떤 측면을 가리키는 편리한 용어일 뿐이다. 즉, 개인적 경험의 어떤 부분을, 대상이나 과정의 어떤 집합을, 이 용어로 정의하는 것이다.

 

곧, 단어란… 사람의 어떤 경험을 가리키며 철자들로 이뤄지고 어떻게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한데 단어가 그냥 뭔가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라면 난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부를 수 있다. ‘램프’라는 단어를 예로 든다면, 그 단어로써 보통사람은 빛을 내며 대개 유리로 둘러싸인 어떤 물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내가 내 언어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램프’가 아니라 이를테면 ‘팡켄’이라 부르고, 그래서 예를 들어 “팡켄 불빛이 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팡켄’이라는 단어에 내가 집어넣은 의미를 당신은 집어넣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우리가 대화하면서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용어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이것이 그냥 중요한 게 아니라 때론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마인드’라는 단어를 이용하면서 우리는 그 단어에 ‘들어오는 감각 정보의 흐름으로 현실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뇌의 능력’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데 많은 사람이 ‘마인드’라는 단어로 전혀 다른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뜻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이 구구할 수 있는) 단어들이 우리 언어에 아주 많다. 예를 들면, ‘자유’, ‘정의’, ‘평화’, ‘사랑’, ‘가족’, ‘행복’ 등이 그렇지 않은가? 

 

이런저런 단어에 사람마다 여러 의미를 집어넣는다는 점을 알아차린다면, 이런 말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즉, “당신은 마인드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마인드는 생각이자 정보 처리 능력이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마인드는 주로 마음을 뜻하지요.” 따라서 어떤 주제를 두고 대화하기 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우리 대화에서는 다들 쓰는 단순한 용어들을 사용하며, 이 용어들로 널리 통용되는 의미에 최대한 가까운 의미를 담으려고 한다. 어떤 경우에든 각 용어에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필요하다면 정의를 덧붙인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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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08-2. 마인드가 실재의 (현실의) 모델을 만들다 (2) 

 

지금까지 다룬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을 다시 반복하자. 

당신이 바로 지금 주변에서 관찰하는 목전의 현실은 (실재는) 세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마인드가 작업한 결과이다. 

마인드는 여러 대상과 물체를 우리 의식에서 바로바로 만들어 낸다. 

 

마인드가 실재의 (현실의) 모델을 만들다

 

목전의 현실 수준에서 세상의 모델을 동물들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이 훨씬 앞섰다. 인간에겐 다른 동물들과 달리 언어가 있다. 앞에서 알아봤듯이, 언어는 단어들이며 단어 결합 형태로 세계를 반영하는 도구이다. 언어 덕분에 세상의 모델을 만드는 두 번째 수준이 나타났으니, 바로 추상적 실재(현실)이다. 세상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전부 마인드가 추상화 수준에서 만들어 낸 세상 모델이다

 

멀리 가지 말고,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당신은 알고 있다. 이 나라에 대통령이 있음을 안다. 우리가 다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에 살고 있음을 당신은 안다. (이걸 모른다면, 당신은 이 과정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어린애이거나, 혹은 당신이 사는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세상을 달리 보는 것이리라.) 

당신이 사는 도시나 마을에 어떤 길들이 있나? 

그 길들이 서로 어떻게 배치돼 있나? 

당신 나라의 통화는 무엇인가? 

당신 은행 계좌에 지금 돈이 얼마나 있나? 

당신의 성별은 무엇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당신 부모의 이름은 무엇인가? 

소리란 무엇인가? 

색깔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사물은 무엇으로 이뤄지나? 

세상에는 어떤 종교들이 있나? 이에 관해 당신 생각은? 

당신이 알고 있는 동물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 

 

좋아, 이런 것이 전부 당신이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임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예가 될 것이다. 이건 다 당신이 마인드에서 세상을 그리는 방식이다. 이건 다 당신이 사는 세상의 모델일 뿐이다. 이런 걸 다 당신이 함께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쳤다. 이것이 당신네 문화유산이다. 

 

같은 질문들을 문명과 동떨어진 아프리카 툼바윰바 섬 원주민에게 물어보라. 그의 답변에 당신은 놀랄 것이다. 그를 무지하다고 여기나? 그의 관점에서는 당신이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아니, 굳이 툼바윰바 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라. 당신의 대답을 종이에 적으라. 다음에 같은 질문을 이웃에게 해 보라. 그의 대답을 당신 것과 비교해 보면 어떤가? 

이웃이 생각하는 '사랑'은 당신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의 세상 모델은 당신 것과 다르다. 

 

이제 보충 질문 하나. 서로 생각이나 관점이 다른, 당신과 이웃 중에 누가 옳은가? 만약 당신이 옳고 이웃은 뭔가를 잘 모른다고 말한다면… 아쉽게도 당신은 내가 전하려는 주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이런 물음들을 제시한다. 여기에 답할 때, 당신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전부 세상 모델일 뿐이지 세상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 질문은 이렇다. 

 

급진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 누가 옳은 건가? 

예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나? 

종합부동산세를 올려야 하나? 

신은 (하나님은) 있을까? 

국가의 질서를 잡기 위해 무기를 사용해도 되는가? 

마약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검찰 개혁이 꼭 필요한 사안이라고 치자. 한데 그 개혁을 도덕성에 의혹이 많은 사람이 꼭 맡아야 하는 걸까? 

 

도발적인 질문들을 일부러 던졌다. 저 몇 가지 물음에 대답이 여러 가지 나올 수 있다. 저 질문들은, “지금 몇 시야?” 하는 물음과 달리, 사회 분열과 갈등과 전쟁을 일으킨다. 저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세상이 자기가 상상하는 것과 같다는 믿음이 사람들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 모델은 세상 자체가 아님을 모를 때 아픔과 고통이 아주 많이 생긴다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전부 현실의 모델일 뿐임을 알아야만 그 모델에서 좀 떨어지고, 이 모델이 당신 의식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자기관찰의 실천이요, 존재와 의식성의 실행이다. 
이것이 거의 모든 영적 가르침이 말하는 수행이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좀 더 뒤에서 이야기하자. 그 이전에 우리는 당신의 본성에 빛을 밝힐 몇 가지 주안점을 다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즉, 어떤 특정한 사람의 세상 모델은 무엇에 좌우되나? 이 물음에 답하다 보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의견과 입장에 더 충실해질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당신의 신경을 다치지 않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 더 동정적이며 관대한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의 세상 모델은 무엇에 좌우되나? 여기에 몇 가지 요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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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어린애는 세상을 전혀 모른 채 세상에 나온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린애가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은 다 주변 환경에서 끌어낸 것이다. 유년기 아이의 환경은 주로 부모와 또 아이가 성장하는 문화이다. 이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부모가 신앙인이라면, 아이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대한 그런 관점을, 즉, 종교적 관점을 받아들이리라. 나중에 많은 사람과 접촉하면서, 아이는 종교에 관해 여러 입장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신을 믿고 누군가는 믿지 않더라. 만약 아이에게 비판적인 마인드가 (혹은, 문제의식이)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종교 성향을 숙고하고 이 문제에서 자신의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람들이다. 부모는 아이한테 행동하는 법과 옳고 그름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부모의 행동 모델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아이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과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게 무엇인지 가르친다. 

이것이 아이의 잠재의식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향후 아이의 세상 그림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세상 모델이 부분적으로 부모에 의해 우리한테 주입된다

 

2) 아이가 태어난 뒤 학교에 다니면, 거기서 과학을 가르친다. 학교에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주 많이 배운다. 사람들과 접하면서 아이는 그들의 행동 양식과 언어, 자기가 속한 사회의 방침 등을 이어받는다. 이런 측면도 쉽게 이해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게 흉이 아니다. 일본인들에게 이건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주로 불교와 힌두교가, 중동에서는 이슬람이, 유럽과 미국에는 기독교가 널리 퍼져 있다.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종교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어떤 종교가 진짜인지를 두고 다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더 나쁜 것은, 자기네 종교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죽이는 짓이다. 

알고 보니, 세상 모델의 일부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의 문화에 좌우되더라. 또, 같은 가정과 같은 문화에서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 다른 세상 모델을 갖고 있다. 

 

3) 어떤 사람이 세상의 모델을 만드는 데 또 무엇이 영향을 미치나? 다음 요소는 사람의 타고난 특성이다. 누군가는 분석적 사고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들에게 세상은 커다란 예측 가능하고 분석되는 기계이다. 그들은 존재의 영적 분야에 무심할 수 있고, 따라서 성직자들을 부정하며 사기꾼이라 부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미묘한 영적 감각에 상당히 민감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특성을 키울 것이며, 따라서 세상을 물질보다는 정신의 발현으로 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이들이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사람이 된다. 또 다른 3의 그룹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에 재능을 지닌다. 그들에게 세상은 물질적이거나 영적인 것보다 사람들 사회이다. 

 

4) 끝으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의 경험이다. 바로 개인 경험이 그 사람의 마인드가 현실의 모델을 세우는 기반이 된다. 바나나를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피리 소리를 한 번도 못 들은 사람이 피리가 어떻게 소리 나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끔 그 소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선천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태양이 붉게 이글거리고 눈부시게 환하다고 말할 때, 그는 무엇을 상상할까? 

이 정도 예를 들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경험을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을 올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진정한 산악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등반가가 경험한 것을 겪어 봐야 그가 하는 말을 진정 알아들을 것이다. 산악인의 세상 모델은 산을 모르는 사람의 세상 모델과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다 저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저만의 독특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세상 모델과 주관적인 세계를 형성한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성장하고 나중에 범죄 집단에 들어선 사람은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세상을 더 옳게 볼 것이다. 그게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을 텐데, 왜냐면 그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확신하는 것이니까. 부유하고 사치스럽게 성장한 사람의 세상 그림은 가난하게 자란 사람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타고난 특성과 우리의 환경은 어떤 사람이 특정한 경험을 겪는 공간을 만든다. 그 사람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마인드에서 나름의 세상을 그린다. 그리고 자신의 이 세상 그림을 통해 세상을 볼 것이다. 

그러니, 당신 보기에 어떤 사람이 이상하게 행동한다 해서 놀랄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은 세상을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을 그와 달리 보는 것이다. 
당신에게 다른 인생 경험이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그가 보기에는 당신이 그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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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08. 마인드가 

 실재의 (현실의) 모델을 만들다 (1)  

 

우리 뇌의 작업을 통해 주관적 실재가 생김을 알아봤다. 

주관적 실재를 만들기 위해 뇌가 하는 작업을 우리는 앞으로 마인드의 작업이라 부르겠다. 마인드는 지각 기관과 기억에서 나오는 정보를 기반으로 주관적 실재를 만드는 뇌의 특별한 역량이다. 즉, 우리가 지금 외적 실재와 내적 실재에서 인식하는 것은 모두 마인드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앞에서 살펴봤다. 이제 우리는 실재의 모델을 만드는 방법으로 이 지식을 일반화할 것이다. 

 

객관적 실재는 직접적인 지식으로 지각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아냈다. 하지만 최소한 생존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객관적 현실에) 어떻게든 적응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해, 객관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면, 인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후손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야수와 자연재해 등 위험에서 자신을 지킬 수도 없었을 테니까. 

따라서 자연은 눈, 귀, 코 등 현실 지각 기관을 우리에게 부여했다. 하지만 외부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 정보를 가공하여 의식에 제시함으로써 사람이 외부세계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연이 뇌를 만든 것이다. 시각과 청각, 운동감각의 이미지들 형태로 실재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은 뇌 덕분이다. 이 이미지들이 의식에 나타나며, 사람은 그것들을 인식하면서 세상에서 방향을 잡기 시작한다. 

 

이미 얘기한 대로, 뇌는 인간 의식에서 현실의 모델을 꽤 적절하게 만든다. 이건 당연한데, 그 모델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실재) 자체가 아니라 현실(실재)의 모델일 뿐이라는 점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모델이 하도 현실적으로 보여서, 우리는 모델을 진짜 현실과 혼동한다. 이것도 자연에 의해 구상된 것이다. 

