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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The Devils of Loudun

 


 

  리슐리외 추기경은 세속적으로도 성직자로서도, 또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지위에서도 높은 지위에 걸맞게 굴고자 하면서 절반 신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노인은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함께 앉아 있기가 힘들 만큼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질병에 시달렸다.

  오른손 골결핵과 항문균열이 있었으니,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고름 냄새를 늘 풍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사향과 영묘향으로 감추려 했지만 썩은 고기 냄새 같은 악취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한테 물리적 혐오 대상이라는 굴욕적인 사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권위는 절반 신과 같은데 육신은 죽음을 달고 있는 것이 극심한 대비였다. 동시대인들은 이 패러독스에서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받았다. 

 

   (치질 치료에 기적 같은 묘약으로 알려진) 성 피아크르[각주:1]의 성유물을 모(Meaux) 도시에서 추기경 궁으로 가져왔을 때, 익명의 시인이 이 사건을 두고 시를 읊었다. 이 시에 조나단 스위프트[각주:2]가 매우 즐거워했을 터이다. 

 

대신의 집무실들을 거쳐 아주 잽싸게 

성스러운 유해를 날라 왔구나. 

그래봤자 기적의 향내를 

맡는 기쁨은 거의 누리지 못했을 게야.

추기경의 썩은 엉덩이가 끊임없이 줄줄 흘려댔으니. 

 

  위대한 인물의 항문균열을 묘사하는 다른 발라드도 있었다. 현실적 인간의 썩어가는 몸과 그의 영광된 페르소나 간의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줄 고티에의 표현을 빌자면, 이 경우 실제를 판타지와 떼어놓는 ‘보바리 각도’가 180도에 근접했다. 

 

  왕들과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절대 권위를 당연시하도록 교육받고, 그렇기 때문에 지배자들이 풍기는 허식의 거품을 터뜨릴 기회를 즐겁게 받아들인 세대에게 리슐리외 추기경의 경우는 가장 만족스러운 우화였다. 

 

리슐리외 추기경과 로바르데몽

 

  휴브리스[각주:3]는 그에 걸맞은 네메시스[각주:4]를 불러들이게 마련이다. 심한 악취와 살아 있는 몸뚱이에서 배를 채우는 벌레들이 동시대인들 눈에는 추기경의 업보였다

  추기경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성유물도 작용하지 않고 의사들도 포기했을 때, 위대한 인물 곁에 불러들인 사람은 치유 능력이 용하다고 소문난 시골 노파였다. 무슨 주문을 웅얼거리면서 노파가 병자에게 이적을 행한다는 영약을 먹였다. 그건 백포도주 1파인트에 녹인 말똥 4온스. 

  유럽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흔들던 절대자는 그렇게 입에서 배설물을 음미하며 저승으로 떠난 것이다. 

 

  잔느가 만났을 때, 리슐리외는 영광의 절정에 있었지만 이미 병이 깊어서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며 의사가 늘 달라붙어야 했다. 

  「그날 추기경께서는 사혈을 했다. 루엘 대저택의 문들이 굳게 닫혀서 주교들과 프랑스 육군원수들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기실로 안내됐다. 비록 예하께서는 침대에 계셨지만.」 

  저녁식사 후 (「식사는 아주 호사스럽고, 예하의 시동들이 우리를 시중들었다」)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를 처소로 인도했다. 그들이 추기경 예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굽혔고, 예하 계신 곳에서 감히 의자에 앉을 수 있는지를 두고 오랜 시간 설전이 이어졌다. (「예하께서는 예우해주시고 우리로서는 한사코 사양하느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결국 난 권유에 따라야 했다」) 

 

  리슐리외는 원장수녀가 하나님께 큰 책임이 있다는 말로 말문을 텄다. 이런 불신의 시대에 교회의 명예를 세우고 영혼들을 구제하고 악인들을 무찌르라고 그분께서 특별히 당신을 선택하신 게요. 

  잔느 수녀가 감사의 찬가로 응답했다. 세상이 우리를 미친 사기꾼으로 취급하는 마당에 예하께옵서는 저희에게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요 보호자요 수호자 역할을 해주셨음을 저와 제 자매들이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추기경은 그런 감사를 받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했다. 외려 나는 고통 받는 이들을 도울 기회와 수단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낄 뿐이외다. (원장수녀 기록에 의하면, 그는 ‘매혹적으로 우아하고 온화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위대한 인물이 물었다. 당신 왼손에 새겨진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보아도 되겠소? 

  성스러운 글자들에 이어 성 요셉의 성유 차례가 됐다. 잔느가 슈미즈를 펼쳐 보였다. 성물을 손에 들기 전에 추기경이 나이트캡을 경건하게 벗었다. 축복받은 물건을 냄새 맡고는 “참으로 좋은 향기로다!” 하고 외치면서 두 번 입맞춤했다. 그 뒤 슈미즈를 ‘존경과 경탄하는 자세로’ 접어서 침대 곁탁자 위에 놓인 성해함에 넣었다. 그건 성유에 있는 위광이 성해함에 든 물건들에도 전해지게끔 하려는 모양이었다. 

 

  리슐리외의 부탁을 받고 원장수녀가 (글쎄, 이미 천 번도 더 했을) 자신의 치료 이적(異跡)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릎을 꺾자 추기경이 다시 축복했다. 인터뷰가 끝났다. 다음날 예하께서 성지 참배 경비에 쓰라고 그녀에게 500 리브르를 보내 왔다. 

 

  이 면담에 대한 잔느의 기술을 읽다 보면 추기경이 오를레앙 공 가스통[각주:5]에게 보낸 서신들이 절로 떠오른다. 그 서신에서 그는 오를레앙 공이 마귀 들림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믿는다고 역설적으로 빈정댔다

  「루덩의 악령들이 전하 영혼에 변혁을 일으키는 바람에 전하께서 예전에 남용하던 신성 모독적인 언사를 이제 완전히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행복하오이다. 루덩의 악마들 덕분에 전하께서 받은 계시가 전하를 덕행으로 이끄는 오랜 여정에 곧 나서도록 도울 것이외다.」 

 

  루덩에 관한 언급이 하나 더 있다. ‘루덩의 악마들 중 하나’인 전령을 통해 왕제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리슐리외는 그 병이 ‘전하께서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전하께 동정을 표하며, 질병 탈출 방법으로 ‘조셉 신부의 엑소시즘’을 제안한다.    

