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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창의적인 마인드 활용 방법 익히기 

 

마인드가 과거로 미래로 잡아끌면서 우리를 착각과 망상에 빠뜨린다는 얘기가 지금까지 여러 번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인드도 구체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유용합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마인드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즉, 마인드를 우리 <내면의 고요>와 결합하고 <참된 나>와 동일시할 때! 

 

알다시피, <참된 나>와 하나가 되면서 동시에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두 과정은 양립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생각이 (일절) 없는 상태와 사유 과정 양쪽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있어요. (소위 말하는 ‘멍 때리기’가 그래서 필요해요.) 

어떤 과제를 해결할 때, 이런 사고 형태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왜냐구요?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생각하는 것을 내면의 지혜와 <존재>의 이성으로써 검증하고 수정하게 되니까요. 

 

우리네 마인드는 아주 쉽게 속아 넘어가고, 논리는 우리를 실패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존재>의 이성은 우리를 속이는 법이 없어. 
하지만 만약 어떤 논리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내면의 지혜만으로는 충분치 못할 수 있다. 이때는 우리네 평범한 마인드와 <존재>의 이성이 공조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실습 46

 

현실적으로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은 과제를 생각하세요. 

혹은, 어떤 의문점에 대해 찾고 싶은 답이라도 좋아요, 그걸 생각하세요.  

이 과제나 의문점을 마음속에서 요약하세요. 

 

다음에 주의를 자기 내면으로 돌리고 <내면의 몸체>와 연결하세요

이제 우리는 평정 상태로 들어서면서, 갖가지 잡념이 사라질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의식의 작동이 멈춘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1~2분 그렇게 몰입하면 충분해요. 

다음에 평소의 사고하는 방식으로 돌아오세요. 

이제 생각이 더 밝고 선명하고 창의적이 된다는 점을 알아차릴 거예요

 

과제에 대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억해 두세요. 적어 두면 더 좋습니다. 

다음에 다시 <참된 나>와 결합한 상태에서 내면 깊숙이 몇 분 동안 침잠했다가, 다시 보통 생각으로 돌아오세요. 이때 여러 생각이 이리저리 헤매는 게 아니라 과제를 숙고하는 데 집중된다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일반적인 생각 모드에서 내면의 평정으로 몇 번 오가다 보면, 사유 과정에 새로운 특성이 생기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이 상태에서 우리는 마인드로만 (머리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 존재 전체로 생각하게 됩니다. 마인드와 내면의 지혜와 몸과 에너지가 다 사유 과정에 포함되어 작동하지요

이렇게 사유한 결과는 보통 생각 모드 때보다 훨씬 더 유용할 겁니다. 

 

이렇게 작업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죄다 적어 두세요. 

그 가운데 해결책을 몇 가지 적으세요. 

거기서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나중에 고를 수 있을 거예요.  

 

일반적인 생각 모드에서 내면의 평정으로 오가는 새로운 사유 과정

 

현재 순간을 믿고 받아들이고 내면의 지혜를 따름으로써, 우리는 <에고>가 극적인 사건들을 더 이상 일으키지 않는 생활 방식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우리 삶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우리네 <에고>인데…

이 에고는 일상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보기를 꺼려하고, 과거의 모든 문제며 미래에 겁내는 것을 죄다 이 일상 상황에 붙들어 맵니다. 그 결과, 현실적인 것이든 상상의 것이든 두려움이나 재앙이나 불행 따위가 들어섬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조리 가로막습니다

 

반면에 에고가 아니라 <참된 나>와 결합하면…

극적인 사건들이란 없으며 실제 삶만 있음을 알게 돼요. 실제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이며, 있는 그대로를 우리가 받아들이면서 바꾸고 싶은 것은 바꾸라고 요구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에고>는 우리 삶의 여건을 부정적인 것 아니면 긍정적인 것으로 나누고 바꿉니다. 

한데, 생활 여건이란 사실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에요. 

그건 그냥 있는 그대로의 것일 뿐인데요. 

동의하기 어렵다구요? 현재 순간에 들어선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예요. 

