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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08 하품하는 호모 사피엔스 (?)
  2. 2019.07.18 루덩의 악마들 8편 6
  3. 2019.07.11 루덩의 악마들 2편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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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품에 관한 고상한 수다 

 하품의 과학과 기술 

 

우린 왜 하품하는지,
이 동작에는 왜 전염성이 있는지,
이것이 공감 능력이나 성적 매력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우리 정신에 얼마나 유용한지,
이 이상한 습관을 이롭게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우리는 다 하루에 평균 5~10회 하품한다.

우리는 수태 후 20주일쯤 지나 자궁 안에서 벌써 하품하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한다.

사람뿐 아니라 거의 모든 포유류가 하품한다. 

 

물고기는 활동을 바꾸기 전에, 펭귄은 구애하는 동안 하품한다. 말과 바다사자, 호랑이, 개, 고양이가 하품한다. 종종 떼를 지어 하품하는 고등 영장류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기린과 돌고래만이 하품하지 않는 듯싶다. 어쩌면 그들에겐 완전히 깊은 수면 단계가 없기 때문일까. 뇌 반구 한쪽이 자는 동안 다른 쪽이 쉬니까 그런가. 

 

하품하는 사람과 고양이
<하품하는 사람의 자화상> (1783) - 조셉 듀크레 (Joseph Ducreux, 1735~1802, 프랑스의 화가, 조각가)

하품이 다양한 동물들한테서 아주 틀에 박히고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는 만큼,

아주 오래된 행동 조절 메커니즘의 하나로 보인다.

1838년 찰스 다윈의 일기.

「하품하는 개나 말, 사람의 모습을 보면, 모든 동물이 같은 패턴에 따라 지어진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하품에는 이득 되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하품의 원인과 기능이 과학자들에겐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하품이 그저 피곤함이나 따분함의 표시가 아니라 훨씬 더 흥미로운 무엇임을 알고 있다.  

 

하품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많다.

*스트레스 상태에서 경계심을 간직하거나,

*수면과 불면의 주기를 조절하거나,

*과열된 뇌를 식히거나,

*혈액에 산소 공급을 하품이 돕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웃음이나 울음과 달리 하품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듯싶다. 

하품한다는 게 썩 점잖지는 못해도 기분은 좋아진다.

쾌락주의 점수 방식으로 보자면 10점 만점에 8.5나 된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알고 보니, 하품은 기분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아주 유용한 것이기도 하더라. 

 

목소리 요법에서는 의식적인 하품을

실패에 대한 두려움 제거나 지나친 목 긴장 예방의 수단으로 이미 수십 년 동안 이용하고 있다.

현대 신경생리학자들 가운데는 하품이 신경성 스트레스를 없애고 공감과 집중력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든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짧은 휴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하품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하품은 다른 걸 다 차치하고 성적 매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Andrew Newberg와 mark Waldman은 하품이 <강력한 신경 자극 도구>라고 여긴다. 그들은 심지어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 심리치료 및 영적인 묵상 실천에 하품을 도입하고 기억력과 인지 기능 향상에 의식적인 하품을 이용하라고 권한다.

그들 견해로는, 하품이 공감 능력을 키우는 까닭에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좋게 만들 수 있다.  

 

포옹하는 연인
“함께 있으면서 내밀하고 무간한 삶을 키우고 싶다면, 서로 다정하게 하품하는 법을 익히라.”

뇌 스캔 실험 결과하품이

공감과 사회적 지각,

자기구현,

기억 각성

등의 생성과 직결된 뇌 영역을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품은 전염성이 무척 강하다. 하품하는 사람을 보고 나서 열 명 중 여섯이 자기도 하품하기 시작한다. 

하품에 충실해지려면, 하품에 관해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글을 작성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하품했다. 지루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에서 당신도 기지개 켜고 하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하품 과정은 생리적으로 꽤 간단하다.

숨을 길게 들이쉰 뒤 짧은 호흡 멈춤이 따르고, 그 어간에 공기가 복부까지 이른다.

다음에 짧은 날숨이 나오는데, 이와 동시에 눈물샘이 종종 자극된다.

그래서 어떤 배우들은 눈물 짜는 장면을 준비하면서 무대 뒤에서 열심히 하품한다.

하품할 때 비강 용량이 몇 배 더 커지면서 유스타키오관이 덮여, 일시적으로 청력이 거의 사라진다. 

 

유스타키오관. 비강, 청각 채널,
중이(中耳)와 인두 연결하는 관. 길이 3~4cm이며 점막으로 덮여 있다. 위쪽 끝은 좁고 뼈로 둘러싸여 있으며 인두에 가까워질수록 넓어진다. 고실 안의 기압을 바깥 기압과 같게 유지하고 고막이 쉽게 진동하게 하는 역할.

 

하품은 이미 어머니 자궁 속에서 처음 등장하지만 (초음파 검사로 분명히 볼 수 있다),

하품의 ‘전염’ 특성은 6세가 되어서야 나타난다.