 

  왕제에게 보낸 이 서신들은 그랑디에를 악마들과 결탁했다 하여 화형에 처한 사람이 쓴 것이면서도 오만한 태도만큼이나 반어적인 의혹으로 가득하다. 오만함은 자신의 사회적 상급자를 ‘깔아뭉개려는’ 다그침에서 드러나는데, 이런 부적절하고 유아적인 요소는 그가 평생 품고 있던 콤플렉스에서 비롯됐다

 

리슐리외 초상화

 

  그렇다면 의심쩍은 태도와 냉소적인 아이러니는 또 어떤가? 마법과 마귀 들림, 손바닥 글자 낙인과 축복받은 슈미즈에 대해 예하의 진정한 견해는 무엇이었나? 내 짐작에… 문외한들 속에서 기분 좋을 때 리슐리외는 루덩 스토리 전체가 완전한 협잡 아니면 자발적인 망상, 혹은 그 둘 다라고 간주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가 만약 악마를 믿는 척했다면, 그건 오로지 정치적 이유에서 나온 것이었을 뿐

 

 한데, 오호라, 그 과정을 대중은 그가 바라던 만큼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그렇게 미심쩍게 여기는 분위기가 커지자 마법과 싸운다는 명분하에 종교재판 식의 게슈타포를 만들어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음, 뭔가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는 것은 언제든 바람직한 자세야. 결과가 신통치 못했다 하더라도 이 실험은 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잖아. 사실,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화형에 처했지. 그러나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오믈렛을 만들 수 있으랴. 게다가 그 주임신부는 골칫거리였으니 제거하는 게 더 좋았어. 

  그러나 그 뒤 어깨 통증이 도지고 상처 때문에 난 누공도 견디기 힘든 통증을 안기면서 밤마다 잠을 깨웠다. 리슐리외가 의사들을 연신 불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에 있었던가! 

 

  그 시대 의술 효험은 주로 ‘자연의 치유력’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의 이 비참한 몸뚱이에서는 자연도 치유력을 잃은 듯 보였다. 리슐리외가 경악했다. 

  이게 혹여 초자연적 것에 기인한 병이라면 어떡하지? 

  성물들과 성상들을 가져오게 하고, 자신의 회복을 위해 다들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이 위대한 인물이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남몰래 별점도 치고, 미덥게 여기는 부적들도 만지작거리고, 어린 시절 늙은 유모한테 배운 주문도 웅얼거려 보았다

 

  병이 깊어졌을 때, 대저택 문들이 ‘추기경과 프랑스 육군원수들한테도’ 굳게 닫혔을 때, 그는 무엇이든 다 믿을 준비가 돼 있었다. 우르뱅 그랑디에가 무죄라는 사실뿐 아니라 이적을 행한다는 성 요셉의 성유조차도

 

  잔느 수녀한테 예하 접견은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후 기나긴 승승장구 여정의 일환일 뿐이었다. 루덩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안시로, 도처에서 열렬한 환영과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동했다. 대귀족들이 베푸는 환대가 그녀 허영심을 가득 가득 채워 주었다

  투르에서는 베르트랑 드쇼 대주교가 ‘극진한 친절과 호의’로 맞이했다. 그는 팔순의 노신사로서 도박에 쏟는 열정으로 유명했는데, 근자에는 오십이나 나이 어린 슈브레즈 부인에게 코믹한 사랑에 빠져 만인의 웃음가마리가 되었다. 슈브레즈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줄 것이야.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을 때 내 허벅지를 슬슬 꼬집도록 놔두기만 하면 돼.”  

 

  잔느의 얘기를 듣고 나서 대주교는 그녀 손바닥에 나타난 성스러운 이름자들을 의사 위원회가 검사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 검사를 원장수녀가 완벽하게 통과했다. 그녀가 묵고 있는 수녀원 주변에 하루 사천 명씩 몰리던 군중이 단박에 칠천으로 늘었다. 

  대주교 면담이 한 번 더 있었는데, 이번엔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배석했다. 왕제가 투르에 온 까닭은 연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 루이즈 마벨라, 그녀는 나중에 그의 아들을 낳고 버림받은 뒤 결국 수녀가 됐다. 잔느의 기록을 보자. 

 

  「오를레앙 공께서는 객실 문까지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나한테 따스한 인사말을 건네고 악령을 기적처럼 퇴치했다고 축하한 뒤 덧붙였다. “나도 루덩에 가본 적이 있는데 당신 안에 들어앉은 악마들한테 아주 질겁했다오. 그 악마들 덕분에 난 욕하는 버릇을 고치고 앞으로는 더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서 루이즈가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원장수녀와 동행 수녀가 투르를 떠나 앙부아즈로 갔다. 성스러운 이름자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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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흥미로운 사실 10가지

 

 

  1. St. Fiacre (?-670) - 아일랜드에서 출생, 정원사들의 수호성인. 프랑스에서 더 잘 알려져. [본문으로]
  2. Jonathan Swift (1667-1745) - 아일랜드 출신 풍자 작가, 에세이스트, 시인, 성직자. <걸리버 여행기> [본문으로]</걸리버>
  3. Hubris 혹은 hybris - 지나친 자부심이나 오만. 현실감을 잃고 자신의 권한이나 업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를 가리킴. 특히 권좌에 있는 자가 그러할 때 자주 쓰인다. 휴브리스는 흔히 '정신박약 상태'와 연결된다. [본문으로]
  4. Nemesis - (그리스 신화에서) 복수의 여신. 인과응보, 필연적 결과, 천벌. [본문으로]
  5. Gaston duc d’Orleans (1608-1660) - 앙리 4세와 마리 메디치의 2남, 루이 13세의 아우.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강력한 왕위 계승 후보자. 다른 귀족들이나 모후와 함께 형인 루이 13세와 리슐리외에 맞서 에스파냐와 내통하는 등 몇 차례 반란을 시도했으나 다 무위에 그쳤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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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Aldous Huxley, 루덩의 악마들

 


6

 

  수석 치안판사 세리제는 예비 조사를 통해 확신하게 됐다. 

  그래, 진짜 마귀 들림 같은 건 없어! 그저 수녀들이 질환에 걸렸을 뿐이며, 여기엔 협잡 기미도 좀 보이는군. 게다가 참사회 위원 미뇽 쪽의 상당한 악의, 또 이 일에 관련된 교회 관계자들의 맹신과 광기, 개인적 이해관계 따위로 상황이 조장된 게야. 흠, 저 엑소시즘이라는 코미디를 그만두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되겠어. 

