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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진행 실무 훈련 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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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장 폴 사르트르2019. 4. 1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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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트르의 

 <출구 없는 방 NO EXIT>  

 

5장 계속 

 

     에스텔: (고갯짓으로 가르생을 가리키면서) 하지만 저이도 나를 봐 주면 좋았을 텐데.

     이네스: 오, 이런! 네가 원하는 건 결국 남자로군. (가르생에게) 당신이 이겼어요. (가르생이 대꾸지 않는다.) 그러지 말고 저 여자를 좀 봐요, 빌어먹을! (가르생은 묵묵부답이다.) 가식 떨지 말아요. 당신은 우리 대화를 다 들었잖아요. 

     가르생: (고개를 홱 쳐들면서) 맞는 말이오,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지. 귀를 막기는 했지만, 당신네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쿵쿵 울렸다오. 허접한 수다 말이오. 당신들 두 사람, 이제 나를 조용히 내버려두지 않겠소? 난 당신네한테 관심이 없어.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이네스: 나한테 관심 없다는 소리겠지, 하지만 이 아이한테도 그렇지는 않을 걸. 당신 꿍꿍이를 알아요. 지금 당신은 그녀 관심을 얻으려고 고뇌하는 사람 흉내를 내고 있어요. 

     가르생: 날 좀 내버려두라고 했잖소. 저기, 신문사 편집국에서 누군가가 내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걸 들어야겠소. 그리고 당신이 ‘어린애’라고 부르는 저 사람한테 난 아무 소용이 없단 말이오. 

     에스텔: 흥, 고마운 말씀이군요. 

     가르생: 오, 당신 기분 상하게 할 뜻은 없었어.

     에스텔: 당신은 천박한 사람이에요! (휴지. 그들이 서로 마주보며 서 있다.)

     가르생: 아, 그렇다고 칩시다! (휴지.) 입 좀 다물라고 부탁하지 않았소?

 

     에스텔: 저 여자 잘못이에요, 먼저 시작했으니까. 난 가만있는데, 다가와서 자기 거울을 쓰라고 했단 말이에요. 

     이네스: 흠, 그렇게 말을 돌리는군. 한데 넌 계속 추파를 던지면서 그의 눈길을 끌려고 했잖아.

     에스텔: 그러면 안 되나요?

     가르생: 당신네 둘은 정신이 나갔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나? 제발, 입들 좀 다무시오! (휴지) 이제 다들 다시 조용히 앉아서 마룻바닥을 보며 다른 사람들 존재는 까맣게 잊도록 합시다. 

     (휴지. 가르생이 자리에 앉고 두 여인이 머뭇머뭇 자기 소파로 향한다. 이네스가 홱 몸을 돌린다.)

 

     이네스: 다른 사람들은 잊으라고!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로군요! 난 당신이 거기 있는 걸 느껴요, 털구멍 하나까지. 당신 침묵이 내 귀에서 아우성쳐요. 당신은 입 꿰매고 혀 자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아요? 당신은 이런저런 생각을 멈출 수 있나요? 

난 당신이 하는 생각을 다 들어요, 틱, 톡, 틱, 톡, 시계 소리처럼 들린단 말이에요. 당신도 내 생각을 듣고 있다는 걸 알아요. 당신이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는 건 좋아요. 하지만 당신은 어디에나 있어요, 모든 소리가 나한테 오염돼 들어와요, 왜냐면 당신이 중간에 가로채곤 하니까. 

당신은 내 얼굴마저 훔쳐갔어요. 내 얼굴을 당신은 아는데, 난 모르잖아요! 또 그녀는 어떻구, 에스텔 말이에요, 당신은 그녀를 나한테서 빼앗았어요.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에스텔이 나한테 이렇게 대하겠어요? 

자, 이제 얼굴에서 두 손을 떼세요, 당신을 편히 놔두지 않겠어. 당신은 요가 수행자처럼 트랜스 상태에서 여기 앉아 있고, 나는 눈을 감고 있다 해도, 그녀가 자기 존재의 소리를 당신에게 어떻게 전하는지, 심지어 드레스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 다 감지해요. 당신이 보지 않는데도 그녀가 미소를 어떻게 보내는지 다 느낀다구요! 그런 건 못 견뎌! 차라리 내 지옥을 내 손으로 선택하겠어, 차라리 당신 눈을 바라보며 얼굴 맞대고 싸우겠어요. 

 

     가르생: 좋으실 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했지, 저들은 우리를 쉬운 게임처럼 조종하고 있소. 만약 저들이 나를 남자들만 있는 방에 넣었다면… 남자들은 입을 다물 수 있어.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바랄 수는 없지요. (그가 에스텔에게 다가가서 그녀 턱을 건드린다.) 그래, 내가 마음에 드나, 어린 아가씨? (에스텔을 애무한다.) 나한테 추파를 던졌단 말이지?

     에스텔: 날 건드리지 말아요.

     가르생: 왜 안 되나? 우린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데… 내가 여자들한테 환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나? 개중 몇몇은 나를 좋아했지. 자, 형식 차리는 건 그만두자구, 우린 잃을 게 없잖아. 정중하다는 게 뭐야? 격식이란 또 뭐고? 우리끼리 있는데 말이야! 이제 곧 마지막 껍질도 벗고 우린 벌거숭이가 될 거야, 갓난애들처럼.

 

     에스텔: 오, 나를 가만둬요!

     가르생: 갓난애들처럼 말이야. 아, 내가 경고했지. 내가 당신들한테 바란 건 별것 아니야, 그저 평온함과 약간의 침묵뿐이었어. 난 귀를 막았어. 고메스가 사무실 한복판에 서서 평소처럼 열변을 늘어놓고, 편집국 동료들이 경청하고 있었지. 다들 재킷을 걸치지 않은 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군. 지상에서 사건들은 아주 빠르게 변한단 말이야. 당신들은 혀를 놀리지 않을 수는 없나? 이제 다 끝났군, 그가 열변을 마치네. 나에 관한 생각은 다 그의 머릿속에서 떠올랐어. 흠, 어떻게든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이고… 우린 태어날 때처럼 벌거숭이가 되는 거야. 그게 더 좋아, 가만, 누구를 상대해야 하나. 

     이네스: 이미 알고 있잖아요. 더 이상 알 것도 없어요.

 

     가르생: 그게 아니요. 우리가 왜 저주받았는지 각자 깨끗하게 털어놓지 않는 한,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젊은 아가씨, 자네부터 시작하지, 그래. 무엇 때문이지? 그 이유를 우리한테 말해 봐. 솔직하게 얘기하고, 우리가 각자 내면의 허물을 드러낸다면… 우린 재앙에서 구제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자, 털어놔 봐! 무엇 때문이지?

     에스텔: 난 도대체 뭐가 뭔지 몰라요. 저들도 말해 주지 않을 거예요.

     가르생: 그렇군. 저들은 나한테도 말해 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먼저 말하기가 부끄럽나, 에스텔? 좋아. 내가 시작하겠어. (침묵.) 난 그리 존중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야. 

     이네스: 그런 얘긴 안 해도 돼요. 당신이 탈영병이었다는 걸 우린 알아. 

 

     가르생: 그건 놔둬요. 그건 부차적인 얘기일 뿐이오. 실은, 아내한테 아주 못되게 굴었기 때문에 여기 오게 된 거요. 이게 전부야. 다섯 해 동안. 아내는 당연히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어. 아, 그녀가 있네. 그녀 얘기를 하는 순간이면 내 눈앞에 그녀가 나타나. 난 고메스한테 관심이 있는데, 눈앞에는 그녀가 서 있군. 고메스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다섯 해 동안... 

저기 있네! 그들이 내 소지품을 아내에게 돌려주었군. 아내가 내 코트를 무릎에 얹고 창가에 앉아 있네. 총탄 구멍이 열두 개 난 코트를. 구멍의 누런 테두리가 피인지 녹인지 분간이 안 될 거야. 허어! 저건 박물관에 들어갈 물건이지, 역사적인 코트라구. 그걸 입고 다녔어, 멋있었지!… 

여보, 이제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나? 드디어 눈물을 짜내는 거야? 아니라고? 잘 안 된다구? 밤이면 밤마다 난 돼지처럼 술에 절어 집에 돌아왔어, 와인과 여자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아내는 밤새 나를 기다리곤 하면서도, 눈물은 절대 흘리지 않았어. 물론, 잔소리도 한마디 없었어. 그저 두 눈으로만 말하는 거야, 크고 슬픈 눈으로. 난 불평할 게 하나 없어. 이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징징대지는 않을 거요. 흠, 거리에 눈이 내리는군. 아, 결국 눈물을 흘리는 거야? 저 여인은 운명적으로 수난자의 역할을 떠안은 사람이오. 

