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은 주변 환경에서 빛을 지각하는 것임을 우리는 물리학을 통해 안다. 지구에서 빛의 가장 큰 원천은 태양. 빛은 본질상 특정한 주파수를 지니는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이다. 넓은 뜻으로는, 가시광선(可視光線)뿐 아니라 자외선과 적외선도 포함된다.
이 파동을 우리는 주관적으로 특정한 색깔로 지각한다. 예를 들어, 400-480 테라헤르츠 주파수의 빛을 빨간색으로, 620-680 테라헤르츠 주파수의 빛을 파란색으로 지각한다. 이런 빛의 주파수를 우리가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지는, 뒤에서 논의할 것이다. 사실 전자기파 복사(輻射)의 전체 주파수 범위를 취한다면, 우리가 색깔로 인식하는 것은 아주 짧은 주파수 범위에 불과하다. 나머지 주파수 범위를 우리는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티브이가 받는 전파가 물리적으로 공간에 존재하는데도 우리는 못 본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의 광선에는 다양한 주파수의 전자기파가 다 포함돼 있다. 사실, 이 빛의 광선에는 거의 모든 주파수의 파동이 다 들어있다. 이 빛 광선을 백색광이라 부른다. (*백색광 - 태양빛처럼 각 파장의 빛이 적당한 비율로 혼합된 빛.) 백색광에 모든 주파수의 파동이 다 있음을 보려면, 이 빛을 프리즘을 통과시키면 된다.
백색이 모든 색상의 무지개로 분리됐다. 프리즘이 여러 주파수의 파동을 여러 방향으로 나눈 것처럼 됐다.
이제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어떻게 여러 색상을 지니게 되는지 살펴본다.
백색광이 물체에 와 닿으면 물체 표면이 여러 주파수의 파동을 거의 다 흡수하고는 일정한 좁은 주파수 범위의 파동을 되쏜다. 예를 들어, 백색광이 붉은색 물체의 표면에 닿으면 물체는 붉은색 주파수와 다른 주파수들의 파동을 죄다 흡수한 뒤 붉은색 주파수의 파동을 표면에서 되비치는 것이다.
여기서 ‘빨간색 주파수’라고 말한다 해서 파동이 실제로 빨간색을 지닌다는 뜻이 아님에 유념하라. 이 파동의 주파수가 400-480 테라헤르츠 범위에 있다는 뜻일 뿐이다. 광파 자체에는 그 어떤 색깔도 없다. (*光波 -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진동하며 진행하는 전자기 파동 중 가시광선에 해당하는 빛)
따라서 빨간색 주파수의 광파는 물체에서 여러 방면으로 반사된다. 물체에서 반사된 이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여러 물체가 우리에게 여러 색깔로 보이는 까닭은... 그 물체들의 표면이 거기 닿는 백색광을 서로 다르게 반사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은 적색 범위 파동을 주로 반사하고 어떤 것들은 녹색 범위 파동을 반사한다. 또 어떤 것들은 거의 모든 파동을 흡수하는데, 이때 물체는 우리한테 검은색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주파수의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
안구 망막에는 빛 수용체인 원추세포와 간상세포가 있다. 또 원추세포에는 3가지 유형이 있어서, 어떤 것은 청색-보라 영역의 빛을 가장 잘 받아들이고, 어떤 것들은 황록색 영역을, 또 어떤 것들은 적색 영역을 가장 잘 받아들인다. 즉, 서로 다른 원추세포들이 일정한 주파수 범위의 광파에 반응한다.
(*간상세포 – 척추동물의 눈의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세포. 막대 모양으로 명암을 느낀다.
*원추세포 – 척추동물의 망막에 있는 시세포의 하나. 비교적 밝은 곳에서 물체를 보는 일과 색의 구별을 담당한다.)
다음에 망막의 원추세포들이 신경 임펄스를 만든다.
이 임펄스가 안구 망막에서 신경 섬유를 (뉴런을) 따라 뇌로 간다. 인간 뇌에는 눈에서 오는 신호를 처리하는 영역, 뇌의 시각 영역이 있다. 뇌 자체는 거대한 뉴런 다발이다. 이것은 신경세포체와 하나의 축색돌기와 수천 개의 가지돌기로 이뤄지는 세포들이다.
가지돌기들은 뉴런(신경세포)에서 나뭇가지처럼 뻗은 것으로서 다른 뉴런의 축색돌기에서 나오는 흥분 신호를 받아들인다. 축색돌기는 뉴런에서 나온 긴 돌기로서, 그 뉴런에서 다른 뉴런들로 흥분 신호를 전달한다. 그런데 축색돌기는 말단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그 뉴런에서 몇 개의 뉴런으로 동시에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뇌의 뉴런은 전부 축색돌기와 가지돌기들을 거쳐 서로 연결된다. 수천 개의 가지돌기를 거쳐서 한 뉴런에 수천 개의 뉴런이 연결되고, 자체 축색돌기를 거쳐 자체 신호를 그 뉴런에 전달한다. 이후 이 뉴런은 모든 신호를 하나로 모아서, 이것을 자체 축색돌기를 거쳐 다른 연결된 뉴런들에게 전달한다. 그 결과 수십억 개의 뇌세포를 연결하는 일종의 뉴런 망이 나온다.
