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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전쟁이 터무니없고 끔찍한 까닭은...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루덩 성의 아성 문제에서 국왕이 결국 추기경한테 양보했고, 로바르데몽이 ‘백조와 십자가’ 객사에 다시 묵게 됐다. 메스멩을 비롯해 추기경 지지자들이 기뻐 날뛰었다. 

  다르마냑이 권력 다툼에서 패한 거야, 아성은 파괴되고 말겠군. 이제 저 지긋지긋한 주임신부만 제거하면 되겠어! 

 

  국왕 전권대행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메스멩이 마귀 들린 수녀들 얘기를 짐짓 입에 올렸다. 로바르데몽이 주의 깊게 들었다. 왕년에 마녀 십여 명을 재판하고 불살라 죽인 경력이 있는 만큼, 스스로 초자연적인 문제에서 전문가라고 여길 권리가 충분했다

  다음날 그가 파켕 거리에 있는 수녀원에 잠깐 들렀다. 메스멩한테 들은 얘기를 참사회 위원 미뇽이 확인해 주었다. 수녀원장도 그랬고, 추기경의 인척인 클레어 수녀도 그랬고, 로바르데몽의 처제 둘도 그랬다. 

 

  모든 수녀들 육신에 악령이 들끓었었지요. 악령은 마법 때문에 들어앉았는데, 마법사가 바로 그랑디에랍니다. 이런 사실은 악마들이 수녀들 입을 통해 스스로 인정한 거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런데도 대주교 예하께서 마귀 들림 따위는 전혀 없다고 결정 내리신 바람에 수녀원이 수치와 몰락에 빠지게 됐어요. 말도 안 되게 불공정한 일이지요! 

  그러면서 수녀들은 로바르데몽이 추기경 예하와 국왕 폐하께 간언하여 일을 바로잡아 달라고 애원했다. 

 

  남작이 공감하는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약속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마녀재판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추기경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실 터인가? 오오, 그걸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돼.  

 때로 리슐리외는 마녀재판을 아주 진지하게 대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몽테뉴나 샤롱[각주:1]의 제자들한테서나 나올 법하다 싶은 코웃음을 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흠, 위대한 인물은 지존과 변덕스러운 아이와 야수의 혼합물처럼 모셔야 해. 그러면서 지존에게는 순종하고, 어린애는 어르면서 등골 빼먹고, 야수는 잘 달래다가 흥분한다 싶으면 피하는 거지. 초인간적인 군림과 표준 이하의 포악함과 어린애 변덕이라는 이 비상식적인 삼위일체를 부주의한 발언으로 심기 건드려 심각한 불상사에 봉착한 궁정 신하가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수녀들이야 저들 편한 대로 울부짖고 애걸할 수 있지만,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알아내기 전에는 그들을 돕고 나설 의향이 로바르데몽에겐 전혀 없었다. 

 

  며칠 지나 루덩 시가 존귀한 인사를 맞이하는 영광을 누렸다. 앙리 콩데 공.[각주:2] 왕실의 이 존재는 악명 높은 남색자인데, 게다가 모범적인 (위선적인) 신앙심에다 가장 야비한 탐욕까지 겸비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한때 추기경의 반대자였지만, 리슐리외가 부동의 입지를 굳힌 이제는 예하의 가장 알랑거리는 신봉자들 중 하나가 됐다. 

  대공은 마귀 들린 수녀들 얘기를 듣자마자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미뇽과 수녀들이 대공을 즐겁게 해 드린다는 생각에 몹시 행복했다. 로바르데몽과 숱한 수행원을 거느리고 대공이 수녀원에 도착하자 미뇽이 영접하여 채플로 모시고, 거기서 성대한 미사가 열렸다. 

 

  처음에 수녀들은 아주 경건하고 단정하게 처신했다. 그러나 성찬례가 시작되자 원장수녀와 클레어 수녀, 아그네스 수녀가 발작을 일으켜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며 음란한 말을 신음 섞어 내뱉고 신을 모독하는 소리를 내며 으르렁댔다. 그러자 다른 수녀들도 똑같이 따라하니, 두어 시간 동안 예배당 전체가 곰 사육장과 유곽이 뒤섞인 곳처럼 보였다. 

  그 광경이 대공 전하께는 엄청난 인상을 일으켰다. 콩데 공은 수녀들한테 마귀가 들었음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이 사건을 당장 예하께 보고하라고 로바르데몽을 다그쳤다

 

고관이 참석한 엑소시즘

 

  한 목격자가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나 전권대행은 이 기묘한 장면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객사로 돌아와서는 수녀들의 비참한 상태에 측은함을 한가득 느꼈다. 그런 감정을 감추기 위해 그랑디에의 친구들을 만찬에 초대하면서 그랑디에도 불렀다.」 

  그것은 유쾌하고 달콤한 파티였을 것이다. 

 

  로바르데몽이 하도 조심스럽게 굴며 몸을 사리자 주임신부의 적대자들이 박차를 가하기 위해 새롭고 더 심상치 않은 비난거리를 들고 나섰다. 

  그랑디에는 신앙을 저버리고 하느님께 반역하고 수녀원 모든 수녀들에게 마법을 건 것만이 아닙니다. 추기경 예하를 두고 추잡한 비방의 글을 쓴 작자이기도 해요. <루덩 구두장이 여자의 서신>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이 있는데, 여섯 해 전인 1627년에 인쇄된 게 바로 그겁니다. 

 

  그랑디에가 이 글의 작자일 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 서신에 나오는 여인과 실제로 친하게 지내고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한때 그녀의 정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그가 그걸 썼을지 모른다는 짐작이 전혀 허튼소리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캐서린 암몽은 똑똑하고 예쁜 프롤레타리아인데 1616년 왕비 마리 메디치[각주:3]가 루덩에 머물 때 눈길을 끌어 시중들다가 곧 공식적으로는 왕실 제화공, 비공식적으로는 왕실의 절친한 친구요 막일꾼이 되었다. 블루아에 유배중인 왕비를 모시면서 캐서린이 간간이 루덩 고향집을 찾아오던 때 그랑디에가 그녀를 알았다. 아주 내밀한 사이였다고 말들 했다. 