어쩌면 하품이 폐의 성장과 턱관절 발달을 촉진하면서 태아의 성장을 돕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 먹으면서 하품은 사회적 기능도 띠게 된다.

예를 들어,

일부 인류학자들은 전염성 강한 하품을 통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잠자기를 익힌 것으로 추정한다. 

 

 

하품이 생리적 행위만은 아니다.

사람은 하품으로 어떤 메시지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지루하다든지, 피곤하다든지, 잠재적으로 성관계에 준비돼 있다든지... 

만약 하품할 때와 성행위 때 사람의 표정을 비교해 본다면, 이 마지막 항목에 그리 놀라지는 않으리라. 어떤 면에서 그 두 가지는 놀랄 만치 흡사하니까. 

 

몇몇 고대 자료가 보여주듯이, 인도에서는 하품이 구애 의식의 일부였다. (그런데, 짝짓기 유희 중에 펭귄들도 하품한다).

신기하게도, 동물들 경우엔 수컷이 더 자주 하품한다.

다른 종과 달리 인간은 일 년 사시사철 성적 활동을 유지하며, 하품 횟수도 남녀가 거의 똑같다. 

 

다리미질하면서 하품하는 여인
<다리미질하는 두 여인> (1884) -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1834~1917, 프랑스 화가, 인상주의 유파의 대표자)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Robert Provin은 섹스와 재채기처럼 하품에는 유쾌한 방전의 준비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 일은 일단 시작되면 끝까지 간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품할 때나 성적으로 흥분할 때나 똑같은 신경화학 물질이 분출된다.

이 두 현상 뒤에는 아마 공통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동안 어떤 사람들한테서 나타나는 특이한 부작용이 확인해 준다. 

대체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성적 욕망을 억누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오르가슴을 수반하는 강한 하품을 유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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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과학자들은 하품이 거울 뉴런의 기능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본다.

알려진 대로, 하품의 ‘전염성’은 두 사람의 친밀도에 달려 있는데, 이런 패턴은 사람뿐 아니라 보노보 원숭이들한테서도 엿보인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의 하품보다는 친한 사람의 하품에 더 크게 반응할 것이다. 

 

함께하는 하품이 좋은 관계의 지표가 될 수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니,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과 함께 하품하지 않게 됐다고 해서 사랑이 식었다고 성급하게 결정 내리지는 마시라.

어쩌면 당신이 그 사람을 덜 피곤하게 했을지도 모르지. 

거울 뉴런
거울 뉴런 - *원숭이가 행동을 궁리하여 실행하거나 다른 녀석이 실행하는 걸 볼 때 활성화된다. *언어는 그렇게 등장했으리라고 추정된다. *사람들의 거울 뉴런은 브로카 영역에 있다.

 

하품의 신비가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많은 과학자와 사상가들을 사로잡았다.

이 저명한 고대 그리스 의사는 하품이 신체를 해로운 공기와 높은 온도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여겼다. 

지금까지 하품은 버릇없고 괘씸한 뭔가로 여겨진다.

유럽 많은 나라에서는 하품할 때 해로운 영혼들이 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하품한 뒤에는 재빨리 입 앞에서 성호를 그었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하품이 게으름이나 부주의의 징표라고 여긴다. 만약 신자가 기도하는 동안 하품한다면, 이건 부정한 뭔가가 그의 정신을 흩뜨려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 한다는 뜻이다. 

 

"어떤 하디스에 수록된 대로, 하품 소리는 악마가 인간을 비웃는 소리야."

 

의학계에서는 하품이 산소 부족 때 작동하는 반사 메커니즘이라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다.

깊은 들숨이 폐의 환기를 강력하게 만들고 혈액에 산소를 가득 채움으로써 졸음을 줄인다.

이것이 우리가 잠들기 전과 잠에서 깬 뒤 특히 달콤하게 하품하는 이유이다.

이런 견해를 네덜란드의 의사 요하네스 드고터(de Gorter)가 1736년 저서에서 처음 밝혔으며, 그 이후 실험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반복됐다. 

 

그러다가 1987년에 와서야 메릴랜드 대학의 심리학자들이 이 가설을 반박했다.

산소를 더 많이 들이쉬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덜 하품하지 않았으며, 산소량이 적은 공기를 들이쉬었다고 해서 더 자주 하품하지도 않은 것이다.

또 다른 미국의 심리학자 앤드루 갤럽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하품이 일종의 내장된 에어컨으로서 뇌를 식히는 데 필요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것이 인간뿐 아니라 대부분 척추동물한테서 하품이 수행하는 기능일 것이다.  

 

하품하는 달라이라마
달라이라마도 하품한다.

 

하품은 비자발적이고 무의식적인 행위이지만, 하고 싶을 때 하는 방법을 익힐 수도 있다.

