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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 수녀원 원장 잔느와 수녀들

 


 

4

 

하나님 섬김이라는 소명을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17세기 수녀원 생활이 죽도록 따분하게 보였을 터이다. 그날이 다 그날 같은 생활은 그저 자잘한 사건과 소문들, 가끔 들르는 방문객들과 담소, 혹은 여가에 시시한 손작업 등으로 그 단조로움이 조금 덜어졌을 뿐. 

수렝 신부가 여러 서신에서 짚을 엮어 만든 장식물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가 아는 많은 수녀들이 남는 시간 대부분을 이 작업으로 보냈다. 그들의 걸작은 역시 지푸라기로 만든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미니어처 지푸라기 마차. 그건 어떤 귀족 여성 후원자의 경대에 놓일 선물이었다. 

 

콜롱비에 신부가 방문동정회[각주:1] 수녀들에 관해 이렇게 적는다. 

이 수도회의 드높은 도덕적 지향과 개중에 고결한 수녀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담장 안에는 규율을 지키고 미사를 드리고 기도회에 다니고 고해성사를 보고 성찬례에 참여하지만, 그걸 다 그저 종이 울리고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수녀들의 행위에는 정성이 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네 작은 생각과 계획들로 바빠서 하나님 일에는 거의 무심하다. 

모든 따스한 감정은 수녀원 안팎에 있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쏟고 주님께는 그저 맥없고 진실성 없는 눈길만 돌리니, 그런 것은 그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든 영혼이 전능자에 대한 사랑으로 영원히 불타는 둥지가 되어야 할 공동체들이 평범하고 지루함 속에서 의미 없이 생활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녀원 모습

 

저 유명한 포르루아얄 수녀원[각주:2]장 라신[각주:3]에게 아주 감탄할 만한 공동체로 보인 까닭은 ‘그 객실들에는 적막이 지배하고, 수녀들이 대화에 끼어들려 안달하지 않고, 헛된 세상사에 관심 두지 않고, 심지어 이웃을 두고 뒷공론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포르루아얄의 이런 보기 드문 장점을 통해 우리는 그보다 못한 수녀원들의 결함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다. 

 

1626년 루덩으로 이전한 우르술라회[각주:4] 수녀원은 다른 여성 거처들보다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열일곱 수녀는 거의 젊은 귀족 영애들이었다. 그들이 수도생활에 들어선 까닭은 복음서 말씀을 따르고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계층의 구혼자들이 수락할 만한 지참금을 집안에서 마련할 여유가 못 됐기 때문이다. 여기 수녀들은 그 어떤 특별한 스캔들로도 경건함으로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켰지만 종교적 열성과 경건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루덩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 주민들은 절반이 신교도로서 수녀원에 아주 인색했고 수녀들한테도 돈이 없었다. 낡고 음울한 하우스 하나만 임차했는데, 그것도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다들 들어와 살기를 마다하는 건물이었다. 건물에 가구도 없어서 수녀들이 처음엔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들은 도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는 수업료로 생활할 요량이었지만 여학생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드 사질리, 데스쿠블로, 바르베지에, 라모테, 벨시엘, 댐피에르 같은 귀족 출신들이 제 손으로 갖은 잡일을 하게 됐고, 재계일인 금요일뿐 아니라 월, 화, 수, 목요일에도 식탁에 고기가 놓이지 못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던 끝에 그들을 구한 것은 속물근성이었다. 

 

루덩의 부르주아들이 알고 보니… 아주 적은 돈으로도 자기네 딸들이 좋은 프랑스어와 궁정 매너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한때 추방됐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재종누이와 수르디스 추기경의 더 가까운 인척과 후작의 작은딸과 푸아티에 주교의 질녀한테서 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수녀원에 기숙 학생들과 통학 학생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여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번영도 찾아왔다. 이제 지저분한 일은 하녀들이 맡고, 식탁에 쇠고기와 양고기가 다시 나오고, 마루에 깔렸던 짚 매트리스가 나무 침상으로 교체됐다. 

 

루덩 소도시 전경

 

이 새 공동체의 원장이 1627년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새 원장이 임명됐다. 그녀 이름은 ‘천사들의 수녀 잔느. 속세에서 이름은 잔느 벨시엘, 코제의 남작인 루이 벨시엘과, 또 남작 가문 못잖게 전통 있고 저명한 가문 출신인 샤를롯데 데실레의 딸이었다. 1602년생이니까 이제 이십대 중반.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쳐져서 몸매가 좀 기형이었다. 아마도 골결핵의 후유증이리라. 

잔느도 당대 대다수 귀족 영애들처럼 빈한한 교육을 받았다. 그 대신 그녀에겐 타고난 지능에다 한가락 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 성격 때문에 그녀가 다른 이들에겐 고통이 되고 제 자신에겐 최악의 적이 됐다. 

 

이 어린애 같은 사람은 기형적인 신체 때문에 볼품이 없었다. 자신이 추하다는 느낌과 혐오나 동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그녀에게 고질적인 분한을 일으켰다. 그 분한 때문에 누구를 좋아할 수도 없고 누구한테서 사랑받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다 보니 그들도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방어적인 갑각 속에 살며 자신의 적들을 공격할 때만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녀에게는 모든 사람이 선험적으로 적이었으며, 난데없는 빈정거림이나 이상하고 발작적으로 터뜨리는 조소가 공격 수단이었다

 

수렝이 그녀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알고 보니, 원장수녀의 기질은 뭔가 특이하게 명랑해서 늘 날카로운 웃음과 조롱을 날리는데, 그런 고약함은 그녀 안에 들어앉은 악마 발람이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의 성격은 하나님 사업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진지함과 정반대이며, 뭔가 악의적인 기쁨이 그 영혼을 차지하여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필수적인 양심의 가책을 파괴했다

이 불길한 까불거림을 한 시간만 대해도 내가 여러 날 정성껏 쌓은 공력이 무너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나운 적에게서 그녀가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하려고 난 무던히 애썼다.」

‘하나님 사업’과 아주 잘 양립할 수 있는 웃음이 있다.
곧, 겸허하고 자기비판적인 웃음, 온후하고 너그러운 웃음, 이 세상의 비뚤어진 부조리에 대한 좌절과 분개를 대신하는 웃음. 

 

그러나 잔느의 웃음은 그런 것들과 전혀 달랐으니, 그저 조소 아니면 냉소뿐이었다. 그런 웃음을 늘 다른 이들한테만 퍼부었지 자신에게는 절대 돌리지 않았다. 곱사등이의 비웃음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다 깔보면서 자기 아래에 두려고 들었다. 또 그녀의 냉소란 잠깐일지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갈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대 기준에 엄숙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모든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요 조롱이었다

 

루덩 수녀원 원장수녀 잔느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숱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렇게 불쾌한 아이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부모는 딸을 인근 수녀원 원장으로 있는 늙은 숙모에게 보내고 말았다. 두세 해 만에 불명예스럽게 돌아왔다. 다른 수녀들이 그녀와 잘 지내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세월은 흐르는데 부친 저택에서 사는 게 어찌나 지겨운지 종교적 은둔처라도 차라리 집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그러자 푸아티에에 있는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들어가서 초심자 수련 기간을 보내고 수도서원을 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훌륭한 수녀가 못 됐다. 하지만 집안이 부유하고 영향력 있기 때문에 방자한 피후견인을 수녀원장이 꾹꾹 참으며 데리고 있게 됐다. 

그러다가 거의 하룻밤 새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수녀원이 루덩으로 이전한 뒤 잔느가 아주 경건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바뀐 것! 푸아티에에서는 말도 안 듣고 열의도 안 보이고 제 할 일에도 태만하던 젊은 여인이 이제 완벽하게 독실한 사람이 되어서 온유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처신했다. 그 놀라운 변화에 감명 받은 늙은 수녀원장이 퇴임하면서 잔느 자매를 강력한 후임자로 추천했다. 

 

그 개심 사연을 15년 뒤 잔느가 이렇게 기술한다. 

「난 늘 지도부 눈에 띄려 애썼고, 숙사에 수녀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수녀원장은 곧 공동체의 모든 일을 나한테 맡기게 됐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일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좋은 자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수녀원장에게 숱한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난 그녀 기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그녀는 곧 나를 모든 이들에게 모범으로 삼았다. 그녀는 내가 선하며 덕을 행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한껏 부풀려서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좋게 보이고 내 성향에 호감을 갖게끔 위선을 떨었다. 수녀원장은 나한테 많은 특전을 용인했으며, 그것을 난 마음껏 써먹었다. 그녀 자신이 선하고 덕이 있는데다 나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한다고 믿는 만큼 나를 훌륭한 수도사들과 대화하도록 자주 불렀다. 난 그녀 비위를 맞추려고 거기에 따랐다. 게다가 그건 시간 죽이기에도 좋았다.」 

 

훌륭한 수도사들과 나누는 대화는 숙사의 널따란 객실을 두 부분으로 가른 철창을 통해 벌어졌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영적 삶에 관해 새로 번역된 책들을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었다. 

어떤 날은 블로시우스[각주:5]의 해설서, 또 어떤 날은 테레사 성녀의 자서전 혹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혹은 천사들의 본성에 관한 델 리오의 저술 등이었다. 

 

그런 책들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수녀원장이며 수도사들과 토론하면서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바뀌는 것을 알았다. 객실에서 나누는 경건한 대화와 신비주의 서적 공부는 이제 더 이상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각별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됐다. 단, 그 목표가… 

그녀가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지혜로운 카르멜회 수사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그건 「영적 삶으로 돌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제 지능을 뽐내고, 모든 수녀원에 있는 다른 수녀들을 능가하려는 욕심에 지식을 채우기 위함일 뿐이었다.」 

 

루덩 수녀원 수녀들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곱사등이의 갈구가 또 다른 출구를 찾았다. 남들을 교묘하게 다루는 새롭고 재미난 분야 말이다. 빈정대고 냉소 터뜨리기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신비주의 신학과 영성 연구에 들인 결과, 그 분야에서 학식 갖춘 상담자요 전문가가 됐다. 

새로이 습득한 지식에 기고만장한 그녀가 이제 다른 자매들을 더욱 더 경멸과 연민이 출렁이는 느낌으로 내려다보며 흐뭇해했다. 

 

그래, 이 불쌍한 멍청이들이 신앙심은 깊어서 정결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고 있지. 그러나 정결이 도대체 뭐야! 무지와 둔감함일 뿐이잖아! 특별한 은혜에 대해 저들이 뭘 아나? 영적인 접촉을, 황홀함과 계시를, 감각의 유혹과 죽임을, 제까짓 것들이 알기나 하겠어?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 절로 만족스레 나왔다. 

흥, 저들은 아무 것도 몰라! 반면에, 난 사실상 모든 지혜를 터득했고, 하고 있잖아!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유난히 처지고 키가 난쟁이만한 그녀가 그렇게 우쭐댔다

 

(마담 보바리는 생을 비극적으로 마쳤다. 자신을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그렇다...  <루덩의 악마들> 4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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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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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3-3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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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6

루덩의 악마들 2편 4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Order of the Visita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 성모 마리아 방문 동정회. 1610년 살레의 성 프랑수아(1567-1622)와 성 쟌느 샹탈(1572-1641)이 설립. [본문으로]
  2. Port Royal -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 1204년 설립돼 17세기에는 얀센파의 거점. 유명한 학자며 계몽된 교육자들이 이 공동체 주변에서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 [본문으로]
  3. Jean Racine (1639-1699) - 고전주의 시대 프랑스 비극 작가, 문필가.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로 꼽힌다. 포르루아얄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피제니’, ‘페드르’. [본문으로]
  4. 우르술라회 - 로마가톨릭 여성 수도회. 성 안젤라 메디치가 1535년 11월 이탈리아 브레시아에 설립. 주로 소녀들 교육, 병자와 빈자 구휼 활동. 그들의 수호성인은 우르술라 성녀. [본문으로]
  5. Blosius - 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인 316년 아르메니아에서 처형된 순교자, 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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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라퐁텐은 드문 예외일 뿐이다. 라퐁텐의 동시대인들은 글에서 인간 외적 본질인 자연 세계에 눈길을 전혀 돌리지 않았다. 코르네유의 비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은 면밀하게 조직된 계층적 집단의 세계에 살고 있다. 옥타브 나달이 ‘코르네유의 세계는 바로 도시’라고 쓴다. 

  라신의 여주인공들과 그들을 고민케 하고 특색 없는 남자들의 더 엄격히 제한된 세계는 코르네유의 도시처럼 창문이 없다. 이 세네카 풍 비극의 극치는 숨 막히고 좁아서 공기도 없고 편히 움직일 공간도 없고 배경도 없는 파토스이다. 그것들이 <리어 왕>, <당신 좋을 대로>, <한여름 밤의 꿈>, <맥베스> 등과 얼마나 다른가 말이냐. 

  셰익스피어의 코미디나 비극은 어떤 것이라도 읽다 보면 어릿광대며 악인, 영웅, 고급 매춘부, 눈물 흘리는 왕비들 같은 인간 세상 뒤편에 지구와 우주가 늘 존재하며 생물과 무생물의 세상이, 이성이 없는 것과 의식이 또렷한 세상이 있다는 사실들이 거의 스무 줄마다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사람을 자연과 떨어진 상태에서 묘사하는 시는 사람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실제로 확고하게 연관된 인간 외적 세계는 무시하고 인간 영혼 안에서만 하느님을 알고자 애쓰는 영성은 거룩한 존재의 충만함을 알 수 없다. 

 

가톨릭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 1889-1973

 

  우리 시대의 저명한 가톨릭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이렇게 쓴다.[각주:1]

  “내 가장 깊고 가장 확고한 소신은, 만약 그것이 이단적이라면 정통 교리에는 더 나쁜데, 모든 사상가들과 학자들이 뭐라 해도 신의 뜻은 우리가 만물을 도외시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거꾸로 우리가 만물을 통하고 우리 출발점으로서의 만물과 함께 그분을 찬양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신앙 서적을 난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17세기에 가장 덜 불쾌한 신앙 서적들 중 하나는 토마스 트러헌[각주:2]의 <명상의 시대>일 것이다. 잉글랜드의 시인이요 신학자인 그는 하나님이 당신 피조물에 나쁘게 대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거꾸로,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찬미할 필요가 있으며, 모래알에서 무한한 공간을, 꽃송이에서 영원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트러헌의 표현에 따르면, 사욕 없는 관상을 통해 ‘세상을 얻는’ 사람은, 그리하여 하나님을 얻으며 나머지는 전부 저절로 추가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모든 갈망과 야망을 채우고 의심과 배신을 물리치고 용기와 기쁨으로 굳건해지는 것이 정녕 달콤한 일 아니런가?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세상을 얻기만 하면 다 달성될 수 있다. 그러면 지혜와 힘과 선함과 영광의 하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니까.” 

 

  이상적인 삶에서 랄망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자연적 요소와 초자연적 요소의 혼합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듯이, 그가 말하는 ‘자연적인 것’이란 자연 전체가 아니라 그저 발췌한 일부일 뿐이다. 

  트러헌도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의 뒤섞음을 옹호하지만, 그는 자연을 가장 작은 디테일까지 포함해 통째로 받아들였다. 그가 보기에 백합들과 까마귀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존재한다. 자, 여기 모래가 있고, 모래 알갱이들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것들을 사랑스럽게 응시하라. 그러면 그 안에서 영원성도 무한성도 보게 되리니

 

  자연물에 내재한 이 신성함을 수렝도 체험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무나 지나치는 동물한테서 하나님의 충만한 위대함을 실제로 감지한 순간들이 있었다고 몇몇 짧은 기록에서 고백한다. 그러나 아주 이상하게도, 갖가지 작은 것들 속에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개념을 어디서도 상세하게 기술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많은 영적 서신의 수신자들한테도 백합에 관한 그리스도의 권고를 따르면 암중모색하는 영혼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점을 한 번도 조언하지 않았다. 

  타락한 자연은 모두 부패한 것이라고 주입된 믿음이 직접 체험에서 얻은 것보다 그의 마음에서 더 강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겠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독단적인 말과 가르침이 확연하고 자명한 사실을 흐리게 만들었다. 

 

  선종의 3대 조사는 “제 앞에 있는 이것을 보고 싶다면, 이것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고정된 관념을 갖지 말라”고 쓴다.[각주:3]

   그러나 관념 고정은 신학자들이 직업적으로 하는 일이고, 수렝과 그의 스승은 깨달음을 추구한 사람이기 이전에 신학자였다. 

 

  랄망의 고행에서 가슴의 정화는 성령의 인도에 늘 온유하게 따름으로써 완성됐다.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각주:4] 중 하나는 이해력인데, 이 이해력에 맞서는 악덕은 ‘영적인 것들에 대한 난폭함’이다. 이런 난폭함은 갱생하지 않은 자들에게 흔한 상태이며, 그런 사람은 대체로 내면의 빛에 완전히 눈이 어둡고 감화의 목소리에 완전히 귀가 어둡다. 

 

  이기적인 충동을 억제하고, 제 생각을 추적하는 증인을 두고, ‘마음 움직임을 감시하는 작은 파수꾼’을 세움으로써… 사람은 마음 그 어느 깊은 곳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직관적 지식과 직접적 명령과 상징적 꿈이며 판타지 형태의 메시지를 인식하게 되는 점까지 직관을 키울 수 있다. 

  끊임없이 돌아보고 경계하는 가슴은 모든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결국 ‘성령에 점유(감화)되고 지배(인도)된다.’

 

  그러나 이런 경지로 가는 길에서 아주 다른 종류의 점유와 지배가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모든 영감과 계시가 다 하나님께서 나오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것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들 중 어떤 것이 성령의 목소리이며 어떤 것이 미치광이 목소리고 사악한 범죄의 목소리인지, 어떻게 식별해야 하나? 

 

  피에르 베일[각주:5]이 한 독실한 재세례파 젊은이의 경우를 인용한다. 이 젊은이는 어느 날 아우의 목을 베라고 명령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성서를 많이 읽은 그 아우는 이런 일이 이전에도 벌어졌다는 것을 알기에 이 계시의 신성함을 인정했다. 같은 신자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제 2의 이삭처럼 자발적으로 죽음으로 달려가 참수를 당했다. 

  그런 경우를 키에르케고르는 ‘도덕성의 목적론적 유보’라고 우아하게 칭한다.[각주:6] 창세기와 달리 실생활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실생활에서 우리는 광기의 속삭임에 현혹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랄망은 ‘계시’라는 것이 하나님한테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신자들이 망상에 빠지지 않게끔 여러 모로 경고했다. 성령에 순종하라는 그의 교리가 내재적 영혼이라는 칼뱅파 교리 같은 것이 아니냐며 의심쩍게 이의를 제기한 동료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 계시 형태로 나타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그 어떤 선행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종교의 신조이고, 둘째, 종교적 계시는 가톨릭 신앙과 교회 전통과 교회 권위자들에 의해 인정된다. 만약 계시라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과 교회에 역행하게 한다면, 그건 거룩한 계시일 수 없으리니. 

 

  이는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광기를 조심하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퀘이커교도들이 활용하듯이, 다른 방법도 있다. 특이하거나 위험스러운 뭔가를 해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밀려올 때 그 사람은 ‘존중하는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계시의 본질에 관해 그들 의견을 따라야 했다. 

  랄망도 같은 절차를 옹호한다. 그는 성령이 실제로는 ‘우리한테 판단력 있는 이들과 상의하고 우리 행위를 가까운 이들 의견에 맞추도록 촉구한다’고 주장한다. 

 

  그 어떤 좋은 행위도 성령의 계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랄망은 이것이 가톨릭신앙의 신조라고 단언한다. ‘난 그런 식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투덜거린’ 동료들한테 이렇게 답했다. 

  참 신자들에겐 그런 계시가 늘 따라다녀요, 본인이 못 느끼는 중에도. 그대들이 온당하게 살기만 한다면 종교적 계시를 필히 인식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들은 제 자신 바깥에 살기를 택하면서 제 영혼을 들여다보러 집으로 잘 오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서약한) 양심 점검을 아주 피상적으로 행하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빤한 잘못들만 참작한다. 제 욕구와 습관의 내적 뿌리를 찾으려 애쓰지는 않고, 마음의 상태와 경향이며 가슴의 작열을 돌아보지는 않고서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성령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들 놀랄 게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성령의 목소리를 어찌 들을 수 있겠나? 그들은 저희 행동으로 인한 은밀한 마음속 죄마저도 알지 못하거늘. 그러나 그런 걸 알기에 적절한 조건을 내면에서 만들기만 하면, 성령이 인도하심을 틀림없이 알게 되리라.」 

 

  이런 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른바 선행이요 자선이라 하는 것들 대부분이 왜 비효율적이며 나아가서 많은 경우 왜 유해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속담처럼 만약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각주:7] 한다면, 그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내면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빛을 못 보기에, 순수한 선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행동하기 이전에 늘 관상(심사숙고)이 선행돼야 한다고 랄망이 말하는 것.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우리는 내면에 더 침잠할수록 바깥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내면의 자신을 덜 들여다볼수록 선을 행하려 애쓰기를 더 삼가야 한다.」 

  다른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선 활동에 들이덤비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열의와 자선의 동기가 순수한 것일까? 아니면, 그런 일에서 자기애를 충족하기 때문에, 기도나 공부를 싫어하기 때문에, 제 방에서 호젓하게 명상에 잠기기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은 아닌가?」 

 

  어떤 성직자가 헌신적인 신도들을 많이 데리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자의 말씀과 선행은 ‘그가 얼마나 사리사욕에서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지에 비례해서만’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언뜻 선을 행하는 듯 보이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왕왕 있다. 영혼을 구하는 사람은 거룩한 이들이지 사업에 능한 자들이 아니다. 

 

  「행위는 우리가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장애가 되어선 안 된다. 외려 우리를 그분한테 더 큰 사랑으로 더 바짝 묶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과하면 육체의 죽음을 야기하는 어떤 체액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 생활에서도 지나치게 활발하며 기도와 명상으로 절제되지 않은 활동 필히 영적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결실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아주 칭찬받을 만하고 눈부시고 건설적인 일을 하는데도 말이다! 

 

  계시의 조건인, 욕심 없는 자기성찰 없이는 재능도 결실 맺지 못하고 열의와 근면도 영적 가치를 전혀 일궈내지 못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평생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단 한 해에 해낼 수 있다.」 

  그래, 외적인 작업은 외부 상황을 바꾸는 데는 효율적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좋은 환경에도 파괴적이고 자멸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데, 상황에 대해 사람들의 그런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일꾼은 먼저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영혼이 계시를 접하게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저 외부 지향적인 사람은 트라야누스[각주:8] 황제처럼 일하고 데모스테네스[각주:9]처럼 웅변을 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면을 지향하는 사람은 한마디 말로도, 다른 사람이 총명과 학식을 다 동원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인상을, 많은 가슴과 마음에 안길 수 있다. 그 한마디에 성령이 깃들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성령에 점유(감화)되고 지배(인도)된다’는 것을 실제로 어떻게 느끼나? 지속적인 계시 상태를 수렝보다 나이 적은 동시대 여성 아멜 니콜이 아주 꼼꼼하게 묘사했다. 그녀를 고향 브르타뉴 전역에서는 애정을 담아 la bonne Armelle (착한 아멜)이라 불렀다. 

  하녀로서 음식 만들고 걸레질하고 아이들 돌보면서도 관상하는 성자의 삶을 산 그녀는 글을 배우지 못해 제 사연을 적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재주 있고 글을 잘 아는 수녀가 있어서, 그녀의 은밀한 얘기와 고백을 거의 놓치지 않고 기록하게 됐다. 

 

  「아멜은 자신이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고 그저 고생하며 하나님 역사에 순종하는 데에만 적합하다고 여겼다. 고백하기를, 육신을 지니고 있지만, 이 육신은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인도된다고 했다. 하나님이 그녀 영혼에게, 내가 들어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라, 명령하고 거기 들어서셨다. 아멜은 제 육신이나 마음에 관해 말할 때 ‘내 몸’이나 ‘내 마음’이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의’라는 단어가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다고 했다. 

  그녀가 언젠가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이 절대적 주인이 되었을 때 그 동안 나를 가로막은 것들을 (나쁜 습관과 이기적 충동 따위를) 모두 내버렸어요. 그렇게 되자, 그녀 마음은 주님이 그녀 영혼의 심연에서 어떤 일을 벌이는지 깨닫지 못했고, 그 역사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녀 마음은 하나님만이 자유로이 들어설 수 있는 이 심연의 문 밖에서 주인 명령을 공손하게 기다리는 하인과 같았다. 간간이 아멜은 전능자께서 계신 은밀한 문 앞에 많은 천사들이 입구를 지키듯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 상태가 얼마 동안 지속됐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그녀의 의식적인 자아를 영혼의 심연으로 들여놓으셨다. 들여놓을 뿐 아니라, 거기 가득 채워진 신성한 완성을 실제로 보게 하셨다. 그건 사실 늘 차 있었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녀가 알지 못했던 것일 뿐. 내면에서 느끼는 그리스도의 빛은 그녀가 감당키 어려울 만큼 강해서 한동안 육신이 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점차 견디게 되면서 그리 큰 고통 없이도 계속 그 빛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아멜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놀라운데, 다른 비슷한 증언들과 대조해 보면 한층 더 흥미롭다. 즉, 만물의 신성한 근간과 같은 본질인 순수한 자아 혹은 아트만이 이 놀랄 만한 자아에 내재돼 있다는 점. 영혼 안에는 ‘하나님만 들어설 수 있는’ 은밀한 심연이 있다. 

  하나님만 들어설 수 있는 까닭은… 신성한 근간과 의식적인 자아 사이에 비인격화된 실체, 곧 우리네 무의식의 지대가 깔려 있는데, 거기에는 범죄적 본능과 원죄가 둥지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의식은 광기와도 가깝고 하나님과도 가깝다. 

 

  우리는 원래의 죄를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우리한테는 원래의 덕도 (원덕도) 있다. 이를 서구 신학에서는 ‘은혜를 감당할 능력’ 혹은 ‘영혼의 불꽃’이라 부른다. 이건 최초의 순수와 결백을 간직한 의식의 파편. 이 타락하지 않은 의식의 파편을 ‘신테레시스[각주:10]라 부른다. 

  프로이트 유파 심리학자들은 원덕보다는 원죄에 훨씬 더 많이 주목한다. 그들은 쥐와 바퀴벌레들을 차분히 연구하지만 내면에서 느끼는 그리스도의 빛을 보기를 꺼린다. 융과 그의 후계자들이 좀 더 현실적이다. 그들은 개인적 무의식의 경계를 넘어섰고, 마음이 점점 더 비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심령매체와 뒤섞이는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융의 심리학은 내재하는 망상증의 범위를 넘어섰지만 내재하는 신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반복컨대, 원죄의 밑바탕이 되는 원덕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 아멜의 경우가 독특한 건 아니었다. 영혼의 심연이 있어서, 거기서 신성한 사랑과 지혜의 빛이 나온다는 것을 역사 내내 많은 사람들이 인식해 왔다. 

  그것을 수렝 신부도 인식했는데, 단지 저 뒤에서 기록되듯이, 그와 함께 심령매체에 두려움이 있고 개인적 잠재의식에 해로운 쓰레기가 있음을 강하게 인식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과 사탄을 같은 순간에 인식했고 자신이 모든 존재의 신성한 근간과 영원히 결합됐음을 아주 확실히 알면서도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저주받았다는 것도 굳게 믿었다. 

  결국, 우리가 저 뒤에서 보게 되듯이, 그것은 하나님을 두루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그 고통 받는 마음에서, 원죄는 시간과 상관이 없는 까닭에 훨씬 더 크고 많은 원덕 속으로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신비 체험, 현신, 이른바 ‘우주 의식’의 번쩍임 등은 간청한다고 하여 얻는 것이 아니며 실험실에서 일률적으로 마음대로 반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혼 깊은 곳에서 얻은 체험이 명령에 따르는 게 아니라면, 그 심연으로 다가들고 그 영역 안에 존재하며 천사들 속에서 (아멜의 말대로) 문가에 서는 체험은 반복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최면상태를 실험한 사람들은 이런 점을 발견한다. 즉, 어떤 트랜스 깊이에서 피험자들이 홀로 있고 주의가 산만하지 않다면 내재된 평정과 좋은 상태를 심심찮게 알게 된다는 것. 이때 이 좋은 상태는 광대하지만 고립되지 않은 공간들이나 빛의 인지와 자주 연관된다. 

