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연애 대위법
Aldous Huxley
POINT COUNTER POINT
그가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한 사내가 석간신문을 팔고 있었다.
사회주의의 강탈적 계획. 제1 독회.
언뜻 눈에 들어온 기사 제목. 월터가 잡념을 떨칠 요량으로 신문을 한 부 샀다. 자유 노동당 내각이 제출한 광산 국유화 법안이 첫 번째 독회에서 통상적인 다수표로 통과됐다. 월터가 뿌듯한 마음으로 그 기사를 읽었다. 그의 정치적 견해는 진보적이었다. 그러나 석간신문 경영자의 견해는 달랐다. 주요 기사는 아주 폭력적인 논조로 쓰였다.
‘불한당들.’ 기사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사가 공격하는 모든 것에 공감과 열정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자본가들과 수구 세력에 반가운 증오심이 일었다. 그가 폐거하고 있는 담장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복잡한 개인사들이 사라졌다. 정치적 투쟁의 기쁨에 사로잡혀 자신의 경계를 넘어섰고, 이른바 본연의 ‘나’보다 더 크고 단순한 사람이 됐다.
‘불한당들.’ 그가 압제자들과 독점 자본가들을 생각하며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캠든 타운 역에서 키가 작고 얼굴 쪼글쪼글한 사람이 곁에 앉았다.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늙은이의 담배 파이프에서 나는 악취가 얼마나 심한지 월터가 다른 빈자리가 있나 객차 안을 두리번거렸다. 빈자리가 있었지만, 좀 더 생각하고는 그냥 앉아 있기로 했다. 괜히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어 시비가 붙을지도 몰라. 매캐한 담배 연기가 목구멍을 자극하는 바람에 기침이 나왔다.
“사람은 자기 취향과 본능에 충실해야 하네.” 필립 퀄즈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네 감정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주된 전제가 아니라면 철학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만약 자네에게 종교적 체험이 없다면, 신을 믿는다는 것은 바보짓일세. 그건 역겨움을 느끼지 않고는 굴을 먹을 수 없으면서도 굴이 좋다고 믿는 것과 매한가지야.”
퀴퀴한 땀내가 니코틴 연기에 뒤섞여 월터의 콧구멍까지 침입했다. 기사를 계속 읽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걸 국유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것에 우리는 더 짧고 흔한 명칭을 붙일 수 있으니, 바로 ‘도둑질’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건 도적들한테서 다시 훔치는 것이요, 그 도적들로 인해 피해 본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이었다.
체수 작은 늙은이가 상체를 숙이더니 쩍 벌린 두 다리 사이로 조심스레 수직으로 침을 뱉었다. 침을 구두 뒤축으로 비볐다. 월터가 눈길을 돌렸다. 그는 억눌리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박해자들에 대한 증오를 절절히 느끼고 싶었다. 사람은 자기 취향과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취향과 본능은 어쩌다 생긴 것이었다. 불변의 원칙들이 있었다. 한데 그 자명한 원칙들이 당신의 주된 전제가 되지 못했다면?… 옛날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그는 아홉 살이었고, 가텐든 인근 들판을 엄마와 함께 걷고 있었다. 각각 앵초를 한 다발씩 들고 있었다. 분명 배츠 코너 쪽으로 걸었을 거야. 인근에서 앵초가 자라는 곳은 거기밖에 없으니까. 엄마가 말했다.
“우리, 가엾은 웨더링턴 집에 잠깐 들를까. 그 사람이 몹시 아프단다.”
엄마가 오두막 문을 두드렸다. 웨더링턴은 월터네 저택에서 정원사 조수로 일했는데, 지난 한 달 동안은 보이지 않았다. 월터 기억에, 그는 창백하고 말랐으며 해수를 달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도 별로 없었다. 월터는 그 사람한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여자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웨더링턴 부인.”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웨더링턴이 쿠션에 떠받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커다란 두 눈에 확대된 동공이 움푹 팬 눈구멍에서 내다봤다. 튀어나온 뼈들을 덮은 피부는 핏기 하나 없이 땀에 젖었다. 그러나 얼굴보다 더 참혹한 인상을 준 것은 목…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앙상한 목이었다. 잠옷 소매에서 가느다란 막대기 두 개가 삐죽 튀어나왔는데, 그게 손이었다. 뼈만 남은 손가락들이 달린 손은 영락없는 갈퀴였다. 또 병자의 방에서 풍기는 냄새란! 창문이 죄다 꼭꼭 닫혔는데, 작은 벽난로에서는 불길이 타올랐다. 답답한 공기에는 병든 몸이 발산하는 체취와 퀴퀴한 숨 냄새가 가득했어. 그 후텁지근하고 폐쇄된 방안에서 오랫동안 갇힌 탓에 달달한 듯하면서 구역질 일으키는 썩은 냄새. 세상 그 어떤 냄새도, 아무리 혐오스러운 것일지라도, 그것보다는 덜 끔찍했을 거야. 병자가 누운 방의 그 냄새가 특히 견디기 힘든 건, 통풍이 전혀 되지 않아 구석구석 배면서 들쩍지근하게 썩었기 때문이야.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쳤다.
그가 기억을 소독하기 위해 궐련초에 불을 붙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일 몸을 씻고 창문 열어 환기하도록 배웠다. 아직 어린애인 그를 처음 교회에 데려갔을 때, 사람들 몸내 때문에 속이 몹시 메스꺼웠다. 급히 데리고 나가야 했다. 엄마는 그를 두 번 다시 교회에 데려가지 않았다.
