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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몸체와 동일시하려는 에고 

 

금방 앞에서 설명한 과정은 대단히 강력하면서도 간단하다. 

이것을 어린애한테도 가르칠 수 있고 언젠가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축에 들어갈 것이다. 

 

고통의 몸체
고통의 몸체에 하도 익숙해지다 보니,고통 자체가 '나'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내면에서 벌어지는 것을 감시하는 자로서 존재한다는 기본 원칙을 이해하게 되면

그리고 그것을 체감함으로써 확실히 깨닫는다면… 가장 강력한 변환 도구를 마음대로 부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아무런 내적 저항 없이 아픔을 술술 털어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삶의 대부분을 자신의 감정적 아픔덩어리와 바짝 동일시하면서 살아왔고 자아감의 전부나 상당 부분이 아픔덩어리에 들어 있다면, 내적 저항이 특히 더 클 수밖에 없다.

이건… 아픔덩어리에서 불행한 자신을 만들어 냈으며 마인드가 만들어 낸 허구를 ‘나 자신’이라 믿는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무자각적인 두려움 때문에 모든 분리에 (즉, 동일시하기를 멈춤에) 강한 저항이 생길 것이다. 달리 말해, 잘 모르는 것에 뛰어들어서, 불행하지만 친숙한 ‘나’를 잃기보다는… 차라리 아픔을 겪는 게, 아픔덩어리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저항을 관찰하라. 

아픔에 집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라. 
경계 태세를 아주 높이라. 
불행한 상태에서 맛보는 기묘한 만족감을 관찰하라. 
그것에 관해 얘기하거나 생각하려는 강박 충동을 관찰하라. 
저항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들면, 그 저항이 멈출 것이다. 
그때 아픔덩어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증인으로 머물러 아픔덩어리의 변형을 주도할 수 있다.

 

이건 오로지 각자가 개인적으로만 할 수 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러나 운이 좋아서 이미 높은 수준의 의식을 갖춘 이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현존 상태에서 연결될 수 있다면, 대단히 유익하게 과정을 앞당길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각자의 빛이 빠르게 더 강해질 것이다. 막 불붙기 시작한 통나무를 이미 훨훨 타고 있는 것 곁에 잠시 두었다가 떼어 놓으면, 첫 번째 통나무는 훨씬 더 강렬하게 타오를 것이다. 결국, 그건 같은 불길이야. 

 

그런 불꽃이 되는 것이 영적 마스터의 기능들 중 하나이다. 일부 치유 전문가들도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데, 단, 이미 마인드 수준을 넘어섰고 누군가와 작업하는 동안 강렬한 의식적 존재 상태를 만들어 유지할 수 있는 경우에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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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아픔: 

 고통의 몸체 녹이기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설 수 없는 한… 

우리가 겪는 감정적인 아픔은 모조리 우리 안에 웅크리고 있는 다른 아픔의 잔재 뒤로 숨어든다. 

그건 이미 거기에 있던 과거의 아픔과 합쳐져서 우리네 마인드와 몸에 기식하게 된다. 

여기에는 우리가 태어난 세상의 무지와 무자각 때문에 어린 시절에 겪어야 한 아픔도 물론 들어간다. 

고통의 몸체

이 퇴적된 아픔이 우리 몸과 마인드를 점령하고 있는 부정적 에너지장이다. 이것을 만약 보이지 않지만 제 나름대로 움직이는 실체로 볼 수 있다면, 진실에 매우 근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아픔덩어리이다. (혹은, 고통의 몸체이다.) 

이 아픔덩어리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휴면 상태와 활동 상태. 

 

아픔덩어리는 대체로 전체 시간의 9할 정도는 졸고 있지만, 심히 불행한 사람의 경우엔 100% 시간 내내 꿈틀거릴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거의 전적으로 아픔덩어리를 통해 사는 반면에,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을 특정 상황에서만 겪을 수 있다. 이를테면, 아주 무간한 사이에서, 혹은 과거의 상실이나 절망, 배신 또는 신체나 감정의 상처 등과 연결된 상황에서 그렇다.  