 

  랄망과 그 제자들은 신비 체험의 근거를 굳이 입증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신비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으로 알았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레오파고스의 디오니시우스의 <신비주의 신학>에서부터 테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성 요한[각주:11]의 얼마 전 증언에 이르기까지 가장 믿을 만한 문헌들로 확인도 했다. 

  가슴 정화와 성령에 온유함으로써 달성되는 그 목표의 신성한 본질과 가능성을 그들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과거에 하나님의 미더운 종들이 이 길을 거치고 서면 증거를 남겼으며, 그 증언들의 정통성을 로마교회 박사들이 담보했다. 이제 그들은 감각과 의지가 몸부림치는 어두운 밤들을 스스로 이겨낸 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알지 못하는 평정 상태를 체득하게 됐다

(3편 끝. 4편 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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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1. Gabriel Marcel (1889-1973) - 프랑스의 철학자, 극작가, 비평가. 유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적 철학자. 나이 마흔에 가톨릭에 귀의. <형이상학적 일기>, <구체적 철학 경험> 등. [본문으로]</구체적></형이상학적>
  2. Thomas Traherne (1637-1674) - 잉글랜드 성공회 성직자, 시인, 사상가, 지복 철학을 다룬 산문 Centuries of Meditations이 20세기 초에 발간돼 널리 읽힌다. [본문으로]
  3. 欲得現前 莫存順逆 -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스름을 두지 말라. <신심명> [본문으로]</신심명>
  4. 1지혜 2이해력 3지식 4권고 5인내 6경건함 7신의 외경. 이 일곱 가지 선물의 원천으로 흔히 이사야서 11장 1-2절을 꼽는다 [본문으로]
  5. Pierre Bayle (1647-1706) - 프랑스 계몽시대의 영향력 있는 사상가요 신학 비평가. 칼뱅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잠시 가톨릭에 귀의. ‘계몽철학의 화약고’라 불리는 <역사와 비평 사전> 때문에 프랑스 가톨릭과 개혁교회한테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의 적수들도 친구들도 모두 위대한 지성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본문으로]</역사와>
  6. 쇠렌 키에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1813-1855) - 덴마크의 종교철학자, 신학자, 저술가, 현대 실존주의의 선구자.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보편적인 윤리를 유보하거나 정지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공포와 전율>에서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통해 조명한다. 이 저술의 장르를 그 스스로 ‘변증법적 비가’라 정의했다. [본문으로]</공포와>
  7.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 유럽 속담. 좋은 일을 하려고 의도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고,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 혹은, 상황을 더 좋게 만들려고 의도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나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뜻. [본문으로]
  8. Caesar Nerva Trajanus (53-117) - 고대 로마 황제. 속주들과 이탈리아, 로마 등지에서 대규모의 토목공사 실시. 도로와 교량, 수로의 건설, 황무지 개간, 항구 건물의 건축. 특히 로마는 트라야누스의 토목공사로 풍요롭게 변모했다. [본문으로]
  9. Demosthenes (B.C. 384-322) -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 웅변가. [본문으로]
  10. Synteresis - 가톨릭 교부요 성서학자인 히에로니무스(342-420)가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아이스킬로스(B.C. 525-456)의 작품을 풀이하면서 양심(conscientia)을 뜻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 이것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 우리 안에서 마지막까지 선을 알게 한다. 세네카 등 스토아학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며, 양심에 대한 태도를 여러 모로 정의하면서 나중에 토마스 아퀴나스 등 스콜라철학자들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8) 등 신비주의자들도 사용했다. [본문으로]
  11. Dionysius the areopagite (460경-520경) - 침묵과 비움을 설파한 기독교 신비주의 성자, 시리아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영성가. St. John of the Cross (1542-1591) - 성 환 델라 크루스. 에스파냐 영성가, 반종교개혁의 주요 인물, 테레사 성녀와 함께 ‘맨발의 카르멜회’ 창립, 로마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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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3-3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각주:1]는 문학예술의 완전한 걸작 축에 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이 얼마나 정밀하고, 문체는 얼마나 우아하며, 명쾌함은 또 얼마나 후련한가! 섬세한 풍자가 얼마나 많으며 세련된 논쟁거리를 얼마나 많이 제공하는가! 

  한데, 파스칼의 솜씨에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 보니까, 이 문필 대가가 예수회와 얀센파의 논쟁에서 옳지 않은 관점을 옹호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놓치기 쉽다.[각주:2]

 

  예수회가 결국 얀센파에 승리한 것도 물론 순수한 축복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파스칼이 지지하는 측이 이겼다면 결과는 더 나빴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운명 지워진 저주라는 얀센파 교리와 확고한 퓨리터니즘이라는 얀센파 윤리에 빠져서 교회는 통제 불능한 악과 강압의 도구가 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예수회가 우위를 점했다. 교회 도그마에서 얀센파가 주창하는 과도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성격은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인 상식이 좀 곁들이면서 완화됐다. 

 

  예수회가 승리한 결과 실제에서 엄격주의는 더 관대한 사고방식으로 대체됐다. 이 더 너그러운 태도는 결의론으로 정당화됐으며, 결의론의 목표는 죽어 마땅해 보이는 죄인 중 많은 이들이 실제로는 용서받을 만하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애쓰는 것.[각주:3] 또 이 결의론은 개연설의 관점에서 합리화됐는데, 이로써 여하한 의혹도 죄인한테 이롭게 해석하기 위해 많은 권위적 견해가 동원됐다. 엄격하고 지나치게 일관된 파스칼에게는 개연설이 아주 부당하게 보였다. 

  우리가 보기에 개연설과 그것이 정당화한 결의론은 한 가지 커다란 장점을 지닌다. 즉, 영원한 저주라는 끔찍한 교리에 종지부를 찍은 것. 즉결심판 판사 마음 하나 움직이지 못할 궤변으로써 사람이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지옥이란 썩 진지한 것일 수 없다. 예수회 결의론자들과 모럴리스트들의 의도는… 가장 속물적이고 죄 많은 남녀들도 관대하게 교회 품에서 지킴으로써 전체로는 교회를, 부분으로는 교파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그들은 웬만큼 달성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내부에서 상당한 분열을 일으켰으며, 정통 기독교의 주된 교리들 중 하나인, 한순간 죄에 대한 무한한 징벌이라는 교리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1650년도 이후 이신론과 ‘자유사상’, 무신론이 급속히 커졌는데, 그 원인들 중에는 예수회의 결의론과 개연설, 또 그 예수회 학자들과 수사들을 파스칼이 대가다운 솜씨를 발휘해 풍자적으로 묘사한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었다

 

  우리의 이상한 드라마에서 직간접적으로 어떤 역할을 한 예수회원들은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성직자들과 전혀 달랐다. 그들은 정치와 무관했고 ‘이 세상’이며 거기 사는 생물들과 거의 접촉이 없었다. 그들의 금욕생활은 이성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었으며, 저희 친구며 신봉자들한테도 그런 금욕을 설교했고, 설교를 듣는 그들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 관상[각주:4]에 헌신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예수회 신비주의 유파의 신봉자이며, 개중에 가장 저명한 대표자는 테레사 성녀의 스승인 알바레즈 수사[각주:5]였다. 알바레즈는 이냐시오 로욜라가 설교 활동을 촉구했음에도 종교적 관상을 행하며 가르친다고 예수회 장군 한 사람한테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그에게 쏠린 비난을 거둬들이면서 관상기도에 관해 예수회 공식 정책을 규정했다. 

 

  「고도의 관상에 너무 이르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사람들은 비난받을 만하다. 하지만 관상을 경시하고 우리 구성원들에게 금지함으로써 수사들의 꾸준한 체험마저 반박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진실하고 심오한 관상은… 자만심을 억누르고 미온적인 사람들이 상사의 명령을 수행하여 영혼 구제에 적극 나서도록 환기시키는 데 다른 모든 기도 방법보다 더 큰 힘과 효험을 지닌다는 것이 많은 성직자들의 체험과 권위로써 잘 입증됐으니까.」 

 

  17세기 전반 내내 예수회가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적극적 활동에 중점을 두었지만, 신비주의 성향에 크게 기운 수사들은 관상에 헌신하도록 허용되고 때론 장려되기도 했다. 나중에 미구엘 몰리노스[각주:6]가 단죄 받고 정적주의[각주:7]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벌어진 뒤, 예수회원들 대다수는 관상에 상당히 의심쩍게 대했다. 

  저서 <프랑스에서 종교 감정의 문학적 역사>의 마지막 두 권에서 앙리 브레몽[각주:8]은 수도회 내부 대다수 ‘금욕주의자들’과 소수의 낙담한 관상 지지자들 간의 충돌을 생생하게 극화한다. 

  한데, 랄망과 그 제자들의 히스토리를 연구한 예수회 학자 포티에는 브레몽의 논제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를 보면, 관상은 예수회에서 공식적으로 비난받은 적이 전혀 없으며 관상을 수행하는 개개인들은 정적주의가 혹독하게 탄압받는 시기에도 예수회 내부에서 계속 활약했다는 것. 

 

  하지만 1630년대는 정적주의가 등장하기까지 아직 반세기나 남아 있었고 관상을 둘러싼 격론이 아직은 이단이라는 비난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예수회 장군 비텔레스키를 수반으로 하는 예수회 상층부는 이 문제를 순전히 실용적 측면에서 보았다. 수사들 훈련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이 더 좋은가, 관상? 아니면, 설교? 

 

  예수회의 위대한 관상 수행자인 루이 랄망[각주:9] 수사는 1628년부터 건강 때문에 1632년 은퇴할 때까지 루앙 칼리지 교관 직을 맡았다. 1629년 가을 장 조셉 수렝이 루앙으로 파견돼 ‘2차 수련’을 위해 온 다른 젊은 성직자 십여 명과 함께 1630년 늦봄까지 거기 남았다. 이 기억할 만한 학기 내내 수렝은 매일 교관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냐시오 로욜라의 규칙에 걸맞게 기도와 재계를 통해 기독교적 완성의 삶을 준비했다. 

 

 

  랄망의 가르침을 수렝이 간결하게 골자만 기록하고 그의 학우인 리골렉 수사가 더 상세하게 기술했는데, 나중에 다른 예수회원인 샹피옹 수사가 다듬어서 <루이 랄망 수사의 영적 교리>라는 제목으로 17세기 말엽에 발간했다. 

 

 

  랄망의 교리에 기본적으로 참신한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런 게 어디서 나올 수 있었겠나?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상향적 자기초월을 열망하는 모든 사람의 최고 과제인, 하나님을 직관적으로 알기였다. 

  그 목표에 이르는 수단들도 엄격히 정통파적인 것이었으니… 영성체를 자주 하기, 예수회 순종 서약을 꼼꼼하게 지키기, ‘미개인[각주:10]’의 육욕 죽이기, 성찰과 꾸준한 ‘마음 지키기’, 날마다 그리스도 수난을 명상하기, 그리고 그것이 준비된 사람들에겐 ‘단순한 응시’의 소극적 기도, 즉 관상의 은혜가 주입된다는 희망으로 하느님을 긴장하여 기다리기 등이었다. 

 

  주제들도 아주 오래 된 것이었다. 그러나 랄망이 그것들을 먼저 체험하고 나서 표현한 방식은 개인적이며 독창적이었다. 스승과 제자들이 공식화한 교리는 특별한 성격과 격조와 특이한 향내를 담고 있다.      

  랄망의 가르침에서는 마음의 정화와 성령이 이끄는 대로 온유하게 따르기가 특히 강조됐다. 달리 말해… 선행과 기도를 통해 성자와 합일되며, 긴장되고 소극적인 관상에서 성령과 합일돼야만, 성부와의 의식적인 합일도 바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마음의 정화는… 집중적인 기도와 잦은 영성체로써, 또 늘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음욕과 자만과 자기애에 대한 충동을 철저하게 응징함으로써 달성된다. 

  경건한 느낌과 이미지화, 또 그것들이 깨달음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저 뒤편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육욕 억제와 자신 안에서 근절해야 하는 ‘미개인’이 우리 주제이다. 

 

  ‘당신 왕국이 임(臨)하게’ 되면, 그 결과 필히 ‘우리 왕국은 거(去)하게’ 된다. 여기에는 누구나 동의했다. 그러나 인간의 왕국을 어떻게 몰아내야 하는지, 이 방법에 관해서는 성직자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가 없었다. 그 왕국을, 무력으로 내쳐야 하나? 아니면, 설득하여?

  랄망은 엄격주의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타락한 인간 본성은 사악하다고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는 진정한 예수회 수사로서, 죄인들과 불경한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그러나 그의 신학적 사고 풍조는 대단히 음울하여 자신한테도 또 자기완성을 열망하는 모든 이들한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없으니, 바로 육욕을 죽이기 위한 극단의 고행. 

  샹피옹이 랄망 수사의 간략한 전기에서 이렇게 쓴다. 

  「육체적 고행이 그의 체력을 압도한 게 확실하며, 아주 가까운 친구들 생각으로는, 고행 과정이 그의 수명을 상당히 단축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랄망과 같은 시대 사람이요 가톨릭에서 영국성공회로 개종하고 시인에서 설교자며 신학자가 된 존 던이 자기징벌 문제를 두고 쓴 글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3-3편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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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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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0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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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얀센주의를 옹호하면서 이단적이라 규탄 받는 친구 앙투안 아르노를 옹호하기 위해 쓴 18편의 서신. 파스칼이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들어가던 즈음과 거의 같은 시기에 쓰기 시작. 1편은 1656년 1월 23일 자. 루이 몽탈트라는 가명으로 쓴 이 서신들에서 파스칼은 신학자들의 궤변을 해학적으로 공격하고 예수회의 느슨해진 도덕률을 비판. 종교적 영향은 차치하고, 뛰어난 위트와 유머와 풍자로 인해 대중에게 널리 읽혔다. 프랑스 산문에서 새로운 문체의 효시로 평가되며 나중에 볼테르와 루소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편지>는 정치와 신학의 수준에서는 실패지만 도덕적 수준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도덕성과 영성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 루이 14세는 1660년 이 책을 소각하라고 명령. 1657년에 쓴 마지막 서신에서는 알렉산더 7세 로마교황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황은 서신들을 공공연히 반대하면서도 파스칼의 논거에 설득됐고, 불과 몇 해 뒤 교회의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고 궤변적인 교회 문건들을 수정하라고 명했다. [본문으로]</편지>
  2. 얀센주의 - 벨기에 신학자 얀센(1585-1638)이 창시한 교리.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과 은총설을 수용해 은총과 자유의지, 예정 구원설에 대해 엄격한 견해를 주장함으로써 17-18세기 프랑스 교회에서 큰 논쟁을 일으켰다. 즉, 타락한 인간은 죄와 정욕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 은총을 통해 선택된 사람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 예수회를 세속주의와 야합해 타락한 집단이라 비난했고 여러 교황들로부터 단죄를 받았지만, 프랑스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파급되면서 엄격한 신앙생활을 필요로 하는 신자들에게 오랜 기간 특히 도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3. 決疑論 (casuistry) - 보편적 규범을 정확히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에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중세 스콜라철학의 윤리 이론. 기독교에서는,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 평가 문제와 의무 규정이 모호한 때 행동 지침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문제로 대두됐다. 예수회 일각에서 결의론을 지나치게 세밀하게 구분하는 경향을 띠면서 반대자들로부터 궤변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본문으로]
  4. 觀想 - 기독교 신비주의, 신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기도 행위. Christian contemplation. [본문으로]
  5. Balthasar Alvarez (1533-1580) -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귀족 출신, 이미 18세에 범상치 않은 기도와 신앙심으로 주목받다. 처음엔 카르토지오 수도회에 기울다가 예수회에 입문. 25세에 성직자가 되고, 젊은 나이에도 테레사 성녀의 영적 지도를 맡게 됐다. [본문으로]
  6. Miguel de Molinos (1628-1696) - 에스파냐 성직자, 가톨릭 신비주의자, 17세기 후반 로마에서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 ‘수동적이고 행동하지 않는’ 믿음을 옹호하는 정적주의 창시.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는 1687년 몰리노스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 [본문으로]
  7. 靜寂主義 (Quietism) - 기독교 영성에 대한 교리. 영혼의 소극적(정적) 상태에서, 즉 인간의 노력을 억제하여 신의 활동이 온전히 펼쳐질 수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적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 행동하려 하는 것은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하느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본문으로]
  8. H. Bremond (1865-1933) -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역사가, 종교 저술가, 수도원장. 유명한 에세이 <순수 시론>(1925). [본문으로]</순수>
  9. Louis Lallemant (1588-1635) - 프랑스의 예수회 수사, '프랑스의 알바레즈'라 불렸다. 그의 금언과 가르침의 모음집인 이 오늘날에도 많이 읽힌다. [본문으로]
  10. natural man - 하늘의 계시에 의해 정신적으로 갱생되지 못하여 동물처럼 행동하는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2: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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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 책 표지

 


 

3편

 

3-1

 

  우르뱅 그랑디에가 승리와 패배와 또 위태로운 승리를 반복하면서 끝없이 싸움을 벌이는 동안 그보다 더 젊은 동시대인도 나름대로 투쟁을 벌였는데, 그건 비교할 수 없이 더 높은 상을 얻기 위한 싸움이었다. 

  보르도 칼리지에서 공부하면서 장 조셉 수렝[각주:1]은 신학생이나 예수회 수련수사들 가운데서 용모 준수한 젊은 성직자를 자주 보고, 그의 근면과 재능을 예로 드는 교사들의 말을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1617년 그랑디에가 보르도를 떠난 뒤 수렝은 그를 더 이상 못 봤다. 1634년 늦가을 그가 루덩에 왔을 때 주임신부는 이미 죽고 그의 유해는 사방으로 흩뿌려진 뒤였다.

 

  나이가 엇비슷한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서 같은 선생들 밑에서 같은 인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했다. 한 사람은 세속의 신부요 다른 사람은 예수회 수도사로 둘 다 성직자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도록 운명 지워졌다

  그랑디에는 평범하고 감각적인 사람이었다. 단지, 관능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두드러졌을 뿐. 그의 삶의 기록이 충분히 증명하듯이 그의 세상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자주 등장하는 의미의 세상이었다. 

  “불행하구나, 유혹이 가득한 이 세상!” 

  “이제 이 세상에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승의 자만이며, 다 아버지한테서 나온 것이 아니요 세상에서 온 것이라. 이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할지니.”[각주:2]

 

  ‘이 세상’이란... 인간의 경험으로 각각의 자아에 나타나고 자아로써 형성되는 것. 그것은 자아의 지시에 따르는, 물질적이고 불충분한 삶. 그것은 우리네 음욕과 공포가 하도 크기에 자연스러움을 상실한 세계. 그것은 영원성에서 분리된 유한. 자체의 비이원적인 근간에서 고립된 상태의 다양함. 불행의 연속 같은 시간 흐름. 그것은 현실이라 불리는, 무수히 많은 아름답고 신비한 개개의 것들을 대신하는 언어적 범주의 체계. 그것은 페티시즘이 되어 버린 거짓 이데아. 그것은 우리네 실용적 어휘와 동일시된 우주. ‘이 세상’ 맞은편 위에 ‘다른 세상’이 있고, 거기 하나님 왕국이 숨어 있다. 

 

  수렝은 자의식적인 삶을 시작한 이래 바로 이 왕국으로 늘 끌렸다. 그의 가족은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데다 신앙이 독실했다. 이 신앙은 실용성과 자기희생 정신을 띠었다. 그의 부친은 임종 전에 상당한 재산을 예수회에 희사했고, 모친은 남편 보낸 뒤 카르멜회 수녀가 됨으로써 자신의 숙원을 이루었다. 부모가 사내애를 체계적이고 양심적으로 엄하게 키울 수밖에 없었다. 

 

장 조셉 수렝 수도사

 

  오십 년 지나 유년기를 돌아보면서 수렝은 아주 짧은 시기 하나만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여덟 살 때 지역에 역병이 창궐했다. 소년을 안전한 시골집으로 보냈다. 때는 여름이고 시골은 그림 같이 아름다우며, 여자 가정교사는 소년한테 공부라는 멍에를 지우지 말고 삶을 마음껏 누리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친척들이 별의별 놀라운 선물을 싸 들고 아이를 찾아오곤 했다.

  「난 날마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놀았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안쓰러운 의미를 담고 있는 문구인가!) 그 격리 기간이 끝난 뒤 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힘겨운 시기가 시작됐다. 하나님을 공부한다는 게 어찌나 힘들었는지 불과 네댓 해 전에야 평생 처음으로 안도감을 맛봤다. 그 이전에는 고통이 계속 커지기만 하여 때로는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한계까지 이르기도 했다.」 

 

  장 조셉이 예수회 수사들의 생도가 됐다. 그들이 그에게 그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쳤고, 그래서 무대를 선택할 시간이 됐을 때 젊은이는 주저 없이 예수회 일원이 됐다. 하지만 다른 원천에서 그는 라틴어보다 더 좋은 뭔가를, 스콜라신학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배웠다. 

 

  수렝이 칼리지에서 공부한 청소년기 다섯 해 동안 보르도 지역 카르멜회 수녀원 원장은 ‘천사들의 수녀 이사벨’이라 불린 에스파냐 수녀였다. 이사벨 수녀는 테레사 성녀[각주:3]의 동료이자 제자였는데, 중년에 들어 다른 수녀 몇 명과 함께 프랑스로 파견돼 테레사 성녀의 가르침과 영성과 신비주의 교리를 전파하고 있었다. 참된 마음으로 듣고자 갈망한 모든 경건한 영혼에게 이사벨 수녀는 이 알아듣기 힘든 가르침을 언제든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찾아와 열심히 듣는 이들 가운데 좀 왜소한 편인 열두 살 남학생이 있었다. 소년은 장 조셉, 그건 그가 자유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편. 

  하나님의 사랑을, 그분과 합일되는 기쁨을, 온유와 겸양, 가슴의 정화, 분주하고 어지러운 마음 비우기 등을 유창하지 못한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목소리를 소년은 널따란 객실 창살 너머에서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듣곤 했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면서 소년은 ‘이 세상’이며 육체와, 지상의 주권자들이며 지상의 권세와 싸우겠다는 단호한 결의로 마음이 꽉 차는 것을 느꼈다. 싸워서 이겨야 비로소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자격이 생길 터. 장 조셉이 주저하지 않고 영적 투쟁의 길을 택했다.

 

  열세 살을 갓 넘겼을 때 하나님 은혜의 신호요 다가올 승리의 전조인 듯싶은 것이 소년에게 시현됐다. 어느 날 카르멜회 교회에서 기도하는 중에 초자연적인 빛을 보게 됐다. 그건 하나님의 본질을 밝히는 동시에 모든 거룩한 특성을 명시하는 듯한 빛이었다. 

  그 계시며 그 체험에 수반된 환희의 기억이 죽는 날까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신비한 느낌이, 그랑디에나 부샤르와 똑같은 사회적, 교육적 환경에 처한 그를 다른 이들과 달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승의 자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물론, 그런 정욕과 자만을 그가 전혀 몰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그런 유혹을 지독하게 감지했다. 

 

  수렝은 몸이 허약하고 신경이 예민하면서 관능적 충동이 특히 강한 유형에 속했다. 게다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나이가 들어서는 그 재능에 자신을 다 바치면서 신앙보다는 미학 문제를 다루는 직업 문인이 되려는 유혹도 자연스레 겪었다. 

  가장 존경받을 만한 ‘안목의 정욕’에 굴복하고 싶다는 마음은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는 야심과 명성 애호 때문에 더 커졌다. 그는 명성이라는 맛을 음미하고 비평가들의 칭송과 열광하는 독자들의 갈채를 거부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즐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저급한 정신이 육적 삶의 유혹에 약하듯이 고급한 정신은 지적 삶의 유혹에 약하다. 장 조셉의 경우 수치스러운 유혹 못지않게 명예로운 유혹도 아주 강했다. 창작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경험으로 알았다. 단지 열세 살 때 접한 그 찬란한 광채를 기억하는 덕분에 헛된 명성이라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수렝은 동정남으로 죽었으며 작품 대부분을 제 손으로 소각했다. 또 명성으로 말하자면, 이름을 날리지 않은 상태로 그친 게 아니라 (우리가 보게 되듯이) 외려 나쁜 평판을 남기는 것에 만족했다. 저 뒤에 가서 묘사되는, 상상도 못할 고난과 시련에 맞서면서 그는 영웅적인 근기를 발휘하며 기독교적 완성을 향해 고통스럽게 나아갔다. 

 

  하지만 그 이상한 고행 스토리를 살펴보기 전에 그런 불가사의한 편력에 나서는 선남선녀들은 어떤 동기를 지니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다른 얘기를 해야겠다. 

(3-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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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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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Jean-Joseph Surin (1600-1665) - 프랑스의 예수회 신비주의자, 설교가, 종교 저술가, 엑소시스트. 8세에 순결서원, 10세에 카르멜회에서 명상을 배우고, 16세에 수련수사. 20대에 파리 클레르몽 칼리지에서 공부. 성직자로서 준엄한 자기부정을 실행, 사회 접촉을 거의 다 끊었다. 1634년 9월 루덩에 파견돼 잔느의 엑소시스트로 활동하면서 악령에 들씌우게 됐다. 20년 넘도록 환각과 망상, 발작, 신체 마비, 언어 능력 상실 등에 시달렸다. 그런 와중에도 간간이 힘찬 음성과 달변으로 강론을 펼쳐 주치의가 기적 같다고 했다. 죽기 8년 전에 악령을 떨쳤다. 영성에 관해 뛰어난 저술을 몇몇 남겼다. [본문으로]
  2. 마태복음 18:7, 요한복음 12:31, 요한일서 2:15-17. [본문으로]
  3. St. Teresa of Ávila (1515-1582) -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로마가톨릭 성인, 교회박사, 카르멜회 수녀, 반종교개혁에 관한 여러 글의 저자, 정신 기도를 통한 관상 생활 신학자. 카르멜회 개혁가,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맨발의 카르멜회’ 창설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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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사진

 


 

  그랑디에의 첩보망도 약제사보다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비밀 회동을 아주 빨리 감지했다. 그가 지방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로바르데몽을 각별히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의 상전인 추기경과 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르마냑이 답신을 보내왔는데, 의기양양했다. 폐하께서 아성은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는 친서를 이제 막 전권대행에게 사적으로 보내셨다고 하오. 이것으로 문제는 속 시원히 해결된 셈이오.  

 

 국왕의 친서는 1631년 12월 중순경 도달했다. 로바르데몽이 친서를 받아 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이후 그것에 관해 입을 꾹 다물었다. 외곽 성벽과 탑들은 계속 해체되고 있었다. 다음해 1월 로바르데몽이 어디선가 더 급한 일을 보기 위해 루덩을 떠났다. 일꾼들이 이미 아성까지 바짝 다가들었다. 

 

루덩 성벽 해체 작업

 

  그랑디에가 작업 책임자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마지막 돌덩이까지 싹 제거하랍니다, 그게 대답이었다. 그러자 주임신부가 자신의 주도 하에 지방장관 수하 병사들에게 아성 주변을 둘러싸 비상선을 치라고 지시했다. 

 

  2월에 로바르데몽이 돌아왔다. 자신의 은밀한 계략이 들통 난 것을 알고는 다르마냑 부인한테 갖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작업 감독한테 적절한 지시를 깜빡 잊고 내리지 못했습니다. 폐하의 친서도 어쩌다 그냥 가지고 가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마침내 친서를 내보였다. 

 

  아성이 일단은 무사하게 됐지만,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 것이며 또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나? 

  국왕의 개인 비서인 미셸 루카스는 추기경의 앞잡이이기도 했는데 왕의 눈앞에서 다르마냑의 평판을 깨라는 지시를 받았다. 분수 모르고 날뛰는 주임신부야 아무 때라도 손봐줄 수 있어. 

 

  1632년 초여름 그랑디에와 다르마냑이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건, 아아, 그야말로 자폭 같은 승리였구나. 

  그들이 추기경 일파의 비밀 서신들을 루카스에게 전달하는 파발을 매수하여 사본을 얻게 됐다. 그 서신들에는 지방장관에 대한 고약한 중상비방 외에도, 추기경 지지자들이 고향 도시 루덩을 파괴하려고 구상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다 담겨 있었다. 

  라모트의 시골집에 머물고 있던 다르마냑이 득달같이 도시로 달려와서 경종을 울리라고 지시하여 시민들을 모았다. 탈취한 서신들을 광장에서 큰 소리로 낭독하자 루덩 주민들이 얼마나 분개했는지 에르베와 트렌캉을 비롯해 음모자들이 어디론가 쥐새끼처럼 숨어야 했다. 