이 모델은 세상에 존재한다는 환상이 완전하게끔 작동해야 하며, 그때 세상 속에서 방향 잡는 것이 가장 완벽할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각자가 살고 있는 주관적 실재는 (현실은) 세상에 적응하고 거기서 생존하기 위해 마인드가 만들어 낸 현실 모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성인의 주관적 실재는 당면한 실재와 추상적 실재의 두 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모델 층은 동시에 작용한다. 물론, 원한다면 우리가 자신의 의식에서 각 층을 별도로 구별할 수도 있긴 하다. 지각의 여러 수준을 탐구할 때 이것을 우린 이미 해 보았다. 

 

만약 주변을 둘러보고 지금 당장 일어나는 것에 주의를 돌린다면, 당신은 눈앞에 당장 펼쳐지는 실재(현실)의 층을 구별할 것이다. 이건 마인드가 실재(현실)에서 만들어 내는 모델의 첫 번째 수준이다. 당면한 현실 수준에서 세상 모델을 만드는 이 과정은 순간적으로 저절로 일어난다. 이를 확인하려면, 당신이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 흐름에서 어떤 대상을 식별하지 않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간단히 말해, 당신이 어딘가를 바라볼 때,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을 보는 게 아니라 어떤 대상을 자동으로 본다. 이 그림을 한번 보시라.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 자동으로 눈에 들어오는 대상.

 

이것이 사실상 흰 무엇 위에 검은 뭔가가 있는 것일 뿐이지만, 마인드는 자동으로 대상을 식별한다. 여기서는 자동으로 식별되는 대상이 두 개나 된다. 키스하는 커플이 보이지 않나? 이 그림에서 그저 희끗희끗한 얼룩이나 서툰 그림이 아니라 입맞춤하는 두 얼굴과 끌어안은 두 손을 보았다면, 이제 이 형상들을 떨쳐내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 마인드가 당신 의식에서 그 이미지들을 자동으로 만들어 낼 테니까 말이다. 

 

주변 현실을 매 순간 그냥 바라보기만 할 때도 같은 현상이 생긴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여러 감각 정보에서 마인드가 어떤 대상을 만드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하다. 이건 당신이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일어난다. 

 

하지만 마인드가 금방 알아보지 못하는 대상이 시야에 들어올 때는, 마인드가 이 대상에 적절하게 아는 대상을 찾을 때까지 당신의 주의가 그것에 확 쏠린다. 누구한테나 이런 경우가 있었을 텐데, 즉, 모든 게 평소처럼 잘 돌아가다가 눈길이 문득 알지 못할 것에 쏠린다. 그러면 그게 무엇인지 감 잡지 못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다리가 셋인 여자? 눈의 착각

 

이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보기 힘들지 않았나? 다리가 세 개인 여자? 그런 걸 우리 마인드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본 다음에 (이건 당연해, 이미지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항아리를 보고, 이제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다 풀렸다. 실재의 (현실의) 그림을 인식한 것이다. 앞으로 이 그림을 또 보는 경우에는 항아리를 금방 알아볼 것이다

 

그러면 이건 무엇인가?

엉덩이처럼 생긴 버섯

 

우리의 마인드가 그것에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을 금방 구별하고 강조하는 방식이 재미있지 않나? 

그런 예를 몇 가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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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가운데 있는 점을 15초 동안 들여다보라. 

 

그림에 색깔이 있나? 중앙을 보지 말고 확인해 보라. 

 

이번에는 이 그림의 중앙을 잠시 보라. 어떤 색깔의 점이 회전하나? 

원을 따라 점이 있나? 중앙을 보지 말고 확인해 보라. 

 

 

이제 다음에 보는 것은 아마도 착각이나 착시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일 것이다.

 

바둑판 모양의 여러 칸에서 두 칸의 색깔은 서로 다른가? 같은가?

(author: Edward H. Adelson) 

 

А와 В 칸의 색깔이 같다고 생각하나? 다르다고 여기나? 확인해 보라. 

종이에서 1센티 원을 오려서 차례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칸에 가져다 대 보라.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판의 다른 부분은 보이지 않고 저 특정 칸의 색깔만 보이게 하라. 안 그러면 아무것도 안 보일 것이다. 

두 칸의 색깔은 아주 똑같다! 우리 마인드가 하나는 흰색이고 다른 것은 회색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우리의 마인드는 우리의 경험에 따라 우리가 현실을 (실재를) 최종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지금까지 다룬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을 다시 반복한다. 당신이 바로 지금 주변에서 관찰하는 목전의 현실은 (실재는) 세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마인드가 작업한 결과이다. 마인드는 여러 대상과 물체를 우리 의식에서 바로바로 만들어 낸다.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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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마인드의 작업 >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 ... ) 

  추론의 수준  

 

단어들이 나타난 덕분에, 거기에 담긴 의미를 잘 다룰 수 있게 됐다. 

문장이나 문구가 그렇게 생겨났다. 

예를 들어, “엄마가 창틀을 닦았어” 같은 문구는 서로 연결된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 ‘엄마’, ‘창틀’, ‘닦다’란 단어 각각에 나름의 의미가 있고, 이 의미가 각 개인에게 적절한 이미지 형태로 제시된다

게다가 전체 문구도 당신 마인드에서 어떤 (정적이거나 동적인) 장면으로 역시 반영될 것이다. 

 

문구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실재(현실, 세계)를 지각하는 다음 단계인 추론 수준으로 이동한다. 

이 수준에서 우리는 단어들로 이뤄진 복잡한 의미 구조를 만든다. 문구의 각 단어는 나름의 독특한 뜻을 지닌다. 이 단어들이 일정한 순서로 배열돼 만들어진 문구는 각 단어의 의미를 결합하는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창밖에 비가 내린다”는 문구를 보면 당신 의식에서 창밖에 내리는 비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이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특정 단어들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사람마다 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는 문구를 접할 때 당신 마인드에서 무엇이 생기는지 주의를 기울이라. 그리고 이 사진과 비교해 보라. 

 

비가 내리는 거리를 자동차 창문 너머로 내다보다

 

당신 마인드에는 아마 다른 그림이 나타났을 텐데... 왜냐하면, 어떤 문구를 접할 때 어떤 사람에게 생기는 이미지와 의미는 그 사람이 그 문구의 단어들에 집어넣는 의미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생기니까 그렇다. 

 

여러 문구 덕분에 우리는 마인드에서 아주 복잡한 의미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텍스트를 읽을 때, 당신 마인드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문구와 전체 텍스트의 의미가 한꺼번에 형성될 것이다. 즉, 당신 눈은 지금 이 철자들을 보고 있고, 이때 당신 마인드의 내부화면에서는 이 텍스트의 의미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 주목하라. 

 

이런 텍스트가 있다고 치자. 

Bueno, no es una maravilla de casa, pero se puede vivir bien. Tiene dos habitaciones y una sala espaciosa que usamos como un dormitorio más. Qué vamos a hacer? Somos cuatro personas en mi familia. Tiene también una cocina bastante grande, lo que está muy bien. Y por último un cuarto de baño y un balcón. Como ven ustedes, es una casa normal y corriente. 

놀랐나? 이건 에스파냐어이다.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들이 생겼나? 에스파냐어를 모른다면, 생길 수 없다. 왜냐하면, 저 문구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띠지 않으니까. (<07-2 구체적인 대상들을 지각하는 수준>에서 소개한 동영상과 같은 이치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 관한 여러 댓글 가운데 “오랜만에 진짜 악마를 봤다”는 댓글에 수많은 사람이 찬성을 눌렀다. 

이 문장을 접하면서 당신 마인드에서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가 형성되고 당신의 세계 그림이 바뀌지 않았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바뀌지 않았나? 이 문장을 신뢰도 높은 인쇄매체나 방송매체를 통해 읽거나 듣는다면, 이 정보를 (더 확실하게) 믿을 것이다. 

 

추론 수준에서 우리는 당면한 실재(현실, 세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며, 실재를 이제 자기 마인드에서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 텍스트를 (몰입하여) 읽는 동안 당신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하고 신체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대신 당신 마인드에 생성된 그림과 이미지에 빠져 있다. 게다가 마인드에 있는 이 그림들을 지금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이웃집 여자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해 보자. 

“내일 우리 아파트 동의 보일러를 다 수리할 예정이래요. 오늘 503호에서 물이 새서 아래층 몇 가구가 피해를 봤어요. 관리인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배관을 긴급히 손봐야 한다고 했지요.” 

이것이 당신에게 닥친 당신의 실재(현실)이다. 이제 당신의 실재는 자기 마인드에서 방금 상상한 것이다. 그 뒤 30분 동안 당신은 이모저모 생각할 것이다. ‘내일 배관을 손보는 시간에 집에 있어야 하는데, 직장에서 어떻게 일찍 나오지?’ 

 

이건 다 당신 마인드에서 일어난다. 그런 걸 생각하는 동안, 당신은 자신만의 실재를 (현실을), 단어들로 이뤄진 실재를 만든다. 이 실재는 당신 마인드에서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바로 코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 코앞에 이 텍스트가 흰 종이에 검은 철자들로 있고, 엉덩이 아래 의자를 느끼고, 동시에 창밖 거리에서 어떤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이 텍스트에 내가 담은 의미가 아니라 이 단어들로써 내가 가리키는 것에 주의를 돌린다면, 당신은 목전의 구체적인 실재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런 얘기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왜냐하면,
우리는 마인드의 형상들 수준에서, 추론의 수준에서 사는 데 하도 익숙해지다 보니, 구체적으로 지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인드가 우리한테 말하는 것을 실재라 (현실이라) 여기게 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 믿었나? 확인해 봤나? 우리는 권위 있는 사람이나 정보 소스의 말을 (처음엔 부모, 다음엔 교사나 서적 등을) 믿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사실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일 뿐이다.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 이상, 이것은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 이미지들로 지금 우리의 (주관적) 세계가 이뤄져 있다. 바로 그런 세계에서, 마인드의 이미지들 세계에서,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살고 있다. 

 

자, 단어들과 의미들의 세계가 우리한테는 (우리처럼) 합리적인 사람들이 사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인드 작업의 중요성과 지식을 통한 세상 인식의 이점을 축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 우리의 감각기관이 바로 지금 지각하는 목전의 실재와 (현실과) 우리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이걸 구분하는 게 중요한 것이,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결론이 나오기에 그렇다. 

이제 마인드가 만든 추상적 실재(현실)에서 사는 이점에 눈길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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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눈앞의 당면한 현실에서만 계속 산다면 (어린애들은 그렇게 한다), 우리의 세계가 크게 제한될 것이다. 당신의 세계가 당신이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만 들어있다고 상상해 보라. 상당히 따분하다. 눈앞의 현실이라는 범주에 국한되어 우리 세계가 아주 작아질 것이다. 

언어가 나타날 때, 우리의 주관적 세계는 세상에 대한 지식의 성장과 함께 아주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우리 세계는 우리가 그것에 대한 지식만큼 점차 커질 것이다. 여러 국가와 행성, 우주, 원자, 분자, 경제, 정치, 그 외에 아주 많은 것이 우리 세계 안에 나타난다. 이제 당신의 세계는 온 우주이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주다. 

 

단어들과 언어를 활용할 때 또 다른 이점은, 그것들이 추상적이긴 해도 객관적 실재를 (현실을) 웬만큼은 반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대중매체를 통해 미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건 아직 당신에게 정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갈 수 있다. (한데, 비행기에 대해서도 똑똑한 사람들한테 들었기 때문에 이 이동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예전엔 읽기만 하던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단어들 덕분에, 우리는 언젠가 다른 사람이 획득한 정보를 간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지식을 그가 언어로써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았다면, 이건 그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인류 존재 내내 수많은 사람이 거둔 성취와 달성을 언어 형태로 간직하면서, 우리는 1천 년 전 사람들이 살던 세상과 아주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1천 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우리는 역사 지식 덕분에 안다. 이 지식을 우리는 그것이 정말 사실인 것처럼 이용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 어쩌면 우리 모두 프리메이슨에게 세뇌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관적 세계의 일반 모델  

 

그렇게, 우리에겐 실재를 (현실을) 지각하는 여러 수준의 형태로 주관적 세계의 모델이 나타났다. 전체적인 개관을 한 번 더 제시한다. 