  그러나 수녀들의 혼과 넋을 쏙 빼놓는 그 계획을 중단시키려 하자 미뇽과 바레가 주교의 명령서를 의기양양하게 꺼내들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수녀들에게 퇴마 작업을 계속 시행하라. 그걸 보자 세리제가 교회와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엑소시즘을 계속하도록 허락은 했지만 그 퍼포먼스 때 자신이 꼭 참관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몇 번 하던 중 한번은 굴뚝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벽난로에 검은 고양이가 불쑥 나타났다. 저건 사탄의 자식이 틀림없어! 날카로운 단정이 튀어나온 동시에 사탄의 자식이 구석으로 내몰렸다가 결국 붙잡혀서 성수를 홈빡 뒤집어썼다. 수도사들이 분주하게 성호를 그어대며 그 짐승한테 다시 지옥으로 사라지라고 라틴어로 명령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 끝에 알고 보니 이 위장한 악마는 수녀들이 귀여워하는 녀석으로, 이름이 톰이었다. 녀석은 지붕 위에서 뛰어다니다가 더 빠른 길로 집에 들어오려 했던 것일 뿐. 수녀원 아치 밑에서 라블레를 떠올리게 하는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다.[각주:1]     

 

  다음 날 미뇽과 바레가 뻔뻔스럽게도 세리제의 코앞에서 수녀원 숙사 현관을 걸어 잠갔다. 그가 동료 치안판사들과 함께 쌀쌀한 가을 날씨에 밖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종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동안 안에서는 그의 지시를 어기고 두 수도사가 공식 참관인 없이 저희 제물들에게 퇴마 작업을 시행했다. 

 

루덩 수녀들을 대상으로 미뇽이 퇴마 작업

 

  화가 잔뜩 난 치안판사가 집무실로 돌아와 무례한 엑소시스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했다. 그들 행위는 협잡과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게다가 이런 구절도 들었다. 그랑디에가 악마들과 결탁했다면서 원장수녀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마당에 비밀로 해야 할 것이 무에 있겠소. 오히려 이제 모든 것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공정하게 행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런 단호함에 깜짝 놀란 엑소시스트들이 사죄를 구하며 황급히 알렸다. 수녀들이 진정됐으니 당분간은 엑소시즘이 불필요하게 됐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랑디에가 주교한테 호소하기 위해 푸아티에로 말을 달렸다. 그러나 그가 들렀을 때 라로슈포제는 접견을 거부하고 수하를 통해 이런 취지의 메시지만 덜렁 보냈다. 

  그랑디에 신부는 왕실 판사들한테 소를 제기해야 하고, 이 사건에서 정의가 승리한다면 본 주교는 대단히 행복할 것이다. 

 

  주임신부가 루덩으로 돌아와서 즉각 수석 치안판사에게 미뇽과 그 패거리의 못된 짓거리를 금해 달라고 청했다. 세리제가 신속하게 금지 명령을 내렸다. 차후로는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 성 베드로 교회 주임신부에 대한 중상과 비방을 엄금한다. 이와 더불어 미뇽에게 엑소시즘을 더 이상 시행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참사회 위원이 날카롭게 응수했다. 

  나는 교회 지도부에만 매여 있을 뿐이며, 악마가 개입돼 있기에 완전히 종교적인 이 사건에서 사법 당국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소. 

 

  그 사이에 바레가 시농에 있는 제 교구로 돌아갔다. 그는 공개 엑소시즘을 더 이상 벌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참사회 위원 미뇽은 조프리디 신부 재판을 다룬, 미하엘리스 수사의 베스트셀러를 매일 몇 시간씩 신도들에게 읽어 주면서 그랑디에는 화형 당한 프로방스 동료 못지않게 위험한 마법사이며 당신들 역시 그의 마법에 걸렸다고 떠들어댔다

 

  그 무렵 수녀들이 어찌나 기이하고 난잡하게 행동했는지 수녀원 기숙학교에 딸을 맡긴 부모들이 경악했다. 기숙학교에는 금방 학생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고, 아직 과감하게 수녀원을 드나드는 통학생 몇 명이 가장 불안케 하는 소식을 들고 나와 사람들 상상을 계속 자극했다. 

 

  수학 시간에 클레어 수녀가 대뜸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지 뭐예요, 마치 누군가가 간지럼 태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식당에서 마르타 수녀가 루이즈 수녀와 드잡이를 했는데, 둘 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댔어요! 

 

마귀 들렸다는 수녀를 상대로 엑소시즘을 시행하는 수도사

 

  11월 하순 바레가 시농에서 돌아온 뒤 그의 영향을 받아 수녀들 증세가 대번에 악화됐다. 수녀원이 이제 정신병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외과의 만누리와 약제사 아담이 불안한 마음에 도시 일류 의사들에게 와서 보고 자문 좀 해주십사 청했다. 그들이 수녀원에 와서 수녀들을 일일이 검사한 뒤 수석 치안판사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결론은 이랬다. 

  「수녀들이 물론 제 정신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이 악마며 악령들의 작용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이른바 마귀 들림은 모든 면으로 판단컨대 실제가 아니라 허황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 보고서로 상황이 종료된 듯했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들과 그랑디에의 적수들한테는 그렇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세리제에게 다시 탄원하자 세리제가 엑소시즘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가학을 끝장내려고 다시 시도했다. 하지만 똑같은 스토리가 반복됐다. 즉, 미뇽과 바레가 사법 당국 지침을 또 무시했고, 수석 치안판사는 수도사들을 상대로 물리력을 동원할 때 생길 파문을 우려하여 또 움츠러든 것. 

  그 대신 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 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대미문의 불량한 짓’을 예하께서 막아 주십사고 촉구했다. 이런 내용도 적었다. 즉, 그랑디에는 평생 그 수녀들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만약 수녀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악마들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안다면 자신에게 가하는 중상비방과 모욕에 복수하기 위해 왜 악마들을 이용하지 못하겠습니까?」 

  이 서한에 라로슈포제가 응답하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주교의 판결에 감히 반박했을 때 그는 치명적인 모욕감을 느꼈었다. 따라서 시건방진 주임신부를 괴롭힐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전적으로 옳고 적절하고 합당했다. 

