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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the devils of loudun

 


 

3-3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각주:1]는 문학예술의 완전한 걸작 축에 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이 얼마나 정밀하고, 문체는 얼마나 우아하며, 명쾌함은 또 얼마나 후련한가! 섬세한 풍자가 얼마나 많으며 세련된 논쟁거리를 얼마나 많이 제공하는가! 

  한데, 파스칼의 솜씨에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 보니까, 이 문필 대가가 예수회와 얀센파의 논쟁에서 옳지 않은 관점을 옹호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놓치기 쉽다.[각주:2]

 

  예수회가 결국 얀센파에 승리한 것도 물론 순수한 축복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파스칼이 지지하는 측이 이겼다면 결과는 더 나빴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운명 지워진 저주라는 얀센파 교리와 확고한 퓨리터니즘이라는 얀센파 윤리에 빠져서 교회는 통제 불능한 악과 강압의 도구가 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예수회가 우위를 점했다. 교회 도그마에서 얀센파가 주창하는 과도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성격은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인 상식이 좀 곁들이면서 완화됐다. 

 

  예수회가 승리한 결과 실제에서 엄격주의는 더 관대한 사고방식으로 대체됐다. 이 더 너그러운 태도는 결의론으로 정당화됐으며, 결의론의 목표는 죽어 마땅해 보이는 죄인 중 많은 이들이 실제로는 용서받을 만하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애쓰는 것.[각주:3] 또 이 결의론은 개연설의 관점에서 합리화됐는데, 이로써 여하한 의혹도 죄인한테 이롭게 해석하기 위해 많은 권위적 견해가 동원됐다. 엄격하고 지나치게 일관된 파스칼에게는 개연설이 아주 부당하게 보였다. 

  우리가 보기에 개연설과 그것이 정당화한 결의론은 한 가지 커다란 장점을 지닌다. 즉, 영원한 저주라는 끔찍한 교리에 종지부를 찍은 것. 즉결심판 판사 마음 하나 움직이지 못할 궤변으로써 사람이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지옥이란 썩 진지한 것일 수 없다. 예수회 결의론자들과 모럴리스트들의 의도는… 가장 속물적이고 죄 많은 남녀들도 관대하게 교회 품에서 지킴으로써 전체로는 교회를, 부분으로는 교파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그들은 웬만큼 달성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내부에서 상당한 분열을 일으켰으며, 정통 기독교의 주된 교리들 중 하나인, 한순간 죄에 대한 무한한 징벌이라는 교리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1650년도 이후 이신론과 ‘자유사상’, 무신론이 급속히 커졌는데, 그 원인들 중에는 예수회의 결의론과 개연설, 또 그 예수회 학자들과 수사들을 파스칼이 대가다운 솜씨를 발휘해 풍자적으로 묘사한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었다

 

  우리의 이상한 드라마에서 직간접적으로 어떤 역할을 한 예수회원들은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성직자들과 전혀 달랐다. 그들은 정치와 무관했고 ‘이 세상’이며 거기 사는 생물들과 거의 접촉이 없었다. 그들의 금욕생활은 이성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었으며, 저희 친구며 신봉자들한테도 그런 금욕을 설교했고, 설교를 듣는 그들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 관상[각주:4]에 헌신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예수회 신비주의 유파의 신봉자이며, 개중에 가장 저명한 대표자는 테레사 성녀의 스승인 알바레즈 수사[각주:5]였다. 알바레즈는 이냐시오 로욜라가 설교 활동을 촉구했음에도 종교적 관상을 행하며 가르친다고 예수회 장군 한 사람한테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회 장군 아콰비바가 그에게 쏠린 비난을 거둬들이면서 관상기도에 관해 예수회 공식 정책을 규정했다. 

