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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9.07.11 루덩의 악마들 2편 1 2
  6. 2019.04.12 퀴즈 문제 하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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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Ken Russel film Devils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은 이사카론의 방문. 악마가 거의 밤마다 찾아왔다. 독방 어둠 속에서 그녀가 무슨 기척을 듣고 침대가 흔들리는 걸 느끼곤 했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욧잇을 벗기고, 누군가가 그녀 귀에 달콤하고 음탕한 말을 속삭였다. 방안에 이상한 불빛이 어른거리면서 염소와 사자와 뱀과 남자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때론 강경증 상태에 빠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수 없이 누워 있는 동안, 작은 야수들이 이부자리 아래서 앞발로 간지럼을 태우고 주둥이로 더듬으며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언구럭 부리는 목소리가 간청했다. 한 번만 더, 그냥 사랑만 조금 줘, 그냥 아주 조금만 예뻐해 줘. 그녀가 “내 정조는 하나님 수중에 있으며, 그분께서 뜻대로 처리하실 것”이라 대답하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침대에서 내동이친 뒤 얼마나 무섭게 때렸는지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얼굴이 퉁퉁 붓고 온몸에 시퍼런 멍이 가득했다. 

 

  「그런 일이 아주 종종 생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감히 바란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주셨다. 그런데도 나는 이 자잘한 싸움들을 우쭐댈 만큼 마음이 불량하여, 하느님께 합당하게 처신하는 한 내 소행을 두고 가책할 일은 전혀 없다고 여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책을 억누르기 힘들며, 하나님 뜻대로 내가 처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는 것도 알았고.」 

 

  그러니까 원흉은 이사카론이었다. 그래서 수렝은 이 악마를 상대로 기력을 다 쏟으며 요란한 의식을 거행했다. “내 말을 듣고 썩 물러가라, 사탄아!” 

  하지만, 오호라, 축문이 먹혀들지 않았구나. 「내가 받는 유혹을 그에게 고백하지 않기 때문에, 유혹이 점점 더 거세게 나를 쫓아 다녔어.」 이사카론이 더 못되게 굴면서 잔느 수녀의 절망도 더 커지고 꾸준히 진전되는 임신에 대한 불안도 더 강해졌다. 

 

  성탄절을 얼마 안 남기고 그녀가 약재 몇 가지를 입수했다. 그건 분명 쑥과 쥐방울덩굴과 콜로신스였으리라. 갈레노스 의술에서 추천하며 곤경에 빠진 처녀들이 낙태 효과가 있다고 필사적으로 기대하는 세 가지 약용 식물. 한데 아기가 세례도 받지 않고 죽는다면? 아기 영혼은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거야. 그녀가 제풀에 놀라 약재를 내던졌다. 

  다른 계획이 생겼다. 주방으로 가서 가장 큰 칼을 빌려 와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 세례를 주는 거야, 그 다음엔 살아남든지 아니면… 

다락방으로 향하는 원장수녀 잔느

 

  1635년 새해 첫날 그녀가 총고해를 했다. 「하지만 고해사제한테 내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어.」 다음날 칼을 품고 세례용 물 대접을 들고 수녀원 꼭대기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벽에 그리스도 책형상이 걸려 있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내 죽음과 작은 피조물의 죽음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왜냐하면 세례를 베푼 뒤에 아기를 목 졸라 죽일 생각이었으며, 나도 죽을지 몰랐으니까.」 

 

  옷을 벗는 동안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사악한 의도를 내던지게 할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법의를 벗은 뒤 가위로 슈미즈에 큰 구멍을 내고 칼을 집어 들어 ‘죽을 때까지 쑤셔 넣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위장에 가장 가까운 갈비뼈 사이로 꽂기 시작했다. 

 

  그러나 히스테리를 잘 일으키는 사람들은 자살을 종종 시도하긴 해도, 성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 기적이여, 자비로운 신의 뜻이 나타나 내 손을 붙잡았으니! 갑자기 어떤 힘이 나를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친 거야. 칼이 손에서 빠져나가 십자가 밑에 떨어졌어.」 

  그리고 한 목소리가 외쳤다. “멈추어라!” 

  그녀가 그리스도 책형상으로 눈길을 들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을 그녀에게 내뻗었다. 신의 음성이 들리자 악마들이 놀라서 길길이 날뛰었다.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원장수녀는 앞으로 생활 양상을 싹 바꾸고 처신도 달리 하겠노라 결심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임신 상태는 계속되고 이사카론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한번은 밤중에 그녀에게 협상을 제시했다. 나한테 조금만 더 온순하게 군다면 신통한 고약을 가져다주겠어, 그걸 배에 바르면 임신이 멈출 거야. 원장수녀가 조건에 응하겠다고 거의 마음먹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거부했다. 그러자 대노한 악마가 그녀를 호되게 때렸다. 

  또 어떤 때는 이사카론이 눈물 흘리며 애처롭게 호소하는 바람에 마음이 움직여 ‘그의 간청을 다시 들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충동이 실행됐다. 그런 식의 한밤중 만남이 계속되면 안 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질겁한 로바르데몽이 르망으로 사람을 보내 유명한 의사 두솅을 초빙했다. 의사가 와서 원장수녀를 꼼꼼히 검사한 끝에 임신이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 말에 로바르데몽이 기절초풍했다. 이 소식을 프로테스탄트들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데 관계자들한테는 다행스럽게도, 이사카론이 공개 엑소시즘 때 나타나서 의사의 확인을 단호하게 반박했다. 아침 헛구역질부터 젖 분비까지 그런 증상은 죄다 악마들이 꾸민 짓일 뿐이야! 「그러더니 이사카론이 내 몸에 자기가 모아둔 피를 나로 하여금 죄다 쏟아내게 했어. 이 일은 주교와 의사 몇몇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벌어졌다.」 그 뒤로 임신 증세가 다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주님께 찬양을 돌렸고 원장수녀도 그렇게 했다. 적어도 입으로는.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의심을 품었다. 이렇게 기록한다. 「악마들은 나를 설득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생각해 봐라, 네가 배를 가르지 않게 된 기적은 하나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한 짓이었어! 그러니 너는 그 일을 그저 환상이라 여기고 잠자코 있어야 한다. 고해 시간에도 입에 올릴 필요가 없는 거야!」 

  사실, 나중에 그녀는 그런 의심에서 벗어나고, 실제로 기적이 벌어진 것이라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수렝에게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기적이었다. 그에게는 루덩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불가사의했다. 그의 믿음은 게걸스럽고 무분별한 것이었다. 그는, 마귀에 들림을 믿었다. 그는, 그랑디에가 유죄라고 믿었다. 그는, 다른 마법사들이 수녀들을 홀리고 있다고 믿었다. 또 악마는 정식으로 강요당한다면 진실을 말하게 돼 있다는 교회 원칙도 믿었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이 가톨릭 신앙을 공고히 하며, 성변화가 실재한다고 증언하는 악마들 얘기를 듣고 무수한 자유사상가와 위그노가 개종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 마지막으로, 잔느 수녀를 믿고 그녀 상상의 소산을 다 믿었다

 

  남들 말을 쉽게 믿는 것은 심각한 지적 결함이다. 그런 결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가장 ‘불가항력적인 무지[각주:1]뿐이다

  그러나 수렝의 무지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요, 심지어 자발적인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당대에 우세한 지적 풍조인 미신과 맹신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수회 동료들은 수렝처럼 무턱대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마귀 들림이라는 현상을 의심하면서 새 엑소시스트가 하는 짓을 황당하게 보았으며, 동료가 특별한 은혜와 실총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쏟는 뜨거운 관심을 다소 민망하게 여겼다. 우리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어리석음은 수렝의 강점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결함과 숭고한 열정도 그의 강점이었다. 그의 목표는 기독교적 완성, 곧 육욕을 죽임으로써 영혼이 하나님과 합일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 이 목표를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성령에 이르는 온유함과 정화의 길로 그와 함께 나서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제시했다. 

 

  그에게는 이전에도 영적 딸들이 있었다. 이 원장수녀가 그들처럼 하지 못할 것이 무언가? 그런 생각을 이미 마렌에 있을 때 떠올렸고, 그걸 계시처럼 느꼈다. 그저 엑소시즘 하나에 그치지 말고 잔느 수녀를 영적 생활로 이끌어야 해, 그 문을 이미 이사벨 수녀와 랄망 신부께서 내게 열어주지 않았던가. 그녀 영혼을 광명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마귀 들림에서 구해 내겠어

  흉중에 담아둔 과제를 잔느 수녀한테 끄집어낸 것은 루덩에 오고 하룬가 이틀 지나서였다. 그리고 이사카론이 터뜨리는 요란한 웃음소리와 레비아탄이 화가 나서 내뿜는 욕지거리를 응답으로 들어야 했다. 그들이 수렝에게 상기시켰다. 이 여인은 우리 소유이며 악마들의 공용 거처라는 걸 모른단 말이냐! 

 

  그가 그녀에게 영적 훈련을 얘기하면서 다그쳤다. 이제 하나님과 합일하기 위해 영혼을 다듬어야 할 때가 됐소! 왜냐하면, 그녀가 정신 기도를 수행한 지 벌써 이태가 넘었기 때문이다. 관상기도가 정말 필요하오! 기독교적 완성이! 그러자 악마들 웃음소리가 더 낭자하게 울렸다. 

