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카를손이 생일에 오다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됐습니다. 그리고 방학도 시작되어 꼬맹이가 시골 할머니 집으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출발 전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을 치러야 했어요. 뭐냐면, 꼬맹이가 여덟 살이 된 거랍니다.
아아, 꼬맹이가 자기 생일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든지! 일곱 살이 되던 날부터 기다리기 시작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거예요.
두 생일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그저 놀랍기만 했어요. 그건 한 크리스마스에서 다음 크리스마스까지 걸리는 시간과 거의 같았습니다.
전날 저녁 꼬맹이가 카를손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내일이 내 생일이야. 구닐라와 크리스터가 오고 내 방에서 생일 파티를 열 거야… - 꼬맹이가 문득 말끝을 흐렸어요. 표정도 흐려졌습니다. - 난 정말이지 너도 초대하고 싶었어, 하지만…
엄마가 카를손 얘기만 나오면 화를 내는 통에 초대 허락을 받기는 영 글렀던 거지요.
카를손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하게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 나를 초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너하고 상대하지 않을 거다! 나도 신나게 놀고 싶어.
그러자 꼬맹이가 허겁지겁 말했습니다.
- 좋아, 좋아, 내일 너도 와라.
꼬맹이는 엄마한테 말씀 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카를손 없이는 생일이 즐거울 수가 없어.’
카를손이 부은 볼을 가라앉히면서 물었어요.
- 우리한테 뭘 대접할 거냐?
- 아, 물론 달콤한 케이크지. 촛불 여덟 개로 장식한 생일 케이크가 나올 거야.
- 거 참 좋다! - 카를손이 기뻐서 소리쳤습니다. - 근데 이런 제안을 해도 되겠냐?
- 뭔데?
- 촛불 여덟 개 꽂힌 케이크 하나 대신에 촛불 하나 꽂힌 케이크 여덟 개를 준비해 달라고 엄마한테 부탁할 수는 없을까?
하지만 꼬맹이는 그런 부탁을 엄마가 들어줄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카를손이 또 물었습니다.
- 넌 분명히 좋은 선물들을 받겠지?
- 글쎄, 잘 모르겠는걸.
꼬맹이가 대답하면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아무래도 받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 내 평생에 강아지를 선물로 받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다른 선물들이야 당연히 많이 받겠지. 그걸로 만족하고 강아지는 잊은 채 하루 종일 즐겁게 보내기로 했어.
- 그뿐 아니라 너한테는 내가 있잖아. 내가 강아지보다 훨씬 더 좋지. - 그렇게 말하고는 카를손이 고개를 숙여서 꼬맹이를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 네가 어떤 선물을 받을지 궁금한걸. 만약 캔디를 받는다면, 내 생각에 넌 그걸 즉각 자선사업에 기부해야 할 거야.
- 좋아, 캔디 상자를 받으면, 너한테 줄게.
카를손을 위해서라면 꼬맹이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특히 이제 작별을 눈앞에 두고서야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래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 저기 말이야, 카를손, 나는 모레 할머니 집으로 떠나서 여름내 거기 있을 거야.
카를손이 잠시 표정을 굳히더니 곧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 나도 할머니한테 간다. 우리 할머니가 네 할머니보다 진짜 할머니답다.
- 네 할머니는 어디 사시는데? - 꼬맹이가 물었습니다.
- 집에 살지, 어디 살겠어! 너는 내 할머니가 거리에 살면서 밤새 헤매 다닌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러나 카를손의 할머니에 대해서도, 꼬맹이 생일에 대해서도, 다른 무엇에 관해서도 둘은 더 길게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벌써 바깥에 어둠이 진하게 깔렸고, 생일 아침에 늦잠 자지 않으려면 꼬맹이가 여느 때보다 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으니까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꼬맹이가 침대에 누운 채 기다렸습니다.
‘이제 식구들이 방으로 들어와서 생일 케이크와 선물들을 건넬 거야.’
몇 분이 그렇게 긴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선물들을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이 어찌나 간절했든지, 기다림에 지쳐서 배가 아프기까지 하지 뭡니까.
하지만 마침내 복도에서 식구들 발소리가 울리고 “꼬맹이가 벌써 일어났을 거야” 하는 말소리도 들려 왔어요. 그리고 곧 방문이 활짝 열리고 엄마와 아빠, 보쎄 형과 베탄 누나가 들어섰습니다.