뉴런 이외에 뇌에는 또 중추 신경계 조직을 떠받치는 세포인 신경 교세포들이 있다. 이것은 뉴런의 물질대사를 수행하며, 뉴런의 시그널 전달을 촉진한다. 이것들 외에 다른 것이 뇌에는 사실상 전혀 없다.
그렇게, 눈에서 나온 신호가 뒤통수 쪽에 있는 뇌의 시각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 신호가 다음에 시각 영역에서 분리되어 대뇌피질도 포함하는 뇌의 다른 영역들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신호들이 가시적인 이미지로 변환된다. 이것을 우리가 지각하는 것이다.
뇌에는 그 어떤 그림이나 장면이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거기 있는 것은 전부 한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전달되고 이동하는 신경 임펄스뿐이다.
뇌는 서로 다른 원추세포들이 서로 다른 주파수의 광파에 반응한다는 이유 하나로 서로 다른 범위의 광파들을 구별한다. 다음에 이 원추세포들에서 보통의 전기 신호가 나온다. 뇌의 시각 영역은 신호가 어떤 원추세포에서 나왔는지에 따라 색상을 구별한다. 신호 자체에는 그 어떤 색상도 없다.
시각이 작동하는 도식은 대략 이런 식이다.
주파수가 다른 전자기파로서의 빛이 물체들에서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온다. 물체들 표면이 파동의 일부를 흡수하고 일부를 반사한다. (이건 표면 특성에 좌우된다.) 반사된 파동이 우리 눈에 들어오고, 여기서 망막의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도움으로 신경 임펄스로 바뀐다. 이 신경 임펄스들이 뉴런 망을 따라 뇌로 간다, 더 엄밀히 말해 뇌의 시각 영역으로 간다. 신호가 시각 영역에서 뇌의 다른 영역들로 퍼진다. 뇌에는 뉴런 망과 보완하는 신경 교세포들, 뉴런 신호들 이외에 다른 것은 전혀 없다.
이제 다른 지각 채널들의 작동 방식을 간략히 보자.
감각 기관들의 이 작업 도식은 사실상 시각 채널의 도식과 다르지 않다.
소리는 본질상 공기의 진동이다. (*음파 - 발음체의 진동으로 공기 등에 생기는 소리의 파동. 소릿결.) 즉, 물체는 진동함으로써 주변에 공기 진동을 만든다. 이 진동이 공기를 따라 여러 방향으로 퍼지고, 결국 우리 귀에 들어온다. 공기가 없다면, 물체는 진동을 전달하지 못하며 소리도 없을 것이다.
음파는 광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주파수를 지닌다. 소리의 진동 주파수가 낮을수록, 소리가 더 낮은 것처럼 우리는 주관적으로 여긴다. 이건 베이스에 관련된다. 음파의 주파수가 더 높을수록, 우리에겐 주관적으로 소리가 더 높고 날카롭게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소리의 높이는 음파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음파는 공기를 따라 전달되는, 서로 다른 주파수의 파동일 뿐이다. 이 파동 자체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다음에 물체에서 나온 음파가 우리 귀에 들어온다. 귀에 고막이 있어서 귀로 들어오는 공기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막은 귀에 들어온 음파와 같은 주파수에서 떤다.
다음에 귀에서 진동의 복잡한 변환 체계의 도움으로 음파가 신경 임펄스로 바뀌고, 이 임펄스가 청신경을 따라 뇌로, 청각 정보 처리를 맡는 영역들로, 들어간다.
그런 식으로 소리도 빛처럼 뇌가 처리하는 신경 임펄스로 바뀐다.
눈에서 나오는 신경 임펄스는 귀에서 나오는 신경 임펄스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이 신호들의 차이와 신경 임펄스들이 어떤 종류의 신호를 지니는지는 전부 뇌에서 결정한다. 이 작업을 뇌는 신호가 어떤 신경 경로를 따라 왔는지에 따라 결정한다.
신경 임펄스가 (즉, 신호가) 빛의 지각을 맡는 뉴런에서 나왔다면, 뇌는 이 신호를 시각적인 것으로 해석할 것이다. 신호가 소리 지각을 담당하는 뉴런에서 나왔다면 뇌는 이 신호를 청각 (소리) 신호로 해석할 것이다.
촉각과 후각, 미각에 관해서는 간략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피부에는 특별한 수용체들이 있어서, 이것이 접촉과 공기 온도에 반응한다. 그 다음 도식은 역시 마찬가지다. 이 수용체들에서 나온 신경 신호가 뇌로 들어간다.
코에도 수용체들이 있어서, 이것이 특정한 분자들에 반응한다. 예를 들어, 장미꽃이 분자들을 분비한다. 이 분자들이 코에 들어오고, 후각 수용체들이 특정한 분자들에 반응한다. 다음에 후각 수용체들이 신호를 뇌에 전달한다.
