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농담이나 재치 있는 컴플리멘트는 처음 순간의 긴장을 풀게 하고 상대방과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순수한 농담, 재미난 일화, 기발한 질문, 흔치 않은 사건에 관한 짤막한 얘기는 대화가 막힐 때도 아주 필요하고 적절해.
이 방법을 쓰려면, 대화에 자극을 주고 대화를 곧장 필요한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 대화 맨 처음에 사안을 생생하고 짤막하게 기술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은 상상을 자극하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문제들에 관해 곧장 질문을 많이 할 것.
짧은 시간이 걸리며 썩 중요하지 않은 만남에서는 (예를 들어, 관리자와 부하 직원의 소통 때), 직접적 접근 방법이 더 좋아. 즉, 만남의 목적을 간략히 기술하고 곧장 사안의 본질로 넘어가기.
정보 교환 단계에서는, 자기가 하는 말의 논리와 정확성, 전문성을 잘 살펴야 한다.
상세하게 말한다고 여겨서 자잘한 것들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따분한 사람이 되는 비결은 자잘한 것까지 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 - 볼테르 (Voltaire)
상대방을 자극하고 상대가 명확하게 응답할 만한 질문을 던지라.
상대방의 갖가지 ‘교묘한’ 질문에 대비하라.
틀을 잘 잡아 (잘 요약해서) 질문하는 능력은 대화가 자연스레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고, 주도권을 쥐게 하며, 대화 상대가 적극 움직이도록 만든다.
"사람의 지력이며 지적 수준은 답변보다 질문에서 더 확실히 드러난다." 질문을 어떻게 잘 요약하느냐에 따라 대답도 잘 나올 것, 즉, 논의하는 문제도 잘 해결될 것.
2. 질문의 여러 형태
질문은 우선 성격상 폐쇄적인(닫힌) 것과 개방적인(열린) 것으로 크게 나누며,
의도와 목적에 따라서도 여러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닫힌 질문 이런 질문에는 ‘예스’와 ‘노’로 대답할 수 있어. 이런 질문은 상대방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주 던지지 않는 게 좋다. (수사나 조사 때 자주 사용). 일상에서 이런 형태의 질문은 협의가 질질 늘어질 때 쓰는 게 더 좋아. 합의에 빨리 이르고, 이미 달성된 합의를 확인하기 위해.
열린 질문 이런 질문에는 그저 '예스'나 '노'로 대답하기가 불가능. (이런 형태의 질문은 흔히 ‘무엇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언제’ ‘왜’ ‘얼마나’ ‘이에 관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나’ ‘당신은 어떻게 평가하나’ 등의 표현으로 시작된다.) 상대방이 좀 둔감해 보이고 말수가 적다 싶을 때, 열린 질문을 쓰면 좋아. 상대방을 각성시키고 대화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보충 정보를 얻어야 하는 경우. 열린 질문의 부정적 후과는, 까딱 잘못하면 주된 주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
양자택일 질문
상대방이 대답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질문.
흔히 "혹은, 아니면" 같은 요소가 들어간다.
"첫 물품을 언제 보낼 수 있겠는지요? 화요일인가요, 아니면 수요일에?"
확인 질문
이건 서로 이해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는 것.
대화중에 사안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씩 동의를 얻고서, 예를 들어 이렇게 물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귀하는 ...이라 여기는군요.”
확인되면, 다른 문제들 검토로 과감히 넘어갈 수 있다.
도입 질문
상대방 관심을 키우려면, 이런 질문으로 협의를 시작하는 게 좋아.
예를 들면,
“인사 이동 문제로 골치 아프시겠습니다. 만약 간단하고 괜찮은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관심을 보이시겠어요?”
컨트롤 질문
상대방이 당신 말을 정말 주의 깊게 듣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듣는 척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
예를 들어,
“이런 점에 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컨트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상대가 당신 생각을 제대로 지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
도발적 질문
상대방이 상황을 제대로 평가하는지, 진짜 의도는 무엇인지, 가늠하기 위해 도발적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더러 있다.
예, “이 제품을 이런 가격에 내놓을 수 있다고 확신하시는 건가요?”
마무리 질문
대화를 마감하기 위해 하는 질문.
먼저 확인 질문을 한두 가지 던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이 기계가 귀하 회사에 유용하다는 점을 제가 납득시킬 수 있었는지요?”
(반드시 우의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긍정적 답변을 얻으면, 곧장 마무리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언제까지 설치하기를 바라시는지요? 5월 20일인가요, 아니면 6월 20일?”
3. 질문에 대답하는 기술
기본 원칙:
- 복잡한 문제가 얽힌 질문에는 미리 해결책이 준비돼 있다면 응대하라. 만약 그런 방안이 없다면, 즉흥적으로 응대하는 건 금물. 까딱 잘못하면 나중에 덤터기를 쓸 수 있으니까.
