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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17 04.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2.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2편 2
  3. 2019.07.16 루덩의 악마들 7-2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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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궁금증은 이런 것이다. 

뇌에 신경 임펄스 망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며 어디에 위치하나? 

우리가 지금 창 너머로 직접 바라보는 나무의 모습과

사람 머릿속 신경 임펄스 다발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 임펄스들의 배열을 무엇이 창밖의 나무 모습으로 인식하게 하나? 

창밖의 나무를 무엇이 직접 지각하고 인식하는 것인가? 

 

과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뇌에서 의식을 담당하는 영역을 찾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설령 의식 담당하는 뇌 영역을 찾아낸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고 본다.

결국, 이 영역 또한 뒤엉킨 뉴런 다발이지 않겠는가.

의식을 뉴런 망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을까? 

 

cyber head 인공 뇌

 

로봇을 상상해 보자.

과학이 발달해서 사람 머리처럼 설계된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치자. 거기엔 눈 대신 비디오카메라가, 귀 대신 마이크가 있다고 하자. 카메라와 마이크에서 나오는 신호들이 (뇌처럼) 수십억 개의 극미한 요소들로 이뤄지는 블록으로 들어가고, 이 각각의 요소에는 여러 개의 입력과 하나의 출력이 있다. 이 요소들은 전부 인간 뇌의 뉴런들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게다가 과학자들이 노력한 결과 뉴런의 인공 대체재를 이용하여 어떤 사람의 뇌를 정확히 복제했다. (여러 사람의 뇌는 뉴런의 연결 도식에 따라 서로 구별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뇌를 모델로 삼을 뿐이다.) 

 

이 로봇 머리가 그것이 모델로 삼은 사람의 뇌가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이 로봇에게 의식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게 사람의 의식과 같을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실험할 수 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 수신기로 남겨두자. 하지만 사람 뇌의 모델 대신 카메라와 마이크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할 보통 컴퓨터를 설치할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 메모리에 대용량 정보를 저장할 프로그램을 설치할 텐데, 여기에는 로봇의 카메라가 보는 방향으로 사람이 고개 돌린다면 보게 될 장면이 들어간다. 

자, 컴퓨터 메모리에 어떤 장면이 생긴다.

이 장면을 인식하는 누군가나 무엇인가가 있나?

혹은 이건 그저 쇳덩어리에 불과하며, 거기에 의식은 없는 것인가? 

 

이 전자 기계에 의식이 없다면, 사람에겐 왜 의식이 있나?

결국, 인간의 뇌도 본질상 로봇의 ‘뇌’처럼 여러 구성요소들로 이뤄진 장치가 아니던가.

만약 로봇의 첫 모델이 (인간 뇌를 정확히 복제한 것이) 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로봇의 뉴런 망 조립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의식이 나타난 것일까? 이 뉴런 망이 의식을 지니려면 뉴런이 얼마나 필요한가? 

 

이건 다 어려운 질문이고, 과학은 여기에 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에는 인간의 (혹은 로봇에 주관적 내면세계가 있다면, 로봇의) 주관적 내면세계 연구에 필요한 도구가 없으니까. 게다가 로봇에도 인간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것을 확증하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로 말하자면, 그들이 나와 비슷하니까 필경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의식이 있을 것이며 그들도 세상을 보고 느낄 것이라고 우리는 그냥 결론 내린다. 이 결론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와 같은 게 있다’는 유사성에 따라 나온 것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로봇이나 컴퓨터 같은 인공 장치들도 마찬가지다. 로봇에게 의식이 있을지 아닐지를 우리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로봇이 인간과 똑같이 행동한다고 해도, 로봇에게 일어나는 것을 전부 인식하는 뭔가가 로봇 안에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심지어 로봇이 보통사람처럼 정말 의식을 갖추고 있다 해도, 정말 그렇다는 것을 일관되게 확인할 수단은 없다. 

 

하지만 사실을 직시해 보자. 나에겐 의식이 있다.

내 머릿속에 뉴런 네트워크와 신호들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내가 인식하는 그대로 세상을 인식한다. 내 몸과 뇌의 형태로 물리적 실재가 (실체가) 분명히 있고, 내 감각 경험을 나타내는 나의 주관적 실재가 (실체가) 있다. 이 두 실재가 서로 의존하긴 해도 (내 뇌가 손상되면, 내 감각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 철학자 켄 윌버(Ken Wilber)는

객관적 실재가 있으며 그 대표자가 우리 몸이고,

주관적 실재가 있으며 그 대표자가 우리의 모든 감각 경험임을 확인해 보라고 제시했다.

 

그렇다면 우리네 지각 개념에서 객관적 실재(실체)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상당히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모든 사람에게 하나인 어떤 세계가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는 지금 여기에 있으며 일정한 형태를 지닌다. 이 의자가 1분 뒤에도 같은 형태로 있을 개연성은 아주 높다. 당신이 이 의자를 본다면, 이게 예를 들어 검은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친구에게 이 의자가 무슨 색이냐고 묻고 친구가 솔직한 사람이라면, 역시 검은색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일도 당신은 이 의자를 이 자리에서 보게 될 것이다. 못 보게 된다면,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확신할 것이다. 

