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부정부패와 정치적 스캔들로 보자면 법이란 물건은 상당히 유연한 모양이다. 법을 휘어놓을 만한 근육을 갖고 있는 자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경찰의 잔혹성과 경찰이 저지르는 범죄는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목도되는 현실이다.
법원은 항상 부자들 편을 들었다. 유전무죄.
이제 우리는 우리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국가의 눈길조차 막을 수 없다.
많은 국가에서 정부의 이런 부도덕함은 어떻게든 민족과 문화의 파괴와 살인으로 이어진다.
사회질서란 환상이요 미혹이다.
이것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이 순종적이고 모든 것에 동의하기 때문일 뿐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다른 사람들이 폭압의 공포 속에서 복종하게끔 강요하는 자들의 집단이다. 국가란 폭력 독점권을 가진 갱단과 다를 바 없다. 역사는 국가기관들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강탈하기 위해서만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한테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 권력이라는 것은 무엇이든 반드시 거짓되고 위선적이며 불공정한 것으로 드러난다.
권리도 없고 질서도 없고 공정한 재판도 없다.
이것은 전부 진실을 감추기 위해 필요한, 권력의 호사한 속성일 뿐이다.
세계 질서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반대자들을 억압함으로써 유지된다는 게 진실이다.
2. 웰빙과 행복이라는 환상
오늘날 우리는 19세기 군주들이 부러워할 만큼 값비싼 장신구와 보석을 누린다.
번영이라는 환상을 유지하는 것은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소비가 늘 대출과 부채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본래 은행 시스템이란...
자기네한테 어떤 재산이 있는 것처럼 믿는 빈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부자들이 더 부유해지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오로지 자연과 건강, 사랑, 가까운 이들과의 따스한 관계만이... 당신에게 진정한 번영과 행복을 안길 수 있다. 당신 자신을 당신이 소유한 물질적 이로움과 동일시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행복에서 멀어지기만 할 거야.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3. 선택의 자유라는 환상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선택 버전에 제한이 있고, 그것조차 다 나쁜 것 일색이다.
자신의 삶과 관련해 어떤 결정을 선택하든, 당신은 항상 국가의 법체계와 조세제도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독점적인 폭력 사용권을 이용해 이 시스템을 계속 보호할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라는 거짓된 제도를 보라.
그러면 어떤 정치 세력이 유권자들의 뇌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느냐에 선거 결과가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기네가 마치 자유로운 듯이 여기는 멍청이들이 있는 한, 선택의 자유라는 환상은 위력적인 억압 도구이다.
그런 환상에 빠지지 말라. 여전히 당신에게 고삐를 채울 것이다.
4. 진실의 환상
진실은 (혹은, 공명정대는) 우리 문화에서 예민한 주제이다.
우리는 마치 끊임없이 진실을 추구하게끔 프로그램된 듯하다.
한 국가의 사회 일부는 티브이가 전하는 것을 무분별하게 믿고, 다른 일부는 언론인들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렇게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은 둘 다 어리석다.
만약 당신이 자기 영혼에서 평온과 자유를 지지하고 싶다면, 독자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익히라. 그리고 어떤 진실에도 양면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누군가가 그 양면을 가리더라도 그렇다.
5. 시간이라는 환상
사람들은 시간이 돈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거짓이다.
시간은 바로 당신의 삶인 것이다.
오감의 범주 안에서 일정과 달력에 맞춰서만 생각하기를 이제 그만두라.
우리는 혼백(spirit)이 영원하며 인간의 모든 영혼(soul)은 이 영겁의 일부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주된 기만은…
현재 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를 어떻게든 설복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항상 자신의 과거를 분석하고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해야 한다는 듯이.
그 대신 자유인인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라고 당신에게 제시한다.
만약 지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혹은, 일어날 수 없는) 것에 집중한다면, 당신은 갖가지 공포를 동원하여 당신 의식을 흐리게 하는 광고주들과 권력자들, 포주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인생이 우리 뒤통수를 치지 않을 때, 우발성과 우연이 거창한 계획보다 우리한테 더 흥미로울 때, ‘지금’이 ‘내일’보다 더 중요할 때… 우리는 행복하다.