 

  그러자 세리제가 서신을 한 통 더 썼다. 이번에는 주교 관구 법률 감독관에게 보냈다. 주교한테 보낸 것보다 더 상세하게 적은 이 서신에서 그는 루덩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광대극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미스터 미뇽은 미스터 바레를 이미 성자로 칭하며, 두 사람은 자기네 상급자들의 평가도 기다리지 않은 채 서로를 성자 반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바레는 악마가 수녀들 목소리로 말하면서 문법이 틀리면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구경꾼들 중에서 의심하는 사람들을 불러내 제가 하는 대로 마귀 들린 수녀 입에 손가락을 넣어 보라 하기도 하지요.[각주:2]

  프란체스코회 루소 수도사는 그렇게 하다가 어찌나 세게 물렸는지 다른 손으로 수녀의 코를 잡아당겨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손가락을 빼내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서 “오, 이 악마, 악마야!”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는 생선 토막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내쫓는 식모들 고함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이 사건 이후 성수에 담근 손가락을 마귀가 왜, 어떻게 깨물 수 있었는지 진지하게 토론한 끝에 성직자들은 주교께서 교회에 성유를 너무 적게 내리는 바람에 주입된 영력이 손가락까지 미치지 못한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몇몇 풋내기 성직자들이 엑소시즘을 해 보겠다고 나섰다. 개중에 필리프 트렌캉의 오빠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젊은이가 라틴어를 워낙 시원치 않게 하는 바람에 학식 있는 이들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는 데뷔하자마자 멋쩍게 물러나야 했다. 세리제의 서한을 보면 그뿐이 아니다. 트렌캉이 엑소시즘을 시행한 수녀는 발작의 최고조에서도 그의 손가락을 제 입에 넣지 못하게 하면서 다른 성직자를 붙여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손가락이 너무 지저분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카푸친회의 속관구장 신부는 루덩 주민들의 각박함에 놀라고 믿으려는 마음 없음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면서 투르 시에서는 이런 기적을 주민들이 믿게 만들기가 버터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고 우리한테 장담하지요. 그를 비롯해 몇몇 성직자들이 줄곧 단언하기를, 이런 기적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죄다 무신론자이며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서신에도 역시 답장을 못 받았다. 악몽 같은 광대극이 12월 중순까지 연일 계속됐는데, 그맘때 다행히도 보르도 대주교인 수르디스가 생주앙 드 마른 대수도원에 머물려고 왔다. 그랑디에가 비공식적으로, 세리제가 공식적으로, 대주교에게 작금의 상황을 알리고 개입을 요청했다. 수르디스가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개인 주치의를 득달같이 파견했다. 

  수녀들은 이 의사가 황당무계한 짓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의 주인인 대주교가 이 스토리를 대놓고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서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어린 양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수녀들이 마귀에 들씌웠다는 징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보고서에 그렇게 썼다. 

 

  1632년 12월 말 대주교가 포고령을 공표했다. 미뇽에겐 앞으로 엑소시즘 시행이 금지됐고, 바레는 계속할 수 있지만 대주교가 지명한 두 명의 엑소시스트와, 즉 푸아티에에서 온 예수회 수사와 투르에서 온 오라토리오회 수사와 함께 해야 하게 됐다. 그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엑소시즘에 참여할 권한을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금지령은 거의 불필요했다. 그 뒤 몇 달 동안은 퇴치할 악마들이 없었으니까. 수도사들의 암시와 주입으로 더 이상 자극되지 않은 수녀들의 광란 발작은 암담한 숙취 상태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런 상태에서 정신적 혼란이 수치심이며 자책이며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자각과 뒤섞였다. 

  대주교 말씀이 옳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악마라곤 애초부터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저지른 끔찍한 행위와 언사는 깡그리 우리 죄가 될 수 있잖아!   

  마귀 들렸다고 간주된 상태에서는 아무도 그들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이제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성 모독과 음란한 언행, 거짓과 중상비방에 대해 그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해명해야 하리라. 수녀들한테 지옥이 아가리를 발바투 벌렸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돈줄이 뚝 끊기고 사람들이 모두 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여학생들 부모며 도시의 독실한 귀부인들, 구경꾼 무리, 심지어 일가친척까지 모조리 이 불행한 여인들한테서 등을 돌렸다. 그야말로 일가친척들까지도! 

  왜냐하면, 대주교 판결에서 분명해졌다시피 그들은 협잡꾼 아니면 우울증 환자들로 드러남으로써 집안 명예도 더럽혔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자 다들 내놓은 자식이 되었고 집에서 보내오던 용돈마저 딱 끊겼다. 숙사 식탁에서 고기와 버터가, 주방에서 하녀들이 사라졌다. 숙사의 크고 작은 일을 수녀들이 직접 하게 됐고, 그게 끝나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바느질을 하거나 양털로 실을 뽑았다. 탐욕스러운 장사꾼들은 수녀들의 절박함과 불운을 악용하여 정상적인 노동 대가보다 더 헐한 값을 지불했다. 

  가련한 여인들이 배곯고 힘겨운 작업에 시달리며 극히 추상적인 두려움과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외려 얼마 전 악령에 사로잡혔을 적의 행복한 나날을 그리워하게 됐다. 겨울 끝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됐건만 그들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1633년 가을이 되어서야 희망이 살아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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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François Rabelais (1494-1553) -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중견 작가, 의사, 인문학자, 자연주의자, 휴머니스트, 법률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현대 유럽문학에 기초를 놓은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도처에서 횡행하는 끔찍한 사회적 질환에 거대한 웃음보따리를 처방했다.” ‘라블레 풍의 웃음’이란 솔직하고 거칠면서 풍자적이고 유머가 풍부한 웃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2.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요한복음 20: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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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올더스 헉슬리,의자에 앉아 생각하는 모습

 


 

  루덩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수녀들이 집단으로 악령에 사로잡혔다는 주장과 마귀 들림의 단초가 그랑디에의 마법이라는 주장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다음에서 나는 그의 죄목을 주로 다루고, 마귀 들림 문제를 그 다음 장에서 검토하려고 한다. 

 

  초기 엑소시스트 팀의 멤버였던 트랑킬 신부는 1634년 <루덩 수녀들 마귀 들림과 우르뱅 그랑디에 재판에서 관찰된 공정한 절차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자를 냈다. 제목 자체가 거짓이다. 왜냐하면 이 책자에 진실한 얘기는 전혀 없고, 재판을 의심쩍게 여기며 인정하지 않으려는 여론을 상대로 엑소시스트들과 판사들을 그럴 듯하지만 서툴게 옹호할 뿐이기에 그렇다. 

  1634년 대다수 교양인들은 수녀들이 마귀 들렸다는 얘기를 썩 믿지 않고 그랑디에의 무죄를 확신하면서 아주 불공정한 재판 과정에 충격 받고 분개했음이 분명하다. 트랑킬 신부는 작은 설교 같은 달변으로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인쇄에 들어갔으나,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실, 국왕과 왕비는 마법이 있다고 확고하게 믿는 이들이었지만 대다수 궁정 신하들은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엑소시즘을 보러 온 사람들 중 거의 모든 교양인은 수녀들이 정말로 악마에 사로잡혔다고 믿지 않았다. 마귀 들림이 진짜가 아니라면 그랑디에도 당연히 유죄일 수 없었다

 

  현장을 찾은 의사들 대다수는 수녀들의 질환에서 초자연적인 것은 전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떠났다. 질 메나주, 테오프라스트 르노도, 이스마엘 부요 등을 비롯해 그랑디에 사후 이 사건에 관해 글을 쓴 다른 문필가들도 그의 무죄를 용감하게 주장했다.[각주:1] 

   그러나 수많은 무지한 가톨릭교도들은 마법의 실체를 믿는 쪽에 속했다. (무지한 프로테스탄트들이 로마가톨릭 진영에서 벌어진 이 사건에 지극히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보였음은 당연하다.) 엑소시스트들이 모두 그랑디에의 유죄와 수녀들의 마귀 들림을 믿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그들은 그랑디에를 장작불에 올려놓기 위해 미뇽 같은 사람의 증거 조작도 가로막지 않았다. (심령주의의 내력을 살펴보면 사기 행위, 특히 종교를 빙자한 사기 행위가 신앙과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된다.) 