 

이 졸고 있는 고통의 몸체를 무엇이든 꿈틀거리게 할 수 있다. 특히 당사자의 과거 아픔 패턴과 공명하는 것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조는 상태에서 깨어날 채비가 돼 있을 때, 그건 가까운 누군가의 악의 없는 말이나 생각으로도 활성화될 수 있다. 

 

어떤 고통의 몸체는 계속 징징대는 아이처럼 밉살스럽고 불쾌하지만 비교적 해롭지 않다.

또 어떤 아픔덩어리는 사악하고 파괴적인 괴물이요 진짜 악마이다. 개중에 어떤 것은 물리적 폭력도 꺼리지 않으며, 더 많은 것은 감정적인 폭력을 삼가지 않는다.  

어떤 고통의 몸체는 그 주인의 주변 사람이나 지인들을 공격하는 반면에, 또 어떤 것은 직접 주인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아주 부정적이고 자멸적인 성격을 띤다. 질병이며 불행한 일이 그렇게 해서 종종 발생한다. 제 주인을 자살로 몰아넣는 아픔덩어리도 있다. 

잘 안다고 여겨 오던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설고 혐오스러운 괴물이 되어 내 앞에 마주할 때, 우리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아픔덩어리를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 안에서 관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한테 불행의 징후가 되는 것을 죄다 주시해야 하니… 그것이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고통의 몸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짜증이나 성급함, 울적한 기분, 괜히 어깃장 놓으려는 태도, 노여움, 분노 발작, 우울증, 또 대인관계에서 극적인 행동을 취하려는 욕구 등의 형태를 띨 수 있다. 

이 고통의 몸체가 졸다가 잠깨려는 순간을 포착하라.

 

다른 모든 현존하는 실체와 마찬가지로 고통의 몸체도 생존하기를 원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동일시할 때만 생존이 가능하다. 그때 그건 벌떡 일어나서 우리를 지배하여 ‘우리 자신이 되고’ 우리를 통해 살 수 있다. 그건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우리를 필요로 한다. 

그건 그 자체 에너지에 공명하는 우리네 체감에서 에너지를 얻으며 노여움이나 증오, 비탄, 감정 폭발, 파괴적 성향, 폭력, 심지어 질병 같이 아픔을 더 키우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이로 삼는다. 그리하여 고통의 몸체가 우리를 장악했을 때, 그건 자체 에너지 주파수를 되쏘는 상황을 우리 삶에서 만들어 그 에너지를 먹고 산다.  

아픔은 아픔만 먹고 살 수 있다. 아픔은 기쁨을 먹고 살 수 없다. 소화해내지 못하니까고통의 몸체에 한번 정복당하면, 우리는 아픔을 더 많이 원하게 된다. 

그래서 피해자나 가해자가 된다. 직접 고통을 겪거나 누군가에게 고통을 가하고 싶어진다. 혹은 둘 다를 동시에 원한다. 전자와 후자는 실제로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난 아픔을 전혀 원치 않아!” 하고 맹렬히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네 생각과 행동은 자신과 다른 이들한테 계속 아픔을 주게끔 설계돼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이런 점을 우리가 진정 의식한다면… 그 패턴은 녹아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누가 아픔을 더 많이 바라겠으며, 의식적으로 미치광이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아픔덩어리는 에고가 드리운 그림자로서, 실제로 우리네 의식의 빛을 겁낸다. 그건 발각될까봐 겁낸다. 그것의 생존 여부는… 그걸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동일시하느냐, 또 내면에 도사린 아픔 직시하기를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느냐에 좌우된다. 만약 이 아픔덩어리를 직시하지 않고 우리 의식의 빛을 거기에 비추지 않는다면… 그건 계속 발톱을 드러낼 것이다. 

고통의 몸체가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위험한 괴물로 보일 수 있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이건 한낱 실체 없는 환영에 불과한 것이며 우리 현존의 힘에 대항할 수도 없다. 

 

몇몇 영적 가르침은 모든 고통이 궁극적으로 환상이라고 언명하는데, 이건 진실이다. 