하품하는 척하기만 해도 충분하니, 네댓 번만 그렇게 하면 진짜 하품이 나올 것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에서는 근무 중에 5분 하품 시간을 두고 있다고 한다. 피곤한 직원들이 화면에서 하품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스스로 하품하게 된다. 과학자들 주장을 믿는다면, 이 시간에 직원들은 자기 뇌를 식히고 힘과 집중력을 되찾으며, 심지어 동료들에게 공감마저 품게 된다는 것이다.  

 

믿음의 신경과학에 관한 저서에서 앤드루 뉴버그와 마크 월드먼은 

이완과 휴식을 위해 의도적인 하품을 이용하라고 권한다.

그들 견해로는, 하품이 

*주의력과 집중력을 자극하고,

*뇌 활동과 신진대사를 최적화하며,

*인지 기능과 기억력을 높이고,

*인식과 자기분석을 촉진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몸을 이완시키고,

*쾌락과 관능성을 증진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가능한 한 자주 하품해야 하겠다.

하지만 학자들의 저 주장이 설령 과장된 것이라 해도, 하품이 기분을 좋게 하고 몸에 이롭다는 건 분명하다. 일본 근로자들뿐 아니라 척추를 지닌 거의 모든 동물을 보면 확인이 된다. 

 Original: https://newtonew.com/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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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그가 펴놓은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졌다. 이야말로 징후야! 파리라니, 그것도 호두알만한 크기! 바알세불이 파리들의 명령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러가라! 성스러운 수난자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랑탕이 넘실거리는 화염 위로 소리쳤다. 

  파리가 기이하게 큰 소리를 윙윙 내며 날개 쳐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뉴스 데이의 이름으로…” 

 

The Devils of Loudun 1634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그 대신 발작하듯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열한이 숨 막혀 죽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는 거야! 사탄의 마지막 간계를 짓누르려고 랑탕이 연기 속으로 성수를 끼얹었다. 

  “물러가라, 불 뿜는 괴물아! 이 성수가 사탄의 요술을 깨부술 것이야!” 

  그게 먹혀들었다! 기침이 그쳤다. 단말마의 비명이 한 번 더 울리고는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수도사들이 경악스럽게도 화염 한복판에서 희끗거리는 물체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 

  “Deus meus, miserere mei Deus.”[각주:1]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내 적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발작적인 기침이 몇 번 더 나왔다. 곧 이어서 기둥에 묶은 밧줄이 사라지고 희생양이 이글거리는 통나무들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불길이 여전히 날름거리는 가운데 수사들이 계속 성수를 뿌리며 특유의 가락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갑자기 교회 첨탑에서 비둘기 떼가 날아 내려 넘실거리는 화염과 연기 기둥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새떼를 향해 궁수들이 미늘창을 흔들고 랑탕과 트랑킬이 성수를 끼얹기 시작했다. 하지만 헛수고. 비둘기들은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연기 속으로 뛰어들고 불길에 날개를 그슬리며 뱅뱅 감돌기만 했다. 

  양 진영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주임신부의 적수들은 새들이 악마 군단임이 확실하며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고 떠들었다. 주임신부의 친구들은 비둘기들이 성령의 엠블럼이요 그가 결백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그것들이 인간과 다른, 그저 저희 본능에 따르는 비둘기 떼였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은 듯싶다

 

  장작불이 다 수그러들자 형리가 유해를 삽으로 떠서 나침반의 각 기본 방위마다 한 삽씩 흩뿌렸다. 그러자 군중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손가락 데어가며 뜨거운 가루를 뒤적이면서 이빨과 머리뼈며 골반 뼛조각들과 불탄 살점으로 보이는 꺼먼 덩어리 따위를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몇몇은 그저 기념품 사냥꾼인 것이 분명하지만, 대다수는 행운을 안기거나 미지근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부적으로, 두통이나 변비나 누군가의 원한을 막아주는 호부로 삼기 위해 성유물을 찾았다

  이 시커먼 물건들은 주임신부가 결백하든, 아니면 그에게 뒤집어씌운 죄를 정말 범했든 상관없이, 기적 같은 효능을 지닐 것이야! 

 

  이적을 행하는 힘은 성유물의 원천이 아니라 그것이 얻은 평판에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 존재들 중 일부는 광고만 잘 돼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든 건강이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루르드[각주:2]부터 마법에 이르기까지, 갠지스 강에서부터 특허 의약품이며 에디 부인에 이르기까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각주:3]의 이적 행하는 팔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보고 숭배하도록 제프리 초서[각주:4]의 면죄부 판매인이 유리잔에 넣어 다닌 ‘돼지 뼈다귀들’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만약 수도사들 말처럼 그랑디에가 마법사였다면, 아주 좋지. 마법사 유해에는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단 말이야. 만약 주임신부가 무죄였다고 해도 괜찮아, 그는 수난자가 되고 유해는 성스럽게 여겨질 거야. 