주관적 세계의 일반 모델. 추론 수준, 단어와 명칭 수준, 구체적 대상 수준, 감각 정보의 수준, 추상적 실재, 당면한 실재

유의할 점 – 언어를 쓰는 성인의 경우 이 수준이 전부 동시에 존재하며, 더 높은 수준은 더 낮은 수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 예를 들어, 추론 수준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서 단어들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또, 물질과 마찬가지로, 마인드로 하여금 구체적인 대상을 만들게 하는 감각 정보가 있어야만 의식에 구체적인 대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실재를 지각하는 더 높은 수준들은 사람이 점차 발달하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갓난애한테 추론 수준이란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갓난애는 학습과 마인드 발달의 단계를 많이 거쳐야 한다. 

1. 처음에 갓난애한테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시각, 청각, 운동감각 인상 등의 흐름으로 감각 정보만 나타난다. 
2. 다음에 객관적 세계에 머무는 경험을 쌓으면서, 아이의 마인드가 이 모든 감각적 어수선함 속에서 구체적인 대상들을 식별하기 시작한다. 
3. 그 이후 부모한테서 이런저런 단어를 들으면서 아이는 그 단어들을 자신의 주관적 세계의 특정 대상들과 연결하는 법을 배운다. 단어와 명칭의 수준이 그렇게 나타난다. 
4. 단어들을 문구에 배열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아이는 자기 마인드에서 이미지와 의미의 형태로 가상현실을 만든다. 이것이 추론의 수준이다. 

 

현시점에서 당신은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서 이 수준들 가운데 어떤 것이든 떼어낼 수 있다. 아, 물론, 객관적 실재의 수준은 제외하고 그렇다. 즉, 이 텍스트를 당신 마인드에 나타나는, 의미 정보의 집합으로 지금 당장 인식한다. 그러면서 이건 다 그저 단어들일 뿐이며, 당신이 읽은 각 단어 속에는 거기에 당신이 집어넣는 형상과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 모든 이미지가 마인드에서, 내면세계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 이미지들을 당신 이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실제로 지금 당신 앞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이 종이쪽과 이 철자들, 당신이 바로 지금 듣는 이 소리, 당신 손의 느낌 같은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즐기기만 할 수 있다. 이 여러 느낌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느낌들이 그냥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당연히 어려울 테지만… 당신 의식에 있는 이 구체적인 대상들 이면에서, 시각 채널의 색깔 있는 점들과 청각 채널의 갖가지 소리와 운동감각 채널의 감촉 등의 형태로 감각 정보의 흐름을 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7장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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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마인드의 작업. 객관적 실재의 지각 수준 <계속>) 

 

  단어와 명칭의 수준  

 

 

이것은 추상적 실재의 첫 번째 수준이다. 

이 수준 이전에는 당면한 실재 수준들이 있었다. (감각 정보의 수준, 구체적인 대상의 수준).

목전에 당면한 실재는 바로 지금 순간에 지각하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본다면, 바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그 무엇에도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이것을 우린 바로 앞장에서 이미 살펴봤다. 

 

앞에 소개한 도표를 참고 삼아 다시 제시한다. 

주관적 실재, 객관적 실재, 추상적, 당면한 실재, 추론 수준, 단어와 명칭 수준, 구체적 대상 수준, 감각 정보 수준, 객관적 실재의 수준

추상적 실재는... 단어와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추상적 실재는 세상 그 자체보다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더 가깝다. 

 

마인드가 모든 감각 정보에서 마인드에 친근한 대상을 자동으로 구별한다는 점을 우린 바로 앞장에서 살펴봤다. 그런 대상을 마인드가 구별하는 까닭은 바깥 환경에서 그것을 보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어린애들이 세상을 그렇게 지각한다

 

하지만 어린애들은 외부세계뿐 아니라 어른들 사회에서도 살고 자란다. 그리고 성인들은 사물과 대상을 어떤 이름으로 부른다. 이건 ‘사과’이고 저건 ‘촛불’이고 또 저건 ‘나무’야. 언어의 이용자로서 부모는 늘 자기 아이와 얘기 나눈다. 어린애에게 장난감을 보여주고 그것을 ‘공’이나 ‘인형’, ‘바람개비’라고 부른다. 부모는 자신을 가리키면서 ‘엄마’나 ‘아빠’라고 부른다. 또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은 이름도 들려준다.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고 이름 들려주는 일을 부모는 아주 자주 한다. 몇 가지 색깔을 띤 둥근 물체를 여러 번 보여주면서 ‘공’, ‘공’, ‘공’이라고 말한다. 물론, 어린애한테 이것은 아직은 공허한 소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알아봤듯이, 어린애의 뇌는 대상이 바깥 환경에서 자주 나타나면 그 대상을 청각 정보 속에서 저절로 구별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부모가 말하는 단어가 늘 반복되기 때문에 어린애 마인드에서 별개의 대상으로 식별돼 서서히 자리 잡는다. 

그런 식으로, 둥글고 여러 색깔의 물체를 보면서 동시에 ‘공’이라는 같은 단어를 자꾸 듣는 환경이 어린애 의식에서 늘 반복된다. 어린애의 뇌가 이 두 가지 대상을 연관시키기 시작한다. 이제 어른이 ‘공’이란 단어를 말하면, 어린애 마인드에서 공의 이미지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성인들에게는 물체나 대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 이름을 백 번 반복할 필요가 없다. 한두 번으로 어떤 대상이 어떻게 불리는지 성인은 기억한다. 즉, 세상의 물체와 단어와 연관시키는 작동 원리가 성인기에도 작동한다. 언어 학습이 멈추지 않는다. 

 

단어들은 인간 세계에서 특별한 대상이다. 어린애는 처음에 단어들을 듣기만 한다. 그러다가 말문이 트이면 그 단어들을 입 밖에 내게 된다. 다음에는 책 읽기를 배우는데, 이때 아이는 자기가 이전에 말하던 단어들이 또 어떻게 보이는지 알게 된다. 결국, 아이가 글을 배우면서 단어를 적기 시작한다. 즉, 단어들이 어떻게 소리 나고 어떻게 보이는지를 안다. 단어들이 청각과 시각 채널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단어들이 무엇에 왜 필요한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건 단어들에 녹아 있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건 또 사람의 마인드에서 단어들이 어떤 이미지나 형상들과 연결됨에 따라 일어난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여러 시기에 여러 종류의 인형을 보여주면서 매번 같은 ‘인형’이란 단어로 부른다면, 어린애 마인드에는 ‘인형’이란 단어와 그 모든 물건의 관념 연합이 생긴다. 이때 이 모든 인형이 서로 좀 비슷하다면, 마인드는 그것들 간의 공통 특징을 자동으로 식별하고 ‘인형’이란 단어를 아이가 본 인형을 전부 일반화하는 추상적 이미지와 자동으로 연결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더 다양한 물건을 ‘인형’이란 단어로 부를수록, 이 단어의 의미가 아이에겐 더 다양해질 것이다. 

 

여러 종류의 인형

다양한 대상들이 더 많이 같은 단어로 불릴수록... 이 단어는 더 추상적이 되고, 이 단어의 의미는 이 세상 특정한 대상들의 관념에서 더 멀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탁자’라는 단어에는 어떤 사람이 보아 온 모든 형태의 탁자 이미지가 들어있다. 하지만 이 단어와 연결된 모든 이미지를 스캔하려면 마인드에는 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따라서 마인드는 더 경제적으로 작동한다. 즉, ‘탁자’라는 단어가 들릴 때 마인드는 어떤 한 가지 이미지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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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누군가가 당신에게 ‘차량’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당신 마인드에는 이런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 

 

세단 승용차

혹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초기 자동차

 

모든 것은 그 단어를 듣는 사람의 개인 경험에 달렸다. 

한번 시험해 보라. 

이를테면 ‘집’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당신 마인드에는 무엇이 나타나나? 

마인드에 어떤 집 그림이 생겼을 것이다. 

당신에겐 어떤 그림인가? 

이 단어를 들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 같은 그림이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나? 

알고 보니, 단어란 사람 기억에 있는 이미지들을 가리키는 표시기 같은 것이다. 한데 어떤 단어와 연관된 이미지들의 총체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이 단어를 말할 때 자동으로 생기는 이미지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 우리는 그 단어와 연관된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언급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에서 되살려내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부분에 주의를 집중할 가치가 있다. 당신의 당면한 실재에서 당신 앞에 지금 여기 있는 특정한 탁자와 일반적으로 ‘탁자’라는 단어 간의 차이는 크다. 

 

나무 탁자 위에 노트북과 안경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특정한 대상은 아직 탁자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 속에서 우리 마인드가 인식한 어떤 대상일 뿐이다. 한데 ‘탁자’라고 불리는 것은 (단어는) 추상적 대상이며, 이 대상은 어떤 사람 내면의 형상과 소리, 느낌의 형태로 암호화된 개인 경험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 추상적 대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우리가 지금 눈앞에 보는 이 구체적인 대상을 ‘탁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 대상의 형태와 우리 기억에 저장된 단어 이미지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것도 탁자라고 부를 텐가?   

 

동그란 나무 탁자

 

이런 탁자를 당신은 못 봤을 것이다. 지금 보라. 그러면 다음에 이런 대상이 당신 시야에 들어오는 경우 그것이 탁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야. 그리고 당신의 ‘탁자’라는 단어의 의미는 지금 막 또 하나의 방식으로 확장됐다. 

정리하자면, (말의 최소 단위인) 단어란 개별적인 추상적 실재이다. 
단어란 우리가 경험한 내용을 가리키기 위한 표식이나 꼬리표와 같은 특별한 대상이다. 
다시 말하건대, <구체적인 탁자>와 <‘탁자’라는 단어>를 혼동하면 안 된다. 
탁자처럼 보일 수 있는 특정한 대상은 지금 당신 앞에 있고 아주 잘 감지되는 크기와 형태, 색상을 지니고 있다. ‘탁자’라는 단어는 특별한 청각적이거나 시각적인 대상이며, 이 대상은 당신이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탁자를 지각한 경험에 의거한다.

 

* 객관적 실재의 지각 가운데 <추론의 수준>이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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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마인드의 작업

7장.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계속>)

 

  구체적인 대상들의 수준  

 

 

갓난애와 달리 우리는 성숙하고 경험 있는 사람으로서 시각과 청각 채널에서 어수선함이나 잡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과 물체를 보고 듣는다. 

대체로 모든 채널에서 그렇다. 

우리의 감각 정보는 체계적이고 구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어떤 표상으로 본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보자. 

 

사람이 태어난 직후 처음 접하는 대상은 (산파를 제외하고) 엄마이다. 엄마는 갓난애가 처음 보고 듣고 느끼는 대상. 이 대상은 아기의 모든 지각 채널에 나타난다. 이 대상을 아기가 처음에는 자기의식에 들어오는 다른 감각 신호들과 당연히 구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대상이 (엄마가) 아기의 시야와 모든 채널에 아주 자주 들어온다. 아기는 엄마 목소리를 듣고 엄마 체온을 느끼고 엄마한테서 풍기는 냄새를 맡는다. 다른 신호들 속에서 엄마를 별개의 대상으로 서서히 식별하기 시작한다. 

 

이후 더 자라고 외부세계와 더 많이 접촉하면서 아기 의식에 다양한 정보가 더 많이 들어간다. 또 외부세계는 여전히 정돈된 공간이며 어떤 대상들로 이뤄져 있는 까닭에, 예를 들어 장난감이나 주변 다른 사람들, 자기 울음소리 같은 대상들이 아기의 의식에서 점차 개개의 대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대상들을 아기의 마인드가 다양하게 들어오는 감각 정보와 구별하게 된다. 

이것은… 아기가 주변 사람들 움직임을 눈으로 좇아가고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뒤척이고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하는 것 등을 보면 분명해진다. 

 

모든 감각 정보의 흐름에서 어떤 안정되거나 고정적인 대상을 구별하는 능력은 아마도 뇌 기능에 내재돼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세계 자체도 상당히 구조화되어 있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하다. 그래서 세계에 있는 여러 대상과 그것들의 형태와 움직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마음속에서 그려 보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자. 그런데 바깥세상에서 대상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알고리듬은 누구한테든 끊임없이 작동한다. 이런 점을 이제 분명히 알아보자. 

 

이런 그림이 있다. 