어디 그뿐이겠어요. 현재 순간에 들어서면, 좋고 나쁘다고 하는 것을 전부 자신의 지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재앙과 불행 뒤에서도 빛을 볼 수 있어요. 

어떤 재앙들을 겪으면서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늘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요.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을 비롯해 바깥세상의 것은 다 환상적이며 덧없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 안에만 있다. 
이 내면의 행복 상태에 의거하여 산다면, 그 어떤 재앙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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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계

  마인드에서 벗어나기: 

 <참된 나>를 얻는 길  

 


생각의 흐름 멈추기 - <지금> 순간에 깊이 머물기

 

여러 생각을 떨치고 나면 본연의 자신과 결합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차립니다.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는 의식 상태인) 자각으로 보통 때보다 훨씬 더 깊게 들어설 거예요. 

이때의 느낌을 에크하르트 톨레는 현존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존재> 안에 깊이 들어가 있어요. 

현재 순간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삶의 여정에 완전하고 충실하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잔잔하면서도 정말 기뻐하는 상태가 꼭 따라붙습니다. 진짜 살아 있다고 느끼는 바람에, 다른 생각이며 감정이며 체험 등이 죄다 썩 대수롭지 않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상태란… 현실 도피가 아니라, 거꾸로 현실을 더 깊고 객관적으로 자각하여 납득하는 것입니다. 에고의 상태가 아니라, 에고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상의 물질세계에서 살고 행동하는 법을 서서히 익히면서도 평온하고 조화로운 <존재>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이 때문에 우리네 활동이 주눅 드는 건 결코 아니며, 되레 이전보다 힘을 훨씬 덜 들이고도 훨씬 더 큰 효과를 얻게 될 거예요. 

지금 순간과 하나 되기

비결은 단순합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의 힘이 돕는 것이죠. 

마인드와 분리되어 잡념의 흐름을 멈춰 세우고 <지금> 순간과 하나가 된 덕분에 자기 안에서 <존재>를 찾은 사람에게는 우주의 힘이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생각의 흐름을 멈추어서 우리가 더 우매해지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총기를 띠고 나아가 현명해지기까지 합니다. 무의미한 생각의 흐름 대신 알짜 지식을 갖추게 되니까 말이지요. 

 

잡다한 생각들의 끊임없는 흐름은 무익한 마인드 상태요,
내면의 고요는 마인드가 유일하게 거두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존재>란… 마르지 않는 힘의 원천입니다. 마인드와 이것이 낳은 생각의 줄기가 우리와 <존재> 사이에 장벽을 만드는데 이것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우리는 <존재>에 담겨 있는 힘을 전부 마음껏 쓸 수 있습니다

 

자신이나 자기 생각에 심각하게 대하는 태도가 때로는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데 방해가 됩니다. 그런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은 바로 <에고>요 <거짓된 나>입니다. 바로 이 에고가 자기 자신이며 (생각을 포함하여) 자기가 생산하는 것을 죄다 아주 심각하게 여기는 거예요

반면에 <참된 나>의 관점에서는 우리의 생각이 중요해 보일 때가 더러 있긴 해도 보기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잠깐이라도 마인드의 속박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세상의 본질과 진정 융합됨을 느낄 수 있으며, 이때 생각이며 문제며 걱정 따위가 다 의미를 잃고 중요하지 않게 돼요. 그리고 이 덕분에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러워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여러 문제를 대체로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에 더 심각하게 대할수록 해결은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에요. 그렇다고 경솔하게 대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단지,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맞추라는… 평범한 일들과 일상의 걱정근심을 본래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들은 삶의 본질이 결코 아니에요. 인생의 으뜸 요소가 아니에요

 

가장 급한 것은… <존재>와 하나 되는 것, 또 이 합일을 얻어 <존재>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잡다한 생각에 빠져서는 이 점을 이해하기 힘들어요.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중요한 것을 부차적인 것으로, 대수롭지 않은 것을 대단한 것인 양 착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생각의 흐름을 멈추면,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네 마인드 대부분을 차지하는 잡생각의 내용이 공허한 수다에 불과하여 아무 데도 쓸모없으며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린 이미 확인했습니다. 이런 점을 확실히 깨달았다면, 자기 생각을 그저 귀하게만 여겨 마냥 매달리는 일은 더 이상 없겠지요.  