  잠깐 새 유해가 다 사라졌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지독하게 피곤하고 목도 마르지만 주머니에 두둑하게 채운 성유물에 좋아하면서 마실 것과 신발 벗을 기회를 찾아 각자 흩어졌다.

 

  그날 저녁 아주 짧은 휴식과 아주 가벼운 요기 뒤에 수도사들이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다시 모였다.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행하자, 그녀가 적당한 발작 상태로 들어서서 랑탕 수사 물음에 대답했다. 그 검은 파리는 바로 바루크였어, 주임신부와 사이좋은 악마 말이야. 

  한데 어째서 바루크가 감히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진 것이지? 

 

엑소시즘을 받은 원장수녀

 

  잔느가 특유의 곡예 동작을 뽐내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가 세우고는 마침내 답변했다. 바루크는 그 책을 불속에 내던지려고 한 거야. 

  그건 다 그럴 듯하게 들렸고, 그러자 수도사들이 일단 엑소시즘을 여기서 멈추고 다음날 아침 중인환시 하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수녀들을 성 십자가 교회로 데려갔다. 관광객들이 아직 도시에 많이 남아 있던 터라 교회가 인파로 미어터졌다. 원장수녀에게 들붙은 악마를 불러냈다. 평범한 의식이 끝난 뒤 원장수녀는 자신이 이사카론이며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악마라고 밝혔다. 내 안에 있던 다른 악마들은 다 지옥으로 갔어, 요란한 파티로 그랑디에의 영혼을 환영해야 하니까! 

  아주 세세한 질문들을 받고 잔느가 엑소시스트들이 한 말을 모두 확실히 보증했다. 맞아, 그랑디에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건 늘 사탄을 의미한 거야, 또 악마를 부인할 때 그건 실제로 그리스도를 부인한 거지. 

 

  랑탕은 그랑디에가 지옥에서 어떤 형벌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원장수녀가 최악의 형벌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흠, 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 어떠냔 말이다! 

  잔느가 한참이나 끙끙대다가 대답했다. “그랑디에는 죗값에 맞게 특별한 형벌을 받지, 특히 정욕의 죗값을 톡톡히 치렀어.” 

  그러면 처형은 어땠나? 마법사가 고통 겪지 않도록 악마가 도와주었나? 

  이사카론이 대꾸했다. 아, 아니야, 사탄은 엑소시즘에 눌려서 기가 꺾였어. 만약 불길에 성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주임신부는 고통이란 걸 못 느꼈을 거야. 하지만 랑탕과 트랑킬, 미카엘이 애쓴 덕분에 극심한 고통을 맛봤지. 

  그런 것쯤이야 지금 그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다른 엑소시스트가 소리쳤다. 랑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지옥 쪽으로 몰아갔다. 지옥의 많은 방들 중 그 마법사는 어디에 떨어졌지? 루시퍼가 그자를 어떻게 맞이했나? 지금 이 순간 그자에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잔느 수녀의 이사카론이 수도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사카론의 상상이 메말랐을 때, 아그네스 수녀가 도우러 나섰다. 그녀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 쓰러졌고, 그녀 입을 통해 악마 베헤리트가 제 얘기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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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이 보기에 랑탕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넋이 빠진 사람 같았다. 어디 아픈 겁니까? 

  랑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프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개운치 못한 점이 있소. 죄인이 그리에 신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했는데,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어. 글쎄, 고해를 가로막아서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아닌가? 

  동료들이 갖가지로 안심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랑탕이 고열에 빠졌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게야. 날 벌하시는 게야.” 연신 중얼거렸다. 

 

  외과의 만누리가 사혈을 하고 약제사 아담이 관장기를 통해 하제를 넣었다. 고열이 가라앉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랑탕이 이제 헛것을 보고 듣기 시작했다. 고문 받으며 그랑디에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장작불 위에서 적수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악마들이 떼거리로 어른거렸다. 그들이 그의 몸으로 들어왔고, 광란 상태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발길질하고 베개를 물어뜯게 만들고, 가장 무서운 신성 모독의 말들을 그 입에 가득 채웠다

 

  9월 18일, 그랑디에 화형 이후 꼭 한 달 지나, 자기한테 병자성사를 베풀던 성직자의 손에서 십자가를 쳐냈다. 그러고는 랑탕이 급사했다. 

  로바르데몽이 호사한 장례비를 댔고, 트랑킬 수사가 설교에서 고인을 신성함의 모델이라 불러 추켜세우며 사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선포했다. 그랑디에를 징벌했다 하여 하나님의 충실한 종에게 복수한 것이오. 

 

  다음 차례는 외과의 만누리였다. 랑탕 수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번은 밤중에 포트 뒤 마트레이 인근에 사는 어떤 병자에게 사혈을 해주러 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롱불 든 하인을 앞세우고 가던 그가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임신부는 악마의 표식들 때문에 바늘로 찔리던 그날처럼 알몸으로 성채 바깥 기슭과 코르들리에 수도원 정원 사이 그랑파베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만누리가 발을 멈추었다. 그가 시커먼 허공을 응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뭘 원하느냐!” 하고 묻는 소리를 하인이 들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외과의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금방 땅바닥에 엎드려 애절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역시 숨이 끊어졌다. 