한데 “당신도 진실이라고 여기나?” 하는 점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저 언명을 진실로 만들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고통을 겪으면서도 계속 이건 환상이라고 말만 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인가? 

그렇게 한들 과연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까? 

이제 우리는 각자의 생생한 체감을 통해 이 진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고통의 몸체는 우리의 관찰을 받아 정체가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관찰하고 내면에서 그 에너지장을 느끼고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그것과의 동일시가 깨진다.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열린다. 난 그것을 현존이라고 부른다. 

 

이제 우리는 아픔덩어리의 목격자나 감시인이다. 이건… 아픔덩어리가 우리를 참칭하면서 우리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고, 우리한테서 더 이상 에너지를 빨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자신의 심원한 힘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순간의 힘에 다가서게 된 것이다. 

 

 

우리가 아픔덩어리와의 동일시를 깰 만큼 충분히 의식하게 될 때… 그건 어떻게 되나? 

고통의 몸체를 만드는 것은 무자각인데, 의식이 그것을 의식(자각)적인 것으로 변질시킨다이 보편적 원리를 바울 사도가 잘 표현했다. “모든 것은 빛을 받으면 보이게 되고, 빛에 드러나는 것은 무엇이든 스스로 빛이 된다.” (에베소서 5:13) 

우리는 어둠과 싸울 수 없듯이 고통의 몸체와도 싸울 수 없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내적 갈등이 생겨 고통이 더 많아질 것이야. 주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시한다는 것은 그걸 그 순간에 실재하는 것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고통의 몸체
고통의 몸체 = 아픔 덩어리 = 과거의 누적된 아픔

아픔덩어리는 갇힌 생명 에너지로 이뤄진다. 이 에너지는 우리의 전체 에너지장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며 마인드와 동일시라는 부자연스러운 과정의 결과 한동안 독자성을 띤다. 이건 불시에 스스로 돌변하여 자기 꼬랑지를 삼키려고 하는 짐승처럼 반생명적인 것이 된다. 

우리네 문명이 어째서 생명 파괴적인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생명을 파괴하는 힘마저도 여전히 생명 에너지이다.

 

우리가 마인드와 떨어져서 감시자가 될 때도, 고통의 몸체는 한동안 여전히 꿈틀대면서 우리를 자기와 자꾸 동일시하게 만들려고 꾀를 낼 것이다. 우리가 동일시하기를 그만둠으로써 에너지를 더 이상 공급하지 않더라도 아픔덩어리는 타성 때문에 스스로 돌아가는 물레바퀴처럼 한동안은 꿈틀거린다. 이 단계에서 그것이 신체 여러 부위에 괴로움과 아픔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그게 오래 가지는 않는다. 

현재에 계속 머물면서 예리하게 의식하라. 
항상 경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 공간을 지키라. 
이 아픔덩어리를 직접 관찰하고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실재해야 한다. 그러면 그건 우리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네 생각이 아픔덩어리의 에너지장과 동조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과 동일시되며 우리의 생각으로 다시 그걸 먹여 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노여움이 아픔덩어리의 주된 에너지 진동이고 우리가 화를 내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한 짓이나 그자를 한번 손봐줘야겠다는 생각을 품는다면, 우리는 무자각 상태가 되며 아픔덩어리가 곧 ‘나 자신’이 된다. 분노가 있는 곳에는 그 밑에 늘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혹은, 어두운 분위기가 찾아들고 갖가지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내 삶이 참으로 하찮고 끔찍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몇몇 생각의 벡터가 고통의 몸체와 같은 방향을 달리게 되어 우리는 무자각에 빠지고 아픔덩어리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여기서 ‘무의식이나 무자각’은 어떤 정신적 패턴이나 감정적 패턴과 동일시된다는 뜻이다. 이건 감시자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뜻도 포함한다. 의식적으로 오랫동안 계속 주의를 기울이면… 아픔덩어리와 우리네 생각 과정의 연결이 차단되어 아픔덩어리가 변질하게 된다. 고통이 우리 의식의 불꽃에 연료가 되고, 그 결과 의식의 불길이 더 환히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쇠를 귀금속으로 변형하는 고대 연금술의 밀교적 의미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깨어난 의식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의식의 계층화가 멈추고 내면의 분열이 치유됨으로써 우리는 다시 온전해진다. 그때 우리의 책임은 아픔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정을 요약해 보자. 