 

  「고도의 관상에 너무 이르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사람들은 비난받을 만하다. 하지만 관상을 경시하고 우리 구성원들에게 금지함으로써 수사들의 꾸준한 체험마저 반박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진실하고 심오한 관상은… 자만심을 억누르고 미온적인 사람들이 상사의 명령을 수행하여 영혼 구제에 적극 나서도록 환기시키는 데 다른 모든 기도 방법보다 더 큰 힘과 효험을 지닌다는 것이 많은 성직자들의 체험과 권위로써 잘 입증됐으니까.」 

 

  17세기 전반 내내 예수회가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적극적 활동에 중점을 두었지만, 신비주의 성향에 크게 기운 수사들은 관상에 헌신하도록 허용되고 때론 장려되기도 했다. 나중에 미구엘 몰리노스[각주:6]가 단죄 받고 정적주의[각주:7]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벌어진 뒤, 예수회원들 대다수는 관상에 상당히 의심쩍게 대했다. 

  저서 <프랑스에서 종교 감정의 문학적 역사>의 마지막 두 권에서 앙리 브레몽[각주:8]은 수도회 내부 대다수 ‘금욕주의자들’과 소수의 낙담한 관상 지지자들 간의 충돌을 생생하게 극화한다. 

  한데, 랄망과 그 제자들의 히스토리를 연구한 예수회 학자 포티에는 브레몽의 논제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를 보면, 관상은 예수회에서 공식적으로 비난받은 적이 전혀 없으며 관상을 수행하는 개개인들은 정적주의가 혹독하게 탄압받는 시기에도 예수회 내부에서 계속 활약했다는 것. 

 

  하지만 1630년대는 정적주의가 등장하기까지 아직 반세기나 남아 있었고 관상을 둘러싼 격론이 아직은 이단이라는 비난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예수회 장군 비텔레스키를 수반으로 하는 예수회 상층부는 이 문제를 순전히 실용적 측면에서 보았다. 수사들 훈련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이 더 좋은가, 관상? 아니면, 설교? 

 

  예수회의 위대한 관상 수행자인 루이 랄망[각주:9] 수사는 1628년부터 건강 때문에 1632년 은퇴할 때까지 루앙 칼리지 교관 직을 맡았다. 1629년 가을 장 조셉 수렝이 루앙으로 파견돼 ‘2차 수련’을 위해 온 다른 젊은 성직자 십여 명과 함께 1630년 늦봄까지 거기 남았다. 이 기억할 만한 학기 내내 수렝은 매일 교관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냐시오 로욜라의 규칙에 걸맞게 기도와 재계를 통해 기독교적 완성의 삶을 준비했다. 

 

 

  랄망의 가르침을 수렝이 간결하게 골자만 기록하고 그의 학우인 리골렉 수사가 더 상세하게 기술했는데, 나중에 다른 예수회원인 샹피옹 수사가 다듬어서 <루이 랄망 수사의 영적 교리>라는 제목으로 17세기 말엽에 발간했다. 

 

 

  랄망의 교리에 기본적으로 참신한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런 게 어디서 나올 수 있었겠나?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상향적 자기초월을 열망하는 모든 사람의 최고 과제인, 하나님을 직관적으로 알기였다. 

  그 목표에 이르는 수단들도 엄격히 정통파적인 것이었으니… 영성체를 자주 하기, 예수회 순종 서약을 꼼꼼하게 지키기, ‘미개인[각주:10]’의 육욕 죽이기, 성찰과 꾸준한 ‘마음 지키기’, 날마다 그리스도 수난을 명상하기, 그리고 그것이 준비된 사람들에겐 ‘단순한 응시’의 소극적 기도, 즉 관상의 은혜가 주입된다는 희망으로 하느님을 긴장하여 기다리기 등이었다. 

 

  주제들도 아주 오래 된 것이었다. 그러나 랄망이 그것들을 먼저 체험하고 나서 표현한 방식은 개인적이며 독창적이었다. 스승과 제자들이 공식화한 교리는 특별한 성격과 격조와 특이한 향내를 담고 있다.      