 

  대다수 성직자들이 재판에 어떻게 대했는지,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활동 성격상 역시 엑소시즘을 수행해야 하는 수도사들은 아마도 미뇽과 바레 편을 들었으리라. 그러나 세속 성직자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저희 동료가 악마한테 영혼을 팔고 열일곱 수녀들에게 마법을 걸었다고 믿고, 그렇게 설교했을까? 

  고위 성직자 계층에서 의견이 날카롭게 갈렸음은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다. 보르도 대주교는 그랑디에가 무죄이며 수녀들이 미뇽의 교묘한 행위와 자궁광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확신했다. 반면에 푸아티에 주교는 수녀들이 정말 마귀에 들렸으며 그랑디에가 마법사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다면 왕국의 으뜸 성직자요 추기경 공작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나중에 우리가 보게 되듯이, 리슐리외는 어떤 상황에서는 마법의 실체를 완전히 의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마법사를 화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둘 다 위선을 떤 것이 분명하지만 그 상반된 태도 양쪽에 다 확신이 있었다는 점도 아주 확실하다. 

 

  마법이란 흑마법이든 백마법이든 (신성하지는 못해도) 초자연적인 수단으로써 자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과 과학의 결합이다. 모든 마녀들은 마법과 악령의 힘을 이용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이탈리아에서 La Vecchia Religione[각주:2]라 부르는 것을 지지하기도 했다. 

 

마법을 시행하는 여인들

 

  마거릿 앨리스 머레이[각주:3]는 뛰어난 연구서인 <서구의 마녀 숭배> 머리말에서 이렇게 적는다.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효험 발휘하는 마법’과 ‘의식 절차가 있는 마법’을 분명히 구분한다. 효험 발휘하는 마법이라 함은 선이나 악, 살인이나 치료를 의도하여 전문적인 마녀나 기독교인이 사용하는 모든 부적과 주문을 말한다. 그런 부적과 주문들은 모든 민족과 모든 나라에서 흔하며, 모든 종교의 성직자와 신도들이 관행적으로 쓰고 있다. 이는 인류 보편적 유산의 일부인 것을… 

 

  의식 절차가 있는 마법 혹은 내가 부르는 식으로 ‘다이애나 숭배’로 말하자면, 이건 중세 후반에 ‘마녀’로 알려진 사람들의 의식이요 종교적 믿음을 포함한다. 크리스트교 이면에 공동체의 많은 계층이 참여한 예배 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이 여러 증거로 입증된다. 많은 계층이라고 하지만 주로 더 무지하고 문맹이며 유럽 국가들 중 인구 적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것은 기독교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서구의 가장 오래 된 종교로 보인다.」 

 

  서구가 ‘기독교로 전환된’ 이래 천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흐른, 그 은총의 1632년에도 고대의 다산 종교는 뼛속까지 ‘반정부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상당히 손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엔 나름대로 신관들과 신앙인들과 영웅적 순교자들이 있었고 교회 조직도 갖추었다. 그것은 코튼 매더[각주:4]의 말대로라면 조합교회의 조직과 똑같았다. 

  고대 신앙이 그때까지 잔존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것은 지금의 과테말라 토착민들이 알바라도[각주:5]가 발을 내딛은 이후 그들 첫 세대에 비해 더 두드러지게 가톨릭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된다. 어쩌면 칠팔백 년 뒤 중앙아메리카의 종교적 상황은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소수의 고대 종교 신봉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한 17세기 유럽과 비슷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 주 ☞ 몇몇 지역에서는 주민 대다수가 다이애나를 숭배하고 추종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니콜 레미, 앙리 보게, 피에르 랑크르 등이 각각 17세기 초 로렌, 쥐라, 바스크 지역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각주:6] 

  그들 책을 보면, 그 외진 지역들에서 많은 사람이 적어도 웬만큼은 옛 종교를 지켰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안전을 기하기 위해 낮에는 기독교 신을, 밤에는 악마를 숭배했다. 바스크족의 많은 성직자들은 백미사와 흑미사, 양쪽 미사를 다 올렸다

  피에르 랑크르는 이 괴짜 성직자들 중 셋을 장작불에 태워 죽이고, 사형수 독방에서 탈출한 다섯 명을 놓쳤으며,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의식 절차가 있는 마법의 주된 식전은 이른바 Sabbath였다. 이 단어의 기원은 불확실한데 히브리어의 동음이의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배스는 일 년에 네 번 열렸다. 2월 2일 성촉제, 5월 1일 예수 십자가 주간, 8월 1일 수확제, 10월 31일 핼러윈에. 이건 다 아주 성대한 페스티벌이었다. 독실한 신자들이 아주 먼 지역에서 종종 수백 명씩 참석하곤 했다. 

  아직 고대 종교를 믿는 마을들에서는 작은 회중을 위해 사배스 개최 중간 중간에 매주 ‘에스뱃 Esbat’을 베풀었다. 모든 떠들썩한 사배스에는 악마가 필히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것은 전통에 따라 다이애나 컬트의 두 얼굴 가진 신으로 분장한 남자 모습이었다

 

  숭배자들이 그의 ‘뒤쪽 얼굴’에, 즉 동물 꼬리 아래 악마 둔부에 달린 마스크에 입을 맞춤으로써 이 신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고 나서 적어도 몇몇 여성 신자들을 위하여 신과의 교접 의식이 벌어졌는데, 이때 신은 뼈나 쇠붙이로 된 인공 음경으로 치장했다. 