- 만약 상대방의 질문에 부정적이고 부정확한 단어나 문장이 들어 있다면, 답변하면서 그것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 도발적 질문에는 응대하지 않는 게 상책. 혹은 대화를 질문자나 질문 성격에 관한 것으로 전환.
- 질문이 더 감정적일수록, 답변은 더 짧아야 한다. 질문자가 감정에 더 사로잡혀 있을수록, 더 차분하고 냉철하게 대답해야 한다.
반박은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방법이기도 하기에, 질문을 자주 건네면서 그 반박을 면밀하게 분석하라. 협상을 잘 준비하고 노련하게 진행하다 보면, 반박이 동의로 바뀌게 될 것. 협상 과정에 뭔가 영향 미치는 것이 상대방 반박에 그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좋다.
20. 당신의 소통 파트너 뒤에는 대개 누군가가, 당신 제안을 전달받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
그러니 자신의 제안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근거와 사례를 들이대면서 주장하라.
21. 자꾸 양보하거나 물러서는 방식은 절대 취하지 말라.
불가능한 것을, 혹은 당신이나 당신 회사가 실행할 수 없는 것을, 절대 약속하지 말라.
타당함과 명료함이 설득력의 기본. 자신의 조건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알리라.
22. 실행 불가능한 요구를 오만하지 않고 상대방 품위를 깎지 않으면서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라.
이때 당신 회사나 상사 같은 제 3자를 인용하라.
협상 파트너의 요구를 왜 들어줄 수 없는지, 근거를 내놓으라.
23. 상대가 늘어놓는 거부 원인을 다 믿지 말라.
어떤 이유들이 설득력 있게 들리며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24. 상대방 입장을 평가하면서, 부정적인 측면들을 즉각 거론하지 말라.
먼저 긍정적 측면들을 기술한 뒤, 그에 대조적으로 부정적 요소와 결함을 끄집어내라.
25. 당신 제안 때문에 협상 파트너가 겪을 난관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아두라.
잠시 생각하라. ‘파트너가 머뭇거리면서 결단 내리지 못하는 진짜 원인이 무엇일까.’
26. 상대방 얘기를 가로막지 말고 주의 깊게 들으라.
그가 하는 반박을 다시 입에 올리라.
상대방 의도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기 위해 대응 질문 건네기를 주저하지 말라.
그럼으로써 당신은 무엇보다도 답변 궁리할 시간을 버는 것.
27. “네, 하지만...” 같은 전환 형식을 쓰면서 직접 충돌하지 말라.
"네, 그리고...” 같은 어구를 쓰는 것이 더 좋아. 이는 반박하는 힘을 당신 주장에 중요한 궤도로 돌리는 것.
대립 상황에서 협상하려는 의도는... 본질적으로 갈등 상황에서 절충 상황으로 전환하는 것.
갈등 관계에서 협상 과정은 상당히 복합적이며 나름의 특수성을 지닌다. 협력 범주에서 벌어지는 협상과 달리 갈등 관계에서 벌이는 협상에는 이런 특성이 있다.
1) 결정에 대한 특별한 책임이 교섭 당사자들에게 있으며, 실수한 대가가 상당히 크다. 협상에서 취한 결정이 시의적절하지 않는 등 잘못 된 것일 때, 이는 종종 후속 과정으로 이어지거나 심지어 대립을 증폭하기도 한다. 협력 관계에서도 협상 실수는 역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만, 상호 신뢰를 토대로 수정하기가 더 수월하다.
2) 협력 관계일 때 협상 참여자들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뭔가 새로운 성과를 얻는다. 이때 목적은 양측의 ‘기여’와 상호작용, 투입 지분 등에 합의하는 것. 안 그러면 일이 어려워진다. 여기서는 흔히 보유 자원의 배분이나 재분배에 중점을 둔다.
협상 참여자들이 해결할 문제는 - ‘파이를 어떻게 굽느냐’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나누느냐.’ 그렇기 때문에 갈등을 조정하려는 교섭은 ‘제로섬 게임’과 더 흡사하다. 그래서 대립과 갈등 상황에서 수행하는 협상에서는 위협과 최후통첩이 나오기 일쑤이며, 양측 당사자들의 행동도 각자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냉혹하고 사납기 마련이다. (K. Mitchell).
대립 상태에서 벌이는 담판이 더 성공적인 것이 되기 위한 조건
- 갈등 대상을 분명히 정한다. - 양측이 위협을 삼간다.
- 교섭 당사자들이 갈등 상황을 제로섬 게임처럼 보지 않도록 애쓴다. - 양측이 갈등 조정뿐 아니라 서로 이해가 일치하는 분야를 많이 다룬다.