 

당신이나 당신 친구 등 모든 사람의 이런 생각과 경험을 보면, 우리가 다 거기 살고 있으며 모두에게 공통된 어떤 세계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객관적 세계이다.

이것은 상당히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나름대로 존재 법칙을 가지고 있다. 이 법칙을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 등이 연구한다. 이 법칙을 알고 이 세계에서 얻은 경험 덕분에, 우리는 여러 사건을 웬만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고 이 세계를 바꾸고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다른 설명이 있다.

만약 물리학을 아직 모르는 아이에게 이 세계가(세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다면,

아이는 사물이 있으며 그것들에 어떤 형태와 색깔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들은 자리를 옮길 수 있으며, 땅과 하늘, 나무 등이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세상에 대한 관념이 단순하고 일상적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 세계에서 방향 잡고 이동하고 기본적으로 생존하기에 충분하다. 

 

물리학자에게 물질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다면,

그는 세계가 물리적 진공인 4차원 시공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진공 속에서 기본 입자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사라진다. 이 입자들은 본질상 물리적 진공 상태에서 에너지 파동이다. 기본 입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원자를 만든다. 원자들이 결합하여 분자를 만든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분자들로 이뤄진다

이때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는 물리학자가 보기엔 사실상 원자와 분자들이 의자 형태로 특수하게 모인 집합이다.

세계에 대한 그런 관점은

빛이 무엇인지,

물체들의 색깔이 왜 여러 가지인지,

쇠는 시간이 지나면 왜 녹스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

고대에는 뇌우를 제우스의 분노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뒤 자연에서 전자기 현상을 연구한 이후에는 뇌우를 구름 속에서 상반되게 충전된 양극 사이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강력한 방전으로 여기게 됐다. 

 

예를 하나 더 들자.

뉴턴의 발견 이후 객관적 세계질량 있는 물체들이 존재하는 3차원 공간으로 제시됐다. 시공간에서 물체들의 움직임은 뉴턴의 운동 법칙으로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객관적 세계에 대한 이런 설명은 아주 오랜 세월 최종 진리로 여겨져 왔다. 뉴턴의 공식들이 지구와 우주에서 여러 현상을 예측할 수 있게 했다. 자연과 현실의 실재가 그렇게 설계되고 작동한다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명백했다.

적어도, 뉴턴의 역학(力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실험들이 나올 때까지는 말이다. 

 

입자, 파동

그런데 작은(미시) 세계 (소우주, microcosm), 즉, 원자들 세계의 구조에 관한 데이터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이 수준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이 수준에서 전자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그때 닐스 보어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나타나서 ‘자연이나 현실의 실재가 어떻게 설계됐고 작동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뉴턴의 법칙들은 폐기되지 않고 거대 세계 (대우주, macrocosm), 즉, 물체들 세계를 설명하기에 더 정확한 법칙들의 근삿값이 된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물리학자들이 다시 여러 실험을 해 보았는데, 이 실험들을 실재(reality)에 대한 지금의 인식 체계나 이론 틀에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게 됐다. 끈 이론, 루프 이론 등이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당연하고 합당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구조에 관해 현재 인정받는 이론은 참일까?

이 세계가 정말 현대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대답은 자명하지 않나 싶다. 즉…

아니다. 미래에 새로운 아인슈타인이 나타나서 모든 것이 확 뒤바뀌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얘기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어떤 객관적인 실재가 (세계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거기에는 어떤 안정성과 존재 법칙들이 있으며, 그래서 그것을 예측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어린애나 고대인들의 묘사부터 시작해서 현대 과학의 설명에 이르기까지, 실재를 (현실을, 물리적 세계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방법은 모두 이 실재 자체가 어떻게 이뤄지고 작동하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건 다 실재 자체가 아니라 이 실재의 모델들일 뿐이다. 그건 다 실재를 예측하고 조종하거나 조작할 수 있게끔 이 실재를 설명하는 방법일 뿐인 것이다. 

 

셋째,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다 허위요 거짓이다.

세계의 다양한 측면을 그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론이란 것은 죄다 세계에 대해 우리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이건 세계가 아니라 세계의 모델이다.

한데, 모델은 그게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원본을 결코 정확하게 복제하지는 못한다.

이건… 서울 지도가 서울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도시의 지도는 실제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도식적 모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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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눈 얘기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 - 객관적인 실재는 (현실은, 세계는) 분명히 있어,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우린 모르며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또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실재가 (현실이) 어떻게 구성됐고 작동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이요 형상이다. 이건 우리네 머릿속에 있는, 객관적 실재의 모델일 뿐이다. 그 이상이 아니야. 

 

비록 객관적 실재를 끝내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든 그럭저럭 지각한다.

우리의 신경계가 작동하는 덕분에, 특히 뇌 덕분에, 우리는 외부 실재에서 (외부세계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는다.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가? 

 

앞서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사람이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는지 자세히 알아봤다.

외부세계는 공간에 있는 광파와 음파, 갖가지 분자들로 가득하다.

객관적 세계의 이 물리적 발현을 인체가 감각 기관을 통해 뇌의 임펄스로 바꾸고,

이 임펄스를 뇌가 시각적, 청각적, 운동 감각적 (촉각, 냄새, 맛) 이미지로 해석한다.