 

  이제 루이 쇼베 차례가 됐다. 마녀재판이라는 대단히 멍청한 짓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반듯한 치안판사들 중 한 사람. 원장수녀와 많은 수녀들이 그가 마법을 한다고 비난했고, 그들의 고발과 증언을 바레는 자신의 교구에서 여러 마귀 들린 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쇼베는 추기경이 그 광기 어린 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미칠 화에 지극히 겁을 내는 바람에 정신이 상했다. 검은 멜랑콜리에 빠지고 정신쇠약까지 보이다가 겨울이 가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트랑킬은 다른 사람들보다 근성이 더 강했다. 네 해가 지나 1638년 악마에 지나치게 몰두한 후과에 마침내 굴하고 말았다. 그랑디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악마들을 더 키웠고, 터무니없는 공개 엑소시즘으로 악마들이 계속 횡행하게끔 했다. 이제 악마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금물이다. 트랑킬은 제가 열심히 뿌린 것을 거둬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환영들이 드물게 나타나고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악마 개꼬리와 레비아탄이 조금씩 우위를 점하게 됐다. 말년에 트랑킬은 제가 그렇게나 정성 들여 히스테리를 조장했던 수녀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욕설을 내뱉고, 혓바닥을 빼물고, 쉰 목소리를 내고, 개처럼 짖어대고,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푸친회 기록을 보면, ‘악취 풍기는 지옥 올빼미’라 명명한 악마가 동정을 버리고 겸허와 인내와 믿음과 헌신을 다 내팽개치라 유혹하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가 성처녀와 성 요셉을, 성 프란체스코, 성 보나벤투라[각주:5]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마귀 들림이 더 악화되기만 했다. 

 

  1638년 성신강림대축일에 트랑킬이 마지막으로 강론했다. 이삼일 더 그럭저럭 미사를 집전하고 나서 자리보전하고 말았다. 원인은 심신증이 분명하지만 상당히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는 추잡하고 외설한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야말로 악마 계약의 일부인 것이 분명했다! 음식물을 조금 넣을 때마다 악마들이 그를 아주 건강한 사람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격렬하게 구역질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한 두통과 심장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건 ‘갈레노스나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에도 언급되지 않은 종류였다.’ 주말에 이르러 ‘오물과 악취를 연신 내뿜는데, 어찌나 역겨운지 수발드는 이들이 당장 치웠음에도 방안에 있기가 끔찍할 정도였다.’ 

 

  성신강림대축일 다음날인 월요일 병자성사를 베풀게 됐다. 한데 악마들이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나와 침대 곁에 있던 다른 탁발수사의 몸으로 들어갔다. 새로 악귀 들린 사람이 어찌나 광포하게 굴든지 동료 대여섯 명이 겨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끌어내기 전에 그 사람은 거의 숨이 끊긴 트랑킬 수사를 마구 걷어차려고 들었는데, 그걸 말리느라 다들 무진 애를 먹었다. 

  그 대신 장례는 화려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시신으로 몰려들었다. 혹자들은 시신에 묵주를 놓았고, 혹자들은 법의 조각을 베어냈다. 성물처럼 간직하려고 말이다. 밀려드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관에 금이 가고, 각자가 자투리라도 얻으려고 서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시신이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존중받을 만한 이들 몇몇이 예절도 모르는 자들을 내쫓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신부는 벌거숭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법의를 쥐어뜯으면서 시신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트랑킬 신부의 법의 조각들도 이제 성유물이 됐다. 그가 산 채로 불태운 사람의 유해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 불분명해졌다. 마법사는 수난자 같이 죽고, 그의 악마 같은 집행자는 죽은 뒤 성인이 된 것. 그러나 영혼에 바알세불이 들어앉은 성인으로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였으니… 페티시는 그저 페티시일 뿐이라는 점!![각주:6]

  (8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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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1. 하느님,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틴어) [본문으로]
  2. Lourdes - 프랑스 남서부 마을, 성모 마리아가 기적의 치료를 해준다고 하는 성지 [본문으로]
  3. Francis Xavier (1506–1552) - 현 에스파냐 지역인 나바르왕국에서 출생. 로마가톨릭 선교사, 예수회 공동 설립자, 성 이냐시오의 제자. 그의 성유물 중 오른팔은 1614년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분리한 뒤 로마에 있는 교회 은제 성골함에서 전시돼. [본문으로]
  4. Geoffrey Chaucer (1343–1400) - 영국문학의 아버지, 중세 잉글랜드 최고 시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구역에 최초로 안장되다. ‘면죄부 판매인 이야기’는 <켄터베리 이야기>에 실렸다. 사람들 속이는 방법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교훈으로 끝난다. [본문으로]
  5. St. Bonaventura (1221–1274) - 이탈리아 중세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알바노 추기경, 가톨릭 교부. [본문으로]
  6. fetish – 맹목적 숭배물, 미신의 대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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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영화 악마들, 켄 러셀, 올리버 리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2편 

 

  몇 주일이 흘렀다. 필리프의 외출이 갈수록 줄더니 그예 교회마저 나가지 않게 됐다. 식구들한테는 몸이 아파 방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친구 마르타 펠티에가, 좋은 집안 출신이지만 일찍 부모 여위어 아주 가난한 그녀가, 간병인 겸 말동무로 집에 들어와 함께 지내게 됐다. 

