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에서 적절한 휴지를 취할 줄 안다는 건, 좋은 스피치 기법을 갖추는 데 중요한 단계.
침묵으로도 말을 끝낼 수 있지만, 발언 과정에서는 휴지(休止)를 취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우리네 말하기에서 가장 필요한 도구 중 하나.
<휴지의 유용한 기능, 역할>
1. 눈길을 끌고 객석을 정돈
2. 말에 무게감을 부여, 언급을 강조
3. 청중이, 들은 말을 잠시 생각할 여유를 부여
4. 어려운 토픽과 담론을 습득하게 도와
5. 말을 대목으로 나눠
6. 화자의 권위와 신뢰를 굳혀
7. 화자의 자신감 정도를 말해
8. 발언 뒤에 휴지를 취하라.
* 눈길 끄는 휴지
발언 전에 휴지를 취하면서 청중과 접촉. 발언 중에 길지 않은 휴지는 청중이 화자의 말을 경청하는지 여부를 알게 한다.
* 스피치에 무게감 부여하는 휴지
핵심 단어들 뒤에서 휴지를 취할 필요. 청자들 머릿속에는 휴지 전에 화자의 마지막 말이 담긴다. 단어들을 강조하라. 중요한 정보는 무게감이 있어야 돼. 말하고 나서 휴지를 취하면, 청중이 당신에게 분명 주목할 것, 이전에 안 듣던 이들까지도. 이건 스피치기법에서 중요한 요소.
* 들은 말을 소화하도록 하는 휴지
휴지를 두는 동안 화자도 청중도 생각할 수 있다. 내내 말하는 것은 노동이야. 화자의 말을 숨 돌릴 새도 없이 듣는다는 것이 청중에게 고역이 되지 않게 하라.
청중이 당신 말을 하나하나 기다리고 휴지 중에 흔쾌히 생각하게 하라. 피곤한 청중은 화자의 말을 안 들어. 생각하거나 졸거나 잡담 나눈다. 준비 없이 발언하게 되면 휴지를 다 잊을 것이야.
* 스피치 어려운 대목에서 취하는 휴지
어려운 단락마다 의미 있는 어구에 눈길을 강조하라. 좀 더 긴 휴지를 취한다. 억양을 바꿀 수 있다. 그러면 당신 얘기가 더 잘 이해될 것.
* 스피치를 각 대목으로 나누는 휴지
스피치는 각 대목으로 나뉘어야 해. 어떤 대목은 더 단순할 것. 스피치를 습득하려면 휴지도 필요하다. 시간에 따라 휴지를 취하라. 짤막한 것들, 좀 더 긴 것들. 억양을 바꾸어 스피치를 활기차게 만들라.
* 권위를 강화하는 휴지
휴지를 취할 수 있다면, 성공적이고 미더운 화자라는 인상을 줄 것. 이는 당신 스피치에 스타일과 청중의 눈에 불꽃을 안길 것. 말하는 것처럼 침묵하라. 청중이 당신 침묵을 이해하게 하라. 나름의 스피치 스타일을 만들라. 당신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할 것.
* 확신 요소로서의 휴지
스피치와 휴지는 다 도구이다. 다소 동요하는 동안에도 청중에게 긍정적 인상을 주라. 그냥 짤막한 휴지를 취한다. 이건 스트레스에 반응하지 않는 아주 좋은 방법.
* 말이 끝났음을 알리는 휴지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연단을 서둘러 떠나지 말라. 스피치가 이해되고 흥미로웠다면, 청중이 감사를 표할 것. 청중의 박수에 감사를 전하라, 박수가 없다면 객석의 반응을 느끼도록 애쓰라. 청중에게 스피치로써 어떤 이로움이나 즐거움을 안겼는지 잠시 생각하라. 떠나기 전에 청중에게 감사하라.
- 휴지는 '말 속도'며 '감정 이입', '청중과 교감' 등 여러 면에서 각별한 역할을 차지한다.