사실상 이런 과정이 일어난다. 즉, 사람 뇌가 거기로 들어오는 신호들을 이용하여 외부세계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외부세계의 지각, 뇌에서 뉴런의 활동, 주관적 형상

 

 이 그림에서는 한 가지만 빼고 다 올바르게 표현됐다.

외부의 ‘객관적 실재’가 여기서는 개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가 묘사하기 불가능한 ‘무엇’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무엇인가’를 오늘날 과학은, 앞에서 알아봤듯이, 물리적 진공 상태에서 움직이는 기본 입자들의 집합으로 설명한다. 

 

자, 우리에겐 객관적 실재(세계)가 있는데, 이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다. 사람 바깥에 있는 이 객관적 실재는 신경 임펄스의 활동 형태로 뇌에 반영된다.

이와 달리 우리에겐 또 주관적 형상이 있는데, 이것은 신경이 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때 사람 의식에 나타난다. 이것이 주관적 실재(세계)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뇌는…

객관적 실재가 어떤 사람의 주관적 실재에 반영되게 하는 신체 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과학은 아직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사람의 의식이 무엇이며 주관적 실재가 무엇인지 과학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마다 관찰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아본 것에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나?

1. 특정 순간 당신이 지각하는 것은 죄다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당신의 뇌와 의식이 만들어 낸 주관적 세계(실재, 현실)이다. 

2. 당신 개인의 주관적 세계를 당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왜냐면 특정 순간에 당신이 인식하는 것은 바로 당신 뇌의 작업 결과니까 말이다. 과학자들이 당신 뇌의 일상적인 활동을 고려한다 해도, 이 신경 임펄스를 당신이 인식하는 세계의 형상으로 어떻게 전환할지 알지 못한다. 

 

이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것은 전부 우리의 뇌와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결국, 우리 각자는 자신의 뇌가 만드는 가상현실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 현실이 (실재가) 객관적 현실을 (실재를) 어떻게든 제대로 반영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즉, 우리 앞에 어떤 물체가 있을 때, 이 물체의 실제 규모에 걸맞은 크기와 형태를 지니는 주관적 형상이 우리의 뇌와 의식에 나타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물체를 정상적으로 접하고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외부의 객관적 실재 (현실, 세계) 전반과 서로 정상적인 작용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역설이 몇 가지 있다. 

주변에서 파란색 물건을 찾아보라.

당신은 파란색이 어떻게 보이는지 안다.

그건 파랗게 보일 것이다. (^^)

파란색을 “이건 파란색이야!” 하는 말 외에 달리 어떻게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 있나?

 

당신이 파란색으로 지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파란색으로 받아들인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파란색을 어떻게 보는지 이해하려면, 그 사람 머릿속으로 당신의 의식이 스며들어야 한다. 이게 가능한가?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주관적 세계를 절대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파란색이 당신이 지각하는 색깔과 같은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혹시 당신이

“영적인 힘이나 심령술, 초감각으로 다른 사람의 주관적 세계를 볼 수는 없을까?”

하고 말한다면, 즉,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파고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반박한다면…

그렇게 하여 당신이 보는 것도 결국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주관적 세계’도 어쨌든 그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주관적 세계 이외에 그 무엇도 결코 못 봤고 앞으로도 못 볼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 인식한 것은 전부 우리의 주관적 세계를 벗어난 적이 결코 없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모조리 우리의 주관적 세계다.

초감각적 지각이나 주술적 행위 등이 모두 그걸 행하는 사람의 의식에서 벌어진다. 심지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세계나 감정을 느끼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건 전부 우리 의식에서, 우리의 주관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재미난 역설이 하나 더 있다. 널리 퍼진 수수께끼 하나. 

인적 없고 울창한 숲속에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날까? 있을까? 

우리가 이제는 여기에 답할 수 있다.

그 소리는 없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는 그것을 듣는 사람이나 생물의 주관적인 느낌이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아무도 인식하지 않는다면, 객관적 실재(세계)에서 이건 공기 흔들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봤듯이, 공기의 파동(음파) 자체에는 소리가 없다.

소리란…

떨어지는 나뭇잎의 공기 파동이 사람 귀에 들어올 때 사람 뇌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없다면 (혹은, 인식하는 존재가 없다면) 소리도 없을 수밖에. 

 

키보드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물체를 안 보는 동안에는 그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예를 들어, 당신이 방안에 앉아 있다. 앞에 컴퓨터 자판이 있다. 당신 눈길이 거기로 향한다. 즉, 이 자판이 당신 뇌에 신경 활동 형태로 반영되고, 이 신경 활동이 당신 의식에 이 자판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자판에서 눈길을 돌리는 즉시, 당신 뇌와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그 이미지가 사라지고, 자판이 있는 자리에는 (현대 물리학의 관점을 취한다면) 어떤 객관적 실체가 원자와 분자들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 뇌와 의식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자판을 만들어 낸다. 