색깔 있는 얼룩점들의 집합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세계를 감각 수준에서 지각할 때 나타나는 감각적 어수선함과 비슷하다. 여기에 어떤 시각 정보와 어떤 점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어떤 대상을 식별해 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여기서 우리가 얼룩이나 점 이외에 다른 것을 왜 못 보느냐 하면, 이 점들이 우리가 살면서 익숙하게 관찰해 온 형상을 이루지 않거나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 그림들에서는 어떤 대상을 분별하거나 선택할 수 있다.

색깔 있는 점들이 배열되어 여러 꽃 모양을 이룬다.
흰 구름이 끼어 있는 푸른 하늘
산비탈에 튀어나온 나무 그루터기

 

이 그림이나 사진도 본질에서는 다양한 색깔의 점들이 일정하게 배열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뇌가 이 점들에서 익숙한 이미지를 자동으로 찾아낸다. 꽃, 구름, 하늘, 그루터기

한데, 우리가 꽃과 구름, 그루터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저 그림과 사진에서 그런 대상과 물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 안 그럴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바다, 갈매기, 나무, 파도, 구름, 하늘, 바위 위에 여인 형상

 

여기에도 역시 색깔 띤 점들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지만 살면서 우리가 여러 얼굴을 자주 접한 덕분에 이 그림에서 사람 얼굴을 쉽게 구별한다. 원한다면, 얼굴로 사람의 성별을 가릴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저 그림에 실제로는 얼굴이 없다. 새들과 나무, 물 위의 파도, 서 있는 여인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얼굴을 보고, 우리에겐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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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질문: 그렇다면, 이 그림에 얼굴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대답: 이 그림에 있는 것이라곤 색깔 띤 점들뿐이다. 그림에서 우리가 찾아내는 형상은 모두 우리 뇌가 (혹은, 마인드가) 만든 것이다. (실제로는 얼굴이 없다!) 바로 우리 뇌가 외부세계에서 그런 형상을 종종 관찰해 온 까닭에 이제 그것을 어떤 그림에서든 어떤 순간에든 식별할 수 있다. 

 

시각 채널에서 여러 대상이나 물체를 순간적으로 식별하는, 마인드의 이 능력을 우리는 외부세계에서 방향 잡고 적응하는 데 이용한다. 만약 (아래 그림 같은) 형태가 시야에 들어올 때 마인드가 침대를 금방 식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몇 발짝 안 가서 거기에 부딪칠 것이다. 

침대와 소파 등이 놓인 침실

 

우리는 시각 채널을 살펴봤다.

청각 채널에서는 구체적인 대상들 수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우리가 이미 앞에서 다룬 사례가 있다. 

 

여기 어떤 외국어로 하는 얘기가 있다. 

 

우리 한국인에게 이건 (시각 채널에서 색깔 띤 점들의 집합처럼) 단지 소리의 집합일 뿐이다.

이건 우리한테 왜 한낱 잡소리 모음에 불과할까? 왜냐하면, 이 소리에서 우리가 청각 채널에 익숙한 대상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여기서 아는 단어들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데, 이 언어에 어려서부터 익숙한 러시아인은 이 잡음(?)에서 특정한 단어들을 찾을 뿐 아니라 거기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청각 신호가 우리 한국인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건 한국인들에게 소음이나 잡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단어들이다. 앞의 동영상에 있는 (한국어를 모르는) 러시아인이 이 동영상을 어떻게 인식할지 상상해 보라. 

 

그런 식이다. 모든 것이 바로 그렇게 작동한다. 우리 주변에는 감각적인 소음과 혼란과 어수선함의 연속이요 일색이다. 그러나 그 소음과 어수선함 속에서 우리 뇌가 (마인드가) 아는 대상들을 즉각 식별해 낸다. 

구체적인 대상들 수준에서 주관적인 실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목소리 훈련 안내

지금 살펴본 수준은 구체적인 대상들의 수준이라 불린다. 왜냐고? 왜냐하면, 이 대상을, 혹은 물체를, 우리가 바로 지금 보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특정한 대상이다. 예를 들어, 이 사과가 그렇다. 

사과

 

이것은 구체적이고 특정한 사과이지 그냥 일반적인 ‘사과’가 아니다. 게다가 이 구체적인 대상에는 이 지각 수준에서 아직 이름이 없다. 이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은… 특정 순간에 나머지 모든 정보 속에서 특정 대상을 식별하는 것뿐이다.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자. 태어난 뒤 다른 여러 정보 속에서 엄마를 구별하는 갓난애는 이게 자기 엄마인지 아직 모른다. 갓난애 마인드에는 아직 아무 이름도 없다. 아기는 세상을 어떤 특정 순간에 어떤 대상들의 집합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지각 수준에서 (세계를 구체적인 대상들로 지각하는 수준에서) 세상이 어떻게 지각되는지 우리는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냥 주변을 둘러보기만 하면 된다. 

이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보나? 

당신이 눈길 돌리는 곳에서 무엇을 보나? 

포착하지 못한 세계의 디테일을 마인드에서 끝까지 그리지 말라. 

그냥 앞에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라. 

예를 들어, 지금 이 글을 쓸 때, 나는 내 손과 자판, 모니터, 마우스를 본다. 내 등 뒤에 의자 등받이가 있지만, 지금 내 눈으로 그걸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기억에 따라 세계의 그림을 마저 그린 것은 내 마인드이다. 

 

만약 마인드의 이 작업 순간을 인식하며 마인드가 마저 그리는 것을 죄다 내던진 채, 지금 벌어지는 것에 이름 붙이지 않고 관찰만 한다면, 실재를 지각하는 이 수준에서 - 구체적인 대상들의 수준에서 - 세계가 어떻게 반영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게 될 것이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아이들이 이 수준에서 실재를 지각한다. 
어린애들은 특정 순간에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지각한다. 
선()의 대가들이 ‘지금 여기’의 삶에 관해 설파할 때 바로 이걸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보라, 얼마나 간단한가. 
아이들도 이걸 할 줄 안다. 한데 성인들은 다 잊은 것 같다. 

 

이런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실재를 지각하는 다음 수준을 살펴볼 때 알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수준으로 넘어가자.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가운데 <단어와 명칭의 수준>으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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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마인드의 작업  

 

앞에서 우리는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두 가지 형태의 실재가 있음을 알아보았다. 

객관적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며 인간 마인드로는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주관적 세계는 객관적 실재가 인간 의식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반영’이란 단어는 이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거울이 앞에 있는 대상을 되비치듯이, 우리네 의식은 객관적 세계에 대한 거울과 같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거울이 아니야.

의식이란 객관적 세계를 각 개인의 주관적 세계 형태로 반영하는 ‘거울’이다. 

일그러지고 흐릿한 의식의 거울

게다가 이 의식의 ‘거울’은 일그러지고 흐릿하다. 그래서 거기 있는 객관적 세계는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있는 것을 정확히 옮긴 것일 수가 없는데, 그건 왜냐하면, 주관적 실재가 우리네 불완전한 감각기관들과 뇌와 마인드의 작업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우리 주관적 세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이번 대목에서 알아보자. 


 

  07.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이제 우리는 객관적 세계가 어떤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본다. 이 반영의 여러 수준을 살펴보고, 이 수준 각각이 어떻게 존재하며 작동하는지 생각해 보자. 그 결과 사람들의 주관적 실재의 다단계 모델을 얻고, 이 모델에서 당신은 당신의 주관적 세계와 그 구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델은 폴란드 학자 알프레드 코집스키가 처음 연구했다. 그가 최초로 이것을 인간 경험의 모델로 설명하고 제시했다. 

 

주관적 실재의 구조 모델을 우리는 두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것이다. 1) 이것이 주관적 경험에서 어떻게 제시되는지, 또 2) 이것이 객관적 프로세스에 의해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 이전에, 실재를 (현실을, 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는 여러 수준에 대해 감을 잡도록 도표를 미리 제시한다. 

객관적 실재, 주관적 실재, 추로, 단어와 명칭, 구체적인 물체, 감각 정보, 객관적 실재의 수준, 추상적 실재, 당면한 실재.

 

객관적 실재의 수준 

 

엄밀히 말해 주관적 세계에 해당하지 않는 기초 수준부터 먼저 시작한다.

이건 객관적 실재의 수준이다.

객관적 실재를 앞의 몇몇 장에서 이미 살펴봤기에 더 다루지 않겠다. 단지, 객관적 실재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가 직접 인식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만 다시 상기하자. 이 수준은 그 자체로 저절로 존재하며, 우리가 그것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전부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의식에 반영된 것일 뿐이다. 

 

객관적 수준을 학자들이 어떻게든 연구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의 현재 발전 단계에서 우리한테 객관적 세계는 기본 입자들이 늘 나타나고 사라지는 물리적 진공의 형태로 제시된다.

기본 입자들이 모여 원자를 이룬다.

원자들이 모여서 분자가 된다.

원자와 분자들이 우주 물질을 이룬다. 

기본 입자들이 가득한 물리적 진공 상태

 

우리가 지각하는 은 (기본 입자의 일종인) 광자들의 흐름이거나 전자기장의 파동이다. 

소리는 어떤 물체가 진동할 때 대기 중의 파동으로 나타난다.

맛과 냄새는 이런저런 물질의 분자들로 만들어진다. 

촉각은 사람 피부에 어떤 물체가 물리적으로 닿을 때 생기며, 또 외부 환경의 온도 영향에 의해서도 생긴다. 

 

이 '객관적 실재의 수준'은 인간의 주관적 세계에서 절대 나타나지 않지만, 주관적 세계를 분석하는 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수준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며, 이 영향을 나중에 사람이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의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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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정보의 수준 

 

객관적 세계의 현상이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나? 어떤 영향을 미치나?

그런 영향의 예로서 우리는 두 가지 정보 채널을 살펴보겠다.

시각 채널과 청각 채널을 택하는 것은, 이 둘이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전달하기 때문이다. 

 

시각 채널, 즉, 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앞에서 이 과정은 이미 설명했다. 간략히 반복하면, 빛이 사람 시야의 여러 곳에서 나오는 전자기파 흐름 형태로 눈의 망막으로 들어간다. 망막의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도움으로 빛이 신경 임펄스로 변환되고, 이것이 신경 경로를 따라 사람의 뇌로, 구체적으로는 대뇌피질의 시각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 영역은 뇌 후두부에 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시각 정보는 대뇌피질의 시각 영역에서 처리된다. 

시각적 형상. 빛, 뒤집힌 이미지, 시신경 따라 전달, 뇌에서 재현.

 

이것은 이 과정의 객관적 측면에 관한 것이다. 주관적 수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 

주관적 세계의 관점에서는 시각 채널에서 인식이 일어난다. 즉, 사람이 뭔가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감각 정보) 수준에서 보이는 것에는 어떤 구별된 대상이 없다. 시각적인 어수선함과 혼잡과 혼란함만 있을 뿐이며, 이것에서 나중에 마인드가 (지력이, 뇌가) 구체적인 대상들을 구별해 낼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자.

지금 당신 컴퓨터 화면에 있는 그림을 잡아서 자세히 본다면, 이 그림이 수많은 색깔의 점들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들의 색상이 화면에 분산됨으로써 전체적으로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컴퓨터 화면의 그림을 이루는 수많은 색깔 있는 점들

 

즉, 모니터 화면은 사실상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일 뿐이다.

시각 정보도 감각 수준에서는 대략 그런 식으로 반영되는 것이니, 색깔 있는 점들의 집합이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점들마저도 없다. 그저 보이는 뭔가가 있는 것일 뿐이다.

 

짐작하건대, 젖먹이들은 세상을 이 (감각 정보) 수준에서 시각적으로 지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젖먹이들은 아직 외부세계와 색상을 모르고 세계가 여러 물체로 이뤄진다는 사실도 모른다. 세상에 나온 갓난애의 시력이나 시야에는 그저 뭔가를 본다는 인상과 느낌만 있을 뿐이지, 시각 채널에서 물체며 색상, 다른 현상들이 아직 나뉘지 않았다

 

그런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보는 것이 그저 색깔 있는 점이나 얼룩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상상해 보라. 

물체들을 구별하지 말고, 당신의 시야를 색상들의 난무처럼 보기만 하라.

뚜렷한 윤곽의 물체들이 없는 시각적 채널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뚜렷한 윤곽의 물체들이 없는 시각적 채널

 

이 그림엔 물체가 전혀 없다. 그저 색깔 띤 점들만 있을 뿐이다.