  랄망의 가르침에서는 마음의 정화와 성령이 이끄는 대로 온유하게 따르기가 특히 강조됐다. 달리 말해… 선행과 기도를 통해 성자와 합일되며, 긴장되고 소극적인 관상에서 성령과 합일돼야만, 성부와의 의식적인 합일도 바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마음의 정화는… 집중적인 기도와 잦은 영성체로써, 또 늘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음욕과 자만과 자기애에 대한 충동을 철저하게 응징함으로써 달성된다. 

  경건한 느낌과 이미지화, 또 그것들이 깨달음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저 뒤편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육욕 억제와 자신 안에서 근절해야 하는 ‘미개인’이 우리 주제이다. 

 

  ‘당신 왕국이 임(臨)하게’ 되면, 그 결과 필히 ‘우리 왕국은 거(去)하게’ 된다. 여기에는 누구나 동의했다. 그러나 인간의 왕국을 어떻게 몰아내야 하는지, 이 방법에 관해서는 성직자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가 없었다. 그 왕국을, 무력으로 내쳐야 하나? 아니면, 설득하여?

  랄망은 엄격주의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타락한 인간 본성은 사악하다고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는 진정한 예수회 수사로서, 죄인들과 불경한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그러나 그의 신학적 사고 풍조는 대단히 음울하여 자신한테도 또 자기완성을 열망하는 모든 이들한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없으니, 바로 육욕을 죽이기 위한 극단의 고행. 

  샹피옹이 랄망 수사의 간략한 전기에서 이렇게 쓴다. 

  「육체적 고행이 그의 체력을 압도한 게 확실하며, 아주 가까운 친구들 생각으로는, 고행 과정이 그의 수명을 상당히 단축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랄망과 같은 시대 사람이요 가톨릭에서 영국성공회로 개종하고 시인에서 설교자며 신학자가 된 존 던이 자기징벌 문제를 두고 쓴 글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3-3편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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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얀센주의를 옹호하면서 이단적이라 규탄 받는 친구 앙투안 아르노를 옹호하기 위해 쓴 18편의 서신. 파스칼이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들어가던 즈음과 거의 같은 시기에 쓰기 시작. 1편은 1656년 1월 23일 자. 루이 몽탈트라는 가명으로 쓴 이 서신들에서 파스칼은 신학자들의 궤변을 해학적으로 공격하고 예수회의 느슨해진 도덕률을 비판. 종교적 영향은 차치하고, 뛰어난 위트와 유머와 풍자로 인해 대중에게 널리 읽혔다. 프랑스 산문에서 새로운 문체의 효시로 평가되며 나중에 볼테르와 루소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편지>는 정치와 신학의 수준에서는 실패지만 도덕적 수준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도덕성과 영성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 루이 14세는 1660년 이 책을 소각하라고 명령. 1657년에 쓴 마지막 서신에서는 알렉산더 7세 로마교황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황은 서신들을 공공연히 반대하면서도 파스칼의 논거에 설득됐고, 불과 몇 해 뒤 교회의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고 궤변적인 교회 문건들을 수정하라고 명했다. [본문으로]</편지>
  2. 얀센주의 - 벨기에 신학자 얀센(1585-1638)이 창시한 교리.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과 은총설을 수용해 은총과 자유의지, 예정 구원설에 대해 엄격한 견해를 주장함으로써 17-18세기 프랑스 교회에서 큰 논쟁을 일으켰다. 즉, 타락한 인간은 죄와 정욕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 은총을 통해 선택된 사람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 예수회를 세속주의와 야합해 타락한 집단이라 비난했고 여러 교황들로부터 단죄를 받았지만, 프랑스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파급되면서 엄격한 신앙생활을 필요로 하는 신자들에게 오랜 기간 특히 도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3. 決疑論 (casuistry) - 보편적 규범을 정확히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에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중세 스콜라철학의 윤리 이론. 기독교에서는,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 평가 문제와 의무 규정이 모호한 때 행동 지침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문제로 대두됐다. 예수회 일각에서 결의론을 지나치게 세밀하게 구분하는 경향을 띠면서 반대자들로부터 궤변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본문으로]
  4. 觀想 - 기독교 신비주의, 신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기도 행위. Christian contemplation. [본문으로]
  5. Balthasar Alvarez (1533-1580) -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귀족 출신, 이미 18세에 범상치 않은 기도와 신앙심으로 주목받다. 처음엔 카르토지오 수도회에 기울다가 예수회에 입문. 25세에 성직자가 되고, 젊은 나이에도 테레사 성녀의 영적 지도를 맡게 됐다. [본문으로]
  6. Miguel de Molinos (1628-1696) - 에스파냐 성직자, 가톨릭 신비주의자, 17세기 후반 로마에서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 ‘수동적이고 행동하지 않는’ 믿음을 옹호하는 정적주의 창시.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는 1687년 몰리노스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 [본문으로]
  7. 靜寂主義 (Quietism) - 기독교 영성에 대한 교리. 영혼의 소극적(정적) 상태에서, 즉 인간의 노력을 억제하여 신의 활동이 온전히 펼쳐질 수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적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 행동하려 하는 것은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하느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본문으로]
  8. H. Bremond (1865-1933) -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역사가, 종교 저술가, 수도원장. 유명한 에세이 <순수 시론>(1925). [본문으로]</순수>
  9. Louis Lallemant (1588-1635) - 프랑스의 예수회 수사, '프랑스의 알바레즈'라 불렸다. 그의 금언과 가르침의 모음집인 이 오늘날에도 많이 읽힌다. [본문으로]
  10. natural man - 하늘의 계시에 의해 정신적으로 갱생되지 못하여 동물처럼 행동하는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2: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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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 표지 the devils of loudun