 

     이네스: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를 왜 그렇게 힘들게 했나요?

     가르생: 왜냐하면, 아주 쉬웠으니까. 말 한마디면 그녀는 움찔대며 안색이 달라졌지. 민감한 식물처럼! 그렇지만 싫은 소리는 결코 내뱉지 않아! 난 놀려먹기를 좋아해. 지켜보면서 기다리곤 했지만, 오, 이런, 눈물 한 방울도, 비난 한마디도 없는 거야. 난 그녀를 시궁창에서 끄집어냈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아, 그녀가 코트를 어루만지는군. 눈을 감고 손으로 총알구멍들을 느끼고 있어. 당신들은 뭘 찾는 거야? 뭘 기대하는 거지? 말했다시피, 난 아무 것도 불평하지 않아. 그녀가 나를 맹목적으로 흠모했다는 점이 중요해. 이게 무슨 뜻인지 당신들은 이해하겠나?

     이네스: 아니요. 나한테는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가르생: 그게 훨씬 더 좋아. 당신한테는 그게 더 좋아. 이런 말이 당신한테는 아주 모호하게 들리겠지. 흠, 당신들이 솔깃할 만한 얘기를 들려주겠어. 난 까무잡잡한 여자를 하나 집에 들였어. 뜨거운 밤들을 보냈지! 아내는 위층에서 잤는데, 다 들었을 거야. 그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한낮까지 침대에 있는 우리한테 모닝커피를 가져다주곤 했어.

     이네스: 당신은 짐승이야!

     가르생: 그래, 짐승이야, 그런데 아주 사랑받는 짐승이지. (그가 먼데를 바라본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고메스로군, 하지만 내 얘기를 하는 건 아니네… 당신, 뭐라고 그랬지? 아, 짐승이라고. 그건 분명해.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여기 있겠나? 이제 당신 차례요.

 

     이네스: 난, 나는 저 세상 사람들 말로 ‘천벌 받을 암캐’였어요. 아니, 이미 천벌 받은 여자였어요. 그러니, 여기 오게 된 것이 놀랍지도 않아요.

     가르생: 그게 전부요?
     이네스: 아니, 플로렌스가 관련된 사건이 있었어요. 이건 시체들에 관한 사연이에요. 세 구의 시체. 먼저 그 사람, 다음에 그녀와 나. 저 아래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난 걱정할 게 전혀 없어. 단지 저 방만 남았지요. 난 가끔 그 방을 봐요. 안은 텅 비고 문들은 다 잠기고… 아, 그들이 막 봉인을 떼어냈네. 임대라고 문에 써 붙였네요, 이건 참... 웃기는 일이야.
     가르생: 세 사람, 세 죽음이라고 했소?
     이네스: 네, 셋.
     가르송: 한 남자와 두 여인?
     이네스: 네.
     가르생: 그렇군. (휴지.) 그 남자가 자살한 게요?
     이네스: 그 남자가? 그 사람한테는 그럴 배짱이 없었어. 그래도 그에겐 이유가 다 있었어요. 우리 때문에 고통을 충분히 겪었지... 사실, 그는 전차에 깔렸어요.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에요. 난 그 두 사람과 함께 살았어요, 그는 내 사촌오빠였고. 
 
     가르생: 플로렌스에겐 오점이 없었나요?
     이네스: 오점이 없었냐구요? (에스텔을 쳐다보면서) 난 후회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사연을 당신한테 굳이 밝히고 싶지는 않아요. 
     가르생: 괜찮아요. 그럼, 그 남자한테 싫증이 났나?
     이네스: 아주 조금씩. 별의별 하찮은 것들이 내 신경을 거스르더군요. 예를 들면, 그 사람은 뭘 마실 때 요란한 소리를 내지 뭐에요, 꼴깍꼴깍… 그런 하찮은 것도 싫어지지 뭐에요. 실상, 그는 아주 가엾은 사람이었어요, 쉽게 상처받는 타입이었어요. 왜 웃는 거죠?
     가르생: 왜냐면 나는 상처를 전혀 받지 않으니까.
     이네스: 너무 확신하진 말아요. 난 그녀 영혼에 파고들었고, 그녀는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봤어요. 결국 그와 헤어지자 그녀는 내 손아귀에 들게 됐지요. 우리는 소도시 반대편에 원룸 아파트를 얻었어요.
     가르생: 그 다음엔?
     이네스: 그러고는 바로 전차 사고가 난 거에요. 난 허구한 날 그녀에게 상기시켰어요. “그래, 내 귀염둥이, 우리가 그를 죽인 거야.” (침묵.) 난 정말 잔인한 여자야. 
     가르생: 나도 그렇소.
     이네스: 아니, 당신은 잔인한 게 아니에요. 그건 뭔가 좀  다른 거예요.
     가르생: 뭐가 달라요? 
 
     이네스: 나중에 얘기하지요. 내가 잔인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한테 고통을 안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뜻이에요. 불타는 석탄처럼. 다른 사람들 가슴에서 불타는 석탄처럼. 혼자일 때 난 가물거려요. 반년 동안 난 그녀 가슴에서 재가 되도록 활활 타올랐지요. 어느 날 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그녀가 일어나서 가스 밸브를 열어 놓았어요. 그러고는 다시 내 곁에 누었어요. 그렇게 된 거예요.
     가르생: 아, 그래요!
     이네스: 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요?
     가르생: 아니, 아무 것도. 단지, 즐거운 사연은 못 되는군.
     이네스: 그렇지요.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가르생: 하기야, 무슨 상관이겠소. (에스텔에게) 네 차례야. 무슨 짓을 했는지 털어놓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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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장 폴 사르트르2019. 4. 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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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폴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No exit

 

  (5장 계속)  

 

     에스텔: 그만, 제발 그만해요.

     이네스: 지옥에 있다구요! 저주받은 영혼들, 그게 우리란 말이에요! 우리 셋 다!

     에스텔: 입 다물고 조용히 해요. 그런 악담은 못 들어 주겠어요.

     이네스: 저주받은 영혼, 위선적인 성자, 그게 바로 당신이에요. 저 신사 양반, 고상한 반전주의자도 마찬가지지. 우리는 삶을 충분히 만끽했어, 안 그래요? 세상에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불태운 이들이 있었는데, 우린 그걸 보며 그저 낄낄대기만 했지요. 그러니 이제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예요. 

 

 

     가르생: (손을 들어 올리면서) 그 망할 놈의 입 좀 그만 나불거리시오!

     이네스: (담담하면서도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오, 이런! (휴지) 잠깐만! 이제 이해가 되네. 왜 우리 셋을 여기에 함께 집어넣었는지 알겠어요!

     가르생: 더 입을 놀리기 전에 생각을 두 번 하는 게 좋을 게요.

 

     이네스: 잠깐,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 알게 될 거예요. 아주 간단해! 이곳에는 신체적 고문 같은 게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옥에 있어요.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으니, 우리끼리만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거예요. 안 그런가요? 간단히 말해, 있어야 할 누군가가 없는 것인데, 그건 바로 공식적인 고문자란 말이죠. 

     가르생: (혼잣말로) 나도 그 점에 주목했어.

     이네스: 인적 자원을 줄인 게 분명해요. 혹은 악귀들을 줄였다고 해도 틀리진 않겠어요. 고객들이 직접 움직이는 셀프서비스 카페처럼 말이죠.

     에스텔: 무슨 뜻인지 난 도무지 모르겠군요.

     이네스: 내 말은 우리 각자가 다른 두 사람에게 고문자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뜻이에요.

     (휴지. 다들 그 말을 곱씹는다.) 

 

     가르생: (나직한 소리로) 아니, 난 당신들의 고문자가 절대 되지 않을 거요. 당신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을 뿐더러, 당신들한테 관심도 없소. 눈곱만치도. 그러니 해결책은 아주 간단해요. 우리 각자가 자기 구석에 머물러서 다른 이들에겐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 거요. 당신은 여기에, 당신은 여기에, 그리고 난 저기에. 그리고 그냥 조용히 지내는 거요, 말 한마디 없이. 뭐가 어렵겠소? 우리 각자에겐 제 할 일이 있어요. 난 내 생각만 가지고도 만 년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에스텔: 그럼, 나도 입을 다물어야 하나요?

