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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0 루덩의 악마들 10편 4
  2. 2019.07.20 루덩의 악마들 10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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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Ape and Essence

 


 

  그 동안 원장수녀는 방문동정회 수녀원에 묵었다. 거기 원장은 마담 드 샹탈.[각주:1] 우리는 잔느 수녀가 성 프랑수아의 성스러운 친구요 제자한테도 안 도트리시나 고약한 오를레앙 가스통에게 할애한 만큼 많은 지면을 할애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자서전을 펼쳤지만, 실망하고 말았다. 성 샹탈을 언급한 유일한 문구는 오로지 이것 하나.

  「성유가 묻은 슈미즈가 더러워졌다. 마담 샹탈과 그녀의 수녀들이 성유 묻은 속옷을 빨았다. 그 뒤 성유 자국들이 본래 색깔을 되찾았다.」 

 

방문동정회 설립자 마담 드 샹탈 수녀 초상화

 

  방문동정회의 설립자 같이 주목할 만한 인물에 대해 이상하게 침묵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저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여태껏 그래 왔듯이 테레사 성녀라도 되는 듯 행동해봤자 통찰력 뛰어난 마담 드 샹탈한테는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나? 

진정 성스러운 이들한테는 감히 어쩌지 못하는 재능이 있어서, 겉에 드러내는 마스크가 아니라 본연의 자체에서 사람을 꿰뚫어보는 법. 이 선량한 노부인의 지혜로운 눈길 앞에서 가엾은 잔느가 영적으로 발가벗김 당한 상태를 갑자기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귀향길에 브리아르에서 예수회 수사 둘이 수녀들과 작별했다. 잔느 수녀는 저에게 온전한 정신을 되돌려 주려고 무진 애를 쓴 사람과 그 이후 더 이상 못 보게 됐다. 수렝과 토마스는 보르도가 있는 서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다른 이들은 파리로 떠났다. 거기서 잔느가 다시 왕비와 만났는데, 참으로 적절한 시간에 셍제르맹에 도착했다. 

  그날 밤, 1638년 9월 4일 한밤중, 왕비에게 산통이 시작된 것. 노트르담 뒤퓌 대성당에서 가져온 축복받은 성모 거들이 왕비 허리춤에서 바짝 조이고 원장수녀의 슈미즈가 왕비 복부를 덮었다. 다음날 오전 11시 안 도트리시가 옥동자를 순산했다. 5년 뒤 루이 14세가 될 운명인 아기. 수렝의 글을 보자. 

  「그렇게 성 요셉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왕비께서 순산케 했을 뿐 아니라 권한과 관대함에서 둘도 없는 왕을, 드물게 신중하고 놀랍도록 현명하고 전례 없이 신앙심 두터운 왕을 프랑스에 선사하신 것이다.」 

 

  왕비가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자마자 잔느가 제 슈미즈를 챙겨 루덩으로 떠났다. 수녀원 숙사 문들이 그녀 앞에서 활짝 열렸다가 그녀 뒤에서 다시 닫혔다. 영원히. 그녀의 영광된 삶의 어수선한 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이제부터 제 숙명이 되어야 한 따분한 일상에 금방 적응하기 어려웠다. 성탄절을 얼마 앞두고 폐색전에 걸렸다. 그녀 말에 따르면, 목숨은 이미 절망적이었다. 그녀가 고해사제에게 말했다. 

  「우리 주께서는 나에게 하늘나라로 가려는 갈망을 많이 주셨어요. 하지만 그뿐 아니라, 만약 지상에서 조금 더 머문다면 내가 그분께 적잖이 봉사할 수 있으리라는 점도 알게 하셨지요. 그러니, 신부님, 성유를 나한테 문질러 주세요, 그러면 당장에 회복될 거예요.」 

 

  기적이 일어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잔느의 고해사제는 이 축복받은 기회를 보라고 손님들을 초대하기까지 했다. 성탄절 밤 ‘우리 교회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서 내 회복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 원했다.’ 신분 높은 객들은 병자가 누워 있는 방에 더 가까운 쪽으로 자리를 받았다. 쇠창살 사이로 저 안쪽이 들여다보였다