6. 분리의 환상
대중을 다루는 전략 분야에서 “갈라놓고 지배하라”는 전략보다 더 효율적인 것은 없다.
이 원칙은 권위주의 정권의 수립이나 다른 나라의 무력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늘 적용된다.
그리고 이 분리의 환상은 실제로 먹혀든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에 맞서는 사람들과 늘 경쟁 상태에 있다고 믿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우리는 이웃들과 친척조차 믿지 못한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서로 경쟁자가 아니라 파트너이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게 되며 어떤 공기를 호흡할지, 깨끗한 물을 마실지 여부는 이 파트너십이 얼마나 효율적인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지구촌의 일원이며, 국경이란 우리가 믿을 때까지만 존재하는 환상일 뿐이다.
분리의 환상이 (이를테면, 국적이라는 생각이) 우리 에고를 위로하고 우리에게 자기동일시의 기회를 준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분리의 환상은 당신을 노예화하고 고립시키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한다.
이 단어들에서 시간이 존재한다는 환상이 나온다. 단어에 관한 장에서 그런 단어들을 쓰지 않는 부족의 사례를 들었다. 그들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어. 사실상 현재에서만 산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이며 주변 세계와 아주 잘 공존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언어와 문화의 산물이란 말인가? 우리는 시간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는 데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 세계관의 정확성 여부는 생각도 않는다.
시간의 몇몇 환상을 살펴보자.
과거란 무엇인가?
먼저, 모든 단어에는 우리가 거기에 집어넣는 어떤 뜻과 어떤 이미지가 있음을 기억하자.
당신에게 ‘과거’란 무엇인가?
이 단어에 당신은 어떤 뜻을 부여하나?
이 단어와 관련하여 당신 내면세계에서 어떤 이미지가 나타나나?
대체로 ‘과거’에서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한테 일어난 사건의 장면들을 보게 된다. 여러 환경에 있던 유년기의 자신을 본다. 자기 인생의 여러 시기에 일어나서 기억되는 일들을 본다.
또 ‘과거’라는 단어를 접할 때 손을 흔들며 “이건 지나간 거야” 하고 말할 수 있고, 그러면서 마인드에서는 (내부 화면에서는) 자신의 등 뒤에서 구불구불 뒤쪽으로 이어지는 어떤 길을 보기도 한다.
당신 경우엔 어떤가?
‘과거’라는 단어에 대한 반응으로 당신의 정보 채널에서 무엇을 보는가?
어떤 대답을 하든, 그건 다 내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일 것이다.
직접 보고 확인하라.
당신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과거를 지금 나한테 보여줄 수 있나?
과거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걸 나한테 보여주시라.
어떤 것을 보여주든, 그건 다 바로 목전의 현실에 있는 무엇이거나, 아니면 자기 마인드의 내부 화면에서 당신이 지각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가 분명 있다고 사람들은 강하게 느낀다. 고고학적 발견이나 고문서, 아니 단순히 당신의 개인적 기억 등이 그 증거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엊저녁에 식사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난 기억해. 아침에 샤워하고 이를 닦은 것도 기억나. 이건 다 있었던 일이야, 비록 지나간 것이긴 하지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열한 것은 전부 당신의 기억이나 회상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한데, 기억이나 회상은 당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 있는 이미지이다. 즉, 과거에 관한 그 이미지들은 전부 당신 의식에서 사실상 바로 지금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서 나오는 게 전혀 아니다.
또 이런 반박이 나올 수도 있겠다.
“현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의 연속이야, 내가 과거에 어떤 행위를 했기 때문에 현재가 있는 거 아니겠어? 예를 들어, 1분 전에 내가 탁자에 컵을 놓았기에 컵이 지금 거기 있는 거잖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1분 전에 (과거에) 컵을 놓았을 때, 실제로는 그 행위가 현재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지금 그것을 과거처럼 회상하는 것일 뿐.
어제나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기억에서 정보를 끄집어낼 것이다. 기억에서 나오는 정보는 전부 지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생각하는 과거란 전부 바로 지금 떠오르는 회상이고 기억이다.
당신에게 기억이 없다면,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당신의 과거가 있을까?