 

  그렇다 하여 물러설 수렝이 아니었다. 신을 모독하는 말과 어지러운 발광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꾸준히 책무를 수행했다. 그녀 궤적에 ‘천국의 사냥개[각주:2]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사냥감을 쫓아다닐 작정이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바로 영생을 의미하니까. 원장수녀가 달아나려 했다. 그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기도와 설교를 계속 들려주었다. 영적 생활을 얘기하고, 몹시 힘든 준비 단계를 이겨내도록 그녀에게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애원하고, 하나님과 합일하는 지복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럴 때마다 잔느가 요란한 웃음을 터뜨리거나 그에게 소중한 부아네트를 두고 놀리거나 트림을 꺽꺽 해대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돼지처럼 꿀꿀거리면서 훼방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가 지칠 줄 모르고 소곤거렸다

 

  한번은 악마가 특히 혐오스러운 언사와 행동을 과시한 뒤에 수렝이 기도했다. 신이여, 그녀한테서 이 고통을 거두시고 차라리 이 죄인한테 시련을 안기소서! 그는 악마들이 잔느 수녀에게 겪게 한 고통을 죄다 느껴 보기 원했다. ‘그녀를 치유하여 덕을 수행하게 인도함으로써 거룩한 신을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설령 나한테 귀신이 든다 해도 개의치 않으리. 그보다 더 심한 것도 간구했다. 미치광이로 취급돼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당하는 것조차 감내하리니. 

 

  한데 그런 식의 기도는 절대 해선 안 된다고 모럴리스트들과 신학자들이 우리한테 못 박는다. 불행히도 조심성은 수렝의 덕목에 들지 못했다. 현명치 못하고 완전히 잘못된 간원을 입에 올린 것이다.[각주:3]

   그러나 기도란 진심 어린 것이라면 응답 얻는 길을 가지고 있다. 간혹 신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어떤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그 생각이 사실이나 상징에서, 현세나 꿈에서, 물질적이든 심리적이든 어떤 형태를 취하며 구체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짐작할 수도 있겠다. 

 

  수렝은 잔느 수녀가 겪은 고통을 자신도 겪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자신이 악마에게 사로잡히기를 꿈꿨다. 그리고 1월 19일 그렇게 됐다. 

  어쩌면 그런 일은 그가 기도하지 않아도 일어났을지 모른다. 악마들은 이미 랑탕 수사를 죽였고 트랑킬 수사도 곧 같은 길을 가야 했다. 수렝에 따르면, 엑소시스트들은 악마를 쫓아내려 했지만 실제로는 외려 불러들여서 살아 있게끔 최선을 다한 셈이 됐고, 그 악마들에 웬만큼 시달리지 않은 엑소시스트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네 관심과 눈길을 악에, 혹은 악이라는 생각에 집중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까!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악마에 맞서 더 많이 투쟁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모든 십자군 전사는 실성하기 쉽다. 적들의 것이라 여기는 사악함을 줄곧 떠올리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악함이 자신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마귀 들림은 초자연적인 것보다 세속적인 경우가 더 흔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증오하는 타인과 증오하는 계급이나 인종, 민족에 대해 맹렬히 생각하기 때문에 마귀에 들씌우게 된다

  작금의 세계 운명은 제 스스로 마귀 들린 자들 손아귀에 있다. 즉, 반대자들한테서 보려고 애쓰는 악에 외려 들씌운 채 그 악을 명백히 드러내는 자들 손에 달렸다. 그들은 악마를 안 믿는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영혼을 악마에 내맡기려 애써 왔고, 성공했다 하여 의기양양하다. 하나님보다 악마를 훨씬 더 많이 믿는 한 그들이 마귀 들림에서 언젠가 벗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초자연적이며 추상적인 악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수렝은 세속적으로 마귀 들린 자들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광기로 자신을 몰아갔다. 하지만 선에 대한 생각 역시 초자연적이며 추상적이었고, 결국엔 선에 대한 믿음이 그를 구했다

 

  (5월 초 친구이자 예수회 동료인 다티시 수사에게 그 동안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적어 보냈다...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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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Invincible ignorance - 신학적 개념에서, 불가항력적 무지. 개인이 통제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책임이 없는 무지. 현대 영어에서는, ‘구제 불능의 바보’라는 뜻으로도 쓴다. [본문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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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장작더미 위에 묶인 그랑디에와 핍박하는 랑탕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어 랑탕 수사 얼굴에 부딪치더니, 그가 펴놓은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졌다. 이야말로 징후야! 파리라니, 그것도 호두알만한 크기! 바알세불이 파리들의 명령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러가라! 성스러운 수난자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랑탕이 넘실거리는 화염 위로 소리쳤다. 

  파리가 기이하게 큰 소리를 윙윙 내며 날개 쳐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뉴스 데이의 이름으로…” 

 

The Devils of Loudun 1634

 

  그와 동시에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그 대신 발작하듯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열한이 숨 막혀 죽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려는 거야! 사탄의 마지막 간계를 짓누르려고 랑탕이 연기 속으로 성수를 끼얹었다. 

  “물러가라, 불 뿜는 괴물아! 이 성수가 사탄의 요술을 깨부술 것이야!” 

  그게 먹혀들었다! 기침이 그쳤다. 단말마의 비명이 한 번 더 울리고는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수도사들이 경악스럽게도 화염 한복판에서 희끗거리는 물체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 

  “Deus meus, miserere mei Deus.”[각주:1]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내 적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발작적인 기침이 몇 번 더 나왔다. 곧 이어서 기둥에 묶은 밧줄이 사라지고 희생양이 이글거리는 통나무들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불길이 여전히 날름거리는 가운데 수사들이 계속 성수를 뿌리며 특유의 가락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갑자기 교회 첨탑에서 비둘기 떼가 날아 내려 넘실거리는 화염과 연기 기둥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새떼를 향해 궁수들이 미늘창을 흔들고 랑탕과 트랑킬이 성수를 끼얹기 시작했다. 하지만 헛수고. 비둘기들은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연기 속으로 뛰어들고 불길에 날개를 그슬리며 뱅뱅 감돌기만 했다. 

  양 진영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주임신부의 적수들은 새들이 악마 군단임이 확실하며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고 떠들었다. 주임신부의 친구들은 비둘기들이 성령의 엠블럼이요 그가 결백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그것들이 인간과 다른, 그저 저희 본능에 따르는 비둘기 떼였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은 듯싶다

 

  장작불이 다 수그러들자 형리가 유해를 삽으로 떠서 나침반의 각 기본 방위마다 한 삽씩 흩뿌렸다. 그러자 군중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손가락 데어가며 뜨거운 가루를 뒤적이면서 이빨과 머리뼈며 골반 뼛조각들과 불탄 살점으로 보이는 꺼먼 덩어리 따위를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몇몇은 그저 기념품 사냥꾼인 것이 분명하지만, 대다수는 행운을 안기거나 미지근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부적으로, 두통이나 변비나 누군가의 원한을 막아주는 호부로 삼기 위해 성유물을 찾았다

  이 시커먼 물건들은 주임신부가 결백하든, 아니면 그에게 뒤집어씌운 죄를 정말 범했든 상관없이, 기적 같은 효능을 지닐 것이야! 

 

  이적을 행하는 힘은 성유물의 원천이 아니라 그것이 얻은 평판에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인간 존재들 중 일부는 광고만 잘 돼 있다면 그 어떤 것으로든 건강이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루르드[각주:2]부터 마법에 이르기까지, 갠지스 강에서부터 특허 의약품이며 에디 부인에 이르기까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각주:3]의 이적 행하는 팔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보고 숭배하도록 제프리 초서[각주:4]의 면죄부 판매인이 유리잔에 넣어 다닌 ‘돼지 뼈다귀들’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만약 수도사들 말처럼 그랑디에가 마법사였다면, 아주 좋지. 마법사 유해에는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단 말이야. 만약 주임신부가 무죄였다고 해도 괜찮아, 그는 수난자가 되고 유해는 성스럽게 여겨질 거야. 

  잠깐 새 유해가 다 사라졌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지독하게 피곤하고 목도 마르지만 주머니에 두둑하게 채운 성유물에 좋아하면서 마실 것과 신발 벗을 기회를 찾아 각자 흩어졌다.

 

  그날 저녁 아주 짧은 휴식과 아주 가벼운 요기 뒤에 수도사들이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다시 모였다. 원장수녀에게 엑소시즘을 시행하자, 그녀가 적당한 발작 상태로 들어서서 랑탕 수사 물음에 대답했다. 그 검은 파리는 바로 바루크였어, 주임신부와 사이좋은 악마 말이야. 

  한데 어째서 바루크가 감히 엑소시즘 서적 위에 떨어진 것이지? 

 

엑소시즘을 받은 원장수녀

 

  잔느가 특유의 곡예 동작을 뽐내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가 세우고는 마침내 답변했다. 바루크는 그 책을 불속에 내던지려고 한 거야. 

  그건 다 그럴 듯하게 들렸고, 그러자 수도사들이 일단 엑소시즘을 여기서 멈추고 다음날 아침 중인환시 하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수녀들을 성 십자가 교회로 데려갔다. 관광객들이 아직 도시에 많이 남아 있던 터라 교회가 인파로 미어터졌다. 원장수녀에게 들붙은 악마를 불러냈다. 평범한 의식이 끝난 뒤 원장수녀는 자신이 이사카론이며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악마라고 밝혔다. 내 안에 있던 다른 악마들은 다 지옥으로 갔어, 요란한 파티로 그랑디에의 영혼을 환영해야 하니까! 