  「한밤중이 지나 내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예수회의 알랑주 신부가 제의를 포함해 정식으로 갖춰 입은 뒤 성스러운 슈미즈를 들고 우리 방에 들어왔다. 내 침상으로 다가와서 성물을 내 머리에 대고 성 요셉의 호칭기도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다 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내 머리에 성물을 대자마자 난 즉각 완전히 회복됐음을 느꼈다. 하지만 신부님이 호칭기도를 마칠 때까지 아무 내색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도가 끝나고 나서야 치료됐다고 밝히고는 옷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이 두 번째, 지나치게 연출된 기적은 관중에게 각별한 인상을 일으키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런 기적이 그 뒤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삼십년전쟁[각주:2]은 여전히 끝날 줄 몰랐다. 리슐리외는 갈수록 더 부를 쌓고 민중은 갈수록 더 도탄에 허덕였다. 농민들이 과도한 세금에 분노하여 들고일어나고, (파스칼의 부친을 포함하여) 부르주아가 국채 이자 인하에 반대하여 들고일어났다.

  우르술라회 수녀들은 루덩에서 별 다른 사건 없이 살았다. 몇 주 만에 한 번씩 (이전처럼 보포르 공작을 닮았지만 단지 더 아담하여, 3피트가 좀 넘고 16세쯤 돼 보이는) 수호천사가 원장수녀 왼손에서 희미해지는 철자들을 다시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멋진 성해함에 담긴 슈미즈는 성 요셉의 성유와 함께 수녀원의 가장 귀중하고 효력 있는 성물 축에 들었다.  

 

  1642년 말 리슐리외가 죽고 몇 달 뒤 루이 13세가 무덤으로 갔다. 다섯 살짜리 왕을 대신하여 안 도트리시와 그녀의 정부인 마자랭 추기경[각주:3]이 나라를 서툴게 통치했다. 

 

  1642년 잔느 수녀가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고, 새로운 영적 조언자로 예수회 수사인 생주르 신부를 얻어서 그에게 자신의 글과 또 악마에 관한 수렝의 미완성 원고를 보냈다. 

  생주르가 이 원고를 에브뢰 주교에게 빌려 주고, 루비에의 마귀 들린 자들을 책임지는 주교는 루덩에서 벌어졌던 대로 더 새롭고 혐오스러운 광기와 악의의 향연을 계속했다. 로바르데몽이 원장수녀한테 편지를 보냈다. ‘내 보기에, 당신이 생주르 신부와 주고받은 서신들이 이번 일에서 한몫 톡톡히 했소이다.’ 

 

  시농에서 바레 신부가 조직하고 연출한 마귀 들림은 루비에의 것보다 성공적이지 못했다. 처음엔 물론 다 잘 돌아가는 듯 보였다. 도시 최고 가문의 여인들을 포함하여 일단의 젊은 여인들이 심리적 감염에 굴복했다. 그 다음엔 다 순서대로 진행됐다. 신성 모독, 발작, 중상과 비방, 음란한 언행… 

  한데 불행히도, 귀신들린 처녀들 중 벨로켄이라는 여자가 지역 성직자 길루어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교회에 가서 그녀가 높은 제단에 닭 피를 한 병 쏟아놓고는, 엑소시즘 도중에 바레 신부한테 그 피는 간밤에 길루어가 자기를 겁탈할 때 흘린 것이라고 고백했다. 바레가 처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녀 몸에 들어앉은 다른 악마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동료 성직자에 대한 유죄 증거를 더 확보하려고.   