 


 

  한데 주임신부가 그런 빚을 지고만 있지는 않았다. 적대자들이 자기를 혐오하는 만큼 그도 그들을 혐오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저주는 사람을 들끓게 하고, 축복은 사람을 온화하게 만든다.”[각주:1] 

  사랑보다 증오와 분노에서 즉각적인 만족을 더 크게 얻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선천적으로 공격적인 그들은 물리적으로 자극된 호르몬에서 나오는 분노를 위하여 가장 추악한 열정에 일부러 탐닉하면서 금방 아드레날린 중독자가 된다. 그들은 하나의 자기주장이 언제나 또 다른 적대적인 자기주장을 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잘 알면서, 자신들의 흉맹함을 부지런히 갈고 닦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주 빨리 걸쭉한 싸움으로 들어선다. 

  싸움이란 그들이 가장 기뻐하는 일, 왜냐하면 싸우면서 피가 끓을 때 본연의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니까. “기분 좋아!” 하면서 당연히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 아드레날린 중독을 의분 표출이라 합리화하고, 결국엔 예언자 요나처럼 그럴 만하니까 분개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거의 루덩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랑디에가 볼품 사납긴 해도 그의 관점에서는 아주 신나는 싸움에 두루 말려들었다. 한 젠틀맨은 주임신부에게 실제로 칼을 빼들었다. 지역 경찰을 대표하는 다른 인물과는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욕설로 난타전을 벌였고, 그건 곧 물리적 폭력 사태로 번졌다. 수효에서 압도된 주임신부와 그의 복사들이 예배당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버텨야 했다. 

  다음날 그랑디에가 교회법정에 호소했고, 경찰 수뇌는 추문을 일으켰다 하여 징계를 받았다. 그건 주임신부의 승리였다. 하지만 대가가 따르는 법. 그를 막연히 꺼림칙하게 여기던 사람이, 영향력 있는 인물이, 이제 그에게 치명적이고 고질적인 적으로 변해 복수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게 됐다.   