 

  실습 11  

 

나중에 마인드에서 또 생각이 줄줄 이어지는 것을 알게 되면, 이렇게 중얼거리십시오. 

“이 생각들에는 별 의미가 없어. 중요하지 않아. 진지하거나 심각한 게 아니야.”

그러고 나서 그 생각들을 떨쳐버리세요. 

 

마인드가 무의미한 수다를 떨고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이 생각들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반복하여 자신에게 말하세요.  

 

마인드의 무익한 생각 흐름 차단하기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나면... 내면이 고요하고 평온해지면서 매혹적이고 조화로운 순간을 접하게 돼요. 거기엔 오직 기쁨만 있을 뿐이요, 아픔이나 고통 따위는 전혀 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진짜 자신과 진짜 삶에 파고들었다는 뜻입니다. 

 

이젠, 그런 상태를 간간이 누리기만 할 게 아니라, 그 상태에서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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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계

  마인드에서 벗어나기: 

 <참된 나>를 얻는 길  

 

내면의 고요는 <참된 나>의 자연스러운 속성

 

제멋대로 흘러나오는 갖가지 생각을 훨씬 더 쉽게 멈추려면,

내면의 고요가…

우리의 진정한 본질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 <존재>에서 나왔으며 그것과 관계는 우리가 감지하지 못할 때조차 끊어지는 법이 없는데, 이 <존재>의 속성이 바로 내면의 고요입니다. 

 

쉴 새 없이 주절거리는 마인드는…

우리의 참 본질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의 본모습이 아니에요. <거짓된 나>가 튀어나오는 것이에요.

이 <거짓된 나>, <에고>는 ‘내가 바로 너의 참 모습’이라고 우리를 꼬드기기 위해 그렇게 끝없이 지껄여대는 건데…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바로 <존재> 자체인 것을! 내면의 고요가 당신 자신이다. 
조화와 사랑이 바로 당신 자신이다. 무한한 평온이 당신의 본질이다. 

 

본래 모습인 이 평온에… 진정 성스러운 이 평온에 누구나 다 이를 수 있습니다. 만약 마인드와 분리돼 있다면, 즉, ‘이 마인드는 내가 아님’을 충분히 인식한다면 말이죠! 

 

내면의 고요는 공허가 절대 아닙니다.

거기엔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게 하나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거기엔 생명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고요나 평정을 두려워하는데,

왜냐면 이 개념에서 죽음이나 부존재를 연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겁낼 필요가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이 내면의 고요보다 더 생기 넘치는 것은 없으니까요. 사실, 이건 모든 삶과 모든 생명의 근원인 <존재>의 고요가 아니겠어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내면의 고요는 텅 빈 게 아니라 가득 차 있습니다. 

생각으로 가득한 게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는 의식 상태인) 자각으로 충만해요.

이건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자각의 영역이며, 바로 이 영역에서 여러 지식이 말없이 생각 없이 그냥 순수한 이해의 형태로 나올 수 있습니다

마인드가 갖가지 생각에서 (잡념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최고 진리’의 근원에 (즉, <존재>에), 혹은 순수 의식에 다가서게 됩니다.  

 

이런 점을 확실히 알아두는 게 중요합니다.

즉, 깊은 내적 고요와 평정의 상태에서 사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 

‘잡생각이 없어지는’ 무념 상태에 들어서고 내면의 고요에 침잠한다 해서,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정신 줄을 놓는 게 전혀 아니에요. 의식이 활기를 덜 띠게 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더 활발해져서 더 명료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합니다.

<존재> 자체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차원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이나 주변 세상 어디서든 고요를 들을 수 있어요.

심지어 어떤 소음에서도 고요를 분명히 들을 수 있어요. 이건 놀랍지도 않은 것이…

사실, 세상은 <존재> 안에서 하나이고 우리도 다 그 안에서 하나이며, 만물이 다 <존재>의 속성을 물려받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깊은 고요와 그윽한 평정이니까 말이지요! 