 

  그러나 일은 추악하게 끝났다. 벨로켄한테 닭을 판 여인이 낌새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어 법정에 고발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바레가 머리 꼭대기까지 화를 냈고, 벨로켄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심기증에 시달려 자리에 누웠다. 악마들은 이 질병이 길루어의 마법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런 소리에 흔들리지 않은 경찰이 더 많은 증인을 소환했다. 그러자 겁에 질린 벨로켄이 투르로 달아났다. 거기 대주교는 마귀 들림을 신봉하는 이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 대주교가 부재중이어서 보좌사제가 직무를 대행하는데, 그는 마귀 들림 현상을 잘 안 믿는 편이었다. 보좌사제가 벨로켄의 사연을 듣고는, 산파 둘을 불러서 길루어 신부가 정말 가엾은 처녀 복부에 손상을 가했는지 검사하게 했다. 알고 보니 통증은 거짓이 아니긴 했지만 초자연적인 원인 때문이 아니라 작은 포탄 조각이 자궁에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심문을 받고 처녀는 그걸 제 손으로 집어넣었다고 자인했다. 이 사건 이후 불쌍한 바레는 교구를 잃고 투렌에서 추방됐다. 그는 사람들한테 까맣게 망각된 채 생을 마감했다. 르망에 있는 수도원에서. 

 

  그러는 동안 루덩에서는 악마들이 제법 잠잠히 지냈다. 사실 잔느 수녀 증언에 따르면 이런 일도 있긴 했다. ‘끔찍이도 무섭게 생긴 사내 둘이 내 앞에 나타났는데 심한 악취를 풍겼다. 둘 다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붙잡아 옷을 찢고 침대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 삼십 분 넘게 몽둥이로 나를 때렸다.’ 

  다행히도 슈미즈가 얼굴에 둘려 있었기 때문에 원장수녀가 제 알몸을 보는 치욕은 면했다. 악취 풍기는 두 남자가 슈미즈를 다시 내리고 사라졌을 때, 그녀는 ‘자신의 순결을 깨는 무슨 짓이 벌어지지는 않았음을 알았다.’ 

 

  그런 식의 공격이 몇 번 더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십 년에 걸쳐 잔느가 기록한 기적들은 주로 좀 더 천상의 성격을 띠었다. 예를 들면, 한번은 어떤 힘이 그리스도에게 수난을 가한 도구들을 이용하여 그녀 심장을 둘로 갈랐다. 그건 물론 내부에서 일어난 일로 겉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또 죽은 수녀들의 영혼이 나타나서 연옥에 관해 얘기한 경우도 여러 번 됐다. 

  물론 그 동안에도 손바닥의 성스러운 글자들은 면회실 쇠창살을 통해 고관들과 독실한 이들과 그저 호기심 많거나 대놓고 의심하는 사람들한테 계속 전시됐다. 천사는 이름자를 갱신할 때마다, 아니면 그냥 짬짬이 나타나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고, 그 조언을 잔느가 지루하게 긴 글로 적어 영적 조언자에게 전달했다. 

  천사는 다른 삼자들 일에 관해서도 조언했다. 예를 들어, 소송에 연루된 신사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딸을 좀 손해나지만 지금이라도 시집보내는 게 나은지 아니면 더 좋은 신랑감을 바라면서 버티는 게 더 나은지 알고 싶어 안달하는 어머니들에 대해서. 

 