  나중에 다시 파리에 돌아가서, 글을 쓸 줄 아는 캐서린이 그랑디에한테 편지를 계속 보내 궁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세하게 전했다. 편지마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그랑디에가 짜릿한 대목을 친구들한테 읽어주곤 했다. 그 친구들 중에 당시 검찰관이요 미녀 필리프의 부친인 트렌캉도 있었다. 바로 그 트렌캉이 친구에서 철천지원수로 바뀌어 이제 캐서린 암몽의 편지 수신인을 <구두장이>의 작자라고 고발한 것이다. 이번에는 로바르데몽이 굳이 속내를 감추려 들지 않았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마녀며 악마들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실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행정 처리 방식이며 그의 가족과 그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리슐리외의 정치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삭탈관직과 유배를 자초함이었다. 그를 모욕한다는 것은 교수대에서, 혹은 (1626년 칙령에 따라 최고 권력의 명예를 괴문서로 훼손하는 짓은 대역죄로 선포된 만큼) 심지어 장작더미 위 기둥에 묶이거나 마차바퀴 위에서 죽음을 무릅쓴다는 뜻이었다. <구두장이>를 인쇄했다는 이유 하나로 불쌍한 인쇄공은 이미 갤리선으로 쫓겨났다. 그런 마당에 주역인 작자가 붙잡힌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이번에는 자신의 열정을 예하께서 확실히 알아주리라 확신한 로바르데몽이 트렌캉이 늘어놓는 말을 열심히 귀담아들었다. 메스멩도 빈둥거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그랑디에는 수도사와 탁발수사들의 공인된 적이고 루덩의 수도사와 탁발수사들은 극소수를 제하고는 그랑디에의 공공연한 적이었다. 카르멜회 수사들이 그랑디에를 증오할 가장 중요한 이유를 제법 지니고 있었지만 이 수도회는 공세를 퍼부을 만한 위치에 있지 못했다. 

  한데 카푸친회는 주임신부의 수완에 덜 시달렸지만 그에게 타격을 가할 힘은 카르멜회보다 훨씬 더 컸다. 왜냐하면 카푸친회 수사들은 조셉 수사의 동료로서 그와 늘 연락을 주고받는데, 바로 이 막후 인물이 추기경의 막역지우요 주된 조언자요 오른팔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랑디에를 겨냥한 새로운 비난과 고발을 메스멩이 믿고 털어놓은 상대는 흰옷의 카르멜회 수사들이 아니라 회색 수도복을 입은 카푸친회 탁발수사들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 즉시 조셉 수사한테 보내는 서신이 작성됐고, 때마침 파리로 돌아가려는 로바르데몽에게 사적으로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작이 위임을 수락했다. 

  그날 저녁 로바르데몽이 그랑디에와 그의 친구들을 작별 만찬에 초대했다. 남작이 주임신부의 건강 위해 축배를 들고, 그와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고, 그가 사악한 적들의 음모에 맞서 벌이는 투쟁을 힘닿는 한 돕겠다고 약속했다. 얼마나 따스한 마음씨를 얼마나 적시에 너그럽게 보여주었던가! 그랑디에가 눈물 핑 돌 정도로 감동했다

 

  다음날 로바르데몽이 시농으로 떠났고, 거기서 루덩의 주임신부가 유죄라고 광적으로 믿는 사람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바레가 국왕 전권대행을 극진히 환대하고, 그의 요청에 따라 엑소시즘 기록을 전부 건넸다. 엑소시즘 중에 수녀들이 그랑디에를 마법사라 비난한 대목들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날 조반을 먹고 난 뒤 로바르데몽이 지역의 귀신들린 여인들 몇몇이 하는 괴상한 짓거리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러고는 엑소시스트와 작별하고 파리로 출발했다. 

 

잿빛 추기경 조셉 수사
Joseph Leclerc Tremblay (1577-1638)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조셉 수사와 면담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 진홍빛 추기경과 잿빛 추기경[각주:4] 두 분 예하를 모시고 더 결정적인 협의를 했다. 로바르데몽이 바레가 작성한 엑소시즘 기록을 낭독하고, 조셉 수사는 카푸친회 형제단이 보내온 서신을 읽었다. 서신에서 수사들은 주임신부를 오랫동안 수색해온 <구두장이>의 작자라고 고발했다

 

  리슐리외는 이 사건이 다음 국무회의에서 숙의하기에 충분히 중대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지정된 일자에 (1633년 11월 30일) 국왕과 추기경, 조셉 수사, 국무비서, 대법관, 로바르데몽이 모였다. 루덩 수녀들의 마귀 들림이 첫 번째 의제

  로바르데몽이 간결하지만 많이 윤색하여 제 얘기를 했다. 악마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으며 두려워하는 루이 13세가 뭔가 대책을 취해야 한다고 대뜸 결정했다. 그 자리에서 즉각 문서가 작성돼 국왕이 서명하고 국무비서가 부서한 뒤 노란 밀랍으로 봉인하여 국새를 찍었다. 이 문서에 의거하여 로바르데몽이 루덩으로 가서 마귀 들림 사실을 조사하고 그랑디에를 겨냥해 악마들이 내뱉은 비난이 온당한지 검증하여 만약 비난이 근거가 있다면 마법사를 재판에 회부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천육백 이십년 대와 삼십년 대에 마녀 재판은 여전히 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어간에 악마와 내통했다 하여 기소된 수십 명 가운데서 리슐리외가 시종일관 민감하게 관심 보인 사람은 그랑디에가 유일했다

  카푸친회 엑소시스트인 트랑킬 신부는 1634년 로바르데몽과 악마들을 대신하여 쓴 책자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추기경 예하께서 보여주신 열성 덕분이며, 그래서 우리는 감사한다. 이런 사실은 예하께서 로바르데몽 남작에게 보낸 서신들이 아주 잘 확인해 준다.」 

  국왕 전권대행으로 말하자면, 「그는 국왕 폐하와 추기경 예하께 상세하게 보고하기 전까지는 마귀 들림을 입증하는 조치를 아무 것도 취하지 않았다.」 트랑킬의 증언은 다른 동시대인들에 의해서도 확인되는데, 그들은 리슐리외와 그가 루덩에 파견한 에이전트가 거의 매일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기록한다. 