 

달리 말해, 우리의 뇌와 의식이 없다면…

오직 있는 것만, 즉, 객관적 실재만 (실체, 현실, 세계만) 있을 뿐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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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엑소시즘을 받는 수녀

 


 

  진짜 귀신들림을 협잡이나 질병 증세와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가톨릭교회는 네 가지 테스트를 제시한다. 언어 테스트, 초자연적 물리력 테스트, 공중부양 테스트, 투시력과 예지 테스트. 

 

  만약 어떤 사람이 정상 상태에서는 전혀 모르는 언어를 특별한 경우에 이해하거나 말할 수 있다면, 만약 공중부양이라는 물리적 기적을 명백히 보이거나 놀라운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만약 미래를 확실하게 예견하거나 멀리서 일어나는 사건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악마에 사로잡혔다고 볼 수 있다. 

 

  (혹은, 그게 아니라면,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신이 내린 기적과 악마의 기적은 불행히도 겉보기에는 똑같으니까. 성자처럼 무아지경에 빠진 이들의 공중부양은 황홀경에 빠진 귀신들린 자들의 공중부양과 전혀 다르지 않다. 만약 다르다면, 그건 오로지 그들의 도덕적 경력과 그 행위의 결말이다. 

  한데 어떤 사람이 고귀한 모티브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악마 같은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가장 깨끗한 이들조차 ESP와 PK[각주:1] 능력을 선보였다가 악마주의라고 비난받은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공식적이고 시대상으로 본 마귀 들림 범주는 그러하다. 이 초감각적 능력이며 염동과 관련된 현상들은 전에 완벽하게 여겼던 영혼 개념이 충분치 못한 것이었음을 우리 현대인들에게 증명한다. 우리네 의식적 자아 너머에 광활한 무의식 영역이 있는데, 이 무의식은 우리 에고보다 더 좋고 현명할 때도 있고 더 나쁘고 우둔할 때도 있다. 

 

  무의식의 가장자리 어딘가에서 인간 영혼이 외부 심령 매개와 결합하는 지대가 시작되고, 이 매개를 통해 모든 영혼이 서로 소통하고 우주정신과 직접 교류할 수 있다. 이 무의식적 수준들 중 하나에서 정신이 에너지와 접하는데, 이 접촉은 육체 안에서만이 아니라 (숱한 증언과 통계가 증명하듯이) 육체 바깥에서도 이뤄진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이전 시대의 심리학은 독단적 정의 때문에 무의식의 작업을 무시할 수밖에 없으며,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과 부닥치게 되면 모든 것을 악마의 간계로 돌려야 했다

 

  우리는 잠깐 엑소시스트들과 그 동시대인들 입장에 서도록 해 보자. 마귀 들림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기준이 확실한 것이라 가정하고, 수녀들이 악마에 들씌웠으며 주임신부를 마법사라고 공표한 근거를 검증해 보자. 적용하기 가장 쉽기 때문에 실제로 가장 자주 쓰이는 테스트, 곧 언어 테스트로 시작하겠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방언 말하기’는 성령이 베푼 각별한 은사요 무상의 선물이지만, 동시에 (우주 본질이 묘하게도 다의적이듯이) 악마에 들씌웠다는 확실한 증상이기도 했다. 대부분 경우 소위 방언이란 지금까지 모르던 언어를 실수 없이 정확하게 구사한다는 뜻이 아니다. 흔히 그건 웬만큼은 똑똑히 발음되고 웬만큼은 조리가 있는 횡설수설로서 어떤 전통적 스피치 형태와 비슷한 듯싶기에, 호의를 지닌 청자들한테는 친근했던 어떤 언어로 조금 불분명하게 말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다. 

 

  혹자가 의식 상태에서는 몰랐던 언어를 트랜스 상태에서 술술 말하는 경우를 두고 연구한 결과 대체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즉, 그 사람은 머나먼 유년기에 그 언어로 말하다가 그 후 까맣게 잊었거나, 아니면 예전에 그 언어를 듣고 단어 의미를 모르면서도 그 어음들과 무의식적으로 친근해졌다가 이제 재현하게 됐다는 것. 

  F. W. H. 마이어스의 말대로라면, 기타 모든 경우에서 「새로운 언어나 이전에 모르던 수학 지식 같은 지적 정보를 특별한 연구도 없이 실제로 잔뜩 얻을 수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텔레파시 경우는 좀 다르지만.」  

 

  심령술과 자동기술(automatic writing) 연구를 포함해 현대 심리학을 고려할 때 귀신들렸다고 추정된 사람이 방언 테스트를 아주 깨끗하게 통과한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확실한 것은, 완전한 실패로 기록된 경우는 아주 많은 반면에 성공했다는 기록은 대개 편파적이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 마귀에 들렸다고 주장하는 협잡꾼들을 까발리는 데 교회 조사관들이 언어 테스트를 가끔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1598년 마르테 브로시에라는 여성이 악마에 들씌운 증상을 여럿 내보임으로써 유명해졌다. 그 한 증상은 아주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것으로, 그녀한테 라틴어 기도문이나 엑소시즘 문구를 읽어 줄 때마다 발작을 일으켰다. (알려지다시피, 악마들은 하나님과 교회를 증오하기 때문에 성서나 기도서의 거룩한 단어를 접하면 격노한다.) 