     가르생: 그렇소. 그러면 우린 구원을 찾을 수 있을 게요. 이네스,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절대 쳐들지 맙시다. 동의하시오?

     이네스: 동의해요.

     에스텔: (다소 주저하다가) 나도 그래요.

     가르생: 그럼, 안녕.

 

     (그가 자기 소파로 물러나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침묵. 이네스가 나직이 콧노래를 부른다.)

     (그러는 동안 에스텔은 볼에 파우더를 두드리고 립스틱을 바른다. 파우더를 두드리면서 차분한 표정으로 거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자기 핸드백을 뒤지다가 가르생에게 고개를 돌린다.) 

 

     에스텔: 실례지만, 혹시 거울 갖고 계시나요? (가르생이 반응하지 않는다.) 작은 손거울이라도 없어요? (가르생이 계속 침묵한다.) 나한테 말은 하지 않더라도 거울은 빌려줄 수 있잖아요!

     (가르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말이 없다.)

     이네스: (달래는 말투로) 걱정 말아요. 내 손가방에 거울이 있어요. (자기 핸드백을 뒤진다. 아쉬운 표정으로) 없어졌네! 입구에서 저 사람들이 빼낸 게 틀림없어. 

     에스텔: 어쩜 이렇게 지겨울 수가!

     (휴지. 에스텔이 눈을 감으면서 쓰러질 듯 휘청거린다. 이네스가 다가가서 부축한다.)

 

     이네스: 왜 그래요?

     에스텔: (눈을 뜨고 미소 짓는다) 아주 야릇한 느낌이 들어요. (그녀가 제 몸을 톡톡 두드린다.) 당신은 이렇게 한 적이 없나요? 나 자신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심이 돼요. 그러면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몸을 건드리는데, 사실 크게 도움 되지는 않아요.

     이네스: 당신은 운이 좋군요. 난 늘 나 자신을 의식해요, 마음속에서 말이죠. 뼈저리게 의식해요.

     에스텔: 아, 네, 마음속에서… 하지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것은 죄다 상당히 모호하지 않나요? 그냥 졸리기만 할 뿐이에요. (휴지) 내 침실에는 큰 거울이 여섯 개 있어요. 저기 있네요. 난 거울들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거울들이야 나를 못 보지요. 거울마다 카펫이며 장의자며 창문이 투영되고 있는데… 하지만 내가 없는 거울은 얼마나 공허한가요! 난 사람들과 얘기할 때면 내 모습이 비치는 거울이 곁에 있는지 늘 확인하곤 했어요. 얘기하는 나 자신을 지켜보았지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을 볼 때면 더 조심하게 됐어요. (낙담한 투로) 오, 이런, 립스틱이! 입술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을 거야. 거울 없이는 잘 그릴 수가 없어. 안 돼. 

 

     이네스: 내가 당신의 거울이 돼 줄까요? 이쪽으로 오세요. 내 소파에 당신 자리가 있어요. 

     에스텔: (가르생을 가리키면서) 하지만…

     이네스: 그 사람은 잊읍시다. 

     에스텔: 하지만 우린 서로를 다치게 할 텐데.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이네스: 나를 잘 봐요. 내가 당신을 해칠 것 같나요?

     에스텔: 거야 누가 알겠어요.

     이네스: 어쩌면 당신이 나를 더 아프게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쩌겠어?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당신의 그 예쁜 손으로 당하는 것도 괜찮을 거야. 여기 앉아요. 더 가까이, 더 바짝. 내 눈을 봐요, 뭐가 보이죠?

     에스텔: 오오, 당신 눈 속에 내가 있네요. 하지만 하도 작아서 잘 못 보겠어요.

     이네스: 하지만 난 그쪽을 볼 수 있어. 아주 샅샅이. 뭐든 물어 봐요. 세상 모든 거울처럼 난 솔직하게 비춰 줄 거야. 

 

     (에스텔이 도움 청하듯이 가르생 쪽으로 수줍게 몸을 돌린다.) 

 

     에스텔: 이보세요, 미스터 가르생! 우리 수다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가르생이 대꾸하지 않는다.)

     이네스: 저 사람 걱정은 말아요. 그냥 우리만 있다고 생각하고… 자, 물어봐요.

     에스텔: 내가 입술을 잘 발랐나요?

     이네스: 어디 보자. 아니, 좀 흉하게 됐어요.

     에스텔: 그럴 줄 알았어요. 다행히도 (그녀가 가르생을 곁눈질하면서) 나를 보는 사람이 없네. 다시 발라야지.

     이네스: 그게 좋겠어. 아니, 그렇게 말고. 입술 선을 놓치지 않아야 돼. 잠깐! 내가 손을 잡아줄게. 그래, 거기야. 아주 좋아요.

     에스텔: 내가 여기 들어올 때처럼 잘 그려졌어요?

     이네스: 훨씬 더 좋아요. 더 또렷하고 더 관능적이고 더 섬세해. 이렇게 그리니까 요 입이 아주 악마처럼 보이네.

     에스텔: 당신은 친절하군요! 정말 좋아요? 내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미치겠어요. 미스 세라노, 이젠 정말 잘 그려졌어요?

     이네스: 나를 그냥 이네스라고 부르지 않을래?

     에스텔: 입술이 잘 그려진 게 확실하죠?

     이네스: 넌 정말 사랑스러워, 에스텔.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에스텔: 근데, 당신 취향을 내가 어떻게 믿지요? 내 취향과 같은가요? 아아, 정말 답답해 미치겠네.

     이네스: 내 취향도 너랑 같아, 왜냐면 넌 내 마음에 드니까. 나를 봐. 아니, 똑바로 봐. 이제 미소를 지어 봐. 나도 그리 추하지는 않아. 내가 네 거울보다 더 멋지지 않나? 

     에스텔: 오, 모르겠어요. 당신은 날 좀 겁나게 해요. 물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런 적이 없지요. 물론 내 모습을 난 잘 알았어요. 내가 길들인 어떤 것처럼… 한데 지금은 내가 미소를 지으면 미소가 당신 눈동자 속으로 가라앉을 테고,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신만이 알겠죠.

     이네스: 왜 나를 ‘길들이면’ 안 되는 거야? (둘이 마주본다. 에스텔이 좀 홀린 듯이 미소를 짓는다.) 이봐! 나를 그냥 이네스라고 불러 주면 좋겠어. 우린 좋은 친구가 돼야 해.

     에스텔: 난 여자들하고는 쉽게 친구가 되지 못해요.

     이네스: 특히 우체국 사무원하고는 그렇단 말이지? 근데, 네 뺨 아래 지저분하게 벌긋벌긋한 점은 뭐야? 뾰루지야?

     에스텔: (흠칫 몸을 떨면서) 뾰루지라고요? 어머, 지저분해라! 어디 있어요?

     이네스: 여기, 여기 있잖아! 거울로 종달새 잡는 방법을 알지? 난 너의 lark mirror이고, 사랑스러운 넌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어. (*lark mirror - 반짝이는 물건에 호기심 많은 작은 새들을 유인하여 잡는 데 쓰는 작은 거울.) 뾰루지 같은 건 전혀 없거든. 근데, 왜 있는 것처럼 했냐구? 거울이 거짓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혹은 내가 저 남자처럼 눈을 감고 널 안 본다면, 너의 사랑스러움을 뭐에 쓰겠어? 아아, 겁먹지 마, 난 너를 안 볼 수 없어. 눈길을 돌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너한테 잘 해줄 거야, 아주 잘 할 거야. 단지 너도 나한테 잘 해야 돼.

     (휴지.)

     에스텔: 나한테 정말 마음이 끌렸어요?

     이네스: 정말 그래!

     (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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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  

 

이네스, 가르생, 에스텔, 안내인

 

     (에스텔이 두 손으로 여전히 얼굴 감싸 쥐고 있는 가르생을 바라본다.)

     에스텔: (가르생에게) 아니, 고개 들지 말아요! 당신이 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지 알아요, 얼굴이 없으니까 그러겠지. (가르생이 얼굴에서 두 손을 뗀다.) 어머, 이게 뭐야! (휴지. 놀라서.)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군요.

     가르생: 난 고문 기술자가 아닙니다, 마담.