만약 이것이 시각 채널에서 흔히 일어나듯이 계속 움직이고 바뀐다면, 그건 대략 갓난애가 세상을 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우리는 색깔과 반점들을 자동으로 분리하고 강조한다는 것에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색깔과 얼룩들을 구별하고 선택하는) 이 작업은 이미 다음 단계의 인식 과정이다. 

 

청각 채널을, 듣기를 간략히 살펴보자.

감각 정보 수준에서 청각 정보의 개념은 시각 정보의 경우와 같다.

즉, 이건 어떤 소리 내는 물체를 구별함 없이 들리는 것 전부이다. 

 

청각 채널의 경우 감각 수준은 어수선한 소리일 뿐이다, 즉, 이런저런 소리가 번갈아 나는 것이다.

말소리며 목소리, 알고 있는 현상이나 물체의 소리 등을 식별하지 않으면서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에 귀 기울여 본다면, 이건 단지 어떤 소리의 흐름에 불과할 것이다. 이 소리의 흐름을 앞에 나온 그림의 반점들과 비슷하게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감각 수준에서 청각 정보는 그저 귀에 들어오는 것일 뿐이다. 

 

물론, 시각 채널에서든 청각 채널에서든 우리가 이런저런 물체를 구별하지 않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절로 구별된다. 하지만 빗소리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사람 목소리를 전혀 들어보지 못한 갓난애는, 비록 귀가 듣고 있다고는 해도, 이 여러 소리를 자신의 청각 채널에서 개개의 대상으로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갓난애한테 소음일 것다. 

(<구체적인 대상들의 수준>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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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인식 수단으로서 과학의 한계  



과학은 세계를 인식하는 수단으로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몇몇 미스터리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 과학의 이런 한계를 앞에서 일부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 한계를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서, 세계를 인식하고 묘사할 때 과학적인 방법을 맹목적으로 따르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 살펴보자. 


앞장에서 제시한 테제를 다시 꺼낸다. 사람이 언젠가 인식한 것은 전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주관적 경험이다. 어떤 사람의 주관적 세계가 객관적 세계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뇌와 의식은 실재(현실, 외부세계)의 모델을 아주 좋게 만들어 거기에 존재하게 한다.


객관적 실재란 과연 존재하지 않나?



창문이 없는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달린다고 상상해 보자.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차량 외부 카메라로 촬영되고, 도로의 장면이 자동차 안에 있는 화면에 나타난다. 즉, 자동차 내부 스크린에서 보는 것으로만 외부세계의 방향을 잡는 것이다. 만약 외부에 있는 것이 화면에 그대로 나타난다면, 공간에서 방향을 올바로 잡고 별문제 없이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화면에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가 표시되면, 예를 들어 다른 길을 가리킨다면, 외부세계 사건들에 대해 거짓된 정보를 얻고, 따라서 자동차를 잘못 몰아 자동차가 금방 어딘가에 부닥칠 것이다.


우리의 주관적 세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뇌가 객관적 실재에 상당히 부합되는 세계 모델을 만들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자기 몸을 제대로 관리하고 세계를 제법 정확히 반영한다. 하지만, 반복하건대, 세계가 우리의 주관적 실재에 아무리 정확하게 반영된다 한들, 이건 어디까지나 세계의 모델(모형)일 뿐이지 세계 자체는 아니다. 예를 들어, 전파가 주변 공간에 있음에도 우리는 그걸 못 본다. 


다시 과학으로 돌아가자. 과학은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훨씬 넘어섰다, 과학자들은 사람의 지각 기관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게 됐다. 현미경, 망원경, 가이거 계수기, 전압계, 전류계 같은 장치가 그것이다. 

과학자들이 이런 기구를 이용해 보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일반적 그림을 확장하게 됐다. 그리하여 새로운 자료를 추가하고 이 자료를 이론의 도움으로 보편화하게 됐다. 

예를 들어,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가 세포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더 큰 현미경이 등장하면서, 각 세포 안에는 염색체가 있고 이 염색체에 DNA가 들어있으며 이 DNA가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지식 덕분에 유전공학이 생겼으며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인위적으로 가능하게 됐다. 


과학자들이 이론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생각해 보자. 가장 분명한 사례로 물리학을 든다.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다들 알 것이다. 사과나무 아래 앉아서 영원불변의 것을 숙고하고 있었다. 그때 머리 위로 사과가 한 개 떨어졌고, 사과 떨어진 이유가 질량 가진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라는 점을 퍼뜩 깨달았다. 그 순간까지 물체들이 수도 없이 땅에 떨어졌지만 아무도 그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만물의 질서에 있었고, 또 사람들의 세계 모델이 그런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물체를 들어 올렸다가 놓으면 그건 으레 떨어지게 마련이야. 이건 누구나 평생 살면서 접한 경험이었어. 이 때문에 그런 현상에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지구에 끌리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가 그런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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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추정을 근거로 뉴턴은 질량을 알면 떨어지는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공식을 만들 수 있었다. 또 이 공식을 이용하여 그는 내던져진 물체들의 움직이는 궤적뿐 아니라 천체와 행성의 궤도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실재(현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통용되게 되었다. 세계의 모델이 그렇게 바뀐 것이다. 

이때 세계 자체는 물론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에 대한 시각이 바뀐 것이다


질량 가진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것이 궁극적인 진실일까? 아니다. 아gr인슈타인이 등장하여,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마치 휘게 하는 것 같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질량 있는 물체는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한다. 즉, 주변에 ‘깔때기’ 같은 것을 만들어서, 거기로 가까이 있는 물체들이 ‘굴러들어’ 간다. 이제 알고 보니,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질량 있는 물체들 사이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일 뿐이며, 이것이 물체들을 서로 휘게 하는 것이다.


gravity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대안 가설이 여럿 있다. 자, (공중에 솟은 물체는 떨어지는) 현상은 하나인데 이에 대한 설명은 아주 많다. 그런데 역사의 특정 시대에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지배한다. 이건 당연히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우리가 앞에서 알아본 대로, 이런 가설과 이론은 전부 객관적 실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론이란 모두 실재의 모델일 뿐 실재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세계의 구조를 어떻게든 설명하려 하면서 과학자들이 하는 것은 세계의 아름다운 모델을 만드는 것이며, 이 모델들이 최대한 더 많은 현상의 작용을 설명하고 묘사할 것이다.  


도식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물체의 낙하, 전기 현상, 소우주의 현상 등) 어떤 현상에 관한 관찰과 실험 자료가 있다. 이 현상들 이면에 무엇이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인지를 과학자들이 알아내야 한다. 이것은 이 현상을 예측하고 또 가능하다면 다루기 위해 필요하다. 과학자가 무엇을 하나? 그는 어떤 설명을 궁리한다. 즉, 가설을 세운다. 이후 이 가설을 토대로 다른 실험 데이터를 확인하고 검증한다. 

만약 가설이 모든 데이터에서 확인되면, 이론이 된다. 


이론이란 아이디어와 원칙의 체계로서, 과학자들이 세계에 대한 일련의 진리로 현재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이론이 더 오랜 세월 유지될수록, 더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이 실제 그렇다고 믿기 시작한다. 

이론이 단순한 세계 모델에서 세계가 실제 그렇게 이뤄졌다는 도그마로 바뀐다. 그리고 많은 과학자가 이 도그마를 진실로 받아들이면서 세계에 대한 다른 시각 갖추기를 멈춘다. 바로 이 때문에 세계의 구조와 작동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과학계에 들어서서 제 자리 차지하기가 아주 힘든 것이다


여기서 부정적인 현상이 두 가지 생긴다. 1) 사람들이 세계의 모델(모형)을 세상의 진짜 구조로 받아들이고 2) 사람들이 세계 구조에 관해 다른 모델들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 가장 슬픈 일은… 이 이론이란 것이 죄다 한갓 마인드의 장난일 뿐임을 일부 독단적인 과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과학의 첫 번째 한계는 ‘세계의 모델’을 ‘세계의 실제 구조’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며, 두 번째 한계는 세계에 대한 현재 이론 그림에 맞지 않은 것은 전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대기를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뉴턴 시대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어떤 상자에 대고 하는 말을 다른 도시에 있는 사람이 다른 상자로 듣는 장면을 그 시대 사람들이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들에게… 우리 주위에는 실제로 전자기장이 있어서 이것이 모든 공간에 퍼져 있고, 이 전자기장을 따라 전자기파가 빛의 속도로 이동하여 신호를 한 상자에서 다른 상자로 전송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당신을 미치광이나 요술쟁이로 여겼을 것이다. 그 시대 과학은 전자기파와 파동이란 걸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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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스토리를 이제 이런 얘기와 비교해 보자.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전달도 하고 과거를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모든 의식을 하나의 정신 공간으로 연결하는 정신 영역의 도움으로 수행되는데, 이 공간에서는 모든 의식적 존재의 모든 주관적 세계에서 나오는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언급을 어떻게 여기나? 이게 과학적인가? 헛소리는 아닌가? 


저런 언급이나 주장을 현대 과학이 헛소리라 치부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과학이 세우는 세계 모델에 ‘정신 영역/場’과 ‘정신 공간’ 같은 개념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전자기장을 통해 전자기파를 전달하는 상자 이야기와 현대 과학이 인정하지 않는 텔레파시에 관한 이야기에 무슨 차이가 있나? 차이가 전혀 없다. 과학이 자연의 어떤 현상을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뭔가를 연구하기보다는 뭔가를 부정하기가 더 쉽다. 


하지만 텔레파시에 관한 역사에서는 텔레파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지 못하게 하는 면이 한 가지 있다. 이것이 과학적 접근의 세 번째 한계요, 내 보기엔 가장 심각한 한계이다. 


문제는 과학이 오로지 외적 실재만 다룬다는 데 있다. 즉, 많은 이들이 보고 인식할 수 있는 것만 다룬다는 데 있다. 사람의 내적 실재를 과학은 다룰 수 없다. 이를 위한 도구가 과학에는 없다. 


텔레파시 현상으로 돌아가 보자. 이 현상을 과학은 왜 제대로 연구하지 못하나? 왜냐하면, 사람이 특정 순간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명확하게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생각은 그만이 알 수 있는 그의 주관적 실재에 해당한다. 따라서 메시지를 전달한 사람이 무엇을 생각했으며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무엇을 봤는지, 정확하게 말하기가 불가능하다. 


영기 靈氣



대부분의 영적 수행이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까닭은 어떤 주관적 세계에 외부인들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영적 수행과 실천은 사실상 주관적 세계의 현상을 다룬다. 영기/靈氣의 치유 관행을 예로 들자. 

손으로 치유한다는 것이 과학적 관점에서는 과학을 모독하는 것이며 사람들한테서 돈만 우려내는 짓이다. 하지만 영기의 치유 효력을 한 번이라도 감지하거나 자신이 치유자인 사람은 당신에게 영기 세션이 실제로 인체에 작용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 세션 동안 생기는 느낌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감각적 체험을 묘사하기는 아주 힘들다. 그건 당연히 사람의 내면세계에서 생긴다. 이 치유 세션에 참여한 사람의 정직한 증언 외에 다른 증거는 없다. 한데 이미 여러 해 동안 영기를 수행하는 대가들은 이 특별한 느낌 속에서 살며 그 뉘앙스를 구별하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 


과학은 아주 강력한 세상 인식 도구이다. 과학 덕분에 인류는 새로운 수준의 삶에 들어섰다. 우리가 보았거나 이용한 모든 테크놀러지는 과학의 선물이다. 과학 덕분에 우리는 우주로 나갔다. 과학 덕분에 우리는 대기를 통해 지구를 빨리 오갈 수 있다. 과학은 인간 존재를 아주 크게 바꿔 놓았다. 


그러나 그 모든 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주관적 세계 연구에서는 과학에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영적 수행과 종교가 있다. 영성과 종교는 내향성과 자기탐구의 방법으로 주관적 세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해하려 한다. 

우리는 앞으로 이 주관적 세계를 탐구할 것이다. 이것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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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인간의 주관적 실재(세계)의 구조  

 

지금까지,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은 일단 외적 실재와 내적 실재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외적 실재는 마치 사람 바깥에 있는 것 같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당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텍스트는 당신이 볼 뿐 아니라 당신이 보여주면 누구라도 볼 수 있다. 