 

  이 무식한 여인이 라틴어를 도대체 어떻게 아는 것일까 시험하기 위해 오를레앙의 주교가 페트로니우스[각주:2]의 책을 펼치고 <에페수스의 과부>라는 아주 비교훈적이며 좀 지저분한 대목을 장엄한 어조로 읽었다. 효과는 정말 마술 같았다. 첫 구절이 낭랑하게 다 울리기도 전에 마르테가 마룻바닥에 엎어져 뒹굴면서 신성한(!) 말씀을 들려주어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주교한테 욕설을 퍼부었다.  

 

  한데 이 테스트 불합격에도 불구하고 마귀 들린 여인이라는 명성에 종지부가 찍히기는커녕 마르테가 계속 인기를 누렸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주교를 피해 달아나서 카푸친회 수사들의 보호를 받았다. 그들은 그녀가 부당하게 박해받았다고 선언하고, 저들 엑소시즘에 엄청나게 많은 군중을 끌어들이는 데 그녀를 이용했다. 

 

  내가 아는 한, 루덩의 수녀들은 ‘페트로니우스 테스트’ 같은 것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사실, 참관하러 온 한 귀족이 그와 비슷한 실험을 하긴 했다. 그는 엑소시스트에게 상자를 하나 건네면서, 아주 귀한 성유물이 들어 있다고 귀띔했다. 그 상자를 수도사가 한 수녀 머리 위에 올리자 그녀가 금방 견디기 힘든 통증 때문에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탁발수사가 몹시 흐뭇해하며 상자를 주인에게 돌려주자, 주인이 상자 뚜껑을 열어 주변 사람들에게 보였다. 

 

  그 안에는 숯덩이 두어 조각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아아, 나리, 우리한테 왜 이런 장난을 하시는 겁니까?” 

  엑소시스트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귀족이 응수했다.

  “수도사여, 그대야말로 우리한테 왜 이런 장난을 하는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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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에서는 단순한 방언 테스트를 종종 시도했지만, 결과가 늘 신통치 못했다. 수녀들이 마귀에 들렸다고 굳게 믿은 니옹이 기록한 에피소드가 여기 있다. 

  님(Nimes)의 주교가 클레어 수녀에게 가서 묵주를 가져와 아베마리아 기도문을 읽으라고 그리스어로 지시한다. 그 말을 듣고 클레어 수녀가 처음엔 머리핀을 가져오고 이어서 아니스 씨 같은 것을 가져온다. 그러나 주교의 못마땅한 표정을 보고서 “아아, 뭔가 다른 것을 원하셨군요” 하고 능청 떨면서 결국 묵주를 가져오고 필요한 기도문을 읽었다. 이 일을 순진한 니옹은 기적 같은 사건으로 여겼다. 

 

엑소시즘 중에 VIP 방문객 손등에 수녀가 입을 맞추다.가

 

  기적이라 불린 방언 테스트 대부분은 설득력이 더 떨어져 보였다. 라틴어를 모르는 수녀들이 역시 라틴어를 모르는 악마들에 들씌웠다. 이 이상한 사실을 해명하기 위해 프란체스코회의 한 엑소시스트는 설교단에서 악마들 중에는 배운 자도 있고 못 배운 자도 있다고 공표했다. 

 

루덩에서 유일하게 교육받은 악마들은 원장수녀에게 파고든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 배웠다는 악마들조차 라틴어 문법은 형편없었다. 세리제 치안판사가 배석한 가운데 1632년 11월 24일 진행된 신문 기록의 일부를 여기 소개한다. 

 

  「바레가 악마에게 묻는다. “Quem adoras?” 

  대답: Jesus Christus. 

  그러나 법정 관리가 큰 소리로 말한다. “이 악마가 하는 말은 뭔가 안 맞소.” 

  그러자 엑소시스트가 질문을 바꾸었다. “Quis est iste quen adoras?” 

  그녀가 대답했다. “Jesu Christie.” 

  그 대답에 몇몇이 지적했다. “라틴어가 틀렸어!”

  그러나 엑소시스트는 그들이 잘 듣지 못했으며 수녀원장이 “Adoro te, Jesu Christe” 하고 말한 것이라고 우겼다. 

  그러고 나서 키 작은 수녀가 달려와서 깔깔대며 “그랑디에, 그랑디에!” 하고 외쳤다. 또 보조 수녀 클레어가 말 울음소리를 내며 들어왔다」[각주:3]

 

  가엾은 잔느! 그녀는 주격이며 대격, 호격 같은 복잡한 격변화를 이해할 만큼 라틴어를 충분히 공부하지 못한 것이다. Jesus Christus, Jesu Christe… 기억할 수 있는 건 다 입에 올렸지만, 그래도 저들은 틀린 라틴어라고 하다니! 