자기 내면의 감정에 주의를 집중하라. 
그것이 바로 아픔덩어리라는 것을 알아두라. 

그것이 내면에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라. 
그것을 생각하지 말라. 즉, 감정이 생각으로 바뀌지 않게 하라. 
그것을 판단도 분석도 하지 말라. 

아픔덩어리의 특질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들지 말라.
계속 현재에 머물면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계속 관찰하라. 
감정적인 아픔뿐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관찰자’요 말없는 감시인이 있다는 점도 인식하라. 

이것이 바로 <지금> 순간의 힘이요, 우리네 본연의 의식적인 현존의 힘이다. 

그렇게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많은 여성들 경우, 아픔덩어리가 특히 생리를 앞두고 눈뜬다. 그것이 잠깨는 이유 등에 관해서는 뒤에 가서 더 자세히 얘기하겠다. 지금은 이런 점만 말하고 싶다. 즉… 

그 순간에 방심하지 않고 늘 조심하며 내면에서 느끼는 것에 지배되는 대신 그걸 죄다 지켜볼 수 있다면… 가장 강력한 영적 수행 기회를 얻게 되며, 그때 과거의 모든 아픔을 빠르게 변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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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깨어 있는 의식 -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현재에서 더 이상 고통을 만들지 않기

  

- 그 어떤 인생도 아픔과 슬픔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것을 피하려 들기보다는 그런 것을 안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아픔의 진단

사람들이 겪는 아픔 대부분은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마인드를 지켜보지 않고 마인드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놔두는 한 아픔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내는 아픔은 늘…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에 자기도 모르게 저항할 때 생긴다. 

생각 수준에서 하는 저항은… 어떤 형태의 판단이다. (평가, 분류, 낙인찍기, 비판 등). 
감정 수준에서 하는 저항은… 어떤 형태의 부정성이다. (부정적인 생각, 감정, 태도).

아픔의 통렬함은 현재 순간에 저항하는 정도에 따라 다르고, 이 저항의 정도는 또 우리가 마인드와 얼마나 크게 동일시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마인드는 늘 <지금> 순간을 부정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한다. 

달리 말해, 자기 마인드와 더 동일시될수록 더 큰 고통을 겪는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는 순간을 더 많이 존중하고 수용할수록 우리는 아픔과 고통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에고 마인드에서 더 자유로워진다. 

 

그렇다면 마인드는 왜 <지금> 순간을 습관적으로 부정하거나 거기에 맞서는 건가? 

왜냐하면, 마인드는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이 없으면 기능하지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하기 때문인데, 또 그런 이유에서 시간을 초월한 순간인 <지금>을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간과 마인드는 사실상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인류가 없고 식물과 동물들만 있는 지구를 상상해 보라. 거기에도 과거와 미래가 있을까? 

그곳에서도 어떤 의미로든 시간을 얘기할 수 있을까? 

거기서 누군가가 “지금 몇 시야?” 혹은 “오늘은 며칠이야?” 하고 묻는다면, 그런 질문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야. 그런 물음에 참나무나 독수리는 어리둥절하여 “시간이 뭔데?” 하며 되묻고는 이렇게 대꾸하리라. 

“아아, 그건 물론 지금이지. 시간이란 바로 지금이야.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어?!” 

 

그래, 이 세상에서 우리에겐 마인드만큼이나 시간도 필요하지만, 마인드와 시간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지점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마인드의 기능 장애와 아픔과 슬픔이 자리 잡은 곳이다. 

마인드는 자신의 통제력을 담보하기 위해 현재 순간을 과거나 미래로 계속 덮으려 든다. 그 결과, <지금> 순간과 불가분한 <존재>의 생명력과 무한한 창조적 잠재력이 시간에 의해 감춰지고, 우리네 진짜 본질은 마인드에 의해 흐려진다. 