  (그런 거대한 인물이 소소하기 짝이 없는 사건에 그렇게 비상한 관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6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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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Pierre Charron (1541-1603) - 프랑스의 가톨릭 성직자, 신학자, 철학자, 설교가. 윤리학을 종교에서 분리해 독립된 철학 분야로 다루면서 17세기 새로운 사상 정립에 큰 역할. 몽테뉴의 제자이자 친구. <세 가지 진리>, 특히 <지혜론 de la sagesse>(1601)에서는 몽테뉴의 회의론에 가까운 사상을 발전시켰고, 몽테뉴의 관점에 가까운 새로운 세속 윤리 체계를 설파하여 앙리 4세의 지지를 받았다. [본문으로]
  2. Henri II de Bourbon, 3e prince de Condé (1588-1646) 프랑스의 왕족, 장군. 국왕 앙리 4세는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촌아우 콩데 공을 루이 13세가 태어나기 전까지 잠정적인 왕위 계승자로 인정했다. 루이 13세 치하의 프랑스 정치 상황을 그가 묘사한 것으로 알려진 역사적 일화가 유명하다. [콩데 공이 한때 자기 얼굴이 새겨졌던 메달에 관해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 그 메달 앞면에는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이라는 문구와 함께 루이 13세 프로필이 새겨진 게요. 그리고 뒷면에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프로필이 새겨져 있는데, 거기엔 이런 글귀가 둘러싸여 있지. “나에게 묻지 않고는 행동하지 말라”] [본문으로]
  3. Marie de Medicis (1575-1642) -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와 사이에 루이 13세를 보았음. 1610년 루이가 아홉 살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섭정에 나서면서 측근인 콘치니를 중용하여 프랑스가 이탈리아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기에 이르렀음. 권력욕 때문에 아들에 의해 블루아에 유폐됐다가 고문인 리슐리외의 중재로 1620년 화해, 리슐리외는 1620년 추기경이 되고 루이 13세의 신임을 얻어 이태 뒤 재상이 된다. 마리 메디치는 자기를 배신한 리슐리외를 제거하려다가 1630년 ‘속은 자들의 날’ 이후 리슐리외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브뤼셀로 달아났다. 나중에 쾰른에서 고독하고 궁핍하게 죽었다. [본문으로]
  4. Joseph Leclerc Tremblay (1577-1638) - 프랑스의 카푸친회 탁발수사, 늘 길고 낙낙한 잿빛 수도복을 입고 다니며 추기경은 아니지만 막후에서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헉슬리는 <잿빛 추기경>이란 제목으로 그의 전기를 썼고, 화가 장 레옹 제롬(1824-1904)은 그의 전신화를 그렸다. 라 로셸 사태를 배경으로 하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에도 조셉 신부로 등장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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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루덩의 악마들의 내막, 3권, 구텐베르크 출판

 


 

  그때 파리에서는 그랑디에가 고등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다르마냑의 주선으로) 국왕을 직접 알현하게 됐다. 루이 13세가 주임신부의 권리 침해에 대한 상세한 하소에 마음이 흔들려서 정의를 낱낱이 바로잡으라고 명령했다. 

  그 며칠 뒤 티보가 파리 고등법원에 소환됐다. 그가 주저하지 않고 길을 나설 수 있던 것은 그랑디에를 체포하라는 주교 명령서를 지참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이 사건을 심리했다. 모든 정황이 주임신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티보가 과장된 제스처로 주교의 체포 영장을 꺼내 재판관들에게 건넸다. 그들이 문건을 읽더니 사건 심리를 즉각 연기했다. 

  주임신부가 교회 상급자와 해명한 뒤에 다시 심리하겠소. 

  그건 주임신부 적수들의 승리였다. 

 

  그러는 동안 루덩에서는 그랑디에의 행적에 대한 공식 조사가 시작됐다. 처음엔 편견 없는 민사 담당 경찰 수뇌 루이 쇼베가 조사를 맡았다가 사건이 깨끗하지 못함을 알고 사퇴하자 바로 그, 탁월하게 편파적인 검찰관이 맡게 됐다. 그러자 그랑디에를 겨냥한 비난과 고발이 사방에서 봇물 터지듯 했다. 

 

 성 베드로 교회에서 그랑디에의 부제들 중 하나인 메샹은 주임신부가 (그런 쾌락을 위한 것치고는 분명히 차갑기만 한) 교회 바닥에서 여인들과 뒹구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고 확언했다. 또 다른 성직자 마르탱 부요 신부는 제 동료가 교회 가족 지정석에서 세리제 씨의 숙모인, 죽은 마담 드뢰와 얘기하는 것을 기둥 뒤에서 훔쳐보았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트렌캉이 부요의 진술을 조금 고쳤다. 주임신부가 ‘앞에 언급된 귀부인과 무슨 얘기를 나눴다’고 한 처음 진술이 ‘앞에 언급된 귀부인과 대화하면서 그녀 팔꿈치를 잡았다’로 바뀌었다. 

  한데 가장 신빙성 있는 증언을 할 만한 사람들은 주임신부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즉, 느긋한 하녀들이며 부도덕한 아내들, 명랑한 과부들 그리고 필리프 트렌캉과 마들렌 드브루 등… 

 

  그랑디에가 자기 대신 라로슈포제와 ‘품위 감독관’에게 서신을 보내겠다고 약속한 다르마냑의 조언을 듣고 주교 재판에 자진 출두하기로 결심했다. 파리에서 은밀히 돌아와 사제관에서 하룻밤 보내고 이튿날 동틀 무렵 다시 말안장에 앉았다. 

  조반 먹을 때쯤 약제사가 전모를 알게 됐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는 이틀 전 루덩으로 돌아온 티보가 푸아티에로 뻗은 대로를 따라 전 속력으로 달렸다. 그는 곧장 주교 궁으로 들어가서 관계 당국자들에게 알렸다. 

  그랑디에가 지금 시내에 있는데, 자수한답시고 쇼를 벌여서 치욕적인 체포를 모면하려는 속셈입니다. 그런 계략은 어떡하든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품위 감독관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랑디에가 주교 궁으로 가려고 숙소를 나서다가 칙선변호사 입회하에 체포되어 주교 관구 감옥으로 연행됐다. 약간의 항변이 있었지만 별다른 충돌 없이.

 

  푸아티에의 주교 관구 감옥은 예하 궁전의 한 탑에 있었다. 주임신부가 여기서 간수에게 넘겨져 습기 많고 볕이 거의 들지 않는 독방에 갇혔다. 1629년 11월 15일 티보와 몸싸움 벌이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독하게 춥지만 죄수한테 따스한 옷 반입이 허용되지 않았고, 며칠 지나 그의 모친이 면회를 요청했지만 그마저 거부됐다. 두 주일을 끔찍이 고생하다가 라로슈포제에게 탄원서를 썼다. 