 

  그러나 지방장관의 승리는 오래 못 갔다. 며칠 뒤 왕궁에 들어와서 그는 자신이 취한 조치에 추기경이 격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르마냑의 미더운 친구요 국무비서인 라브릴리에가 그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서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귀띔했다. 

  아성과 관직, 둘 중 하나를 택해야겠소. 어떤 경우에도 예하께서는 장관이 그 둘 다를 유지하게끔 놔두지 않을 게요. 지금 폐하의 뜻이 어떠하든 성채는 결국 파괴될 테고. 

  그 암시를 다르마냑이 알아차렸다. 그 이후 불가항력적인 것에 맞서기를 포기했다.

   한 해 지나서 루이 13세가 전권대행에게 친서를 또 보냈다. 

  ‘로바르데몽 남작, 그대의 열성을 우리도 알게 됐구려… 이 친서를 보내서 그대의 노고를 치하하고 성채를 완전히 주춧돌까지 다 제거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바이오.’ 

  예상한 대로 추기경이 제 뜻을 관철시킨 것. 

 

  그러는 동안 그랑디에는 지방장관의 전선 못지않게 자신의 전선에서도 싸워야 했다. 성 베드로 교회의 주임신부로 복권되고 며칠 지나 적수들이 푸아티에 주교에게 청원서를 냈다. 

  원하는 사람들은 여기 교구 주임신부의 ‘지저분한 손’이 아니라 다른 성직자들한테서도 성찬례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로슈포제가 이 요청을 기쁘게 수락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교는 자신의 선고에 감히 항소 제기한 자를 벌하는 동시에 밉상스러운 대주교의 콧대를 꺾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새로운 스캔들이 몇몇 터졌다. 

 

  1632년 여름 루이 무소와 아내 필리프가 처음 본 갓난애 세례를 받게 하려고 성 베드로 교회에 왔다. 그 일을 부제한테 위임하는 대신 그랑디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손수 의식을 거행하겠노라고 했다. 무소가 주교의 결정을 들이밀자 그랑디에가 그것은 불법이라 응대하고는 옛 연인의 남편과 맹렬한 언쟁 끝에 자기주장을 굳히기 위해 교회법정에 소송을 냈다. 

 

  새 송사가 시작되자마자 옛 송사도 부활했다. 감옥에서 서신을 적던 때 기독교도로서 품은 느낌은 까맣게 잊었다. 즉,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었다거나, 복수의 갈증이 그를 오해한 이들한테 봉사하려는 갈망으로 대체됐다는, 그 번지르르한 말들이 다 헛소리가 된 것

  티보는 등나무 지팡이로 나를 내리쳤으니, 대가를 치러야 해! 

  다르마냑이 법정 밖에서 일을 수습하라고 몇 번이나 조언했다. 그러나 주임신부는 티보가 제시한 보상을 다 거부했고, 이제 복권되자마자 소송을 낸 것이다. 하지만 티보도 법정에 친구들이 있고, 그래서 그랑디에가 결국 승소하긴 했지만 상대에게 안기려던 타격은 아주 적었다. 

  금화 24 리브르 때문에 (도덕적 훼손이 바로 그 정도로 평가된 것) 적대자들과 화해하거나 최소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그가 깨고 말았다. 

  (<루덩의 악마들> 2편 끝. 3-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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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 1634년 화형

 


 

  아담의 약제용 악어 아래 저녁마다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가 가장 크고 원한이 가장 독했다. 주임신부를 극도로 혐오하지만 그가 일을 하도 교묘하게 처리한 바람에 분한을 그에게 불리한 쪽으로 분출할 수 없었다. 강요된 무위를 험한 언어로 벌충할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지만 적어도 토로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토로했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모욕적인 말로 지껄여댔기 때문에 마들렌의 친척들이 이른바 ‘중상 비방’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고해사제와 마들렌의 밀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트렌캉과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설정된 진실이 가장 좋은 진실이라 믿었다. 

  Magna est veritas legitima, et praevalebit.[각주:1] 이런 금언에 의거하여 그들은 마들렌에게 아담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고 설득했다. 사건을 심리한 파리 고등법원이 약제사한테 유죄를 내렸다. 

 

  그러자 드브루 집안과 썰렁한 관계이고 그랑디에를 가증스럽게 여긴 지역 토호가 약제사 이름으로 항소했다. 두 번째 심리가 이뤄졌고, 거기서 하급법원의 판결이 확정됐다. 가엾은 아담에게 금화 640 리브르를 배상금으로 지불하고 두 차례 소송비용을 다 부담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것만이 아니다. 치안판사들과 마들렌 드브루와 그녀 친척들이 있는 자리에서 무릎 꿇고 모자 벗고 “앞에 언급된 처자를 겨냥해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말을 분별없이 악의적으로 입에 올렸다”고 말하고, 그러니 이제 그녀가 정조 있고 행실 바른 처녀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과 국왕과 법정과 당사자인 마드무아젤 드브루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법적 진실이 화려한 승리를 거두었다. 

  변호사들과 검찰관, 경찰 수뇌가 패배를 인정했다. 

 

  앞으로 그랑디에를 공격하더라도 내연녀인 마들렌만큼은 못 건드리게 됐어! 

  그럴 수밖에 없지, 그녀 외가가 쇼베 가문이고, 세리제가 그녀의 사촌이고, 드브루 집안이 타바 가문이며 드뢰, 젠보 가문과 사돈인 바에야! 

  그렇게 막강한 친인척을 배경으로 둔 여자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정조 있고 행실 바른 처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반면에, 약제사가 정말 안 됐어. 위자료 때문에 파산 지경에 이르렀으니, 쯧쯧. 

 

  오호라, 인생이란 그런 것이고, 신비한 분배 섭리가 그렇구나. 우리는 저마다 작은 십자가를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사도가 공정하게 지적했듯이 누구나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 

 

  새로운 인물 둘이 우르뱅의 적진에 가담했다. 한 사람은 저명한 법률가요 왕실 법률고문인 피에르 메노. 그는 여러 해 동안 줄기찬 청혼으로 마들렌을 괴롭혔다. 매번 거부당하면서도 기죽지 않았으며 언젠가는 마드무아젤과 지참금과 부러운 연줄을 다 차지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마들렌이 주임신부에게 몸을 맡김으로써 제 권리라고 여겼던 것이 좌절됐음을 알고는 분개심이 하늘 끝까지 치솟을 수밖에! 그의 절규를 트렌캉이 공감하는 심정으로 경청하고 위로의 방편으로 참모회의 자리 하나를 제시했다. 제안이 선뜻 수락됐고, 이제부터 메노는 음모 집단의 가장 적극적인 멤버 축에 들게 됐다. 

 

  그랑디에의 두 번째 새로운 적은 메노의 친구인 자크 티보. 지역 토호인 그는 예전에 병사로 복무하다가 이제 리슐리외 추기경의 비공식 에이전트로서 지방 정치에 발을 좀 들여놓고 있었다. 티보는 애초부터 주임신부를 싫어했다. 

  시시껄렁한 하급 사제요 변변치 못한 계층 출신 주제에 카발리에가 기르는 콧수염을 기르고 고관대작처럼 무게를 잡다니! 게다가 라틴어 좀 안다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꼴이란, 소르본 박사처럼 말이야! 그런데 이제 왕실 법률고문의 신붓감을 감히 빼앗아 가? 안 돼, 그런 자는 손 좀 봐줘야 해. 

  티보가 첫 번째 행보로 그랑디에의 가장 막강한 친구요 후견인들 중 한 사람인 벨레 후작을 찾아갔다. 그랑디에의 죄업을 있는 것 없는 것 죄다 들추며 열변을 토하자 후작이 입장을 확 바꾸어서 그 뒤로는 어제의 친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각주:2]처럼 대했다.

 

  그랑디에가 몹시 상처 받고 적잖이 동요했다. 후작이 등 돌린 일에서 티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둘러 귀띔했다. 나중에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주임신부가 (제의를 다 갖춰 입고 마침 성 베드로 교회로 들어가는 중에) 적대자에게 쓰디쓴 질책을 퍼부었다. 응답으로 티보가 말라카 지팡이를 번쩍 들어 그랑디에의 머리를 겨냥해 내리쳤다. 

  루덩 전투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랑디에가 먼저 공세를 취했다. 티보에게 앙갚음하겠노라 다짐하고는 다음날 아침 파리로 떠났다. 

  성직자에게 가한 폭력은 행동으로 보인 신성 모독이요 교회를 더럽힘이야. 이 문제를 고등법원에, 법무대신한테, 재상한테, 국왕한테까지 들고 가겠어. 

 

  그의 출발과 여행 목적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담이 소상히 알게 됐다. 약재 찧던 절굿공이를 내던지고 검찰관에게 알리러 달려갔고, 검찰관은 즉각 하인을 보내 동맹자를 모조리 소집했다. 

  그들이 도착해서 이런저런 논의 끝에 역공 계획을 세웠다. 

  주임신부가 국왕께 호소하러 파리로 가고 없는 동안 우리는 푸아티에로 가서 주교에게 고발하는 거요. 

  문건이 최고의 법적 형식으로 작성됐다. 그 문건에서 주임신부는 수많은 기혼녀와 젊은 처녀들을 유혹했으며, 신을 욕되게 하고 불경스러우며, 기도서를 전혀 읽지 않고, 또한 담당 교회 구역에서 간통을 범했다고 고발됐다. 

 

  이런 진술을 소위 ‘법적 진실’로 바꾸기란 아주 간단했다. 아담이 우시장에 달려가서 꾀죄죄한 사람 둘을 데리고 금방 돌아왔다. 둘은 보수만 좀 받으면 어떤 문건에든 기꺼이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부그로라는 자는 글을 쓸 줄 알지만 세르봉이라는 자는 겨우 십자 표시만 할 수 있었다. 일이 끝나자 ‘증인들’이 보수를 챙겨서 킬킬대며 선술집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아침 검찰관과 경찰 수뇌가 말에 안장을 얹고 푸아티에로 느긋하게 떠났다. 거기서 그들은 주교의 법률 대리인, ‘품위 감독관’을 찾아갔다. 그들은 그랑디에가 이미 주교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환호했다. 

  주임신부의 애정행각이 그의 상관들 귀에까지 들어갔어! 

  음란함과 무분별에다 더 심각한 죄인 오만불손이 추가돼 있었다. 예를 들어, 바로 얼마 전 이 파렴치한은 사흘간의 사전 혼인 예고도 하지 않은 채 혼례를 허가하고 그 대가를 제 주머니에 넣음으로써 감독기관의 권위를 침범하는 방약무인을 저질렀다. 이 젊은 수탉의 날개를 분질러 놓을 때가 됐다. 루덩의 신사들이 아주 적절한 때에 온 것이다. 

 

  트렌캉과 에르베가 품위 감독관의 추천장을 가지고 주교 예하를 뵈러 말을 달렸다. 주교 관저는 시내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디쎄의 웅장한 성 안에 있었다. 

 

  앙리 루이 라로슈포제는 주교들 중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귀족 가문의 권리로 고위성직자가 됐지만, 그러면서도 학식 있는 인물이요 놀라운 성서 해설서의 저자였다. 그의 부친은 조셉 스칼리제르의 후견인이요 평생지기였고, 바로 이 저명한 학자한테서 젊은 귀족이요 나중에 푸아티에 주교가 된 그가 가르침을 받는 혜택을 누렸다. 마크 패티슨[각주:3]의 표현을 빌자면 조셉 스칼리제르는 ‘지금까지 지식을 얻느라 평생을 보낸 지성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성.’ 

  스칼리제르[각주:4]의 프로테스탄티즘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간 개량에 관한 연구>라는 저서를 두고 예수회에서 진저리날 정도로 비방하는 것도 무릅쓰고 라로슈포제가 옛 스승한테 확고부동하게 충실했다는 점은 그의 신용에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 사실, 다른 모든 이단자들한테는 라로슈포제가 무자비한 적의를 과시했다. 주교 관구에 아주 많은 위그노들을 미워하고 그들 삶을 망가뜨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러나 자선과 마찬가지로 나쁜 기질도 의인들 마당에나 죄인들 마당에나 골고루 내리는 비처럼 신성하게 공평하다. 같은 가톨릭신자라 해도 그를 화나게 하면 주교께서는 신교도 대하듯이 호되게 다룰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 까닭에, 콩데 공이 섭정 마리 메디치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1614년 이백 가구가 도시에서 성 밖으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사건도 그들이 성문을 통과하려 하면 화승총을 일제히 발사하라고 그들의 성직자가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불행한 이들의 죄는 무엇이었나? 왕비가 지명했지만 라로슈포제 자신이 싫어한 지방장관에게 충성한다는 이유였다. 대공이 왕비께 ‘전대미문의 파렴치한 짓을 범한 이 성직자를’ 징벌하라고 청했다. 물론 그 어떤 형벌도 따르지 않았고 이 주교는 고령에 졸중으로 타계한 1651년까지 푸아티에에서 계속 군림했다. 

 

  쉽게 발끈하는 귀족이요 작은 폭군, 책을 사랑하는 학자로서 서재 바깥 세계는 독서라는 진지한 작업에 괘씸한 방해물로 여긴 사람. 그랑디에의 적대자들이 알현하러 간 인물은 그런 성향이었다. 반시간 만에 그가 결정을 내렸다. 

  주임신부가 골칫거리였구나, 교훈을 줄 필요가 있겠소. 

  그랑디에를 체포하여 푸아티에 시에 있는 주교 관구 감옥에 가두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비서가 칙령을 작성한 뒤 서명 받아 봉인했다. 그 문건이, 재량껏 이용하라는 언질과 함께 트렌캉과 에르베에게 전달됐다. 

 

  그때 파리에서는 그랑디에가 고등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국왕을 직접 알현하게... <2편 4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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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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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1. 법적 진실은 위대하고 우월하다. (라틴어) - 저자 주. [본문으로]
  2. persona non grata - 호감 가지 않는 사람. 주재국 정부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외교관. [본문으로]
  3. Mark Pattison(1813-1884) - 영국 성직자, 옥스퍼드 소재 링컨대학 학장. [본문으로]
  4. Joseph Scaliger(1540-1609) -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활동한 휴머니스트 인문학자, 역사가, 무인. 저서 <시간 개량에 관한 연구 de emendatione temporum>는 현대 연대학의 효시. [본문으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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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우울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희망이 있어, 그럴 듯한 스캔들을 만드는 거지. 그자를 현장에서 붙잡을 수 있게끔 어떡하든 상황을 조장하는 게요. 그 죽은 양조업자의 과부하고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약제사가 우울한 표정으로 알렸다. 

  그쪽에는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정보가 없어요. 여편네가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 그 집 하녀는 매수가 안 되고… 그렇잖아도 내가 간밤에 덧창 틈으로 동정을 살피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누군가가 이층 창문에서 철철 넘치는 요강을 쏟아 붓지 뭐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주임신부는 여전히 태연하고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평소처럼 제 비즈니스와 쾌락을 즐기며 나다녔다. 곧 아주 이상한 소문이 약제사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임신부가 마드무아젤 드브루와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군. 

  아, 그 고상하고 독실한 체하기로 유명한 마들렌하고? 

 

  마들렌은 르네 드브루의 세 딸 가운데 둘째이고, 르네 드브루는 재산이 넉넉한데다가 귀족이며 지역 최고 가문들과 혈연관계가 두터웠다. 마들렌의 두 자매는 이미 시집을 갔다. 하나는 내과의한테, 또 하나는 지방 대지주한테. 그러나 서른이 다 된 마들렌은 미혼으로 자유로이 살았다. 구혼자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그녀가 다 퇴짜를 놓았다. 집에 남아서 늙은 부모를 보살피며 자신만의 관심사를 생각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그녀는 신중하고 초연한 태도 아래 강한 감정을 억누르며 조용하고 수수께끼 같은 젊은 여인 축에 들었다. 나이 든 세대는 그녀를 칭찬하지만 동갑나기와 후배 중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까칠하고 젠체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또 자기네 요란한 놀이에서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흥을 깨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나치게 독실했다. 

  종교야 아주 좋지, 하지만 사생활의 신성함을 침범당해서야 되겠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툭하면 성찬례를 받고 하루걸러 고해를 하고 성모 상 앞에서 몇 시간씩이나 무릎 꿇다니 말이야. 

  아냐,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너무 심해. 

  그들이 그녀를 멀리했다. 그건 마들렌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 부친이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친이 암에 걸렸다. 노부인이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병치레하는 동안 그랑디에가 자주 찾아왔다. 배부른 줄 모르는 과부와 검찰관 딸의 일만으로도 정신없지만, 가엾은 여인에게 종교적 위안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죽음의 침상에서 드부르 부인은 딸한테 그의 조언을 잘 따르라고 당부했다. 주임신부가 마들렌의 물질적, 영적 문제들을 제 일처럼 잘 지켜주겠노라 약속했다. 나중에 약속을 지켰다. 비록 자신의 특유한 방식으로 했지만.

 

  모친이 죽고 한동안 마들렌은 세속 인연을 다 끊고 수녀원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 생각을 영적 조언자한테 밝히면서 상담했을 때, 그가 그 계획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랑디에가 강력히 주장했다. 

  수녀원 안보다 바깥에서 당신은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오. 우르술라회나 카르멜회의 수녀가 되면 자기 재능을 감추는 꼴이 될 게요. 당신 자리는 여기, 루덩에 있소. 당신 소명은 썩기 쉬운 허영심만을 생각하는 멍청한 처녀들한테 반짝이는 지혜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오. 

 

  그가 청산유수로 말했고, 그 말에는 신성한 영력이 있었다. 두 눈에서 불길이 일고, 내면의 열기와 영감으로 얼굴이 환히 빛나는 듯했다. 마들렌이 생각했다. 이분은 사도처럼 보여, 천사처럼 보여. 이 말이 다 옳아,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녀가 양친 모시고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 집이 아주 어둡고 쓸쓸해 보였기에 거의 모든 시간을 친구인 (거의 유일한 친구인) 프랑수아즈 그랑디에와 함께 보냈다. 그녀는 사제관에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둘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깁거나 성모나 성인들을 위해 화려한 수를 놓으며 앉아 있는 자리에 때때로 그랑디에가 끼어들었다. 

이보다 더 자연스러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세상이 갑자기 더 환해지고 신성한 의미로 충만한 것처럼 보였으며, 마들렌 얼굴이 행복에 겨워 장밋빛이 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랑디에가 제 그물에 걸려들었다. 그의 전략은, 그건 바로 노련한 유혹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인데, 겉으로는 냉담한 척하면서 상대 마음에 불을 지피고, 그걸 정점까지 끌어올린 뒤 결국 제 교활함의 결실을 따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캠페인이 진척되면서 또 뭔가가 잘못 되고 있었다. 혹은, 뭔가가 잘 되고 있었다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저 관능적 만족이나 또 하나의 순진한 제물에게서 거두는 헛된 승리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분방한 기질의 소유자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로 바뀌었다. 이건 도덕적 성장에서 중요한 행보. 하지만 가톨릭교회 성직자에게 혼인이란 윤리와 신학과 교회와 사회라는 측면에서 숱한 곤경을 거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성직자의 독신주의에 관한 소론을 쓴 이유는 바로 그런 곤경에서 조금이라도 헤어나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부도덕한 이단자라 여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면서도 강력한 욕망으로 생긴 행동 방침을 단념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 충동이 본질적으로 좋으며 더 높고 더 풍성한 삶을 향한 것이라 인식될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바로 이런 면에서, 특정 시대와 지역에서 유행하는 철학 용어들을 동원하여 비정통적 행위를 당대 세태에 맞추면서 충동이나 본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흥미진진한 문학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의 소논문은 이런 감동적인 옹호 장르에서 상당히 특이한 모델이었다. 그는 마들렌 드브루를 사랑하며 이 감정에 추한 게 전혀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의 규율로 보자면, 가장 행복한 육적 사랑마저도 악으로 인식됐다. 

  따라서 그런 규율이 축자적으로 해석돼서는 안 되며, 자신이 불혼 서약을 하면서도 그걸 꼭 지키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논거를 찾아내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게 옳은 행동이라고 확신시키는 논거를 찾기란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한텐 식은 죽 먹기. 그에게는 제가 쓴 소논문의 논리가 참으로 그럴듯해 보였다. 

 

  더욱 놀랍게도, 그런 논리가 마들렌이 보기에도 전혀 흠이 없었다. 종교적 성향에 지나치게 기울고 신념이 아니라 습관과 기질에서 정조를 지키는 그녀는 교회 법규를 지상명령으로 간주했기에 순결 깨는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면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본성에 어울리는 열정으로. 가슴에 그런 이유가 있는 마당에 그랑디에가 불혼 서약이 절대적인 게 아니며 성직자도 혼인할 수 있다고 입증하자 그 말을 믿었다. 

  만약 간통이 아니라 교회가 축복하는 혼인으로 사랑하는 이와 맺어졌다면 그녀는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사랑할 수 있었으리라.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그녀의 의무였을 터이다. 사랑의 논리가 완벽했다. 연인이 쓴 소논문의 윤리적, 신학적 논거가 마들렌에게는 아주 미덥게 보였다.

 

  그랑디에는 드브루 부인한테 한 약속도 지켰다. 즉, 언젠가 밤에 어둠침침하고 메아리만 울리는 교회당에서 자신이 후견을 맡은 처녀와 혼례를 치른 것.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는가? 

  성직자로서 그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고는 이제 신랑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그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성직자 역할로 돌아온 그가 축사를 읊조리고 다시 신랑으로 돌아가서 그 축사를 무릎 꺾고 받았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의식이었다. 법과 관습과 교회와 국가에 개의치 않고, 그들은 예식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그러니 하나님 눈에도 그 혼인이 적법한 것이라 확신했다.[각주:1]

 

그랑디에 신부와 마들렌의 혼인

 

  그러나 하나님 눈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사람들 눈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루덩의 선량한 주민들 관점에서 마들렌은 주임신부의 또 다른 내연녀일 뿐이었다. 

  순진하고 얌전한 듯싶지만 사실은 sainte nitouche[각주:2] 였던 거야. 

  숙녀인 체했지만 매춘부라는 게 금방 드러났어. 

  법의 걸친 저 프리아포스[각주:3]에게, 비레타 쓴 숫염소에게, 가장 몰염치한 방식으로 제 몸뚱이를 내준 거지! 

 

  아담의 약제용 악어 아래 저녁마다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가 가장 크고 원한이... <2편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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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1560년 푸아티에 지방의 위그노 교회 회의록을 보면, 성직자들이 내연녀와 몰래 혼인하는 일이 아주 잦았다. 이때 여자가 칼뱅파 신자이면, 교회의 중대한 문제가 됐다. - 저자 주. [본문으로]
  2. ‘성녀 니뚜슈’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관용적 표현을 의인화한 것. 직역하면, ‘남자를 멀리하는 성녀’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마치 성녀라도 되는 듯이 굴며 남자와 손가락만 스쳐도 큰 봉변당한 양 호들갑 떠는 여자를 놀리는 데 쓰는 표현. [본문으로]
  3. priapus - 그리스, 로마 전설에서 남근으로 표시되는 풍요의 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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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영화 악마들, 켄 러셀, 올리버 리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2편 

 

  몇 주일이 흘렀다. 필리프의 외출이 갈수록 줄더니 그예 교회마저 나가지 않게 됐다. 식구들한테는 몸이 아파 방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친구 마르타 펠티에가, 좋은 집안 출신이지만 일찍 부모 여위어 아주 가난한 그녀가, 간병인 겸 말동무로 집에 들어와 함께 지내게 됐다. 

 

  트렌캉 씨는 여전히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진실을 암시하거나 주임신부를 나쁘게 말할라치면 화를 벌컥 냈다. 그러면서 주변 못된 농담에 끌끌 혀를 차고 딸의 폐결핵 증세를 걱정했다. 가정 주치의 팡통이 신중하게 처신하여 누구한테든 말을 아꼈다. 루덩 주민들이 서로 눈을 끔뻑거리고 킥킥대거나 아니면 의분 표출이라는 쾌감에 빠졌다. 

  적대자들은 주임신부와 마주칠 때면 가시 돋친 암시를 흩뿌리고, 친구들은 나무라는 투로 고개를 흔들고, 라블레 성향의 익살꾼들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야비한 축하를 던졌다. 

 

  그랑디에는 그 모든 사람들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응수했다. 그에게 아직 반감을 품지 않은 이들은 그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매너와 신실해 보이는 말이 결백의 증명이라고 여겼다. 그가 무슨 못된 짓을 저질렀다고 헐뜯는 자들이 있는데, 저렇게 흠 없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기란 도덕적으로 불가능하지! 

 

  세리제 지방장관이나 마담 드브루 같은 저명인사들 저택에서 그는 여전히 환대받는 손님이었다. 그들 저택 문은 검찰관 저택 문이 닫힌 뒤에도 여전히 그에게 열려 있었다. 검찰관이 제 집 문을 닫은 까닭은 결국 딸이 왜 시름시름 앓게 됐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집요한 추궁을 견디지 못하고 딸이 다 털어놓은 것.

  트렌캉이 주임신부의 가장 충실한 친구에서 하룻밤 새에 가장 완강하고 위험한 적으로 돌변했다. 그랑디에는 자신을 파멸로 끌어간 사슬에 또 하나의 고리를 만들고 말았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다. 닫힌 덧문들과 두툼한 가리개와 커튼에도 불구하고 앳된 엄마의 비명이, 이를 윽물고 참았음에도 아주 날카롭게 새나온 비명이, 뭔가를 열심히 예상한 이웃들에게 ‘경사’를 알렸다. 그 소식이 한 시간도 안 돼 소도시 전역에 퍼졌고, 다음날 아침 재판소 현관에는 <검찰관의 사생아 손녀를 기리는 송시>라는 점잖지 못한 글이 나붙었다. 

  프로테스탄트 몇몇이 의심을 샀는데, 그건 트렌캉이 정통 가톨릭교회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이단적인 시민들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데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마르타 펠티에가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자신이 아기 엄마라고 공개적으로 자처하고 나섰다. (그건 이 사연의 추악함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행위였다.) 죄를 범한 사람은 나에요, 수치를 감추려 한 사람도 나에요. 필리프는 나한테 피난처를 제공한 은인일 뿐이지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지만 그 가상한 마음씨는 합당한 평가를 받았다. 마르타가 일주일 된 아기를 유모 노릇 하겠다고 나선 젊은 시골 여인한테 넘겼다. 그 장면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끔 과시적으로 연출됐다. 그러나 그런 제스처에 넘어가지 않은 프로테스탄트들이 계속 입을 놀렸다. 

 

  그들의 점잖지 못한 의혹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심정으로 검찰관이 그럴 듯한 법률적 책략을 썼다. 마르타를 백주 대로에서 체포하여 치안판사한테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그녀가 법정에서 서약한 뒤 증인들 배석 하에 갓난애가 제 소생이라고 공식 인정하며 아이 부양을 책임지겠다는 문서에 서명해야 했다. 친구를 사랑한 까닭에 마르타가 서명했다. 문서 사본 한 부는 기록보관소에 보관되고 다른 한 부를 트렌캉이 의기양양하게 제 주머니에 넣었다. 

 

  거짓이 공식 인증되어 이제 법률적 진실이 됐다. 법률 자구만을 지각하기에 익숙해진 머리들한테 법적 진실은 무조건적 진실과 같은 법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으니,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못했음을 검찰관이 분한 마음으로 곧 알게 됐다. 공식 문서를 그가 큰 소리로 낭독하고, 다들 제 눈으로 서명을 보고, 공식 봉인을 직접 만져 본 뒤에도… 친구들은 정중하게 미소 지으며 말머리를 돌릴 뿐이며, 적대자들은 크게 웃으면서 공격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프로테스탄트들의 원한이 어찌나 깊은지, 한 목사는 위증이 간음보다 더 무서운 죄악이며 스캔들을 덮기 위해 거짓 증언한 자는 음란함으로 원인을 제공한 자보다 지옥 불에 더 시달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청년기에서 새뮤얼 가스 경의 중년기 사이에는 숱한 사건들로 점철된 세월이 오래 흘렀다. 통치 체계와 사회 조직, 경제 기구, 물리학과 수학, 철학과 예술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많았다. 그러나 그 백년 어간에 전혀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약방이었다. 로미오는 약제사의 점방을 이렇게 묘사한다.[각주:1]

 

약방에는 별의별 게 다 있어서, 

거북이와 악어와 갖가지 바다 생물 박제들. 