 

  트렌캉 씨는 여전히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진실을 암시하거나 주임신부를 나쁘게 말할라치면 화를 벌컥 냈다. 그러면서 주변 못된 농담에 끌끌 혀를 차고 딸의 폐결핵 증세를 걱정했다. 가정 주치의 팡통이 신중하게 처신하여 누구한테든 말을 아꼈다. 루덩 주민들이 서로 눈을 끔뻑거리고 킥킥대거나 아니면 의분 표출이라는 쾌감에 빠졌다. 

  적대자들은 주임신부와 마주칠 때면 가시 돋친 암시를 흩뿌리고, 친구들은 나무라는 투로 고개를 흔들고, 라블레 성향의 익살꾼들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야비한 축하를 던졌다. 

 

  그랑디에는 그 모든 사람들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응수했다. 그에게 아직 반감을 품지 않은 이들은 그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매너와 신실해 보이는 말이 결백의 증명이라고 여겼다. 그가 무슨 못된 짓을 저질렀다고 헐뜯는 자들이 있는데, 저렇게 흠 없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기란 도덕적으로 불가능하지! 

 

  세리제 지방장관이나 마담 드브루 같은 저명인사들 저택에서 그는 여전히 환대받는 손님이었다. 그들 저택 문은 검찰관 저택 문이 닫힌 뒤에도 여전히 그에게 열려 있었다. 검찰관이 제 집 문을 닫은 까닭은 결국 딸이 왜 시름시름 앓게 됐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집요한 추궁을 견디지 못하고 딸이 다 털어놓은 것.

  트렌캉이 주임신부의 가장 충실한 친구에서 하룻밤 새에 가장 완강하고 위험한 적으로 돌변했다. 그랑디에는 자신을 파멸로 끌어간 사슬에 또 하나의 고리를 만들고 말았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다. 닫힌 덧문들과 두툼한 가리개와 커튼에도 불구하고 앳된 엄마의 비명이, 이를 윽물고 참았음에도 아주 날카롭게 새나온 비명이, 뭔가를 열심히 예상한 이웃들에게 ‘경사’를 알렸다. 그 소식이 한 시간도 안 돼 소도시 전역에 퍼졌고, 다음날 아침 재판소 현관에는 <검찰관의 사생아 손녀를 기리는 송시>라는 점잖지 못한 글이 나붙었다. 

  프로테스탄트 몇몇이 의심을 샀는데, 그건 트렌캉이 정통 가톨릭교회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이단적인 시민들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데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마르타 펠티에가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자신이 아기 엄마라고 공개적으로 자처하고 나섰다. (그건 이 사연의 추악함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행위였다.) 죄를 범한 사람은 나에요, 수치를 감추려 한 사람도 나에요. 필리프는 나한테 피난처를 제공한 은인일 뿐이지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지만 그 가상한 마음씨는 합당한 평가를 받았다. 마르타가 일주일 된 아기를 유모 노릇 하겠다고 나선 젊은 시골 여인한테 넘겼다. 그 장면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끔 과시적으로 연출됐다. 그러나 그런 제스처에 넘어가지 않은 프로테스탄트들이 계속 입을 놀렸다. 

 

  그들의 점잖지 못한 의혹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심정으로 검찰관이 그럴 듯한 법률적 책략을 썼다. 마르타를 백주 대로에서 체포하여 치안판사한테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그녀가 법정에서 서약한 뒤 증인들 배석 하에 갓난애가 제 소생이라고 공식 인정하며 아이 부양을 책임지겠다는 문서에 서명해야 했다. 친구를 사랑한 까닭에 마르타가 서명했다. 문서 사본 한 부는 기록보관소에 보관되고 다른 한 부를 트렌캉이 의기양양하게 제 주머니에 넣었다. 