* <멈춤, 휴지, pause> 기법은 흔히 스피치 공부에서 많이 다루지만, 사실은 <목소리 훈련>에서 이미 시작된다. 목소리의 4P에 들어가 있다. Power - 목소리 힘, Pitch - 목소리 높이와 억양, Pace - 말 속도, Pause - 휴지. "휴지는 그냥 말을 멈추는 것이나 입만 다물고 있는 게 아니야. 휴지는 말의 한 요소야!"
카드를 다 뒤집어 놓고, 아이가 아무거나 하나를 선택하여 카드에 묘사된 감정 상태를 표정으로 드러낸다.
다른 아이들은 그게 어떤 감정인지 추측하게 한다.
<마스크, 가면>
재료: 여러 감정이 묘사된 마스크
이 게임도 여럿이 하면 더 좋다.
한 아이한테 표정 마스크를 쓰게 하는데, 당사자는 그게 어떤 표정인지 모르게 한다.
다른 아이들이 입과 눈썹 등의 모양이나 위치가 달라지는 걸 보면서, 마스크 쓰고 있는 아이가 어떤 감정인지 추측한다.
☞ 아이가 자기감정 상태를 표정으로 전달하는 법을 익히게 한 뒤, 억양 표현력 발달로 넘어갈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표현력의 여러 구성요소를 접하고 친숙해지게 한다.
목소리 선율
— 목소리를 높이에 따라 달리 내기.
즉, 기본 톤에서 위아래로 매끄럽게 미끄러지기.
말소리에 있는 모음 덕분에말에서 선율과 부드러움, 유연함을 나타낼 수 있다.
<듣고 받아적기>
재료: 마침표와 느낌표, 물음표가 그려진 카드.
부모나 교사가 텍스트를 읽으면, 아이가 적절한 구두점이 그려진 카드를 내놓는다.
<마침표>
재료: 종이, 연필
부모나 교사가 어떤 텍스트를 읽으면, 아이가 종이에 마침표를 찍는다.
평서문이 많을수록 마침표가 더 많아진다.
<필요한 물건은?>
재료: (가위, 책, 노트, 실뭉치 등) 모든 물건.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한테 내놓은 물건들 가운데서 예를 들어 1) 읽을 수 있는 것 2) 자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이른다.
아이는 필요한 물건을 집어 들고 완전한 문장으로 대답한다.
“가위로는 종이를 자를 수 있어요” 등등.
말 속도 (Pace)
— 말하는 속도:
어구들 사이에서 (말을 잠시 멈추는) 휴지를 고려하면서 언급 내용에 따라 말을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하기.
<회전목마>
아이들이 둥글게 서서 회전목마의 끈을 쥐고 둥글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속도는 느린 걸음부터 뜀박질까지 계속 달라진다.
<속도를 짐작해 보렴>
재료: (빨강, 파랑, 녹색) 3가지 색깔의 머그
부모나 교사가 말 속도를 계속 바꾸면서 어떤 시를 낭송한다.
그 말 속도에 따라 아이가 머그를 내놓는다.
빨리 말할 때는 빨강, 적절한 속도일 때 녹색, 느리게 말할 때는 파란색 머그.
리듬
— 음절의 장단에 따라 음절을 고르게 교체하기.
즉, 길고 짧음, 목소리의 오르내림을 달리하기.
<무늬>
재료: 칼라 모자이크나 칼라 스틱
부모나 교사가 세기를 달리하면서 손으로 탁자를 두드린다.
그 세기에 따라 아이가 색깔 있는 물건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세게 치면 노란색, 약하게 치면 빨간색.
그러고 나서 아이가 리듬을 스스로 재연해 본다.
(여러 움직임과 말과 음악을 결합한 운동인) 로고 리듬과 손가락 놀림은 리듬감 형성과 발달에 아주 좋은 수단. 아이들은 음악과 함께 움직이기를 아주 좋아한다.
어구 강세, 논리적 강세
— 말의 뜻에 따라,
단어 그룹이나 개개 단어를 잠시 멈추거나 (휴지),
목소리 높이거나,
더 강하게 말하거나
길게 소리 냄으로써 강조하기.
*요즘 아이들 대다수가 일찍부터 공부하기 시작하는 영어에는 어구 강세 외에 논리적 강세도 있다.
논리적 강세란 다른 단어들보다 강세를 더 줌으로써 어떤 단어를 강조하는 것.