내적 실재란… 당신만이 지각하는 것이다. 여기엔 생각이나 감각, 감정 등이 들어간다. 

 

이런 분류는 상당히 조건적이다. 또 이 분류는 사람의 주관적 실재(세계)를 대략 보여주는 모델일 뿐이다.

이번 장에서는 더 정확한 모델을 알아보자.

그러면 주관적 실재의 어떤 측면을 가리킬 때 더 정확할 수 있을 것이다. 

 

주관적 실재, 사람이 세상을 보는 구조

 

객관적 실재(세계)를 우리가 오감을 통해 지각한다는 것도 알아봤다.

이런 채널들이 사람에게 있는 까닭은 그에 상응하는 지각 기관이 인체에 있기 때문이다. 눈, 귀, 혀, 피부, 코.

이 각각의 지각 기관에서 나오는 신호를 뇌가 외부세계에서 들어오는 특정 유형의 정보로 해석하며, 이것은 다른 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질적으로 다르다. 

 

촉각과 후각, 미각은 편의상 정보 지각의 운동감각 채널이라 불리는 한 채널로 묶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를테면 미각이 냄새나 신체 감각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운동감각 채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신체 감각, 즉, 촉각(터치)이다. 따라서 운동감각 채널을 종종 신체 감각과 같은 것으로 본다.

운동감각 채널의 느낌에는 이런 것이 있다.

- 피부에 와 닿는 느낌  

- 뭔가에 손을 댈 때의 느낌 

- 대기 온도의 느낌 

- 모든 형태의 고통과 즐거움 

- 분노, 기쁨, 슬픔 같은 정서의 느낌 

- 사랑과 불쾌함 등의 감정 

- 평온과 온화함 등 섬세한 신체 감촉  

- 냄새  

- 맛 

 

눈으로 보는 것은 정보 지각의 시각 채널이라고도 불린다.

또 듣는 것은 종종 정보 지각의 청각 채널로 불린다. 

 

정보 지각의 시각, 청각, 운동감각 채널

 

각 정보 채널은 지각 기관기억이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자료를 받는다.

일단 우리는

지각 기관에서 바로 들어오는 자료를 외부 정보 채널,

기억에서 나오는 자료를 내부 정보 채널이라 부르기로 하자.

따라서 시각, 청각, 운동감각 채널 각각에 외부 채널과 내부 채널이라는 하위 채널이 두 개씩 있다. 

 

만약 정보가 내부 채널에서 나온다면, 우리는 정보가 ‘의식의 내부 화면’에 나타난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억과 상상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는 화면 같은 것이다. 내면의 소리와 느낌도 이 화면에 투사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즉, 내부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가 나타나는, 의식의 조건부 공간을 우리는 의식의 내부 화면이라 부를 것이다. 

 

내부 화면에 나타나는 대상이나 물체를 우리는 내부 형상(이미지)이라 부르겠다. 예를 들어, 빵을 상상할 때 머릿속에 그린 이 빵 형상은 내부 형상이다. 내부 형상에 시각적인 것만 들어가지는 않는다. 청각적 내부 형상과 운동 감각적 내부 형상도 있다. 예를 들어, 장미 향기를 떠올리거나 돌아가신 아버지 목소리를 떠올려 보라. 이것도 내부 형상(이미지)이다. 

 

의식의 내부 화면과 비슷하게, 외부 채널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의식의 외부 화면에 위치할 것이다. 의식의 외부 화면은 외부 정보 채널로 들어오는 정보가 나타나는 공간이다. 따라서 외부 화면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대상을 외부 형상(이미지)이라 부를 것이다. 

의식의 외부 화면과 내부 화면이 함께 의식의 (공통) 화면 혹은 의식을 구성한다. 

 

새로운 용어를 제법 많이 소개했는데, 이 단어들의 개념을 알 수 있도록 예를 들겠다. 그러면 이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분명해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이 단어들을 이용하여 사람의 주관적 실재와 관련된 정보를 서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정보 채널부터 시작하자.

여기에는 우리가 지금 순간에 경험하여 인식하는 것이 다 들어간다.

이 정보는 우리의 감각기관들에서 나온다. 

 

외부 시각 채널은 지금 당장 우리 눈이 보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이 외부 시각 채널에 있는 이미지다. 이것이 외부 이미지인 까닭은 당신의 감각기관인 눈에서 곧장 나오기 때문이다. 또 이것이 이미지인 까닭은, 우리가 알아본 대로, 우리 마인드가 세상 모델을 만들 때 마인드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우리의 외부 시각 채널은 검은 화면을 전달할 것이다. 물론 주의 깊게 보면, 눈꺼풀이 닫혀 있을 때 검은 화면만이 아니라 색깔 있는 얼룩들이 나타날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당신도 그럴 것이라 본다. 

 

외부 청각 채널은 거리에서 들리는 각종 음향이나 숨소리 등 지금 순간 귀가 듣는 소리를 전달한다. 익숙한 음향이나 목소리 등이 다 외부 청각 이미지이다. 익숙한 말소리, 새들 노랫소리, 자동차 소리 같은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하건대, 상상하거나 기억하는 게 아니라 지금 듣고 있는 것이라면, 이건 다 외부 청각 채널이 될 것이다. 지금 순간에 당신은 귀로 무엇을 듣고 있나? 

 

외부 운동감각 채널은 지금 당신 몸에서 나오는 모든 감촉과 감각이다. 당신 엉덩이 느낌이 지금 어떤가? 머리 부위에는 어떤 느낌이 있나? 지금 따뜻한가, 추운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느끼나, 즉, 당신의 지금 감정 상태는 어떠한가? 이 감정이 몸에 어떻게 반영되나. 지금 대기 중에 어떤 냄새가 있나? 공기 중에 지금 어떤 냄새가 있음을 안다면, 이 냄새는 외부 운동감각 형상(이미지)일 것이다. 통증 역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통증도 외부 운동감각 형상이다. 따스함, 추위, 기쁨, 분노 등이, 거기서 지금 순간에 뭔가를 느낀다면, 전부 당신 의식에 있는 외부 운동감각 이미지일 수 있다. 

 

외부 시각 채널과 외부 청각 채널, 외부 운동감각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의 총체가 외부 정보 채널이다.

다음과 같은 연습을 통해 더 확실히 이해하자.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지금 무엇을 듣고 있나?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나? 

지금 보고 듣는 것을 동시에 인식해 보라.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동시에 최대한 인식해 보라. 

이것이 다 외부 정보 채널이 될 것이다. 이것이 다 목전의 실제(실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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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외부 화면으로 돌아가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사람이나 자동차, 나무 등 어떤 이미지들이 스크린에 나타나고 움직이는 것을 본다. 혹시 영화 줄거리에 푹 빠져든다 해도 그것이 다 영화관에 걸린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언제든 상기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이 보는 모든 것 역시 어떤 영화라고 상상해 보라. 이 영화도 어떤 3차원 화면에서 벌어진다. 이 가상 화면이 바로 의식의 외부 시각 화면이다. 이것이 시각적 화면인 까닭은 우리가 당장은 시각 채널만 보았기 때문이다. 

 

같은 식으로, 지금 듣는 소리가 어떤 조용한 공간에서 울린다고 상상해 보라. 이것은 소리가 있게 하는 고요의 공간이다. 이것은 외부 청각 화면이 될 것이다. 

또 마찬가지로, 외부 운동감각 채널에서 나오는 당신의 감각과 감촉 역시 감촉할 수 있는 어떤 공간에서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라. 이것은 외부 운동감각 화면이 될 것이다. 

 

시각, 청각, 운동감각의 이 세 가지 의식 화면이 함께 의식의 외부 화면을 이룬다.

이것은 가상 화면으로서 외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의식의 내부 외부 화면

 

내부 정보 채널로 넘어가자. 

엊저녁에 뭘 먹었는지 기억한다면, 당신 눈앞에 그 음식 모습이 떠오를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떠올리기가 더 쉬운데, 이 경우 외부 시각 채널이 닫히기 때문에 그렇다. 

지난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리라. 

선인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라.

 

그런 것을 기억할 때, 그림이나 필름 같은 형태의 시각적 이미지가 당신 의식의 내부 화면에 나타났다. 그것을 당신 눈이 지금 당장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를 본다.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그림 같은 형태로 보는 것이 바로 내부 시각 정보 채널이다. 당신이 상상하거나 마음속에서 그릴 수 있는 이미지들이 이 화면에 나타난다. 

 

닭장으로 몰아넣으려 하자 놀라서 도망 다니는 닭을 상상해 보라. 내부 시각(영상) 화면에 나타나는 물체를 우리는 내부 시각(영상) 이미지라고 부를 것이다. 지금 경우에 이건 음식물, 선인장, 닭, 닭장 등이다. 그것을 떠올리거나 마음속에 그릴 때 당신은 그것을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머니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개가 어떻게 짖는지, 새들이 어떻게 노래하는지 등을 떠올릴 수 있다. 혹은 이웃에게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가 당신에게 어떻게 대꾸할지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이미지들이 의식의 내부 청각 화면에 나타나고, 이것이 내부 청각 이미지이다. 이 범주에 자신과 나누는 내면의 대화나 독백도 넣을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의 내면 대화에 내적인 장면들이 수반된다면, 내부 시각 채널이 섞이는 것이다. 

생각은 대개 내부 시각과 청각 이미지들이 한데 모이고 교체되는 식으로 일어난다.
이런저런 결과를 얻기 위해 당신은 이 이미지들을 조종한다.
이것이 바로
사고 과정이다. 

 

이 텍스트를 읽을 때, 내부 시각 채널에서 당신은 이 단어들을 종이 위의 텍스트로 본다.

이 텍스트의 의미를 당신이 이해하기 때문에, 이 텍스트에서 당신이 본 의미를 묘사하는 내부 이미지들이 당신 내부의 시각 청각 채널에 나타난다. 이것은 또 우리 의식에 내부 정보 채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내부 운동감각 채널에는 이를테면 연기 냄새나 레몬 맛이 어떤지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하던 순간을 기억할 때 느낌이 이 채널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 채널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장면을 떠올리라. 

햇살이 몸을 데워서 당신이 따스하게 된다. 평온한 느낌이 당신을 감싼다. 당신이 먹고 있는 파인애플의 맛과 냄새가 다 좋다는 느낌을 만든다. 

지금 느낀 것이 전부 내부 운동감각 채널의 이미지이다. 물론 당신은 뭔가를 상상했을 것이다. 이건 이미 내부 시각적 채널의, 또 아마도 청각적 채널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에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어떻게 잠자는지에 주목했다면, 모든 정보 채널의 이미지들이 당신의 내부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에게 어떤 필름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긴다. 한데 그건 나름의 시나리오대로 전개된다. 당신은 이 상연을 관찰할 뿐이다. 당신은 점차 이 사건들에 몰입하면서 자신을 잊고 꿈에 완전히 들어서게 된다. 

꿈 자체가 우리에게 아주 생생해 보인다. 거기에는 시각, 청각, 운동감각의 채널이 다 있다. 현실과 꿈의 차이를 보지 못할 만큼 모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알아둘 점은, 이 이미지가 전부 당신의 내부 이미지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꿈꾸는 순간 당신의 감각기관들은 그런 것을 전혀 인식하지 않으니까. 

 

잠시 정리해 보자. 

3가지 내부 하위 채널이 (시각, 청각, 운동감각) 전부 합쳐져서 정보의 내부 채널을 나타낸다. 이 채널의 정보는 전부 의식의 내부 화면에 있다. 이 화면은 정보의 내부 채널에서 나오는 이미지들이 나타나는 조건부 공간이다.

