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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1648년 삼십년전쟁이 끝났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세가 꺾이고 게르마니아 주민 삼분지 일이 사라졌다. 유럽은 위대한 군주의 의지와 프랑스의 헤게모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였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라는 간주곡이 흐르는 동안 한 프롱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면 다른 프롱드가 나타나곤 했다. 마자랭이 스스로 유배에 내몰렸다가 권좌로 복귀했고, 다시 은퇴했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 다음엔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다.[각주:1]

  그맘때쯤 로바르데몽이 죽었다. 총신 지위에서 쫓겨나고 희미해진 채로. 그의 외아들은 말 타고 출몰하며 노상강도 짓을 하다가 살해됐다. 딸은 고아가 되어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루덩 우르술라회 수녀가 됐고, 거기서 제 아버지의 옛 휘하인 잔느 수녀 밑에 들었다.

 

   1656년 1월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 1부가 출간되고, 넉 달 뒤 위대한 얀센파 기적이 일어났다. 포르루아얄에 보관돼 있는 신성한 가시에 닿자 파스칼의 조카딸 눈이 기적적으로 치료된 것.[각주:2]

 

한 해 뒤 생주르 신부가 죽자 원장수녀한테는 다른 수녀들과 가엾은 수렝 외에는 서신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게 됐다. 한데 장 조셉 수렝은 아직도 병세가 심해 답신을 보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1658년 초 수렝이 직접 쓴 편지를 받았을 때 그 기쁨이란! 그것도 20여 년 만에 처음이었으니. 그녀가 이제 렌에 있는 방문동정회 수녀가 된 친구 마담 뒤우스한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는다. 

   「얼마나 놀라운가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정말 감탄할 만해요. 그분은 나한테서 생주르를 빼앗아 가더니 이제 내 영적 스승이 다시 나한테 편지를 쓸 수 있게 만드셨지 뭐에요! 이 편지를 받기 불과 며칠 전에 내 영혼 상태에 대해 긴 편지를 보냈거든요.」 

 

  그녀는 자신의 영혼 상태에 관해 수렝한테, 마담 뒤우스한테, 자기 편지를 읽고 응답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 그녀의 남아 있는 서신들을 책으로 펴낸다면 몇 권은 좋이 되리라. 소실된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원장수녀는 ‘내면의 삶’이라는 것이 꼭 공개적이고 다중 앞에서 하는 끊임없는 자기분석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로 내면의 삶이란 자신을 분석하지 않을 때 시작되는 법.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에만 집착하여 계속 떠들어대는 영혼은 거룩한 근간을 인식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를 주목하자. 

 

  「내가 여러분께 편지하지 않은 것은 그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오. 왜냐하면 난 진정 여러분 모두에게 선을 바라니까. 편지하지 않은 까닭이라면, 그저 필요한 것은 이미 충분히 언급된 것 같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뭔가 부족하다 싶다면, 그건 글쓰기나 말하기가 아니라오, 그런 것이야 흔히 필요 이상으로 넘치니까. 중요한 것은 침묵과 근면에 있어요.」 

  이 말은 십자가의 성 요한[각주:3]이 자기네 영적 상태를 아주 상세하게 적은 편지에 왜 답하지 않느냐고 불평한 수녀들에게 보낸 것. 그러나 ‘말하기란 마음을 흩뜨리고, 침묵과 근면은 생각을 모아서 스피릿을 굳힌다오.’ 

 

십자가의 성 요한, St. John of the Cross
St. John of the Cross

 

  한데, 오호라, 잔느는 침묵하기를 원치 않았구나. 그녀는 유명한 마담 드 세비네[각주:4]만큼이나 어휘가 풍부하고 표현이 장황했다. 하지만 오로지 자기 자신에 관한 가십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잔느 수녀를 마귀 들림의 절정 시기에 보았던 브리튼 사람 둘이 1660년 왕정복고와 더불어 마침내 저희 자리에 들어섰다. 톰 킬리그루는 궁정 침소관이 됐고, 검열 받지 않고 작품들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을 건축하도록 허가받았다. 존 메이틀랜드로 말하자면, 우스터에서 죄수가 되어 9년을 감금됐다가 이제 새 국왕의 국무비서요 총신 중의 총신이 됐다. 