 

내면의 고요와 평정, 나무 울창한 숲

 

이것이 세상 만물의 처음 상태입니다. 

그런 만큼 우리는 그 무엇에서든 고요를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스승은 아무래도 자연이겠지요. 

 

   실습 8  

 

숲이든 공원이든 나무들 무성한 자연 어딘가에서,

마음에 드는 (혹은, 처음 눈길 가는) 나무 하나를 택한 뒤 발길 멈추고 잠시 응시하십시오. 

이 나무가 그냥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영혼과 의식을 갖추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나무의 의식에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그 의식이 무엇으로 가득한지 헤아려 보세요.

자신의 감각을 작동해서, 나무가 느끼는 것을 느껴 보세요

 

처음에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깊은 평온과 고요. 

나무는 평온과 고요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요는 뭔가로 가득 찼어요. 이 고요에는 조화가 있어요, 조용한 기쁨이 있어요.  지금 여기 있다는 기쁨, 존재한다는 기쁨이 있어요

나무는 계속 살고 자라면서 조화와 평온과 기쁨의 상태에 있습니다. 

 

나무를 응시하고 교감하면서 나도 그 평온 상태에 깊이 잠긴다고 상상하십시오. 

나무가 우리한테 본보기를 보이는 것 같지 않나요? 

우린 그걸 따르기만 하면 돼요.

지금은 나무가 우리의 스승입니다.

 

꽃이나 하다못해 풀잎 같은 식물에서도 배울 수 있어요. 

동물들한테서도 배울 수 있어요. 

그들의 내면 상태를 흉내 내고 닮고자 하면서 말이지요. 

 

자갈과 암석, 바다, 바람, 구름 같이 무생물이라 부르는 (실제로 자연은 다 살아 있는 것이지만!) 자연에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겉으론 불안해 보일지 몰라도, 알고 보면 모든 자연에는 깊은 평온이 가득합니다. 바람이 아무리 윙윙거려도, 천둥이 아무리 요란해도, 바다가 아무리 요동치더라도…

그들 내면에는 자연의 평온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평온을 감지하면서 그 고요한 상태로 들어설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참된 나>와 만남일 거예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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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깨달음이란?

(2) 마음의 포로에서 벗어나려면?

(1) 당신 마음은 당신이 아니야!

(9) <에고>가 완전함을 추구하는 방식

루덩의 악마들 8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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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44; the doors of perception

 


 

  초기 단계에서 수렝의 치유는 암흑으로부터 ‘행복하고 건강한 의식’으로 이동하는 데 있지 않았다. 이 건강한 의식은 인간 마인드가 절대자의 마인드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정말 누구인지 문득 인식할 때 다가온다. 한데 그는 그저 하나의 병적 상태에서 다른 병적 상태로 옮겨갔을 뿐이며, 그 상태에서 ‘특별한 은혜’는 이전에 있던 특별한 슬픔처럼 평범해진 것이다.  

 

  이런 점은 언급해야겠다. 즉, 병고에 가장 시달린 시기에도 수렝은 기쁨의 찰나를 여러 번 경험했으며, 그럴 때마다 저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께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이라고 짧게나마 확신했다는 점. 

  기쁨의 번쩍임이 이제 더 늘어나고, 그런 확신이 순간적인 것에서 지속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영적 체험이 잇따르고, 모든 계시가 환하여 기운을 주고, 모든 느낌이 더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합당하게 섬기려면, 영적 환희와 알 수 있는 은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 현상에 매달리는 건 금물이에요. 믿음이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야지요. 믿음 하나만이 우리를 순결한 상태에서 하느님께 들어 올립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 영혼을 텅 빈 상태로 만드는데, 바로 이 빈 자리를 하나님이 채워 주시니까요.」 

 

  이십여 년 전 조언을 청한 한 수녀에게 수렝이 그렇게 적어 보냈다. 자비를 베풀어 처음 치료에 나선 바스티드 수사가 수렝에게 한 말도 그런 맥락이었다. 