 

기독교적 온유함 못지않게 기본적인 조심성 문제로 말하자면, 주임신부는 자신을 둘러싼 적의를 누그러뜨리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회에서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독교 정신을 그리 많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르마냑과 다른 친구들이 하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감정이 개입된 경우에는 진중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오랜 종교적 훈련이 그의 자기애를 제거하거나 심지어 완화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에고에 신학적 ‘알리바이’를 제공했을 뿐이다. 

 

  속이 차지 못한 에고이스트는 제가 원하는 것만 원할 뿐이다. 그런 사람한테 종교 교육을 시키면, 그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요,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의 명분이 진정한 교회의 명분으로 간주되는 것이요, 그 어떤 화합도 근본악을 위무하는 것일 뿐이다. 

  “너를 고소한 사람과 법정에 가는 길에 화해하라.” 예수의 조언이 그랑디에 같은 사람들한테는 바알세불과 협정을 맺으라는 불경한 촉구처럼 보인다. 

  적대자들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주임신부는 자신의 힘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적의를 한층 더 키우려 들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파워는 거의 천재적이었다. 

 

  동화에서는 갖가지 선물을 들고 선한 요정이 아기 요람을 찾아든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선물이 도리어 불행을 안기는 경우가 잦다. 예를 들어 그랑디에한테 선한 요정은 다른 확실한 재능들과 더불어 가장 눈부시면서도 가장 위험한 선물을 주었다. 바로, 달변. 

  뛰어난 설교자며 성공적인 변호사와 정치인은 죄다 비범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 입에서 나온 말은 청자들한테 거의 마법 같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데 이 효력은 필히 비이성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녔다 해도 뛰어난 연설자는 그 말로써 득보다 해를 더 많이 끼친다. 뛰어난 연설자는 풍부한 어휘와 좋은 목소리라는 마법을 동원해 나쁜 주장이 옳은 것이라고 청중을 설득할 수 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어떤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달변 기법에 속하는 재주나 트릭에 의존할 필요가 전혀 없는 법이다. 

 

  본질적으로 근거가 잘못된 신념을 옳은 것이라 주입하기 위해 웅변술 장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인간 본성에 있는 최소한의 신뢰 요소를 우려먹는 죄를 짓는 셈이다. 그들은 재앙적인 입담 재주를 발휘함으로써 일상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빠져 있는 일종의 최면 상태를 더 깊게 만든다. 반면에 진정한 철학과 진정한 종교의 목표와 과제는 그런 최면의 안개와 구름을 걷어내는 데 있다. 

  게다가 지나친 단순화 없이 효과적인 웅변술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화하려면 사실들을 왜곡할 수밖에 없는 법. 심지어 진실을 말하고자 최선을 다할 때조차 노련한 연설자는 그 자체로 이미 거짓말쟁이다. 또 가장 노련한 연설자는, 덧붙일 필요가 거의 없지만, 진실을 말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진실과 거리가 멀어서 동지들에게 공조하고 적대자들을 몰아붙이는 것이니.   

 

  오호라, 그랑디에가 바로 그런 부류의 달변가였구나. 성 베드로 교회 설교단에서 주일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데모스테테스를, 사보나롤라[각주:2]를 열심히 흉내 내고 때로는 라블레까지 모방했다. 왜냐하면 그는 의분 터뜨리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을 조롱하는 데도 능하고 우레 같은 계시를 내뿜는 것 못지않게 빈정거림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자연은 진공 상태를 싫어한다.[각주:3] 우리네 마음도 그렇다. 오늘날 권태라는 골치 아픈 공간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연속극 따위로 채워진다. 이런 면에서 선조들은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다.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더 좋았을지도.) 

  그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교구 성직자의 주간 퍼포먼스에 주로 의존하고 간간이 방문하는 카푸친회 수사들이나 순례하는 예수회 수사들의 강연으로 보충했다. 강론이란 하나의 아트이고, 다른 모든 아트 분야에서 그렇듯이 여기서도 변변치 못한 아티스트들이 좋은 아티스트들보다 훨씬 더 수두룩하다. 