  그러는 동안 원장수녀가 제 나이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병치레를 하면서, 걸어 다니는 성물이요 권표 받드는 사람, 성스러운 대상이요 수다스러운 안내자라는 이중 역할이 이제 견딜 수 없이 고단해졌다. 성스러운 이름자들은 1662년 마지막으로 나타났고, 그 뒤 독실한 신자들이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몇몇 이적이 멈췄다 해도 잔느의 허황된 영적 자부는 이전처럼 여전히 컸다. 수렝이 그녀한테 보낸 여러 편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아주 중요한 긴급함에 관해, 은혜의 근간에 관해 당신에게 말하려 하오. 곧, 겸허함 말이오. 이 성스러운 겸허함이 당신 영혼의 진정하고 견고한 반석이 되게끔 행동하기를 아주 간절히 바란다오. 우리가 편지로 주고받는, 숭고하고 고아한 본질의 것들이 그 어떤 경우에도 당신한테서 겸허함을 빼앗으면 안 된다오.」 

  아무리 남을 잘 믿고 기적적인 것을 과대평가함에도 불구하고 수렝은 서신으로 소통하는 여인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잔느 수녀는 대단히 널리 퍼진 ‘보바리스트’ 아종에 속했다. 이런 사람들에 관해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에서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스칼테레사 성녀에 관해 이렇게 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계시를 받고도 그녀가 보인 크나큰 겸허함이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녀가 계시를 통해 얻은 인식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녀의 말을 본받으려 무던히 애를 쓰고, 그렇게 하면 그녀의 본질을 본받는다고 상상하면서 우리 마음을 열심히 자극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기꺼워하는 덕목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기꺼운 상태로 들어서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잔느 수녀는 실제로 자신만이 펼치는 코미디의 주인공이었음을 마음 한 구석에서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반대 되는 것을 한층 더 확신했다. 루덩에 몇 차례 방문하고 여러 달 묵었던 마담 뒤우스는 제 가엾은 친구가 거의 모든 시간을 환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잔느는 마지막까지 환상의 노예였을까? 혹은 조명 받는 배우가 아니라 무대 뒤편 모습으로 죽을 수 있었을까? 무대 뒤편 본연의 모습은 황당하고 측은했다. 그러나 사실을 인정하기만 했다면, 테레사 성녀인 체하기를 그만두었다면, 모든 게 더 좋았을 것이다. 한사코 다른 사람인 양 처신한 이상 기회는 없었다. 그녀에겐 정직성과 온유함이 부족했다. 안 그렇다면 자신 안에 더 훌륭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었을 텐데

 

  1665년 1월 그녀가 죽은 뒤 그때까지 그녀가 벌여 온 코미디는 수녀원의 남은 멤버들에 의해 진짜 광대극으로 변했다. 그들은 시신의 목을 베어 잘린 머리를 성스러운 슈미즈와 나란히 크리스털 창이 달리고 은으로 씌운 상자에 담았다

  지역 화가가 주문 받아서 베게모트를 퇴치하는 그림을 엄청나게 크게 그렸다. 화폭 한가운데 원장수녀가 수렝 수사 앞에서 황홀경에 잠겨 무릎 꿇고 있고, 그 수렝을 트랑킬 신부와 어떤 카르멜회 수사가 돕고 있다. 그 장면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동부인하여 위엄 있게 구경하고 있다. 그들 뒤로 창가에는 지체가 좀 낮은 구경꾼들 얼굴이 보인다. 그림 위쪽에는 후광에 둘러싸이고 케루빔을 거느린 성 요셉이 떠 있다. 오른손에 벼락 세 개를 쥐고 있는데, 그것을 마귀 들린 자들 입에서 나오는 시커먼 악마들과 악령들한테 내던지고 있다.  