  (1648년 삼십년전쟁이 끝났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세가 꺾이고 게르마니아 주민 삼분지 일이 사라졌다. ...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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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0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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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St. Jeanne Chantal (1572–1641) - 로마가톨릭 성인, 성모 방문동정회 설립. 귀족 가문 출신, 28세에 남편 샹탈 남작을 여읜 뒤 기도에 몰두. 살레의 성 프랑수아를 만난 뒤 그의 제자요 친구가 되다. 1610년 안시에서 수도회 설립, 69개 수녀원을 운영하고 영적 조언자로 활동하면서 과부들과 병든 여인들을 돌봄. [본문으로]
  2. 삼십년전쟁 - 1618-1648 어간에 주로 오늘날 독일과 유럽 많은 국가들이 개입된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유럽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분쟁들 중 하나. 분쟁의 발단과 참여국들의 목적은 지극히 복잡다단. 처음엔 신성로마제국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교도들의 종교적 충돌로 시작됐지만, 이후 유럽 열강이 개입하는 단계로 확대됐고, 이 단계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많이 줄고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부르봉왕가와 합스부르크왕가의 대립이 주요인이 됐다. 무력 충돌이 벌어진 전 지역이 군대의 징발로 헐벗게 됐고 기아와 질병으로 게르마니아, 보헤미아, (북해 연안) 저지대, 이탈리아에서 주민 수효 격감하고 전쟁 당사국들은 대부분 파산의 지경에 이르렀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일부인 오스나브뤼크와 뮌스터 강화조약으로써 독일의 30년 전쟁이, 에스파냐와 네덜란드 간의 80년 전쟁이 비로소 막을 내렸다. 프랑스 영토 확장, 프로이센 왕국 등장, 신앙의 자유. [본문으로]
  3. Jules Mazarin (1602-1661) - 이탈리아의 가톨릭 추기경, 로마교황청 외교관, 정치가, 1642년부터 (프롱드 난 시기에 잠시 밀려났지만) 죽을 때까지 프랑스의 재상. ‘잿빛 추기경’인 조셉 신부가 죽은 뒤 리슐리외가 파리로 불러들였으며, 이후 리슐리외의 정책을 그대로 추진. 루이 14세의 대부, 안 도트리시와 내연 관계라는 설도. 예술품 및 다이아몬드 등 보석 수집광.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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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The Devils of Loudun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가 투르를 떠나 앙부아즈로 갔다. 성스러운 이름자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수녀원 면회실을 밤 열한 시까지 마냥 열어두어야 했다. 다음날 블루아에서는 군중이 문을 부수고 잔느가 식사하는 숙소로 돌입했다.  

  오를레앙에서는 우르술라 수녀원에 머문 그녀를 보러 주교가 친히 내방했다. 그녀 손바닥을 꼼꼼히 들여다보더니 외쳤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우리가 감춰서야 되겠나, 누구나 와서 보게끔 하시오!” 그러자 숙사 문들이 죄다 열리고 수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객실 쇠창살을 통해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마음껏 보게 됐다.   

 

  파리에서 원장수녀가 로바르데몽 남작의 호텔에 묵었다. 슈브레즈와 드게메네 공이 자주 찾아왔고 2만에 이르는 하층 계급 군중이 날마다 건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잔느 수녀가 이렇게 쓴다. 

  「정말 당혹스럽게도 그들은 내 손을 보기 원할 뿐 아니라 마귀 들림과 악마 퇴치에 관해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하는 수 없이 난 책자를 하나 내게 됐고, 다중은 그걸 읽으면서 악마가 내 몸에 들어온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을 알 수 있었다. 내 손에 성스러운 이름자가 나타난 것은 특별한 대목으로 다뤘다.」 

 

  잔느 수녀가 파리 대주교 공디를 찾아뵈었다. 접견 후 이 고위 성직자가 그녀를 마차까지 배웅하면서 아주 정중하게 대한 뒤 파리 시민들이 전부 그녀를 보려고 앞 다투어 몰려들었다. 헐리웃 스타처럼 그녀 몸은 이미 제 것이 아니었다. 몰려든 인파가 실컷 바라볼 수 있게끔 아침부터 밤까지 일층 열린 창가에 계속 앉아 있어야 했다. 새벽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팔꿈치를 쿠션에 걸치고 기적 같은 손은 창 밖에 달랑 내놓은 채. 

  「미사를 드리거나 요기할 짬도 없었다. 날이 무척 더운데다가 군중이 열기를 더하는 바람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그예 정신을 잃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루이 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시

 

  리슐리외 추기경을 방문한 날은 5월 25일이었고, 그 며칠 뒤 왕비의 명에 따라 원장수녀를 로바르데몽의 마차로 생제르맹앙레로 데려갔다. 거기서 안 도트리시[각주:1]와 오랜 시간 대화가 이어졌다. 왕비께서는 ‘교회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을 환희에 차서 들여다보며’ 경이로운 손을 한 시간이 넘도록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감격하여 외쳤다. 

  “이렇게 기적적인 일을, 이다지도 큰 경건함을 심어주는 일을 어찌 의심할 수 있단 말이지? 이 놀라운 일을 믿지 못하고 헐뜯는 자들은 다 교회의 적이야!” 