- 교섭자들의 베팅(?)이 지나치게 크지 않아야 한다. - 양측의 힘이 거의 대등하다. - 지나치게 많은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한 문제 때문에 다른 문제 해결이 지체된다.)
협력 조건과 대립 조건에서 벌이는 협상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협상을 협상답게 만드는 공통 요소들이 있다. 이 요소들을 무시하면, 협상이 결렬되거나 새로운 상호작용 형태가 나타난다.
협상(교섭, 담판)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상충되는 부분도 있다는 점. 이해관계가 완전히 어긋날 때 경쟁과 대치, 저항, 충돌 그리고 결국 전쟁이 발생한다. 비록 전쟁에서도 양측의 일치된 이해타산이 있게 마련이지만 (T. Shelling).
서로 이해가 분명히 맞아 떨어지거나 분명히 엇갈릴 때, 협력이나 충돌이라는 상이한 상호작용 형태가 생긴다.
원칙적으로는 협상을 언제든 벌일 수 있는데, 실제에서 종종 보듯이, 강한 쪽이 상대에게 조건을 제시하며 여러 강요 방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양측의 공통된 이해와 상충하는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강제는 협상을 깨고 충돌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양측의 이해관계에는 서로 다투는 것과 서로 겹치지 않는 것이 있다.
서로 다투는 이해관계는… 양측이 원하는 것이 같을 때. 예, 같은 영토를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서로 겹치지 않는 이해관계는… 일방의 이해 실행이 다른 쪽의 이해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 것, 즉, 이건 중립적인 이해관계로서, 각자 알아서 실현할 수 있다.
갈등 상황에서 이해관계의 불일치는 협력 관계 때보다 더 크고 깊다.
협상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균형 평가가 교섭자들에 의해 바뀔 수 있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일방적으로 실행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교섭자들은 상호 의존적이 된다.
이것이 협상의 두 번째 특성.
양측이 서로 더 많이 의존할수록, 일방적 행보에 제약이 더 크며, 따라서 협상을 통해 공동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절실해진다. 양측이 상호 의존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해, 안 그러면 일방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드는 분위기가 커질 것.
양측의 일방적 행위가 우세해질 때, 협상은 깨진다.
이때 겉보기에는 한동안 협상이 진행되는 듯이 보일 수도 있다. 즉, 만나서 의사일정에 있는 문제들을 다루지만, 실제로 결정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협상’이 조만간 결렬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
교섭자들이 때론, 상대가 그렇게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여, 예비 합의나 기본 합의 등으로 상호의존성을 일부러 높이기도 한다. 그것들을 통해 나중에 상대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고.
협상은 과제가 다른 몇 단계로 이뤄지는데, 각 단계마다 특성이 있다.
그러면서도 각 단계가 다른 단계들과 불가분이라는 점에서 협상은 또 단일한 과정이기도 하다.
많은 연구자들이 협상의 단계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캐나다 연구자 G. Wenham은 3단계로 구분한다.
1) 해결 가능한 문제 찾기
2) 행동(작용) 프로그램 다듬기
3) 합의 도출.
대체로 협상 단계를 이렇게 나눌 수 있다.
협상 준비 (협상 이전 단계) 협상 과정, 또 서명으로 끝낸 경우 합의 달성 (상호작용 단계) 협상 결과 분석과 도출한 합의 실행 (이행).
협상의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양측의 문제 논의 (R. Fisher).
접촉과 논의를 통해 교섭자들은 문제의 본질을 더 잘 알게 될 뿐 아니라 더 광범위하게 다루게 된다.
하지만 이는 대화며 상호 문제 인식, 필요를 기초로 접촉하고 논의할 때라야 가능하다.
이런 논의가 이뤄질 때, 협상은 정치적 발달의 가장 건설적 요소들 중 하나가 될 것.
다른 접촉 형태와 달리 협상에는 '공동의 노력으로'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게 없다면, 접촉이 토론이나 상담, 심의 같은 게 될 것이다.
협상의 마지막 가장 중요한 특성 - 협상은 문제 해결을 지향한다.
줄 캉봉의 말대로, ‘협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부분적으로라도 합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맞긴 하지만, 문자 그대로 ‘일부분’에 그칠 뿐이다. 협상에 들어서면서 교섭자들이 아직은 성공적인 종료에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니까. 협상을 개시했다고 해서, 양측이 서로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원하고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This is the start in my lif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Because belei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worn path.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오늘 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한 대학을 마치고 새롭게 출발하는 여러분과 함께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사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이 내가 대학 졸업식을 가장 가까이서 접해 보는 경우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내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리드 대학을 한 학기 다니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 청강생으로 드나들다가 아예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내가 왜 대학을 포기했을까요?