 

  그러자 세리제가 선언했다. “만약 수녀원장이 내 질문 두세 가지에 시원스레 대답한다면” 나도 그녀가 정말 악마에 들씌웠다고 믿어 보겠소. 그러나 질문이 나왔지만 대답이 없었다. 완전히 당황한 잔느는 결국 발작을 일으키고 희미하게 울부짖음으로써 궁지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 설득력 떨어지는 시연을 벌인 다음날 바레가 세리제를 찾아가서 자신은 정말이지 순수하게 행동했으며 악의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가 성합을 머리에 올리고 맹세하기를, 이 모든 일에서 수녀들한테 그 어떤 비행이나 속임수, 강압 따위를 썼다면 자신이 저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카르멜회 수도원장이 앞으로 나와서 비슷한 주장과 저주를 운운했다. 그 역시 성합을 머리 위에 올리고 이 사건에서 자신이 죄를 범했거나 오류를 저질렀다면 다단과 아비람의[각주:4] 저주를 받을 것이라 했다.」   

 

  아마도 바레와 수도원장은 저희 행위의 괴물 같은 측면에 눈이 멀 정도로 광적이었을 것이며, 그런 거창한 서약도 양심적으로 했음이 분명하다. 덧붙이자면, 참사회 위원 미뇽은 제 머리 위에 그 무엇도 올리지 않고 그 어떤 천벌도 자신에게 돌리지 않는 쪽을 택했다. 

 

  (몇 해 동안 마귀 들림 소동이 벌어지는 중에 루덩을 방문한 저명한 영국 여행객들 가운데 젊은 존 메이틀랜드가 있었다. ...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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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extrasensory perception - 초감각적 지각, 초능력. *psychokinesis - 사이코키네시스, 염력 행사, 정신력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일 [본문으로]
  2. Gaius Petronius (?20-66) - 고대 로마의 정치가, 소설가. 미모와 정숙함과 정절로 소문났던 ‘에페수스의 과부’가 남편 죽은 뒤 따라서 굶어죽기로 작정했다가 변절하여 타락한다는 삽화는 장편 <사티리콘>에 실려 있다. [본문으로]</사티리콘>
  3. (*넌 누구를 경배하느냐?) (*예수 그리스도) (*네가 경배하는 이가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 - 문법이 틀렸다. “Jesum Christum”으로 대답해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을 경배합니다.) [본문으로]
  4. 민수기 16:1-16: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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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Huxley Aldous

 


 

7-2

 

  우리가 살펴봤듯이 마귀 들림이라는 가설이 그럴 듯해 보인 이유는… 생리학이 아직 세포 구조나 유기체의 화학적 과정을 찾지 못했으며, 심리학이 무의식 수준에서 벌어지는 정신 활동을 사실상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마귀 들림이란 것을 현재는 주로 로마가톨릭과 심령주의자들만 받아들이고 있다. 

 

 심령술사들은 심령술 세션 중에 벌어지는 몇몇 희귀한 현상을 죽은 사람의 혼이 영매의 몸에 잠시 들어앉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톨릭교도들은 떠도는 혼령의 존재를 배척하지만, 어떤 정신적 착란과 육체적 교란을 악마 세력의 작용으로 설명하고, 정신이나 육체가 신비로운 상태에 접어드는 것을 어떤 거룩한 힘의 작용으로 해석한다. 

 

  내가 알 수 있는 한 귀신들림이라는 생각에 자가당착이란 전혀 없다. 이런 개념을 ‘고대 미신의 잔재’라 치부하면서 막연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건 다른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에 조심스레 고려할 수도 있을 작업가설로 취급하는 것이 더 낫겠다. 

  현대 엑소시스트들은 대부분의 마귀 들림이 히스테리 형태이며 그런 강박관념을 정신의학으로 치료하는 게 더 좋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가끔은 단순한 히스테리를 넘어 초자연적인 뭔가가 틈입했다는 증거를 발견하고, 그럴 때는 들러붙은 악령을 엑소시즘으로 몰아내야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육체를 떠난 스피릿이나 죽은 사람의 ‘심령 요소’의 입을 통해 말하는 영매도 희귀한 현상을 설명하는 논거가 됐다. 그런 귀신들림의 초기 증거는 마이어스의 <인격, 그리고 육체적 죽음 이후 인격의 생존>에서 쉽게 살펴볼 수 있다.[각주:1] 이런 부류의 저술로 얼마 전 나온 것으로는 조지 티렐[각주:2]의 <The Personality of Man>이 있다. 

 

  이 주제를 저서 <귀신들린 자들>에서 아주 상세하게 연구한 외스터라이흐[각주:3]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즉, 악마에 대한 믿음은 19세기 내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그 대신 ‘떠도는 혼령’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흔해졌으며, 그런 만큼 이전에 자기네 질병을 악마 탓으로 돌리던 노이로제 환자들이 폭스 자매가 등장한 뒤로는 죽은 악인들의 떠도는 혼령을 비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최근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귀신들림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형태를 띠었다. 이제 신경증 환자는 어떤 적대자가 보낸 무선 메시지 같은 것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고 종종 투덜댄다. 가엾은 에디 부인[각주:4]의 상상 속에서 여러 해 떠돌던 ‘악의적인 동물 자기’가 이제 ‘악의적인 전자 기기’로 바뀌었다. 