  아주 세세한 질문들을 받고 잔느가 엑소시스트들이 한 말을 모두 확실히 보증했다. 맞아, 그랑디에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건 늘 사탄을 의미한 거야, 또 악마를 부인할 때 그건 실제로 그리스도를 부인한 거지. 

 

  랑탕은 그랑디에가 지옥에서 어떤 형벌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원장수녀가 최악의 형벌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흠, 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 어떠냔 말이다! 

  잔느가 한참이나 끙끙대다가 대답했다. “그랑디에는 죗값에 맞게 특별한 형벌을 받지, 특히 정욕의 죗값을 톡톡히 치렀어.” 

  그러면 처형은 어땠나? 마법사가 고통 겪지 않도록 악마가 도와주었나? 

  이사카론이 대꾸했다. 아, 아니야, 사탄은 엑소시즘에 눌려서 기가 꺾였어. 만약 불길에 성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주임신부는 고통이란 걸 못 느꼈을 거야. 하지만 랑탕과 트랑킬, 미카엘이 애쓴 덕분에 극심한 고통을 맛봤지. 

  그런 것쯤이야 지금 그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다른 엑소시스트가 소리쳤다. 랑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지옥 쪽으로 몰아갔다. 지옥의 많은 방들 중 그 마법사는 어디에 떨어졌지? 루시퍼가 그자를 어떻게 맞이했나? 지금 이 순간 그자에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잔느 수녀의 이사카론이 수도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사카론의 상상이 메말랐을 때, 아그네스 수녀가 도우러 나섰다. 그녀가 발작하여 마룻바닥에 쓰러졌고, 그녀 입을 통해 악마 베헤리트가 제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날 저녁 수도원에서 다른 수사들이 보기에 랑탕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넋이 빠진 사람 같았다. 어디 아픈 겁니까? 

  랑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프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개운치 못한 점이 있소. 죄인이 그리에 신부를 보게 해 달라고 청했는데,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어. 글쎄, 고해를 가로막아서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아닌가? 

  동료들이 갖가지로 안심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랑탕이 고열에 빠졌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게야. 날 벌하시는 게야.” 연신 중얼거렸다. 

 

  외과의 만누리가 사혈을 하고 약제사 아담이 관장기를 통해 하제를 넣었다. 고열이 가라앉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랑탕이 이제 헛것을 보고 듣기 시작했다. 고문 받으며 그랑디에가 내지른 비명을 듣고, 장작불 위에서 적수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악마들이 떼거리로 어른거렸다. 그들이 그의 몸으로 들어왔고, 광란 상태로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발길질하고 베개를 물어뜯게 만들고, 가장 무서운 신성 모독의 말들을 그 입에 가득 채웠다

 

  9월 18일, 그랑디에 화형 이후 꼭 한 달 지나, 자기한테 병자성사를 베풀던 성직자의 손에서 십자가를 쳐냈다. 그러고는 랑탕이 급사했다. 

  로바르데몽이 호사한 장례비를 댔고, 트랑킬 수사가 설교에서 고인을 신성함의 모델이라 불러 추켜세우며 사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선포했다. 그랑디에를 징벌했다 하여 하나님의 충실한 종에게 복수한 것이오. 

 

  다음 차례는 외과의 만누리였다. 랑탕 수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번은 밤중에 포트 뒤 마트레이 인근에 사는 어떤 병자에게 사혈을 해주러 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롱불 든 하인을 앞세우고 가던 그가 그랑디에를 보았다. 주임신부는 악마의 표식들 때문에 바늘로 찔리던 그날처럼 알몸으로 성채 바깥 기슭과 코르들리에 수도원 정원 사이 그랑파베 거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만누리가 발을 멈추었다. 그가 시커먼 허공을 응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뭘 원하느냐!” 하고 묻는 소리를 하인이 들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외과의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금방 땅바닥에 엎드려 애절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 역시 숨이 끊어졌다. 

 

  이제 루이 쇼베 차례가 됐다. 마녀재판이라는 대단히 멍청한 짓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반듯한 치안판사들 중 한 사람. 원장수녀와 많은 수녀들이 그가 마법을 한다고 비난했고, 그들의 고발과 증언을 바레는 자신의 교구에서 여러 마귀 들린 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쇼베는 추기경이 그 광기 어린 자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미칠 화에 지극히 겁을 내는 바람에 정신이 상했다. 검은 멜랑콜리에 빠지고 정신쇠약까지 보이다가 겨울이 가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트랑킬은 다른 사람들보다 근성이 더 강했다. 네 해가 지나 1638년 악마에 지나치게 몰두한 후과에 마침내 굴하고 말았다. 그랑디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악마들을 더 키웠고, 터무니없는 공개 엑소시즘으로 악마들이 계속 횡행하게끔 했다. 이제 악마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금물이다. 트랑킬은 제가 열심히 뿌린 것을 거둬들이게 됐다

 

  처음에는 환영들이 드물게 나타나고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악마 개꼬리와 레비아탄이 조금씩 우위를 점하게 됐다. 말년에 트랑킬은 제가 그렇게나 정성 들여 히스테리를 조장했던 수녀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욕설을 내뱉고, 혓바닥을 빼물고, 쉰 목소리를 내고, 개처럼 짖어대고,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푸친회 기록을 보면, ‘악취 풍기는 지옥 올빼미’라 명명한 악마가 동정을 버리고 겸허와 인내와 믿음과 헌신을 다 내팽개치라 유혹하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가 성처녀와 성 요셉을, 성 프란체스코, 성 보나벤투라[각주:5]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마귀 들림이 더 악화되기만 했다. 

 

  1638년 성신강림대축일에 트랑킬이 마지막으로 강론했다. 이삼일 더 그럭저럭 미사를 집전하고 나서 자리보전하고 말았다. 원인은 심신증이 분명하지만 상당히 치명적인 병이었다. 「그는 추잡하고 외설한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야말로 악마 계약의 일부인 것이 분명했다! 음식물을 조금 넣을 때마다 악마들이 그를 아주 건강한 사람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격렬하게 구역질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한 두통과 심장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건 ‘갈레노스나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에도 언급되지 않은 종류였다.’ 주말에 이르러 ‘오물과 악취를 연신 내뿜는데, 어찌나 역겨운지 수발드는 이들이 당장 치웠음에도 방안에 있기가 끔찍할 정도였다.’ 

 

  성신강림대축일 다음날인 월요일 병자성사를 베풀게 됐다. 한데 악마들이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나와 침대 곁에 있던 다른 탁발수사의 몸으로 들어갔다. 새로 악귀 들린 사람이 어찌나 광포하게 굴든지 동료 대여섯 명이 겨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끌어내기 전에 그 사람은 거의 숨이 끊긴 트랑킬 수사를 마구 걷어차려고 들었는데, 그걸 말리느라 다들 무진 애를 먹었다. 

  그 대신 장례는 화려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시신으로 몰려들었다. 혹자들은 시신에 묵주를 놓았고, 혹자들은 법의 조각을 베어냈다. 성물처럼 간직하려고 말이다. 밀려드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관에 금이 가고, 각자가 자투리라도 얻으려고 서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시신이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존중받을 만한 이들 몇몇이 예절도 모르는 자들을 내쫓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신부는 벌거숭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법의를 쥐어뜯으면서 시신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트랑킬 신부의 법의 조각들도 이제 성유물이 됐다. 그가 산 채로 불태운 사람의 유해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되어 불분명해졌다. 마법사는 수난자 같이 죽고, 그의 악마 같은 집행자는 죽은 뒤 성인이 된 것. 그러나 영혼에 바알세불이 들어앉은 성인으로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였으니… 페티시는 그저 페티시일 뿐이라는 점!![각주:6]

  (8편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1. 하느님,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틴어) [본문으로]
  2. Lourdes - 프랑스 남서부 마을, 성모 마리아가 기적의 치료를 해준다고 하는 성지 [본문으로]
  3. Francis Xavier (1506–1552) - 현 에스파냐 지역인 나바르왕국에서 출생. 로마가톨릭 선교사, 예수회 공동 설립자, 성 이냐시오의 제자. 그의 성유물 중 오른팔은 1614년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분리한 뒤 로마에 있는 교회 은제 성골함에서 전시돼. [본문으로]
  4. Geoffrey Chaucer (1343–1400) - 영국문학의 아버지, 중세 잉글랜드 최고 시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구역에 최초로 안장되다. ‘면죄부 판매인 이야기’는 <켄터베리 이야기>에 실렸다. 사람들 속이는 방법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교훈으로 끝난다. [본문으로]
  5. St. Bonaventura (1221–1274) - 이탈리아 중세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알바노 추기경, 가톨릭 교부. [본문으로]
  6. fetish – 맹목적 숭배물, 미신의 대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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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젊은 시절

 


 

  근세 과학 문헌을 읽다 보면 가장 거친 초자연주의[각주:1]와 가장 거칠고 나이브한 유물주의[각주:2] 같은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데 이 덜 다듬어진 유물주의는 현대의 유물주의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옛 이론이 다루는 ‘물질’[각주:3]은 정확하게 계량되는 무엇이 아니다. 거기서는 그저 따스함과 차가움, 건조함과 축축함, 가벼움과 무거움 따위 얘기만 나온다. 이런 질적 표현을 양적 규모로 밝히려는 시도가 전혀 없다. 우리네 선조들의 관념에서 ‘물질’은 측정되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주 적다

 

  두 번째 차이점이 첫 번째 못잖게 중요하다. 우리 관점에서 ‘물질’은 늘 움직이는 무엇이며, 실제로 그 본질은 바로 움직임에 있다. 모든 물질은 늘 뭔가를 하고 있고, 모든 형태의 물질 중 생체를 구성하는 콜로이드[각주:4]가 가장 미친 듯이 바쁘다. 하지만 콜로이드의 움직임은 놀랍게도 서로 조화를 이루니, 유기체의 한 부위에서 벌어지는 과정이 다른 부위들의 과정을 조절하고 또 그것에 의해 조절되면서 에너지 균형을 만든다. 