 

  「예하시여, 나는 심신의 고뇌가 천국에 이르는 참된 길이라고 언제나 믿으며 다른 이들한테 그렇게 강조하기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하의 선하심이 내 지옥행을 염려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구제하고자 갈망하여 나를 이곳에 내던지시기 전까지 나는 그 진리의 옳음을 시험해 볼 길이 전혀 없었나이다. 이곳에서 견디기 힘든 고뇌의 보름 동안 나는 이전 평안했던 사십 년 기간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됐습니다.」 

  이 서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자부심과 성서의 암시들로 가득하고 화려한 문장이 정성스럽게 이어졌다. 이런 식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얼굴을 사자의 얼굴과 기꺼이 합쳐 놓았습니다. 달리 말해, 예하께서 보이신 온화함은 내 적수들의 가혹함과 함께 나를 하늘나라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했습니다. 그 적수들이야 저희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또 다른 요셉처럼 나를 파멸시키려 드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이 죄인을 괴롭힌 증오와 적의가 기독교의 사랑으로 바뀌고 불타는 복수심은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더 맹렬한 갈망으로 대체됐고… 그리고 나사로에 관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 징벌 목적이 삶의 교정이고 두 주간 감옥 생활 끝에 그의 삶이 교정된 만큼 지체 없이 풀려나야 한다는 호소로 결론을 맺는다. 

 

  화려하고 과장된 스타일이라는 장치에서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글월은 인생과 같지 않다. 기법과 행위를 관장하는 규칙이 서로 다르다. 

  우리한테는 터무니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랑디에의 서한체가 17세기 초에는 아주 자연스럽고 신실한 감정으로 보였다. 시련이 그를 신에게 더 다가들게 했다는 믿음이 진정한 것임을 의심할 근거가 우리에겐 없다. 단지, 그렇게 다시 얻은 평안도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시련의 결실을 원상태로 돌리고야 만다는 것을, 그것도 15일이 아니라 단 15분 만에 그렇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불행히도 그가 제 본성을 너무 몰랐다. 

 

  이 탄원서에 주교가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그런데다가 이제 주교가 다르마냑과 그의 친구인 보르도 대주교의 서신을 또 받았는데… 이 지독히 꺼림칙한 하급 사제가 그런 영향력 있는 친구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극히 불쾌했다. 더더욱 참을 수 없는 점은… 

  흠, 그 친구라는 자들이 나한테, 라로슈포제 가문의 대표자한테, 학식 높은 인사한테, 학식 면에서 대주교는 내 마구간의 말보다도 못한데, 그런 그들이 나더러 교회의 어떤 법규를 따라야 한다고 감히 요구하고 나서다니! 이야말로 도저히 참을 수 없지! 그들이 주제넘게 나서지 않아도 순종하지 않는 젊은 신부를 내 다 알아서 처리할 게야! 

  주교가 죄수를 이전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다루라고 지시했다.

 

  이 힘겨운 나날에 주임신부를 찾아온 이들은 예수회 수사들뿐이었다. 그는 한때 그들의 제자였고 그들은 이제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선량한 수도사들은 영적인 위로뿐 아니라 따뜻한 양말 등속과 바깥세상의 편지들도 들고 왔다. 

  편지를 읽고 그랑디에가 알게 된 사실은… 다르마냑이 법무대신을 포섭했고, 법무대신은 티보와 관련된 사건을 루덩의 검찰관으로서 트렌캉이 다시 수사하라 지시했고, 그 뒤 티보가 다르마냑을 찾아와 화해를 제시했지만 ‘교회 대장부들’이 그건 그들 불법행위를 묵과하는 꼴이 될 터이니 어떤 합의에도 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것. 

 

  주임신부가 다시 힘을 얻어 주교에게 서한을 한 통 더 보냈다. 회답이 없었다. 세 번째 탄원서를 써 보낸 뒤 티보가 감옥으로 찾아와 법정 밖에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거부했다. 

  돈에 팔려 그를 고발한 증인 둘이 12월 초 푸아티에 법정에 나왔다. 한데 그들에게 호의를 보이던 판사들조차 진술을 듣고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 베드로 교회 대리 신부인 메샹에 이어 드뢰 부인과 교회 가족석에 있는 그랑디에를 훔쳐봤다는 다른 성직자가 나섰다. 그들의 증언도 부그로와 세르본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거의 설득력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진술들로는 그 누구한테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라로슈포제 주교는 형평법이나 법적 절차 같이 사소한 것들 때문에 제 길을 못 갈 사람이 아니었다. 1630년 1월 3일 최종 판결이 떨어졌다. 

  그랑디에는 석 달 동안 금요일마다 빵과 물만 먹고 푸아티에 주교 관구와 루덩 시 전역에서 5년 동안 사목 활동을 금지한다. 

  이 판결은 주임신부에게 재정적 몰락과 출세의 좌절을 의미했다. 그 대신 자유로운 몸이 됐다. 이제 다시 난롯불을 쬐고 (금요일 이외엔) 맛난 음식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친척이며 친구들과 얘기 나누고, 자신을 그의 아내라 믿고 (극도로 조심스레!) 찾아오는 여인과 밀회하는 자유를 얻었다. 또 라로슈포제의 상급자인 보르도 대주교에게 호소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그랑디에가 사건을 대주교 관구로 가져가겠다는 결심을 가장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투로 밝힌 서신을 푸아티에로 보냈다. 

 

  라로슈포제가 자부심이 상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이 용인할 수 없는 무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교회법 같은 추잡한 것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단 말이냐?!  교회법은 아무리 직급 낮은 성직자에게도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랑디에가 대주교에게 호소할 것이라는 소식이 트렌캉과 다른 음모자들에게 마뜩할 리 만무했다. 대주교는 다르마냑과 우의가 두텁고 라로슈포제를 싫어했다. 호소가 먹혀들 수 있다고 겁낼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루덩 시가 영원히 주임신부 수중에 들어간다는 뜻이리라. 그 호소가 먹혀들지 못하게 하려고 그랑디에의 적수들도 항소했다. 더 상급 교회법정이 아니라 파리 고등법원에. 

 

  푸아티에 주교와 그의 품위 감독관은 교회재판관들로서 금식이나 (극단적인 경우) 파문 같은 영적 징벌만 부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 법정은 교수형도, 사지절단형도, 낙형도, 강제노동도 선고할 수 없었다. 이런 형벌은 다 세속 법정의 사법권에 속했다. 하지만 그랑디에가 교회재판에서 유죄로 선고된 만큼 지상 권력 앞에서도 유죄가 되기에 충분해! 어쨌든 상소가 제출됐고, 재판이 돌아오는 8월 말로 잡혔다. 