선반마다 남루한 것들이 얹혀 있어서, 

먼지 낀 도토 항아리며 빈 상자들, 

노끈 토막이며 약초며 씨앗들 

그리고 축축한 장밋빛 알약들. 

어렵사리 상품 모양을 낸 

가련한 잡동사니가 다 있구나.

 

  새뮤얼 가스 경이 장시 <조제실>에서 거의 같은 장면을 묘사한다.[각주:2]

 

거기엔 수지 먹인 미라 유해와 

바다거북 껍데기들이 놓여 있었어. 

이빨 무성한 상어 아가리가 엷은 미소로 

창밖 지나는 이들을 놀라게 했지. 

천장으로는 말린 양귀비가 

대롱대롱 줄에 걸려 있고, 

그 아래엔 거대한 악어가 비늘 덮인 채 

음침한 모습으로 불쑥. 

한 쪽 구석엔 안티몬과 암모니아수, 

다른 구석엔 바짝 말린 오줌보. 

 

  이 과학의 신전은 마법사의 실험실이자 시골 장터 간이무대이기도 한데, 연결되지 않는 사물들과 개념들의 기묘한 결합이라는 17세기 특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데카르트와 뉴턴의 시대는 또한 플러드[각주:3]와 케넬름 딕비 경[각주:4]의 시대이기도 했고, 대수와 해석기하학의 시대는 또한 ‘무기 연고’[각주:5]며 ‘연민 파우더’며 ‘특징 이론’[각주:6] 따위가 판치던 시대이기도 했다. 

  <회의적인 화학자>의 저자요 왕립협회 설립자들 중 한 사람인 로버트 보일[각주:7]은 가정에서 쓰기에 좋은 처방전을 한 권 남겼다. 예를 들어, 보름날 참나무에서 따낸 미슬토를 말리고 갈아서 블랙체리 물에 타 마시면 간질병이 낫는다. 뇌졸중 발작에는 (키오스 섬의 렌티스크 관목에서 추출한 수지인) 유향을 구리 용기에서 증류하여 정유를 뽑아낸 뒤 깃털에 묻혀 병자의 한쪽 콧구멍에 두세 방울, ‘잠시 뒤 다른 쪽’에 두세 방울 떨어뜨려야 한다. 

  과학 정신이 이미 활발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나 주술사와 마녀의 정신 또한 그 못지않게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마르샹 거리에 있는 아담의 약방은 중간 규모로 초라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은데 지방 소도시 약방치곤 훌륭했다. 미라들과 코뿔소 뿔을 갖추기에는 많이 수수하지만 그 대신 서인도제도 거북이들과 고래 태아, 8 피트 되는 박제 악어 따위를 뽐냈다. 

 

  쌓아둔 품목도 아주 많고 다양했다. 선반마다 갈레노스[각주:8] 유파에서 즐겨 쓰는 약초 일습과, 발렌티누스[각주:9]와 파라셀수스[각주:10]의 후계자들이 권하는 최신 약물을 다 구비했다. 대황과 알로에가 그득하고 감홍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감홍을 아담은 '온순한 용'이라는 뜻으로 Draco mitigatus라 즐겨 불렀다. 

 

  만약 당신이 식물성 간장약을 좋아한다면, 거기엔 콜로신스가 있었다. 그러나 당신이 더 현대적인 치료를 시도해 보자 한다면, 거기엔 토주석과 금속성 안티몬도 있었다. 만약 당신이 재수가 없어 마음에 안 드는 님프나 멋쟁이를 사랑하게 됐다면, 서양측백과 수은-초크 중에서, 혹은 사르사파릴라와 블루 연고제[각주:11] 중에서 뭔가를 선택하면 됐다. 

  어디 그뿐인가, 말린 독사며 말발굽이며 사람 뼈까지 꼽는다면 아담이 동종업자들 앞에서 주뼛거릴 일이 없었으리라는 점을 당신도 쉽게 이해하리라. 더 값비싼 것은 (예를 들어, 사파이어나 진주 가루 등은) 선금을 치르고 특별히 주문해야 했다. 

 

  그런 약방이 이제부터 음모자들의 정기 회합 장소요 본거지가 됐다.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그랑디에의 파멸. 이 음모의 리더들은 검찰관과 그의 조카, 참사회 위원 미뇽, 경찰 수뇌, 그의 장인 메스멩 실리, 외과의 만누리 등이었으며, 아담도 응당 포함됐다. 환약을 짓고 이빨을 뽑고 관장을 하는 직업 성격상, 아담은 정보 수집의 막강한 원천이었다.

  그런 만큼 그가 공증인의 아내 쇼뱅 부인한테서 (어린 아들의 기생충을 뽑아내면서 절대 비밀로) 알아낸 정보는 요긴했다. 주임신부가 1순위 담보 대출에 800 리브르를 투자했다는군. 그 악당이 부를 쌓기 시작한다는 뜻이에요. 

  안 좋은 소식이 또 있었다. 다르마냑의 둘째 심복의 처형이 부인병을 치료하느라 말린 쑥을 정기적으로 사 가잖아요. 근데 하는 말이, 그랑디에가 내일 지방장관 아성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한다지 뭡니까. 

 

아담의 약방에서 음모자들이 회동

 

  그 말에 검찰관이 미간을 찌푸리고 경찰 수뇌가 투덜대며 고개를 저었다. 다르마냑은 그냥 지방장관이 아니라 국왕의 총신이다. 그런 인물이 그랑디에의 친구요 보호자라는 사실은 실로 끔찍한 것이었다. 

 

  우울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희망이 있어, 그럴 듯한 스캔들을 만드는 거지...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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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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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인생의 (가혹한) 진실 15가지

관계에 고요와 평정의 공간 들이기 위해 경청을. 50

 

  1. 셰익스피어 (1564-1616) - 5막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1597년에 발표. [본문으로]</로미오와>
  2. 새뮤얼 가스 경 (Sir Samuel Garth, 1661-1719) - 잉글랜드의 물리학자, 시인. 1699년 여섯 편으로 된 장시 을 발표, 약제사들이며 그들과 결탁한 물리학자들을 비웃었다. [본문으로]
  3. 플러드(Robert Fludd, 1574-1637) - 잉글랜드의 의사, 신비주의 철학자. 장미십자회에 헌신하면서 과학적 경향과는 동떨어진 신비주의 경향을 저술에서 두루 설파. 생전에 마법사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19세기 영국 평론가 드퀸시는 플러드의 저술을 프리메이슨의 상징적 이념의 주된 뿌리로 보았다. [본문으로]
  4. 딕비(Sir Kenelm Digby, 1603-1665) - 브리튼의 철학자, 외교관, 저술가. 모반으로 기소되고 ‘화약 음모’에 가담하여 처형된 에버라드 딕비 경의 아들. [본문으로]
  5. 무기 연고(weapon salve) - 상처를 낸 무기에 바르면 호의적인 힘에 의해 상처가 낫는다고 미신처럼 믿었던 연고. 연민 파우더(the Sympathetic Powder)도 비슷하게 쓰였다. [본문으로]
  6. 특징 이론(Theory of Signatures 혹은 Doctrine of Signatures) - 인체 부위를 닮은 식물들이 그 부위에 생긴 질환 치료에 쓰일 수 있다는 개념.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와 디오스쿠리드 시대 이후 약초 채집자들이 공유한 생각. 16세기에 파라셀수스가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유럽의 형이상학은 이 개념을 신학에서 확대했다. “전능자께서는 치료 방법들도 사물에 표시하거나 ‘서명’해 두셨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미신으로 간주한다. [본문으로]
  7. 보일(Robert Boyle, 1627-1691) - 아일랜드의 화학자, 자연철학자. ‘보일의 법칙’. <의심쩍은 화학자 the sceptical chemist>는 현대 화학의 효시가 된 저술. 이 책 덕분에 연금술이 화학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본문으로]</의심쩍은>
  8. 갈레노스(130-200) - 로마의 의사, 철학자. 히포크라테스와 함께 서양 의학의 시조. [본문으로]
  9. 발렌티누스(Basilius Valentinus) - 14-15세기 독일의 연금술사. 그의 저술이 17세기에 널리 퍼졌다. ‘현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한다. [본문으로]
  10. 파라셀수스(1493-1541) - 스위스의 철학자, 자연과학자, 의사, 연금술사. “모든 약물은 작용과 부작용을 동시에 지니며, 부작용은 약물 용량으로 정해진다. [본문으로]
  11. Blue ointment - 수은연고와 광유나 돼지비계 정제 기름으로 만든 피부 치료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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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펜데레츠키&#44; 루덩의 악마 오페라

 


 

  그러나 그건 (마드리갈의 끝이 아주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로, 초저녁 박명이 주변 모든 것을 동화 같은 빛으로 감싼다는 이유 하나로) 여름날 석양이 영원히 지속되고 황금빛 가을이 절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녀는 제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마음 한 구석에서 알았다. 그러나 행복에 넘치는 몇 주일 동안은 이성의 문을 닫고 삶이 파라다이스에서 멈추어 다시는 흐르지 않을 것이라 믿을 수 있었다. 공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사라진 듯했다. 실생활과 몽상이 하나가 됐다. 상상의 세계가 점점 유일하게 진실한 세계처럼 보이게 됐다. 

  그것은 죄 될 것 없는 행복감이라고 느꼈다. 실제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고 오롯이 마음속에만 있는 거니까. 그건 천상의 기쁨 같은 것이고 두려움이나 자책 없이 자신에게 온 마음으로 줄 수 있는 행복이었다. 

 

  그 기쁨에 더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수록 그것이 더욱 강렬해지는 바람에 은밀히 간직하기가 힘들어졌다. 어느 날 고해실에서 자기감정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이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고해사제라는 기미를 내비치지 않고… 어떻든 그녀 생각에는 그랬다. 

  그런 고해가 잇달아 나왔다. 주임신부가 주의 깊게 듣고 간간이 질문을 던지는데, 그 물음으로 보자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며 그녀의 순진한 꾀에 완전히 넘어간 게 분명했다. 필리프가 용기를 내어 가장 내밀한 얘기까지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이제 그녀는 정말 행복했고, 이 고백이 진짜 즐거움을 주었으며 그 즐거움이 계속 반복됐다. 

 

  그러다가 혀를 잘못 굴리게 된 날이 왔다. ‘그이’라고 해야 할 것을 ‘당신’이라고 말한 것. 황급히 말을 거둬들이려 했지만 정신이 아뜩해지는 바람에 그의 질문을 받고 눈물 터뜨리면서 진실을 고백하고야 말았다. 

  마침내! 마침내!! 그랑디에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다음엔 순풍에 돛 단 배였다. 주의 깊게 계산된 언사와 제스처의 문제, 다소 기독교적인 것으로 시작하여 페트라르카 풍[각주:1]에 이르고, 페트라르카 풍에서 지상의 사랑으로 넘어가고, 또 거기서 동물적인 애정에 이르기까지 매끈하게 조절하는 유연함의 문제일 뿐이다. 하강은 상승보다 언제나 더 쉬운데다가 이 경우에는 경사면에 기름칠하느라 궤변이 상당히 많았을 터. 어떤 경우든 처녀가 죄에 빠질 가능성은 전적으로 보장돼 있었다. 

 

페트라르카 풍에서 지상의 사랑으로&#44;

 

  그러고도 몇 달이 지나서야 그럭저럭 ‘승선’하게 됐다. 솔직히 말해, 그건 좀 실망스러웠다. 그가 자문했다. 왜, 과부로 만족할 수 없었던 거지? 

 

  그런데 필리프로서는 평온하고 내면적인 행복감이 정욕이라는 겁나는 현실로 대체됐다. 도덕적 고민으로 시달리고, 힘을 달라 기도하고, 실행하기 벅찬 다짐을 하고 또 하고, 그러다가 막판에 이르러 마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듯한 절박감 때문에 굴복한 것이다. 

  한데 굴복하고 난 이후 상황은 상상하던 것과 영판 달랐다. 알고 보니… 그녀의 대천사는 동물적 격정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였다. 처음에 필리프는 자신이 고난의 길로 나아가는 암양이요 사랑의 자발적 수난자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상상하던 이상이 그녀가 선택한 사람에게는 아주 적다는 점이 곧 드러났다. 본디 그녀가 사랑에 빠진 대상은 언변 뛰어난 설교자요 기치 넘치고 정중한 휴머니스트였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점을 그녀가 알게 됐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추상적 관념이고 사랑하는 것은 현실적인 것. 사람이 사랑할 때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영혼과 모든 신체 섬유질로써 사랑한다. 그런 감정에 필리프는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이제 그녀한테 사랑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한데 정말 아무 것도 없었을까? 들으라는 듯 킬킬대면서 운명이 미리 준비한 올가미를 그녀한테 씌웠다. 임신은 했지만 혼인한 것은 아니기에 그녀가 생리 기능과 사회도덕 사이에서 꼼짝 못하게 됐으며 구제 불능의 수치스러운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상상도 못한 일이 실제가 됐고 불가능한 일이 사실로 다가왔다. 

 

  보름달이 까만 천궁에 걸려 하루 이틀 광채를 발하다가 조금씩 이지러지더니 결국엔 스러지고 말았다. 희망의 마지막 빛줄기처럼. 남은 길은 하나, 사랑하는 이의 품에서 죽는 것. 그게 불가능하다면, 이 끔찍한 상황을 잠시라도 떨치는 것. 

 

  그런 무모함과 자포자기에 초조해진 주임신부가 그녀의 애착을 더 가볍고 덜 비극적인 쪽으로 돌리려고 애썼다. 장난기 어린 고전 작품에서 적절한 문구들을 뽑아 애무하며 들려주었다. 

 

Quantum, quelle latus, quam juvenile femur![각주:2]

 

  사랑을 나누는 중간 중간에 브랑톰[각주:3]의 <용감한 레이디들>에서 부적절한 스토리를 들려주고, 부부관계에 관한 산체스 포마[각주:4]의 글에서 퍼낸 자료를 간간이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필리프의 표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묘지 대리석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얼굴이 꾹 닫혀서 반응이 없고 생기를 잃었다. 그러다가 눈을 다시 떴을 때, 그녀는 마치 고통과 절망밖에 없는 다른 세상에서 그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보고 그가 불안해졌다. 걱정스럽게 묻는 말에, 그녀의 대답은 손을 들어 그의 두툼하고 검은 곱슬머리를 쥐어 제 입과 목과 가슴 쪽으로 끌어당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인들을 위한 특별한 컵으로 (컵 안쪽에는 사랑을 나누는 체위들이 묘사돼 있어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그림이 조금씩 드러났다) 마시는 프랑수와 1세 왕에 관한 이야기 중간에 그녀가 툭 끼어들어 아기를 가졌다고 퉁명스레 밝히고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주임신부가 그녀 가슴에 얹은 손을 축 늘어진 머리로 옮기고는 외설스러운 어조를 순식간에 성직자 어조로 바꾸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저 기독교적인 감내 정신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질 수밖에. 그러고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까맣게 잊고 있었군. 자궁암에 시달리는 드브루 부인을 방문하기로 약속해 놓고선. 그 가엾은 부인한테는 영적 위안이 필요해. 그러고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 그가 아주 바빠져서 라틴어 수업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로 고해실 바깥에서는 필리프가 그와 단둘이 만나지 못했다. 고해실에서 그녀가 고해사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로서 그에게 말하려 했을 때 (가엾은 처녀는 그가 여전히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녀 앞에는 그녀 말을 제지하는 엄격한 성직자가, 빵과 포도주를 성변화 시키고 죄를 사하고 종교적 징벌을 부과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한테 참회하고 신의 은총을 믿으라고 얼마나 그럴싸하게 다그쳤던가! 그녀가 바로 얼마 전 사랑 얘기를 꺼낼라치면 그는 거의 예언자 같은 분노를 보이며 질책했다. 

  제가 좋아 타락에 빠져 뒹굴고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절박하게 묻자 그가 열정을 과장하여 대답했다. 기독교인답게 처신해야 하는 게야,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네게 예비하신 굴욕적 시련을 그저 온순하게 견딜 뿐 아니라 그 고통을 기뻐하고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그녀의 불행에서 그가 책임져야 할 몫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결국, 모든 죄인은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해. 타인에게 잘못을 돌리면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 건 금물이야. 고백실에 오는 까닭은 네가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기 위함이지 다른 사람 양심을 건드리기 위한 게 아니야. 

  그런 식의 훈계를 듣고 필리프가 눈물범벅이 되고 아연실색한 상태에서 쫓기듯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고통을 보면서 그는 동정도 자책도 하지 않았다. 불만스러운 빛만 내보였다. 포위 공격 기간은 마냥 지루했는데, 포획해 봤더니 기쁨도 없고 그 이후의 즐거움도 그저 그랬을 뿐. 한데 이제 그녀는 느닷없고 적절치 못한 다산 능력으로 그의 명예와 존재 자체를 위협했다. 그 동안 험난한 여정을 다 헤쳐 왔는데 사생아라니, 이건 나한테 파멸이야! 

  그는 그녀를 실제로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녀를 대놓고 싫어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쁘지도 않았다. 임신과 불행한 체험 때문에 호되게 매질 당한 개나 기생충에 시달리는 어린애처럼 보였다. 다른 모든 것과 더불어 그녀의 한순간 사라진 매력이 그로 하여금 자기는 그녀에게 더 이상 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또한 그녀가 그에게 해를 끼쳤으며 이제 또 자꾸 무례하게 군다는 생각을 굳히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차분한 양심으로 어떤 경우에서나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 

  모든 것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거부하자.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도 그런 입장을 고수해야 돼.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이냐. 필리프 트렌캉과 내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괴물 같은 생각을 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야! 

 

아아, 심장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지 않는구나.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법. 

 

(<루덩의 악마들>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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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 1304-1374) -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학자, 시인. ‘휴머니즘의 아버지’. 그의 소네트를 르네상스 기간 전 유럽에서 열광하고 모방했으며, 서정시의 모델이 됐다. [본문으로]
  2. 얼마나 푸짐하고 근사한 대퇴부인가, 이 젊은 허벅지는! (라틴어) [본문으로]
  3. 브랑톰 (Pierre Brantome, 1540-1614) - 역사가, 샤를 9세와 앙리 3세의 궁정 대신. 위그노 전쟁 등에 참전. 많은 <비망록>을 남겼다.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들 중 하나. [본문으로]</비망록>
  4. 산체스 (Sanchez, 1550-1610) - 에스파냐 사람, 가장 유명한 예수회 결의론자들 중 하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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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망설임이 적고 식욕은 좋은 농촌 처녀들이며 도시 과부들과 함께 주임신부는 원하는 만큼 자기초월을 얻을 수 있었다. 한데 이제 필리프 트렌캉이 가장 쾌적하고 멋진 종류의 자아확인 기회를 제공했다. 거기엔 정복이 완료됐을 때, 뭔가 특별하고 맛난 종류의 관능적 자기초월이라는 속편이 따르리라는 설렘까지 곁들였다. 정말 즐거운 꿈이야! 

 

  그러나 그 실행 노선에 상당히 골치 아픈 장애물이 버티고 있었다. 필리프의 아버지는 루이 트렌캉이고, 그는 주임신부의 가장 좋은 친구요, 수도사들이며 경찰 책임자며 기타 여러 적대자들과의 투쟁에서 가장 든든하고 단호한 우군이었다. 트렌캉은 그를 신뢰했다. 그냥 신뢰한 게 아니라 딸들이 예전 고해사제를 거부하고 그랑디에한테 고해성사를 받게 할 만큼 전적으로 신뢰했다. 

 

  우리 딸들한테 주임신부께서 자식의 도리와 여성의 정숙함을 일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신부께서는 어떻게 여기시나요, 필리프한테 기욤 루제는 짝으로서 좀 떨어지지 않나요? 그 청년을 프랑수아즈와 혼인시키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필리프가 라틴어를 잊으면 안 되겠지요. 틈틈이 돌봐줄 만한 시간을 내실 수 있겠는지? 

  그런 신뢰를 악용한다는 것은 가장 사악한 범죄일 터. 그런데 바로 그 사악한 성격 자체가 그것을 저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달리 말하자면, 도덕적 관점에서 행위의 불허용성 자체가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 

 

  육체 활동과 감각 수준에서부터 도덕과 지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모든 존재 수준에서 어떤 경향과 의도는 전부 그 반대되는 것을 발생시킨다. 빨간 뭔가를 볼 때 우리의 시각 감응은 녹색 지각을 강화하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 빨간 대상 주변에서 심지어 녹색 후광을, 또 대상을 치운 뒤에도 녹색 잔상을 보게끔 만든다. 우리가 움직이려고 할 때 근육 한 세트가 자극을 받고, 반대되는 근육들이 척추 감응에 의해 자동으로 억제된다. 

  의식이라는 더 높은 수준에서도 같은 원리가 유효하다. 모든 ‘yes’마다 그에 상응하는 ‘no’가 초래된다. “어중간한 신조보다 정직한 의심에 신뢰가 더 큰 법, 내 말을 믿어 봐요.”[각주:1] 그리고 (새뮤얼 버틀러[각주:2]가 오래 전에 지적한 대로, 또 우리 이야기 내내 많은 경우에서 알아차릴 기회가 있게 되듯이) 브래들로[각주:3]와 모든 마르크스주의 교재들보다 정직한 믿음에 의혹이 더 많은 법… 내 말을 믿어 보시라. 

 

  도덕 교육에서 감응은 특히 어려운 문제를 내포한다. 만약 모든 ‘yes’가 그에 상응하는 ‘no’를 자동으로 불러내는 경향이 있다면, 올바른 행위에 반대되는 그릇된 행위를 감응 법칙대로 주입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올바른 행위를 어떻게 심어줄 수 있단 말인가? 

  감응을 매끈하게 우회하는 방법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늘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고집 부리며 ‘엇나가는’ 아이들과 시종일관 ‘반정부적인’ 청년들과 심술궂고 율법에 반하는 어른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심지어 양식 있고 자제심 있는 이들조차 행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에 정반대되는 쪽으로 기울고자 하는 유혹을, 모순처럼 간간이 겪는다

 

  악을 행하려는 이 유혹은, 게다가 아무런 목적과 이득도 없이 그냥 하려는 이 유혹은, 상식과 범절에 대한 ‘사심 없는’ 저항이라 부를 만하겠다. 이런 감응적인 유혹은 대부분 제대로 억제되지만, 결단코 전부 그렇지는 않다. 

  합리적이고 반듯한 사람이 난데없는 욕구에 굴하여 뭔가를 저지른 뒤 경악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런 경우, 그 행위는 그 사람에게 낯설고 본래 모습에 적대적인 어떤 힘에 의해 이뤄진다. 사실상 그 사람은 (기계장치들이 종종 그렇듯이) 순종하는 도구에서 통제를 벗어나 명령자로 바뀌는, 완전히 중립적 심리 메커니즘의 희생양이다. 

 

  필리프는 지극히 아름다운데, “아무리 굳은 맹세도 혈관에 있는 불길에는 검불일 뿐이야.”[각주:4] 그러나 혈관에 불길이 있는 것처럼 뇌에는 감응이 있다. 

  자, 트렌캉은 주임신부의 가장 좋은 친구이다. 한데, 배신은 괴물 같은 짓이라는 생각 자체가 친구를 배신하려는 심술궂은 갈망을 야기했다. 그런 유혹에 맞서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대신 그는 거기에 굴복하기 위한 근거를 찾게 됐다.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그렇게 매혹적인 처녀의 아버지가 남을 그리 쉬이 믿어서는 안 되지. 그건 진짜 어리석은 거야, 아니, 어리석은 것보다 더 나쁜 거야. 그렇다면 마땅한 벌을 받아야겠군. 음, 그래, 라틴어 수업을 해야겠어! 

 

  그건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스토리의 재연이었다.[각주:5] 스스로 유혹자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숙부 풀베르의 역할을 여기서는 검찰관이 떠맡았을 뿐. 

  아, 부족한 것이 딱 하나 있어, 엘로이즈의 스승은 필요한 경우 회초리를 쓸 수 있었지. 그렇긴 해도, 그가 청한다면 얼빠진 트렌캉은 그것조차 허락할 테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과부가 여전히 화요일마다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다른 요일에는 대개 그가 검찰관 저택에 머물렀다. 프랑수아즈는 벌써 시집갔지만 필리프는 여전히 아버지 집에 살며 라틴어 공부에서 뛰어난 진전을 보였다. 

 

지상의 모든 피조물은 

사람도, 짐승도, 바다생물도, 가축도, 화려한 새들도 

다 맹렬한 정염을 갈구해. 

사랑은 모두에게 매한가지. 

 

  알고 보니, 식물도 미묘한 정욕을 느끼더라. 

 

야자수들은 똑같은 충동에서 서로 흔들리고, 

포플러들은 뜻을 맞추어 살랑거리며, 

플라타너스들도 역시 그래, 

그리고 오리나무는 다른 오리나무한테 속삭이누나. 

 

  필리프가 스승을 위해 시에서 더 달콤한 구절과 신화에서 가장 외설적인 일화를 부지런히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주임신부는 보기 드문 절제를 발휘하여 (그것도 과부와 정기적인 만남 덕분에 가능한 것) 여제자의 명예를 훼손할 짓이나 혹은 애정 고백이나 파렴치한 암시로 해석될 수 있는 짓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변함없이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제자를 끌어당겼으며, 자기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현명한 여성이라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말해 주었다. 필리프는 아주 가끔 눈길을 내리깔고 두 뺨을 발갛게 물들일 정도로 응시하기만 했다. 그건 다 시간 낭비 같지만 재미가 없지도 않았다. 다행히 곁에 늘 니농이 있었고, 역시 다행히도 처녀가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스토리의 재연

 

  둘이 한 방에 앉아 있지만 같은 세계에 있지는 않았다.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지만 아직 여인이 된 것도 아닌 필리프는 순수와 성숙함 사이에 위치한 장밋빛 판타지 세상의 거주자였다. 그녀의 거주지는 루덩의 지저분한 여자들과 따분한 자들과 촌스러운 남자들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동트는 사랑과 관능적 체험의 빛으로 찬란한 저만의 이상향에 있었다. 이 천국에는 또 그녀의 신이 있고. 

 

  까만 두 눈, 돌돌 말아 올린 콧수염, 잘 다듬은 흰 손… 그런 것들이 양심의 가책처럼 그녀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올랐다. 어디 그뿐이야, 위트가 풍부한데다 지식은 또 얼마나 심오해! 대천사와 다를 바가 없어서, 대천사가 아름다운 것만큼이나 그는 현명하고, 대천사가 현명한 것만큼이나 그는 친절해. 나를 총명한 사람이라 여기고, 열심히 공부한다고 칭찬하잖아. 무엇보다도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대하면 마음이 설레는걸. 그이도 역시 그럴까? 아, 아니야, 이런 생각 자체가 신을 모독하고 죄를 짓는 거야. 하지만 내 감정을 어떻게 고백하지? 그이한테 말이야. 

 

그녀가 라틴어 문구에 바짝 집중하려고 했다. 

 

Turpe senex miles, turpe senilis amor.[각주:6]

 

  그러나 잠시 뒤 희미하지만 격렬한 열망에 압도됐다. 상상에서 막 시작된 쾌감의 장면들이 마음을 꿰뚫는 눈길이며 털이 많은 흰 손과 갑자기 연결됐다. 책갈피가 눈앞에서 떠다니는 것만 같아 말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지저분한 늙은 병사”라는 말을 흘렸다. 

  그가 자를 들어 그녀 손등을 가볍게 때리면서 “네가 사내애가 아닌 게 다행이야” 하고 말했다. 만약 사내애가 그런 실수를 했다면 훨씬 더 엄한 벌을 받았을 테니까. 그가 허공에서 자를 흔들었다. 훨씬 더 엄한 모습으로. 필리프가 그를 바라보다가 금방 눈길을 돌렸다. 두 뺨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다. 

 

  행복한 혼인이라는 환상에서 이미 벗어나고 평범한 생활에 익숙해진 프랑수아즈가 부부관계라는 전선에서 언니한테 생생한 리포트를 들고 왔다. 필리프가 흥미롭게 들었지만, 저한테는 모든 게 늘 전혀 다를 것이라고 속으로 확신했다. 