 

  고대와 중세 사상가들에게 물질이란 본질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물건일 뿐이었다. 살아있는 신체를 얘기할 때조차 그랬다. 그 생체에서 어떤 움직임이 벌어졌다 하면, 식물에서는 오로지 식물적 영혼이, 짐승들에서는 식물적 영혼과 감각적 영혼이, 또 인간한테서는 그 두 영혼과 더불어 이성적 영혼이 작용한 것이었을 뿐. 

 

  생리 과정은… 과학으로서의 화학이 아직 없었기에 화학 용어로 설명되지 못했고, 전기라는 것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전기 자극으로 설명되지 못했고, 현미경이 없는데다 아무도 세포를 본 적이 없기에 세포 활동으로도 설명되지 못했다. 신체 조직을 구성하는 물질들의 활동 형태는 전부 (전혀 어려움 없이) 그저 영혼의 특별한 기능으로 설명됐다. 

  영혼에는 예를 들어 성장 기능, 영양 공급 기능, 분비 기능이, 한마디로 생리 과정에 관련된 기능이 다 있었다. 이런 가설이 철학자들에겐 참으로 편리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추상적 개념에서 자연 현상으로 옮겨가려 했을 때, ‘영혼의 특별한 기능’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적다는 점을 알았다. 

 

  중세 유물주의의 투박한 성격은 당대 문학에서 사용된 여러 메타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생리적 요소들은 부엌과 변소에서 벌어지는 것에 은유됐다. 당시 문학에는 끓는 것과 끓어서 터지기 직전의 것과 압력으로 일그러지는 것, 오수 구덩이와 대저택 이동 변기의 응고물에서 나오는 부패물과 악취에 관한 얘기가 늘 나왔다. 그런 개념들에 의거하여 신체 기관의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극히 어렵다. 

 

  좋은 의사는 치료자 본능을 타고난 사람으로, 지식이 재능과 직관적 진단을 너무 간섭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자연은 간섭받지 않으면 스스로 치유 기적을 행할 수 있다

 

  버튼의 방대한 편찬물에는 갖가지 헛소리며 위험한 난센스와 더불어 번뜩이는 센스가 적잖이 들어 있다. 난센스는 주로 당대에 횡행하던 과학적 이론들과 연관되고, 지혜로운 센스는 주로 통찰력 있고 선량한 숙련가들이 열린 마음으로 얻은 경험에서 나온 것. 그들은 또 동료를 사랑하고 환자 다루는 비결을 터득하고 자연의 치유력을 믿은 이들이었다

  자연적 원인이든 초자연적 원인이든 멜랑콜리라는 질병을 의사들이 어떻게 치료했는지 관심 있는 이들은 버튼의 황당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우리 이야기를 위해서는 잔느와 다른 동료 수녀들이 재판 기간 내내 의료진의 관리를 받았다는 점을 언급하면 충분하다. 아쉽게도, 버튼이 묘사한 현명한 치료법 어떤 것도 그 수녀들한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을 신선한 대기로 내보내지 않았고, 식이요법을 처방하지 않았고, 몸을 좀 고되게 할 만한 일도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사혈과 관장에 시달리고 별의별 환약과 탕제를 끝없이 삼키고 들이켜야 했을 뿐이다

  그런 치료가 어찌나 괴물 같았던지, 양심적인 의사 몇몇은 수녀들을 검사한 뒤 치료 열성이 지나쳐서 병세가 외려 악화됐다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했다. 수녀들한테 늘 다량의 안티몬이 투여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고생했는지도 모른다. 

 

  [저자 주 → 이런 진단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묘사하는 사건들이 벌어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 세대에 걸쳐 의사들이 안티몬을 두고 대립해 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갈레노스의 관점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을 그 어떤 질병 치료에도 효과가 탁월한 약제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적인 의사들이 압력을 넣자 파리 고등법원은 프랑스 전역에서 안티몬 사용 금지 포고령을 발동했다. 그러나 법령은 준수되지 않았다. 

 

  법안 통과 후 반세기가 지나 그랑디에의 친구이자 루덩에서 가장 저명한 의사인 테오프라스트 르노도[각주:5]가 안티몬의 효능을 열렬히 찬양하고 있었다. 그의 후배뻘이며 유명한 <서신>의 작자인 귀 파탱[각주:6]은 또 그에 상충되는 관점을 맹렬히 옹호했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는 르노도며 다른 갈레노스 반대자들이 아니라 파탱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안티몬 화합물은 칼라아자르라고 알려진 열대병 치료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이 금속과 그 화합물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이용할 가치가 거의 없다. 어찌 됐건, 16세기와 17세기에 안티몬의 무차별 남용은 의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긴 해도 경제적 관점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차고 넘쳤다. 아담과 동료 약제사들은 금속 안티몬으로 ‘영구 환약’을 팔아 돈을 짭짤하게 벌었다. 이 환약은 삼키면 창자를 지나면서 점막을 자극하여 하제처럼 작용했고, 변기통에서 꺼내 씻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무한정 쓸 수 있기 때문에 한번 구비하면 그 다음에는 배변 촉진제에 돈 들일 일이 더 없었다. 의사 파탱이 격렬하게 비난하고, 파리 고등법원이 금지했다. 하지만 변비까지 일으킬 정도로 인색한 프랑스 부르주아에게 안티몬의 매력은 물리치기 힘들었다. 이 영구 환약을 가보처럼 취급하면서 대물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초기 갈레노스 반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명성 높은 파라셀수스[각주:7]가 잘못된 유추 하나로 안티몬에 열정을 품게 됐다는 점을 여담 삼아 언급할 만하다. 이렇게 말했다. “안티몬은 금을 정제하면서 슬래그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인체도 깨끗하게 해준다.” 

 

  금속 세공사와 연금술사의 작업을 의사와 영양사의 작업과 비교함으로써 생긴 또 다른 잘못된 유추는 식료품을 더 많이 가공할수록 유용성이 더 커진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흰 빵이 갈색 빵보다 더 좋고, 부글부글 끓인 부용(bouillon)이 그 안에 든 본래의 고기며 야채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믿음. ‘거친’ 식품을 먹는 사람들은 거칠어진다고 짐작들 했다. 파라셀수스가 이렇게 말한다. “치즈와 우유, 오트밀 비스킷을 먹는 사람은 섬세한 기질을 지닐 수 없다.” 

  우리네 식생활 이론을 연금술에 잘못 유추하면서 벌어지던 혼란은 불과 한 세대 전 비타민이 등장한 뒤에야 멈추게 됐다.] 

 

  하지만 ‘멜랑콜리’ 치료법이 아무리 잘 개발돼 있었다 한들 마귀 들림과 악마의 틈입 때문이라는 믿음이 훨씬 더 널리 퍼진 당시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의사들 가운데서도 그랬다. 버튼의 글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귀신이며 악마 얘기에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법률가며 성직자, 의사, 철학자 대다수가 그 반대편에 있다.’ 

 

  벤 존슨[각주:8]은 <악마는 당나귀처럼 투미해>에서 17세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우리한테 선명하게 남겼는데, 거기에는 맹신과 의심, (특히 도저히 믿을 게 못 되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의존과 응용과학의 새로운 발견에 대한 순진한 자만이 공존한다. 극중 인물인 피츠도트럴은 마술 딜레탕트로서, 악마와 만나기를 갈망한다. 악마들은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고 있으니까. 

 

The Devil is an Ass. by Ben Johnson

 

  그러나 마법과 사탄의 힘을 믿는 마음과 함께 우리 아버지들이 ‘기획자’라 부르던 회사 프로모터며 뭔가 발견했다고 큰소리치는 사기꾼들, 의심쩍은 발명품들에 대한 믿음 역시 아주 강하다. 자기한테 천팔백만 파운드를 확실히 만들어주고 공작 신분까지 얻어주는 계획을 기획자가 세우고 있다고 피츠도트럴이 말하자,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 거짓된 혼령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한다. “혼령이라니!” 피츠도트럴이 소리친다.

 

혼령이라니! 그런 건 없어, 여보, 멀쩡한 이성만 있는 거야. 

이 사람은 악마와 악마의 작업을 다 거부하지. 

이 사람은 엔진과 기계장치로만 일을 해, 이 사람은 그래! 

이 사람은 날개 달린 쟁기를 발명했어, 기적 같지, 

그게 있으면 40에이커 밭도 한순간에 다 갈아엎어! 

그 넓은 밭에 물을 대는 기계도 다 있어

 

  피츠도트럴은 물론 코믹하면서도 그 시대에 아주 전형적인 형상이다. 그가 상징하는 바는 자연적인 세계와 초자연적인 세계, 이 두 세계에 지적인 생활이 불안하게 양다리 걸친 시대. 그가 두 세계의 최선 대신 최악을 취하려고 애쓴 것도 역시 슬프지만 전형적이다. 