     에스텔: 당신을 고문자라고 여긴 적이 없어요. 난… 어떤 사람이 나를 놀리는 줄 알았지요. (안내인에게) 누가 또 오나요?

     안내인: 아니요, 마담. 더 이상 오지 않을 겁니다.

     에스텔: (안도하면서) 잘 됐네요! 그러면 이 신사분과 저 부인과 나, 이렇게 셋이 함께 지내게 되나요? (웃음을 터뜨린다.)

     가르생: (무뚝뚝한 표정으로) 웃을 일이 전혀 없는데. 

     에스텔: (여전히 웃으면서) 여기 소파들은 아주 볼썽사납군요. 게다가 배치해둔 꼴이라니! 그 따분한 마리 숙모 집을 방문했던 새해가 떠오르는군요. 그 집엔 어떤 공포가 가득하고… 근데 소파는 각자 하나씩 쓰는 모양이죠? 저게 내 자린가요? (안내인에게) 하지만 내가 저기 앉을 거라고 기대하진 말아요. 난 하늘색 차림인데 소파는 진녹색이라니, 흥, 정말 잘 어울리겠네요. 

     이네스: 그럼, 내 소파에 앉을래요?

     에스텔: 그 적포도주 색깔의 소파 말이에요? 고맙지만, 그것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에요. 어쩌겠어요, 이 진녹색 소파에 내가 맞추는 수밖에. (휴지) 바꿀 수 있다면, 저 신사의 소파가 더 좋겠네요.

     (침묵)

     이네스: 들으셨나요, 미스터 가르생? 

     가르송: (흠칫 떨면서) 아, 소파. 그렇군, 미안합니다. (일어선다.) 이걸 쓰시지요, 마담.

     에스텔: 고마워요. (외투를 벗어 소파에 던진다. 휴지.) 우리가 이왕 함께 있게 됐으니, 서로 인사 나누지요. 내 이름은 리갈이에요, 에스텔 리갈. 

     (가르생이 고개를 까딱이고 제 소개를 하려 하는데, 이네스가 끼어든다.)

     이네스: 난 이네스 세라노에요. 알게 돼서 반가워요.

     (가르생이 다시 고개를 까딱인다.)

     가르생: 조셉 가르생입니다. 

     안내인: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에스텔: 네, 그러세요. 필요하면 벨을 누르지요.

     (안내인이 고개 숙이고 퇴장한다.)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5장  

 

     이네스, 가르생, 에스텔

 

     이네스: (에스텔에게) 당신은 정말 예쁘군요. 제대로 환영하려면 꽃이 있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에스텔: 꽃이요? 맞아, 난 꽃을 아주 좋아했지요. 한데, 여기서는 꽃이 금방 시들겠어요, 안 그런가요? 공기가 후텁지근하잖아요. 아, 그래요, 우리가 최대한 쾌활하게 지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당신도 분명...

     이네스: 그래요, 지난주에. 그럼, 당신은?

     에스텔: 아주 최근이에요, 바로 어제지요. 사실 세리모니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은 걸요. (에스텔이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여동생 얼굴을 가린 망사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려요. 그 애는 눈물을 짜내려고 무진 애를 쓰네요. 자, 해 봐, 그래, 좀 더! 그러자 조금 나와요. 눈물 두 방울, 병아리 오줌 같은 두 방울이 검은 망사 뒤편에서 반짝여요. 오, 저런, 올가는 오늘 아침에 어떤 장면을 볼까! 그녀가 내 여동생 팔을 잡고 있는데, 울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그 애를 탓할 생각은 없어요, 눈물은 늘 얼굴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니까요, 안 그래요? 올가는 나한테 가장 좋은 친구였어요.

     이네스: 당신은 아주 고통스러웠나요? 

     에스텔: 아뇨. 난 의식이 절반밖에 없었어요.

     이네스: 뭐였지요? 

     에스텔: 폐렴이에요. (앞에서 한 것처럼, 세세하게 묘사하듯이) 아, 이제 다 끝나고 사람들이 묘지를 떠나네요. 안녕! 잘들 가요! 꽤 많이 모였었지요. 남편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어요. 비탄이 하도 컸기 때문이에요, 가엾은 사람. (이네스에게) 근데, 당신은 어떻게? 

     이네스: 가스스토브가 문제였어요.

     에스텔: 그럼, 미스터 가르생, 당신은요?

     가르생: 가슴에 총탄을 열두 발 맞았다오. (에스텔이 움찔한다.) 미안해요! 죽은 이들한테 좋은 일행이 못 될까 걱정입니다. 썩 품위 있는 시체가 못 되니까요. 

     에스텔: 오! 제발, 그런 단어는 제발 입에 올리지 말아요. 너무 거칠고, 안 좋은 톤이에요. 어쨌든,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는 어쩌면 지금이 가장 활기 넘치는 것일지도 몰라요. 이런… 이런 상황에 적절한 명칭을 고른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부재자’라 부르는 게 어떻겠어요? 그게 더 온당할 거예요. 당신은… 오래 전에 부재자가 됐나요?

     가르생: 한 달쯤 됐다오.

     에스텔: 어디서 오셨나요?

     가르생: 리오에요.

     에스텔: 나는 파리에서 왔어요. 저 아래에 누군가 남겨둔 사람이 있나요?

     가르생: 네, 아내가 있소. (에스텔이 앞서 쓰던 말투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녀가 막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군요. 매일 저기로 오지요. 하지만 그들이 들여보내지 않을 겁니다. 지금 그녀는 빗장 사이로라도 들여다보려고 애쓰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게요. 흠, 이제 떠나는군.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그게 더 낫지, 갈아입을 필요가 없으니.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요, 살면서 울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오. 날이 아주 밝고 화창하군요. 텅 빈 거리를 검은 그림자처럼 비척이며 걸어가고 있어요. 커다란 두 눈엔 슬픔이 가득하고 순교자 같은 표정으로… 나를 참 안타깝게 하는구려!

 

    (침묵. 가르생이 중간 소파에 앉아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다.)

    이네스: 에스텔!

    에스텔: 이보세요,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왜 그러오?

    에스텔: 내 소파에 앉으셨잖아요!

    가르생: 아, 미안해요. (일어난다.)

    에스텔: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나요? 

    가르생: 내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지요. (이네스가 웃음을 터뜨린다.) 뭐, 그렇게 웃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도 나처럼 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이네스: 그럴 필요 없어요. 내 인생은 완벽하게 정리돼 있거든요. 저기, 아래 세상에서 모든 게 다 잘 마무리됐으니,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구요. 

    가르생: 정말이오? 그렇게 쉬운 일로 여기는구려! (손으로 이마를 훔친다.) 어휴, 여긴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아!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재킷을 벗으려고 한다.)

 

     에스텔: 아, 안 돼요! (좀 부드러운 말투로) 남자들이 셔츠 차림으로 있는 건 딱 질색이에요.

     가르생: (재킷을 다시 입으면서) 알겠소. (휴지) 난 신문사 사무실에서 밤을 새곤 했다오, 거긴 증기탕처럼 더워서 겉옷을 늘 벗어놓곤 했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앞의 말투로.) 그렇게 후텁지근할 수가 없어요. 숨이 턱턱 막히는 거요. 거긴 지금 밤이로군.

     에스텔: 그러네요. 올가가 옷을 벗고 있어요. 자정이 넘었나 보네. 저기, 지상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이네스: 그래요, 자정이 넘었어요. 내 방문을 꽁꽁 잠가 두었네. 방안이 칠흑처럼 어둡고, 텅 비어 있어요.

     가르생: 저 사람들은 의자 등받이에 코트를 걸고, 셔츠 소매도 팔꿈치 위로 걷었어. 땀 냄새가 풍기고 담배 연기가 자욱하네. (침묵.) 아아, 셔츠 차림의 남자들 사이에서 지내는 게 정말 좋았는데.

     에스텔: (무뚝뚝하게) 그렇다면 우리 취향은 서로 다르군요. (이네스한테 몸을 돌리면서) 당신은 재킷 벗은 남자를 좋아하나요?

     이네스: 재킷을 걸치든 아니든, 난 남자한테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에스텔: (두 사람을 놀란 눈으로 훑어본다.) 근데, 우리 세 사람을 왜 여기 같이 있게 한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상식에 어긋나잖아요. 

     이네스: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무슨 소리에요?