 

정보 채널

하위 정보 채널

설 명

사 례

시각 채널

외부 시각 채널

 

지금 당장 내 눈이 보는 것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구체적인 물체나 과정

 

시각 채널

내부 시각 채널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장면이나 영상으로 내가 상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

 

기억하거나 상상하는 장면,

그림처럼 생생한 생각

청각 채널

외부 청각 채널

 

지금 당장 내 귀가 듣는 것

 

 

지금 내 귀에 들어오는 목소리나 음향

 

청각 채널

내부 청각 채널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음향이나 말소리로 내가 상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

 

내적 대화나 독백,

혼자 속으로 하는 판단, 기억하는 목소리,

상상하는 대화나 음향

 

운동감각 채널

외부운동감각채널

지금 내가 느끼고 감지하는 것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신체 감각, 통증, 감정, 맛이나 냄새

 

운동감각 채널

내부운동감각채널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느낌이나 감정으로 내가 기억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

 

신체 감각이나 냄새, , 피부 접촉 등에 관한 기억

 

정보 채널, 의식의 화면

 

어린애들이 어떻게 노는지 관찰하면, 아이들은 자기네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상상의 세계를 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에게 연필이 있을 때, 그건 그냥 연필이 아니다. 로켓이나 주사기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을 우주비행사나 의사로 느낀다. 베개나 쿠션들이 아이에겐 성채가 된다. 탁자는 집이 되고. 아이는 장난감들과 이야기 나눈다. 

 

이때 아이에겐 외부와 내부 두 채널에서 정보가 동시에 들어온다고 할 수 있다.

상상은 내부 채널의 기능이다.

외부 채널의 정보가 내부 채널의 정보와 섞여서 기묘하게 뒤섞일 때, 사람 의식에서 현실이 동화처럼 된다. 그때 평범한 물건들이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바뀐다.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성인들 경우에도 외부세계와 내부 채널들의 정보가 뒤섞이는 경우가 있는데, 단지 추상적 실재(세계, 현실)에서만 그렇다. 성인의 내부 채널은 그가 만드는 세상 모델과 내면 대화에서 나오는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한다. 성인도 순수한 외부 실재는 역시 못 본다. 이 외부 실재를 그는 자신의 세계관 필터와 자신의 세상 모델을 통해 걸러낸다

그때 ‘흑인은 다 폭력 집단’이라고 믿는 백인의 의식에서는 단지 그 믿음 하나 때문에 흑인이 폭력배가 되고 만다. 그때 점토 조각은 조각가의 의식에서 그냥 한 점의 찰흙이 아니라 여인의 형상이 된다. (*피그말리온). 그때 빈집은 사업가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상점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사람의 주관적 세계 모델을 열거했는데, 이건 다 모델일 뿐이기에, 이것을 어떤 사람의 진정한 의식 장치로 볼 필요는 없다. 이 모델은 여느 모델과 마찬가지로 의식 과정의 일부 측면만 반영한다. 이 모델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어떤 사건의 어떤 측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모델의 본질이다. 즉, 실재의 어떤 측면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 

 

지금까지 의식의 구조와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한 새로운 용어들은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이 용어들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의 여러 특정 측면을 가리킨다. 이 측면들을 빨리 언급하기 위해 몇몇 용어를 소개했다. 이 용어와 단어들의 기능은 <말에 관한 장>에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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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궁금증은 이런 것이다. 

뇌에 신경 임펄스 망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며 어디에 위치하나? 

우리가 지금 창 너머로 직접 바라보는 나무의 모습과

사람 머릿속 신경 임펄스 다발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 임펄스들의 배열을 무엇이 창밖의 나무 모습으로 인식하게 하나? 

창밖의 나무를 무엇이 직접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인가? 

 

과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뇌에서 의식을 담당하는 영역을 찾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설령 의식 담당하는 뇌 영역을 찾아낸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고 본다.

결국, 이 영역 또한 뒤엉킨 뉴런 다발이지 않겠는가.

의식을 뉴런 망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을까? 

 

cyber head 인공 뇌

 

로봇을 상상해 보자.

과학이 발달해서 사람 머리처럼 설계된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치자. 거기엔 눈 대신 비디오카메라가, 귀 대신 마이크가 있다고 하자. 카메라와 마이크에서 나오는 신호들이 (뇌처럼) 수십억 개의 극미한 요소들로 이뤄지는 블록으로 들어가고, 이 각각의 요소에는 여러 개의 입력과 하나의 출력이 있다. 이 요소들은 전부 인간 뇌의 뉴런들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게다가 과학자들이 노력한 결과 뉴런의 인공 대체재를 이용하여 어떤 사람의 뇌를 정확히 복제했다. (여러 사람의 뇌는 뉴런의 연결 도식에 따라 서로 구별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뇌를 모델로 삼을 뿐이다.) 

 

이 로봇 머리가 그것이 모델로 삼은 사람의 뇌가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이 로봇에게 의식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게 사람의 의식과 같을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실험할 수 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 수신기로 남겨두자. 하지만 사람 뇌의 모델 대신 카메라와 마이크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할 보통 컴퓨터를 설치할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 메모리에 대용량 정보를 저장할 프로그램을 설치할 텐데, 여기에는 로봇의 카메라가 보는 방향으로 사람이 고개 돌린다면 보게 될 장면이 들어간다. 

자, 컴퓨터 메모리에 어떤 장면이 생긴다.

이 장면을 인식하는 누군가나 무엇인가가 있나?

혹은 이건 그저 쇳덩어리에 불과하며, 거기에 의식은 없는 것인가? 

 

이 전자 기계에 의식이 없다면, 사람에겐 왜 의식이 있나?

결국, 인간의 뇌도 본질상 로봇의 ‘뇌’처럼 여러 구성요소들로 이뤄진 장치가 아니던가.

만약 로봇의 첫 모델이 (인간 뇌를 정확히 복제한 것이) 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로봇의 뉴런 망 조립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의식이 나타난 것일까? 이 뉴런 망이 의식을 지니려면 뉴런이 얼마나 필요한가? 

 

이건 다 어려운 질문이고, 과학은 여기에 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에는 인간의 (혹은 로봇에 주관적 내면세계가 있다면, 로봇의) 주관적 내면세계 연구에 필요한 도구가 없으니까. 게다가 로봇에도 인간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것을 확증하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로 말하자면, 그들이 나와 비슷하니까 필경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의식이 있을 것이며 그들도 세상을 보고 느낄 것이라고 우리는 그냥 결론 내린다. 이 결론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와 같은 게 있다’는 유사성에 따라 나온 것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로봇이나 컴퓨터 같은 인공 장치들도 마찬가지다. 로봇에게 의식이 있을지 아닐지를 우리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로봇이 인간과 똑같이 행동한다고 해도, 로봇에게 일어나는 것을 전부 인식하는 뭔가가 로봇 안에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심지어 로봇이 보통사람처럼 정말 의식을 갖추고 있다 해도, 정말 그렇다는 것을 일관되게 확인할 수단은 없다. 

 

하지만 사실을 직시해 보자. 나에겐 의식이 있다.

내 머릿속에 뉴런 네트워크와 신호들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내가 인식하는 그대로 세상을 인식한다. 내 몸과 뇌의 형태로 물리적 실재가 (실체가) 분명히 있고, 내 감각 경험을 나타내는 나의 주관적 실재가 (실체가) 있다. 이 두 실재가 서로 의존하긴 해도 (내 뇌가 손상되면, 내 감각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 철학자 켄 윌버(Ken Wilber)는

객관적 실재가 있으며 그 대표자가 우리 몸이고,

주관적 실재가 있으며 그 대표자가 우리의 모든 감각 경험임을 확인해 보라고 제시했다.

 

그렇다면 우리네 지각 개념에서 객관적 실재(실체)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상당히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모든 사람에게 하나인 어떤 세계가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는 지금 여기에 있으며 일정한 형태를 지닌다. 이 의자가 1분 뒤에도 같은 형태로 있을 개연성은 아주 높다. 당신이 이 의자를 본다면, 이게 예를 들어 검은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친구에게 이 의자가 무슨 색이냐고 묻고 친구가 솔직한 사람이라면, 역시 검은색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일도 당신은 이 의자를 이 자리에서 보게 될 것이다. 못 보게 된다면,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확신할 것이다. 

 

당신이나 당신 친구 등 모든 사람의 이런 생각과 경험을 보면, 우리가 다 거기 살고 있으며 모두에게 공통된 어떤 세계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객관적 세계이다.

이것은 상당히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나름대로 존재 법칙을 가지고 있다. 이 법칙을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 등이 연구한다. 이 법칙을 알고 이 세계에서 얻은 경험 덕분에, 우리는 여러 사건을 웬만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고 이 세계를 바꾸고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다른 설명이 있다.

만약 물리학을 아직 모르는 아이에게 이 세계가(세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다면,

아이는 사물이 있으며 그것들에 어떤 형태와 색깔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들은 자리를 옮길 수 있으며, 땅과 하늘, 나무 등이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세상에 대한 관념이 단순하고 일상적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 세계에서 방향 잡고 이동하고 기본적으로 생존하기에 충분하다. 

 

물리학자에게 물질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다면,

그는 세계가 물리적 진공인 4차원 시공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진공 속에서 기본 입자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사라진다. 이 입자들은 본질상 물리적 진공 상태에서 에너지 파동이다. 기본 입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원자를 만든다. 원자들이 결합하여 분자를 만든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분자들로 이뤄진다

이때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는 물리학자가 보기엔 사실상 원자와 분자들이 의자 형태로 특수하게 모인 집합이다.

세계에 대한 그런 관점은

빛이 무엇인지,

물체들의 색깔이 왜 여러 가지인지,

쇠는 시간이 지나면 왜 녹스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

고대에는 뇌우를 제우스의 분노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뒤 자연에서 전자기 현상을 연구한 이후에는 뇌우를 구름 속에서 상반되게 충전된 양극 사이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강력한 방전으로 여기게 됐다. 

 

예를 하나 더 들자.

뉴턴의 발견 이후 객관적 세계질량 있는 물체들이 존재하는 3차원 공간으로 제시됐다. 시공간에서 물체들의 움직임은 뉴턴의 운동 법칙으로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객관적 세계에 대한 이런 설명은 아주 오랜 세월 최종 진리로 여겨져 왔다. 뉴턴의 공식들이 지구와 우주에서 여러 현상을 예측할 수 있게 했다. 자연과 현실의 실재가 그렇게 설계되고 작동한다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명백했다.

적어도, 뉴턴의 역학(力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실험들이 나올 때까지는 말이다. 

 

입자, 파동

그런데 작은(미시) 세계 (소우주, microcosm), 즉, 원자들 세계의 구조에 관한 데이터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이 수준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이 수준에서 전자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그때 닐스 보어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나타나서 ‘자연이나 현실의 실재가 어떻게 설계됐고 작동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뉴턴의 법칙들은 폐기되지 않고 거대 세계 (대우주, macrocosm), 즉, 물체들 세계를 설명하기에 더 정확한 법칙들의 근삿값이 된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물리학자들이 다시 여러 실험을 해 보았는데, 이 실험들을 실재(reality)에 대한 지금의 인식 체계나 이론 틀에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게 됐다. 끈 이론, 루프 이론 등이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당연하고 합당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구조에 관해 현재 인정받는 이론은 참일까?

이 세계가 정말 현대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대답은 자명하지 않나 싶다. 즉…

아니다. 미래에 새로운 아인슈타인이 나타나서 모든 것이 확 뒤바뀌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얘기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어떤 객관적인 실재가 (세계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거기에는 어떤 안정성과 존재 법칙들이 있으며, 그래서 그것을 예측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어린애나 고대인들의 묘사부터 시작해서 현대 과학의 설명에 이르기까지, 실재를 (현실을, 물리적 세계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방법은 모두 이 실재 자체가 어떻게 이뤄지고 작동하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건 다 실재 자체가 아니라 이 실재의 모델들일 뿐이다. 그건 다 실재를 예측하고 조종하거나 조작할 수 있게끔 이 실재를 설명하는 방법일 뿐인 것이다. 

 

셋째,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다 허위요 거짓이다.

세계의 다양한 측면을 그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론이란 것은 죄다 세계에 대해 우리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이건 세계가 아니라 세계의 모델이다.

한데, 모델은 그게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원본을 결코 정확하게 복제하지는 못한다.

이건… 서울 지도가 서울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도시의 지도는 실제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도식적 모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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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눈 얘기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 - 객관적인 실재는 (현실은, 세계는) 분명히 있어,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우린 모르며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또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실재가 (현실이) 어떻게 구성됐고 작동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이요 형상이다. 이건 우리네 머릿속에 있는, 객관적 실재의 모델일 뿐이다. 그 이상이 아니야. 

 

비록 객관적 실재를 끝내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든 그럭저럭 지각한다.