 

  거짓이 공식 인증되어 이제 법률적 진실이 됐다. 법률 자구만을 지각하기에 익숙해진 머리들한테 법적 진실은 무조건적 진실과 같은 법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으니,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못했음을 검찰관이 분한 마음으로 곧 알게 됐다. 공식 문서를 그가 큰 소리로 낭독하고, 다들 제 눈으로 서명을 보고, 공식 봉인을 직접 만져 본 뒤에도… 친구들은 정중하게 미소 지으며 말머리를 돌릴 뿐이며, 적대자들은 크게 웃으면서 공격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프로테스탄트들의 원한이 어찌나 깊은지, 한 목사는 위증이 간음보다 더 무서운 죄악이며 스캔들을 덮기 위해 거짓 증언한 자는 음란함으로 원인을 제공한 자보다 지옥 불에 더 시달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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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청년기에서 새뮤얼 가스 경의 중년기 사이에는 숱한 사건들로 점철된 세월이 오래 흘렀다. 통치 체계와 사회 조직, 경제 기구, 물리학과 수학, 철학과 예술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많았다. 그러나 그 백년 어간에 전혀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약방이었다. 로미오는 약제사의 점방을 이렇게 묘사한다.[각주:1]

 

약방에는 별의별 게 다 있어서, 

거북이와 악어와 갖가지 바다 생물 박제들. 

선반마다 남루한 것들이 얹혀 있어서, 

먼지 낀 도토 항아리며 빈 상자들, 

노끈 토막이며 약초며 씨앗들 

그리고 축축한 장밋빛 알약들. 

어렵사리 상품 모양을 낸 

가련한 잡동사니가 다 있구나.

 

  새뮤얼 가스 경이 장시 <조제실>에서 거의 같은 장면을 묘사한다.[각주:2]

 

거기엔 수지 먹인 미라 유해와 

바다거북 껍데기들이 놓여 있었어. 

이빨 무성한 상어 아가리가 엷은 미소로 

창밖 지나는 이들을 놀라게 했지. 

천장으로는 말린 양귀비가 

대롱대롱 줄에 걸려 있고, 

그 아래엔 거대한 악어가 비늘 덮인 채 

음침한 모습으로 불쑥. 

한 쪽 구석엔 안티몬과 암모니아수, 

다른 구석엔 바짝 말린 오줌보. 

 

  이 과학의 신전은 마법사의 실험실이자 시골 장터 간이무대이기도 한데, 연결되지 않는 사물들과 개념들의 기묘한 결합이라는 17세기 특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데카르트와 뉴턴의 시대는 또한 플러드[각주:3]와 케넬름 딕비 경[각주:4]의 시대이기도 했고, 대수와 해석기하학의 시대는 또한 ‘무기 연고’[각주:5]며 ‘연민 파우더’며 ‘특징 이론’[각주:6] 따위가 판치던 시대이기도 했다. 

  <회의적인 화학자>의 저자요 왕립협회 설립자들 중 한 사람인 로버트 보일[각주:7]은 가정에서 쓰기에 좋은 처방전을 한 권 남겼다. 예를 들어, 보름날 참나무에서 따낸 미슬토를 말리고 갈아서 블랙체리 물에 타 마시면 간질병이 낫는다. 뇌졸중 발작에는 (키오스 섬의 렌티스크 관목에서 추출한 수지인) 유향을 구리 용기에서 증류하여 정유를 뽑아낸 뒤 깃털에 묻혀 병자의 한쪽 콧구멍에 두세 방울, ‘잠시 뒤 다른 쪽’에 두세 방울 떨어뜨려야 한다. 

  과학 정신이 이미 활발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나 주술사와 마녀의 정신 또한 그 못지않게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마르샹 거리에 있는 아담의 약방은 중간 규모로 초라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은데 지방 소도시 약방치곤 훌륭했다. 미라들과 코뿔소 뿔을 갖추기에는 많이 수수하지만 그 대신 서인도제도 거북이들과 고래 태아, 8 피트 되는 박제 악어 따위를 뽐냈다. 

 

  쌓아둔 품목도 아주 많고 다양했다. 선반마다 갈레노스[각주:8] 유파에서 즐겨 쓰는 약초 일습과, 발렌티누스[각주:9]와 파라셀수스[각주:10]의 후계자들이 권하는 최신 약물을 다 구비했다. 대황과 알로에가 그득하고 감홍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감홍을 아담은 '온순한 용'이라는 뜻으로 Draco mitigatus라 즐겨 불렀다. 

 

  만약 당신이 식물성 간장약을 좋아한다면, 거기엔 콜로신스가 있었다. 그러나 당신이 더 현대적인 치료를 시도해 보자 한다면, 거기엔 토주석과 금속성 안티몬도 있었다. 만약 당신이 재수가 없어 마음에 안 드는 님프나 멋쟁이를 사랑하게 됐다면, 서양측백과 수은-초크 중에서, 혹은 사르사파릴라와 블루 연고제[각주:11] 중에서 뭔가를 선택하면 됐다. 

  어디 그뿐인가, 말린 독사며 말발굽이며 사람 뼈까지 꼽는다면 아담이 동종업자들 앞에서 주뼛거릴 일이 없었으리라는 점을 당신도 쉽게 이해하리라. 더 값비싼 것은 (예를 들어, 사파이어나 진주 가루 등은) 선금을 치르고 특별히 주문해야 했다. 