     에스텔: 보아하니, 앞으로 당신네 두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할 것 같은데, 이건 말도 안 돼요. 난 옛 친구나 친지들을 만나리라 기대했는데…

     이네스: 그렇군, 얼굴 한가운데 구멍 뻥 뚫린, 멋진 친구를 기대했겠지요.

     에스텔: 맞아요, 그 사람도 있으리라고 기대했어요. 그는 탱고를 아주 멋지게 추었지요, 진짜 프로처럼! 근데,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우리를 함께 있게 한 거죠? 

     가르생: 이건, 아마도 우연일 게요. 저들은 사람들을 들어오는 순서대로 방에 넣으니까. (이네스에게) 근데, 당신은 왜 웃는 겁니까?

     이네스: ‘우연’이라는 말이 웃기잖아요. 그렇게라도 위안을 받고 싶은가요? 저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일은 없어요. 

 

     에스텔: (조심스레)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은 없나요?

     이네스: 그렇진 않아요. 그랬다면 내가 당신을 기억하겠지요.

     에스텔: 아니면, 우리한테 공통의 지인들이 있던가요? 듀부아 부부를 혹시 아시나요?

     이네스: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요. 

     에스텔: 하지만 누구나 그 부부가 베푸는 파티에 다닌걸요. 

     이네스: 그들 직업이 뭔데요?

     에스텔: 아아, 아무 일도 안 해요. 하지만 시골에 멋진 별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를 방문하지요. 

     이네스: 아니, 난 간 적이 없어요. 난 우체국 사무원이었어요. 

     에스텔: (슬며시 뒷걸음치면서) 아, 네, 그렇다면야. (휴지) 그럼, 가르생 씨는? 

     가르생: 난 평생을 리오에서 살았다오. 

     에스텔: 그렇다면 당신 말이 맞겠군요. 우리가 이렇게 같이 있게 된 건 우연일 거예요.

     이네스: 우연일 뿐이라구요? 그러니까, 여기 가구도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놓인 것이고, 오른쪽 소파가 진녹색이고 왼쪽이 적갈색인 것도 그냥 우연이라… 이게 다 당신 보기에는 우연이라는 것이죠? 음, 이 소파들을 옮겨 놓아 봐요, 그러면 차이를 금방 알 거예요. 그리고 벽난로 선반에 있는 저 청동 조각상도 우연히 저기 놓인 것이라 생각하나요? 이 후텁지근한 열기는? 이건 어때요? (침묵.) 아니, 안 그래요, 이건 다 사전에 구상된 거라구요. 아주 세세한 데까지. 우연이란 전혀 없어요. 이 방은 다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된 것이에요. 

     에스텔: 말도 안 돼! 여기 있는 건 죄다 볼품없고, 다 모서리가 있어서 불편해. 난 뾰족한 모서리라면 늘 질색인걸요. 

     이네스: (어깨 추썩이면서) 그럼, 난 뭐 앙피르 양식으로 꾸민 방에서 살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휴지.)

     에스텔: 그러니까 당신 생각에는 이게 전부 예정된 것이란 말이지요?

     이네스: 맞아요. 저들은 우리를 일부러 한데 집어넣었어요.

     에스텔: 당신이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도 예정됐다는 뜻인가요? (휴지.) 도대체 무슨 의도가 있는 걸까요?

     이네스: 거야 나도 모르죠. 하지만 저들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아요. 

     에스텔: 누군가가 나한테서 뭔가 기대한다는 것을 난 도저히 견디지 못했어요. 그럴 때면 즉각 반대로 행동하고 싶어지거든요. 

     이네스: 흠, 그렇게 해요! 할 수 있으면 해 봐요! 저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잖아요. 

 

     에스텔: (발을 구르면서) 이건 정말 못 견디겠어. 그러니까, 당신들 두 사람 때문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녀가 가르생과 이네스를 쳐다본다.) 뭔가 불쾌한 일일 거야. 난 어떤 얼굴들은 한번 보기만 하면 다 알지요. 한데, 당신네 얼굴에서는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군요.

     가르생: (이네스한테 사납게)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함께 있게 된 거요? 당신은 계속 에둘러 말하는데, 그러지 말고 속 시원하게 털어놔 봐요. 

     이네스: (놀라면서) 하지만 난 아무 것도 몰라요. 나도 당신들만큼이나 모른다구요. 

     가르생: 흠, 그걸 알아야 하는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네스: 우리가 각자 시원스레 털어놓기만 한다면…

     가르생: 뭘 털어놓는다구요? 

     이네스: 에스텔!

     에스텔: 네?

     이네스: 지금까지 당신이 행한 일은 뭔가요? 내 말은, 저들이 당신을 왜 여기로 보냈느냐, 이거지요.

 

     에스텔: (활기차게) 바로 그게 중요한데… 몰라요, 전혀 모르겠어! 사실, 뭔가 착오가 있는 건 아닌가, 의아하게 여기는 참이에요! (이네스에게) 웃지 마세요. 생각 좀 해 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부재자가 되는지 말이에요. 수천, 수만 명이 여기로 오는데, 그들을 분류하는 것은 하급 작업자들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알 거예요. 제 일도 처리할 줄 모르는 멍청한 직원들이에요. 한데 당신 얘기로는 착오 따위가 전혀 없었다는… 아, 그만 웃어요. (가르생에게) 당신이 무슨 말씀 좀 해 보세요. 만약 그들이 착오로 나를 여기 데려왔다고 한다면, 당신 경우에도 그들 실수가 있었을 거예요. (이네스한데) 당신도 마찬가지구요. 우리가 여기 있게 된 것이 착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네스: 당신이 할 수 있는 얘기는 그게 전부인가요?

     에스텔: 뭘 더 알고 싶은 거지요? 난 감출 거 하나 없어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어린 남동생을 떠맡게 됐어요. 우리는 지독하게 가난했는데, 우리 가족의 오랜 친구가 혼인을 제안했어요. 그이는 부유한데다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나도 동의했어요. 여기 있는 두 사람이 내 처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내 남동생은 아주 골골해서 늘 돌봐줘야 했지요. 남편은 아버지뻘 되는 나이였지만, 우린 여섯 해 동안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이태 전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을 만났지 뭐예요. 우린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그 사실을 깨닫고 서로 알아봤어요. 그 사람은 함께 달아나기를 바랐지만, 내가 거부했어요. 그 뒤 난 폐렴에 걸렸어요. 이게 전부에요. 어떤 기준으로 본다면, 나이가 세 배나 더 많은 노인에게 내 청춘을 바쳤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요. (가르생에게) 당신은 이걸 죄악이라 보시나요?

     가르생: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휴지)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이 자기 원칙을 따르는 게 죄악이라고 생각하나요?

     에스텔: 물론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가르생: 잠깐만이요! 나는 평화를 주창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신문을 발행했다오. 전쟁이 터졌어요. 어떡해야 하나? 사람들 눈길이 죄다 나한테 쏠렸다오. ‘저 사람이 제 주장대로 나아갈까 아닐까?’ 흠, 나는 내 길을 과감하게 택해서 전투에 나가기를 거부했소, 그리고 총살당한 게요. 이게 무슨 죄란 말이오, 내가 뭘 잘못 한 게 있었나요?

     에스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잘못이요? 외려 그 반대에요. 당신은…

     이네스: (비꼬듯이 말을 이으면서) 영웅이었지. 그럼, 아내는요,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그건 간단해. 내가 그녀를 구했다오, 시궁창에서…

     에스텔: (이네스에게) 봐요! 봐!

     이네스: 보고 있어요. (휴지) 우리, 생각 좀 해 봐요. 지금 이런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다 똑같은 흠을 지니고 있어요. 

     에스텔: (도전적으로) 어떻게 그런 말을!

     이네스: 맞아요, 우리 셋은 다 범죄자에요, 살인자이지요. 우리는 지옥에 있는 거야. 착오 따위는 없어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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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인 거야!"

"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지옥인 거야!"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이야.

 

얼핏 듣자면,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임을 알게 됩니다. 

사르트르는 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 없이 혼자 살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이 서로한테 어쩌면 필요악인가요?

물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일 수 있지만, 또 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그건 각자가 서로 하기 나름! 이게 중요하겠지요. 

 


 

 2장 

     가르생.

 

     가르생 혼자 있다. 청동 장식품에 다가가서 손으로 톡톡 건드린다.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난다. 문 쪽으로 다가가서 벨을 누른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두세 번 계속 눌러 보지만 소용없다. 그러자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역시 꿈쩍도 않는다. 그가 소리쳐 부른다.