 

  이번에는 주임신부가 노심초사하게 됐다. 불과 6년 전 ‘영적 인세스트[각주:1]와 신성 모독적인 방탕’ 때문에 산 채로 화형당한 시골 주임신부 르네 소피에 사건이 검찰관만큼이나 그의 기억에도 아주 생생했다. 그랑디에가 그해 봄과 여름을 다르마냑의 교외 저택에서 보냈는데 다르마냑이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시오, 소피에 사건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 그는 범죄 현장에서 체포된 데다가 법정에 친구들도 없었잖소. 반면에 이 경우에는 증거가 전혀 없고 법무대신이 도움을 주거나 최소한 호의적인 중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오. 그러니 다 잘 될 게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사건을 심리하게 됐을 때 판사들은 그랑디에의 적수들이 가장 우려하던 결정을 내렸다. 

  심리를 푸아티에의 형사 담당 경찰 수뇌가 맡아 재개하라. 

  그건 거기 판사들이 편견 없으며, 증인들은 가장 면밀한 반대심문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전망이 하도 우려스럽다 보니까 증인 중 하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쪽을 택했고... <2편 5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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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1편 6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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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4편 3

루덩의 악마들 4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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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1)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spiritual incest - 동시에 세례를 받은 사람끼리 혼인하거나 육체관계를 맺는 것. 영적 간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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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1

 

  이름난 풍자 작가요 나중에 주교가 된 조셉 홀[각주:1]이 1605년 처음으로 플랑드르[각주:2] 지역을 방문했다. 

  「여로에서 우리는 파괴된 교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도처에 남은 거친 잔해들이 신앙과 더불어 동족상쟁 역시 처절했음을 여행자에게 말해준다. 오오, 전쟁의 참혹한 흔적이여! 그러나 교회들은 무너졌다 해도 (경탄스럽게) 도처에서 예수회 칼리지들이 나타난다. 내가 들른 도시마다 이 학교들이 이미 문을 열었거나 세워지는 중이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연 정책이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이 사람들은 저주를 가장 많이 받는 곳에서 (여우처럼) 일을 가장 잘 꾸려 간다. 저희 진영에서 극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모든 이들한테 미움을 받고 우리의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이 독한 잡초들은 쑥쑥 자란다.」   

 

  칼리지들은 아주 단순하고 확실한 이유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바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 홀과 그 세대가 잘 알고 있었듯이 예수회원들은 이른바 ‘정책’을 가장 중시했다. 예수회가 학교를 계속 세운 까닭은 적대자며 자유사상가며 프로테스탄트들에 맞서 로마가톨릭교회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예수회원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쳐 교회 이익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계층을 만들고자 했다.[각주:3]

 

  이런 현상을 체루티가 아주 잘 표현했다. 「우리가 다리를 곧게 펴 주려고 갓난애 아랫도리를 천으로 동여매듯이, 사람을 평생 건강하고 유복한 상태로 만들려면 유년기부터 의지를 동여매야 한다.」 (이 언급에 줄 미슐레[각주:4]가 극도로 분개했다.) 

  교육자들 의도야 정말 단호했지만 그 뜻을 알리고 지도하는 방법이 미흡했다. 학생들 의지를 천으로 동여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최우수 생도들 중 몇몇은 칼리지를 졸업하자 열렬한 자유사상가가 됐고, 장 라바디[각주:5]처럼 프로테스탄트가 된 이들도 있었다. ‘정책’이 관련된 이상 교육 체계는 설립자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다중은 정략적 측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저희 자식들이 젊은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것을 다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중요할 뿐이었다. 이런 요구에 예수회원들이 다른 대다수 교육 공급자들보다 더 잘 부응했다.

 

  「예수회 지붕 아래서 보낸 일곱 해 동안 나는 무엇을 눈여겨보았던가? 온건하고 근면하고 절도 있는 생활. 예수회 수사들은 하루 모든 시간을 우리들 교육에, 혹은 그들 서원을 엄격히 실행하는 데 바쳤다. 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나처럼 그들 밑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이 증언하기를 바란다.」  

  볼테르가 그렇게 적었다. 이 말은 예수회 교수법이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와 동시에, 볼테르의 생애 자체는 학습을 ‘정책’이라는 목표에 맞추려고 한 교육자들의 시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한층 더 확실하게 입증한다.[각주:6]   

 

  볼테르가 칼리지에서 공부하던 때, 예수회 학교들은 이미 잘 알려지고 익숙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 이전 교육 현장에서는 칼리지의 많은 장점이 정말 혁명적이었다. 대다수 교육자들이 회초리 휘두르는 능력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이던 그 시기에, 예수회원들의 교육 방식은 제법 인도적이었으며 교수진도 신중하게 선별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여기서는 고급 라틴어를 가르치고 광학과 지리와 수학, 극작 분야에서 최신의 성취를 들려주고 (그들의 학기 말 연극 공연은 유명했다), 좋은 예절과 교회에 대한 존중과 (적어도 프랑스에서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는) 국왕 권위에 복종하기를 가르쳤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회 칼리지들이 전형적인 상류 부유층 취향에 맞았다. 즉, 애지중지하는 아이가 구식 교육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다고 마음먹은 어머니들, 그 자신이 학식을 갖추고 있으며 건전한 교리와 키케로 식 달변에 관심이 큰 숙부들, 또 그 자신이 애국심 있는 관리로서 군주제 원칙을 인정하거나 미리 앞을 내다보는 부르주아로서 예수회가 폭넓은 연줄로 제자들한테 좋은 직무나 궁정의 한 자리, 교회 명예직 따위를 찾아주겠지 기대한 아버지들… 바로 그들 입맛에 딱 맞은 것이다. 

 

  예를 들어, 루앙 시의 코르네유 부부 같은 이들을 보자. 가장은 왕실 고문변호인이고 아내는 변호사 딸인 마르트 르 프장. 어린 아들 피에르가 특출한 재주를 보이는데, 어떻게 칼리지에 보내지 않을 수 있겠나?[각주:7] 

   혹은 렌 시의회 고문인 조아킴 데카르트를 보자. 그는 1604년 총명한 막내아들 르네를 여덟 살밖에 안 됐지만 공부시키느라 라 플레시로 데려간다.[각주:8] 얼마 전 국왕의 승인을 받아 문을 연 예수회 칼리지로. 

 

  또 거의 비슷한 시기, 생트 시에 학식 있는 참사회 위원인 그랑디에가 있다. 그에게 조카가 있으니, 비록 데카르트나 코르네유 같이 부유한 귀족은 못 되더라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인 또 다른 법률가의 아들이다. 우르뱅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이제 열네 살이며 지극히 영리하다.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생트 인근에는 보르도의 예수회 칼리지보다 더 좋은 학교가 없었다. 