  이 걸작은 우르술라회 채플에 팔십 년 넘게 걸려 있으면서 만인의 경배 대상이 됐다. 그러나 1750년 푸아티에 주교가 루덩에 왔다가 보고는 어디 멀리 치우라고 지시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순종 의무 사이에서 애를 끓다가 수녀들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래서 화폭 위에 다른 훨씬 더 큰 그림을 걸었다. 원장수녀가 가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수녀원이 쇠락을 거듭하다가 1772년 폐쇄됐다. 그림은 성 십자가 교회 참사회 위원한테 넘어갔고, 슈미즈와 미라가 된 머리는 십중팔구 어떤 좀 더 운이 좋은 수녀원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세 가지 다 지금은 종적이 묘연하다. 

(10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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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자기인식.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통 기량 향상 - 신체 언어 팁 16가지

우리를 매트릭스에 묶어두는 환상 6가지

 

 

  1. ‘프롱드의 난’은 프랑스에서 1648-1653 어간에 잇따라 발생한 반정부 폭동으로, 사실상 시민전쟁의 양상을 띠었다. 이는 또 1635년에 시작된 프랑스와 에스파냐 전쟁의 와중이었다. 파리 고등법원의 프롱드와 귀족들의 프롱드로 대별되는데, 전자는 베스트팔렌 조약 직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 프롱드 난은 결국 지역 귀족세력의 권한 약화와 절대군주국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fronde는 본래 투석기를 뜻하는데, 파리 군중이 마자랭 지지자들 집의 창문을 깨는 데 이용했다. 이 와중에 마자랭은 두 번 권좌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했다. 오늘날 프롱드는, 말만 그럴싸하게 하며 실제로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권력자들에 대한 불만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2. 파스칼의 누이의 어린 딸인 마르그뤼트 페리에는 왼쪽 눈의 누공이 썩어 들어가는 질병으로 3년 넘게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기독교 교육을 시키려는 모친의 뜻에 따라, 언니와 함께 포르루아얄 수녀원에 기숙학생으로 들어갔다. ‘fistula lacrymalis’라고 일컫는 질환 때문에 누공이 안에서 심하게 손상되고 코뼈가 썩고 입천장에 구멍이 나서, 분출물이 뺨과 콧구멍, 목구멍으로 흘러내릴 정도. 머리를 만지기만 해도 눈가에 극심한 통증. 그 모습이 참으로 딱한데다가 분비물 냄새가 하도 역겨워서 다른 학생들과 떨어져 독방을 써야 했다. 파리의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다 들러붙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어느 날 신성한 가시를 눈에 댄 뒤 그 즉시 병이 싹 사라졌다. 6명 의사와 5명 외과의가 이 기적을 인정했다. 이 사건의 충격이 어찌나 컸든지, 안 도트리시조차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일설에 의하면 마자랭이 이후 5년 동안 얀센파를 박해하지 않게끔 했다고. 신성한 가시를 접하고 치료받은 사람이 두어 달 사이에 수십 명으로 늘었다. [본문으로]
  3. St. John of the Cross (에스파냐어: San Juan de la Cruz, 1542–1591) - 반종교개혁의 중심인물,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 로마가톨릭 성인, 카르멜회 탁발수사요 성직자. 수도원 개혁에 박차. 영성에 관해 에스파냐어로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다. “신앙은 하나님께 가는 두 다리요, 사랑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안내자.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신앙의 신비와 은밀함을 잘 묵상하고 관상케 한다면, 사랑은 신앙 안에 담긴 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해줄 것.” [본문으로]
  4. Marie de Sévigné (1626-96) - 프랑스의 귀족. 나이 스물넷에 남편 잃고 홀로 자녀들 양육. 위트와 생생함이 넘치는 편지들을 남긴 일로 유명한데, 대부분 편지를 딸에게 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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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 수녀원 원장 잔느와 수녀들

 


 

4

 

하나님 섬김이라는 소명을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17세기 수녀원 생활이 죽도록 따분하게 보였을 터이다. 그날이 다 그날 같은 생활은 그저 자잘한 사건과 소문들, 가끔 들르는 방문객들과 담소, 혹은 여가에 시시한 손작업 등으로 그 단조로움이 조금 덜어졌을 뿐. 