 

     가르생: 안내인! 안내인!

 

     대답이 없다. 가르생이 문을 세게 두드리면서 안내인을 계속 부른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안내인과 함께 이네스가 들어선다. 

 

 3장 

 

 가르생, 이네스, 안내인.

 

     안내인: 부르셨나요, 선생님?

     가르생: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이네스를 보고는 바꿔 말한다) 아니요. 

     안내인: (이네스를 보면서) 여기가 부인 방입니다. (이네스가 대꾸하지 않는다.) 혹시 물으실 게 있다면... (이네스가 계속 입을 다물자, 실망한 빛으로) 우리 손님들 대다수는 저한테 여러 질문을 하지요. 하지만 제가 강요하진 않습니다. 어쨌든, 칫솔이며 초인종, 벽난로 위에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이 신사분이 이미 알고 계시니까 잘 대답해 주실 겁니다. 이 분과 저는 얘기를 좀 나누었거든요. 

     (안내인이 나간다. 침묵. 가르생은 이네스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네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르생 쪽으로 몸을 홱 돌린다.)

     이네스: 플로렌스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이 침묵한다.) 난 플로렌스에 관해 묻는 거예요. 그녀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네스: 이건 다 당신이 궁리한 거지요? 떼어 놓고 고문하는 것 말이에요. 한데 내가 알기에 당신은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플로렌스는 귀찮은 멍청이였고, 난 그녀를 조금도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구요.

     가르생: 미안하지만,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닌가요?

     이네스: 당신... 하는 일이 고문이잖아요. 

     가르생: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거 참, 정말 우스꽝스럽군요! 내가 고문자라니! 그러니까 이 방에 들어와서 나를 보고는 이곳 직원이라고 생각했군.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요! 저 안내인이 멍청해서 그래, 우리를 서로 소개했어야지! 나를 고문자로 보다니! 난 조세프 가르생이라고 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지요. 우리 둘 다 이를테면 같은 배를 탄 셈이니까, 제가 물어봐도 될까요? 마담은...

    이네스: (무뚝뚝하게) 이네스 세라노라고 해요. 마담이 아니라 마드무아젤이에요. 

 

출구없는방무대 장면

 

    가르생: 좋아요, 어쨌든 시작은 됐어요. 자, 우리 사이에 얼음이 깨졌는데, 내가 아직도 고문자처럼 보이나요? 아, 그리고 고문자들은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요? 당신은 분명 뭘 좀 아는 것 같은데. 

     이네스: 그들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가르생: 겁먹은 표정이요? 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얘기로군요. 그들이 누구한테 겁을 먹나요? 자기네가 고문한 사람들한테?

     이네스: 그래, 맘껏 웃어요. 하지만 내 말은 틀리지 않아요. 나는 유리 같은 데 비친 내 얼굴을 자주 들여다봤어요.

     가르생: 유리에?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저들은 정말 못돼먹었군. 유리 같은 건 다 치웠으니 말이에요. (휴지) 어쨌든 분명히 말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경망스럽게 구는 건 아니에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압니다. 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전혀.

     이네스: (어깨를 추썩이며) 그건 당신 문제구요. (휴지) 당신은 항상 여기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가끔 산책이라도 하나요? 

     가르생: 문은 잠겨 있습니다. 

     이네스: 거 참 고약하네요. 

     가르생: 내가 있어서 당신이 많이 불편할 겁니다. 사실 나도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해요.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건 혼자 있을 때 더 잘 되니까요. 하지만 우린 어떻게든 잘 지낼 거라고 믿어요. 난 말이 많지 않고 많이 움직이지도 않아요. 평화로운 부류에 속하는 편이지요. 단지 하나, 감히 제안하자면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정중하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게 서로를 다치지 않는 최상의 방법 아니겠어요?

     이네스: 난 예의를 잘 차리지 못해요.

     가르생: 그렇다면, 내가 두 몫으로 정중하게 처신해야겠군요.

     (침묵. 가르생이 소파에 앉는다. 이네스가 방안을 앞뒤로 서성인다.)

 

     이네스: (그를 바라보면서) 당신 입이... 

     가르생: (생각을 떨치면서) 뭐라구요?

     이네스: 입 좀 가만둘 수는 없나요? 입을 계속 씰룩거리고 있잖아요. 보기가 참 안 좋아요.

     가르생: 정말 미안하오. 난 그런 줄 몰랐어요. 

     이네스: 그래서 지적하는 거예요. (가르생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저 봐, 또 그러네. 당신은 예의 운운하면서 자기 얼굴 하나 컨트롤하려 들지도 않는군요. 당신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요.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나한테 옮기면 안 돼요.

     (가르생이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가르생: 당신은 어때요? 두렵지 않은가요?

     이네스: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예전엔 두려워할 이유가 웬만큼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단 말이죠. 

     가르생: (맥없이) 더 이상 희망은 없어요. 하지만 아직도 그 “예전”입니다. 우리 고통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마드무아젤.

     이네스: 그건 알아요. (휴지)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가르생: 모르겠소. 기다려야겠지요. 

     (침묵. 가르생이 다시 제 자리에 앉는다. 이네스가 또 앞뒤로 바장인다. 가르생이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이네스를 흘낏 보고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에스텔과 안내인이 들어선다.)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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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출구 없는 방> 소개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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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 없는 방> 

 

 

장-폴 사르트르 지음 

김성호 옮김

 

19 세기 많은 철학자들이 실존주의의 개념을 발전시켰지만, 이 개념을 널리 알린 이는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였다. 1944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연극 <출구 없는 방/ Huis Clos/ No Exit>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니까. 
이 작품에는 안내인, 가르생, 에스텔, 이네스 등 네 캐릭터만 등장하며, 무대는 벽난로 위에 커다란 청동 장식품이 놓이고 앙피르 풍 가구가 배치된 객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이라는 식의 실존주의적 사고가 배어 있다.

이 희곡을 읽으면서,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두 사람과 함께 객실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사르트르 희곡 출구 없는 방 No Exit

 

1장

 

     가르생, 안내인. 

     (앙피르 풍의 가구가 갖춰진 객실. 벽난로 위에 청동 흉상이 놓여 있다.)

 

     가르생: (안내인을 따라 방에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니까, 여긴가요?

     안내인: 예,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그러니까, 이건, 보이는 그대로군요. 

     안내인: 그렇습니다.

     가르생: 앙피르 풍의 가구 같은데… 아, 그래, 여기에 서서히 익숙해지겠지요?

     안내인: 사람마다 하기 나름이지요.

     가르생: 그러면 여기 방들은 다 이런 모습인가요? 

     안내인: 어찌 그렇겠습니까? 우리는 이를테면 중국인이나 인도 사람을 위한 방도 다 제공합니다. 그들한테 앙피르 양식의 안락의자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가르생: 그럼, 나한테는 어떤 양식이 맞겠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시오? 이런! 그게 무슨 상관이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견딜 수 없는 가구들 사이에서, 거짓된 상황에서 살면서 그런 삶을 마음껏 즐겼지요. 루이 필립 양식의 식당처럼 거짓된 상황…, 그 양식을 알아요? 요는, 말하자면, 가짜 속에 또 가짜가 있다는 것이오. 

     안내인: 앙피르 풍으로 꾸민 객실도 전혀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가르생: 그래요? 아, 좋아요, 좋아. 그렇다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하지만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저 아래에서 우리한테 하는 얘기를 당신은 알고 있나요?

 

     안내인: 무슨 얘기 말인가요?

     가르생: 흠... (방안을 휘둘러보면서) 이곳에 관해 하는 말들 말이오.

     안내인: 사실, 그런 건 다 허튼소리에 불과해요.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들은 여기 와 본 적이 없는데.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그들이 여기 오려면...

     가르생: 아, 맞아요. (둘이 웃는다.) (가르송이 정색하면서) 한데 고문대는 어디 있소?

     안내인: 뭐라구요?

     가르생: 흠, 고문대며 불에 달군 인두, 에스파냐 부츠 따위 기구들 말이오. 

     안내인: 아, 지금 농담하시는 거지요?

     가르생: (그를 주시하면서) 농담이냐구요? 아니요, 여기서 웃을 일이 뭐 있겠소. (침묵. 가르생이 앞뒤로 바장인다.) 여긴 거울이 없군요. 창문도 하나 없네. 깨질 물건은 하나도 없어. (문득 어조를 높여서) 한데, 내 칫솔은 왜 압수한 거요?