  천육백 년대에는 무선통신이 없었고, 떠도는 혼령이라는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로버트 버튼이 악마란 죽은 악인들의 혼령이라는 견해를 인용하지만, 그것이 ‘터무니없는 교리’임을 강조하고자 함이었을 뿐이다. 그가 보기에 마귀 들림이란 명백한 사실이요, 전적으로 악마들의 소행이었다. (250년 지나 마이어스가 보기에도 귀신들림이 실재하는 사실이긴 했으나, 그건 이미 악마가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혼령에 의한 것이었다.) 

 

  악마들은 존재하나?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잔느 수녀와 다른 동료 수녀들 몸에 들어앉았나? 마귀 들림 문제와 마찬가지로, 선하든 악하든 무심하든 인간 외적인 스피릿들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을 그저 황당하거나 자가당착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만은 없다. 인간의 정신만이 우주에서 유일한 정신임을 믿으라고, 그 무엇도 우리를 다그치지 않는다

 

  만약 투시력과 텔레파시, 육감 등이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 한다면 (그런 현상을 거부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공간과 시간과 물질에 덜 좌우되는 정신 작용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 외적인 지능들이, 형태가 없거나 혹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방법으로 우주 에너지와 연결된 인간 외적인 지능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부정할 근거는 전혀 없어 보인다. 

  (덧붙이자면, 우리가 ‘육체’라 부르는, 고도로 조직화된 우주 에너지 응축물과 우리네 마인드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어떤 연관이 있음은 분명하나, 물리적 에너지가 사유 에너지로 어떻게 바뀌는지, 사유 에너지가 물리적 에너지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우리는 아직 모른다.) 

 

  크리스트교에서 악마들은 최근까지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독교가 존재하던 맨 처음부터 그래 왔다. А. 르페브르 신부가 언급하듯이, 이런 이유에서 그렇다. 

  「악마는 구약에서 아주 작은 자리만 차지한다. 악마의 제국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한데 신약은 사탄을 악의 동맹 세력의 우두머리로 들춰낸다.」 

  현재 번역된 <주기도문>에서 우리는 악에서 구해 달라고 전능자에게 청한다. “우리를 유혹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유혹자에게서 구하소서.” 

 

  이론으로나 신학적 정의로나 크리스트교는 마니교[각주:5]처럼 이원론적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인에게 악은 본질적인 게 아니며, 현실적이고 기본적인 원칙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선이 박탈된 것이요, 하나님께 근원을 얻은 자들이 타락한 것일 뿐이다

  기독교의 사탄은 아리만[각주:6]의 다른 이름이 아니요, 빛이라는 신성한 원칙에 맞서는 어둠이라는 영원한 원칙이 아니다. 사탄이란 여러 시기에 하나님한테서 떨어져 나온, 숱한 천사들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자에 불과하다. 그저 정중하게 대한다는 뜻에서 그를 어둠의 제왕이라 부르는 것일 뿐. 악마는 많은데 그 중에 우두머리가 사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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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들은 다 개체이고, 그 각각이 나름대로 성격과 기질, 유머감각, 변덕, 특이성을 지닌다. 권력 지향적인 악마, 음탕한 악마, 탐욕스러운 악마, 오만하고 으스대는 악마 따위가 있다. 게다가 어떤 악마들은 다른 자들보다 더 뚜렷한 지위를 차지한다. 왜냐면, 그들은 타락하기 전 하늘 계급에서 차지한 지위를 지옥에서도 유지하니까. 

  하늘에서 천사나 대천사였던 자들은 중요성이 적은 하급 악마들. 한때 주권자나 권품천사이거나 능품천사였던 자들이 지옥에서 고급 중산층을 이룬다. 왕년에 지품천사며 치품천사로 있다가 타락한 자들은 귀족이 되는데, 그들 권세는 아주 막강하여 (수렝 신부가 아스모데우스에 관해 언급한 바로는) 지름 30 리그[각주:7]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물리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어도 17세기 신학자 시니스트라리[각주:8] 신부는 주장하기를, 사람은 악마뿐 아니라 해롭지 않은 영적 실체들한테도 홀리거나 최소한 사로잡힐 수 있다고 했다. 이 순진한 영으로는 고대인들의 파우누스, 님프, 사티로스, 유럽 농촌의 고블린, 현대 심령 연구자들의 폴터가이스트가 있는데이들이 악마들보다 더 자주 사람한테 들러붙는다고 한다. 

  시니스트라리 신부에 따르면, 대다수 인큐버스와 서큐버스[각주:9]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미나리아재비나 메뚜기보다 더 나쁘지도 않고 더 좋지도 않았다. 

 

incubus succubus

 

  한데 루덩에서는 이런 친절한 이론을 거론하는 사람이 불행하게도 없었다. 수녀들 상상에서 난무하는 색정적 판타지는 죄다 사탄과 그의 전령들 탓으로 돌리고 말았다

 

  반복하건대, 신학자들은 마니교의 이원론으로부터 기독교를 철저히 지켜왔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늘 악마가 마치 하나님과 자격이 동등한 경쟁자인 양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들은 선과 선행을 키우는 방법보다는 악과 악에서 벗어남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악의 치료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을 위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악과 맞서 싸우는 이들은 세상을 좋게 만들기 어렵다. 잘 해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놓아둘 뿐이며, 자칫 더 나쁘게 만들게 되는 경우마저 있다. 악을 더 많이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녔다 할지언정 세상에 악이 더 횡행하도록 조장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기독교는 실제에서 마니교의 이원론에 종종 빠지면서도 교리로 보자면 그런 것이 절대 아니었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는 행위뿐 아니라 신조와 이론에서도 마니교 식 이원론인 코뮤니즘과 내셔널리즘의 맹목적인 숭배와는 차이가 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우리는 빛의 편에 있으나 저들은 어둠 쪽에 있다고 확신한다. 저들이 어둠의 종사자인 한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을 공경하는 우리네 본성이, 가혹함을 다 정당화하지 않는가) 저들을 징벌하고 파괴해야 한다. 