  우둔한 자들은 순수한 과학보다 과학적 협잡에, 성령에 대한 믿음보다 밀교와 비술에 훨씬 더 매료를 느낀다

 

  루덩의 수녀들 스토리에서 그렇듯이 버튼의 책에서 이 두 세계는 공존하고 용인된다. 한편에는 공인된 의술로 치료해야 하는 멜랑콜리가 있다. 한데 마법과 귀신들림 또한 잘 알려져서, 그것들이 몸과 마음에 질병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해서 놀랄 건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하늘이나 땅이나 물에, 땅 아래에, 빈 곳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으며, 파라셀수스가 한사코 주장하듯이 대기 중에는 보이지 않는 악령들이 여름날 파리보다 훨씬 더 가득하여 늘 저마다 갖은 혼란을 획책하니 말이다.」 

 

  버튼에 의하면, 혼령의 수효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네 어떤 수학자들 말이 옳다면, 즉 돌멩이가 별들이 빛나는 하늘이나 여덟 번째 천구에서 떨어져 시속 100마일로 날아간다면, 그건 어떤 이들 말대로 1억7천만803마일이라는 엄청난 거리를 지나 지구에 닿기까지 65년이나 그 이상이 걸릴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광활한 공간에 혼령이 얼마나 많이 거처할 수 있겠는가?」 

 

  우주관이 그럴진대, 악마들이 우연히 어떤 사람한테 들어앉는다는 것이 놀라운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대다수 사람들이 귀신들리지 않고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녕 놀라웠다

(7-1편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초자연주의 - 감각적 인식으로 파악되는 자연적 존재를 초월한 정신적 존재가 있다고 단정하고, 그에 관한 인식은 신앙, 계시, 직관 등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 [본문으로]
  2. 유물주의 -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정신이나 의식 따위는 물질의 산물이라는 이론. [본문으로]
  3. 물리에서, 자연계를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질량을 가지는 것. [본문으로]
  4. 원자나 보통 분자보다는 크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작은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 또는 그 물질이 기체, 액체, 고체 속에서 분산되어 있는 상태. 입자 크기는 1~10나노미터, 거름종이는 통과하지만 반투막은 통과하지 못한다. [본문으로]
  5. Théophraste Renaudot (1586-1653) - 프랑스의 의사, 저널리스트. 프랑스 저널리즘의 창시자. 빈민 구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본문으로]
  6. Gui Patin (1602-1672) - 프랑스의 유명한 의사, 저술가. "늙음과 탐욕은 늘 한 패거리". [본문으로]
  7. Paracelsus (1493-1541) - 스위스계 독일의 의사, 식물학자, 연금술사, 자연철학자, 점성가, 밀교 신봉자. 치료화학 창시자들 중 한 사람. 자신이 지은 라틴어 이름은 '셀수스를 능가하는 사람'이라는 뜻. *셀수스 - 고대 로마의 철학자, 의사. 다방면에 박학다식하여 철학, 수사학, 법률, 농업, 군사, 의료에 관한 책을 20권 가량 남겼다. 의학 전문어의 토대를 마련했다. 명료하고 우아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들 중의 키케로'라 불린다. [본문으로]
  8. Benjamin Jonson (1572-1637) - 잉글랜드의 시인, 극작가. 연극배우, 드라마 이론가. 는 제임스 1세 국왕 시대의 코미디. 1616년 초연. 무대는 사탄과 그보다 하급 악마인 퍼그가 있는 지옥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피츠도트럴은 어딘가 땅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겠다는 욕심으로 마법사며 요술쟁이들과 교류하면서 악마를 만나겠다는 생각에 푹 빠져 있는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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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악마의 기운

 


 

  우리의 두 번째 사례는 최면에 걸린 사람으로, 최면에 의해 강경증(强勁症) 상태로 들어선 경우이다. 최면의 본질이며 그 암시가 자율신경계에 어떻게 영향 끼치는지를 우리는 아직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최면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상태에서 그들 잠재의식의 어떤 부분이 최면술사가 건넨 암시에 몸이 따르게 한다는 것쯤은 우리가 알고 있다. 

  피험자가 최면에 잘 걸리는 타입이라면 노련한 최면술사는 그를 언제든 강경증 같은 경직 상태로 유도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경직 상태를 루덩의 독실한 신자들은 사탄의 소행으로 여긴 것이다. 정말 그랬다. 왜냐하면 그 당시 개념으로 보아 그런 희귀한 현상은 수녀들이 속임수를 썼거나, 아니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이 분명하니까. 

 

  만약 당신이 아리스토텔레스며 성 아우구스티누스, 갈레노스[각주:1], 아랍 학자들의 저술을 다 읽는다 해도, 오늘날 우리가 무의식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언급은 눈곱만치도 없다는 점을 발견하리라. 우리네 선조들에겐 한 쪽에 영혼이나 의식적인 자아가, 또 다른 쪽엔 하나님과 성인들, 일단의 선하고 악한 스피릿들만 있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의식적 자아의 활동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며 어떤 면에서는 더 효율적인 무의식의 활동이라는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개념을 그 시대에는 도저히 갖출 수 없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당대 이론에는 무의식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지금 우리가 무의식의 활동으로 설명하는 희귀한 현상을 그때는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 인간 외적인, 외계 혼령들의 행위로 치부해야 했다. 그러니까 발작을 일으키면서 나타난 강경증은 속임수 아니면 악마들이 들끓는다는 징후였다

 

  토마스 킬리그루[각주:2]가 젊은 시절인 1635년 가을 루덩에서 시행된 한 엑소시즘을 참관했다. 진행을 맡은 탁발수사가 이 영국인에게 수녀의 돌덩이 같은 팔다리를 만져 보라고 했다. 사탄의 파워와 그보다 더 큰 전투 교회[각주:3] 파워를 느끼고 인정하고서, 하나님 뜻이라면, 이단적 종교를 버리고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의미였다. 친구 월터 몬테규는 그 이전 해에 그렇게 했다. 이 사건을 묘사하는 편지에서 킬리그루가 이렇게 썼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돌덩이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단단한 근육과 강한 팔과 뻣뻣한 다리만 느꼈을 뿐.」 

  (수녀들이 프라이버시와 존중 받을 권리를 얼마나 철저히 박탈당했는지에 주목하자.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도사는 장터에서 여흥 돋우는 쇼의 여리꾼처럼 행동한다. “여러분, 이쪽으로 오시오! 주저 말고! 눈으로 못 믿겠다면 만져 볼 수 있어요. 이 뚱뚱한 여인의 허벅지를 꼬집어 봐요, 그러면 우리가 하는 말이 백 프로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겁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반려자들이 카바레 사회자나 서커스 열광자로 바뀌곤 했다.) 

 

  킬리그루의 편지가 이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수녀 몸뚱이가 아주 딱딱하고 쇳덩이보다도 무거웠다고 긍정한다. 필경 그들은 나보다 믿음이 더 컸고, 그래서 기적이 나보다 그들한테 더 잘 보였나 보다.」 

  여기서 ‘기적’이라는 단어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수녀들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 것이라면 시체처럼 경직된 사지는 초자연적인 원인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데카르트가 등장하고 인간 본성에 관해 더 ‘과학적인’ 이론이 웬만큼 퍼졌다 해도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적었다. 외려 몇몇 측면에서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비현실적인 관점을 견지하게 됐다. 악마를 그 누구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지만, 그와 동시에 한때 악마의 힘으로 치부하던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더 이상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적어도 이전의 엑소시스트들은 트랜스나 강경증, 다중인격, 초감각적 지각 같은 사실을 반박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 기이한 현상을 데카르트 이후에 등장한 심리학자들은 난센스며 허구로 여기거나, 그게 아니라면 ‘상상의 작업’ 결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과학자들에게 ‘상상’이란 ‘환상’과 거의 같은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된 현상들은 (메스머[각주:4]가 자기장 최면으로 효과를 본 치료 같은 것은) 무시하는 게 더 안전하고 적절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관념을 데카르트가 기하학적 범주에 집어넣고자 강력히 시도한 끝에 뭔가 경탄할 정도로 ‘명료한 생각들’이 형성됐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명료한 생각들은 거대한 의미를 지니는 어떤 사실들을 무시하게 만든다. 이 사실들에 데카르트 이전 철학자들은 진지하게 대했지만, 당시 지배적인 몇몇 심리 이론의 영향으로 그 사실들을 그저 초자연적인 원인 탓으로 돌려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이해되지 않는 사실들을 수용할 수 있으며 악마를 들먹이지 않고도 이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스피릿’이나 ‘순수 에고’나 ‘아트만’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인간 마인드를 데카르트 철학의 영혼이며 데카르트 이전 시대의 영혼과는 완연히 다른 뭔가로 납득할 수 있다. 

  예전 철학자들은 영혼이 단일하며 나뉘지 않고 불멸이라는 도그마를 굳게 믿었다. 한데 우리가 보기에 영혼은 명백히 복합적 요소들의 혼합이며, 요소들 덩어리인 영혼은 분해되고, 육신이 죽은 뒤에도 뭔가 다른 형태를 띠면서 살아남을 수 있다. 

 

  불멸은 사이키[각주:5]가 아니라 스피릿에 속하며, 이때 사이키가 선택한다면 스피릿과 합치될 수도 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이성의 근간에는 의식이 있다. 이성과 의식은 제 육체와 상호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존재의 육체나 다른 이성이며 의식과는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데카르트는 인간 육신을 자율 규제하는 오토마톤으로 간주했고, 그래서 다른 부차적 영혼들이 존재할 필요성을 못 봤다. 한데 이제 우리는 의식적인 ‘나’와 ‘생리적 무의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사이에 잠재의식의 폭넓은 활동 범주가 있다고 짐작한다. 