  이 유명한 배움터에는 소년들을 위한 중등 과정과 우아한 예술을 가르치는 칼리지, 신학교, 사제 임명 뒤에도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형제들을 위한 심화 과정이 다 있었다. 조숙하고 영리한 우르뱅 그랑디에가 여기서 십년을 넘게 보냈다. 중등학생에서 신학 대학생으로, 그리고 나이 스물다섯 된 1615년 이후 예수회 수련수사로… 그렇긴 해도 수도사가 될 마음은 없었다. 예수회 엄한 규율을 따를 소명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니야, 수도회 안이 아니라 수도원 담장 밖에서 교구 신부로 커리어를 쌓고 싶어. 재주가 뛰어난데다가 막강한 교회 조직의 비호를 받는 사람은 이 직업에서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어떤 고관대작의 종교의식 담당이나 나중에 프랑스 육군원수나 추기경이 될 사람의 영적 카운슬러가 되는 거야. 또 주교 회의나 왕실 공주들 앞에서, 심지어 왕비 면전에서 뛰어난 언변을 과시할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야. 어디 그뿐이랴, 외교 사절이나 고위 행정직, 수입 좋은 명예직, 구미 당기는 불로소득 따위도 가능해. 또 (귀족 출신이 아니기에 확률이 떨어지긴 해도) 운이 좋다면 주교 예모로 머리를 장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생 노년이 화려하게 보장되는 거야. 

 

  그의 이력 초기에는 그런 장밋빛 꿈이 다 이뤄질 수 있는 듯싶었다. 신학과 철학을 이태 동안 깊이 연구한 뒤 스물일곱 나이 젊은 그랑디에 신부가 오랜 기간 근면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예수회가 루덩 시에 있는 생피에르 뒤 마르셰 교구라는 중요한 생활 수단을 선사한 것. 같은 후견인들 덕분에 성 십자가 공주 성직자단 교회의 참사회 위원도 됐다. 사다리에 발을 걸쳤으니, 이제 할 일은 올라가는 것만 남았다. 

 

(루덩의 악마들 1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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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루덩의 악마들 1편 3

루덩의 악마들 1편 4

루덩의 악마들 1편 5

루덩의 악마들 1편 6

루덩의 악마들 1편 7

루덩의 악마들 1편 8

루덩의 악마들 (1편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루덩의 악마들 1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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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9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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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5편 1

루덩의 악마들 4편 1

루덩의 악마들 3-1편

루덩의 악마들 2편 1

 

  1. 조셉 홀 (Joseph Hall1, 574-1656) - 잉글랜드의 주교, 모럴리스트 문인, 풍자가. 호주가 발견되기 이전 남부 대륙의 환상적인 여행과 거기 풍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다르면서도 같은 세상 mundus alter et idem>(1605)의 저자. 이 책은 여러 모로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전신으로 평가된다. [본문으로]</걸리버></다르면서도>
  2. 플랑드르 - 현재의 벨기에 서부,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서부를 포함하는 지역. [본문으로]
  3. 예수회 - 종교개혁 시기인 1534년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로마가톨릭 수도회. 과격한 전투적 가톨릭 수호 선교기관. 1. 교육에 중점 2. 종교개혁에 대항 3. 세계 선교 등이 주요 목표. [본문으로]
  4. Jules Michelet (1797-1874) - 프랑스의 역사가, 사회평론가. 교회권력 반대자. 역사와 사회, 자연에 관해 아주 주관적인 책을 명료하고 격동적인 언어로 여러 편 썼다. ‘르네상스’ 용어의 창시자. [본문으로]
  5. Jean Labadie (1610-1674) - 프랑스 신학자,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고 경건주의 단체인 라바디파를 만들었다. (경건주의/Pietism - 정통 프로테스탄트에 맞서는 신비주의적 가르침, 보수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특색) [본문으로]
  6. Voltaire (1694-1778) - 프랑스의 작가, 사상가,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자. 18세기 유럽의 전제 정치와 종교적 맹신에 저항하고 진보적 이상을 고취. 비판 정신과 재치, 풍자 같은 프랑스 정서 특유의 자질을 구현한 작품 활동으로 유럽 문명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문으로]
  7. 피에르 코르네유(1606-1684) - 몰리에르, 라신과 함께 17세기 프랑스의 3대 극작가. [본문으로]
  8.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프랑스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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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4)

 

 

7

 

 

   「프랑스 역사에서 아주 특이한 사건 자료를 수집하고 있지요. 한 수녀원 수녀들이 모두 악마에 들씌웠는데, 이건 협잡과 히스테리, 음모로 시작되어 끔찍한 사법살인으로 이어졌다오. 이 사건에는 또 당대 가장 경건한 성직자에 속하는 수렝 수사가 등장하여 원장수녀 잔느한테서 퇴마 작업을 합니다. 사실, 마귀 들렸다는 점 때문에 명성을 누린 이 원장수녀가 모든 재앙의 주범입니다. 

루덩 수녀원의 잔느 수녀원장과 자매들


  이 여인에게 들어앉은 악마를 물리치려고 고군분투하던 중에 수렝 수사가 외려 심리적 질환에 감염됐어요. 즉,
악마들에 사로잡혀 거의 광인 같은 세월을 이십 년 넘게 보냈는데, 그런 광기 속에서도 고결한 성품과 영적 투쟁 덕분에 결국 제 속에 들어앉은 악마를 물리치고, 평온한 노년을 보내면서 총체적 인식(지각)과 더불어 일종의 성스러움까지 얻게 됐습니다. 그리고 영성에 관해 당대 가장 의미 있는 저술을 몇 편 내놓았어요. 

 

  잔느의 경우는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이모저모로 과시하고 관상 경지에 이른 성녀 역할을 멋지게 해내며 찬탄과 사랑과 경배까지 받으며 살다가 종내에는 명성과 인기를 잃게 됩니다. 

 

  귀신들림과 엑소시즘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 마법사로 낙인찍힌 신부를 화형으로 몰아간 사법 살인, 이에 대한 사회의 반응, 미치광이 취급받는 수도사의 면면 등이 죄다 아주 생생하게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특히, 원장수녀와 수렝 수사의 성격이 흥미진진하답니다.」 

 

  이건 헉슬리가 1942년 7월 런던에 있는 발행인에게 보낸 편지. 우리가 보게 되듯이 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극에서 극을 달린다. 

  마귀 들린 여인들, 그 불가사의한 현상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권력과 엑소시스트들, 그들 편에 선 재판관들, 마법사로 몰려 사법 살인을 당한 성직자. 

 

  작가가 역사의 특별한 사건을 대하면서 (오늘날에도 응당 통용되는) 다양한 질문을 상정하고 그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연구한 각종 문헌의 방대함이 실로 놀랍기만 하다. 그 결과, 교리며 신앙, 신비주의, 영성, 초자연적 현상, 심리학, 정신의학,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시대, 휴머니티 등이 담긴 역사 탐방이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재구성된다. 

