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동일시의 수준과 유형
자신을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하는 상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살펴봤다.
자신의 직업이나 젠더, 위치, 생각과의 동일시가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좌우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의 생각이 비판받으면 우리는 풀이 죽고, 칭찬받으면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누군가가 칭찬하거나 헐뜯어도 우리는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나를 두고 엄마 구실을 잘한다고 칭송하거나 못한다고 지적하면, 이건 다른 엄마들에 관해 말하는 것과 달리 내 신경을 건드릴 것이다. 내 몸의 어떤 특성을 좋게 보면 난 기분이 좋고 깎아내리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러나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신체를 두고서는 어떻게 떠들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즉, 뭔가가 실제로 우리와 관련되면 우리는 거기에 안팎으로 반응한다. 또 우리와 상관이 없으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있게 된다. 또 무엇이 우리의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뭔가에 누군가나 무엇인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내 아이, 내 전화기, 내 아파트, 내 친구, 내 소파, 내 나라 등이 그렇다. 누군가가 남의 아이를 윽박지른다면 난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아이한테 그렇게 한다면 난 아주 기분 상하거나 화를 낼 것이다. 남의 집에 불이 나면 내 집에 불났을 때처럼 죽을 듯이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다. 내 개가 애견 대회에서 1등을 하면 아주 좋아.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개가 그러면 나랑 상관없다.
참고: 내 것이나 내 편이라 여기는 뭔가도 역시 나와 연관된다. 사실상 이건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의 연장이다. 따라서 동일시 수준을 이렇게 나눌 수 있다. 1) 나 2) 내 것, 나와 관련된 것 3) 나와 무관한 것. 시각적으로는 이렇게 보일 수 있다.
‘나’ 범주에 관련된 것은 죄다 내가 자신을 이런저런 유형과 직접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목수야, 나는 엄마야, 난 사장이야, 난 중학생이야, 나는 내 몸이야, 난 남자야 등등.
‘나의 ...’ 영역에는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게 다 들어간다. 내 집, 내 나라,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 내 자녀, 내 사업 등.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게 반드시 내 소유물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라. 예를 들어, 내 사업, 내 아파트, 내 전화기는 내 것이지만, 내 나라나 내 친구, 내 도시는 나 개인에게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의’라는 개념은 내 소유에만 적용되기보다는 외려 어떤 이유로 인해 내가 나의 것이라 여기게 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이건 동일시의 유형이다. 더 정확히 하자면, 동일시의 수준이다.
1) 우리가 자신을 직접 동일시하는 유형과 동일시가 가장 강하게 일어난다. 나는 엄마야, 난 남편이야, 난 사람이야. 이건 우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나’ 수준이다.
2) 다음에 ‘나의’라는 수준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게 나 자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과 어떻게든 관련되며, ‘나의’라는 접두사를 써서 연관성을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개는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개야, 남의 개가 아니라.
3) 끝으로 ‘나와 무관한’ 수준. 나에게 해당하지 않으며 나와 전혀 무관한 것이 여기에 들어간다. 사실, 여기선 동일시가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제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해안에 태풍이 닥쳐서 아무개네 전복 양식장이 망가졌다고 해도 나한테는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내 양식장이 아니고 내 가족도 아니야. 혹은, 시리아에서 전쟁이 계속되어도 난 크게 개의치 않아. 내 나라가 아니니까.
동일시 수준 간의 경계는 사실 아주 희미하다. 예를 들어, “나는 교수야” 하고 말할 수 있고, “나는 교수라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어” 하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떻게 말하는지는 그 사람이 자기 직업에 얼마나 동일시됐느냐에 달렸다. 자기 몸을 가리키면서 “이 몸이 바로 나야” 하고 말할 수 있고 “나에겐 이 몸이 있어” 하고 말할 수도 있다. “난 여자야” 혹은 “나의 젠더는 여성이야” 혹은 “난 여자 역할을 해”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몸이나 역할, 이미지 등 특정한 유형과 동일시하는 정도에 달렸다.