 

  게다가 만약 초감각적 작용과 사이코키네시스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무의식 수준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들 의식이며 물적 대상들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데카르트와 그 후계자들이 무시하기로 하고 또 그의 전배들은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악마의 틈입으로만 설명할 수 있었던, 그 기괴한 해프닝들을 오늘날 우리는 인간 심리의 자연스러운 가능성으로 돌린다. 또 이 심리의 영역이며 힘과 약점은 오늘날 과학적 관념을 한참 뛰어넘는다. 

 

  그 당시 사람들은 루덩에서 발생한 일들을 협잡이라 여기지 않았다면 순전히 심리적 측면에서는 마법과 악마의 간계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수녀들 행동을 순전히 심리적 측면이 아니라 생리적 원인으로 돌리려 한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잔느 수녀가 내보인 것 같은 현상을 생리 기능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며, 물리적 대응 수단이 적절하다고 했다. 이 이론을 굳게 믿는 이들은 회초리라는, 오래 된 수단을 써 보라고 제시했다

 

  탈망[각주:6]의 기록을 보면, 쿠드레-몽팡시에 후작은 귀신들렸다 하여 엑소시스트들 손에 맡겼던 딸 둘을 집으로 데려간 뒤 ‘잘 먹이고 호되게 회초리질을 했다. 그러자 악마가 즉각 달아났다.’ 루덩에서도 마귀 들림의 나중 단계에서는 채찍질이 아주 많이 처방됐다. 수렝의 기록을 보면, 교회 의식을 비웃기만 하던 악마들이 회초리를 보자 부리나케 달아난 경우가 왕왕 생겼다. 

 

  많은 경우 예전 회초리질은 아마도 현대의 충격 요법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즉, 무의식이 육체적 고통을 아주 겁내어, 그런 고통을 또 겪느니 차라리 미친 듯 행동하기를 그만 두는 식.[각주:7] 19세기 초까지도 광기가 확실하다 싶은 경우에는 채찍질을 동원한 충격 요법이 어김없이 적용됐다. 

 

베들람의 아늑한 방에서 

스물 하나 될 때까지 나는 

단단한 수갑 차고 달콤한 채찍 맞으며 

기도와 절식도 원 없이 했구나. 

이제 난 노래하니, “아무 음식이든, 

먹을거리든 마시고 입을 거리가 좀 있어요? 

아주머니, 혹은 하녀여, 날 겁내지 말아요. 

불쌍한 톰은 그 누구도 해치지 않아요.”[각주:8]

 

  불쌍한 톰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신민이었다. 그러나 2백 년이 지나 광기 어린 조지 3세 치하에서도 잉글랜드 의회 양원은 궁정 의사들한테 미친 왕을 채찍질하도록 위임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평범한 노이로제나 히스테리에 회초리질이 효과를 본다고 간주됐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었다. 이런 질환은 당시 의학 이론에 따르면 흑담즙이 잘못된 부위에 지나치게 누적돼 생겼다. 로버트 버튼은 이렇게 말한다. 

  「갈레노스는 이런 질환을 모두 검은 냉기 탓으로 돌리면서, 이 질병 탓에 스피릿이 검어지며 뇌 물질이 흐리고 어두워진다고 생각한다. 또 그 결과 주변 대상이 다 끔찍하게 보이며, 마인드 자체는 검은 체액에서 나오는 이 어둡고 칙칙하고 짙은 기운 때문에 늘 어둠과 공포와 비탄에 잠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갈레노스의 이런 판단을 두고 아베로에스[각주:9]가 비웃고 작센의 헤라클레스도 빈정댄다. 그러나 엘레니우스 몬탈투스, 로도비쿠스 메르카투스, 알토마루스, 기네리우스, 브라이트, 라우렌티우스 발레시우스 등은 갈레노스의 관점에 적극 동조했다. 

 

  정신이 흐트러지면 흑담즙이 생성되고, 침울함은 스피릿을 흐리게 하고, 흐려진 스피릿이 공포와 비탄을 야기한다는 게 그들이 내린 결론이다. 라우렌티우스는 검은 기운이 특히 횡격막을 공격하고 이어서 정신을 공격한다고 추정하는데, 그건 태양이 구름에 가려 흐려지는 것과 같다. 

  갈레노스의 견해에 그리스와 아라비아의 거의 모든 저자를 비롯해 라틴계 저자들도 다 동의한다.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겁을 내듯이, 흑담즙질 성향인 사람들은 내면에 늘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 검은 기운이 (예수회 신부 토마스 라이트가 애착에 관한 소론에서 주장하듯이) 심장 부근의 검은 피에서 나오든지 혹은 위장이나 비장, 횡격막, 혹은 뭔가 잘못된 부위들 전부에서 나오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검은 기운이 정신을 집요한 감옥에 잡아두고 끝없는 공포와 불안, 슬픔 따위 힘든 감정으로 괴롭힌다는 점.」 

 

  그런 식으로, 생리적 관점에서 정신질환은 건강하지 못한 혈액이나 병든 내장에서 발생하는 연기나 안개 같은 것으로 여겼으며, 이 ‘검은 기운’이 뇌나 정신을 직접 흐리거나 아니면 자연스럽고 활기차고 생명력 있는 스피릿들이 흘러야 하는 여러 튜브를 막는 것이라 했다. (당시에는 신경 조직을 속이 빈 관처럼 여겼으니까) 

 

  (근세 과학 문헌을 읽다 보면 가장 거친 초자연주의와 가장 거칠고 나이브한 유물주의 같은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음에 놀라게 된다. 한데 이 덜 다듬어진 유물주의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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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Claudius Galenus (129-201경) - 고대 로마의 의사, 자연과학자. 고대 의술의 대가. [본문으로]
  2. Killigrew (1612–1683) - 잉글랜드의 극작가, 연출가, 극장 운영. 국왕 찰스 1세의 시동으로 출발해 찰스 2세의 침실 시종관. 위트에 능한 대화 상대, 자유분방한 인물. [본문으로]
  3. Church Militant - 싸우는 교회, 현세에서 악과 싸우는 교회. *기독교 신학에서, 그리스도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렇게 나뉜다. 1) 전투 교회 - 지상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포함 (에베소서 6: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2) 승리의 교회 - 현세에서 악과 싸워 이겨 승천한 천국의 영혼들을 포함 3) 참회의 교회 - 지금 연옥에 있는 이들을 포함. [본문으로]
  4. Friedrich Mesmer (1734-1815) - 유대계 오스트리아 의사. 1775년 ‘동물 자기론(磁氣論)’ 발표. 뉴턴 역학 초기의 가설인 '에테르'란 개념을 환자 치료에 이용했다. [본문으로]
  5. psyche - 전통적으로, 영혼은 살아있는 것에만 고유한 것으로 인식돼 왔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 영혼을 사이키라 불렀다. [본문으로]
  6. Gédéon Tallemant (1619-1692) - 프랑스의 시인. 여러 인물에 관해 간결한 이야기 모음집 덕분에 후세에 기억된다. 루이 14세 시대 파리의 유명한 문학 살롱 주인인 마담 랑부이에가 앙리 4세와 루이 13세 치세의 상세한 자료를 많이 제공. 당대 문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이 저술에 파스칼과 라퐁텐도 들어 있다. [본문으로]
  7. 정신병 치료 방법과 결과가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였다. 한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그 문건들을 연구하고 나한테 들려준 바로는, 아주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니, 정신질환 치유 비율은 2백 년에 걸쳐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전혀 다른 방법들을 쓰고 있음에도 그렇다고 한다. 현대 정신 분석가들의 치료율은 1800년도 정신병 의사들의 치료율보다 더 높지 않다. 1600년도 정신병 의사들도 비슷했을까? 정확한 답을 우린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17세기에는 정신질환자들을 아주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많은 경우 병을 악화시켰을 텐데, 이 주제를 우리는 저 뒷장에 가서 다시 다룰 것이다. - 저자 주. [본문으로]
  8. - 1600년도쯤 잉글랜드에서 널리 퍼진 발라드. 작자 미상. 베들람은 정신병원. '베들람의 톰'은 미치광이라는 뜻으로, 근세 이후 영국에서 미쳤거나 미친 체한 거지와 부랑자를 일컬을 때 쓴다. 그들은 베들람의 환자였다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추정된다. 이 장시는 이후 현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시와 글과 소설과 노래 앨범 등에 영감을 주거나 인용됐다. 예,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서 존 캔티가 에드워드 왕자에게 “베들람의 톰처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고 말한다. [본문으로]
  9. Averroes (1126-1198) - 아랍의 종교철학자. 본명은 이븐 루슈드. 코르도바에서 이슬람 종법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모로코에서 죽다. 자연과학, 의학, 수학, 신학, 철학 등 당대 모든 학문을 섭렵. 독자적 저술도 적잖이 있으나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자로 명성을 떨쳤다. "자연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해석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베로에스가 처음 해석했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유일한 이슬람 학자. 단테는 <신곡>에서 그를 비기독교 세계의 현자 대열에 두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 유대 세계의 최고 철학자인 마이모니드에게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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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영화 악마들, 켄 러셀, 올리버 리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2편 

 

  몇 주일이 흘렀다. 필리프의 외출이 갈수록 줄더니 그예 교회마저 나가지 않게 됐다. 식구들한테는 몸이 아파 방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친구 마르타 펠티에가, 좋은 집안 출신이지만 일찍 부모 여위어 아주 가난한 그녀가, 간병인 겸 말동무로 집에 들어와 함께 지내게 됐다. 