  영적 체험이란, 그게 아무리 고양된 것이든 위안을 주는 것이든 깨달음이 아니요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조차 못 되지요. 

  이런 말을 바스티드가 혼자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기독교계의 공인된 신비주의자들이 있고,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 말씀도 인용했다. 

 

  한동안 수렝은 바스티드의 조언을 따르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의 특별한 은혜가 그에게 끊임없이 줄기차게 내렸다. 그리고 그 특별한 은혜를 거부하자 신의 기적은 무미건조함과 황량함으로 바뀌었다. 신께서 다시 돌아섰으며, 그를 예전의 절망 끝에 남겨둔 것만 같았다. 바스티드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성 요한이 남긴 언급에도 불구하고, 수렝이 다시 자신의 환영들과 자신의 화법으로, 자신의 황홀경과 신령 감응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바스티드와 수렝 간에 논란이 벌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두 논쟁자와 그들의 상급자인 앙기노 신부가 천사들의 수녀 잔느에게 부탁하게 됐다. 

  특별한 은혜에 대해 당신 수호천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봐 주시려오? 

  수호천사가 처음엔 바스티드의 관점에 호의를 보였다. 수렝이 이의를 제기했고, 잔느 수녀와 예수회 수사 세 사람 간에 많은 서신이 오간 끝에 천사는 양측이 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정성을 다하는 만큼 양쪽 다 옳다고 공표했다. 수렝도 앙기노도 만족하게 됐다. 

  하지만 바스티드가 제 입장을 고수하면서, 더 나아가 잔느 수녀가 이제는 보포르라는 천상의 카운터파트와 소통을 그만둘 때가 됐다고 말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관계를 반대한 사람은 바스티드만이 아니었다. 

 

  1659년 수렝이 원장수녀에게 알리기를, 어떤 저명한 성직자께서 불평하신다고 했다. 「마치 당신이 당신 천사의 조언을 팔아먹는 상점을 열었으며, 사람들이 혼인이나 송사 같은 일을 앞두고 궁금할 때마다 안내소처럼 당신을 찾아간다고 말이오.」 그런 일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바스티드 수사 말씀대로 천사와 관계를 아주 끊으라는 건 아니고 영적 자문만 구해야 한다. 

 

  세월이 흘렀다. 수렝이 많이 좋아져서 병자들을 직접 찾아보고 고해를 듣고 설교하고 글을 쓰고 신자들에게 구두와 서면으로 가르침을 베풀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의 행동은 여전히 뭔가 좀 특이했고, 그래서 상급자들은 그가 주고받는 편지들을 검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혹여 정통 교리에 어긋나거나 최소한 곤경에 빠뜨릴 만치 황당한 언사가 나오지는 않을까 두려워한 것. 그러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면서 <영적 교리 문답>을 구술했던 인물은 이제 아주 신중해져서 부주의한 행동과 거리가 멀었다. 

 

  1663년 <실험 과학>을 썼고, 이 책에서 자신의 귀신들림과 이후에 체험한 시련을 기술했다. 당시는 루이 14세의 재앙적인 국정 운영이 이미 출범한 때였다. 그러나 수렝은 ‘현세의 공적 업무와 원대한 도모’ 따위에 흥미가 없었다. 그에겐 성체 성사가 있고, 읽고 되새길 복음서가 있고,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실 어떤 면에서 그것들은 충분하다 못해 그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늙어가고 기력이 점차 쇠했으며 「사랑은 쇠약함과는 썩 잘 어울리지 않으니까. 또 왜냐하면 사랑은 그 활동의 압력을 견디는 튼튼한 그릇을 요하니까.」 

 

  두어 해 거의 조병 상태에서 보낸 안녕 기간이 지나갔다. 주기적으로 쉽게 찾아들던 특별한 은혜가 이젠 과거지사가 됐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더 좋은 뭔가가 있었다. 잔느 수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하나님께서 근자에 그분 사랑을 조금 알게 해 주셨다오. 하지만 영혼의 깊이와 활동은 얼마나 다른지! 왜냐하면, 요컨대 영혼의 깊이는 끝이 없어서 거기에 은혜라는 초자연적인 보물로 꽉 차는데, 그 영혼이 움직임에서는 아주 빈약하니 말이외다. 