시간이 점점 더 무거운 짐이 되어 인간 마인드에 쌓여 왔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무게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지금>이라는 소중한 순간을 무시하고 부정하거나 미래의 어떤 순간에 이르는 수단으로 축소하면서 시간의 하중을 계속 키우고 있다. 미래의 어떤 순간이라는 것은 결코 실제가 아니라 마인드에만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인간의 집단 마인드개별 마인드에 퇴적된 시간 속에는 또한 과거의 아픔이 엄청나게 많이 잔존한다. 

만약 자신이나 다른 이들한테 더 이상 아픔을 초래하지 않고자 한다면, 만약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는 과거 아픔의 잔재에 새 아픔을 보태고 싶지 않다면… (과거나 미래 같은) 시간을 더 이상 만들지 말라. 혹은, 삶의 실제 측면을 다루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은 만들지 말라.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나? 

현재 순간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임을 절실히 깨달으라. 
<지금> 순간을 삶의 주된 초점으로 삼으라. 
만약 예전에는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 속에 주로 머물다가 가끔씩 <지금> 순간에 들르기만 했다면, 이제는 <지금> 순간으로 거처를 옮겨 살면서 실제 상황의 어떤 측면에 필요하다 싶을 때만 과거와 미래를 잠깐 찾아가라. 

현재 순간에 늘 “예스”라고 말하라. 
이미 있는 것에 내면에서 저항하는 것보다 더 무익하고 비합리적인 것이 또 뭐가 있겠나? 
지금 있고 언제나 지금에 있는 삶에 맞서는 것보다 더 비상식적인 것이 또 뭐가 있겠나? 
지금 있는 것에 승복하면서 삶에 “예스”라고 말하라. 
그렇게 할 때… 삶이 어떻게 갑자기 더 잘 풀리기 시작하는지를 직접 보라.  

 

- 현재 순간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더러 있다. 불쾌하거나 끔찍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럴 때는… 현재 순간에 마인드가 어떻게 꼬리표를 붙이는지 지켜보고, 이 분류 과정과 끊임없는 판단이 어떻게 아픔과 불행을 만들어 내는지 관찰하라. 

마인드의 작동 구조를 주시함으로써 마인드의 틀에 박힌 저항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되고, 그때 현재 순간이 있게끔 할 수 있다. 그러면 외부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내면 상태를, 진정한 내적 평온을 맛보게 된다.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냥 관찰하고 필요하거나 가능한 경우에 조치를 취하라. 

먼저 받아들이고 나서 행동하라. 
현재 순간에 어떤 게 담겨 있든 간에, 그걸 마치 내가 선택한 것처럼 받아들이라. 
현재 순간에 있는 것에 맞서지 말고 그것과 함께 늘 일하고 움직이라. 
그것을 적이 아니라 친구요 동맹으로 만들라. 
그러면 삶이 온통 기적처럼 달라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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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인 거야!"

"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지옥인 거야!"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이야.

 

얼핏 듣자면,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임을 알게 됩니다. 

사르트르는 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 없이 혼자 살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이 서로한테 어쩌면 필요악인가요?

물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일 수 있지만, 또 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그건 각자가 서로 하기 나름! 이게 중요하겠지요. 

 


 

 2장 

     가르생.

 

     가르생 혼자 있다. 청동 장식품에 다가가서 손으로 톡톡 건드린다.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난다. 문 쪽으로 다가가서 벨을 누른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두세 번 계속 눌러 보지만 소용없다. 그러자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역시 꿈쩍도 않는다. 그가 소리쳐 부른다.

 

     가르생: 안내인! 안내인!

 

     대답이 없다. 가르생이 문을 세게 두드리면서 안내인을 계속 부른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안내인과 함께 이네스가 들어선다. 

 

 3장 

 

 가르생, 이네스, 안내인.

 

     안내인: 부르셨나요, 선생님?

     가르생: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이네스를 보고는 바꿔 말한다) 아니요. 