 

  성 베드로 교회 신도들은 그 시장에서 그랑디에 목자라는 최고의 명인을 두고 있음에 자축할 수 있었다. 그는 가장 숭고한 기독교 미스터리에서부터 가장 민감한 풍문과 가장 미묘하고 가장 외설적인 교구 이슈들까지 어떤 주제든 눈부시게 즉흥적으로 소화해 냈다. 제 적대자들을 얼마나 거침없이 몰아쳤으며 고위직 인사들까지 얼마나 겁 없이 비판했던가! 

  만성적 권태에 빠져 있던 대다수가 환호했다. 그들의 박수갈채는 거꾸로 주임신부 웅변의 제물이 된 사람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이 제물들 가운데는 위그노파와 가톨릭교회 간에 노골적인 적의가 멈춘 뒤 왕년의 프로테스탄트 도시에 세워진 여러 교파의 수도사들이 있었다. 그랑디에가 수도사들을 싫어한 주원인은 그 자신이 세속(교구) 성직자이며 제가 속한 카스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충실한 병사가 자기 부대에, 충실한 졸업생이 모교에, 충실한 코뮤니스트나 나치가 자기 당에 충성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A라는 조직에 충성하려면 B, C, D 등 여타 다른 조직을 어느 정도 불신하고 경멸하고 철저히 혐오할 필요가 있는 법. 

  이는 더 큰 상위 조직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 역사를 보면, 이단자와 불신자들에 대한 전반적이고 공식적인 증오에서부터 교단 간의, 학파 간의, 교구 간의, 신학자들 간의 특수한 증오에 이르기까지 증오의 계급구조가 여실히 드러난다. 

  살레의 성 프랑수아가 1612년에 이렇게 썼다. 

  「독실하고 신중한 고위 성직자들이 개입하여 소르본과 예수회 수사들 간에 결속과 상호 이해를 이끌어내면 좋았을 텐데. 만약 프랑스에서 주교들과 소르본 학자들과 수도회들이 철저하게 결속됐다면 십년 이내에 이단이 다 척결됐겠지.」 

  이단이 척결될 수 있었을 근거를 성인이 다른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가지고 설교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단을 전혀 비방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이단에 반대되는 설교를 하는 셈이다.」[각주:4] 

 

  속 깊은 증오로 갈라진 교회는 사랑을 체계적으로 실천할 수 없으며 설교할 수도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명백한 위선일 뿐. 그리하여 결속 대신 끊임없는 불화가 있었고, 사랑 대신 신학자들 간의 완고한 반감과 또 카스트며 학파며 교파의 공격적 애국주의가 있었다. 예수회와 소르본 간의 반목에 이어 얀센파와 또 예수회며 살레시오 동맹 간에 반목이 생겼다. 그 뒤로 정적주의[각주:5]와 ‘사심 없는 사랑’ 지지자들을 둘러싸고 기나긴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프랑스 가톨릭교회 안팎의 불화는 사랑이나 설득이 아니라 권위적인 포고령으로 조정됐다. 이단자들 문제는 용기병[각주:6]의 위그노 박해와 끝에 가서 낭트칙령[각주:7] 폐지로 해결되고, 티격태격하는 성직자들 수습에는 교황의 대칙서들과 파문 위협이 동원됐다. 질서가 복원됐지만, 그건 가장 명예롭지 못한 길에서 전혀 영적이지 못하고 종교와 휴머니티와도 거리가 먼 방법으로 이뤄졌다. 