  몽상이 계속되면서 갈수록 더 구체적인 형태를 띠었다. 어떤 순간에는 그녀가 살림을 꾸리며 주임신부와 함께 살았다. 또 어떤 순간에는 그가 푸아티에의 주교로 임명되고 주교 관저와 교외에 있는 그녀 집 사이에 지하통로가 설치됐다. 아니면, 그녀가 10만 리브르를 상속받게 되어 그가 교회를 떠나고 둘이 시골 영지와 궁정을 오가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르든 늦든 매번 몽상이 끝나면, 자신은 필리프 트렌캉이고 그는 주임신부라는 사실을 암울하게 깨달아야 했다. 그래, 그이가 설령 나를 사랑한다 해도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고 밝힐 수 없다는 뜻이야. 설령 그렇다고 고백한다 해도 난 행실 방정한 처녀답게 귀를 꼭 막아야 해. 

  그럼에도 당장에는 바느질고리나 책이나 자수틀을 앞에 두고 상상해선 안 될 것을 상상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가 문 두드리는 소리며 그의 발소리, 그의 목소리를 듣는 건 또 얼마나 큰 기쁨이야! 아버지 서재에서 그이와 함께 앉아 오비디우스를 번역하고, 혼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싶어 일부러 실수하는 것은 근사한 고문이요 천상의 고통이야. 

  추기경과 저항적인 프로테스탄트들, 게르마니아 전쟁, 선행적 은총에 대한 예수회의 입장, 그의 승진 전망 같은 것을 얘기하는 그 성량 풍부하고 울림 좋은 목소리를 듣는 것은… 아, 그건 즐거운 시련이요 천상의 연옥이야. 영원히 이렇게 지낼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건 (마드리갈의 끝이 아주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로, 초저녁 박명이 주변 모든 것을 동화 같은 빛으로 감싼다는 이유 하나로) 여름날 석양이 영원히 지속되고 황금빛 가을이 절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녀는 제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마음 한 구석에서 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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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1. "There lives more faith in honest doubt, Believe me, than in half the creeds." - 알프레드 테니슨 경. [본문으로]
  2. Butler Samuel (1835-1902) - 영국의 철학자, 작가, 화가, 신학자. [본문으로]
  3. 브래들로 (Bradlaugh Charles, 1833-1891) - 영국의 사상가, 급진적 무신론자. the National Secular Society 설립. [본문으로]
  4. “The strongest oaths are straw to the fire in the blood." - 셰익스피어 [본문으로]
  5. 엘로이즈 (Heloise, 1101-1164) - 프랑스 수녀, 명성 높은 철학자 아벨라르의 (Abélard, 1079-1142) 제자이자 애인. 두 사람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르네상스 시대 감상적 유럽 레이디들에게 큰 인기를 거두었다. [본문으로]
  6. An old man‘s soldiering is foulness, and foulness an old man’s love. 늙은 병사는 보기 흉해, 늙은이의 사랑도 보기 흉해. - 오비디우스의 <연가>에서. [본문으로]</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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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 true story of Demonic Possession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상황이 무르익어 갔다. 검찰관은 중년 홀아비인데 혼기 맞은 딸 둘을 데리고 있었다. 장녀 필리프는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1623년 겨우내 주임신부가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그 앳된 처녀가 부친의 손님들 가운데서 오가는 걸 지켜보며 그녀를 한 젊은 과부의 어른거리는 이미지와 조목조목 비교하곤 했다. 

 

  포도주 양조업자인 남편이 일찍 죽은 뒤 그 가엾은 과부를 이제 화요일마다 찾아가 위로하는 중이었다. 니농은 일자무식이어서 제 이름 하나 겨우 쓸 줄 알았다. 그러나 위로할 길 없는 상복 아래 풍만한 육체는 신선함과 탄력을 아직 잃지 않았다. 따스함과 순백의 보물이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관능이 축적돼 있는데, 그건 격정적이면서도 정밀하고 거칠면서도 지극히 고분고분하고 잘 훈련된 것이었다. 게다가 천만다행으로, 거기엔 힘들게 무너뜨려야 하는 조빼는 태도도 없고, 거쳐야 할 플라토닉 이상화라든가 페트라르카 풍의 구애라는 피곤한 예선도 없었으니! 이미 세 번째 만났을 때 그가 애송시의 도입부를 과감하게 들려주었다. 

 

얼마나 자주 마음에 그렸던가, 한밤중 은밀한 위안을. 

나이애드(naiad)의 부드러운 몸을 얼마나 뜨겁게 품곤 했던가. 

하지만 이런 환희를, 오호라, 

그대는 아직 선사하지 않았구려. 

 

  니농이 아무런 저항 없이 경청했다. 아주 솔직한 웃음을 날리며 주변을 흘낏 살필 뿐인데, 그 눈길이 결코 모호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방문을 마칠 때 그가 타위로의 시를 한 번 더 인용했다.[각주:1] 

 

아듀, 오, 감미로운 속삭임이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어깨여, 

아듀, 백합처럼 새하얀 가슴이여, 

아듀, 물망초 같은 두 눈이여. 

아듀, 앙증맞은 두 손이여, 

아듀, 친근한 장난들이여, 

영원히 아듀, 소중한 친구여, 

그대와 달콤한 시간 보냈구려. 

하지만 이제 작별 시간에 다시 불러 

한 번이라도 더 사랑을 맛보게 해주구려. 

은보다 더 깨끗한 가슴과 대리석 허벅지 사이에서. 

 

  아듀… 그건 그녀가 주간 고해와 일상적 속죄를 위해 성 베드로 교회에 오게 될 모레까지라는 뜻. (그는 주간 고해성사를 아주 중시했다.) 그때부터 다음 화요일까지 그는 성모축일에 펼칠 강론을 준비했다. 그 설교는 생마르트 노인을 추도해 연설한 이래 그가 행한 가장 성공적인 일이었다. 

 

  어쩜 저렇게 청산유수일까! 주제 선택과 심오한 학식은 또 어떻고! 납득하기 쉽지 않은 신학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솜씨란! 박수갈채와 축하가 쏟아졌다. 하지만 경찰 수뇌가 격노하고 수도사들이 질투 때문에 퍼렇게 질렸다. 

 

그랑디에와 니농의 밀회

 

  주임신부님, 정말 놀라웠어요! 신부님은 둘도 없는 재능이에요! 

  그는 영광의 불꽃 속에서 다음 밀회에 갔으며, 그러면 그녀가 승리자한테 안기는 화관처럼 그를 끌어안고 보상으로 키스와 애무를 퍼부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포옹이라는 천국에서 최고의 대접이었다.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영적 황홀경이며 천상의 거처며 특별한 은혜와 영적 혼인 따위를 실컷 떠들라고 해! 그에겐 니농이 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필리프를 다시 바라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니농 하나로 과연 충분한 거야? 과부들은 물론 남자를 위로할 줄 알아, 화요일 밀회를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지. 그러나 과부들은 결코 처녀가 아니고, 과부들은 너무 많이 알고, 과부들은 뚱뚱해지기 시작했어. 

 

  반면에 필리프는 앳된 처녀의 섬세한 작은 손과 봉긋한 가슴과 감동적인 목으로 사람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런 젊디젊은 장점에다 소녀 같은 수줍음까지 곁들였으니, 이 얼마나 황홀한가 말이냐! 대담하고 거의 무모하게 교태를 부리다가 급작스레 당혹과 놀람으로 바뀌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람 마음을 끄는 동시에 도발적이며 가슴 뛰게 한단 말이냐! 

  필리프는 클레오파트라처럼 굴면서 남자들로 하여금 안토니오 역할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러다가도 누구든 그 역으로 들어설 기미만 보이면, 이집트 여왕은 홀연히 사라지고 놀라서 연민을 간청하는 어린애만 남았다. 그래서 연민을 얻고 나면 즉각 사이렌이 되돌아와서 유혹하는 노래를 부르고 금단의 열매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완전히 타락한 사람이나 완전히 순수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대담함으로 말이다. 

 

  순수와 순결이란 가장 숭고한 주제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얼마나 멋진 결어인가! 교회 설교단에서 때론 우레처럼 때론 가장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그걸 입에 올리면 여신도들이 죄다 눈물 뺄 것이야. 남자들까지도 감동 먹겠지. 이슬 머금은 백합의 순결, 어린 양과 갓난애의 순수에 대한 고찰은 누구한테든 먹혀든다. 그래, 수도사들이 질투하여 또 퍼렇게 질리겠군. 

 

  그러나 진정한 순수와 순결은 오로지 설교와 천국에만 있는 법이야. 모든 백합은 이르든 늦든 썩게 마련이고, 암양은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숫양의 제물이 된 뒤 도살자 손에 넘어가게끔 운명 지워져 있고, 또 지옥에서는 세례 받지 못한 아기들의 작디작은 유해가 깔린 도로 위에서 저주받은 영혼들이 어슬렁거리지. 

  대 타락 시대 이후 절대적 순결이 실제로는 절대적 타락과 같은 거야. 젊은 여성 누구나 잠재적으로는 미래의 방탕한 과부이고, 가장 순수한 것에도 원죄 때문에 잠재적 불순이 이미 절반 넘게 들어 있잖아. 잠재적 불순이 완전히 발휘되도록 돕는 것이며 아직 앳된 꽃봉오리가 무성하고 흐드러진 꽃으로 벌어지는 걸 지켜보는 것, 오오, 이야말로 오관뿐 아니라 지력과 의지에도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관능이라면, 아주 정신적인, 말하자면 극히 추상적인 성격일 게야. 

 

  게다가 필리프는 그냥 젊은 처녀가 아니었다. 반듯한 가정 출신에다 신을 공경하도록 교육받고 모든 면에서 흠이 없었다. 그림물감처럼 예쁘지만 교리문답을 잘 알고, 류트를 연주하지만 교회에 꼬박꼬박 나오고, 우아한 숙녀의 매너를 지니고 있지만 독서를 좋아하고 라틴어를 좀 알기도 했다. 그런 노획물 획득은 사냥꾼의 자부심을 근질거리게 하고, 주변 사람 누구나 영원히 기억에 남을 업적으로 간주하리라. 

 

  좀 뒤늦은 시기에 살던 뷔시 라뷔탱[각주:2]의 증언에 따르면 귀족 세계에서 「여인들한테 거둔 성공이 남자들한테는 전투에서 거둔 혁혁한 전공 못잖은 명성을 안겼다.」 고귀한 미녀를 차지하는 것은 한 지방의 정복만큼이나 영광된 일이었다. 규방과 침대에서 거둔 연전연승으로 명성 떨친 마르시약, 느무르, 슈발리에 그라몽 같은 귀족들은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나 발렌슈타인[각주:3] 같은 위대한 정복자들보다 명성이 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영광된 작업에 당대 유행어로 ‘승선했다.’ 그것도, 세상에서 더 주목할 만한 인물들을 물리치겠다는 목표를 뚜렷이 가지고 필사적으로, 일부러 배에 올랐다. 

 

  섹스는 자아확인이나 자기초월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 즉, 남의 눈을 끄는 ‘승선’과 영웅적인 정복으로써 에고를 강화하고 사회적 페르소나를 굳히기 위해서, 혹은 관능의 희미한 황홀경과 낭만적 열광에서 페르소나를 깡그리 없애고 자아를 초월해 다른 존재와 합치되기 위해서. 후자의 경우는 흔히 완벽한 혼인생활 때 상호 자애심에서 더 잘 일어난다.  

 

  (망설임이 적고 식욕은 좋은 농촌 처녀들이며 도시 과부들과 함께 주임신부는 원하는 만큼 자기초월을 얻을 수 있었다. 한데 이제...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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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4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타위로 (Jacques Tahureau, 1527-1555) - 프랑스의 사상가, 시인. [본문으로]
  2. 라뷔탱 백작 (Bussy Rabutin, 1618-1693) - 프랑스의 장군, 회고록 집필자. 유명한 마담 사비네와 사촌지간. [본문으로]
  3. 발렌슈타인 (1583-1634) - 삼십년전쟁 때 합스부르크 군을 지휘한 오스트리아 장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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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이 첫 번째 공격에 이어 그랑디에가 카르멜회의 주요 수입원을 겨냥해 무례한 언급을 연달아 퍼부었다. 바로 ‘르쿠브렁스의 성모’로 불린, 이적 행하는 성상을 두고 말이다. 

  루덩 시 전체 구역의 사분지 일이 순례자들을 들이기 위한 여관과 하숙집으로 가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순례자들은 이 성상에 건강이나 신랑감, 자식이나 더 좋은 행운을 빌기 위해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제 르쿠브렁스의 성모에 위협적인 경쟁자로 아딜리에 성모가 나타났다. 아딜리에 교회는 루덩에서 불과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소뮈르에 위치했다.

 

  질병 치료나 여성 모자에 패션이 있듯이 가톨릭 성인들한테도 유행이 있다. 웅장한 교회들은 성상이며 성물들에 관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으니, 오랫동안 모셔오던 것들을 새로운 이미지며 성유물로 가차 없이 대체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그러면 예전 것들은 뭔가 더 새롭고 한순간 더 매혹적인 요술사 때문에 대중의 호평에서 밀려나기 마련이다. 

  아딜리에 성모상이 르쿠브렁스 성모상보다 왜 갑자기 훨씬 더 우월한 듯 보이게 됐을까? 이유야 많겠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아딜리에의 성모상을 오라토리오회 수사들이 관리했다는 점. 

 

아딜리에 성모상

 

  그랑디에의 전기를 맨 처음 쓴 오뱅 목사는 「오라토리오회 성직자들이 유능하며 카르멜회 수사들보다 수완이 더 좋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있다」고 했다. 알려진 대로, 오라토리오회 구성원들은 세속의 성직자이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그랑디에가 르쿠브렁스 성모상에 회의적인 냉담을 표했을 것이다. 

 

  자기 카스트에 대한 충성 때문에 그는 세속 사제단의 이익과 영광을 위하고 수도사들의 불신과 파멸을 위해 움직였다. 물론, 그랑디에가 루덩에 오지 않았더라도 르쿠브렁스 성상은 예전 명성을 잃었을 게 분명하지만, 카르멜회 수사들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인과관계가 복잡한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칫 감정만 소모될 수도 있다. 반면에, 여러 결과를 어떤 단일한 원인 때문으로, 또 가능하다면 개인적 원인 때문으로 돌리기란 얼마나 더 쉬우며 얼마나 더 그럴듯한가! 이런 경우 일이 잘 될 때면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 하나를 골라 그에게 공훈을 돌리고 영웅처럼 떠받드는데, 그렇지 못할 때면 어떤 속죄양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상당한 적대자들을 둔 마당에 그랑디에가 자신에게 엄청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적대자를 또 금방 만들었다. 1618년 초 인근 지역 고위 성직자들이 참가한 종교회의에서, 쿠세에서 온 수도원장을 호되게 몰아붙였다. 루덩 거리를 통과하는 장엄한 행진 때 그 고위 성직자보다 제가 앞장서겠다고 무례하게 주장한 것. 

  주임신부의 주장과 태도가 원칙적으로는 잘못된 게 아니었다. 그의 교회에서 주관하는 행진에서 성 십자가 교회의 참사회 위원에겐 쿠세의 대수도원장보다 앞서서 걸을 권리가 있었다. 이 권리는 그 수도원장이 주교라 해도 유효했다. 

  그러나 정중함 같은 미덕도 있고 신중함이라는 덕목도 있는 법. 쿠세의 수도원장은 또 뤼송의 주교이고, 그 뤼송의 주교는 바로… 아르망 드 리슐리외였으니! 

 

  그 시기에 리슐리외는 실총 상태에 있었다. 한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 넓은 마음으로 정중하게 대해야 하지 않았겠는가. 1617년 리슐리외의 후견인이자 이탈리아의 엽기적인 인물 콘치니가 암살됐다. 이 궁정 쿠데타는 뤼네가 꾸미고 젊은 왕이 재가한 것.[각주:1]

  그러나 그 추방이 영원하리라 추정할 만한 근거가 있었던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한 해 지나, 아비뇽에서 짧은 유배 기간 이후,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인 뤼송의 주교가 파리로 부름을 받았다. 1622년에 이르러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 겸 추기경이 됐다

 

  아주 금방 프랑스의 절대 통치자가 된 인물을 그랑디에는 그저 자기주장이라는 쾌감 하나 때문에 괜히 기분 상하게 했다. 이 거친 언행을 나중에 후회할 이유가 생기리라. 하지만 당장에는 제가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서 어린애 같은 만족에 잠겼다. 평민이요 무명의 교구 성직자가 왕비의 총신이요 주교요 귀족의 콧대를 꺾은 거야! 선생을 비웃고도 벌 받지 않고 넘어간 어린 학생처럼 그가 우쭐댔다

  몇 해 뒤 리슐리외도 부르봉가 대공들을 무시하면서 그런 만족감을 맛보았다. 그의 늙은 숙부는 조카가 사보이 대공 앞에서 느긋하게 걸어가는 장면을 보고 질겁했다. “오, 이럴 수가! 오래 살다 보니, 귀족도 아닌 변호사 라포트의 외손자가 샤를 5세의 손자에 앞서서 방으로 걸어가는 걸 다 보는구나!” 이 유치하고 당돌한 행동도 벌을 면했고, 리슐리외도 어린애 같은 우월감을 맛보았다. 

 

  루덩에서 그랑디에의 삶이 이제 궤도에 올랐다. 성직자 책무를 수행하고, 직무 중간에 종종 예쁜 과부들을 조심스레 찾아다니고, 지적인 친구들 저택에서 저녁마다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계속 늘어나는 적대자들과 충돌을 빚었다. 그것은 머리와 가슴에도, 생식선과 부신에도, 사회적 페르소나와 그의 사생활에도 똑같이 만족스럽고 아주 괜찮은 생활이었다

  오싹한 일이나 명백한 불운이 아직은 삶에 나타나지 않았다. 즐거움이 거저 나오고, 아무런 제재도 안 받으며 욕망을 채우고, 아무런 후과 없이도 증오할 수 있다고 상상했다. 

 

  한데 운명은 당연히 대차 청구서를 이미 작성했다. 단지, 조용히 진행했을 뿐. 그는 양심의 가책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조금씩 무감각해지고, 내면의 빛이 계속 어두워가고, 영원의 모습이 열리는 영혼 창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당대 체질의학에 따르면 그랑디에는 쾌활하고 격하기 쉬운 기질을 지녔다. 곧, 그에겐 세상만사가 순탄한 듯했다. 세상만사 오케이라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지상의 일을 잘 주관하신다는 뜻이지! 주임신부는 행복했다.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병(躁病) 단계에 있었다. 

 

  1623년 봄 스케볼라 생마르트가 충분히 길고 영광스러운 삶을 마쳤다. 노인이 마르셰 성당에 화려하게 안장됐다. 반년 뒤 루덩과 샤틀레로, 시농, 푸아티에 지역 고위인사들이 죄다 참석한 추도식에서 위대한 인물을 기려 그랑디에가 연설했다. (발자크의 문체상 혁명적인 서신들 초판이 그 다음해에 나왔으니까 아직 낡지 않은) 그건 ‘열렬한 인문주의자’ 풍으로 행한 길고 장중한 웅변이었다.[각주:2] 꼼꼼하게 정성 들인 문장들이 고전작품들과 성서의 인용으로 반짝거렸다. 여봐란 듯이 넘치는 박식이 매 순간 자기만족적으로 드러났다. 미문은 인위적인 포효로 길게 이어졌다. 

  이 스피치를 청중이 아주 좋아했다. 1623년도 취향에 딱 맞은 것.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졌다. 아벨 생트마르트가 주임신부 웅변에 하도 감동 받아서 라틴어로 시를 지어 내놓았다. 검찰관 트렌캉도 모국어로 쓴 시로 주임신부의 달변을 한껏 추어올렸다. 

 

추도식을 영광스레 거행하기 위해 

이 즐라토우스트가 간택된 데는 근거가 없지 않아. 

고인을 적절하게 칭송하면서 그가 

기적 같은 달변을 쏟았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가엾은 트렌캉! 뮤즈들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진실하지만 일방적이었다. 그는 그들을 사랑했으나, 그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은 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그가 작시에는 서툴렀을지 모르나, 최소한 시를 논할 줄은 알았다. 

 

  1623년부터 검찰관 객실이 루덩의 지성적 삶의 중심이 됐다. 그건 생마르트가 떠났기 때문에 상당히 허약한 삶이었다. 트렌캉 자신이야 책을 많이 읽었지만 친구들과 일가붙이 대다수는 그렇지 못했다. 이전에 생마르트 모임에서 배제됐던 이 사람들이 검찰관 저택은 무상으로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문가에 나타났다 싶으면 학식 깃들고 고상한 대화는 창문 너머로 날아갔다. 수다만 일삼는 여인들이며, 법규와 소송절차 이외에는 아는 게 없는 변호사들이며, 개와 말들이 유일한 관심사인 토호들과, 달리 뭘 하겠는가? 

 

  약제사 아담과 외과의 만누리도 그 객실 단골이었다. 전자는 코가 아주 길고, 후자는 너부데데한 얼굴에 올챙이배. 그들은 소르본 박사답게 아주 점잔 빼면서 안티몬과 사혈의 이점이며 관장 비누와 총상 치료 때 소작 기구의 유용함 등에 관해 장황하게 떠벌리곤 했다. 그러다가 목소리를 낮추고는 후작 각하의 매독이나 왕실 고문변호사 부인의 두 번째 유산, 치안판사 누이의 어린 딸을 고생시키는 위황병 얘기도 (물론 언제나 극비로) 풀어놓았다. 황당하면서도 거들먹대고 근엄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약제사와 외과의는 운명적으로 경멸 대상이었다. 그들은 비아냥거림을 스스로 벌고 조롱의 예봉을 자초했다. 

  비웃음의 대상과 기회를 결코 놓치는 법이 없는 주임신부가 그들에게 그들이 자청한 것을 마음껏 퍼부었다. 아주 금방 그에게 적대자 둘이 더 생겼다.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상황이 무르익어 갔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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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앙리 4세의 왕비인 마리 드 메디치는 아들 루이 13세가 성년이 됐음에도 권력을 놓지 않고 이탈리아에서 데리고 온 콘치니를 앞세워 국정을 주물렀다. 그러나 루이 13세는 콘치니를 암살하고 그의 아내를 반역죄로 참수했으며, 모후를 1617년 3월 3일 블루아 성으로 추방함으로써 통치권을 찾았다. 이 거사를 총신 뤼네 공작이 주도했다. 또 이맘때 마리 메디치의 신임을 얻고 있던 리슐리외는 파리에서 쫓겨나게 됐다. [본문으로]
  2. 장 루이 드 발자크 (Jean-Louis de Balzac, 1597-1654) - 프랑스 서간체 문학의 대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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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 표지 the devils of loudun

 


 

  한데 주임신부가 그런 빚을 지고만 있지는 않았다. 적대자들이 자기를 혐오하는 만큼 그도 그들을 혐오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저주는 사람을 들끓게 하고, 축복은 사람을 온화하게 만든다.”[각주:1] 

  사랑보다 증오와 분노에서 즉각적인 만족을 더 크게 얻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선천적으로 공격적인 그들은 물리적으로 자극된 호르몬에서 나오는 분노를 위하여 가장 추악한 열정에 일부러 탐닉하면서 금방 아드레날린 중독자가 된다. 그들은 하나의 자기주장이 언제나 또 다른 적대적인 자기주장을 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잘 알면서, 자신들의 흉맹함을 부지런히 갈고 닦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주 빨리 걸쭉한 싸움으로 들어선다. 

  싸움이란 그들이 가장 기뻐하는 일, 왜냐하면 싸우면서 피가 끓을 때 본연의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니까. “기분 좋아!” 하면서 당연히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 아드레날린 중독을 의분 표출이라 합리화하고, 결국엔 예언자 요나처럼 그럴 만하니까 분개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거의 루덩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랑디에가 볼품 사납긴 해도 그의 관점에서는 아주 신나는 싸움에 두루 말려들었다. 한 젠틀맨은 주임신부에게 실제로 칼을 빼들었다. 지역 경찰을 대표하는 다른 인물과는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욕설로 난타전을 벌였고, 그건 곧 물리적 폭력 사태로 번졌다. 수효에서 압도된 주임신부와 그의 복사들이 예배당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버텨야 했다. 

  다음날 그랑디에가 교회법정에 호소했고, 경찰 수뇌는 추문을 일으켰다 하여 징계를 받았다. 그건 주임신부의 승리였다. 하지만 대가가 따르는 법. 그를 막연히 꺼림칙하게 여기던 사람이, 영향력 있는 인물이, 이제 그에게 치명적이고 고질적인 적으로 변해 복수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게 됐다.   

 

기독교적 온유함 못지않게 기본적인 조심성 문제로 말하자면, 주임신부는 자신을 둘러싼 적의를 누그러뜨리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회에서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독교 정신을 그리 많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르마냑과 다른 친구들이 하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감정이 개입된 경우에는 진중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오랜 종교적 훈련이 그의 자기애를 제거하거나 심지어 완화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에고에 신학적 ‘알리바이’를 제공했을 뿐이다. 

 

  속이 차지 못한 에고이스트는 제가 원하는 것만 원할 뿐이다. 그런 사람한테 종교 교육을 시키면, 그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요,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의 명분이 진정한 교회의 명분으로 간주되는 것이요, 그 어떤 화합도 근본악을 위무하는 것일 뿐이다. 

  “너를 고소한 사람과 법정에 가는 길에 화해하라.” 예수의 조언이 그랑디에 같은 사람들한테는 바알세불과 협정을 맺으라는 불경한 촉구처럼 보인다. 

  적대자들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주임신부는 자신의 힘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적의를 한층 더 키우려 들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파워는 거의 천재적이었다. 

 

  동화에서는 갖가지 선물을 들고 선한 요정이 아기 요람을 찾아든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선물이 도리어 불행을 안기는 경우가 잦다. 예를 들어 그랑디에한테 선한 요정은 다른 확실한 재능들과 더불어 가장 눈부시면서도 가장 위험한 선물을 주었다. 바로, 달변. 

  뛰어난 설교자며 성공적인 변호사와 정치인은 죄다 비범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 입에서 나온 말은 청자들한테 거의 마법 같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데 이 효력은 필히 비이성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녔다 해도 뛰어난 연설자는 그 말로써 득보다 해를 더 많이 끼친다. 뛰어난 연설자는 풍부한 어휘와 좋은 목소리라는 마법을 동원해 나쁜 주장이 옳은 것이라고 청중을 설득할 수 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어떤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달변 기법에 속하는 재주나 트릭에 의존할 필요가 전혀 없는 법이다. 

 

  본질적으로 근거가 잘못된 신념을 옳은 것이라 주입하기 위해 웅변술 장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인간 본성에 있는 최소한의 신뢰 요소를 우려먹는 죄를 짓는 셈이다. 그들은 재앙적인 입담 재주를 발휘함으로써 일상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빠져 있는 일종의 최면 상태를 더 깊게 만든다. 반면에 진정한 철학과 진정한 종교의 목표와 과제는 그런 최면의 안개와 구름을 걷어내는 데 있다. 

  게다가 지나친 단순화 없이 효과적인 웅변술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화하려면 사실들을 왜곡할 수밖에 없는 법. 심지어 진실을 말하고자 최선을 다할 때조차 노련한 연설자는 그 자체로 이미 거짓말쟁이다. 또 가장 노련한 연설자는, 덧붙일 필요가 거의 없지만, 진실을 말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진실과 거리가 멀어서 동지들에게 공조하고 적대자들을 몰아붙이는 것이니.   

 

  오호라, 그랑디에가 바로 그런 부류의 달변가였구나. 성 베드로 교회 설교단에서 주일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데모스테테스를, 사보나롤라[각주:2]를 열심히 흉내 내고 때로는 라블레까지 모방했다. 왜냐하면 그는 의분 터뜨리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을 조롱하는 데도 능하고 우레 같은 계시를 내뿜는 것 못지않게 빈정거림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자연은 진공 상태를 싫어한다.[각주:3] 우리네 마음도 그렇다. 오늘날 권태라는 골치 아픈 공간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연속극 따위로 채워진다. 이런 면에서 선조들은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다.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더 좋았을지도.) 

  그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교구 성직자의 주간 퍼포먼스에 주로 의존하고 간간이 방문하는 카푸친회 수사들이나 순례하는 예수회 수사들의 강연으로 보충했다. 강론이란 하나의 아트이고, 다른 모든 아트 분야에서 그렇듯이 여기서도 변변치 못한 아티스트들이 좋은 아티스트들보다 훨씬 더 수두룩하다. 