 

  경이로운 현상을 전해 듣고 루이 13세도 친견하게 됐다. 성스러운 철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나서 하는 말. “그래, 이 기적이 진실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내 눈으로 보게 되니 믿음이 한층 더 굳어지는구나.” 그러고는 실제로 마귀 들림에 아주 회의적으로 대한 신하들을 불러들여 잔느 수녀의 손을 보이면서 물었다. “자, 이걸 보면서도 달리 할 말들이 있겠소?”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생각을 꺾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신사들 이름은 내가 자비심을 베풀어 언급하지 않으련다.」 원장수녀가 그런 기록을 남겼다. 

 

  이 의미심장한 날에 유일하게 발생한 난처한 순간은 왕비가 ‘성 요셉의 기도를 통해 순산할 수 있도록’ (이때 왕비는 미래의 루이 14세를 뱃속에 품은 지 6개월 됐다) 성스러운 슈미즈에서 한 조각을 잘라 달라고 부탁할 때였다. 원장수녀가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하나님은 조각내기를 원치 않으실 것이라고 대답해야 했다. 

  마마께옵서 정히 명하신다면 통째로 드릴 수는 있겠나이다. 하지만 감히 아뢰건대 이 성물을 여태껏 해왔듯이 제가 가지고 있다면, 성 요셉을 따르는 무수한 영혼이 자기네 수호성인의 진짜 성유물을 직접 보면서 많은 위안을 얻지 않겠나이까

  왕비가 뜻을 거둬들였고, 원장수녀가 제 보물을 잘 간수하여 파리로 돌아왔다. 

 

  생제르맹 방문 이후 그 다음 사건들은 죄다 다소 밋밋해 보였다. 생(Sens) 대주교와 두 시간에 걸친 면담도, 몰려든 3만 군중도, 심지어 “이것은 하나님 교회에서 지금까지 보아온 가장 완벽한 것들 중 하나요” 하고 말한 로마교황 대사와 나눈 대화조차 그랬다. 그는 “이렇게 확고한 증거가 나타났는데도 위그노들이 어째서 눈을 못 뜨고 계속 완강하게 버티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는 말도 덧붙였다.  

 

  잔느 수녀와 동행인이 6월 20일 파리를 떠났는데, 그 뒤로도 머무는 곳 어디서나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고 고위 성직자들과 VIP들이 두 순례자를 자기네 저택으로 맞아들였다. 파리를 떠난 지 열나흘 째 되는 날 도착한 리옹에서는 그들을 알퐁스 리슐리외 대주교가 찾아왔다. 그는 재상의 장형이자 역시 추기경이었다

 

  부모는 알퐁스가 몰타 기사단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몰타 기사들은 규정에 따라 수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알퐁스는 거기서 결격이었다. 그래서 리슐리외 가문에 속한 뤼송의 주교직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카로토지오 수도회 수사가 되기 위해 곧 그 자리를 내놓았다. 아우가 가파르게 출세한 뒤 수도원에서 나와 처음엔 엑스의 대주교가 됐다가 리옹 대주교가 됐으며 추기경 예모도 받았다. 

  이 고위 성직자는 평판이 아주 좋았지만 가끔씩 정신착란 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면 금실로 수를 놓은 진홍빛 망토를 걸치고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아마도 리슐리외 가문에는 정신질환이 대물림된 듯싶다. 그의 아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도 가끔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말이라고 상상했다는 얘기도 나돌았으니 말이다.) 

 

  알퐁스 추기경이 성스러운 이름자에 관심이 대단해서, 그걸 외과적인 방법으로 검사해보려 했다. 이 글자들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지울 수 있을까? 그가 가위를 들고 실험에 나섰다. 