 

  이어서 (사배스는 야외 신령한 나무나 바위 곁에서 열렸으니까) 피크닉이 시작되고 춤판이 벌어지고, 마지막으로 상대를 가리지 않는 섹스 향연이 열렸다. 이 향연은 본래 원시 사냥꾼들과 가축 사육자들이 생계 의존하던 동물들의 다산을 증진하기 위한 주술적 기능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배스 Sabbath 다이애나 컬트

 

  사배스의 분위기는 서로 태평하게 뒤섞여 어울리며 원시적인 흥겨움과 분방함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축제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고 고문당하면서도, 화형 기둥에 묶여서도, 자기네한테 큰 행복을 안긴 종교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다

 

  교회와 세속 치안판사들이 보기에 악마 파티 회원은 마법이란 범죄를 더 중하게 저지른 자들이었다. 사배스에 열심히 참석한 마녀는 호젓하게 제 일을 행한 마녀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로 간주됐다. 마녀 집회에 참석함은 기독교보다 다이애나 컬트를 더 중시한다고 대놓고 밝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마녀들과 마법사들은 은밀한 형제단 같은 것을 조직했고, 이 조직을 야심에 불탄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제임스 보스웰이 그런 목적으로 스코틀랜드의 마녀 집회를 이용했음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외국과 브리튼의 가톨릭교도들이 여왕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마녀들과 마법사들을 고용했다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녀의 고문단이 확신한 것은 그 확신이 옳고 그름을 떠나 더더욱 분명한 사실이다. 장 보댕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마법사들이 일종의 마피아 조직을 구성해 모든 도시와 마을 각계각층에 은밀하게 회원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한층 더 혐오스러운 죄를 씌우려고 그랑디에는 효력 발휘하는 마법뿐 아니라 사배스 의식에도 참석했으며 ‘악마 교회’의 멤버였다고 재판에 고발됐다

  세례를 당당하게 포기한 예수회 제자, 악마에게 경의 표하기 위해 제단을 황급히 물러난 성직자, 요술쟁이들과 지그 춤을 추며 마녀들과 염소들과 인큐버스들과 어울려 건초더미에서 뒹구는 진지한 신학자그런 형상이 만들어 낸 스펙터클은 독실한 가톨릭교도들을 오싹하게 만들고, 속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프로테스탄트들에게 기쁨을 안기게끔 잘 계산된 것이었다

 

(<루덩의 악마들> 5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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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3)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2)

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1)

 

 

  1. *Gilles Ménage (1613-1692) - 프랑스의 인문학자, 법률가. *Theophraste Renaudot (1586-1653) - 루덩에서 태어났고, 스케볼라 생트마르트의 친구였다. 의사, 저널리스트. 1631년 프랑스 최초의 뉴스페이퍼인 주간지 창간. '프랑스 저널리즘의 아버지'.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 가운데 그의 이름을 딴 것이 있다. *Bouillaud (1605-1694) - 루덩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사서, 수학자, 천문학자, 성직자. (이 책에 나오는 그랑디에 신부의 부제로 일했다.) [본문으로]
  2. (이탈리아의) 옛 종교. 기독교 이전 유럽의 신비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고대 이탈리아의 마녀 종파. 그리스도교가 퍼지면서 악마로 취급되고 배척됐다. 1980년대 이래 그리마씨에 의해 퍼진 Stregheria는 마법을 뜻하는 고대 이탈리아어이며, 바로 이 옛 종교의 회복 움직임. [본문으로]
  3. Margaret Murray (1863-1963) - 영국의 이집트학자, 인류학자, 고고학자, 문화학자, 저술가. 이집트 미라를 공개적으로 풀어 헤친 첫 여성. 또한 마녀 숭배 가설을 널리 전파. 1921년 출간된 는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본문으로]
  4. Cotton Mather (1663-1728) -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설교가, 저술가, 에세이스트. 신비적 요소와 근대 과학에 동시에 눈길 돌려서, 마녀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천연두 예방 접종을 장려. 마녀 재판에서 (그랑디에의 경우처럼) '유령 증거'가 채택되지 못하도록 힘썼다. [본문으로]
  5. Pedro de Alvarado (1495–1541) - 에스파냐의 정복자, 과테말라 통치자. [본문으로]
  6. *앙리 보게 (1550-1619) - 당대 유명한 재판관. 마법으로 기소된 사람들을 모두 처형했다. <마녀 처형에 관한 법률 지침서> *Pierre de Lancre (1553–1631) - 보르도의 마녀 재판관. 바스크 지방의 프랑스 역내에서 마법 관행을 근절하라는 앙리 4세의 명을 받고 1609년 라브르 지역에서 넉 달 동안 수십 명을 사형했다. 그 자신의 허풍에 따르면 6백 명 넘는 남녀를 고문하고 화형에 처했다고도. 사배스, 수화광(獸化狂), 사배스 중에 성관계 등을 분석하며 마법에 관해 많은 책을 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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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Chimin)

 

올더스 헉슬리 루덩의 악마들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4)

 

 

7

 

 

프랑스 역사에서 아주 특이한 사건 자료를 수집하고 있지요. 한 수녀원 수녀들이 모두 악마에 들씌웠는데, 이건 협잡과 히스테리, 음모로 시작되어 끔찍한 사법살인으로 이어졌다오. 이 사건에는 또 당대 가장 경건한 성직자에 속하는 수렝 수사가 등장하여 원장수녀 잔느한테서 퇴마 작업을 합니다. 사실, 마귀 들렸다는 점 때문에 명성을 누린 이 원장수녀가 모든 재앙의 주범입니다. 

루덩 수녀원의 잔느 수녀원장과 자매들


이 여인에게 들어앉은 악마를 물리치려고 고군분투하던 중에 수렝 수사가 외려 심리적 질환에 감염됐어요. 즉,
악마들에 사로잡혀 거의 광인 같은 세월을 이십 년 넘게 보냈는데, 그런 광기 속에서도 고결한 성품과 영적 투쟁 덕분에 결국 제 속에 들어앉은 악마를 물리치고, 평온한 노년을 보내면서 총체적 인식(지각)과 더불어 일종의 성스러움까지 얻게 됐습니다. 그리고 영성에 관해 당대 가장 의미 있는 저술을 몇 편 내놓았어요. 

 

잔느의 경우는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이모저모로 과시하고 관상 경지에 이른 성녀 역할을 멋지게 해내며 찬탄과 사랑과 경배까지 받으며 살다가 종내에는 명성과 인기를 잃게 됩니다. 

 

귀신들림과 엑소시즘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 마법사로 낙인찍힌 신부를 화형으로 몰아간 사법 살인, 이에 대한 사회의 반응, 미치광이 취급받는 수도사의 면면 등이 죄다 아주 생생하게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특히, 원장수녀와 수렝 수사의 성격이 흥미진진하답니다.」 

 

이건 헉슬리가 1942년 7월 런던에 있는 발행인에게 보낸 편지. 우리가 보게 되듯이 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극에서 극을 달린다. 

마귀 들린 여인들, 그 불가사의한 현상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권력과 엑소시스트들, 그들 편에 선 재판관들, 마법사로 몰려 사법 살인을 당한 성직자. 