 

  당파에 대한 충성은 사회적으로는 피해가 막심하지만 개개인에게는 적잖은 보상을, 하다못해 공명심이나 탐욕보다도 여러 모로 더 많은 보상을 안길 수 있다. 뚜쟁이들이며 고리대금업자들은 저들 일에 자부심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당파 투쟁은 거기에 빠지는 사람들이 사욕을 취하면서도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있게 하는 복합적 열정이다

  정당하며 심지어 성스럽다고 정의되는 그룹을 위해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 자신을 훌륭하다 여기고 이웃들을 몹시 싫어할 수 있으며 권력과 돈을 추구하고 공격성과 잔혹함의 쾌감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외려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 자부하기도 한다. 제가 속한 그룹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다 보면 이런 유쾌한 악덕을 행하면서도 영웅처럼 행동한다는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조직이나 당파의 구성원들은 자신을 죄인이나 범죄자가 아니라 이타주의자며 이상주의자로 인식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한데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이타주의란 실상은 훅 불면 꺼질 이기주의일 뿐이며, 많은 경우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이상주의란 실상은 끽해야 당리당략과 파벌적 열성의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탈이 생긴다. 

 

  루덩 지역 수도사들을 비난할 때 그랑디에는 정의로운 열정으로 하나님 사업을 수행한다고 여겼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속 사제단과 그의 좋은 친구들인 예수회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카르멜회와 카푸친회 수사들은 수도원 담장 안에 있으면 충분하잖아. 아니면 인적 드문 마을들에서 미션 활동을 벌이면 되지. 도시 부르주아의 행사와 일에 어찌 감히 코를 들이민단 말인가! 하나님은 부유하고 존중 받는 이들을 세속의 성직자들이 이끌어야 한다고 정하셨어. 필요하다면, 선량한 예수회 수사들 도움을 좀 받아서 말이야. 

 

  새 주임신부가 처음에 취한 조치 하나를 설교단에서 공표했다. 앞으로 모든 신자는 외부 성직자가 아니라 교구 신부한테만 고해해야 합니다. 

  남자들보다 더 자주 고해하러 다니는 여성들이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됐다. 이제 우리 성직자는 단정하고 잘 생긴 젊은 학자인데다 신사 매너까지 지녔어. 카푸친회나 카르멜회 감독 누구라도 그 정도는 못 되잖아! 

 

  거의 하룻밤 사이에 수도사들이 자기네한테 와야 할 참회자들을, 나아가 도시에서 영향력을, 거의 다 잃을 지경이 됐다. 

 

  이 첫 번째 공격에 이어...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0편 5

루덩의 악마들 9편 6

루덩의 악마들 8편 6

루덩의 악마들 7-2편 4

루덩의 악마들 6편 4

루덩의 악마들 5편 4

루덩의 악마들 4편 5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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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흰 까마귀 이야기 (Tolerance)

 

  1. "Damn braces: Bless relaxes." 윌리엄 블레이크(1727-1857)의 책 <천국과 지옥의 혼인>에. [본문으로]</천국과>
  2. Girolamo Savonarola (1452-1498) - 이탈리아 도미니크회 성직자, 수도사, 1494-1498 피렌체 독재자. [본문으로]
  3. “Nature abhors a vacuum.” - 아리스토텔레스. [본문으로]
  4. St. Francis de Sales (1567-1622) - 스위스의 반종교개혁 지도자, 제네바 주교, 방문동정회 설립. 가톨릭 성인, 교부. [본문으로]
  5. quietism - 17세기 후반 에스파냐의 몰리나 등이 주창한 가톨릭 신비주의 경향. 몰리니즘. [본문으로]
  6. dragonades - 위그노 가정마다 머물던 용기병들. 프랑스 정부가 위그노들을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키기 위해 시행. [본문으로]
  7. Edict of Nantes - 1598년 앙리 4세가 낭트에서 공포한 칙령. 위그노들에게 광범위한 종교 자유를 부여하고 완전한 시민권을 허용. 그러나 리슐리외 추기경은 낭트 칙령의 정치적 조항들을 1629년 알레 칙령으로 무효화했고, 1685년 루이 14세가 완전히 철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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