  그러자 잔느 수녀가 「감히 한 말씀 올렸다. “나리, 이건 저한테 고통을 안기시는 겁니다.” 그러자 추기경이 주치의를 불러들여 철자들을 깎아내라고 일렀다. 내가 맞섰다. “나리, 이런 시험을 겪으라는 지시를 제 상급자들한테서 받지 못했습니다.” 나리께서는 그 상사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원장수녀가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 상급자의 상급자는 추기경-공작이요 알퐁스 추기경의 아우임을 내비추었다. 그러자 그 즉시 시험이 중단됐다.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수렝 수사였다. 그는 이미 안시에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한데 일시적인 실어증에 걸렸다. 히스테리 상태에서 비롯된 게 분명한데 그 자신은 그게 악마의 간책이라고 확신했다. 수렝이 살레의 성 프랑수아 관 곁에서 악마를 물리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안시에 있는 방문동정회 수녀들은 성 프랑수아의 마른 피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건 성 프랑수아의 하인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발사이자 외과의가 성인에게 사혈을 할 때마다 모아둔 것이었다. 샹탈의 요안나 대수녀원장이 수렝의 불행을 가엾게 여겨 이 마른 핏덩어리를 먹게 했다. 일순간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그가 외쳤다. “예수 마리아!” 그러나 그게 전부였고,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리옹의 예수회 수사들이 협의한 끝에 수렝과 동행자 토마스 신부가 길을 되돌아가서 원장수녀를 순례 마지막까지 동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르노블로 가는 길에 사건이 하나 벌어졌는데, 그걸 잔느 수녀는 ‘진실로 경탄할 만한’ 일이라 부른다. 

  포마 신부가 Veni Creator[각주:2] 기도문을 읽기 시작하자 수렝 신부가 즉각 응창한 것. 그 뒤로 그가 (적어도 한동안은) 자유자재로 입을 놀리게 됐다. 그르노블에서 수렝은 다시 찾은 목소리를 활용하여 성 요셉의 성유와 성스러운 이름자들에 대해 여러 번 유창하게 강론했다.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이 인물이 악이 선이고 거짓이 진실이라고 열정적으로 주장하는 광경에는 숭고하면서도 안타까운 뭔가가 있다. 설교단에서 목청을 돋우어 사법살인의 적절함을, 히스테리의 신성함을, 협잡의 기적 같은 작용을 청중에게 설득하려 애쓰면서 병든 육신과 분열 직전 위태로운 정신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물론 그건 다 하나님의 더 위대한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의 도덕성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도 별 가치가 없는 법. 선의를 품었다 해도 비현실적이고 부적절하게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남을 무턱대고 믿으며 인간 심리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수렝 같은 이들은 전통적 종교와 발전하는 과학 사이에 가교를 결코 놓을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수렝은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기에 어리석게 처신할 권리를 지니지 않았는데, 이 경우에는 우자처럼 행동했다. 그는 스스로 제 열정의 수난자가 됐고, 그 열정은 해로운 것으로 드러났다.[각주:3] 

 

  그르노블을 떠나 이틀쯤 뒤 도착한 안시에서 보니까, 성 요셉의 성유라는 명성이 그들보다 먼저 와 있었다. 사람들이 성유를 보고 냄새 맡으려고 아주 먼 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렝과 토마스는 신자들이 가져온 물건에 성스러운 슈미즈를 가져다대느라고 끝없이 분주했다. 묵주며 십자가, 메달, 심지어 천이며 종잇조각들까지. 

 

  (그 동안 원장수녀는 방문동정회 수녀원에 묵었다. 거기 원장은 마담 드 샹탈.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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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5편 3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2편

루덩의 악마들 2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당신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나?

유념해야 할 일상 메타 표현

마음의 평화를 간직하는 방법 10가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로운 생각과 말

14-1. 세계를 실재로 여기는 환상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과학 실험 3가지 

 

 

  1. 안 도트리시 (1601-1666) - 루이 13세의 왕비, 루이 14세의 모후. 1643-1661 프랑스 섭정. 에스파냐어로 Ana de Austria, 프랑스어로 Anne d'Autriche.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3세의 딸로서, ‘오스트리아의 안’이라 불린 것은 그녀의 증조부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를 상속 받은 카를 5세였기 때문. [본문으로]
  2. (라틴어) 오소서, 성령이여. [본문으로]
  3. “맹신은 바로 탐욕”이라고 파스칼은 말한다. “불신 역시 당연히 결함이지만, 맹신은 그 못지않게 파멸적이다.” - 저자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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