<중요한 단어>
부모나 교사가 길지 않은 문장을 말하면서 어떤 단어를 강조하면 (논리적 강세 전달), 아이가 그 단어를 구별해낸다.
예를 들어, “나희가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하고 말하면서 ‘그리고’에 논리적 강세를 둔다.
거꾸로, 아이가 어구를 말하면서 필요한 단어를 목소리로 강조할 수도 있다.
음색
– 미묘한 느낌을 반영하는 감정 채색 (우울한, 명랑한, 슬픈 음색 등).
<짐작해 보렴>
부모나 교사가 (기쁜, 우울한, 사나운, 놀란, 겁먹은) 여러 목소리로 어구를 말하면, 아이가 어떤 음색인지 말한다.
다음에 역할을 바꾸어서 놀아볼 수도 있다.
휴지 (Pause)
적절하게 휴지를 둠으로써,
- 말하는 중에 숨을 들이쉬어 호흡이 편해지고 (생리적 휴지),
-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숙고의 휴지).
- 휴지를 두면 청자들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좋다 (논리적 휴지).
<어지러운 텍스트>
부모나 교사가 텍스트를 읽는다.
『새들이 다 남쪽으로 날아가고 풀잎들이 이미 오래전에 시들고 나무가 다 옷을 벗은 때였어요 고슴도치가 아기곰에게 말했지요 곧 겨울이 될 거야 올해 마지막 낚시를 하러 가자 넌 물고기를 아주 좋아하잖아 그리고 둘은 낚싯대를 들고 강으로 갔습니다 강은 정말 조용하고 평온했어요 그래서인가요 나무마다 슬픈 고개를 강물 위로 기울이고 강 한가운데는 구름이 몇 점 떠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구름이 짙은 잿빛에 털이 북슬북슬 나 있는 걸 보고 아기곰이 좀 무서워졌어요 우리가 만약 저 구름을 잡아 올린다면 그러면 저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잠시 한 뒤 고슴도치에게 말했어요 고슴도치야 우리가 저 구름을 잡으면 어떻게 할까 우린 못 잡아 구름은 마른 콩 미끼로 잡히지 않거든 혹시 민들레로 잡으면 모를까 뭐야, 민들레로 구름을 잡을 수 있다고 아기곰이 놀라서 묻자 고슴도치가 대답했어요 물론이야 구름은 민들레를 미끼로 써야만 잡을 수 있거든』
티브이 출연자들의 말하기를 통해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은 물리치면서 당신의 스피치 안목을 키우세요.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 * *
연초에 KBS 2채널에서 박승 선생의 경제 특강을 몇 차례에 걸쳐 방영했어요.
대학 때 부전공으로 경제학 서적들을 좀 들춰본 이후 따로 공부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흥미가 돋았어요. 그런데 그 흥미라는 것이 잘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좀 채운다는 알량한 욕심에서만 발동한 것은 아니에요.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어 웬만한 지식과 정보야 발부리에 차이는 돌멩이들만큼 어디에나 흔하게 널려 있지 않습니까? (단지, 허튼 것들을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해요!)
그보다도 더 큰 것은 사람의 목소리를, 말소리를 듣고 싶었던 거예요. 사람을 느끼고 알고 싶었던 겁니다. 더욱이 평소 막연하게나마 호감이 가고 공감이 들고 심정적으로 지지하지만 일면식도 없던 인물이 등장하는 마당에야!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 아니겠어요?
-그래서?!
하하, 그래서 좋았다는 얘깁니다. (좀 싱겁나요?)
-뭐가 좋았어?!
다 좋았어요. 말하기의 중요한 요소인 내용에 관해서야 내가 더 덧붙일 것은 없어요.
한미 FTA에 대한 언급 중 어떤 대목에서 나로서는 약간의 이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금방 접었어요.
‘흠, 내가 혹시 선생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었는지도 모르지.’