 

엑소시즘을 시행하는 수사들

 

  과학적 정확성과 신뢰성이란 본질적으로 예술성 바깥에 있다. 하지만 헉슬리 같은 문필가가 구상한 세계를 그저 ‘있음직하게’ 묘사하는 게 아니라 ‘믿음직하게’ 묘사하고자 하는 경우, 어떤 사건이나 관점을 읽는 이가 수긍하게끔 보이고자 하는 경우… 예술적 실제의 과학적 이면은 미학적 구상의 토대가 된다. 

  (현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적 중요성을 부여하기 위한) 과학적 구성은 1930년대 이후 명료한 예술적 투영만큼이나 그에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 

 

  영국에 거주하던 때 발표한 작품들이 미학적으로 정연한데 비해 미국 체류 시기 작품들이 문학적 완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바로 그런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인생 후기에 나온 픽션이며 에세이들이 더 독특한 맛을 주는 건 아닐까? 

 

그의 텍스트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과잉 정보’와 ‘교훈적 요소’ 같은 것은 작가로서의 재능이 감소했기 때문이 아니라… 통섭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의 혈관에 과학과 문학의 유전자가 공존하고 있음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존재요 사회적인 존재로서 겪는 공포에서, 미래의 공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를 평생 숙고했으며, 그 숙고의 결과를 카프카나 조이스 같은 당대 작가들과는 전혀 다르게 표현했다. 자신을 무엇보다도 지성인으로 내보였다.

  그런 측면 때문인가, 자신은 줄거리를 쉽게 궁리하고 살아 있는 형상들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처럼 타고난 작가가 아니라고. 다시 태어난다면 학자가 되고 싶어 할 것이라 했다. 그것도, 어쩌다 상황에 떠밀려 그리 되는 게 아니라 숙명적으로 말이다. 

  실제로 그는 심리학, 초심리학, 의학, 정신병학, 정신약리학 등의 전문적 심포지엄과 학술 대회들에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참여한 거의 유일한 작가였다

 

  그가 전문가들 못지않게 연구하고 중시한 심리학, 의학, 생물학을 비롯해 다방면에서 가장 해박한 지식 덕분에 귀신들림과 ‘마녀 사냥’이라는 (지금도 형태를 달리하여 본질적으로는 상존한다 할 수 있는) 문화적 현상을 다양하게 조명하면서 분석한 <루덩의 악마들> 같은 독창적 논픽션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문학과 과학의 공존을 추구했다. 

 

<루덩의 악마들>이 아이디어 면에서 1961년 미셸 푸코가 내놓은 <광기의 역사>의 개념을 앞섰다는 점이 놀랍다. 

 

  어떤 이들에겐 헉슬리의 이 텍스트가 술술 읽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식의 확장과 전환을 갈구한다면, 웬만큼 고생할 가치가 충분하다. 

  글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말랑말랑하여 접하기는 쉽지만 남는 게 별로 없는 글이 있는 반면에, 뭔가 묵직한 게 있어 보이는데 파고들기 쉽지 않은 글도 있다. 헉슬리가 인생 후반에 픽션보다는 에세이와 논픽션에 더 치중한 까닭은 아마도 그 중간 어디쯤을 지향했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모든 것에 관해 거의 모든 것을” 말하고 싶어 한 그에게 기존의 문학 장르 개념과 원칙은 외려 거추장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목표는 단 하나, 독자로 하여금 삶의 다양한 측면을 좀 더 깊숙이 탐구하게끔 단초를 제공하자는 것

 

  마지막 장편 <섬>에서 픽션이 철학적 에세이며 사회적 비평과 상당히 혼재한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루덩의 악마들>에서 그가 동원한 문장들은 거의 시적 수준이다. 압축적이고 깔끔해서 군더더기가 없다는 뜻. 간명함이라는 미덕은 그 본연의 목적 달성 이외에도 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선사하지 않는가. (번역문에서는 그 맛을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게 유감이다. 그것이 또 언어 차이에서 비롯되는 번역 한계이고.)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우리는 에세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게 된다. 생각의 자유로운 흐름, 그 생각의 논거로 각종 고전의 든든한 인용, 거기서 나오는 설득력, 우아한 문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구조적 스타일, 무엇보다도, 달변이나 수사적 효과와는 상관없이 진솔하고 정직한 토로… 

  헉슬리의 <루덩의 악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역사적 일화에 대한 논픽션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일방의 입장과 해석에 치우치지 않고, 아니, 상호 대립적인 해석을 전부 끄집어내고 소개하면서도 역사적 진실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것. 한마디로, 역사가요 스토리텔러, 철학자, 사회비평가, 조사 연구자로서 번쩍이는 재능이 여기 다 녹아 있다. 그것도, 우아하고 알기 쉽게.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사람이며 사물의 잘 이해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새로운 빛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지적, 물리적 유기체를 공공의 자산으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루덩의 악마들>에는 우리 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한다면 면밀하게 탐구해야 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헉슬리의 박식과 기지와 혜안이 (우리 한국에서도) 공공 자산이 될지 여부는 독자들한테 달린 게 아닌가. 진정한 재능은 특정한 시대와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법. 

 

8

 

   삼백 년이 훨씬 지나 케케묵은 사건에 작가는 왜 주목했던가? 

  사실, 헉슬리 이전에도 ‘수녀들의 집단 광란’과 이를 빙자한 마녀 재판이라는, 보기 드문 역사적 사건에 많은 이들이 눈길 돌리고 그에 관한 글을 남겼다. 

 

The History of the Devils of Loudun, Volumes 1-3

 

  알렉상드르 뒤마를 비롯한 작가들이며 줄 미슐레를 비롯한 역사가들, 샤르코 같은 정신의학자들, 그리고 유럽의 마법과 악마학에 관한 연구자들이 말이다. (‘이야기 역사’라는 틀에서 볼 때, 뒤마가 전통적 이야기체로 썼다면 헉슬리는 이 책에서 현대적 이야기체를 동원했다 하겠다.) 

  게다가 1980년 <루덩의 마귀 들림>이라는 책을 내놓은 프랑스 역사가요 문화학자 미셸 세르토처럼 우리 시대에 와서도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왜? 

 

  올더스 헉슬리가 이 책을 쓰고 내던 때는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잔학무도 이후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소비에트연방에서는 ‘세계주의와 투쟁’이라 불린 부끄러운 캠페인이 펼쳐졌다. 즉, 강력한 징벌 기계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권력은 대중의 의식을 쇼비니즘과 인종주의로 감염시키고자 기를 썼다. 