     안내인: 아, 좋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아직 이른바 인간적 품위를 떨치지 못한 건가요? 이런 표현, 미안합니다.

     가르생: (화가 나서 안락의자 팔걸이를 내려치며) 빈정대지 마시오. 내 처지를 분명히 알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건 못 참아...

     안내인: 아, 알겠습니다! 기분 상하게 할 뜻은 없습니다. 댁은 뭘 원하시나요? 고객들은 다 똑같은 질문들을 던져요.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정말 멍청한 질문들이지요. 다들 “고문실은 어디 있어요?” 하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좀 진정되면 칫솔을 요구하는데, 그래봤자 개인위생을 염려해서 그러는 건 전혀 아니에요. 한데 정말이지, 당신들은 생각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요? 대답해 보세요, 당신이 왜 이를 닦아야 하는 겁니까? 

 

     가르생: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래, 그럴 필요가 없군. (다시 사방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거울은 왜 들여다보고 싶어 하나? 하지만 벽난로 위에 있는 저 청동 흉상으로 말하자면… 내가 저기서 눈을 떼지 못할 순간이 올 것 같아요. 눈을 떼지 못하겠지요? 

좋아요, 우리 툭 털어놓고 얘기해 봅시다. 난 내 처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오. 이게 어떤 느낌인지 말해 볼까요? 한 남자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데, 두 눈은 아직 물 위에 내놓고 있는 꼴이오. 그리고 무엇을 볼까요? 그 사람 이름이… 아, 바르베디앙, 그가 만든 청동 흉상을 보겠지요. (*Barbedienne, 1810-1892, 프랑스 금속세공인). 이건 악몽이오! 이게 저들의 의도 아닌가요? 

아, 아니야, 당신은 질문에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겠지. 그래서 더 묻지 않을 게요. 하지만 나한테 함부로 대하지는 마시오, 나를 놀라게 하면서 즐길 생각일랑 접어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 (다시 앞뒤로 바장인다.) 자, 칫솔은 필요 없게 됐어. 침대도 그렇고. 여기서는 다들 잠도 안 자는 모양이구려? 

     안내인: 그렇습니다. 

 

출구는 없다
사르트르 희곡 <출구는 없다>

 

     가르생: 그럴 줄 알았소. 잠을 왜 자야 하지? 졸음이 당신 뒤편에서 조용히 다가들고 눈이 저절로 감기는 것을 느끼지만, 침대로 갈 필요가 없지. 소파에 눕는데, 이런, 잠이 달아나고 마네. 두 눈을 부비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고.

     안내인: 당신은 정말 낭만적이군요!

     가르생: 그런 소리 마시오. 난 눈물 흘리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을 게요. 금방 말한 대로 상황을 직면할 거요. 공정하고 당당하게 마주할 것이오. 내가 짐작도 하기 전에 상황이 뒤통수치기를 바라지 않아요. 이걸 당신은 낭만적이라고 부르는군요. 여기선 휴식이 필요 없다는 뜻이오? 휴식이 필요 없다면 잠을 왜 자나? 안 그렇소? 잠깐만. 이봐요, 여기선 징벌을 어떻게 받지요? 어디서? 아, 알겠어, 휴식도 없이 내닫는 삶이로군.

     안내인: 휴식도 없다니요?

     가르생: (그를 흉내 내면서) 휴식도 없다니요? (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시오. 내 그럴 줄 알았어! 당신 눈길이 왜 이다지도 뻔뻔스러운지 이제 알겠소. 근육 위축증에 걸렸군!

     안내인: 무슨 뜻이지요?

 

     가르생: 당신 눈꺼풀 말이오. 우리네 눈꺼풀은 위아래로 움직여요. 이걸 가리켜서 깜빡거림이라고 하지. 이건 찰칵 하고 내려가면서 휴식을 취하는 작고 검은 셔터 같은 것이라오. 모든 것이 검게 변하고 두 눈은 축축해지지요. 그러면 얼마나 휴식이 되고 상쾌해지는지 당신은 모를 게요. 한 시간마다 4천 번의 짧은 휴식이 있다오. 4천 번의 짧은 멈춤을 생각해 봐요! 뭐라구요? 내 눈꺼풀도 닫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어리석게 굴지 마시오. 눈꺼풀 없는 것이나 잠을 못 자는 것이나 매한가지야. 난 절대 다시 잠자지 않을 거요. 

하지만 어떻게 견디냐고? 이해하려고 해 봐요. 보다시피, 난 놀리기를 좋아해요, 이건 나의 제 2의 천성이고, 난 자기 자신을 놀리는 데 익숙하다오. 자신을 괴롭히는 데 익숙하다고 해도 되겠지. 난 멋지게 괴롭히지 못해. 그러나 휴식도 없이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저 아래에서 나한테는 밤이 있었다오. 난 잠을 잤어요. 늘 곤히 자곤 했어. 일종의 보상 같은 거지요. 그리고 행복한 꿈도 살짝 꾸었지. 거기엔 푸른 들판이 있었다오. 그냥 평범한 들판인데, 거기서 한가롭게 거닐곤 했지… 여긴 지금 낮이오?

 

     안내인: 램프 켜져 있는 게 안 보입니까? 

     가르생: 아, 그래요, 알겠어. 그러니까 이게 당신네 낮이로군. 바깥은 어떻소?

     안내인: (놀라서) 바깥이라니요?

     가르생: 이런 젠장, 무슨 뜻인지 알잖소. 저 벽 너머 말이오!

     안내인: 거긴 통로가 있습니다. 

     가르생: 그러면 통로 끝에는?

     안내인: 객실들이 더 있고 통로도 더 있고 또 여러 계단이 있지요.

     가르생: 그 다음엔 뭐가 있나요?

     안내인: 그게 전붑니다. 

     가르생: 당신도 쉬는 날이 있을 텐데, 그때는 어디로 가시오?

     안내인: 숙부한테 갑니다. 3층에서 선임 안내원으로 일하지요. 

     가르생: 흠, 그렇군. 전등 스위치는 어디 있지요?

     안내인: 여기에 스위치 같은 건 없습니다.

     가르생: 뭐라구요? 그렇다면 불을 못 끈다는 뜻이오?

     안내인: 아, 관리실에서 전기를 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층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엔 전기가 넘치니까요.

     가르생: 거 참 좋군. 그러니까 늘 눈을 뜨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오?

     안내인: (빈정대듯이) ‘산다’는 표현을 쓰셨나요? 

     가르생: 말꼬리 잡지 마시오. 눈을 감지 않는다. 영원히. 눈앞엔 늘 대낮이야. 또 머릿속에도. (휴지.) 벽난로 위에 있는 저 청동상을 전등 위에 떨어뜨리면 불이 나가지 않을까? 

     안내인: 그건 아주 무겁습니다.

     (가르생이 청동상을 들어 올리려 한다.)

     가르생: 맞네. 정말 무겁군. (침묵.)

     안내인: 그럼, 더 하실 말씀 없다면, 물러가겠습니다.

     가르생: (흠칫 놀라면서) 뭐, 간다구요? 잘 가시오. (급사가 문에 이른다.) 잠깐. (급사가 몸을 돌린다.) 이게 벨 맞소? (급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원할 때 벨을 누르면 당신이 나타나나요?

     안내인: 원칙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끔 말을 안 들어요. 배선에 문제가 좀 있지요.

     (가르생이 벨 쪽으로 다가가서 누른다. 벨이 울린다.)

     가르생: 잘 작동하는군!

     안내인: (놀라서) 정말 작동하네요. (역시 벨을 누른다.) 하지만 좋아하진 마세요, 변덕이 심하니까요. 이제 정말 가야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가르생: (손짓으로 그를 세우면서) 저기…

     안내인: 네?

     가르생: 아니, 아무 것도 아니요. (그가 벽난로 쪽으로 가서 페이퍼 나이프를 집어 든다.) 이건 또 뭐지요?

     안내인: 보시다시피, 책갈피를 자르는 칼입니다. 

     가르생: 여기 책이 있다는 말이오? 

     안내인: 아니요. 

     가르생: 그러면 이걸 뭐에 써먹나? (안내인이 어깨를 추썩인다.) 됐어, 가 봐요.

     (안내인이 퇴장한다.)