이건 ‘나’와 ‘나의’ 수준 간의 경계가 어떻게 희미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나의’와 ‘나와 무관한’ 수준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사례로는 미인대회에서 내 친구 딸이 입상한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친구 딸이 상을 받는데 나도 기뻐, ‘나의’ 친구의 딸이 아닌가. 혹은,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나에게 직접 관련은 없지만 그래도 걱정돼, 왜냐면 간접적으로 나와 연관되니까. 그 상황이 내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우리는 ‘나’와 ‘나의’와 ‘나와 무관한 것’ 등 동일시의 수준을 살펴봤다.
이건 다 내가 그 무엇과 동일시되는 유형이었다. 이와 다른 동일시 유형이 있는데, 이건 자신을 다른 사람이나 사람 그룹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라는 단어를 이용하면서, ‘나’가 ‘우리’가 된다.
이런 경우 이 사람은 자신을 어떤 사회적 그룹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는 이 그룹이 되어서 별도의 개인보다는 그 일부로 행동한다. 이런 일은 집회나 축구 경기, 가족 등에서 종종 일어난다.
그런 동일시 유형의 뚜렷한 사례로 어린애를 둔 엄마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자기 아이를 가리켜 종종 ‘우리’라고 일컫는다. 예를 들면, “우린 병이 났어”, “우리 응가하러 간단다.” 실제론 어린애가 아프고 응가를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말한다. 마치 아기와 하나가 된 듯이 말이다.
또 다른 좋은 예로는 사랑에 빠진 연인 커플이 있다. 함께 있을 때 두 사람은 각자의 경계를 벗어나 상대와 결합한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가 ‘우리’로 확장된다.
이런 유형의 동일시에도 몇몇 수준이 있다. 1) 우리 2) 우리의 3) 우리가 아닌 것.
1) 여기서 ‘우리’의 동일시 수준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군인이야”, “우린 호남인이야”, “우린 어느 학교 동창이야”, “우린 아무개 광팬이야”, “우린 한국인이야” 등등. ‘나’의 경우에 그렇듯이, 그룹 전체가 이런저런 유형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당신이 자신을 어떤 그룹과 동일시하고 있는지 더 명확히 알고 싶다면, 이런 물음에 대답해 보라.
당신은 살면서 어떤 그룹들과 동일시돼 있나? 여기엔 이를테면 당신의 가족이나 친구들, 동호회, 독서 클럽, 정당, 대학생 그룹 등이 들어갈 수 있다.
당신 그룹은 무엇과 동일시돼 있나? 예를 들어, “우린 상류층이야”, “우린 대학생이야”, “우린 진보 그룹이야” 등.
2) ‘우리의 ...’라는 수준에서 동일시는 ‘나의 ...’라는 수준에서 하는 동일시와 비슷하지만, 나보다는 그룹을 더 많이 드러낸다. 예를 들어, 우리 아파트, 우리 자동차, 우리 집안, 우리 영역, 우리 별장 등.
3) ‘우리가 아닌 것’ 수준에서는 동일시가 없다. 여기에는 우리 그룹과 아무 관련 없는 것이 다 들어간다.
지금까지 동일시의 유형과 수준을 알아본 까닭은 우리에게 어디서 동일시가 생기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일상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가족과 강하게 동일시됐다면, 가족의 행복이 당신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리라. 즉, 당신 가족과 관련된 것은 전부 당신과도 바로 관련된다.
만약 당신 가족이 가풍 든든한 집안이라고 자부하는데 누군가가 당신 가족을 뼈대도 없는 집안이라 불렀다면, 당신은 당연히 기분이 상한다. 당신 개인을 두고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당신 가족을 그렇게 일컬은 것이지만, 당신이 자신을 가족과 동일시하는 까닭에 당신의 감정 상태가 크게 바뀐다.
어떤 축구팀의 팬클럽과 당신이 강하게 동일시됐다면, 그 그룹이 공격받을 때 당신은 화가 나서 동료들을 옹호하러 나설 것이다. 자기가 속한 그룹과 동일시가 약할 때는, 그룹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애국자들은 종종 자신을 나라와 강하게 동일시한다. 나라가 위협에 처할 때 그들은 나라를 지키러 과감하게 나설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 가족이나 자신을 더 지킬 것이다. 이건 다 그 사람이 자신을 무엇과 더 크게 동일시하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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