 

  그런 약방이 이제부터 음모자들의 정기 회합 장소요 본거지가 됐다.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그랑디에의 파멸. 이 음모의 리더들은 검찰관과 그의 조카, 참사회 위원 미뇽, 경찰 수뇌, 그의 장인 메스멩 실리, 외과의 만누리 등이었으며, 아담도 응당 포함됐다. 환약을 짓고 이빨을 뽑고 관장을 하는 직업 성격상, 아담은 정보 수집의 막강한 원천이었다.

  그런 만큼 그가 공증인의 아내 쇼뱅 부인한테서 (어린 아들의 기생충을 뽑아내면서 절대 비밀로) 알아낸 정보는 요긴했다. 주임신부가 1순위 담보 대출에 800 리브르를 투자했다는군. 그 악당이 부를 쌓기 시작한다는 뜻이에요. 

  안 좋은 소식이 또 있었다. 다르마냑의 둘째 심복의 처형이 부인병을 치료하느라 말린 쑥을 정기적으로 사 가잖아요. 근데 하는 말이, 그랑디에가 내일 지방장관 아성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한다지 뭡니까. 

 

아담의 약방에서 음모자들이 회동

 

  그 말에 검찰관이 미간을 찌푸리고 경찰 수뇌가 투덜대며 고개를 저었다. 다르마냑은 그냥 지방장관이 아니라 국왕의 총신이다. 그런 인물이 그랑디에의 친구요 보호자라는 사실은 실로 끔찍한 것이었다. 

 

  우울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희망이 있어, 그럴 듯한 스캔들을 만드는 거지...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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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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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인생의 (가혹한) 진실 15가지

관계에 고요와 평정의 공간 들이기 위해 경청을. 50

 

  1. 셰익스피어 (1564-1616) - 5막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1597년에 발표. [본문으로]</로미오와>
  2. 새뮤얼 가스 경 (Sir Samuel Garth, 1661-1719) - 잉글랜드의 물리학자, 시인. 1699년 여섯 편으로 된 장시 을 발표, 약제사들이며 그들과 결탁한 물리학자들을 비웃었다. [본문으로]
  3. 플러드(Robert Fludd, 1574-1637) - 잉글랜드의 의사, 신비주의 철학자. 장미십자회에 헌신하면서 과학적 경향과는 동떨어진 신비주의 경향을 저술에서 두루 설파. 생전에 마법사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19세기 영국 평론가 드퀸시는 플러드의 저술을 프리메이슨의 상징적 이념의 주된 뿌리로 보았다. [본문으로]
  4. 딕비(Sir Kenelm Digby, 1603-1665) - 브리튼의 철학자, 외교관, 저술가. 모반으로 기소되고 ‘화약 음모’에 가담하여 처형된 에버라드 딕비 경의 아들. [본문으로]
  5. 무기 연고(weapon salve) - 상처를 낸 무기에 바르면 호의적인 힘에 의해 상처가 낫는다고 미신처럼 믿었던 연고. 연민 파우더(the Sympathetic Powder)도 비슷하게 쓰였다. [본문으로]
  6. 특징 이론(Theory of Signatures 혹은 Doctrine of Signatures) - 인체 부위를 닮은 식물들이 그 부위에 생긴 질환 치료에 쓰일 수 있다는 개념.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와 디오스쿠리드 시대 이후 약초 채집자들이 공유한 생각. 16세기에 파라셀수스가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유럽의 형이상학은 이 개념을 신학에서 확대했다. “전능자께서는 치료 방법들도 사물에 표시하거나 ‘서명’해 두셨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미신으로 간주한다. [본문으로]
  7. 보일(Robert Boyle, 1627-1691) - 아일랜드의 화학자, 자연철학자. ‘보일의 법칙’. <의심쩍은 화학자 the sceptical chemist>는 현대 화학의 효시가 된 저술. 이 책 덕분에 연금술이 화학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본문으로]</의심쩍은>
  8. 갈레노스(130-200) - 로마의 의사, 철학자. 히포크라테스와 함께 서양 의학의 시조. [본문으로]
  9. 발렌티누스(Basilius Valentinus) - 14-15세기 독일의 연금술사. 그의 저술이 17세기에 널리 퍼졌다. ‘현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한다. [본문으로]
  10. 파라셀수스(1493-1541) - 스위스의 철학자, 자연과학자, 의사, 연금술사. “모든 약물은 작용과 부작용을 동시에 지니며, 부작용은 약물 용량으로 정해진다. [본문으로]
  11. Blue ointment - 수은연고와 광유나 돼지비계 정제 기름으로 만든 피부 치료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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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주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9.07.11 10:59 [ ADDR : EDIT/ DEL : REPLY ]
    • 시간 날 때 (아니면, 시간 내서) 두어 번 반복해서 읽어 보시면 좋을 겁니다, 분명.

      2019.07.11 14:19 신고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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