우리의 신경계가 작동하는 덕분에, 특히 뇌 덕분에, 우리는 외부 실재에서 (외부세계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는다.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가? 

 

앞서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사람이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는지 자세히 알아봤다.

외부세계는 공간에 있는 광파와 음파, 갖가지 분자들로 가득하다.

객관적 세계의 이 물리적 발현을 인체가 감각 기관을 통해 뇌의 임펄스로 바꾸고,

이 임펄스를 뇌가 시각적, 청각적, 운동 감각적 (촉각, 냄새, 맛) 이미지로 해석한다.

사실상 이런 과정이 일어난다. 즉, 사람 뇌가 거기로 들어오는 신호들을 이용하여 외부세계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외부세계의 지각, 뇌에서 뉴런의 활동, 주관적 형상

 

 이 그림에서는 한 가지만 빼고 다 올바르게 표현됐다.

외부의 ‘객관적 실재’가 여기서는 개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가 묘사하기 불가능한 ‘무엇’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무엇인가’를 오늘날 과학은, 앞에서 알아봤듯이, 물리적 진공 상태에서 움직이는 기본 입자들의 집합으로 설명한다. 

 

자, 우리에겐 객관적 실재(세계)가 있는데, 이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다. 사람 바깥에 있는 이 객관적 실재는 신경 임펄스의 활동 형태로 뇌에 반영된다.

이와 달리 우리에겐 또 주관적 형상이 있는데, 이것은 신경이 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때 사람 의식에 나타난다. 이것이 주관적 실재(세계)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뇌는…

객관적 실재가 어떤 사람의 주관적 실재에 반영되게 하는 신체 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과학은 아직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사람의 의식이 무엇이며 주관적 실재가 무엇인지 과학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마다 관찰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아본 것에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나?

1. 특정 순간 당신이 지각하는 것은 죄다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당신의 뇌와 의식이 만들어 낸 주관적 세계(실재, 현실)이다. 

2. 당신 개인의 주관적 세계를 당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왜냐면 특정 순간에 당신이 인식하는 것은 바로 당신 뇌의 작업 결과니까 말이다. 과학자들이 당신 뇌의 일상적인 활동을 고려한다 해도, 이 신경 임펄스를 당신이 인식하는 세계의 형상으로 어떻게 전환할지 알지 못한다. 

 

이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것은 전부 우리의 뇌와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결국, 우리 각자는 자신의 뇌가 만드는 가상현실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 현실이 (실재가) 객관적 현실을 (실재를) 어떻게든 제대로 반영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즉, 우리 앞에 어떤 물체가 있을 때, 이 물체의 실제 규모에 걸맞은 크기와 형태를 지니는 주관적 형상이 우리의 뇌와 의식에 나타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물체를 정상적으로 접하고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외부의 객관적 실재 (현실, 세계) 전반과 서로 정상적인 작용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역설이 몇 가지 있다. 

주변에서 파란색 물건을 찾아보라.

당신은 파란색이 어떻게 보이는지 안다.

그건 파랗게 보일 것이다. (^^)

파란색을 “이건 파란색이야!” 하는 말 외에 달리 어떻게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 있나?

 

당신이 파란색으로 지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파란색으로 받아들인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파란색을 어떻게 보는지 이해하려면, 그 사람 머릿속으로 당신의 의식이 스며들어야 한다. 이게 가능한가?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주관적 세계를 절대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파란색이 당신이 지각하는 색깔과 같은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혹시 당신이

“영적인 힘이나 심령술, 초감각으로 다른 사람의 주관적 세계를 볼 수는 없을까?”

하고 말한다면, 즉,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파고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반박한다면…

그렇게 하여 당신이 보는 것도 결국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주관적 세계’도 어쨌든 그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주관적 세계 이외에 그 무엇도 결코 못 봤고 앞으로도 못 볼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 인식한 것은 전부 우리의 주관적 세계를 벗어난 적이 결코 없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모조리 우리의 주관적 세계다.

초감각적 지각이나 주술적 행위 등이 모두 그걸 행하는 사람의 의식에서 벌어진다. 심지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세계나 감정을 느끼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건 전부 우리 의식에서, 우리의 주관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재미난 역설이 하나 더 있다. 널리 퍼진 수수께끼 하나. 

인적 없고 울창한 숲속에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날까? 있을까? 

우리가 이제는 여기에 답할 수 있다.

그 소리는 없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는 그것을 듣는 사람이나 생물의 주관적인 느낌이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아무도 인식하지 않는다면, 객관적 실재(세계)에서 이건 공기 흔들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봤듯이, 공기의 파동(음파) 자체에는 소리가 없다.

소리란…

떨어지는 나뭇잎의 공기 파동이 사람 귀에 들어올 때 사람 뇌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없다면 (혹은, 인식하는 존재가 없다면) 소리도 없을 수밖에. 

 

키보드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물체를 안 보는 동안에는 그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예를 들어, 당신이 방안에 앉아 있다. 앞에 컴퓨터 자판이 있다. 당신 눈길이 거기로 향한다. 즉, 이 자판이 당신 뇌에 신경 활동 형태로 반영되고, 이 신경 활동이 당신 의식에 이 자판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자판에서 눈길을 돌리는 즉시, 당신 뇌와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그 이미지가 사라지고, 자판이 있는 자리에는 (현대 물리학의 관점을 취한다면) 어떤 객관적 실체가 원자와 분자들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 뇌와 의식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자판을 만들어 낸다. 

 

달리 말해, 우리의 뇌와 의식이 없다면…

오직 있는 것만, 즉, 객관적 실재만 (실체, 현실, 세계만) 있을 뿐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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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지각의 물리적 현상  

 

지각하는 과정이 어떤지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과 생물학의 과학적 자료를 몇 가지 살펴본다.

 

먼저 시각 채널

시각은 정보가 가장 많은 정보 채널이다. 

이걸 통해 외부세계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얻는다. 

시각은 주변 환경에서 빛을 지각하는 것임을 우리는 물리학을 통해 안다. 지구에서 빛의 가장 큰 원천은 태양. 빛은 본질상 특정한 주파수를 지니는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이다. 넓은 뜻으로는, 가시광선(可視光線)뿐 아니라 자외선과 적외선도 포함된다.

 

이 파동을 우리는 주관적으로 특정한 색깔로 지각한다. 예를 들어, 400-480 테라헤르츠 주파수의 빛을 빨간색으로, 620-680 테라헤르츠 주파수의 빛을 파란색으로 지각한다. 이런 빛의 주파수를 우리가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지는, 뒤에서 논의할 것이다. 사실 전자기파 복사(輻射)의 전체 주파수 범위를 취한다면, 우리가 색깔로 인식하는 것은 아주 짧은 주파수 범위에 불과하다. 나머지 주파수 범위를 우리는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티브이가 받는 전파가 물리적으로 공간에 존재하는데도 우리는 못 본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의 광선에는 다양한 주파수의 전자기파가 다 포함돼 있다. 사실, 이 빛의 광선에는 거의 모든 주파수의 파동이 다 들어있다. 이 빛 광선을 백색광이라 부른다. (*백색광 - 태양빛처럼 각 파장의 빛이 적당한 비율로 혼합된 빛.) 백색광에 모든 주파수의 파동이 다 있음을 보려면, 이 빛을 프리즘을 통과시키면 된다. 

 

백색광이 프리즘을 거쳐 여러 색깔로 분화되다

 

백색이 모든 색상의 무지개로 분리됐다. 프리즘이 여러 주파수의 파동을 여러 방향으로 나눈 것처럼 됐다. 

 

이제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어떻게 여러 색상을 지니게 되는지 살펴본다. 

백색광이 물체에 와 닿으면 물체 표면이 여러 주파수의 파동을 거의 다 흡수하고는 일정한 좁은 주파수 범위의 파동을 되쏜다. 예를 들어, 백색광이 붉은색 물체의 표면에 닿으면 물체는 붉은색 주파수와 다른 주파수들의 파동을 죄다 흡수한 뒤 붉은색 주파수의 파동을 표면에서 되비치는 것이다. 

여기서 ‘빨간색 주파수’라고 말한다 해서 파동이 실제로 빨간색을 지닌다는 뜻이 아님에 유념하라. 이 파동의 주파수가 400-480 테라헤르츠 범위에 있다는 뜻일 뿐이다. 광파 자체에는 그 어떤 색깔도 없다. (*光波 -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진동하며 진행하는 전자기 파동 중 가시광선에 해당하는 빛) 

 

따라서 빨간색 주파수의 광파는 물체에서 여러 방면으로 반사된다. 물체에서 반사된 이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여러 물체가 우리에게 여러 색깔로 보이는 까닭은... 그 물체들의 표면이 거기 닿는 백색광을 서로 다르게 반사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은 적색 범위 파동을 주로 반사하고 어떤 것들은 녹색 범위 파동을 반사한다. 또 어떤 것들은 거의 모든 파동을 흡수하는데, 이때 물체는 우리한테 검은색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주파수의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 

안구 망막에는 빛 수용체인 원추세포와 간상세포가 있다. 또 원추세포에는 3가지 유형이 있어서, 어떤 것은 청색-보라 영역의 빛을 가장 잘 받아들이고, 어떤 것들은 황록색 영역을, 또 어떤 것들은 적색 영역을 가장 잘 받아들인다. 즉, 서로 다른 원추세포들이 일정한 주파수 범위의 광파에 반응한다. 

(*간상세포 – 척추동물의 눈의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세포. 막대 모양으로 명암을 느낀다. 

*원추세포 – 척추동물의 망막에 있는 시세포의 하나. 비교적 밝은 곳에서 물체를 보는 일과 색의 구별을 담당한다.)

 

물체 표면이 빛을 반사하고 이것이 우리 눈에 들어오고 눈이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다음에 망막의 원추세포들이 신경 임펄스를 만든다.

이 임펄스가 안구 망막에서 신경 섬유를 (뉴런을) 따라 뇌로 간다. 인간 뇌에는 눈에서 오는 신호를 처리하는 영역, 뇌의 시각 영역이 있다. 뇌 자체는 거대한 뉴런 다발이다. 이것은 신경세포체와 하나의 축색돌기와 수천 개의 가지돌기로 이뤄지는 세포들이다. 

 

신경세포체, 가지돌기, 축색돌기

 

가지돌기들은 뉴런(신경세포)에서 나뭇가지처럼 뻗은 것으로서 다른 뉴런의 축색돌기에서 나오는 흥분 신호를 받아들인다. 축색돌기는 뉴런에서 나온 긴 돌기로서, 그 뉴런에서 다른 뉴런들로 흥분 신호를 전달한다. 그런데 축색돌기는 말단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그 뉴런에서 몇 개의 뉴런으로 동시에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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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뉴런은 전부 축색돌기와 가지돌기들을 거쳐 서로 연결된다. 수천 개의 가지돌기를 거쳐서 한 뉴런에 수천 개의 뉴런이 연결되고, 자체 축색돌기를 거쳐 자체 신호를 그 뉴런에 전달한다. 이후 이 뉴런은 모든 신호를 하나로 모아서, 이것을 자체 축색돌기를 거쳐 다른 연결된 뉴런들에게 전달한다. 그 결과 수십억 개의 뇌세포를 연결하는 일종의 뉴런 망이 나온다. 

 

뉴런 망

 

뉴런 이외에 뇌에는 또 중추 신경계 조직을 떠받치는 세포인 신경 교세포들이 있다. 이것은 뉴런의 물질대사를 수행하며, 뉴런의 시그널 전달을 촉진한다. 이것들 외에 다른 것이 뇌에는 사실상 전혀 없다. 

그렇게, 눈에서 나온 신호가 뒤통수 쪽에 있는 뇌의 시각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 신호가 다음에 시각 영역에서 분리되어 대뇌피질도 포함하는 뇌의 다른 영역들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신호들이 가시적인 이미지로 변환된다. 이것을 우리가 지각하는 것이다.

뇌에는 그 어떤 그림이나 장면이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거기 있는 것은 전부 한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전달되고 이동하는 신경 임펄스뿐이다. 

뇌는 서로 다른 원추세포들이 서로 다른 주파수의 광파에 반응한다는 이유 하나로 서로 다른 범위의 광파들을 구별한다. 다음에 이 원추세포들에서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