  20세기에 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르마즈드[각주:10]처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다른 동료들을 악의 원리인 아리만으로 간주함으로써 이 시대의 악마주의에, 극악무도한 행위에, 승리를 안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루덩에서 엑소시스트들이 행한 것이 바로 그런 짓 아니겠는가. 단지 무대와 규모가 작았을 뿐이지. 그들은 하나님을 저희 파벌의 정치적 이익과 맹목적으로 동일시하고 저희 생각과 노력을 악마의 힘에 집중했다. 그 결과 그들이 맞서 싸운 사탄이 승리하도록 안간힘을 쓴 꼴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그 승리는 한 도시에 국한되고 한시적인 것이었지만. 

 

  인간 외적 정신들이 우주에 존재하는지 아닌지, 또 그것들이 사람 몸에 들어앉을 수 있는지가 지금 우리 책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은 오직 하나. 즉, 만약 그런 현상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것들이 루덩에서 그런 일을 벌인 것이라 추정할 수 있을까? 

  현대 가톨릭 사가들은 그랑디에가 재판받고 처형될 만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데 한 목소리로 동의한다. 그러나 브레몽 수도원장이 <프랑스에서 종교적 감정의 문학적 역사>에서 거론하는 몇몇 사가들은 수녀들이 정말 마귀 들림의 제물이었다고 아직도 확신한다. 관련 문헌들을 섭렵하고 이상심리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의견을 지닐 수 있는지, 난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수녀들 행위에는 현대 정신과 의사들이 기록한 많은 히스테리 사례에서 벗어나고 훌륭하게 치료될 수 없는 것이 없다. 또 악마 세력의 징표가 된다는 초자연적 능력을 수녀들 중 누군가가 발휘했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짜 귀신들림을 협잡이나 질병 증세와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가톨릭교회는 네 가지 테스트를 제시한다. ...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04.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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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Frederic Myers (1843-1901) - 영국의 고전학자, 인문학자, 시인, 심리학자, 심령 연구가. 런던 '심령 연구 협회' 창설. 는 잠재의식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끼쳤다는 평가. 수면(정상적 징후), 히스테리(비정상적 징후), 텔레파시(비범한 징후) 등을 잠재의식의 기능으로 보다. 현대 초심리학에 영향. [본문으로]
  2. George Tyrrell (1879-1952) - 영국의 초심리학자. 초자연적인 주제를 주류 심리학에 소개. <유령 apparitions>(1953)은 심령 연구 분야에서 고전적 이론서. [본문으로]</유령>
  3. Traugott Oesterreich (1880-1949) - 독일의 철학자, 종교철학의 권위자, 튀빙겐대학 교수, 현대 독일 학자들 중 처음으로 심령 현상을 믿는다고 공표. 유대인 아내와 반군국주의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나치 치하에서 겨우 살아남다. 은 귀신들림과 다중인격을 고대의 경우부터 상세히 연구한 저술로서, 윌리엄 블래티의 소설 <엑소시스트>(1971)에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이 영화화된 이후 귀신들림과 엑소시즘에 대해 관심이 다시 일면서 외스터라이흐의 책들도 다양하게 다시 출간됐다. [본문으로]
  4. Mary Eddy(1821-1922) - 1866년 미국의 신흥 교파 크리스천 사이언스 창시. [본문으로]
  5. 페르시아 사람 마니(216-276)가 창시한 2원론적 종교 운동. 오랜 기간 크리스트교의 이단으로 간주돼 왔지만, 일관된 교리며 엄격한 제도와 조직을 갖추면서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진리에 대한 영적 지식(gnosis)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영지주의(靈知主義)에 속한다.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두 실체, 즉 영혼과 물질, 선과 악, 빛과 어둠이 분리되는 과거와, 두 실체가 혼합되는 현재, 원래의 2원성이 재설정되는 미래의 3단계로 구분. [본문으로]
  6. Ahriman - 아리만 또는 아흐리만. 조로아스터교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악이자 근본적 어둠을 상징하는 존재. 선과 진실의 근원인 아후라 마즈다에 대립하는 신. [본문으로]
  7. league - 프랑스의 거리 단위. 1리그=4.8 킬로미터. [본문으로]
  8. Ludovico Sinistrari (1622-1701) -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회 성직자, 저술가. [본문으로]
  9. succubus - 중세 유럽의 전설과 민속에서, 남성의 꿈에 나타나 유혹하는 여성형 몽마(夢魔). [본문으로]
  10. Ahura Mazda - 조로아스터교에서 아리만과 대립하는, 빛과 선의 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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