 

  성 베드로 교회 신도들은 그 시장에서 그랑디에 목자라는 최고의 명인을 두고 있음에 자축할 수 있었다. 그는 가장 숭고한 기독교 미스터리에서부터 가장 민감한 풍문과 가장 미묘하고 가장 외설적인 교구 이슈들까지 어떤 주제든 눈부시게 즉흥적으로 소화해 냈다. 제 적대자들을 얼마나 거침없이 몰아쳤으며 고위직 인사들까지 얼마나 겁 없이 비판했던가! 

  만성적 권태에 빠져 있던 대다수가 환호했다. 그들의 박수갈채는 거꾸로 주임신부 웅변의 제물이 된 사람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이 제물들 가운데는 위그노파와 가톨릭교회 간에 노골적인 적의가 멈춘 뒤 왕년의 프로테스탄트 도시에 세워진 여러 교파의 수도사들이 있었다. 그랑디에가 수도사들을 싫어한 주원인은 그 자신이 세속(교구) 성직자이며 제가 속한 카스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충실한 병사가 자기 부대에, 충실한 졸업생이 모교에, 충실한 코뮤니스트나 나치가 자기 당에 충성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A라는 조직에 충성하려면 B, C, D 등 여타 다른 조직을 어느 정도 불신하고 경멸하고 철저히 혐오할 필요가 있는 법. 

  이는 더 큰 상위 조직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 역사를 보면, 이단자와 불신자들에 대한 전반적이고 공식적인 증오에서부터 교단 간의, 학파 간의, 교구 간의, 신학자들 간의 특수한 증오에 이르기까지 증오의 계급구조가 여실히 드러난다. 

  살레의 성 프랑수아가 1612년에 이렇게 썼다. 

  「독실하고 신중한 고위 성직자들이 개입하여 소르본과 예수회 수사들 간에 결속과 상호 이해를 이끌어내면 좋았을 텐데. 만약 프랑스에서 주교들과 소르본 학자들과 수도회들이 철저하게 결속됐다면 십년 이내에 이단이 다 척결됐겠지.」 

  이단이 척결될 수 있었을 근거를 성인이 다른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가지고 설교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단을 전혀 비방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이단에 반대되는 설교를 하는 셈이다.」[각주:4] 

 

  속 깊은 증오로 갈라진 교회는 사랑을 체계적으로 실천할 수 없으며 설교할 수도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명백한 위선일 뿐. 그리하여 결속 대신 끊임없는 불화가 있었고, 사랑 대신 신학자들 간의 완고한 반감과 또 카스트며 학파며 교파의 공격적 애국주의가 있었다. 예수회와 소르본 간의 반목에 이어 얀센파와 또 예수회며 살레시오 동맹 간에 반목이 생겼다. 그 뒤로 정적주의[각주:5]와 ‘사심 없는 사랑’ 지지자들을 둘러싸고 기나긴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프랑스 가톨릭교회 안팎의 불화는 사랑이나 설득이 아니라 권위적인 포고령으로 조정됐다. 이단자들 문제는 용기병[각주:6]의 위그노 박해와 끝에 가서 낭트칙령[각주:7] 폐지로 해결되고, 티격태격하는 성직자들 수습에는 교황의 대칙서들과 파문 위협이 동원됐다. 질서가 복원됐지만, 그건 가장 명예롭지 못한 길에서 전혀 영적이지 못하고 종교와 휴머니티와도 거리가 먼 방법으로 이뤄졌다. 

 

  당파에 대한 충성은 사회적으로는 피해가 막심하지만 개개인에게는 적잖은 보상을, 하다못해 공명심이나 탐욕보다도 여러 모로 더 많은 보상을 안길 수 있다. 뚜쟁이들이며 고리대금업자들은 저들 일에 자부심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당파 투쟁은 거기에 빠지는 사람들이 사욕을 취하면서도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있게 하는 복합적 열정이다

  정당하며 심지어 성스럽다고 정의되는 그룹을 위해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 자신을 훌륭하다 여기고 이웃들을 몹시 싫어할 수 있으며 권력과 돈을 추구하고 공격성과 잔혹함의 쾌감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외려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 자부하기도 한다. 제가 속한 그룹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다 보면 이런 유쾌한 악덕을 행하면서도 영웅처럼 행동한다는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조직이나 당파의 구성원들은 자신을 죄인이나 범죄자가 아니라 이타주의자며 이상주의자로 인식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한데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이타주의란 실상은 훅 불면 꺼질 이기주의일 뿐이며, 많은 경우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이상주의란 실상은 끽해야 당리당략과 파벌적 열성의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탈이 생긴다. 

 

  루덩 지역 수도사들을 비난할 때 그랑디에는 정의로운 열정으로 하나님 사업을 수행한다고 여겼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속 사제단과 그의 좋은 친구들인 예수회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카르멜회와 카푸친회 수사들은 수도원 담장 안에 있으면 충분하잖아. 아니면 인적 드문 마을들에서 미션 활동을 벌이면 되지. 도시 부르주아의 행사와 일에 어찌 감히 코를 들이민단 말인가! 하나님은 부유하고 존중 받는 이들을 세속의 성직자들이 이끌어야 한다고 정하셨어. 필요하다면, 선량한 예수회 수사들 도움을 좀 받아서 말이야. 

 

  새 주임신부가 처음에 취한 조치 하나를 설교단에서 공표했다. 앞으로 모든 신자는 외부 성직자가 아니라 교구 신부한테만 고해해야 합니다. 

  남자들보다 더 자주 고해하러 다니는 여성들이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됐다. 이제 우리 성직자는 단정하고 잘 생긴 젊은 학자인데다 신사 매너까지 지녔어. 카푸친회나 카르멜회 감독 누구라도 그 정도는 못 되잖아! 

 

  거의 하룻밤 사이에 수도사들이 자기네한테 와야 할 참회자들을, 나아가 도시에서 영향력을, 거의 다 잃을 지경이 됐다. 

 

  이 첫 번째 공격에 이어...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1)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흰 까마귀 이야기 (Tolerance)

 

  1. "Damn braces: Bless relaxes." 윌리엄 블레이크(1727-1857)의 책 <천국과 지옥의 혼인>에. [본문으로]</천국과>
  2. Girolamo Savonarola (1452-1498) - 이탈리아 도미니크회 성직자, 수도사, 1494-1498 피렌체 독재자. [본문으로]
  3. “Nature abhors a vacuum.” - 아리스토텔레스. [본문으로]
  4. St. Francis de Sales (1567-1622) - 스위스의 반종교개혁 지도자, 제네바 주교, 방문동정회 설립. 가톨릭 성인, 교부. [본문으로]
  5. quietism - 17세기 후반 에스파냐의 몰리나 등이 주창한 가톨릭 신비주의 경향. 몰리니즘. [본문으로]
  6. dragonades - 위그노 가정마다 머물던 용기병들. 프랑스 정부가 위그노들을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키기 위해 시행. [본문으로]
  7. Edict of Nantes - 1598년 앙리 4세가 낭트에서 공포한 칙령. 위그노들에게 광범위한 종교 자유를 부여하고 완전한 시민권을 허용. 그러나 리슐리외 추기경은 낭트 칙령의 정치적 조항들을 1629년 알레 칙령으로 무효화했고, 1685년 루이 14세가 완전히 철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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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올리버 리드, 악마들

 


 

 

  루덩의 새 주임신부는 제 침대를 실험대로 바꾸려 들기에는 지나치게 정상이고 지나치게 왕성한 식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부샤르처럼 그도 존중받는 부르주아 가정의 자제이고, 부샤르처럼 예수회 기숙학교에서 교육 받고, 부샤르처럼 영리하고 학식 있고 열정적인 휴머니스트이고, 또 부샤르처럼 교회 무대에서 눈부신 출세를 꿈꾸었다. 

  기질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사회와 문화라는 측면에서 이 두 프랑스 사람한테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샤르가 유년기와 학창시절, 또 방학 때 고향집에서 하던 장난 따위에 관해 하는 얘기가 그랑디에한테도 간접적으로 적용된다 하겠다. 

 

  부샤르의 <고백록>에서 드러난 세계는… 좀 지나치다는 점만 빼면 현대 성과학자들이 우리한테 내보이는 세계와 아주 흡사하다. 작자는 아이들이 성적 유희에 얼마나 자주 거침없이 탐닉하는지를 묘사한다. 모든 정황으로 보건대 어른들은 그들 장난질을 그저 수수방관만 한 듯하다. 

  선량한 수도사들 밑에서 학교에 격렬한 놀이가 없는 차에, 사내애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끊임없는 자위와 반공휴일에 벌이는 동성애 행위 이외에 따로 분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물론 활기찬 대화와 유창한 설교, 고해와 기도를 통해 웬만큼 자제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부샤르가 이렇게 적고 있다. 즉, 교회의 4대 축일 중에는 습관적인 성적 유희를 자제하는 편이어서, 어떤 때는 여드레를, 혹은 열흘 내내 참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순결 기간이 아무리 애써도 두 주일을 넘기지는 못했다. 신앙심으로 어느 정도 버티긴 했어도. 

 

  어떤 특정 상황에서건 우리네 실제 행동은 성향이나 이해관계를 가로에 두고 도덕적 이상이나 종교적 최고선을 세로에 두는 사각형의 대각선으로 나타난다. 부샤르의 경우, 또 짐작컨대 그가 쾌감의 동반자라 부르는 다른 학생들 경우에도, 신앙심의 상하 직선이 아주 짧고 베이스에 가까워서 대각선이 베이스와 이루는 각도가 지극히 작았던 듯싶다. 

 

  휴일에 집으로 돌아가면 부샤르의 부모는 젊고 순결한 하녀가 자는 방에 아들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처녀가 깨어 있을 동안에는 순결 그 자체지만 잠자는 동안에는 그녀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녀가 정말 잠들었는지 잠든 척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 학창시절이 끝난 뒤, 부샤르는 소떼를 돌보는 어린 시골 소녀한테 마음이 끌렸다. 동전 몇 푼에 그녀는 젊은 나리의 욕망을 기꺼이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새 하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부샤르의 이복형으로 카쌍의 수도원장인 사람 곁에서 일했는데, 수도원장이 유혹하려고 하자 거기를 떠나 이 가정에 들어왔다. 그리고 곧 각종 섹스 실험에서 부샤르의 모르모트요 공동 작업자가 됐다. <고백록> 2부에 상세히 묘사돼 있다. 

 

  부샤르와 프랑스 왕위 계승자 사이에 넓고 깊은 간격이 있었다는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럼에도 미래의 루이 13세가 양육된 도덕적 분위기는 미천한 학생의 인격이 형성된 상황과 많은 측면에서 비슷하다. 어린 왕자의 주치의인 장 에로아의 <일지>가 보전돼 있다. 이 문건 덕분에 우리는 17세기 아이들 교육을 아주 상세하게 알게 된다. 

  사실 왕세자는 아주 귀한 아이였다. 팔십 년이 넘어서 프랑스 국왕에게 태어난 첫아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둘도 없이 귀중한 아이의 특별한 교육법이 우리에겐 참으로 놀랍다. 온 나라에서 늘 기도해주는 아이를 주변에서 이제 우리가 보는 식으로 대했다면, 평범한 아이들한테는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왕세자가 서로 다른 어머니 서넛한테서 태어난 이복 형제누이들과 함께 자랐다는 측면부터 시작하자. 같은 피를 지닌 형제누이 중 몇몇은 왕세자보다 나이가 더 많고 몇몇은 더 어렸다. 세 살쯤에, 어쩌면 그 이전에, 어린 루이는 사생아가 무엇이며 서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아주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 정보를 주고받는 데 동원된 언어가 늘 어찌나 천박한지 아이가 종종 충격을 먹곤 했다. 아이는 가정교사인 마담 몽글라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Fi donc![각주:1] 정말 구역질나는 여자야!”  

  부왕 앙리 4세는 추잡한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궁정 대신들과 하인들이 궁정 일을 보러 다니면서 그런 노래를 끊임없이 불러댔다. 그들이 그런 외설적인 노래를 입에 담지 않을 때면 어린 왕자의 수행원들이, 남자든 여자든, 아이 아버지의 사생아들에 관해, 아이의 미래 아내인 (이미 약혼한 사이인) 오스트리아 안 공주의 어떤 진가를 짐작하여 아이한테 음란한 어휘로 낄낄대며 농담을 건네곤 했다. 

 

  게다가 왕세자의 성교육은 입말에 그치지 않았다. 대개 밤마다 아이를 여관들이 자기네 침대로 데려갔다. 당시에는 나이트가운이나 파자마를 잘 입지 않았고, 그 침대에서는 여관의 남편들도 밤을 보내곤 했다. 네댓 살쯤 됐을 때 어린 루이는 이른바 ‘인생의 사실들’을 이미 알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귓전으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정밀한 관찰을 통해서. 

  17세기 궁전에는 프라이버시라는 게 전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건축가들이 낭하라는 것을 아직 궁리하지 못했다. 건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면 다른 사람 방의 한 끝을 그저 지나칠 수밖에 없는데, 그 방에서는 언제든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었다. 

 

  궁정 에티켓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미천한 사람들보다 좀 운이 없게도 왕실 인사한테는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왕족의 피를 가졌다면, 그 사람은 중인환시 하에 태어나고 죽었으며 중인환시 하에 용변도 보고 때로는 중인환시 하에 사랑을 나눠야 했다. 에워싸는 건축의 성격상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용변 보고 사랑 나누는 장면을 아이가 싫든 좋든 다 볼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되어 루이 13세는 여인들을 지극히 혐오하고, (플라토닉 성격이었겠으나) 남성들을 아주 선호하고 갖가지 신체 기형과 질병 따위에 숨넘어갈 정도로 질색했다. 마담 몽글라와 궁정 여인들의 난잡한 언행이 첫 번째 특징과, 또 자연적인 반응으로서 두 번째 특징의 원인일 것이다. 세 번째로 말하자면, 생제르맹앙레의 지나치게 노골적인 침실들에서 어린애가 어떤 메스꺼운 장면들과 얼마나 부닥쳤을지, 누가 알겠는가? 

 

  자, 루덩에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가 성장한 세계가 그러했다. 그 세계에서 전통적인 성적 터부는 무지하고 가난에 찌든 다수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고 사회 상층부에서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 세계에서는 공작부인들이 자기네 딸의 유모가 얼굴 붉힐 농담을 예사로 내뱉고 상류층 귀부인들이 외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았다. 지위와 재산을 갖춘 남자는 (너무 결벽하지 않다면) 욕구를 거의 마음대로 채울 수 있었다. 그 세계에서는 또 교양 있고 사려 깊은 사람들조차 종교의 가르침을 순전히 피크윅[각주:2] 식의 경박함을 가지고 받아들였으니, 이론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가 엄청나게 컸다. 믿음의 시대라는 중세 세태에 비하면 좀 덜하긴 했을지라도. 

 

  이런 세계의 소산인 우르뱅 그랑디에가 제 교구에 자리 잡으면서 지상과 천상의 열매를 다 맛보기로 한 것이다. 그가 아주 좋아하는 시인은 롱사르[각주:3]인데, 그가 지은 스탠자를 보면 젊은 주임신부의 관점을 완벽하게 엿볼 수 있다. 

 

신 앞에 고개 조아리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우리는 온유하고 얌전해. 

교회 종소리 들으며 무릎 꺾고 

설교단을 바라보네. 

침대로 날아들어 몸뚱이를 결합하며, 

우리는 욕망에 끓고 죄가 많도다. 

태평하게 웃음 날리며 기꺼이 배우노라, 

의미심장한 사랑을. 

 

  이것은 ‘둥글둥글 무난한 삶’을 기술하는 것이고, 바로 그런 둥글둥글한 삶을 이 스물일곱 한창 젊은 휴머니스트가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성직자의 삶은 둥글둥글 다 누리는 게 아니라 영원히 정해진 한 점이 되어야 한다. 풍향계가 아니라 컴퍼스 다리인 것. 그 한 점을 고수하기 위해 성직자는 특정한 의무를 지니고 특정한 서원을 한다.

 

  그랑디에의 경우 의무를 다 떠맡고 필요한 서원도 했지만, 그걸 지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심적 구속감을 나중에 드러내게 된다. 루덩에 도착하고 십년 지나 오직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쓴, 순결서원에 관한 짧은 글에서. 

  순결서원에 맞서는 주요 근거로 그는 두 가지를 든다. 첫 번째는 이런 삼단논법으로 요약되리라. ‘지키기 불가능한 약속은 구속력이 없다. 젊은 남자한테 금욕은 불가능하다. 고로, 그런 금욕 서약은 구속력이 없다.’ 이것으로 충분치 못하다면, 그에겐 두 번째 근거가 준비돼 있다. 강압에 못 이겨 한 약속은 지킬 의무가 없다는 보편적 공리에 근거한 것. 

 

  「성직자가 금욕을 받아들임은 금욕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성직을 얻기 위함이다. (그의 서약은) 선한 의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수락하지 않으면 성직을 맡을 수 없으니 힘겨운 조건이라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교회가 그에게 부과한 것이다.」 

  그런 시각을 견지하면서 그랑디에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혼인의 자유가 있으며, 일단은 화답하는 여인 누구하고든 둥글둥글 원만한 삶을 꾸릴 권리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새 주임신부가 성적 매력을 풍긴다는 측면이 교구에서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한테는 아주 끔찍한 스캔들로 보였다. 그러나 고상 떠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다른 주민들에겐, 심지어 자기가 정결을 지키는 기독교인이라고 믿는 이들한테도, 그랑디에 같은 사람의 출현과 성향과 평판으로 생긴 상황에서는 뭔가 유쾌하게 흥분되는 면이 있었다. 

  섹스와 종교는 서로 기막히게 결합된다. 이 결합에는 토심스런 구석도 좀 있지만 절묘하고 통렬한 풍미가 있어서 계시라는 미각을 깜짝 놀라게 한다. 무슨 계시냐고? 바로 그게 문제다.

 

  그랑디에가 여신도들한테 인기 끌면서 남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평판이 안 좋았다. 여성 교구민들의 남편과 아버지들은 매너 좋고 혀도 잘 굴리며 똑똑한 이 젊은 멋쟁이를 처음부터 아주 의심쩍게 대했다. 

  새 주임신부가 설령 성자라 해도 그렇지, 성 베드로 교회 같은 부유한 교회가 왜 외지인한테 돌아가야 하는 거야? 아, 우리 지역 성직자들이 뭐가 모자라서? 루덩의 헌금은 루덩 출신자 주머니에 들어가야 하잖아. 

  설상가상으로 그 외지인은 혼자 부임하지도 않았다. 모친과 형제 셋과 누이 하나까지 줄줄이 달고 왔다. 

  형제 중 하나한테는 이미 도시 수석행정관 사무실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어. 성직자인 다른 아우는 성 베드로 교회 주임신부 대리로 임명됐고… 역시 성직에 있는 셋째는 아직 공식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뭔가 교회 직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거든. 이거야말로 심각한 외침()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 

 

그랑디에 신부 집전

 

  하지만 그 불평꾼들조차 그랑디에 신부가 강론을 우레처럼 힘차게 할 수 있고 건전한 교리며 학식까지 충분히 갖춘 유능한 성직자라는 점은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장점들이 외려 그에게 해를 끼쳤다. 

 

  기지 넘치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기에 그랑디에가 처음부터 도시의 가장 귀족적이고 교양 있는 인사들한테서 초대를 받았다. 루덩의 상류사회를 구성하기는 하지만 소위 상류사회 엘리트층에는 들지 못하는, 돈은 많지만 투박한 시골뜨기들과 거들먹거리는 관리들과 집안 좋지만 망나니짓 하는 자들한테 굳게 닫혔던 저택 문들이 외지에서 굴러온 이 시건방진 애송이한테는 즉각 열린 것이다. 

 

  얼마 전 도시와 성채의 지방장관으로 임명된 장 다르마냑과 친교를 맺었을 뿐 아니라 법률가요 정치가, 역사가, 시인으로 유명한, 루덩 최고의 명사 스케볼라 생마르트[각주:4] 노인 저택에도 무상으로 드나들게 됐다. 나름대로 내로라하면서도 거기에 끼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전해 듣고는 한층 더 화를 내고 한을 품게 됐다. 

 

  다르마냑은 주임신부의 일처리 능력과 판단력을 아주 높이 샀고, 그래서 궁정으로 떠날 때마다 관방 업무를 다 그에게 맡겼다. 생마르트에게는 무엇보다도 주임신부가 고전을 잘 알기에 노인의 작품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인문주의자라는 점이 좋았다. 예를 들어, 베르길리우스 전문가로서 노신사의 걸작과 <Paedotrophiae Libri Tres> 같은 작품 말이다. 특히 후자는 아이들 보육과 양육에 관한 연역적 장시인데,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작자 생전에 열 판을 찍었다. 또 시구들이 아주 우아하고 적확해서 롱사르 같은 거장조차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난 우리 시대 그 어떤 시인들보다 이 시의 저자를 더 좋아해. 설령 벰보와 나바제로, 숭고한 프라카스토로[각주:5] 불쾌하게 여긴다 해도 내 생각을 바꾸지 않겠어.” 

 

  아아, 명성이란 얼마나 덧없으며 인간의 자부심이란 또 얼마나 헛된 것인가! 나바제로라는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추기경 벰보라는 이름도 우리한테는 의미가 적다. ‘숭고한 프라카스토로’가 후손들 기억에 남아 있다면 순전히 이런 사실 덕분이다. 즉, 불행한 왕자 시필리스에 관해 깔끔한 라틴어로 의학적 전원시를 쓰면서 매독이라는 창피한 질병에 점잖은 별명을 달아 주었다는 점. 왕자는 지독한 고통을 겪다가 유창목 달인 물을 잔뜩 마시고 나서야 ‘갈리아(프랑스) 병’을 털어냈다. 

  죽은 언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죽어만 간다. 생마르트의 교훈적 장시 세 권은 프라카스토로의 시필리스보다 역사에 남을 기회가 훨씬 더 적었다. 한때 모든 사람한테 읽히고 신성보다 더 신성한 대접을 받았건만, 오늘날엔 그 스케볼라 생마르트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랑디에가 친분을 트던 시기에 노시인은 저무는 영광 속에 아직 머물러 있으며 최고의 원로요 일종의 국정 기념비였다. 그의 만찬에 간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었다. 존경받는 정치가요 인문학의 수반이 은퇴하여 살고 있는 화려한 저택에서 그랑디에는 그 위대한 인물은 물론이고 역시 유명한 아들들이며 손자들과도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거기로는 명성 높은 객들이 드나들었다. (신분을 감춘) 웨일스 왕자, 박애주의자요 혁신적 의사이며 프랑스 저널리즘의 창시자인 테오프라스트 르노도, 나중에 방대한 노작 <Astronomia Philolaica>를 쓰고 변광성 주기를 처음으로 정확하게 결정한 이스마엘 부요 같은 이들. 

  게다가 지역 사회 등불도 합류하곤 했다. 루덩의 수석치안판사 기욤 세리제, 독실하고 학식 있는 검찰관 루이 트렌캉. 그는 아벨 생마르트와 동문수학했으며 문학과 골동품 연구에서 취향이 그 가족과 비슷했다. 

 

  그런 선택된 인사들과 나누는 우의는 참으로 흡족한 것이지만, 아웃사이더들한테서 받아야 하는 적대감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주 총기 있다는 이유로 우둔한 자들한테 불신을 사고, 일처리가 좋다 하여 무능한 자들한테 시기 받고, 넘치는 기지 때문에 둔감한 자들한테 또 훌륭한 매너 때문에 촌뜨기들한테, 또 여인들한테 사랑 받는다 하여 매력 없는 자들한테 경원시되다니… 그의 보편적 우월함에 대한 대접이 뭐 이렇단 말인가!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3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1. 흥, 쳇, 제기랄! (불어) [본문으로]
  2. 디킨스의 장편 <피크윅 보고서>(1836)의 주인공. 단순하고 쾌활하며 막연한 성격의 대명사. [본문으로]</피크윅>
  3. 롱사르 (Pierre de Ronsard, 1524-1585) - 프랑스 시인, 당대에는 ‘시인들의 왕자’라 불렸다. [본문으로]
  4. 생트마르트 (Sainte-Marthe) 가문 - 16-18세기 프랑스 주요 시인들을 줄줄이 배출. 1555년에 죽은 시인 샤를은 프로테스탄트 성향을 의심받아 투옥됐다가 미친 척하여 석방됐고, 그의 조카 스케볼라(1536-1623)는 앙리 4세의 총신으로 라틴어로 시를 지어서 롱사르를 비롯해 동시대인들을 환호케 했다. 그의 장남 아벨과 쌍둥이인 차남들도 시인, 손자 스케볼라 3세는 국왕의 사관. [본문으로]
  5. 벰보 (Pietro Bembo, 1470-1547) -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로마교황 레오 10세의 비서관, 추기경, 학자. 나바제로 (Andrea Navagero, 1483-1529) -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베네치아 귀족 출신. 프라카스토로 (Girolamo Fracastoro, 1478-1553) - 베네치아 의사, 시인. 그의 장시 <시필리스 혹은 갈리아 질병>에서 매독을 가리키는 Syphilis 용어가 나왔다. [본문으로]</시필리스>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새 주임신부가 말을 타고 천천히 다가가면서 보자 하니, 루덩은 구릉 위에 자리 잡은 소도시인데 우뚝 솟은 탑 두 개가 금방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성 베드로 교회의 첨탑, 또 하나는 웅장한 성채 한가운데 있는 중세 시대 아성.

  상징적 측면에서 루덩의 스카이라인은 이미 시대에 뒤졌다. 고딕식 종탑이 제 그림자로 도시 절반을 덮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루덩 주민들은 위그노이기에 이 종탑이 속한 가톨릭교회를 혐오했다.[각주:1]  푸아티에 백작가문이 전성기에 세운 성채는 아직 위풍당당한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그 위세도 이미 막판에 이르렀다. 리슐리외가 곧 권좌에 올라 지방 귀족의 세습 성채뿐 아니라 지역자치 자체를 깡그리 무너뜨릴 테니까. 

  자신이 종파 전쟁의 (삼십년전쟁의) 마지막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젊은 주임신부는 당연히 몰랐다. 그 뒤로 거대한 민중혁명의 서곡이 이어진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성문 곁에 세워진 교수대에서는 시체들이 썩고 있었다. 어떤 곳에는 쌍으로 걸려 있기도 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지저분한 거리들과 별의별 희한한 냄새와 악취가 그를 맞이했다. 아궁이 연기, 거위와 돼지 배설물, 빵 굽는 냄새, 말똥 냄새, 씻지 않은 인간 군상의… 

 

성문 곁 교수대에서는 시체가 썩고 있었다.

 

  소작농이며 수공업자, 날품팔이, 하인들 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1만4천 주민의 하찮고 이름 없는 다수를 차지했다. 한 계층 위로는 점방 주인들, 숙련공들, 부르주아 신분 최하위에 불안정하게 턱걸이한 하급관리들이 있고, 또 그 위로는 천민들 어깨에 걸터앉아 숱한 특전을 누리고 신성한 권리로 지배하는 부유한 상인들과 학식 있는 전문가들, 귀족들이 있었다. 

  한데 이 귀족에도 나름의 계급이 있으니, 맨 밑에는 소지주, 그 위로 부유한 지주들, 더 위로 봉건적 대지주들과 고위 성직자들이 자리 잡았다. 

 

  이런 배경에서 예외적으로 자유로운 지성과 문화의 오아시스가 드문드문 보였다. 이 오아시스들 바깥의 정신적 분위기는 숨 막힐 정도로 촌스럽고 투박했다. 부자들은 오로지 돈과 재산에만 정신 쏟고 권리와 특전에만 미친 듯 달려들었다. 송사를 벌일 여유가 있거나 전문적 법률 자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천에서 삼천 명인데, 루덩에는 법정 변호사가 스물, 사무 변호사가 열여덟, 집행리가 열여덟, 공증인이 여덟쯤 됐다. 

  이문을 쫓아다니다가 남은 시간과 에너지는 가정생활의 반복되는 기쁨과 걱정 같은 일상사에, 이웃에 대한 험담이나 종교 의식, (루덩이 신구 교회 양 진영으로 갈라진 도시인만큼) 신랄하고 지칠 줄 모르는 신학적 논쟁에 녹아들었다. 