수렝 신부가 여러 서신에서 짚을 엮어 만든 장식물에 관해 얘기하는데, 그가 아는 많은 수녀들이 남는 시간 대부분을 이 작업으로 보냈다. 그들의 걸작은 역시 지푸라기로 만든 말 여섯 마리가 끄는 미니어처 지푸라기 마차. 그건 어떤 귀족 여성 후원자의 경대에 놓일 선물이었다. 

 

콜롱비에 신부가 방문동정회[각주:1] 수녀들에 관해 이렇게 적는다. 

이 수도회의 드높은 도덕적 지향과 개중에 고결한 수녀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담장 안에는 규율을 지키고 미사를 드리고 기도회에 다니고 고해성사를 보고 성찬례에 참여하지만, 그걸 다 그저 종이 울리고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수녀들의 행위에는 정성이 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네 작은 생각과 계획들로 바빠서 하나님 일에는 거의 무심하다. 

모든 따스한 감정은 수녀원 안팎에 있는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쏟고 주님께는 그저 맥없고 진실성 없는 눈길만 돌리니, 그런 것은 그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든 영혼이 전능자에 대한 사랑으로 영원히 불타는 둥지가 되어야 할 공동체들이 평범하고 지루함 속에서 의미 없이 생활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녀원 모습

 

저 유명한 포르루아얄 수녀원[각주:2]장 라신[각주:3]에게 아주 감탄할 만한 공동체로 보인 까닭은 ‘그 객실들에는 적막이 지배하고, 수녀들이 대화에 끼어들려 안달하지 않고, 헛된 세상사에 관심 두지 않고, 심지어 이웃을 두고 뒷공론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포르루아얄의 이런 보기 드문 장점을 통해 우리는 그보다 못한 수녀원들의 결함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다. 

 

1626년 루덩으로 이전한 우르술라회[각주:4] 수녀원은 다른 여성 거처들보다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열일곱 수녀는 거의 젊은 귀족 영애들이었다. 그들이 수도생활에 들어선 까닭은 복음서 말씀을 따르고 기독교적 완성을 이루려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계층의 구혼자들이 수락할 만한 지참금을 집안에서 마련할 여유가 못 됐기 때문이다. 여기 수녀들은 그 어떤 특별한 스캔들로도 경건함으로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규정을 지켰지만 종교적 열성과 경건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루덩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 주민들은 절반이 신교도로서 수녀원에 아주 인색했고 수녀들한테도 돈이 없었다. 낡고 음울한 하우스 하나만 임차했는데, 그것도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다들 들어와 살기를 마다하는 건물이었다. 건물에 가구도 없어서 수녀들이 처음엔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들은 도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받는 수업료로 생활할 요량이었지만 여학생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드 사질리, 데스쿠블로, 바르베지에, 라모테, 벨시엘, 댐피에르 같은 귀족 출신들이 제 손으로 갖은 잡일을 하게 됐고, 재계일인 금요일뿐 아니라 월, 화, 수, 목요일에도 식탁에 고기가 놓이지 못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던 끝에 그들을 구한 것은 속물근성이었다. 

 

루덩의 부르주아들이 알고 보니… 아주 적은 돈으로도 자기네 딸들이 좋은 프랑스어와 궁정 매너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한때 추방됐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재종누이와 수르디스 추기경의 더 가까운 인척과 후작의 작은딸과 푸아티에 주교의 질녀한테서 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수녀원에 기숙 학생들과 통학 학생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여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번영도 찾아왔다. 이제 지저분한 일은 하녀들이 맡고, 식탁에 쇠고기와 양고기가 다시 나오고, 마루에 깔렸던 짚 매트리스가 나무 침상으로 교체됐다. 

 

루덩 소도시 전경

 

이 새 공동체의 원장이 1627년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새 원장이 임명됐다. 그녀 이름은 ‘천사들의 수녀 잔느. 속세에서 이름은 잔느 벨시엘, 코제의 남작인 루이 벨시엘과, 또 남작 가문 못잖게 전통 있고 저명한 가문 출신인 샤를롯데 데실레의 딸이었다. 1602년생이니까 이제 이십대 중반.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쳐져서 몸매가 좀 기형이었다. 아마도 골결핵의 후유증이리라. 