     안내인: (이네스를 보면서) 여기가 부인 방입니다. (이네스가 대꾸하지 않는다.) 혹시 물으실 게 있다면... (이네스가 계속 입을 다물자, 실망한 빛으로) 우리 손님들 대다수는 저한테 여러 질문을 하지요. 하지만 제가 강요하진 않습니다. 어쨌든, 칫솔이며 초인종, 벽난로 위에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이 신사분이 이미 알고 계시니까 잘 대답해 주실 겁니다. 이 분과 저는 얘기를 좀 나누었거든요. 

     (안내인이 나간다. 침묵. 가르생은 이네스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네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르생 쪽으로 몸을 홱 돌린다.)

     이네스: 플로렌스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이 침묵한다.) 난 플로렌스에 관해 묻는 거예요. 그녀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네스: 이건 다 당신이 궁리한 거지요? 떼어 놓고 고문하는 것 말이에요. 한데 내가 알기에 당신은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플로렌스는 귀찮은 멍청이였고, 난 그녀를 조금도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구요.

     가르생: 미안하지만,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닌가요?

     이네스: 당신... 하는 일이 고문이잖아요. 

     가르생: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거 참, 정말 우스꽝스럽군요! 내가 고문자라니! 그러니까 이 방에 들어와서 나를 보고는 이곳 직원이라고 생각했군.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요! 저 안내인이 멍청해서 그래, 우리를 서로 소개했어야지! 나를 고문자로 보다니! 난 조세프 가르생이라고 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지요. 우리 둘 다 이를테면 같은 배를 탄 셈이니까, 제가 물어봐도 될까요? 마담은...

    이네스: (무뚝뚝하게) 이네스 세라노라고 해요. 마담이 아니라 마드무아젤이에요. 

 

출구없는방무대 장면

 

    가르생: 좋아요, 어쨌든 시작은 됐어요. 자, 우리 사이에 얼음이 깨졌는데, 내가 아직도 고문자처럼 보이나요? 아, 그리고 고문자들은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요? 당신은 분명 뭘 좀 아는 것 같은데. 

     이네스: 그들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가르생: 겁먹은 표정이요? 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얘기로군요. 그들이 누구한테 겁을 먹나요? 자기네가 고문한 사람들한테?

     이네스: 그래, 맘껏 웃어요. 하지만 내 말은 틀리지 않아요. 나는 유리 같은 데 비친 내 얼굴을 자주 들여다봤어요.

     가르생: 유리에?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저들은 정말 못돼먹었군. 유리 같은 건 다 치웠으니 말이에요. (휴지) 어쨌든 분명히 말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경망스럽게 구는 건 아니에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압니다. 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전혀.

     이네스: (어깨를 추썩이며) 그건 당신 문제구요. (휴지) 당신은 항상 여기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가끔 산책이라도 하나요? 

     가르생: 문은 잠겨 있습니다. 

     이네스: 거 참 고약하네요. 

     가르생: 내가 있어서 당신이 많이 불편할 겁니다. 사실 나도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해요.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건 혼자 있을 때 더 잘 되니까요. 하지만 우린 어떻게든 잘 지낼 거라고 믿어요. 난 말이 많지 않고 많이 움직이지도 않아요. 평화로운 부류에 속하는 편이지요. 단지 하나, 감히 제안하자면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정중하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게 서로를 다치지 않는 최상의 방법 아니겠어요?

     이네스: 난 예의를 잘 차리지 못해요.

     가르생: 그렇다면, 내가 두 몫으로 정중하게 처신해야겠군요.

     (침묵. 가르생이 소파에 앉는다. 이네스가 방안을 앞뒤로 서성인다.)

 

     이네스: (그를 바라보면서) 당신 입이... 

     가르생: (생각을 떨치면서) 뭐라구요?

     이네스: 입 좀 가만둘 수는 없나요? 입을 계속 씰룩거리고 있잖아요. 보기가 참 안 좋아요.

     가르생: 정말 미안하오. 난 그런 줄 몰랐어요. 

     이네스: 그래서 지적하는 거예요. (가르생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저 봐, 또 그러네. 당신은 예의 운운하면서 자기 얼굴 하나 컨트롤하려 들지도 않는군요. 당신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요.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나한테 옮기면 안 돼요.