 

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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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사르트르의 <출구 없는 방> 소개

사르트르의 <출구 없는 방> (2)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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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 없는 방> 소개와 분석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출구 없는 방>은 독일의 프랑스 점령을 상징하는 작품. 

그 자신이 2차 대전 동안 프랑스군 군인으로서 패배와 전쟁의 고통을 생생히 겪었다. 

사건은 지옥의 일부로 간주되는 방에서 벌어지는데, 이 방에 들어선 세 사람은 서로가 제 주변에 있는 다른 존재를 견디지 못한다. 이것은 전쟁 동안 뒤섞여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 간의 관계를 암시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 희곡에서 사르트르는 자유, 타인에게 의존, 속임수, ‘잘못된 믿음’ 같은 이슈를 다룬다. 


사르트르 출구는 없다<출구는 없다> 공연 장면


죽음을 보는 방식이며 현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사르트르의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이 희곡에 담긴 여러 관념이며 상징화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각자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캐릭터들도 깊이 있게 살펴봐야겠다. 

사르트르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통제하게 하는 존재인 ‘존재 안의 존재(being-in-itself)’나 아니면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인 ‘존재 위한 존재(being-for-itself)’를 확고하게 믿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경구는 인간 의식이 ‘존재 위한 존재’나 ‘존재 안의 존재’에 집중됐다는 그의 믿음을 드러내는 주제였다. 

인간에겐 자신의 생각, 특유함, 가치, 어떤 특징을 선택할 힘이 있다. 이런 힘과 더불어 선택에 대한 책임도 따라붙는다. 이 책임이 두려워서 사람들은 한 발 물러선 채 자기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고 통제하게 하는 것. 이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 방법. 그럼으로써 ‘존재 위한 존재’ 대신 ‘존재 안의 존재’가 생긴다. 


이 희곡에서 사르트르가 묘사한 캐릭터는 안내인과 이네스, 에스텔, 가르생. 가르생은 리오 출신의 저널리스트로서 가장 먼저 방에 들어온다. 그는 전쟁 중에 탈영하려 했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탈영이 평화주의자로서 신념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변한다. 대화가 펼쳐지면서 가르생은 자기네 세 사람이 어쩌다 우연히 한데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로써 서로를 고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같이 있게 됐음을 깨닫는다. 또 이 곤경을 수습하는 최선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각자 따로 지내면서 다른 사람을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가르생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구의 현재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지구에서 사랑한 사람들에게 저지른 못된 짓을 두고 자신을 달래려고 한다. 자신이 왜 지옥에 떨어졌는지 충분히 깨닫고 더 이상 아무 의문도 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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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객실에 들어온 이네스는 가장 파괴적인 캐릭터. 그녀는 다른 두 사람에게 적대감과 문제를 불러일으키려고 든다. 과거에 그녀는 우체국 사무원이었다. 자신이 사촌의 아내를 유혹하고 간통을 저질렀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자는 동안 자기 사촌의 아내이자 자신의 애인이 스토브를 켜 두어 가스가 새 나오는 바람에 함께 죽었다. 남자들을 싫어하는 게 분명한 이네스는 가르생을 미워하여 툭하면 아옹다옹한다. 하지만 에스텔이 아주 매력적인 여성임을 금방 알아차리고는 계속 치근댄다. 에스텔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면서도 실제로는 그녀를 두려워한다.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온 사람은 에스텔. 셋 중에서 가장 크게 겁에 질려 있다. 자신의 실제 존재를 스스로 상기하기 위해 거울을 보는데, 그 방에는 거울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가르생과 이네스에게 의존하기로 한다. 또한 자신은 지옥에 있는 게 아니라고 굳게 믿으면서 폐렴으로 죽었다는 것만 인정한다. 그녀는 ‘죽은’이란 단어 대신 ‘부재중’이란 단어를 쓰자고 다른 두 사람에게 부탁한다. 

이네스가 계속 집적대지만 에스텔은 오로지 남자하고만 함께 할 수 있으며 가르생을 좋아한다고 밝힌다. 가르생은 한순간 에스텔에게 흥미를 보이다가 곧 이네스와 그녀의 행동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에스텔은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으며 사생아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가장 베일에 싸인 캐릭터는 안내인. 그는 세 사람을 방으로 안내하면서 질문에는 거의 대답하지 않으며 수수께끼 같은 말만 짧게 남기곤 한다. 자기를 호출할 수 있는 벨을 가르생에게 알려주지만, 그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안내인은 악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가르생에게 탈출할 기회를 주지만, 그러면서도 가르생이 이네스의 비판을 겁내 떠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세 사람은 안내인이 자기들을 은근히 우롱하며 방의 가구 배치 같은 문제로 아주 성가시게 한다고 여긴다. 


사르트르는 각 등장인물의
존재와 본질의 차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각자는 지구에서 이미 죽었고 남은 영혼으로만 생존할 수 있다. 그들은 폐쇄되고 고립된 상황으로 인해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스스로 볼 수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 행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전통적 접근 방식을 거부하는 것. 실존주의자들은 그 어떤 공동체나 전통, 법과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을 연구하고 들여다보기를 택한다. <출구는 없다>에서 우리는 실존주의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출구도 거울도 없기 때문에 캐릭터들은 자기네가 실제로 거기 있고 본질을 지니고 있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처음에 이네스는 가르생의 표정을 두고 가르생과 갈등을 겪는다. 입매가 마음에 안 드니 그만 씰룩거리라고 요구한다. 그가 그녀의 지적을 받아들여 씰룩거림을 멈추려 애쓴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이 자기네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의견에 의존하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가르생은 이네스가 그의 본질을 정의하도록 허용한 것. 


이 작품의 또 다른 흥밋거리는 사르트르가 지옥을 최종 장소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 마인드 상태가 지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독자가 알게 한다. 독일군의 파리 점령 기간에 이 희곡을 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내인의 눈꺼풀 없는 응시로써 사르트르가 나치의 프랑스인 감시를 비유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가르생은 안내인의 주시를 몹시 곤혹스럽게 여기는데, 다른 사람들의 의문의 눈길 받는 것을 겁내기 때문이다. 


에스텔은 가르생을 처음 볼 때 그를 지상의 연인과 결부시킨다. 이건 스토리 후반에 둘의 관계를 예고하는 것. 에스텔이 거울에 의존하여 실제로 거기 있다고 믿음을 통해 존재와 본질이 또 거론된다. 에스텔은 물질적인 것들에 의존해 자기 존재를 정의한다. 반면에 이네스는 자신의 존재나 본질을 다른 사람들이 정의하게 놔두지 않는다. “그녀는 항상 자신을 처절하게 의식한다고 주장한다.” 에스텔은 이네스에게 거울이 돼 달라고 하지만, 그녀가 에스텔을 제대로 돕기란 불가능하다. 외모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다르니까. 

에스텔과 가르생 둘 다 자기네 과거를 떠나보내고 이미 저지른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지옥을 만들어 내는데, 그건 끝없는 개인적 고문처럼 보인다. 둘은 여전히 과거에 있는 듯이 행동하며, 이네스와는 달리 지금 여기를 보려 들지 않는다. 이네스는 자신의 현재를 분명히 보며 과거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거기에 더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이네스와 마찬가지로 가르생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극히 염려하며 통제력이 부족할까 겁낸다. 그는 이제 자신이 사라졌고 자신의 기억과 유산을 남들에게 남겨 두어 기쁘게 했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을 정의할 자유를 다른 이들에게 넘긴다. 그는 이제 ‘존재 안의 존재’가 되었다. 이건 안내인이 그를 위해 문을 열 때 떠나지 않기로 한 이유이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행한 선택을 두고 사람들이 그를 판단할 것이라 믿으며, 자신을 영원히 이 방에 맡기기로 결정한다. 

사르트르는 가르생과 에스텔, 이네스를 한데 모아둠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지옥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지옥은 그냥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우리네 마음가짐일 수 있다. 각자가 서로 응시하는 파워가 대체로 각 개인의 개성을 앗아간다. 타인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고통을 야기할 때 신체적 고문은 필요가 없다. 각 캐릭터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책임을 잃고 무시한다. 


<출구 없는 방>은 삶의 여러 중요한 주제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접할 만하다. 

자기 행동에 책임,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기, 실존, 현재에 집중 등이 삶을 꾸리는 중요한 방법이다. 

여기 각 캐릭터는 많은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나약함이나 결점을 상징한다. 


* 공연 녹화물이 유튜브에 상당히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개중에 하나를 여기 옮깁니다.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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