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과. 우리의 감정 항아리, 계속)
“저리 꺼져, 이 멍청이야!”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이미 ‘좋은/똑똑한’ 아이나 ‘나쁜/멍청한’ 아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이것이 한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한 심리학자가 평범한 초등학교 두 학급의 수업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교사에게 아이들 행동을 관찰한다고 설명하고 맨 뒷줄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실제로 그의 관심은 교사가 이른바 ‘우등생들’과 ‘열등생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각 학급에서 각 그룹의 학생을 서너 명씩 점찍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우등생’으로 평가된 아이들한테는…
“잘했어”, “훌륭해”, “좋아”, “(다른 아이들에게) 이 애를 본받아라”, “넌 벌써 다 공부했지”, “늘 잘 해내는구나”
같이 긍정적인 말을 하루 평균 23번 건넸다.
그리고 부정적인 말은 하루에 한두 번만 했다.
한데 이른바 ‘열등생들’의 경우엔 완전히 정반대였다.
(“또 너로구나!”, “하는 짓이 어째 그 모양이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같으니!”, “널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등) 나무라고 지적하고 혼내는 말을 하루에 평균 25번이나 하고, 긍정적인 말이나 중립적인 말은 아예 하지 않거나 어쩌다가 한 번이었다.
교사의 이런 태도는 급우들에게도 전염됐다.
아이들은 휴식 시간에 이 심리학자를 둘러싸고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들은 최대한 더 가까이 다가들어 이 사람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등 호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런데 둘러싼 이 아이들 틈으로 이른바 ‘열등생’이 끼어들려고 하자, 아이들은 “저리 꺼져, 이 멍청이야!” 하면서 그애를 몰아낸 것이다.
그 아이의 입장이 됐다고 생각해 보자.
권위 있고 존경받는 사람들한테서 꾸중이나 지적, 비판의 소리를 하루 평균 25번이나(!) 들으면서, 그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간다고 상상해 보라! 게다가 수업 중간중간 휴식 시간엔 또래의 급우들한테서 배척을 당한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될까? 견딜 수 있겠나? 버텨 내겠는가?
이 연구를 소년 교정시설에서 계속한 결과 아이들이 어떻게 ‘생존하는지’ 분명해졌다.
알고 보니… 거기에 수용된 미성년자들의 98%가 이미 초등학교 1, 2학년 때부터 또래들과 교사들에게 배척된 경험을 안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감정 ‘항아리’를 이용하여 각각의 경우에서 우리가 다루는 문제의 수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앞에서 다룬 답변을 죄다 복습하고 체계화할 것이다.
* * *
1. 아이가 엄마한테 화를 낸다. “엄마는 나빠, 난 엄마 미워해!”
그렇게 화를 내는 이면에 아픔과 서운함 등이 숨어 있음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이런 경우 그 말을 적극적으로 듣고 아이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헤아려 짚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아이의 태도에 대응하여 나무라고 벌주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부정적인 심적 체험만 더 깊어질 수 있으니까. (게다가 당신의 감정도 나빠지고.) 상황이 가라앉고 당신의 말투가 다정하게 될 때까지 훈계나 설교조의 말을 삼가는 게 더 좋아.
2. “넌 (마음이) 아프구나.”
만약 아이가 고통이나 서운함, 두려움 등에 시달리는 게 확실히 보인다면, 적극적 듣기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 방법은 우리 도표의 2층에 있는 여러 심적 체험을 위한 것이다.
만약 부모가 같은 감정을 맛본다면, 그것을 <나-메시지>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이때 만약 아이의 ‘컵’도 가득 차 있다면 아이가 당신 얘기를 듣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먼저 아이의 얘기를 듣는 것도 괜찮다.
3. 아이한테 무엇이 부족한가?
아이의 불만이나 아픔이 같은 이유로 반복된다면, 만약 늘 징징대고 같이 놀자거나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면, 혹은 그 반대로 늘 말을 안 듣고 싸우고 거칠게 군다면… 원인은 아이의 어떤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도표의 3층). 아이에게 당신의 눈길이나 관심이 부족하거나, 거꾸로 자유와 독자성의 느낌이 부족할 수 있어, 아이가 학교생활이 좋지 못하거나 학습이 부진해서 고통받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적극적 듣기 하나로는 충분치 못해. 사실 그것으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다음엔 그래도 내 아이한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써야 한다. 만약 아이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아이의 학습이나 활동에 더 자주 관심 기울이고, 또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더 이상 통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아이를 실제로 돕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얘기 나눈 것처럼, 아주 효율적인 방법 하나는... 아이의 욕구에 거스르지 않고, 반대로 그에 화답하는 조건과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이가 많이 움직이고 싶어 할 때 안전하고 열린 공간을 만들어 주면 될 것이고, 물웅덩이에 호기심을 보이고 철벅거리고 싶어 한다면 장화를 신기면 될 테고, 벽에 그림을 그리고 낙서하고 싶어 한다면 값싼 벽지를 발라 주면 되지 않겠는가.
물살을 따라 노를 젓는 것이 거슬러 올라가기보다 더 쉽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
아이의 욕구를 이해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당신의 행동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이의 얘기를 가장 폭넓게 적극적으로 듣는다는 뜻. 부모의 이런 능력은 적극적 듣기 기법을 더 많이 실천하면서 발달된다.
4. “넌 나에게 소중하단다, 네가 하는 일은 다 잘 될 거야!”
우리 항아리 도표의 층을 따라 더 밑으로 내려갈수록, 아이와 소통하는 스타일이 아이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좋은, 소중한, 재능 있는, 혹은 나쁜, 쓸모없는, 실패한 사람인지를) 아이는 오로지 어른들한테서, 특히 부모한테서 알게 될 것.
만약 가장 깊은 층이 (즉, 감성적인 자아감이) 부정적인 심적 체험으로 이뤄져 있다면, 아이의 여러 생활 분야가 어지러워진다.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루기 힘든’ 골칫덩이가 된다. 그런 경우 아이를 돕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부모에 대한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가장 많고, 특히 이 책에서 다루는 트레이닝이 아주 효율적이다.
아이가 자기 자신이며 주변 세계와 불협화음을 크게 만들지 않게 하려면, 아이의 자존감을 늘 북돋울 필요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다시 살펴보자.
► 아이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기
► 아이의 심적 체험과 욕구를 적극적으로 듣기
► 함께 있기 (책 읽기, 놀기, 작업하기)
► 아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에 간섭하지 않기 (독자성 존중)
► 아이가 요청할 때 도와주기 (근접발달 영역 법칙)
► 아이가 하는 일이 잘 되게끔 지지하기
► 자신의 여러 감정을 나누기 (즉, 아이를 신뢰하기).
►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 일상 소통에서 다정한 어구를 이용하기. 예를 들어,
너랑 같이 있으니까 좋구나. 널 보니까 기쁘단다.
네가 집에 오니까 좋다.
네가 ... 하는 게 난 좋단다.
엄마는 네가 보고 싶었단다.
자, 함께 (해볼까, 앉자꾸나 등등.)
넌 당연히 해낼 거야. 잘 처리할 거야.
네가 우리한테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 하루에 최소한 4번 포옹하기, 8번이면 더 좋아.
저런 방법 이외에도 자녀에 대한 사랑과 직관이 당신에게 알려줄 방법이 또 많이 있다.
비록 갈등과 충돌로 한숨과 탄식이 생긴다 해도, 그런 것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또 많이 있다.
그러니 늘 희망을 품고 차분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꾸준히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행운과 마음의 안녕이 당신께 (모든 부모에게) 깃들기를!
(자녀와 소통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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