 

  주임신부 재직 기간 중 교구민들의 진정한 경건함을 증명할 만한 사건은 전혀 없었다. 최소한 그런 자료는 보전되지 않았다. 단지 예외적인 사람들만이 영적 생활에 몰입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영이요, 그렇기에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공경해야 한다는 점을 직접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긴 해도 루덩에는 꽤 많은 변변치 못한 자들과 더불어 선량하고 반듯한 이들, 경건한 이들, 심지어 독실한 이들까지 다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성인(聖人)은 없었다. 즉, 그 모습 하나가 존재의 영원성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증거요 모든 실체의 거룩한 근간과 온전하게 합일해 있음을 보여주는 이들은…

 

  그런 성스러운 인물이 도시에 나타나려면 육십 년이 더 지나야 했다. 루이즈 트롱셰가 심신의 숱한 체험과 시련을 거친 뒤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루덩 병원에 왔을 때, 그녀는 즉각 강렬하고 신실한 영적 생활의 중심이 됐다. 나이와 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묻고 조언과 도움을 청하러 그녀한테 몰려들었다. 루이즈가 파리에 있는 예전 고해신부에게 편지를 보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난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하나님에 관해 말할 때, 사람들은 아주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지요. 내가 하는 일로 인해 그들이 나를 한층 더 사랑하게 될까 싶어 겁이 납니다.」 

  그녀는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었지만, 도시의 신앙심에 붙들린 몸이 됐다. 그녀가 기도하면 병자들이 치유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다들 성녀 덕분에 회복됐다고 확신했는데, 그녀는 외려 부끄러워하며 고행에 충실했다. ‘내가 정말 이적을 하나라도 행했다면, 난 자신을 저주받았다고 여겼을 겁니다.’ 

 

  몇 해 지나 상부에서 루덩을 떠나라는 지시가 내렸다. 광명이 뚫고 들어올 창문이 주민들에겐 더 이상 없었다. 얼마 지나 종교적 열기가 식고 영적 삶에 대한 관심이 시들었다. 루덩은 평소 상태로 돌아갔다. 두 세대 이전 우르뱅 그랑디에가 말을 타고 들어오던 때의 상태로. 

 

  새 주임신부에 대한 대중의 감정은 애초부터 날카롭게 양분됐다. 신앙심이 더 깊은 여성들 대다수는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이전 주임신부는 늙어서 비슬거리며 볼품없었다. 한데 후임자는 한창 젊은 나이에 키가 훤칠하고 몸매도 잘 빠진데다가 분위기마저 당당하며 심지어 (한 증언에 따르면) 위엄이 서리기까지 했다. 

 

우르뱅 그랑디에 신부

 

  검은 눈이 크고 베레 모자 아래로 검은 곱슬머리가 풍성하게 넘실거렸다. 이마가 넓고, 코는 독수리 같고, 입술은 붉고 통통하고 잘 움직거렸다. 밴 다이크[각주:2] 수염이 턱을 장식하고 윗입술 위에 두툼한 콧수염을 달고 있는데, 그건 포마드를 발라 꼼꼼하게 다듬었기에 돌돌 감아 올린 양 끝이 한 쌍의 요염한 의문부호처럼 코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았다. <파우스트>를 읽은 사람 눈에는 그의 초상화가 좀 더 통통하고 불퉁스럽지 않으며, 단지 아주 조금 덜 지적인 메피스토펠레스가 화려한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매혹적인 외모에다 좋은 매너와 타고난 달변이라는 사회적 덕목을 갖추었다. 듣기 좋은 말을 우아하게 선사할 줄 알았다. 게다가 상대 여인이 볼품없지 않다면, 말하면서 던지는 눈길이 말보다 더 상대를 뜨겁게 만들었다.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가 여성 교구민들한테 보이는 관심이 유별난데, 그건 단순히 목가적인 것 이상이었다. 

 

  그랑디에가 살던 시대는 소위 체면치레를 중시하던 시대의 우중충한 여명기였다. 중세 모든 기간과 근대 초기에 가톨릭교회 공식 규정과 성직자 개개인의 실생활 사이에는 괴리가 엄청나서, 그 양 끝이 연결되지 않고 연결될 수도 없어 보였다. 

  가장 높은 대수도원장부터 가장 낮은 탁발수사에 이르기까지 성직자들 대다수가 방탕에 기울었음을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 작가들 중 얘기하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었다. 

  성직자 계급의 부패는 종교개혁을 야기했고, 그건 또 반종교개혁을 초래했다. 트렌토 공의회[각주:3] 이후 스캔들을 일으키는 교황은 점점 더 흔치 않게 됐고, 마침내 17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그런 품종이 완전히 사라졌다. 귀족 가문의 작은아들이라는 사실이 승진의 유일한 장점이던 주교들도 이제는 행실을 바르게 하려 들었다. 하급 사제단의 도덕성을 이제 교회 권력이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시했고, 그 권력은 예수회나 오라토리오회[각주:4] 같이 종교적 순수성의 맹렬한 감시자들이 내부에서 주시했다. 

 

  신교도들과 중견 영주들과 지역 자치권을 억압하는 대가로 왕들이 가톨릭교회를 중앙권력 강화 도구로 썼던 프랑스에서는 성직자들의 존경받는 태도가 왕실의 큰 관심사였다. 민중은 추잡한 행위로 오점 남긴 성직자들의 교회를 우러르지 않을 터이다. 

 

  한데 “짐이 곧 국가니라” 하는 식의 법이 지배하던 나라에서는 교회를 두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즉, 교회에 대한 불경은 곧 국왕에 대한 불경이다. 피에르 베일이 자신의 기념비적인 <사전>에 덧붙인 무수한 주석들 중 하나에서 이렇게 쓴다.[각주:5]  

 

   「언젠가 어떤 신사가 베네치아 사제단의 끝도 없는 방탕에 대해 늘어놓기에, 종교와 국가의 명예를 모독하는 그런 난잡한 행위를 공화국 원로원이 어찌 보고만 있느냐고 내가 물었다. 

  그가 대답하길, 권력은 공익 차원에서 이 방종을 활용한다고 했다. 또 이 수수께끼를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덧달았다. 원로원은 성직자와 수도사들을 민중이 최대한 경멸하기를 내심 바라고 좋아한다오. 그런 상태라야 그들이 민중을 선동해 권력에 저항하기 어려워지니까. 그가 하는 말로는 또 군주가 예수회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품위를 지키기 때문에, 그런 고로 하층 계급의 존경을 더 받고, 그래서 반정부적인 선동을 일으킬 힘을 더 갖기 때문이라고 했다.」 

 

  17세기 내내 프랑스에서 성직자들의 난잡한 행위에 대한 국가 정책은 베네치아 원로원이 추구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베네치아 원로원은 교회의 과도한 영향력을 경계했기 때문에 성직자들이 돼지처럼 행동하는 걸 보며 좋아하고 존경받는 예수회 수사들을 의심쩍게 보았다. 

  정치적으로 강력하며 단호하게 갈리아주의에 입각한 프랑스 군주제는 로마교황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며 교회를 아주 유용한 신민 지배 메커니즘으로 봤다.[각주:6] 그래서 왕들은 예수회 수사들을 비호하며 세속 사제단의 무절제를 근절하느라 부심했다. 적어도, 그런 현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저자 주 ☞ 기술하는 시기 처음에는...  

「트렌토 법규가 교회에 전혀 작용하지 못했다. 1560년 왕의 자문회의가 열렸는데… 빈의 주교인 샤를 마리약이 밝히길, 교회 규율이 다 사라지고 사제단이 이렇게 추잡하게 행동하며 스캔들이 이렇게 자주 일어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들이 독일인들을 흉내 내 성직자들로 회합 만드는 풍습을 도입했고 개중에 내연녀를 두지 않은 이들에게는 소정의 벌금을 물린다고…」

  「그런 면으로 보자면 트렌토의 신부들은 고위 성직자들의 도덕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교회 재판 기록을 연구한 결과,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사회적 도덕이 점차 커짐에 따라 성직자들 쪽에서도 몰염치한 냉소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밖으로 새지 않고 스캔들을 피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다. 성직자가 내연녀와 함께 산다면 반드시 누이나 질녀로 둔갑시켰다. 1668년 법규에 따르면 미니모회 수도사들은 ‘정욕의 유혹에 빠지거나 절취 행위를 하기 전에 수도사 옷을 벗었다면’ 교회에서 파문되지는 않는다. 

  이 시기 내내 사제단에게 점잖은 처신을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과민할 정도로 강했다. 예를 들어, 1624년 성직자 르네 소피는 어떤 치안판사 아내와 간통 현장에서 적발됐다. 그것도 바로 교회 안에서. 경찰 책임자 르망사가 죄인에게 교수형을 내렸다. 선고가 과하다고 르네가 파리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고등법원은 그 선고를 산 채로 화형에 처하는 것으로 바꾸었다.][각주:7] 

 

  새 주임신부가 교회 조직에서 입신하기 시작한 때는 성직자의 스캔들이 여전히 잦기는 했어도 이미 권력이 극도로 용인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랑디에와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더 젊은 장 자크 부샤르가 17세기 자신의 소년기와 청년기 기록을 후손에게 남겼다.[각주:8] 이 문건은 객관적인 임상 관찰을 담고 양심의 가책과 도덕적 판단 등에서 완전히 자유롭기에 19세기 학자들이 소수 전문가를 위해서만 발행할 수 있었다. 그것도 작자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행을 저질렀다고 확실히 강조하면서! 

  하지만 하벨록 엘리스, 크라프트에빙, 허쉬펠트, 킨제이의 책들을 읽으며 자란 세대에게 부샤르의 기록은 더 이상 분개할 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각주:9] 그럼에도 충격을 주지는 않지만 여전히 경악할 만하다. 루이 13세의 신민이 믿기 어려운 섹스 행태를 갖가지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묘사하는 것을 읽으면 참으로 놀랍다. 마치 오늘날 여대생이 인류학 리포트를 쓰거나 정신과 의사가 질환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르네 데카르트는 부샤르보다 열 살 더 많다. 하지만 이 위대한 철학자가 아파서 울부짖는 ‘오토마톤’들을 가지고, 천박한 명칭으로는 고양이며 개라 불리는 것들을 상대로, 해부 실험을 실행하기 훨씬 이전에 부샤르는 제 모친의 하녀를 데리고 이미 심리적, 화학적, 생리적 실험을 다 해냈다. 

  그가 처음 눈길 돌렸을 때 그 처녀는 신을 공경하며 도덕적으로 결백한 사람이었다. 파블로프만큼이나 인내와 날카로운 관찰력을 발휘하면서 부샤르는 이 처녀가 자기를 완전히 믿게끔 꼬드겨 결국 자연철학에 헌신하도록 재조립했다. 그 결과 그녀는 실험 대상이 되기에 기꺼이 동의하고 연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부샤르의 침대 곁탁자 위에는 해부와 의술에 관한 대형서적들이 대여섯 권 놓여 있었다. 밀회 중간에, 혹은 고도로 실험적인 애무를 행하면서, 플로스와 바텔스의 이 기이한 선구자는 <De Generatione 생성>과 페르넬, 페란두스를 읽고 이론과 실제를 아주 꼼꼼하게 비교했다.[각주:10]

   대다수 동시대인들과 달리 그는 앞선 시대 권위자들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렘니우스와 로데리쿠스 카스트로는[각주:11] 몸엣것의 이상하고 놀라운 특성에 대해 분별 있는 생각을 죄다 기술했지만, 부샤르는 이 확언들이 정말 그런지 직접 확인하기 원했다. 연구열에 감염된 하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일련의 실험을 수행하면서 까마득한 옛날부터 의사들과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해온 것을 다 뒤집었다. 

 

  알고 보니… 몸엣것은 풀을 죽이지 않고, 거울을 흐리게 하지 않고, 포도나무 싹을 시들게 하지 않고, 아스팔트를 녹이지 않고 또 칼날에 지워지지 않는 녹을 남기지도 않더라! 

 

  부샤르가 여자 조수이자 실험동물과 혼인을 피하기 위해 황급히 파리를 떠났을 때 생물학은 아주 전도유망한 연구자 하나를 잃었다. 그는 행운의 여신을 찾아서 로마 교황청으로 향했다. 원하는 건 아주 소박했다. 이교도들의 땅에서, 아니면 브르타뉴에서라도, 연간 육칠천 리브르 수입이 있는 작은 성직자 직급을 하나 얻는 것. (연간 6500리브르는 데카르트가 유산을 현명하게 굴려서 얻는 수입. 그건 물론 호화롭지는 못하지만 철학자가 신사처럼 살기에는 넉넉했다.) 

  가련한 부샤르는 결국 성직록을 받지 못했다. 당대에 <Panglossia>라는 글이나 콥트어와 페루어, 일본어를 포함해 마흔여섯 개 언어로 된 시선집의 우스꽝스러운 작자로 알려졌을 뿐인 그는 마흔이 못 돼 죽었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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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4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3

루덩의 악마들 6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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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1. 위그노 (Huguenot) - 칼뱅 사상에 크게 영향 받은, 16-17세기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바시의 학살,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 사건 등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본문으로]
  2. Van Dyck, Anthony (1599–1641) - 플랑드르의 화가. 앤트워프 출신.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뒤 잉글랜드에서 대표적인 궁정화가가 됐다. 초상화,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본문으로]
  3. 루터의 종교개혁 95개조 반박문으로 실추된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되찾고 새로운 개혁을 이루기 위해 열린 회의. 1545년부터 1563년까지 모두 25회 열렸다. [본문으로]
  4. 1575년 로마에서 필립 네리가 설립한 성직자 모임. 필립 네리(1515-1595)는 반종교개혁 운동의 한 기둥. 음악을 신에게 봉사하는 수단 중 하나로 중히 여겼으며, 많은 음악가들이 그가 설립한 오라토리오회에 참여했다. [본문으로]
  5. Bayle (1647-1706) - 네덜란드 출신 프랑스 계몽주의 선구자. 18세기 사상의 실제적 원전. 저술가, 신학자. <역사와 비판 사전> [본문으로]</역사와>
  6. 갈리아주의 (Gallicanism) - 교황의 권위를 강조하는 교황지상주의에 반대하여, 교황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프랑스의 역사적 움직임. 하지만 프랑스 예수회는 교황지상주의를 적극 옹호. [본문으로]
  7. 트렌토 공의회 이후 프랑스 교계 분위기를 다룬 앙리 리의 <대처 금지 역사> 29장 - 저자 주 [본문으로]</대처>
  8. Bouchard (1606-1641) - 프랑스 작가. 루이 13세 비서관의 아들. 에로 문학과 고백록. [본문으로]
  9. 하벨록 (Havelock Ellis, 1859-1939) - 영국의 의사, 심리학자, 사회평론가, 성과학자. 크라프트에빙 (Krafft-Ebing, 1840-1902) - 정신신경질환 교수. 저서 <성적인 정신병 psychopathia sexualis> (1886) 허시펠트 (Hirschfeld, 1868-1935) - 유대계 독일 의사, 성과학자. [본문으로]</성적인>
  10. 플로스 (Hermann Ploss, 1819-1885) - 독일 인류학자, 민속학자, 부인병학자. 바텔스 (Johann Bartels, 1769-1836) - 독일의, 나중에 러시아의 수학자, 교육가. 페르넬 (Fernel, 1497–1558) - 프랑스 내과의. 신체 기능 연구를 묘사하기 위해 ‘생리학’, ‘병리학’이라는 용어를 도입. 페르넬리우스라는 달 분화구 명칭은 그의 라틴어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 [본문으로]
  11. 렘니우스 (Levinus Lemnius, 1505-1568) - 덴마크 의사, 저술가. 수태와 출산의 비밀 연구. 로데리쿠스 카스트로 (Rodericus a Castro) - 부인 질환 연구서 저자. [본문으로]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1

 

이름난 풍자 작가요 나중에 주교가 된 조셉 홀[각주:1]이 1605년 처음으로 플랑드르[각주:2] 지역을 방문했다. 

「여로에서 우리는 파괴된 교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도처에 남은 거친 잔해들이 신앙과 더불어 동족상쟁 역시 처절했음을 여행자에게 말해준다. 오오, 전쟁의 참혹한 흔적이여! 그러나 교회들은 무너졌다 해도 (경탄스럽게) 도처에서 예수회 칼리지들이 나타난다. 내가 들른 도시마다 이 학교들이 이미 문을 열었거나 세워지는 중이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연 정책이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이 사람들은 저주를 가장 많이 받는 곳에서 (여우처럼) 일을 가장 잘 꾸려 간다. 저희 진영에서 극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모든 이들한테 미움을 받고 우리의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이 독한 잡초들은 쑥쑥 자란다.」   

 

칼리지들은 아주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바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 홀과 그 세대가 잘 알고 있었듯이 예수회원들은 이른바 ‘정책’을 가장 중시했다. 예수회가 학교를 계속 세운 까닭은 적대자며 자유사상가며 프로테스탄트들에 맞서 로마가톨릭교회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예수회원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쳐 교회 이익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계층을 만들고자 했다.[각주:3]

 

이런 현상을 체루티가 아주 잘 표현했다. 「우리가 다리를 곧게 펴 주려고 갓난애 아랫도리를 천으로 동여매듯이, 사람을 평생 건강하고 유복한 상태로 만들려면 유년기부터 의지를 동여매야 한다.」 (이 언급에 줄 미슐레[각주:4]가 극도로 분개했다.) 

교육자들 의도야 정말 단호했지만 그 뜻을 알리고 지도하는 방법이 미흡했다. 학생들 의지를 천으로 동여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최우수 생도들 중 몇몇은 칼리지를 졸업하자 열렬한 자유사상가가 됐고, 장 라바디[각주:5]처럼 프로테스탄트가 된 이들도 있었다. ‘정책’이 관련된 이상 교육 체계는 설립자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다중은 정략적 측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저희 자식들이 젊은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것을 다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중요할 뿐이었다. 이런 요구에 예수회원들이 다른 대다수 교육 공급자들보다 더 잘 부응했다.

 

「예수회 지붕 아래서 보낸 일곱 해 동안 나는 무엇을 눈여겨보았던가? 온건하고 근면하고 절도 있는 생활. 예수회 수사들은 하루 모든 시간을 우리들 교육에, 혹은 그들 서원을 엄격히 실행하는 데 바쳤다. 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나처럼 그들 밑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이 증언하기를 바란다.」  

볼테르가 그렇게 적었다. 이 말은 예수회 교수법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와 동시에, 볼테르의 생애 자체는 학습을 ‘정책’이라는 목표에 맞추려고 한 교육자들의 시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한층 더 확실하게 입증한다.[각주:6]   

 

볼테르가 칼리지에서 공부하던 때, 예수회 학교들은 이미 잘 알려지고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 이전 교육 현장에서는 칼리지의 많은 장점이 정말 혁명적이었다. 대다수 교육자들이 회초리 휘두르는 능력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이던 그 시기에, 예수회원들의 교육 방식은 제법 인도적이었으며 교수진도 신중하게 선별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여기서는 고급 라틴어를 가르치고 광학과 지리와 수학, 극작 분야에서 최신의 성취를 들려주고 (그들의 학기 말 연극 공연은 유명했다), 좋은 예절과 교회에 대한 존중과 (적어도 프랑스에서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는) 국왕 권위에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회 칼리지들이 전형적인 상류 부유층 취향에 맞았다. 즉, 애지중지하는 아이가 구식 교육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다고 마음먹은 어머니들, 그 자신이 학식을 갖추고 있으며 건전한 교리와 키케로 식 달변에 관심이 큰 숙부들, 또 그 자신이 애국심 있는 관리로서 군주제 원칙을 인정하거나 미리 앞을 내다보는 부르주아로서 예수회가 폭넓은 연줄로 제자들한테 좋은 직무나 궁정의 한 자리, 교회 명예직 따위를 찾아주겠지 기대한 아버지들… 바로 그들 입맛에 딱 맞은 것이다. 

 

예를 들어, 루앙 시의 코르네유 부부 같은 이들을 보자. 가장은 왕실 고문변호인이고 아내는 변호사 딸인 마르트 르 프장. 어린 아들 피에르가 특출한 재주를 보이는데, 어떻게 칼리지에 보내지 않을 수 있겠나?[각주:7] 

혹은 렌 시의회 고문인 조아킴 데카르트를 보자. 그는 1604년 총명한 막내아들 르네를 여덟 살밖에 안 됐지만 공부시키느라 라 플레시로 데려간다.[각주:8] 얼마 전 국왕의 승인을 받아 문을 연 예수회 칼리지로. 

 

또 거의 비슷한 시기, 생트 시에 학식 있는 참사회 위원인 그랑디에가 있다. 그에게 조카가 있으니, 비록 데카르트나 코르네유 같이 부유한 귀족은 못 되더라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인 또 다른 법률가의 아들이다. 우르뱅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이제 열네 살이며 지극히 영리하다.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생트 인근에는 보르도의 예수회 칼리지보다 더 좋은 학교가 없었다. 

이 유명한 배움터에는 소년들을 위한 중등 과정과 우아한 예술을 가르치는 칼리지, 신학교, 사제 임명 뒤에도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형제들을 위한 심화 과정이 다 있었다. 조숙하고 영리한 우르뱅 그랑디에가 여기서 십년을 넘게 보냈다. 중등학생에서 신학 대학생으로, 그리고 나이 스물다섯 된 1615년 이후 예수회 수련수사로… 그렇긴 해도 수도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예수회 엄한 규율을 따를 소명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니야, 수도회 안이 아니라 수도원 담장 밖에서 교구 신부로 커리어를 쌓고 싶어. 재주가 뛰어난데다가 막강한 교회 조직의 비호를 받는 사람은 이 직업에서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어떤 고관대작의 종교의식 담당이나 나중에 프랑스 육군원수나 추기경이 될 사람의 영적 카운슬러가 되는 거야. 또 주교 회의나 왕실 공주들 앞에서, 심지어 왕비 면전에서 뛰어난 언변을 과시할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야. 어디 그뿐이랴, 외교 사절이나 고위 행정직, 수입 좋은 명예직, 구미 당기는 불로소득 따위도 가능해. 또 (귀족 출신이 아니기에 확률이 떨어지긴 해도) 운이 좋다면 주교 예모로 머리를 장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생 노년이 화려하게 보장되는 거야. 

 

그의 이력 초기에는 그런 장밋빛 꿈이 다 이뤄질 수 있는 듯싶었다. 신학과 철학을 이태 동안 깊이 연구한 뒤 스물일곱 나이 젊은 그랑디에 신부가 오랜 기간 근면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예수회가 루덩 시에 있는 생피에르 뒤 마르셰 교구라는 중요한 생활 수단을 선사한 것. 같은 후견인들 덕분에 성 십자가 공주 성직자단 교회의 참사회 위원도 됐다. 사다리에 발을 걸쳤으니, 이제 할 일은 올라가는 것만 남았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1

 

  1. 조셉 홀 (Joseph Hall1, 574-1656) - 잉글랜드의 주교, 모럴리스트 문인, 풍자가. 호주가 발견되기 이전 남부 대륙의 환상적인 여행과 거기 풍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다르면서도 같은 세상 mundus alter et idem>(1605)의 저자. 이 책은 여러 모로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전신으로 평가된다. [본문으로]</걸리버></다르면서도>
  2. 플랑드르 - 현재의 벨기에 서부,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서부를 포함하는 지역. [본문으로]
  3. 예수회 - 종교개혁 시기인 1534년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로마가톨릭 수도회. 과격한 전투적 가톨릭 수호 선교기관. 1. 교육에 중점 2. 종교개혁에 대항 3. 세계 선교 등이 주요 목표. [본문으로]
  4. Jules Michelet (1797-1874) - 프랑스의 역사가, 사회평론가. 교회권력 반대자. 역사와 사회, 자연에 관해 아주 주관적인 책을 명료하고 격동적인 언어로 여러 편 썼다. ‘르네상스’ 용어의 창시자. [본문으로]
  5. Jean Labadie (1610-1674) - 프랑스 신학자,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고 경건주의 단체인 라바디파를 만들었다. (경건주의/Pietism - 정통 프로테스탄트에 맞서는 신비주의적 가르침, 보수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특색) [본문으로]
  6. Voltaire (1694-1778) - 프랑스의 작가, 사상가,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자. 18세기 유럽의 전제 정치와 종교적 맹신에 저항하고 진보적 이상을 고취. 비판 정신과 재치, 풍자 같은 프랑스 정서 특유의 자질을 구현한 작품 활동으로 유럽 문명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7. 피에르 코르네유(1606-1684) - 몰리에르,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 [본문으로]
  8.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프랑스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 [본문으로]

 

  퍼블릭 스피킹 길잡이 - 작별 인사  

 

 

이 책의 부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대화와 사색을 통한...’ 

여러 문제를 두고 당신과 주고받은 대화가 사색을 통해 피와 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길어진 면이 있네요.  

부디, 지금까지 제시한 자료를 두 번씩 읽으십시오.

 

내 사랑 로고스, 대화와 사색을 통한 public speaking 길잡이

 

지금까지 <대화와 사색을 통한 Public speaking 길잡이>를 따라 온 당신은 학습 성과를 스스로 평가해볼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더 쉬워졌는지, 발언 공포에서 해방됐는지, 소통에서 인내심이 생겼는지,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가 더 커졌는지…

궁금한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편지를 내세요. chimin@kakao.com 

이 사이트의 '블로그 설명 모듈'에도 연락처가 있어요. 

 

왜 <내 사랑 로고스: 대화와 사색을 통한 public speaking 길잡이>를 썼나? 

제가 보기에, 사람들이 서로 경청하고 자신을 조절하고 소통하는 법을 익힌다면, 필요한 사람들과 그냥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이것도 나쁘지 않지만…) 진정한 친구와 동지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게 될 겁니. 또, 흔히 말하듯이, 선하고 영원한 것을 씨 뿌릴 수 있다면, 우리 살림이 한층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삶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생기지 않습니까?

바로 지금 우리 얘기를 사회의 신망 받는 이가 읽고 있을지도 몰라요. 세상에 선한 흔적을 남기기 원하는 이가 읽을 수도 있지요.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나중에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 길로 들어서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건강한 상식과 교양을 쌓는 것부터! 

그리고 제대로 말하기를 (생각하기를) 익히는 것부터!!

 

우리는 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지냅니다. 그러기에 당신과 소통하는 모든 이들이 당신을 더 잘 이해하고, 당신도 다른 이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애써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의사가 그러더군요. 각종 경색(梗塞)의 40%가 사람들의 올바르지 않은 소통에서 비롯된다고…

우리는 잘못된 소통으로 인해 서로에게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을 유발하기까지 하는 거예요.

한데 사람들은 다 오늘 자기가 누군가를 경색으로 몰고 갔다는 것을 모르거나 잊어요.

그리고 내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기한테 또 그렇게 대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내 말을 사람들이 귀담아듣지 않고 알아듣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말하고 설득하고 입증하는 것이 서툴기만 해서 그럴까?

 

아니요, 당신은 훌륭하게 말하는데, 당신 말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요. 왜? 

당신이 하는 말을 이해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 경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당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 

  

수천 명 청중에게는 자신의 옳음을 설복하고 입증할 수 있으면서도, 단 한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왜냐면 그 사람이 눈 감고 귀 막고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 공연히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 사람은 조용히 내버려둬요. 그 사람의 밴댕이 속과 몰이해를 긍휼히 여기세요.

그런 사람은 당신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계속 이어집니다. 다른 사람들 속에서 동지를 찾으세요. 

살아야 해요. 그러나 허둥대며 살지는 맙시다.

 

만일 인생에서 성공하기 원한다면… 아주 더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법이 있어요.

즉, 나폴레옹이 지적했다시피,

목소리를 다듬고 제대로 말하는 법을 익히는 겁니다.

당신 말이 기억에 남도록 설득력 있고 반듯하고 감성적으로 흥미롭게 말하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든 일대 일 대화든 상관없이 그렇게 말하는 법을 훈련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내 사랑 로고스: 대화와 사색을 통한 Public speaking 길잡이>를 읽고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과제를 수행해 온 당신께 크나큰 존중과 경의를 보냅니다. 

 

저자 소개

  

저자 김성호

목소리, 소통, 스피치, 신체언어, 방송 분야 연구자, 트레이너. 저술가, 번역가, 방송언론인.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졸.

한국외대 대학원 졸 (문학 석사)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대학 문헌학부 박사 과정

 

전 MBC 아나운서,

전 SBS 기자, 러시아 특파원, 뉴스앵커.

 

팟 캐스트 <불탕불탕 말 달리자~> 제작, 운영. (목소리, 소통, 스피치, 신체언어) 

목소리, 소통, 스피치, 아나운싱, 리포팅, 신체언어, 실용심리, 글쓰기 등 분야 온-오프 라인 강좌 운영.