잔느도 당대 대다수 귀족 영애들처럼 빈한한 교육을 받았다. 그 대신 그녀에겐 타고난 지능에다 한가락 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 성격 때문에 그녀가 다른 이들에겐 고통이 되고 제 자신에겐 최악의 적이 됐다. 

 

이 어린애 같은 사람은 기형적인 신체 때문에 볼품이 없었다. 자신이 추하다는 느낌과 혐오나 동정의 대상일 뿐이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그녀에게 고질적인 분한을 일으켰다. 그 분한 때문에 누구를 좋아할 수도 없고 누구한테서 사랑받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다 보니 그들도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방어적인 갑각 속에 살며 자신의 적들을 공격할 때만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녀에게는 모든 사람이 선험적으로 적이었으며, 난데없는 빈정거림이나 이상하고 발작적으로 터뜨리는 조소가 공격 수단이었다

 

수렝이 그녀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알고 보니, 원장수녀의 기질은 뭔가 특이하게 명랑해서 늘 날카로운 웃음과 조롱을 날리는데, 그런 고약함은 그녀 안에 들어앉은 악마 발람이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의 성격은 하나님 사업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진지함과 정반대이며, 뭔가 악의적인 기쁨이 그 영혼을 차지하여 하나님과 합일하는 데 필수적인 양심의 가책을 파괴했다

이 불길한 까불거림을 한 시간만 대해도 내가 여러 날 정성껏 쌓은 공력이 무너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나운 적에게서 그녀가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하려고 난 무던히 애썼다.」

‘하나님 사업’과 아주 잘 양립할 수 있는 웃음이 있다.
곧, 겸허하고 자기비판적인 웃음, 온후하고 너그러운 웃음, 이 세상의 비뚤어진 부조리에 대한 좌절과 분개를 대신하는 웃음. 

 

그러나 잔느의 웃음은 그런 것들과 전혀 달랐으니, 그저 조소 아니면 냉소뿐이었다. 그런 웃음을 늘 다른 이들한테만 퍼부었지 자신에게는 절대 돌리지 않았다. 곱사등이의 비웃음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다 깔보면서 자기 아래에 두려고 들었다. 또 그녀의 냉소란 잠깐일지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갈급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대 기준에 엄숙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모든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요 조롱이었다

 

루덩 수녀원 원장수녀 잔느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숱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그렇게 불쾌한 아이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부모는 딸을 인근 수녀원 원장으로 있는 늙은 숙모에게 보내고 말았다. 두세 해 만에 불명예스럽게 돌아왔다. 다른 수녀들이 그녀와 잘 지내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세월은 흐르는데 부친 저택에서 사는 게 어찌나 지겨운지 종교적 은둔처라도 차라리 집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그러자 푸아티에에 있는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들어가서 초심자 수련 기간을 보내고 수도서원을 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훌륭한 수녀가 못 됐다. 하지만 집안이 부유하고 영향력 있기 때문에 방자한 피후견인을 수녀원장이 꾹꾹 참으며 데리고 있게 됐다. 

그러다가 거의 하룻밤 새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수녀원이 루덩으로 이전한 뒤 잔느가 아주 경건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바뀐 것! 푸아티에에서는 말도 안 듣고 열의도 안 보이고 제 할 일에도 태만하던 젊은 여인이 이제 완벽하게 독실한 사람이 되어서 온유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처신했다. 그 놀라운 변화에 감명 받은 늙은 수녀원장이 퇴임하면서 잔느 자매를 강력한 후임자로 추천했다. 

 

그 개심 사연을 15년 뒤 잔느가 이렇게 기술한다. 

「난 늘 지도부 눈에 띄려 애썼고, 숙사에 수녀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수녀원장은 곧 공동체의 모든 일을 나한테 맡기게 됐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일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좋은 자매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수녀원장에게 숱한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난 그녀 기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그녀는 곧 나를 모든 이들에게 모범으로 삼았다. 그녀는 내가 선하며 덕을 행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한껏 부풀려서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계속 좋게 보이고 내 성향에 호감을 갖게끔 위선을 떨었다. 수녀원장은 나한테 많은 특전을 용인했으며, 그것을 난 마음껏 써먹었다. 그녀 자신이 선하고 덕이 있는데다 나 역시 기독교적 완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한다고 믿는 만큼 나를 훌륭한 수도사들과 대화하도록 자주 불렀다. 난 그녀 비위를 맞추려고 거기에 따랐다. 게다가 그건 시간 죽이기에도 좋았다.」 

 

훌륭한 수도사들과 나누는 대화는 숙사의 널따란 객실을 두 부분으로 가른 철창을 통해 벌어졌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영적 삶에 관해 새로 번역된 책들을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었다. 