  또 아메리카합중국에서는 매카시즘이 작동하기 시작해 정점에 이르면서 모든 것이 알 만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전됐다. 즉, 불온사상 소유자로 낙인찍힌 이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특위에 소환되고 체포되고 숙청되고…  

 

  그런 시대 분위기가 작가로 하여금 마녀 사냥이라는 광기를, 또 그 광기의 대표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집단 히스테리를 유도한 엑소시즘과 잔인한 고문과 사람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인 만행을… 한데, 알고 보니, 그 본질에 악마 따위는 없고 모든 것이 성적 억압과 종교적 과대망상을 이용해 다중을 조종한 정치적 술책과 박해였던 것일 뿐. 

 

  대화와 관용과 공존 대신 음모와 조작과 선동과 탄압이 난무하는 사회는 집단 순응적 사고에 물들고 집단 광기에 빠지기 쉽다. 

  루덩에서 벌어진 맹신과 증오와 폭압의 장면들 이후 삼백여 년이 지났건만 사람들이 얼마나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헉슬리는 절감한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과 자기기만에 굴하기를 거부한 그가 볼 때… 20세기의 독재자와 독재 권력과 선동가들은 교회의 수법을 적용하면서 대중을 조종하고, 사람들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외상을 입는다. 본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세와 근세 기독교 세계에서는 마법사와 그 고객을 20세기 ‘공공의 적’처럼 대했다. 즉,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을, 스탈린 시대에 자본주의자들을, 아메리카합중국에서 코뮤니스트와 그 동조자들을 대하듯이 말이다. 그들은 외국 열강의 앞잡이 취급을 당했으니, 아무리 좋게 봐도 반애국주의자요 최악의 경우엔 매국노, 이단자, 인민의 적이었다. 

  지난 시대 이 극히 추상적인 퀴슬링 부류에게 부과된 형벌이 죽음이었듯이, 현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정치적, 세속적 악마 숭배자들을 기다리는 형벌도 죽음인데… 이들을 어떤 나라들에서는 코뮤니스트(빨갱이)라 부르고 또 어떤 나라들에서는 반동주의자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서 뒤돌아보면, 종교의 모든 폐해는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아도 무성할 수 있음을 우리는 본다. 또, 확신에 찬 유물론자들이 값싸게 날림으로 내놓은 이상을 절대자라도 되는 양 숭배할 태세가 돼 있으며, 열렬한 휴머니스트들이 사탄 신봉자들을 몰살하는 종교재판관의 열정으로 자기네 적들을 박해할 수 있음도 우리는 본다. 

  그런 행동 패턴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어 왔으니, 인간의 그 어떤 신앙보다도 더 오래 됐다. 우리 시대에 악마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은 사탄의 존재를 하나님만큼이나 확실하게 믿은 선조들처럼 행동하기를 즐긴다. 그들은 자기네 가혹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기네 이론들을 도그마로 바꾸고, 자기네 내규를 제 1원리로 격상시키고, 자기네 정치 보스들을 신으로 추앙하고, 자기네한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악의 화신이라 몰아친다.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것을 신성한 것으로 맹신적으로 바꿈으로써, 그들은 가장 추악한 작업에 탐닉할 토대를 마련한다. 그것도 맑은 양심을 간직하며 지고지순하게 일한다고 확신하면서! 

  그러다가 작금의 믿음과 신조가 낡아져 다시 터무니없어 보이게 되면 새로운 추세가 만들어질 터이고, 그리하여 태고의 광기가 적법성이네 이상주의네 진짜 종교네 하는 상습적인 가면을 계속 쓰게 될지도 모른다.」 

 

  루덩의 집단 광란 사건 이후 사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 헉슬리 시대 이후 육십여 년 지난 지금, 사람들과 세상은 좀 달라졌을까? (앞에 언급한 닐 포스트먼은 현대인들이 중세 사람들보다 더 나이브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비인간적이고 비문화적이며 폭압과 광기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마녀 사냥이나 매카시즘 따위 철 지나고 위험한 유행에서, 21세기 문명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이 책에 들어 있다. 그것도, 모든 근거를 가지고 아주 확실하게. 

 

  누가 귀신들린 수녀들이며, 누가 그랑디에 신부이며, 누가 리슐리외 같은 절대 권력이고 누가 그 권력의 앞잡이이고 엑소시스트들이며, 누가 몇 푼에 팔려 양심을 속이며 위증하는 자들이고, 누가 고용된 판사들이며 누가 사법살인에 연루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며, 누가 엑소시즘과 화형에 희희낙락하거나 내심 분개하는 군중인지… 

  우리 사회 적지 않은 현상과 사건에도 거의 에누리 없이 대입된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메아리요 교훈’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무심하거나 게을러서 잘 모르거나 둔감할 뿐이지.)

  「우리한테, 근본악은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악이나 경제적 악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실증주의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악’이라 부르기 좋아하니까) 그 근본악이 오늘날에는 마법사나 주술사가 아니라 어떤 증오에 빠진 계급이나 민족한테서 추종자들을 찾는다. 사회적 증오의 인과 구조가 바뀌었지만, 그렇다 하여 증오와 불공정이 더 줄어들지는 않았다.」 (본문에서)

 

   헉슬리의 이 이야기를 그저 오래 전 사건들의 파노라마로 치부하고 만다면, 그건 더 큰 메시지를 놓치는 꼴이다. 이건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 바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헉슬리의 이 스토리를 영국 극작가 존 화이트닝이 1961년 희곡으로 각색한 것도, 영국 영화감독 켄 러셀이 1971년 <악마들>이라는 충격적인 필름으로 선보인 것도, 함부르크 국립극장의 의뢰를 받아 폴란드 작곡가 펜데레츠키가 1972년 <루덩의 악마들>이라는 오페라로 구성했으며 유럽 극장들에서 여전히 심심찮게 무대에 올리는 것도... 다 그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영화와 오페라는 동영상으로 다 나와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런 배경이라든가 바탕에서 헉슬리가 호소하는 바는 아주 단순하다.

  「20세기에 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르마즈드처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다른 동료들을 악의 원리인 아리만으로 간주함으로써, 이 시대의 악마주의에, 극악무도한 행위에 승리를 안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악에 대한 생각에 집착하다 보면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다 해도 악이 세상에 더 횡행하게끔 조장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본문에서)

 

   그런 까닭에 우리는 원죄보다는 원덕(신테레시스)에 더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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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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