 

  트렌캉 씨는 여전히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진실을 암시하거나 주임신부를 나쁘게 말할라치면 화를 벌컥 냈다. 그러면서 주변 못된 농담에 끌끌 혀를 차고 딸의 폐결핵 증세를 걱정했다. 가정 주치의 팡통이 신중하게 처신하여 누구한테든 말을 아꼈다. 루덩 주민들이 서로 눈을 끔뻑거리고 킥킥대거나 아니면 의분 표출이라는 쾌감에 빠졌다. 

  적대자들은 주임신부와 마주칠 때면 가시 돋친 암시를 흩뿌리고, 친구들은 나무라는 투로 고개를 흔들고, 라블레 성향의 익살꾼들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야비한 축하를 던졌다. 

 

  그랑디에는 그 모든 사람들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응수했다. 그에게 아직 반감을 품지 않은 이들은 그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매너와 신실해 보이는 말이 결백의 증명이라고 여겼다. 그가 무슨 못된 짓을 저질렀다고 헐뜯는 자들이 있는데, 저렇게 흠 없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기란 도덕적으로 불가능하지! 

 

  세리제 지방장관이나 마담 드브루 같은 저명인사들 저택에서 그는 여전히 환대받는 손님이었다. 그들 저택 문은 검찰관 저택 문이 닫힌 뒤에도 여전히 그에게 열려 있었다. 검찰관이 제 집 문을 닫은 까닭은 결국 딸이 왜 시름시름 앓게 됐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집요한 추궁을 견디지 못하고 딸이 다 털어놓은 것.

  트렌캉이 주임신부의 가장 충실한 친구에서 하룻밤 새에 가장 완강하고 위험한 적으로 돌변했다. 그랑디에는 자신을 파멸로 끌어간 사슬에 또 하나의 고리를 만들고 말았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다. 닫힌 덧문들과 두툼한 가리개와 커튼에도 불구하고 앳된 엄마의 비명이, 이를 윽물고 참았음에도 아주 날카롭게 새나온 비명이, 뭔가를 열심히 예상한 이웃들에게 ‘경사’를 알렸다. 그 소식이 한 시간도 안 돼 소도시 전역에 퍼졌고, 다음날 아침 재판소 현관에는 <검찰관의 사생아 손녀를 기리는 송시>라는 점잖지 못한 글이 나붙었다. 

  프로테스탄트 몇몇이 의심을 샀는데, 그건 트렌캉이 정통 가톨릭교회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이단적인 시민들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데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마르타 펠티에가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자신이 아기 엄마라고 공개적으로 자처하고 나섰다. (그건 이 사연의 추악함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행위였다.) 죄를 범한 사람은 나에요, 수치를 감추려 한 사람도 나에요. 필리프는 나한테 피난처를 제공한 은인일 뿐이지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지만 그 가상한 마음씨는 합당한 평가를 받았다. 마르타가 일주일 된 아기를 유모 노릇 하겠다고 나선 젊은 시골 여인한테 넘겼다. 그 장면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끔 과시적으로 연출됐다. 그러나 그런 제스처에 넘어가지 않은 프로테스탄트들이 계속 입을 놀렸다. 

 

  그들의 점잖지 못한 의혹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심정으로 검찰관이 그럴 듯한 법률적 책략을 썼다. 마르타를 백주 대로에서 체포하여 치안판사한테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그녀가 법정에서 서약한 뒤 증인들 배석 하에 갓난애가 제 소생이라고 공식 인정하며 아이 부양을 책임지겠다는 문서에 서명해야 했다. 친구를 사랑한 까닭에 마르타가 서명했다. 문서 사본 한 부는 기록보관소에 보관되고 다른 한 부를 트렌캉이 의기양양하게 제 주머니에 넣었다. 

 

  거짓이 공식 인증되어 이제 법률적 진실이 됐다. 법률 자구만을 지각하기에 익숙해진 머리들한테 법적 진실은 무조건적 진실과 같은 법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으니,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못했음을 검찰관이 분한 마음으로 곧 알게 됐다. 공식 문서를 그가 큰 소리로 낭독하고, 다들 제 눈으로 서명을 보고, 공식 봉인을 직접 만져 본 뒤에도… 친구들은 정중하게 미소 지으며 말머리를 돌릴 뿐이며, 적대자들은 크게 웃으면서 공격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프로테스탄트들의 원한이 어찌나 깊은지, 한 목사는 위증이 간음보다 더 무서운 죄악이며 스캔들을 덮기 위해 거짓 증언한 자는 음란함으로 원인을 제공한 자보다 지옥 불에 더 시달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청년기에서 새뮤얼 가스 경의 중년기 사이에는 숱한 사건들로 점철된 세월이 오래 흘렀다. 통치 체계와 사회 조직, 경제 기구, 물리학과 수학, 철학과 예술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많았다. 그러나 그 백년 어간에 전혀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약방이었다. 로미오는 약제사의 점방을 이렇게 묘사한다.[각주:1]

 

약방에는 별의별 게 다 있어서, 

거북이와 악어와 갖가지 바다 생물 박제들. 

선반마다 남루한 것들이 얹혀 있어서, 

먼지 낀 도토 항아리며 빈 상자들, 

노끈 토막이며 약초며 씨앗들 

그리고 축축한 장밋빛 알약들. 

어렵사리 상품 모양을 낸 

가련한 잡동사니가 다 있구나.

 

  새뮤얼 가스 경이 장시 <조제실>에서 거의 같은 장면을 묘사한다.[각주:2]

 

거기엔 수지 먹인 미라 유해와 

바다거북 껍데기들이 놓여 있었어. 

이빨 무성한 상어 아가리가 엷은 미소로 

창밖 지나는 이들을 놀라게 했지. 

천장으로는 말린 양귀비가 

대롱대롱 줄에 걸려 있고, 

그 아래엔 거대한 악어가 비늘 덮인 채 

음침한 모습으로 불쑥. 

한 쪽 구석엔 안티몬과 암모니아수, 

다른 구석엔 바짝 말린 오줌보. 

 

  이 과학의 신전은 마법사의 실험실이자 시골 장터 간이무대이기도 한데, 연결되지 않는 사물들과 개념들의 기묘한 결합이라는 17세기 특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데카르트와 뉴턴의 시대는 또한 플러드[각주:3]와 케넬름 딕비 경[각주:4]의 시대이기도 했고, 대수와 해석기하학의 시대는 또한 ‘무기 연고’[각주:5]며 ‘연민 파우더’며 ‘특징 이론’[각주:6] 따위가 판치던 시대이기도 했다. 

  <회의적인 화학자>의 저자요 왕립협회 설립자들 중 한 사람인 로버트 보일[각주:7]은 가정에서 쓰기에 좋은 처방전을 한 권 남겼다. 예를 들어, 보름날 참나무에서 따낸 미슬토를 말리고 갈아서 블랙체리 물에 타 마시면 간질병이 낫는다. 뇌졸중 발작에는 (키오스 섬의 렌티스크 관목에서 추출한 수지인) 유향을 구리 용기에서 증류하여 정유를 뽑아낸 뒤 깃털에 묻혀 병자의 한쪽 콧구멍에 두세 방울, ‘잠시 뒤 다른 쪽’에 두세 방울 떨어뜨려야 한다. 

  과학 정신이 이미 활발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나 주술사와 마녀의 정신 또한 그 못지않게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마르샹 거리에 있는 아담의 약방은 중간 규모로 초라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은데 지방 소도시 약방치곤 훌륭했다. 미라들과 코뿔소 뿔을 갖추기에는 많이 수수하지만 그 대신 서인도제도 거북이들과 고래 태아, 8 피트 되는 박제 악어 따위를 뽐냈다. 

 

  쌓아둔 품목도 아주 많고 다양했다. 선반마다 갈레노스[각주:8] 유파에서 즐겨 쓰는 약초 일습과, 발렌티누스[각주:9]와 파라셀수스[각주:10]의 후계자들이 권하는 최신 약물을 다 구비했다. 대황과 알로에가 그득하고 감홍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감홍을 아담은 '온순한 용'이라는 뜻으로 Draco mitigatus라 즐겨 불렀다. 

 

  만약 당신이 식물성 간장약을 좋아한다면, 거기엔 콜로신스가 있었다. 그러나 당신이 더 현대적인 치료를 시도해 보자 한다면, 거기엔 토주석과 금속성 안티몬도 있었다. 만약 당신이 재수가 없어 마음에 안 드는 님프나 멋쟁이를 사랑하게 됐다면, 서양측백과 수은-초크 중에서, 혹은 사르사파릴라와 블루 연고제[각주:11] 중에서 뭔가를 선택하면 됐다. 

  어디 그뿐인가, 말린 독사며 말발굽이며 사람 뼈까지 꼽는다면 아담이 동종업자들 앞에서 주뼛거릴 일이 없었으리라는 점을 당신도 쉽게 이해하리라. 더 값비싼 것은 (예를 들어, 사파이어나 진주 가루 등은) 선금을 치르고 특별히 주문해야 했다. 

 

  그런 약방이 이제부터 음모자들의 정기 회합 장소요 본거지가 됐다.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그랑디에의 파멸. 이 음모의 리더들은 검찰관과 그의 조카, 참사회 위원 미뇽, 경찰 수뇌, 그의 장인 메스멩 실리, 외과의 만누리 등이었으며, 아담도 응당 포함됐다. 환약을 짓고 이빨을 뽑고 관장을 하는 직업 성격상, 아담은 정보 수집의 막강한 원천이었다.