  정말 그래요, 영혼은 깊숙한 곳에서 하나님을 정말 확실하고 섬세하고 풍부하게 느끼며, 이때 크나큰 위안을 주는 사랑과 경이로운 심장 확장도 수반되는데, 문제는 이런 것 무엇 하나 다른 이들한테 전달할 수가 없다는 것. 이런 상태에 있는 이들은 자칫 외부에 이런 인상을 줄 수도 있어요. 곧 (종교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재능이 다 결여되고 완전히 하찮은 존재로 작아졌다는…  

  영혼이 활동하여 바깥으로 세차게 분출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다는 건 참으로 비통한 일이외다. 그게 심해지면 압박이 생기는데, 그 고통이란 상상을 초월하지요. 영혼 깊은 곳에서는 마치 수분이 축적되는 듯하며, 이 많은 수분이 빠져나갈 출구가 없는 까닭에 견딜 수 없는 무게로 영혼을 짓누르면서 영혼의 힘을 소진한다오.」 

 

  지독히 역설적으로 보자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에 영원의 요소가 담겨 있고, 바로 이 모순이 파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것은 축복받은 고통이요, 경건하게 바라는 죽음이거늘. 

 

  황홀경을 체험하며 환영들 속에서 수렝은 분명 그림 같은 풍경을 거치지만 화려하게 빛나는 막다른 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었다. 이제 ‘특별한 은혜’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총체적 인식(지각)에 자유로이 근접할 수 있기에 그는 참된 각성과 광명을 감득할 준비가 됐다

  이제 드디어 그는 바스티드가 촉구한 대로 ‘선한 믿음’ 안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그는 세상과 제 삶의 정해진 사실들 앞에서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벌거벗은 상태가 됐다. 즉, 제 삶을 텅 비웠으니 신께서 채울 수 있게 하려는 것이요, 가난한 사람이 됐으니 신께서 최고 부자로 만드실 수 있게 됐다

 

 죽기 이태 전에 이렇게 썼다. 

  「듣자하니, 진주조개를 채취하는 잠수부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닥에서 수면으로 뻗어 물 위에서 코르크나무에 묶여 떠 있는 파이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파이프를 통해 바다 바닥에 머물면서 숨 쉰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훤히 설명해주는 알레고리다. 

  영혼에도 숨 쉬는 파이프가 있어 땅에서 하늘로 뻗어 있고, 제노바의 성 캐서린 말씀대로 채널이 있어 하나님 가슴으로 바로 이어진다. 이 파이프를 통해 영혼이 지혜와 사랑을 호흡하며 유지되는 것이다. 

  영혼은 지상이라는 바닥에서 진주를 찾으려 헤매면서 다른 영혼들과 소통하고 신의 뜻을 설파하고 하나님 사업을 수행한다. 이때 늘 파이프가 있어서, 영생과 평안을 안기기 위해 하늘로 이어지고… 이런 상태에서 영혼은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 보기에 영혼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이… 왜냐하면 환영이나 무아지경이나 일시적 감각 정지 없이, 현세의 일상적 고통 속에서, 연약함과 많은 무기력 속에서, 우리 주께서는 우리네 이해력과 잣대를 뛰어넘는 귀중한 뭔가를 주시니까…  

  이 귀중한 무엇이란 바로 사랑의 상처 같은 것, 그건 피 한 방울 내지 않으면서 영혼에 파고들어 영혼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을 동경하게 만든다.」 

 

  그렇게 파이프를 입에 물고 다른 세계의 공기를 들이마셔 폐가 확장된 가운데 지상이라는 바닥에서 진주를 찾으면서 노인은 완성을 향해 전진했다. 죽기 몇 달 전 자신의 마지막 신앙 저술을 끝냈다. <하나님 사랑에 관한 물음 Questions sur l'Amour de Dieu>. 