맛에 관해 보자면, 혀에는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물질의 분자들에 적절히 반응하는 수용체들이 있다. 앞의 여러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수용체들에서 뇌로 신경 시그널들이 간다.
외부세계에는 장면이나 소리, 맛, 감각 같은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하기 바란다. 외부세계에 있는 것은 전부 여러 종류의 파동과 분자 물질들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전부 우리 뇌의 작업 결과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물음을 던질 때가 됐다.
그렇다면 뇌의 시각 영역에서 나오는 신호들이... 어째서 우리가 그것들을 지각하는 것과 똑같이 지각되는 것인가? 달리 말해, 3차원 형태의 이미지로 지각되는 것인가?
바깥 세계부터 본다. 우리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오감을 통해 바깥 세계를 인지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즉, 뭔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고 피부를 통해 감지한다. 이건 다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정보 형태이다. 달리 말해, 시각을 통해 접하는 것은 청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될 수 없다. 맛으로 느끼는 것은 냄새로 감지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바깥 세계에서 얻는 여러 정보 유형을 정보 지각 채널이라 부른다.
우리한테 왜 하필 오감이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을까? 어떤 이들은 육감도 있다고 여겨서, 그걸 직관이나 초감각이라 부른다. 하지만 초감각이 인지하는 것이 어떤 미지의 원천에서 나오는 정보라 해도, 이 정보 역시 결국은 다섯 채널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즉, 초감각이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그게 아닐 수도 있기는 하겠다. 어쩌면 거기에는 보통사람의 기본적인 오감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어떤 정보 채널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른다.
앞의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자. 보통사람에겐 정보 채널이 왜 하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다섯 개인가? 대답은 질문처럼 명확하다. 왜냐하면, 우리 인체에 자연이 눈과 귀, 피부, 코, 혀 같은 지각 기관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피부와 코, 혀에는 특수한 수용체가 있어서, 그것이 필요한 정보를 실제로 얻는다.
박쥐가 이용하는 반향 정위 (음파 탐지, echolocation) 같은 감각 기관을 자연은 우리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철새들이 비행 목적지를 정확히 결정하기 위해 이용하는, 지구 전자기장의 감지는 또 어떤가?
박쥐는 음파 탐지로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지각하는 것일까? 반향 정위는 소리에 따라 공간에서 방향 잡는 것으로서, 초음파를 계속 발사하고 반사되는 신호에 따라 장애물이나 먹이까지의 거리를 결정한다. 박쥐의 이런 정보 채널이 청각이나 촉각과 비슷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건 우리의 다섯 지각 기관에 해당하지 않는, 사실상 새로운 정보 유형일 수도 있을까?
새들이 지구의 전자기장을 지각하는 것은 또 어떤가? 이것도 인간에겐 알려지지 않은 아주 새로운 정보 형태임이 틀림없다.
그런 식으로 동물들에겐 별난 지각 채널이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도 오감이라는, 다양한 지각 정보 형태가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 아닌가? 만약 자연이 우리에게 후각을 주지 않았다면, 세상에 냄새라는 게 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아가 냄새 같은 정보는 자연에 없다고 확신했으리라. 그리고 냄새 수용체가 있는 어떤 외계인이 우리한테 냄새가 무엇인지 설명해도, 그걸 거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내면세계로 넘어가서, 거기엔 어떤 정보 채널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러려면 뭔가를 기억하거나 상상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구름이 발치에 걸린 태백산 정상, 혹은 연인의 다정한 손길, 혹은 엄마가 끓인 김치찌개의 냄새와 맛 같은 것을 상상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보나? 내면세계에도 시각과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다섯 가지 정보 채널이 다 있다. 바깥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은 내면세계에서도 결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외부든 내부든 세상에서 얻는 모든 감각 경험을 우리는 전부 이미 여러 번 얘기한 다섯 가지 채널을 통해 지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6번째 채널도 있긴 하다. 그건 균형 감각이다. 이것을 학자들은 별개의 정보 채널로 구분한다. 하지만 이것은 촉각의 특별한 형태라 말할 수 있다. 5감에 비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 이야기에서는 편의상 채널들을 이렇게 부르겠다. 즉, 보는 것은 시각 채널. 듣는 것은 청각 채널. 촉각과 후각과 미각을 한데 묶어서 운동감각 채널이라 부를 것이다.
이 세 채널을 운동감각 채널로 묶은 것은 오로지 편리하다는 이유밖에 없다. 운동감각 채널은 느끼거나 감지할 수 있는 정보 형태를 나타낸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은… 세상에 색깔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 눈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다시 주목하기 바란다. 우리가 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에게 귀가 있기 때문이지, 세상에 소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세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우리한테 눈과 귀가 없고 그 대신 음파 탐지 기능이나 지구 전자기장에 대한 감각이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세상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일까?
우리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되는 세계는 우리가 그것을 지각하는 것과 같은 세계일까, 아니면 단지 우리 감각 기관들의 작업 결과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