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우화14 여름 끝물과 매미 여름의 전령 매미와 여름 끝물 풍경 계절에도 그 나름의 소리가 있는 듯싶습니다. 이를테면, 봄에는 졸졸졸, 여름에는 후드득후드득, 가을에는 부스럭부스럭, 겨울엔 사각사각… 겨울잠에서 깨어난 시냇물이, 맑은 하늘에 갑자기 몰려온 먹장구름이, 숲이나 가로수길에 쌓인 낙엽이 또 밤새 소복이 쌓인 눈이 그런 소리를 내는 게 아니냐 말이죠. 일반적으로. 하지만 제가 정작 말하고 싶은 건 한여름 우리 귀에 익숙한 소리, 바로 이겁니다. 그 소리가 기세 등등해서 신경까지 건드릴 적엔 그들을 향해 혼자 악담마저 퍼붓는 경우도 가끔은 있었는데, 올 여름엔 그럴 기회가 쏙 들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매미들 소리가 예전만큼 왕성하지 않고 기운차지도 못한 것 같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긴 장마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요? 그래도 열.. 2020. 8. 28. 원숭이와 안경 원숭이와 안경 한 원숭이가 나이가 많이 들어 시력이 약해졌어요. 한데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이건 그리 심각한 문제가 못되며 안경을 쓰기만 하면 해결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어찌어찌하여 안경을 몇 개 손에 넣은 뒤, 이모저모 만져보고 살펴봤어요. 머리에 올려놓기도 하고, 꼬리에 걸기도 했어요.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혓바닥으로 핥아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 보아도 안경은 사람들이 말하는 효과를 내지 않았어요. 결국 짜증이 난 원숭이가 툴툴거렸어요. “쳇, 인간들의 헛소리를 믿은 내가 바보지! 다들 거짓말이나 늘어놓고 있는 거야. 이놈의 안경이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나중에는 하도 화가 나고 우울해져서 안경을 죄다 힘껏 내던졌어요. 바닥에 떨어진 안경들은 그만 산산조각 나고 .. 2019. 12. 22. 사과 (Apple) 사 과 늦가을이었어요. 숲속 나무마다 옷을 벗은 지 오래됐는데, 야생사과나무 꼭대기에만 사과 한 알이 아직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어요. 어느 날 산토끼가 숲에 들어왔다가 그 사과를 봤습니다. 하지만 사과를 어떻게 딸 수 있겠어요? 아주 높은 곳에 있는 바람에 아무리 뛰어봤자 거기에 닿지 못하는 거예요! 그때 어디선가 “카르르, 카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토끼가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저쪽 나뭇가지에 까마귀가 앉아서 웃고 있지 뭐에요. 토끼가 까마귀한테 소리쳤어요. “어이, 까마귀야! 저쪽에 있는 사과를 따서 나한테 떨어뜨려 주렴!” 까마귀가 사과나무로 날아가서 사과를 땄어요. 하지만 부리로 꼭 물지 못해서 사과가 밑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토끼가 “고마워, 까마귀야!” 외치고는 사과를 집으려 .. 2019. 12. 10. 고대 아라비아 우화 아주 오래 전 아라비아 땅에 낙타를 사육하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평생 열심히 일하다가 늙게 되자 자식들을 불러 일렀어요. “아들들아! 난 이제 늙어 기력이 쇠했고,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내 죽은 뒤에 낙타들을 내가 말하는 대로 나눠 가지렴. 맏아들아, 넌 일을 가장 많이 했으니까 절반을 차지해라. 둘째는 이제 막 나를 돕기 시작했으니까 삼분지 일을 가지렴. 그리고 막내의 몫은 1/9이다.“ 그리고 얼마 뒤 노인이 죽었습니다. 세 아들이 유언대로 유산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낙타들을 넓은 벌판으로 내몰고 세어 보니 전부 열일곱 마리였어요. 금방 문제가 생겼습니다. 17은 2로도, 3으로도, 9로도 도저히 나뉘지 않는 것!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무도 몰랐어요. 아들들이 날마다 각자 좋을 대로 제시하면서 .. 2019. 11. 22. 목적과 의미 목적과 의미 - 세상 만사와 만물에는 다 나름의 목적과 깊은 의미가 있다 두 형제가 평생을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너른 들판이나 초원을 한 번도 못 본 것은 당연해요. 어느 날 형제가 시골에 내려가 살아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길을 걷다가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보고는 놀랐어요. "저 사람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땅을 파서 깊은 골들을 만들고 있잖아! 연녹색 풀이 보기 좋게 덮인 평평한 땅을 왜 쓸데없이 망가뜨리는 거야?" 그런데 그다음에 보니까, 농부가 이랑마다 호밀 낟알들을 던져 넣는 게 아니겠어요?! 형제가 한심하다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혀를 찼습니다. “쯧쯧쯧,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저럴 수가 있나. 좋은 밀을 가져다가 저렇게 지저분한 땅에 내버리다니!” “이런 시골.. 2019. 10. 8. 누군가가 마음을 선사할 때 언젠가 한 마을에 지혜로운 노인이 와서 머물러 살았습니다. 노인은 아이들을 좋아하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어요. 게다가 뭔가를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선사하기를 좋아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건 다 깨지고 부서지기 쉬운 물건들뿐이었답니다. 선물로 받은 장난감을 아이들이 아무리 조심스레 다루더라도 매번 망가지기 일쑤였어요. 그때마다 아이들은 속상해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현자(賢者)는 아이들한테 계속 장난감을 선사했지만, 그건 더 부서지고 망가지기 쉬운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부모들이 그 영문을 알고자 노인을 찾아왔습니다. “노인장께서는 지혜가 넘치는 분으로서, 우리 아이들한테 정말 잘 해 주십니다. 하지만, 어째서 늘 그런 장난감들만 선사하시는 건지요? 아이들이 나름.. 2019. 9. 29. 이전 1 2 3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