장 조셉 수렝 Questions sur l&#39;Amour de Dieu

  이 책을 몇 대목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마지막 장벽이 무너졌고 또 하나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 왕국이 지상에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 가슴과 바로 연결된 채널을 통해, 이 영혼에 흘러든 것은 바로… 

 

  「평정. 하지만 그저 잔잔한 바다나 조용한 강물 같은 평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평정이요 안식으로서 홍수 때 급류처럼 우리한테 들어오고, 숱한 폭풍우를 거친 영혼은 마침내 이 범람하는 평정을 누린다. 또 하늘이 내린 안식은 영혼에 들어서서 영혼을 정복할 뿐 아니라 수많은 물살이 하나로 합치듯 영혼과 합류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이 하프와 류트의 아름다운 음악을 천둥소리처럼 언급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그러하니, 천둥소리를 잘 조율된 류트처럼, 또 류트의 심포니를 천둥 굉음처럼 만드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정 또한 제방들을 쓸어버리고 강안으로 차오르며 호안을 산산이 부수는 격류 같은 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과연 믿을까? 

  한데 바로 그런 일이 나한테 벌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신께서는 평화와 잔잔한 사랑이 그 노정에 있는 것들을 죄다 분쇄하게 할 권능을 갖고 계시니…     

  하늘이 주신 평정은 한 지역을 흐르다가 제방을 부순 뒤 다른 지역으로 휘도는 강물과 같다. 이때 만물의 질서가 다 깨지는 듯한데, 왜냐하면 이 흐름이 멈출 줄 모르고 도도하게 밀려드니까. 그런 평정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다. 오직 하나님의 평정만이 그렇게 행진할 수 있다. 땅은 파괴하지 않고, 전능자께서 예정하신 하상을 채우기만 하면서

 

  그 물은 고요하다 해도 그 흐름은 굉음을 내며 맹렬하게 움직인다. 굉음은 분노 때문이 아니라 수량이 넘치기 때문에 나오는 것, 물은 폭풍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연의 평온을 간직하면서 스스로 이동하는 것, 그것은 바람 한 점 없을 때도 움직인다. 바다가 땅과 만나며 그 경계와 입맞춤을 한다. 바다는 위풍당당하게 육지로 진격한다.     

  영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니, 오랜 시련 끝에 무한한 평정이 영혼에 강림할 때, 그때는 바람이 불어도 그 표면에 파문이 일지 않는다. 하나님의 평정이란 바로 그런 것이며, 거기엔 신의 보물과 그분 왕국의 풍요가 다 들어 있다. 

 

  이 범람에는 그것이 닥칠 것임을 알리는 바다제비와 예고자가 있으니, 그것은 홍수보다 먼저 나타는 천사들. 그들은 다른 세계의 표식을 갖고 있으며, 그들 목소리는 천상의 하모니로 가득하고, 영혼이 헐떡거릴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다. 하지만 이 헐떡임은 공포가 아니라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     

  이 범람은 과하다 하여 그 누구며 무엇에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저 그 노정에서 장애물들을 쳐내는 것일 뿐. 탐욕의 짐승들은 모두 급습하는 평정을 피해 달아난다. 그리고 평정과 함께 예루살렘에 약속된 보물이, 계피나무며 호박이며 진귀한 것들이 모두 다가온다. 

  천상의 평정은 바로 그렇게, 모든 지복을 수반하며 풍요롭고 성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삼십여 년 전 마렌에서 젊은 수도사는 대서양 조류가 조용히 저항할 수 없이 차오르는 것을 자주 지켜보았다. 매일 보던 그 기적의 기억은… 이 완성된 영혼이 존재의 ‘원초적 사실’을 아름답게 찬미하면서 적어도 ‘영혼을 다 분출할’ 수 있게 한 수단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제 영혼이 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1665년 봄 죽음이 왔을 때, 야콥 뵈메[각주:1]의 말대로, “그는 더 이상 어디로도 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거기에 가 있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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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kob Böhme (1575-1624) - 게르마니아 기독교 신비주의자, 설교가, 신지학자, 예언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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