이제 ‘미래’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미래는 과거에 비하면 한층 더 비현실적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이 기대하는 무엇이나 볼 것이라 예상하는 뭔가가 어떻게 일어날지 상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어떤 행동에 영감을 주는 뭔가를 상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뭔가를 계획할 때 종종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저녁 식사 후 어디로 산책할까 생각하는 것일 수 있고, 혹은 올여름 휴가를 바닷가에서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은 자기 마인드에서, 자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서, 사건의 예견되는 발전이나 미래에 기대하는 것을 상상하며 어떤 장면을 그릴 것이다.
미래에 관해 생각할 때, 그걸 당신은 지금, 현재에서, 한다.
학수고대하던 미래가 도래하는 순간, 그 미래에 있는 현실은 당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상상하던 대로 여름에 정말 바다에 간다 해도, 거기서도 당신은 역시 현재에 있으리라는 점이다.
결국, 미래란…
우리 마인드에서 지금은 없지만 곧 나타날 수 있는 뭔가에 대한 상상이 표현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지금, 현재에, 나타날 것이다.
미래는 환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어떻게?
예를 들어, 미래를 지금 즉시 보여 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엇을 보여주든 그것은 또 현재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는 당면한 현실에 있지 않으며, 우리 상상에 속한다.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여느 추상적인 이미지처럼 환상이며,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편리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과거나 미래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다. 우리는 (언젠가 그 당시)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난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기억한다.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날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상상한다. 과거와 미래는 기억과 상상의 작업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상상의 장난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들이 있었고 미래가 어떤 형태로든 도래하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살면서 항상 본다.
이것을… 시간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하나?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객관적 실재라는 게 있다. 그리고 우리 마인드는 거기서 정보를 얻어 우리를 위해 세상 모델을 만든다. 즉, 우리의 주관적인 현실을 (실재를, 세계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객관적 실재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들의 모델이며, 이 과정은 변화와 관련된다.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변화와 관련된 객관적 과정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고, 이 과정을 우리가 주관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심리적 시간이다.
이건 당연히 물리적 시간을 제법 잘 묘사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이미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을 지구에서 발사한다면, 이 로켓에서 흐르는 시간은 지구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이 로켓의 시계에서 1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의 시계로는 1백 년이 지나게 될 것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돌아와 보면 손자들이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한테 경악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마인드가 우리에게 시간의 모델만 만들어 낼 뿐이지 물리적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들이 없고, 그래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의 변화가 하도 작은 까닭에 우리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우리한테 이건 (물리적 시간은) 중요하지 않으며, 시간은 어디서나 똑같이 흐르는 것 같아.'
이게 우리의 주관적인 시간 감각이다.
만약 과거와 미래가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확인할 수 있나?
오직 한 가지만 가능하니,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바로 지금 알아차릴 수 있다.
외부세계도 내면세계도 변화하고 있다. 변화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냥 관찰하라. 항상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이 언제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 이제 직접 관찰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현실(실재, 실체)이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1분 동안 주의를 기울여 보라.
생각이며 느낌 등 내면세계의 일도 덩달아 관찰할 수 있다. 그것도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과거의 뭔가를 회상한다 해도, 그것 역시 당신의 내부 화면에 나타나는 일련의 생각과 이미지로서 바로 지금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의식에 있는 이미지라는 점을 이해했다면, 그 이미지들에 당신이 얼마나 자주 빠져드는지 추적할 수 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나.
그것을 당신은 지금 회상하고, 이 회상이 지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얼마나 자주 미래로 들어서는지 관찰해 보라. 더 정확히 말해, 당신 마인드에서 기대와 계획을 얼마나 자주 품고 세우는가?
있을 수 있는 뭔가에 대해 얼마나 자주 불안해하는가. 이 불안은 당신이 바로 지금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는 미래의 무서운 이미지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건 단지 내 마인드의 이미지일 뿐이야’ 하고 자신을 달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주의와 눈길과 관심을 지금 실제로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로, 지금 순간으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목전의 현실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오로지 ‘지금 여기’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영적 대가들이 설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로지 ‘지금’, 오로지 ‘여기’만 있다. 나머지는 죄다 마인드의 한갓된 장난이며,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