우리를 지나치게 위생적이고 무균 상태로 자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모임에서 구토 증세를 보이는 양육이 과연 괜찮을 수 있을까? 그는 그 사람들을 좋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인에게 통제되지 않는 혐오감과 구토를 유발하는 분위기에서는 사랑이 꽃필 수 없어.
웨더링턴이라는 병자의 방안에서는 연민조차 꽃피우기 힘들었다. 죽어가는 사람이며 그 아내와 어머니가 얘기 나누는 동안 그는 최면에 걸린 듯 앉아서 침대 위 피골상접한 사람을 끔찍한 심경으로 훑어보며 앵초 묶음 사이로 후텁지근하고 구역질 나는 공기를 들이켰다. 신선하고 기막힌 앵초 향기에도 방안 퀴퀴한 냄새가 배 있었다. 그는 연민이 아니라 공포와 혐오를 느꼈다. 웨더링턴 부인이 병자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 돌리고 눈물 흘릴 때도, 연민보다는 거북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여인의 비탄은 이 끔찍한 방에서 얼른 밖으로, 한없이 맑은 공기와 햇볕이 있는 곳으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키우기만 했다.
그 당시 자신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 그렇게 느꼈었고, 이제 또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사람은 자기 본능에 충실해야 하네.” 아니야, 다 그렇지는 않아, 나쁜 취향과 본능은 아니야, 그런 것에는 맞서야 해.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곁에 앉은 노인이 다시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월터가 그때 썩은 공기를 최대한 덜 들이쉬려고 애쓰면서 최대한 오래 숨을 참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앵초 묶음에 코를 대고 깊이 숨을 들이쉰 뒤, 마흔까지 세고 숨을 내뱉은 뒤 다시 들이쉬기. 늙은이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침을 뱉었다.
「국유화로 노동자들 복지가 향상된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옳지 않다. 지난 몇 해 동안 납세자들은 관료적 통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쓰디쓴 경험으로 확인했다. 만약 노동자들이 상상하기를…」
월터가 눈을 감고 병자의 방을 보았다. 작별 시간이 되자 그가 뼈만 남은 손을 쥐었다. 그 손은 이부자리 위에 맥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가 다 죽어가는 앙상한 손가락들 밑으로 자기 손을 넣어서 잠깐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건 차갑고 눅눅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자기 코트 자락에 손바닥을 슬그머니 문질렀다. 오래 참았던 숨을 거칠게 내뿜고 역겨운 공기를 다시 들이켰다. 다행히 그게 마지막 할 일이었다. 엄마가 이미 문 쪽으로 가고 있었으니까. 엄마가 예뻐하는 페키니즈가 왈왈 짖으며 주변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얌전히, 티앙(T’ang)!” 엄마가 또렷하고 예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월터가 회상하기에, 티앙이라는 이름에서 아포스트로피 음가를 제대로 내는 사람은 영국에서 어머니가 유일했을 듯싶다.
두 사람이 들판에 난 소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중국 용처럼 환상적이고 황당한 티앙이 자기한테는 거대해 보이는 장애물들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앞서 달렸다. 꼬리털이 바람에 흩날렸다. 가끔 아주 키 큰 풀줄기들이 나타날 때면 티앙은 각설탕을 달라고 할 때처럼 작고 펑퍼짐한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높이를 가늠이라도 하듯이 퉁방울눈으로 덤불을 응시했다.
흰 조각구름 드리운 청명한 하늘 아래서 월터는 자신이 집행 유예된 죄수처럼 느껴졌다. 냅다 달리면서 소리를 내질렀다. 어머니는 말없이 천천히 걸었어. 간간이 발길을 멈추고 눈을 감았어. 마음의 동요가 심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어머니는 자주 심란해하셨어, 월터가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떠올렸다. 불쌍한 웨더링턴 때문에 마음이 몹시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얼마나 자주 발길을 멈추었는지, 그는 기억했다.
“엄마, 빨리 가요!” 그가 소리치며 재촉했다. “차 마실 시간에 늦겠어.”
요리사가 차와 함께 먹을 과자를 구워냈고, 또 어제 크림 넣어 만든 파이와 막 병뚜껑을 딴 버찌 잼이 있었다.
“사람은 자기 취향과 본능에 충실해야 해.”
그러나 출생이라는 우연한 사건이 그에게 그런 것들을 결정해 놓았다. 정의는 불변이고, 늙은이의 파이프와 웨더링턴의 병실에도 불구하고 동정심과 형제애는 아름다웠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것 덕분에 아름다웠다. 기차가 속력을 늦췄다. 레스터 스퀘어. 플랫폼으로 나와서 승강기 쪽으로 향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주된 전제는 부정하기 어렵고, 개인적이지 않은 주된 전제는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믿기 어려워. 성실과 정조, 다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지금 철학의 개인적이고 주된 전제로는 루시 탄타마운트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갈망하는…
“표들을 내십시오!”
내면의 격론이 다시 들썩이려 들었다. 그걸 그가 의식적으로 억눌렀고, 안내원이 문을 쾅 닫았다. 승강기가 올라갔다. 거리에서 월터가 택시를 잡았다.
“펠멜 거리, 탄타마운트 하우스로 갑시다.”
(CHAPTER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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