 

작가가 역사의 특별한 사건을 대하면서 (오늘날에도 응당 통용되는) 다양한 질문을 상정하고 그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연구한 각종 문헌의 방대함이 실로 놀랍기만 하다. 그 결과, 교리며 신앙, 신비주의, 영성, 초자연적 현상, 심리학, 정신의학,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시대, 휴머니티 등이 담긴 역사 탐방이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재구성된다. 

 

엑소시즘을 시행하는 수사들

 

과학적 정확성과 신뢰성이란 본질적으로 예술성 바깥에 있다. 하지만 헉슬리 같은 문필가가 구상한 세계를 그저 ‘있음직하게’ 묘사하는 게 아니라 ‘믿음직하게’ 묘사하고자 하는 경우, 어떤 사건이나 관점을 읽는 이가 수긍하게끔 보이고자 하는 경우… 예술적 실제의 과학적 이면은 미학적 구상의 토대가 된다. 

(현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적 중요성을 부여하기 위한) 과학적 구성은 1930년대 이후 명료한 예술적 투영만큼이나 그에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 

 

영국에 거주하던 때 발표한 작품들이 미학적으로 정연한데 비해 미국 체류 시기 작품들이 문학적 완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바로 그런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인생 후기에 나온 픽션이며 에세이들이 더 독특한 맛을 주는 건 아닐까? 

 

그의 텍스트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과잉 정보’와 ‘교훈적 요소’ 같은 것은 작가로서의 재능이 감소했기 때문이 아니라… 통섭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의 혈관에 과학과 문학의 유전자가 공존하고 있음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존재요 사회적인 존재로서 겪는 공포에서, 미래의 공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를 평생 숙고했으며, 그 숙고의 결과를 카프카나 조이스 같은 당대 작가들과는 전혀 다르게 표현했다. 자신을 무엇보다도 지성인으로 내보였다.

그런 측면 때문인가, 자신은 줄거리를 쉽게 궁리하고 살아 있는 형상들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처럼 타고난 작가가 아니라고. 다시 태어난다면 학자가 되고 싶어 할 것이라 했다. 그것도, 어쩌다 상황에 떠밀려 그리 되는 게 아니라 숙명적으로 말이다. 

실제로 그는 심리학, 초심리학, 의학, 정신병학, 정신약리학 등의 전문적 심포지엄과 학술 대회들에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참여한 거의 유일한 작가였다

 

그가 전문가들 못지않게 연구하고 중시한 심리학, 의학, 생물학을 비롯해 다방면에서 가장 해박한 지식 덕분에 귀신들림과 ‘마녀 사냥’이라는 (지금도 형태를 달리하여 본질적으로는 상존한다 할 수 있는) 문화적 현상을 다양하게 조명하면서 분석한 <루덩의 악마들> 같은 독창적 논픽션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문학과 과학의 공존을 추구했다. 

 

<루덩의 악마들>이 아이디어 면에서 1961년 미셸 푸코가 내놓은 <광기의 역사>의 개념을 앞섰다는 점이 놀랍다. 

 

어떤 이들에겐 헉슬리의 이 텍스트가 술술 읽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식의 확장과 전환을 갈구한다면, 웬만큼 고생할 가치가 충분하다. 

글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말랑말랑하여 접하기는 쉽지만 남는 게 별로 없는 글이 있는 반면에, 뭔가 묵직한 게 있어 보이는데 파고들기 쉽지 않은 글도 있다. 헉슬리가 인생 후반에 픽션보다는 에세이와 논픽션에 더 치중한 까닭은 아마도 그 중간 어디쯤을 지향했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모든 것에 관해 거의 모든 것을” 말하고 싶어 한 그에게 기존의 문학 장르 개념과 원칙은 외려 거추장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목표는 단 하나, 독자로 하여금 삶의 다양한 측면을 좀 더 깊숙이 탐구하게끔 단초를 제공하자는 것

 

마지막 장편 <섬>에서 픽션이 철학적 에세이며 사회적 비평과 상당히 혼재한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루덩의 악마들>에서 그가 동원한 문장들은 거의 시적 수준이다. 압축적이고 깔끔해서 군더더기가 없다는 뜻. 간명함이라는 미덕은 그 본연의 목적 달성 이외에도 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선사하지 않는가. (번역문에서는 그 맛을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게 유감이다. 그것이 또 언어 차이에서 비롯되는 번역 한계이고.)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우리는 에세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게 된다. 생각의 자유로운 흐름, 그 생각의 논거로 각종 고전의 든든한 인용, 거기서 나오는 설득력, 우아한 문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구조적 스타일, 무엇보다도, 달변이나 수사적 효과와는 상관없이 진솔하고 정직한 토로… 

헉슬리의 <루덩의 악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역사적 일화에 대한 논픽션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일방의 입장과 해석에 치우치지 않고, 아니, 상호 대립적인 해석을 전부 끄집어내고 소개하면서도 역사적 진실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것. 한마디로, 역사가요 스토리텔러, 철학자, 사회비평가, 조사 연구자로서 번쩍이는 재능이 여기 다 녹아 있다. 그것도, 우아하고 알기 쉽게.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사람이며 사물의 잘 이해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새로운 빛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지적, 물리적 유기체를 공공의 자산으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루덩의 악마들>에는 우리 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한다면 면밀하게 탐구해야 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헉슬리의 박식과 기지와 혜안이 (우리 한국에서도) 공공 자산이 될지 여부는 독자들한테 달린 게 아닌가. 진정한 재능은 특정한 시대와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법. 

 

8

 

삼백 년이 훨씬 지나 케케묵은 사건에 작가는 왜 주목했던가? 

사실, 헉슬리 이전에도 ‘수녀들의 집단 광란’과 이를 빙자한 마녀 재판이라는, 보기 드문 역사적 사건에 많은 이들이 눈길 돌리고 그에 관한 글을 남겼다. 

 

The History of the Devils of Loudun&#44; Volumes 1-3

 

알렉상드르 뒤마를 비롯한 작가들이며 줄 미슐레를 비롯한 역사가들, 샤르코 같은 정신의학자들, 그리고 유럽의 마법과 악마학에 관한 연구자들이 말이다. (‘이야기 역사’라는 틀에서 볼 때, 뒤마가 전통적 이야기체로 썼다면 헉슬리는 이 책에서 현대적 이야기체를 동원했다 하겠다.) 

게다가 1980년 <루덩의 마귀 들림>이라는 책을 내놓은 프랑스 역사가요 문화학자 미셸 세르토처럼 우리 시대에 와서도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왜? 