어떤 날은 블로시우스[각주:5]의 해설서, 또 어떤 날은 테레사 성녀의 자서전 혹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혹은 천사들의 본성에 관한 델 리오의 저술 등이었다. 

 

그런 책들을 다 읽고 그 내용을 수녀원장이며 수도사들과 토론하면서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바뀌는 것을 알았다. 객실에서 나누는 경건한 대화와 신비주의 서적 공부는 이제 더 이상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각별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됐다. 단, 그 목표가… 

그녀가 신비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지혜로운 카르멜회 수사들과 대화를 나눴다면, 그건 「영적 삶으로 돌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제 지능을 뽐내고, 모든 수녀원에 있는 다른 수녀들을 능가하려는 욕심에 지식을 채우기 위함일 뿐이었다.」 

 

루덩 수녀원 수녀들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곱사등이의 갈구가 또 다른 출구를 찾았다. 남들을 교묘하게 다루는 새롭고 재미난 분야 말이다. 빈정대고 냉소 터뜨리기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신비주의 신학과 영성 연구에 들인 결과, 그 분야에서 학식 갖춘 상담자요 전문가가 됐다. 

새로이 습득한 지식에 기고만장한 그녀가 이제 다른 자매들을 더욱 더 경멸과 연민이 출렁이는 느낌으로 내려다보며 흐뭇해했다. 

 

그래, 이 불쌍한 멍청이들이 신앙심은 깊어서 정결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고 있지. 그러나 정결이 도대체 뭐야! 무지와 둔감함일 뿐이잖아! 특별한 은혜에 대해 저들이 뭘 아나? 영적인 접촉을, 황홀함과 계시를, 감각의 유혹과 죽임을, 제까짓 것들이 알기나 하겠어?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 절로 만족스레 나왔다. 

흥, 저들은 아무 것도 몰라! 반면에, 난 사실상 모든 지혜를 터득했고, 하고 있잖아!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유난히 처지고 키가 난쟁이만한 그녀가 그렇게 우쭐댔다

 

(마담 보바리는 생을 비극적으로 마쳤다. 자신을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상상했기 때문에 그렇다...  <루덩의 악마들> 4편 계속) 

 

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루덩의 악마들 11편 1

루덩의 악마들 10편 1

루덩의 악마들 9편 1

루덩의 악마들 8편 1

루덩의 악마들 7-1편 1

루덩의 악마들 6편 1

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3편 3

루덩의 악마들 3-3편 2

루덩의 악마들 3-3편 1

루덩의 악마들 3-2편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7

루덩의 악마들 2편 6

루덩의 악마들 2편 4

루덩의 악마들 2편 2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Order of the Visita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 성모 마리아 방문 동정회. 1610년 살레의 성 프랑수아(1567-1622)와 성 쟌느 샹탈(1572-1641)이 설립. [본문으로]
  2. Port Royal -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 1204년 설립돼 17세기에는 얀센파의 거점. 유명한 학자며 계몽된 교육자들이 이 공동체 주변에서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했다. [본문으로]
  3. Jean Racine (1639-1699) - 고전주의 시대 프랑스 비극 작가, 문필가.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로 꼽힌다. 포르루아얄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피제니’, ‘페드르’. [본문으로]
  4. 우르술라회 - 로마가톨릭 여성 수도회. 성 안젤라 메디치가 1535년 11월 이탈리아 브레시아에 설립. 주로 소녀들 교육, 병자와 빈자 구휼 활동. 그들의 수호성인은 우르술라 성녀. [본문으로]
  5. Blosius - 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인 316년 아르메니아에서 처형된 순교자, 가톨릭 성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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