     (가르생이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가르생: 당신은 어때요? 두렵지 않은가요?

     이네스: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예전엔 두려워할 이유가 웬만큼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단 말이죠. 

     가르생: (맥없이) 더 이상 희망은 없어요. 하지만 아직도 그 “예전”입니다. 우리 고통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마드무아젤.

     이네스: 그건 알아요. (휴지)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가르생: 모르겠소. 기다려야겠지요. 

     (침묵. 가르생이 다시 제 자리에 앉는다. 이네스가 또 앞뒤로 바장인다. 가르생이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이네스를 흘낏 보고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에스텔과 안내인이 들어선다.)

 

4장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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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기법 (3. 최종)  

 

제대로 질문하는 방법을 알려면 질문의 유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사적인 대화와 업무 대화에서 모든 유형의 질문을 적용할 줄 알면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가 더 쉽다. 

먼저, 주요 질문 유형.

질문 기법

 

<수사적 질문>

이런 질문은 상대한테서 (지지, 주의 강조, 해결 과제 등) 필요한 반응을 야기하며 직답을 요하지 않는다.

또 표현에서 화자의 성격과 감정을 키우며, 말을 더 풍부하고 감성적인 것으로 만든다.

예,

"언제나 되어야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기를 배울까요?”

“이번 사건을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요?”

수사적 질문은 짧고 간명하게 들리며, 적절하고 알아듣게 틀을 갖춰야 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동의와 이해의 표시는... 흔히 침묵. ("침묵은 긍정"이라는 말이 바로 이에 해당할 것.)

 

<도발적 질문>

이런 질문은 상대의 (논적의) 감정에 불을 지필 목적으로 던진다.

그가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여 은밀한 정보를 털어놓거나 불필요한 뭔가를 마구 늘어놓게 만들기 위함.

도발적 질문은 순전히 조종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때론 일 처리상 필요하기도 하다. 

단, 이런 질문을 던지기 전에 그와 관련된 위험성을 죄다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도전장을 던지는 셈이니까. 

 

<화제 전환 질문> 

대화의 주된 방향이 질문자의 관심과 멀 때, 그 관심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하는 질문.

자신의 어떤 문제 쪽으로 대화를 돌리려는 갈망에서 무심코 (대화 주제가 흥미롭다면, 그것과 무관한 것을 물을 필요가 없겠지), 혹은 의도적으로 건넨다. 

만약 당신의 <전환 질문>에 상대가 지금 토픽에서 멀어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

그러나 이때 당신이 내놓은 주제를 나중에, 다른 시간에 살피고 의논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다.

<전환하는 질문>은 또한 대화 주제를 그냥 벗어나거나, 그 대목이 재미없거나 불편할 때도 던진다. (그 사람과 지금 소통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런 질문은 건네지 않는 게 좋다.)

 

<릴레이 질문> 

상대가 제 자리에 빙빙 돌면서 얘기를 쉽게 전개하지 못하거나 않을 때, 진도가 나가게끔 이끄는 질문.

상대방 얘기의 어떤 대목을 포착하고, 상대 입장을 더 드러내게 자극하는 솜씨를 요한다.

예,

"지금 그런 얘기로 뭘 말하고 싶은 건가요?.."  

 

<지식을 과시하는 질문>

자신의 박식과 어떤 분야에 정통함을 대화 참여자들에게 드러내며 상대의 존중을 사려고 하는 목적에서 던지는 질문.

일종의 자아확인, 자기긍정. 

단, 이런 질문을 던지려면, 실제로 그 대상에 정통해야 한다. 그런 질문에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대답하라고 요청할 수 있으니까. 

"그럼, 당신 질문에 당신이 대답해 보세요.”

 

<거울 질문>

상대방의 언급을 일정 부분 담아서 건네는 질문.

말한 사람이 자기가 한 언급을 자신 바깥에서 보게 하기 위한 것.

또한 대화를 아주 적절하게 만들며, 대화에 의미와 개방성이 충분히 담기게 한다.