이건 화자의 에토스가 높다는 뜻입니다. 에토스가 높을 때, 즉 정통한 권위와 좋은 평판을 지녀 신뢰도가 높을 때 설득력도 덩달아 커집니다. 파토스도 좋은 편이었어요. 열정이야 말할 것도 없고! 딱딱할 수도 있는 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사용하는 어휘가 적절하고 발음에서도 딱히 꼬집을 게 없어요. 자세와 태도, 자신감, 침착성에서도 별 문제가 없어요. 목소리도 듣기 좋은 편이고, 연단에서 움직임과 제스처, 시선 처리도 괜찮고.
옥에 티라고 한다면…
열정이 큰 탓인지 어조가 전반적으로 약간 높은 편이었어요.
이건 고저, 강약, 완급의 조절 같은 목소리 운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화자의 호흡과 목에도 부담을 안깁니다. 그래서 간간이 숨을 고르고 목과 목소리를 다듬어야 하는 순간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면은 청자들의 주의를 흩트리는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열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높고 강한 톤으로 일관한다면 듣는 이들이 부담을 느끼기 쉽습니다.
목소리도 더 빨리 피로에 젖습니다.
길고 짧은 휴지를 적절하게 안배하면, 호흡 조절이며 주목 끌기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효과가 몇 배 더 커집니다. 이런 기술은 물론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습득됩니다.
주제가 아무리 진지하다 해도, 아니. 진지한 것일수록, 적절한 유머나 일화를 찾거나 궁리해서 섞을 필요가 있겠지요. 객석에서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거나 눈시울을 적시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한 한 청자들과 더 많이 어울리는 게 좋습니다.
청자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소극적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니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질문과 대답과 그에 대한 반응 같은 것에도 시간을 할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 * *
어조며 톤 얘기가 나온 이상 우리가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인물이 있어요.
바로 도올 선생에 관한 얘기인데, 그이가 실행한 많은 티브이 특강을 두고 스피치 비평 작업에 나서 봅시다. 그이의 견식과 내공과 혜안을 두고 우리가 이러니저러니 할 것은 없어요. 다시 말하지만, 소통과 스피치의 기술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그이는 스피치 내용 전개에서 초점을 잘 유지합니다.
개인적인 스토리나 조크 같은 것도 더러 동원해요.
청중과의 시선 접촉이 아주 훌륭해요.
제스처며 신체언어가 활발하고 스피치 내용을 보완해요.
철학이라는, 자칫 어렵게만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을 편한 어휘를 동원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요.
한마디로,
그이의 스피치에는 로고스와 에토스, 파토스가 필요한 만큼 다 담겨 있어요. 열정이야 하늘을 찌를 듯 하고! 이건 곧 전달 효과가 좋고, 설득력이 크고, call-to-action이 잘 된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개인 스토리와 조크 비슷한 것을 동원했다고 해서, 내가 아는 한, 청중이 편하게 웃음을 터뜨린 적은 많지 않은 듯싶습니다. 간혹 시선을 어떤 청자에게 너무 오래 고정하는 바람에 그 눈길을 받는 당사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보입니다. 눈길을 잘 맞추는데도 청중과 밀접하게 연결됐다는 느낌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왜?
일방적이고 좀 고압적으로 보이는 태도와 분위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신체언어와 제스처, 표정 등이 활발한 상태를 넘어서 과하다 싶습니다.
셀프컨트롤이 필요합니다.
편하고 용이한 어휘는 바람직하지만, 속어나 비어는 역효과를 냅니다. 욕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 화자의 스피치에서 요주의 대목은 바로 목소리 운용입니다.
(목소리의 4P에 대해서는 14단원을 보십시오.) 목소리 자체로야 아주 듣기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듣기 거북한 것도 아니에요. 듣기에 밋밋하고 단조롭지 않다는 것은 그이의 최대 강점이에요.
그런데 4P 중에서도 특히 피치(Pitch, 음성의 높이)에 주의가 쏠리지 않을 수 없어요. 열정과 의욕 때문이라 싶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소리가 너무 높아요. 어디 그뿐인가요? 절정으로 치달을 때면, 뭐랄까요, 가성 같은 소리를 내면서 정상적인 목소리를 깨는 ‘초 절정 신공’마저 발휘합니다.
궁금증이 일어요. 왜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거지? 어떤 의도가 있는 걸까? 뭔가 노리는 효과가 있는 건가? 아니면, 한낱 악습관에 불과한 건가?