웹 사이트 <나나나 커뮤니티> 운영.  https://mirchimin.tistory.com/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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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리버 리드&#44; 영화 악마들&#44; 켄 러셀 감독&#44;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3)

 

5

 

 

그의 삶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졌다. 30년대 중반 ‘평화서약 연합’의 반전 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이후 나치 치하에서 박해받는 유대인들 인권 수호에도 나섰다.

 

1937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역사가요 과학 저술가, 철학자인 제럴드 허드(Heard)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의 온후한 기후가 시력 향상에 도움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와서, 지역의 지성인들이며 힌두이즘과 불교에 심취한 지식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주로 로스앤젤레스 남부에서 죽을 때까지 살게 됐는데 처음 한동안은 뉴멕시코 주 타우스라는 마을에 머물기도 했다. D. H. 로렌스가 20년대에 거주한 이후 작가와 화가들의 작업지가 된 여기서 헉슬리는 에세이 <수단과 목적>을 썼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해방, 평화, 정의, 형제애’를 꿈꾸기는 해도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뜻을 함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검증한다. 

 

1938년 크리슈나무르티를 알게 되면서 그 가르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허드를 통해 동양의 종교와 철학을 연구하는 베단타학파 회원이 되고 이태 뒤 젊은 영국인 소설가 이셔우드를 이 서클에 소개한다. 세 사람은 명상과 채식주의, 아힘사(불살생) 원칙을 비롯해 철학과 종교에서 브라마난다의 폭넓은 지식에 심취하게 됐다. 

유럽 문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아시아 종교를 발견한 것… 그 얼마 뒤에 쓴 에세이 <만년 철학>에서 헉슬리는 널리 알려진 몇몇 신비주의 가르침을 논한다. 

 

에세이스트요 사회비평가로서 과학과 기술이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 문제를 주로 다루며 내보인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은 독자들한테서 저항감을 야기하기도 했다. 철학적 신비주의와 동양의 가르침, 초심리학 같은 영적 주제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일부 아카데미 서클에서는 그를 현대 사상의 리더요 당대 최고 수준의 지성인으로 여겼다. 말년에 남긴 언급 하나.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인류의 존재 문제를 숙고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들면서 나는 갖가지 물음에 대한 대답이 딱 하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로, 우리 각자가 조금만 더 착해지려 애쓰자. 그러면, 다 된다.

 

 로스앤젤레스 시기 이후 내놓은 다섯 편 장편소설 중 첫 번째인 <숱한 여름을 보낸 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할리우드 백만장자 이야기로, 1939년 픽션 부문에서 영국의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을 받았다. 특유의 위트와 지적 달변이 가득한 이 풍자소설에서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을 거론하는데, 개중 몇몇은 나중에 그의 마지막 장편인 <>에서 주된 주제가 된다.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몰려든 많은 유럽 작가들이 그랬듯이, 헉슬리도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애니타 루스의 소개로 MGM과 접촉하여 이셔우드와 공동 집필 등으로 여러 편을 썼지만 제대로 빛을 본 것은 <오만과 편견> 정도. 할리우드는 헉슬리의 성향이며 추구하는 바와 잘 안 맞았다.

 

50년대 초 내놓은 논픽션 <루덩의 악마들>은 그의 작품 활동 지평에서 상당히 독특하며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역사적 일화에 대한 눈부시게 상세한 심리 탐구. 

    

인간 지각의 확장과 영성에 (그의 용어로는, 자기초월) 관한 관심으로 마지막 십년을 거의 다 보냈다. 

메스칼린이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1953년 전문의의 관리 하에 직접 실험에 나섰다. 주변 세계 지각에 관한 실험 결과물이 바로 유명한 철학적 에세이 <지각의 문>과 속편 <천국과 지옥>. 이는 보편적 행복의 공식을 찾아내려는 몸부림. 

 

20세기 가장 유명한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의 저자가 이젠 다양한 사이키델릭을 실험하면서 지각의 확장 수단을 찾으려 애썼다. 예전에는 환영을 보는 이들과 신비주의자들과 예언자들한테만 허용된 영역으로, 보통 사람들도 지각을 확장함으로써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일까. 

 

<지각의 문>은 60년대 수천 명 급진적 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됐고, 그 저자는 히피와 사이키델릭 운동의 ‘영적 아버지’가 됐으며, 한 록그룹으로 하여금 ‘The Doors’라는 이름으로 전설이 되게 했다. 

 

이런 흐름에서 헉슬리의 계승자들이 나타났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주요 작가인 윌리엄 버로우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작가 켄 키지,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톰 클레이튼 울프, 페루 태생으로 <돈 후안의 가르침>의 작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같은 이들.

 

1955년 아내 마리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 직전에 소설 <천재와 여신들>을 발표. 이듬해 이탈리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의 지각 확장 실험을 도와 오던 로라 아처라와 재혼했다.  

   

66세가 되던 1960년 암 진단을 받은 뒤 마지막 장편 <>을 쓴다. <멋진 신세계>에서 삶의 극단적인 합리화가 물질적 번영과 더불어 사람들의 정신적 황폐를 초래함으로써 무시무시한 미래 형상을 제시한 작가가 이제 <섬>에서는 동양의 철학과 정신에 눈길을 돌리며 정신적 교착에서 벗어날 출구를 모색한다. 

가상의 섬 팔라에서 사람들은 서구 물질문명의 처방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산다.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 엽기적인 줄거리와 잘 엮인 <섬>은 헉슬리가 인류에게 남긴 유언.  

 

1962년 인간 잠재력을 주제로 에살렌 대학에서 행한 강연은 이후 ‘인간 잠재력 회복 운동’의 모태가 됐다.

1963년 11월 22일 후두암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해서 종이쪽에 적은 글귀로 아내한테 뜻을 알렸다. 

‘LSD 100 마이크로그램 피하 주사.’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지각의 문’을 그렇게 장식했다. 아내 로라가 쓴 헉슬리 전기 <이 영원한 순간>을 보면, 그녀는 오전 11시 45분 주사를 놓고 두 시간 뒤 한 번 더 투여했다. 그날 17시 21분 할리우드 집에서 평온하게 영원한 안식처로 떠났다. 

 

그의 죽음에 대한 언론 보도는 그 몇 시간 전에 발생한 케네디 암살과 <나니아 연대기> 작가 C. S. 루이스의 사망 소식에 가려 그의 명성에 비해 크지 못했다. 

이 예사롭지 않게 일치한 죽음이 보스턴칼리지 철학 교수 피터 크리프트에게 영감을 주었고, <천국과 지옥 사이 - 죽음 저편 어딘가에서 존 F. 케네디와 C. S. 루이스와 올더스 헉슬리의 대화>라는 장편소설이 나왔다. 

 

6

 

 

인간과 사회의 발전 가능한 길들을 모색하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대열에 들어선 헉슬리는 마지막 장편 <섬>에서 인류 미래에 대한 회의론을 극복했다. 노년 들어 그는 에세이 제목 <지각의 문> 같은 인생 방향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루덩의 악마들>에 묘사된 것 중 많은 부분은, 헉슬리의 관념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잘못된 ‘지각’을 지닌 후과이다. 즉, 탐욕과 두려움과 편협 때문에 잔느와 수녀들이 그랑디에를 상대로 행한 중상비방, 독단적인 교리에 의거하거나 빙자하여 엑소시스트들이 저지른 폭압, 일신의 안위를 위해 조작된 증거마저 인정하며 사법살인을 저지르는 어용 판사들, 독재를 굳히기 위해 종교재판을 부활하려는 목적으로 루덩 현상을 이용하려 한 리슐리외의 속셈 따위는…

모두 헉슬리가 보기엔 이 비극적 사건의 주된 원인이라기보다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 모든  바탕에는 그들의 잘못된 지각(인식)이 도사리고 있던 것일 뿐. 

 

루덩의 악마들 1634

 

 

가련하고 불행한 그랑디에 신부에 이어 소개되는 장 조셉 수렝 수도사의 스토리는 총체적 인식의 힘이 얼마나 크고 기적 같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즉, 주변과 만물에 대한 지각이 올바른 경우 영혼뿐 아니라 육신마저 치유될 수 있다는 점! 

 

수렝이 영웅적인 의지를 발휘하여 갖은 유혹과 싸우고 엄격한 금욕을 실천하며 고행하는 동안에도, 매 순간 악령에 들린 듯이 악마들을 믿으며 원장수녀를 치유하려 들면서 정신력을 헛되이 소모하는 동안에는, 그런 젊은 예수회 수사가 헉슬리 눈에는 영적으로 완전치 못하고 잠재적으로 아픈 사람으로 보인다. 

수렝이 이십년 가까이 심신증적 마비 상태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것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비정상의 필연적인 귀결로 해석된다.

 

사람을 자연과 떨어진 상태에서 묘사하는 시는 사람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실제로 확고하게 연관된 인간 외적 세계는 무시하고 인간 영혼 안에서만 하나님을 알고자 애쓰는 영성은 거룩한 존재의 충만함을 알 수 없다.」 (본문에서) 

 

하지만 비정상은 결국 바로잡히고, 수렝이 아직은 확신 없는 발길을 낙엽 수북이 쌓인 정원으로 처음 내딛는… 장면은 상징적으로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니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시험과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고,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치유됐다. 혹은, 헉슬리의 용어를 쓰자면, 올바른 지각을 획득했다. 

 

지각은… 사람이 교회의 독단적 교리에 구속된 상태를 훌훌 떨치고 자연과 하나 된다는 생각을 굳히는 순간부터 올바른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게 곧 조물주와 합일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니까.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헉슬리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 동시대인으로서, 헉슬리가 만년에 내놓은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즉, 인간과 신의 올바른 관계는 자연을 거스르거나 정복함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생긴다는 것, 바로 이 점을 마르셀이 우리한테 입증했다. 

이런 생각들은 <명상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마스 트러헌은 조물주가 당신 피조물에 나쁘게 대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거꾸로, 모든 피조물을 통해 조물주를 찬미할 필요가 있으며, 모래알에서 무한한 공간을, 꽃송이에서 영원한 시간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트러헌이 보기에 백합들과 까마귀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 존재한다. 자, 여기 모래가 있고, 모래 알갱이들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것들을 사랑스럽게 응시하라. 그러면 그 안에서 영원성도 무한성도 보게 되리니.」 (본문에서)

 

수렝의 스토리는 마르셀 사상의 몇몇 기초적 명제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즉, 객관적 세계와 우리네 개인적이고 소중한 존재의 세계는 분명히 구분돼야 하며, 가혹한 혼돈 속에 있는 현실 자체가 아니라 주변 현실에 대한 우리네 태도가 중요할 뿐이라는… 

삶이란 신비이고, 삶의 여러 신비함은 늘 직관적으로 납득된다. 우리가 도그마에 묶여 있는 한, 설령 그것이 아무리 무조건적 믿음을 주입하는 것이라 해도 삶은 우리네 의지와 따로 놀면서 제대로 살아 보려는 시도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헉슬리는 종교의 의미와 바른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개개인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버리도록 돕는다면 종교는 응당 깨달음의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깨달음의 길에서 장애가 될 수도 있으니… 공포와 협량, 의분, 기업애국주의, 십자군 식의 증오 같은 감정을 고무하고 정당화하며, 또 어떤 신학적 개념들과 어떤 신성한 단어들만 중언부언할 때, 그렇다.」 (본문에서) 

「선행을 통해 성자와 합일하고 계시에 온유함으로써 성령과 합일하면 성부와도 의식적이고 변모되는 합일이 가능해진다. 이런 합일 상태에서 사물과 현상은 들뜨고 과장된 자아의 프리즘을 통해 감지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달리 말해, 최종 정체성에서 모든 존재의 신성한 근간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된다.」

 

교회 역사가 증명하듯이 수렝은 1665년 행복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 (반면에 천사들의 수녀 잔느는 참회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했다). 이승에서 만물의 질서에 대해 새로운 지각을 얻은 덕분에 그에게 지복이 강림했는지, 우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수렝의 생각이 헉슬리가 언급한 방향으로 실제 발전했다면, 그는 자신이 섬긴 교회와 힘겨운 갈등을 겪었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교회는, 특히 예수회는, 자연을 죄악의 왕국처럼 간주했기에 모든 감각에 재갈 물리기를 요구했으니까.  

 

헉슬리의 인식에서는 그와 반대로 자연과의 유기적 결합이 정신뿐 아니라 신체 건강의 담보이다. (마르셀의 영향이나 불교철학에서 퍼온 논거들과 함께, 만년에 아주 강하게 몰입한) 이런 사상은 그가 2차 대전 직후 정신적 굴곡을 겪고 나서 발표한 모든 글에 다 배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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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당신은 자신의 뇌를 얼마나 알고 있나?

유념해야 할 일상 메타 표현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과의 관계

유머, 금언, 경구 몇 가지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흥미로운 사실 10가지

The Piraha Tribe 피라하 부족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2) 

 

 

악마들&#44; 올리버 리드&#44; 켄 러셀&#44;

 

 

3

 

 

대학 졸업하던 해부터 네 해에 걸쳐 시집을 네 권 냈다. 그 배경에 깔린 비탄이며 신랄함, 냉소주의, 또 거기서 벗어나려는 역설적 품위는 나중에 그가 몰입하게 되는 신비주의며 영적 삶에 대한 전조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청소년기에 겪은 세 가지 사건의 정신적 외상은 (모친이 암으로 사망, 자신의 실명 상태, 작은형의 자살 같은 육체적 고통에 노출된 경험은) 그의 많은 소설에서 종종 인간 정신과 육신의 갈등으로 표출된다. 

 

단편집 <림보>도 발표했지만,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1921년 첫 번째 장편 <크롬 옐로우>. 이건 바로 오톨라인 모렐 부인의 저택과 거기 드나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눈부신 대화와 기지 넘치는 세태 비평과 냉소주의가 결합된 문체로 인해 그는 10년 어간에 가장 인기 있는 문학 활동가 축에 든다는 평판을 얻었다. 

 

20년대는 그에게 가장 생산적인 기간일 뿐 아니라 평생 창작과 사상의 정초가 형성된 시기이기도 했다. 시력 때문에 1차 대전 전선에 나가지 못했지만, 많은 동시대인들처럼 전쟁이 야기한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분위기의 주된 정서는 일정하게 흐르던 시간이 단절된 느낌, 불과 얼마 전까지도 확고하고 영원한 듯 보이던 가치며 토대가 붕괴된 느낌. 전쟁은 경제와 정치, 학문, 문화 등에서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 시대와 지나간 시대 사이에 경계가 뚜렷하게 설정되고, 인간과 문명에 대해 지난 시대에 다듬어진 관념들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됐음을 많은 이들이 분명히 알게 됐다.

 

그 결과, 다른 세계의 장면을 만들고, 철학이며 미학의 측면에서 새로운 현실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들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나온다. 바로 이 때문에 유럽 문화에서 1920년대는 실험 시대가 된 것. 

M. 프루스트J. 조이스의 소설, T. S. 엘리엇과 마야코프스키의 시, 피카소와 K. 말레비치의 그림, 이젠슈테인의 필름 등이 저마다 가장 중요한 존재 특성이라 본 것을 새로운 예술 언어로 이야기했다. 

 

당대 많은 영국인들처럼 헉슬리에게 새로운 역사 시대의 도래는 무엇보다도 산업 발달과 물질적 번영, 정치적 자유를 이룩한 빅토리아 시대의 종말과 연관됐다. 

 

그렇다면 새 시대는 어떤 것이며, 새 시대의 가능성과 전망은?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그의 작품들. 헉슬리는 세태 묘사와 풍자라는 전통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 근간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함께 내보였다. 

그것은 그가 20년대 사상과 관념의 미학적 전투에서 상당히 빨리 제 자리를 찾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의 생각에… 문필은 사회생활의 일부여야 하고, 예술가의 과제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가능한 한 거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는 어떤 정치적이나 미학적 운동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그가 평생 접한 동아리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었다. 예를 들어, 문인 친구들 중에는 앙리 바르뷔스가 세운 <클라르테 그룹>의 멤버들, T. S. 엘리엇과 버지니아 울프 같은 모더니즘의 기둥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니타 루스 등이 있고, 또 런던 인근 블룸스버리 지역에 살던 당대 지성인, 작가, 화가들의 엘리트 그룹에도 들었다. 여기서 예술비평가 클라이브 벨, 역사가요 전기 작가인 스트레이치 리튼, 소설가 에드워드 포스터, 경제학자 케인즈 등과 교류했다. 

 

1928년 출간된 <연애 대위법>은 헉슬리의 가장 복잡한 소설들 중 하나. 전형적 관념 소설인 이 작품으로 헉슬리는 독일식 철학소설과는 또 다르며 토마스 만의 표현을 빌자면 이른바 ‘지성 소설’이라는 장르의 개척자가 됐다. 

 

2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 살면서 친구 같은 선배 D. H. 로렌스와 자주 만났다. 삶에 대한 로렌스의 관점을 아주 높이 샀고, <연애 대위법>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묘사한 램피언의 모델이 로렌스였다. 1930년 로렌스가 죽자 그의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내고 나중에 전기를 쓰기도 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기계문명이 판치는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로렌스가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통찰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면, 헉슬리는 그런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비판을 작품의 주제로 삼으면서 인간의 본능보다는 지성으로 접근했다. 

 

즉,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을 비판하면서도 19세기 전통적 세계관에 대한 맹신으로 퇴행한다거나 안이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섣부른 낙관주의로 전락하지만은 않는 균형감각을 보여 주었다. 

  

4

 

30년대 초 지중해 연안 툴롱 인근으로 거처를 옮겨서 쓰고 1932년에 출간돼 헉슬리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굳혔으며 20세기 최고의 미래 소설이 된 <멋진 신세계>는 그의 다섯 번째 장편이요 첫 번째 디스토피아 소설. H. G. 웰스가 <현대 유토피아>, <사람들은 신들을 좋아해> 같은 유토피아 소설에서 과학적 낙관론을 희망차게 제시함에 대한 패러디… 

당시 널리 인기 끄는 낙관적 유토피아 소설들과 달리 헉슬리는 소름끼치는 미래상을 제시하려 했다. 여기 등장하는 미개인 청년의 원형은 마거릿 미드의 <사아의 성>서 힌트를 얻었다. 

 

과학과 의학과 기술을 현대인들이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그 발전에 의존하다 보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이고자 했다. 

인공 수정으로 동일한 인간을 시험관에서 대량 생산하는 미래 사회를 그림으로써 현대 사회가 암묵적으로 지향하는 관리 사회, 통제국가의 무시무시한 비극적 종말을 예언했는데… 

시험관 아기나 유전자 복제를 비롯해 오늘날 의학과 생명공학의 경이적인 성취를 우리가 목격할 때, 그의 예언이 결코 근거 없는 환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올더스 헉슬리는, 과연 예언자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십년 전 타계한 미국의 미디어 이론가요 문화비평가 닐 포스트먼이 1985년에 내놓은, 우리 시대 미디어 생태 환경에 관해 가장 중요한 텍스트들 중 하나인 <죽는 줄 모르고 즐기는 사람들 Amusing ourselves to death>에서 보게 된다. 

 

죽는 줄 모르고 즐기는 사람들&#44; 닐 포스트먼

 

「우리는 1984에 주목해 왔다. 그 해가 닥쳤지만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고 생각 있는 미국인들은 나직이 흥얼대며 안도했다. 
봐, 자유민주주의의 뿌리가 뽑히지 않았네! 테러 같은 것이 있기는 해도 오웰의 악몽이 찾아들지는 않았어! 

그러나 오웰의 어두운 예언과 더불어 또 다른 예언이, 똑같이 으스스한 전망이, 있음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바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교양인들도 자칫 간과하기 쉬운데, 헉슬리와 오웰의 어두운 미래 전망은 같은 게 아니었다. 오웰은 우리가 외부 폭압에 억눌릴 것이라 경고한다. 그러나 헉슬리가 예견하기에는… 독재자 때문에 사람들이 자율과 성숙과 역사를 박탈당하지 않는다. 그가 내다본 것처럼… 사람들은 외려 통제받기 좋아하고 테크놀로지를 떠받들며, 그 결과 사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오웰과 헉슬리의 예언을 포스트먼이 조목조목 비교하여 결론을 낸다.

 

「오웰은 서적을 금지할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서적을 금할 까닭이 없게 될 것을 우려했다. 왜? 왜냐하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테니. 

오웰은 우리한테서 정보를 박탈할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우리가 아예 무감각하게 허투루 대할 만큼 정보가 차고 넘칠 것을 우려했다. 

오웰은 (독재자가) 진실을 우리한테 숨길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무의미한 정보의 바다에 진실이 파묻힐 것을 우려했다. 

오웰은 우리 문화가 선택의 자유를 빼앗을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우리 문화가 허접한 필름과 난잡한 파티, 관능적 유희 따위로 채워져 지질해질 것을 우려했다.  

<멋진 신세계>에서 지적하듯이, 시민적 자유를 옹호하는 이들과 합리주의자들은 늘 긴장하여 독재와 폭정에 맞서면서도... “인간에게 재미와 오락에 거의 죽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속성이 있다는 점은 감안하지 못했다.” 

헉슬리가 또 말하길, 사람들이 <1984>에서는 가해지는 고통에 의해 통제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는 제공되는 즐거움에 지배된다. 
간단히 말해… 오웰은 우리가 싫어하는 것이 우리를 멸망시킬까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우리가 탐닉하는 것이 우리를 멸망시킬까 우려했다.」   

 

닐 포스트먼은 티브이가 자잘한 즐거움인 연예오락을 주지만 교육이나 주요 이슈에 관해 의미 있는 토론은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가 미국 사회의 미래라는 토론의 틀을 잡기 위해 오웰과 헉슬리의 소설을 동원한 까닭은... 현대 사회가 헉슬리의 끔찍한 예언대로 얼마나 충실하게 좇아가고 있는지에 사람들 눈길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티브이는 1906년 이래 사람들이 생각 없이 사는 데 크게 이바지해 왔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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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소통, 어떻게? (1)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1   

 

 

1952년 <루덩의 악마들>이 출간되자 헉슬리의 팬들이 상당히 놀랐다. 왜냐하면, 그는 <크롬 옐로우>, <조커의 댄스>, <연애 대위법> 같은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다니엘 데포(Defoe)와 스몰레트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영국 문학의 세태 묘사 소설이라는 거대한 전통에서 적법한 계승자로 각인됐으며 유럽에서 작가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혔는데… 이제 내놓은 것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방대한 논픽션이니 말이다.  

노년을 앞두고 작가의 소명을 잊은 것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예리한 풍자와 공정한 웃음이 <루덩의 악마들>에는 별로 많지 않다는 점. 거꾸로 여기엔… 섬뜩한 종교적 광기, 억압된 성적 욕구, 난잡한 집단 히스테리, 무지와 맹신, 떠들썩한 엑소시즘, 마녀 사냥, 정치 권력의 집요한 음모, 고문과 사법 살인과 화형 따위가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과 계기는... 17세기 중엽 프랑스 소도시 루덩의 한 수녀원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불가사의한 사건. 

 

이 책을 두고 주요 언론의 반응은 이러했다. 

 

“헉슬리는 17세기 마녀 사냥 전성기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사건들 중 하나를 기교와 박식과 공포를 가지고 재구성했다. <루덩의 악마들>에는 매력과 박식과 직관과 지적 활기가 차고 넘친다.” - 타임 

 

행위의 모티브 분석과 무의식적인 원인들 설명, 왜곡된 종교적 감정의 폭로, 악마 숭배, 집단 광기, 성적 억압 등에 관한 이 이야기에는 그의 글쓰기에 애초부터 담겨 있는 광채가 모조리 녹아 있다.” - 스펙테이터 

 

“이 책은 헉슬리 최고 작품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 가디언 

 

“여태껏 나온 영성 관련 서적들 중 가장 흥미로운 책일지도 모르겠다. 알지도 못하는 성직자를 산 채로 화형에 처하는 데 한 몫을 한 수녀들과 17세기 수녀원의 괴이쩍고 외설한 실제 이야기에서… 헉슬리는 신비주의와 무의식에 관한 정보를 깊고 폭넓게 술술 전달한다.” - 워싱턴 포스트  

 

 

2

 

 

올더스 헉슬리는 조선반도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불붙던 해 런던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써리 주 고달밍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를 셋째 아들로 본 집안은 그즈음 영국 사회에서 새로이 떠오르는 ‘지적 귀족’. 부계로도 모계로도 저명한 과학자와 작가, 화가들이 있었다. 

 

동물학자인 조부 토마스 헉슬리는 다윈의 동료요 진화론 옹호자로서 영국 교양 계급에 비상한 영향을 끼치며 과학 대중화의 선구자로 명성을 떨쳤다. 셋째 손자를 보고 이듬해에 타계한 그는 그 삼십여 년 전 창조론 옹호자들과 벌인 논쟁에서 멋진 승리를 거뒀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인간이기보다는 차라리 두 원숭이의 자손이 되는 편이 더 낫겠소!” 

그 뒤로 그에겐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부친 레너드는 교사, 저술가, 저널 편집인, 모친 줄리아는 교양 높은 여성으로서 기숙학교를 설립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외증조부 토마스 아놀드는 영국 교육체계 확립에 크기 기여한 교육가요 <현대사 강의> 같은 저술을 내놓은 역사가, 영국 국교회의 ‘광교회’ 운동을 주도한 교회 활동가이기도 했다. 

또 빅토리아 시대에 두드러진 문학비평가요 문화학자, 시인, 에세이스트인 매튜 아놀드가 헉슬리의 종조부. 

빅토리아 시대 후반 소설가들 중 1인자인 험프리 워드 부인이 헉슬리의 큰 이모이다. 

 

과학과 문학을 결합하는 이 대물림은 성장기 올더스에게 거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의 원천이 됐다. (마지막 에세이 <문학과 과학>에서 두 영역 간의 이해를 호소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유년기에 기대와 촉망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림에 재주 있고, 자연과학에 관심 크며, 시를 지었다.

부친 서재에서 자기형성이 시작됐고, 그의 첫 선생은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 못 갔다. 의학을 공부하려고 이튼스쿨에 들어가던 해인 열네 살 때 어머니를 암으로 여의었다. 그 이태 뒤 점상각막염에 걸려 18개월 동안 사실상 맹인으로 살았으며, 가문의 전통인 자연과학자나 의사가 되려던 꿈을 접어야 했다. 

 

(일곱 살 많은 큰형 줄리안은 나중에 우생학자로서 20세기 중반 진화론적 종합 이론에서 선도적 인물이 되고,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다. 또 이복아우 앤드루는 1963년 생리의학 부문에서 노벨상을 받는다.) 

 

 

올더스 헉슬리&#44;지각의 문.
"알려진 것들이 있고 미지의 것들이 있는데, 그 사이에 지각의 문이 있다."

 

 

특수 안경을 착용하고 겨우 보이게 된 한쪽 눈으로 책을 읽고 루이 브라유의 점자도 익혔다. 시력 문제에도 불구하고, 1차 대전이 발발하기 한 해 전, 옥스퍼드대학 베일리얼 칼리지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 

손상된 시력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이 시기에 가히 초인적이었다. (1942년에 쓴 에세이 <The Art of Seeing>에서 베이츠의 시력 강화법을 열렬히 옹호하는데, 그건 다 직접 경험에서 나온 것.) 치명적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 주변에서는 그를, 특히 지력과 창의력 면에서, 다들 천재로 간주했다. 

 

1916년 22세에 대학을 마친 뒤 부친에게 더 이상 신세지지 않으려고 몇 해 동안 몇몇 가지 일을 했다. 런던 국방부에서 근무하고, 이튼스쿨에서 한 해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에릭 블레어라는 학생은 나중에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떨친다.) 

1차 대전 중 많은 시간을 보낸, 오톨라인 모렐 부인의 가싱턴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부인의 친구가 됐다. 이 저택에 D. H. 로렌스, 버트런드 러셀, T. S. 엘리엇 등이 모여 담소 나누고 글을 쓰기도 했다. 미술 평론가 클라이브 벨, 화가 마크 거틀러 등 블룸스버리 멤버들 뿐 아니라 벨기에 망명인 마리 니스도 이 농장에서 만났다. 1919년 그의 아내가 됐다. 

몇몇 매거진과 저널에서 편집과 건축, 음악, 연극, 회화, 서적 비평을 담당했다. 첼시 독서클럽 사서로 일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다 오래 못 갔다. 20년대 초 문필과 문학이 그의 소명이 됐으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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