예,

“이런 걸 다시는 나한테 지시하지 말아요!” 하는 말에

“당신에게 지시하지 말라고? 이 일을 그렇게 잘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 말고 또 있을까?” 하고 건네는 물음.

 

이런 경우에 상대방 말에 “왜? 어째서?”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상대는 방어 자세를 취하면서 변명이나 합리화, 이상한 원인을 찾게 되며, 자칫 비난이 오가며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 '거울 질문'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낸다.

 

<택일 질문>

열린 질문의 형식이지만, 몇 가지 대답 버전을 담는 질문.

예,

"당신은 왜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택했나요? 처음부터 마음먹은 것이었나요, 아니면 아버지의 길을 따른 건가요, 혹은 친구가 있는 직장에 들어가려 한 건가요, 혹은 본인도 이유를 모르나요?"

이런 질문은 말수가 적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상대를 적극적인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함.

 

<침묵을 채우는 질문>

대화에서 간혹 생기는 어색한 침묵을 채우는, 적절한 질문.

 

<위로하는 질문>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고 달래는 작용을 하는 질문.

어린 자녀들이 있다면, 이런 질문이 익숙할 것. 그들이 뭔가에 풀이 죽어 있고 정신 팔려 있다면, 질문을 몇 가지 던짐으로써 달래고 진정시킬 수 있다.

이것은 즉각 효과를 낸다, 질문에 대답하면서 고민거리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니까. 어른들한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제대로 질문하는 솜씨를 키우려면 이런 원칙을 지켜야>

 

1. "간결함은 재능의 누이"

질문은 짧고 명확하고 분명해야.

그래야 대답 들을 가능성이 커진다.

복잡하게 넓게 생각하며 주제에서 멀리 벗어날 때, 구체적으로 뭘 묻고 싶은지 잊을 수 있다. 당신이 질문을 5분 동안 늘어놓는 동안, 상대방은 당신이 묻고 싶은 게 도대체 뭔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질문이 잘 안 들리거나 이해되지 않을 때도 그럴 수 있다. 만약 멀리 나아가고 싶다면, 먼저 내용을 설명한 뒤 이해되는 질문을 짤막하게 던진다.

 

2. 질문이 심문처럼 들리지 않게 하려면, 억양을 부드럽게 한다. 

질문 어조에서 대답을 강청한다는 빛을 내보이지 않아야 하며 (물론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조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울려야. 상대에게 양해 구하는 듯한 물음도 때론 아주 예의 바르게 들린다.

“확인 삼아 몇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3. 질문 솜씨는 경청 솜씨와 불가분의 관계. 

사람들은 자기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이들에게 아주 호감을 보인다.

당신 질문에 그런 주의 깊음으로 대할 것. 자신의 박식과 관심을 내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인 질문이 나오거나 이미 준비된 것을 수정하는 빌미가 될 수 있는 정보를 끄집어내지 않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4. 대다수 사람들은 직설적인 질문에 여러 이유에서 곧장 대답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술하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잘못된 정보를 건넬까 저어하기도, 내용을 잘 몰라서, 개인적이거나 회사의 규범 때문에, 말수가 적거나 수줍음이 많아서, 등등.) 어떤 경우이든 상대한테서 대답을 들으려면, 그가 관심 갖게 하고, 대답하는 것이 이롭다는 점을 설명할 필요.

 

5. 이런 식의 질문은 안 하는 게 좋다. 

“당신은 어떻게 ...을 할 수가...?” 

“당신은 왜 ...을 하지 않나?” 

올바른 질문이란 정보를 청하는 것이지, 은근히 비난하는 건 결코 아니다.

상대방 행동에 불만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점을 분명하지만 재치 있게 서술 형식으로 말하는 게 더 낫다. 질문 형식이 아니라.


 

올바르게 질문하는 방법을 알고 나면, 우리는

- 상대한테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 그를 더 잘 이해하고 그의 입장과 행동 동기를 더 잘 알고,

- 상대와 더 진실하고 미더운(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 향후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 또한, 상대의 약한 측면을 발견하고 그가 헷갈리는 것을 분석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심리학자들이 질문을 솜씨나 능력보다 기법이라고 더 자주 말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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