꼬맹이가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는데, 두 눈이 반짝거렸어요.
- 생일 축하한다, 소중한 꼬맹이야! - 엄마가 말했습니다.
아빠와 보쎄 형과 베탄 누나도 “축하해!” 하고 말했지요. 그리고 촛불이 여덟 개 꽂힌 케이크와 선물들이 담긴 큰 쟁반을 꼬맹이 앞에 내놓았습니다.
선물은 많았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받은 것보다는 좀 적은 듯싶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꼬맹이가 재빨리 세어 보니 쟁반에 꾸러미가 네 개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그러시는 거예요.
- 선물을 아침에 다 받는 건 아니란다. 낮에도 또 뭔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
꼬맹이가 꾸러미 네 개에 아주 기뻐했어요. 거기에는 물감 상자와 장난감 피스톨, 예쁜 책, 파란색 새 반바지가 있지 뭐에요. 그건 다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엄마와 아빠, 보쎄 형과 베탄 누나는 정말 다정한 이들이야! 이렇게 다정한 부모와 형과 누나가 세상 누구한테 또 있을까.’
꼬맹이가 피스톨을 몇 번 쏘았습니다. 격발 소리가 아주 크게 울렸습니다. 식구들이 다 침대 곁에 앉아서 꼬맹이가 쏘는 피스톨 소리를 들었지요. 아아, 식구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 여덟 해 전에 네가 요렇게 작은 아이로 세상에 나온 걸 생각해 보렴.
아빠가 한 손을 오므려 보이면서 말하자, 엄마가 말을 받았습니다.
- 그래요,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가요! 그날 스톡홀름에 비가 얼마나 퍼부었는지 기억해요?
- 엄마, 내가 여기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어요?
꼬맹이 물음에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 물론이란다.
- 근데 보쎄 형하고 베탄 누나는 말메에서 태어났고?
- 응, 그래.
- 아빠는 게테보르게에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나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 그렇단다, 나는 게테보르게 출신이야.
- 그러면 엄마는 어디서 태어났어?
- 에스킬스툰.
그 말이 끝나자마자 꼬맹이가 엄마를 뜨겁게 포옹하면서 외쳤어요.
- 그렇게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우리가 다 이렇게 만났으니, 정말 다행이야!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식구들이 불러주는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꼬맹이가 장난감 총을 쏘았어요.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오전 내내 꼬맹이는 연신 피스톨을 쏘면서 손님들을 기다리며 낮에도 또 무슨 선물을 받을지 모른다고 한 아빠 말만 생각했습니다.
‘어떤 순간에 기적이 이뤄질지도 몰라. 강아지를 선물한다면…’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문득 깨닫고, 그렇게 어리석은 꿈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오늘은 강아지 생각은 버리고 그저 기쁜 마음만 갖기로 마음먹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꼬맹이는 실제로 모든 것에 기뻐했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나자마자 엄마가 꼬맹이 방에 생일상을 차리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커다란 화병에 꽃을 한 아름 꽂고 가장 예쁜 장밋빛 찻잔을 세 개 내왔습니다.
그걸 보고 꼬맹이가 가만있지 못했습니다.
- 엄마, 찻잔은 네 개가 필요해요.
- 왜 그렇지? - 엄마가 놀랐습니다.
꼬맹이가 우물쭈물했어요. 하지만 엄마가 못마땅하게 여길 줄 빤히 알면서도, 카를손을 생일에 초대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아야 했습니다.
-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도 이제 올 거야. - 꼬맹이가 용기를 내어 말하면서 엄마 눈을 용감하게 마주봤습니다.
엄마가 한숨을 내쉬었어요.
- 오, 이런! 그래, 오라고 하렴. 오늘은 네 생일이잖니. -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꼬맹이의 블론드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어요. - 너는 아직도 젖먹이 같은 상상에 사로잡혀 있구나. 여덟 살이 됐다는 게 믿기 어렵네. 몇 살이지, 꼬맹이?
- 나는 가장 원기 왕성한 때의 대장부야. 카를손하고 아주 똑같아. - 꼬맹이가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이날은 느릿느릿 지나갔어요. 아빠가 말한 바로 그 ‘한낮’이 된지 벌써 오래건만, 그 누구도 그 어떤 선물도 더 이상 가져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마침내 새 선물을 하나 더 받았습니다.