궁금증이 의아심으로 바뀝니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하여 무슨 큰 득을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청자들한테서 거부감을 유발하기 십상이며, 그런 점을 지혜 많은 화자가 모를 리 만무할 텐데, 왜 그러는 건지 알지 못하겠다는 소리지요.
지금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께서 언젠가 ‘나꼼수’에 출연해 걸걸하고 걸쭉한 진행자들과 말씀 나누시는 것을 또 듣게 됐어요. 잠시 듣다가 요즘 젊은이들 표현처럼 ‘빵, 터지고’ 말았어요. 왜? 두세 평 됨직한 라디오 스튜디오 안에서 두세 명 상대와 대화를 하는데도 목소리의 높이와 크기며 어조는 이삼백 명 청중을 앞에 두고 말할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서 탄성이 절로 터졌어요. ‘야아, 정말 독보적인 존재로군…’ (물론, 늘 그렇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대화중에 제스처를 썼다면, 제스처 사용도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정을 합니다. 왜냐하면, 제스처의 폭과 크기는 목소리의 세기며 높이와 대개 비례하니까.
청중 규모에 맞게 목소리와 제스처를 조절한다는 것은 굳이 스피치 기법을 들출 필요도 없이 누구나 알고 수긍하는 상식이 아니겠어요?
<I have a dream>이라는 감동적 연설의 주인공인 마틴 루터 킹이
잠자리에 든 어린 아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도 같은 식으로 목소리를 연출했을까요?
사방 툭 트이고 온갖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오가고 뒤섞여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장터에서는, 손님들의 주목을 끌려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한껏 목청을 높일 필요가 있겠지요.
침을 튀기고 발을 구르며 요란한 신체언어를 동원할 필요도 있을 거예요.
히틀러에게서 신념과 열정을 빼면 남는 게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신념이 담긴 목소리와 그 열정이 깃든 표정과 제스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습니까?
그가 대중에게 어떻게 하여 그렇게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는지를 규명하려 시도한 끝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예닐곱 가지 요인을 듭니다. 개중 하나가 바로
“목소리와 감정적 뉘앙스를 완벽하게 조절하기.”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즉, 강연 같은 스피치는, 적지 않은 경우 대중 조작을 노리는 정치 스피치나 시장 장사꾼의 호객 행위와는 목표와 대상과 방식에서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게다가 우리에겐 이런 생각도 있어요.
즉, 일반적으로, 학식을 쌓는 것은 수양이며 일종의 수도 행위 같은 것이어서, 학식이 깊고 뛰어난 이들은 성품이 어질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며, 생각이 깊어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행동과 말투에서 훈기가 돌아 사람들을 편안케 하며, 눈길과 목소리가 그윽하고 부드러워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게끔 만들기 마련이라는 생각도!! (모스크바에서 공부할 때 그런 학자들을 제법 보고 접했습니다.)
말하기의 3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에토스 키우기’에 비하면 훨씬 더 간단한 작업인 목소리 설비와 운용을 무시하거나 역행함으로써 청자들한테서 거부감이나 냉소를 유발한다면, 아아,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 * *
부처님 일생과 경전에 관한, 또 희망 세상 만들기라는 구호 아래 특히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법륜 스님의 동영상을 봅니다. 가만가만한 목소리로 부드럽고 듣기 좋게 얘기하면서도 심심찮게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게 하는 화법에 관해서...
그 후보자들을 상대로 앞으로는 언어 검증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헌법기관인 대통령 직책을 수행중인 이의 스피치 전반에 관해...
토론을 비롯해 몇몇 티브이 프로그램 진행자들과 뉴스앵커들의 말하기 양태며 장단점에 관해...
또 몇몇 연극배우와 영화배우, 탤런트, 개그맨의 말하기에 관해서도 두루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까 염려하여 줄이렵니다. 나중에 어디서 어떻게든 적절하다 싶은 기회가 오겠지요.
티브이를 볼 때 이런 우스갯소리가 떠오르지는 않나요? 「“전국의 아나운서들이 내 아내를 잘 알아.” “무슨 소리야??” “아내가 티브이를 하도 자주 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