이 얘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내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돼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자마자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예정됐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서 자기네는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생모는 한밤중에 입양 대기자 명단에 있는 다른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부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생모는 나중에야 내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내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생모는 최종 입양서류에 서명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가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7년 뒤 나는 정말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때 순진하게도 나는 여기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였던 내 부모(양부모)는 저축한 돈을 다 내 대학 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나는 그렇게 돈 쓸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내 삶에서 내가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부모는 평생 모든 돈을 내 학비를 위해 쓰고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게 잘 되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려운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내린 결정 중에서 가장 잘한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내게 흥미가 없던 필수 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어졌고, 흥미롭게 보이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 멋있는 것만은 아니었지요.
나는 기숙사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 방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 먹기 위해 5센트를 주는 콜라병을 모았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주일 밤마다 7마일을 걸어다니곤 했습니다. 그런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가다가 부딪힌 것들 중 많은 것은 나중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들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지요.
내가 다녔던 리드 대학은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곳곳에 걸린 포스터와 표지물들은 전부 손으로 그린, 아름다운 글씨체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정규 과목들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워 보려고 서체 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익히고, 훌륭한 활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나에겐 이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실제로 응용될 것이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뒤,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되살아났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내가 만일 대학에서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맥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겁니다. 내가 만일 정규과목을 그만두지 않고 서체과목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처럼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뒤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 없습니다.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들에, 이를테면 자신의 내면과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에든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러한 점들이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판단을 따르는데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로 인해 탄탄대로를 벗어나게 될 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인생이 변화할 것입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내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나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삶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찾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우즈 (*스티브 우즈니액, 애플 공동 창업자)와 나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 뒤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맥킨토시 컴퓨터를 1년 빨리 시장에 출시했는데, 그 때 나는 나이 서른을 갓 넘겼습니다. 그리고 나는 해고를 당했지요.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느냐구요?
내막은 이렇습니다. 애플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회사를 운영할 어떤 사람을 고용했고 첫해에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서른 살이었던 나는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성인으로서 내 삶의 초점이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는 참담한 신세가 됐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 나는 정말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기존의 기업가 세대는 물러나게 된다는 듯한 느낌, 지휘봉을 물려받았듯이 그렇게 내려놓고 말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서 그들을 힘들게 한 점을 사과했습니다. 나는 아주 공식적인 실패자였습니다. 실리콘 밸리로부터 도망쳐 떠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이 내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점, 애플과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여
그것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 나는 거부당했지만, 여전히 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가장 좋은 경우가 됐습니다. 모든 일에 뚜렷한 확신은 없었지만, 성공에 대한 부담이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내 삶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들어설 수 있도록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그 뒤 5년 동안 나는 NeXT라는 회사,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시작했고, 나중 아내가 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놀라운 반전 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나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린과 나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들은 절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은 겁나는 시험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이끌어간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이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모든 훌륭한 관계에서 그렇듯이,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겁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열일곱 살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결국 당신은 거의 올바른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구절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그 뒤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라고 이어질 때, 나는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죽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삶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같은 것들이 거의 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만 남게 됩니다.
우리가 죽기 마련인 운명의 존재임을 늘 기억한다면, 우리는 잃는다는 생각의 함정을 가장 잘 피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벌거숭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거의 한 해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서 종양이 발견된 겁니다. 그때 나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치료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남은 수명이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선고했습니다. 의사는 나한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곧, 죽음을 준비하라는 거지요. 가족과 작별을 고하는 것입니다.온종일 그 진단만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고 조직 검사를 받았습니다. 몇 점의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검사한 끝에, 의사들은 놀랍게도 나의 경우 아주 드물지만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췌장암으로 드러났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게 됐습니다.
이것이 내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 십년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유용하긴 하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던 때보다는 좀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조차 거기에 가려고 죽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목적지 입니다. 누구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물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은 것을 청소하고 새로운 것에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새로움은 여러분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그때, 여러분도 점차 낡은 것이 되고 청소될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표현이, 미안하지만, 사실입니다.
여러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도그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젊은 시절, 나한테 <전 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그 책은 바이블 같은 것이었지요.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튜워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그는 시적인 면들을 가미해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인데,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데스크탑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타이프라이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졌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결국 그 책의 역할을 다 했을 때 최종판을 내었습니다. 그게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여러분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 표지에는, 여러분이 여행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기 위해 손을 드는 곳과 같은, 이른 아침 시골길을 찍은 사진이 실려 있고, 그 사진 밑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늘 갈망하면서, 늘 우직하게 살라." (Stay Hungry. Stay Foolish)
그건 그들이 책을 더 이상 찍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남긴 작별의 메시지였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나 자신, 그 글귀를 좌우명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도 그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