보쎄와 베탄은 아직 여름방학을 맞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둘 다 보쎄의 방에 들어가더니 안에서 문을 잠갔습니다.
둘은 꼬맹이를 안으로 들이지 않았어요. 복도에 서서 꼬맹이는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누나의 키득키득 웃음소리와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몸이 달아올랐지요.
얼마 뒤 둘이 나오더니, 베탄 누나가 웃으면서 종이꾸러미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꼬맹이가 아주 기뻐서 당장 풀어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보쎄 형이 말렸습니다.
- 아니야, 여기 붙어 있는 시를 먼저 읽어 봐라.
시는 꼬맹이도 알아볼 수 있도록 굵은 인쇄체 글자들로 적혀 있어서, 꼬맹이가 직접 읽었습니다.
형과 누나가 너한테 강아지를 선물하는 거야.
이 강아지는 다른 개들하고 싸우지 않아,
짖지 않고 뛰지 않고 물지 않아,
그 누구한테 절대 달려들지도 않아.
꼬리도 앞발도 얼굴도 귀도
이 강아지는 검은 비로드로 된 거야.
꼬맹이가 입을 꾹 다물었어요. 돌처럼 굳은 듯싶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보쎄 형이 말했어요.
- 자, 이제 꾸러미를 풀어도 된다.
그러나 꼬맹이는 상자를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근데, 눈물이 양 볼을 타고 우박처럼 흘러내리지 뭐에요.
- 왜 그래, 꼬맹이, 왜 그러니? - 베탄 누나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 그, 그러지 마, 울지 마, 울지 마라, 꼬맹이! - 보쎄 형이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어요.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베탄 누나가 꼬맹이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 미안해, 용서해라! 우린 그냥 웃자고 한 거야. 알겠니?
꼬맹이가 베탄의 포옹을 홱 뿌리쳤어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돌리고 흐느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 형하고 누나는 알잖아. 내가 진짜 강아지를 얼마나 갖고 싶어 하는지, 알잖아! 그런데도 이렇게 날 놀리다니…
꼬맹이가 자기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보쎄와 베탄이 그 뒤를 쫓아 달려왔어요. 엄마도 뛰어왔어요. 하지만 꼬맹이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온몸을 들썩이면서 울기만 했습니다.
이제 생일이 다 망쳤군요. 꼬맹이는 살아있는 강아지를 선물로 받지 못하더라도 오늘만큼은 종일 즐겁게 보내기로 결심했었지요. ‘하지만 비로드로 만든 장난감 강아지를 선물하다니, 누굴 놀리는 거야? 정말 심했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울음이 진짜 신음으로 바뀌었고 머리는 베개에 더 깊이 파묻혔습니다.
엄마와 보쎄 형과 베탄 누나가 어쩔 줄 몰라 침대 곁에 그냥 서 있기만 했습니다. 다들 역시 아주 우울했습니다. 잠시 뒤 엄마가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 이제 아빠한테 전화해서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해 들어오시라고 부탁할게.
그래도 꼬맹이는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아빠가 집에 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제 꼬맹이에게는 모든 것이 다 울적하게만 보였어요. 생일은 망가졌고, 어떻게 해도 돌이킬 수 없게 됐습니다.
엄마가 전화하러 가는 소리를 들었지만, 꼬맹이는 계속 훌쩍훌쩍 울기만 했습니다.
아빠가 현관에 들어서는 소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눈물만 쏟았어요.
이제 꼬맹이는 절대 명랑해질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이라도 죽는 게 더 낫겠어. 그러면 보쎄하고 베탄이 장난감 강아지를 볼 때마다 어린 동생이 아직 살아 있던 생일에 동생을 고약하게 놀린 일을 기억하면서 두고두고 괴로워하겠지…’
꼬맹이는 엄마와 아빠, 보쎄 형, 베탄 누나가 침대 주변에 서 있는 것을 문득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얼굴을 베개에 더 깊숙이 파묻기만 했습니다.
(- 얘야, 꼬맹이, 현관에서 누가 널 기다리는구나. - 아빠 말씀에도 대꾸하지 않았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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