  그런 만큼 그가 공증인의 아내 쇼뱅 부인한테서 (어린 아들의 기생충을 뽑아내면서 절대 비밀로) 알아낸 정보는 요긴했다. 주임신부가 1순위 담보 대출에 800 리브르를 투자했다는군. 그 악당이 부를 쌓기 시작한다는 뜻이에요. 

  안 좋은 소식이 또 있었다. 다르마냑의 둘째 심복의 처형이 부인병을 치료하느라 말린 쑥을 정기적으로 사 가잖아요. 근데 하는 말이, 그랑디에가 내일 지방장관 아성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한다지 뭡니까. 

 

아담의 약방에서 음모자들이 회동

 

  그 말에 검찰관이 미간을 찌푸리고 경찰 수뇌가 투덜대며 고개를 저었다. 다르마냑은 그냥 지방장관이 아니라 국왕의 총신이다. 그런 인물이 그랑디에의 친구요 보호자라는 사실은 실로 끔찍한 것이었다. 

 

  우울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희망이 있어, 그럴 듯한 스캔들을 만드는 거지...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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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인생의 (가혹한) 진실 15가지

관계에 고요와 평정의 공간 들이기 위해 경청을. 50

 

  1. 셰익스피어 (1564-1616) - 5막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1597년에 발표. [본문으로]</로미오와>
  2. 새뮤얼 가스 경 (Sir Samuel Garth, 1661-1719) - 잉글랜드의 물리학자, 시인. 1699년 여섯 편으로 된 장시 을 발표, 약제사들이며 그들과 결탁한 물리학자들을 비웃었다. [본문으로]
  3. 플러드(Robert Fludd, 1574-1637) - 잉글랜드의 의사, 신비주의 철학자. 장미십자회에 헌신하면서 과학적 경향과는 동떨어진 신비주의 경향을 저술에서 두루 설파. 생전에 마법사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19세기 영국 평론가 드퀸시는 플러드의 저술을 프리메이슨의 상징적 이념의 주된 뿌리로 보았다. [본문으로]
  4. 딕비(Sir Kenelm Digby, 1603-1665) - 브리튼의 철학자, 외교관, 저술가. 모반으로 기소되고 ‘화약 음모’에 가담하여 처형된 에버라드 딕비 경의 아들. [본문으로]
  5. 무기 연고(weapon salve) - 상처를 낸 무기에 바르면 호의적인 힘에 의해 상처가 낫는다고 미신처럼 믿었던 연고. 연민 파우더(the Sympathetic Powder)도 비슷하게 쓰였다. [본문으로]
  6. 특징 이론(Theory of Signatures 혹은 Doctrine of Signatures) - 인체 부위를 닮은 식물들이 그 부위에 생긴 질환 치료에 쓰일 수 있다는 개념.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와 디오스쿠리드 시대 이후 약초 채집자들이 공유한 생각. 16세기에 파라셀수스가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유럽의 형이상학은 이 개념을 신학에서 확대했다. “전능자께서는 치료 방법들도 사물에 표시하거나 ‘서명’해 두셨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미신으로 간주한다. [본문으로]
  7. 보일(Robert Boyle, 1627-1691) - 아일랜드의 화학자, 자연철학자. ‘보일의 법칙’. <의심쩍은 화학자 the sceptical chemist>는 현대 화학의 효시가 된 저술. 이 책 덕분에 연금술이 화학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본문으로]</의심쩍은>
  8. 갈레노스(130-200) - 로마의 의사, 철학자. 히포크라테스와 함께 서양 의학의 시조. [본문으로]
  9. 발렌티누스(Basilius Valentinus) - 14-15세기 독일의 연금술사. 그의 저술이 17세기에 널리 퍼졌다. ‘현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한다. [본문으로]
  10. 파라셀수스(1493-1541) - 스위스의 철학자, 자연과학자, 의사, 연금술사. “모든 약물은 작용과 부작용을 동시에 지니며, 부작용은 약물 용량으로 정해진다. [본문으로]
  11. Blue ointment - 수은연고와 광유나 돼지비계 정제 기름으로 만든 피부 치료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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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퀴즈 문제 하나  

 

건강한 사람에게는 태어나는 순간 자연이 아주 완벽하고 아름답게 이것을 부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을 잘 간직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당신도 포함해서!) 이 놀라운 도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적극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어떤 도구를 말하는지 짐작하시겠지? 

 

내추럴 보이스

 

오호, 애재라, 우리네 대다수의 경우, 나이를 먹어 가면서 이것의 빛과 잠재력이 점점 퇴색되고 시들어 가기만 할 뿐… 이것은, 이 도구란, 무엇인가?!

이 도구란… 바로 당신 목소리!! 

 

능력 있고 정직하며 그 안목이 미덥기까지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 썩 접하고 싶지 않고 그 사람 말에 수긍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당신은 필경 만난 적이 있을 터. 왜?

단지 하나, 그 목소리가 불쾌하게 들렸고, 들린다는 이유 때문에! 

 

그 반대 되는 경우도 있기 마련. 이를테면, 혹자가 진부한 얘기나 늘어놓고 심지어 때론 거짓말까지 삼가지 않지만… 

그 목소리에 자신감과 열정이 넘치고, 그 어조가 매끈하여 듣기 감미로워서, 그냥 그 사람 말을 다 믿고 싶고,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르고 싶어지는 경우도…

 

직업 성격상 목소리를 잘 다듬고 가꾸고 키워야만 하는 이들이 있다.

배우와 가수들만 그런 것이 결코 아니야! 정치인, 비즈니스맨, 교사, 강연자, 관리자, 정신과 의사, 변호사, 상담자, 트레이너, 세일즈맨 그들의 성공 여부는 바로 청중과 고객과 동료들의 눈길을 끌어당길 줄 아는 솜씨와 직결된다

직업적 성공을 떠나서도, 우리는 이성을 매료시키고, 유쾌한 대화 상대가 되고, 우리의 제안이나 요청에 상대 동의를 얻고, 설득할 줄 아는 재주도 지니고 싶어 한다. 그 모든 것에도 역시 살아 있고 진정 어리고 유쾌한 목소리가 필수인 것! 

 

그런데, 혹여…

* 당신은 자기 목소리를 잘 다루지 못하는 듯싶은가?  
* 당신 목소리가 당신의 당당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시나?

녹음해서 들어보니, 거칠고 쉰 목소리로 들리나? 아니면, 맥없거나 아무런 맛도 없다고? 
* “내 목소리는 너무 높아서 (혹은, 낮아서) 불만이고 문제가 있어!” 그렇게 여기시나?

* 가끔 당신 의지와 무관하게 목소리에서 날카로운 음조가 튀어나온다고? 
* 간혹 당신이 ‘코로’ 말을 하며 당신 목소리에 코맹맹이 기미가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나?  

소리나 음절, 어미를 ‘집어삼키고’, 그래서 당신 말이 종종 무시되나?
혀나 턱이 말을 잘 안 들어서 음가를 정확히 내기가 힘들다고 느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당신 목소리가 더 상냥하고, 더 가락을 띠며, 더 웅숭깊고, 맛깔나게 울리기를 갈망하나?
* 당신은, 냇물이 시원스레 흐르듯이,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술술, 그러면서도 단조롭지 않게 말하기를 원하나? 게다가, 긴장하지 않고 힘 들이지 않으면서도 넓은 홀 구석구석까지 목소리가 다 들리기를?

* 뭔가 잘못 말하지 않을까 겁내지 않고 위축되지 않으면서, 온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말하기를 원하나?
* 당신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생각한 것을 죄다 명료하고 정확하게 소리 내기를 갈망하나?
자신의 녹음 목소리를 흐뭇하고 대견하게 듣고, 연인이며 친구들한테도 목소리로 인사말을 기쁘게 보내기를 소망하시나?

  
그런데 왜, 어째서, 아직까지 이 중요한 작업을 시작하지 않는가? 
 

사회화

 

자신의 내추럴 보이스를 되돌리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으며, 빠르고 쉽고 유쾌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어쩌면 당신은 별반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래, 바로 ‘되찾고, 되돌리고, 복원하는’ 것! 

어린애들한테는 목소리 문제가 없다. 그들은 목소리의 억눌림이나 위축 같은 것을 모르니까. (물론, 신체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경우에). 어린애들 목소리는 거의 전부 자연스럽고 깨끗하고 맛깔나게 울리지 않는가

 

한데, 서너 살부터 우리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른바 사회화 (socialization) 과정.

“떠들지 마라”, “소리치지 마”, “멍청한 질문 하지 마”, “입 다물어” 등등이 우리를 억누르며,

그 결과 우리에겐 조심성이 생기고, 호흡이 억눌리며, 우리는 위축되면서 더 왜소해져 간다.

그리고 그런 면면이 다 우리 자세에도, 목소리에도 여지없이 반영된다.

몸과 마음의 억눌림이 다 목소리 울림에서 나타나는 것! 

고대 그리스의 걸출한 의사 갈레노스가 설파하길… 눈만이 아니라 목소리 또한 영혼의 거울이라 했거늘!
주변 사람들은 당신 목소리 울림을 들으면서 당신에 관한 정보를 거의 틀리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그런 과정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무의식 수준에서 당신에게 친밀감이나 거리감을 맛보게 된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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