 

올더스 헉슬리가 이 책을 쓰고 내던 때는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잔학무도 이후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소비에트연방에서는 ‘세계주의와 투쟁’이라 불린 부끄러운 캠페인이 펼쳐졌다. 즉, 강력한 징벌 기계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권력은 대중의 의식을 쇼비니즘과 인종주의로 감염시키고자 기를 썼다. 

또 아메리카합중국에서는 매카시즘이 작동하기 시작해 정점에 이르면서 모든 것이 알 만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전됐다. 즉, 불온사상 소유자로 낙인찍힌 이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특위에 소환되고 체포되고 숙청되고…  

 

그런 시대 분위기가 작가로 하여금 마녀 사냥이라는 광기를, 또 그 광기의 대표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집단 히스테리를 유도한 엑소시즘과 잔인한 고문과 사람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인 만행을… 한데, 알고 보니, 그 본질에 악마 따위는 없고 모든 것이 성적 억압과 종교적 과대망상을 이용해 다중을 조종한 정치적 술책과 박해였던 것일 뿐. 

 

대화와 관용과 공존 대신 음모와 조작과 선동과 탄압이 난무하는 사회는

집단 순응적 사고에 물들고 집단 광기에 빠지기 쉽다. 

루덩에서 벌어진 맹신과 증오와 폭압의 장면들 이후 삼백여 년이 지났건만 사람들이 얼마나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헉슬리는 절감한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과 자기기만에 굴하기를 거부한 그가 볼 때… 20세기의 독재자와 독재 권력과 선동가들은 교회의 수법을 적용하면서 대중을 조종하고, 사람들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외상을 입는다. 본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세와 근세 기독교 세계에서는 마법사와 그 고객을 20세기 ‘공공의 적’처럼 대했다. 즉,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을, 스탈린 시대에 자본주의자들을, 아메리카합중국에서 코뮤니스트와 그 동조자들을 대하듯이 말이다. 그들은 외국 열강의 앞잡이 취급을 당했으니, 아무리 좋게 봐도 반애국주의자요 최악의 경우엔 매국노, 이단자, 인민의 적이었다. 

지난 시대 이 극히 추상적인 퀴슬링 부류에게 부과된 형벌이 죽음이었듯이, 현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정치적, 세속적 악마 숭배자들을 기다리는 형벌도 죽음인데… 이들을 어떤 나라들에서는 코뮤니스트(빨갱이)라 부르고 또 어떤 나라들에서는 반동주의자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서 뒤돌아보면, 종교의 모든 폐해는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아도 무성할 수 있음을 우리는 본다. 또, 확신에 찬 유물론자들이 값싸게 날림으로 내놓은 이상을 절대자라도 되는 양 숭배할 태세가 돼 있으며, 열렬한 휴머니스트들이 사탄 신봉자들을 몰살하는 종교재판관의 열정으로 자기네 적들을 박해할 수 있음도 우리는 본다. 

그런 행동 패턴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어 왔으니, 인간의 그 어떤 신앙보다도 더 오래 됐다. 우리 시대에 악마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은 사탄의 존재를 하나님만큼이나 확실하게 믿은 선조들처럼 행동하기를 즐긴다. 그들은 자기네 가혹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기네 이론들을 도그마로 바꾸고, 자기네 내규를 제 1원리로 격상시키고, 자기네 정치 보스들을 신으로 추앙하고, 자기네한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악의 화신이라 몰아친다.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것을 신성한 것으로 맹신적으로 바꿈으로써, 그들은 가장 추악한 작업에 탐닉할 토대를 마련한다. 그것도 맑은 양심을 간직하며 지고지순하게 일한다고 확신하면서! 

그러다가 작금의 믿음과 신조가 낡아져 다시 터무니없어 보이게 되면 새로운 추세가 만들어질 터이고, 그리하여 태고의 광기가 적법성이네 이상주의네 진짜 종교네 하는 상습적인 가면을 계속 쓰게 될지도 모른다.」 

 

루덩의 집단 광란 사건 이후 사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 헉슬리 시대 이후 육십여 년 지난 지금, 사람들과 세상은 좀 달라졌을까? (앞에 언급한 닐 포스트먼은 현대인들이 중세 사람들보다 더 나이브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비인간적이고 비문화적이며 폭압과 광기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마녀 사냥이나 매카시즘 따위 철 지나고 위험한 유행에서, 21세기 문명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이 책에 들어 있다. 그것도, 모든 근거를 가지고 아주 확실하게. 

 

누가 귀신들린 수녀들이며, 누가 그랑디에 신부이며, 누가 리슐리외 같은 절대 권력이고 누가 그 권력의 앞잡이이고 엑소시스트들이며, 누가 몇 푼에 팔려 양심을 속이며 위증하는 자들이고, 누가 고용된 판사들이며 누가 사법살인에 연루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며, 누가 엑소시즘과 화형에 희희낙락하거나 내심 분개하는 군중인지… 

우리 사회 적지 않은 현상과 사건에도 거의 에누리 없이 대입된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메아리요 교훈’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무심하거나 게을러서 잘 모르거나 둔감할 뿐이지.)

「우리한테, 근본악은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악이나 경제적 악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실증주의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악’이라 부르기 좋아하니까) 그 근본악이 오늘날에는 마법사나 주술사가 아니라 어떤 증오에 빠진 계급이나 민족한테서 추종자들을 찾는다. 사회적 증오의 인과 구조가 바뀌었지만, 그렇다 하여 증오와 불공정이 더 줄어들지는 않았다.」 (본문에서)

 

헉슬리의 이 이야기를 그저 오래 전 사건들의 파노라마로 치부하고 만다면, 그건 더 큰 메시지를 놓치는 꼴이다. 이건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 바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헉슬리의 이 스토리를 영국 극작가 존 화이트닝이 1961년 희곡으로 각색한 것도, 영국 영화감독 켄 러셀이 1971년 <악마들>이라는 충격적인 필름으로 선보인 것도, 함부르크 국립극장의 의뢰를 받아 폴란드 작곡가 펜데레츠키가 1972년 <루덩의 악마들>이라는 오페라로 구성했으며 유럽 극장들에서 여전히 심심찮게 무대에 올리는 것도... 다 그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영화와 오페라는 동영상으로 다 나와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런 배경이라든가 바탕에서 헉슬리가 호소하는 바는 아주 단순하다.

「20세기에 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르마즈드처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다른 동료들을 악의 원리인 아리만으로 간주함으로써, 이 시대의 악마주의에, 극악무도한 행위에 승리를 안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악에 대한 생각에 집착하다 보면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다 해도 악이 세상에 더 횡행하게끔 조장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본문에서)

 

그런 까닭에 우리는 원죄보다는 원덕(신테레시스)에 더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 

 

(끝)

(루덩의 악마들 1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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